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사도행전 11:25-26)


그리스도인(사도행전 11:25-26)

바나바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Χριστιανούς(크리스티아누스) /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1. 그리스도에게 배우는 사람
2.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
3.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안디옥교회는 두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
둘째는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들은 교회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이 신약 성경에서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사도행전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둘째는 사도행전 26: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셋째는 베드로전서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화)
한국의 선교 역사에는 수많은 신앙의 거인들이 있었다.
한국 초기 선교사로서 연동교회의 담임목사였던 게일은 자신이 만난 가장 위대한 신앙인으로 연동교회 초대장로였던 고찬익을 소개합니다.

고찬익은 원래 원산에서 게일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원산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였다.
가난한 신자들의 방 자리 밑에서 알 수 없는 돈이 나오고, 혹은 뜰에서 쌀자루가 발견되었다.
또 원산 거리에서 거지가 매우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했으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고찬익이 게일을 따라서 서울로 가게 되었고 그후에는 이런 이상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 사건들이 고찬익이 행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온 고찬익은 게일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서 연동교회에서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찬익이 하루는 20세 전후의 청년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나는 의식이 빈궁해서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고찬익은 “노동을 하면 먹을 것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양반 출신이어서 노동을 천하게 생각했다.
고찬익은 청년에게 “내일 아침 일찍 아침식사 전에 우리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고찬익은 집에 가서 지게와 수건을 둘씩 준비하고 아내에게 밥을 한 그릇 더 지으라고 했다.
다음날 청년이 약속시간에 고찬익의 집에 왔다.
고찬익은 청년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지게를 하나씩 지고 인근 선교사댁 건축 공사장에 가서 함께 종일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받은 노임을 그 청년에게 주었다.
고찬익은 청년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소중함까지 가르쳐주었다.

길선주 목사는 고찬익 장로를 “경성교회 기초사역에서 가장 유능한 전도자”라고 평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I am a Christian) 또는 나는 신자입니다(I am a believer)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This man is a Christian)"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내 주위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야! 라는 말을 들을만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에서 찾아야 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 "선지자" "왕"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제사장은 죄를 대신하여 자기의 생명을 내려놓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지자는 혼돈된 세상에서 진리를 위하여 가야 할 길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 적군을 대항하여 싸워서 이겨야 하는 사람입니다.
적군이란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만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파트리스교회 교인들이 비로서 뉴욕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왜냐하면 사람이란 "삶"의 주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예수를 믿는 내가 성경책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읽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비로서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7월 26일) 동서데이케어 사모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8월 2일부터 구은숙권사님께서 동서데이케어에서 네일 봉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사모님께서 재료비를 주시겠다고 하여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봉사는 권사님이 하실 것이며 재료비는 선교비에서 지출합니다.
재료를 구입한 금액이 $123이라고 합니다.
선교란 복음이 사람을 만나야 전달됩니다.
봉사자가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더구나 사모님의 경우 예전에는 교회에 출석하였으나 지금은 성당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에서 실망하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것이 복음이 아닐까요?
또 이런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유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시대적 흐름을 지켜볼 때 꼭 기억해야 할 것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비핵화"
둘째는 "인권 회복"

북한을 돕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북한에 국수 공장을 짓고 국수를 생산할 때 국수는 생산 후 3-4일이 지나면 변질되기 때문에 즉각 분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산하는대로 그 지역에 나눠줄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공장의 기계들을 모두 철거하면 교회당으로 사용하도록 계획하고 진행했습니다.
또한 비닐 하우스를 짓고 수경재배를 하는 기술자를 호주의 김은각집사님을 초청하여 사역을 맡겼는데 평신도이지만 모든 재료는 남한에서 가져와야 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으므로 결국 남한에서 북으로 모든 자재를 실어 운반하는데 북한의 실무진들은 남한의 재료들 비늴, 철재 골조와 같은 것이 남한 상표가 표기되었기에 처음에는 완강하게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만일 곡식을 주면 곡식을 팔아서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중국에 다시 팔아버리고 돈으로 환산할 뿐만 아니라 제공하는 것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해결할 과제가 비핵화와 인권 회복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때 그만큼 물자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교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불낙지교회에 대한 목표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만족을 얻지 못하여 교회를 옮기는 성장은 공동묘지에 무덤의 수가 늘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교회로부터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난 낙심한 영혼에게 주님의 치유가 임하여 교회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세상의 재미에 사로잡혀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지체하는 세상 풍조에 흔들리는 사람을 굳게 세워 교회를 찾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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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6 교회에 일년 간 모여 있어

바나바는 사울을 애써서 찾은 결과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안디옥으로 인도하였다. 그런 후 그들은 일년 간 교회에 함께 모여 있었다. 여기서 '간'으로 번역된 ‘흘론’은 ‘전체의', ‘온(whole)’이라는 뜻으로 그들이 일년 전부의 시간을 온전하게 함께하였음을 나타낸다. 이렇게 일정한 기간을 기록하는 것은 누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행 18 :11; 19:8, 10 ; 24:27 ; 28:30). 안디옥 교회에서 그들은 함께 머무르면서 교회의 지도자로서 큰 무리를 가르쳤다. 

이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무리를 가르쳤던 것은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제 막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신앙 교육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년이라는 시간을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부활, 승천, 보혜사 성령의 보내심, 현재의 일과 장래 일어날 일 등에 관한 여러 가지의 사실들과 그에 따른 의미들을 배웠을 것이다. 또한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방향을 설정하여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희생적인 봉사와 교육의 결과 안디옥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를 보냈으며(29~30절) 후에 이방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되었다. 실로 훌륭한 신앙의 지도자에 의한 지속적인 신앙 교육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안디욱 교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11: 26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안디옥에서 생겨났음을 보여 주며, 신약 성경에서 처음 등장함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 해당하는 ‘크리스티아누스’는 ‘크리스티아노스’의 복수형이다. ‘크리스티아노스’에서 접미사 ‘이아노스’는 ‘~에게 속한 자',  ~의 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복수형으로 쓰였으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 ‘그리스도의 종들’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추종자들이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일컬음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안디옥에 있던 제자들이다.

여기서 ‘제자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들은 '형제들’(행 1:16 ; 9:30), ‘구원받는 사람들’(행 2:47), '주의 도를 쫓는 사람들’(행 9:2), '성도들’(행 9:13), '믿는 사람들’(행 10:45)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에게 모든 희망을 두고 그리스도만을 최종 목표로 하고 따르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드디어 그들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새로운 명칭이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안디옥의 이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첫째, 유대인들일 가능성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메시야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분명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이 지어준 것은 아닐 것이다.

둘째, 제자들 스스로가 지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것도 가능성에 그칠 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들 사이에서 ‘제자들’ 혹은 ‘형제들’이라고 부르면서 서로가 그리스도인임을 확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안디옥의 불신자들일 가능성이다. 바로 이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고 늘 그에 대해서만 말을 하는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람들(the christ-people)이라는 뜻으로(F. F. Bruce), 그리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유대인들과 구별하기 위해(Robertson)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것이다. 이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 제자들은 그 이름을 기분 나빠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주변 유대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조롱과 야유의 의미로 불리워진 이 명칭이 후대에는 존귀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편,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는 안디옥의 이방인 신자들이 더 이상 어떤 유대교의 한 종파에 속한 사람들로 인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유대교와 구별되는 완전히 새로운 신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당시 로마 시저의 군인들을 시저인이라고 불렀고, 폼페이의 군인들을 폼페이인이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안디옥에 었던 신자들도 그런 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그리스도의 군인, 그리스도의 종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져 그들의 특징을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이러한 표현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정말로 그리스도의 군사로 전신갑주를 입었기 때문이다(엡 6:11-18). 신약에서 이 단어는 행 26:28과 벧전 4:16에 두 번 더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교회용어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헬라어로 '크리스티아노스' 곧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소유로서 그분을 믿고 구주로 고백한 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예수님의 제자', '기독교인', '성도', '하나님의 백성'을 말한다.

이처럼 거룩한 호칭인 '그리스도인'은 초대교회 당시 수리아 안디옥 교회 성도에게 처음 사용되었다(행11:26; 26:28). 즉,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1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 부른 것이다. 처음 그 호칭은 경멸의 뜻, 멸시의 뉘앙스로 사용되었다(행24:5).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할 때에 아그립바가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할 때도 분명 홀대의 호칭으로 사용하였다(행26:28).

그러나 이 호칭은 점차 영광스럽고 복된 이름으로 쓰이게 된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받는 성도를 향해 그리스도인으로 고난받는 것을 부끄러워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권면하면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얼마나 영광스런 것인지를 강조한 바 있다(벧전4:16).


 


말라기 1:1-5   이 시대의 거울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에는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일곱 가지로 말씀합니다. “어떻게”라는 부사를 관찰합니다.
1. 불평(1:2b),
2. 원망(1:6b),
3. 합리화(1:7),
4. 정당화(2:17),
5. 핑계(3:7),
6. 자기방어(3:8),
7. 자기 칭의(3:13)


    1.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책이다.후에 신약에 등장하는 세레요한은 구약의 사람이다.사실 말라기에서 요한 까지는 약 40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2.말라기 부터 요한의 때까지 400여년동안 성경이 기록되지 못한 것은 그 시대가 영적으로 어두웠기 때문이다.

  I.한 시대의 끝이 왔다.

   A.말라기 선지자에 대하여

    1.그는 파사나라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와 에언을 하였다.그의 전임 학개나 스가랴와는 약 100년의 기간이 경과한 후였다(주전432- 424사이).

    2.말라기의 활동은 구약의 시대를 마감하는 마무리 작업이었다.말라기는 변혁의 시대에 활동하던 에언자였다.

    3.어느 시대나 변혁기에 활동하는 지도자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옛 시대도 아니고 새 시대도 아닌 시기이면서 과거를 청산해야 하고 새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B.말라기의 멧세지.

    1.말라기선지자는 과거와 더불어 미래도 봐야만 했다.그래서 마태17:10절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는 말씀이 있다.여기서 엘리야란 말라기 3:1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에비할 것이요"의 '내 사자"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2.말라기 선지자는 엘리야의 심장을 가지고 오는 요한을 기다리면서 에언을 마쳤다.말라기는 과거만 본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입장을 보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그래서 우리가 이 시대를 보려면 말라기서를 보면될 것이다.

    3.말라기서에는 시대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지듯 나오는데 여기서 "어떻게"라는 말이 일곱번 나온다.

 II.마지막 시대의 일곱가지의 특징이 있다.

   1.쓴 원망(1:2하).
    1)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는 말은 감사의 말일까?원망의 말일까?이것은 원망의 소리였다.
    2)하나님의 사랑은 선택적 사랑이다.하나님이 에서와 야곱 중에서 하나를 선택 하시듯이 우리를 택하여 사랑하신다.

   2.큰 원망(1:6하).
    1)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 하였나이까?
    2)때로는 눈먼 짐승을 바  고,때로는 저는 것을 바쳤다.그럼에도 이들은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는 것이다.
    3)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돼이 일컫는 행위다.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웠다고 모두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다.

   3.거짓을 합리화(1:7).
    1)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2)자신들이 더러운 것,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단에 드렸음에도 주를 향하여 대항하는 것은 주님을 멸시함이요,자기행위를 합리화하는 행위다.

   4.자기정당성 주장(2:17).
    1)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
    2)말로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괴롭히는 행위다.
    3)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끝장이다.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원하는 우리는 자기 정당성을 포기해야 한다.

   5.핑계(3:7)
    1)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2)돌아가는데는 복잡한 방법과 절차가 필요없다.
    3)이유를 대고 핑게를 대는 것은 싫다는 말이요,않겠다는 말이다.

   6.자기방어(3:8)
    1)이들은 십일조를 도적질하였다.그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라고 하는 것이다.
    2)도적질은 다른 것이 아니다.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못햇거나 않았으면 그것이 도적질이다.

   7.자기 칭의 주장(3:13)
    1)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2)여기서 무슨말로의 뜻은 "어떻게'라는 말이다.이는 매우 완악한 말이다.

    결  론
    1.말라기 시대의 특징과 말라기서의 특징을 살펴 보았다.지금의 상황과 어떤가?비슷한 것이 많이 있는 것 같다.
    2.이 말씀은 에수님 탄생 400년전의 것만이 아니다.바로 오늘의 문제요,바로 나 자신의 문제다.
    3.주의 말씀 앞에서 잃었던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I'm a believer)

16개월 만에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에는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일곱 가지로 말씀합니다. “어떻게”라는 부사를 관찰합니다.
  1. 불평(1:2b), 2. 원망(1:6b), 3. 합리화(1:7), 4. 정당화(2:17),
   5. 핑계(3:7), 6. 자기방어(3:8), 7. 자기 칭의(3:13)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므로 “고통 하는 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딤후 3:1).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는 “영적 혼란(미혹, 거짓 선지자)” “자연적 징조(난리, 기근, 지진)” “도덕적 징조(불법)”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태 24:3∼14).
어려운 시기를 지내면서 마지막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세상을 이기는 믿음(요일 5:1∼5)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히 11:5∼6)
셋째, 영적 성장(고전 2:10∼16)
넷째, 상급을 받을 만한 충성된 삶(계 22:10∼12)
다섯째, 파수꾼의 사명(사 62:1∼7)
여섯째, 말씀으로 무장(벧후 1:19∼21)
어려운 고비를 잘 견디고 모두 건장한 모습으로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 그리고 마지막 시대를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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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1950. 6. 25-1953. 7. 27) 3년 1개월 2일


6.25전쟁은 북한의 남한 침공으로 시작됐습니다.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242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해 온 것이 그 시작입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2일 동안 벌어진 전쟁입니다. 
먼저 한국군 사망자 13만 8천 여명, 부상자 45만 여명, 실종자까지 모두 포함하면 60만 9천 여명,
북한군 사망자와 부상자 52만 여명, 실종자까지 모두 포함 80만 명,
유엔군 사망자 5만 8천 여명, 부상자 48만 여명, 실종자와 포로까지 포함하면 총 54만 6천 여명,
중공군 사망자 13만 6천 여명, 부상자 20만 8천 여명, 실종자와 포로, 비 전투 사상자까지 모두 포함 97만 3천 여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한국 전쟁은 그러나 군인보다 민간인 사망자가 더 많았던 전쟁으로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민간인 사망자 통계 살펴보겠습니다.

남한 민간인 사망자 24만 5천 여명, 학살된 민간인 13만 여명, 부상 23만 명, 납치 8만 5천 여명, 행방불명 30만 3천여 명으로 모두 100만 여명의 남한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 국방부와 군사 편찬 연구소의 자료입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유족회와 학자들은 학살된 한국인만 1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53년 북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북한 민간인 사망자는 28만 2천명, 실종자 79만 6천 명 입니다. 
이것은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의 1/5이 피해를 입었으며, 개인별로 보면 한 가족에 1명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은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남한의 경우 일반 공업 시설의 40%, 북한은 전력의 74%, 연료 공업 89%, 화학공업의 70%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의 위기


제1차 위기 / 1945년부터 1950년
이승만 : 남로당 박헌영

이승만의 승리

제2차 위기 / 6. 25 전쟁

전쟁 전 남파 간첩 성시백에 의하여 남한 사회 조직을 장악하였다.
국회 부의장, 국방부 장관 최병덕, 육군참모총장 신성모
언론, 돈, 장악

미군 철수 1949년 6월 30일

에치슨국무장관의 발언 : 한반도에는 관심이 없다.
에치슨 라인 발표

애치슨 라인 선언(Acheson line declaration, 애치슨 선언)
1950년 1월 12일에 발표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딘 애치슨에 의해 발표된 선언이다.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은 그 선언에서 발표된 미국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극동방위선을 의미한다.

1950년 1월 10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비밀회담에 참석한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이 타이완의 동쪽 즉, 일본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말하였다. 이틀 후(1월 12일), 외교위원장 톰 코널리는 이를 대외에 발표하였다.

애치슨은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열린 전미국신문기자협회에 참석하여 '아시아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면서, 스탈린마오쩌둥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동북아시아 방위선을 재확인하는 발언을 하였다. 태평양에서 미국의 지역방위선을 알류샨 열도 - 일본 - 오키나와 - 필리핀을 연결하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중화민국, 인도차이나 반도가 미국의 방위선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이 선언은 중화민국 정부가 국공내전으로 인하여 타이완으로 천도(국부천대)한 것에 대한 미국 조야의 충격을 반영한 것이다. 더욱이 한반도는 당시까지만해도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게 됐다는 것이 후일의 평가다.[2]

애치슨의 이같은 선언 이후, 대한민국의 임병직 외무부장관은 즉시 주한 미국대사인 존 무초를 불러 애치슨 선언의 진의를 해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장면 대사에게 훈령을 보내 애치슨 발언의 경위를 신속히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애치슨은 한국이 미국의 극동방위권에서 제외된 이유에 대해 한마디 회답도 보내주지 않았다.[3]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애치슨의 선언에 그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반도에서 소련군과 전쟁을 하면 심각한 피해가 있으므로 일본, 대만, 필리핀을 중심으로 전선을 형성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빌리그래함 목사"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긴급 전화를 연결하여 한국에는 기독교인 50만명이 있으므로 당장 미군을 파송하라고 압박하므로 긴급하게 미군이 파송되어 한반도에 자유가 유지될 수 있었다.

제3차 위기 / 2021년


청와대 장악
국회 장악
언론 및 공중파 장악
돈을 장악(삼성 이재용 감옥)







정교 분리 원칙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교회는 가장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고자 정치 투쟁을 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국가를 대신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이성적인 토론의 길로 그러한 투쟁에 들어서야 하며, 그 정신적인 힘을 다시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한 힘이 없으면, 언제나 희생을 요구하는 정의는 구현될 수도 없고 진보할 수도 없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교회가 아닌 정치를 통해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동선의 요구에 마음을 열고 의지를 불러일으키도록, 교회는 정의 증진을 위한 활동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 12. 25, 28항 중에서









정교분리(政敎分離)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정치와 종교, 제도론적으로는 국가(정부)와 종교단체(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교분리의 출발은 미국헌법이 만들어질 때 국교를 부인하는데서 시작된다.
정교분리는 자유의 원리이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용어 개념은 원래 미국 헌법 수정 1조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말로 처음 사용됨으로써 이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어 갔다.

하지만 서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교회 –국가의 분리라는 말보다 ‘정교분리’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정교분리란 추상적으로 국가는 국민의 세속적 , 현세적 생활에만 관여할 수 있고 내면적, 신앙적 생활은 국민의 자율에 맡겨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 내지 비종교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개념이 지닌 추상성 때문에 ‘정교분리’는 ‘정치의 종교에 대한 불간섭’이 아니라 ‘교회의 정치에 대한 불간섭’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개념(槪念)

정교분리란 정치와 종교, 국가와 교회 사원과의 분리의 원칙을 말하는데, 이것은 국가는 국민의 세속적(世俗的)· 현세적 생활에만 관여할 일이지 국민의 신앙적·내면적 생활에는 간섭해서는 안 된다.

즉 국가는 종교활동을 행하든가 특정의 종교단체를 지지해서는 안 되며 종교단체도 정치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정교분리의 근거에 대하여서는 대체로 정교 각각의 특질에서 당연히 도출(導出)된다고 하는 견해이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에게 현세적(現世的) 행복을 부여하는 것이나 종교의 목적은 국민에게 영적(靈的)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양자는 각자의 본질에 따라서 명확하게 구별되고 또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교관계는 정교 쌍방의 본질에서 곧장 추론(推論)되는 것과 같은 모범적 형태를 갖고 성립한 것은 아니다.
정교분리는 인류사(人類史)의 시작에서부터 행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종의 정교일치 또는 정교결합이 굉장히 오랜 기간 행해졌으나, 근대의 도래와 함께 거기에는 갖가기 약점이나 폐해가 있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류로 하여금 정교결합을 버리고 정교분리를 채용시켰다.

국가(바르게는 정부)가 갑이라는 종교를 국교(國敎)로 하는 정교결합제도를 취하면 을이라는 종교의 신도는 정부에 심복(心腹)하는 선량한 시민이 되기 어렵다. 정부도 이 신자에 대하여 억압적으로 되어 정치의 비민주화를 초래하게 된다. 이것은 종교적 부자유와 정치적 부자유와의 일체화를 나타내는 예이다. 또 갑이란 종교의 신자는 권력의 보호에 익숙해지므로 스스로 교만해져 종교의 생명인 사람을 구제하는 힘을 상실한다. 종교가 빠지는 타락 중에서 최대의 것은 그것이 권력자에게 의뢰하는 데서 생겨난 타락이다. 요컨대 정교결합은 특히 국내에 복수의 종교가 병존하는 경우, 정치와 종교와의 쌍방에 폐해를 끼친다. 이것은 구미(歐美)의 기독교사, 한국 고려조의 불교사, 조선조의 유교사가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같은 정교분리라 하더라도 그 내용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전형적으로는 미국프랑스의 정교분리에서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정교분리는 우호적 분리이나, 프랑스의 그것은 비우호적 분리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교관계의 우호성(友好性)은 예를 들면 독립선언에서 볼 수 있는 종교적 이상주의나 연방의회의 의사(議事)가 목사의 축도로써 시작되는 것 등에서 잘 나타나 있다. 미국은 종교에 대하여 우호적인 정교분리를 독립선언 11년 후에 만든 연방헌법(聯邦憲法, 1887)에 명문화 했다.

그 이유의 첫째는 당시 미국에는 종교나 교파(敎派)의 수가 많고 더욱이 그것들 중에 하나의 신도(信徒)를 갖고 전 국민의 과반수를 제압할 수 있는 유력한, 따라서 국교로서 정할 수 있는 유력한 종교·교파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이유는 헌법기초자(憲法起草者)가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의 단결의 강화에 최대의 관심을 갖고, 그 때문에 이 과제에 종교투쟁을 끌어넣어 문제의 혼란을 증대시키는 것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종교투쟁이 얼마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가를 그들은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었다. 또 혁명의 상대인 영국과 결부된 영국 국교회(英國國敎會)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정교분리를 낳게 했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의 정교분리는 공화주의(共和主義) 정권과 가톨릭 교회간의 장기간의 대립의 격화, 즉 양자의 싸움과 결별에 원인이 있다.

이런 공화정은 당연히 군주정 부활의 방지에 중대한 관심을 표시하여 온 데 반하여 프랑스 군주제는 수세기 동안 가톨릭, 따라서 바티칸 당국과 친밀히 결부되고 있었다. 또 가톨릭은 국민의 종교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공화파와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자의 대립은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과 얽혀서 격화하였으나 제3공화정 정부는 1905년에 정교분리법(영어:1905 French law on the Separation of the Churches and the State)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분리 후, 가톨릭이 소수자인 프로테스탄트와 미증유(未曾有)의 우호관계를 실현시키고 있고, 가톨릭 교회가 거의 전국민을 포함한 이름뿐의 교회에서, 소수의 생명력 넘치는 신도집단으로 된 것은 정교분리의 정당함을 증명하는 한 예로 간주된다.


