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성서 학당 원고(1. 세례, 2. 죽음, 3. 천당과 지옥, 4. 하나님의 이름,

수요성서학당 #.1 (06 / 10 / 20)

세례(洗禮)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

구약의 마지막 책은 “말라기”입니다.
신약의 첫 번째 책은 “마태복음”입니다.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
사이는 “대략 400년” 이란 긴 세월이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시대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의 400년의 기간을 “암흑의 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 라고 합니다.
‘암흑의 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를 “신구약 중간 시대”라고도 합니다.

기독교 이외에 가톨릭교회와 유대교에서는 신구약 중간 시대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여 “외경”이란 말씀을 인정하고 사용합니다.

오래 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타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던 때에 어느 날 광야에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 거주하는 낯선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광야로 나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 바로 이 사람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나는 너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니라 다만 물로 세례를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실 그 분은 너희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며 실망하던 유대인들에게 메시아 신앙을 깨우쳤습니다. 요한의 외침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서 세 종류의 세례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물세례(Water Baptism) ; 회개와 구원을 위한 세례
둘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 ; 구원의 확신과 보증을 위한 세례
셋째는 불세례(Fire Baptism) ; 심판을 위한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하는 세례(불심판)

그런데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것은 분명하게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셨을까요?

세 종류의 세례를 베푸셨던 수여자(授與者)를 살펴봅시다.

첫째는 물세례(Water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예수님 당시에는 세례자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태복음 3:5∼6,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에서 목사가 세례를 베풉니다.
주 예수를 믿는 (아무개)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둘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성령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세례는 요한의 증거대로 분명히 예수님께서 베푸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성령세례를 베푸셨으며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베푸셨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사람들에게 보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을 “보혜사(保惠師)” 라고 합니다.

“보혜사(保惠師)”란 무엇인가?
-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
보혜사란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시는 선생님” 이란 뜻입니다.

보혜사를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NIV에서는 “상담자(the Counselor)”, KJV에서는 “위로자(the Comforter)”, NASB에서는 “돕는자(the Helper)” 라고 합니다.

보혜사를 헬라어 성경에서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paraklétos)” 라고 합니다.

1. 옹호자(an advocate), 중보자(intercessor),
2. 위로자(a consoler), 위로자(a comforter), 돕는자(helper),
3. 변호사(Paraclete)

예수님께서 언제 누구에게 성령세례를 베푸셨습니까?

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날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베푸셨던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세례도 함께 베푸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자세히 관찰하면 성령과 불이라는 용어가 마태복음 3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는 사용하였으나 마가복음 1장과 요한복음 1장에서는 성령이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라고 모든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다면 불세례도 오순절 날 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그러므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바르게 읽어야 합니다.

셋째는 불세례(Fire Baptism)는 누가 베푸셨을까요?

세례자 요한에 의하면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성경을 폭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과 불세례에 대한 말씀을 마태복음 3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세례만을 말씀합니다.

이제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불세례”는 불로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마가복음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9절,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리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누가복음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7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요한복음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참조 / 성령세례(사도행전 1:5, 11:16, 고린도전서 12:3)

“성령세례와 불세례”에 대해서 언급한 성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이외 성경에서는 오직 “성령세례”만을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증거에서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 분명하게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불의 혀 같이 갈라진다는 것은 불이 다양하게 갈라져서 오순절 날 한 자리에 모여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 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불세례는 누가 베푸셨을까요?
사도행전 2: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오순절 날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을 때 마치 성령은 강한 바람 소리로 들렸습니다.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바람이 아닙니다. 성령은 불이 아닙니다. 다만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은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세례와 불세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헬라어 성경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βαπτίσει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
- will baptize with the Spirit Holy and fire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많은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장차 오실 그 분께서는 “성령(프뉴마)과 불(푸르)”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외쳤던 요한의 증언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그 분이 그토록 기대하던 “메시아”라고 기다렸으나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사십일 후에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사도행전 1:3).

이렇게 번역된 데는 헬라어 접속사 “카이(καὶ)”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데 “카이”는 “등위 접속사”로서 “그리고(and)” 라고 하여 앞의 것과 뒤의 것을 동등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령과 불”이라고 할 때 성령과 불을 동등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제까지 성령과 불을 이렇게 등위 접속사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등위 접속사가 아니라 우위 접속사로 해석하면 전혀 그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성령과 불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세례는 특별한 용법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위 접속사”인 “또는(or)”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바로 우위 접속사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성령과 불로'로 번역된 “엔 프뉴마티 하기오 카이 퓌리(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는 “성령 또는 불안에서” 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 본문의 문맥과 사(四)복음서를 비교하여 연구해보면 더욱 확실히 증명된다. 먼저 우리는 “성령과 불로”라는 말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오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성령과 불로”가 아닌 “성령으로” 라고만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1:5에서도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여 불에 대한 언급 없이 “성령으로” 라고만 되어 있으며 사도행전 11:16과 고린도전서 12:13에서도 역시 “성령으로”라고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성구들을 참조할 때 주님이 신자들에게 주시는 세례는 오직 “성령으로”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불”의 의미는 별도의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 라는 것은 “성령 안에 잠기운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보더라도 “침례” 라는 말이 의미를 더 잘 통하게 한다. 만일 “세례”라고 하면 “성령으로 씻긴다”는 말이 되므로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성령은 영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요 14:18∼19)이므로 '성령 안에서 침례'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상징하되 '생명의 연합'을 뜻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 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령 안에서 침례'는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행 2:38, 행 19:2)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되는 것(고전 3:16-17)'과도 같은 말이 되는데 결국 우리와 주님과의 상호내주(Inter-Residence)를 뜻한다.

한편 요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에서 '신령으로'라는 말은 “엔 프뉴마”로서 원 뜻은 “성령 안에서”라는 뜻이다. 이 말씀의 의미 역시 '성령을 받음'으로 '주님을 모시는 것'이 되며 이는 곧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께 예배를 드려야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는 아무리 열심히 예배드려도 소용없다는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예배드리는 자가 먼저 주님과 하나가 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요 3:5)'고 할 때 '물'과 '성령'의 의미가 모두 해석되는 것이다. 즉 '물'은 죄를 씻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물 안에 잠김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의 연합'을 상징하는 뜻이며 '성령'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령 안에 잠긴다는 뜻은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죽었다가 살아나는 원리가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불로 세(침)례를 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볼 차례가 되었다. '불로 세례를 주신다'라는 말씀은 직역하면 '불 속에서 세례를 주신다'는 말로서 신자와는 전혀 관계없고 불신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다. 즉 불신자는 성령 안에 잠기게 하는 대신에 '불 속에 잠기게 한다'라는 의미로서 결국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제 세례에 대한 용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세례(밥티조)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물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완전히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올 때는 과거의 나 즉 옛 사람은 죽었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회개와 구원의 표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회개와 구원의 표를 받았지만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짓게 될 때 사탄은 정말 네가 구원을 받았느냐?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느냐? 하며 조롱하고 비난할 때 정말 내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는가? 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세례가 구원을 보증합니다.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히브리서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성령세례가 보증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불세례는 심판 즉 소멸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기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히브리서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 요약 자료

주제 ; 세례
- 세례(씻을 세, 예도 예)와 침례(잠길 침, 예도 예)
- 밥티조(물속에 잠기다)

성경 ; 마태복음 3:11

종류 ;

 1. 물세례(회개와 구원) 베드로전서 3:21

 2. 성령세례(생명의 보증) 보혜사(요한복음 15:26)
 - 로마서 8:2, 요한복음 6:63, 고린도후서 1:22, 5:5, 히브리서 12:29

 3. 불세례(심판, 알곡과 죽정이)
- 신명기 4:24, 히브리서 12:29
- 마태복음 3:12, 누가복음 3:17

*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 전치사 "과"(카이)
 등위접속사로 해석할 때는 성령과 불을 같은 것으로 이해
 우위접속사로 해석할 때는 성령과 불은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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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2 (06 / 17 / 20)

죽음이란 무엇인가?
- 성경적 죽음에 대한 이해

죽음이란 사회적 연결망이 끊어지고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연결망은 연결되는 것이다!

연결망이 끊어지면 ‘대체(代替) 불능
오직 그 사람과는 더 이상 앞으로는 어떤 추억도 관계도 가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슬퍼합니다.

여러 해 전에 송재천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아들 송천호군이 제게 카톡으로 아버지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들 송천호군이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아버지와 연결되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서로 연결하던 연결망이 죽음으로 끊어졌기 때문에 아들이 대신하여 연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이란 세상에서 연락하던 사회적 연결망을 끊어졌지만 주님 나라에서 신령한 연락망은 개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리스천인 한 의사가 중병에 걸린 어떤 환자를 찾아 갔습니다.
그 환자가 "의사 선생님, 제가 회복할 수 을까있요?"하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글쎄요, 아마 어려울 겁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무덤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선생님은 아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죽음 저 건너편에 있는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열리더니 의사가 기르는 개가 뛰어 들어와 주인에게 뛰어올라 꼬리를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때 의사는 환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셨지요. 이개가 이 방안에 들어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자기 주인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 없이 뛰어 들어온 것입니다. 죽음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한 가지 사실, 곧 우리 주님께서 그곳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족합니다. 아무 생각마시고 그를 믿기만 하십시오. 문이 열릴 때 두려움 없이 들어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
"이것이 나에게는 마지막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새로운 삶은 시작이다!"

죽음이란 이 세상에서 나는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Just as man is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ment.   

죽음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어떤 질병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시편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Precious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saint. 

모든 사람들이 죽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죽음은 귀중하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성도의 죽음이 귀중한 것은 이 세상에서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약속에 믿음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세 가지 의미

죽음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인간의 생명은 인간 속에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내재적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욥기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교제할 때만 인간은 참된 삶을 살 수 있다. 

성경적 의미에서 죽음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어 그로부터 분리되는 상태”를 뜻한다.
성경은 죽음의 이러한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서 제시한다.

첫째, 육체적 죽음(Physical death)

육체적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멈추었지만 영혼은 여전히 활동합니다.
- 창세기 3:19, 시편 146:4, 전도서 12:7; 야고보서 2:26

창세기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시편 146:4,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러나 육체적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나 중지가 아니라 생명과 결합된 육체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는 죄의 형벌로서 인간의 생명에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이를 죽음이 죄로 인해 인간 세계에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한다(롬 5:12, 17).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성경은 죽음이 인간이 누리는 생명과는 대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낯설고 이질적이며 심지어 적대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죽음은 범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시 90:7, 11), 심판(롬 1:32), 정죄(롬 5:16), 저주(갈 3:13)로 표현된다. 

시편 90: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시편 90: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로마서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 결과 육체적 죽음에는 일반적으로 두려움과 공포가 수반된다. 이 고찰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원래 상태가 해체나 사멸의 씨앗을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이 완전히 전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은 옳은 생각이다. 또한 죄의 결과와 형벌로서 육체가 죽음을 맞게 된다는 사실에서 육체적 죽음은 영혼의 죽음의 결과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둘째, 영적 죽음(Spiritual death)

영적 죽음이란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죄의 결과와 형벌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그로 끊어져서 영적 생명을 상실한 상태를 가리킨다.
- 에베소서  2:1∼2; 에스겔 18:4, 20; 로마서  6:23). 

에베소서 2:1∼2,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스겔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에스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영적 죽음은 영혼의 멸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죄의 형벌로서 죄책을 짊어지고 고통을 받게 되며 삶의 모든 측면에서 죄로 오염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영적 죽음으로 인해 인간은 참된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분을 떠나 자신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고 자기중심적 삶을 살아가게 될 따름이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만족과 평안을 상실한 채 죄악의 깊은 수렁 속에서 번민과 방황으로 점철되어지는 삶이 아닌가?

인간의 영혼은 수많은 사상, 열정, 욕망으로 인해 뒤엉켜서 삶은 혼란과 실망의 장이 되어 버렸고 그 결과 피조물 전체가 인간이 초래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되었다(롬 8:20, 22). 죄의 결과로 주어진 삶의 엄청난 고통과 번민과 방황은 인생의 참되고 유일한 희망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요청할 따름이다. 

로마서 8: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로마서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셋째,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

영원한 죽음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둘째 사망(the second death)” 이라고 합니다(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Then death and Hades were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The lake of fire is the second death.   

영원한 죽음을 다른 말로 둘째 사망(the second death)이라고 합니다.
영혼의 죽음의 최종결과로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생명력을 상실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진노아래 거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가장 두려운 의미에서의 죽음이며 여기에는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영혼의 고통, 즉 양심의 가책과 회오가 지속적으로 뒤따른다. 

요한은 이를 고통의 연기가 영원토록 타오르게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계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영원한 죽음은 결코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혼과 육체의 영원한 멸절(annihilatio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소멸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과 무서운 진노 아래서 영원히 고통당하지만 결코 죽지 아니하고 불가피하게 영원히 살게 되는 상태, 죽기를 아무리 원해도 죽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non mori)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영원한 죽음의 상태가 가시화되고 현실화되는 상태가 바로 성경이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지옥’에 해당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창세기 4장 26절의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Enos) 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 “남자” 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라고 합니다.
에노스 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세상과 구별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이름은 "예수"라고 하셨습니다(아버지의 이름 - 요한복음 17:6, 11-12, .26)

왜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을 불러야 할까요?

요한복음 14:2-3,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In my Father's house are many rooms;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I am going there to prepare a place for you.
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back and take you to be with me that you also may be where I am.

죽은 후에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것은 내가 있을 집을 찾지 못한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 집을 찾지 못할 때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 병을 "치매"라고 한다면 죽은 후에 갈 곳을 모르는 사람은 "영적 치매"에 걸린 것이라고 하겠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에노스'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 오늘날도 내가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될 때 예수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죽음, 그 자체가 메시지

사람의 일생을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생로병사(生老病死)” 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것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란 “태어나서 나이가 들어 병들고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생로병(生老病)”까지는 늘 가깝게 생각하면서도 “사(死)”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간 속에 있는 네 개의 기둥’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생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노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난만큼 육체가 약하고 쇄하여 가는 것입니다.
병은 약한 육체가 회복할 수 없는 질병이 걸려 고통하는 것입니다.
사는 마지막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못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후에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도 죽는구나!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공부하고 배워야 하겠다.
그 결과 죽음 앞에서는 내가 예수를 진실하게 믿었는가?
이 질문에 진실한 대답을 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세 가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첫째는 내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
둘째는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
셋째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

죽음은 두렵다. 그래서 대면하고 싶지 않다. 죽음이 보내는 시선을 피하려고만 한다.

반대로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도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둘째는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셋째는 죽을 장소를 알지 못한다.

*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 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본래, 단어 그대로 “카르페(Carpe)”는 “뽑다”를 의미하는 “카르포(Carpo)”의 명령형이었으나, “오비디우스”는 “즐기다, 잡다, 사용하다, 이용하다” 라는 뜻의 단어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디엠(Diem)”은 “날”을 의미하는 “디에스(dies)”의 목적격으로, “디에스”의 목적어이다. 

“호라티우스”의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의 부분 구절이다. 이 노래는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호라티우스”가 에피쿠로스 학파에 속하였으므로, 보통 이 구절은 그와 연계하여 이해되고 있다.

카르페 디엠이란 내가 살아있을 때에 예수를 진실하게 믿으라!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한편 이러한 맥락에서 17세기 네델란드 정물화 화풍인 ‘바니타스 화풍’도 영향 받았다고 여겨진다.

메멘토 모리란 사무엘처럼 사망과 나의 사이는 한걸음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0:3b,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나바호 인디안 족들의 메멘토 모리 

나바호 인디언 부족에게서도 이와 같은 “메멘토 모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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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서 "죽음"

- 10회(1:18, 2:11, 23, 6:8, 18:8, 20:6, 13, 14, 21:4,8)

- 사망(死亡) : 죽을 사(사), 망할 망(亡), 잃을 망(亡)

1:18(네크로스) 3498 / νεκρὸς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I am the Living One; I was dead, and behold I am alive for ever and ever! And I hold the keys of death and Hades.

* dead, lifeless, a dead body, a corpse.

2:11(다나토스) 2288 / θάνατος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He who overcomes will not be hurt at all by the second death.

* death, physical or spiritual death

2:23, 6:8, 18:8, 20:6, 13, 14, 21:4, 8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6:8, 내가 보매 청황색 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참조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요한계시록에서 "죽음(死亡)"이란 단어는 "(네크로스) 3498 / νεκρὸς" "(다나토스) 2288 / θάνατος"라고 합니다.
그런데 '네크로스'는 육체

참고 자료 /

* 법륜 스님은 “인간은 되어 가다가 죽는다.”

인간의 삶을 됨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죽음은 됨의 과정의 막을 내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죽음은 됨의 과정을 끝내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과 같습니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본래부터 뭐든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이것은 바로 궁금증이라고 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 가려는 본능이 있다

인간에게는 배움의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교육학에서는 배움의 본능에 대해서 세 가지로 정의합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죄
둘째는 알면서 행하지 않는 죄
셋째는 알면서도 가르치지 않는 죄 인간은 죽음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죽음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회에 성경적인 죽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죽음은 주로 장례식장에 생각할 수 있는 주제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죽음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면 어디에서 죽음에 대한 지식을 얻겠습니까?

나이로 살지 말고 생각으로 살라”는 말도 있다.
이는 나이가 아닌 열린 생각으로 세상을 보라는 뜻으로 고착화된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사망(死亡) - 죽을 사(死), 잃을 망(亡), 망할 망(亡)

1.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
2. 자연인이 생명을 잃음

영어 - Death
헬라어 - 네크로스(nekros, νεκρός, 3498) dead  

죽음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서거(逝去), 별세(別世), 타계(他界), 영면(永眠), 작고(作故) 등이 있다.

서거”는 사거(死去, 죽어서 세상을 떠남)의 높임말로 주로 대통령 같은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 위대한 예술가 등 사회적으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사람에게 사용된다.

별세”는 '세상을 하직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가장 많이 쓰인다.

타계”는 귀인의 죽음을 말하는데 서거를 쓸 정도는 아니지만 사회에 적잖은 기여를 했거나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인물에 쓰인다는 점에서 별세와 차이가 있다.

영면”은 영원이 잠들다는 뜻으로 주로 유명한 사람의 죽음을 뜻한다.

작고”는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각 종교에서 죽음을 높이는 말도 있다.
가톨릭에서는 “선종(善終)”, 개신교에서는 “소천(召天)”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승려의 죽음을 “입적(入寂)” 이라고 표현한다.

한자어 외에 동사나 관용구로는 “숨지다” “돌아가시다” “하늘나라로 가다” “밥숟가락 놓다
땅보탬”이라는 말도 있는데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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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3 (06 / 24 / 20)

천국(天國)과 지옥(地獄)

지식(知識)을 얻는 과정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배움의 과정(學習)
둘째는 체험의 과정(經驗)
셋째는 믿음의 과정(信仰)

배움의 과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배움으로 얻지 못하는 지식을 직접 체험하므로 얻기도 합니다.
그런나 배움과 체험으로도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은 "죽음"과 더불어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겠습니다.
죽음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죽음과 천국과 지옥을 알려주면 좋을텐데 간혹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약간의 공통점은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므로 그 이야기도 신빙성이 적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배움과 경험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은 "신앙"으로 터득해야 합니다.

한글개역 성경에서
“천국(37회)” 신약에서만 사용된 단어
“지옥(13회)” 신약에서만 사용된 단어
“음부(81회)” 구약에서 69회, 신약에서 12회
“불못(2회)” 요한계시록에서 2회(20:14, 15)
“스올(1회)” 요나서에서 1회(2:2)

구약과 신약에서 사용한 단어를 살펴보면 성경을 번역할 때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천국과 지옥이란 주로 동양문화권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음부와 스올은 주로 서양 문화권에서 들을 수 있는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려면 먼저 "믿음에 대한 정의"를  다져야 합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믿습니까?”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믿습니까?”

믿음이란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믿는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천국과 지옥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고 간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간증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천국과 지옥의 실체일까요?
저는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오는 중에 비행기 안에서 잠시 쓰러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깨어난 후에 이런 때에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중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이 마침 뉴욕을 방문하여 함께 교제하던 중 비행기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만일 그런 때에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님은 아직도 그런 것을 봐야 믿습니까?
환상을 보는 것보다 더 분명한 것이 이미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었는데 다른 무엇을 왜 기대합니까?
그렇습니다. 성경 보다 더 좋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것에서 찾을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순복음교회 어느 원로목사님께서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일을 하던 어느 목사님이 환상 중에 천국을 다녀왔는데 환상 중에 본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조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내게 환상을 보여주셨다면 나는 세계 곳곳에 다니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생생하게 증거 할 텐데 하고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내용을 성경 이외의 것에서 확인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신앙의 교과서는 성경입니다.
다른 간증이나 서적은 참고하는 것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환상을 보여주시며 믿어야 한다고 깨우칠까요?

천국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이해는 “아브라함의 품” “낙원" 이라고 하겠습니다.
지옥에 대한 이해는 “음부" "불 못” “게헨나” 이런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그 이상은 무리하게 넘겨보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신약 성서에서 천국과 지옥을 가장 분명하게 묘사하는 성서의 기사는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누가복음 16:19∼31).

부자는 죽어서 음부(Hades, 하데스)로 갔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죽은 후에 즉시 가는 곳(22절) - 천사들에게 받들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둘째, 의식이 살아 있는 곳(23절) - 고통 중에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음부라는 곳은 본래 영어에서 “헤데스” 라는 곳입니다.
하데스(Hades)라는 곳은 가장 쉽게 신학자들의 정의를 빌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아직 지옥은 아니예요.
그러나 그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그러나 음부와 지옥의 차이는 종이한 자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마치 '유치장과 교도소의 차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죽은 다음에 우리의 영혼은 없어진다고 가르칩니다.
단지 부활 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다시 살아나지마는 그러나 내가 죽는 그 순간 모든 것은 다 없어진다.
영혼도 없어진다 라고 가르칩니다

셋째, 두 개의 대조적인 장소(22절, 23절) - 아브라함의 품, 음부

22절,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절,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음부와 낙원 혹은 지옥과 천국. 두개의 대조적인 세계로 영원한 세계는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을 한마디로 말하면 두 가지의 단어가 오늘 본문에도 이 음부, 지옥의 전철인 음부(하데스)라는 장소를 묘사하면서 계속적으로 거듭 출연한 단어가 두 단어입니다.
고통, 하나는 고민. 고통의 장소, 그리고 고민의 장소 끝없는 번민의 괴로움의 장소.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

이사야 11:6-8, 그 때에(메시야 재림 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무엇을 말합니까? 타락으로 인해 파생되었던 온갖 무질서와 약육강식의 혼란이 제거되고, 죄로 말미암은 적대관계가 완전히 제거되고, 완전한 평화가 넘치는 곳임을 소개합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18
,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주님계신 너무나 좋은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5,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성경이 말씀하는 지옥

마가복음 9:43,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8-49,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불이 꺼지지 않는 장소, 벌레가 득실거리는 장소, 불속에서 고통 받는 장소를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3:40-42,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요한계시록 14:11-12,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지옥은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곳, 고통이 그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땅에서 지켜야할 것,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1:8-9,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절,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넷째, 왕래가 불가능한 곳(26절) -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큰 구렁이"란 첫째는  "거리적으로 아주 멀다"

둘째는 "영적으로 전혀 다른 곳"이다.

마태복음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지옥은 내 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잡혀서 가게 되고 손발이 묶여서 강제로 구인이 되고 지옥에 마침내 도착해서도 누가 환영해주거나 누가 영접해주는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무저갱에 던져지게 됩니다.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미리 예비해 놓으신 처소로 데려 가셔서 거기서 살게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0:2-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지옥에는 들어가기만 하지 거기에는 하나님이 인봉을 해 놓았기 때문에 빠져나오는 출구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23, 25,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베드로후서 2: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마가복음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제 누가복음의 본문을 읽어가며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성경적인 믿음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천국을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이해 한다.
지옥을 음부라고 이해한다.

지옥이 과연 있느냐?
선하신 하나님이 지옥을 미리 만들어 놓으신 것이냐?

성경은 최후의 심판 다음에 인류가 둘로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구원받은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되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불 못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성경은 최후의 심판 이후 불신자가 불 못에 던져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자세하게 이야기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영원히 형벌을 받는 장소
(마 5:29-30, 23:15, 23:33; 막 9:45-47)

둘째, “지옥 불”, “꺼지지 않는 불”, “영원한 불
(마 5:22: 마18:8-9).

셋째, “바깥 어두운 곳” “울며 이를 갈 것”
(마 8:11-12, 25:30).

넷째, 세상 끝 날이 될 것
(마 13:40-42, 49-50).

다섯째, 몸과 영혼이 모두 고통 받는 곳
(마 10:28).

여섯째, 불신자와 마귀와 마귀의 부하인 타락한 천사들도 함께 던져질 곳
(마 25:41).

일곱째, 영원할 고통을 받는 곳
(막 9:43-49).

사도들의 가르침도 모두 지옥이 “불”과 “어둠”으로 상징되며, 지옥에서의 고통이 “영원하다”는 것에 강조점을 둡니다.

첫째, 지옥의 형벌은 죄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입니다(롬 2:5)
둘째, 지옥은 “맹렬한 불” 또는 “불 못”,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불립니다(히 10:27-31; 계 19:20; 계 20:10, 14-15, 21:8)
셋째, 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벧후 1:17; 유 13절)
넷째, 지옥의 고통은 영원합니다(살후 1:7-9; 유 7절, 계 14:9-11)

이처럼 예수님과 사도들이 말한 지옥의 특징에 대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묘사는 “불”과 “어둠”입니다.
지옥은 불타는 곳이며, 어두운 곳입니다.
여기서 이런 “불”과 “어둠”은 문자적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만약 문자적인 불과 문자적인 어둠으로 해석하면 모순과 혼란이 생깁니다.
지옥이 불인 동시에 어둠일 수는 없습니다.
불과 어둠은 불신자들이 영원히 받을 형벌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는 상징입니다.

불과 어둠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지옥은 인간의 몸과 영혼 모두가 고통을 받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불이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자들의 외적인 고통, 육체에 대한 고통을 강조하는 측면이라면,
어둠은 내적인 고통, 영혼에 대한 고통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몸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와 마음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로서 “불”과 “어둠”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이 말해 주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의 비참함은 참으로 말로 다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의식적인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 이런 전통적인 ‘지옥 교리’를 부인하는 기독교인도 오늘날 많습니다.

영원한 지옥에 대한 부인은 두 가지의 부류로 나타납니다.

첫째, 보편 구원론자들입니다.

보편 구원론자들은 하나님이 결국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구원의 기회를 주어 결국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 소멸론자 또는 조건적 불멸론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원받은 신자는 영생을 누리지만(조건적 불멸론),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는 궁극적으로 존재가 없어진다(소멸론)고 생각합니다.

즉 불신자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소멸되는 것이 곧 불신자에 대한 형벌이라는 주장입니다.

불신자가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곧 지옥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인은 지옥에 대한 성경의 계시, 지옥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대한 성경적 교훈

1.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인지 알아야 한다.

2. 죄 값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3. 영원한 형벌에서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옥에 대한 성경의 이런 가르침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첫째,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하며, 하나님의 법을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기간이 몇 십 년 밖에 안 되는데,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는 기간이 영원하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소멸설과 같은 이론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와 심판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죄의 크기는 죄를 짓는 기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대상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생 세금을 조금씩 떼먹은 죄를 지은 사람과, 한순간 왕을 살해하고 반역한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한순간 왕을 살해한 죄의 크기는 한평생 조금씩 세금을 떼먹은 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죄입니다. 일반 세상에서도 왕에 대한 반역죄는 가장 크고 무서운 형벌로 다스려집니다.

그런데 죄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우주 만물의 왕이신 하나님의 왕 되심을 부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반란입니다. 존재와 지식과 능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함과 진실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하나님을 반역한 죄에 대한 처벌은 하나님의 높으심과 위대하심에 비례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무한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대속적인 죽음의 가치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인간을 대표해 인간 대신 죽는 것이 아니고는 다른 방법으로는 처리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자인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예수님이 나 대신, 우리를 대표해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가 받을 지옥의 고통을 ‘영원히 단번에’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십자가를 지신 대속적인 죽음의 의미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크기는 우리가 건짐 받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지옥의 영원한 불, 영원한 어둠의 고통과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우주에서 가장 크고 엄청난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식어지는 것은 우리가 건짐 받은 지옥의 형벌과 고통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음부(지옥)의 특징

음부(81구절) : 구약 69회, 신약 12회
지옥(13구절) ; 신약 13회


1. 만족함이 없는 곳(잠언 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Death and Destruction are never satisfied, and neither are the eyes of man.
(현대인의 성경) 죽음과 멸망이 만족함을 모르듯이 사람의 눈도 만족할 줄 모른다.

2. 구덩이 맨밑(이사야 14: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But you are brought down to the grave, to the depths of the pit.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너는 지옥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 빠질 것이며.

3. 일, 계획, 지식, 지혜가 없는 곳(전도서 9:10)

무릇 네 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Whatever your hand finds to do, do it with all your might, for in the grave, where you are going, there is neither working nor planning nor knowledge nor wisdom.
(현대인의 성경)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 네가 앞으로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이나 지혜도 없다.

4. 감사가 없다(시편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No one remembers you when he is dead. Who praises you from the grave?
(현대인의 성경) 죽으면 아무도 주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누가 무덤에서 주를 찬양하겠습니까?

5. 슬퍼하는 곳(창세기 37:35)
- 위로 받지 못하는 곳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All his sons and daughters came to comfort him, but he refused to be comforted. "No," he said, "in mourning will I go down to the grave to my son." So his father wept for him.
(현대인의 성경) 그의 모든 자녀들이 그를 위로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내가 슬퍼하다가 저 세상에 있는 내 아들에게 가겠다' 하고 계속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6. 불타는 곳(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is angry with his brotherwill be subject to judgment. Again, anyone who says to his brother, 'Raca,' is answerable to the Sanhedrin. But anyone who says, 'You fool!' will be in danger of the fire of hell.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형제에게 이유 없이 화내는 사람은 재판을 받고, 자기 형제를 어리석다고 욕하는 사람은 법정에 끌려가게 될 것이며 '이 미련한 놈아!' 하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다.

- 마가복음 9:43(까지지 않는 불)
- 야고보서 3:6(지옥불)

7. 어두운 구덩이(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For if God did not spare angels when they sinned, but sent them to hell, putting them into gloomy dungeons to be held for judgment.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깊은 지옥에 던져 심판 때까지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 두셨습니다.

천국의 특징

천국(37회) : 신약 37회

1.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only h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현대인의 성경) 내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모두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들어갈 것이다.

2. 침노하는 자의 곳(마태복음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 and forceful men lay hold of it.
(현대인의 성경)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

3. 어린아이들의 것(마태복음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And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현댕인의 성경)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너희가 변화되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마태복음 18:4(낮추는 자의 것)
- 마태복음 19:14(어린 아이들의 것)

4. 구원받은 자가 들어가는 곳(디모데후서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The Lord will rescue me from every evil attack and will bring me safely to his heavenly kingdom. To him b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현대인의 성경) 주님은 모든 악한 일에서 나를 건져내시고 또 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나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길이길이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참고 자료 /

“양과 염소의 비유”


양과 염소로 구분되는 기준은 분명하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를 환대했느냐의 여부다.
주님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그 환대를 행위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 행위는 존재의 변화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런 행동이다.
양으로 구분된 사람들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염소로 구분된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을 간과한 사람들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이 항상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없이 할 수 없기 때문인가.
아니다, 이 단순한 말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인간이 인간인 한 불평등은 세상의 일부이다.
가난한 자와 부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난한 자는 단순히 세상에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은 모든 제자들에게 구원의 방편이다.
그러니까 모름지기 제자라면 가난한 자들을 모른 척 할 수 없다.
제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예수님을 섬기는 것처럼 섬겨야 한다.
그런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열리고 임한다.
핍절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새로운 사회가 불평등한 세상에 빛이 되고,
그 빛이 바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나는 천국과 지옥이 없는 복음을 상상할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주님이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알고 있는 천국과 지옥의 의미와 다르지만 나는 천국과 지옥이 복음의 중요한 핵심요소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특징

한국 역사는 오래동안 특정한 종교에 의해서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하겠다.
고대 사회 때는 무속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삼국 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이조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개화기를 거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신앙의 밑바탕에는 다른 종교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다른 종교로 형식을 바꾼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교육과 치료를 통하여 사회에 영향을 미쳤으나 기독교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에 멈추고 말았다.
이러한 신앙적 배경에서 드러난 한국교회의 신앙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기복적(祈福的)
2. 타계적(他界的)

“기복적 신앙”의 특징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축복에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기복신앙에만 매달려 있고, 또 하나는 이 세상에 관심이 없고 너무 천당 생각만 한다.

“타계적 신앙”이란 오직 천국에 가서 잘 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도 크게 관심도 없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도덕과 윤리를 무시한 신앙생활을 인정하고 교회 안에서 존경받을 만한 신앙적 행동이 마치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것처럼 무비판적인 대상이 되었다고 하겠다.

어떤 목사님이 경각심을 느껴서 매우 심각하게 어느 날 지옥과 천당에 관한 내세의 설교를 했더니 교인들이 앉아서 픽픽 웃고 만 있더래요. 그래서 너무나 좌절이 되어서 자기 친구 배우 코미디언이 있는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순전히 가짜만 말하는데도 어떤 때는 슬픈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심각 한 소리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웃기 만 하니 어떻게 된 거냐고?

코미디언 친구가 목사님에게 이렇게 대답하더래요.

"그거야 뻔하지. 자네는 진리를 꼭 거짓말처럼 말 하고 나야 거짓말을 진리처럼 말하니까 그런 거지"

이런 대답을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내세를 가르칩니다. 그것을 심각한 진리로 가르칩니다. 

그것은 영원한 운명을 주제로 하 는 결코 우리가 피해가서는 안 되는, 피할 수도 없는, 피해서도 안 될 성경의 가장 중요 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영원한 운명의 상태는 죽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예요. 죽을 때 결정하면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 결정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결단을 하느냐, 그것이

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 직전에 보면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6장이죠. 16장의 첫 머리에 보면 소위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라는 매우 난해 한 성경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그런 데 이 비유의 구절에 보시면 이런 말이 나와요.

누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 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삶을 사느냐, 못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영원한 처소 다시 말하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이렇게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아무도 보내지 않습니다. 보내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가야 합니까?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보면 본래 이 지옥이란 장소는 마귀와 마귀들을 따르는 그의 졸개들. 귀신들을 위해 예비 된 곳 이예요.
그런데 불행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스스로 이 마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단을 자기의 주인으로 알고 하나님이 아닌 마귀를 선택해서 그를 추종하다 보니까 마귀가 가있는 곳 마지막도 가 있는 것 이예요.
그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천국은 어떤 곳 입니까?
천국은 영원한 위로와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곳.


계시록 21장에 보시면 천국의 카텐을 하나님이 조금 열어줍니다. 우리가 천국에 막 도달하자마자 거기에 우리의 발걸음이 막 도달하자마자, 우리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자마자 즉각적으로 경험할 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가 있어요. 거기에 보면 '하나님 이 저희들과 함께 계셔서 저희의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자마자 경험하게 될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달려 나와 나를 안아주십니다. 내가 알아. 네가 세상에 있는 동안 얼마나 아파하고 슬퍼했는지를 알아. 그리고 주께서 내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내 눈물이 씻겨지는 장소. 그리고 이어서 천국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다시는 아픔이 없고 다시는 애곡함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 없는 곳이다. 이렇게 성경은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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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4(07 / 01 /20)

하나님의 이름(시편 9:10, 잠언 18:10)

* 시편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Those who know your name will trust in you, for you, LORD, have never forsaken those who seek you.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한다.
성경에서 주의 이름을 가장 잘 알았던 인물 중에 다윗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온 이스라엘 나라에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용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싸움터에 나갔던 용사가 아닙니다.
전쟁터에 나간 형들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아버지가 보낸 심부름군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아주 거대한 장군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용사가 없느냐?
너희들이 섬기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와서 나와 겨루어 이기는 자의 신이 참신이 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아무도 적군의 장수와 맞서지 못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은 잊어버리고 내가 나가서 싸울 것이라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진두지휘를 하던 사울 왕은 자기의 갑옷을 다윗에게 입혀보려 했으나 너무 커서 입을 수도 없었습니다.
창과 방패를 주었으나 다윗은 도저히 휘두를 수 있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평소에 사용하던 물맷돌을 들고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 앞에 나갔습니다.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David said to the Philistine,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결국 다윗이 이겼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처음부터 무리수를 두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진영에서 아무도 맞설 수 있는 용사가 없었기 때문에 다윗이 나섰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싸움에서 사용하는 칼과 창과 단창이 아닙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당시 이스라엘 진영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었을까요?

* 시편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Those who know your name will trust in you, for you, LORD, have never forsaken those who seek you.

아는 것은 의지할 때에만 힘을 드러낼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아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례 1)
온산에서 교회를 시작 할 때 마을을 장악하고 있던 서울 무당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을에 450년 된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 소나무가 사라호 태풍이 불어왔을 때 마을은 모두 물에 잠겼는데 유일하게 소나무는 당당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마을을 지키는 당수나무로 마을 사람들이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사라호 태풍
1959년 제14호 태풍으로,  1959년 9월 12일에 발생하여 9월 17일 3등급 세력으로 한반도를 관통하였다.
아직도 노인들 특히 경상도나 제주도 지역 노인들에게는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특히 9월 17일은 추석이어서 일기예보 같은 것도 없던 시절에 아무 것도 모르고 차례 지내다가 휩쓸려버린 집도 많다고 한다.
차례상이고 뭐고 내버려두고 허겁지겁 도망쳐서 집이 휩쓸리고 마을이 무너져 버린 후에야 태풍인 줄 알았다고.
경상도 지방의 어르신들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호'라고 하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그 당수나무 옆에 당시 부산 대성교회 여전도회에서 70평 정도의 땅을 구입하고 교회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당수나무 옆이라 마을 주민들은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문제는 땅 주인은 땅을 팔았으나 주민들을 당수나무 옆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도저히 그곳에서 교회를 할 수 없다며
개척 지원을 받고 시작했던 서기태목사님은 부산으로 사역지를 옮겨버렸습니다.
마침 제게 연락이 와서 주말에 내려가서 설교만 하고 올라오기로 하였는데 결국은 첫 목회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마을을 장악하고 있던 서울무당이 마을 주민들을 선동하여 마을을 지키려면 큰 굿판을 벌여야 한다며 당시 2-300만원의 비용을 요구한 것입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그런 돈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축소하여 작은 굿판을 벌였는데 무당이 몇날을 굿판을 벌이다가 예수신 때문에 마을 수호신이 당수나무를 떠났다고 하며 그 마을에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례 2)
한번은 대학의 친구들과 후암동 어느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 길가의 집에서 굿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서 그 굿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서울에서 아직도 저런 굿판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주여, 저 무당이 굿을 하지 못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굿을 하던 무당이 집주인에게 물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들을 가져오게 하더니 물을 가득 담은 후에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물을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신이 오지 않는구나! 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적용)
다윗의 시대에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능력이 있었을까요?
온산에서만 하나님의 이름이 능력이 있었을까요?
저는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아니라고 믿습니다.
오늘날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다만 주를 믿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아는 것은 믿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는 것을 믿는 것으로 확신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을 소개합니다.

*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The name of the LORD is a strong tower; the righteous run to it and are safe.

- 견고한 망대(Strong Tower)를 "안전지대"라고도 합니다

시편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Because of the oppression of the weak and the groaning of the needy, I will now arise, says the LORD. I will protect them from those who malign them.

견고한 망대와 같은 안전지대에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18:10 -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달려가야 합니다.

시편 12:5 - 탄식을 인하여(the groaning)

* 출애굽기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During that long period, the king of Egypt died. The Israelites groaned in their slavery and cried out, and their cry for help because of their slavery went up to God.

탄식하는 사람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달려가서 부르짖는 일이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점점 상황이 심각해 질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6월 22일 세계적인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 전체 감염자의 수는 904만 5천명, 사망자는 47만 1천명
미국의 경우는 235만 7천명, 사망자는 12만 2천명이라고 합니다.
여름철이 되면 다소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깨우치는 말씀은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며 도저히 자기들의 힘으로 애급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때 탄식하며 부르짖었을 때 그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탄식하며 부르짖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리가 하늘  보좌에 상달하려면 여호와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다윗과 같이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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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5(07 / 08 /20)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3
- 참조 /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지난 수요일 성서학당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개할 때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이라고 하겠습니다.

(도입 이야기)
지난 월요일 아침에 갑자기 저희 어머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7월 6일).

6. 25가 일어나기 전에 저희 아버님은 안양교도소 형무관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제도는 형무관은 군에 안간다고 하였는데 군인이 부족하여 형무관들도 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료 형무관들 50여명 군에 입대했었는데 대부분 전사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당시에는 확실한 믿음이 없었는데 막상 전쟁터에서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면서 오직 한가지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합니다.

(전개 이야기)
우리들은 지금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쟁터에 던져졌습니다.
물론 약을 찾을 수 있고 의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과 의사가 내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오직 믿고 찾을 것은 하나님이었다는 고백처럼 우리들도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쟁터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님이 직업 군인으로 부대가 있는 지역에서 영외 거주자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어머니와 서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집은 항상 아버지가 함께 지냈지만 저희는 아버님이 출장이나 휴가 때에만 잠시 집에 들렀기 때문에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하루는 제가 어머니와 동생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나 오늘 아버지를 봤다!” 라고 말을 했더니 모두들 “언제, 어디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남의 아버지!” 라고 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의 아버지는 거리에 나가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버지!" 하고 부른다면 아마 그 사람이 나를 "미친 놈이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분명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재 가치란 "인격적 관계"를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와 분명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맹무상(群盲撫象)

- 무리 군(群), 소경 맹(盲), 어루만질 무(撫), 코끼리 상(象)

열반경(涅槃經)에 소개된 이야기로 맹인(盲人) 여럿코끼리만진다는 으로, 사물좁은 소견주관으로 잘못 판단함을 이르는 .

