생명책 Ⅱ(요한계시록 13:8) / 주일 설교 원고(2019-10-13)

 생명책 Ⅱ(요한계시록 13:8)


지난 금요일 동서데이케어센터 노래방 시간에 어느 회원이 오른편 스피커를 자꾸 살피면서 on off 스위치를 확인합니다. 스피커 소리가 작아서 그러는 줄 알고 얼른 스피커 볼륨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또 스피커 뒷면을 확인하더니 손을 치켜들며 “너무 덥다”고 합니다. 그 순간 제가 스피커를 에어컨으로 착각을 하는구나! 생각하고 그 회원에게 귓속말로 “저것은 에어컨이 아니라 스피커입니다” 라고 말한 후에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천정의 위치를 알려주며 그 아래 서 있으면 시원하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자 천정에서 찬바람이 나오는 바로 아래 서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좋다고 표시합니다.

스탠드 스피커를 에어컨으로 착각했던 것처럼 신앙생활도 착각 속에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착각은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정말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생명책에 대한 신앙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생명책이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하면 심판의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어떤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까요?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생명책에 기록될 이름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성경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마치 내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이름은 어떤 사람인지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금광의 맥을 찾아가듯 말씀의 맥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사람은 복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로마서 5:1, 9). 그러므로 생명책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과 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영을 깨워 육의 사람을 영의 사람으로 정신의 사람을 영의 사람으로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6:63).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요한계시록 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은 “우상”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짐승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째는 짐승은 어디에서 올라오는가?
둘째는 짐승은 몇 마리인가?
셋째는 짐승은 어떤 모양인가?

요한계시록 13:1∼2,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짐승을 구약 다니엘서 7장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이 유대묵시문학 장르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유대묵시문학의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에 소개된 짐승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째는 짐승은 어디에서 올라오는가?
둘째는 짐승은 몇 마리인가?
셋째는 짐승은 어떤 모양인가?

다니엘 7:3∼8,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다니엘서에 소개된 짐승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정금), 바사(페르샤)(은), 헬라(철), 로마(진흙과 철)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으나 그 꿈에 대한 해석을 아무도 할 수 없었을 때 포로로 붙잡혀 왔던 다니엘은 꿈의 해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왕이 꾸신 꿈은 거대한 한 신상이라고 설명합니다.

거대한 신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며,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었고,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트림으로 산산조각이 나서 마치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고 해석합니다.

열 뿔이란 열 왕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책으로 모든 행위가 기록된 책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하나님과 더불어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증명하라!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섰습니다.
천국 문의 문지기 천사와 이야기를 합니다.
“어디로 가는가?”
“천국에 가려고 하는데요?”
“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를 믿는데요?”
“그건 귀신도 잘 믿어(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교회 예배 참석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전도도 했는데요?”
“그건 바리새인이 더 잘해(마 23장 참조).”
‘27절,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예수 이름으로 성공하고 출세했는데요?”
“그건 예수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더 잘해. 그런 것 말고 다른 것으로 네가 참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해봐.”
“............?”

못 들어갑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임페리얼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 한 점이 소중하게 소장되어 있다. 참으로 특별한 그림이다. 로마 황제가 성당에 들어가려 하는데 주교가 문을 딱 막아선 채 “못 들어갑니다!” 하고 저지하는 내용을 묘사한 그림이다.

소재가 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A.D. 390년, 데살로니가에서 로마에 항거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이를 진압한다고 데살로니가 시민을 1,500명이나 학살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교회는 로마 황제를 정죄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밀라노에 갔다가 성당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당시 밀라노의 사교(司敎)는 저 유명한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였습니다.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던 주교이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밀라노 성당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성당 정문 앞에 버티고 서서 황제를 단호히 가로막고 “못 들어갑니다!” 하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목숨을 건 암브로시우스의 이러한 태도 앞에서 황제는 “성경에 보면 다윗 왕도 죄인이 아닙니까?” 하며 냉정하게 대할 것은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다윗의 죄를 모방하시렵니까?” “그렇다면 다윗의 참회도 아셔야지요? 다윗처럼 회개를 하십시오!” 그 순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말에 기가 질려서 땅바닥에 엎드리고 말았다고 하는 내용의 그림입니다.


당신의 죄가 가리워져서


옛 켈트 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천사가 한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천사를 따라가면서 걱정합니다. “이렇게 함께 가자고 하시니 따라가기는 합니다만 나같이 죄 많은 영혼이 감히 그 거룩한 나라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워낙 더럽고 죄가 많은 놈입니다.” 그는 죄가 많은데..., 죄가 많은데...., 하고 되뇌면서 어느덧 천국 문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천국 문으로 들어가기를 그토록 송구스러워하던 영혼이 자신을 보니 아주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아무 허물도 없었습니다. 그 영혼이 묻습니다. “내가 죄 많은 사람인데 어이 이처럼 깨끗하게 되었지요?” 천사가 대답하기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다 덮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죄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혼은 마침내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진짜(fact)와 가짜(false) - 언더우드의 조선을 위한 기도문에서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 언더우드선교사의 기도문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이곳 조선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 자체가 기적입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를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 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분명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신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자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 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이곳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아멘

* 언더우드는 1859년 7월 1일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서 13세가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881년 뉴욕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같은 해부터 1884년까지 뉴브런스위크개혁교회 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884년 7월 28일 조선 최초의 장로교선교사로 선정되어 준비 기간을 거쳐 1885년 4월 5일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인천에 입국한 그는 아직 조선정부에서 선교활동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그는 조선어문법책을 영어로 집필하였다. 그 후 성서번역위원회 초대위원장, 대한기독교서회회장, 한국기독교교육회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해 서울경신중학교, 연희전문학교(현재연세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언더우드의 기도문에 대한 잘못된 SNS의 정보
-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https://cemk.org/13524/ 

감성, 감정이 넘치다 보니 ‘감동’과 ‘은혜’를 주는 것이면 가짜라도 좋고, 가짜 목사도 좋고, 사이비 이단도 좋고, 가짜 기도도 좋다. 좋은 게 좋다며 표절도, 위조도, 횡령도, 불법도 눈감아 주다 보니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성령의 감동이란 감화 감동의 줄임말이다. 성령의 임하고 내주하심을 통해 내적으로 인격의 감화를 받고 외적으로 감동하는 양자를 포괄하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후자는 사라지고 전자도 코끝이 시리고 눈물이 핑 도는 수준의 감동으로 전락했다.(본문 중)


20년이 넘도록 가짜 언더우드 기도문들이 한국 교회와 SNS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그것이 가짜인지 모르고 반복하여 인용 보도하고 있고, 블로거들과 유투버들도 끊임없이 퍼 나르고 있다. 노래까지 만들어 예배 시간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 글은 더 이상 두 기도문을 언더우드의 것으로 소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다.

가짜(false) “언더우드의 기도”에 대한 이유와 의미

첫째, 정연희의 창작물

나는 3년 전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소위 “언더우드의 기도”에 대해서 그것은 정연희 씨의 소설 『양화진』(1984, 개정판 1992) 235쪽에 나오는 작문으로서 작가가 상상으로 쓴 허구임을 밝히고 분석했다. 문제의 본문을 보자.

작가는 이 글이 언더우드가 직접 쓴 것으로 오해되어 널리 퍼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을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고 유통시킬 때 침묵한 점은 이해할 수 없다. 동시에 언더우드 후손들마저 그 영어 번역이나 노래까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기도문이 유행하는 것을 은근히 즐겼는지도 모르는데, 이 또한 무책임한 태도였다.

둘째, 이 기도의 내용도 문제

이런 수준의 역사적으로 부정확하고 저급한 기도문을 언더우드의 기도라고 하는 것은 언더우드에 대한 명예 훼손이다. 위 기도문에서 청색 부분을 먼저 보자. 1885년 당시 태평양 횡단 기선은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호놀룰루를 거쳐 요코하마까지를 한 달 정도에 안전하게 운행되고 있었다. 기적이 아니었다. 또한 1885년 4월 5일 서울에 온 언더우드가 6월 21일 도착한 스크랜턴 여사를 만난 후 쓴 기도문이라면, 언더우드 목사는 알렌 의사가 원장으로 있는 제중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던 때였다. 개신교 선교사들-알렌 의사, 언더우드, 헤론 의사, 스크랜턴 의사 부부와 스크랜턴 대부인-은 정부의 호의 속에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선교사들을 ‘양귀’(洋鬼)로 부르며 반기독교 운동이 강했으나, 한국에서는 알렌이나 헤론이 정부 병원의 의사로 당상관에 임명되고 시의로서 고종을 알현하면서 정부 고관들과 어울리고 있었으므로 양대인(洋大人)으로 불렸다. 따라서 손가락질을 받지 않았다.

적색 부분에서 보듯이 이 기도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보고 싶은 것은 조선인의 속셈, 조정의 내심, 조선심이다. 언더우드는 이런 말을 쓴 적이 없다. 작가 정연희를 비롯한 1980-90년대 한국인의 관심사가 남의 속셈과 내심을 읽는 것이었다. 박(대통령)심이나 전(대통령)심을 알아야 출세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찌 순종하겠는가? 그것은 맹신과 맹종이요, 독재 정권에 침묵하는 순종이었다. 언더우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선교 전략가로서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가 20년, 30년 후를 전망하면서 한국 복음화의 장기 계획을 세워나갔다.

황색 부분은 오리엔탈리즘에서 나온 말들이다. 한국을 흑미 , 가난, 인습, 무지, 미신, 성차별이 가득 찬 불모지요 나무 한 그루 없는 미개한 황무지로 보는 관점은 19세기 말 서양인의 동양관 이었다. 작가가 아직 포스트콜로니얼 관점이 없었기 때문에, 서구 선교사관을 그대로 수용하여 한국에 대한 젊은 선교사들의 첫 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 이런 작문이 나왔다.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깔보고 서양을 높이는 사대주의 선교사관이다.

따라서 이 기도문은, 첫째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이다. 둘째는 그런 기도를 언더우드가 드릴 수 있었다고 여기는 태도, 그 기도를 읽고 감동과 은혜를 받는 선교관과 문화관이 더 문제이다. 소설에 나오는 허구적 기도를 진짜 기도로 이해하는 독자들도 독해력도 문제이지만, 그 내용이 1885년에 드려질 수 있었다고 상상한 작가와 이를 수용하고 퍼트린 1990년대의 한국 교회의 선교 신학이 더 문제였다.

결국 한국교회의 이런 승리주의적 선교관이 분당샘물교회 교인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로 이어졌고, 오늘의 혐오와 증오를 낳았고, 한기총을 온존시켰다. ‘가짜라도 감동을 받으면 된다.’, ‘모로 가도 대형교회를 세우면 된다.’는 대충주의, 감성주의, 성장주의가 오늘 한국교회를 주변부로 몰아내고 꼰대 집단으로 만들었다.

가짜 “언더우드의 기도”(2) : 누군가의 기도

그런데 5년 전부터 다른 “언더우드의 기도”가 SNS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위의 기도에 감동을 받은 누군가가 새로운 감동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2010년 김옥춘 시인이 쓴 시가 “누군가의 기도”로 소개되더니, 2014년경부터 그 기도 끝에 “언더우드의 기도 낙서장에서”라고 덧붙여서 블로그에 퍼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5월 연세대와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언더우드 어록 캘리그라피 전시회”에서 한 작가가 이 기도문을 언더우드의 것으로 착각하고 작품화하면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소위 “언더우드의 기도”(2)의 전문을 옮긴다.
김옥춘의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시를 어떤 병원에서 저자 이름 없이 붙여 놓았는데, 이를 “누군가의 기도”로 옮겼고, 그것을 언더우드의 기도문으로 다시 바꾼 것이다. 사실 “언더우드의 기도 낙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단어만 보아도 조작임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다 믿지 말고 먼저 의심하기 바란다.