정교분리는, 국가와 교회·사원이 절대적으로, 또는 완전히 분리되는 것까지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구체적인 인간생활이 단순히 내면적인 것도 아니고, 또 단순히 외면적인 것도 아니기에 당연한 것이다. 셸러(Max Scheler, 1874-1928, 독일의 철학자)는 인간의 내면적 생활과 외면적 생활과는 밀접한 공속성(共屬性)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 종교단체가 스스로의 입장에서 정치를 윤리화하고 정치에 생명을 부여하기 위하여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종교의 정치로부터의 절대적 초월을 주장하는 전세기적(前世紀的) 종교관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이 문제는 서독의 기독교민주동맹(CDU)이나 일본의 공명당과 같이 일정한 종교를 창당의 이념으로 하는 종교정당에 있어서 특히 중요하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거기에도 역시 타당하다. 즉 거기에서도 종교는 권력의 장악자(掌握者)나 널리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격의 내면을 통하여, 말하자면 간접적으로만 정치에 감화를 미치도록 작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정교분리에서 최소한도로 요청되는 것은 특정 종교단체가 자기의 이름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그 신도에게 명하는 것은 피하라는 것이다.

신도는 일체의 정당 선택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교분리의 원칙이 방해됨과 동시에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상의 열의(熱意)가 신앙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 정당에의 충성에 의하여 정해진다는 묘한 결과를 초래한다. 서독의 기독교민주동맹의 강령 전문(綱領前文)의 "하느님은 역사와 제국민과의 주(主)이고, 그리스도는 우리들 생활의 힘인 동시에 법이다"라는 생각은 좋다 하더라도, 1945년의 당대회에서 "우리 당은 이 신앙고백에 의하여 개개의 정책을 정하는 원칙적 지표(指標)가 주어져 있다"라고 말한 것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 그 이유는 그것은 신앙이 국민의 인격의 내면을 통하지 않고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요청하고 시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기독교민주동맹의 정책을 비판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을 뿐이고 정당 선택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서독내에서도 다음과 같은 비판이 있다. 즉 그리스도 교도는 다만 기독교민주동맹만이 아니라 독일사회민주당(獨逸社會民主黨, SPD)을 포함한 모든 정당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고, 또 모든 압력단체나 노동조합에서 활약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독교민주동맹은 신자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교의 자유'는 다른 시민적 자유와 상호관계(相互關係)의 운명에 있고, 정치의 민주화에 의하여 추진되는 것이나, 신교의 자유는 정교분리에 의하여서만 실현된다는 것을 부언(附言)할 필요가 있다. 정치와 종교가 결탁(結託)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국민의 신교 자유의 보장은 반드시 불충분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자유의 보장의 범위는 결탁의 정도에 반비례한다. 신교의 자유를 목적으로 하면 그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은 정교분리이다.

그러나 정교분리는 신교의 자유에 봉사하는 수단이라고 하여 목적인 신교의 자유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목적을 실현하는 구체적 수단이 그 목적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 없이는 목적은 언제까지나 단순한 추상적 관념(抽象的觀念)으로서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신교의 자유는 정교분리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원칙에도 예외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영국국교회(Anglican Church)가 국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국민 일반은 현재 충분한 신교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헤랄드 라스키(Harold Joseph Laski, 1893-1950, 영국의 정치학자·사회주의자)

태가 원활히 거기까지 진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17세기의 엄격한 종교적·정치적 체험, 18-9세기에 있어서의 비국교도(非國敎徒) 중심의 관용(寬容)을 목표로 하는 싸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종교적 관용이란 각 개인이나 각 종교단체가 각자의 확신이나 신앙을 상호 승인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J. S. 밀
은 『자유론』에서 종교적 관용은 신교의 자유만이 아니라 다른 시민적 자유를 영국인에게 부여했다고 하였다.
요컨대 종교적 관용과 갖가지 시민적 자유가 고도로 발달한 영국에서조차도 국교제도 밑에서 신교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장기간의 고투(苦鬪)가 필요하였다.











파키스탄 선교회




TOP 10 미전도종족 국가들 소개

  • 인도(2,444 미전도종족): 가장 많은 신과 함께 사는 나라
  • 파키스탄(501 미전도종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의 끝없는 전쟁
  • 중국(445 미전도종족): 공산주의가 막고 있는 종족 개척
  • 방글라데시(301 미전도종족): 남아시아 이슬람권의 또다른 장벽
  • 네팔(275 미전도종족): 힌두국가를 고집하는 산악 민족들
  • 인도네시아(235 미전도종족): 현대화속에서도 이슬람 수호에 목매는 이들
  • 수단(130 미전도종족): 인종청소의 오명을 쓴 이슬람 정권의 퇴보
  • 러시아(117 미전도종족): 공산주의 망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 라오스(109 미전도종족): 순수하지만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
  • 이란(84 미전도종족):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 면모를 보여주는 나라


  • Post published:June 14, 2020

TOP 10 미전도종족 국가들 소개

  • 인도(2,444 미전도종족): 가장 많은 신과 함께 사는 나라
  • 파키스탄(501 미전도종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의 끝없는 전쟁
  • 중국(445 미전도종족): 공산주의가 막고 있는 종족 개척
  • 방글라데시(301 미전도종족): 남아시아 이슬람권의 또다른 장벽
  • 네팔(275 미전도종족): 힌두국가를 고집하는 산악 민족들
  • 인도네시아(235 미전도종족): 현대화속에서도 이슬람 수호에 목매는 이들
  • 수단(130 미전도종족): 인종청소의 오명을 쓴 이슬람 정권의 퇴보
  • 러시아(117 미전도종족): 공산주의 망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 라오스(109 미전도종족): 순수하지만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
  • 이란(84 미전도종족):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 면모를 보여주는 나라

무슬림들이 모여 만든 파키스탄

인구가 미국의 60%에 불과한 파키스탄은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진 국가이다. 전 세계 무슬림의 10% 이상이 파키스탄에 살고 있다. 2억명의 인구 중 96.28%가 무슬림이다. 

파키스탄에는 많은 수의 미전도종족이 살고 있지만 사실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에 가려져 있고 선교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되어 소수의 선교활동만이 이루어 지고 있다. 전도자도 부족하고 교회 성장도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신 ‘돌밭’ 같은 땅이 파키스탄일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영혼들도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희어져 추수하게 될’ 추수밭이다. 주님께서 보내시는 일꾼들은 이 밭에 가서 성실히 섬기고 일하여 영혼들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은 모든 선교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그랬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미전도종족이 살고 있다. 그럼 어떻게 이 땅을 위해 선교적 접근을 해야할 것이며 기도해야 할까?

이슬람을 위해 세워진 유일한 국가

공식적으로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알려진 파키스탄은 인도(동쪽), 아프가니스탄(서쪽),이란(남서쪽), 중국(북동쪽)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이다. 

파키스탄은 영국 식민지 당시 인도등과 같은 인도 대륙국가였지만 이슬람때문에 이곳으로 이주하여 만들어진 국가이다.그리고 고대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유산과 힌두교, 불교와 같은 고대 종교의 전통에 뿌리를 둔 문화를 가졌지만 지난 수백 년 동안 이슬람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전통에 의하면 주후5 세기경에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파키스탄의 탁실라 (Takshashila)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당시에 세워진 교회의 유적은 없다. 지금 남아있는 교회들은 15세기 식민지 확장 시대에  들어와 사역하던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서구교회 스타일을 따른 교회만 남아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에 있는 교회는 개인적인 회심에 의해 모인 공동체라기 보다는 특정 카스트와 인종에 의해서 구분된다고 할 수가 있는데 기독교인들의 상당수가 19세기, 20 세기 인도에서 있었던 대규모 선교 운동 기간동안 개종한 천민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 그리고 또다른 부류는 펀잡 지방의 펀잡인들이 주를 이루는 펀잡 교회인데 그들은 파키스탄 교회라고 부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펀잡인들의 교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파키스탄 교회와 성도들의 실정

파키스탄의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은 지난 70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인도와의 지속적인 충돌, 오랜 군사정부 통치, 이슬람의 급진화, 신성 모독법의 악용등으로 파키스탄은 점점 선교가 어려워졌다. 그중에서 신성모독법의 악용은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아시아 비비 (Asia Bibi)’로 알려진 아시아 노린 (Asia Noreen) 사건이다.

신성모독법은 1885 년 영국이 처음 도입한 법이지만 1927년에 개정이 되었다. 처음 영국이 이 법을 도입한 의도는 각 종교간의 증오범죄를 막기위한 것이었는데 인도와 분리 독립한 이후 이것은 이슬람 샤리아법을 정착시키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살해를 당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할 정도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하는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개인 경비원에 의해 살해 된 펀잡 주지사 살만 태저(Salman Taseer)와 Tehrik-e-Taliban에 의해 암살된 소수민족 장관이었던 샤바 즈 바티 (Cshahbaz Bhatti)가 있다. 

파키스탄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와 소외는 심각하다. 파키스탄 기독교인의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으며 극도로 가난하다. 천민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만 해도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탈출의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도 그들은 철저히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부나 법은 모든 파키스탄인의 동등한 권리와 지위를 약속하지만 실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나라에 살면서도 불안하고 외국인처럼 살아야만 한다. 그들은 2등시민 상태로 주저 앉았다.

경제적 상황도 심각하다.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가 경제적으로 상승할 수 있도록 교육과 프로젝트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약 25 %만이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고 있고 나머지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더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위치로 만들려면 이런 기독교인들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성들도 가부장제와 사회 문화적 제약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교회내에서는 여성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여성의 역할을 드러내고 있지만 지도자의 위치나 사역자로서 안수받는 것은 아직도 닫혀 있다. 그것은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선교적 가능성의 문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 기독교인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교회에서 성도들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려고 교육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눈에띄는 결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다양한 계층과 종족에게 확산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기독교가 하층민, 가난한 자들의 종교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선교적 도전

전술한대로 파키스탄은 고대 인더스 문명뿐만 아니라 힌두교, 불교, 이슬람이라는 주요 종교의 영향을 받은 나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적인 것에 익숙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신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담대히 접근하여 토론을 하거나 종교적 대화를 하기 보다는 고립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 또는 적대감이 기독교인들 스스로를 막는 담이 되어 버렸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길이 장기적으로 파키스탄 선교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파키스탄 기독교인들에게 선교적 의식을 가르치고 그들이 자국민을 선교하는 선교사라는 사명감을 갖도록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슬림과의 종교적 대화에 당당히 응할 수 있는 지식적 훈련도 필요하다. 그런 기회가 있어도 혼합주의나 자기 스스로가 타종교에 물들지 않을까 염려함으로 스스로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종교적 벽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해야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는 것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선교에서 또다른 어려움은 빈부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기독교인의 대다수는 여전히 하층민으로 남아 있으며,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데 한계를 갖고 있다. 대부분은 일일 노동자로 살아 가면서 쉬는 날이 없이 일을 해야한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중 상당수가 ‘달러 미션(dollar missions)’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서구 교회들이 가난한 교회 사역자나 기독교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선교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어서 선교적인 열매를 거두는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경제적 의존성만 키우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한 현지인 사역자는 ‘선교 전략과 계획은 주로 서구에서 개발하고 파키스탄은 그것을 수입해서 시행하는 기지가 되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자국민 지도자들이 개발되고 훈련되지 않으니 자립적인 사고는 점점 더 할 수가 없고 서구에 종속된 사역만 하는 교회로 전락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구호, 의료 프로그램, 교육, 여성 프로젝트, 청소년 프로젝트같은 것들로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사랑을 전한다. 물론 그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파키스탄 교회는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가난한 하층민 뿐만 아니라 사회 지도층, 경제적인 부유층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사역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그것은 파키스탄 교회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어쩌면 한국교회같은 외부 교회가 도울 수 있는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교회 사역자나 기독교인중 상당수가 ‘달러 미션(dollar missions)’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즉 서구 교회들이 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선교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어서 선교적인 열매를 거두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의존적인 기독교인들을 만들어 스스로 자국민 선교를 하겠다는 의지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있다.

파키스탄 선교를 위한 기도

탈레반이 이끄는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이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인등 비무슬림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할 뿐만 아니라 시아파 무슬림이나 소수종족까지도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로인해 국가적인 분열을 극대화시켰고 불안정한 국가라는 오명을 쓰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경제 발전을 저해하여 수백만의 빈곤층을 만드는 결과를 나았다. 

북서부 Swat Valley에서는 반군이 마을과 학교들을 공격해 수천명의 희생자들을 낳았다.  무장 세력은 이 지역을 통제하며 정부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있고 그로인해 이동이 어렵고 선교활동 자체가 진행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강력한 샤리아법을 시행하기로 해 기독교인은 물론 무슬림이 아닌 소수 종족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무장세력들은 이러한 예를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하려고 한다. 결국 근본주의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국민가적인 불안을 조성하고 있고 선한 사업들까지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이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에서 또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학교이다. 이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정규교육을 거부하고 여자 아이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로인해 일부 지역의 학교들이 습격을 받고 폐쇄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무장단체들은 전국에 이슬람 학교(madrasas)를 세워 공교육보다는 쿠란을 암송하거나 이슬람 교육만 하는 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는 장기적으로 차세대 근본주의 무장세력들을 동원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20,000여개로 추정)  

이러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탄압당하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정부가 통찰력을 갖고 이런 세력들을 상대할 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국가 전반에 퍼져있는 이슬람 이외의 종교인들에게 대한 차별과 핍박 문제도 기도해야 할 중요한 제목이다. 1980년대부터 이슬람화된 정책을 추구하면서 비무슬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빈부격차와 갈등을 확산시켰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공무원이 될 수 없고, 교육의 기회나 고용의 혜택에서도 불이익을 당했다. 그러면서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으로 다시 개종을 하면 경제적, 사회적 혜택을 베푸는 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이슬람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국가적인 사업이나 공공연한 정책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악명 높은 신성 모독법은 무함마드를 모독한 사람에게는 사형을, 꾸란을 훼손한 사람에게는 무기징역을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극단주의자들이 무고한 기독교인들을 이 법에 엮어 핍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지속적인 핍박도 계속되고 있다. 예배중인 교회당을 파괴하거나 성도들을 구타, 살해, 유괴, 강간등의 범죄를 저지르며 개종을 강요하기도 한다. 경찰도 이런 범죄들을 알면서도 대부분 이런 과격파들에게 매수되거나 연루되어 정당한 법집행을 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법을 무색하게 하는 폭력적인 사회 구조때문에 기독교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그리스도인들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국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핍박과 학대속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끝까지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2020년 7월 25일에는 총선거가 치러진다. 기독교인 가운데 출마자는 없지만 여성(60석)과 소수종족(10명)에게 배정된 의석 가운데 약간이 그리스도인에게 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은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파키스탄을 더욱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공화국이다. 



파키스탄 선교연구의 출발점으로서
첫째 인도대륙의 이슬람 전개와 이슬람 통치를 개관하고자 한다.
둘째로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형성과정을 검토한다.
셋째로 파키스탄 정부의 권력갈등 구조를 이해하고자 한다.
넷째로 파키스탄의 종교들을 간략하게나마 검토한다.
다섯째, 파키스탄의 한국선교사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1.인도대륙의 이슬람 전개와 이슬람 통치

인도대륙의 이슬람 도래는 주로 두 가지 길을 통하여 전개되었다.
하나는 주후 712년경부터 이라크에서부터 동남으로 해안을 거쳐 상인들을 중심으로 들어왔다.
초기에는 평화로운 접근으로 힌두교인과 공존을 하였던 것 같다.
아나마리 쉠밀은 그의 책[인도대륙의 이슬람교]에서 까씸 장군은 그의 인도대륙 점령시기에 힌두교인의 사원을 그냥 두었다고 하였다. 아랍 상인들은 힌두교인들과 함께 인도 남부 해안에 평화롭게 정착하였다고 했다.
다른 길은 주후 1000년경부터 중앙 아시아의 북서쪽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캐시미르 가까이 있는 카이바르 고원지대를 통한 것이었다.1)

이 시기에 지하드 정신에 따라 가즈니 지역의 마하무드 왕은 북쪽 푼잡지대를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1750년경에는 인도대륙은 전적으로 이슬람 통치 아래 있게 되었다. 모걸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명목뿐이었지만 1857년까지 왕좌를 지키었다. 그러므로 8세기에서 19세기까지 긴 기간 동안 인도 대륙에서 이슬람 세력은 찬란한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증가하였다.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할 때 인도대륙의 무슬림 교세는 전체 인구의 25%을 차지하였다 한다. 무슬림은 힌두인과 한 지역에 공존하면서 각각 다른 문화 발전을 이루었고 때로는 평화공존으로 또 때로는 억압된 폭력의 표출로 희생자들을 치르며 지내왔다.

인도대륙에서의 이슬람의 위치와 파키스탄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무슬림 지도층의 서로 다른 두 가지태도로 인한 갈등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이 갈등은 세속주의와 정통주의와의 마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하나의 태도는 안정을 우선 순위에 둔 세속적 정책과 다른 하나는 이슬람적 주장을 한 이슬람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다른 태도는 갈등과 진통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면 모걸제국의 아크바르 황제는 인도대륙에서 힌두교,불교와 함께 공존을 위한 혼합주의적 국가종교를 시도하였다. 그 반대로 모걸제국의 아루방제브 황제는 순니파의 하나피 학파의 전통적 입장을 그의 정치에 적용하는 강력한 이슬람 주장을 하였다. 아루랑제브 황제 이후 사실상 인도대륙의 이슬람 통치는 쇠퇴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우랑제브 이후 인도대륙은 서구의 세력에 따르게 되었고 1847년 영국은 인도대륙을 전적으로 통치하게 되었다. 무슬림들은 영국통치하에서 가난과 굴욕을 치르었다. 무슬림들은 이 시기에 드릉의 우루드어 사용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소수의 지식층은 영어를 모어처럼 사용하게 되었다. 무슬림 언어인 우르드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은 무슬림들에게 무슬림 정체성의 포기와 같이 느껴졌었다. 우르드어는 아랍어 다음으로 2억이 넘는 무슬림들이 쓰는 문학어인데,식민정치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우르드어는 모걸제국의 쇠퇴시기에 하나의 이슬람 개혁운동이 새왈리 알라에 의하여 전개되었다. 그는 이슬람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대폭적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 대표적 제스처는 코란의 우르드어 번역이다. 이 개혁주의 동향은 알라가대학교에서 영어교육과 서구 학문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우르드어를 가르치는 교육을 통하여 지속되었다. 이에 서구 학문의 도입에 반대하여 엄격한 울라마를 배출하는 무슬림 신학교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2세기 인도대륙의 이슬람은 세속주의와 정통주의가 갈등을 가지게 되었다. 세속주의는 파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인 무함마드 지나에 의하여 지속되었고 정통주의는 다수의 올라마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2. 파키스탄 형성
파키스탄 형성배경에는 주로 세속주의를 주장한 알라가대학교에서 서구학문을 한 사이어드 아하마드 계보의 세력이 핵심을 이루었다. 사이어드 아하마드(1817-1898)는 전통적인 무슬림 가정에서 성장하여 판사의 신분을 누리면서 서구의 학문과 이슬람교의 "샤리아"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 실현을 위하여 알라가대학교를 설립하였고 영국대학을 모델로 하면서 아랍어,우루드어와 이슬람교를 필수과목으로 정하였다. 그는 서구학문을 도입하면서 동시에 무슬림학자들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 다음으로 파키스탄 형성에 크게 공헌한 인물로는 무함마드 익끄발(1873-1938)이 있다. 그는 시인으로서 우르드어로 시를 썼으며 그는 자기 생전에 보지 못한 파키스탄 형성을 꿈꾸면서 시를 썼고 인도대륙의 무슬림들을 일깨웠다. 그는 퍼탄 지역,푼잡 지역, 즐로찌스탄 지역,씬드 지역이 하나의 국가로 연합되기를 꿈꾸었고 궁극적으로 무슬림들은 인도대륙에서 분리 독립되어 하나의 국가로서 무슬림 정체를 표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세속주의자들 이외에도 파키스탄 형성 배경에는 파키스탄 분리 독립운동을 제원한 무슬림인 소수의 울라마들이 있었다.

파키스탄이라는 새로운 국가형성을 주장한 이들은 다양한 동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동기들을 요약해 보면 첫째 인도대륙에서 무슬림이 소수 공동체로 존속할 경우 힌두교인의 경제적 및 정치적 지배를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둘째 무슬림들은 힌두교가 강제로 무슬림을 개종하게 하여 힌두교의 계층 밖의 사람들과 같이 억합할 것을 우려하였다. 셋째로 무슬림들은 우르드어를 전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분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무슬림 정체를 위하여 힌두교의 언어인 힌디어 대신에 우르드어 사용이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넷째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세속주의이거나 정통주의이거나 무슬림들은 다 이슬람의 정체가 무슬림이 절대 다수를 이루는 독립국가 안에서만 표현될 수 있다고 믿었던 데 있다.

무함마드 익끄발의 예언을 옮긴이는 무함마드 지나(1876-1948)였다. 이들의 사상적 교량은 우르드였고 이 언어 사용은 모든 무슬림들을 단합시키고 교육시키는데 절대적 역할을 하였다. 무함마드 지나는 파키스탄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지나는 1940년 이슬람연맹(Muslim League)정당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의 취임사에서 파키스탄이라는 이슬람 국가 형성을 암시하였다. 그는 무슬림과 힌두교인이 서로 같은지역에 있으나 서로 이질적 가치관과 문화 속에 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구 종교인들은 같은 도시와 같은 농촌에 살지만 서로 같은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같은 상에서 음식을 먹지 않으며 결혼도 같은 종교권에서만 한다.이름으로도 무슬림과 힌두교인은 구별된다. 장례에서도 힌두교인은 화장을 하고, 무슬림들은 시신을 무덤에 묻는다.

영국이 인도대륙의 독립을 선언하자 힌두교인과 무슬림간에 충돌이 심화되었고 힌두교 지도자들은 간디를 위시하여 힌두교를 부흥시키려 하였다. 힌디어를 인도대륙의 언어로 정하며 힌두 문화화하려고 하였다. 무슬림들의 저항과 독립투쟁은 분명해졌다. 무슬림들은 다수 공동체가 아닌 소수 공동체의 열등감 사회적 차별은 이슬람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종내는 이슬람공화국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파키스탄은 1947년 8월 15일 1억4천4백만의 인구를 가진 이슬람 공화국이 지나의 지도력으로 힌두교의 인도대륙에서 신생국가로 탄생하였다. 당시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방들라데시)으로 구분되었고 지리적으로 인도를 가운데 둔 두 지역으로 형성되었다. 1971년에는 내란과 3회에 걸친 인도와의 전재으로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하였다.

파키스탄은 선교지리학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나라이다. 북으로는 중국을 경계로 하고 있고 옛 비단길이 통하는 곳이며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 있다. 8125미터의 낭가-파르바드는 세게에서 가장 높은 아름다운 산맥이며 세계 등반가들의 꿈의 지역이다. 서 북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이 있고 이 지역을 통하여 초기 이슬람 접촉과 전개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험한 산악지대로 퍼탄 사람들이 주로 정착하고 있으며 이들은 현재도 자치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곳은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며 동북쪽으로는 푼잡지역이다. 인도와의 경계선 때문에 인도와의 분쟁에서 희생자들이 많았던 곳이다. 아열대지역이므로 농사를 많이 짓고 파키스탄에서는 기후조건이 가장 좋은 곳이므로 교육도시들이 발달하였고 인구도 가장 밀접하여 있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몰려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서남쪽으로는 이란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불로찌스탄으로 알려진 이 지역은 가장 살기 어려운 지역으로서 사막과 고지가 섞여 있으며 인구분포가 다른 지역보다 낮다. 동남지역은 씬드지역인데 인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인더스 강이 바다로 흐르는 지역으로서 사막이지만 강변은 비옥하고 과수와 목장이 아름답다.운하시설이 잘 되어서 목축뿐만 아니라 농사도 지을 수 있다. 씬드사람들은 북쪽 퍼탄과 푼잡 사람들과는 달리 여유가 있고 동작이 느리고 피부가 덜 까맣다. 그들은 느릿한 몸짓으로 살아간다. 이 지역에는 문명 발상지인 모헨조다로가 있고 기독교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다. 그리고 유일한 항구 카라치가 있다. 씬드는 필자의 선교지였다.