어느 왕이 하루는 소경 열사람을 모아 잔치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잔치 도중에 한 대신을 불러 코끼리를 끌어내어 소경 아홉사람에게 만져보게 하고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소경들은 코끼리인 줄을 모르고 이빨을 만진 소경은 "무" 같다고 대답하고,
귀를 만져 본 소경은 "키짝" 같다고 대답하고,
머리를 만진 소경은 "바위돌"같다 하고,
다리를 만진 소경은 "기둥"같다고 하고,
옆구리를 만진 소경은 "담벼락"과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코끼를 만저보지 못한 소경은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도무지 종잡을 없어 모두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말했다.

왕이 말하기를,
“선남자(善男子)들이여, 이 소경들은 코끼리와 몸뚱이를 제대로 말하고는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코끼리는 아니지만, 이것을 떠나서 또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코끼리불성(佛性)을 비유해서 말한 것으로, 소경은 모든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모든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는, 여러 명의 장님들이 코끼리를 어루만져 보고, 배를 만진 장님은 담벼락과 같다고 하고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과 같다고 하는 등 자기가 만져 본 부분에 의하여 의견을 말하는 일을 가리킨다.
우리가 쓰고 있는 뜻은, 못나고 어리석은 범인(凡人)들이 위대한 인물이나 사업을 비판한다 해도 그것은 한갓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평으로, 전체에 대한 올바른 평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과 좁은 소견으로 그릇 판단한다는 뜻이다.

소경과 코끼리의 이야기에서 코끼리의 다양한 모양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제까지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마치 소경이 코끼리를 만졌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리의 코끼리에 대한 부분적인 이야기와 한 하나님에 대한 제 각기 다른 경험의 이야기는 실체는 하나이지만 느끼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온전한 하나로 계시지만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하나님을 불렀던 이름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게 알려지고 불렸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 것은 각 사람의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육체의 질병에 시달리던 사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육체의 질병만 고쳐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의사와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굶주린 사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먹을 것을 제공하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먹을 것만 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주방장과 같다 또는 요리사와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들 중에서 “임마누엘” 이란 이름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계시하고 나타낼 수 있을까요?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많은 이름들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이 완전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다, 지혜롭다, 사랑이시다, 존귀하다, 기묘자, 공의롭다 등과 같은 말로 설명할 뿐입니다.

언어 표현력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사람은 아직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어떤 이름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어떠함은 너무나 많은데, 사람의 언어는 너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전부를 전혀 대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거룩하기 때문에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그의 시대별 성품을 대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도록 나타내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의 신비한 영적 체험에 갇혀 그 체험을 갖고 일생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나에게 “도대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다른 어떤 말로 설명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궁금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특별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이때 계시하셨던 대표적인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을 "여호와"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교회에서 성경을 읽었던 두 가지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신명기적 역사관(신명기 28:1-6)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적 역사관이란 모세 오경 중에서 신명기를 성경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명기의 핵심은 순종하면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둘째, 레위기적 역사관(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to be your God; therefore be holy, because I am holy.

참조 / 베드로전서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레위기적 역사관은 모세오경 중에서 출애굽기를 주축으로 생각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민족을 애급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구속하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죄에서 구원하실 자" 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형성되려면 반드시 "피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시편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참조 / 사도행전 13:33, 히브리서 5:5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성경적 근거

야고보서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하셨습니다.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낳았습니까?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진리는 "예수" 예수는 곧 "예수의 보혈"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분명한 의미를 갖고 불러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출애굽기 3:14)
신약에서는 "예수"(마태복음 1:21)
요한계시록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요한계시록 1:8, 21:6, 22:13) 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에는 반드시 구원에 대한 약속이 내포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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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3
- 참조 /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지난 수요일 성서학당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개할 때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이라고 하겠습니다.

(도입 이야기)
지난 월요일 아침에 갑자기 저희 어머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7월 6일).

6. 25가 일어나기 전에 저희 아버님은 안양교도소 형무관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제도는 형무관은 군에 안간다고 하였는데 군인이 부족하여 형무관들도 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료 형무관들 50여명 군에 입대했었는데 대부분 전사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당시에는 확실한 믿음이 없었는데 막상 전쟁터에서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면서 오직 한가지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합니다.

(전개 이야기)
우리들은 지금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쟁터에 던져졌습니다.
물론 약을 찾을 수 있고 의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과 의사가 내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오직 믿고 찾을 것은 하나님이었다는 고백처럼 우리들도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쟁터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님이 직업 군인으로 부대가 있는 지역에서 영외 거주자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어머니와 서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집은 항상 아버지가 함께 지냈지만 저희는 아버님이 출장이나 휴가 때에만 잠시 집에 들렀기 때문에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하루는 제가 어머니와 동생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나 오늘 아버지를 봤다!” 라고 말을 했더니 모두들 “언제, 어디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남의 아버지!” 라고 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의 아버지는 거리에 나가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버지!" 하고 부른다면 아마 그 사람이 나를 "미친 놈이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분명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재 가치란 "인격적 관계"를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와 분명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맹무상(群盲撫象)

- 무리 군(群), 소경 맹(盲), 어루만질 무(撫), 코끼리 상(象)

열반경(涅槃經)에 소개된 이야기로 맹인(盲人) 여럿코끼리만진다는 으로, 사물좁은 소견주관으로 잘못 판단함을 이르는 .

어느 왕이 하루는 소경 열사람을 모아 잔치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잔치 도중에 한 대신을 불러 코끼리를 끌어내어 소경 아홉사람에게 만져보게 하고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소경들은 코끼리인 줄을 모르고 이빨을 만진 소경은 "무" 같다고 대답하고,
귀를 만져 본 소경은 "키짝" 같다고 대답하고,
머리를 만진 소경은 "바위돌"같다 하고,
다리를 만진 소경은 "기둥"같다고 하고,
옆구리를 만진 소경은 "담벼락"과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코끼를 만저보지 못한 소경은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도무지 종잡을 없어 모두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말했다.

왕이 말하기를,
“선남자(善男子)들이여, 이 소경들은 코끼리와 몸뚱이를 제대로 말하고는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코끼리는 아니지만, 이것을 떠나서 또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코끼리불성(佛性)을 비유해서 말한 것으로, 소경은 모든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모든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는, 여러 명의 장님들이 코끼리를 어루만져 보고, 배를 만진 장님은 담벼락과 같다고 하고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과 같다고 하는 등 자기가 만져 본 부분에 의하여 의견을 말하는 일을 가리킨다.
우리가 쓰고 있는 뜻은, 못나고 어리석은 범인(凡人)들이 위대한 인물이나 사업을 비판한다 해도 그것은 한갓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평으로, 전체에 대한 올바른 평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과 좁은 소견으로 그릇 판단한다는 뜻이다.

소경과 코끼리의 이야기에서 코끼리의 다양한 모양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제까지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마치 소경이 코끼리를 만졌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리의 코끼리에 대한 부분적인 이야기와 한 하나님에 대한 제 각기 다른 경험의 이야기는 실체는 하나이지만 느끼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온전한 하나로 계시지만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하나님을 불렀던 이름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게 알려지고 불렸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 것은 각 사람의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육체의 질병에 시달리던 사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육체의 질병만 고쳐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의사와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굶주린 사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먹을 것을 제공하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먹을 것만 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주방장과 같다 또는 요리사와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들 중에서 “임마누엘” 이란 이름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계시하고 나타낼 수 있을까요?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많은 이름들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이 완전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다, 지혜롭다, 사랑이시다, 존귀하다, 기묘자, 공의롭다 등과 같은 말로 설명할 뿐입니다.

언어 표현력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사람은 아직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어떤 이름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어떠함은 너무나 많은데, 사람의 언어는 너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전부를 전혀 대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거룩하기 때문에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그의 시대별 성품을 대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도록 나타내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의 신비한 영적 체험에 갇혀 그 체험을 갖고 일생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나에게 “도대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다른 어떤 말로 설명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궁금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특별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이때 계시하셨던 대표적인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을 "여호와"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교회에서 성경을 읽었던 두 가지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신명기적 역사관(신명기 28:1-6)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적 역사관이란 모세 오경 중에서 신명기를 성경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명기의 핵심은 순종하면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둘째, 레위기적 역사관(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to be your God; therefore be holy, because I am holy.

참조 / 베드로전서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레위기적 역사관은 모세오경 중에서 출애굽기를 주축으로 생각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민족을 애급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구속하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죄에서 구원하실 자" 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형성되려면 반드시 "피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시편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참조 / 사도행전 13:33, 히브리서 5:5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성경적 근거

야고보서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하셨습니다.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낳았습니까?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진리는 "예수" 예수는 곧 "예수의 보혈"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분명한 의미를 갖고 불러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출애굽기 3:14)
신약에서는 "예수"(마태복음 1:21)
요한계시록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요한계시록 1:8, 21:6, 22:13) 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에는 반드시 구원에 대한 약속이 내포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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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6(07-15-20)

지난 수요성서학당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아무나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혈연관계
둘째는 양자관계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구약과 신약과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이 필요한가?

첫째, 이름은 존재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둘째, 이름은 존재 능력 및 가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름을 갖는 존재를 찾는 것으로 그 이름의 능력과 가치를 깨닫게 합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참조 /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셋째, 이름은 구속의 은혜

구약에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이름은 “여호와” 라고 합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이름은 “예수” 라고 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알파와 오메가” 라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문자적인 의미로 소개합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은 히브리 알파벳 4자로 표현합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24자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히브리 알파벳으로 “요드(י), (ה), 바브(ו), (ה)” 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것을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aton)” 이라고 합니다.
“테트라그라마톤”은 “(τετρα, tetra)” “글자(γράμματον, grammaton)”라는 뜻의 헬라어 단어입니다.
“테트라그라마톤”을 우리 말로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라고 합니다.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란 “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문자”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히브리 알파벳으로 “요드, 헤, 와우, 헤” 라고 합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숫자 값이 있고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드(י)란 알파벳의 숫자 값은 “10”, 상징은 “하나님의 손” “능력”
헤(ה)란 알파벳의 숫자 값은 “5”, 상징은 “보다” “내 쉬는 숨” “생명을 주다”
바브(ו)란 알파벳의 숫자 값은 “6”, 상징은 “못” “연결” “갈고리” “실제화하다” 
헤(ה)란 알파벳의 숫자 값은 “5”, 상징은 “보다” “내 쉬는 숨” “생명을 주다”
여호와 라는 히브리 알파벳의 숫자값은 10+5+6+5=26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라는 히브리 알파벳의 상징은 “하나님의 손을 보라, 못 박힌 손”
따라서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출애굽기에서 스스로 있는 자 라고 소개하였지만 감추어진 의미는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하기 위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할 예수님의 손을 상징으로 예언하며 계시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시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돌보며 호렙 산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에서 불이 타올랐습니다. 모세는 들판에서 가끔 일어나는 들불인 줄 알았으나 불이 꺼지지 않아 가까기 다가갔을 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은 모세를 애급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며 부르짖는 히브리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3:11∼15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여호와” 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한 이름입니다.
“여호와” 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이름)니라.

영원한 이름을 바뀔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이름이 바뀐 것일까요?
아닙니다. 발음은 다르게 표현하지만 이름이 갖는 속뜻 본래의 의미는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은 곧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깨우쳤습니다.

요한복음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한복음 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 하는 것이어늘. 

요한복음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요한복음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한복음 17:11∼12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알파와 오메가”

알파와 오메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헬라어 알파벳의 첫 문자 “알파”와 마지막 문자 “오메가”를 말합니다. 알파벳을 시작하는 첫 문자와 마지막 문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에서 여호와로 불렀고 신약에서 예수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첫 번째 이름이며 또한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마지막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에고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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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7(08-05-20)

에고 에이미(내가 그니라) 요한복음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Jesus of Nazareth, they replied. I am he, Jesus said. And Judas the traitor was standing there with them.   

“내가 그니라”(I am he)
헬라어 -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ego eimi)”  
ἐγώ(1473. egó) ; 인칭대명사, 영어의 아이(I)
εἰμί(1510. eimi) ; 동사, I am, I exist     
히브리어 - “에히야(אֶֽהְיֶ֑ה) 에쉘(אֲשֶׁ֣ר) 에히야(אֶֽהְיֶ֑ה)”

요한복음 18:1∼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우리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오래 동안 성경을 읽었고 설교를 들었으며 성경공부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한 것이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이 오늘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기도하셨던 장소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대한 말씀을 복음서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마가복음 14: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누가복음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겟세마네 또는 감람산이라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곳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요한복음에서는 겟세마네 또는 감람산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기드론 시내 건너편이라고 그곳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요한복음에서는 기드론 시내 건너편이라고 하셨을까?

요한복음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Jesus of Nazareth," they replied. "I am he," Jesus said. (And Judas the traitor was standing there with them.

"내가 그니라"(I am he)
헬라어 성경 -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ἐγώ(1473. egó) ; 인칭대명사, 영어의 아이(I)
εἰμί(1510. eimi) ; 동사, I am, I exist     
히브리어 - 에히야 에쉘 에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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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드론(Gidron) - 암흑, 백향목의 시내

예루살렘성벽과 감람산 사이에 있는 이 골짜기는 약 5km에 걸쳐있다.

1.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이 시내를 건넜다(삼하 15:23)

온 땅 사람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로 향하니라.

30절,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2. 아사와 히스기야는 우상을 이 시내에서 불살랐다(왕상 15:13, 왕하 23:6)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3. 예수님이 겟세마네와 베다니를 다니시느라고 자주 이 시내를 건넜다(요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 거기 동산이 있는데(1절) :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하여 감람산과 성전산 중간을 흘러서 사해로 들어간다.
기드론의 뜻은 ‘암흑’, ‘백향목의 시내’로서 골짜기의 무성한 나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을 가리키는데, ‘겟세마네’는 기름 짠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감람나무가 많아 그 열매의 기름을 짰을 것이다.

"여호사밧의 골짜기" 라고도 하는 기드론 골짜기는 성경에 12번 정도 나오는데, 시내, 골짜기, 와디 등으로 소개된다.
오늘날의 지형은 과거보다 3~12m 정도 높아져 있다.
기드론 골짜기는 천연 요새와 같은 지형이다.

'여호사밧 골짜기', '브라가 골짜기', '판결의 골짜기' 등과 어우러지기도 하는데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 북서쪽의 전망산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성과 감람산을 가로지른다.
성 동문을 지나 성전에 들어갈 때에나 겟세마네 동산이나 감람산으로 올라 기도할 때에나, 또 배다니 나사로의 집으로 갈 때에도 매번 이 계곡을 건너셨다.
훗날 부활을 위한 최후의 심판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해서인지 사후에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거리면 힌놈의 골짜기와 맞닿는 기드론 골짜기에 이른다.
오늘날은 아랍인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감람산까지 이동하면 걸어서 10~15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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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 나타난 나는 ∼이다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ego eimi)

요한복음의 공관 복음서와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집중한다. 일곱 가지의 기적이나 다른 복음서에 비해 과하게 많은 설교 등은 이것을 반영한다. 또한 신학적 표현 중의 하나님 ‘나는 나다’(에고 에이미)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정확하게 ‘나는~이다’ 형태를 띤 구절은 일곱 번 사용된다.

Ⅰ.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직후에 하신 말씀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고대 이스라엘의 광야시절에 비유될 수 있다. 광야에 식탁을 베풀 수 있을까?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응답하신다. 요한복음은 주리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 뒤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반석의 생수 사건을 연상시키는 은유적 표현을 덧붙이신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정확하게 사십 년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광야의 떡과 예수님 자신의 ‘떡’과 비교되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며, 먹는 자는 영적으로 주리지 않을 것이다. 즉 영생을 얻을 것이다.

Ⅱ.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온 후에 주어진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다그치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고, 땅에 글을 쓰신다. 다시 재촉하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나이든 사람으로부터 시작 젊은이까지 모두 떠난다. 여자 외에 아무도 없자 여자에게 묻는 ‘너는 정죄한 사람이 있느냐?’ 그러신 후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신다. 그리고 이 말씀이 주어진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생명과 진리, 하나님의 영광으로 비유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상의’ 라는 표현이다. 세상은 예수님의 사역의 장소이며, 구원할 타락한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κόσμος)을 사랑하신다. 세상은 악한 자들의 소굴이며, 사단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세상(κόσμος)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Οὕτως γὰρ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Nestle 1904)

‘세상의’는 ‘세상에서’ 또는 ‘세상을’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과 분리된 존재가 아닌, 세상에 있고, 세상을 위한 존재인 것을 드러내신다. 

Ⅲ. 나는 문이다(10:7, 9)
ἐγώ εἰμι ἡ θύρα τῶν προβάτων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문은 출입구다. 또한 부여된 자격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문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제한된 사람, 출입이 허가된 존재들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시다. 즉 양들이 출입하는 곳이다. 양이 아닌 다른 동물은 들어갈 수 없다. 모든 양도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이다. 그것은 주인의 목소리로 구분될 것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 자는 그 문으로 들어갈 것이나, 알지 못하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다음 구절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간 결과에 대한 것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9∼10)

예수님은 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가를 설명하신다. 먼저는 ‘구원’을 얻는다. 문은 구원의 문이다. 둘째는 ‘꼴’ 즉 양식을 얻는다. 먹을 것이 풍부하다. 이 부분은 문인 동시에 생명의 떡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세 번째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Ⅳ. 나는 선한 목자라(10:11)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직역하면, '나는 이다. 그 목자 그 선한' 

목자는 양들을 돌보는 사람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목자로 소개함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는 그러낸다. 선한 목자는 삯꾼 목자와 다르고, 강도와 반대된다. 당대 종교지도자들은 겉으로는 목자였지만 강도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제사를 빌미로 백성들의 재물을 탐했고, 과부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오히려 양들을 위해 존재한다. 목숨을 바치고, 꼴을 준다.

여기서 선한(καλὸς)이란 단어는 ‘선하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유(Rieu)는 ‘나는 아름다운 목자다’ 라고 번역하도록 권유한다. 요한이 말하는 ‘선한’이란 말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로마서 7:16에서는 ‘율법이 선하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1:8에서는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율법은 선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4:6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좋은’이란 단어로 번역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좋은 교훈’을 자신이 가르치는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다. 

마태복음 13:24로 넘어가면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농부가 나온다. 그가 뿌리는 씨앗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8:8에서 ‘더 낫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롬 7:16 νόμῳ ὅτι καλός
딤전 1:8 δὲ ὅτι καλὸς ὁ νόμος
딤전 4:6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καλὸς ἔσῃ διάκονος

영어 성경은 칼로스(καλός)를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beautiful, as an outward sign of the inward good, noble, honorable character; good, worthy, honorable, noble, and seen to be so.) 이러한 의미를 볼 때 ‘좋은’이란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완전한 상태이거나, 흠이 없고, 일반적인 어떤 상태보다 월등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은 양자 삼으신다. 양들은 아무런 힘이 없고, 방어할 수도 없다. 그들은 느리고, 둔하다. 목자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동물들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관계는 이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포용으로 가능하다.

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Ἐγώ εἰμι ἡ ἀνάστασις καὶ ἡ ζωή·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 선언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나사로의 집에 갔을 때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다가 말한다. 마지막 날에 대한 부활의 확신은 있지만,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말했던 것이다. 마르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자신을 부활과 생명이라고 소개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부활이다. 그리고 생명이다’라는 표현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선언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다. 부활과 생명을 하나로 보며, 예수님을 진정한 생명이라고 재선언한다.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11:4은 생명과 빛이 연결된다. 이제 부활과 연결되고, 부활은 새로운 생명이다. 이로서 생명의 정체가 드러나며,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영원한 능력이 완전하게 드러난다. 죽음까지 정복하신 예수님이시다.

Ⅵ.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강론이 시작되는 곳이다. 공관복음서와 다르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강론을 길게 넣는다. 도마는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모른다고 투덜거린다. 의심이 많았던 도마는 무엇인가 확실하게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 때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11장에서 부활과 생명이 만났다면, 14장에서는 생명이 길과 진리와 만난다. 세 개의 정의에 모두 관사(ἡ)가 붙어 있다. ‘내가 그 길이고, 그 진리고, 그 생명이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예수님은 여러 개의 길 중의 하나가 아니다. 바로 ‘그 길’이다. 길은 곧 진리와 만나, 예수님의 배타성과 진리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 진리는 다시 생명으로 나아간다. 

Ⅶ.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5)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곳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도의 관계를 드러낸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절). 예수님은 농부가 기르는 포도나무다(1, 5절). 성도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가지’라고 말씀하신다(5절). 성도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포도나무이시다.

요한복음 15:1
내가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gardener.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 I am the vine  
헬라어 원문은 ‘참’에 관사(ἡ)가 있어, 포도나무와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의 동사를 취함으로 앞선 문장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참’이라는 표현은 다른 거짓된 것과 구분된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거짓된 포도나무, 즉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다른 것과 구분하고 차별화 시킨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에 나타난 포도나무는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돌포도나무다. 그들은 거짓되고, 악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빈약하다.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그릇된 포도나무다.

‘안에 있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원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붙어있다. 

안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계명에 순종하는 삶이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열매 없는 가지(성도)를 잘라 낸다는 말은 종말론적 심판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선택된 백성이 버려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요한은 붙어 있다는 의미는 겉으로 드러난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 듯하다. 즉 교회에 있으나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아니라면 그는 심판의 때에 제해질 것이다. 그가 진정한 제자인지는 열매가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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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고 충돌하는 게 이들 종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이슬람 신자들은 예수님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그런데 이슬람교 신자들이 예수님을 존경한다는 말이 있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더라.
이슬람교를 믿는 신자를 무슬림이라 부른다.
무슬림은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낸 사람’으로 생각한다.”
  뜻 밖이다. 그럼 무슬림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무슬림이 예수님을 존경하긴 하는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고 했다. 복잡하다.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다. 둘은 엄연히 물과 기름 아닌가.  
  
“하나씩 짚어보자.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권에서는 ‘하느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GOD(갓)’이라고 부른다. 한국말로는 어떻게 부르나. 개신교는 ‘하나님’, 가톨릭은 ‘하느님’이라 부른다. 그럼 아랍어로는 하느님을 뭐라고 부르나. ‘알라’다.”
 

아랍권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지 않나. 그들은 ‘하느님(하나님)’을 뭐라고 부르나.
  
“맞다. 중동 지역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다. 이집트에도 콥트 기독교인 있다. 그들이 하느님을 부를 때 ‘알라’라고 부른다. 그들이 보는 아랍어 기독교 성경에도 하느님은 ‘알라’라고 적혀 있다. 이슬람교 신자도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르고, 아랍의 기독교인도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그러니 하느님과 알라는 서로 다른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하나의 신을 섬기는 건가.  
  
“이들 세 종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세 개의 가지와 같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면 심기가 불편한 기독교 신자도 있지 싶다.”
 
왜 그런가.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른다. 사람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좀 전에는 이슬람교 신자들도 예수님을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슬림은 예수님을 선지자로서 존경한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 노아, 모세, 아브라함, 다윗처럼 말이다. 예수님 역시 그런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구세주, 다시 말해 메시아로는 보질 않는다. 이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결정적 차이다.”
  
이슬람교는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질 않나.
  
“이슬람교에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굳이 아들을 따로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왜 그럴까. 하느님이 직접 하면 되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세상을 직접 구원하면 되지, 굳이 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건 좀 따져봐야겠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인간에게 원죄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원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원죄를 대신 없애주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면, 인간의 원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기독교에는 원죄 개념이 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날 때부터 원죄를 안고서 태어난다. 반면 이슬람교에는 원죄 개념이 없다. 가령 이슬람교에서 갓난아기들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점점 자라면서 에고가 생기고, 죄의식도 덩달아 생긴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받지만, 이슬람교의 죄사함은 나와 하느님의 직통 관계다. 중간에 누구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은 받아들이기 힘들겠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이유로 이슬람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많다. ‘예수’라는 구원의 징검다리가 없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기독교는 반드시 대전을 거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 대전이 예수 그리스도다. ‘대전을 거치지 않고서는 부산에 갈 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교리 체계가 다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바로 가면 된다고 믿는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된다고 믿는다. 나와 하느님의 직통 관계니까.”
 
그럼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으로만 보는 건가.
  
“그건 또 아니다. 이슬람교도 예수님이 처녀의 몸,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걸 받아들인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기적)들도 인정한다. 그러니까 비범한 선지자로 보는 거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 역시 그런 선지자로 본다. 무함마드를 구세주로 보지 않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어떻게 다른가.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이게 유대교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아들’이 등장한다. 삼위일체론을 통해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더 닮았다.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이슬람교다.”  
 

 
그럼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나.  
  
“한국 기독교는 유대교를 사촌 정도로 생각한다. 가까운 친인척의 느낌이다. 그런데 정작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구세주로 보지도 않고, 선지자로 보지도 않는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 성경이다. 원래부터  ‘바이블(성경)’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기독교가 생기면서 유대교의 경전을 ‘구약’이라 고쳐 부르고, 자신들의 경전을 ‘신약’이라 불렀다. 이런 명칭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은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더라.”
  
이슬람을 테러와 폭력의 종교로 아는 이들도 꽤 많다. 어떻게 보나.  
  
“불교에도 어떤가. 착한 불교 신자가 있고, 나쁜 불교 신자도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착한 기독교인이 있고, 나쁜 기독교인도 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착한 무슬림이 있고, 나쁜 무슬림이 있다.
제가 만난 무슬림들은 테러와 폭력을 일삼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누구보다 싫어하더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무슬림 전체로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테러나 폭력을 일삼기에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 때문에 모든 이슬람이 그런 것처럼 비치는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출처: 중앙일보]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믿는다”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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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8(08-12-20)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祖上)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 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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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주 성경(貫珠 聖經)





출애굽기 4:5,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열왕기상 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12: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하였느냐.

누가복음 20:37,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열왕기상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사야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불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불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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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성서학당 시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첫째는 언약(言約)의 하나님
둘째는 생명(生命)의 하나님
셋째는 순종(順從)의 하나님

첫째, 언약의 하나님

언약이란 약속하신 땅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요한복음 14:2-3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처소(τόπος. 토포스, topos) -  a place

* 종교통합을 위한 계획
 1. 2018년 9월 26일(수) 발표
 2. 2020년 6월 23일(화) 발표 - 네델란드 유엔 평화의 궁전(Peace Place)에서 세계 종교대통합 발표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연기
 
4-5년 후에 역학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며 선교하라는 명을 받아 아프리카에 가서 사역을 하는데 흑인들 어울려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학원을 차렸으나 코로나에 의해서 문을 닫을 위기를 맞았다.
너무 답답하여 무당 점집을 찾아가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자 무당이 여자가 문으로 들어올 때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하며 노래를 한다.
그리고 점을 치는데 "당신은 실력이 없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끝까지 죽도록 믿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문제는 끈기가 없다.
그러므로 사주에 따라 무녀가 되든지 아니면 절에 가서 스님 밑에서 글을 써주는 일을 하라.

오늘은 두번째 "산 자의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소개합니다.
산 자의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산 자(The Living) - 자오(ζάω, 2198. zaó: to live)
Cognate: 2198 záō – to live, experience God's gift of life.

조에(
ζωή, 2222. zóé: life) - both of physical (present) and of spiritual (particularly future) existence.

산 자라는 용어 자오에서 조에라는 단어가 파생합니다.
조에는 성경에서 현실세계에서는 육체적인 생명을 말하지만 부활 때에는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12: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하였느냐.

누가복음 20:37,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산 자"를 영어 성경에서(마태복음 22:32) 찾아보겠습니다.

I am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산 자"는 "the living"이라고 합니다.
"the living"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 생명(生命,  ζωή)
* (主, ἀρχηγός) - archégos : founder, leader
* 생명의 저자, 생명의 지도자, 생명의 창설자

성경을 해석할 때 어느 한 구절만 인용하는 것보다 그 말씀의 전후 배경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읽어보겠습니다(마태복음 22:23-32).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
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유대의 전통적인 풍속에 여러 형제들이 있을 때 맏형이 결혼 후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다음 형제가 형수를 아내로 맞아 후사를 이어주는 "계대결혼(繼代結婚)" 이란 전통이 있었습니다.

계대 결혼

 계대 결혼이란 고대 중근동 문화권 내에서 주로 행해지던 풍습으로서 죽은 형제에게 자손이 없을 경우 그 대를 이어주기 위해 죽은 자의 남은 형제가 미망인과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이는 가계의 보존과 재산권을 중시하던 당신의 상황 속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이때 그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는 법적으로 죽은 형제의 자손이 되어, 그 죽은 자의 모든 권리를 이어받게 된다.
한편 이 계대 결혼의 풍습은 사회적으로 아주 강한 구속력을 갖는 것이었으며, 만약 남은 형제가 이 결혼을 거부할 경우 심한 사회적 비난과 수치를 당해야만 했다. 이후 이 풍습은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하나의 율법으로 정착되어 예수님 당시까지 이어져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예 / 창세기 38 : 6-11
유다는 큰 아들 엘이 죽어 둘째 아들 오난에게 큰 며느리 다말과 결혼하게 된다.
이 관습을 이행치 않은 오난은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로 보아 하나님께서도 이 관습을 허용하신 듯 하다.

룻기에 소개된 계대결혼 및 기업 무르기(고엘)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일곱 형제가 계대결혼에 따라 모두 한 아내를 맞이했는데 만일 부활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 라는 질문을 합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 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부활 때에는 시집이나 장가를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부활 생명의 하나님" 이란 뜻입니다.

조화(造花) 생화(生花)
조화가 아주 멋있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조화가 잘 만들었어도 생화보다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조화와 같은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죽은 신앙이란 그 안에 부활생명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살아있는 신앙이란 교회 안과 밖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면 별로 신앙이 없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부활생명이 분명한 것을 말합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가사를 작사했던 "존 뉴톤" 목사님의 간증에서 천국에 올라갔을 때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이 사람은 반드시 천국에 있겠구나 하던 사람이 천국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사람은 천국에 없겠구나 하던 사람이 천국에 있다고 합니다.
셋째는 나와 같은 사람의 이름이 천국에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갖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아주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모든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열심도 없고 잘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모두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물론 직장에서 가정에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때로는 당황하게 됩니다.

부활 생명을 소유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주님께서 사데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Sardis)란 "남은 물건" 이란 뜻입니다.
사데란 남은 물건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죽었다는 것은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았는데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수고했어요.
그러다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천국에서 여기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비참합니까?
이런 믿음이 죽은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봅시다.
우리는 믿음이 살아 있습니까?
아니면 죽었습니까?

전도서에 보면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전 9:4).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죽은 자가 되지 말고, 산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아서 생기가 넘치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생화와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
죽은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은 제한된 세상이지만 저 하나님 나라는 제한을 받지 않는 영원한 세상이거든요.

본문에서 겉으로 볼 때는 산 자처럼 보이지만 그 속 내면은 죽은 자인 사두개인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인들이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율법을 고수하고자 하는 철저한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엣세네파들 입니다.
타락한 세상을 거부하고 동굴 속에 들어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수도사같이 사는 은둔주의자들이었습니다.

셋째는 사두개인들입니다.
모세오경을 믿으면서도 세속 권력자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논리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권과 결탁해서 종교정치를 일삼았습니다.
당시에 대제사장들이 대부분 사두개파였습니다.
그들은 종교 귀족들이요, 기득권층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곳, 현실이 좋았기 때문에 사후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과 사후 세계를 인정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담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면 부활도, 천사도, 내세도, 심판도 없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 -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실제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셨습니다.
이 땅의 삶보다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예수님은 분명히 심판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29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세상 권력자들과 적당히 타협해서 지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이 예수님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서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활을 부정하고 내세가 없다고 할 것인가?
며칠동안 고민 끝에 한 가지 기발한 스토리를 만들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당시 이스라엘에는 계대결혼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형이 결혼했는데 자식이 없이 죽으면 가문을 보존하고, 과부된 여자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사는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분의 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이런 일이 한 가정에서 7형제 사이에 계속해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고, 부활과 영생, 내세와 심판을 부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별의 별 이상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나와서 반박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세상에 불행이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세상이 이처럼 불공평하고 불쌍한 사람, 장애인들이 있는가?”

자꾸 세상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적세계를 대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자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본문의 사두개인들처럼 주로 비극적인 스토리만 늘어 놓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현대판 사두개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이나 하나님 나라의 상급, 그리고 마지막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습니다.
“주님, 그저 자녀들 공부 잘하고, 남편 사업 잘 되고,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부처님에게 비는 것인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제목이 자기와 현실문제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 가운데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그런 것은 관심 없습니다.
정말 내 인생에 기적이 나타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양성하고, 태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고, 척박한 오지를 개척하는 세계선교를 감당하고, 그래서 한 나라, 한 캠퍼스가 뒤집어지고.
그런 꿈과 기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겨우 이 땅에서 나 한 사람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이라면, 하나님을 현실의 상자 속에 가두어 두는 현대판 사두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너희가 성경을 잘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곡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세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전혀 차원이 달라지게 됩니다.
시집도 장가도 아니가고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활 후의 세계를 1차원적으로 평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부활한 뒤에 천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입체적이고 다차원적인 세계입니다.

성경에서 반드시 찾아야 할 신앙의 삼대 원칙은 무엇일까요?

창조 신앙
구원 신앙
부활 신앙.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절.

우리 하나님은 흙덩이에 불과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아 있는 존재, 영의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신비 아닙니까?
창조의 신비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역사를 이루실 수 없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인정하였는데 모세오경 안에 부활에 대한 기사가 없기 때문에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오경 안에 분명히 부활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증거로 출애굽기 3:6절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다같이 26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모두 현재형을 사용하셨습니다.

I am the God of Abraham, I am the God of Isaac, I am the God of Jacob.

‘I am’ 모두 현재형입니다.
아브라함은 모세보다 400년이나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자신을 현재형으로 소개하신 것은 하나님이 현재,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도 지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I am’ 입니다.
지금 살아계십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도, 모세시대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항상 ‘I am’ 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단절이 없고, 죽음이 없습니다.
항상 살아 계시고, 항상 능력이 충만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항상 살아 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 영이 생명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영이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육체도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담고 계시기 때문에, 그에게 붙어 있으면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창조신앙과 부활신앙이 다 있었습니다.

로마서 4:17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며’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고자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창조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태가 말라서 전혀 임신할 가능성이 없었지만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창조신앙과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부활을 믿어야죠.

 창세기 1:1절, 창조는 믿는데 부활은 못 믿는다.
그게 말이 됩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면 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지 못하시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고 하나님을 반쪽으로 만드는 심각한 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상자 속에 가두어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좁은 자기 생각, 자신의 얄팍한 경험과 이성의 세계에 가두어 두고자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고, 크나큰 죄악입니다.
도덕적인 죄보다 더 큰 죄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고, 하나님을 자기 생각의 범주에 가두어 두고, 마음대로 하나님의 존재를 제단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때 마르시온이라는 유명한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한 하나님이요, 신약의 하나님은 우수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툭 하면 화를 잘 내시고, 심판하시고, 진멸하시는 무서운 하나님, 신경질적인 하나님, 진화가 덜 된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신약의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 더 발전된 하나님, 업그레이드 되고 진화한 하나님, 우수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얼마나 우습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잘 모르니까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당하기 직전에 쓴 디모데후서 4:6-8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의의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릴 것을 생각할 때 조금도 죽음이 두렵거나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청년의 스피릿으로 복음역사를 진두지휘하며 이 곳 저 곳에 흩어져 있는 복음의 동역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되었을 때 아들을 주셨다면 지금 나에게도 왜 지금 나에게도 소원있는 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근 가운데서도 이삭에게 100배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왜 내 인생과 장래를 책임지시지 않겠습니까?
사기군같은 야곱도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로 변화시키고 키우신 하나님이라면 왜 나를 변화시키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실 수 없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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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9(08-12-20)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창세기는 모두 50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창세기전편 후편으로 구분합니다.
    전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1장부터 11장까지를 말하며 "세속사(世俗史)" 라고 합니다.
    후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12장부터 50장까지를 말하며 "구속사(救贖史)" 라고 합니다.
    구속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네 사람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입니다.
    이 네 사람의 이름의 첫 글자를 모아 "아이야요" 라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가시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애급으로 돌아가서 내 백성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때 모세는 애급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누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누구라고 말해야 할까요? 하고 묻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여호와)" 라는 이름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의 하나님은 히브리민족 공동체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에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으로 역사속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여호와, 예수의 이름을 요한계시록에서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는데 속뜻은 구원의 시작과 구원의 완성이라고 하겠습니다.

    모세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조상의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조상의 하나님이란 신앙이 대를 이어가며 계승된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께서 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나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신앙의 대를 이어가야 할 민족을 이 땅에 세우고 그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실현하시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조상의 하나님으로서 세 가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첫째는 언약의 하나님
    둘째는 생명의 하나님
    셋째는 순종의 하나님

    이와 같은 세 가지 의미를 통해서 민족 공동체를 세우셨고 민족 공동체가 발전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려는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순종의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순종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했습니다.


    순종(順從)에 대한 대표적인 성구는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어떻게 순종해야 할끼요?

    신명기 13: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It is the LORD your God you must follow, and him you must revere. Keep his commands and obey him; serve him and hold fast to him.

    순종하며 - 따르며(follow)
    첫째, 경외하며(revere)
    둘째, 명령을 지키며(keep)
    셋째, 청종하며(obey)
    넷째, 섬기며(serve)
    다섯째, 부종하고(hold)

    (현대인)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따르며 그분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 명령을 지키며 그분에게 순종하고 충성하십시오.

    (새번역)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을 따르고 그분만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잘 지키며, 그분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그분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충성을 다하십시오.


    순종하며 - 따르며(follow)

    마태복음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첫째, 경외하며(revere)
    - 악에서 떠나라

    *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

    잠언 3:7b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Fear the LORD and shun evil.

    둘째, 명령을 지키며(keep)
    - 간직하라

    * 유대인의 전통 쉐마를 출입문에 기록하여 들어가며 나오며 보고 읽고 마음에 새기게 하라.

    잠언 7: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My son, keep my words and store up my commands within you.

    셋째, 청종하며(obey)

    - 하나님 만을 듣는 것

    시편 81:13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 성전의 어린 사무엘에게 들린 음성

    넷째, 섬기며(serve)
    - 자기를 낮추는 것

    시편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 섬김의 자세는 기쁨이다.
    억지로 하는 것에도 복을 주셨다(구레네 사람 시몬)

    다섯째, 부종하고(hold)
    - 예수만 바라보라

    히브리서 12:2a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삭개오의 부종

    * 부종하고(신명기 13:4, 11:22, 30:20, 열왕기상 9:22, 역대하 7:22)
    부종이란 단어가 개역 한글 성경에서 5회 사용되었다.
    부종(附從) - 붙을 부() , 쫓을 종()셋째, 순종(順從)의 하나님


    브라함의 하나님 - 하나님에게 순종

    이삭의 하나님 -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

    야곱의 하나님 -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


    첫째, 아브라함의 하나님 - 하나님에게 순종

    창세기 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은 175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고향을 75세에 떠나 100년을 더 살았습니다.
    75년 동안 태어나서 자라났던 고향을 떠나는 것은 결코 쉽게 결정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삭의 하나님 -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
    The God of Isaac/ God who gives blessing of Obedience

    창세기 22:9∼10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브람이 고향을 떠날 때의 나이는 75세 이었습니다.
    아들 이삭을 낳은 때는 99세이었고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 때는 대략 세 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의 나이는 세라고 한다면 이삭은 기력이 왕성한 나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묶고 번제물로 바치려 할 때 아들 이삭이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브엘세바에서 헤브론, 헤브론에서 베들레헴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모리아산(오늘날의 예루살렘)으로 3일 길을 옮겨갔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3∼4).

    일반적인 그 시대의 여행 방식에 따라, 아브라함이 길을 가는 속도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무렵(3절에 나타난 시간은 그렇다)에 길을 나서서 해가 지기 전에 머물 장소를 찾고 밤을 지새우고, 다시 그 다음날 이른 아침 길을 나섰을 것이다.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4절이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서 바라본지라.” 베들레헴에서 하루 밤을 지낸 아브라함 일행은 셋째 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선다. 베들레헴 지역에서 예루살렘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 지역 까지는 10킬로 안팎이다. 2∼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여기서 성경 내러티브의 흐름을 따라, 그리고 그 때 그 자리의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여 상상해 본다. 아브라함 일행이 모리아 산에 도착한 시간대는 언제였을까? 이른 아침(물론 성경 본문에 글로 적혀 있지 않다)에 길을 나섰던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정확한 시간대는 몰라도, 오전이었음은 분명하다. 모리아 땅의 그 산기슭에 도착하여 땔감을 메고, 불과 칼을 들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이동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언덕까지 오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세기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유대인들은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아케다(aqedah)" 라고 합니다.

    * 함께(에하드, echad) - 한 마음으로, 한 사람처럼
    이삭은 제물을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의지한 것처럼 동일한 믿음으로 아버지를 믿었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이제 이삭이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바쳐질 제물로서 이삭의 처지를 떠올려보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할 때 이삭이 순종한 것을 두고 많은 독자들은 부전자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아들이 더 나았다고 평가한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려고 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물론 성경은 이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라가 90세 때에 이삭을 낳았고 127세에 죽었다. 어머니 사라가 죽었을 당시 이삭은 37살이었다. 혹자는 이삭이 번제물로 드려질 뻔했을 때의 나이를 37세 직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맥락으로 볼 때는 무리한 계산으로 보인다.