걸을 수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자 되지 못해도,

빼어난 외모 아니어도,

지혜롭지 못해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삶, 내 인생,

나·······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과거 “언더우드의 기도”(1)처럼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게 바로 이런 인터넷 공유 과정과 예술화(노래로 만들고 서예 작품으로 전시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언더우드를 알리는 작업이 아니라 그를 욕보이는 명예훼손 행위이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의 실상이다. 감성, 감정이 넘치다 보니 ‘감동’과 ‘은혜’를 주는 것이면 가짜라도 좋고, 가짜 목사도 좋고, 사이비 이단도 좋고, 가짜 기도도 좋다. 좋은 게 좋다며 표절도, 위조도, 횡령도, 불법도 눈감아 주다 보니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성령의 감동(感動)이란 감화 감동(感化 感動)의 줄임말이다. 성령의 임하고 내주하심을 통해 내적으로 인격의 감화(=변화=성령의 열매를 맺음)를 받고 외적으로 감동(=행동과 실천=성령의 은사로 일)하는 양자를 포괄하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후자는 사라지고 전자도 코끝이 시리고 눈물이 핑 도는 수준의 감동으로 전락했다. 그것을 또 “은혜 받았다”라고 표현한다. 마음에 잠시 울림이 있으면 감동이요 은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주는 설교자가 능력자요 은혜스러운 목회자가 되었다. 말 잘하고 연기 잘하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연기자(performer, entertainer)가 대형교회를 만들자,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 있는 종”으로 통하게 되었고 유명 인사인 셀럽이 되었다.

SNS 시대가 되자 교인들도 덩달아 흉내를 내고 감동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온갖 가짜 감동과 가짜 은혜가 한국 교회에 넘치게 되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언더우드의 기도”(1)과 지금 “언더우드의 기도”(2)가 되었다.

가짜가 없는 교회가 될 때 교회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가짜 “언더우드의 기도”가 사라질 때 교회는 교회답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언더우드의 기도”를 자신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분은 찾아서 지우고, 그런 글이나 영상을 발견하면 댓글로 바르게 알려주기 바란다. 그대로 두는 것은 한국 기독교의 수치이다.
* 옥성득,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새물결플러스, 2016), 145쪽 이하를 보라.



오늘의 묵상(9월)

오늘의 묵상(9월)

9월 1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27:1∼29:25
욥은 계속해서 자신은 불의와 궤휼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의를 굳게 잡아 순전히 지켰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고,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시험받기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셨으며 자신도 왕처럼 현명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였다고 고백하였다.

♦ 고린도후서 5:11∼5:21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기를 강권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이 온전하든지 미치든지 오직 하나님과 성도들을 위해 산다고 하였다. 또한 모든 성도들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화목케 하는 직책을 부여 받았으므로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교훈하였다.

♦ 시편 128:1∼128:6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를 행하는 자에게 수고의 열매와 가정의 축복이 임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린도후서 5:18b)

화목(和睦)하게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텐데.......
내 삶이 화목을 위해 부끄러움이 없을까?
만일 부끄러움이 있다면 그 흔적을 지워야 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생각과 믿음과 언어로 무장합시다.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거룩한 사람으로 도처에서 멋지게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신디 클로스비(Cindy Crosby) 기도
- 여름날의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이 여름을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며 보내기 원합니다.
매일의 삶의 혼돈 가운데서
조용한 시간을 확보하도록 도와주소서.

저로 일상의 신성함
어린이의 웃음이라는 음악,
나비 날개의 스테인글래스 같은 완벽함,
더운 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핥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옵소서.
교훈을 주는 순간들로
나의 주의를 돌려주소서. 


주님, 엎질러진 주스에서부터
후덥지근한 날의 짜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특별한 인내를 허락해 주소서.
조용한 목소리,
친절한 말씨를 유지하게 하소서.
우리가 야외에서 함께
주님의 아름다운 세상을 즐길 때
우리 자녀들을 주님의 손 안에 품어주소서.
모든 위험과 재난으로부터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소서.
사랑하는 주님,
이 어린이들을
제게 맡겨주심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9

2

욥 30:1∼31:40, 고후 6:1∼6:13, 시 129:1∼129:8

9

3

욥 32:1∼33:33, 고후 6:14∼7:4, 시 130:1∼130:8

9

4

욥 34:1∼36:33, 고후 7:5∼7:16, 시 131:1∼132:7

9

5

욥 37:1∼38:41, 고후 8:1∼8:15, 시 132:8∼132:18

9

6

욥 39:1∼40:24, 고후 8:16∼8:24, 시 133:1∼134:3

9

7

욥 41:1∼42:17, 고후 9:1∼9:15, 시 135:1∼135:12

9

8

전 1:1∼3:22, 고후 10:1∼10:18, 시 135:13∼135:21


9월 2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30:1∼31:40
욥은 현재 환난 가운데 있는 자신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비통하게 노래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통 가운데 있게 하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나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자신은 애통한 상태에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직함을 알기를 원하며 자신에게 대답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 고린도후서 6:1∼6:13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이 일을 위해 온갖 시련을 이겨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항상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듯이, 그들의 마음을 넓히라고 당부하였다.

♦ 시편 129:1∼129:8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을 멸망시키고 계심을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린도후서 6:1b)

은혜(恩惠)를 헛되이 받지 말라!
날마다 은혜로 주어진 것들
공기(空氣), 생명(生命), 건강(健康), 시간(時間), 친구(親舊), 가족(家族), 조국(祖國), 고향(故鄕)..........
당연하게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은혜로 받은 것을 은혜로 갚으려면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헛되이 받는 것이지요.
어느 것 하나라도 헛됨이 없이 받아 하나를 더 보탤 수 있는 삶을 유지하기를 기도합시다.

바질(330년경-379년)의 기도

오 하나님,
우리 안에 친교 의식을 키워주시어 
우리 형제인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주께서 우리와 더불어 살라고
대지를 고향으로 주신 
온갖 동물들과 정답게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하는 것은 

인간의 강력한 지배권을
잔인무도하게 휘둘러 

응당 주께 찬양 노래를 불러 드려야 할
대지의 음성을 

고통 어린 비명으로 만든 일이오니다. 

저들이 다만 우리만을 위해 살지 않고 

스스로를 위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며 

감미로운 생명을 사랑하고 있사오니 

부디 우리가 깨달아 알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3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32:1∼33:33
욥의 세 친구들은 그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자 변론을 중단하였다. 그러자 이때 엘리후가 의롭다는 욥과 그를 정죄한 세 친구들을 공박하면서 세 친구들이 욥과의 변론에서 올바른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시다고 하면서, 스스로 불의가 없다고 고백한 욥의 말은 의롭지 못하다고 하였다.

♦ 고린도후서 6:14∼7:4
바울은 성도들에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고 자신을 깨끗케 하라고 하였다.

♦ 시편 130:1∼130:8
시인은 야훼를 기다리며 그의 말씀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편 130:4)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온전한 사람으로 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입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말에 온전한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시시때때로 무너진 내 모습에 주눅 들어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때 주님은 그 손을 펴서 위로합니다. 다시 일어나서 주님을 따르라고........
이렇게 용서하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 주님,
믿음의 열정 회복케 하소서

삶에 지쳐 
몸과 마음이 피곤할지라도 
주님을 가까이 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희망으로 보게 하소서 


주님만을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기쁨과 감격이 있게 하소서 


주님께서 날 구원하심을 확신하며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날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사 

사람이 되게 하심처럼 

오늘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믿음의 열정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잠들어 있는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4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34:1∼36:33
엘리후는 의롭다고 주장하는 욥을 악인에 비유하면서, 욥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하심을 들어 욥을 비난하면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 고린도후서 7:5∼7:16
바울은 성도들이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른 것을 기뻐하였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결코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룬다고 하였다.

♦ 시편 131:1∼132:7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근심을 기억하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편 131:3)

사회학자 에릭 프롬은 사람을 "희망의 존재(Homo Esperans)" 라고 정의했습니다.
과연 희망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은 희망입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은 희망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건강은 희망입니다.
슬픈 사람에게 웃음을 희망입니다.
결국 희망이란 '요망사항(要望事項)'입니다.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이루어질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것 때문에 인간은 절망합니다.
가장 큰 절망은 고통과 죄와 죽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죽음과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에게 희망을 두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내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내려놓은 은혜를 기도합니다. 

오 주님.
민족과 국가의 괴로움과
위태로운 상황을
주님 앞에 가져옵니다.

죄악의 옥에 갇힌 자와
거짓에 사로잡힌 자들의 교만과
낯선 자들의 편견과 외면
연약한 자의 실망
지친자의 절망
노쇠한 자의 기력 감퇴
온갖 문제들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오 주님,
가까이 오셔서
한숨과 슬픔과 궁핍함
그리고 곤고함을 소멸 시키소서

해결 자가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5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37:1∼38:41
엘리후는 욥에게 자연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생각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폭풍 가운데 욥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질문하시고 그의 답변을 요구하셨다.

♦ 고린도후서 8:1∼8:15
바울은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자발적이고 풍성한 연보 활동을 하였음을 밝히면서 더불어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자발적인 헌금을 권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을 돌보고 함께 나누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였다.

♦ 시편 132:8∼132:18
다윗은 언약을 성실히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시편 132:16)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제사장이 구원의 옷을 입지 못하고 제사를 드리면 그 제물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이 될 수 없는 마치 가인의 제물과 같습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그 사람과 그 제물이 문제가 됩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悅納)하지 않으셨지만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悅納)하셨습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悅納)되기 위해서 구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직접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잎과 가죽 모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 잎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끄러움 즉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옷을 내가 찾아서 입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혀주셔야 합니다.

오늘도 구원의 옷을 바르게 입고 거룩한 백성의 반열(班列)에서 벗어나지 않는 은혜를 기도하며 믿음으로 승리합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혼돈과 어둠의 땅에
빛으로 오셔서
감추어진 어둠 몰아내고
맑은 마음
밝은 얼굴
즐거이 손뼉 치며
주님 영접하게 하소서
주와 동행케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6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39:1∼40:24
하나님께서는 자연 세계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시면서 욥에게 대답을 요구하셨다. 그러자 욥은 자신은 미천하여 하나님께 대답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하마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욥에게 교만을 버릴 것과 욥을 지으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나타내셨다.

♦ 고린도후서 8:16∼8:24
바울은 거액의 연보를 관리하고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 디도 일행을 파송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랑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될 것을 당부하였다.

♦ 시편 133:1∼134:3
시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야웨를 송축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 133:3)

최고의 복(福)은 영생(永生)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은 이미 최고의 복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복(福)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복(福)이란 한자를 분석하면 ‘볼 시(示)’자와 ‘부요할 부(富)’자가 결합하여 만든 것입니다. 복이란 한자의 의미는 “부를 어떻게 볼 것이냐?” 라고 하겠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부에 대한 관점(觀點)”을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였어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자(富者)가 아닙니다. 아무리 아무 것도 없을 지라도 영생(永生)을 소유했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복(福)을 받은 최고의 부자(富者)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최고의 복 영생을 누려야 할 성도들이여!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서 행복한 믿음의 사람으로 이 세상의 속(俗)된 가치(價値)를 무너트릴 수 있는 은혜를 기도합시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최고의 복
영생을 주셨건만
썩어질 것 때문에
없어질 것 때문에
날아갈 것 때문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잠시
생각이 어지러웠습니다.
다시는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세상을 향하여
당당하게 일어서게 하소서.

저를 사용해 주옵소서
- 드와이트 L 무디
 

주 예수님, 

주께서 뜻하시고 바라시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에 저를 사용해 주옵소서.

제 마음은 가난하여 빈 그릇과 같으니, 

당신의 은혜로 채워 주옵소서.

제 영혼은 죄로 더럽혀졌고 번민에 싸여 있으니, 

당신의 사랑으로 소생시키시고 새롭게 하옵소서.

제 마음을 가지사 

당신의 거처로 사용하옵소서.

제 입을 사용하시어 

당신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전파하게 하옵소서.

제 사랑과 모든 힘을 사용하시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세워 줄 수 있게 하옵소서.

제 믿음의 확신이 풀어지지 않게 하시며, 

그로써 어느 때나 

예수님께서 나를 필요로 하시며, 

나는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고 

진실하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7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41:1∼42:17
하나님은 악어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보여 주셨다. 이에 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자신의 미천함을 깨닫고 자신의 무지한 말과 교만을 회개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바스에게 욥의 친구들이 올바르지 못했다고 책망하셨고, 욥은 친구들을 위해 야웨께 번제를 드렸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다.

♦ 고린도후서 9:1∼9:15
바울은 마게도냐인들과 함께 고린도에 갔을 때 연보가 준비되지 않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형제들을 미리 보내어 준비케 하였다. 그리고 연보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35:1∼135:12
시인은 야웨의 선하심과 아름다운 그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린도후서 9:7) 

헌금(獻金)이란 '바칠 헌(獻)' '쇠 금(金)'이란 훈(訓)으로 "금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바치는 것이 헌금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믿음이 곧 헌금하는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同志)들이여!
나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요?
그 귀한 것을 열어 바칠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 봅시다.
그리고 바침을 통해 얻은 기쁨을 누려봅시다.
오늘도 내가 바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찾습니다.
나의 건강과 시간 그리고 마음을 모아 드립시다.
최고의 주님에게..........