3. 파키스탄정부

1) 1947-1971:
1947년 이후 거의 25년간 파키스탄은 새 정부 정비, 난민문제,카쉬미르 문제들로 긍긍하였다. 새 정부는 지나 대통령과 아윱 칸 대통령 그리고 즐르휘카르 알리 부토의 집권을 통하여 헌법재정과 개정으로 진통을 겪으면서 이슬람요소들을 강조하는 공통점을 유지하였다. 새 정부는 세속주의와 정통주의의 갈등은 해소되지 못한 채 동파키스탄의 결별시기까지 지속되었다.

2) 1971-1977:
부토 정권은 사회주의로 평가되었었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요소가 강화된 때다. 그는 모든 기독교 교육기관들을 국유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기독교인들을 탄압하였다. 교육기관에 아랍어는 필수과목으로 설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반대 정당들은 그를 이슬람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집권자라고 비판을 하였고 부터 정권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아하미디아파를 비이슬람공동체로 선포하였고 음주금지,도박과 경마 금지, 나이트 클럽의 금지를 선포하였다.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부토정권의 반대파들은 연합정당을 만들어서 Pakistan National Alliance(PNA)라고 칭하였고 이 PNA는 부토의 정당, Pakistan People's Party(PPP)와 심각한 대립세력이 되었다. 1977년 총선거에서 부토는 부정선거 고발로 인하여 실권하였고 갈등 끝에 투옥되고 처형되었다.

3) 1977-1988 :
1977년 7월 5일 지아 올 학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권교체에 성공하였다. 그의 정당의 주 세력은 즈마엇대 이슬람이었고 이것은 "샤리아"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였다. 예를 들면 후드드가 강조되었다. 절도범은 오른 손목이 절단되는 책벌을 받는 것이었다. 폭행을 자행하지 않은 고속도로의 약탈은 30대의 태형이 주어졌다. 간음죄는 기혼자일 경우는 돌로 쳐 죽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100대의 태형, 거짓비방은 80대의 태령,음주는 80대의 태형을 책벌로 정한것이다. 지아 올 학그 정권은 부토정권 때보다 강한 이슬람화, 원리주의에 근거한 이슬람화를 목표로 하였다. 이슬람의 다섯기둥은 정부 관리들에게 필수적이었다.

4) 1988- 현재
1988년 12월 즐르휘카르 부토수상의 딸, 베나지느 부토가 정권을 잡았고 여성으로서 파키스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 후 1990년 8월까지 집권하였고 실권의 3년을 반대 정당 Pakistan Muslim League(PML)지도자 주네조 집권하에 지냈으며,다시 1993년 10월 PPP정권을 회복하여다. 베나지르 부토 정권은 그의 부친의 정책과는 달리 모든 교육기관과 기업체들을 국유화했던 정책을 자유자제로 변경하였다.(Nationalization/den-ation-alization).그 밖에도 여성의 인권을 위한 꾸준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부토수상은 이미 1971년 여성정치가의 꿈을 가지고 무슬림 여권선언서를 발표한 바 있었다.2) 위의 4시기를 통하여 본 파키스탄 정부는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하면서 공통적으로 이슬람 부흥을 목적으로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 이슬람화가 성공인가 아니면 실패인가라는 많은 파키스탄 지성인들의 고민이되고 있다. 그들은 종족간의 내란과 방글라데시의 분리 독립과 파키스탄의 다른 종교인들,특히 기독교인들과 힌두교인들의 불안을 목격하면서 이슬람화의 의미를 묻는다고 본다. 특히 지아 울 학그 정권은 파키스탄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이슬람화를 강조하였고 이것은 실패로 나타났다.3) 국가와 민족간의 차이가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170이상의 종족들로 구성되었고 그중 가장 큰 종족들이 자기들의 지역어와 문화를 지키면서 파키스탄 국가 안에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 형성 이후 인도와의 3회에 걸친 전쟁과 불안한 정부의 교체와 군 계엄령 정치, 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권위와 군력의 행사는 파키스탄의 불안한 정세를 더해 주었고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되었다.

4. 파키스탄의 종교들
파키스탄은 이슬람 공화국으로 '샤리아'에 근거하여 이슬람화 정치를 시도해왔다. 1977년 이후 지금까지 강한 극단적 이슬람 정당에 크게 좌우되어 왔다. 점진적으로 '샤리아'법이 헌법의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파키스탄의 다른 종교인들이 박해와 억압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초기 파키스탄 형성 때의 지나 정권과 아윱 칸 정권 때와는 달리 상당히 심각한 상황을 빚어주고 있다. UN 의 공식 멤버로서 파키스탄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공식적으로는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파키스탄 다수의 울리마에 의하면 배교자는 죽음의 처벌을 받게 되어 있고 코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모독도 죽음의 벌을 받게 된다. 실제 지난 1994년 14세의 살라마트 마시와 44세의 래해마트 마시는 여론과 탄원으로 간신히 석방되었으나 본토에 있지 못하고 독일에 망명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4)

1) 이슬람
파키스탄 인구는 1990년 122,666,000, 1995년은 141,599,000이다.5) 그중 이슬람은 96.7%의 교세를 가지고 있고 순니가 67.6%,쉬아가 26.1%(이스마일리도 포함함),아하미디아는 공식발표는 0.13% 그러나 비공식 자료에는 3%(줄르휘카르 부토정권 시기에 아하미디아는 비무슬림으로 선포되었다)이다. 아하미디아는 정부 보도에서는 무슬림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다른 소수 종교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박해와 억압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들은 비밀리에 자기들의 소속을 지키고 있다.

2) 힌두교
힌두교인은 1.5%이다.이들은 주로 씬드 사막지역의 계층 밖의 천민으로 바스띠를 이루고 산다. 주로 유랑민들로 인더스 강가를 따라 목축을 하며, 더러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다. 거의 100% 문맹이다. 이들은 꼴리,아오와리,바그리,오드,다트키로 전적으로 미전도종족이다. 북 푼잡 지역에서는 쭈르하가 복음화되어 현재 기독교 교세를 형성한 사례 이외에 아직도 힌두교 계층 밖에 종족들은 문맹, 가난, 소외의 상황에 있다.

3) 기타종교
전체 인구의 0.1%로 정령숭배,바하이,조로아스터교,불교를 들수 있다.

4) 기독교
기독교 교세는 1.7%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2.-3%까지 된다고 한다. 기독교 전개는 개신교 선교로서는 1833년부터이다.가톨릭교회와 선교는 별도로 깊이 있게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제목이다. 개신교 선교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 로우리 목사와 사모가 캘커타에 도착하여 푼잡 지역에 있는 씨크교도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다. 로우리 부인은 병으로 선교지에서 세상을 떠났고 로우리 선교사도 말라리아로 시달리다가 귀국하여 장로교 해외선교부를 조직하였다. 1849년부터는 찰스 포먼과 존 뉴톤이 본격적으로 푼잡지역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성공회 대표선교부(CMS)가 씬드지역에,감리교가 카라치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후 대부분의 교단들이 들어와 활동을 하였다. 의료선교,기독교 변론선교 등을 시도하였지만 교회개척은 극히 어려웠고 초기에는 교인수가 극히 적었다. 그러나 1890년에서 1930년에는 힌두교의 쭈르하 종족이 거의 전부 집단 개종을 하여 현재 파키스탄 교세의 80%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6) 쭈르하 계층의 개종이야기는 [파키스탄,나의 사랑]에서 이야기로 소개되었다.7) 파키스탄 교회에 관하여 도시교회,농촌교회,변두리교회에 관하여 이야기를 이미 소개해 놓은 것이 있다.8)

교단교회는 51개에서 2,883개의 교회들이 있다.9) 개신교 선교사들은 72선교부에서 736명이 파송되어 있다.대표적인 국제 선교부는 Interserve,TEAM, CMS,SIM,OM등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아직도 서구 선교사들이며,10%미만의 아시아 선교사들이 80년대 후반부터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맺는 말
파키스탄에서 한국교회의 파송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한지 35년이 되었다.
이제 파키스탄 선교활동을 전반적으로 보고하고 후원하는 협력기구와 연구차원의 직업이 필요하다.
한국선교사들이 이슬람권 상황에 맞는 선교이론과 실제를 펴 나가기 위하여 체계적인 후원과 훈련이 요구된다.
지금까지는 선교사들 자체 내에서 친교정도 이외는 함께 선교정책을 의논 검토하고 선교활동을 평가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분산되어 사역에 전념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키스탄 선교사들은 1994년 7월부터 파키스탄 연구회라는 친교및 협력을 위한 모임을 가지고 서로 소식을 나누고 있다.
국내에서 파키스탄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는 선교부와 관련자들이 함께 모여 장기적 선교사역에 대한 비전과 지난 날의 선교활동을 평가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요구된다.
오늘과 내일의 파키스탄 한국선교사들을 위하여 파키스탄 선교의 실제를 보여주는 자료집이 발간되어야 한다.

최근에 파키스탄 선교에 관심 있고 이슬람권 선교를 중요시하는 교회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이 뜻을 합하여 CCC. 파키스탄기도회, 이슬람연구소 등 선한사마리아선교회를 설치하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선교회는 다음과 같은 사역 목표를 두게 되기를 바란다.

첫째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권에 파송된 한국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연구와 후원 및 협력을 하는 것이다.
둘째, 파키스탄 교회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선교정책을 세우는 것이다.
셋째 이슬람권 선교사들의 평생선교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넷째 국내 이슬람권 관련자들과 만나고 함께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다.
다섯째 이슬람권 선교사들을 위한 선교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요엘(야훼는 하느님이시다, 야훼는 나의 하느님)

요엘서는 어떤 성서인가요?

  • 심판의 예언
  • 회개의 촉구
  • 구원의 약속


요엘서는 다른 선지서와 달리 기록시기를 추측할 수 있는 구절이 없다.
대개 1절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가 기록된다.
그러나 요엘서는 그것이 없다.

학자들은 그가 요아스(주전 830년) 혹은 웃시야 왕(주전 750년) 때 활동했던 선지자로 추측하고 있다.

요엘 선지자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에언한 요엘서의 내용과 주제는 스바냐서와 비슷한 점이 있다.
두 책 모두 심판에 대한 예언, 회개의 촉구, 구원의 약속이라는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사실 모든 선지서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주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것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날을 ‘여호와의 날(1:15, 2:1, 2, 10, 11, 30, 31, 3:14~16)’이라고 표현했다.

이 날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1:15 “오호라 그 날이요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2: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2: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2:11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2: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2: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2:27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3:16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심판의 예언(세가지 여호와의 날에 대한 환상)

여호와의 날(the days of the Lord)에 대한 세 개의 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요엘 선지자는 역사의 세 개의 큰 봉오리를 바라 본 것이다.

첫번째 봉오리는 시간적으로 가장 먼저 일어날 일이다. 그것은 메뚜기의 환상이다.

두번째는 메뚜기의 환상을 통해 바라본 이방군대의 침입이다.

세번째는 그 보다 훨씬 먼 훗날 곧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엄정한 심판을 하실 여호사밧계곡의 심판이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에 관한 것이다.

요엘 선지자는 이 세 개의 봉오리를 보았다.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에게 이 세가지 환상을 보여 주시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했다.

이 세가지 환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점차 그 심판의 정도가 커진다는 특징이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환상에서도 그 정도가 심해 진다.

메뚜기 환상(1장)

1: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4종류의 메뚜기 떼가 연속적으로 침입해서 모든 곡식들을 다 갉아먹었다.

메뚜기의 침입은 모든 사람에게 닥치는 재앙이다. 그것은 술취한 자(1:5)나, 제사장(1:13~16)이나 농부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당하는 고통이다. 이 재앙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1:18~20)과 온 지구(1:17)에 닥치는 재앙이다. 오늘날 천재지변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하나님의 뜻 아래 일어나는 것이다. 요엘 시대의 사람들은 메뚜기 공격을 단순한 자연재해로 여겼지만 요엘은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고, 그것을 주의 날, 곧 주님의 심판 중의 하나로 보았다. 그리고 장래 일어날 또 다른 주님의 심판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보았다.

오늘날에도 메뚜기 재앙과 같은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날이 도래하기 까지 계속해서 메뚜기 재앙과 같은 심판은 일어날 것이다.

이방 군대의 침공(2:1~11)

메뚜기 침공을 비유로 한 장래 이방 군대의 침공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심판의 하나였다. “The Lord shall utter His voice before His army,” 그것은 유대와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여주는 예언이다.

이방군대의 침공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의 침공을 받아 예루살렘이 멸망 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군대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다.

마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여호사밧계곡의 심판 (3:1~16)

마지막으로 여호사밧계곡에서 있는 심판의 모습이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 이름이 하나님은 심판이라는 뜻이다.

여호사밧계곡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에 있는 기드론계곡의 다른 이름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3:1~2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당을 나누었으며…열국을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찌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마25:31~46절에 주님의 최후의 심판의 모습이 잘 나와 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죄인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엘의 세 가지 환상은 시간적으로는 당장, 조만간, 먼 훗날에 일어날 일들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가 자리잡고 있다.

회개의 촉구

하나님은 주의 날에 대한 세가지 심판에 대한 환상과 함께 회개를 촉구하는 회복의 메시지를 함께 주셨다. 각 심판에 대한 환상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메뚜기 심판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은 1: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찌어다

이방군대를 통한 심판에 대해서는 2:12~13에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의 날에 구원을 얻는 길은 옷을 찟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형식적인 종교생활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을 말한다.)

회개는 교회 공동체 차원에서 정성드려 준비된 마음으로 해야 한다.(2:15~17)

마지막 심판에 대해서는 2: 32절에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얼마 전에 죤 맥아더 목사님이 릭워렌 목사님이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 비판적으로 하신 설교 말씀을 들었다.

릭 워렌 목사님의 책에는 예수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은 있지만 회개가 빠져 있다고 했다.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치 않는다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앞에 회개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진정으로 회개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회개한 사람은 그 삶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구원의 약속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지는 것이다.

메뚜기의 침공에 대하 회복의 약속은 2:21~27절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고 풍족히 먹고”(2:25~26)

이방군대의 침공에 대한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은 2:18~20에 기록되어 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2:18~19)

이것은 바빌론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자유의 몸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으로 일부 성취되었다.

마지막 심판 전에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는 성령을 약속하셨다.(2:28~32)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에게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요엘서의 이 예언은 행전 2장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2:16~21) 요엘선지자의 이 예언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2:28 행2:19~21 사건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성령강림은 유대인, 이방인, 왕, 자주자, 노예, 남자, 여자, 노인, 어린이, 신자 등 모든 사람에게, 곧 만민에게 주어졌다. 불신자도 포함되는가?

장래 성령을 받고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는 새예루살렘성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새예루살렘성 하나님 보좌 앞에서 흘런나오는 생수의 강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22:1~5)

결론

주의 날은 현재형이자 미래형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은혜는 현재진행형이자 미래형이다. 마지막 심판의 때를 향해 매 순간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재해로, 전쟁으로, 질병으로, 기근 등으로 찾아 온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다가올 마지막 심판의 전조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은 매 시간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우리는 어느 때나 임박한 심판,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심판, 마지막 심판이 매 역사의 순간 만에 재현되고 있다. 그 때 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다. 선지자들을 통해 증거되는 말씀대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가 어느 정도 오래 지속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의 때는 도적같이 찾아 올 것이다. 미리 준비된 자들은 구원을 얻겠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은 순식간에 멸망 당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관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인본주의적 사고)
  • 구원은 없다. 이 세상이 전부다.(실존주의자들)
  • 예수를 믿지 않아서 구원 받을 수 있다(만인구원설)
  •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구원의 길이다(기독교)

기독교인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럴 때 성령이 함께 하신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죄를 멀리하고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구원의 열매인 것이다. 선행이 없다고 해서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구원받은 백성은 선행의 열매를 맺는다. 양자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성령충만을 약속하는 요엘서의 예언은 일부는 완성되었고 나머지는 앞으로 완성될 부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백성이다. 이 땅을 살아 가는 동안 그 믿음을 굳건히 붙드시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엘서는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곧 히브리 성경의 1~2장이 첫 부분이고, 2~4장이 두 번째 부분이다.

 

첫 번째 부분은 메뚜기의 재앙에 관한 내용이며 여기에서 언급된 메뚜기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곧 실제 메뚜기 떼의 출현, 이방인들의 침략 물결에 대한 풍유적 표현, 유대인들이 가장 최근에 겪었던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묵시적인 설명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이 부분은 표제어에 이어서 위기에 대한 선포로 시작된다.(2~7절)

그리고 이스라엘이 당할 처지를 애곡할 것과 회개할 것을 호소하였다.(8~14절)

15~20절에는 애곡의 다양한 표현들이 나타나 있다.

 

욜 2:1~11에는 현재의 재난이 장차 올 여호와의 날에 대한 전조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라는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온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탄원과(12~14절), 회개에 합당한 제사 의식을 준비하라는 메시가 기록되어 있다.(15~16절)

이 메시지에 따라 제사장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17절)

이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재앙과 기근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과 언약의 갱신에 대해서 약속하셨다.(18~27절)

 

요엘서의 나머지 부분은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날에는 이방 나라들 위에 징계가 내릴 것이나 유다와 예루살렘 위에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부어주시고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에 관한 소식이 이 마지막 큰 날에 들려올 것이다.(2:28~32)

 

여호와께서는 찬송을 불러 대적들을 무찔렀던 여호사밧 골짜기(브라가 골짜기)에 대하여 상기시키면서(3:1~3), 여호와의 날에는 열방과 주의 용사 사이에 성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계시하였다.

요엘서의 마지막 결론은 저주를 받은 열방의 파멸과 축복을 받은 시온의 번영을 대조시키면서 끝을 맺고 있다.

 

2. 신학

 

요엘서의 중심 주제는 여호와의 날이다.

비록 구약의 어떤 책보다 요엘서가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많이 강조하고 있으나, 이 주제가 요엘서에서만 유일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 2:4, 6~22에 의하면 열방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까지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당할 것이라고 나타나 있다.

아모스 선지자도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날에 변호대신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암 5:18~20)

스바냐 역시 여호와의 날에 우주적인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겸손하고 의로운 자들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전파했다.(습 1~2장)

 

먼저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메뚜기의 재앙을 언급하면서 만약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언약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들 위에 메뚜기 재앙보다 휠씬 더 극심한 재앙들이 여호와의 날에 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요엘이 묵시적인 종말론, 곧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들을 포함한 우주적인 종말론을 맨 처음 선포한 선지자라고 본다.

 

요엘은 하나님을 모든 피조물과 모든 역사까지 주관하시는 분으로 묘사하였다.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나타낼 때 땅의 지진과 하늘의 흑암으로 묘사하였다.(2:2, 11)

또한 자기 백성들 속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역사는 땅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도 하셨으나(2:24~26, 3:13, 18) 땅을 황폐케 만드시기도 하였다.(1:7, 10~12, 17~20, 3:19)

여호와께서는 파멸의 세력을 보내시기도 하고(2:11) 쫓아내시기도 하셨다.(20절)

 

여호와의 성령은 언약을 통하여 새롭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가올 심판을 견딜만큼 강건해지며,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열려질 것이다.(2:28~29)

요엘서에 언급된 만민은 본래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켰으나 베드로는 그의 오순절 설교에서 이 구절이 모든 인류를 가리킨다고 재해석해 주었다.









예언자 요엘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적은 성서라 그 예언자의 이름을 따서 ‘요엘’이라 불렸어요.
요엘서는 후기 예언서에 속하는 12개의 소예언서 중 두 번째에 놓여 있는 성서이지요.

누가 썼나요?

예언자 요엘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성서의 주된 내용이지요.
요엘이란 이름의 뜻은 ‘야훼는 하느님이시다’ 또는 ‘야훼는 나의 하느님’입니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매우 흔했습니다.
예언자 요엘은 오직 “브두엘의 아들”(요엘 1,1)이란 소개말 이외에는 달리 언급된 내용이 전혀 없어 그 정체를 자세히 알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요엘서를 통해 보면 그는 경신례에도 밝았던 예언자이며, 뛰어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여러 옛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도 나름대로 야훼의 날에 이루어질 심판과 구원을 힘있게 선포했답니다.
그 중에서도 그 날에 이루어질 ‘하느님 영의 강림’을 밝힌 내용은 신약성서에 큰 영향을 미쳤지요(사도 2,17-24). 그래서 요엘은 ‘영의 예언자’ 혹은 ‘성령강림의 예언자’란 별명을 얻기도 했지요.

언제 쓰여졌나요?

예언자 요엘이 활동한 연대를 알 길은 막연하지요.
그렇지만 학자들은 요엘서의 내용과 문체, 어휘 등을 잘 따져서 여러 가지 견해를 제기하고 있어요.
대체적으로 예전에는 바빌론 유배 이전의 왕조 시기로 보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유배 이후인 대략 기원전 400년경을 요엘서의 작성시기로 본답니다.

요엘서에는 다른 예언서들보다 경신례를 많이 강조하고 있어요. 단식과 성회, 사제와 제단에서 시중드는 자, 성전 제사 등에 대한 언급이 그것들이지요. 반면에 왕이나 북 이스라엘 왕국 및 사마리아인에 대한 언급도 없지요. 이런 모든 정황들은 바빌론 유배 이후 에즈라·느헤미야 개혁을 거치면서 기원전 5세기에 형성된 유다 경신례 공동체의 특성에 잘 들어맞는답니다.

왜 쓰여졌나요?

페르시야 시대 말기인 기원전 5세기경,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하고 성벽도 쌓고 유다교도 형성하여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었어요. 그라하여 그 체제에 안주하려는 경향도 거세졌지요. 바로 이러한 때에 요엘은 메뚜기 재앙을 체험한 사실을 들어 ‘야훼의 날’을 일깨워주지요.

메뚜기떼나 가뭄 같은 재앙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의 표징이지요. 요엘은 이것을 보고 정신 차려 다시금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도록 촉구하는 것이지요(요엘 2,27; 4,17). 그는 하느님께서 뭇 민족을 심판하시지만, 만민에게 영을 불어넣으시고 그 심판의 날을 ‘구원의 날’로 바꿔주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전하며 희망을 전해줍답니다.

결국 공동체가 지금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가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 안에 머물 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죠.

새김과 나눔

요엘은 메뚜기떼와 가뭄을 야훼의 날을 미리 알리는 표징으로 보았습니다.
내 삶에서 혹은 우리 시대의 어떤 사건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 경우가 있었으면 서로 나눠 보십시오.

그 깨달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습니까?