    모리아 산(정확하게 표현하면, 모리아 땅에 있는 하나님이 일러준 한 산)으로 향하던 당시 이삭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사흘 길을 갔다. 물론 나귀를 타고 가기도 했을 것이고 걸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나귀를 이용하였고 수행원도 동행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왕복 엿새 길을 여행을 할 만큼 자란 나이였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등에 제물을 불사를 나무를 짊어지고 모리아 산을 올라가게 하였다. 묘하게도 이 대목에서 아브라함은 나귀도 사용하지 않고 이삭과 더불어 맨몸으로 제사 장비를 챙겨가지고 산에 오른다.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면 이삭의 나이는 사춘기가 지난 무렵으로 보인다. 장거리 여행길을 어린아이를 동행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과 이삭의 출생 후 이스마엘이 쫓겨나고 브엘세바로 이주하고 재정착하는 시간들들 염두에 둘 때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에 여자 아이들의 경우는 사춘기 나이부터 결혼이 가능했던 조혼 풍습이 엿보이지만 사내아이들의 결혼 허용 연령은 불분명하다. 어쨌든 이삭이 그 나이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사춘기의 사내라 하여도 110세가 훨씬 넘었을 노인의 물리력을 제압할 힘은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하면 아브라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히 당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묶는다고 해서 그저 묶일 나이도 아니었고, 칼을 들어 내리친다고 그냥 당할 그런 나이는 아니었다.

    2. 이삭을 마주하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다. 이삭이다. 이 이야기를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읽을 때면, 그의 순종과 헌신, 자식을 포기하는 희생을 칭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삭은, 이삭은 또 어떤 존재인가? 이삭의 의견, 의중, 감정, 생각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이삭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이 번제 시도 사건을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일까?

    동행하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창 22:6).

    위의 구절에서 “동행하다” 또는 “함께 나아가다”는 표현을 두 번씩 반복하여 사용되고 있다. 많은 경우 아브라함과 이삭이 한마음을 갖고 이 일을 행하였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풀이한다. 사실이 그랬다. 이삭은 어떤 이유에서든 아브라함의 행동에 복종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행’이 연합된 마음으로 함께 걷는 걸음이었다고만 볼 필요는 없다. 동행은 외형적인 형태이지만, 동행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성경이 침묵 가운데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동행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동행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이삭은 장차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알았다고 하여도 운명으로 체념하였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도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전통, 관습, 운명 또는 숙명의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있다. 게다가 그 폭력을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기도 한다.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만행이 그것이다. 여성성기절제술이 그렇게 버젓이 자행된다. 그 가운데서 고통 하는 어린 소녀들과 여성들을 떠올린다. 이 악행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하여 고통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저항할 힘을 갖지 못한 이들의 체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세기 22:7)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는 어떤 대화들이 오고갔을까? 아브라함은 그와 동행하는 종들에게는 어떤 말을 했을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한 것 말고, 주고받을  대화가 있었을까? 사실 종과 왕 같은 주인 사이에 오고갈 대화가 무엇이 있었을까? 아브라함의 기분과 생각은 어떠하였을까? 동행으로 표현된 그 단어 안에 가득히 흐르는 무거운 침묵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최소한 즐거운 여행, 축제의 분위기는 아니지 않았던가?


    3. 트라우마 신앙인 조장을 멈추는 성경읽기


    잠시 뒤 이삭은 손발이 묶인 채로 돌 단 위에 놓여진다. 이삭의 얼굴은 어떻게 자리 잡혔을까? 엎어져 있었을까? 눕혀져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눕혀 있었을 것이다. 눕혀져 있던 이삭의 얼굴에 해 빛이 강하게 내리쬔다. 해는 점점 중천에 떠올랐고, 그 강하고 눈부신 햇살을 이삭을 위협적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이삭은 혼란스러웠다. 공허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이삭이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부심은, 죽음을 앞둔 이삭에게는 그 밝은 빛도 깊은 흑암, 어두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이삭은 죽어갔다. 아니 그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그가 죽음으로 그의 아비 아브라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어디에? 이삭의 하나님은 아니었던 것일까?


    이삭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고, 다시 눈을 떴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이 이야기를 읽는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의 삼일 길,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고갔을까? 전형적인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어리거나 젊은 자식과 가부장(아버지) 사이에 오고갈 대화가 아기자기할 것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 시대는 그랬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조차 저항하지 않는 것을 순종이라 말하던 시대였다. 부당한 악행조차 “관행이다” “운명이다” “신의 뜻이다” 고백하던 시대였다.


    아름다운 순종의 이야기로 무덤덤하게 회자되는 이 이야기 안에 담긴 무거운 침묵, 그리고 하나님의 아픈 사랑을 떠올려본다. 마침내 자식까지 번제로 바치는 우상숭배, 전통, 관습, 운명의 신이 아닌 것을 아브라함이 깨우치기를 기다리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맹목적인 종교의 신이 아닌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챈 아브라함으로 인해 눈물 흘리셨을 하나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이삭을 바라본다.


    이 사건 이후, 성경 창세기는 이삭을 어떤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이삭은 자기 자신, 아내 리브가, 두 아들 에서와 야곱 그리고 그의 며느리들, 아버지 아브라함, 하나님, 그랄 왕 아비멜렉 같은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갔을까? 아브라함의 나이도 들어가고 이삭의 나이도 늘어갔다. 그의 아내도 아브라함이 맺어주었다. 성경 내러티브에서 이삭의 의견이나 의중,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다만 24장 67절에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시도) 사건을 읽으면서 가르치면서, 자기 목에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칼이 들어오던 순간이 그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를 않는다. 죽음에서 살아난 이의 공포로 전혀 생각하지를 않는다, 때때로 우리의 성경공부가 참 차가운 성경읽기, 무서운 성경 이해라는 생각을 한다.


    쓰나미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건강과 삶의 빼앗겼을 때,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였다고 쉽게 선언하는 그런 담대함은 고통스럽다. 누군가를 희생해서 내가 의로워지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삶을 따르는 신앙을 다시 생각한다. 당사자의 자리에 서지 않는 묵상은 유체이탈 고백(만)이 가득하게 만든다. 스스로 절망하는 것을 내려놓음, 헌신이라 말하게 하지 말라. 이삭이 갖게 된 고통스런 기억을 아파하는 하나님 생각도 하고 싶다.

    아브라함 125∼136세, 이삭 25∼36세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언약의 최종 확증을 받았습니다(창 22:1∼18). 이 모리아 산은 훗날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곳이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입니다(대하 3:1, 대상 21:18∼28).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사건은 이삭의 나이 37세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소개된 사건 이후에 사라가 127세를 향수하고 죽는데, 이때 이삭의 나이가 37세입니다(창 23:1).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린 때는 사라의 죽음 이전이었고, 이때 이삭의 나이는 37세 전이었으므로 약 25∼36세 정도에 행하여진 사건으로 추정됩니다.

    이미 장성하여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산에 오를 정도로 힘이 왕성한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이삭이 아버지의 신앙에 대한 신뢰와 자신이 섬기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에 이삭과 아브라함이 동행했다는 말씀이 두 번이나 언급된 것은 이 일에 두 사람의 믿음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창 22:6, 8).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모리아의 한 산으로 올라가 제물이 되기까지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마침내 인류의 대속 제물로 순종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합니다(마 20:28, 요 1:29).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드린 후에 아브라함이 언약을 확증 받았듯이(창 22:16∼18, 히 11:17∼19),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요 1:18, 3:16, 롬 5:8).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12에서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축복’(창 22:14), ‘큰 복의 축복’(창 22:17), ‘네 씨가 크게 성하여 그 대적의 문을 얻는 축복’(창 22:17),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축복’(창  22:18)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창 22:2)와 같은 시험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큰 믿음으로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드려 헌신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시험들은 놀라운 축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 파스칼은 젊어서부터 질병이 있었다.  몸이 약했다. 그걸로 일찍 죽게 되었다.  죽기 얼마 전 마지막 그의 기도다. 2가지가 인상적이다.

     “이 질병의 고난 앞에서 믿지 않는 자처럼 행동하지 않게 해주소서.” 

     “이 고난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찬송할 뿐입니다.” 

     우린 다 모른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른다. 믿음은 반응이다. 

     “고난당하면 기도하라. 즐거운 일이 있으면 찬송하라.”(약 5:13)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 외아들을 하나님께 남김없이 번제로 태워드리려 했던 이삭의 순종을 배워야 한다. 번제로 바쳐졌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모든 복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다. 내가 할 것은 순종뿐이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뿐이다. 결박에 순종했던 이삭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 번제보다 순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역사가 이루어지며 모든 복이 임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순종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야곱의 하나님 -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

    창세기 27:13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순종(順從)

    민수기 32:11
    애급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사무엘상 15:22b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마태복음의 말씀 한 구절만 생각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란 조상은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을 어느 나한 구절만 인용하여 설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방법입니다.

    마태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말씀은 전후 문맥을 살펴야 합니다.

    또는 이렇게도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으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었어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말씀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일곱 번 결혼한 여자가 부활하면 도대체 누구의 부인이 되느냐고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변의 일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29∼3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말씀의 시작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죽은 사람들이 현재 어딘가에 살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고 그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하는” 내용입니다.

    야곱의 순종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라
    창세기 35:9∼15

    야곱은 변했습니다. 야곱의 삶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변화는 결단과 행동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변화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의심하거나 주저하거나 갈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변화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고민하는데 씁니다. 의심하고 갈등하는데 시간을 사용합니다. 결정하기까지 너무나 힘들어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갈등하고 고민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 야곱은 그의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 거기서 ‘단을 쌓고 나를 예배하라 이 말씀은 야곱에게 있어서는 복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듣자 야곱의 영안이 열렸고 수많은 갈등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5장 6-7절을 보면 야곱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야곱은 즉시 순종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모아놓고 결정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순종보다 더한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절정은 순종으로 표현 됩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 라고 합니다. 믿음을 갖고 변화받은 사람은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불신이 싹트면 갈등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교만이 자리잡고 있을 때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가족을 이끌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은 벧엘을 가리켜 엘 벧엘 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벧엘의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가 엿보이는 말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사실을 묵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백년을 살고도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허물도 있고 실수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들도 마찬가지로 허물과 실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은 과거와 단절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완벽하고 허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에 허물이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미래를 향해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에 의지해서 권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지금까지 좌지우지 해왔던 과거와 단절하십시오. 과거는 과거가 되게 하십시오. 그 과거가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과거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래를 만드신다!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가 애를 쓰고 노력해도 과거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도움을 구하면 미래는 바뀌게 됩니다.

    과거와 단절되는 것이 야곱의 복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과거와 공포와 불안에서 탈출합니다. 일어나라 이 말씀처럼 여러분이 현실에서 일어나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쫓기듯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줍니다. 그렇게 야곱이 믿음을 갖게 되면서 그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놀랍기만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너무나 사랑했던 어머니 리브가에게는 유모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드보라 입니다. 성경에는 이 구절에 대한 다른 설명이 없이 갑자기 돌출되듯이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유모 돌보는 성숙함으로의 변화리브가의 유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 리브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유모로서 야곱을 돌보았던 드보라는 달리 갈 곳이 없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이 드보라의 말년을 야곱이 행복하게 거두어 주었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정성스럽게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를 장사지낸 곳의 상수리나무의 이름을 알론바굿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굉장히 상심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드보라의 죽음에 굉장히 슬퍼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야곱이 성숙해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그래도 쉽지만 그 어머니의 유모를 돌보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숙이란 무엇입니까 하찮은 사람을 돌보는 것입니다. 가치 없는 사람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까지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사람만 돌봅니다. 유명한 사람만 골라서 사귀는 사람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만나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까지 사랑하고 죽음의 순간을 지켜주고 장사 지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성숙한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얼마나 이기적이고 손해 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주위에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돌보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에게까지 여러분의 사랑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주위에 돌보지 않아도 되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이 부리는 아랫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쉽게 해고도 시키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들을 돌보는 마음이 성숙하고 믿음이 있는 마음입니다.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복이 그림의 떡이었다면 이 무렵부터는 복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한 사건을 회상 시키십니다. 그것은 몇 년 전에 야곱이 위기에 빠졌을 때 야곱에게 약속하신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옥과도 같습니다. 이 두려움은 급기야 그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형 에서에게 뇌물을 보냅니다. 그렇게 하고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하인들과 가족들까지 보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지 못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얼마나 많이 두려워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가족을 모두 보낸 후에 그는 얍복강 강가에서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때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런 순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절망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의 단절 의미하는 거듭남 그렇지만 당신이 눈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 절망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그때 천사를 만납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잡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해주고 가기 전까지는 놓아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묻고는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때서야 야곱은 천사를 놓아줍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아내가 불러준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속이는 자”라는 의미가 담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야곱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야곱이라는 이름 가지고는 좌절과 인생의 어려움을 막을 수 없습니다. 새 이름을 주겠다고 천사는 말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거듭남 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말로 구원 이라고 합니다. 참된 구원은 과거와의 연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참된 구원은 과거와의 단절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예수를 믿어도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옛사람과 단절하지 않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잘해보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와 단절하지 않으면 미래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나쁜 포도주가 좋은 포도주가 된 것이 아니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참된 구원은 우리 신앙의 발전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고 예수 믿어도 변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옛사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나기 바랍니다. 이름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야곱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고 새 이름 이스라엘을 쓰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을 이겼다”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인정받은 야곱 하나님은 야곱의 존재를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의 믿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정하셨다고 믿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남편한테 인정받지 못한 아내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한 남편은 불행합니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녀는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해도 불행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인정하고 배우자를 인정하고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10절의 끝부분을 보면 야곱의 이름을 불러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이스라엘 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자신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겨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 가지고 살면 팔자가 사납다고 작명소에 가서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어도 별로 나아지는 바가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바뀐 이름을 불러주셔야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시몬이 베드로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을 때 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바꾸어주신 사실을 아십니까?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악마의 자녀였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땅의 상속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상속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주시고 그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에 네게서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이름을 바꾸어주신 하나님 새 이름을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자신을 세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첫째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입니다
    약속은 능력이 있는 자가 할 때 지켜질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실 줄을 믿습니다. 전능하다는 뜻은 하나님에게 불가능이 없고 부족함이 없으며 그 능력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처음에는 있고 나중에는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끝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영원토록 동일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고 후회도 없으십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지키시는 약속

    둘째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축복의 원형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은 풍성함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복을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가 복 받을 그릇이 못된다 할지라도 그를 변화시켜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1-2절을 보면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나오리라 내가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주리라.

    이 말은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이삭이 이어 받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로 이어져야 하는데 야곱은 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년 동안 그를 고생시켜서라도 기어코 그를 복 받을 만한 그릇으로 바꾸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 아닐지라도 여러분을 고쳐서라도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변덕이 많고 어리석고 늙고 병들었다고 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신 신실한 약속을 지키십니다. 결국 야곱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복은 계속됩니다. 그분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시고 상처 나면 싸매 주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하나님은 야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고는 가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또 오시는 하나님 떠나시는 하나님 드러내시는 하나님 숨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기쁩니다. 그러나 그분이 떠나셨다고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는 괴롭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가? 라고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알면 이 문제가 풀립니다. 하나님은 오시고 또 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나 떠나시는 것 말씀하시거나 침묵하시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동전의 앞과 뒤에 불과할 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오셨을 때 믿음을 얻고 기쁨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떠나셨어도 그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날마다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여기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병들고 죽어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야곱이 그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떠났을 때 야곱은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고 복과 위로가 계속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제단을 쌓고 기름을 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라 나는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 벧엘 여러분의 가정에서 예배가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찬양이 멈추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는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이것이 벧엘입니다. 벧엘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다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찬양이 불처럼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신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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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順從)과 순명(順命)

    순종은 창세기 22장의 중심 주제이다.
    학자들은 창세기 22장의 모리야 산 이야기를 일컬어 “아케다 사건”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한 것을 가리켜서 편의상 붙인 명칭이다.
    결박하다”란 히브리어 동사는 “아카드”이며 그 명사형은 여성명사로서 “아케다”이다.
    “아케다 사건”을 “결박 사건”이라고 옮겨도 좋을 것이다.

    * 아케다 사건
    아케다는 히브리어로 '묶기'라는 뜻이다(여성 명사형).
    아카드는 히브리어로 '묶다'는 뜻이다(동사)
    아브라함이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제단 위에 묶어 올려놓은 사건을 총체적으로 지칭한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겨우 얻은 외아들 이삭을 밧줄로 결박하였다(아카드).
    늦게 낳아서 금지옥엽으로 키우고 있던 아들을 결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그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 있는 한 산으로 가서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내렸던 것이다.

    * 모리아 산의 사건이 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 : 116세
    사라의 나이 : 107세
    이삭의 나이 : 16세

    - 사라가 127세에 죽었으니 이때 아브라함은 136세였고 이삭은 36세였다.
    사라가 91세 되던 해에 이삭을 낳았음을 기억하자.
    아케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삭이 16세, 아브라함이 116세, 사라가 107세였다.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사라가 죽었다.
    이 20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마침내 부부 사이는 별거하기까지 파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사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 명령의 목적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데 있었다(창 22:1).
    시험은 연단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무엇을 시험해 보시려고 했나?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은 어떻게 연단을 받았는가?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지 여부를 하나님은 점검하신다.
    아브라함은 너무나 불합리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순종하여 이삭에게 나무 짐을 지워 산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이 일러 주신 그 장소에 이르러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다음 외아들 이삭을 결박한다.
    막상 아들을 희생 제물로 잡으려는 찰나에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아브라함의 행동을 제지한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한 제물을 친히 준비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 대신에 수풀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을 잡아서 번제물로 바쳤다.
    하나님의 시험 결과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중히 여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무난히 통과한 것이다.

    아케다 사건은 이삭의 나이 16세 즈음에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그해는 아브라함 116세, 사라는 107세 되던 해였다.
    사라는 향년 127세로 헤브론의 기럇 아르바에서 사망하였기에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째 되던 해에 죽은 셈이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다.
    이 무렵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살고 아내 사라는 헤브론에 살고 있었다(창 22:19, 23:2).
    두 사람이 부부이지만 서로 별거하고 있던 중에 사라가 죽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창세기 23장 2절에 나오는 사라의 죽음 보도를 보면 '아브라함이 들어가서'라는 이상한 표현이 나온다.
    우리말 역본을 읽어 보면 남편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빈소에 들어가서 애곡하는 장면처럼 읽힌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서를 읽으면 그 느낌이 확 다르게 다가온다.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창23:2a, "와야보 아브라함 리스포드 러사라 월리브코타흐"

    '와야보 아브라함'을 직역하면 '아브라함이 왔다'가 된다.
    그리고 '리스포드'를 직역하면 '문상하러'가 된다.
    그리고 '월리브코타흐'의 동사 '바카'는 '울다'는 뜻인데 거기에 '그녀를'이란 접미어가 붙어 있다.
    아브라함은 사라로 인해 통곡했다는 말이다.
    위의 구절을 잘 정리해 보면,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다는 부고를 접하고 아내의 빈소를 찾아 와서 문상하는데 사라의 시신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말이 된다.

    종래의 주석가들은 '와야보 아브라함'이란 구절이 아브라함이 먼 데서 빈소로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아내 사라와 함께 살던 중 사라가 죽으니 그녀의 빈소를 차리고 그 시신 앞으로 가서 애곡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왔다'란 뜻의 동사 '야보'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가 별거하고 있는 상황이 뚜렷하게 감지되므로 이러한 종래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다가 아내 사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를 문상하러 헤브론의 기럇아르바로 왔다.
    이 점을 창세기의 저자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아브라함 부부는 별거하게 되었을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러 갈 때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다.
    사라가 천신만고 끝에 노년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포기할리는 만무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속이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갔다.
    사라는 이삭이 아버지를 따라 산에서 번제를 드리는 법을 배우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아케다 사건 이후에 사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사라는 자기를 속인 남편 아브라함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들을 죽이려 한 남편에게서 아들 이삭을 떼어 놓아야 했다.
    그래서 아내 사라는 이삭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이사하였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혼자 살았다.

    사라가 127세에 죽었으니 이때 아브라함은 136세였고 이삭은 36세였다.
    사라가 91세 되던 해에 이삭을 낳았음을 기억하자.
    아케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삭이 16세, 아브라함이 116세, 사라가 107세였다.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사라가 죽었다.
    이 20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마침내 부부 사이는 별거하기까지 파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사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감당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사별한 후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브엘세바에 버려두고 브엘라해로이로 떠나간다.
    아버지와 별거한 것이다.
    자기를 찔러 죽이려 했던 아버지가 못내 무서웠을 것이다.
    이삭은 40세에 혼인하였다(창 25:20).
    아케다 사건 이후 24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 당시 아브라함은 140세였을 것이다.
    아내를 사별한 아브라함이 아들의 배필을 구하려고 늙은 종을 메소보다미아 고향 땅으로 보냈다. 그
    런데 늙은 종은 하란에서 리브가를 데리고 돌아오는 도중에 마중 나온 이삭에게 리브가를 넘겨준다.
    이상한 것은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마중을 나왔다는 점이다(창 24:62).
    늙은 종은 브엘세바에 사는 아브라함에게 며느리를 보여 주지도 못했다.
    브엘세바로 돌아가기도 전에 네게브 지역의 브엘라해로이에서 마중 나온 이삭에게 리브가를 아내로 넘겨준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는 브엘라해로이에서 20년을 자식 없이 살다가(창 25:21),
    이삭이 60세가 되던 해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창 25:26).
    이때는 아브라함이 160세 되던 해이다.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으니까 브엘라해로이에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에는 아브라함이 살아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창세기 25장 11절의 아브라함 사망기가 에서와 야곱의 출생기보다 먼저 보도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140세에 아들을 결혼시켰고 20년 후인 160세에 손자를 보았으며 향년 175세로 죽었다.
    아브라함은 116세 이후로 175세가 되기까지 물경 59년 동안이나 아들 이삭과 떨어져 살았다는 말이 된다.
    이삭은 아버지를 모시지 않고 브엘세바에 그냥 버려두었다.
    아브라함이 노인이 다 되었을 때에도 별거 상태는 지속되었다.
    이삭은 왜 이처럼 불효막심한 짓을 했을까?

    이삭도 아버지처럼(창 20장) 그랄 도성에 들어가 살았다.
    이때 이삭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다.
    창세기 26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은 흉년을 만나서 브엘라해로이를 떠나 그랄 도성으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아직 에서와 야곱이 출생하기 이전의 시점으로 보인다.
    자식을 둘이나 거느린 남녀가 어찌 오누이 사이라고 속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에서와 야곱의 출생기는 그랄 도성 이야기의 바로 앞에 보도되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은 근거를 잃는다(창 25:26).
    아무튼 이삭은 아버지 사후 브엘세바를 떠나 그랄 도성으로 들어갔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살던 브엘세바로 돌아간다.

    아내를 여읜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후처로 맞이한다.
    그두라에게서 무려 여섯 명의 아들을 더 본다.
    그들은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로서 나중에 이스라엘의 철전지 원수가 되는 미디안 족속의 조상이 이 아들 중에 들어 있다.
    그리고 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불구대천의 원수인 앗수르 족속이 욕산의 아들 드단에게서 나왔다.
    여섯 아들이 장성하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큰 재산을 상속해 주고 서자들에게도 상속분을 주어 모두 동방으로 이주시켰다.
    그 후 아브라함은 죽었다.
    그가 죽었을 때 이삭은 이스마엘과 함께 아버지를 어머니가 묻힌 막벨라굴에 합장하여 장사하였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아버지에게서 이삭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어머니 사라가 그러한 아버지를 떠나 이삭을 데리고 별거에 들어갔을 때 이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진 시험을 이겨내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인정을 받은 아버지 아브라함이지만, 정작 그 가족 성원들의 마음에는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게다가 어머니를 여의고 아내 리브가에게서 위로를 찾던 이삭(창 24:67)에게 아버지의 재혼은 어떤 충격을 주었을까?
    게다가 새 어머니가 아들을 여섯 명이나 줄줄이 낳았을 때 그 과정에서 이삭의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일고 있었을까?
    아브라함은 이 여섯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이삭에게 마음이 쓰였어도 어쩔 수 없이 생활에 매여 아들 이삭을 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 바쁘게 사는 사이에 부자지정은 점점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험을 이긴 아브라함에게서 어떠한 행복한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진 시험을 이겨낸 결과는 가족해체의 아픔뿐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사라는 아케다 사건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일찍 죽은 듯하다.

    사랑했던 남편은 애급에서 자기를 누이라고 속였고(창 12장) 그랄에서도 자기를 누이라고 속이더니(창 20장) 마침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또 속였던 것이다.
    사라의 가슴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기를 또 속이고 금지옥엽 키워 청소년이 다 된 이삭을 몰래 납치하여 죽이려고 했다니!
    사라는 남편과 별거하며 살다가 임종을 맞았다.
    그녀는 임종을 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는 끔찍하다.
    온전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해체의 아픔을 겪은 것이다.
    이삭의 출생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은 눈물을 머금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막으로 추방해야 했다.
    아내 사라의 외아들 사랑이 너무나 끔찍하였다.
    오직 자기 아들밖에 모른 인간으로 사라는 변모해 갔다.
    사라에게는 야훼 하나님보다도 아들이 우선이었다.
    자기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 이삭을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남편도 모든 주변 사람들도 다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어머니 사라!
    이 여인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가족에는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만민에게 복을 끼치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고, 그 아들 이삭으로 하여금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끼치는 복덩이가 되게 하려고 계획하셨다(창 22: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그런데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한 집안에 용납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기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육적인 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가족 이기주의를 해체하기로 작정하시고 아케다의 시험 사건을 일으키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더욱 넓은 보편의 바다로 끌고 가시는 역사를 하나님은 기획하셨다.
    사라를 일찍 데려 가신데다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에게서 많은 이방 민족이 생겨나게 하시고 급기야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사이에도 더욱 덤덤한 보편적 인간관계로 발전시키셨다.
    이로써 나중에 이스마엘도 장례식에 참여하러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족주의에서 생긴 셈 민족주의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유대 민족주의는 아케다 사건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무너진다.
    만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앞에서 개인주의와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마침내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게 내어 주셨다.

    지금까지 아케다 사건을 문맥 속에서 되짚어 보았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들과 기독교 법인 단체들과 기독교 사회 운동가들이 좌나 우를 막론하고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설교가들이 복을 약속하면서 가족주의를 부추기지나 않았는지?
    사회운동에 나선 목회자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자기 입장에 맞추어 성경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만민에게 두루 복을 끼치는 교회의 보편주의적 본질을 오늘의 교회나 교역자들이 얼마나 잘 보전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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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 문학 구조로 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hav_yeshua&logNo=50087293541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공통점

    1. 믿음의 사람(히브리서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

    -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장'에 그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결박에 순종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속임수에 순종

    3. 실천의 사람


    4. 제사의 사람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
    창세기 27:1∼40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빌어줄 테니 별미를 만들어오라는 장면과 리브가가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내라고 지시하는 장면만큼 자식을 둘러싼 부부 사이의 편애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도 없을 것이다.

    이삭은 에서를 자기 아들로 간주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자기 아들로 간주한다.
    히브리어로 된 성경 원문을 보면 에서는 “그의 아들”(5) 곧 이삭의 아들로 불리고, 야곱은 “그녀의 아들”(6) 곧 리브가의 아들로 불린다. 각각의 아들을 부를 때 이삭도 리브가도 자신의 아들에게만 내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선별적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축복의 대상이 “에서” 한 사람뿐이었다는 점이다.
    성경의 많은 예문이 보여주듯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는 장남을 포함한 아들들을 모두 불러 마지막 유언과 함께 축복을 준 다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삭은 이러한 규범을 무시하고 장남에게만 축복을 주려 한 것이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베풀어 줄 테니 사냥을 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명할 때 리브가는 이삭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우리말 번역에 ‘들었다’로 되어 있는 ‘엿듣다’라는 히브리어는 그 시제가 분사 형태로 되어 있다.
    그것은 일회적인 동작이 아니라 계속적 행위를 나타내는 시제이다.
    리브가는 항상 이삭과 에서가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는 말이다.

    리브가는 눈먼 남편을 속여서 에서 대신 야곱이 축복을 받아낼 수 있도록 계략을 꾸민다.
    리브가는 야곱이 에서가 되어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도록 세 가지 방안을 실천한다(8∼17).

    첫째는 에서가 사냥감을 잡아와 요리한 것처럼 염소 고기를 요리한다.

    둘째는 눈먼 사람은 냄새에 예민하기에 야곱에게서 에서 냄새가 나도록 에서의 옷을 야곱에게 입힌다.

    셋째는 야곱의 매끄러운 살결을 가리기 위해 새끼 염소의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감아 준다.

    이러한 리브가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있다.
    장남이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채 자신이 편애하는 작은 아들이 받도록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리브가의 행위는 몇 가지 합당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리브가가 꾸민 책략은 야곱에 대한 편애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임신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마음에 품고 20년을 살아왔다.
    그녀가 받은 계시는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삭이 이 신탁을 몰랐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리브가에게만 주어졌고, 성경 어디에도 리브가가 이 계시를 남편 이삭에게 전했다는 말이 없다.

    그런데 남편 이삭이 야곱이 아닌 에서를 축복하고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임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리브가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완성시키려고 한다.
    속임수, 즉 '거룩한 속임수'를 쓰려는 것이다.

    이렇게 리브가의 행위를 해석한다면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남편을 지배하고 조종한 여자.
    남편을 속인 여자로 낙인찍기보다는 확고한 신념에 따라 행동한 여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눈먼 남편을 속이고 야곱에게 속임수를 쓰도록 지시한 리브가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변명할 길이 없다.
    또 세상 속에서 당신의 계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보다 자기 손으로 그 계획을 성취시키려 한 허물도 변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리브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행동한 여성, 신탁의 주인공인 야곱을 위해 저주받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은(13) 믿음의 여성이다.
    아브라함이 시련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처럼, 리브가 또한 시련을 통해 믿음의 여인이 되었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였다면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신탁에 순종한 것이다.
    그래서 리브가는 훗날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세워진다. 야곱이 나중에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어머니로서 두 아들의 품성과 자질을 잘 알고 있다는 점도 그러한 책략을 꾸밀 수 있었던 이유이다.

    셋째, 에서가 동족 여인과 결혼하지 않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것도 리브가의 행위를 정당화해 줄 수 있다.

    창세기 기자는 본문 배치를 통해서 그 정당화를 시도한다.
    기자는 에서가 두 명의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기록한 다음 즉시 야곱이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에 부족한 존재임을 알리면서 동시에 속임수를 써서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도록 한 리브가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의도적인 배치다.

    게다가 에서는 부모에게 반항적이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창 28:6-9).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여자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을 보고 이미 장가를 들었으면서 또 장가를 들었다.
    큰아버지의 자식이니 동족이 아니냐는 시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한 인물이었다.

    말라기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말 1:2-3).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것은 에서가 아니라 에서의 그릇된 행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속물적인 태도, 반항적 태도를 미워하신 것이다.
    에서가 부모를 거스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장자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넷째, 장자 상속권이 실제로 준수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유다의 쌍둥이 아들 세라도,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도,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도 모두 장자가 아니었다.
    다윗도 솔로몬도 장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리브가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에서가 분노하여 야곱을 죽일 계획을 세우자 리브가는 멀리 친정 오빠가 있는 하란으로 야곱을 보낸다.
    야곱이 떠난 뒤 리브가의 말년은 비참하고 공허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에서에게 구박도 받았을 것이다.
    이방 며느리들의 냉대도 받았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보지 못해 힘들었을 것이다.

    성경은 리브가의 말년이 얼마나 힘겨운 삶이었는가를 상징적인 방법으로 보여 준다.
    리브가의 이름이 28장 5절과 35장 9절에 등장하는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에 대한 기사이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성경은 리브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유모의 죽음은 언급하면서 리브가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족장들과 족장의 아내들의 죽음은 모두 다 기록하면서 리브가의 죽음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왜 성경은 리브가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부부 사이에 한쪽이 죽으면 남아 있는 사람은 먼저 간 배우자를 애도한다.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그랬고, 라헬이 죽었을 때 야곱이 그랬다.
    하지만 리브가가 죽었을 때 이삭은 애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본문은 리브가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치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 사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리브가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리브가의 이야기를 통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삶 속에 스며든 하나님의 손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계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이 이루어진다.
    약점, 조급함, 어리석음 등 수없이 많은 인간의 제약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이기적인 편애라는 잘못된 선택 속에는 리브가의 올곧은 헌신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참여하게 하셔서 계획하신 대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남편 하나 믿고 고향을 떠났던 리브가는 하나님의 신탁을 붙들고 야곱을 선택했고, 야곱과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잊힌 여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나라 역사에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영원히 기록되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하고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해주지만, 사실 믿음의 가문의 초기에 살았던 리브가에게는 배울 만한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믿음의 길을 달려갔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을 희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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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서와 야곱은 형제인데 왜 야곱만 복을 받았는지요.

    : 이삭이 낳은 큰아들은 에서, 둘째는 야곱입니다.
    그들은 태 속에서부터 서로 싸우는 사이였고 태중에 두 국민이 있다고 했습니다.(창 25:22~23)

    두 형제는 장성한 후 장자의 명분 때문에 싸워야 했고 야곱은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사람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창 28:1)는 이삭의 당부를 따랐고 에서는 따르지 않았습니다.(창 28:8~9)

    훗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왔고(창 33:18) 에서는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창 36:6)
    둘의 거주지와 길이 달라진 것입니다.
    주경가들은 에서가 야곱을 떠났다는 것은 신앙의 거점을 떠났다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6장은 에서(에돔)의 계보를 기술하고 있는데, 단 한 사람도 명사나 위인이 없습니다.
    예언자 오바댜는 “야곱 족속은 불이요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 그래서 남은 자가 없으리라”고 했습니다.(옵 1:18)

    야곱은 허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숱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떠났습니다.
    에돔이라는 무신론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원수가 돼 공격도 되풀이했습니다.

    오바댜서의 예언 중심은 에돔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간 사건이 아닙니다.
    진행형이고 미래 완료형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회개한 사람들은 구원과 회복의 은총을 받았지만, 에서처럼 떠난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기 위해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생육 번성하고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는 복을 받았습니다.(창 35:11)
    복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원로)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50774&code=23111619&sid1=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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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0(08-19-20)

     
    창조주 하나님(창세기 1:1)

    "창조주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Elohim)"이라고 합니다.
    엘로힘(Elohim)이란 "창조주우주의 심판자"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엘로힘의 하나님을 "크고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엘로힘의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엘로힘"이란 단어가 복수명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엘로힘)”만 언급되며,

    창세기 2:4에서 비로소 “(LORD)” 가 언급된다.
    여호와 하나님천지창조하신 때에 천지창조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영어로 the Lord God 이라고 번역하였다.

    (LOR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웨이며,
    자비를 베푸는자긍휼을 베푸는자용서하는 자구속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 분의 긍휼이 필요함을 아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어야 합니다.
    한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습니다.
    * 히브리어에는 원래 모음이 없었습니다.
    자음만 표기되었지만 전통에 따라 모음이 있는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읽습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בראשית)  바라(ברא)         엘로힘(אלהים)  에트(את),  하샤마임(השמים), 베에트(ואת),  하아레츠(הארץ)  
    처음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하늘                      과                   땅을

    히브리어로 창세기 1장 1절은 일곱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1:1-3
    태초
    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
    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습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בראשית)  바라(ברא)         엘로힘(אלהים)  에트(את),  하샤마임(השמים), 베에트(ואת),  하아레츠(הארץ)  
    처음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하늘                      과                   땅을

    히브리어로 창세기 1장 1절은 일곱 단어입니다.

    처음” 이라는 히브리어는 "레쉬트(ראשית)" 이다.
    레쉬트의 관주구절을 살펴보자.
     
    이사야 46:10,
    (개역 한글 성경) 처음
    내가 종말을 처음(레쉬트)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처음(레쉬트)부터 결말을 밝히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고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터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일을 모두 이루리라 하였노라.
     
    레위기 23:10 
    (개역 한글 성경) 첫 열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레쉬트)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너희 수확물의 첫 열매(레쉬트)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고린도전서 15:20 
    (개역 한글 성경) 첫 열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레쉬트)가 되셨도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레쉬트)가 되셨도다 ·         

    골로새서 1:18 
    (개역한글 성경) 레쉬트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레쉬트)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예수님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레쉬트)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레쉬트(처음)첫열매이시고 교회의 머리되시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처음에”에서 ”~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트(ב) 이며,
    그 의미는 “~안에”, “~통하여”, “~때문에”, “~위하여” 등이다.
    따라서, 창세기 1:1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이 될 수 있다.

    창세기 1:1,  예수님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하나님(Go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엘로힘 이며,
    창조주우주의 심판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만 언급되며,

    창세기 2:4에서 비로소 “(LORD)” 가 언급된다.
    (LOR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웨이며,
    자비를 베푸는자긍휼을 베푸는자용서하는 자구속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 분의 긍휼이 필요함을 아셨다

    "에트"는 히브리 알파벳의 첫 문자 알렢(א‎)과 마지막 문자 타브(ת‎)
    에트(את)는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이 에트는 동사전치사의 의 목적어를 강조할 때 사용되는데,
    영어에는 이러한 용법이 없기 때문에 번역이 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A)와 오메가(Ω )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헬라어로 알파(A)와 오메가(Ω )는 히브리어로 알레프(ת, Tav)타브(ת, Tav) 이다.
    바로 이 번역되지 않은 에트(תא)가 알레프( א, Alef)와 타브(ת, Tav)이신 예수님인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기 1:1절의 히브리어 일곱글자 가운데 정 중앙에 위치하신다.
     
    “~과(and)” 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에트(ואת)이다.
    이 단어의 맨 앞(우측)글자인 바브(ו, Vav )는 못(nail)이라는 뜻을 가진 상형문자이며,
    字價 가 6인데, 창 1:1절에서  여섯번째 단어에 사용되고 있다.
    그 다음에 다시 알레프( א, Alef)와 타브(ת, Tav)라는 문자는 역시 예수님을 나타낸다.
    즉, 예수님께서 天地를 붙들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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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1(08-26-20)

    하나님의 침묵(Silence of God)

    (도입 이야기 #.1)
    어느 마을 뒷산에 신비한 굴이 있었다.
    그 굴에 들어가면 말을 하지 않아야 살아나올 수 있는 굴이었다.
    그 마을의 바보 삼형제가 우리가 그 굴에 갔다오겠다고 다짐을 한 후 굴에 들어섰다.
    첫째가 "너희들 여기서는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첫째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둘째가 "거봐 말하면 죽는다고 했지!"
    그리고 둘째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번에는 셋째가 "나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을 것야!"
    이렇게 말을 하고 셋째도 죽고 말았다.

    인간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교훈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결론을 위한 이야기 #.1)
    일본의 작가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작품에 "침묵"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에서 기독교와 천주교가 박해를 당할 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를 소재로 만든 소설입니다.
    신도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므로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십자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잠겨서 죽게 됩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라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두 사람의 교인이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침묵하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며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지켜 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애처롭게 고난당하며 순교하는 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침묵(沈默)”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에 관한 특별한 명칭이 소개됩니다.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여호와(창세기 22:14)
    “여호와 닛시” -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출애굽기 17:15)
    “여호와 라파” - 치료하시는 여호와(출애굽기 15:26)
    “여호와 살롬” -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사사기 6:24)
    “여호와 삼마” -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에스겔 48:35)

    오늘 소개하려는 “하나님의 침묵”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워싱톤 주 스포케이에 위치한 “휘트워스(Witworth)” 대학의 종교 철학 교수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의 이야기입니다.

    * 제럴드 L. 싯처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시카고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
    워싱턴주 스포케이에 있는 휘트워스(Whitworth) 대학의 종교 철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휘트워스의 졸업생들은 7회에 걸쳐 그를 가장 영향력있는 교수로 선정했다.
    그 전에는 아이오와 주 오렌지 시티에서 대학 교목으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목사로 사역했다.
    저서로는 「하나님의 뜻」,「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 「사랑의 짐」 (이상 성서유니온선교회),
    「하나님 앞에서 울다」(좋은씨앗) 등이 있다.
    「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로는 ECPA(복음주의기독교출판연합회)의 Gold Medallion을 수상했다.

    어느 날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가족들이 승용차를 타고 도로를 주행하던 중에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에 부딪쳐 딸과 아내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가족들의 안전을 기도한 것은 개인의 욕심도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의 실수에 의해서 사고를 당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믿음의 사람은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눈가?

    이런 의문에 대한 신앙적인 방법을 위한 성경적 대답을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마태복음 6:33).

    가족들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한 것에 어떤 인간적인 욕심이나 잘못이 없었던 기도를 했는데도 가족들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트럭에 부딪쳐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적인 딜레마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의 침묵"이란 신학적 주제로 답을 찾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침묵이란 세 가지 주제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왜 하나님은 기도에 침묵하시는가?
    둘째는 왜 하나님은 고통에 침묵하시는가?
    셋째는 왜 하나님은 정의에 침묵하시는가?

    이런 신앙적인 갈등에서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침묵” 이라고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지난 8월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국민들의 정부의 정책과 방향에 대한 반대 집회가 열렸는데 그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감염자들이 갑자기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지도자와 그 집회에 참여한 교회를 공개적으로 집중 수사하며 심지어 대면예배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언론에 이렇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마치 목사와 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나쁜 사람이며 집단처럼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내용을 정직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후에 정확한 내용을 발표하는 유투브 방송의 내용을 정리하면 문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 처음 우한 바이러스는 S형이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대구 지방에서 신천지 집단에 의해서 감염된 바이러스는 V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갑자기 확산되는 바이러스는 GH형이라고 합니다.
    GH형은 다른 바이러스보다 확산력이 6배 강하다고 합니다.
    GH형이 시작된 것은 4월말부터 5월이었는데 이태원 동성애클럽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정부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GH형 바이러스가 동성애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흰쥐를 사용하여 연구한 결과 수컷 쥐의 항문에 “프로스타글란딘 E2(Prostaglandin E2)”를 넣은 것과 암컷에게 넣은 것을 관찰한 결과 수컷에게 넣으면 면연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면연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전염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흰쥐를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성이 항문성교를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남성과 남성이 항문성교를 하면 면연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쉽게 감염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동안 동성애클럽은 단속하지 않아 주말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동성애자들이 주말을 즐기고 다시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이렇게 해서 전염된 바이러스가 일반인들에 전염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8월 15일 국민대회를 위해 모였던 사람들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퍼졌다고 하며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목사이었고 교회이었다고 하며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것을 금한다고 긴급명령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은 침묵합니다.
    만일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 않고 무슨 표적을 보여주신다면 잘못된 통계와 방법으로 예배를 통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침묵을 “여호와 하사”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란 “침묵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란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 여호와 살롬과 같이 어떤 사건을 통하여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간섭과 임재가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나타났던 사례들을 종합할 때 찾을 수 있는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성구들을 소개합니다.