기도
- 키에르케고르  

오, 주 예수 그리스도,
운명을 맞이하여
뒤로 물러서지 아니하고
다만 앞으로 나아가신 주여,
당신께서는 스스로 고난을 당하시어
가난하고 비천하게 태어나셨습니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비천한 가운데
고통을 겪으시고 미움을 받으시고
배반을 당하시고 채찍을 맞으시고
침 뱉음을 받으시고
마지막에는
하느님께 버림을 받으심으로써
세상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머리를 숙이시고
수치스럽게 죽으셨습니다.

오! 그러나 당신께서는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영원하신 승리자여,
이 세상에서는
당신의 적들 손에 죽임을 당하셨지만
당신은 그렇게 죽으심으로써
오히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머리를 들어
영원히 승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다만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아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8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전도서 1:1∼3:22
하나님을 떠난 지혜, 부, 쾌락, 인간의 운명과 노력, 그리고 생명까지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인생에 대한 행복과 희망에 찬 어조로 바뀌면서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룰 때가 있다고 하였다.

♦ 고린도후서 10:1∼10:18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병기(兵器)삼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깨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분량에 따라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35:13∼135:21
시인은 야웨를 경배하는 모든 이들에게 야웨를 찬양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린도후서 10:17)


주 안에서 자랑할 것이 무엇일까요?
주 안에서 자랑할 것은 오직 주님입니다.
주님의 무엇을 자랑 할 수 있습니까?
주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받은 것을 자랑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자랑할 수 있기에 기도의 용사로 무장해야 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안식이 있는 곳입니다(행 7:49).
약속의 땅 가나안은 천국 안식의 그림자입니다(신 3:20, 히 4:8).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는 은혜만을 자랑하며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합시다.

엉거퀴의 기도
- 이해인

제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누구에게든지 가서

벗이 되겠습니다.


참을성 있는 기다림과

절제 있는 다스림으로 

가시 속에서도 꽃을 피워 낸

큰 기쁨을 님께 드리겠습니다.


불길을 지난 사랑 속에서만

물 같은 삶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을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당신


모든 걸 당신께 맡기면서도

때로는 불안했고

저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일상의 잔잔한 평화와

고운 질서를 거부하고 달아나고 싶던

저의 보랏빛 반란이

너무도 길었음을 용서하십시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9

9

전 4:1∼6:12, 고후 11:1∼11:15, 시 136:1∼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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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전 7:1∼9:18, 고후 11:16∼11:33, 시 136:10∼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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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 10:1∼12:14, 고후 12:1∼12:10, 시 136:17∼136:26

9

12

아 1:1∼4:16, 고후 12:11∼12:21, 시 137:1∼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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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 5:1∼8:14, 고후 13:1∼13:13, 시 138:1∼138:8

9

14

사 1:1∼2:22, 갈 1:1∼1:24, 시 139:1∼139:12

9

15

사 3:1∼5:30, 갈 2:1∼2:16, 시 139:13∼139:24


9월 9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전도서 4:1∼6:12
전도자는 인간의 수고와 부귀가 헛되다고 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였다. 또한 해 아래서는 폐단이 많다고 하면서 인간 만사의 헛됨이 불가피함을 이야기하였다.

♦ 고린도후서 11:1∼11:15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이 전한 복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자, 이를 책망하면서 그리스도에게서 떠나 부패하게 하는 거짓 사도들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 시편 136:1∼136:9
시인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야웨께 감사의 찬양을 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도서 4:9) 

두 사람을 증인(證人)의 수라고 합니다.
세 사람을 협력(協力)의 수라고 합니다.
또는 하늘의 수라고도 합니다.
협력(協力)의 수 셋은 사랑이 기초가 됩니다.
서로 다른 남자(男子)와 여자(女子)가 서로 사랑하여 한 몸을 이루어 자식(子息)을 낳습니다. 셋은 가족을 구성하는 수(數)라고 하겠습니다. 가족은 서로 협력(協力)하는 관계(關係)의 구성원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때
가장 강한 힘이 솟구칩니다.
그 힘으로 협력(協力)할 때 가정은 천국(天國)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협력은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작은 것을 무시(無視)하고 외면(外面)할 때 강한 힘은 쪼개지고 분산(分散)되어 버릴 것입니다.

북한 괴뢰(傀儡)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금지 원칙을 소개합니다.

첫째, 지도자를 비판하지 않는다.
둘째,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다.
셋째, 북한 인권을 비판하지 않는다.
넷째, 북한 체재를 비파하지 않는다.
다섯째, 주체사상을 비판하지 않는다.

주사파(김일성 주체 사상)는 다섯 가지 원칙을 지키며 북한을 공개적으로 찬양한다고 합니다.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를 비판하면서도 3대 세습은 왜 비판하지 않을까요?

인권으로 주장하면서도 전직 대통령과 국정원장을 감옥으로 몰아넣으면서도 노동교화소와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인권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체재를 주장하는 북한과 협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려면 먼저 똑같은 비판과 바른 행동만이 하나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0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전도서 7:1∼9:18
사람은 그 장래 일을 능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는 재앙이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 고린도후서 11:16∼11:33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에서 자기가 당한 고생을 열거하면서, 자신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였다고 강조하였다.

♦ 시편 136:10∼136:16
시인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해방시키시고 기적을 베푸신 야웨께 감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전도서 7:14a)  

무더위가 물러가고 아침과 저녁에 소슬한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합니다.

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레 찾아오듯 삶의 계절에도 더위와 추위와 바람과 눈보라가 닥쳐옵니다. 곤고한 날이 찾아왔을 때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지난 날 받은 은혜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다가올 은총에 대한 기대를 생각해 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는 믿음으로 매일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은혜의 자리로 다져지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아직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안타까운 일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며 내일의 소망을 향하여 힘차게 일어나셔야 합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은 능력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모습입니다.

강하고 담대 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다짐했던 여호수아의 외침을 따라갑시다. 

행복을 주는 사람


잠깐 만나

커피 한잔을 마시고

헤어져도

행복을 주는 사람이 있다.


생각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꿈과 비전이 통하는 사람.


같이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한 사람

눈빛만 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사람.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면


그 약속이

곧 다가오기를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

행복을 주는

다정한 사람이 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1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전도서 10:1∼12:14
지혜자와 우매자를 비교하면서 오직 지혜가 성공하기에 유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청년의 때에는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고 하였다.


♦ 고린도후서 12:1∼12:10
바울은 자신이 실제로 체험한 환상과 계시에 대하여 말했다. 그리고 자고해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육체에 사단의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하였다.

♦ 시편 136:17∼136:26
시인은 이스라엘에게 기업을 주시고 원수에게서 건지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9)

기독교 신앙은 역설적(逆說的)입니다. 
능력이 강한데서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데서 온전해 진다고 말씀합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도저히 다윗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겼습니다. 다윗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만 믿고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임을 확신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진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백성들이 존재한다면 거짓이 진리를 무너트릴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며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오직 진리 편에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며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역설적인 방법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내 안과 밖을 정결하게 다듬고 거룩하신 주님의 도움을 함께 기도합시다.

주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마음 송두리째 사로잡아

머무르고 싶어도

머무를 수 없는 삶 속에서

이토록 기뻐할 수 있으니

그대를 사랑함이 나는 좋다.

늘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

내 가슴에 안아도 좋고

내 품에 품어도 좋은 사람

단 한 사람일지라도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눈을 감고 생각하고

눈을 뜨고 생각해 보아도

그대를 사랑함이 좋다.

이 세상에
그대만큼 사랑하고픈 사람이 있을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2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아가 1:1∼4:16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은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하였다.

♦ 고린도후서 12:11∼12:21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이 있음을 알고 자신의 사도된 증거로 자신이 행한 인내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들었다. 그리고 성도들이 교회에서 범하기 쉬운 여러 가지 죄악을 인하여 염려하였다.

♦ 시편 137:1∼137:9
시인은 바벨론의 포로 된 자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고 있음과 그들의 원수들이 멸망받기를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아가 4:7) 

사랑의 눈(目)은 볼 것을 볼 수 없게 만들고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고 노래했습니다.
사랑의 눈을 떠서 내 주위를 살펴봅시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정말 진실일까요?
아니면 거짓을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아닐까요?
회의철학자 데칼트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썩은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게 만든 눈에 대한 의심은 데칼트를 철학자로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나의 사랑이 정말 사랑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나를 붙잡았던 것이었을까요?
나에게 이익(利益)이 있기에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慾心) 이지요?
조국(祖國)을 사랑하는 것은 불이익(不利益)이 있더라도 마땅히 사랑해야 할 마음입니다.

오 주님!
飛翔하는 祖國의 날개
左派 思想으로 흔들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흔들리는 날개 바로 잡아
子孫 代代 누릴
자유 대한민국 號를
福音의 터 위에 올려놓고
힘 모아 祈禱하세!
소리 높여 외치세!
여호와를 敬畏하는 民族
永遠 無窮하리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3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아가 5:1∼8:14
신부는 사랑의 갈등으로 슬픔을 겪지만, 곧 신랑과의 사랑이 회복되어 더욱더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

♦ 고린도후서 13:1∼13:13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강경한 어조로 만약 세 번째 방문 시까지 악행을 버리지 않을 경우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여 자신을 확증하라고 당부하였다.

♦ 시편 138:1∼138:8
시인은 전심으로 야훼의 성실과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을 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린도후서 13:5a)  

믿음 안에 있습니까?
기도만하는 믿음입니까?
행함이 없는 기도는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가 아닙니다.
행동하는 기도로 신앙의 태도를 전환(轉換)시켜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사람이나 하찮은 장소는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하찮은 일로 인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의 "작지 않은 사람들" 이란 책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가장 작은 행동과 작은 기도에 의해서 흔들리는 자유대한민국의 기초를 든든하게 세워갈 수 있는 작은 힘을 보태야 합니다.
온 세상을 두루 살피는 여호와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작은 힘을 더합시다.

주여,
행동하는 신앙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자유대한민국의 기초(基礎)가 되는
헌법(憲法)을 수호(守護)하는
군인들,
경찰들,
검찰들
그리고 학생들과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여!
거룩한 분노(憤怒)의 손을 들고
행동하는 믿음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4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1:1∼2:22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이상을 보았는데, 그 이상 가운데 야웨께서 그를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을 책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각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순종하면 용서함을 받을 수 있지만, 거역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 갈라디아서 1:1∼1:24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전한 복음은 예수님의 계시에 의해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 시편 139:1∼139:12
시인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며 어느 곳에나 계신다고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갈라디아서 1:24)
 
“이신득의(以信得義)” 라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는 성화의 삶에 이르는 것이 믿음의 여정(旅程)이라고 하겠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을 떠난 후,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잘못된 교리를 전하고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며 십자가의 도를 반대함으로써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킬 때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여러 논증을 통해 율법의 열등함과 복음의 참 목적을 알려줍니다. 특히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되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바른 교리 위에서 선한 행위에 힘써야 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의무(義務)라고 하겠습니다.

조국(祖國)의 뿌리를 뽑아 다른 땅으로 옮기려는 주사파(주체사상파, 김일성주의)들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자유를 말살(抹殺)하려는 정책을 단호하게 저항(抵抗)하고 그 뿌리를 잡초를 제거하듯 뽑아야 합니다.

후대의 백성들이 안전한 자유와 신앙을 마음껏 누리려 살아갈 수 있도록..........

전능하신 하나님!
희생의 아들을 통한
복된 자유
사악한 무리들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간직하고 지킬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더 하소서
대대로 누릴 수 있는 
복음의 터를 다지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5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3:1∼5:30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악으로 인해 백성들이 심판을 받고 슬퍼하며 통곡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하면서 들포도를 맺는 유다인들의 불신앙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셨다.

♦ 갈라디아 2:1∼2:16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유대인의 사도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다. 바울은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 책망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베드로의 외식 행위를 책망하였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강조하였다.

♦ 시편 139:13∼139:24
시인은 자신을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편 139:16) 

사람은 하늘의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진리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휴대 전화를 사용할 때 다양한 ‘앱(app)’을 사용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쉽게 사용하므로 내가 ‘앱(app)’을 사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앱(app)’이 나를 사용하는 것인지 구분하지 않고 사용할 뿐입니다.
하늘의 프로그램을 따라갈지라도 항상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놀라운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애급의 노예로 팔려간 후에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므로 애급의 총리라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사람은 고통스런 그 길을 불평과 미움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갈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환경과 자리에 앉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앉은 그 자리에서 감사와 찬양으로 채울 때에 그 자리가 바뀔 것입니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내가 채워야 할 것을 바르게 채움으로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바르게 일어설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오 주님!
채워주소서!
주 닮아가는
하늘의 프로그램 따라
이 땅에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을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한반도 땅에 솟구칠
평화를 위하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우남 이승만 박사의 기도
백만 성도들을 주세요
백만이 십일조 하는 성도들을 주세요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 될 때 당시 기독교 인구가 108만명 이었다고 합니다.