심장을 찢고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라(요엘 1-4장)

요엘서는 4장인데, 내용에 따라 뚜렷하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주께서 거둥하실 날이 왔다(요엘 1,1-2,27)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기도를 듣고 약속해 주신 내용은 무엇입니까?(2,21-24)

먼저 요엘은 모든 주민들이 귀를 기울여 자신의 말을 듣고 대대로 후손에게 전할 것을 요청합니다(1,2-3). 즉 자신이 전하는 말은 지금 당장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미래 세대들에게까지도 유효한 하느님의 말씀임을 밝힌 것이죠. 이와 같이 성서는 한 세대를 넘어 모든 세대를 위한 것이랍니다.

요엘은 뒤이어 메뚜기떼로 인한 엄청난 재앙을 애소합니다. 하느님께 드릴 제물조차 없을 정도로 피해는 극심하죠. 지금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메뚜기떼가 한 번 지나가면 푸른 초목이 다 없어질 정도로 피해가 막심하답니다. 요엘은 이를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야훼께서 거둥하실 날”이 오고 있다는 징조라고 풀이해요(1,15). 그는 사태를 적당히 무마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심각성을 직시하며 눈을 들어 하느님을 보라고 이끌죠. 바로 이것이 예언자의 모습이지요.

주께서 거둥하실 날에 벌어질 일은 온 우주에 미치며, 그 위력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거세요. 그러나 요엘은 온 백성이 모여 외적(단식·옷 찢음)으로뿐 아니라 내적(심장 찢음)으로 참회하여 울부짖으면,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약속을 전해요. 이 일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은 참 하느님을 깨닫게 되고 그분을 찬양하게 되리라고 밝히구요(2,26-27).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요엘 3,1-4,21)

마지막 날이 오면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예언됩니까?(3,5; 참조 로마 10,13)

1장과 2장이 실제로 있었던 메뚜기떼와 가뭄으로 인한 재앙과 약속이라면,
3장과 4장은 앞으로 있을 일의 예언입니다.
무엇보다도 야훼의 날이 오면 만민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려질 것이라고 밝혀요.
전에는 72인 장로에게만 영이 내렸지만(민수 11,24-29), 이제는 종들에게까지도 영이 내리죠(3,2).
이는 새로운 하느님의 공동체가 이루어질 것임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는 오순절 사건을 이 예언의 성취로 받아들였던 것이죠(사도 2,17-21).

4장에서는 마지막 날 불의한 각 나라에 내릴 하느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나열되어요.
비록 유다 중심적으로 기술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보잘것 없고 약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밝는 강한 자들의 폭력을 심판하시는 것이죠. 이 심판은 전면전으로 벌어져, 하느님의 용사들도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어”(4,10; 비교 이사 2,4; 미가 4,3)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은신처, 산채가 되시어 그들을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세요(4,16).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야훼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4,17)이시라는 사실이죠.
결국 요엘은 일상에서 안일하게 사는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야훼의 날을 내다보며, ‘지금’ 하느님께 돌아와 그분을 알아 섬리라고 호소하는 것이에요.

호세아서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서에서 하느님을 안다는 말은 실제 삶에서 하느님을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따르는 삶,
예수께서 일러주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을 가리킨답니다.





언약(에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성경은 약속의 책이다.
약속의 책은 언약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언약의 내용은 "에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게 된다.
언약의 핵심을 잘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에덴 언약은 "선악과"(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or when you eat of it you will surely die.




노아 언약은 "무지개"(창세기 6:13)



하나님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과 함께 멸하리라.
So God said to Noah, "I am going to put an end to all people, for the earth is filled with violence because of them. I am surely going to destroy both them and the earth.



아브라함 언약은 "복의 근원"(창세기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The LORD had said to Abram, "Leave your country, your people and your father's household and go to the land I will show you.
I will make you into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you; I will make your name great, and you will be a blessing.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whoever curses you I will curse; and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모세 언약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Now if you obey me fully and keep my covenant, then out of all nations you will be my treasured possession. Although the whole earth is mine,
you will be for me a kingdom of priests and a holy nation.' These are the words you are to speak to the Israelites.




다윗 언약은 "아들의 나라 언약"(사무엘하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When your days are over and you rest with your fathers, I will raise up your offspring to succeed you, who will come from your own body, and I will establish his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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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언약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각 “시대마다 독특한 경영 방침”(Dispensation)으로 역사를 주관하신다. 성경을 배우는 학생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교리적인 모순이 없이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경영 방침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는 각 시대들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맺으신 언약들(Covenants)을 통해 경영 방침의 차이에서 오는 각 시대들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계약이나 합의로써, 쌍방 간에 확실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약속에 대한 확실한 성취를 바탕으로 주어진다. 성경에는 여덟 번의 언약들이 나타난다. 각각의 새로운 언약들이 설립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이 바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 사람들에게 약속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각 시대마다 인간들에게 주신 명령에 순종해야만 한다. 이 명령들은 ‘먹지 말라, 계명들을 지키라, 믿으라’ 등 다양하다. 인간들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거역할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다시 새로운 언약이 시작된다. 이제 여덟 번의 언약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 에덴의 언약 (창 2:16-18)



  에덴의 언약은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 에덴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주어진 것이다. 에덴의 언약이 선포된 때부터 다음 언약이 맺어질 때까지를 일반적으로 무죄시대(Innocence)라고 부른다. 언약의 내용은 땅을 다시 채우는 것, 땅을 정복하는 것, 동물들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 것, 식물만을 먹는 것, 에덴의 동산을 가꾸고 지키는 것,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에덴의 언약 아래서의 삶은 완전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옷도 입지 않고, 일도 하지 않고, 세금도 없고, 전쟁도 없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바깥에서 살았으며 모든 동물들과 교제를 나눴다. 동산을 가꾸는 것은 의심할 것 없이 의무적인 일이 아닌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땅에는 저주가 없음으로 가시나 엉겅퀴를 내지 않았고 동물들도 식물을 먹고 살았음으로 서로 물어뜯고 피를 흘리는 일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대를 현대의 모든 인본주의자들은 법과 전쟁, 과학과 교육을 통해 이루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에덴에서 아담이 할 일은 동산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나무 열매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금지된 열매를 먹는다면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그 외에는 지켜야 할 안식일도 없었으며, 십계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생명나무(the tree of life)를 값없이, 자유롭게(freely) 먹으면 되었다. 단지 나무 열매를 따먹는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을 거니시면서 아담과 교제하셨기에,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인 믿음은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함께 대화하셨고 아담은 그 분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브가 완전한 환경에 대해 충분하게 경험을 할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브가 육체적으로만 성숙했으며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가장 간교한 존재인 뱀의 유혹과 대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담의 타락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선과 악의 지식 나무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것을 먹도록 유혹하는 어떤 존재에 대해 아담에게 경고하신 것이다. 또한 에덴의 동산을 지키라(keep)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지상에서 인간의 존재는 최고의 환경 가운데 시작되었다. 땅은 태고의 영광으로 회복되었고 물은 물고기들로 가득 찼으며, 무성한 식물들이 지표면을 덮었다. 공중은 새들과 식물에서 나오는 향기로 가득 찼고, 땅은 안개로 촉촉이 젖으므로 파괴적인 폭풍 같은 것은 있지 않았다. 낮과 밤의 아름다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했을 것이며 모든 생물들은 각기 종류대로 완전했다.

  아담은 최상의 동산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하나님과 방문자들인 천사들과 교제하며 살았다. 모든 것이 이상적이었다. 아담이 그 속에서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돕는 배필(help meet)을 만드셨다. 아담은 이브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녀가 남자에게서 취하여 졌으니 여자라 하리라』(창 2:23). 처음부터 아담이 그녀를 사랑했고 그는 그녀가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죽음에 처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최초의 부부는 달콤한 교제 가운데 행복했으며 그러한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지식의 나무에 대한 금지 이유를 알기 위해 호기심 있는 이브가 아담 몰래 나무 가까이 갔을 것이다. 나무 곁에서 이브를 발견한 사탄은 그 기회를 즉각적으로 이용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나무 열매를 금지하신 이유에 대해 교활하게 속였다. 이브가 뱀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뱀이 혐오감을 주는 파충류가 아니고 이브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브는 종종 뱀을 보았고 아마 전에도 뱀과 이야기 했을 것이다. 사탄은 빛의 천사로 나타난 것이다.

  사탄은 최초의 고등비평가(higher cri- ticism)이다. 사탄은 의심의 창조자이다.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뱀은 더욱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창3:1). 사탄의 질문은 이브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자리 잡았다. 의심은 인류가 이브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의문을 제기하는 만큼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인한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셔서 악한 자들이라도 영원한 형벌에 처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결국 사탄은 『너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인간의 타락에서 사탄의 승리는 완전했다.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의 최초의 결과는 자기 의(self righteousness)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알았고, 이 지식의 결과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모든 동물은 자연적으로 옷 입혀진다. 물고기는 비늘로, 새는 깃털로, 짐승은 털이나 가죽 등으로. 심지어 뱀들도 아름답고 색깔 있는 피부를 가졌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벌거벗은 상태로 남아있어 인공적인 옷을 입어야만 한다. 이것은 죄의 결과이다.

  에덴의 언약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시대는 완전하게 독특하다. 죄의 부재와 하나님의 임재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하나님의 성막이 인간과 함께 있게 되기까지는 다시 이와 같은 시기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새 땅에서 인간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계21:3). 에덴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죄(innocence)를 기본으로 아담을 다루셨다. 죄의 저주가 땅에서 제거될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똑같은 방법으로 인간을 다루실 수 없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에덴의 언약은 파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가 생명나무를 먹고 죄악 된 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용서받은 죄인들을 동산에서 내쫓으셨다.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 인간은 저주 받은 인간, 저주 받은 땅으로 실패하고 만다. 지금도 인간들은 주장하기를 깨끗하고 완전한 환경은 죄를 대항하는 보호자가 된다고 하지만 에덴의 언약 아래서의 실패는 이러한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한다. BB

에덴에서 아담의 실패는 순수했던 시대를 끝맺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한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기 전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아담의 언약(Adamic Covenant)이 맺어 진다. 이 언약으로 인간 역사는 두 번째 경륜(Dispen- sation)으로 접어들게 되며, 이때부터 노아의 시대까지는 동일한 방법에 의해 역사가 운영된다. 선과 악을 아는 양심(conscience)에 의해 인간들이 다루어졌다고 하여 이때를 일반적으로 ‘양심의 시대’라고 부른다. 아담의 언약으로 인해 새로운 경륜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이 언약은 그 시대만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에덴에서의 언약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이 언약은 이후로의 모든 인간 역사를 규제한다.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다시 오셔서, 세상에서 저주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 언약은 유효하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는 지금도 아담의 언약은 파기되지 않았다.



  아담의 언약에 포함된 내용은 저주와 약속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뱀에 대한 저주이다. 뱀은 모든 가축과 들짐승들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평생토록 배로 기어 다니게 되며, 흙을 먹게 된다. 또 뱀과 여자 사이에는 적의(enmity)가 있게 된다. 창조로부터 이 순간까지 뱀은 아름다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파충류의 모습을 갖게 된다. 지금도 뱀을 혐오하지 않는 여자는 거의 없다. 둘째는 여자에 대한 저주이다. 여자에게는 고통과 임신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고, 고통 가운데서 자식들을 낳게 되었다. 또한 여자의 바람은 남편에게 있게 되어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게 된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기본적 질서를 나타낸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지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언약에 포함된 저주에 대해 항변할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셋째는 아담에 대한 저주이다. 그가 자기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까닭에,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음으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된다. 아담은 일생 동안 고통 가운데서 땅의 소산을 먹으며 얼굴에는 땀을 흘려야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로 인해 저주받은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땅을 경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게 된다. 이때 아담에게 허락된 것은 단지 식물뿐이다. 결국 불순종의 대가로 아담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됐으며, 흙으로 돌아갈 운명에 놓인다. 죄는 인간에게 영(spirit)과 몸(body)의 죽음을 야기 시켰다.

  아담의 언약은 저주뿐만 아니라 약속도 담고 있다. 그 약속은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부수게 될 것이고, 뱀의 씨는 ‘여자의 씨’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약속된 ‘여자의 씨’를 기다려 왔으나, 반대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은 계속해서 그 씨가 출현하는 길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아담 이후의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사탄의 계속적인 시도를 보여 준다. 각 시대마다 반복되는 인간들의 실패도 이 사실을 설명한다. 이러한 약속에 포함된 사실들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자체가 은혜로 연결됨을 볼 수 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의 아내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그들에게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다.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인가의 피가 흘려져야 됨을 아담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으로 아담에게 입혀 주심으로 피로 드리는 제사를 계시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이 그러한 제사를 드렸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은 아벨이었다. 카인은 저주받은 땅의 소산만을 의지하였으나 아벨은 자기의 양 중에서 첫배 새끼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위에서 살펴 본 ‘아담의 언약’에 담긴 내용들은 아담 이후 모든 역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금도 여자들은 고통 가운데 아기를 낳으며, 동서를 막론하고 남녀 사이의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다. 혹, 출산의 고통을 피하려는 시도가 행해지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권위에 대한 여자들의 도전도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되는 움직임이다. 아울러 남자들은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만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예외 없는 법칙이다. 만약 남자가 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는 몸에 쌓인 노폐물로 인해 병들어 죽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피(The blood)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아담의 언약에 포함된 인간들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들은 계속해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아담의 언약으로 죽음과 고통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것들은 하나님만이 그치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록 20장에 묘사된 날들이 오면 이것들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 현대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 모든 과정들은 단지 아담의 언약을 뒤엎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남성들의 권위를 제거하는 것, 환경을 통제하는 것, 고통 없이 아기를 낳게 하는 것, 땀을 흘리지 않게 하는 에어컨 시설 등등.... 이러한 현실은 인간의 역사 가운데로 ‘하나님의 아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에덴에서 지식의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열매를 먹은 인간은 선악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고, 선악을 아는 능력인 양심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환경 속에서 실패한 인간에게 양심에 따라 살도록 허용하심으로써 인간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셨다. 양심은 후회와 두려움을 가져오나, 저항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인간들이 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아담의 언약이 선포되는 때부터 인간들은 전체적으로 다루어졌다. 양심에 의해 지배받던 이러한 시대를 ‘무지했던 때’(행17:30)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 하에서는 즉시 사형에 처해져야 하는 죄도 이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다. 하지만 이것이 직접적으로 영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죄에 대한 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뿐이다. 인간들은 이 점에 대해 율법이 없던 시기의 죄에 대한 심판은 부당하다며 자신들을 변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의미가 없다. 세상의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God- head)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분명하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양심에 의해 행동하던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지 않았고, 오히려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다. 그들에게 율법은 없었으나, 그들에게 심판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다. 무지했던 때라도 심판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도 본성에 의해 율법의 내용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무척 중요하다.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에서 특별히 구분된 이후에도, 이방 민족들은 아담의 언약과 함께 양심에 대한 경영원리에 계속해서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동일하다. 백보좌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을 사람들은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1> 복음을 알지만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2>복음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죄인들이다.

  아담의 언약이 맺어진 이후로도 양심에 의해 하나님을 만나고 선을 행할 수는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의롭게 되지 않고,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되기 때문이다. 양심에 따라서 바르게 행했다면 의인이 될 수 있었다. 이 사실로 양심을 근거한 이방인들의 구원을 설명할 수 있다. 양심에 따라, 그들은 본성에 의해 하나님을 찾았다. 아브라함이나 코넬료처럼 경건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사 가운데 전개되는 모든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아담의 언약과 더불어 시작된 이 시대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진적인 타락이 있었고 죄와 일치된 세상 속에서 불경건하고 찬란했던 문명은 파멸을 맞게 된다. 오직 에덴에서 선포된 아담과의 언약만은 불변한 채 존속되어 온다. B



노아의 언약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씨와 그와 함께한 모든 생물과 언약을 세우셨다. 다시는 모든 육체가 홍수로 인한 물들로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영속하는 세대들을 위하여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심으로 땅과의 언약의 표가 되게 하셨다.





  에덴에서 아담의 타락 이후 양심에 따라 살아가던 인간들은 또 한번의 파국을 맞게 된다. 아담 이후에 태어난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지 않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살아갔다. 양심을 따라 선을 행할 수 있었는데도 그들은 타락과 파멸의 길로 가고 말았다. 사람들이 지면에서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딸들이 그들에게서 태어났다. 그 가운데서 약 1000년 전에 에덴에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아담은 자신의 후손들이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을 친히 목격했을 것이다(창5:5). 땅이 부패하고 폭력으로 가득차자 하나님께서는 물들로 땅을 심판하셨다.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유일한 인간 노아와 맺으신 언약과 함께 인간이 인간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지는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홍수로 인한 심판은 단지 인간들의 부패와 타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땅도 하나님 앞에 부패하고, 폭력으로 가득 차게 만든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영적인 존재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들을 자기들의 아내로 삼는 일이 발생했다(창6:2). 이들은 자기들의 처음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남으로 땅에 심판을 가져오게 했다.

  땅 위의 모든 육체를 땅과 함께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택하시어 죄에 대한 심판 가운데서도 또 한번의 은혜를 인간에게 베풀어 주셨다. 노아는 의인이고 그 당대의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다(창6:9). 그래서 주의 눈에 은혜를 입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육체를 물로 멸망시키신 후, 노아에게 말씀하시어 모든 동물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셨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 노아 이후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도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언약을 맺으셨다.

  일반적으로 노아와의 언약으로 “인간 통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언약은 그 시대만을 제한하지 않는다. 아담과의 언약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으로 맺어진 노아와의 언약도 현재까지도 파기되지 않고 유효하며, 천년왕국은 물론 영원(Eternity)까지도 연장된다(창9:16).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과 연관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구상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었다. 또 땅이 있는 동안에는 씨 뿌리고 추수하는 시기와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게 되리라고 하셨다(창8:22). 시편에는 땅에 대해 “영원히 세우신 땅”이라고 하였고 땅의 기초는 영원히 요동치 않도록 놓으셨다고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의가 거하는 땅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노아 이후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게속되는 지상의 날씨와 연관된 달(month)의 변화도 땅이 있는 동안에는 지속될 것이다.

  노아에게는 에덴에서 아담에게 주어졌던 명령이 반복된다(창1:28; 9:1).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

이로써 노아는 온 지구를 혼자서 차지하게 된다. 온 지구를 혼자서 차지한 사람은 아담과 노아 두 사람뿐이다. 아담과 노아 두 사람은 공통된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죄로 인해 벌거벗게 되고, 두 사람 모두 세 명의 아들을 가졌는데 그들 중에 한 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한 명은 저주를 받는다. 아담과 노아에게 위의 명령이 주어지기 전에 땅에는 물로 인한 심판이 있었다(벧후3:5).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하여 또 한번의 기회를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함을 땅의 모든 짐승들과 공중의 모든 새들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바다의 모든 동물들에게 넣어 주셨기에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창9:2). 만약 동물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미 오래 전에 멸절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담은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를 내는 나무의 열매만 먹을 수 있었으나, 노아는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을 채소와 같이 먹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간들은 모세의 율법 아래에서 유대인들에게 금지된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거부될 것이 없게 된다. 음식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감사함으로 받도록 지으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노아에게조차도 고기를 생명과 더불어 즉 거기에 있는 피째 먹는 것은 금지된다(창9:4). 피를 먹는 것은 영원히 금지되는 명령이다(레3:17). 이것은 노아에게처럼 율법 이전과, 율법 아래와,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는 시기 모두에서 금지된 사항이다(행15:20).

  노아의 언약을 설명함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사항 중의 하나는 사형제도의 실행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짐승과 사람의 손에서 생명의 피를 찾으신다고 하셨다(창9:5). 사람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자기의 피도 흘려지게 된다. 이 사형제도는 율법 아래서도 “도피 성읍”에서만을 제외하고는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 피를 금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형제도도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는 때에서도 존속된다. 바울은 페스토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말하기를, 무엇을 잘못했거나 죽을 만한 일을 했다면 죽겠다고 했다(행25:11). 천년왕국에서도 이 제도는 유지되어, 형제에게 ‘어리석은 자’라 하는 자는 누구나 지옥불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서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운동은 성경의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에는 분명한 삯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노아와의 언약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도 맺으신 것이므로, 만약 동물이 사람을 죽인다면 그 동물도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출21:28).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창세기 9:9에서이다. 이 부분이 실제적인 노아와의 언약으로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노아의 씨와 그와 함께한 모든 생물과 언약을 세우셨다. 다시는 모든 육체가 홍수로 인한 물들로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며 또 땅을 멸망시킬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않으리라는 내용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과 노아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체결된 것으로, 영속하는 세대들을 위하여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심으로 땅과의 언약의 표가 되게 하셨다. 이후로부터 하나님께서는 무지개가 구름 속에 보이면 하나님과 노아와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 사이에 맺은 언약을 기억하신다. 그래서 다시는 물들이 모든 육체를 멸망시키는 홍수가 되지 않는다. 이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그러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또 한번 멸망할 때가 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이 아니고 불로써 그렇게 될 것이다(벧후3:7).

  ‘노아와의 언약’으로 노아는 땅에 대한 실제적 통치자가 되었다. 노아가 쌓은 번제단과 그가 드린 번제는 진실된 경배 형태를 다시 설립하게 했다. 600세가 넘은 사람인 노아는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갖추고, 심판에 대한 기억을 가진 채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에덴에서 이브를 속인 사탄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진 않았으나 노아를 향해서도 자신의 일를 계속했다. 노아의 강력한 통치권도,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기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이후 상실하게 된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없다. 노아가 술 취하여 자신의 알몸을 드러냄으로 에덴에서 아담의 실패가 반복된다. 인간이 벌거벗는 것은 항상 죄의 결과이다.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들이 온 땅에 퍼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기보다는 큰 도시를 건설하려 하고, 그들의 탑이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쌓음으로 자기들의 이름을 내며 지면에 멀리 흩어지지 않으려 했다(창11:4). 이 시도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끝을 맞이하게 된다. 온 땅에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말만 있었기에 이런 일이 시작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셔서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 시켜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이 온 지면에 멀리 흩어지게 되고, 그 도성을 짓는 것도 그쳤다. 바벨(Babel)의 건축자들의 이름은 님롯(Nimrod) 한 사람만이 알려진다. 이곳에서 각기 다른 언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때의 저주는 신약의 오순절에 와서야 부분적인 역전 현상이 있었다. 바벨 이후 인간 역사는 하나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제까지는 한 종족이었고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 인간들의 계속적인 실패와 타락과 파멸로의 질주는 전체적인 우상 숭배를 낳았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은 이제까지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운영해 오시던 역사를 한 종족, 한 민족을 상대로만 경영하시게 되는 상황으로 변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언약은 모든 인간이 ‘이방인’이던 때에 맺어진 것이기에 아담 이후부터 노아의 언약까지의 원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현재의 인간들에게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BB




아브라함의 언약

아브라함과의 언약 이전에 있는 언약들은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대상으로 맺으신 것이었다.
아담 이후 계속되는 인간들의 실패는 첫째는 에덴, 둘째는 홍수, 셋째는 바벨에서 나타났다.
세 번의 실패로 인하여 하나님의 경영방법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날 땅에서 하나님께서 온 땅의 언어를 혼란케 하셨으므로, 사람들은 거기서부터 온 지면에서 멀리 흩어지게 됐다.