    시편 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편 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편 28: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사오니 내게 귀를 막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나이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의 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성경은 명료하고 시원한 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그것을 신비라고 합니다.
    성경의 가장 큰 미스터리, 신비중의 하나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분명한 해답이 있다면 고민하고 갈등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주제에 대해 성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이 이 문제를 풀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모두가 수긍하는 정답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바탕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 만능주의

    한국교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신앙의 특징입니다.

    믿습니까? 하고 소리치면 반드시 아멘! 하고 응답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아멘! 하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합니다. 만일 아멘이라고 외치지 않으면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판단합니다.

    믿음 만능주의는 성경의 중요한 내용이지만 성경 전체가 아닙니다.

    둘째는 기도 만능주의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신앙 까닭에 기도를 오래하거나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오래하고 큰소리로 하는 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신학적 개념이 관심을 갖는 주제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기도에 대한 침묵
    둘째는 고통이 올 때 침묵
    셋째는 정의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침묵

    기도는 사람의 영역 응답은 하나님의 영역

    기도할 때 응답 받을 수도 있지만 응답받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성경에서 응답받는 것만 본문으로 설교를 하고 가르치면 성경 전체의 신앙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렇게 부르짖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내 몸에서 제거해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예수가 아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도는 응답해야 한다고 억지소리도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되 응답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고통의 은혜

    고통의 은혜의 대표적인 사건은 십자가라고 하겠습니다.
    고통의 은혜는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약속을 믿는 은혜

    내가 기도하고 내가 응답받는 것도 있지만 내가 기도하고 다음 세대가 응답받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되 실망하지 않고 반드시 응답될 것을 확신하며 기도하는 일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5:6-9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은 너희 과 달라서.
    하늘이 보다 높음 같이 내 은 너희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결론을 위한 이야기 #.1)
    일본의 작가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작품에 "침묵"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에서 기독교와 천주교가 박해를 당할 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를 소재로 만든 소설입니다.
    신도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므로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십자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잠겨서 죽게 됩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라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두 사람의 교인이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침묵하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며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지켜 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애처롭게 고난당하며 순교하는 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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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2(09-02-20)

    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또는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신다.”고 가르치는 사례가 자주 소개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합니다.
    그렇다고 "여호와 삼마"를 확장 해석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해석은 본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에스겔서에서 “거기”는 “예루살렘”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신다.” 라고 이해하면 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너무 과장 확대 해석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해석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을 합리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바른 해석을 위해서 먼저 본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본문에 집중하려면 시작하는 말씀과 마지막 말씀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어떤 책으로 분류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선택한 본문은 선지서 "에스겔"입니다.
    "에스겔(Ezekiel)" 이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심"이란 뜻입니다.

    부시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제사장이며 4대선지중의 한 사람으로
    유대왕 여호야긴과 같이 포로가 되어 갈대아땅 그발 하수가에 거주하는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다(겔 1:1-3).

    그 글에서 그의 비범한 인물 됨을 발견할 수 있고 기재를 나타냈으며
    곧 목이 곧 고 마음이 강팍한 그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함을 담대히 공격한 기록에서
    대선지로서 적임자임을 보여 주었고 종신토록(20년간) 선지의 직무 에 진력한 것은 일대 특색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정신적 종교가임에 반하여 에스겔의식적, 형식적 방면에 중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예언의 요지는 예루살렘의 망할 것과 장래의 구원으로 본국이 회복될 것으로 포로된 동포를 위로 하였다.
    그의 죽은 시기는 알수 없으나 바벨론에서 같은 지도자에게 피살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의 이락의 수도 바그닷드 근처의 한 건물을 가리켜 에스겔의 분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에스겔은 성경학자들이 "대선지서(大豫言書, Major Prophets)"라고 설명합니다.
    대선지서란 그 내용이 소선지서보다 많기 때문이지 선지자가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선지서에 속한 성경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말합니다.

    에스겔서의 첫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에스겔 1:1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In the thirtieth year, in the fourth month on the fifth day, while I was among the exiles by the Kebar River, the heavens were opened and I saw visions of God.

    제 삼십년 사월 오일이란 현대인의 성경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서른 살이 되던 해 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가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사로잡힌 자 즉 포로가 되어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에 따라 행해야 할 삶이 있습니다.

    10세 때는 유(幼)라고 하여 이때부터 배움을 시작합니다.
    20세 때는 약(弱)이라고 하여 비로써 을 쓰게 됩니다.
    30세 때는 장(壯)이라 하여 집을 갖고 결혼을 합니다.

    사람은 자기 나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선지자 에스겔30세장(壯)에 해당하므로 집을 갖고 결혼하여 아내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벨론 땅으로 끌려온 포로 선지자로 그발 강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나이에 합당한 삶이 아닌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에스겔 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전체 둘레는 약 9.5킬로미터이다. 사람들은 그 성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이라 부를 것이다."

    "여호와 삼마"를
    "야훼 삼마"(공동번역)
    "여호와 샤마"(새번역)
    "아도나이 샤마"(히브리 성경) 라고 합니다.

    에스겔서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에스겔을 비롯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그 성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임마누엘의 의미가 아닙니다.
    더구나 여호와께서 지금 여기에 계신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깨닫지 못하였을 때
    바벨론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 돌이켜 보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믿음을 확신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는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예루살렘에 대한 은총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 “그발 강”가에 모여서 예루살렘을 회상할 때
    비로써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야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일까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심각한 전염병에 의해서 이전에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새로운 것들로 인하여 깨닫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주일 예배

    매주일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하던 성도들이 이제는 함께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 유튜브를 이용하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뉴욕에서는 어느 교회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예배를 시작했으나 감염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였다고 합니다.

    한동안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던 중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족들도 같이 앉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예배할 때 처음에는 매우 감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송을 하는 사람도 마스크를 사용하고 설교자도 마스크를 사용하는 낯선 광경을 보며 예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어 차라리 온라인 예배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고도 합니다.

    그 결과 매 주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예배하던 “대면 예배(對面 禮拜)”가 금지될 때에 비로써 주일마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둘째는 가족 모임

    저희 가족들은 매월 마지막 주일 저녁 시간에 저희 집에 모두 모여서 식사하며 지난 일들을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난 3월 이후부터 가족 모임조차도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 환경 때문에 가족의 만남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셋째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과 일터

    자영업자들 특히 음식점의 경우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하면 출입구에서 찾아가므로 영업에 상당한 손실이 크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세 자영업자들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파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 합니다.

    예로부터 “철들자 노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나 깨달은 것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기 전에 정신이 흐려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처럼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몰랐구나! 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는 후회가 없는 신앙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근거 없는 희망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에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까달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곧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70년 후에 돌아가게 될 것" 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25:11-12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예레미야 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바꾸어 말하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곧 멈추거나 아니면 백신을 발명하여 다시 예전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근거없는 희망을 버리고 분명한 목표를 찾아야 합니다.
    바벨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고,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선지자는 70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70이란 숫자의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첫째, 종심(從心)

    사람의 나이 70을 “종심(從心)”이라고 합니다.
    종심이란 사람의 나이가 70이 될 때 비로써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지만 절대로 법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종심을 신앙적으로 설명한다면 철저한 회개를 거쳐야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70년이란 과거에 예루살렘에서 누렸던 모든 것들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이었으며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므로 다시는 하나님의 법을 떠나 마음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징적인 수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7은 매우 신성한 의미를 갖는 수라고 하겠습니다. 
    창조 후 7일째 안식하셨으며
    속죄의 상징으로 제물의 피를 일곱 번 뿌린다.
    7은 맹세와 동의어를 의미합니다.

    숫자 '70'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그것의 기본수인 '7'에서 찾을 수 있다.
    '7'은 일반적으로 완전을 의미한다.
    그것은 '7'의 어원적 의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메르어아카디아어에서 숫자 7은 '온전함' '전체'를 뜻하고,
    우가릿어에서도 '완성' '완결'을 의미한다.

    7은 완전을 의미하는 34의 결합이기도 하다.
    3은 삼위일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늘의 완전수이다.
    반면 4 땅의 완전수인데, 그것은 사방으로 땅 전체를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7은 하늘의 완전수와 땅의 완전수가 결합된 최종적인 완전수라 할 수 있다.

    숫자 7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쉐바'는 명사뿐만 아니라 '저주하다' '맹세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도 사용된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는 내용에서 '맹세'와 함께 '일곱'(암양 새끼 일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나,
    그곳 우물의 이름을 '브엘세바'(브에르쉐바; '맹세의 우물' 혹은 '일곱의 우물')라고 한 것은 숫자 7과 그 숫자가 지닌 의미를 긴밀하게
    연관시킨 좋은 예이다(창 21:28-31).

    둘째, 노역 기간으로서의 70년(이사야  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를 인하여 여호와의 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는 것은 노역의 때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죄악이 사함을 받은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서 '노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바'는 전쟁을 위하여 강제로 동원된 병역기간을 의미한다.
    표준새번역에서 이것이 '복역기간'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기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부여한 복역의 때였다.
    그것은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곧바로 원래 상태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도 예레미야서에서와 같이 '끝나다'에 해당하는 동사로 '말레'를 사용하고 있다.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곧 복역의 기간이 채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사야가 선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별도의 조건이 따로 필요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근거하고 있다(이사야 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셋째, 이스라엘 회복 근거로서의 70년(스가랴 1:12, 7:5, 8:19)

    1: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8:20-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은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예언하고 있는 스가랴서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스가랴서의 첫 번째 환상 속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여호와께서 폐허화된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70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슥 1:12).
    그런 스가랴의 입장은 70년 동안 지켜온 다섯 차례의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슥 7:5).
    그에 대한 스가랴의 답변은 더 이상 금식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의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금식은 오히려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었다는 것이 스가랴의 최종적 선언이다(슥 8:19).

    넷째, 땅의 안식년으로서의 70년(역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바빌론에서의 70년 포로기간을 땅의 안식년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황폐되었던 본토의 땅은 오히려 안식을 누리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땅은 새로운 축복의 잠재력을 준비하는 기간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빌론에서 보낸 포로기간은 외견상 절망의 시기로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시는 기회 곧 땅의 안식년인 셈이었다.

    70년과 관련된 성경에서의 실제적 적용

    1. 인간 수명으로서의 70년(시편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70세종심(從心)
    80세팔질(八耋), 장조(杖朝)
    - 장조(杖朝)는 중국 주나라 때 여든 살이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 것을 허락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 지팡이 장, 아침 조
    - 팔질(八耋)여덟 팔, 늙은이 질
    90세
    졸수(卒壽) 마칠 졸, 목숨 수

    시편 90편은 인간의 한평생 수명을 70으로 보고 있다.
    성경이 사람의 수명을 그렇게 본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을 통해 이 시편의 저자는 모세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인간 수명을 70으로 설정한 것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출애굽 당시 전쟁에 출전할만한 장정들의 나이는 20세에서 40세였다.
    이들은 모두가 광야방랑기간인 38년 안에 그들의 생애를 마쳤다.
    그렇게 되면 출애굽 당시의 장정들은 대략 60세에서 80세를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모세는 사람의 일반적 수명을 70으로 보았고, 강건하면 80까지 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2. 한 왕의 연한으로서의 70년(이사야 23:15)

    부터 두로가 한 왕의 년한 같이 칠십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칠십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70년과 관련된 또 다른 성경의 언급은 한 왕의 연한이다.
    여기에서 왕이란 개인 아니라 그 왕이 통치하는 전체 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곧 한 왕의 통치를 받는 한 국가 공동체의 운명이 70년으로 제한된다는 성경적 관점이다.

    그와 같은 성경적 관점과 관련하여 주목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20세기의 최대 사건이기도 한 공산주의의 발흥과 쇠퇴가 70년 주기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20세기는 소련의 공산주의혁명으로 시작되어 소련 공산주의의 해체로 마감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련을 비롯하여 중국과 몽골의 공산주의 정권 모두가 70년 만에 종말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들 세 나라는 모두 우리의 인접국이면서 우리나라의 분단역사와 긴밀하게 연관된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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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겔서 예언과 성취 

    성구

    예표,  예언

    하나님의 뜻

    성취 

    1:4~28 

    보좌 환상

    ( 폴풍과 큰 구름, 네 생물의 형상, 바퀴, 궁창과 보좌)

      

      

    2:1~ 3:15

    두루마리를 먹음

    이스라엘 족속에게 하나님의 말을 고하라

      

    3:22~27 

    말 못하는 자가 되다

    무리가 에스겔을 죽일까하여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심

      

    4장 

    토판 위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그림을 그리다.

    390일동안 왼쪽으로 누워있다. 오른쪽으로 사십일을 누워있다.

    인분 불에 떡을 구워먹다. 

    이스라엘이 죄악 390일을 감당하고 유다의 40년의 죄악을 감당하였다. /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시니

    여러 나라들로 쫓아내어 흩어 버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5장 

    머리털과 수염을 깍다

    1/3 성읍 안에서 불사름

    1/3 성읍 사방에서 칼로침

    1/3 바람에 흩으라

      

    1/3 전염병과 기근으로죽다

    1/3 사방에서 칼로 엎드러짐

    1/3 사방에 흩어버리고 뒤를 따라가며 칼을 뺌

    8장 

    불 같은 형상과 질투의 우상, 담 속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그려져있는 벽과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다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10~11장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다. ( 네 생물과 바퀴, 보좌)

      

    예루살렘의 심판

    12:1~16 

    포로 될 것을 나타내는 상징행위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다)

      

    이스라엘 족속이 바벨론으로 끌려감

    12:17~20 

    떨면서 먹고 마시며 보이는 징조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그들이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

    13장 

    거짓선지자의 종말

      

      

    15장 

    불에 던질 땔감 같은 예루살렘 주민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17:1~21 

    독수리와 포도나무비유

      

    예루살렘의 왕과 고관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고 거기에서 죽을 것이다.

    20:45~49 

    불타는 숲의 비유

      

      

    21장 

    여호와의 칼

      

    네가 지음 받은 곳에서 네가 출생한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리로다

    25:1~7 

    암몬 족속에 대적하여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주겠다.

    진을 치며 네 가운데에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 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25:8~11 

    모압 족속을 대적하여

    암몬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25:12~14 

    에돔 족속을 대적하여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

      

    25:15~17 

    블레셋 족속을 대적하여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은 즉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시니라

    26:1~28:19 

    두로를 대적하여

    두로에 관한 일련의 예언

      

    28:20~26 

    시돈을 대적하여

    전염병을 보내며,

      

    29:1~32:32

    애굽을 대적하여

    바로를 대적한 심판

     애굽 땅의 황폐함

    포로에서의 귀환이 약속됨

      

    34:1~31 

    선한목자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책망받음

      

    35:1~15 

    에돔의 산들

    이스라엘의 산들

    에돔을 대적하는 예언

    네 성읍을 무너뜨리며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36:16~38 

    내적갱신 

    정결하게 하되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걸하게, 또 새 마음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7:1~14 

    마른뼈의 환상

    (죽은 자들의 뼈가 살아난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37:15~28 

    마른뼈의 환상

    (재통일)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난가 되리라,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40:1
    ~48:35 

    이상 중에 본 성읍

    성전에 관하여

    성전 의식

    그 땅을 분배함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수요성서학당 #. 13(09-09-20)

    오늘 수요성서학당의 주제는 "합심 기도"입니다.

    '합심 기도'를 주제로 결정한 동기는 백혈병 환자와 심장 수술을 받을 환자 그리고 암 환자를 위한 기도 제목을 소개하면서 합심 기도의 성경적 의미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합심 기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품앗이 기도(祈禱)

    "품앗이"란 농경사회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 모내기를 할 경우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모내기에 동참하여 일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생활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합심 기도"가 마치 "품앗이 기도"처럼 생각하여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로 동참하면 이 다음에 내가 어려움에 처할 경우 나를 위하여 기도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심 기도가 아닙니다.
     
    둘째는 합력 기도(祈禱)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가 되면 바다가 모여 대양을 만드는 것처럼 나와 같은 힘이 없는 기도일지라고 힘을 더하면 능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합심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생각하며 오늘 함께 읽을 말씀 마태복음 18:18-20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본문에서 20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왜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 회당 예배를 시작하려면 성인 남자 10명 이상이 참여해야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일 성인 여자 20명이 모였고 성인 남자가 9명이 모였으면 회당 예배를 시작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회당의 제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예배를 시작하는 기준은 성인 남자 10명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얼마든지 예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교회에 모여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과연 교회에서 모여서 예배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이 바람직한 예배일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오늘 이 말씀에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겠습니다.

    20절을 다시 한 번 더 함께 읽어보게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여러분, 온라인으로 예배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실까요?
    아니면 함께 하지 않을실까요?

    이제 합심 기도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 1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함께 읽은 말씀에서 "매면" 그리고 "풀면"이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매면이란 묶는다는 뜻이고, 풀면이란 묶은 것을 푸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할 때 묶는 것은 무엇이고 푸는 것은 무엇일까요?
    합심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묶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합심 기도를 마치면 기도하는 사람을 푸는 것도 아닙니다.

    매는 것 푸는 것을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8장 1절부터 본문의 배경을 자세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첫째,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둘째, 소자를 잘 대접하는 일(5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셋째,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14절)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넷째, 범죄한 형제를 용서하여 회개케 하는 일(15절)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17절)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 일을 두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늘에서도 용서와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합심 기도는 어떤 어려운 일을 위하여 힘을 모아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도 필요하지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땅에 풀어야 할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4절)
    소자를 잘 대접하는 일(5절)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14절)
    범죄한 형제를 용서하여 회개케 하는 일(15절)

    이와 같은 일에 열심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부록) 합력(合力)과 합심(合心)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합력(合力)이란 "힘을 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할 (合), 힘 (力)

    * 합력하여 / 판타 수네르게이(πάντα συνεργεῖ) all things work together
    - 판타(πάντα) /  πᾶς(pas) all, every. Adjective
    - 수네르게이(συνεργεῖ) /  συνεργέω(sunergeó) to work together. Verb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합심(合心)
    * 헬라어 : 쉼포네소신(symphōnēsōsin, συμφωνήσωσιν) 동의 할 것이다(might agree)
    - 숨포네오(4856, sumphóneó. συμφωνέω),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Definition :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Usage : I agree with, harmonize with, agree together. 

    합심(合心)이란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합할 (合) : 사람 (人) + 한 (一) + 입(口) = 합(合)
    합이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합심이란 사람의 입과 마음이 일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심기도의 본질  
    - 합심 기도는 기도의 방식이며 기도의 본질은 아니다.

     합심 기도는 합력이 아니다.
     합심 기도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8장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살펴야 할한다.

    신자가 동료 성도나 불신자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꼭 두 세 명 이상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심이 갈 수 있습니다.
    혼자 집에서도 열심히, 간절히, 성실히 이웃을 위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해하듯이 합심 기도의 목적과 효능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여럿이 모여 기도하므로 하나님 보좌를 흔드는 능력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둘째는 성도의 교제를 위한 것이다.
    셋째는 힘을 합해 기도하는 것 자체가 바로 서로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합심기도에 이러한 요소들이 분명히 작용합니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지만 기도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기도의 본질을 따져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독립적으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다른 어떤 가르침과도 연결되지 않는 말씀이라면 합심으로 중보 기도만 하면 응답이 잘 된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에 다른 가르침을 주시는 가운데 나온 말씀이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본문 앞에 어떤 기사가 나옵니까?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더 큰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처럼 먼저 낮아져서 소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자여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네 형제 중에 누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권면, 증참(證參)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했습니다.(마18:1-17)    

    그 모든 말씀의 결론으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절)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땅에서 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합심 기도(마태복음 18:19∼20)

    (관주성경)
    19. 眞實(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中(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合心(합심)하여 무엇이든지 求(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爲(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中(중)에 있느니라.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한글개역성경)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Again,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you ask for,
    it will be done for you by my Father in heaven.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합심(合心)
    * 헬라어 : 쉼포네소신(symphōnēsōsin, συμφωνήσωσιν) 동의 할 것이다(might agree)
    - 숨포네오(4856, sumphóneó. συμφωνέω),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Definition :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Usage : I agree with, harmonize with, agree together. 

    합심(合心)이란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합할 합(合) : 사람 인(人) + 한 일(一) + 입 구(口) = 합(合)
    합이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합심이란 사람의 입과 마음이 일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과 입이 일치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입을 사용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언어(言語)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긍정적인 언어와 부정적인 언어로 구분합니다.
    긍정적인 언어는 모두에게 유익하고 힘과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언어는 모두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둘째는 음식 섭취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음식에도 건강한 음식과 건강을 해롭게 하는 음식으로 구분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입이 일치가 되는 것은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말에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말에 책임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솝 우화에서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이야기는 거짓말장이 소년 양치기는 자기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자기 성찰을 하지 못한 이유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재미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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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4(09-16-20)

    겉 사람과 속 사람(고린도후서 4:16, 에베소서 4:22-24)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은 날로 새롭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공동번역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겉 사람은 쇠약해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와지고 있습니다.

    새번역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 겉 사람 속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시간" 이라고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겉 사람은 누구나 약하여지고 쇠하여 갈 것입니다.
    반면에 속 사람은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철이 들기도 하고 반성하며 후회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결단합니다.

    - 옛 사람 새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신앙" "거듭남" "중생" "구원" 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도 내 안에서 옛 사람의 삶의 습관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모습을 일컬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케 된 후에는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렇게 고백합니다.



    * 자연인과 성도 모두에게 공통된 것은 "겉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후패(쇠약해 가는 것)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새로워 집니다.
    어떻게 새로워 집니까?
    자연인의 경우에는 "정신을 차린다" "철이 들었다"
    성도의 경우에는 "회개" "깨닫는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You were taught, with regard to your former way of life, to put off your old self, which is being corrupted by its deceitful desires;
    to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용어                          영어                                      성구          헬라어                  의미





    겉 사람

        outward man, outwardly, outer man

      고후 4:16

         ἔξω

           육에 끌리는 사람

    속 사람

        inwardly, inward man, inner man

    고후 4:16

         ἔσω

           영에 끌리는 사람

    옛 사람

        the old man, the old self   

    엡 4:22  

      παλαιός

            중생 이전의 사람

    새 사람

        the new self, the new man

    엡 4:24

       καινός

             중생 이후의 사람

    대부분의 설교자는 겉 사람은 옛 사람이며, 속 사람은 새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은 거듭난 후에 나타나는 삶의 양식으로 옛 사람의 삶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겉 사람과 속 사람이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모습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양식으로 겉 사람은 육체 끌리는 삶의 양식이라면 속 사람은 영에 끌리는 삶의 양식 즉 선한 양심에 의하여 갈등하며 고민하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NEET족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
    (한국어로 방콕족)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과 무능력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을 깨달은 자는 자신에게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죄 지은 것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율한다.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을 깨달은 자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 없이 슬퍼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구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없는 사랑과 은혜에만 의지한다.

    무덤 속의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부패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한 것은 “나사로야 나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된 것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자기도 그렇게 구원받았음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자이다.
    죽은 시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걸어 나온 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수의로 칭칭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께서는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자는 자기가 구원 받기 전에는 물론, 구원 받은 후에도 행한 것이라고는 죄짓는 것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리고 그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베드로처럼 절규한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율법주의자와 행위주의자들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이교도들일 뿐이다.
    그들이 참으로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때는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과 무능력을 깨닫고 겸손히 고백하는 때이다.
    그 때가 어서 왔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그들로 인해 큰 기쁨의 잔치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납니다.
    선생님들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생님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는 아닙니다.

    ‘박군의 마음’ 이라는 전도지

    박군이라는 청년에게 전도를 하는 내용인데 박군의 마음속에 있는 일곱 가지 악한 성향,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짐승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을 주님이 온전하게 들어오심으로 일곱 짐승이 다 나가고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 되는 것을 설명한 전도지입니다.

    영적 전쟁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아마 이 전도지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적으로 많이 열려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일곱 가지 짐승의 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다쟁이 영 / 개구리

    말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람의 안에서 개구리가 쉬지 않고 개굴개굴 하고 울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개구리는 입에 관련된 것으로 설명됩니다(요한계시록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말이 많은 사람은 절제하지 못하고 수없는 말들을 입에서 쏟아냅니다.
    그리하여 영적 에너지를 잃게 하고 주변에 악한 기운으로 가득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이들은 침묵을 배우고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고 높여야 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는 대화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사랑하고 세속에 깊이 물든 대화가 있습니다.
    덕을 세우는 말이 있는가 하면, 남을 비방하고 또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날카로운 말도 있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절제되지 못한 말들이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말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축복의 말은 반드시 축복으로 돌아오지만 저주의 말을 하면 나쁜 저주가 임합니다.
    이것이 혀의 권세입니다(잠언 18:21).
    말한 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둘째, 교만의 영 / 공작새

    공작새가 그 날개를 활짝 펴서 자랑을 하듯이 교만의 영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선하고 지식이 많으며 영적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이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교만은 스스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과거에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이 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또 다시 대홍수가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높은 탑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믿으며 사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불신앙이 가장 큰 교만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가지요. 이 사실이 부당한가요?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이 사람들 안에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심지어 공산당들도 죽을 위기를 만나면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하나님, 잘못했어요. 하나님, 제발 한번만 살려주세요!" 이렇게 나옵니다.
    무신론자라도, 부처를 섬기는 사람이라도 죽기 직전엔 하나님을 찾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자 하는 악독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순순히 그분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셋째, 간교한 영 / 뱀

    뱀은 간교한 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세기 3:1).

    간교한 영의 사람은 지혜가 많고 머리가 좋아서 말을 잘 하며 사람들을 잘 속입니다.
    잘못을 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추궁하면 교묘하게 변명하여 오히려 상대방이 잘못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영은 “배신의 영”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유혹의 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강자 앞에서 약하며 약자 앞에서 잔인합니다. 영안이 열린 이들에게 이들은 뱀의 형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야곱은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겨우 한 끼 먹을 팥죽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권리)을 빼앗았습니다.
    그의 지혜는 분명히 타고난 것입니다.
    하지만 바르게 사용하지 않을 때, 그것은 악한 영의 도구가 됩니다.
    간사하게 부리는 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다듬어져야 합니다.
    야곱은 그로 인해 험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넷째, 음란한 영 / 염소

    염소는 성적으로 더러우며 정욕이 강하다고 합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이 시대에 음란을 피해가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비해 생활이 많이 편리해졌습니다.
    과거에 없던 것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문제도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편리한 도구들은 우리의 생활을 풍성하게 해줍니다.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문제입니다.
    죄를 짓는 데에도 쉽고 빠릅니다.
    음란과 세속에 빠지는 죄는 지금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베드로전서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다섯째, 혈기의 영 / 호랑이(사자)

    사자 또는 호랑이는 분노의 영 또는 화의 영을 상징합니다.
    속에서 폭발적으로 분노와 혈기가 일어나는 이들은 속에 호랑이나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성질이 강하고 사나워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성경에서 최초의 살인 사건은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왜 죽였을까요? 미움과 혈기를 참지 못해서 죽였습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이 학교에서 왜 일어날까요? 혈기 내는 영이 사람 안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여섯째, 탐욕의 영 / 돼지

    돼지의 영을 “탐욕의 영”이라고 합니다. 돼지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면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며 그 욕망으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이 있어도 남들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주려고 하지 않으며 더 많이 얻으려고 합니다.

    나발이란 사람은 부자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데 인색했습니다. 굶주린 다윗과 그의 일행을 먹이기는커녕 조롱하는 말로 다윗을 노하게 했지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그는 몸이 돌처럼 굳어져 며칠 후 죽었습니다.

    누가복음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일곱째, 게으름의 영 / 거북이

    거북이와 같은 게으름의 영의 지배를 받으면 항상 나태하고 게을러서 모든 것을 미루며 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명을 받았어도 제대로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아(You wicked, lazy servant!)” 라는 책망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6∼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46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죄의 종류와 마귀의 역사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죄들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일곱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who want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디도서 3:4-6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새 사람은 도덕과 윤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그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시편 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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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론이란 무엇인가?

    예정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
    만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으려고 하여도 반드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예수를 믿으려고 아무리 노력하고 힘쓸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요? 이와 같은 이야기가 "예정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소개한다면 예정론이란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과 섭리(攝理, Πρόνοια, providence)라고 하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정(豫定, Αναμενόμενος, prefetermined)과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셨고,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자들을 예정하셨습니다.
    누구를 예정하셨을까요?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을 깨우치시려고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은 율법에 따라 먹을 수 없는 짐승과 새들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그것들을 먹으라고 하였으나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은 언제든지 먹지 않았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게 되었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누구를 예정하셨습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어느 특정한 민족 아니면 어느 특정한 교회와 교주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족속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을 예정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정론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정을 받았지만 예정을 받은 사람이 이제는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정론이란 "하나님의 예정(豫定, Αναμενόμενος, prefetermined)"과 "사람의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 또는 "사람의 결정"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도다.

    예정론이 성경적으로 의미하는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예정(豫定) / 미리 예(豫), 정할 정(定)
    1.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하여 미리 정하여 두는 것  
    2. 미리 예상(豫想)하여 두는 것

    성경에서 “예정되었다” 라는 헬라어 "프루리조(προορίζω, proorizó. 4309)"는 "사전에 결정하다”, “미리 명하다”, “미리 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to predetermine, foreordain). 따라서 예정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을 미리 정하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 사도행전 4:28, 예정하신
    2. 로마서 8:29-30, 정하셨으니, 정하신
    3. 고린도전서 2:7, 미리 정하신
    4. 에베소서 1:11, 예정을 입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미리 정하셨을 까요?

    로마서 8장 29-30절에 따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첫째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고
    둘째는 부르심을 받고
    셋째는 의롭게 되고
    넷째는 영화롭게 되는 것

    이러한 것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합니다.

    (성경 이야기)
    요셉은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인하여 애급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애급에서 요셉의 삶은 참혹한 생활이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었지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혔던 요셉이 바로의 궁에서 술맡은 관원과 떡맡은 관원이 감옥에 들어왔을 때 두 관원이 꿈을 꾼 후에 그 꿈을 해석했습니다.
    술맡은 관원은 복직 되어 바로의 궁에서 다시 왕을 섬기게 됩니다.
    어느 날 바로가 꿈을 꾸고 그 꿈 때문에 모든 술객들을 동원하였으나 꿈을 해석하지 못할 때 마침 술맡은 관원은 감옥에 갇혀있던 요셉을 생각하고 요셉을 바로에게 추천합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였고 애급의 총리가 되어 7년 대가뭄의 때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관원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양식을 구합니다.
    요셉은 지난 날의 모든 고통과 괴롭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의 신분을 알리고 앞으로 가뭄이 더 계속될 것이므로 모든 가족들을 애급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창세기 45:5-8).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급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에서 "예정론"이란 요셉의 삶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겠습니다.


    예정론(豫定論)이란?

    1. 하나님의 예정(豫定)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로마서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디모데후서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어느 시골 동네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나라의 왕자가 이 시골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처녀를 사랑한 왕자는 임금님과 의논해서 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느 날 왕자는 시골 동네로 그 처녀를 찾아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왕궁으로 갈 것을 청했습니다.
    처녀는 어떠한 반응을 할 수 있을까요?

    왕자의 청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왕궁으로 따라가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자의 청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절당한 왕자는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격과 덕망이 높은 분이기 때문에 처녀를 기다리며 계속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이런 노력과 수고로 인하여 마침내 처녀는 왕자의 사랑에 감동하고 그의 인격과 수려한 용모에 사로잡혀 왕자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왕자의 아내가 됩니다.

    그러면 이 처녀가 왕자비가 된 것은 처녀가 결정을 잘했기 때문입니까?
    처녀의 결정이 아니라 왕자의 사랑과 왕궁에서 작정된 결정 때문입니다.

    예정론은 이와 같이 선행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전하려는 교리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어느 날 우리가 결정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고, 찾아오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선행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을 언급하는 것이 예정론입니다.

    2. 사람의 선택(選擇)

    여호수아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정은 이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죄인된 내가 그 십자가의 주님을 인정하고 믿고 따라가므로서 구원의 대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예정론은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하나님에 의해 이끌려 지고(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구원받기 위해 믿는(로마서 1:16) 사람들과 밀접하게 역사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하나님은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두 사실은 동등한 진리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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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이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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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단상(231호)

    옛날 어느 마님 이야기입니다.
    달걀이 상에 자주 오르지못할 정도로 달걀이 귀한 시절에 그 마님은 생달걀을 밥에 비벼먹는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날 몸종이 밥상을 들고오다 그만 달걀이 마루에 떨어져 깨져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문틈으로 본 마님은 달걀을 어찌 하는지 몰래 지켜보았는데,
    몸종은 마룻바닥에 깨진 달걀을 접시에 담아 상을 내왔습니다.

    괘씸한 생각에 마님은 몸종에게 물었습니다,

    ''깨끗하다는게 무얼 말하는것이냐?''

    먼지나 잡티가 없는것이라고 말하면
    혼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종은 이렇게 대답했다.

    ''안보이면 깨끗한겁니다.''

    마님은 그말에 크게 공감하며,
    "네 말이 옳다'' 하고는 용서를 했다고 합니다

    "모르는게 약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모르면 행복한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과일을 먹고나서 껍질과 부스러기를
    그냥 놔두면 금방 초파리때가 날아 다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면 없었던 초파리가 어디서 날아왔겠습니까?
    그 것은 과일에 붙어있던 초파리 알이 부화한
    것입니다.

    그러니 과일을 먹는 우리는 모르는 사이
    초파리 알을 많이 먹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영 찝찝하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고 먹으니 괞찮었는데
    이제부터는 좀 거시기(?)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손이 발보다 깨끗하다고 인식되지만
    손이 하는 수많은 일을 생각해보면 과연 깨끗하다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신체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부위가 바로 손입니다.
    물건을 집고 문을 여닫으며 컴퓨터 키보드를 치고
    음식을 먹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손에 많은 미생물이 옮겨 붙게 되는데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
    사람의 손바닥 하나에 평균 150여 종류의 세균이
    수억마리가 바글바글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같은 사람인데도 오른손 왼손에 세균의 종류가
    같은 것은 17%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물론 손바닥에 있는 모든 세균이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종류의 병원균이 존재하고
    또 손을 하루종일 사용하는 만큼
    전염이나 감염도 쉽기 때문에
    그 위험성에 대해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입 안에 치아 사이에 치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치석 1mg 당 세균 약 1억 마리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치석 1mg은 참깨 반톨 정도라니
    세균이 얼마나 많은가 상상이 안갑니다.

    하루 세 번씩 이를 닦아도,
    입 안에는 500가지 세균 수억마리가
    '득실'댄다고 합니다

    자 이쯤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뽀뽀하고 싶은 마음이 확 달아 날 것입니다.

    그러니 안보고 안듣고 사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사람의 관계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친구가 아주 신비주의에 가까운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 기도원의 원장 목사가 여성인데 사람의 마음을
    훤하게 보는 투시(透視) 의 능력이 있다고
    한번 같이 가자고 자꾸 권했습니다.

    호기심도 생기고 의심도 들고 해서 기도원에 갔습니다.
    낯 집회가 끝나고 한 사람씩 개인 기도를 받았습니다.
    기도를 받고 나오는 사람마다 아주 만족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친구도 기도를 받았고 만족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했느냐고요?
    나는 내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어서 기도를 받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로부터 칠 개월이 지나서 입니다.
    그 기도원이 건축하기 위해서 건축업자와의
    거래를 하는 가운데 건축업자가 건축비는 물론
    신축 할 대지도  꿀꺽 삼키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기분이 아주 묘했습니다.
    그 기도원 원장은 건축업자의 마음은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반대로 건축업자는 원장의 여린 마음을
    훤히 본 것이 아닐까요?
    하여간 남의 속 마음을 보는 것으로는
    건축업자가 한 수 위인 것만은 분명 한 듯 합니다.

    성서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렘17:9)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공포가 때때로 밀려오고
    밀려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 남녀간의 사랑,
    친구끼리의 우정,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인생의 강물 속에 뒤섞여 흘러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만물보다 부패해서
    구정물과 같습니다.
    구정물은 가만히 놔두면 깨끗해 보입니다.
    그러나 막대기로 한번 휘저으면
    온갖 더러운 것이 올라 옵니다.

    사람도 평소엔 천사도 울고갈 신사인데
    그 마음을 드려다 보면 어떨까요?

    모르는게 상책입니다.
    모르니 부부도 되고,친구도 되고,선생, 목사,
    신부, 스님, 정치인, 교수등등도 하는 것이 아닐까요?

    가끔 무슨무슨 사건으로 들어나는 것을 보면
    눈뜨고 못볼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현미경처럼
    밝게 해 주시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안보이면 깨끗한 것입니다.
    안보이니 깨끗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여러분들 눈에
    내 마음이 안보이고 모르니 천만다행이다 싶습니다.

    근데 어쩌죠?
    언제인가는 다 까뒤집어 놓을 때가 올텐데 말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행복은 감사로부터

    장 도미니크 보비,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성잡지 엘르(Elle)의 편집장으로 준수한 외모와 화술로 프랑스 사교계를 풍미했다.
    그러던 그가 1995년 12월 초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3주 후 그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전신이 마비된 상태였다.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없었다.
    오직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는 눈 깜빡임 신호로 알파벳을 연결시켜 글을 썼다.
    때로는 한 문장 쓰는데 꼬박 하룻밤을 새야했다.
    그런 식으로 대필자에게 20만 번 이상 눈을 깜박여 15개월 만에 쓴 책이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다.
     
    책 출간 8일 후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런 신음이라고 했다.
    그는 건강의 복을 의식하지 못한 채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많은 아침들'을 생각하며 죄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는 잠수종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마음은 훨훨 나는 나비를 상상하며 삶을 긍정했다.
    비탄과 원망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대신 감사를 통해 극한의 고통을 감수하며 삶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가 그런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감사함으로 삶을 긍정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 몸을 뜻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할 일인가.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을 좋아한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누구라도 할 수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좋은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궂은 일, 불행과 슬픔을 만나도 감사하라는 말이다.

    감사란 말은 그것 자체로 능력을 지닌다.
    감사는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고, 마음의 격동을 진정시킨다. 
    우리의 마음과 행복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내면의 미를 지닌 매력 있는 사람이다.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 매튜 헨리는 ‘감사라는 보석을 지닌 사람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어도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에게 감사가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어떤 불리한 환경도 우리에게서 행복을 빼앗을 수 없다.

    흔히들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한다.
    성공과 행복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감사야 말로 가장 긍정적인 사고방식이고, 가장 적극적인 삶의 태도다.
    감사는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진정 우리가 행복하려면 감사의 비밀을 깨닫고, 감사의 능력을 체득하고, 감사내공을 길러야 한다.

    오늘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불평이 많아지는 서람들이 있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시대 이전에 주어진 모든 일상적인 복들에 감사하지 못했던 과거를 회개하고 감사를 더 많이 하는 서람들도 많지 않은가? 

    나는 나는 어느 쪽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국민에게 고(告)함

    * 연세대학 김형셕 명예 교수님이 나라 망해가는 꼴을 보고, 국민에게 고하고 있으니 필독 바랍니다.

    * 국민들에게도 등급이 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로 숨을 쉬지만, 국민들 격(格)이 다르네요.

    1. 문재인이 깽판을 쳐도 괜찮다고 보는가?

    2. 종북 사회주의 국가로 바뀌어도 잘 살수가 있다고 보는가?

    3. 나는 방관(傍觀) 해도 누군가 막아 준다고 보는가?

    지금 궐기(蹶起)하지 않으면 땅을 치고 후회하는 상황이 목전에 와 있다.

    흔히 말하는 '민초'는 무지랭이로 글자도 잘 모르고, 푼돈에 약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말 잘듣고, 복종 잘하는 국민들을 말한다.

    다음 등급이 백성(百姓)이다.

    글자도 알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지만,
    속으로만 불만(不滿)을 갖고 있고 표현하지는 못하는 계층이다.
    시키면 묵묵히 따른다.

    그 다음은 시민이다.
    이들은 불의(不義)에 저항하고 외치고 행동한다.

    그리고 대안(代案)도 제시하고 방안(方案)도 찾아내는 계층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반적으로 망해가고" 있다.

    경제가 폭망하고,
    민생이 파탄나고,
    안보가 붕괴되고,
    외교가 실종되고,
    기업들이 사라지고,
    일자리도 사라지고,
    노조가 폭력배가 되었고

    * 주석 김정은에게 나라를 통치 당하는 형상으로
    주석에게 아부하고,
    주적(主敵)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퍼주기 '선심정책' 으로 국가 재정이 바닥나 파탄 지경이며,
    이런데도 국정
    지지도가 47%라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느 급(級)에 속하는가?

    민초인가?
    백성인가?
    시민인가?

    * 740만 인구 중 200만이 저항하는 도시국가 홍콩은 분명히 시민들이다.

    홍콩 시민들은 결국 '범인 인도법' 논의를 연기하게 만들었고,
    홍콩통치 행정장관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 1789년 '프랑스
    혁명'을, '프랑스 시민혁명'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당시 프랑스 국민들이 왕권의
    탄압에 저항하고 행동한 것이다.

    * 스위스 국민들이 정부가 생활비를
    월 300 만원 주겠다는 것을 국민 투표에 부쳐 78%의 반대로 부결 시킨 것도 시민들의 모습이다.

    나라가 망해간다.