도산 안창호의 기도
십일조하는 3천명을 주세요

오늘의 말씀

9

16

사 6:1∼8:22, 갈 2:17∼3:14, 시 140:1∼140:8

9

17

사 9:1∼10:34, 갈 3:15∼3:29, 시 140:9∼140:13

9

18

사 11:1∼13:22, 갈 4:1∼4:20, 시 141:1∼140:10

9

19

사 14:1∼16:14, 갈 4:21∼5:12, 시 142:1∼142:7

9

20

사 17:1∼19:25, 갈 5:13∼5:26, 시 143:1∼143:12

9

21

사 20:1∼22:25, 갈 6:1∼6:18, 시 144:1∼144:8

9

22

사 23:1∼25:12, 엡 1:1∼1:23, 시 144:9∼144:15


9월 16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6:1∼8:22
예언자의 소명을 받은 이사야는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될 것을 알았다. 이사야는 근심하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승리가 보장되었으나 그의 불신앙으로 인해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또한, 유다가 심판을 받은 후에 앗수르는 멸망되고 유다는 구원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갈라디아서 2:17∼3:14
바울은 이미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고 이제 자신 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사신다고 하였다. 또한 갈라디아 사람들이 율법을 알기 전에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율법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는다고 강조하였다.

♦ 시편 140:1∼140:8
시인은 하나님께 악인들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라디아서 3:3) 

성령(聖靈)과 육체(肉體)
성령은 영원한 것입니다.
육체는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은 살리는 것이며 육은 무익하다고 합니다(요 6:63).
영원한 것을 추구하던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의 화려한 불빛에 사로잡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잊어버립니다.
육체는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려고 합니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었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나도 함께 살아났습니다. 내가 살아났다는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나와 함께 거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믿음을 말합니다.
육체로 마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나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을 “죄(罪)”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것을 끝까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 머물기 위한 비결은 그 말씀을 내 안에 간직하는 것입니다. 나를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승리하는 주의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주님 안에서
나의 추함
나의 어리석음
나의 부족함
이 모든 것들이
거룩함과 지혜와 충만함으로
듬뿍 채워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7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9:1∼10:34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메시아의 도래와 그로 인한 해방의 기쁨을 묘사하였다. 메시아로 탄생할 한 아들은 곧 하나님이시며 다윗 왕국을 영원히 다스리실 평강의 왕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완악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심판을 받지만, 결국 교만해진 앗수르는 멸망하게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은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갈라디아서 3:15∼3:29
바울은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제 믿는 자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약속의 유업을 이을 자라고 하였다.


♦ 시편 140:9∼140:13
시인은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며 감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라디아서 3:27)

성경에서 옷은 사람의 행동을 상징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 입었던 무화과나무 잎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의도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의 행동은 어느 것으로도 감출 수 없지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가죽옷은 용서를 상징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그리스도의 의로 회복된 상태를 말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말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의(義)로 무장하여 영적 싸움에서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진리의 영이시여,
거짓으로 얼룩진 땅에
임하소서!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욕망의 덩어리 안에
임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8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111:1∼13:22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징벌을 당한 처참한 상태에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언을 하였다. 메시아의 오심은 전 세계적이어서 대적 국가들이 굴복하고 포로로 잡힌 유대인들은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날에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감사의 찬송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야훼의 날이 가까웠으며 바벨론의 멸망이 임박했다고 예언하였다.

♦ 갈라디아서 4:1∼4:20
바울은 성도들이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율법주의를 주장하는 갈라디아인들을 책망하면서, 자신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41:1∼141:10
시인은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이사야 12:2)

하나님의 섭리(攝理)는 하나님의 통치(統治)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거짓과 교만과 욕망의 덧에 붙잡힌 세상 같지만 그러나 진실은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실(眞實)은 영원한 것이고 거짓은 어느 한 순간(瞬間)이기 때문입니다.

조화(造花)와 생화(生花)의 차이는 겉모양이 아닙니다. 물론 겉모양은 조화(造花)가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한 햇살과 비바람에 의해서 조화(造花)는 점점 추해질 것입니다. 반면에 생화(生花)는 점점 더 싱싱하고 아름답게 드러날 것입니다.

거짓으로 위장(僞裝)한 조화 인생과 진실로 장식(粧飾)한 생화 인생이 갈라질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도취한 거짓의 인생들에게 영원한 진리의 멋과 삶의 가치를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모두 하나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연약한 나무 가지 
혼자서 할 수 없는 것
둘과 셋이
넷과 다섯이
여섯과 일곱이
여덟과 아홉이
모아서
모여서
거짓의 탑을 흔들어
진리의 터에
세워질 때까지
흔들게 하소서
무너트리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19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14:1∼16:14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셔서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게 하실 것이며, 안식의 날에 악행을 행하던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 모압이 멸망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갈라디아서 4:21∼5:12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임을 주장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자유를 굳세게 유지하여 다시는 노예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바울은 권면하였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는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참 믿음만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 시편 142:1∼142:7
시인은 고독과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시편 142:3a)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b)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를 베푸는 곳에 모여드는 것을 보며 세례 요한이 외쳤던 소리가 온 땅에 진동하는 듯합니다.

마음이 상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영이 상하여 탄식과 한숨이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생명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단단한 돌덩어리를 쪼개고 쪼개어 조각품을 만드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이 상한 영의 무릎을 꿇고 한 조각 한 조각 거짓을 찍어버릴 수 있다면 반드시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안식의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죄악과 같습니다. 절망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없다는 불신(不信)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상한 영혼의 아픔을 모아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 두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여!
눈물의 탑을 쌓아
이 땅에 아직도
소망이 있음을
엿보게 하소서

주여!
상한 영혼 힘을 얻어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20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17:1∼19:25
이사야는 다메섹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다메섹과 에브라임, 그리고 우상 숭배한 애급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야훼의 날에 애급과 앗수르와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전 세계가 하나님께 돌아옴으로써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갈라디아서 5:13∼5:26
바울은 성도의 자유는 이웃 간에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또한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좇아 행하고 그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였다.

☞ 시편 143:1∼143:12
시인은 원수가 주는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라디아서 5:13b)

자유와 육체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육체의 기회란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자유대한민국의 근본이 흔들릴 때 국민 저항권을 갖고 마지막 선택하는 것이 삭발입니다.

성경적인 삭발을 사도 바울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21:24).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 '빌립'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선지자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갖고 자기의 수족을 묶으며 예루살렘에서 이 띠의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고 예언(豫言) 했습니다. 바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말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며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서원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결례를 행하고 머리를 깎은 후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제안하므로 그대로 행하여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깨우쳐 알게 했습니다.

머리를 깎는 것(削髮)은 사랑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려놓은 마지막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의 기초를 무너트리려는 좌파 세력들의 간교함을 이기려고 같은 방법으로 악을 행할 수 없어 마지막 남은 가장 귀한 머리를 깎으므로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중심을 다른 시각으로 조롱하거나 비웃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여 앞장서서 나가는 충성스런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예(禮)를 가져봅시다.

선열들의 희생과
모진 아픔을 딛고
아름답게 세워진
자유대한민국 땅에
거짓과 교만과 술수의
검은 그림자를 모두 걷어내고
진리와 평화와 질서를 따라
열방이 함께 공존하는
무대가 열려지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삭발(사도행전 21: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 머리를 깎게 하라!(ξυρήσονται τὴν κεφαλήν) they will shaved head
* ξυράω(3587. xurao) to shave, I shave, shear, cut off the hair.  
* κεφαλή(2776. kephalé) the head, (a) the head, (b) met. a corner stone, uniting two walls; head, ruler, lord. 

9월 21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20:1∼22:25
이사야는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며, 앗수르의 공격으로 애급과 구스가 당할 치욕을 몸소 보여 주었다. 바벨론, 두마, 아라비아, 게달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은 예루살렘에는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집에 수치를 끼친 셉나를 관직에서 쫓아내고 대신에 엘리아김을 세웠지만, 후에 그도 부패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갈라디아서 6:1∼6:18
바울은 성도들에게 범죄 하는 자를 훈계하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돌아보아 서로 짐을 나눠져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살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서로 선을 행하여 영생의 열매를 거두라고 하였다.

☞ 시편 144:1∼144:8
시인은 반석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악인들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b)

심는 방법을 두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입으로만 심는 방법은 말을 번듯하게 잘 하지만 실천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라고 지적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행동으로 심는 방법은 말을 하기 전에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행동으로 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행동으로 심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밀알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버릴 때 많은 열매를 얻게 합니다. 밀알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행동하는 사람은 작은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왜 나만 손해를 보느냐?
왜 나만 고생을 하느냐?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밀알이 되려면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내가 손해를 봐야지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느냐?
차라리 내가 고생을 해야지.........

이와 같은 넉넉한 마음으로 오늘도 주위 사람들 인식하지 말고 내가 가야 할 그 길에서 심어야 할 것을 심어 내가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내게 맡겨진 본분을 행동으로 심어 봅시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어렵고 무겁던 길
주님,
그 길 따라 갈 때
감당할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22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23:1∼25:12
이사야는 교만한 두로와 시돈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 받게 되는데, 두로는 하나님의 권고로 70년 만에 회복되지만 여전히 죄악의 도성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모압은 멸망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에베소서 1:1∼1:23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창세전부터 복 주시기로 예정하셨다고 하였다. 즉,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피로 죄 사함을 받으며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하여 들은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쁨으로 간구하였다.

☞ 시편 144:9∼144:15
시인은 자기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면서 섬기는 자의 복됨을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편 144:15)

한자의 “복(福)”을 분석해 봅니다.

일반적인 분석은 “볼 시(示)” “부요할 부(富)”라고 합니다.

또 다른 분석은 “하나님 시(示)” “한(一)” “사람(口)” “에덴동산(田)”이라고 합니다.
“첫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복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백성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교의 짧은 역사를 지내며 가장 빠르고 크게 성장한 한국교회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성장하면서 양적인 성장은 자랑할 수 있지만 질적 성장을 함께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을 마음에 담고 이제부터는 질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로 세워야 합니다.

질적 성장을 위한 기초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는 자유 민주주의 정신의 토대 위에 진실이란 질서를 갖추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작금의 한국 사회가 드러낸 모순은 진실이란 질서가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모순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진실과 질서를 실천하므로 부흥과 개혁 그리고 안정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내 눈 속의 들보를 깨닫는 회개 운동을 일으켜 미래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내일의 소망을 함께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오 주여,
어두운 길에
진리의 빛을 비추소서

오 주여,
거짓의 마음에
진실의 빛을 담게 하소서

오 주여,
욕망으로 일그러진 삶에
섬김의 빛 비추어
하나님 형상 회복케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9

23

사 26:1∼28:29, 엡 2:1∼2:22, 시 145:1∼145:11

9

24

사 29:1∼30:33, 엡 3:1∼3:21, 시 145:12∼145:21

9

25

사 31:1∼33:24, 엡 4:1∼4:16, 시 146:1∼146:10

9

26

사 34:1∼36:22, 엡 4:17∼4:32, 시 147:1∼147:9

9

27

사 37:1∼38:22, 엡 4:17∼4:32, 시 147:1∼147:20

9

28

사 39:1∼41:29, 엡 6:1∼6:24, 시 148:1∼148:14

9

29

사 42:1∼43:28, 빌 1:1∼1:26, 시 149:1∼149:9

9월 23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26:1∼28:29
이사야는 구원받은 유다 백성들은 새 왕국에서 야훼께 감사 찬양을 부를 것이라고 했다. 야훼께서 원수를 죽이시고 이스라엘의 죄를 없이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산에서 다시 야훼께 경배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교만한 에브라임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선민의 타락에 책임이 있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경고하셨다.

☞ 에베소서 2:1∼2:22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허물과 죄로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선언하였다.

☞ 시편 145:1∼145:11
시인은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고 있다. 