홍수 이후 창세기의 기록은 아브라함을 예비하기 위한 계보만을 언급한다.
‘바벨’이후 모든 인간들은 배도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요로 하는 인물이 등장하자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무조건적인 약속들을 하신다.
갈대아 우르는 이교도 지역 가운데 전형적인 이교도의 도시였다.
이곳에 거하던 아브람에게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은 창세기 12:1-3에 나타난다.
인간들이 전체적인 이교도화를 겪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선택하셨다.
아담 이후 이제까지의 경륜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창세기 12:1-3부터를 “아브라함의 언약”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살펴보고, 언약의 내용들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언약의 내용 가운데는 아브라함의 씨에 관한 것과, 그들에게 약속된 땅에 관한 내용이 중요한 부분인데, 이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성경을 보는 시각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약속은 아직도 성취되지 않은 채, 역사는 약속의 성취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비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이 언약의 성취는 이미 이루어졌고, 현재도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언약을 살펴볼 때 유의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전 언약들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unconditional)인 언약이라는 것이다. 언약의 체결이나 성취를 위해서 아브라함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선포하셨다.

창세기 15장에서 약속을 확인하실 때에 아브람은 깊은 잠에 빠졌었고 연기 나는 가마가 보이며, 불타는 등만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체결하신 것이고, 아브라함은 그 언약을 듣는 위치였다.

이후 맺어지는 모세와의 언약과는 대조적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는 “너희가 ...을 하면(If you will...) 내가 ...을 하겠다(I will)”라고 하셨다.
이것은 조건적인 언약임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창세기 12장 이후 계속해서 확증되고, 언약의 내용도 구체화된다.
처음에는 『내가 네게 보여줄 땅』(12:1)이라고 말씀하셨으나 “눈을 들어... 바라보라. 이는 네가 보는 땅”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 땅은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와 “카나안의 모든 땅”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하나님의 언약이 점진적으로 계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땅에 대한 약속이 구체화되고 확증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종 여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네 자신의 몸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아내 사래의 여종 이집트인 하갈을 아내로 삼아 임신토록 했다.
하갈은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아 주었다.
이처럼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세우시고 내가 너를 심히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맺으신 언약은 무조건적이다.
또 변화될 수 없는 영원한 언약이다(창17:7).
사람의 언약일지라도 확정되고 나면 아무도 폐기하거나 덧붙이지 못한다.
이 영원한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이삭 안에서 미리 확정하셨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세 부분으로 구분지어 살펴볼 수 있다.

1. 아브라함 자신에 대한 약속
2. 아브라함의 씨에 대한 약속
3. 땅의 모든 족속들에 대한 약속

1. 아브라함 자신에 대한 약속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약속하신 것은 다음과 같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창12:2,3a).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 당대에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집트인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을 통해 큰 민족이 이루어지고, 열 두 통치자들이 나오게 된다(창25: 16; 17:20). 사라가 죽고 난 후 아브라함이 다시 아내를 얻어서 낳은 아들들을 통해서도 많은 족속들을 이루게 된다. 여기에 그의 상속자 이삭의 후손까지 포함한다면 그야말로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된 것이 분명하다(창17:5). 지금도 아랍 민족과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자기들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아브라함은 복이 되었다. 그에게 대적했던 크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은 모두 그에게 패하였고, 그로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랄 왕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태를 닫으셨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선대하자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을 치유해 주심으로 그들이 아이들을 낳을 수 있게 하셨다(창 20:17,18).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아브라함은 복을 받았다.
그는 가축과 은과 금으로 매우 부유하였고, 그와 함께 거하던 롯도 양떼와 소떼가 많으므로 그들이 함께 거하는 것을 그 땅이 수용할 수 없었다(창13:6). 아브라함은 영적인 면에서도 복을 받아 무할례 시의 믿음으로 된 의를 할례의 표로 인침 받음으로, 할례 받지 않고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렸다(약2:23).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제물로 드렸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 네 씨라 부를 자는 이삭에게서 난 자들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개인에게 하신 약속들은 모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2. 아브라함의 씨에 대한 약속

아직 상속자도 없는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셨다.
『이제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부터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이는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며 네 씨에게 영원히 주고 내가 네 씨를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다면 네 씨도 셀 수 있으리라.』 아브라함의 씨를 언급하면서 땅을 약속하는 언약은 곧 영원한 언약으로 불리며(창17:17), 카나안의 모든 땅을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다. 이 언약의 표로서 모든 남자 아이는 대대로 난지 팔일이 되면 할례를 받도록 되어있고,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아이는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또한 이 영원한 언약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과 그의 씨에게 세워지게 된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것은 그대로 이삭에게 확증되어 다시 언급된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에게 복 주리라.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이 모든 지역들을 주고, 또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리니 내가 네 씨를 하늘의 별들처럼 번성하게 할 것이며 이 모든 지역들을 네 씨에게 주리라.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창26:3,4). 이 영원한 언약은 무조건적이다. 이삭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그랄에 거하였고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이삭도 똑같은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그로 창대하고 번성하며 매우 부유하게 하셨다. 이같이 이삭에게 계승된 “아브라함의 언약”은 그대로 그의 아들 야곱에게 이어진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주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주리라. 네 씨는 땅의 티끌같이 될 것이며 너는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까지 멀리 퍼지리라. 땅의 모든 족속들이 너와 네 씨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창28:13- 14).

  아브라함의 씨가 그 땅을 영원히 소유하리라는 약속은 야곱에게도 미래의 일로 언급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약속은 언제 성취될 것인가? 이 질문이 성경의 예언연구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이다. 이 언약들의 성취가 이스라엘의 실패로 인하여 신약에 와서 교회를 통하여 영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면 무천년적 해석이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르친다면 전천년적 해석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솔로몬 시대에 이 언약들이 잠시 동안 문자 그대로 성취된 것을 볼 수 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많았으니, 바닷가에 있는 모래처럼 많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더라. 솔로몬이 모든 왕국들을 다스렸으니, 강에서부터 필리스티아인들의 땅과 이집트의 경계까지더라. 그들이 예물들을 가져오며 솔로몬의 평생 동안 그를 섬기니라』(왕상 4:20,21).

  실제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씨가 바닷가에 있는 모래처럼 많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그 땅,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를 솔로몬이 통치했다. 그렇다면 솔로몬 시대에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성취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의 씨가 땅의 소유를 갖는 것은 영원하다. 그러나 솔로몬의 통치는 솔로몬 당대로 끝났다. 여기서의 기록은 천년왕국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땅을 통치하시는 모습을 모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문자 그대로의 성취는 미래의 일이다. 솔로몬 때처럼 문자 그대로 그 땅을 소유하고 바닷가에 있는 모래처럼 번성하며 영원토록 소유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위대한 이를 두고 맹세하나, 자기보다 더 큰 자가 없으므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 맹세는 모든 논쟁의 종결을 짓는 확정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유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자기의 뜻이 불변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확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거짓말하실 수 없다. 유대인의 불순종도 언약을 파기시키는 조건이 될 수 없다. 다만 성취의 시기가 유보될 수는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또 야곱에게 유업으로,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확증하셨다(시105:6-11).

만약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들, 즉 태양이 낮의 빛이 되고, 달과 별이 밤의 빛이 되는 것들이 없어진다면 이스라엘도 민족이 되지 못하고 영원히 끊어질 것이고,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고 아래로 땅의 기초들을 탐지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이 행한 죄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그들 모두를 버리실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은 기록된 그대로 미래에 성취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언약들은 아브라함 이후 지금까지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세의 언약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의 씨가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타국인이 되어 그들을 섬길 것이며 그들이 사백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창15:13). 그 후 카나안 땅에 있던 7년간의 흉년으로 인해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내려가서 그 곳에서 거했다. 이집트에 거주한 이스라엘 자손의 기거 기간 사백삼십 년이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셨다(출12:40). 이때는 이삭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이 확정된 지 사백년 후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대로 성취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를 나온 후 홍해를 지나 광야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을 맺으셨다.

  이때 맺은 언약을 “모세의 언약”으로 설명한다. 모세의 언약은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언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께서 굽어보시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신 것은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기에 결코 취소되거나 변경되지 않고 지속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이것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성취임을 밝히시고 있다(출2:24).

  이 언약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빠져 나온 후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에서 맺어졌다. 모세와의 언약의 가장 큰 특징은 아브라함과의 언약과는 달리 조건적이라는 데 있다.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출19:5). 이스라엘 자손들의 순종이 선행되어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하실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모든 백성보다 특별한 보물이 되고 하나님께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을 지켜야 했다. 이 율법의 내용은 출애굽기 20장부터 시작하여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이 후로의 이스라엘 역사를 규제하며, 인간 역사를 “율법시대”라는 또 하나의 경영시대로 구분한다. 이것은 인간 역사에서 다섯 번째 경륜이다. 이 시대는 시내 산에서부터 갈보리까지, 출애굽에서 십자가까지 연장된다. 이후로 광야와 카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율법을 위반해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모세와의 언약에서도 표적(sign)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영원한 표적이 주어진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이후 안식일이 율법의 영원한 표적이 되었다(출31:17). 이스라엘 자손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며, 그들 대대에 걸쳐 영원히 지켜서 영원한 언약을 삼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적이다. 이 날은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날이다. 이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반드시 죽이게 되어있다. 이 날에 일하는 자는 누구라도 그 혼이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출31:13).

  그러나 안식일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한정되는 표적이다. 현 시대 그리스도인이 안식일을 지켜야 할 아무런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 날을 지킨다면 안식일뿐만 아니라, 모세와의 언약에 언급된 모든 율법을 지켜야만 된다. 그가 죄를 지었다면 짐승을 끌고 성막으로 가서 그 짐승의 피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돼지고기를 금해야 하고, 최소한 1년에 세 차례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한다.

  모세의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위생적 사항에 대해 세부적이며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고, 2,000개 이상의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세 이후 모든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덕적 법칙을 제공하며, 새 언약을 맺으시는 날까지 존속된다(히 8장). 결혼과 성에 대한 규례, 정결례, 십계명, 재판에 대한 것, 성막의 봉사, 명절들 등. 이 율법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삶을 세세하게 기술하여 그들의 삶을 규제했다. 『이것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를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계명들과 규례들과 명령들이니, 너희가 가서 치리할 그 땅에서 이것들을 행할지니라』(신6:1). 이스라엘 백성이 카나안 땅에 들어가서 행해야 할 율법은 기본적으로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① 계명(Commandment) :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을 나타낸다(출20:1-26).

  ② 명령(Judgment) : 이스라엘의 사회적 생활을 규제한다(출 21:1-24:11).

  ③ 규례(Statutes) : 이스라엘의 종교적 생활을 규제한다(출24:12-31:18).



  계명들과 규례들은 하나의 종교적 체계를 이룬다. 계명들은 정죄와 죽음의 직분이었다(고후3:7-9). 그러나 율법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정죄와 죽음의 직분이면서도, 율법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복 있는 사람의 즐거움이 되었다(시1:1,2; 19:8). 또한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생명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라는 것이었다(눅10:23). 그러나 율법은 엄격했다.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전체를 범한 자가 되었다(약2:10).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간음하지 않고 안식일도 범하지 않고 다른 모든 계명들을 지켰다 하더라도 만일 그가 살인을 했다면 그는 율법 전체를 범한 자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서 죄의 깨달음을 얻었다. 율법이 죄는 아니지만, 율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이나 계명이 오자 죄가 살아나게 되었다. 행하도록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해서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 시대(교회시대)에는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든지 저주 아래 놓이게 된다. 구약에서 율법은 단지 황소나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피로 불결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하게 할 뿐이었다. 그들의 죄가 깨끗하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오래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자비를 수 천대까지 간직하여,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나 죄악이 결코 깨끗케 되지는 않았다(출34: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는 모든 사람들이 율법의 행위가 없어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된다고 하여 율법을 폐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율법은 굳건하게 세워졌으며, 또 완전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이 땅에서 사라지고 하나님의 경륜이 이스라엘에게로 다시 돌아올 때 출애굽 당시 시내 산에서 주어진 모세와의 언약은 다시 효력을 갖게 될 것이다. 대 환란 기간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안식일을 지키게 된다(계12:7, 마24:20). B


다윗의 언약

성경의 예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다윗의 언약이다.
대개의 경우 아브라함의 언약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다루어지고 있으나 다윗의 언약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왕국이라는 성경의 대 주제를 이해하고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 확증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살펴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이 언약을 앞선 언약들과 비교해 볼 때, 전 우주를 향해 구체적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다.
다윗이 받은 언약을 대할 때 쉽게 범하는 잘못은 이 약속들이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서 모두 성취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이 언약이 솔로몬에게서 완전히 성취되었는지 아니면 미래의 성취를 향해 지금도 나아가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 하나님께서는 주위의 모든 그의 원수들로부터 그에게 쉼을 주셨다.
그때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백향목 집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안에 있노라고 하여 하나님의 전 건축을 위한 자신의 계획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을 향한 더 큰 우주적인 계획을 보여주셨다.

"네 연수가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잠들 때, 내가 네 몸에서 나올 네 씨를 네 뒤에 세우고, 그의 왕국을 견고하게 하리라."(사무엘하 7:12)

위의 구절에서 세 가지 사실을 볼 수가 있다.

첫째, 다윗의 보좌는 그의 아들을 통해 계승된다는 것
둘째, 아직 아들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인데 이 약속이 주어졌다는 것
다윗은 밧세바를 이 약속을 받은 이후에 만나게 된다(삼하 11:1-27)
셋째, 그의 왕국이 견고하게 되리라는 것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한 집을 세울 것이요, 내가 그의 왕국의 보좌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3).

사면에서 그를 에워싼 전쟁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윗의 발바닥 아래에 두실 때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사면에 쉼을 주셨으며, 아무 대적도 재앙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솔로몬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을 건축하려고 계획하였다(왕상 5: 5).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치리한 지 사년 둘째 달에 주의 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였고, 십일 년에 주의 전이 그 모든 양식대로 모든 부분이 완성되었다.
솔로몬이 전을 건축하는 데 칠 년이 걸린 것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집을 세울 것이라’는 부분은 솔로몬에서 성취되었다.
그러나 ‘왕국의 보좌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는 부분은 솔로몬 당대에만 성취되는 약속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이 구절은 다윗의 아들인 메시야를 통하여 미래에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 왕국의 보좌가 영원히 견고하게 서리라는 약속은 솔로몬 때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가지인 사람을 보라, 그가 자기 자리에서 자라 주의 성전을 건축하리라."(스가랴 6:12).

그의 이름이 가지인 분이 주의 성전을 건축하고 영광을 지니며 그의 보좌에 앉아 다스릴 것이다.
위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완전하게 성취되게 된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만일 그가 죄악을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막대기로 그를 징책 하고 사람의 자식의 채찍으로 징책 하리라."(사무엘하 7:14)

위의 구절은 히브리서 1:5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로 인용된다.
다윗의 언약을 다루는 사무엘하의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솔로몬 안에서 이중적 성취로도 설명할 수 있으나 솔로몬에게서의 성취는 완전한 것이 없고 역사적이고 부분적인 것일 뿐이다.

솔로몬이 주의 전을 지었으나 그의 왕국은 영원히 서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타국 여인들에 관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그들에게로 들어가지 말고, 그들은 너희에게 들어오게도 말지니, 이는 그들이 반드시 너희 마음을 돌려서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 (열왕기상 11:2)

그러나, 솔로몬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결합하였다.
그에게는 이집트인, 모압인, 암몬인, 에돔인, 시돈인, 힛인의 여인들로부터 왕비가 칠백, 후궁이 삼백이었으며,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그들의 신들에게로 돌이켰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하지 아니하여, 시돈인들의 여신 아스토렛과 암몬인의 신 밀콤을 따랐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말씀하시어 그 왕국을 찢어 그의 신하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왕상11:11).

사무엘하 7:14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은 명백하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라도 천사들 중 어느 누구에게 아들이라고 하신 적은 없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셔서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게 하셨으며,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낫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멸시받았으며 우리의 슬픔을 지고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하셨다.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다.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제거한 사울로부터 나의 자비를 빼앗은 것과 같이, 그것이 그에게서 떠나지는 아니하리니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서리라. 네 보좌가 영원히 서리라』(삼하7:15,16).

  하나님께서는 사울로부터 자비를 빼앗은 것과 같이, 다윗의 아들로부터 하나님의 자비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다.

1.  집이 영원히 서리라
2.  왕국이 영원히 서리라
3.  보좌가 영원히 서리라

다윗의 씨의 보좌는 영원히 견고하게 되지만, 솔로몬에게는 이같이 말씀하지 않았다.
솔로몬의 계보는 코니야를 끝으로 해서 그의 씨에서는 아무도 번성치 못하며 다윗의 보좌에 않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더 이상 없게 된다(렘 22:30).

시드키야는 마태복음을 통해 볼 때 왕의 계보에 들지 못한다.
이제, 다윗의 언약에 나타난 약속에 대한 실제적인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됨을 볼 수 있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
(누가복음 1:32, 33).

예수 그리스도는 솔로몬을 통하여 다윗의 씨가 되지 않고, 다윗의 다른 아들 나단을 통하여 그의 합법적인 계승자가 된다(누가복음 3:31).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다윗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는 통치권적인 왕의 형태가 지속되는 것보다는, 다윗의 씨가 순수하게 보존되는 것이 필요했다.
다윗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임을 확인한다면 다윗에게 약속한 그 왕국과 보좌는 아직도 미래의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다윗의 보좌에 앉아 계시지 않고, 천상에서 하나님의 오른편 보좌에 앉아 계신다

























예수 복음(로마서 1:1-4)


06-02-2021(수) 오후 7:00
복음(福音)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The beginning of the gospel about Jesus Christ, the Son of God.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로마서 1:1-4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The gospel is Jesus Christ, the Son of God.

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인가?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中保)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1. 예수는 참 사람
2. 예수는 참 하나님

독일 전쟁사에 보면 2차 세계 대전 중, 장렬하게 전사한 한 통신병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 여름 밤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어느 전쟁터로부터 아군본부에 걸려온 전화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긴급하게 구조를 요청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도중에 통화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던 통신병이 사고를 조사하다 보니, 폭풍우에 의해 전선줄이 잘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을 이으려고 했지만, 1m 가량이 모자랐습니다.
생각다 못한 통신병은 양쪽의 전선줄을 벗겨서 양 손가락에 전선줄을 묶고 자기의 몸을 통하여 S.O.S.가 아군본부로 에게 전해지게 했습니다.
결국 도움을 요청받은 본부에서 구조대를 파견하여 위기에 빠져있던 아군을 무사히 구조했습니다.
그런데 본부에 긴급히 도움을 요청했던 그 통신병은 감전사로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 교회에서는 그 숭고한 통신병의 죽음을 일컬어, ‘중보기도의 전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원조 중보자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끊어졌던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구원받은 우리들을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을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기치 않은 큰 풍랑을 만났을 때 가만히 구경만 하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풍랑에 휩싸여 고통당하는 제자들을 구원하시고자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가 건져주셨듯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기다리고 계실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과 건강과 사업의 풍랑에 빠져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쉼과 안식과 평안의 생명줄을 던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전도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을 가까이하시고 함께 식사하면서 교제를 나누셨는데, 한국교회 성도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아니면 교제를 나누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쳐다보면서 가까이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런 마음으로 예수를 믿다보니 자기는 구원받기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은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대환영이라 할 만큼 우리의 마음 문이 열려 있습니까? 우리 구역과 가정의 문이 열려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과연 창기나 세리들이 다가올 수 있을 만큼 열려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만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과연 그런 사람을 보고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이 과연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기뻐하실까요?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까요? 대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들을 절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베뢰아 교회 성도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보다 신사적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영국 신사와 같은 Gentlman이 아니라 Open Mind, 즉 마음이 크게 열린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넓게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넓은 가슴을 담아야 합니다. “아무나 와도 좋소! 누구나 와도 좋습니다!”는 넒은 가슴과 품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뵈레아 교회 성도들처럼 신사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중보자(메시테스. μεσίτης)


중재인, 판사, 심판, 결정자
- 두 당사자 사이에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

1. 중개인(mediator) 

2. 화해자(conciliator)


중보자의 자격
 

1. 사람(人間) - 인성(人性) 빌 2:7
 

빌립보서 2:7 /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 무죄(無罪) - 동정녀 탄생(童貞女 誕生) 마 1:16
 
마태복음 1:16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3. 신적 인격(神的 人格) - 신성(神性) 요 1:14

요한복음 1: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갈라디아서 3: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A mediator, however, does not represent just one party; but God is one.

히브리서 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to Jesus the mediator of a new covenant, and to the sprinkled blood that speaks a better word than the blood of 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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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제목은 ❝왜 예수냐?❞이다. 

1. 사람들은 기독교를 너무 독선적이라고 한다. ❛예수❜만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2. 예화 : 인슐린과 타이레놀 

어느 날 한 환자에게 의사가 말했다. ❝당뇨병이 있네요.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어요. 인슐린을 복용하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인슐린이 싫은데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안 됩니까?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의사가 ❝당뇨병을 치료하려면 인슐린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자세히 설명해주자 그가 따지듯이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편협하고 고집스런 분이네요. 시야를 넓게 보세요. 인슐린만 약입니까?❞ 얼마나 잘못된 말인가? 의사는 편협하고 완고한 마음을 가져서가 아니라 당뇨병을 치료하는 것은 인슐린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경도 그렇다. 예수 밖에는 없다! 

3. ❝왜 예수인가?❞ 우리는 왜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섬기는가? 본문이 두 가지 답을 제공한다. 

 

첫째, 예수님만이 우리의 담보가 되시기 때문이다(20~22절). 

0.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담보 또는 보증인이 꼭 필요하다(직장, 사업, 학교…). 그렇듯이 예수님이 영혼의 담보가 되신다. 

1. 20~22절을 보자.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a. ❝제사장❞은 죄인들을 속죄제물을 통해 하나님께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그렇다. 

    b. ❝맹세 없이❞ 구약 제사장들은 임시적이고 변한다는 말이다. 반면 예수님은 영원하고 완전한 인도자라는 말이다. 

    c.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보증❞은 ❝담보❞ 또는 ❝보증인❞이다. 자신의 인격과 생명을 담보로 보증한다는 말이다. 

    d.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의 구원에 대한 담보로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 되어주신다. 틀림 없다. 

    e.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자기 외아들을 담보로 내어주셨다. 왜냐하면 아들 예수만이 담보와 보증인이 될 수 있기에. 

2. 누구든지 그 연약한 믿음으로 자신을 믿으면 담보와 보증인이 되어주시는 예수를 믿고 따름이 얼마나 축복인가! 

    a. 겨자씨 한 알 정도의 믿음으로 예수를 믿고 맡기면 된다. 그 작고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담보가 되어주신다. 

    b. 이렇게 고백하자. ❝예수님, 저의 이 작고 연약한 믿음이지만 믿고 맡깁니다. 저의 구원의 담보가 되어주십시오!❞ 

    c. 예수님은 구원의 담보, 용서의 담보, 천국 담보, 은혜의 담보, 응답의 담보, 축복의 담보가 되어주신다. 

    d. 로마서 8:38~39. 예수님이 구원과 천국 담보, 은혜와 축복의 담보(보증인)가 되시니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3. 예화 : 후지다 덴과 맥도날드 

일본에 후지다 덴이라는 회사원은 맥도날드를 창업하려는 꿈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회사를 다니던 그는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맥도날드 일본 지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퇴직금을 더해도 창업을 하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동안 저축한 5만 엔의 10배가 넘는 75만 엔의 비용에 신용보증까지 받아와야 했습니다. 후지다 씨는 평소에 거래하던 스미토모 은행의 지점장을 찾아가 대출을 요청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한 푼도 낭비하지 않고 예금을 했습니다. 필요한 생활비 외에는 한 푼도 쓰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돈을 쓸 일이 생기면 점심을 굶었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지점장은 후지다 씨가 거래했던 직원을 불러 신상을 물어봤고, 직원은 후지다씨가 거래 고객 중 가장 믿을 수 있는 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지점장은 이 직원의 말을 담보로 요구하는 만큼의 금액을 대출해주었고 신용보증까지 서주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후지다씨의 매장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매장이 되었고 또 맥도날드 일본지사의 최고 경영자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거짓 없으신 하나님이 그 아들을 담보로 삼았다. 예수가 담보가 되고 보증인이 되면 가장 확실하다. 