    안보가 무너져도,
    경제가 망가지고.
    민생이 파탄나고,
    일자리가 소멸되도
    침묵하다 못해 그렇게 만든 자를 지지하는 한국 사람들은 분명 '시민은 아니고, 어리석은 민초와 백성들'이다.

    우리는 '시민'이 되도록 격을 높게 만드는 것은 외부 '포장지'가 아니다.

    배웠다고, 안다고 우기면서 하는 짓이 '민초'의 짓이라면, 개나 돼지나 마찬가지다.

    입고, 먹고, 쓰는 것은, 세계적 수준이나,
    아무 생각이 없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지낸다면,
    역시 개, 돼지들이다.

    나라가 망해가고, 조국이 소멸되어 가도, 침묵(沈默)하고, 안타까워 하지 않는 사람들, 참으로 서글픈 조국의 현실이 비통스럽다.

    * 三年狗尾 不爲黃毛(삼년구미 불위황모)라 했다.

    즉, 개꼬리 3년 묻어 둔다고, 족제비털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치욕(恥辱)을 당하고도 변하지 않으니,
    '홍콩의 저항'을 보며, 느끼지 못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정말 한심스럽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고, 내 가족을 사랑한다면
    국민들이여!
    더 늦기 전에 "깨어 일어나자."

    나라가 망한 다음 후회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내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시민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이 글을 지인들에게 전달하는 것 만으로도,
    크나 큰 애국을 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아시고,
    마음껏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형석 명예교수 드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분당 서울대 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75세 이후는

     "집안 일·목욕 같은 일상생활을 혼자서 무리 없이 한다면 健康한 老人,
    누군가의 도움이 약간 필요하면 衰弱한 老人,
    혼자서는 불가능하면 매우 衰弱한 老人으로 구분한다" 면서
     "일상 생활 수행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75세 前後"라고 말했습니다.

    비교적 젊고 건강한 75세 미만 老人은 살을 빼고 過食을 避해야 하지만 75세 이상이면서 衰弱해진 老人은 고기 등 단백질을 되도록
    많이 먹으면서 체중이 줄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血壓의 관리도 비슷합니다.

    高齡 患者의 적절한 목표 혈압에 대한 결론은 아직 확실히 나오지 않았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목표 혈압을 중장년 층보다 높게 정하고 있습니다.

    65~74세는 140/90(㎜Hg) 미만,
    75세 이상은 150/90 또는 160/100 미만으로 관리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보라매 병원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는
     "고령 환자의 혈압을 너무 강하게 관리하면 저혈압 등 부작용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콜레스테롤도 마찬가지로 고령일수록 적절히 높게 관리하는 것이 되려 유병률이 낮아 진다고 합니다.

     2016년 국민건강 영양조사를 보아도 75세 이후엔 콜레스테롤 수치를 적절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콜레스테롤은 혈관 벽의 주요 재료임으로 너무 줄어들면 혈관벽이 약해져 뇌졸중·심근경색 위험이 오히려 높아진다고 합니다.
    또 나이 들수록 과체중일 때 치매 위험이 낮아져서 의사들은 75세 이후 부터는 고기·과일 등을 충분히 먹으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75세 미만은 체중이 적을수록, 75세 이상은 약간 과체중이어야 사망률이 낮아진다고 합니다.''

    임수 교수는
     "75세 이후의 과체중은 신체 기능 저하로부터 일종의 완충재 역할을 한다"고 하면서
     "체질량지수(BMI) 기준 23~25가 적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체중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도 75세를 전후로 확연히 다르다고 합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노인 68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60~69세의 경우 비만일 때 치매 위험이 정상 체중보다 70% 높았지만 70세 이상에선 오히려 3%,
    80세 이상에서는 비만일 때 치매 위험이 2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75세 이후로는 너무 혈당과 혈압 콜레스테롤과 과체중 등에 묶여서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들을
    너무 참지 마시고 맛있게 즐겁게 드시는 것이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 좋아하는친구

    애지중지키웠던
    자식들 다 떠나니
    내 것이 아니었다...!

    꼬깃꼬깃 숨겨 놓은
    옷장속 지폐들
    사용하지않으니
    내 것이 아니었다...!

    긴머리칼 빗어넘기며
    미소짓던  멋쟁이 그녀~!
    늙으니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큰방
    아내는 작은방
    몸은 남이되고
    말만 섞는
    아내도
    내 것이 아니었다...!

    칠십인생 살아보니
    내 것은 없고
    빚만 남은 빚쟁이처럼
    디기 서럽고 처량하다...!

    내 것이라곤 없으니
    잃을 것도
    숨길 것도 없다...!

    병없이 탈없이 살아도
    길어야 십년이다...!

    아 생각해보니
    그나마좋은 건
    친구였다...!

    좋아서 손잡아
    흔들어주고
    웃고 말하며
    시간을 잊게해주니~

    서로에게
    좋은 말해주고
    기운나게 하고
    돌아서면 보고싶고
    그리운 사람
    그는 친구였다...!

    친구야 !
    고맙다
    잘 묵꼬 잘 살거라
    부디 아프지말고
    오래오래 보자구나...!

    세상이 다 변하여도
    변함이 없는 건
    오직
    친구뿐이더라...!

    ♥ 오늘도 행복한날 되시길 바랍니다

    건강은
    몸을 단련해야
    얻을 수 있고
    행복은
    마음을 단련해야
    얻을 수 있다...!

    내면보다 외모에
    더 집착하는 삶은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비싼 물건과 같다...!

    꿀이 많을수록
    벌도 많이 모이듯
    정이 많을수록
    사람도 많이 모인다...!

    음식을 버리는 건
    적게 버리는 것이요
    돈을 버리는 건
    많이 버리는 것이고
    인연을 버리는 건
    모두 버리는 것이다...!

    입구가 좁은 병엔
    물을 따르기 힘들듯
    마음이 좁은 사람에겐
    정을 주기도 힘들다...!

    죽지 못해 살아도 죽고
    죽지 않으려 살아도
    결국엔 죽는다.
    굳이 죽으려고 살려고
    아둥바둥 애쓰지 마라...!

    삶은 웃음과 눈물의 코바늘로
    행복의 씨실과
    불행의 날실을
    꿰는 것과 같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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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삿갓(1807~1863) 은  조선 후기 풍자. 방랑 시인이다.
    김삿갓 이 지은 시 중에 아름 다운 가을을 그리며 추미애(秋美哀) 라는 한시가 있다.

    秋美哀歌靜晨竝
    雅霧來到迷親然
    凱發小發皆雙然
    愛悲哀美竹一然
    가을날 곱고 슬픈 노래가 새벽에 고요히 퍼지니
    아름 다운 안개가 홀연히 와 가까이 드리 운다.
    기세 좋은 것이나, 소박한 것이나 둘다 그러 하여.
    사랑은 슬프고 애잔 하며 아름 다움이 하나인 듯하네.

    위의 시는 김삿갓 김병연의 시다.
    번역을 빼고 한글만 읽으면 다음과 같다.

    秋美哀歌靜晨竝
    (추미애가정신병)  

    雅霧來到迷親然
    (아무래도미친연)

    凱發小發皆雙然
    (개발소발개쌍연)

    愛悲哀美竹一然
    (애비애미죽일연)

    200년후 세월을 미리 내다본 것일까?
    우연 일까?
    필연 일까? 
    애비애미는 그저 국가외 국민으로 보더라도, 
    자식망치는줄도  모르는 자식사랑 불쌍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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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대한민국아
    어찌할꼬?
    주님!
    속히 오시옵소서!
    이 글을 반드시 읽고 눈을 밝히뜨십시요
    ■이 글을 주위 한국인에게 무차별 뿌려주세요■

    《고기처럼 팔리는 한국여자 - 버닝썬 게이트 제보자 김상교의 실제 경험 증언》

    시간이 들었지만 이분이 방송에서 증언한 내용을 간단히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중국자본, 한국의 딥스테이트, 그리고  박근혜대통령을 탄핵시킨 주사파의 진실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의 글을 잘 읽어보면  탄핵뿐만아니라 그뒤 부정선거포함 모든 큰 문제들 그리고 최근에 전광훈목사님과 사랑제일교회, 8.15 참가자, 그리고 한국교회에 코로나를 퍼트린 집단으로 프레임을 쒸운 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1. 저는 건축과 미술 예술에 꿈이 있어 10대 때부터 디자이너 선생님 밑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프랑스 패션위크에서 일을 하고 무대연출을 배웠습니다.
    한국에서 군에 갔다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뮤직비디오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잘 되어서 당시에는 제 나이에 비해서 여유로워 졌습니다.  

    2. 2018년 11월에  MBC보도도 되고 YG 승리라는 사람이 홍보도 해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르 메르디앙 호텔에 있는 클럽 버닝썬에 사업차 갔습니다. 
    그곳에서 마약을 한 사람이 여자를 끌고 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3.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저에게 혐의를 쒸웠습니다. 
    제가 제보를 했는데 오히려 경찰이 저를 체포했고 제가 욕하면서 대든 것도 아닌데 경찰이 저를 폭행했습니다.
    입을 다물라 조용해라고 하는 식으로…

    4. 그 당시 제 나이가 28세였습니다. 
    제가 외국에서도 지내봐서 마약을 한 사람을 잘 알아볼 수 있어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대도 오히려 저에게 혐의를 쒸웠습니다.
    그들은 “얘가 취해서 그렇다. 기억을 못한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5. 경찰 폭행도 심하게 있었습니다.  
    버닝선 사람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저를 체포하며 "주취자여서 체포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CCTV도 보여주지 않아서 제가 왜 나를 체포하느냐고 말했더니 경찰차에서 폭행을 했습니다.
    부모님 보시는 앞에서도 폭행을 했습니다.
    그 후에도 CCTV가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 폭행을 했습니다.
    "세상에 이게 말이되냐?"라고 생각했습니다.

    6. 2명이 때렸습니다.
    굉장히 이상했습니다.
    "다른 경찰들이 다 있었는데 무서울 것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은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였습니다.

    7. 그곳이 압수수색을 당했는데 CCTV가 다 고장났다고 했습니다.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CCTV달라고 했는데 강남경찰서 서장이 비공개처리했습니다.
    마치 게쉬타포 같았습니다.
    대법원에서 공개하라고 했는데도 공개를 안했습니다.
    제가 이슈를 키웠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공개가 된 것입니다.

    8. 제가 겪은 내용을 SNS에 올렸어요.
    “이런일이 있었는데 경찰은 CCTV도 제공하지 않고 나를 거짓말 장이로 만든다.
    하지만 나는 마약한 모습을 분명히 목격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싸우려고 했는데 1달 동안 협박이 들어왔습니다.
    경찰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 글 내려라 고소당할 수 있으니까? 
    제가 “왜 클럽측 이슈를 경찰이 대변하시냐. 이것은 내 자유라고 생각한다.”라고 했어요.

    9. 그 과정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져서 클럽에 대해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SNS에 이런 일이 있다고 올렸는데 말도 안되게 이런 제보들이 올라오는 것이예요.  
    “김상교씨 같은 일은 지난 1년간 수백 번씩 일어났다.
    제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니다.
    다들 대놓고 마약을 하고 중국인 대상으로 마약 파티를 하고 경찰들은 못들어 오게 되어있다.
    마약피해나 폭행피해를 당한 일반인들이 있다.
    하루에도 두 번씩 신고를 했다 그런데 들어오지 못한다. “
    “신고한 여성을 경찰차에 태우고 가다가 골목길에 내려놓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10. 증거를 찾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고 영상을 3개 확보했습니다.
    클럽이 적을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클럽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제보를 해주었습니다.
    마약에 취해서 기절한 여자를 버닝썬 직원들이 머리채를 끌고 가는 모습이라던지 여자가 집단 강간을 당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2개정도 받았습니다.
    남자들은 약에 취한듯이 웃고있고 여자는 기절해있고 ..
    너무 충격적이어서 잠도 못자고…
    이것 때문에 이 싸움을 시작했던거죠.
    이것을 그냥 지나가면 내 자신에게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11.직원에게 이런 영상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이런 일들은 너무 많았고 이 사람들의 힘은 너무 쎄고 권력자들도 이곳에 많이 출입을 하고 경찰들도 출입을 많이 한다.
    당신은 밝힐수 없다.”

    12. 그래도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영상을 부탁을 하면서 한번 세상에 알려보겠다고 했어요.
    2019년 2월 까지 엄청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화류계, 마약사범, 폭행당한 사람들, 성폭행 당한 사람들 수십명을 만났습니다.
    자료를 탄탄하게 기획해서 그들이 못막도록 하기위해서요.

    13. 12월에 인터넷기사가 나갔는데 기자에게 전화가 와서 기사를 내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기자가 저에게 “이런 경우 처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있던 글도 수십만 조회수가 올라갔는데 내용도 다 삭제됐습니다.
    그리고 “김상교가 거짓말하고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보통일이 아니구나라고 생각 하고 탄탄하게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14. 이 사건의 중심에는 중국자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버닝썬은 중국인들이 투자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직접 촬영을 하러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중국인 마약 유통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5. 한번은 “2018년 12월 24일 중국인 대상으로 마약파티가 있는데 한국인 여성을 상대로 성상납하는 일을 벌릴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얼른 제보를 했습니다.

    16. 리사무란 중국 대만쪽 재벌이 있는데 이 사람이 거의 대부분의 자금을 대는 것으로 압니다.
    버닝썬 영업사장들이 비트코인 종사자들인데 린사무가 이들과 함께 영업을 해서 수익을 냅니다. 
    이 사람이 수백억 부동산을 한국에 갖고 있는데 이렇게 돈을 벌어서 부동산을 구입합니다.
    강남의 아파트 시장의 큰 손이 이런 사람입니다.

    17. 버닝썬은 돈 때문에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중국자본이 들어오고 거기에서 나이트 클럽처럼 수천만원 혹은 수억하는 테이블을 팝니다.
    그 돈을 현금이나 비트코인으로 받는데 거기에서 돈 세탁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중국인은 마약을 하고 클럽의 삐기(MD)들이 한국여성에게 공짜술을 주고 취한다 하면 환각제(물뽕)을 먹이고 중국사람들이나 한국사람들에게 성상납을 하면 근처 호텔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18. 한번 호텔에 올라가 보았는데 중국사람으로 꽉차 있었습니다.  
    1-2년 동안 대한민국의 큰 범죄들이 중국과 관계되어있습니다.
    개탄스러운 것은 이번 정부에 들어서 이런 반 인도적인 범죄가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것입니다.
    아무리 친중정부라고 하지만  현실을 목격을 해서…

    19. 제일 큰 문제는 이것을 비호한 공권력이라고 생각한다.
    버닝썬 쪽의 돈을 받은 경찰들이 밝혀졋습니다.
    그런데 피래미들은 잡혔는데 굴찍굴찍한 사람들은 빠져나갔습니다.
    밝혀진 사람중에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윤총경, 청와대 경찰총장. 노무현 청와대 부터 경찰요직에 있던..
    승리도 나오는데 승리 카톡방에서 정준형이 나오고 집단 성폭행한 내용과 양물을 투입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카톡방에 “경찰총장에게 이야기 했으니 해결이 될꺼야.”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20. 사모펀드, 비트코인, 마약, 버닝썬 엔터테인머트 등 다 관계가 있습니다. 
    버닝썬이  1조가 되는 사모펀드를 조직했는데 동남아 화교 자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마약과 비트코인이 연결이 되어있는데  삼합회 보스가 2018년 8워류들락날락거렸다는 사실도 클럽 내부자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모실것인가를 예행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21. 승리라는 사람을 보호한 것이 윤총경이었는데 클럽에서 사건들이 나면 보호해주었습니다.
    윤총경의 와이프 인 정모 경정은 당시 동남아 주재관에 근무했고 문재인 가족을 관리 엄호하는것이 윤규근 총경의 역할로 미루어 보아  문다혜씨가 태국에 가있던 것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유추 됩니다.

    - 실제 버닝썬에서 한국 여성을 강간한 태국계 화교는 태국 교육부 재벌의 아들 '밥' 이라는 인물입니다.

    2016년 말레이시아 5조원 비자금 횡령범 '조로우'와 태국의 재벌 '밥'은 한국에서 YG 양현석과 싸이 에게 성접대룰 받은 의혹이 있습니다.

    2018년 12월 한국여성을 버닝썬 에서 약물 성폭행한 후 '밥'은 성폭행이 인정됐으나 태국으로 돌아갔고 한국 경찰은 이를 바로 풀어 주었습니다.

    사모펀들에 있던 사람이 승리와 윤총경을 서로 소개해 주었는데 윤총경이 뇌물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조국과 조국 사모펀들에 등장합니다.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자료를 들고 와서 같이 공론화를 해달라고 해서 자료를 보니까 알게 되었습니다.

    22. 윤총장은 작년 10월에 구속이 되었고 4월 총선이 끝나고 곧바로 석방되었습니다. 정준영이나 최종훈이란 연애인은 처벌을 받고 형량을 받았는데 감형을 요청했습니다. 승리는 처벌을 받지 않고 군대로 갔습니다.  승리가 핵심인데… 당시에 버닝썬에 대해 기자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기자들이 클럽 VIP룹에 고위공직자들이 많이 왔다갔다 했는데 그들을 성접대한 영상이 있다고 합니다. 여자 연애인도 영상에 들어있는데 2016년도에도 찍어 놓았다면  2018년도에는 계속 찍어놓아다는 생각이 듭니다.

    23. 황당합니다.   사람들이 아직도 분개를 하지만 권력자들과 많이 결탁이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번 정권들어와서 이런일을 더 많이 보게되었습니다. 검찰개혁을 하면 검찰의 힘을 빼고 경찰에 힘을 주는데 중국공안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24 .2년이 지났는데도 없는 사건으로 만들었습니다. 사건을 뭉개고 있습니다. 사법체계에 대해서 불안감을 많이 느낍니다. 버닝썬 클럽은 해체가 되었지만 그 사람들은 그대로 다른 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N번방이 지속되었던 이유도 버닝썬 처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버닝썬과 N번방은 같은시기에 생긴 동종 범죄입니다.
    이를 막지 못한건 권력의 방관이 이유 입니다.

    25. 조직도를 보니까 멀리까지 이어지는데  결국에는 사모펀드까지 이어졌습니다. WFM,코링크등 실타래가이어지는 것이 보였고 , 실제 윤총경과 조국교수가 사진찍은 것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펀드 관련자 조범동도 함께요.  그래서 여당쪽에서 나를 찾아온 것 같습니다. 2019년 3월 민주당쪽 의원이 찾아왔습니다. 윤총경 뉴스가 나왓는데 파급력이 너무 셌던것 같습니다. 막상 까보니까 노무현 청와대 문재인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부인이 동남아 주재관으로 가 있고 문재인 가족들에 대해서 경호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6. 그가 종로 한 식당에서 와서 최순실조카의 사진을 보이며 “너 때린놈 기억하냐? 얘가 너를 때렸는데 기억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아닌 것으로 안다. 만약 맞다면 CCCV가져와라. 무고한 사람이 당하면 안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27. 그 당시 이슈가 김상교 최초 폭행자가 누구냐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3월 23일 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최초 폭행자는 최순실 조카다" 라는 말을 하고 버닝썬 사건은 전 정부의 인사들과 얶혀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직도를 그려서 나왔는데 곽상도 의원과 황교한 전 대표도 엮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황당했습니다.

     28. 그 후에도 저를 몇 번을 부르셔서 만났어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갔어요.
    윤지오 이야기를 자랑하듯이 기획해줬다고 했고 저를 유혹하기도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내부 고발자 모임에 저를 초대를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있었던 사람들을 언급하며 내부 고발자 모임에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4월 13일에 윤지오 북콘서트 있으니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피해자들을 모시고 가면 도와줄거라고 해서 피해자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29. 와인 Bar안의  밀실룸에서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습니다.
    그곳에는 T.V 에서 뵀던 분들을 보았습니다.
    MBC기자, JTBC피디, 오마이뉴스 기자, 증권가 찌라시기자, 금융업계 관계자, 문화계 사람들, 청화대 민정실과 가깝고 지금 현 정부의 비선실세라는 천주교 신부, 정보경찰, 청와대 민정실 사람들

    “저 신부님이 비선실세다. 저 사람에게 이야기 하면 해결이 될 거다.” 소개시켜준 증권가 기자가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에게 “지금 세상에 비선실세가 있는 것이 말이 되냐? 그 것 때문에 나라가 뒤집힌게 아니냐? 그런데 왜 지금 정부에서는 그런것이 있냐? 이것을 왜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이야기를 하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세상은 다 똑같애. 사실 우리도 적패야.”라고 말했습니다.

    30. 그때 가치관이  깨어졌습니다. 나도 미디어정치만 봤구나. 내가 미디어만 믿은 것이 아닌가? 이 사람들은 미디어를 가지고 놀고 있구나…
    대중은 미디어만 보고 속고 있었구나, 나 처럼.

    31. 이들은 테블렛 PC 보도하면서 국정농단 사건을 주도하며 키웠던 좌파인사들이었습니다. 즉 운동권사람들이었습니다. 청문회때 정의로워 보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중이 보기에 그렇게 포장이 되었었습니다.

    32. 그 사람들은 버닝썬 피해자들을 보았습니다. 여성 약물 성폭행 피해자 분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YG 관계자들 통해서 소개받은 외국 재벌들이 어떻게 강간을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거기에 있는 신부님은 “피해자가 많니, 상교야?”라고 하면서 이것을 조직적으로 일으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 민주당은 보수의 부패적인 역사와 엮으려고 시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총선을 어떤 이슈로 갈지에 대해 토론을 하는것을 목격했습니다.
    언론과 문화 컨텐츠로 무엇을 이슈를 키울지
    반일시위,518,버닝썬 등등.

    33. 거기에서 나왔던 이야기에 경악했습니다.… “그것을 한 번 뒤집을까? 그사람을 어떻게 할까” 하는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그리고 “내년 총선에 반일 시위로 가야하냐? 5.18을 키워야하냐”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34.거기에 기자들이 있었는데 반일시위를 키우기로 했고 2주뒤에 반일시위에 선동된 젊은 친구들이 광화문에 나왔고 그것만 방송에 보냈습니다.

    35. 제가 거리로 나가봤습니다. 종로에서 광화문까지 문재인 탄핵시위는 몇 만명이 모인 엄청 큰 집회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보도가 안됐습니다. 그런데 200-300명 모여있는 반일시위는 수천명이 모인 것처럼 언론보도가 되어있었습니다. 지금 정부도 언론을 통해서 공정보도를 하지 않습니다.

    36.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언론을 가지고 놀고 있구나. 젊은 친구들의 문화를 이용해서 저렇게 정신적인 선동을 하고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양심선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습니다.

    37. 인생이 바뀔 수 있는 폭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국민들이 너무 말도 안되게 게 당하는 것을 원치않아서 공정을 위해서 폭로했습니다.

    38. “버닝썬이 뭐라고 문재인 정부가 뭐라고 대한민국 여성들이 팔려나가는데…조사를 안합니까? 말이 안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국민이 이런 나라를 원해서 이런 자들을 뽑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9.블랙시위도 중국개입의 정황이 보여서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댓글공작, 차이나게이트,화웨이,전자개표기 이상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유권자가 의혹제기를 하는것에 재갈을 물리냐? 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부정선거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너무 명확합니다.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40. 세상이 잘못된 것을 알아도 이야기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적으로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방법도 너무 많고 사회적이란 감옥과 시선을 너무 많이 만들어놓았습니다. 2-3년동안 반 인륜적인 범죄가 너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  이런 일들 때문에 싸우고 있습니다. 2019년 버닝썬 사태, 조국사태.
    2020년 N번방 사태, 윤미향사태

    41. 2020년 윤미향, N번방사태. 청년들이 분개할 이유들이 너무 많은데 이야기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정치인으로 살생각은 없지만 국민으로서 법과 질서가 무너지는 이 나라에 잘못됐음을 이야기를 하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권력이 비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42. 이제 청년들이 깨어나 이정부의 거짓과 위선 특히 친중정책으로 나라를 여자를 팔이먹는 자들을 하루빨리 정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함께 뭉치는것이 첫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2020 8 월 김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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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생각하는 청년 들에게...

    1.정말로 나를 사랑하는가

    사랑은 이렇게 고백된다.
    "나는 너를 원해 그래서 널 사랑한다."
    "나는 널 사랑해 그러니까 너를 필요로해"
    그러나 이 두 마디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관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는 목적은 오직 한 가지다.
    "결혼한사람"이 되기 위해 결혼을 시도한다.
    그래서 결혼은 비극이다.
    그가 나를 원하는 것이 단순히 액세서리나 훈장을

    달기 위한 것이라면 피해야 한다.
    내가 먹이사냥하는 사랑의 사냥감이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한가?
    아니면 나를 필요로 하니까 사랑한다고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제일 먼저 던져 보아야 할 질문이다.
    그 사랑을 확인해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이 가운데 50점만 줄 수 있어도 성공이다.
    나머지 50점은 함께 답안지를 채워가라.


    2.기다릴 수 있는가

    하나님이 아담에게 처음부터 짝을 주셨던 것은 아니다.
    동물들이 이름을 부여하고 있는 동안 다들 짝이 있는데

    자신에게만 짝이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필요를 깊이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아담이

    그 필요를 발견하기까지 기다리고 계셨다.
    그 기다림 후에는 상대방을 알기까지 적어도 교제의

    4계절을 보내보아야 한다.
    단순한 계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4계절을 지내 보내보아야 한다.
    가을의 풍성함만이 아니라 여름의 광란과 봄의 들뜸과

    겨울의 황량함을 지켜보아라.
    그런 다음에 비로소 선택해도 늦지 않다.
    기다리며 본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시험법이다.


    3.신앙적 매력을 느끼는가

    선택의 기준 가운데A(age),B(ba-ck ground) C(character),
    D(de-gree)E(economy),F(faith), G(green)... 따위가 있다.
    뜻밖에 사람들은 F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성경은 분명히 이른다.
    "불신자와는 결혼하지 말라"(고후6:14)
    그런데도 사람들은 타협을 시도한다.
    "불신자도 전도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누가 불신자를 전도해요"
    아뿔싸. 성경은 그런 '구제 결혼'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결혼은 물건을 사는 것처럼 잘못 됐다고 바꿀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때문에 처어치 맨(church man)만 가지고도 어렵다.
    결혼은 그 이상의 문제다.
    함께 사는 것도 길이 멀고 험한데 갈등하며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모른다


    4.환경의 인도가 있는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전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서서"

    (창 24:12)
    아브라함의 부탁을 따라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종은 이렇게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시험(?)했다.
    만약 내가 우물곁에서 청년 여자가 물을 길러 올 때물을

    달라고 부탁할 것이고 이때 그가 약대를 위하여도 물을

    긷는 친절을 보여주면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그 사람' 이라고 믿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기도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나타나 그대로 행동을 했다.
    노종은 놀라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리고 그들 부모에게 경과를 설명하고 확인한다.
    "내게 고하시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내게 고하여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창 24:49)
    하나님은 결혼에 관련된 대부분의 해당자들에게 그 만남을
    확신하도록 환경적 인도를 하신다.


    5.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하나님은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 (빌 2:13)
    따라서 우리 속에 끊임없는 소원과 갈망이 있다면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 보라.
    그때 마음속에 평안이 있으며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확신해도 좋다.

    그러나 여전히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나에게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은 상대방에게도 말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육체가 편치 못하고 밖으로는 다툼이요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며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다면"

    (고후 7:5) 다시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보다 성숙한 선배들에게 상담을 구하라.


    6.영적인 도전이 있는가

    하나님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 (호 11:4 )로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이다.
    그 또한 그녀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나남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의 성장과 성숙에 도움을 입고 있다면 하나님의 인도로 확신해도 좋다.
    이렇게 우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좋은 도전을 줄 수 있다면

    하나의 연합체로서 이 세상을 향해 책임 있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동반자라 할 수 있다.


    7.나를 웃길 수 있는가

    웃음은 단순히 기분이 아니라 세계관이다.
    웃음은 관계건축가라도 불린다.
    웃음이 있다는 것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음을 의미한다.
    만날 때마다 심각한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면 무엇인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
    웃음은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가장 큰 자산이다.
    정말 나를 웃길 수 있는가?
    헤픈 웃음을 말하거나 경박한 웃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가?


    8.눈높이 조화를 이루는가

    결혼은 서로 눈높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도무지 수준이 안 맞아요." 침대에서 자야 잠을 잔 것 같은

    사람이 는가 하면 침대에서 자면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 들어 멀미가 나는 사람이 있다.
    아침밥도 빵과 수프를 먹어야 속이 펀안하고 개운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퀴퀴한 된장 찌개에다 짭짤한 젓갈을

    한입 그득 물고 머슴처럼 아침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게으름을 해야 하루가 든든한 사람이 있다.
    또한 결혼을 신분상승의 기회나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한

    수단으로 보아 어느 한 면만으로 고집스레 보는 경우가 많다.
    결혼은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조화는 경제적인 문제까지도 확대된다.
    그렇게 해서 서로 눈높이 귀높이 키높이라고 생각할 때는

    그다지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나머지는 두 사람이 개척해 나가면 될 일이다.


    9.그의 결점이 눈에 보이는가

    낭만적 연정은 즉각적 사랑이다.
    그것은 서두르는 사랑이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다.
    그리고 낭만적인 연정은 현실성이 결핍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좋고 매혹적인 면은 우상화하고 부정적인

    특성이나 분명한 약점 그리고 이런 사랑은 바로 맹목적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결혼생활에서 첫 다툼이 생기기만 해도 벌써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하지만 진정한 애정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
    잘못을 간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10.그를 만나면 안기고 싶은가

    상대방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성숙해 있는가는 밥을 먹을 때

    길을 걸을 때 전화를 걸 때 등의 일상 생활을 조금만

    눈여겨보아도 알 수 있다.
    항상 무엇인가 쫓기고 불안한 기색이 보이거든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일에 쫓긴다든지 업적을 자랑하는 일에 관심을 보인다면

    긴장과 조바심이 느껴진다면 아서라 더구나 바쁜 것을

    성공쯤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도 함께 쫓길 수 있다.
    반대로 상대방을 만나면 너무 편안하고 안기고 싶다면

    그게 내 짝이라고 여겨라.


    11.로맨스를 놓치지 말아라

    한 책은 로맨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로맨스는 하나님의 해답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매우 인간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자기중심에서

    타인중심으로 이끌어 내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이 서로의 행복을 견고히 하고

    성장시키는 데 만족스런 경험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로맨스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친근함을 경험하고 깊이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로맨스는 결혼으로 끝나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깊다.
    로맨스가 찾아올 때는 기대를 가지고 그 부름에 응하라.
    로맨스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보아라.


    그렇게 로맨스를 맞이하는 동안 위의 조건들이 부합되는

    파트너가 나타나거든 꼭 찍어라.
    너무 오랫동안 숨바꼭질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생각

    생각은 인생의 소금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간을 보듯,

    말과  행동을 하기전에
    먼저 생각하세요.

    깊은 강물은  돌을 집어 던져도
    흐려지지  않습니다.

    모욕을 받고  발칵하는 사람은
    작은 웅덩이에  불과 합니다.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는
    값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있을 때는 존중하고
    없을 때는 칭찬하고
    곤란 할 때는 도와주고
    은혜는 잊지말고
    배푼 것은 생각하지 말고
    서운한 것은 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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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왕  박태준

    ◇ 유례 없는 일 " 박태준 묘소서 부인이 1년간
    박태준 떠난 지 1년
    그의 묘소엔 아침마다 믹스 커피 한잔 있었다
    365일 하루도 안 거르고 하루 5시간씩 시묘살이

    부인 장옥자 여사의 ‘현충원 망부가’        
    사람들은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1927∼2011)을 ‘철강왕’이라 부르지만
    장옥자(82) 여사에게는 ‘효자사 주지스님’으로 기억된다.

    1968년 시작된 포항제철(지금의 포스코) 건설이 92년 광양제철소 4기 설비 준공식으로 마무리되는 동안
    남편 박 회장이 서울에 가족을 두고서 꼬박 지냈던 곳이 포항 효자동이다.

    “서울에서 아버지(남편을 지칭) 숙소로 내려갈 때면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며 창문 앞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그 모습에 얼마나 눈물이 났던지….” 장 여사의 회고다.

    13일은 박 회장 타계 1주년 되는 날.
    장 여사는 남편이 묻혀 있는 서울 동작동 현충원 묘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찾았다.

    본지는 올 초부터 현충원에서 장 여사를 10여 차례 만나 박 회장과 57년 생을 함께한 그의 ‘현충원 망부가(望夫歌)’를 지켜봤다.

    시묘살이 1년
    전날 내린 폭설과 강추위가 맹위를 떨쳤던 6일. 오전 11시쯤 되자 이날도 어김없이 장 여사가 탄 검은색 세단이 현충원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에 선 초소병은 두말없이 차를 향해 경례를 했고, 차는 국가유공자 3구역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박 회장 묘소 앞에는 천막이 쳐져 있는데, 검은색 정장 차림의 장 여사는 매일 그곳에서 5시간가량을 보낸다.
    묘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꽃무늬 사기 찻잔에 믹스커피를 타는일부터 한다.
    그러고는 커피 잔을 묘소 상석 위에 깔아 놓은 주황색 보자기 위에 살포시 놓고 한참 동안 묵념한다.
    장 여사는 “아버지가 참 커피를 좋아하셨다” 고 했다

    천막 안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 7월 20일 태풍 카눈이 소멸한 날, 33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충남 천안에서 온 30여 명이 묘소를 찾았다.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TMC의 임직원들이었다.

    ◇ 장병효 포스코TMC 대표는“그분의 정신을 다시 한번 다지고자 왔다”고말했다.

    ◇ 현충원에 산책 나온 동네 주민도 박 회장 묘소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 장 여사는 이들을 위해 커피 믹스와 따뜻한 물이 담긴 보온병을 늘 준비했다.
    테이블 위 손님맞이용 간식 그릇엔 쥐눈이콩·아몬드가 담겨 있었다.
    장 여사의 이 같은 시묘살이에 현충원 관계자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 -애초부터 시묘살이를 계획했는지?          
    “100일 탈상이 끝났는데도 하루에 30~40명이 묘소를 방문했어요.
    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왔는데 아무도 맞아주지 않으면 어떡하겠습니까.
    방문객에게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해야겠다고 곁을 지켰던 것이 벌써 1년이 됐네요.”

    - 1년간 심정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지금도 집에서 어쩌다 생일 때 받은 선물 같은 추억이 담긴 소지품을 발견하면 충격 받아요.
    ‘내가 존재하는 게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집에서 나 혼자 있을 때면 방문을 잠그고 웁니다.”

    ◇ 장 여사는 “소지품 하나를 봐도 추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 메인 화면으로 등록해 놓은 명예회장의 사진을 슬쩍 보여줬다.

    ◇ 그는 “내겐 세상에서 둘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아버지랑 두말없이 결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현충원은 그런 장 여사에게 ‘힐링캠프’ 같은 곳이 됐다.          
     
    ◆ 남편 박태준=박 회장과 장 여사는 54년에 결혼해 1남 4녀를 뒀다.
    결혼 당시 박 회장은 육군사관학교 교무처장이었다.

    ◇ 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박 회장은 이후 포항제철을 세우며 기업인의 삶을 살았고, 민자당 최고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 장 여사는 결혼 직후 남편이 한 말을 이렇게 기억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는 것이 내 목표요.
    (동그란 원을 그리며) 이를 위한 내 능력이 이 원만큼인데 오로지 이 원에 전념할 수 있게 나를 좀 보좌해주시오.”

    ◇ 장 여사는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약속했고, 살림살이를 하면서 남편의 원칙에 늘 따랐다.

    ◇ 2000년에는 “지구상에서 내 명의로 된 부동산은 다 없애라”는 박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 그래서 36년간 살았던 북아현동 집을 팔아야 했고,
    박회장은 집 판돈 14억 5000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버렸다.

    ◇ 부부는 이후 전세살이를 하다가 둘째 딸 소유 한남동 맨션에서 살았다.
    2010년, 박 회장은 아내에게 미안했던지 이렇게 말했다고 장 여사가 전했다.

    ◇ “여보, 내가 평생 살다가 남의 집에서 죽는 거 아냐.”
    장 여사는 오히려 남편의 이 말 한마디가 늘 마음에 걸렸다.

    ◇ 보다 못한 장남이 지금 장 여사가 기거하고 있는 서울 청운동 낡은 단독주택을 샀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 집을 자기 명의로 하는 것에 끝끝내 반대했다.

    ◇ “우리에게 10년 세 주는 걸로 해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청운동 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지병인 폐부종 증세가 악화돼 생을 마감했다.

    ◇ 박 회장은 낮잠도 소파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잘 정도로 엄격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늘 아내부터 배려하는 남편이었다.
    장 여사는 “아버지는 내겐 둘도 없이 자상한, 신사 남편이었다”고 회상했다.

    ◇ 장 여사는 “ 늘 ‘명예도 직위도 없이 나 하나 보고 시집온 아내를 어디 이길 데가 없어서 이겨야 하나. 내가 양보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 박 회장은 출장을 갈 때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꼬박꼬박 엽서를 보냈다.

    ◇ 박 회장은 포철 내 사원주택 단지를 꾸미는 데도 열심이었다.
    임직원들에게 최고 수준의 주택·교육 단지를 제공하겠다는 신념에서다.
    그래서 얻은 또 하나의 별명이 ‘떴다’다.
    그가 관사에서 회사로 이동할 때면 직원들이 ‘떴다’ 신호를 주고받으며 한바탕 난리를 쳤다.

    ◇ 보도블록 하나가 튀어나와 있어도 호통이 나오는 건 다반사였기 때문이었다.

    ◇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박회장은 포항·광양에 27개의 학교를 만들었다.

    ◇ 한국 기업 최초로 임직원 자녀를 대상으로 전액 대학장학금 제도도만들었다.

    ◇ 장 여사는 이처럼 ‘오로지 포철’만 생각하던 남편과 함께 포스코의 변천사를 지켜봤다.

    ◇ 그래서 걱정도 많다.
    장 여사는 “포스코는 국민의 기업이다.
    더 이상 외풍에 시달리게 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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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사 술사 감사 봉사 웃자
     
    석사ㆍ 박사보다 더 높은 학위는 "밥사" 라고 합니다.
     
     
    까칠한 세상 내가 먼저 따뜻한 밥한끼를 사는 마음이 석사ㆍ박사보다 더 높다고 하네요!
     
    밥사보다 더 높은것은 "술사" 라고 하네요.  
    친구가 술이 고플때 오뎅 국물에 소주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라네요!
     
    술사보다 더 높은것은 "감사" 라고 하네요.  
    항상 감사하고 사는 마음은 박사ㆍ밥사 술사 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감사보다 더 높은것은  "봉사" 라고 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재능과 재물 등의 기부로 나눔을 베풀면서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맛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자ㆍ맹자ㆍ순자ㆍ노자ㆍ장자보다 더 훌륭한 스승은  "웃자" 라고 합니다.  
    웃으세요.
    웃음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웃자 보다  더 좋은 스승은  
    함께 먹자!
    함께 살자! 라고 하네요.
     
    좋은 말은 하는대로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으니까 행복해진다고 하지요.
     
    나이 먹을수록 생기는 나쁜 인상은
    피부가 처져서가 아니고
    웃음을 잃고 찡그린 표정을 많이 지어서 그렇답니다.  
    웃으세요.
    더 크게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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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중요합니까?
    아내가 중요합니까? 라는 질문에서

    중국 갑부
    전자상거래 알리바바 그룹 회장인 마원의 정확한 대답입니다.

    1. 나는 어머니가 낳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한테 잘해주는 건  의무이지만
    아내는 장모님이 낳았기 때문에 아내가 나한테 잘해주는 건 의무가 아니다.

    2. 어머니가 나를 낳을 때 고통은 아버지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잘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나는 당연히 아내한테 잘해야 한다.

    3. 내가 어떻게 하든 어머니는 영원한 나의 어머니지만
    내가 잘못하면 아내는 남의 아내가 될 수 있다.

    4. 어머니는 나의 1/3의 인생을 책임지지만
    아내는 나의 2/3의 인생을 책임진다.

    5. 아내는 나의  후반생을 보살피니까
    어머니는 아내를 따독여 주셔야 하고 어머니의 후반생도 아내가  
    보살피니까 나는 응당 아내한테 감사를 해야 한다.

    6. 아내가 종이 한 장 믿고 시집와서 못해본 고생하는 건 나 때문이다.
    장모님은 아내를 고생 한번 안 시키고 나한테 시집보냈다.

    아내란 누구인가요? 아내란 바가지를 긁으면서도
    그 바가지로 가족을 위해 밥을 해 주는 사람

    아내란?
    아이들을 혼내고 뒤돌아 아이들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아내란 친정엔 남편의 편이 되어
    모든 물건 훔쳐다가 남편을 위한
    남편의 편인사람

    아내란?
    남편과 아이들만 보고 울고 웃다가
    결국엔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

    아내란?
    사랑을 주면 줄수록
    얼굴이 수줍어지고 예뻐지는 사람

    아내란?
    살이찌고 뚱뚱해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사람

    아내란?
    남편이 저 세상 가는 길에도 끝까지 홀로남아 못 다한 정 아파하며 울어주는 사람

    아내란?
    가족이 먹다남은 밥을 먹으면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

    아내란?
    홧병이 나도 드라마 보다가남편과 아이들 잘못을 금세 잊어버리는 사람

    아내란?
    당장 잃어버린 1000원에안절부절
    해도 남편과 자식위해아낌없이 희생하는 사람

    아내란 밥 한끼보다 "수고했네 사랑해"
    한마디로 더 행복을 느끼는 사람

    아내란?
    이 세상에서 가장 의리 있고착하며 늙어서까지도 남편에게 만큼은 여자이고픈,소녀같은 친구입니다

    때로는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맞벌이
    주부로 1인 4역을 끄떡없이 해내고
    있는 무한한 에너지의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지칠 수 없고 지칠 것 같지
    않던 아내에게도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에 에너지가 고갈되며나약하고 힘없는 시기가 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만능 아내에게 에너지를
    충전해줄 수 있는
    오직한 사람 남편 뿐입니다

    남편의 따뜻한 포옹
     " 고마워 사랑해"
    말 한마디에도
    아내는 이 세상을 들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의 큰 에너지를 충전 받습니다,

    아주 작은것에 상처받고
    아주 작은 것에 큰 감동을 받는 아내
    평생토록 아끼며
    사랑해줘야 하지않을까요?