☞ 묵상을 위한 말씀과 기도
-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베소서 2:2b)

인간의 성품(性品)을 태어날 때부터 선(善)하다고 주장하는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과 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악(惡)하다고 하는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Nature the Children of Wrath) 라고 강조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와 인간들이기에 자기들을 위한 이기적 집단에서는 사회의 질서를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노의 자녀들이 공의와 질서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려고 합심하여 기도할 때 놀라운 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총체적 위기를 받은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특별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하루 세 차례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에 자유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흔들림이 없도록 모든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르게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려고 합니다.

특별기도의 날은 9월 23일(월)부터 시작하여 10월 3일(목)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국(祖國)을 위한 기도뿐입니다.

10월 3일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확립하고 좌파 세력들을 척결(剔抉)하려는 범국민 투쟁본부가 주관하는 서울 광화문 집회를 위하여 기도의 폭탄을 준비해야 합니다. 비록 몸은 그 자리에 함께 참여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동참하기 위하여 기도의 폭탄을 준비합시다. 그리고 그 날의 승리를 위하여 다짐하며 이렇게 기도합시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자유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좌파 세력들을 몰아내자!

광화문 광장을 미스바 광장으로 회복하자!(사무엘상 7:6)
광화문 광장을 수구 문 앞 광장으로 회복하자!(느헤미야 8:3)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땅 위에서는 조국(祖國)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로 모든 교회와 백성들이 하나 되어 분단 된 땅을 복음으로 통일하여 열방을 향한 복음 전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복음 강국(强國)으로 세울 수 있는 기틀을 만들기 위하여 기도의 폭탄을 만듭시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자유대한민국 땅을 
사회주의 국가로 타락시키려는
사악한 세력들을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과 박애와 질서가
사회 전반에서 실현되어
하늘의 기쁨이
땅의 평화로 채워지는
남과 북을 하나로 묶어
새 나라 건설하게 하소서   
새 역사 펼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24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29:1∼30:33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범죄 함으로 고통당하고, 그들의 대적들은 멸망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급을 의지한 유다의 지도자들도 수치와 수욕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야훼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백성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하였다.

☞ 에베소서 3:1∼3:21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자신의 사도직을 강조하면서,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통해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된다는 비밀을 언급하였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의 속사람의 강건과 믿음과 사랑이 하나님의 충만하신 데까지 이르기를 기도하였다.

☞ 시편 145:12∼145:21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게 간구하는 자들을 가까이 하시며,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들어 주신다고 노래하고 있다. 

☞ 묵상을 위한 말씀과 기도
-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편 145:18)

총체적 위기의 먹구름이 뒤덮은 남한 땅에 소망의 빛이 비추기를 소원한다면 이제는 비상 기도를 해야 합니다.

왜 총체적 위기가 닥쳐왔을까요?

선지자 이사야의 증언(證言)은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사 29:10) 

경제부흥을 위한 일에 몰두(沒頭)할 때 하나님의 부흥에 대해서 깊은 잠에 취했던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는 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올바른 가치관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建國理念)을 가르치고 지킬 수 있도록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저희들은 어제부터(9월 23일) 특별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하루 세 차례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에 자유대한민국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특별기도의 날은 10월 3일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은 나그네와 같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의 기초가 흔들리고 사회주의 체재로 바뀐다면 이 땅에서는 돌아갈 고향이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본향(파트리스)은 위로부터 내려올 새 하늘과 새 땅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육신의 몸은 고향 땅을 생각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고 살아갑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극심한 가난과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물질의 풍요함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기에 경제적으로 부요한 나라의 대열에 들어섰지만 아직 부를 누릴 수 있는 정신을 갖추지 못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을 깨우치시려고 사회주의라는 흙탕물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나마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흙탕물을 맑은 물로 씻어버리려고 도처에서 일어서는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지켜보며 한줄기 소망의 줄을 잡아보려 합니다.

세계에 흩어진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이여!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
물질이 우선이 아니라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가치를 회복하여 자손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세워봅시다.

유대인들은 소수민족이지만 지금도 세계의 경제를 흔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정신을 다섯 가지 삶의 모습에서 찾아봅니다.

첫째는 몸보다는 머리를 사용하는 직업을 찾아라!
둘째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라!
셋째는 토론과 대화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라!
넷째는 토라(율법)의 가르침에 전념하라!
다섯째는 유대문화를 전수(傳授)하라!

 
고려의 청자와 이조의 백자를 만드는 놀라운 기술이 후대에 전수되지 않은 것은 공동체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려고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유대인들의 삶에서 배워야 합니다.

특별 기도의 날을 선포한 이유는 사회주의 체재로 나라를 뒤엎으려는 세력들을 향하여 기도의 폭탄을 퍼 부으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함께 기도하며 자유대한민국 만세! 예수 한국 만세! 복음통일 만세! 세계 선교 만세!

이렇게 외쳐봅시다.

오 주님,
숨 막히는 어지러운 세상
하늘 문 열어
자유의 창으로
평화의 문으로
신선한 공기의 채워주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25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31:1∼33:24
이사야는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애급에 도움을 구한 자들은 심판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은 보호받고 앗수르는 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차 의의 왕이신 메시아의 통치로 말미암아 방백들은 공평으로 일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경고를 받지 않는 안일한 여자들은 환난 날에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성신을 부어 주셔서 공평과 의를 펴시고 학대받는 자들의 구원이 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에베소서 4:1∼4:16
바울은 먼저 에베소 교인들에게 부르심을 받은 자가 맺어야 할 합당한 열매를 소개하면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 각 지체의 분량대로 힘써 일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 그의 몸을 세우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46:1∼146:10
시인은 진정한 도움을 주시며 공의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을 위한 말씀과 기도
-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편 146:3∼4)  

대한민국을 위한 열흘(旬) 특별기도 세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아침과 점심과 저녁 시간에 대한민국의 건국이념(建國理念)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의 기초가 든든하게 세워지고 다져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社會主義) 체재(體裁)에서는 기독교(基督敎) 신앙(信仰)은 무조건 탄압하며 교회마저 부정(否定)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방문했던 몇몇 사람들은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곡교회가 있고 가톨릭 성당도 있고 불교의 사찰도 있다고 주장하며 북한에도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성경책을 갖고 있다고 강제노동교화소와 정치범수용소에 구금(拘禁)시켜 놓고 사회와 격리(隔離)시킬까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신음(呻吟)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북한의 모순(矛盾)된 사회를 인정하려는 좌익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커져갑니다. 그런데 진리를 외쳐야 할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침묵(沈黙)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분명하게 잘못이라고 당당하게 외쳐야 합니다. 그리고 좌익사상(左翼思想)은 반드시 뿌리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자유(自由)의 가치는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아닌 것을 버려야 하고 반대되는 주장은 그들의 주장을 좋아하는 북한으로 돌아가서 그들과 합류해야 할 것입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소리 보다는 “진리가 이긴다!” 소리가 더 크고 힘차게 울려야 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의 도움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진리 편에서 참된 것을 따라가는 백성들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도록 올바른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권리는 투표권입니다. 이제는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학연(學緣), 혈연(血緣), 지연(地緣), 종교(宗敎)와 신앙(信仰) 등에 의해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바르게 지키며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일군을 뽑아야 합니다.

내 권리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주권을 사용하여 후손들에게 떳떳한 나라를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흔들리는 세상을 똑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오 주여,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흔드는
좌파들의 정체가 모두 드러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위장한 것을
모든 백성들이 깨닫도록 보여주심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백성들을 사랑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돌볼 줄 아는
열방 중에 손꼽히는 나라로 세워갈 수 있도록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으로 무장케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26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34:1∼36:22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만국을 향해 진노하셔서 그들을 진멸하시고 에돔 땅에서 큰 살육을 행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속함을 입은 자들은 시온에 이르러 기쁨 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여 하나님과 애급을 의지하던 히스기야 왕과 그의 백성들을 욕되게 하였다.

☞ 에베소서 4:17∼4:32
바울은 성도들에게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며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고 하였다.

☞ 시편 147:1∼147:9
시인은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악인을 엎드러뜨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을 위한 말씀과 기도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2)

순(旬) 기도의 날 제4일을 맞이합니다.
하루에 세 차례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자유민주주의 체재가 굳건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손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거룩하게 새겨지기를 소원합니다.

"위기(危機)" 라는 한자는 "위태할 위(危)" "베틀 기(機)"라고 합니다. 위기란 "어떤 일이 그 진행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악화된 상황", 또는"파국을 맞을 만큼 위험한고비" 라고 합니다.

"베틀 기(機)"자는 "1. 베틀, 2. 틀, 3. 거짓, 4. 올가미, 5. 문지방" 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위기는 "위태로운 문지방" 입니다.
애급에서 노예로 고생하던 히브리 백성들을 애급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때 마지막 장자의 죽음이란 재앙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을 위한 마지막 재앙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생각합니다.

자유 대한민국의 위기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반드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애급에서 나왔던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으려고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을 때 히브리 백성들은 모세가 보이지 않는다며 애급에서 섬겼던 송아지를 생각하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 모여 이제부터 금송아지가 우리들을 인도할 것이라며 환호했습니다.

급하게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이 방자하게 행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것을 책망하여 칼을 뽑아 죄를 짓게 한 형제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대략 삼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든 후에 금가루를 물에 풀어 모든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금가루를 물에 풀었더니 물이 황금빛이 아니라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십자가 보혈을 상징합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모든 교회가 십자가 보혈의 공로만을 의지하고 자랑하므로 공산 사회주의 좌파 사상과 주체 사상에 물든 사람들과 나라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정금 신앙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오 주님!
세속에 물든 교회
주님의 보혈 흘러내려
정결하게 씻겨주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열방을 향한
구원의 문
활짝 열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27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이사야 37:1∼38:22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훼방하는 말을 한 산헤립에 대해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산헤립과 더불어 앗수르 군을 멸하셨다. 그 후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다. 이에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렸다.

에베소서 5:1∼5:33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언급하면서, 빛의 자녀답게 행하고 성령 충만과 감사 찬송의 생활을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범사에 복종하라고 하였다.

시편 147:10∼147:20
시인은 그의 백성과 대자연을 은혜롭게 지배하시며, 그의 백성에게 계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묵상을 위한 말씀과 기도
-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편 147:11) 

순(旬) 기도의 날 제5일을 맞이합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자유민주주의” 및 “자유시장경제” 그리고 “기독교 신앙” 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의 신앙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박사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목회자 장학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을 위하여 장학금을 지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승만박사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면서 교회를 목회할 것이 아니라 한국을 목회하려는 꿈을 갖고 그 꿈을 실현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승만박사의 꿈은 대한민국을 거대한 교회 조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제헌국회를 개회할 때 의장의 권위와 자격을 갖고 당시 이윤영 의원(목사)에게 개회 기도를 하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국회가 개회할 때 기도로 시작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유일하게 기도로 시작한 나라입니다.

“페르시아의 흠(欠)”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어떤 물건에 흠(欠)이 있으면 그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흠(欠)’은 오히려 그 가치를 높여주는 단서(端緖)가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흠이란 페르시아에서 생산하는 고급 양탄자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페르시아에서 생산되는 양탄자는 명품(名品)에 속합니다. 양탄자를 생산하는 사람이 완벽한 양탄자를 만들 수 있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흠(欠)집을 만든다고 합니다. 바로 그 (欠)흠집 때문에 ‘페르시아 제품’이라는 증거가 된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흠(欠)’이란 장인(匠人) 정신의 얼이 담긴 인간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는 고의적인 실수라고 하겠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장기 집권한 독재자라고 비판합니다. 물론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 때문에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립한 것마저 잘못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사고(思考)를 갖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고 잘한 것은 칭찬하며 더 발전시켜 대한민국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국가로 세워가는 것이 애국선열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앙인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애국선열들이 기뻐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 대한민국을 향한 창문을 열고 대한민국호(大韓民國號)가 더 넓은 대양을 향하여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시대가 요구하는
일군들을 세워주소서
검은 마음 보다
민족의 즐거움과
희망이 되는 마음으로
역사에 새겨질  
그 일을 위하여
헌신할 일군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9월 28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39:1∼41:29
히스기야의 병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한 바벨론 사신들에게 히스기야는 무기고와 보물고를 보여 주는 교만을 보였다. 이에 이사야는 그 모든 보물을 바벨론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하였다.

♦ 에베소서 6:1∼6:24
바울은 부모와 자녀, 종과 상전과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영적 투쟁에 대해 교훈하였다. 성도들은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하였다.