4. 하나님이 나를 보면 정말 형편없는데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담보와 보증인이 되시니 믿어주시고 복을 주신다. 

    a.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말라. 어느날 실망이 몰려온다. 죄책감이 몰려온다. 예화 : 조용기 ❝위에서 보내서 왔다!❞ 

    b. 대신에 우리의 담보와 보증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지나치도록 신뢰하라. 그분이 힘과 소망을 주신다. 

    c. 나의 담보와 보증인이 되어줄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예수님은 기꺼이 나의 담보와 보증인이 되어주신다. 

    d. 예수님이 계시면 든든하다. 최후의 심판 앞에서 예수 담보(보증인) 없이 돈, 빽, 명예, 지위, 마귀는 쓸모없다.  

5. 예화 : 아버지 담보에 거지 신세 ➜ 하나님도 그 아들을 담보로 제공하실 때 찢어지는 고통과 수치를 당하셨다. 

6. 예화 : 필리핀에 장애아들 버린 한의사父(부산, 47, 48). 마산, 네팔, 괴산 사찰, 필리핀 유기. 정신분열 한쪽 눈 실명. 

7. 히브리서 13:5~6. 돈과 사람, 세상을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우리 담보와 보증인이 되신 주님만 더욱 붙들자. 

 

둘째, 예수님만이 우리의 중보가 되시기 때문이다(23~25절). 

0. 중보는 ❛두(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일이 성사(화해)되도록 주선하는 사람❜이다. 주님이 이런 중보가 되신다. 

1. 23~25절을 보자. ❝제사장 된…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a. 제사장직 대물림(아론에서 AD70 84명)은 제사장의 최후 죽음은 불완전함과 한계를 말한다. 모든 종교처럼. 

    b. 반면에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분은 완전하시다.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기 때문이다. 

    c. 예수님은 그 작은 믿음으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중보가 되신다. 

        ❶ ❝온전히 구원❞하신다는 말은 ❛영원한 구원❜을 말한다(시간적). 십자가 보혈의 효력은 영원하다. 철회가 없다. 

        ❷ ❝온전히 구원❞하신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모두 만족시킴❜을 말한다(질적). 최고의 만족이다. 물과 콜라. 

    d. 왜냐하면 그분은 ❝항상 살아 계셔서 간구❞해주시는, 연약한 우리의 완전하고 영원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❶ ❝간구하심❞은 ❛다른 사람을 위해 중재하다❜는 말이다. 

        ❷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을 위해 왕에게 간청을 올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❸ 랍비들은 천사를 중보자로 간주했다. 그러나 저자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중보자임을 명확히 설명한다. 

        ❹ 오늘날 허다한 가짜 중보자들이 있다. 사이비 교주, 종교, 용한 무당, 예언 은사 받은 사람… 가짜다. 속지 말라. 

    e.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항상 살아 계셔서 중보하시는 예수밖에 없다. 

2. 이 땅에 오셔서 이미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중보(중재)하신다. 

    a. 우리가 육신이 연약하여 넘어지고 죄를 지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마다 예수님은 중재해 주신다. 

    b. 주를 믿을 수 있는 최상의 기회, 주를 섬길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무시해버리는 우리를 위해 다시 중재하신다. 

    c. 누가복음 13:7~9. 주님은 신앙과 삶에서 아무런 열매 없는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중보가 되신다. 

    d. 누가복음 22:31~32. 마귀가 밀까부르듯 하려고 하는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 우편에서 중보하셔서 우리가 있다. 

3. 예화 : 마약을 끊은 청년 

미국에 오랫동안 마약 중독과 싸웠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잘못된 아이들과 어울린 후 40대 초반까지 계속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있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었고 가정환경도 좋은 편이었기에 여러 카운슬링도 받고 여러 치료 센터에도 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그가 마약을 끊고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그렇게 마약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사투를 잘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끊도록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물었다. ❝어떤 좋은 치료 프로그램을 받았니?❞ 그가 말했다. ❝아니야.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면서 그냥 끊어졌어.❞ 예수님이 간구하신 결과다. 

5. 우리의 기도가 더디게 응답될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의심하지 말라. 

    a. 예수님은 우리의 서투른 기도, 부족한 기도, 잊혀진 기도를 모아서 아버지께 자신의 기도로 다시 바친다. 

    b. 우리의 연약한 기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기도를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바치니까 응답이 되는 것이다. 

    c. 때로는 ❛기도의 잔❜이 차야 응답이 된다. 그러니 기도의 잔이 차도록 낙심 말고 인내하며 꾸준히 기도하라. 

    d. 사도행전 4:31. 기도의 잔이 차니까 모인 곳이 진동하며 응답됐다. 한반도의 1907 부흥도 기도의 잔의 결과다. 

5. 예화 : 임현수 목사님의 북한 석방기(주보) / 모친들의 중보기도와 백세노인의 치유 ➜ 드디어 기도의 잔이 찼다. 

북한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는 그들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받은 연단을 통해 온전함을 입었기 때문이다. 노동 교화소에서는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작은 배려도 받았다. 내 체중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을 보고 음식도 적지 않게 주어서 회복이 되었다. 어디에나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대다수의 보안원들은 나를 선대해주었다. 또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도 감사하다. 노동 교화소는 하나님께서 내게 마련해주신 수도원과 같았다. 노동과 기도와 말씀 묵상이 2년 7개월 9일 동안 내 생활의 전부였다. 내가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조르며 기도를 드릴 때마다 주신 말씀이 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 욥 23:10 ❝내가 가는 길을 주가 아신다❞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그러면 더 이상 조를 필요가 없지 않나? 하나님 뜻이 있어서 허락하신 연단이라면 주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누가 힘들게 하면 ❝수도원에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자. 

 

에필로그. 

1. 로마서 1:7. ❝OO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축하하는 초대교회 신자 사이의 표준적인 인사말 ❝당신에게 은혜가!❞ 

2. 왜 예수냐? 세상 거짓 신들의 전쟁 가운데서 우리는 왜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섬기는가? 

    a. 예수님만이 우리의 담보가 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의 담보가 되시니 걱정 말고 믿음으로 행하자. 

    b. 예수님만이 우리의 중보가 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의 중보가 되시니 맡기고 의지하며 기도의 잔을 채우자.



출처: https://modeni.tistory.com/entry/왜-예수냐히-72025-1 [하나님의 좋은계획 모든이교회]


성경 딤전2:5, 히7:25절, 이 두절을 종합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한분뿐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일하신 중보자 이신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셔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므로 허물과 죄로 죽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던 우리로 하여금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 영원히 거하는 완성된 구원을 받게 하셨는데 이 구원으로부터 한 사람도 탈락하지 않도록 중보자 이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쉬지 않고 중보 기도를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요6:39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증언 하셨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 안에 영원히 거하는 완성된 구원을 받는 것은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께서 이 구원으로부터 한 사람도 탈락하지 않도록 지금도 쉬지 않고 행하시는 중보 기도를 포함한 중보 사역 없이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이를 역으로 말하면 화목제물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중보기도를 포한한 중보 사역은 허물과 죄로 죽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 안에 영원히 거하는 완성된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 없이 넘치게 충족되고 만족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요14:6절과 행4:1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다.

이 사실을 롬6:3-5절에 의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허물과 죄로 죽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때 우리들도 주님과 연합되어 함께 죄의 사람이 멸해지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들도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되어 함께 영원히 살아나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연합되어 하나님 안에 영원히 거하게 되는 완성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함께 죄의 사람을 죽게 하고 함께 의의 사람으로 살게 하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일어날 수도 없고 이루어질 수 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가 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로 다 제거 하시는 중보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케 하고 연합하게 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영원한 구원을 완성하셨는데, 이 완성된 구원을 위해서 중보사역을 다 이루시고 지금도 우리들로 하여금 이 구원을 잃지 않도록 계속 중보 기도를 하시는 한 분뿐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이시기 때문에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만이 중보 기도를 포함한 중보 사역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되심을 좀 더 자세히 상고해 보자

중보의 히브리어는 מליץ(melts)이고 헬라어는 μεσιτης(mesites)이다. 이 중보에 대해서 성경 사전을 찾아 보니 중보(Mediator)란 서로 대립, 또는 적대관계에 있는 양자사이에 서서, 대적하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에 의해 화해와 일치를 가져오게 하는 것을 중보라고 하고, 이 중보 사역을 하는 자를 중보자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에수께서는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대적하게 하는 죄를 제거하고 소멸하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성립케 하고, 화목을 가져오게 하고 일치하게 할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이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항상 중보 기도하시는 오직 유일하신 중보자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딤전2:5절을 다시 한 번 읽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구약에 있어서는, 중보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는 있지 않으나, 실제로 중보의 역할을 한 사람들의 사역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족장으로서 그 종족을 대표하여 하나님과의 언약(계약) 관계에서 중보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창2:7이하)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율법을 받아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계약) 관계를 확립하는데 있어서 중보의 역할을 하고, 또한 백성을 위해 실제로 중보한 사실이 나타난다. 출30:30-32절에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했다.(출3:7-12; 신5:1이하) 뿐만 아니라 선지자와 제사장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의해 혹은 백성을 대신하여 기도를 하는 일에 의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단9:19-24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내가 이 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기록되었다.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선지자, 제사장의 중보 역할은 지극히 부분적이고 온전치 못한 것으로 다만 참되고 완전한 의미의 중보자로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고 예언하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였음을 보여 준다. (사11:1이하).

신약에 있어서는, 참되고 완벽한 중보기도를 포함한 중보 사역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인간에 의한 부분적, 예표적 중보는 결코 용납 될 수 없는 것이므로 신약에서는 사람으로서 중보 기도를 포함한 중보 사역을 했다는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다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라고 기록 되었다.(딤전2:5, 히7:25)

중보자는 어느 한편에만 속한 자가 아니라는 말씀처럼(갈3:20),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의 본체의 참 형상,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하나님으로서(요1:1, 히1:3;7:26-28) 혈육을 갖추신 모든 점에 있어서 사람과 같이 되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히2:14-18; 4:
14-16) 중보자로서의 완전한 자격을 갖추신 분이시다. 이같이 중보자로서의 완전한 자격을 갖추신 그리스도는

(1) 하나님을 계시하는 일에 있어서, 요1:1절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와 요1:18절, “본래 하 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는 구절, 그리고 요10:30절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라고 빌2:6절에 기록 되었다.
(2) 이처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은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육체로 허셨다고 했고(엡2:14), 이어서 엡2:16절에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므로 허물과 죄로 죽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셨는데, 곧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말씀한다. 이처럼 인자이신 예수께서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원수 되었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연합하게 하셔서 하나님 안에 영원히 거하는 완성된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유일하신 구세주이시고 중보자이시라는 것이다(롬3:23-26, 고후5:19).
(3)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고, 자신이 구원하신 자 중에 한 사람도 잃지 않기 위해서 쉬지 않고 중보기도 하시고 있음을 롬8:33,34절에서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의 이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지금도 계속 중보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라고 말씀 한다.
위의 세 가지의 내용을 잘 나타내는 빌2:5-11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위의 모든 말씀을 종합해 보면 이같은 중보 기도를 포함한 중보 사역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유일하신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중보 기도가 남을 위한 기도로 일반화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결코 중보자일 수 없는 이들에 의해 중보 기도가 오늘 날, 남용(일정한 기준이나 한도를 넘어서 마구 쓰는 것)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따라서 중보는 한분이라는 말씀을 받들어서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겸손 하게 남을 위한 기도로 적합한 도고 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권한다.

딤전2:1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라는 4개의 단어, 곧 명사 목적격인 단어들을 컴마 없이 연속해서 사용한 것은 눅11:9절에 기도의 다른 표현으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세 번 반복하므로 쉬지 말고 열심히 기도할 것을 강조한 것과 같이 간구 기도 도고는 기도의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에게 남을 위한 기도를 할 때 항상 열심히 기도하며 감사할 것을 강조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 의미를 잘 살려서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권합니다. 그대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며 감사하시오.” 라고 했다. 다음 2절에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1절의 말씀에 이어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말씀 한다.

본문 딤전2:1절에 나오는 도고(禱告)라는 단어는 기도로 고한다는 뜻인데 헬라어는 εντευξις로 누구를 위한 기도, 탄원 등, 주로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주로 사용 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족과 친척들, 교회와 성도들, 국가와 위정자들, 선교지와 선교사 및 선교단체들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간단한 하나의 단어를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도고기도로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적절하다고 본다.






'중보'란 무엇인가?

1.  '중보'의 어원(語原)
(1) 히브리어 : 아라브(arab: 보증하다,사 38:14), 파가쉬(pagash: 만나다,출 4:24),
파가(paga: 화해하다,사 53:6, 59:16;렘 7:16)
(2) 헬라어 : 메시테스(mesites 중보,히 8:6), 헤메시투세.

2. '중보'의 의미(意味)
중보하다(intersecede)는 '사이로 들어가거나 통과하다', '서로 다투거나 사람들을 화해시킬 목적으로 당사들 사이에서
활동하다', '중재하다', '조정하거나 중재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중보(仲保, mediator)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일을 주선하는 일(딤전 2:5; 히 8:6)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3. 중보자(仲保者)는 누구인가?

1) 중보자의 어원(語原)
(1) 히브리어 : '멜-리-쯔'(meli-ts) = 영어 '인터프리터'(interpreter: 해석자,욥33:23;통변,通辯,창42:23)
(2) 헬라어 : '메시테-스'(mesites) = 영어 '미디에이터'(Mediator: 중보자,딤전2:5).
신약성경에는 '중보자'(mesites:,메시테스)라는 용어가 6회(갈3:19,20;히8:6,9:15,12:24) 사용되어 있다.

2) 중보자의 의미(意味)중보자(仲保者, mediator)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그 관계를 성립케 하고, 화해를 가져오는 사람(욥9:33;갈3:19,20;딤전2:5;히8:6,9:15,12:24)이다.

3) 중보자의 필요성(必要性)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다. 또한 인간은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이다. 이처럼 사람은 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또한 살아가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회복할 수 없는 원수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결정적인 화해자로서의 중보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역할을 맡은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딤전2:5). 다른 인간적인 중보는 인정되어 있지 않다. 히브리서는 특히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도를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이 말해지고 있다(히6:20,9:15).
예수님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은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즉 일회적인 희생제물이 됨으로써 영원한 화해가 이루어졌다.

4) 중보자의 자격(資格)
(1)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한다. (2) 무죄 하여야 한다. (3) 신.인 양성을 가지신 분으로 참 하나님과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대속사역을 완수키 위한 조건인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고, 죄인 위해 중보를 하시는데 있어서(롬8:34;히7:22-25), 중보자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셨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5) 예수님이 중보자인 성경적인 근거(根據)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 41문> 어찌하여 우리 중보를 예수라 칭하였는가? (답)우리의 중보를 예수라 칭한 까닭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었다. (마1:21) <문 42> 왜 우리의 중보를 그리스도라 칭하였는가?
(답) 우리의 중보를 그리스도라 칭한 것은 낮아지고 높아지신 그의 신분에서 그의 교회와 선지자 제사장 및 왕의 직분을 행하게 하시려고 한량없이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을 받고 성별되시어 모든 권위와 재능을 충만히 받으셨기 때문이었다. (요3:34;시45:7;요6:27;마28:18-20;행3:21,22;눅4:18,21;히5:5-7,4:14-15;시2:6;마21:5;사9:6,7;빌2:8-11)








로마서 1:1-4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복음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의 일(창세기 3:15)

한글 개역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공동번역 /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마귀의 일(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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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홍해인가?



출애굽기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는 은혜와
기도할 때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당하라!

주여
주의 말씀에 정복당하게 하옵소서!

첫째, 하나님이 길(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사람들이 실망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려고 홍해 길로 일부러 인도하셨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까지 장애물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방패시요

둘째, 온전하신 길(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출애굽기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사람들이 길을 만들 때는 산을 깎든지, 굴을 뚫든지, 산을 돌아가든지 하여 길을 만들려고 한다.

바다가 갈라졌을 때 그 바닥은 젖은 땅입니다.
그런데 그 땅은 마른 땅이 되었다는 것은 완전한 길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질병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가난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고통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바다를 마른 땅 되게 하신 하나님이 마른 땅 되게 하실 것입니다.

셋째, 말씀을 말씀으로 들어라(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출애굽기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넷째, 과정(이사야 41:4)

개역 한글 성경에서는 "과정"이란 단어가 사용된 것이 없다.
그러나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과정"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이 3번 사용되었다(다니엘 1:5, 18, 이사야 41:4)

다니엘서 1:5
왕은 또 자기가 먹는 제일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 가운데서 날마다 그들에게 일정한 양을 공급하였으며 3년 동안의 수련 과정이 끝나면 왕 앞에서 섬길 수 있도록 하였다.

다니엘서 1:18
왕이 정한 3년 동안의 수련 과정이 끝나자 궁중 대신은 그들을 느부갓네살왕 앞으로 데리고 갔다.

이사야서 41:4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였느냐? 누가 역사의 과정을 정하였느냐?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있었고 세상 끝날에도 있을 나 여호와가 아니냐?

현대인의 성경 /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였느냐? 누가 역사의 과정을 정하였느냐?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있었고 세상 끝날에도 있을 나 여호와가 아니냐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하는 고난, 고통, 질병, 실패, 실망은 결과가 아니다.
과정입니다.
과정은 잘 견뎌야 합니다.

과정신학(Process theology)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으로부터 발전된 신학이다.
찰스 하츠혼 좁 캅에 의해서 유명해졌다.
과정신학과 과정철학은 과정의 사상에 연관된다.
황트 헤드와 찰스 하츠혼은 신의 본질적 속성은 일시적인 과정에 의해서 영향을 주고 그리고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신론은 신은 모든 면에서 영원하고, 세계에 의해 변화되지 않으며, 세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본다.
과정신학은 바로 이런 요소들을 부정하는 것이다.

과정 신학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좀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그 사상적 기초는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hy)에 있다.

‘과정'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고정된 존재를 연구하며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변화성과 새로운 존재로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정 철학이나 신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인식되는 용어가 바로 ‘합생(concrescence) : 존재로 구체화되어가고 만들어져 감' 이다.

단어의 풀이에도 나와 있듯이 전통 서양 사상에서 발견되는 존재론적 사고와는 달리 이 존재의 형성이 마지막을 향해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의미가 과정이라는 말 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정 신학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도 이런 합생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물질적인 성분보다는 현실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계속적인 관계와 진행에 공헌하는 사건의 연속으로 신을 감지하려 한다.
존재론적 입장의 신처럼 자기 존재에 대해 강압적이지 않고 오히려 관계성을 중시하는 설득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과정 신학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이다.

과정 철학에서 우주와 세계는 자유의지의 대행자에 의해 수행되는 과정과 변화로 그 특징과 성격이 정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신은 개체와 사건들 모두를 관여하고 통제하기보다는 연속되는 사건들과 개인의 일들에 가능성을 제공하며 끊임없이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로 인식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해 보면 신은 모든 것들에 대해 의지를 갖고 있지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결과가 신의 의지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과정 신학에서의 신은 변화하는 모든 우주와 만물에 관련하는 신이며,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관여하는 신이기에, 시간의 진행에 따라 변화한다.
하지만 이 말은 신의 총체성이 변한다는 뜻이 아니다.
신의 추상적인 요소인 선함, 지혜와 같은 개념은 영원히 견고하게 신의 형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과정신학의 신론은 이원론적 신론이다.
신은 살아있는 존재로서 꾸준히 변화하며 또한 영원한 근원으로서 변하지 않는 영속성을 함께 소유하는 존재이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 시작되어 찰스 하트숀(Charles Hartshorne)을 거쳐 과정 신학자 존 콥(John B. Cobb), 데이비드 그리핀(David Ray Griffin)과 같은 신학자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서구 전통 사상 체계에서 중시되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아퀴나스식 형이상학에서, ‘되어짐(becoming)'보다 우선시 취급되는 ‘있음(being)'의 생각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정 신학에서 중점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몇가지 것이 있는데

첫째는 과학과 신학을 통합하려는 노력이다.
끊임없는 상호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새로운 지평을 열기를 소망한다.

둘째로 신학에서 언어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에 대해 꾸준히 대답한다.
또한 과정 신학은 신에 대한 각 개인들의 관점에 가능하고, 분명하며, 생동감 있는 설명을 제공하여 많은 상황 속에서도 관여하시는 신의 존재성을 제시해 준다.

몇 가지 의문도 함께 제시하는데 이렇게 개인적 신에 대한 이해들에 적합한 신학이라면 과연 그 중 어떤 이해가 옳은 것이며 이런 많은 신에 대한 이해들의 통합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또 과정 신학에서의 신은 신의 무한한 능력과 전지전능의 개념에 충분하고 이성적인 답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나아가 기독교를 포함한 전 인류에 있어서 종교의 한계성을 극명하게 표현하게 되어 종교 자체에 대한 회의를 제공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과정신학 역시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없다.
신학이라는 것이 신에 대한 이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는 것이기에 여러가지 형태의 신학이 가능하다. 비록 거기에 모순이 있다고 해서 그 가치마저 사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만의 가치로 인해 더 큰 연구와 업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신학을 되짚어보는 이유가 바로 더 나은 신과의 관계를 위함이고 더 나은 신학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욥기 3:25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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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밟고 걸어가라!


마태복음 14:25-26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복음(福音)의 비밀(秘密)














































유럽에 기독교의 봄 다시 오나

12일(현지시간)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캐논 J. 존(Canon J.John) 목사가 쓴 ‘유럽은 이제 다시 씨를 뿌릴 준비가 된 토양인가(Is Europe a soil now ready again for sowing?)’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J Canon JJohn

캐논 J. 존 목사는 영국의 국제 순회 전도자이자 기독교 작가 겸 연설가이며, 2017년 초교파 복음주의 기독교 축제인 저스트원(JustOne)을 출범, 런던 아스널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시작으로 매년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존 목사는 오랫동안 신앙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서유럽이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며 “적어도 지역적으로는 유럽의 단단한 지반이 복음에 대한 새로운 수용력으로 깨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주최했던 십계명 미션 시리즈와 복음주의 전도 행사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으며, 코로나 이후에도 747개의 교회와 120개의 교도소에서 자신이 설교를 초청받을 만큼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증거했다.

그는 또한 “영국의 많은 교회가 최소 한 두 가정의 개종자 가정을 가질 만큼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유럽의 이란 이주자들과 난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하나님은 대륙전역에 있는 1,200백만 명의 로마, 집시 민족들 사이에서 일하고 계시며 3분의 1이 현재 오순절 기독교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현대 무신론의 발상지인 프랑스에서 복음주의자들이 5만 명에서 7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며 “유럽의 영적 토양은 수세기에 걸친 어떤 세대보다 복음에 대한 조짐이 더 좋다”고 평가했다.