    사랑하며 칭찬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바쁜일상들
    우리 우리라는 인연 속에 가족과 또한 인연의 인향기 전하며~
    그 무엇이든 내 안의 삶이 숙제요  
    정답이리라~~~~

    복짓고 사시는 우리사랑의 사다리
    모든님 무한 사랑합니다♡

    너무좋은 글이라서 반성하면서펌합니다!!!
    남자들이여 지금부터라도
    아내를다시보라~

    오늘도 복된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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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세 이상된 노인들이 가끔 겪는 경험들

    1. 음식물을 급히 드시다가 목에 막혀서 안 넘어갈 때

    - 양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고 있으면 목에 걸린 음식물이 쓰윽 삼켜진다.

    2. 잠자고 나서 아침에 목이 뻐근하고 아플 때

    - 베개를 잘못 베고 잠을 자서 그런거니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발을 쭈욱 뻗고 발목을 시계방향으로 서너번, 시계 반대방향으로 서너번 돌리기를 계속 하다보면 목이 아픈 게 풀려 버린다.

    3. 쥐가날 때

    - 당신의 왼쪽 다리에 쥐가 날 때에는 당신의 오른손을 쭈욱 펴서 휘두르면 되고,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날 때는 당신의 왼쪽손을 쭈욱 뻗쳐서 휘두르다 보면 신기하게도 다리에 난 쥐가 풀려버린다.

    4. 발이 따끔따끔 거리고 아플 때

    - 오른발이 따끔 거릴 때에는 왼손을 쭈욱 뻗친 상태에서 최대한의 원을 그리면서 휘둘러 주고, 왼발이 따끔 거릴 때에는 오른손을 쭈욱 뻗친 후에 원을 그리면서 휘둘러 주면 왼발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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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이 발달하여 의학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인간 한계수명이라 하던 120살이 꿈만은 아닌 시대로 접어드는듯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은 의학에만 의존해서는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 장수학자의 의견을 이곳에 옮겨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데 참고하시라고 전합니다.


    100세의 삶!
    꿈만은 아니다
     
    100살을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나봅니다.

    세계적인 장수 과학자 박상철 전남대 석좌 교수의 글을 그대로 여기로 옮깁니다.
    한 번 읽어 보십시요.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닐 것입니다.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에 동일한 자극을 줬다. 자외선도 쏘이고,
    화학물질 처리도 했다.
    저강도 자극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고강도 자극을 하자
    예상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고강도 자극에서 젊은 세포는
    반응하다 죽었지만,
    늙은 세포는 죽지 않았다.
    2년 이상 같은 실험을 했다.
    결과는 같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노화는 증식을 포기한 대신
    생존을 추구한다'’였다.

    평생 노화를 연구해 온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보고
    노화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꿨다.

     “노화는 죽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입니다.”

    박 교수가 노화과정을 긍정적으로 보고, 당당하게 늙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생명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수의 비밀을 아는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 교수는
    세계적인 장수과학자이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박 교수는
    ‘늙지 않고, 아프지 않기 위한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10년 이상 한국과 세계의 백세인들을 직접 만나며 그들의 식습관을 관찰한 박 교수는 한국 특유의 장수 먹거리를 찾아냈다고 한다.
    현대판 불로초인 셈이다.

    그 첫 번째 불로초가
    바로 *들깻잎*이었다.
    국내 최고 장수지역인 구례, 곡성, 순창, 담양 등의 장수마을 주민들의 들깻잎 소비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았다.
    이들 주민은 들깻잎을 날로 먹거나 절여 먹었다.
    들깻잎의 효용을 분석했다.

    “들깨가 오메가3 지방산의 주요 공급원 역할을 했어요.
    들기름에 나물을 무치고, 전을 지지고, 들깻잎을 날로, 혹은 된장이나 간장에 절여 드셨어요.
    들깻가루는 추어탕 등에 듬뿍 넣어 드시더군요.”

    고등어, 연어 등에 많은 오메가3 지방산은 필수 지방산으로 필수적인 장수 영양소이다.

    두 번째 한식에서 찾아낸 불로 식품이 된장, 간장, 청국장, 김치 등의 발효식품이었다.

     “육식하지 않으면 비타민 B12가 부족합니다.
    이 영양분은 조혈 기능뿐 아니라 뇌 신경 기능 퇴화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백세인의 혈중 비타민 B12 농도는 정상이었고,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서양인들보다 높게 나왔어요.”

    어찌 된 일일까?
    박 교수는 연구 결과 원재료인 콩이나 두부, 야채 상태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던 비타민 B12가 발효과정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박 교수는 우리 민족의 전통식단이 바로 한류 케이-다이어트(K-diet)의 핵심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장수 식단으로 알려진 지중해 식단에서는
    올리브 오일을 많이 먹고,

    그린란드 식단에서는
    생선(오메가3)을 많이 먹는다.

    한국의 장수 식단은
    채소도 신선한 형태가 아닌
    데치거나 무쳐 먹는데
    이런 조리 과정을 통해
    장수에 도움되는 영양분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박 교수가
    노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탑골 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급식하는 점심을 먹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는 것을 본 뒤였다. 무력해 보였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무료로 요리법을 가르치고, 식단도 개발했다.
    당당한 노년을 위한 처방이었다.
    자립하고 독립하는 길이기도 했다.
     
    “요리를 배운 노인들은 한결같이 요리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다고 이야기했어요.
    물론 간단한 요리이지만
    한 번도 주방일을 하지 않았던 노인들에겐 새로운 경험이었죠.”

    건강한 장수를 위해선 움직이라고
    박 교수는 강조한다.
    선진국 백세인의 남녀 비율은 1:4~1:7로 여성이 많은데,
    한국은 1:10으로 현격히 여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남성이 유난히 몸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진단한다.

    “당당한 노년을 위해
    골드 인생 3원칙을 제안합니다.

    그 첫째가 ‘'하자’'입니다.”

    뭐든지 하면서 노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장수인들의 특징은 늘 뭐든지 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움츠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단다.

    두 번째는 ‘'주자’'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기부하며 베푸는 것이다.
    나이가 먹었다고 받으려 하지 말고 뭔가 주려고 애쓰면 아름답고 당당한 노년이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배우자'’이다.

    일반적으로 은퇴를 하는 50, 60대를 지나 적어도 30년 이상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살고 싶다면 새로운 사회와 문화, 과학에 대한 배움에 조금의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떠날 수 있어요.
    두려움 없이 떠나려면 미련이 남지 않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백세인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입니다.”

    * .아무리 말이 좋고 합당하여도
    그것을 실행치 않으면
    그냥 말이나 글에 불과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면
    그것은 크나큰 성과를 줍니다.
    자신의 머리에 아인슈타인의 지식이나 지혜가 있은들 그것을 사용치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무식한 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100개를 알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보다 1개를 알면서 1개를 실행하는 자가  훨씬 똑똑하지 않습니까!

    꼭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1. 들깻잎 (오메가3 지방산 공급원) 많이 먹자!

    2. 발효식품 (B12공급원) 많이 먹자!

    3. 일하자!

    4. 가진것을 나누어 주자!

    5. 무엇이든지 배우자!

    이것이 살의 실천강령이 될때 우리의 건강한 100세시대는 현실로 다가설 것입니다.
    서로 위하고 섬기고 나누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그리고 함께 노력하고 싶습니다.

    즐거운 날 되십시요.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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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랜트 최수종 장로님의 간증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대조영’ ‘장보고’ ‘왕건’ 등의 사극에 출연하여 ‘사극왕’이라고도 불렸다.
    최수종은 쉽게 스타가 된 것 같지만 그에게도 몹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청와대 고위 공무원이었던 최수종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사업을 위해 파라과이로 먼저 떠나셨고 나중에 사업이 잘되어 가족들까지 모두 이민을 갔다.
    당시 고1인 최수종과 고3인 누나만 한국에 남았다.
    어머니는 파라과이와 한국을 왕복하며 자식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그러다 누나는 조하문 목사와 결혼을 했고 최수종은 미국 콜로라도로 유학을 갔다.
    인자한 아버지의 신앙 안에서 최수종의 가정은 평화로웠고 최수종의 책상 앞에 붙어있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성구처럼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수종의 집안에 엄청난 비운의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사업실패를 겪으면서 그 아픔으로 60세에 돌아가신 것이다.
    최수종은 콜로라도에 자신의 짐을 다 놓고 티켓비만 빌려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최수종은 어린 마음에 세상이 너무나 미웠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수 있냐고 아버지를 한없이 원망했다.
    하나님도 제일 많이 원망했다.
    ‘하나님, 그렇게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어려운 일도 되게 해주시고 저희 가정이 믿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이게 뭐냐’며 원망하며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집도 없고 오갈 데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고 안부를 전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 집 저 집 다니시며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을 얻으셨다.
    80년도인데 밥 한 끼를 먹지 못했다.
    잘 곳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잠을 잤다.

    하루는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벤치에서 잠을 자던 최수종에게 어떤 사람이 신문을 던졌다.
    “어이. 이거 덮고자. 새벽에 따뜻할 거야.”
    그는 자신보다 허름하고 마른 사람이었다.
    최수종은 그를 보고 무의식중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한 사람 같은데 어떻게 저에게 신문을 던져주는 거죠?
    지금은 아니지만 제가 돈을 벌게 되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면서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최수종은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다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파라과이에 혼자 남아 있는 동생에게 유학비를 보내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는 어머니를 위해 방 한 칸을 마련해보기 위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막노동, 벽돌 나르기 등 많은 일을 했다.
    얼마나 많은 벽돌을 날랐으면 그는 용산구청을 자신이 지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 건물을 세울 때 그가 그곳에서 벽돌을 날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고3 여학생 한 명에게 과외를 시켜줄 수 있냐는 부탁이 들어왔다.
    그 아이 공부를 가르치고 학생 아버님과 대화하던 중 최수종의 사정을 들으시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 학생의 아버지가 KBS 방송국 예능국 국장이었던 것이다.
    그분이 배우 한번 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최수종의 대답은 “그거 하면 돈 주나요?” 였다.
    그런데 첫 드라마가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다.
    그는 배우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두 달 만에 청소년들이 자신이 지나가면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우리나라 대표 가는 청춘스타가 됐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최수종은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는 드라마로 데뷔하며 ‘청춘스타’가 되었다.
    그는 그때부터 드라마를 하면서 ‘젊음의 행진’ MC,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도 하고,
    영화도 찍으면서 가족들을 위해 정신없이 돈을 벌었다.
    방 한 칸을 마련하고 외국에 있는 동생에게 보낼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렇게 해서 경기도 과천에 있는 주택가 지하 단칸 방을 겨우 마련했다.
    구석 구석에 비가 새서 곰팡이가 피어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어머니와 눈물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기자들이 최수종 집을 팬들을 동반하고 방문한다고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보여주라고 하셔서 할 수 없이 그대로 보여줬다.
    기자가 사진기자와 함께 팬 5명을 대동하고 왔는데 집을 보는 순간 기겁을 했다.
    곰팡이로 인한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곳에서 엄마와 사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동생에게 400만 원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기가 막혔다.
    그런데 한 영화감독이 현찰 600만 원을 손에 들고 찾아와 영화 한 편 찍자고 했다.
    최수종은 드라마와 디제이 등 너무 많은 일로 영화 찍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딱 네 번만 나오고 나머지는 대역이 하는 영화라 가능했다고 한다.
    최수종은 이런 일을 주신 것은 교회와 주위의 기도 덕분이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이후 그는 방글라데시, 네팔, 평양 등으로 봉사활동을 다녔고 국내에 학대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그리고 무의탁 독거노인들을 위해 봉사와 나눔 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면서 하희라 씨를 아내로 맞이하게 됐다.

    하희라는 불교 신자였고 가위눌림이 심해 미신에 의지하고 있었다.
    최수종은 하희라를 위해 15년을 기도했다.
    그 와중에 하희라는 다섯 번의 유산을 겪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최수종의 기도는 고난을 이겨내게 했고 결국 하희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 가정에 두 아이를 허락해주셨다.

    두 아이를 갖게 된 최수종은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와 매일 통화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대화한다며 웃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돌아가서 저와 좋은 시간 보냅시다.” 하니까 아들이 “아닙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빠가 없는 자리를 제가 책임지고 잘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첫째가 태어났을 때 최수종은 자신의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같은 병실에 다른 아이가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이후부터 심장병에 걸린 어린이와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는 고칠 수 있는 병임에도 배고픔과 기아,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봉사활동을 가서 보았다.
    평양을 방문해서도 약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시간을 쪼개서라도 봉사단체를 만나 후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네팔에서 낮에는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노동을 하고 오후에는 학교에 가는 아이를 보면서 고맙고 미안해 눈물이 났다고 한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데 아이들 스스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들이, 그렇게라도 살려고 버텨주는 것이 정말 고마웠고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계속 학교에 갈 수만 있다면 또 계속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는 무엇이든지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마음이라며 우리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며 간증을 마쳤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굿네이버스, 하트하트재단에서 활동하며 나눔과 봉사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자료 출처 →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9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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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다방, 마담과 레지 이야기

    나이 60대 후반 지난 사람 치고 옛날 다방에 잊지 못할 추억이 한 자리 없는 사람 있을까?

    당시의 다방에는 낭만도 있었고, 남자의 자존심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눈물 쏟아내는 이별의 장이기도 했었다.
    가끔 열리는 국가대표 축구경기의 단체 관람 장이기도 했으니,
    그 당시 다방은 ‘한국적 명물’로 어른들의 사랑방, 대학생의 만남방, 직장인의 휴식 공간, 동네 한량들의 아지트였으며 데이트와 맞선 공간, 가짜 시계 등이 거래되는 상거래 공간, 음악감상 공간 등 '거리의 휴게실’이자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45년 해방 무렵 서울에 60개 정도의 다방이 있었고 1950년대 말엔 1,200개로 늘었다고 하는데 1990년대 후반들어 커피전문점 ‘카페’로 대변되는 원두 커피전문점이 부흥하기 이전인 30년간 다방은 한국 문화를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본격적 음악 감상실이 생겨나기 전까지 항구도시 부산의 광복동과 남포동에도, 대구 반월당에서 동성로를 거쳐 대구역으로 이어지는 큰길, 골목길에도 우후죽순처럼 다방이 마구 생겨나고 있었다.

    작은 부스에 DJ가 들어 앉아 김추자 노래도 송창식의 고래사냥, 팝송도 틀어주면서 때로는 “양복점 이 사장님 카운터에 전화 왔습니다”는 소식도 들려주었으니.

    음악실의 역할까지 하면서 “읍내다방” "향촌다방" "심지다방'' "수다방" "왕비와 왕다방" "황금다방" “중앙다방”에서 서서히 이름이 바뀌어 “송죽다방” “준 (JUN)다방” “뉴욕다방” "몽마르뜨르" 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젊은 청춘을 위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난 다방은 카운터에 중년 여성인 ‘마담’이 앉아있고 ‘레지’(영어로 lady)라고 불리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커피를 날라주는 동안에 구슬픈 뽕짝가락이 손님들의 가슴을 저윽히 적셔주는 그런 형태였다.

    그 당시 사람치고 시골 읍내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내 중앙통에 있는 다방의 마담이나 레지와의 사연 하나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려고 주막에서 세련된 다방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방에 들어서면 낮 익은 마담과 레지가 경쟁하듯 환하게 맞아줬고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어김없이 옆자리에 살포시 앉으면서 속보이는 친절을 떨었다.

    손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정 오빠보다 더 정겹게 팔짱을 끼며 애교까지 부리는 그 분위기를 우쭐하며 즐겼으니.

    "커피 한잔 가져와" 하는 손님의 주문이 떨어지자 마자 "저도 한잔하면 안될까요?"가 곧바로 이어졌고 그 상황에서 "NO!"는 존재하지 않았다. 70년대 후반들어 야쿠르트로 바뀌기도 했지만.

    요즘이야 맹숭커피 한잔에도 돼지 국밥 한 그릇 값을 지불하지만 그 당시 커피 한잔은 실없는 농담에 가벼운 신체접촉 권한(?)까지 주었으니 참으로 옹골진 값어치였던 셈이다.

    분위기가 넘어왔다 싶으면 마담이나 레지의 "우리 쌍화차 한잔 더하면 안될까요?"라는 비싼 차 주문이 발사되고 여기에도 "NO!"는 거의 없었다. 그 시절 그렇게 분위기가 익어가는 것이 뭇 사내들의 멋이었고 낭만이기도 했지만 마담이나 레지에게는 매출을 올려 주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인사고과였으니.  

    그런 손님과 레지의 의기투합(?)은 나중에 티켓다방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인기 레지는 거의 연예인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어느 다방에 멋진 레지가 새로 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 다방에는 한동안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는데 레지가 인기를 누렸던 현상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특이한 풍경이기도 했다.

    6~70년대의 다방에서는 커피라고는 한 종류만 있었기에 손님들은 그냥 ‘커피’를 주문하면 되었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초기에는 우리와 비슷해서 모든 종류의 커피를 그냥 조(Joe)라고 불렀으며 한 잔의 커피란 뜻의 ‘한 컵의 조’(a cup of Joe)라는 숙어도 있었다.

    다방이 아닌 요즘의 커피전문점 ‘카페’에서 커피 메뉴판을 보면 커피 종류가 다양하고 하나같이 그 이름이 복잡하고 어렵다.

    에스프레소(Espresso)는 ‘진한 커피’로 아메리카노(Americano)는 ‘연한 커피’로 카페라떼(Caffe Latte)는 ‘우유 커피’로 카푸치노(Cappuccino)는 ‘거품 커피’ 등으로 불러지면 좋을 텐데.   다방에서 Café로 세월따라 이름도 변해감에, 한때 옛날 다방을 주름잡던 청춘에게 나이만큼 서글픔이 몰려온다.

    제과점의 파티시에(patissier) 수준을 알고 싶으면 빵의 기본인 단팥빵과 크림빵을 맛보면 되듯이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마셔보면 그 카페 바리스타(barista)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커피’란 잘 익은 커피 열매를 건식법(dry method)이나 습식법(wet method)으로 가공하여 파치먼트(parchment) 상태의 씨앗(seed)을 만든 뒤 탈곡(milling)하여 만들어진 생두(coffee green bean)를 볶은 원두(coffee roasted bean)를 그라인더로 갈아 물로 추출해 만든 음료이다.

    커피는 커피콩과 물의 온도 추출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며 커피의 기본은 에스프레소이다.   ‘커피콩’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Ethiopia)의 고원지대이며 세계적으로 커피가 생산되고 있는 지역은 남위(南緯) 25도부터 북위(北緯) 25도 사이로 이 지역을 ‘커피 존’ 또는 ‘커피벨트’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고지대일수록 고급품종의 커피가 생산된다. 이에 해발 600m 이하 지역에서는 인스턴트 커피나 공업용 원료로 사용되는 ‘로부스타’ 품종이, 800m 이상의 지역에서는 원두 커피용으로 사용되는 양질의 ‘아라비카’ 품종이 생산된다.

    키가 3~4m인 커피나무 한 그루는 1년간 6,000송이 이상의 새하얀 꽃을 피워낸다.   흰 꽃잎이 5장인 커피꽃은 개화기에는 커피 밭에 함박눈이 내린 듯 장관을 이룬다.   커피꽃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Always be with you)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한 잔의 커피에는 반드시 꽃향기가 있으므로 꽃향기가 풍성한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들 한다.   그러나 요즘의 다양해진 커피 맛과 향이 옛날 다방의 낭만적인 커피 맛보다 더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모닝 커피라며 족보에도 없는 계란 노른자까지 곁들였으니.

    커피를 한잔하고 마담과 레지의 환송을 받으며 다방문 나설 때의 우쭐해지던 커피 맛 외의 또 다른 그 맛을 요즘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영화도 흘러간 영화가 정겹고 가슴에 와닿듯이 커피도 옛날 다방의 커피 맛이 한결 감미롭게 느껴진다.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요즘 아이돌 노래들을, 요즘 젊은이들이 내 나이 되었을 때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는 방탄소년단 노래가 참 좋았는데” 라고 할까 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허긴 우리 부모님도 남인수 고복수 노래만이 노래였고 김추자, 송창식 노래는 소음일 뿐이었겠지만.  

    양장을 걸치고 카운터에서 무게 잡던 김 마담과 미니스커트 입고 아양 떨던 미스 박이라는 레지는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그들도 그 시절을 그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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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을 허문 편지 두통

    김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2차 세계 대전 중 영국군과 독일군이 공중전을 하다가
    영국 전투기가 독일 전투기 한 대를 격추 시켰습니다.
    그 전투기를 격추시킨 영국 공군 장교가 착륙하여 추락한 독일 전투기에 접근해보니
    전투기는 완파되었고 독일 공군 장교는 피를 흘린채 죽어 있었습니다.

    영국 장교는 야릇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죽은 독일 장교에게서 어떤 비밀스런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그의 주머니를 뒤지다가 그 독일 장교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과
    그 어머니가 보낸 편지 한 장을 발견하였습니다.
    사진 뒷면에는 ‘어머니의 사랑 속에’라고 적혀 있었고
    편지 내용은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구구절절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영국 장교는 그 유품들을 그냥 버릴 수가 없어 주머니에 간직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영국 장교는
    자신이 격추시킨 전투기에서 죽어간 독일 장교의 생각이 늘 그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는 보관하고 있던 독일장교의 유품인 그 편지와 사진을 자주 보면서
    아들을 잃은 그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몇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와 그 독일 어머니를 일치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독일장교의 어머니가 자꾸만 자신의 어머니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음 속으로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러 보았습니다.
    어머니 없는 그가 그렇게 속삭이고 나니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 멀리 독일에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 독일 어머니에게 자신의 심정을 편지로 써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 편지가 어머니의 슬픔과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는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그 일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잊어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강하게 밀려오는 상념이었습니다.

    그는 그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편지를 다시 보는 순간
    그는 편지를 써야겠다는 강한 뜻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편지 겉봉에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독일 주소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드디어 펜을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저는 영국의 공군 R 대위입니다.
    제가 지난해 공군에 복무하던 중…”

    그는 전쟁 중에 발생한 일들과 종전 후에도 계속 잊을 수 없었던 P대위(죽은 독일 장교)와 그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편지를 쓰게 된 심경을 자세하게 적은 후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습니다.

    “….제가 차라리 P 대위의 시신이나 유품을 보지 않았더라면 P 대위와 어머니에게 이토록 심한 죄책감은 느끼지 않았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이라고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저지른 불가피한 일이라고는 해도 저는 죽은 P 대위와 어머니로부터 어떤 방법으로든지 속죄를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머니, 제가 속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P대위를 대신해서 제가 어머니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제 뜻을 어떻게 받아 들이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원한을 품으실 수도 있고,
    저로 인해서 과거의 악몽이 재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시든지
    저는 일방적으로라도 어머니의 아들로 살아 가고 싶습니다.
    저의 이 진심을 받아주셔서,
    자격도 없는 이 몸이지만 P 대위 대신 아들로 맞아 주신다면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하고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

    어머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언제든지 달려가 어머님을 뵙고 싶습니다.
    늘 강건하시기를 바라오며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어머님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영국 공군 R대위가 독일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고 나서
    거의 한 달이 다 된 어느날 독일에서 편지가 한 장 날라왔습니다.
    P대위의 어머니로 부터 온 편지 였습니다.
    R대위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채 설레이는 기대를 안고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펴보았습니다.
    편지의 상단 첫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 R에게”
    긴장했던 R대위의 표정이 금세 환해지더니 어느 듯 그의 눈시울은 붉어졌습니다.
    R대위는 흥분을 진정시키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 네 편지를 받고 나는 며칠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단다.
    그것은 전사한 내 아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라기 보다는
    너의 그 아름답고 착한 마음이 안겨준 충격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총성이 멎은 후 조용해진 세상처럼
    전쟁 중에 희생된 수 많은 전사자들과 그들로 인해서 흐느끼는 가족들의 곡성도
    시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서서히 묻혀지는 지금
    네가 보내 준 한통의 편지는 마치 전사한 내 아들이
    다시 부활하여 R이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나타난 것과 똑같은 감격이었단다.

    때로는 세상이 허무하기도 했고,
    때로는 죽은 자식 생각하면서 낙심하고 절망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네 편지를 받고는,
    이 세상에는 그 허무함도 그 절망도 다 극복시키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으로 치달을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있음을 나는 깨닫게 되었단다.
    그 힘은 바로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나에게 선물한 사람이 바로 너 R대위로구나!

    지금까지 온 세상은 다 나의 고독과 슬픔과 한을 잊고 있는 듯 했는데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온 세상이 다 나의 친구가 되고, 나의 위로가 되고,
    나와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지고 언덕을 넘어가는 동반자로 느끼게 된
    이 나의 심정을 너도 이해하고 함께 기뻐해 주길 바란다.

    생각해 보면 너나 죽은 P대위나 모두 전쟁의 희생자 이면서도
    또한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던 장한 젊은이들이 아니었느냐.
    높은 파도와 거친 물결이 흉용하는 저 바다라도
    그 밑에는 물고기들의 고요한 서식처가 있듯이
    전쟁이 휘몰고온 파도에 휘말렸던 나는 이제 너를 통해서 평온과 안정을 되찾게 되었으니
    나는 물론이고 내 아들 P대위도 천국에서 얼마나 기뻐하겠느냐.

    고맙다. 한 없이 고맙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제 너와 나는 한 개인 대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영국과 독일이, 적과 적이, 원수와 원수가 서로 손을 잡고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며
    화평의 약속을 이루어가는 평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소중한 만남이 되리라고 믿는다.

    내가 허락만 한다면 금방이라도 달려 오겠다는 네 마음처럼
    나도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너에게 달려가고 싶구나.
    약 두어달이 지나면 꽃피는 봄이 오는데,
    그때쯤 시간을 내어 너를 만나볼 수 있는 기쁨을 안겨주기 바란다.

    이 편지가 너에게 닿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더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내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가 상봉하게 될 그날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린다.
    -독일에서 엄마가-“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생명을 유지시킬 모든 자양분을 자연과 만물을 통해 공급해 주십니다.
    동시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값지고 소중한 요소를 주셨는데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있는 잠재력이기도 합니다마는
    우리는 그 것을 끌어내어 표출시켜 사용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아무리 어두운 이생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즉 가난 속에서도, 질병 속에서도, 탄압과 압제 속에서도,
    심지어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우고 행복의 열매를 맺어주고 있습니다.

                   [출처] 국경을 허문 편지 두 통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신부님의 여름 휴가

     
    두명의 신부님이 바닷 가로 휴가를 갔다
    두 신부님은 성직자 신분을 완전히 감추고 휴가를  즐기기로 작정 하고 피서지에 도착하자마자 상점으로 가서 멋진 반 바지, 셔츠, 샌달, 선글라스 등을 구입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해변으로 가서 여행자 복장으로 비치 의자에 누워 바닷바람을 쏘이며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걸친 매력적 인 몸매의 아가씨가 신부님들 가까이 다가 왔다.
    그들은 팔등신 몸매의 아가씨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친구들과 함께 신부님 곁을 지나가면서 살짝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

    "안녕하세요? 신부님!"
     
    '헉! 아니 어떻게 알았지?'
     
    그들은 둘 다 놀라 어안이 벙벙해 할말을 잃었다.
    도대체 그 아가씨가 자기들이 신부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다음날 그들은 다시 상점으로 가서 무늬가 더 화려한 옷을 구입 했다

    '옷이 너무 야해서 이번엔 정말 못 알아 볼거야...'
       
    신부님들은 화려한 옷으로 갈아 입고 해변의자에 앉아 경치 를 즐기고 있었다
     
    잠시후 어제 본 그 아가씨가 어제보다 더 야한 비키니를 입고 다시 그들쪽으로 걸어왔다.  
    신부님들은 긴장이 되서 선그라스를 끼고 태연한척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가씨는
     
    "안녕하세요 두 신부님!"
     
    그리고는 돌아서서 가려는데 한 신부님이 아가씨를 불렀다

    "잠깐만요, 아가씨."
     
    아가씨는 의아한듯 돌아서며

    "네? 왜 그러시죠?"
     
    "저기 궁금한게 있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는 신부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부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옷도 최대한으로 야하고 요란하게 입었는데 그런데도 우리가 신부처럼 보이나요?
    그렇게 신부티가 많이 나요?"

    "어머, 신부님, 왜그러세요. 저 모르시겠어요?
    저 안젤라 수녀예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 / 09 / 14
    - 이게 뭔 소리여?"


    어느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
    그에 답하는
    시어머니 편지 내용

    며느리의 편지

    아버님 어머님 보세요.
    우리는
    당신들의 기쁨조가 아닙니다.

    나이들면 외로워야 맞죠.
    그리고
    그 외로움을
    견딜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요.

    자식 손자 며느리에게서
    인생의 위안이나 기쁨이나
    안전을 구하지 마시고
    외로움은 친구들이랑 달래시거나
    취미생활로 달래세요.
    죽을 땐 누구나 혼자입니다.
    그 나이엔 외로움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고
    나이들어서 젊은이 같이 살려하는게
    어리석은 겁니다.

    마음만은 청춘이고 어쩌고
    이런 어리석은
    말씀 좀 하지마세요.

    나이들어서 마음이 청춘이면
    주책바가지인 겁니다.

    늙으면
    말도 조심하고
    정신이 쇠퇴해
    판단력도 줄어드니
    남의 일에
    훈수드는 것도 삼가야하고
    세상이 바뀌니
    내 가진 지식으로
    남보다 특히
    젊은 사람보다 많이 알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편견도 버려야 합니다.

    나이든다는 건
    나이라는
    권력이 생긴다는게 아니라
    자기 삶이
    소멸해 간다는 걸 깨닫고
    혼자 조용히 물러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몇개월에 한번을 하든,
    1년에 한번을 하든
    아니면
    영영 하지 않아도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세요.
    그것 가지고
    애들 아빠 그만 괴롭히세요!

    마지막으로
    이번 설날에
    승훈이랑 병훈이 데리고
    몰디브로 여행가니까
    내려가지 못해요.  
    그렇게 아시고
    10만원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해 놓았으니 찾아 쓰세요.

    시어머니의 답장 편지 내용

    고맙다.
    며늘아...
    형편도 어려울텐데
    이렇게 큰돈 10만원씩이나 보내주고...
    이번 설에 내려오면
    선산판거 90억하고
    요 앞에 도로 난다고
    토지 보상 받은 60억
    합해서 3남매에게 나누어 줄랬더니..
    바쁘면 할수 없지 뭐
    어쩌겠냐?
    둘째하고 막내딸에게
    반반씩 갈라주고 말란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여행이나 잘 다녀와라.
    제사는 이 에미가 모시마.

    그 다음
    며느리 답장 내용입니다.

    헉,
    어머니
    친정 부모님한테
    보낸 메세지가 잘못 갔네요.
    친정에는 몰디브간다고 하고서
    연휴 내내 시댁에 있으려고 했거든요..
    헤헤...

    어머님!
    좋아하시는 육포
    잔뜩사서 내려 갈게요..
    항상
    딸처럼 아껴주셔서
    감사해요

    <추신>  
    오늘은 어머님께
    엄마라고 부르고 싶네요.
    엄마!
    사랑해요..


    시어머니가 다시 보낸 답장

    사랑하는 며늘아!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운데
    이걸 어떡하면 좋니?!
    내가 눈이 나빠서
    '만'원을 쓴다는게  
    '억'원으로 적었네....

    선산판거
    60만원
    보상받은 거
    30만원해서
    제사 모시려고
    장 봐놨다.
    얼른 와서
    제수 만들어 다오!
    사랑하는 내 딸아!
    난 너 뿐이다.

    새 버전 종결편.


    시어머니의 똑부러진
    마지막 답장~ㅎㅎ

     
    니가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구나.

    우리는
    너희를 기쁨조로 생각한 적 없다.  
    가끔 너희가 마지못해
    인상 찌푸리고
    집에 왔다 가면
    며칠씩
    기분이 상하고
    짜증이 난단다.

    이제
    올까봐
    금요일부터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답답한
    네 머리를
    아이가 닮을 까 두렵구나..
    며늘아..

    인생은
    60부터란 말 모르느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라..
    우리는
    외로울 틈이 없다.

    조선팔도
    맛집 찾아다니기 바쁘고
    세계 유명 명승지
    다니느라
    너희들
    생각할 틈도
    전화받을 틈이 없단다.
    시에미 전화
    기다리지 말거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잊지 말거라.
    너희도 가정이 있으니
    이제는
    우리한테
    행여나 기댈 생각은
    아예 말아라.

    애 맡길 생각은
    아예 생각지도 말고..
    니들 자식이니
    니들이 키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살던 집과 재산은
    우리가 쓰고 남으면
    누구든  
    우리 부부에게
    즐거움을 주는 자가 있다면
    넘겨줄 것이고  
    아니면
    사회환원 하기로 했다.

    죽을 때
    혼자인 것
    모르는 사람도 있다드냐..
    너나
    잘 새겨 명심하고
    늙어서
    니 자식한테
    부담주고 주책부리지
    말거라..

    그리고
    참 너희 결혼식때
    보태준 일억은
    그냥 준 것이 아니고
    차용해 준 것이니
    조만간 상환계획서 작성
    금년말까지
    은행금리 적용
    상환하기 바란다.

    분명히 말하건데
    앞으론
    명절이니 제사니 핑계로
    우리집에 와서
    행여 유산이나 챙길려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려는
    환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너희들 결혼때부터
    이제 자식이 아니고
    사돈 정도 밖에 안된다고
    마음먹고 실천하고 있단다.
    이번 설은 남미여행 가기로 했으니
    그리알고...
    참 네 통장에
    5만원 송금했으니 찾아서
    설이나 쇠거라.

    며늘아!
    너 역시
    지금 이 순간도
    늙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세월은 잠시다.
    --------------------
    참으로
    인생살이가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는
    부모들이
    한푼이라도 모아
    자식 챙겨주려 하고..
    자식은
    부모가
    한푼없이 병석에 누워도
    최선을 다해
    부모를 모셔 왔는데..

    어쩌다
    이 꼴이 났는 지...

    2020. 09.14
    얼씨구 절씨구
    4박자, 봉숭아연정, 무조껀의
    박현진 작곡가가 보내주셨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은 구약시대의 찬송가이자 기도서입니다.
    종교개혁자 죤 칼빈은 시편을 일컬어 <인간 영혼의 해부학>이라 하였습니다.
    150편의 "시"들 속에 인간사의 슬픔과 기쁨, 탄식과 감격, 감사와 찬양이 골고루 녹아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예수께서 가장 애송하셨던 책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읊조리셨던 구절들도 모두가 시편의 구절들이었습니다.

    시편 중에 대표적인 시가 23편입니다.
    이 시는 다윗 왕이 재야 시절 사울 왕에게 쫓기며 각박한 세월을 보내던 시절에 지은 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시작되는 시편 23편은 문학적으로도 완벽한 내용이려니와 내용에 담긴 영적 깊이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인민군에 쫓겨 정부가 진해로 옮겨 갔습니다.
    맥아더사령부에서는 한국 정부를 일본으로 옮기라고 권유하였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내가 진해 바다에 빠져 죽을지언정 이 땅을 떠나지 않겠노라"하며 진해를 지켰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민군들이 쏘는 포 소리를 지척에서 들으며 정부를 이끌었습니다.

    정부가 진해로 옮겨간 후 첫 예배를 드리던 때였습니다.
    연세대 교수였던 나운영 교수가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나운영 교수는 피난 정부에서 드리는 첫 예배에 찬양을 무슨 곡으로 선택할까를 고심하다 시편 23편을 친히 작곡하여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밤을 새우고 작곡을 하여 첫 예배 찬양으로 불렀습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드리기 전에 나운영 지휘자는 신도들 앞에 나가 시편 23편을 작곡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성가대를 지휘하였습니다.
    찬양을 들으며 대통령 부부도 울고, 성가대 대원들도 울고, 예배에 참여하였던 신도들도 모두가 울었습니다.
    그야말로 눈물의 예배였습니다.
    그리고 찬양대의 성가가 끝난 후 여호와께서 이 나라를 공산화의 위협에서 구하여 주실 것을 울며 기도 드렸습니다.

    그런 눈물의 기도가 응답되어 오늘의 한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선배들의 눈물의 기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시편 23편을 읊조리며 이 겨레의 목자 되신 예수께서 이 나라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되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ㅡ옮긴 글ㅡ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프레임의 법칙

    미국 알래스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젊은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출혈이 심해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아이는 목숨을 건졌다.
    홀로 남은 남자는 아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이를 돌봐 줄 유모를 구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남자는 유모 대신 훈련이 잘된 듬직한 개를 구해 아이를 돌보게 했다.

    개는 생각보다 똑똑했다.
    남자는 안심하고 아이를 둔 채로 외출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남자는 여느 때처럼 개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집을 비우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의 사정이 생겨 그날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서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개의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남자는 재빨리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방바닥과 벽이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남자는 극도로 흥분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개가 아들을 물어 죽였구나'
    이렇게 생각한 남자는 즉시 총을 꺼내 개를 쏴 죽였다.
    바로 그 순간, 방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남자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 구석에 쪼그려 앉은 아이가 울먹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남자는 밖으로 뛰쳐나와 죽은 개를 살펴보았다
    개의 다리에  맹수에게 물린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곧이어 남자는 뒤뜰에서 개한테 물려 죽은 늑대의 시체를 발견했다.

    '오, 맙소사!'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늑대와 혈투를 벌인, 충직한 개를 자기 손으로 쏴 죽이고 만 것이다.

    프레임의 법칙이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갖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입니다.

    한 선생님이 매일 지각을 하는 학생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지각을 하는 것을 보고 그 학생이 괘씸해서 회초리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회초리를 든 다음 날 아침, 그 선생님은 차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늘 지각하는 그 학생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앉은 휠체어를 밀고 요양시설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선생님은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지각은 곧 불성실이라는 생각에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회초리를 든 자신이 부끄러웠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고는 아버지와 단 둘 뿐이라서 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하는 입장에 있는 지각한 학생,
    게다가 요양시설은 문을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학생은 요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서 학교에 왔을 텐데,
    그래서 매일 지각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 날 역시 지각을 한 학생은
    선생님 앞으로 와서 말없이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회초리를 학생의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라는 말과 함께 그 학생을 따뜻하게 끌어 안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울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가 힘들고 외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울 때 가장 필요한 건 상대방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에게 뭔가 틀림없이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야.'
    '저 사람의 마음은 지금 얼마나 힘들까?'

    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채 섣불리 판단하고 결정해서 잘못된 행동을 하지 말고,
    상대방이 무엇을 왜 그랬는지,

    나의 판단과 결정에 잘못은 없었는지,
    잘못된 판단을 당연한 것처럼 결정하는 비합리적인 판단을
    냉정하게 역지사지로 되돌아보고,
    뒤늦게라도 깨닫고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일 할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남에 감사하고!

    감사가 넘치다 보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행복해 집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화이팅!

    * 프레임 법칙(Frame Law)


    감명 깊은 사례 이야기 4가지를 통해 쉽게 배워 본다.

    [사례 4-1]
    공자가 제자들과 함게 진나라로 가던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적이 있었다.

    안회가 가까스로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다.

    공자는 밥이 다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부엌을 들여다 보다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먹고 있는 안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공자는 깜짝 놀랐다. 안회는 자신의 제자 가운데서 도덕수양이 가장 잘 되어 공자가 아끼는 제자였다. 공자는 이런 안회의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하고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안회가 밥이 다 되었다고 하자 공자가 말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 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다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
    밥을 몰래 먹은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 말을 들은 안회는 곧장 무릎을 꿇고 말했다.
    "스승님!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여는 순간 천장에서 흙덩어리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먹었습니다."

    공자는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다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그리고 또 나는 나의 머리도 믿었다. 하지만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너희는 보고 들은 것이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명심하거라."

    성인 공자도 이렇게 오해를 했는데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때문에 귀로 직접 듣거나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해도 항상 심사숙고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그 사건 자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섣불리 결론을 내려 평생 후회할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사례 4-2]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어느 날 그의 집 마당을 쓰는 하인이 세 시간 넘게 지각을 했다. 화가 많이 난 타고르가 해고해야 겠다고 작정했다.

    3시간 후 허겁지겁 달려 온 하인에게 빗자루를 던지며 말했다.
    "당신은 해고야! 빨리 이 집에서 나가!"

    그러자 하인은 빗자루를 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젯 밤에 제 딸 아이가 죽어서 아침에 묻고 오는 길입니다."

    타고르는 그 말을 듣고 인간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배웠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사람에 대해 화가 나고 미움이 생길 때는 잠시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례 4-3]
    시장통을 거쳐가는 8번 버스엔 늘 승객들이 만원이다. 보따리마다 주고받은 정을 받아 온다고들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를 매달고 있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그치겠지' 했던 아이의 울음소리는 세 정거장을 거쳐 올 때까지도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슬슬 화가 난 승객들은 여기저기서
    “아줌마 애기 좀 잘 달래 봐요..”
    “버스 전세 냈나..” 
    “이봐요. 아줌마 내려서 택시 타고 가요!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
    “아~짜증 나... 정말“ 

    아기를 업은 아줌마에 대한 원성으로 화난 표정들이 버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을 그 때 차가 멈추어 선다.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버스기사만 
    바라보고 있는데, 버스기사는 운전석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서는 무언가를 사들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아이 엄마에게로 다가간 버스기사는 긴 막대사탕의 비닐을 벗겨 아기 입에 물려주니 그제사야 아기는 울음을 그쳤다. 