♦ 시편 148:1∼148:14
시인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 묵상을 위한 말씀과 기도
-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시편 148:13)

순(旬) 기도의 날 제6일을 맞이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주의 백성들의 임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대한 조국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에 모든 종교와 민간 신앙을 지지하고 동의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일 될 수 있습니까? 여호와를 찬양하려면 여호와의 가르침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대한 조국을 찬양하려면 대한민국 헌법이란 틀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 주장까지도 같이 함께하겠다는 것은 이미 틀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면 왜 교회가 정치에 간섭하느냐 하고 비판합니다.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교회는 정치에서 손을 떼라고 합니다. 정교분리 원칙이란 국가가 종교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 것입니다(미국 수정 헌법 제1조에 의거). 이런 원칙을 일본의 지배하에 있을 때 교회가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주도하므로 일본사람들은 교회는 정치에 간섭해서 안 된다며 교회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세웠던 잘못된 이론 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칼뱅)은 스위스 제네바의 시장으로 정치에 깊이 관여했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국제창가학회(SGI. Soka Gakkai International, 남묘호렌게쿄)라는 종교 단체에서는 "공명당"을 창당하여 정치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중의원에서 전체 의석의 약 4%, 참의원에서는 약 8%나 차지하여 캐스팅보트 행사를 하고 있음).  
교회는 선전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경우 평양에 세운 봉수대교회는 선전의 도구로 세워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장대현교회는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회이기 때문에 완전히 없애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교회는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한 반대세력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선전을 하려고 봉수대교회와 칠곡교회 및 사찰과 가톨릭 성당을 세웠습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을 인정해야만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신앙을 인정하려면 개인들이 성경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개인이 성경을 갖고 있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여서 예배하는 것도 금하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선전도구로만 이용하는 교회에 다니겠습니까?
선택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선택이 역사적으로 훗날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선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상처가 곪아서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곪은 부분을 도려내고 치료한 후 건강한 몸으로 회복해야 하는 것처럼 법으로 사회주의 국가라고 선포하기 전에 자유대한민국에서 마음껏 예배하는 즐거움을 자손대대로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9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42:1∼43:28
이사야는 메시아의 사역을 예언하면서 야훼께서 그의 종인 메시아를 보호하시고 그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도록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키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빌립보서 1:1∼1:26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사랑을 표현하면서 기도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이 오히려 복음을 더욱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면서, 어떤 방법과 이유에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 시편 149:1∼149:9
시인은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을 위한 말씀과 기도
-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편 149:4) 

순(旬) 기도의 날 제7일을 맞이합니다.

지난 금요일 가정 담당 간호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출생한 중국인 2세로 유대인 남편을 맞이하여 독일어, 히브리어, 중국어, 영어, 인도네시어를 구사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글의 알파벳이 몇 자냐 하는 질문을 받고 손가락으로 기역 니은 디귿 하며 자음의 수를 헤아릴 때 간호사는 크게 웃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가 우리의 것을 너무 소홀히 생각했다는 부끄러움이 솟구쳤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ROK)이란 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간단히 한국(韓國), 남한(南韓) 등으로도 부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남조선(南朝鮮)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나는 남쪽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남쪽 정부라고 말한 것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남한을 남조선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한 연설이기에 옳은 줄 알고 듣기만 합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되므로 일본 천황(天皇)은 항복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 남아 있던 일본군들은 천황의 항복을 믿지 않았습니다. 일본군들은 천황은 신과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천황이 항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본군들이 천황이 항복한 것을 알고 철수할 때에는 한반도 땅에 큰 혼란이 닥쳐올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퇴각하는 일본군들이 부녀자들을 겁탈할 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모두 갖고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용산 기지에 진을 치고 있던 일본군 진지에 주둔하게 됩니다.

주사파들은 일본군은 철수했으나 이때부터 미군이 다시 점령군이 되어 미제국주의 식민지배가 시작되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주사파들은 제일 먼저 미군철수를 주창합니다.

그런데 일본군들이 철수한 후 1949년 6월 30일 미군은 용산 기지에서 모두 철수했습니다. 이때 모든 무기와 탱크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철수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음 해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므로 다시 미군이 참전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미군이 한반도 땅에 다시 주둔하게 된 원인은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군을 주둔하게 한 것은 바로 김일성입니다.

역사는 정확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만일 주사파처럼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만 뽑아서 짜깁기 식으로 가르친다면 거짓으로 왜곡된 역사에 완전히 몰입되어 역사의 현장을 혼란케 합니다. 그와 같은 어지러운 역사가 한반도 땅에 태풍처럼 불어온 것입니다. 

주사파들이 주장하는 역사는 모두 거짓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에서부터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주사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터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무너트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동성애 인정, 기독교를 개독교, 목사를 먹사, 교회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종교다원화주의, 교회 세습에 대한 온갖 유언비어 조작 등을 사람들에게 널리 선전하고 반복하여 주입시키려고 합니다.

북한의 세습은 왜 비난하지 않을까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렇게 3대를 이어 세습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으면서 이승만독재, 박정희독재를 비난합니다.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 위에 교회를 세우고 대한민국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진리의 터 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
반듯하게 세워
겸손한 하나님 백성
대를 이어가며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9

30

사 44:1∼45:25, 빌 1:27∼2:18, 시 150:1∼150:6

10

1

사 46:1∼48:22, 빌 2:19∼3:3, 잠 1:1∼1:9

10

2

사 49:1∼50:11, 빌 3:4∼3:21, 잠 1:10∼1:19

10

3

사 51:1∼52:15, 빌 4:1∼4:23, 잠 1:20∼1:33

10

4

사 53:1∼55:13, 골 1:1∼1:19, 잠 2:1∼2:12

10

5

사 56:1∼58:14, 골 1:20∼2:7, 잠 2:13∼2:22

10

6

사 59:1∼60:22, 골 2:8∼2:23, 잠 3:1∼3:10

    

♦ 9월 30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44:1∼45:25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구속자인 만군의 야훼라고 하면서 야훼밖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다. 우상 숭배자들을 향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야훼의 목자로 삼으셔서 그를 통하여 예루살렘이 중건되고 성전의 기초가 세워질 것이라고 하셨다.

♦ 빌립보서 1:27∼2:18
바울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고난도 받게 하시려는 데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하였으며,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힘쓰고 생활의 본을 보이라고 하였다.
♦ 시편 150:1∼150:6
시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 

순(旬) 기도의 날 제8일을 맞이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할 할 수 있다면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면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예수님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예수님처럼 단 하루 만이라도 살아볼 수 있다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대한민국을 주님의 뜻에 맞는
믿음의 나라로 세워주시옵소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식량과 군대와 믿음 이 세 가지 중에서 나를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여러분은 어떤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자는 “신뢰(信賴)”가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우선이고 그리고 군대가 있어야 하겠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信)”이라고 강조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먹는 것에 독약(毒藥)을 넣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군대(軍隊)가 적군(敵軍)을 공격(攻擊)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군(我軍)을 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싸울 수 없을 것입니다.

법(法)을 집행(執行)해야 하는 사람이 법을 무시(無視)하고 거짓의 삶을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각종 비리(非理)가 드러났는데도 이런 사람을 임명(任命)하는 대통령(大統領)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법질서(法秩序)를 무시(無視)하는 통치자(統治者)와 장관은 반드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청소년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교육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둘째는 학생들의 성실한 배움의 꿈이 무너졌습니다.
셋째는 학부모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넷째는 경제 질서가 파괴되었습니다.
다섯째는 화목한 가정이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정말 어느 것 하나 성한 곳이 없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주의 백성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다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일어나서 대한민국의 진실은 살아있다는 것을 우방(友邦) 나라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적 사명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소금과 빛의 삶을 회복하여 희망을 잃어버린 백성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도합시다.

예수 한국!
복음 통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생명책(시편 69:28,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 주일 설교 원고(2019-09-29)


생명책(生命冊)


성경에서 사용된 어떤 용어의 의미를 반드시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속담에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들었던 풍월 즉 주입된 정보에 의해서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구원을 얻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데 사회는 변화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너니즘이란 사상은 모든 종교의 목적지는 똑같다고 하며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마치 이런 가르침이 더 인격적이고 포용력이 큰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 구원의 길은 전혀 다르게 말씀합니다.
이사야 43:11에서 "나는 곧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에서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또 다른 기도에 대한 예를 생각해 봅시다.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실 때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방법과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생각하신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행하고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반 평신도들이 신학적인 지식과 방법론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에서 사용된 동일한 용어와 비슷하게 사용된 용어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가 “생명책(生命冊)”입니다. 생명책에 대한 이제까지 내가 생각했던 의미를 먼저 정리한 후에 과연 성경에서는 생명책이란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대한성서공회 인터넷 사이트에서 성경검색을 찾아 찾고자 하는 ‘생명책’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성경에서 생명책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확인해 본 결과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 신약에서 7구절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생명책이란 단어가 사용된 모든 말씀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 도말(塗抹) - 칠할 도(塗), 지울 말(抹)
1. 겉에 무엇을 발라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함
2. 이리저리 임시변통()으로 발라 맞추거나 꾸며댐 

도말이란 쉽게 설명하면 벽에 낙서를 한 것을 지우려고 그 위에 벽과 같은 색으로 덧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란 “의인(義人)”과 “악인(惡人)” 이라고 하겠습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이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간다는 말씀을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떻게 구원을 얻느냐 하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시편 104: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 감찰(監察) - 볼 감(監), 살필 찰(察)
1. 감시()하고 살피는 것
2. (법률()ㆍ법학) 공무() 상()의 비위()나 비행()에 대()하여 조사(調) 또는 감독()하는 일  

악인은 교만한 얼굴로 하나님께서 감찰하지 않는다고 하며 모든 사상 즉 생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시편 69편에서 “생명책”이란 “의인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은 의인들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이 성경적인 첫 번째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한 구절을 읽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 될 때는 그 구절을 중심으로 앞 뒤 모든 말씀들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성경을 많이 읽었다면 한 구절에서 생명책에 기록될 이름이 무엇인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는 생명책에 기록될 이름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첫 번째는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즉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함께 감옥에 갇혔던 사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이기 때문이며 문맥을 살펴보면 멍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동역자들을 말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바울은 자비량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동역자들이란 바울이 예수 복음을 전할 때 함께 돕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바울을 어떻게 도왔을까요?

첫째는 물질로 돕습니다.
둘째는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 여행의 동반자, 감옥에 갇힌 자)

셋째, 요한계시록 3:5 - cf. 20:12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신앙과 죽은 신앙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데교회의 경우 살아있는 신앙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바다 물고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트에 가서 죽은 고등어 한 마리를 사왔습니다. 고등어에 소금을 뿌려서 소금간을 한 후 며칠 후에 그 고등어를 작은 냄비에 넣고 각종 양념으로 고등어를 졸이면 그 맛이 참 좋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고등어를 졸였는데 ‘고등어가 맛이 있다!’ 하며 즐겁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등어가 바닷물 속에서 살아있을 때 바닷물의 염분 농도는 대략 3.1%∼3,8% 라고 합니다. 고등어가 살아있을 때는 바닷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얼마든지 바다 속을 헤엄치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등어가 죽었을 때는 바닷물 위에 둥둥 떠다닙니다.
한번은 마을 뒤편 시냇물이 태풍과 폭우로 인하여 둑이 넘칠 정도로 흙탕물이 넘실거릴 때 동네 아이들은 바구니를 들고 물가로 가서 물이 흘러내리는 반대 방향으로 바구니를 위로 치켜듭니다. 흙탕물이 된 시냇물에는 커다란 통나무와 초가집 지붕과 같은 것들이 마구 떠내려 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바구니를 들어 올리면 작은 물고기들이 바구니 안에서 파득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어 이야기와 시냇물고기 이야기에서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살아있다는 것은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살아있다는 것은 바닷물이나 시냇물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신앙이 살아있다는 것은 자기 힘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헌금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선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신앙은 이와 같은 것들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데교회에서 살아있다는 신앙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신앙생활을 체험적인 신앙과 관념적인 신앙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관념적 신앙이란 집안 대대로 예수를 믿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은 신앙의 출발점은 있지만 신앙의 변화는 없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와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살았던 사람이 세상에서 무슨 문제와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온갖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절망했을 때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놀라운 변화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런 신앙을 흔히 체험적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어떻게 받았으며(람바노)
λαμβάνω(2983. lambanó) - to take, receive, (a) I receive, get, (b) I take, lay hold of. 

복음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우리에게 복음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가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따라서 살아있다는 신앙이란 죄에 대하여 죽은 후 다시는 죄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는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로마서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둘째, 어떻게 들었는지(아쿠오. 헤쿠사스, ἤκουσάς)
ἀκούω(191. akouó) - to hear, listen, I hear, listen, comprehend by hearing; pass: is heard, reported.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믿음을 얻기 위해서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설교가 너무 많습니다. 설교가 많다는 것은 가르침은 많지만 가르침대로 생활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읽어야 합니다.