존 목사는 변화의 이유 중 하나로 프랑스 혁명 이후 복음에 대항했던 ‘세속주의(secularism)의 쇠퇴’를 꼽았다.

그는 “사람들이 삶의 대한 신념으로서 세속주의, 즉 비종교라는 종교(religion of non-religion)의 실패에 환멸을 느끼면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큰 부분”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세속주의가 실패한 이유로 “우리의 머리, 삶, 마음, 즉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에 있어 불충분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존 목사는 과거 세속주의는 “종교에 대한 부적절하고 유치한 설명을 과학에 기초한 더 나을 설명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우리는 엄청난 기술 발전을 보았지만, 과학은 존재에 대한 큰 문제에 답하지 못했다”며 “생명, 의식, 심지어 우주 자체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속주의가 척박하고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복음은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분께 사랑을 받으며, 우리가 선택한다면 그분에 의해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는 가장 풍부하고 의미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세속주의의 세 가지 실패로 윤리의 실패(failure of ethics), 기대의 실패(failure of expectation), 그리고 권한 부여의 실패(a failure of empowerment)를 꼽았다.

윤리적 실패에 대해 그는 “무의미한 우주에서는 의미있는 도덕성을 얻을 수 없다. 그 결과는 골칫거리”라며 “개인으로서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도 그는 “하나님이 주신 법칙에서 해방된 정치는 약자들이 무너지는 승자독식의 도덕적 게임이 되고 있다”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잔인하고 단순화된 확실성이 세속주의의 공백 속에서 번성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복음은 옳고 그름의 확고한 토대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정의롭고 은혜롭고 사랑이 많은 하나님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또한 세속주의에 대해 “목적과 희망이 없는 암울한 신조이며 목표와 야망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질문하면) 대답은 침묵”인 반면 “복음은 이번 삶과 다음 생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존 목사는 세번째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운명이든, 우연 또는 영적인 힘이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지배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억압 속에서 세속주의는 무력하다”며 “복음은 그렇지 않다. 예수는 모든 권세를 다스리는 주인이다. 로마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세력의 노예화로부터 해방시킬 힘을 발견했기 때문에 돌파구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세속주의는 실패했고 유럽 전역에서 세속주의가 낳은 메마른 토양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씨 뿌리기를 받아들일만한 시간이 있다”며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의 도전에 대해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해답을 주는 유일한 신조는 정통 기독교(authentic Christianity)”라고 제시했다.

[출처]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3725#share



김일성 가문 그리고 평양 장대현교회 유래


               강돈욱(칠골교회 장로)

김형직 + 강반석(1892-) / 넬슨 벨 선교사가 중매하여 결혼
               강반석의 본명은 "강신희" 넬슨 벨 선교사가 개명하였다.
             

김일성(김성주) + 김정숙

사람들이 평양을 가리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른다.
북한에서는 예루살렘이라는 말보다 쿠드스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은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것으로 하여 더 유명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을 뜻이다.
아랍인들은 이곳을 아랍어로 ‘알 쿠드스’(신성한 곳이라는 뜻)’라고 부르고 있다.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미국선교사인 사무엘 모펫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1893년에 평양에 처음으로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이름을 우리나라에서는 삼열목사라고 불렀다.
26살 나이인 1890년에 선교를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한 삼열목사는 일제의 조선침략을 반대하였고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을 지지하였다는 이유로 1936년에는 일제로부터 강제추방되기도 하였던 명망이 높았던 목사다.

그가 평양을 근거지고 삼고 목회자 양성에 나섰던 장대현교회는 현재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평양학생소년궁전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평안남도 대동군 강서군에 탄포리교회청산포교회가 세워졌고 평안남도 남포시 태평에는 외리교회가, 중화군에는 읍내교회 등 여러 교회가 생겨났던 것이다.

당시 평양선교에 나섰던 미국 선교사들로는 삼열(사무엘)목사 외에도 그라함목사, 스왈론 선교사, 감리교의 홀 선교사 등이었다.
그들에 의해 1900년에 성경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김일성의 부모들이었던 김형직강반석도 평양에서 시작된 기독교 복음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1892년에 강반석이 출생할 당시 그의 아버지인 강돈욱은 칠골교회 장로였다.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도 어려서부터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평양순화학교를 다니며 목사가 될 것을 꿈꾸었다고 한다.
당시 김형직은 우리글로 번역된 성경책을 붓글로 옮겨 적으며 성경구절을 탐독하였고 교회에도 열심히 출석하였다.
칠골교회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넬슨 벨 목사는 교회에 잘 나오는 그에게 다른 학생들처럼 돈 1전씩 주었는데 김형직은 그 돈도 고스란히 교회 헌금통 안에 집어넣는 정직한 신앙심을 보여주었고 이런 일로 미국 선교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미국 선교사 넬슨 벨의 김형직에 대한 사랑은 당시 교회 장로였던 강돈욱의 딸 강반석과의 중매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북한당국은 김일성이 미국인 선교사의 중매로 부모들이 만나 태어나게 된 사실을 숨기고 있지만 1992년에 북한에 와서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였던 넬슨 벨의 사위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2017년 재미동포 작가가 쓴 김일성 평전 상(上)권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에는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과 아버지 김형직이 결혼할 수 있도록 주선한 사람도 나의 장인이었다.
김형직이 살았던 동네에도 교회가 있었는데 나의 장인이 자주 그리로 가서 설교를 하였다.
김형직이 이 교회에 나왔는데 그는 밑으로 동생만도 다섯이나 있었고 집안 살림은 째지게 가난했지만 교회에 나와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사람이었다.
후에는 또 숭실중학교에도 들어갔는데 나의 장인이 강돈욱에게 그를 사위로 삼으면 좋겠다고 소개하여서 금방 혼사가 성사되었다”

강반석의 이름을 지어준 미국선교사 넬슨 벨의 사위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92년과 1994년에 평양에 가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연를 하였는데 그는 김형직과 강반석의 중매를 선 것은 물론 김일성의 어머니의 본명인 강신희라는 이름을 반석으로 고쳐주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심이 그가 넬슨 벨 목사에게서 받았던 세레명이 강반석이었고 후에 그 이름이 개명되어 지금까지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김일성과 북한당국이 숨겼던 이유는 하느님대신 자기를 신처럼 우상화하려는 속심 때문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고 칠골교회 장로였던 김일성의 외할아버지 강돈욱과 가까운 사이였던 미국 선교사인 넬슨 벨이 강반석의 이름을 지어준 것만 보아도 김일성 외가의 기독교 사랑을 잘 알 수 있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였다는 사실은 북한주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이름도 관례대로 한다면 김일성의 친할아버지인 김보현이나 아버지인 김형직이 지어주어야 겠지만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이 지어주었다.

당시 친할아버지인 김보현은 글도 모르는 농사꾼이었고 반면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은 한자와 우리글을 잘 아는 교회 장로였고 창덕학교 교장이었다.
이렇듯 김일성은 미국인 목사의 중매로 세상에 태어났고 교회 장로인 외할아버지로부터 태어나서 김성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이 다녔던 평양숭실중학교는 미국 선교사들이 지은 학교였다.
김형직은 미국 선교사들의 추천으로 숭실중학교에도 입학하였는데 북한당국은 숭실중학교를 다닌 사실은 배워주면서도 이 학교가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종교인 양성학교라는 사실은 여전히 숨기고 있다.

반석은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석이란 이름은 예수의 12명 제자 중 한 명인 베드로를 우리말로 번역한 이름이다.
성경의 마태복음에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자 예수님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외할아버지 강돈욱, 외삼촌 강진석, 작은 외할아버지 강량욱이 모두 기독교 신자이거나 목사였다는 사실은 김일성의 외켠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아직도 1990년대 초에 이미 김일성종합대학에 종교학과가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북한주민들이 많지만 김일성은 자기가 어릴 적에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던 추억을 하면서 죽기 전에 교회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김일성의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에 대해 그의 작은 외할아버지인 강량욱과 평양에서 교사생활을 하였던 전 연세대학교 박대선총장이 한 증언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김일성이 빨치산활동을 할 때 자주 얼결에 찬송가를 부르군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는 “김일성이 ‘피난처 있으니’ 등의 찬송가를 자주 부르곤 했다”면서 김일성이 어린 성장기 나이에 부모들을 따라 교회에 나가 부르던 찬송가가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저도 이젠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한지도 어연 10년이 되어오지만 얼결에 북한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이럴 때면 김일성이 어릴 적에 교회에 다니면서 찬송가를 부르던 습관이 이런 행동을 하게 했으리라는 공감이 든다.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북한의 많은 노래의 곡이 찬양가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가사는 달라도 노래 곡조가 신통하여 북한노래가 기독교와 천주교 신자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모방한 것이 많다는 것은 저만의 아니라 많은 탈북민들의 공통된 이야기이다.

강반석은 결혼전에는 칠골교회에 다니다가 결혼 후에 만경대 인근에 있던 송산교회당에 김일성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온 가족이 북중국경인 중국 팔도구에 살 때에는 압록강 건너 북한지역인 양강도 후창군읍에 있었던 포평교회당에 다녔다.

이렇듯 김일성은 미국인 선교사의 중매로 부모들이 만나게 되어 세상에 태어났고 어린 유년시절에 신앙심이 높은 어머니 강반석의 영향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어린 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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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장대현교회 이야기

1866년 8월 27일 "제너랄 셔면호"가 평양 대동강으로 올아왔다.
당시 대원군은 외부와의 소통을 단호하게 거부하던 정책에 따라 '네저널 셔면호'를 향하여 집단에 불을 지펴 상류에서 떠내려 보냈다.
결국 '제너럴 셔먼호'에 불이 났고 육지로 올라오는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사람은 병사 "박춘권"이었다.
토머스선교사(Robert Jermain Thomas, 1839-1866) 박춘권에게 한문 성경 한 권을 건네주었는데 이 성경을 박춘권은 영문 주사 "박영식"에게 주었다.
박영식은 한문 성경을 한장씩 찢어 종이가 귀한 시절인지라 방에 벽지로 발랐다.
얼마 후 박영식은 그 집을 "최치량"에게 팔아넘겼다.
'최치량'은 그 집을 여관으로 운영하였다.

평양을 방문했던 "사무엘 모펫(마포삼열)" 선교사가 그 방에서 묵게 되었는데 벽에 바른 것에 관심을 갖고 살펴본즉 한문 성경인 것을 알고 그 집을 매입하여 "널다리 교회"를 설립하였다.
'널다리교회'가 바로 1907년 평양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장대현교회"이었다.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토마스"의 순교가 맺은 결실은 장대현교회로 열매가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영국 런던선교회 소속)

웨일스 라예다에서 로버트 토마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토머스의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영국 회중교회의 사역자였다.
런던 대학교를 졸업한 뒤 청나라와 조선 선교에 뜻을 두고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倫敦傳道會​) 소속으로
부인과 함께 청나라로 떠났다.

몇 달간의 여행 끝에 상하이에 도착하였고 부인인 케더린은 동료 선교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충격에 유산하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토마스는 이일로 고통에 잠기게 된다. 또한 런던선교회 중국 지부장인 뮤어헤드의 사립학교 엥글로-차이니즈라는 학교의 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그는 거절한다.

"저는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근거를 토대로 반대합니다.
저는 돈을 원하지 않습니다.
또한 교육이라는 명분에 갇혀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교사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라고 런던 선교회에 의사를 피력한다.

중국에서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1865년에는 조선에 잠입해 성경을 배포하며 선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에서 돌아온 후에는 베이징에 있는 선교회 산하 학교에서 교장으로 부임했다.

이듬해인 1866년 프랑스 신부들의 학살에 항의하기 위하여 조선으로 떠나는 프랑스 함대에 통역관으로 합류하기로 되어있었으나,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는 때마침 베트남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상해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토머스는 미국의 상선인 제너럴셔먼호에 항해사 겸 통역으로 탑승하여 다시 조선으로 떠났다.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에 진입하여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만경대 한사정(閑似亭)에까지 올라와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던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을 붙잡아 감금하였다. 토마스는 이 일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평양성 내의 관민(官民)은 크게 격분하여 강변으로 몰려들었고, 셔먼호에서는 소총과 대포를 이들 관민에게 마구 쏘아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제너럴 셔먼호는 모래톱에 좌초되었고, 이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철산부사(鐵山府事) 백낙연(白樂淵) 등과 상의하여 음력 7월 21일부터 포격을 가한 뒤 대동강 물에 폐식용유를 풀고 불을 붙여 셔먼호를 불태워 격침시켰으며, 승무원 23명 가운데 대부분이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배는 소실되고 승무원 전원이 죽었으며 통역관 역할을 한 토머스는 이 과정에서 사로 잡혀 순교했다.

"내가 오늘 서양 사람 하나를 죽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에 웃으면서 책 한 권을 내밀며 받으라고 권했다. 결국 그를 죽이기는 했지만, 그 책을 받지 않을 수 없어서 가지고 왔다."라고 그를 죽인 병사는 회고 했고, 평양신학교 제 1회 졸업생으로 조선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한석진 목사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평양에 온 것은 임진년 10월, 즉 주후 1892년으로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지 26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이 때 저는 성경을 팔며 전도하러 다니면서 토마스 목사의 순교를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너럴셔먼호가 불에 탈 때 바깥으로 성경을 던지면서 "야소(예수)!"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전도하는 내용과 팔러다니는 책자가 그 서양인이 배에서 던진 책과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제너럴셔먼호에 승선했다가 살해된 토머스가, 한때 박규수의 초청으로 평양에 왔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 성균관 대학교 한국한문학 김명호교수는 이 견해에 대하여 "토머스 목사가 조선에 들어오기 직전 베이징에서 박규수를 만나 선교활동의 지지와 후원 약속을 받았다는 설은 사실 무근으로, 셔먼호 사건 당시 박규수청나라 베이징에 간 사실이 없다"며 반박했다.



부산지역의 부전교회를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150주년을 기념하여 함께 이를 기념하게 된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추진하여 주신 한국기독교사연구소의 박용규 소장님과 이 뜻에 공감하여 기꺼이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부전교회와 박성규 담임목사님, 그리고 당회와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부전교회는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건강하고 건실한 교회이고 박성규 담임목사는 부산의 영적 갱신과 부흥을 위해 헌신하시는 영적 지도자라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오늘 모임에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 깊이 연구하신 박용규 교수님이나 토마스 목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득하신 고무송 목사님과 같은 학자가 강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양했으나 부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송구하게 생각한다. 오늘 필자는 토마스 선교사가 걸어갔던 26년의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고 오늘 우리들과 우리 교회에 주는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16세기 독일의 위대한 화가였던 알브레히트 뒬러(Albrecht Durer, 1471-1528)는 ‘그림’(painting)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첫째는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를 그렸다. 오늘 우리의 ‘기림’(commemorate)도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고, 둘째는 토마스 목사가 걸어갔던 믿음의 길을 기리는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해 우선 토마스 목사가 살아갔던 삶의 여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들의 신앙과 삶, 그리고 오늘의 교회 현실을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1. 출생과 가정 배경, 학교교육
로버트 저마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는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 1810-1884)와 메리 윌리암스(Mary L. Williams, 1817-1895)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는 당시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가이자 웨일즈 부흥을 주도한 윌리엄 윌리엄스의 제자인데, 중부 웨일즈에 있는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1837년 4월 18일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839년 여름 라야더(Rhayader)의 터바나클 교회 부임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둘째 아들 저마인 토마스가 출생했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이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강력한 성령의 역사 일어났고 교회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이곳에서 목회하면서 1795년에 창립된 런던선교회에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하는데, 후에 그의 아들이 런던선교회의 파송으로 중국으로 향하게 된 것은 흥미로운 관련이 아닐 수 없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1848년에는 몬머스셔(Monmouthshire)의 하노버교회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저마인 토마스는 8살이었다. 토마스는 이곳 하노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토마스의 교육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최초의 공교육이 이루어 진 곳은 란도버리(Landovery) 칼리지에 3년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 그리고 프랑스어를 공부했는데 이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언어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그가 언어에 재능이 있었다는 점은 그 이후의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후 토마스는 오스포드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이 보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도제식 의학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스텔라 프라이스(Stella Price)에 의하며 토마스는 외과의사가 되는 교육을 받으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고 워터만(Waterman) 의사 휘하에서 2년간 의학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왕실의사면허 시험 제도가 있어 공인된 의사 밑에서 훈련을 받고 시험에 합격하면 의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2년여 이런 교육을 받았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고, 육신의 치료자보다는 영혼의 치유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든 중 잉글랜드 노스헴톤 지역 온들(Oundle)에 있는 알프레드 뉴스 학교(Alfred Newth’s school) 보조교사로 부름을 받고 약 1년간 일하게 된다. 이 학교 교장 알프레드 뉴스는 중국선교를 준비했던 사람으로 로버트 모리슨에게 중국어를 배운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알프레드 뉴스를 통해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토마스는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캐를라인 갓프리(Caroline Godfrey)였다. 토마스는 주일에는 온들 회중교회에 다녔는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중 존 갓프리의 외동딸 캐를라인 갓프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여성은 토마스보다 2살 연상으로 후일 아내가 된다.
일 년 간의 교사생활을 마감한 토마스는 고향 하노버로 돌아갔고, 이때 아버지 청으로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것이 히브리서 13장 8절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본문의 설교였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의 신앙고백이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1857년에는 런던대학교 뉴칼리지에 입학했다. 온들에 있을 때 교장이었던 알프레드 뉴스의 친형인 새무엘 뉴스가 당시 학장이었다. 이곳에서 2년만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3년간 최고의 금액인 밀스장학금을 받았다. 이 시기가 웨일즈의 영적 부흥기였는데 토마스는 교수드르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 년 간 휴학했는데, 휴학기간동안 지역교회에서 설교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복학한 그는 중국선교에 대한 조바심으로 학교에 조기 졸업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가 선교의 이상을 갖게 된 데는 귀츨라프의 영향 또한 없지 않았다. 토마스는 1832년 충청남도 보령시의 고대도와 조선 해안을 방문했던 귀츨라프의 항해기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귀츨라프가 서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성경을 보급했듯이 후일 토마스도 동일한 방법을 선택했다. 1859년 10월 토마스는 런던선교회 소속의 록하르트(Lockhart) 선교사의 설교 듣고 큰 감명을 받는데, 그의 설교 또한 선교사의 길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록하르트는 1861년에는 영국공사관의 공의로 베이징에서 활동하게 된다.
 
2. 선교사로의 길
토마스는 1863년 5월 뉴칼리지 졸업했다, 휴학기간을 포함하여 6년이 소요되었다. 졸업 후인 5월 29일에는 런던의 회중교회에서 온들에서 만난 캐롤라인 갓프리와 결혼했다. 이때 토미스는 23세, 아내는 25세였다. 결혼 6일 후인 6월 4일에는 목사안수 및 선교사 파송식이 거행되었다. 이로부터 7주 후인 7월 21일 토마스 부부는 그레이브센드(Gravesend) 항구 떠나 상해로 출발했다. 그가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몇 가지 연쇄적 영향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 중궁은 인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선교지였고, 가장 많은 선교사가 파송된 지역이었다.
토마스는 영국을 떠난지 4개월 만인 1863년 12월 첫주 상하이(上海)에 도착했다. 런던선교회 상하이 지부장 무어헤드(William Muirhead)의 충심의 영접을 받았으나 두 사람 간의 친밀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상하이 도착 2개월 후인 1864년 2월 4일 자로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남아 있는데 이 문서에는 당시 정황을 헤아리게 해 주는 중요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도착 4개월 후인 1864년 3월 11일 런던선교회의 그리피스 존(Griffith John)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한커우(漢口)로 갔는데 그 기간동안 임신 중이던 부인은 유산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1864년 3월 24일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토마스는 타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게 되었고, 이 일로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사별의 아픔이치유되기도 전에 토마스는 또 다른 고뇌에 빠졌는데, 상하이지부장 무어헤드와의 갈등이었다. 선교관의 차이에서 유래한 갈등은 토마스에게는 심각한 현실이었다. 상하이에 주제하는 영국인을 위해 목회했던 무어헤드는 상하이가 선교 중심이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토마스는 자국민보다 중국인 선교가 우선해야 된다고 보았고, 한커우로 가고 싶어 했다. 토마스에게 신설되는 학교 교장직 요청을 받았으나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음으로 이 사역은 그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결국 토마스는 런던선교회를 사임하게 된다. 1864년 12월 7일이었다. 곧 이 일을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후회하게 되지만 토마스에게는 성급함과 무모함이 없지 않았다. 고무송 박사는 토마스에게는 모험정신, 강한 의무감, 무모함, 성급함, 엘리트 의식 등 몇 가지 기질 혹은 특징이 있다고 보았는데,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런던 선교회를 사임한 그는 현제 엔타이(煙臺)라고 불리는 지푸(Chefoo)로 이동하여 이곳 세관의 통역 및 감독관으로 일했다. 이때부터 1865년 8월 31일까지 약 8, 9개월간 일했다.
 
3. 제1차 조선 방문
지푸는 산동성 북부의 해안도시로서 조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당시로 볼 때 외국과의 무역을 허용한 유일한 항구였다. 이곳에서 토마스는 두 사람의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소속 알렉산더 윌리암슨(Alexander Williamson)은 두 한국인을 만나게 되는데, 김양선에 의하며 그 두 조선사람 김자평(金子平)과 최선일이라고 한다. 윌리암슨은 이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토마스도 함께 초대되었고, 이들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듣게 뙨다. 즉 한국의 로마가톨릭 신자는 5만명이 이르고, 11명의 신부들이 비밀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런 접촉을 통해 토마스는 조선 선교를 자원하게 되고, 스코틀랜드성서공회 대리인 자격으로 1865년 9월 4일 ‘허락되지 않는 땅’(terra incognito) 조선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제1차 조선방문인데, 윌리암슨으로부터 한문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보급 받았고 또 약간의 경비 지원도 받았다. 이대 김자평이 동행했고, 중국인 우웬타이가 항해를 맡았다. 그 달 13일에는 황해도 해안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황해도 옹진 자라리(紫羅里) 근포(近浦)였다. 이곳에서 성경을 나누어 주며 전도했고 한양까지 가려했으나 배가 파선되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을 떠난 그는 만주의 피쯔워 항구를 거쳐 도보와 말을 타고 여행하여1866년 1월 4일 혹은 5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지푸를 떠난지 4개월 만이었다. 조선에 체류한 기간은 2달 반 정도였고, 체류한 곳은 서해안, 곧 황해도나 평안도에 속한 도서지방이었다. 김양선 교수의 지적처럼 토마스를 인도했던 김자평이 황해도의 ‘육도’였기 때문에 자기가 잘 아는 지역으로 안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성경책과 기독교 문서를 배포했다. 이점은 토마스가 두 번째 조선으로 향하기 일주일 전에 런던선교회 지부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런던선교회 선교사로 재가입 되었고 근무지는 베이징 지부로 결정되었음을 통보 받았다. 즉 재가입된 것은 1865년 9월에서 11월 사이로 판단되는데 이 점은 토마스가 런던선교회 소속으로 조선을 방문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토마스가 런던 선교회 티드만 회장에게 보낸 조선방문 보고는 당시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스텔라, 100).
 