    다시 버스는 출발을 했고, 버스 안의 승객들은 그제야 언제 그랬냐는듯이 웃음이 번져나왔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 아이엄마는 버스기사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손등에 다른 한 손'을 세워보였다.

    “고맙습니다..!“
    라는 수어(수화)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아이 엄마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아이 엄마가 버스에서 내린 뒤 버스기사는 아주머니와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랑의 불빛을 멀리 비추어 주고 있었고, 누구하나 '빨리 갑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례 4-4]

    한 남자가 시골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계산하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깜박 잊고 돈을 놔두고 나왔네요.
    한 시간 안에 돈을 가져와 지불해도 될까요?"

    늙은 식당 주인은 펄쩍 뛰었다.
    돈을 당장 지불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외쳤다.
    계속되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식당 웨이터는 주인에게 말했다.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지갑을 깜박하고
    외출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제가 대신 내 드리겠습니다.
    이 분은 정직해 보입니다."

    얼마 후 남자가 식당에
    다시 돌아와 식당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식당을 판다면 얼마에 팔겠소?"

    주인은 욕심껏 말했다.
    "3만 프랑이오"

    그는 그 자리에서 
    3만 프랑을 주며 식당을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그는 식당 문서를 받아서 웨이터에게 주면서
    "당신이 나를 믿어준 건
    3만 프랑보다 더 값진 일입니다.
    오늘부터 이 식당 주인은
    이 웨이터 분입니다"

    그는 평복 차림으로 나왔던 
    나폴레옹이었다.

    프레임 법칙이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 속에서 현상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서로 간에 불협화음이 일어나곤 하는 것은 자기의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전에 모든 걸 자기 입장에서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되어 분쟁이 생기게 된다.
    선입견(先入見)은 자아의 성찰(省察)없는 자만(自慢)이나 오만(傲慢)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모든 오해와 분쟁의 불씨라 아니할 수 없다.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우화 한 가지.

    두 사람이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그중 한 사람인 세실이 물었다.
    “이봐, 모리스,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모리스가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랍비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
    세실이 먼저 랍비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랍비는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형제여,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기도 중에 담배를 피우다니, 그럴 수는 절대로 없다네.”
    세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리스가 말했다.

    “네가 질문을 잘못해서 그런 거야. 내가 다시 물어볼게.”
    이번에는 모리스가 랍비에게 물었다.
    “선생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랍비는 환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형제여,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얼마든지 기도는 드릴 수 있다네.”

    동일한 현상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생각의 틀을 바꾸면 불행도 행복으로 느껴진다.
    이것이 프레임의 법칙이다.
    코넬 대학 심리학 교실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것은 1992년에 있었던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표정을 분석한 것이었다.

    기쁜 표정을 짓는 선수의 순서는 금, 은, 동이 아니라 금, 동, 은이었다.
    분석 팀에서는 그 이유를 프레임 이론으로 풀이하고 있다.
    물론 금메달을 딴 선수는 기쁜 표정이다.
    그러나 은메달을 딴 선수는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서 금메달의 시각으로 자신의 은메달을 생각한 반면, 동메달을 딴 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의 관점에서 자신의 동메달을 보게 된다.
    그래서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환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다.

    쓰레기 청소를 하면서도 늘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 청소부가 있었다.
    무엇이 좋아서 저리도 싱글거리는 것인지 궁금해 하던 청년이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청소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는 거라네. 그러니 즐겁지 아니한가!”

    -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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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구 명자 이야기

    시골 우리 집에 명자가 놀러왔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자그마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하얀 피부의 예쁘장한 여중생이었다.
    무슨 계기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명자가 우리언니 앞에서 초등학교 교과서를 주욱주욱 외워댔다.
    명자가 돌아간 후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언니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명자는 책을 줄줄 외울 정도로 공부하는데, 나는 노력하지 않는다는 꾸중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명자는 책을 외우던 아이로 통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여전히 명자는 공부를 잘했고,
    그 어렵다는 S대 문리대 영문학과에 합격했다.

    결혼후 우연히 서울에서 명자와 한 아파트 단지에 살게됐다.
    명자는 두 남매와 남편,
    그리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꼿꼿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홀 시아버지를 모시느라 명자의 얼굴엔 항상 엷은 긴장감이 드리워져 있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날 명자집에 갔더니
    당시 고교 1학년생인 아들이 엄마 친구가 왔다고 기타를 들고와 연주를 해줬다.
    기타에 푹  빠져있었다.
    명자도 걱정스레 말했다.
    기타만 끼고 산다고.
    그래도 명자 아들이어서 " 1등을 하느냐"고 물었다.
    기타가 아니었으면 '물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할 무렵이 됐다.
    기타를 끼고 살던 그 아들이 어느 대학에 갔을지 몹시 궁금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다.
    그 아들 진학 문제로 꼬장꼬장하신 할아버지께서 한달여 동안 식음을 전폐 하다시피하며 S대 법대를 고집하셨다고 했다.
    아들의 고교에서도 마지막까지 법대를 종용했다고 했다.

    판검사가 되는게 흔히 '인생의 가장 큰성공'이라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아들 S대에 지원하면서도 법대를 외면하고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다.

    그때 나는 내심 기타 때문에 공부가 좀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했었다.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마지막으로
    아들 손을 들어준 것은 엄마인 명자였다.
    아들은 대학 시절부터 작곡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행복해했다.
    그리고는 중요한 고비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신 덕분"이라며 끔찍이 고마워하곤 했다.

    그 아들이 바로 방탄소년단을 만들어낸 방시혁 대표이다.
    내 친구 명자가 바로 방 대표의 어머니다.

    마침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날릴때,
    방시혁 대표가 언론의 각광을 받으며 대통령상을 받을 무렵,
    명자와 나는 남인도를 여행하고 있었다.

    매일 방탄소년단과 방 대표에 대한 낭보가 인터넷을 타고 여행 중인 우리에게 전해졌다.

    명자 곁에 있던 나도 참으로 기뻤다.
    방 대표가 자랑스럽고, 고맙기까지 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그 감격을 함께 여행하고 있는 모두와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명자는 끝까지 조용히 그리고 겸손히 그 감동을 소화해냈다.
    역시 명자다웠다.

    아무나 그런 아들을 둔 영광을 누리는게 아닐 것이다.
    입시철이 무르익어 여기저기서 환성과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자식의 진로를 놓고 고액의 상담도 한다고 한다.

    입시가 끝날때까지 내 자식이,
    내가 어느길을 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진통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답은 확실하다.
    진학, 진로 선택에 있어 제 1순위는 본인이 가장 즐겁게 공부할수 있는 학과다.

    그 확실한 성과가 바로 오늘의 방시혁을 만들어낸
    내친구 명자에게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ㅡ 옮긴 글 ㅡ

    ※ 위의 글을 읽고 2020.9.7(월) 조선일보
    A14면에 BTS 만든 방시혁씨가 주식 부호 5위가 되고 공모가 13만 5000원으로 결정났다는 기사를 읽고 다시한번 감탄사를 연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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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흉흉하니 유령들도 횡횡한다.
    도대체 이넘의 유령들 어디서 나타나나?
    서재휘일병이 병가를 나가긴 했는데 부대에 의료기록이 없다.
    유령이 나타나 가져간거다.
    서일병이 귀대를 안해서 전화했더니 조금후 어떤 대위가 와서 휴가처리해주라 했다.
    이 대위가 누군지 모른다.
    이 넘도 유령이다.
    서일병 평창올림픽 통역요원으로 차출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한 넘은 없단다.
    유령이 전화한거다.
    의정부 미2사단은 힘드니 서울 용산 미군기지로 빼달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한 넘이 없단다.
    이 전화도 유령이다.
    부대 병가 휴가자 기록이 다 있는데 서재휘일병의 휴가기록만 없다.
    유령이 와서 가져간거다.
    서일병 부대 미복귀일 당직병이었던 현동환씨가 동부지검 가서 당일 미복귀 상황을 자세히 진술했는데 그 진술서만 없어졌다.
    그건 검사유령이다.
    그래서 그넘의  유령들을 잡아야 한다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청원했다.
    한동훈검사를 동부지검장으로 보내 수사해달라는 내용이다.
    그 청원도 사라졌다.
    이건 청와대 유령들 소행이다.
    검찰개혁해야 한다고 난리부르스다.
    이 유령들을 잡으려 하는 검찰이 검찰개혁의 대상이냐?
    이넘의 유령은 묵인하고 방조하는 검찰이 검찰개혁의 대상이냐?
    어느 쪽 검찰을 개혁해야 하나?
    내 아들 수사하는 걸 방해하고 막는 작태! 월권으로 수사에 개입하는 그런 것들이 검찰개혁 대상 아닌가!
    검찰 의견은 묵살하며 인사권 마구 휘두르고, 맘대로 직제개편한 작태를 개혁해야 검찰개혁 아닌가!
    정권의 애완견이 되어 알아서 발발 기는 검찰,
    참고인 진술을 고의로 묵살하고 없애버리는 검찰,
    고발된 수사를 질질 끌며 회피하는 검찰,
    부패 정권을 수사하는데 훼방 놓는 검찰...

    이성윤, 정진웅, 심재철, 이정현, 신성식, 동부지검장 김관정 등등 이번에 승진한 넘들 그넘들이 다 검찰개혁 대상이다.
    이제 진짜 검찰개혁을 해야한다.
    목요일 아침에...
    方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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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예방 뇌훈련 테스트 문제
    다음은 한국 Kw.Rhee  치매예방 과학연구소가 개발한 뇌 훈련 테스트 속담 및 문장을 완성하는 문제입니다.
    5 개를 맞추면 100세. 10개는120세,15개를 모두 맞추면150세가 확실히 보장된다 합니다.

    1. 하ㄴㄹ  ㅂㅁ ㅇㅇ 안ㄷ
    2. ㅊㄹ ㄱㄷ  한ㄱㅇ ㅂㅌ
    3. ㅁㅇㄹ 나ㅁㄴ ㅊㄷ 보ㅈㄷ ㅁ ㄹ
    4. ㅂ문ㅇㅂ여ㅇㄱ
    5. ㄷ한ㅁㄱㅇ ㅁ 주ㄱㅎㄱ ㅇㄷ
    6. 홍ㄷㅇ  ㅇㅈㅁㄹ ㅇㅃ 가  ㅇㄷ
    7. ㄱ든 ㅌㅇ  ㅁ ㄴㅈㄹ
    8. ㅈㅅㅇ도 ㅎㅅㅂㅅ
    9. ㅌㄱㄱㄴ 우ㄹㄷㅇ ㅍ 상ㅇㄷ
    10. ㄱ강ㅅㄷ ㅅㅎㄱ
    11. ㅁㄹㄱㄹ면 ㅎ ㄲㄱㄹ
    12. ㅈㅅㅁㅇ 집 ㅂㄹ 잘 ㄴㅇㄷ
    13. ㄴㅁ 신ㄷ ㅉㅇ ㅇㄷ
    14. ㅇㄴ자 ㅇㄱ 침ㅂㅈ  ㅁㅎㄷ
    15. ㅇㄹ  살ㄹㅁ ㄱㅇㄹ !

    1.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2.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3.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4. 백문이 불여일견.

    5.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6.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7. 공든 탑이 무너지랴.

    8. 정신일도 하사불사성.

    9.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10. 금강산도 식후경.

    11.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12. 자식 많은 집 바람 잘 날 없다.

    13. 나막신도 짝이 있다.

    14.  웃는 자에게 침 뱉지 못한다.

    15. 오래 살려면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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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의 반란 / 저자 신우섭

    약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도리어 인간을 상품화시켜 버렸어요. 약이 없으면 당장 죽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사의 반란』 저자 신우섭 원장, 병원인데 약도 주사도 처방하지 않는다.
    대신 좋은' 소금을 충분히 먹으라 라고 말한다.
    지난달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책
     『의사의 반란』 의 저자인 경기도 의정부시 오뚝이 의원 신우섭 원장을 만나 건강해지려면 병원과 약을 버려야 하는 이유를 들어 보았다.
    신 원장은 환자들에게 약이 아닌 올바를 식습관을 통해 스스로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사를 자처한다. 치유과정은 결국 환자인 자신이 자기 몸을 돌보고 아끼며 사랑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병원에 오면 약을 모두 버리고 간다.

    신 원장의 진료실 책상 위에는 처방약 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모두 환자들이 버리고 간 약이다. "건강하려면 병원과 약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신 원장의 치유철학의 핵심이다.


    "약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도리어 인간을 상품화시켜 버렸어요. 약이 없으면 당장 죽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몸이 아픈 것은 우리 몸을 치유하는 과정인데 약을 주니까 당장 통증은 없어지겠지만 심각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그 부작용들 때문에 우리 몸은 더 망가지게 돼요"

    신 원장은 현대의학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이 약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원장의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과감하게 약을 끊고 채식 위주의 식사와 충분한 소금을 먹을 것을 처방한다. 처음에는 환자들도 불안해 하지만 실천만 한다면 자신의 몸이 확실하게 좋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약 처방하는 의사 아닌 건강 컨설팅 역할을.

    "국민이 약을 쉽게 먹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의사는 환자들에게 정해진 순서인 것처럼 약을 처방하고 정부도 의료보험이라는 제도로 약을 먹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죠. 의사가 배운 지식의 많은 부분이 제약회사가 만든 지식이며, 의사가 제약회사의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의사의 반란」이란 약을 처방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에게 건강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신 원장의 환자 중에서는 의사도 있다고 했다.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암도 걸리고 아토피도 걸린다. 그러나 이런 병이 약을 먹어서 나을 것이라고 의사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수술도 않고 약도 먹지 않는 의사가 많이 늘어난다고 했다. 아직은 적은 인원이긴 하지만 신 원장과 뜻을 같이 하는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몸속에 염분을 보충하라.

    "몸이 아프다는 것은 나를 살리기 위해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고치는 것이 제대로 된 치료이지 약으로 통증만 없애는 것은 절대 치료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평생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심장인데 그 심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음식 섭취가 잘 안 됐을 때, 영양공급에 문제가 있을 때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가 바로 염증이에요. 몸에 염증이 생기면 혈액순환이 잘 되게 영양분을 보내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 영양분이 바로 소금 속에 들어 있어요".

    신 원장은 아토피를 치료한다는 스테로이드제나 면역억제제 등 약으로는 우리 몸의 염증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약이 이러한 자가면역질환을 낫게 해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아토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소금을 먹이면 금방 좋아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또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의 원인이 몸속 염분 부족입니다. 먹던 처방약을 끊고 음식을 조절하고 소금을 먹으면서 혈액순환을 잘 시키면 심각한 당뇨병 환자도 3개월 만에 좋아집니다. 약을 끊고 식생활을 바꾸면 스스로 몸이 변화되는 것을 확실하게 느껴요. 심각했던 당뇨수치도 3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혈액검사를 통해 알 수 있어요".
     

    소금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절실하다.

    신 원장은 의사 모두가 소금 섭취를 줄이라고 말하는데 반대로 소금을 충분히 먹으라는 의사다. 저서를 보면 하루 종일 소금을 입에 물고 있으라고 권한다. 신 원장은 환자들에게 죽염을 권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책상 위에도 죽염을 놓고 수시로 먹고 있다.

    "소금은 나쁜 것이라는 잘못된 홍보가 나오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길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의사들도 언론에서도 소금이 나쁘다고 하는데 반대로 저는 환자들에게 소금을 충분히 먹으라고 하면 처음에는 잘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러나 오랫동안 먹었던 약을 끊고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 제 판단이 옳았다고 확신합니다."
     

    오뚝이 의원에는 입원실이 없다.

    대신 특별하게도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 진료실 바로 옆에 있다. 환자들에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이면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신 원장은 약 처방 대신 환자에게 두 달 동안 15번 병원에 오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 기간 동안 환자의 상태에 따른 식생활 등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교육을 진행하고 매번 혈액검사를 통해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한다.
     

    입원실 대신 식당을 직접 운영하는 병원.

    "입원실을 운영하면 환자들이 훨씬 더 빨리 회복됩니다. 그러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건강이 다시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건강은 결국 환자 자신이 자기 몸을 돌보는 과정인데 자신의 몸의 주인이 되어서 스스로 실천해야 합니다.
    의사는 그 과정에서 좋은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법을 교육하는 것이 건강을 찾게 하는 더 빠른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병원이 진료실, 검사실 옆에 입원실이 있지만 오뚝이 의원은 진료실, 검사실 옆에 식당이 있다. 식당에는 좋은 소금으로 짭짤하게 간이 잘 된 채식 위주의 음식이 나온다. 채식도 양식처럼 날 채소 위에 소스를 뿌려 먹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먹던 방식인 데쳐서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무쳐 먹는 나물이다. 채식은 나물로 먹어야 소화, 흡수도 잘되고 냉기도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식당 탁자 위에는 색다른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에는 "음식이 너무 짜다고요? 소금에는 좋은 소금과 나쁜 소금이 있습니다. 그동안 꽃소금이나 정제염처럼 몸에 해로운 소금을 쓰셨다면 당장 바꾸셔야 합니다.... 몸에 해로운 소금을 쓰셨다면 당장 바꾸셔야 합니다. 몸에 좋은 소금으로 지은 현미밥과 반찬들이 내 몸을 건강하게 바꿔 줄 것입니다. 이제 밥이 보약이 됩니다".라고 적혀있다.

    신 원장은 여러 가지 소금 중에서 요리에 따라 죽염과 천일염을 골라 쓴다. 소금이 있어야 요리가 제 맛을 내는데 소금을 넣지 않고 단맛 같은 다른 것으로 맛을 내려 하니까 음식 맛이 더 나빠진다고, 올바른 식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보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식당 운영의 목표다.

     
    암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암 치료로 죽는다.

    신 원장은 "암은 병이 아니다" 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 혈액순환 기능이 떨어져 발생한 암은 자연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 암이 생겼다고 수술로 잘라내고 항암제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환자는 도리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사가 암환자에게 당신은 앞으로 몇 개월밖에 못 산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 통계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대부분의 암환자는 죽을 때는 먹지 못해 굶어서 말라서 죽어요. 그러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기적과 같이 암을 이기고 건강을 회복해서 사는 경우가 많아요. 자연 속으로 들어가 기력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신 원장은 사람이 늙어서 주변을 정리하고 곡기를 끊고 자연사하는 과정이 있는데 현대의학은 80~90된 노인도 수술을 하고 있는 현실을 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병원이 영리를 위해 개입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암이 사망원인의 1위가 된 지는 오래지만 자연사는 통계 중 사망원인에 포함되지도 않고 있어요. 자연사했던 사람도 CT나 MRI를 찍으면 몸속에서 암이 발견되는데 자연사하는 것이나 암으로 죽는 것이나 과정은 똑같아요.
    그래서 암은 병이 아니에요. 암 환자는 음식을 먹어서 소화를 시키고 힘을 내도록 하면 됩니다.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은 살 수 있지만 항암제나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견디지 못하고 더 빨리 죽게 돼요.
    체력이 고갈되어 암까지 생기는 사람에게 항암제를 투여하면 암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암 치료제가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이 암이 발견되면 더 빨리 죽게 되는 것도 항암제라는 부작용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말기 암환자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근거 중심의 의학만이 해답이 될 수 없어요. 과학적으로 검증됐다는 자료만을 중심으로 한 의학은 제약회사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에게 불필요한 약과 검사로 돈을 버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이제 건강에 대해 어릴 때부터 미리 교육을 해야 하고 현대의학에서도 영양학을 꼭 알아야 합니다".

    신 원장은 감기에 걸리면 죽염부터 먹는다.
    죽염은 2008년 단식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사람들이 단식을 하면 살이 빠지고 당뇨도 나아지는 데 극도로 기력이 없어졌다. 그러나 단식을 하면서 죽염을 조금씩 함께 먹으면 기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야채를 먹을 때도 소금과 함께 먹어야 소화가 잘되며, 날로 먹는 것보다 수천 년 내려오는 옛날 선조들의 방식에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병이라는 것은 나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몸이 보내는 신호이며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더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이 걸린 것은 도리어 축복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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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젤란 펭귄 "딘딤"의 이야기
    - 8,000km, 사랑의 힘

    브라질의 리우네자이루 남동해안 프로베타의 어촌 마을에 살고 있는 70 대 할아버지 주앙 페레이라 드 수자(Joao Pereira de Souza; 1945~ ) 는 벽돌공으로서 일을 하다 은퇴를 하였습니다.

    2011년 어느 날 그가 해변을 산책하던 중 해변에서 기름에 뒤범벅인 채 굶어서 죽어가는 자그마한 펭귄(Penguin)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수자 할아버지는 펭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기름 때를 깨끗이 씻기고 멸치와 정어리를 먹이며 정성스럽게 돌봐 주었습니다.
    그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펭귄의 몸은 이전처럼 회복하였고, 아주 건강하게 돌아 다녔습니다.

    수자 할아버지는 이 펭귄을 바다로 돌려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몇 번이고 바다로 돌려 보냈지만, 펭귄은 돌아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아주 멀리 배를 타고 나가서 펭귄을 놓아 주었지만, 배보다 먼저 할아버지의 집에 펭귄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펭귄에게 ‘딘딤(Dindim)’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11개월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털갈이를 마친 펭귄은 수자 할아버지를 남겨두고 펭귄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사라졌습니다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놀랍게도 펜귄은 다시 수자 할아버지를 찾아와 꽁지를 흔들며 할아버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펭귄이 칠레 최 남단 파타고니아(Patagonia)에서 무려 8000㎞를 헤엄쳐 수자 할아버지에게 돌아 온 것 입니다.
    매년 6월에 찾아와, 약 8개월을 수자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2월이면 짝 짓기를 위해 그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 펭귄은 마젤란 펭귄으로 원래 펭귄은 집단으로 모여 생활을 하는 동물로서, 한 마리가 따로 떨어져서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이 펭귄의 독특한 회귀 방식을 브라질의 리우데자이루의 대학에서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수자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8개월 동안에 팽귄 딘딤은 함께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함께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펭귄은 수자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여서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딘딤이 내 목까지 올라와 소리를 내며 반갑게 맞아준다” 고 했습니다.

    행여 다른 동물이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오면 날개 짓을 하며 쫓아내 버리는 질투 어린 행동까지 한다고 합니다.

    딘딤은 이제 1,300명 정도가 사는 마을의 마스코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모 방송사에서 두 번이나 딘딤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해서, 이제 SNS를 타고 세계적인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8,000km 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닙니다.
    서울과 부산을 16번을 오가야 하는 거리이기에, 이 자그마한 펭귄에게는 너무나도 까마득한 거리입니다.

    사랑, 특히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사랑의 힘은 머리로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달리, 펭귄에게 수 많은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오게 하는 힘을 제공해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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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온 글)
    아래 글은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님이 밤사이 작성하셨다 방금 전 제게 보내주신 글입니다. 
    놀랍게도 제 아침방송 간결한 출근길에서의 제 분석과 거의 일치하네요.
    지금 의료파업은 단순히 이해의 충돌이나 혹은 문제 해법의 차이 정도로 촉발된 일이 아닙니다.
    이 좌익정권은 그것보다 더 큰 스케일의 장기적인 플랜을 이 이면에 숨겨놓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효과적으로 잘 설명하는 이 글을 여러분 모두에게 권합니다.


    먼저 이번 공공의대문제로 용기를 내어 파업을 하고, 수업을 거부한 의대생과, 전공의, 전임의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의대 설립은 단순히 의사의 증원과 공공의료의 확대를 위한 정책 추진이 아닙니다.
    의사의 증원, 공공의료 확대는 국민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위장막에 불과합니다.
    물론 의대생, 전공의 선생님들께서 정치적인 논리를 떠나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을 불사하고 계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정책 추진은 정치 논리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미천한 솜씨로 글을 적습니다.

    공공의대 입학은 기존에 2018년도 안에 의하면, “시, 도지사 추천으로 2-3배수 선발한다.” 에서 국민들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자 “전문가, 시민단체 추천한다.”로 바꾸었다가 해결되지 않자 “예시를 든 것이다.”로 말 바꾸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여러 단체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철회하기 어렵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왜 정부는 10년 이상 걸리는 의사 증원에 관련된 문제에 이토록 강경한가?
    이는 정책 추진의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공공의대 설립은 대한민국 좌파가 과거 1960년대 혹은 이전부터 차근 차근 준비해 온 대한민국 공산화 과정의 일환이자 마지막입니다.

    1960년대 교원 노조운동의 맥을 이은, 현재 민주노총 산하 교원 노동조합, 그리고 80년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법부 내의 우리법 연구회 등을 통하여 사법부에 좌파 세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설립하였고, 이어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였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이제 어느 정도 정착되어, 실력 중심의 공정한 사법시험이 아닌 함량 미달의 좌파 법조인 양성이 가능해졌습니다.

    법학전문 대학원의 설립취지는 다음과 같지만, 현재 그 설립취지가 달성되지 못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제도를 도입하는 목적은 우선,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는데 있다.]

    의학전문 대학원은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와는 다르게 실패하여 다시 의대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의학전문 대학원은 법학전문 대학원과 다르게 실패하여 의과대학으로 회귀하게 되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큰 원인은 의사의 양성은 법조인 양성과정과 크게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법학대학원의 교수는 법조인이 아니어도 가능하지만, 의사의 양성은 시스템상 의사가 아니면 양성할 수 없기 때문이고, 법학전문대학원에서는 법조인이 아니어도 교수가 되어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습니다. 즉, 사법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조국이 판사, 검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의사가 아닌 사람이 의사를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의사 자격이 없어서 실습을 시켜줄 수 없는 사람이 의사를 만들어낼 수 없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래서 의과대학으로 회귀하게 된 것이지요.

    이와 같은 흐름에서 인식하기에, 이번 공공의대 설립 정책은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이고, 공공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공공의대라는 것을 설립하여, 좌파 세력을 의사로 만들고, 그들을 서울대학교병원, 국립의료원 등에 배치하여 좌파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의사를 양성 가능하게 하려는 정책입니다.

    왜 그렇다면 좌파의사가 필요한가?
    의사집단은 우파적인 생각 즉,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입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단체이자 현재 대한민국에서 남은 마지막 우파 비율이 높은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타락하고 좌경화되면 항상 앞장서서 저지하는 세력은 지식인 집단(교사, 교수, 법조인, 의료인 등)입니다.
    올바른 지식인 집단은 국민들을 계몽하고 이끌며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단체이며, 좌파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이런 지식인 집단을 좌경화 시키는 것은 좌파들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좌파 100년 집권의 기틀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인 의료계의 좌경화는 그들에게 필수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이 혼란스러운 코로나 정국에 정책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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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규 작가의 오늘의 추천 글

     도시락 두 개


    “엄마...
    나 오늘부터 도시락 두 개 싸줘...
    한 개로 부족하단 말이야“

    ​아이가 요즘 부쩍 크려고 그러는지 밥 타령을 하네요.
    도시락도 하나 따로 준비해 놓고 반찬도 이것저것 담아 놓고선 바라보고 섰습니다

    도시락 하나 더 싸는 게 이리도 힘들까 싶었어요.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며 늦게 오던 아들이 오늘은 시험을 치고 일찍 집으로 왔습니다
    도시락 가방을 현관에 놓고선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도시락 하나는 그대로 가져왔네요

    오늘 배가 덜 고팠나 싶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지석아, 왜 그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고개를 들어 제 가슴에 안기더니 그제야 큰 소리로 울어버리는 아들
    그동안 하나 더 사간 도시락은 아들의 짝꿍이 집안 사정으로
    도시락을 못 싸오게 되어 싸다 준 거라는 말을 하며 울먹였습니다

    “근데 오늘은 왜 그냥 가져왔니?" 라고 묻는 말에
    친구 엄마가 암 수술을 하는 날이라 어젯밤 병원에서 꼬박 새우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는 아들의 말이었습니다

    이제껏 힘든 친구를 위해 학교를 마치고선 같이 병원에 가
    병간호를 해줬다는 말도 함께요

    “그랬구나!
    친구가 아주 힘들었겠구나 “

    애써 아들의 등을 토닥거린 후 부엌에 와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친구 도시락 싸가랴
    병원에서 간병인 노릇 하랴
    이젠 남의 아픔도 헤아릴 줄 아는 아들이 대견스러워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요.

    ​비 오는 저녁
    오늘도 아들은 늦나 봅니다
    아홉 시가 넘었는데 말이죠
    열 시가 다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아들은 더 걸어갈 힘이 없는지
    현관 앞에 주저앉고 맙니다

    “울 아들 오늘도 고생했네...”

    “엄마, 수술은 잘되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근데...."

    말끝을 흐리던 아들의 눈빛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애절함으로 저를 향해 있었습니다

    ​“친구가 초등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대...”

    “그렇구나!”

    말을 잇지 못하고 등을 보인 채 너털너털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제 맘엔 아들의 그림자 위로 겹쳐지는 알 수 없는
    애잔함이 다가왔습니다.

    며칠 후
    집에 온 아들이 호들갑을 떨며

    “엄마, 친구 집에 웬 아주머니가 찾아와서는
    김치와 음식들을 한 아름 주고 가셨대....."

    “헐... 대박.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그렇지 엄마
    야호…. 신난다. "

    저렇게 신난 아들의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이 두 번 더 지난 한가로운 오후

    “엄마,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그 아주머니가 또 나타나셨는데...
    이번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청소까지 다 해 주시고 가셨데...
    진짜 대박이지?
    그렇지 엄마?
    그 아주머니 천사다, 그치......."

    ​연신 그 아주머니 칭찬에 침이 말라 가는 아들을 보고선

    “너 그러다 그 아주머니를 이 엄마보다 더 좋아하겠다?"

    “벌써 그 아주머니 팬이 되었는걸요 아마 조만간에
    엄마보다 더 좋아질 것 같은데요!"

    “뭐야, 이놈의 자식이....”

    그렇게 아들은 매일매일 특종을 실어 나르는 신문기자처럼 친구네 집 소식을
    저에게 전하는 게 일이 되어갔습니다

    ​노을이 구름에 업혀 가는 해 질 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저의 핸드폰
    으로 아들이 보낸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을 방금 보았다고요……. "


    친구네 집에서 나오는 저의 모습을 아들이 본 것 같네요

    “띠릭.. “

    다시 또 울리는 아들의 문자

    “행복을 퍼주는 우리 엄마,
    내 엄마라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필요한 자리
    그 자리에 있어주는
    행복나무 씨앗은 나누면 커지나 봐요


    어느새
    내 마음에 심어져 있는
    “행복나무”

    아들과 함께 예쁘게 키워 보렵니다.

    - 출처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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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08 / 30
    제목 : 함께극복합시다.

    코로나 19가 너무나 위험합니다.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합니다.

    미래는 예측을 통해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여야 정치인도 질병관리 본부도 믿지 말고
    믿을 것은  내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간 여기에 제 경력이 밝혀지는 것이 별로 좋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조용히 주민 1인으로만 지냈습니다만..
    지금 코로나19 수도권 및 지방 위기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지금은 병원 근무는 안 하고, 기업 대상 보건관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기업 보건 상담,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뉴스를 통해 다들 잘 알고 계시기는 하겠지만, 전문가 그룹의 일원이었던 내가 보기에..
    지금은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입니다.
    대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입니다.
    어떻게든 가라 앉히지 못하면 다같이 유럽의 길(엄청나게 죽었죠)로 가게 됩니다.

    우리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려하고 택해야 합니다.
    좀 이기적인 생각인가요?

    최대한 집콕 하시고
    외출시 마스크 중무장, 손소독제 수시 사용 등 엄청나게 조심해야 합니다.
    마스크 아끼지 마시고 대중이 모인곳 다녀오셨으면  끈으로 돌돌 묶어서 교양있게 버리세요
    현재 수도권에는 완전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설마가 사람잡을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부지불식 간에 감염자를 마주하게 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질본 주요 관계자들이 대부분 같이 근무했던 지인들입니다
    혹시 정치인들의 약간의 과장이 있다 손치더라도 내가 걸리면 인생이 파괴되고 내 주변이 치명적으로 침몰합니다.
    멀쩡한 내 자식이, 건강하신 부모님이 돌아가실수 있습니다.
    질본에서 저 정도로 얘기하는 것이면 거의 두손 들기 직전입니다.
    이번에는 내자신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대비하셔야 합니다

    유즈센터, 도서관, 놀이터등 아파트 내 모든 시설은 당연히 폐쇄하고, 엘리베이터에서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참고로 항균 필름 그거 의과학자 관점에서 보면 사기입니다. 
    아무 소용없어요

    일단 2주일 정도 외출 자제하고 최대한 집에 머무시길 바랍니다.
    학원 아직도 많이들 보내고 있던데, 그러다가 결국 호되게 당합니다.
    저흰 절대 안 보냅니다.
    재래시장 제가 보기엔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상가에 가서 물건만 잽싸게 사서 도망치듯 나옵니다.

    의사이고 역학조사관 출신인 저도 이제는 오금이 저리고 무섭습니다.
    걸리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각종 암보다 더 무섭습니다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당분간 덴탈 마스크 쓰지 말고 방역용 KF80이상 마스크를 꼭꼭 착용하십시오.
    저는 업무만 마치고, 퇴근하면 바로 집에 와서 틀어박혀 지냅니다.

    부디 우리 동네 주민들 모두 건강하시고 무사 하시길 빕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설마하는 요행심리가 제일 위험합니다

    아.. 그리고 아마 조만간 병원 병상이 다 동이 날 겁니다.
    지금부터는 정말 걸리면 안 됩니다.
    설마설마 하지 마세요

    책임지는 정당이 잘 안보입니다.
    선별적 재난 지원금이나 각종 경제 통계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여야 정치하는 사람들도 믿지 마세요.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저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이웃  주민들에게라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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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의 현실태

    ※ 대한민국은 육군의 최정예 장교를 육성 하는 육군사관학교가 정치군인 학교장 중장 김완태가 부임한후
    친 좌파적인 놀라운일이 벌어지고 있다합니다!  

    육군사관학교는 4년 동안 일반 민간대학교 처럼 일반적인 모든 학문과 장교로써의 갖춰야할 전투기술을 가르치면서
    국민들의 세금으로 의식주 해결은 물론 월급도 줘 가면서 가르치고 있다. 

    작년에 부임한 김완태 교장은 전형적인 정치 군인으로서 취임하자마자
    이명박전대통령 기념비석을 뽑아 야산에 내버려 버렸고
    박근혜 대통령 기념비는 이름까지 파버렸으며.
    박근혜 대통령 재직시에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그년,,이라고 했던 이종걸,송영길,이순덕을 불러들여 강연하게하고
    육사선배들을 적폐로규정하고
    육사 근간이되는 교육(?)을 갑자기 조선의용군 독립군으로 바꿔 교육시키고
    백선엽 장군 기념관도 없애버리고
    하루 왼종일 스피커로 독립군가를 틀어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졸업식에 문대통령이 온다고 개교시부터 사용 해왔던 육사의 상징인 육사학교표식 마크를 전교정,
    화랑관, 육사 아파트 외벽면 까지 다지워바렸다고 한다.

    이유는 육사 선배님들이 태극기집회에 깃발들고 참여 했다하여 그 구실로 육사학교 표식 마크를 향토예비군들의
    마크 비슷한것으로 바꿔서 달아놓자 이에 전생도들이 반발하여 자비로 개교시 육사교표 마크를 사비로 구입하여서
    가슴에달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네이버 지도상에도 학교건물에 육사학교
    표식 마크도 지워버렸다고 하네요.

    또한(문재인이 개헌에 넣으려했던)
    "사람이 먼저다"란 구호아래 정예장교를 육성하는 사관학교에 군기강도 없에버려 하급생이 상급생지시도 무시하는 등
    군기강이 개판이다 보니 이에 전교생들의 울분들이 하늘을 찌르고있다고 합니다.

    군기강이 빠지다보니 외출이 금지된 1년생 15명이 무단이탈하여 저녁때까지 영화관 등 지로 돌아 다니다 적발됐는데도
    퇴교 심위는 커녕 당일 당직 일지에도 기록도 하지않고 학교장지시로 2시간 연병장 구보로 떼우고 쉬쉬하다 헌병대에
    적발되어 수사를받고있다 합니다.

    3성 장군이란자가 청와대 행정관 탁현민이가 온다고 연병장 큰  전광판에다가 "탁현민 국장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란
    문구를 띄우고 나이 어린 탁현민의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꼴을 보자니 생도들의 맘이 어떻하였겠습니까?

    국토방위를 지키는 국군의 정예 간성을 육성하는 육군 사관학교가 이모양이 돼서야 되겠습니까?

    또다른 하나의 제보!

    대전 백제 대학에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동상을 철거하라는 시위가 있었다는데요
    대한민국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라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주사파의 문재인 정권하에서 대한민국이 빠르게 사회주의로 가고있는 것이다! 
    이걸 듣고 보고있는 애국 국민들의 가슴 속은 철렁이고 썩어 문들어진다!

    육군사관학교여!
    그대들은 대한민국의 좌편향과 사회주의화 를 막아야 한다!
    또한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의 간성 들이여!
    조국의 앞날을 올 바르게 판단 하시어 국민들이 자유를 빼앗기고 북한인민 신세가 되는길을 절대 좌시하지 마시기 비옵니다!

    ''朽腐日 深之大厦, 其國非國''

    날로 날로 더 깊이썩어가는 큰 집같은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444년 전 1574년 이이 율곡선조에게 올린 萬言封事에서 적은 글귀입니다

    세월의 격차가 4세 기를 지나도 지금 이 나라는 그 시절 조선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죠  

    지금 이 땅위에 살고 있는 이 백성들은 조선시대의 백성들과 무엇이 다른가?

    불법으로 대통령을 탄핵해도 나라의 안보가 무너져도 기업이 조국을 떠나고
    경제가 폭망해가도 청년실업자가 이리 많아도 청년들이 일자리 찾아 조국을 등져도

    70년 공들여 이룩한 원전을 내팽겨쳐도
    세금 갈취로 좌파들이 지들 세상 만들기를 즐겨도

    자유가 없어지고 일자리가 사라져도
    싸구려 감성 말장난에 영혼이 병들어도
    노조가 나라를 좌지우지 해도 조작과
    거짓말 언론들에 놀아나서 진실이 부정되도

    그저 사육되는 개 돼지로 살아가는 것이
    마냥 즐겁고 신나는 꼴들을 하는 그들은
    400년전의 민초들보다 나은게 무엇인지ᆢ

    그들에서 무슨 희망을찾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부정한 돈 받고 자살한 인간이 영웅이 되고
    타살의 흔적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에 대한
    의견을 묵살하고 자살로 몰아가도
    침묵하는 인간들에게 무슨 내일을 찾을까 싶습니다.

    특히 배웠다는 것들 안다고 우기는 것들
    가졌다는 것들이 더욱 더 그렇습니다.
    역겹다

    조국의 안위를 위해 분투하다 전사한
    국군 장병들을, 모욕하는  저 정치꾼들에
    대해 침묵하는 자들은 과연, 양심은
    있는가 싶네요,

    진정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꼰대보수들은 침묵 하라고 한다지요?

    그러면 그들은, 지금 이 중차대하고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하고있 는지?

    불의가 정의가 되는 것을 보고도 침묵
    하는 것은 그놈들과 공범들입니다.
    요새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삽니까?

    아직도 누군가 해줄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습니까?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망해 봐야 ᆢ
    습관적인 개탄은 그만하고, 행동합시다~~!!

    이런거 알고도 잠이 제대로 옵니까?

    최근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기막힌 일들!

    돌대가리가 아니면 안보가 전부 무너지는
    소리가 나는데도 좌파를 지지해야 좋은 지
    나쁜지 판단을 해보 세요?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요?

    저는 이자료를 혼자만 보시라고 보내드린건
    절대 아닙니다. 1명이라도 좋으니 많이많이
    전파해 주시라고 보내 드리며

    만일 안보거나 혼자만 본다면 저는 당장
    목숨을 끊겠습니 다. 많이많이 보내주시길
    부탁해요,

    이것이 진정한 안보를 바로 잡는 초석이고
    바로 애국하는 애국자입니다

    https://m.blog.naver.com/abk185/221329384117

    쿼 바디스(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 이거 큰일 났습니다

    □ "김일성이 유일한 희망" 이라고 교과서에!

    □ 전국민이 다 알아야 합니다

    ☞ 5윌10일 초등 교과서
    현재 수정분 배포교육,

    □ 중.고 교과서도 재수정 곧 배포예정?

    □ "TV조선에서 알림"

    *도대체 누가 왜 이런 교과서에 미친 짓을?

    *국무총리가 이런 걸 모른 척 하면서도
    대한민국 청와대, 국회, 경찰, 검찰,
    국정원, 법원, 공무원, 교육자 들은
    당당한가?
    (교사 및 교육공무원들은 북한에서
    전교조 교육 이수했는가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동영상은
    꼭 청취 하시고 전파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59119264881853&id=100023513403336&refsrc=https%3A%2F%2Fm.facebook.com%2F1000235



    나도 경상도 개. 돼지 새끼!

    김장석


    참 의리없는 경상도 개.돼지 새끼들!

    야. 이 개새끼들아!
    전라도 반만 이라도 본좀 받아라!

    박근혜가 김대중 처럼 도둑질 했남?

    박근혜가 노무현 처럼 도둑질 했남?

    박근혜가 문죄인 처럼 종북질 하고
    여적죄질 져질렀남?

    전라도 사람들은.
    김대중이가 박근혜 처럼 경상도 사람들
    한테 핍박을 받으면. 경상도 새끼들
    느그들 처럼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보냐?

    전라도 보다 땅덩어리 두세배 더크고.
    대가리수 두세배 더 많은 의리없는
    경상도 개새끼들아!

    경상도 개새끼 느그들은 평생동안 전라도
    홍어족 똥빨아 먹고 살어라.
    제발 전라도 새끼들 본좀 받아라!

    밥맛없고 메시꺼운
    개.돼지같은 경상도 개새끼 들아!

    느그들은 인간도 아니야!
    제발 정신좀 차려서 인간이 되거라!