주여, 나의 믿음을 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하다는 것은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삼손이 강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나실인의 약속을 지킬 때에만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강하던 삼손이었지만 나실인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는 삼손에게서 강한 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삼손은 마지막에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서 두 눈이 뽑혔습니다. 블레셋 신전 기둥에 오른 팔과 왼 팔이 묶여 있을 때 삼손은 울부짖었습니다.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원수를 갚게 하소서!

그 결과 삼손이 가장 강하게 활동하며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숫자보다 더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 신전과 함께 압사하고 말았습니다(사사기 16장).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의 갑옷과 창과 방패와 칼이 아니라 오직 그가 잡을 수 있는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어느 누구 단 한 사람도 다윗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다윗의 승리는 믿음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군대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사무엘상 17:45).

셋째, 어떻게 생각하고(므네모뮤오, Remember)

μνημονεύω(3421. mnémoneuó) -  to call to mind, to make mention of, I remember, hold in remembrance, make mention of.    
λαμβάνω(2983. lambanó) - to take, receive, (a) I receive, get, (b) I take, lay hold of.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자!
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요?

이사야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위의 것이란 신령한 가치를 말하며 땅에 것이란 세속적인 썩어 없어질 가치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신령한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신령한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과 신령한 것을 나누려는 것은 영지주의와 같은 잘못된 신앙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도 신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 밥이 세상 것입니까? 신령한 것입니까? 당연히 세상 것입니다. 그런데 밥을 먹을 때 기도합니다. 기도를 하되 나만 잘 먹고 건강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아직 세상 적인 신앙에 붙잡힌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밥을 먹고 힘을 얻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으며 또 그들을 돕기 위하여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신령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식사 기도는 세속의 가치를 신령한 가치로 전환 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넷째, 어떻게 지키어(테레오)
τηρέω(5083. téreó) - to watch over, to guard, I keep, guard, observe, watch over.     

생명을 지키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에게 세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육의 생명과 혼의 생명과 영의 생명입니다. 온전한 신앙이란 영과 혼과 육의 생명을 동일한 기준으로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한경직목사님을 아시지요? 그러면 김익두목사님을 아시나요?

통일신문 2015년 1월 5일자
김익두목사님(1874. 11. 3 황해도 안악군 출생∼1950)
해방 후 김익두목사님은 1949년 조선기독교연맹 초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부회장에는 김응순목사, 서기는 조택수목사를 선임했습니다. 이때부터 김익두목사는 김일성 수상과 같은 사회주의 노선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6. 25 전쟁 당시 삼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을 때는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서울 탈환 환영예배”를 주최했습니다. 1950년 8월 5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는 북조선 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들과 각 시도 지역 기독교도 연맹 대표들 그리고 북한 전역의 목사, 장로, 전도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쟁 승리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6. 25 전쟁을 언급하며 “정의의 전쟁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스러운 성전”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불의와 죄악을 제거하기에 어떤 것도 아끼지 말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정의로운 우리의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영웅적 우리 인민군대에게 비행기, 탱크, 함선을 더 많이 헌납하기 위한 기금 거둘 운동을 신도들 사이에서 더욱 맹렬히 전개하자!”고 호소하던 그는 필승을 기원하는 예배와 합심기도를 앞장서서 주도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김익두목사님의 마지막 신앙 여정은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나의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 따라 지켜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만 할 것입니다.

다섯째, 이렇게 회개하라(메타노에오)

(μετανοέω(3340. metanoeó) - to change one's mind or purpose, I repent, change my mind, change the inner man (particularly with reference to acceptance of the will of God), repent.     

회개는 철저하게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한경직목사님(1902. - 12. 29,  평양남도 공덕면 출생∼2000. 4. 19)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에 동조하였기 때문에 일평생 목회하는 동안 늘 그것이 신앙의 아픔이 되어 마지막 임종 때까지도 신사참배 했던 죄를 뉘우쳤다고 합니다.

템플턴 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에도 제일 먼저 나와 같이 신사참배에 동조한 목사가 그런 기독교의 노벨상과 같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며 그 상을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위원회에서 수상자로 발표했을 때에 수상 소감을 말할 때에도 “저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앞에서 죄인이며 신사참배도 한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회개(悔改, 메타노에오)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옮겨 놓은 것을 말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될 이름은?

첫째는 예수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들(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셋째는 살아있는 신앙의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알파와 오메가(요한계시록 1:8, 21:6, 22:13) / 주일설교 원고(2019-09-22)


알파(Α)와 오메가(Ω)

헬라어 알파벳은 모두 24자입니다. 알파(Α)는 헬라어 알파벳 첫 번째 문자이며, 오메가(Ω)는 헬라어 알파벳 마지막 24번째 문자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문자의 시작과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중간에는 22개의 문자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예수님은 22개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처럼 과정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은 이제도 있고(현재), 전에도 있었고(과거), 장차 올 자(미래)로 전능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모두 존재할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일까요? 영원하신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영원자(永遠者)가 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존재입니다. 완전한 존재를 다른 말로 영원자라고 합니다. 사람의 이와 같은 모습을 불란서의 학자 파스칼은 “사람은 중간자” 라고 정의했습니다. 왜 사람을 중간자라고 정의했을까요?

사람은 시간적으로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 중간자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는 하늘도 아니고 땅 속도 아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공간적으로 사람은 중간자라고 합니다.

사람의 모양 형태를 살펴보면 사람은 하나님도 아니고 사탄도 아니고 천사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형태적으로 사람을 중간자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은 처음(ἀρχὴ)과 나중(τέλος.)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ἀρχὴ)이란 “근원(根源)”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처음이란 영적 존재로 돌아가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나중이란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심판(審判)”의 날이 반드시 다가올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로마 우르반대학 대강당에 새겨져 있는 글입니다.
오래 전 로마법대 졸업반에는 고학생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감당할 길이 없어 필립 네리란 부자 노인을 찿아가 재정상의 도움을 청원했습니다.
네리 노인은 그의 요청을 들어 주기로 허락한 후 다음과 같은 문답을 했습니다.

네리노인 "그런데 이 돈으로 무엇을 하겠소?"
학생 "우선 법대를 마쳐야겠습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변호사가 되렵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돈을 벌어야겠어요."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집을 짓겟습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 생 "결혼을 해야죠."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자녀를 낳아서 교육을 시켜야죠."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점점 늙게 될 것입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

젊은 법학도는 대답을 못하고 다음과 같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내 피는 식게 된다.
나를 위한 장례식이 있을 것이고 공동묘지는 무덤 하나가 더 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영원히 망각이다.

아무 대답이 없는 그 대학생을 향해서 네리 노인은 이제 엄숙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망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심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예수 안에는 영원한 천당 예수밖에는 영원한 지옥이다."

돈 뭉치를 받아든 그는 매우 행복스러운 듯 보였으나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영원이다."

비록 그 음성은 부드러웠으나 그의 마음속에 강력히 와 닿는 그의 말은 결코 지워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자나깨나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이 말이 그에게는 큰 고통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현명한 결단을 내려 로마 법대에서 우르반 대학으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성경과 신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공부한 후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그만이다! 라는 말은 마지막 다음에 있을 심판을 알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의 넉두리입니다.
 
그런데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들에게 값없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생명수 샘물을 마시고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은 처음(πρῶτος)과 나중(ἔσχατος)이시며, 시작(ἀρχὴ)과 끝(τέλος)이 되셨습니다.

처음(πρῶτος)이란 시작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시작은 창조를 말합니다. 나중(ἔσχατος)이란 마지막 즉 종말을 말합니다. 종말은 땅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위로부터 내려와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는 날을 말합니다.

시작(ἀρχὴ)은 구속의 시작으로 십자가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끝(τέλος)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외치셨던 예수님의 말씀으로 구속의 사역이 완전히 마무리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첫째는 영원하신 예수님(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둘째는 창조주와 심판주(요한계시록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셋째는 만유의 주(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 24문자의 첫문자와 마지막 문자입니다. 그러나 24문자 중에 첫문자와 마지막 문자를 제하면 22개의 문자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드시 마지막이 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올 때 어떤 사람은 이미 죽어서 땅 속에 묻혀 없어진 사람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지막 그 날에 살아있으므로 새로운 영적 존재로 변화되어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약속을 사도 바울의 외침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이란 첫 번째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 전체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첫 열매를 바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로 약속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첫 열매는 단 하나의 열매가 아니라 앞으로 열매 맺을 모든 열매를 대표하듯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장차 모든 부활 생명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알파(창세기 1:1) - 창조주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신앙고백으로 암송하는 사도신경에서도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를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알파 하나님은 우주 전체의 근원입니다.
독일의 개혁교회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928. 10. 2 ~2014. 9. 5)는 그리스도론을 체계화 했던 학자이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하나님은 “만물을 규정하는 현실성”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알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만 나라는 존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파 하나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중심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내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로서 전능한 자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이 알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오메가(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은 22장 21절이 마지막 말씀입니다.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으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입니다. 마지막 말씀은 끝을 맺는 인사말이기 때문에 마지막 말씀은 20절이라고 하겠습니다.

알파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오매가 하나님은 다시 오실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다시 오실 목적은 심판주로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

3. 하나님은 완성(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완성하신다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완성하시는 방법은 세상에 있는 것을 모두 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눈물, 죽음, 애통, 통곡, 아픔이 없는 세상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눈물과 죽음과 애통과 통곡 그리고 아픔이 언제나 가깝게 우리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런 것들이 있어야 웃음과 삶과 즐거움을 느끼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세상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마지막 때에 모든 세상과 삶이 완성된다는 사실에 대한 비유이며 은유입니다. 

로마 황제가 아무리 자신을 황제가 하나님이라고 강요할지라도 로마 황제는 눈물과 죽음과 아픔을 씻어줄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로마 황제의 권위에 굴복하라고 강요받던 시대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진리 즉 예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자라는 믿음입니다. 최고의 권력에 대한 혁명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을 읽어보면 정말 황당한 이야기도 소개됩니다. 하늘이 종이두루마리처럼 말린다거나 바다에서 용이 나오는 광경도 있습니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마다 그 역동성에 감동을 받습니다. 전혀 새로운 언어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일이나 사람들은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대통령이나 필부나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조 단위의 재산이 있는 사람이나 겨우 먹고 사는 정도의 사람이나 인간의 근본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모두 이 세상에서 한 순간 살다가 떠나야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그런 대상에 매달려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런 삶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밥벌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그 해방이 실제로 가능할까요?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알파와 오메가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알파와 오메가 신앙이란 알파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오메가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은 완성의 하나님입니다. 완성의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상급은 이 세상에서 올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유대인들의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나라도 없이 오랜 세월을 전세계에서 뿔뿔이 흩어져서 살던 소수민족입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되었고,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민족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성과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몸보다는 머리를 사용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습관.

배척을 당해왔던 역사로 인해 자연스럽게 어디서나 할수있는 머리를 사용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서로 정보를 교환할 만큼 강한 공동체 의식.

유대인들은 같은 민족끼리는 엄청난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는 토론과 대화의 교육 방법

이론보다는 체험을 중시하는 유태인들만의 전통 교육법.
인내와 헌신을 기반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통해 자녀들을 이끌어 주는 것이 유태인 교육의 공통된 노하우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고난을 이겨 나가면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귀하게 역사하십니다.
유태인들이 겪은 고난이 결국 그들에게는 가장 귀한 재산이 된 것처럼 주님 안에서는 지금 겪는 어려움들이 훗날의 진주가 된다는 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견디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을 믿게 하소서.
어려움을 통해 성장시키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유대인들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날마다의 삶이 위를 바라보는 기대가 넘쳐나는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Ⅷ(요한계시록 22:14) / 주일설교 원고(2019-09-15)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Ⅷ(요한계시록 22:14)

-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의 복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복음서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가지 복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오늘 읽은 말씀은 마지막 복에 해당하는 말씀으로 복을 받을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일곱 가지 복에 관한 말씀을 정리하는 의미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요한계시록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에서 소개하는 일곱 가지 복에 관한 말씀 중에서 오늘은 마지막 일곱 번째의 복에 관한 말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KJV - Blessed are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that they may hav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enter in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란 말씀에 대한 두 가지 본문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과 다른 하나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란 말씀입니다. 특별히 영어 성경 KJV에서는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을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they that do his commandments)”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어느 본문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충돌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맥락과 요한계시록의 맥락에 따라 말씀을 읽는다면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이란 말씀이 바람직한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계명을 지켜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약속된 것이므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란 번역을 더 선호하게 됩니다.