4. 제2차 조선 방문
고종 3년인 1866년은 우리나라 최대의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가 있었던 해였고 이때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압했을 뿐 아니라 약 8천명의 천주교인이 죽임을 당했다. 이 때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던 베르뇌(Berneux) 주교를 비롯하여 9명의 프랑스 주교들이 참수되었다. 천주교도를 색출하기 위해 오가작통법으로 감시했고 해안은 봉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두 번째 조선을 방문하게 된다. 토마스는 조선에서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선행을 시도했다. 그러든 중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으로부터 통역관으로 조선으로의 동행을 요청했다. 로즈 제독은 베이징의 프랑스 대사관을 방문했는데, 프랑스 대리공사 벨로네(Bellonet)에게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소식, 특히 프랑스인의 처형 소식 알려주었다. 벨로네는 로즈에게 조선 진격을 요구했고, 약간의 조선어를 알고 있는 토마스에게 로즈 제독의 통역관으로 조선 동행을 요청한 것이다. 주저되는 바가 없지 않았으나 토마스는 조선으로 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서 텬진에서 로즈 제독과 합류하여 지푸를 거쳐 조선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로즈 제독은 베트남 사이공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그리로 가게 됨으로 원래 계획이 취소되었다.
토마스는 조선으로 갈 길을 찾기 위해 일단 지푸로 갔다. 여기서 필요한 경비도 마련할 계획이었다. 여기서 다시 윌리암슨과 한국인 김자평을 만났는데 이들을 통해 조선방문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든 중 1884년 7월 29일 지푸에 커다란 선박이 나타났다. 그것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원래 이 배는 1861년 영국에서 건조한 범선으로 ‘프린세스 로얄’호로 불렸으나 1863년 1월 미국으로 넘겨져 미 해군에서 사용하였고, 1865년에는 경매에 넘겨져 상선으로 개조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위력을 떨친 남군의 장군 셔먼으로 이름을 따 제너럴 셔먼으로 개칭되었으나 더 이상 해군 함정이 아니라 영국의 메도우 사(Meadows Company) 소속 상선이었다. 이 배는 조선에서 팔릴만한 비단, 유리그릇, 천리경, 자명종 등을 싣고 텬진항을 거쳐 지푸로 온 선박이었다. 토마스가 어떻게 이 배에 승선하게 되었는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행을 의도했던 토마스에게는 조선행의 호기였다. 그 배가 어떤 성격의 배인지, 조선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베이징을 떠난지 26일 만인 1866년 8월 9일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했고, 이날 셔먼호는 조선으로 향했다. 알렉산더 윌리엄슨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양의 한문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공급받았다. 제너럴 셔먼 호는 무장한 상선으로 승선인은 선주 미국인 프레스턴(W. Preston)을 비롯하여 항해사 윌슨(Wilson), 선장 페이지(Page), 화물관리인 영국인 호가스(G. Hogarth), 토마스 선교사, 두 사람의 중국인 이팔행 등 항해안내원, 그리고 중국인과 말레시아인 선원 등 24명으로 파악된다. 후의 일이지만 고종실록에는 프레스톤을 보래돈(普來敦)으로, 페이지를 파사(巴使)로, 호가스를 하갈특(何噶特)으로, 토마스를 최란헌(崔蘭軒)으로 표기했다. 물론 최란헌이라는 표기가 토마스를 표기한 것이 맞느냐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다.
지푸를 떠난 제너럴 셔먼호의 첫 경유지는 백령도의 두무진 항이었다. 이곳에서 토마스는 성경을 나눠주었고, 이때 제너럴 셔먼호를 목격했던 한 조선인의 목격담이 스텔라 프라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124쪽). 곧 백령도를 떠나 돛섬으로 향했는데, 여기서 중국인 선장 우웬타이(Yu-Wen-Tai) 만나게 된다. 그는 여러 차례 조선의 해안을 왕래하며 장사했던 중국인이었다. 다시 배는 대동강 안쪽으로 행진했다. 외국선박의 입항이나 접촉을 금지했던 조선의 사정을 알고 있던 선원들은 안전을 위해 더 이상 진출 우려했으나 선장과 선주는 우웬타이의 경고를 무시했다. 조선 사정이 밝은 우웬타이는 더 이상 안내할 수 없다며 지푸로 돌아갔다. 그러나 셔먼호는 자만했다.
 
5. 대치상황과 제너럴 셔먼호의 최후
8월 16일에는 용강면 다미면 주용포항에, 8월 17일 금요일에는 황주 송산에 정박했다. 예상되는 바이지만 강둑에는 이양선을 보기 위해 조선인들이 몰려들었고, 조선관리는 긴급 회합하여 선박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셔먼호는 입항을 고집했다. 고종 3년, 곧 1866년 음력 7월 15일자 고종실록에는 당시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다. 배는 더 진행하여 8월 20일에는 평양 초리방 사포구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도 서양 선막은 구경꺼리였다. 많은 이들이 구경하러 몰려왔다. 오문환에 의하면 홍신길이라는 소년도 작은 배로 셔먼호 근처로 접근했고, 토마스는 갑판에서 그를 맞이하여 방으로 데리고 기독교 문서를 주고 그에게 케이크를 맛보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감자를 보았다고 한다. 또 그날 밤에는 인근 쑥개마을에서 장인국 지달수 지달체 지택구 지택붕 지택주 장용국 지달해 표명보 등 아홉 사람이 토마스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 들 중 장용국 외에는 천주교 신자들인데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해 줄 프랑스 선박을 기다리고 있던 중 셔먼호로 찾아간 것이다. 토마스는 자기는 천주교 신자도 프랑스 함대도 아니라고 말하고 개신교 선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성경과 기독교 문서, 그리고 빅토링여왕 얼굴이 새겨진 동전까지 주었는데, 천주교신자들은 성모 마리아상으로로 오인했다고 한다. 오문환 장로 기록의 정확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인과의 접촉의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얼마 후 지달수와 지달해는 서양인 접촉했다는 이유로 참수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조선관리가 선박의 철수를 요구했을 때 셔먼호는 교역을 원한다며 비단, 유리, 망원경, 자명종을 조선의 쌀, 인삼, 종이, 호랑이 가죽 등과 교환하자고 했다. 그러나 교역을 금하는 정책에 따라 이를 거절했다.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 것은 제너널 셔먼호의 오만이었고 신중치 못한 처신이었다. 대치상황은 약 2주일간 계속되었다. 조선 관리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제너럴 셔먼호는 평양행을 고집하고 8월 21일에는 평양 신장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오았고, 토마스는 성경책 나눠주었다. 토마스로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면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성경 받은 김영섭은 후에 기독교신앙을 받아드렸고, 두 아들 김종권과 김성집은 후일 장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조선 관리 김낙수는 선박의 도래경위를 조사하고 철수를 요구했다. 8월 22일 셔먼호는 평양 만경대의 작은 선 두로도에 닻을 내렸다. 토마스 이곳에서 100권의 성경 배포했다고 한다. 평양감사 박규수는 셔먼호의 공격에 대비하여 만경대를 둘러싸는 방어선 구축 지시했다. 그럼에도 셔먼호 대동강으로 계속 진입했다. 8월 27일에는 보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다. 셔먼호 승무원들이 순시대장 중군(中軍) 이현익을 억류한 것이다. 조선에 무단 침입했을 뿐 아니라 퇴거를 거부하고 조선관리를 억류한 일은 심각한 일이었다. 셔먼호의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혹은 물이나 식량, 연료를 공급받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없지 않으나 방자한 행동이었다. 선원 중 한 사람은 이현익의 관원 명찰을 빼앗은 일을 더욱 그러했다.
이현익의 억류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셔먼호에 돌을 던졌고, 석방을 요구했다. 관군은 사격을 가했다. 셔먼호 측에서도 발포했다. 이런 와중에서 박춘권(朴春權)이 혼자 배를 저어 가 이현익을 구출했다고 한다. 오문환에 의하면 그가 후에 평양의 장로교회 첫 인물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셔먼호가 수세에 몰리자 더욱 낙폭하게 대응했다. 8월 28일 발포를 시작했고, 8월 31일에는 조선인 7명 사살되고 5사람 중경상을 입었다. 사태는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고종의 허락에 따라 평양감사 박규수는 셔먼호 공격을 지시했다. 9월 3일이었다. 박규수는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서 개방론자였으나 셔먼호의 무단접근은 용인될 수 없었다. 곧 강 수위는 낳아졌고 배는 좌초되었다. 9월 4일 달빛도 없는 그믐밤이었다. 결국 선원은 쑥섬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작은 거룻배에 나무를 싣고 불을 붙여 셔먼호로 접근시켜 셔먼 호 불태웠다. 선원들 불길을 피해 강밖으로 헤엄쳐 나왔으나 강변에 정렬해 있는 군인들에 의해 창에 찔려 주임을 당했다. 토마스 목사도 남은 성경책을 안고 배에서 띄어 내렸다. 강가로 끌려나온 그는 모래사장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성경을 관군에게 내밀었다. 관군의 칼은 토마스의 가슴을 내리쳤고 토마스는 9월 5일 대동강 쑥섬 모래사장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토마스의 시신은 대동강변에 묻혔다.
 
6. 토마스의 순교 이후
토마스의 최후에 대해서는 상이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배가 불타고 선원들이 죽임을 당할 때 토마스는 뱃머리에서 홀로 야소(耶蘇)를 외치고 남은 성경을 뿌렸다는 기록이 있는가하면, 한석진 목사는 토마수가 순교한지 26년이 지난 1892년 당시 목격자로부터 제널 셔먼호가 불탈 때 토마스가 성경을 던지며 ‘야소’를 외치는 것을 들었다는 증언을 남겨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백기를 흔들며 목숨을 외국인도 한 두명 있었다고 한다. 그 한 사람이 토마스였을 것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기록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을 균형 있게 판단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토마스의 죽음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제너럴 셔먼을 구경하라 갔던 소년 최치량(崔致良, 1854-1930)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는 12살 때 숙부와 함께 1866년 9월 3일 토마스 순교장면을 목격하였고, 토마스 목사가 뿌린 한문성경 3권을 주었다고 한다. 책 소지자에 체포 명령이 내려 대부분 성경을 소각하거나 강변에 버렸다. 최지량도 이 성경을 집으로 가져 오지 못하고 영문주사(營門主事) 박영식(朴永植)에게 주었다고 한다. 박영식은 이 성경을 가져와 찢어 벽지로 사용했다. 오랜 후 최치량은 사업에 성공하여 물상객주(物商客主)가 되어 평양 대동문 안에 집을 사 여관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 여관의 전 주인이 박영식이었다. 최치량은 이 벽지로 사용된 성경을 읽고 또 한석진의 전도로 회심하였고, 평양에서 최초로 마펫에게 세례를 받고 평양지역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널다리골의 홍종대(洪鐘大)의 집을 사서 예배처소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평양장대현교회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서구와의 불행한 접촉이었으나 그 이후 역사는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과 미국간의 외교문제로 발전하였고, 널리 알려진 바처럼 이 일이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 6)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대결과 접촉이 후일에는 조미 양국 간의 통상조약(1882)으로 발전하여 외국인의 조선 거주를 보장 받게 된다. 결국 1884년에는 알렌이 입국하게 되는데, 토마스 순교 18년 후의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박용규 교수는 토마스의 순교는 한국교회의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되었다고 말한다. 오문환은, 토마스의 피가 뿌려진 대동강 물을 마신자마다 예수를 믿었고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교회의 거룩한 도성이 되었다고 했다.
 
7. 남은 문제: 토마스는 순교자인가 침략자인가?
토마스 목사는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로 남아 있었다. 그가 죽임을 당하고 60년이 지난 1926년 평양의 오문환 장로는 토마스 목사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소책자를 발간했다. 그것이 토마스의 생애와 조선 기독교사의 분수령이 되는 양란(洋亂)에 대한 기록이었다. 1927년에는 토마스 기념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 5월 8일 토마스 목사가 묻힌 쑥섬에서 토마스 목사 순교 60주년 기념예배가 거행되었는데, 이때 1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1932년 9월 14일에는 대동강변에 토마스기념예배당을 건립했는데, 1933년 10월 14일 봉헌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10여년 이래로 토마스를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그 의 죽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감리교의 존스(G. H. Jones) 이래로 초기 선교사들은 토마스 목사를 순교자로 이정해 왔고, 설사 게일의 경우처럼 순교자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복음을 위한 그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있고, 그를 정치적 희생자라든가 침략자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토마스를 순교자로 볼 수 없다거나 심지어는 침략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토마스는 무장상선을 타고 입국했기 때문에 순교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에 와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순교자로 칭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그가 죽은 이유가 기독교 복음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제너럴 셔먼호의 부당한 처신과 횡포에 기인하는 정치적인 죽임이라고 주장하다. 일견 고려할 점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1860년대 상황에서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토마스가 복음의 열정, 곧 조선 선교의 이상을 가진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로는 조선 입국 방법이나 경로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설사 무장상선이라 할찌라도 셔먼호 승선이 조선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제너럴 셔먼호의 신중치 못한 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셔먼호로 입국했기 때문에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선교사가 내한 한 이후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토마스는 1863년 이래로 선교사 신분이었고, 이미 조선을 방문하바 있고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내한 즉시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그의 죽음이 복음전도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주장도 고려할 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기독교가 금압된 당시 상황에서 서양인의 죽음, 특히 서양선교사의 죽음을 비종교적 행동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 1866년 병인양요 때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죽음은 정치적 성격이 강했고, 외세에 의한 침략세력으로 간주되었다. 그 누구도 프랑스 신부의 죽음을 순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금지된 상태에서 ‘선교사의 현존’ 자제가 정치적 행위일 수 있고, 정치적 침략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토마스의 죽음을 순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토마스 목사가 제너럴셔먼호로 입국한 일이나 셔먼호의 부당한 혹은 불법적인 행위는 지탄받을 수 있지만 토마스 목사는 조선인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려는 선한 의지는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가 죽임을 당한 후 초기 선교사들을 시작으로 한국교회는 토마스를 순교자로 간주하고 그의 죽음의 의미를 기념해 왔다. 1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토마 목사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오늘우리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토마스 선교사(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


1866년 대동강변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통해 순교한 것으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고종실록 1866년 7월 기록에 따르면 ‘토마스선교사와 조능봉이 제너럴셔면호에서 조선군민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뱃머리로 뛰어나와 살려달라고 청하자 이들을 사로잡아 묶어서 강안으로 데려왔는데 울분을 참지못한 군민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그들을 때려 죽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평안감사 박규수가 고종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이후 토마스 선교사 사후 50년동안 순교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1928년 오문환의 ‘도마스 목사전’에 토마스 선교사의 실제 목격자가 등장한다.

도마스 목사전에는 토마스 선교사가 단순히 대동강변에서 순교했다는 내용보다는 그의 전체 삶을 강조하고 있다.
토마스 선교사는 순교하기 전 처음 방문때 서해 백령도에서 한자 성경을 보급한다.
물론 순교했던 두번째 방문 때도 제너럴셔먼호에 성경을 싣고 왔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를 계기로 조선과 미국은 국교가 수립되고 이어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는 계기가 마련된다.
토마스 선교사는 직접 전도하지 않았는데도 27세의 죽음을 통해 한국교회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전도와 선교의 범위를 넓게 보아야 할 것이다.
개신교 선교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보다 말씀이 조선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천주교는 사제가 들어 가는 것을 선교의 시작으로 보지만 개신교는 말씀이 들어가는 시점을 선교의 시작으로 본다.

한반도가 처음 기독교를 접한 시기는 통일신라 때였다.
당나라 경교를 통해서이다.
불국사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에도 기독교가 한반도에 유입됐다.

천주교의 박해는 1801년부터 시작된다. 

병인박해는 1866년에 일어났다.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에 들어 왔을 때는 이미 조선에서 8천명의 순교자의 피가 조선반도에 뿌려진 이후였다.
이런 의미에서 개신교는 천주교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헌종때 ‘척사윤음’을 발표한다.
즉 천주교는 삼강오륜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장하성이 ‘상재상서’를 통해 기독교를 변호하는 글을 발표한다.
조선 최초 기독교변증문인 상재상서는 3~4천자로 기록됐다.

조선반도에 복음이 전파되는 때는 가장 힘든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초대교부 터툴리안은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라 했다.
개신교는 복음이 쉽게 들어왔다.
그 이유는 천주교의 핍박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선구자들은 누구인가?

-벨테부레(1627년) : 네덜란드 사람이다.
표류하면서 조선에 잡혀 훈련도감이 된다. 이름도 개명해서 박연으로 불리었다.

-하멜(1653년)
제주도 부근에서 풍랑으로 좌초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크리스챤을 ‘길리시단’이라 불렀다.
나중에 조선을 탈출해 하멜표류기를 기록한다.
벨테부레와 하멜은 선교사가 아니었지만 개신교인으로 조선에 왔다.

선교사로서 조선에 왔던 사람은 귀츨라프(1832년)이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Halle 대학에서 훈련을 받고 선교사로 들어온다.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으며, 감자씨를 가져와 충청도에 전달한다.
하지만 동인도회사의 아편밀수에 협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첫 개종자와 한글성서이 번역은 조선이 아닌 중국 만주에서 시작됐다.
‘고려문’이라는 곳은 조선과 청나라가 문물을 교환하는 곳으로 조선은 고려인삼을 청은 비단과 약재를 가져와 서로 교환했다. 존 로스 선교사가 그곳에 있었다. 존 로스 선교사는 고려문에서 양모를 팔면서 성경을 보급했다. 주로 상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상인들은 개방적이며 당시 언어인 한자에 능하고 세일즈를 통해 설득적인 경향을 보인다. 사도바울도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로건너가 처음 복음을 전한 사람은 두아디라 출신 자주장사였던 루디아였다.

존 로스 목사는 의주 상인들을 만나 성경번역을 권고했다.
의주상인들은 성경을 번역하다가 믿음을 갖고 세례를 받았으며 이로인해 조선에 교회가 세워진다.
대표적인 이들이 백홍준, 이응찬, 서상륜 등이다.








질병과 신앙


한국기독교윤리학회(문시영 회장)가 최근 ‘포스트 팬데믹 시대, 사회와 기독교윤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온라인 줌으로 개최했다. 이날 기조강연에서 김형민 교수(호남신대 명예교수)는 ‘포스트 팬데믹과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의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질병들이 많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질병은 우리를 고통과 죽음의 나라로 끌고 가는 악하고도 무서운 힘”이라며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살면서 우리들이 피하기 어려운 질병과 죽음의 현실을 깊이 체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인간에게 고통을 안기는 질병을 도덕적으로 어떻게 판단하면 좋은가. 질병도 도덕적 악인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사악한 질병도 있지만 그렇다고 질병을 도덕적 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코로나와 같은 질병을 윤리적 주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과대한 소비주의사회에서 질병과 가난이 이웃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근거로 기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건강하면 도덕적으로 선한 자로 평가하고 병들면 인생을 잘못 살아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부덕한 자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건강과 도덕적 선의 차이를 혼동할 때 쉽사리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고 만다”며 “사람들은 흔히 온전하게 지속되는 삶을 건강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뜻하는 온전성은 헬라의 철학자들이 말한 소우주와 대우주가 적절한 하모니를 이룬 상태로 보아도 좋고 세상의 질서와 섭리에 조용히 순응하며 사는 정신적 생활로 이해해도 좋다. 왜냐하면 고대사회로부터 사람들은 위생과 섭생이 조화로울 때 건강하다고 생각하였고, 예방과 재활을 건강의 개념에 포함시켜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삶과 죽음은 물론 건강과 질병 사이에도 음계와 같이 여러 층의 단계가 존재한다. 건강한 삶만이 아니라 허약하고 고통에 빠진 삶이 있고, 가벼운 병만이 아니라 극한 고통과 아픔을 동반한 채 생명까지도 위협받는 병이 있다”며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의 건강을 자신할 수 없는 이유는 죽음이 단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과정의 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의 경계선에 서 있다. 이 둘은 서로를 관통해 흘러간다. 그 때문에 건강과 질병도 최종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땅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로 나눌 수 없는 상대적인 것”이라며 “우리는 질병을 통해 어떤 신앙적 교훈을 얻게 되는가. 여기에 네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먼저, 건강은 우리의 좋은 자산이지만 삶을 위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며 “하나님은 우리를 육과 영으로 지으셨다. 우리가 잘 보존해야 할 신체만이 아니라 깊이 사고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영성도 주셨다. 우리가 평생 오직 건강하게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면 건강한 삶의 의미는 물론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둘째, 병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질병과 죽음 앞에서 만인은 동등하다. 병의 정도가 심각할수록 자신의 소유가 아닌 존재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태도가 병의 종류와 증상에 따라 다르고 자산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더 나은 치료의 기회를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병들어 아픔을 겪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고 덧붙였다.

또 “셋째, 병은 우리가 이웃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건강할 때보다 병들었을 때 자신이 타인을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삶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병은 이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도와준다”며 “의사들의 진료일지에서 자주 발견하는 현상이지만 병상에서 이기적이고 거칠고 유아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환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베데스다 연못에 모여 있던 환자들처럼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과도한 집착과 충동이 이기적 행동으로 인도한 것이다. 병은 바로 이러한 자신의 참 모습을 돌아보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이어서 주제발제로 조용훈 교수(한남대)가 ‘포스트 팬데믹 시대, 기독교윤리의 관점에서 본 지구윤리”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조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를 윤리의 시험대에 올려놓았다”며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된 지구화시대에 인류가 팬데믹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된 세계 라는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인지 아니면 각자도생의 삶의 방식에 따라 부족주의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인 구시대로 물러설 것인가”라고 했다.

이어 “볼프강 조프스키(W. Zofsky)는 ‘재난이 사람을 더 영리하게 만들뿐 더 도덕적으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인류는 공포심 속에서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반대로 레베카 솔닛(R. Solnit) 은 재난 속에서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며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인류애를 발견했다”며 “팬데믹같은 재난이란 언제든 반복되기 때문에 이것을 인류의 윤리적 성숙을 위한 기회로 만들 것인지 아닌지는 결국 우리 자신들의 생각과 태도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인류가 당면한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시급히 구축해야 할 지구윤리는 온 세계가 하나의 마을로 발전한 지구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 인류의 숙명적 과제”라며 “자신들을 썩어짐의 종노릇과 고통으로부터 구해줄 하나님의 자녀들의 출현 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비단 인류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공통된 소망이다.(롬8:19~21) 따라서 평화롭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하나의 세계에 대한 비전만 아니라 지구윤리에 도움이 될 풍부한 도적자원을 지닌 종교들에 거는 사회의 기대는 매우 크다”고 했다.

조 교수는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구시민으로 인식하고 지구적 , 공동선을 실현하는 지구적 행위자처럼 행동해야 한다”며 “말하자면 개인의 영적 안전과 행복을 넘어서 온인류 및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위해 자비와 긍휼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과 자연생명체 전체를 돌보고 배려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며 “이 같은 지구적 재난을 불러온 실패한 경제 지구화에 맞서 대안적 지구화의 비전을 제시하고 자본주의적 물질중심의 삶의 방식 대신에 내면적이고, 공동체적인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제자공동체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소금과 빛이요, 산 위의 마을이 될 것”이라고 했다.(마5:13~16)



[출처]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3515#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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