참고로 각 번역에서 이 말씀을 어떻게 번역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각 성경 번역 대조표

한글개역 성경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한글개역개정 성경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표준새번역 성경

자기 겉옷을 깨끗이 빠는 사람

공동번역 성경

자기 두루마기를 깨끗이 빠는 사람

현대인의 성경

자기 옷을 빠는 사람

NIV

those who wash their robes

KJV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오늘 말씀에서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첫째는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둘째는 생명나무
셋째는 성에 들어갈 권세

첫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란 “구원을 받은 백성들”을 말합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라는 표현은 구원에 대한 비유 또는 상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두루마기는 “예복” 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성경에서 “두루마기”를 “스톨래” 라고 합니다. “스톨래” 라는 단어가 다양한 옷으로 번역됩니다. 예를 들면 “세마포” “흰 옷” “두루마기” 등과 같이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두루마기는 어린 양 혼인 잔치에 참여할 때 입어야 할 예복과 같습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빨아 희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στολὰς)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예복(禮服)이란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잔치를 베푸는 주인이 준비하기 때문에 주인이 준비한 옷이 아닌 것을 입고 있는 손님을 즉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서 잔치를 베푼 임금이 연회장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2:11∼12,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ἔνδυμα)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 ἔνδυμα - 1742. enduma(ἔνδυμα), garment, raiment, clothing.  
* ἔνδυμα γάμου - in clothes of wedding     

혼인잔치에 참여할 때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예복이란 무엇일까요?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아니면 두루마기를 빠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만이 어린 양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입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회개(悔改)”를 의미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백성들이 세상에서 죄(罪)를 짓기 때문에 그 죄를 회개하는 것을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βύσσινον)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βύσσινον)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βύσσινος, 1039. bussinos. fine linen, cotton       

둘째,  생명나무

생명나무는 “영생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은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아졌으므로 생명나무를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며 천사들과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창세시 3:22, 24)

창세기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창세기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렇다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누가 먹을 수 있을까요?

첫째는 지혜로운 사람(잠언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잠언 1:7, 9:10).

둘째는 의로운 사람(잠언 11:30)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의로운 사람이란 옳은 행실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그 죄를 깨끗이 씻음을 받은 용서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용서받은 의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이기는 사람(요한계시록 2:7)

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영생을 얻은 백성들은 지혜로운 사람, 의로운 사람, 이기는 사람으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를 갖습니다.

셋째, 문들을 통하여

요한계시록 22:14 ; 문(門, πυλῶσιν) - πυλών(4440. pulón) a porch, gateway,  a large gate; a gateway, porch, vestibule.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문(θύρα) - θύρα(2374. thura), a door, (a) a door, (b) met. an opportunity.   

요한계시록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문(πυλῶνας) - πυλών(4440. pulón) a porch, gateway,  a large gate; a gateway, porch, vestibule.   


넷째, 성에 들어갈 권세

성(城)이란 새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어린 양이 성전 되신 곳입니다. 그 성안에서 어린 양 혼인 잔치가 베풀어 질 곳입니다. 그런데 그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습니다.

권세란 헬라어는 “에쿠시아”라고 합니다. “에쿠시아”란 “합법적 권세”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권세(ἐξουσίαν) - 1849. exousia(ἐξουσία) ; power to act, authority,
(a) power, authority, weight, especially: moral authority, influence,
(b) in a quasi-personal sense, derived from later Judaism, of a spiritual power, and hence of an earthly power.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에쿠시아”라는 “합법적 권세”는 법으로 인정하여 부여한 권세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교통경찰이 도로에서 경찰 보다 더 크고 강한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는 덤프트럭 또는 트레일러와 같은 대형차를 손을 들어 멈추게 합니다. 경찰이 힘이 있어서 덤프트럭과 트레일러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부여한 합법적인 통제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가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는 어린 양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외치시며 보혈의 공로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 성에 들어갈 자격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하는 그 성 곧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 합법적인 자격을 갖는 것입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의 의미
요한계시록 3:4∼5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ἱμάτια)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λευκοῖς)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니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ἱμάτια - 2440. himation(ἱμάτιον)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λευκοῖς - 3022. leukos(λευκός) ; bright, white, bright, brilliant.    
흰옷의 의미
1. 이김(승리) - 이기는 자
2. 하나님의 권속에 속함 - 나와 함께 다니리니
3. 합당한 사람 - 합당한 자






이승만의 이야기 에피소드 #.2

당신이 돌보게 될 환자는 닥터 승만 리

하와이로 이민을 간 박만상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4·19로 하야한 다음 하와이 생활을 할 때 요양병원에서 이승만을 돌봤다. 서울대 사범대 생물학과 출신으로 1960년 하와이대학으로 유학을 왔고, 미국에서 면역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것은 하와이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1962년 여름이었다.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오아후 섬의 마우나라니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아르바이트 신청을 했는데, 병원 담당자가 “당신이 돌보게 될 환자는 닥터 승만 리”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군사혁명 정부의 주선으로 고국에 돌아갈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루는 서울로부터 귀국해도 좋다는 연락이 와서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까지 나갔는데, 출발 직전 귀국이 취소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이 대통령은 가벼운 중풍 증세가 와서 하반신을 잘 못썼고, 언어중추에 이상이 생겨 영어를 거의 못하고 한국어로만 대화했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한국어 의사소통이 안 돼 병원에서는 한국어 통역을 급히 찾았는데, 이 와중에 박만상이 그 병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 병실에 들어가면서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니까 ‘나 잘 있네. 자네 어디서 왔는가’ 하고 물으시더군요. 서울서 왔다고 하니까 ‘명륜동이 종로구에 있지? 요즘 한국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하군. 젊은 사람들(군사정권 지도자들을 지칭)이 잘 하겠지?’ 하고 혼잣말을 하시더군요. 두 달여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이 박사 부부의 검소함에 감동했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옷이 몇 벌 없어 거의 같은 옷을 계속 입었고, 방에는 이 박사의 헌 구두 두 켤레와 다 떨어진 옷 서너 벌이 전부였어요.”

박만상 씨는 남자 조수로서 이 박사를 돌보며 병원 측과의 의사소통을 맡았다. 목욕을 시키면서 보니 이 박사의 근육에 탄력이 거의 없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눈이 훨씬 작았다. 침대 난간을 붙잡은 오른팔이 심히 떨리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고 한다. 몸을 씻을 때 보면 오른쪽 볼기에 네모난 도장 형태의 흉터가 두 개 있었는데, 영화에서 죄인이나 노예들에게 찍는 화인(火印) 같았다고 한다.

이승만은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3년 여 동안 하와이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계속하다가 90세가 되던 1965년 7월 19일 망명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목수, 미장이 대통령

1945년 10월 16일, 33년 만에 귀국한 이승만은 미군정 사령관 하지 장군이 마련해준 조선호텔에 잠시 머물다가 10월 24일 서울 동소문동 4가 103번지, 조선타이어 사장이었던 장진영의 집을 빌려 2년 여 생활했는데, 이것이 돈암장이다.

이승만 박사와 미군정이 신탁통치 문제로 불편한 관계가 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집주인 장진영이 집을 비워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승만의 거처가 마땅치 않자 하지 장군이 마포 언덕 위에 위치한 다나카 다케오(田中武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여름 별장을 주선해 주었는데, 이것이 마포장이다.

마포장은 집이 협소하고 교통이 불편한데다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수돗물도 잘 나오지 않고 강바람이 세찼다. 이승만은 문짝이 잘 맞지 않고 공사해 놓은 것이 날림인 것을 보고 혀를 차며 “내가 한 것만도 못 하구만. 저 밖에 있는 나무 궤짝 좀 끌르게” 하고 윤석오 비서에게 지시했다.

그 궤짝에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쓰던 대패, 톱, 끌, 망치, 칼 등 연장이 가득했다.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이승만은 대패를 망치로 톡톡 쳐 맞췄다. 맞지 않는 문짝을 떼 자로 대어 줄을 긋고 대패질을 한 뒤 문 손잡이를 분해하여 고쳤다. 솜씨나 태도가 완전히 전문가였다.

윤석오 비서가 “선생님, 미국서 목수노릇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내가 하와이에서 교포학교 지을 때 목수 일도 하고 돌층계도 쌓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매일 부지런히 정원수를 다듬고 고목나무는 잘라 도끼질을 했다. 1년 이상 손을 안대 무성한 정원의 풀은 아무도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도록 엄명을 내렸다.

이 무성한 풀은 점심 식사 후 약 반시간씩 손으로 뽑아 한 달 만에 다 없애 버렸다. 이승만은 풀을 뽑으면서 외부인사 접견도 하고 비서들에게 성명을 구술하기도 했다. 풀이 억셀 때는 두 손에 힘을 주어 잡아 뽑으며 “이놈, 나한테 졌지, 졌어” 하는 혼잣말을 자주했다.

윤치영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과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활동하던 시절, 두 사람은 일당 1달러 50센트를 받고 농장에서 교민들과 함께 노동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농사뿐만 아니라 어디서 익혔는지는 몰라도 목수 일, 미장이 일까지 못하는 일이 없었고, 솜씨도 대단해 모두가 감탄했다.

마포장은 여름 별장으로 쓰던 곳이라 바람이 심하고 추운 겨울을 지내기 쉽지 않았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방에서도 외투를 입어야할 정도였다. 이승만이 집 때문에 고생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실업인 30여 명이 모금을 하여 종로구 이화동 1번지 낙산 아래 저택 이화장을 구입했다. 이승만은 이화장에서 대한민국 초대 내각을 조각했고,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8월 18일 하지 장군의 관저로 사용되던 경무대(景武臺)로 거처를 옮겼다.

구멍 난 모자, 구겨진 국산 양복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과 더불어 경무대로 이사를 갔는데, 경무대에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었다. 이 대통령은 어려운 나라 살림을 감안하여 경무대 살림을 돌보는 직원을 두 명으로 줄였고 1층의 접견실과 사무실 2개, 2층의 침실 하나와 작은 식당, 거실을 제외하고는 폐쇄했다. 경무대의 농구 코트만한 연회장이 사용된 것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해 방한한 덜레스 미 국무장관을 위한 만찬 때뿐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손수 기운 양말을 즐겨 신었으며, 하오에나 저녁에는 틈만 나면 붓글씨 연습을 했는데, 꼭 새 종이가 아닌 신문지나 쓰고 난 봉투를 뒤집어 사용했다.

경무대 내실 근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대통령 내외는 나물 두 가지에 국 한 가지로 간소하게 식사를 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경무대에 있을 때 미장원에 가지 않았으며 옷도 시장에서 천을 사다가 비서와 함께 블라우스를 손수 만들어서 입었다. 옷이나 속내의, 양말 등은 닳아서 헤지면 꿰매서 입곤 했다. 어느 날 이 대통령이 프란체스카 여사가 겹겹이 꿰맨 내복을 들고 방재옥 씨에게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란다”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경무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몇 십 년 묵은 헌 중절모자와 구멍이 크게 뚫린 모자가 걸려 있었다. 이승만의 비서였던 박용만의 회고다.

‘우리네 서민 가정에서도 이런 따위의 고물 모자라면 벌써 엿장수한테 넘겼거나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물 모자가 몇 개씩이나 귀빈들이 출입하는 국가원수의 관저에 걸려 있다는 것은 퍽 조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이 고물 모자를 치워버리거나 없앨 수는 없었다. 대통령은 모자 하나를 몇 년이고 쓰다가 보기 흉해지면 버리지 않고 모아 놓았다가 등산할 때, 낚시할 때, 노동이나 운동을 할 때 이를 애용했다.’

건국 직후엔 우리나라 방직기술이 미숙해 국산 양복지의 품질이 형편없었다. 그래서 양복 입는 사람들은 마카오에서 수입한 영국제 복지로 양복을 해 입고 다녔다. 박용만이 소개하는 이승만의 양복에 대한 일화다.

‘어느 날 대통령은 새로 만든 양복을 입고 중앙청으로 나가려고 차에 올랐다. 대통령을 모시려고 나도 급히 차에 탔다. 중앙청에서 내려 대통령 뒤를 바짝 따라가다 보니, 대통령의 새 양복은 마구 구겨져서 주름 투성이였고, 양복천을 훑어보았더니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도 입지 않는 국산 양복을 대통령은 입고 계시다…. 대통령은 조잡하고 구겨진 국산 양복을 입고 있는데, 대통령의 가방을 들고 그 뒤를 따르는 나는 기름이 흐르는 고급 마카오 양복을 걸치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