    퉤. 퉤

    경상도 개.돼지 새끼들!

    내가 느그들처럼 경상도 개.돼지 새끼
    인게 부끄럽다!

    퉤. 퉤...

             경상도 애국시민  김장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늘의 묵상(9월)


    가을의 문턱을 넘어 가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가며 주님의 섭리를 함께 경험하기 바랍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8

    31

    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는 자의 본(7절)

    9

    1

    데살로니가전서 2:1∼20

    강림하실 때(19절)

    9

    2

    데살로니가전서 3:1∼13

    장차 받을 환난(4절)

    9

    3

    데살로니가전서 4:1∼18

    휴거(17절)

    9

    4

    데살로니가전서 5:1∼28

    주의 날(2절)

    9

    5

    데살로니가후서 1:1∼1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5절)

    9

    6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2: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강림하실 때(19절)
    ♦ 성구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For what is our hope, our joy, or the crown in which we will glory in the presence of our Lord Jesus when he comes? Is it not you?   

    “주의 강림(降臨)을 준비하자!”
    구약은 장차 메시아(예수)가 오실 것을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은 메시아(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예언은 하늘로 올라가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임재를 “강림(降臨)” 또는 “재림(再臨)”이라고 합니다.

    주의 강림을 준비하는 신앙을 소개합니다.

    첫째,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라(데살로니가전서 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둘째,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존하라(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셋째,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아라(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2:28)

    세상이 너무 좋아 주님 오심을 사모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돈만 있으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데!"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주님 나라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나라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그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들에게는 신앙으로 경험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우한 폐렴이 만든 고통의 터널을 빛이 되신 주님과 함께 밝고 환하게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

    https://www.youtube.com/watch?v=HFQcYkEque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장차 받을 환난(4절)
    ♦ 성구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In fact, when we were with you, we kept telling you that we would be persecuted. And it turned out that way, as you well know.   

    왜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난(患難)이 닥쳐올까요?
    환난은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5절).
    마치 용광로 속에 넣은 온갖 낡은 고철이지만 그 안에서 끓고 또 끓은 후에는 순수한 철로 재생산되듯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일지라도 환난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삶의 무대 위에 다시 올려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삶의 무대 위에 올라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르짖으라(시편 50:15, 욥기 27:9)
    둘째는 인내를 배우라(로마서 5:3)
    셋째는 진실한 자를 따르라(잠언 25:19)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염병(染病)이 세상을 흔들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내고 그 가르침을 따라 믿음으로 견디고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환난과 핍박 중에도

    https://www.youtube.com/watch?v=UDB0Mpf-6u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3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휴거(携擧, rapture)(17절)
    ♦ 성구 :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휴거(携擧, rapture)”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다만 “끌어 올려”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용어(用語)’라고 하겠습니다.
    휴거는 단순한 ‘승천(昇天)’이 아닙니다.

    휴거의 목적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종말(終末)과 세상의 혼란(混亂), 심판이 임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공중에서 재림하여 성도들의 일부를 공중으로 올려서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환난의 날에 공중으로 들려올라가는 성도들에게는 환난에서 면제될 것이라는 위로와 기대를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까지만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태복음 24:36)

    마치 재림의 날짜를 아는 것이 신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빨리 지워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휴거란 내게 주어진 하루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와 같은 믿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저들에게도 구원받은 믿음을 실천할 수 있는 생각과 결단하는 용기를 주셔서 모두가 함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할 뿐입니다.

    ♪ 찬양 / 하나님의 나팔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e2GGYNfEGK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4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날(2절)
    ♦ 성구 :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You know very well tha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in the night.    

    "주의 날"을 두 가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는 마지막 날(The Last Day)

    마지막 날은 주님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이며 심판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에 양은 오른편으로 염소는 왼편으로 구분하실 것입니다.
    나는 어느 편에 속할까요?

    둘째는 주님의 날(主日, Sunday)

    주님의 날은 주일(主日)을 말합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모여서 예배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흩어져서 예배하는 삶을 실천하던 주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은혜가 우한 폐렴으로 모일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흩어져서 개별적인 경건의 삶을 실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깨우침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이 살아있을 때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 믿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이 곧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을 하루같이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주님이 오신다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멈추고 주님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양과 염소를 모여서 활동하는 군집형 동물이라고 합니다.
    여름철이 되면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자면 덥기 때문에 양은 서로 떨어져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염소는 떨어져서 자면 시원하고 좋지만 다른 녀석이 시원하고 좋은 것을 못견뎌하며 악착같이 붙어서 자려고 한답니다.

    겨울철이 되면 양은 서로 붙어서 자는 것이 따뜻하고 좋기 때문에 서로 붙어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염소는 상대방이 따뜻한 것이 배가 아파서 일부러 떨어져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오른편에 속한 거룩한 주의 백성은 나보다 남을 높이고 존경하며 인정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섬김의 삶을 실천하므로 세상을 아름답게 세워가는 일에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주 예수의 강림이

    https://www.youtube.com/watch?v=HFQcYkEque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1:1∼12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5절)
    ♦ 성구 :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All this is evidence that God's judgment is right, and as a result you will be counted worthy of the kingdom of God, for which you are suffering.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알아야 하겠지요.

    1.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시편 33:12)
    2. 말이 아니라 능력(행동)(고린도전서 4:20)
    3.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로마서 14:17)
    4.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마태복음 12:28)
    5. 내 안에 세워진 나라(누가복음 17:21)

    하나님의 나라를 다른 곳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환난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내 의지와 결단과 노력으로는 환난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주의 영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고
    저희들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이 
    주의 임재를 깨닫고
    주님 나라 향하여
    모두 함께 손잡고
    그곳으로 걷게 하소서.

    ♪ 찬양 / 내 주의 나라

    https://www.youtube.com/watch?v=g--LqfhUCE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9

    7

    데살로니가후서 2:1∼17

    불법의 비밀(7절)

    9

    8

    데살로니가후서 3:1∼18

    사랑과 인내(5절)

    9

    9

    디모데전서 1:1∼20

    경계의 목적(5절)

    9

    10

    디모데전서 2:1∼15

    하나님의 소원(4절)

    9

    11

    디모데전서 3:1∼16

    경건의 비밀(16절)

    9

    12

    디모데전서 4:1∼16

    경건의 연습(7절)

    9

    13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2: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불법의 비밀(7절)
    ♦ 성구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For the secret power of lawlessness is already at work; but the one who now holds it back will continue to do so till he is taken out of the way.   

    “不法의 秘密(the secret power of lawlessness)”
    성경은 “불법(不法)을 죄(罪)”라고 합니다(요한일서 3:4)
    따라서 “불법의 비밀”이란 “죄의 비밀”이라고 하겠습니다.

    불법이란 “배도하는 일”을 일으키는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불법의 사람은 “자기를 하나님” 이라고 하며 주의 날이 언제 이를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말로만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속임수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불법의 비밀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 찬양 / 주의 진리 위해

    https://www.youtube.com/watch?v=XbOKfMZYpA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8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3: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랑과 인내(5절)
    ♦ 성구 :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May the Lord direct your hearts into God's love and Christ's perseverance.

    사랑(愛)과 인내(忍耐)
    사랑이란 헬라어로 “아가페(ἀγάπη)”라고 하며, 인내는 “후포메내(ὑπομονή)”라고 합니다.
    ‘아가페’라는 “사랑”은 “하나님의 의지” 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합니다.
    ‘후포메네’는 “끝까지 참고 견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 받게 하려고 끝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산을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 요구하고 그것을 갖고 집을 나가 방탕한 삶을 즐겼던 작은 아들이었지만 그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를 찾아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며 무릎을 꿇었을 때 아버지는 “너는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내 아들” 이라고 하시며 아들을 품꾼으로 맞이한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맞이하셨습니다.

    당시 율법은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 유산을 분배받는 행위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죄에 속합니다.

    품꾼과 같은 저희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주님의 자녀로 인정하시고 맞아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도 참고 기다립니다.

    지체하지 말고 아직도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돌아와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강의 은혜를 우한 폐렴이라는 시련의 시기가 계속될 때에도 마음껏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어서 돌아오오

    https://www.youtube.com/watch?v=sB6E4awP8L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1: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계의 목적(5절)
    ♦ 성구 :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The goal of this command is love, which come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경계의 목적은 신앙을 바르게 지키려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다른 교훈을 배우지 않는 것(3절)
    둘째는 무가치한 변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4절)
    셋째는 복음만 좇는 것(11절)

    참된 그리스도인은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항상 "나는 죄인의 괴수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15절).
    이러한 고백을 "깨달음의 은혜"라고 합니다.
    자기를 깨달을 줄 아는 믿음은 "선한 양심"을 갖고 살아갑니다(19절).
    선한 양심은 "청결한 마음"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주님 사랑 증거 하는 행복한 믿음의 순례자로 맡겨진 본분 잘 감당하므로 착하고 충성된 사람으로 승리하시기 를 기도합니다.

    ♪ 찬양 / 나 맡은 본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5bb3rVpLcA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2: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소원(4절)
    ♦ 성구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Who desire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하나님의 소원(所願)

    소원(所願)이란 한자는 "바 소(所)" "원할 원(願)"이란 훈(訓)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관리하도록 축복하셨던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급하게 달려가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을 하나님의 소원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속전(贖錢)으로 바쳐진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라고 합니다. 

    교부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일곱 가지 대죄(大罪)는 "교만(驕慢, Pride), 시기(猜忌, Jealousy), 분노(忿怒, Anger), 나태(懶怠, Sloth. Indolence), 탐욕(貪慾, Greed), 탐식(貪食, Gluttony), 정욕(情慾, Lust)"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일곱 가지 죄에 하나를 더하면 "허영(虛榮, Vanity)"이라고 하겠습니다.

    허영의 정체는 "사라질 광채"라고 합니다. 
    죄가 만연하고 사회 정의와 질서가 무너져버린 시대를 급하게 몰아치는 또 하나의 죄는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허영'이라고 하겠습니다.
    허영의 그림자는 돈, 권력, 좌파사상, 현실 만족과 같은 것들이겠지요.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믿음의 사람은 영혼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죄의 유혹에 대항해왔던 오랜 교훈과 지혜의 비밀을 되찾을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도 책임을 사명으로 깨닫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을 만족케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https://www.youtube.com/watch?v=uqCyLxesCe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1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3: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의 비밀(16절)
    ♦ 성구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By common confession, great is the mystery of godliness: He who was revealed in the flesh, Was vindicated in the Spirit, Seen by angels, Proclaimed among the nations, Believed on in the world, Taken up in glory.   

    “경건(敬虔)의 비밀(秘密), the mystery of godliness”

    “비밀(秘密)”이란 영어 단어는 "secret"과 "mystery"라고 합니다.
    ‘secret’는 ‘비밀’ 이라고 하며, ‘mystery’는 ‘신비’라고 합니다.

    비밀은 그 내용이 밝혀지면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밝혀지면 유익합니다.
     
    비밀이 밝혀지면 당사자가 곤경에 처합니다. 그래서 비밀은 그대로 묻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밝혀지면 좋습니다. 
    신비는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만 알려집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자연의 신비한 법칙을 발견한 후 이것에 대해 설명해주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경건의 비밀은 신비와도 같습니다.
    비밀을 헬라어로 “무스테리온(Musterion)” 이라고 합니다.
    ‘무스테리온’이란 헬라어에서 영어의 “mystery(신비)” 라는 단어가 파생했습니다.

    경건의 비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밝혀질수록 사람들에게 정말 좋습니다. 이 비밀은 깨닫고 알수록 우리에게 큰 복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비밀보다 이 비밀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알려줘도 아무나 알기가 힘이 듭니다. 이 비밀, 이 신비는 들을 귀와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듣기도 하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경건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기도해야 합니다.

    경건의 비밀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동정녀 탄생)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속죄의 제물)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부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승천)
    다시 내려오실 것입니다(재림)

    경건의 비밀은 신비(神秘, mystery)와 같습니다.
    신비의 내용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신비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형식적이며 습관적입니다.
    날마다 경건의 신비를 경험합시다.
    은혜가 충만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승리하는 십자가 군병으로 승전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십자가 군병들아

    https://www.youtube.com/watch?v=3K-bA_rj3V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2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4: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의 연습(7절)
    ♦ 성구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Have nothing to do with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rather, train yourself to be godly.   

    경건(敬虔)의 연습(練習)
    1986년 11월 어느 날 미국 애리조나 주에 거주하는 한 보석상이 우연히 수석 전시회에 들렀는데 15달러 가격표가 붙어 있는 돌멩이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틀림없는 사파이어 원석이었습니다. 그는 담당자에게 정말 15달러냐고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담당자는 현찰로 사면 5달러를 깎아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석상은 얼른 10달러를 내고 그 돌멩이를 구입했습니다. 그는 그 돌멩이를 쪼개고 다듬어서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까 판매액이 무려 228만 달러이었습니다. 1만원에 구입한 돌멩이가 무려 26억 원의 가치가 된 것입니다.
    육체의 연습(bodily exercise)은 몸 즉 겉 사람을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경건의 연습은 심령 즉 속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경건의 연습을 위해서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즉 "성경 읽기"와 "묵상 기도" 그리고 "사랑의 실천"과 같은 훈련이라고 하겠습니다.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앤드류 보나(Andrew Bonar, 1810~1892) 목사는 경건 생활을 위한 세 가지 규칙을 세우고 실천했습니다. 그가 세운 경건생활의 목표를 소개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과도 말하지 않는다.
    둘째,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기 전까지는 그 손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셋째, 성경을 읽기 전까지는 어떤 글도 읽지 않는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므로 날마다 심령을 새롭게 하는 영적생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한 폐렴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의 질서를 찾아가는 요즈음 화분에 심겨진 화초에 물을 주고 가꾸듯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경건의 연습을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영성과 인성의 사람으로 세워지시기 바랍니다.

    ♪ 찬양 / 행군 나팔 소리에

    https://www.youtube.com/watch?v=jgsaNnViFQ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9

    14

    디모데전서 5:1∼25

    선한 행실의 증거(10절)

    9

    15

    디모데전서 6:1∼21

    지족하는 마음(6절)

    9

    16

    디모데후서 1:1∼18

    거짓이 없는 믿음(5절)

    9

    17

    디모데후서 2:1∼26

    예수의 좋은 군사(3절)

    9

    18

    디모데후서 3:1∼17

    고통하는 때(1절)

    9

    19

    디모데후서 4:1∼22

    말씀을 전파하라(2절)

    9

    20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14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5: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선한 행실의 증거(10절)
    ♦ 성구 :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And is well known for her good deeds, such as bringing up children, showing hospitality, washing the feet of the saints, helping those in trouble and devoting herself to all kinds of good deeds.  

    선한 행실(行實)의 증거(證據)(Proof of good deeds)

    교회가 해야 할 사역 중에 하나는 과부를 경제적으로 보살펴야 하며, 과부는 나이가 육십이 넘고 한 아내의 남편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으로 자녀 양육을 잘 했다든지, 나그네를 잘 대접한다든지, 성도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이나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했다는 증거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과부를 책임지고 잘 돌보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권면입니다. 여기서 과부만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생각합니다.

    성도는 선한 행실을 보이면 살아야 하는 일군입니다.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하며, 나그네를 대접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길 만큼 굳은 일을 찾아서 감당하며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한 질문에 대답하며 나를 점검해 봅시다.

    첫째, 나는 선한 일을 잘 하고 있는가?
    둘째, 나는 습관적으로 혹은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물질을 다른 사람과 잘 나누는가?
    셋째, 나는 굳은 일을 도맡아서 하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고 외면하는가?

    주여!
    주님은 모범이시며 구속자이십니다.
    결국 구속자이시며 모범입니다.
    그래서 분투하는 자가 절망하여 산산조각 날 때
    모범이신 것에 의기소침 할 때
    구세주는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 순간에도
    주님은
    계속 분투하게 하시는 모범이 되십니다.
    - 철학자 키에르케골(Kierkegaard)
     

    ♪ 찬양 / 나는 예수 따라가는

    https://www.youtube.com/watch?v=94CEguIedp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5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6: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지족하는 마음(6절)
    ♦ 성구 :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지족(知足)하는 마음”

    지족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13:5a)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지족하는 마음은 경건의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빛을 주신다.
    -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는 것은 주신 것에 대한 조건 없는 감사를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에만 감사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까지도 합력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기다릴 때 감사의 열매와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족하는 마음은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지족하는 마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울 때 많은 사람들 앞에 선한 증거를 보여줄 것입니다.

    우한 폐렴의 연단 시기가 모두에게 지족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족하는 믿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 찬양 / 지금까지 지내 온 것

    https://www.youtube.com/watch?v=YHIpJDIjEO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6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1: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거짓이 없는 믿음(5절)
    ♦ 성구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I have been reminded of your sincere faith.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청결한 양심(3절)
    근신하는 마음(7절)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8절) 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1666년에 영국 런던에 큰 불이 일어나서 많은 교회당이 전소하였을 때 당시 영국 왕 Charles 2세가 크리스토퍼 우렌 경을 총감독으로 임명하고 교회당을 재건하였습니다.

    어느 날 우렌 경이 공사장에서 돌을 다듬는 석공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첫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이 돌을 깎아서 저 벽에 맞추어 넣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마누라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지금 대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우한 폐렴이 창궐하여 삶의 리듬이 깨어진 세상 같을지라도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를 다듬어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세워가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 찬양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7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2: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의 좋은 군사(3절)
    ♦ 성구 :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Endure hardship with us like a good soldier of Christ Jesus.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좋다”의 반대말은 “나쁘다” 입니다.
    “좋은 군사”가 있으면 “나쁜 군사”도 있습니다.
    누구나 좋은 군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교회가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내가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좋은 군사가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총명(聰明, insight)을 구하라(7절)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分別)하라(correctly handles)(15절)
    셋째는 자기를 깨끗이 하라(cleanses himself)(21절)

    군사(軍士, στρατιώτης. soldier)란 일군을 의미합니다.
    충성된 일군은 주인이 분부하신 것을 기억하고 시와 때를 분별하여 자기 본분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군으로 우한 폐렴의 끈질긴 전염성을 물리치며 건강하게 영적 싸움의 현장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https://www.youtube.com/watch?v=XbOKfMZYpA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8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3: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고통 하는 때(1절)
    ♦ 성구 :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But mark this: There will be terrible times in the last days.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고통(苦痛) 하는 때라고 합니다.
    고통(苦痛) 이란 어떤 것일까요?
    여러 번역을 참조하여 살펴봅니다.
    1. 공동번역 : 어려운 시기
    2.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 어려운 때
    3. NIV : terrible times(무서운 시기)
    4. KJV : perilous times(위험한 시기)
    5. NASB : difficult times(어려운 시기)

    여러 다양한 번역을 참조하여도 단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 헬라어 단어를 찾아봅니다.

    6. 헬라어 : 칼레포스(χαλεπός. chalepos)(difficult, hard)
    "칼레포스"란 어떤 내용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hard) 시기라는 것을 말합니다.

    "칼레포스"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8장 28절에서는 이런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비록 우리들이 고통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셨기 때문이며, 또한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마지막 고통 하는 때를 잘 견디려면 주님이 원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8:8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결국 성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때의 고통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이전 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릴 수 있는 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고통의 때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늘도 주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https://wwww.youtube.com/watch?v=xNnvmFCAXsA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9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4: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씀을 전파하라(2절a)
    ♦ 성구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Preach the Word; be prepared in season and out of season.  

    성도들이 항상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항상 기뻐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
    항상 기도하라(누가복음 18:1)
    항상 소망을 품으라(시편 71:14)
    항상 감사하라(빌레몬서 1:4)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라(히브리서 13:15)

    항상(恒常) 힘써야 할 일들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전파(傳播)하다는 헬라어는 “케루소(κηρύσσω. kérussó)”라고 합니다.
    케루소의 뜻은 “전령이 되라(to be a herald)” “선언하라(proclaim)”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말씀을 삶을 통하여 증거하고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장로님께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잘 하는 목사는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님은 목사처럼만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다.”

    설교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설교를 자기 삶으로 고백하는 말씀을 전파하는 증인이 필요한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이런 막중한 책임을 갖고 이 시대의 밝은 등불이 되어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밝혀주는 거룩한 빛으로 삶의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주의 말씀 듣고서

    https://www.youtube.com/watch?v=JI8vncK8wa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9

    21

    고린도전서 1:1∼31

    십자가의 도(18절)

    9

    22

    고린도전서 2:1∼16

    하나님의 지혜(7절)

    9

    23

    고린도전서 3:1∼23

    하나님의 성전(16절)

    9

    24

    고린도전서 4:1∼21

    그리스도의 일군(1절)

    9

    25

    고린도전서 5:1∼13

    유월절 양(7절)

    9

    26

    고린도전서 6:1∼20

    주와 합하는 자(17절)

    9

    27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21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십자가의 도(18절)
    ♦ 성구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십자가(十字架)의 도(道)(the message of the cross)”
    “도(道)”를 아시나요?”
    도(道)를 한자에서는 “길”이라고 합니다.
    헬라어에서는 “로고스(λόγος, logos)”라고 합니다.
    로고스란 “말씀(言)”입니다.
    복음서에서는 로고스를 “예수님” 이라고도 합니다.
    결국 “도를 아시나요?” 라는 질문은 “예수님을 아시나요?” 라는 질문입니다.
    간혹 거리에서 도를 아시나요? 하며 신앙의 질서를 흔드는 잘못된 종교에 미혹되지 말고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정말 주님께서 나를 아실까요?
    마지막 날에 내가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노라 이런 책망을 듣지 않으려면 주님께서 나를 인정하시고 아는 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아는 사람은 “죄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죄를 짓는 것도 자유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자유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칼뱅)”은 “참된 자유는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으며,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할 수 있는 의지의 해방”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우한 폐렴의 전염병을 이길 수 있는 방역 수칙을 지키는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예수 더 알기 원하네

    https://www.youtube.com/watch?v=CvbkOOoGuoI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2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2: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지혜(7절)
    ♦ 성구 :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No, we speak of God's secret wisdom, a wisdom that has been hidden and that God destined for our glory before time began.   

    "하나님의 지혜(知慧), God's secret wisdom"
    하나님의 지혜는 신비로운 감추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내가 누구인줄 깨닫는 것입니다.
    지혜란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스런 지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는 마음"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은 성령의 능력에 다스림을 받는 마음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모두가 하늘 뜻 찾아 복잡하고 어지러운 땅에 거룩한 씨를 뿌려봅시다.

    자유가 지워지는 땅에
    공의가 흔들리는 땅에
    진리와 생명의 씨를 뿌려봅시다.

    ♪ 찬양 /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https://www.youtube.com/watch?v=8qS1oqmbnTk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3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3: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성전(16절)
    ♦ 성구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성전(聖殿)과 교회(敎會) 그리고 예배당(禮拜堂)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시대에 솔로몬 왕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축한 것입니다.
    현재는 예루살렘에 통곡의 벽이 그 일부분 유적처럼 남아있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배당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를 믿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곧 성전이라고 깨우칩니다.
    심지어 성도들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강조합니다(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전과 같은 몸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위한 수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믿음이란 나는 어떤 질병에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일반상식을 무시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일반상식을 지키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광적인 믿음은 비정상적인 몸에 비성서적인 신앙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기도원에서 40일 금식을 마치고 강가로 나가 강 위를 걷고자 하는데 자꾸만 강물 속으로 빠집니다. 물 위를 걷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함에 갑자기 신앙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 기도원 원장을 찾아가서 왜 나는 물 위를 걷지 못하는가? 하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기도원 원장은 그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는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꾸짖기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당신은 40일 금식을 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 때문에 실패한 것” 이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팬데믹(Pandemic)이 지구촌을 거대한 수용소로 만들었습니다.
    성도들은 그 수용소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강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성도들의 건강한 신앙 까닭에 아직도 믿음을 깨닫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가를 알려줄 수 있는 은총의 삶이 오늘이라는 무대 위에서 보기 좋게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 찬양 /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https://www.youtube.com/watch?v=BeFP_3ChK3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4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4: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일군(1절)
    ♦ 성구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So then, men ought to regard us as servants of Christ and as those entrusted with the secret things of God.

    “그리스도의 일군”
    일군이란 헬라어는 “후포레테스(ὑπηρέτης, hupéretés)” 라고 합니다.
    ‘후포레테스’는 “아래, 밑” 이라는 “후포”와 “노를 젓는다”는 “에레테스”가 합성하여 만든 단어로 “밑에서 노를 젓는 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의 배에 수십 개의 노들이 있는데, 배 안에서 한 사람이 하나씩의 노를 붙들고 북소리에 맞추어 노를 젓는데, 배 아래에서 노를 젓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어느 지점에 왔는지도 모르고 신호에 맞추어 노를 젓기만 합니다. 이렇게 노를 젓는 사람을  가리켜서 ‘후페레테스(일군)’라고 합니다.

    배의 목적지는 선장이 알고 있을 뿐, 어디로 가느냐고 묻거나 밖을 내다볼 필요도 없습니다. 노를 저으라면 젓고, 멈추라면 멈추며, 빨리 저으라면 빨리, 천천히 저으라면 천천히 저으면 되는 이것이 바로 ‘후페레테스(일꾼)’입니다.

    일군의 자세는 충성(忠誠)입니다.
    충성이란 선장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선장이 되신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둘째는 서로 대적하지 말라.
    셋째는 왕 노릇하라(죄를 다스리는 것).
    넷째는 주를 본받으라.
    다섯째는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회복하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릴수록 그리스도인은 오직 주님만 닮아가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 찬양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Z0ZFf1JkiM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5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5: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유월절 양(7절)
    ♦ 성구 :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Get rid of the old yeast that you may be a new batch without yeast as you really are. For Christ, our Passover lamb, has been sacrificed.    

    "유월절(逾月節) 양(羊)"(Passover Lamb)

    유월절 양은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입니다.
    죄를 지은 존재는 사람이지만 죄인을 대신하여 양이 죄 값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만일 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억울하다!"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죄인은 죄를 지으므로 억울한 대상을 만들었고 또다시 양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 또 다른 억울한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본질은 악한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하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유월절 양 앞에서 포장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질을 드러내어 버려야 합니다.
    본질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포장으로 덮어버리면 세상은 여전히 억울하다 외칠 것입니다.
    본질을 벗어버릴 때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내가 할 일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앨버트 시바이처는 행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할 일이 있다(Something to Do)

    둘째, 바라는 것이 있다(Something to Hope)

    셋째, 사랑할 대상이 있다(Something to Love)


    매일의 할 일은 악한 존재의 본질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매일 바라는 것은 주님 닮은 존재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눈에 사랑할 대상이 다가올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두려워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두 손 모아 기도합시다.
    팬데믹 수용소에 갇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위한 유월절 양의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나도 사랑하며 살아보겠노라고..........

    ♪ 찬양 / 성자의 귀한 몸

    https://www.youtube.com/watch?v=RbyeLcrljnQ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6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6: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와 합하는 자(17절)
    ♦ 성구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But he who unites himself with the Lord is one with him in spirit.    

    나는 이 세상을 참가자로 살아 갈 것인가?
    아니면 구경꾼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신앙생활에 적용한다면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신앙생활은 참가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믿는 신앙생활은 구경꾼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아는 단계에서 예수님을 체험하는 단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체험할 때 비로써 풍성한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주와 합한다는 것은 곧 예수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험할 때 주의 영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약한 사람에게는 감염의 속도가 빠르게 다가갈 것이지만 강한 사람에게는 감염 속도가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머리만으로 예수를 아는 신앙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온 몸으로 예수를 알려면 반드시 영으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 팬데믹 수용소에서도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너 십자가의 군병

    https://www.youtube.com/watch?v=2phVn_cMO5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예정론(로마서 8:29-30) 수요성서학당 #. 15(09-23-20)


    예정론이란 무엇인가?

    예정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
    만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으려고 하여도 반드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예수를 믿으려고 아무리 노력하고 힘쓸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요? 이와 같은 이야기가 "예정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소개한다면 예정론이란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과 섭리(攝理, Πρόνοια, providence)라고 하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정(豫定, Αναμενόμενος, prefetermined)과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셨고,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자들을 예정하셨습니다.
    누구를 예정하셨을까요?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을 깨우치시려고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은 율법에 따라 먹을 수 없는 짐승과 새들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그것들을 먹으라고 하였으나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은 언제든지 먹지 않았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게 되었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누구를 예정하셨습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어느 특정한 민족 아니면 어느 특정한 교회와 교주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족속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을 예정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정론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정을 받았지만 예정을 받은 사람이 이제는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정론이란 "하나님의 예정(豫定, Αναμενόμενος, prefetermined)"과 "사람의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 또는 "사람의 결정"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도다.

    예정론이 성경적으로 의미하는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예정(豫定) / 미리 예(豫), 정할 정(定)
    1.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하여 미리 정하여 두는 것  
    2. 미리 예상(豫想)하여 두는 것

    성경에서 “예정되었다” 라는 헬라어 "프루리조(προορίζω, proorizó. 4309)"는 "사전에 결정하다”, “미리 명하다”, “미리 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to predetermine, foreordain). 따라서 예정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을 미리 정하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 사도행전 4:28, 예정하신
    2. 로마서 8:29-30, 정하셨으니, 정하신
    3. 고린도전서 2:7, 미리 정하신
    4. 에베소서 1:11, 예정을 입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미리 정하셨을 까요?

    로마서 8장 29-30절에 따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첫째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고
    둘째는 부르심을 받고
    셋째는 의롭게 되고
    넷째는 영화롭게 되는 것

    이러한 것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합니다.

    (성경 이야기)
    요셉은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인하여 애급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애급에서 요셉의 삶은 참혹한 생활이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었지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혔던 요셉이 바로의 궁에서 술맡은 관원과 떡맡은 관원이 감옥에 들어왔을 때 두 관원이 꿈을 꾼 후에 그 꿈을 해석했습니다.
    술맡은 관원은 복직 되어 바로의 궁에서 다시 왕을 섬기게 됩니다.
    어느 날 바로가 꿈을 꾸고 그 꿈 때문에 모든 술객들을 동원하였으나 꿈을 해석하지 못할 때 마침 술맡은 관원은 감옥에 갇혀있던 요셉을 생각하고 요셉을 바로에게 추천합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였고 애급의 총리가 되어 7년 대가뭄의 때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관원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양식을 구합니다.
    요셉은 지난 날의 모든 고통과 괴롭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의 신분을 알리고 앞으로 가뭄이 더 계속될 것이므로 모든 가족들을 애급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창세기 45:5-8).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급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에서 "예정론"이란 요셉의 삶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겠습니다.


    예정론(豫定論)이란?

    1. 하나님의 예정(豫定)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로마서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디모데후서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어느 시골 동네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나라의 왕자가 이 시골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처녀를 사랑한 왕자는 임금님과 의논해서 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느 날 왕자는 시골 동네로 그 처녀를 찾아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왕궁으로 갈 것을 청했습니다.
    처녀는 어떠한 반응을 할 수 있을까요?

    왕자의 청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왕궁으로 따라가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자의 청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절당한 왕자는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격과 덕망이 높은 분이기 때문에 처녀를 기다리며 계속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이런 노력과 수고로 인하여 마침내 처녀는 왕자의 사랑에 감동하고 그의 인격과 수려한 용모에 사로잡혀 왕자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왕자의 아내가 됩니다.

    그러면 이 처녀가 왕자비가 된 것은 처녀가 결정을 잘했기 때문입니까?
    처녀의 결정이 아니라 왕자의 사랑과 왕궁에서 작정된 결정 때문입니다.

    예정론은 이와 같이 선행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전하려는 교리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어느 날 우리가 결정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고, 찾아오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선행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을 언급하는 것이 예정론입니다.

    2. 사람의 선택(選擇)

    여호수아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정은 이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죄인된 내가 그 십자가의 주님을 인정하고 믿고 따라가므로서 구원의 대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예정론은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하나님에 의해 이끌려 지고(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구원받기 위해 믿는(로마서 1:16) 사람들과 밀접하게 역사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하나님은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두 사실은 동등한 진리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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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시대의 징조(디모데후서 3:1-5) 주일설교 원고(09-20-20)


    9월 18일(금)
    * 카톡으로 보낸 오늘의 묵상 자료

    ♦ 9월 18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3: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고통 하는 때(1절)
    ♦ 성구 :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But mark this: There will be terrible times in the last days.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고통(苦痛) 하는 때라고 합니다.

    고통(苦痛) 이란 어떤 것일까요?

    여러 번역을 참조하여 살펴봅니다.

    1. 공동번역 : 어려운 시기
    2.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 어려운 때
    3. NIV : terrible times(무서운 시기)
    4. KJV : perilous times(위험한 시기)
    5. NASB : difficult times(어려운 시기)

    여러 다양한 번역을 참조하여도 단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 헬라어 단어를 찾아봅니다.

    6. 헬라어 : 칼레포스(χαλεπός. chalepos)(difficult, hard)
    "칼레포스"란 어떤 내용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hard) 시기라는 것을 말합니다.

    "칼레포스"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8장 28절에서는 이런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비록 우리들이 고통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셨기 때문이며, 또한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마지막 고통 하는 때를 잘 견디려면 주님이 원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8:8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결국 성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때의 고통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이전 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릴 수 있는 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고통의 때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늘도 주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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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20-20 주일 설교 원고

    마지막 시대의 징조(徵兆)(데모데후서 3:1-5)
    The Symbol of Last Days

    디모데후서 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목회서신)

    디모데전서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서를 “목회서신(The Pastoral Ketters)”이라고 합니다.
    디모데에베소교회의 감독이었고,
    디도그레데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의 주제는 예수는 선생(거짓 교리, 거짓 교사에 대한 것)
    디모데후서의 주제는 예수는 바른 교훈(고난을 받을 때 모두 떠나갔고 오직 누가만 함께 하였다)
    디모데후서는 바울 서신의 마지막 서신이었다.
    디도서의 주제는 예수는 신앙의 본(성도는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한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마지막 전도여행 중 갑자기 체포되어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때는 네로 황제가 로마의 왕으로 있었고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A.D. 68년경에 로마에서  약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스티안 가도”에서 참수 당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6절을 읽어보면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보내게 된 배경을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내가 처음 재판관 앞에 끌려갔을 때, 나를 도와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지만 그들이 비난 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즉, 복음이 핍박 받는 상황에서 다들 바울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혼자 쓸쓸히 재판관 앞에서 자신을 변론해야 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도망친 그들이 그 일 때문에 하나님께 벌 받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디모데후서는 A.D. 67 또는 68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홀로 있었습니다.

    1장 16절을 보면 바울을 찾아 방문한 사람은 멀리 에베소에서 로마 감옥까지 찾아온 “오네시보로”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 때문에 대단히 기뻐하며 그 가정에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도 많은 도움과 위로를 주었던 사람입니다.


    (도입 이야기) 펜데믹(Pandemic)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유행병을 여섯 단계로 구분합니다.

    1단계
    동물에게만 전염되는 단계
    2단계
    동물에서 사람에게로 전염되는 단계 
    3단계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이 증가되는 단계
    4단계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세계적 유행병이 발생할 초기 상태
    5단계
    감염이 널리 확산되어 최소 2개국에서 병이 유행하는 상태
    6단계는 국가와 국가에서 다른 대륙의 국가로 감염이 발생한 상태

    팬데믹(Pandemics)이란 6단계 상태를 말합니다.

    팬데믹은 그리스어로, ‘팬(Pan)’은 ‘모두(All)’를 의미하고, ‘데믹(Demic)’은 ‘사람(Man)’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전염된다"는 뜻입니다.
    팬데믹이 세계를 거대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거대한 수용소(Camp)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6개월 이상 계속되므로 어떤 사람은 "마지막 때의 징조"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마지막 시대의 징조(The Symbol of Last Fays)"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말세(末世)"와 "말일(末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말세(末世)를 "마지막 시대(The Last Days)" 라고 합니다.
    말세라는 기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기간을 말합니다.

    말일(末日)은 "마지막 날(The Last Day)" 이라고 합니다.
    말일은 최후 심판의 날이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
    에서는 말일을 "그 날"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6개월 이상 계속되므로 이 세상이 팬데믹(Pandemic)이란 거대한 수용소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전염병이 지속되기 때문에 일부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때라고 외칩니다.
    성경에서 교훈하는 마지막 시대의 징조를 살펴보겠습니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 1: 29: 300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십 차례의 아주 작은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법칙을 말합니다.

    성경에서도 마지막 시대의 징조가 다양하게 소개됩니다.
    이러한 징조가 나타난 후에 반드시 마지막 그 날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지혜로운 처녀들과 같이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마지막 시대를 대비하는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징조
    마태복음 24장(세상 끝 날의 징조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디모데후서 3장(마지막에는 고통하는 때가 올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말세에 기롱하는 자들 즉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의 득세) 

    1. 자연적 징조
    - 난리, 전쟁, 자연재해(지진, 기근, 전염병)

    2. 도덕적 징조
    - 불법, 사랑의 타락

    3. 영적 징조
    -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




    마지막 시대의 신앙을 준비합시다

    1. 세상을 이기는 믿음(요한일서 5:1-5)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영적 싸움의 대상은 공중 권세를 잡은 자(에베소서 2:2)
    공중 권세를 잡은 자의 방법은 세상 풍속을 좇게 한다.

    (예화) 2014년 미국 휴스턴 시장은 동성애자가 부임하여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자들에게 설교 원고를 제출하는 법안을 제정 발표하였을 때 더 많은 교회에서 설교 원고들을 보냄으로 너무 많은 양을 보냈기 때문에 결국에는 취소하도록 하였다.

    대마초 합법화, 동성에 찬성, 낙태의 합법화와 더불어 공산주의가 교회를 탄압할 것이다.
    이미 공산주의를 창시한 칼 마르크스는 죽었고 공산국가들은 몰락했으나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세상을 흔들고 있다.

    역사가 토인비는 말하기를 "공산주의가 활개를 치는 이유는 교회와 성도들이 기독교식으로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공산주의는 기독교 사회의 이단이라고하였다.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미 영국의 자본주의 맛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여전히 자본주의 삶을 즐기며 살았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히브리서 11:5-6)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예화)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로 대성양 횡단에 성공했을 때 당시 유명 담배회사에서 광고 사진을 찍기 위하여 린드버그에게 제안하기를 사진 한 장 당 5만불을 제시하며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든지 아니면 입에 물고 있는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였다. 이때 린드버그는 "나는 세례를 받은 교인입니다. 담배를 피울 수 없습니다" 라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런 기사가 신문에 보도된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신문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린드버그에게 전달했는데 무려 10만불이었다고 합니다.

    3.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자(로마서 8:12-13)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 입히지 않으셨나?
    옷을 이빟면 주머니를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화) 어느 다리의 표지판에 10톤 이상 화물차는 통행금지 라는 푯말이 세워졌다.
    트럭 운전사가 적재함에 실은 물건의 무게가 10톤이기 때문에 걱정없이 다리 위를 건너가는데 그만 다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원인은 화물차 위에 앉아있던 새 한마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의 무게가 비록 작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10톤 보다는 더 나가므로 다리가 무너진 것이라면 욕망의 가장 작은 무게가 신앙의 삶을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화) 어느 샘물은 마시면 젊어진다고 합니다.
    마을의 가난한 부부가 함께 그 샘에 가저 물을 마시고 젊은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의 부자 영감은 그 샘에 가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갓난 아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에서 최근 발표한 소식은 11월이 되면 지금보다 더 강한 바이러스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한 전염병이 닥쳐올 것이라고 할 때 교회는 신앙의 자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신앙의 자세와 목표를 회복하기 위하여 종교 개혁 시대의 5대 신앙 목표에 따라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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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 사람과 속 사람(고린도후서 4:16, 에베소서 4:22-24) 수요성서학당 #. 14(09-16-20)

    수요성서학당 #. 14(09-16-20)

    겉 사람과 속 사람(고린도후서 4:16, 에베소서 4:22-24)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은 날로 새롭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공동번역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겉 사람은 쇠약해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와지고 있습니다.

    새번역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 겉 사람 속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시간" 이라고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겉 사람은 누구나 약하여지고 쇠하여 갈 것입니다.
    반면에 속 사람은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철이 들기도 하고 반성하며 후회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결단합니다.

    - 옛 사람 새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신앙" "거듭남" "중생" "구원" 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도 내 안에서 옛 사람의 삶의 습관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모습을 일컬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케 된 후에는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렇게 고백합니다.

    * 자연인의 반대는 "문화인" 또는 "문명인"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이다.
    자연인의 겉 사람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사람
    자연인의 속 사람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 자연인과 문화인 그리고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겉 사람은 동일한 모습이다.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는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속 사람은 목적과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속사람은 새로워 집니다.
    어떻게 새로워 집니까?
    자연인의 속 사람은 "정신을 차린다" "철이 들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회개" "깨닫는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You were taught, with regard to your former way of life, to put off your old self, which is being corrupted by its deceitful desires;
    to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용어                          영어                                      성구          헬라어                  의미





    겉 사람

        outward man, outwardly, outer man

      고후 4:16

         ἔξω

           육에 끌리는 사람

    속 사람

        inwardly, inward man, inner man

    고후 4:16

         ἔσω

           영에 끌리는 사람

    옛 사람

        the old man, the old self   

    엡 4:22  

      παλαιός

            중생 이전의 사람

    새 사람

        the new self, the new man

    엡 4:24

       καινός

             중생 이후의 사람

    대부분의 설교자는 겉 사람은 옛 사람이며, 속 사람은 새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은 거듭난 후에 나타나는 삶의 양식으로 옛 사람의 삶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겉 사람과 속 사람이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모습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양식으로 겉 사람은 육체 끌리는 삶의 양식이라면 속 사람은 영에 끌리는 삶의 양식 즉 선한 양심에 의하여 갈등하며 고민하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NEET족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
    (한국어로 방콕족)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과 무능력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을 깨달은 자는 자신에게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죄 지은 것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율한다.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을 깨달은 자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 없이 슬퍼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구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없는 사랑과 은혜에만 의지한다.

    무덤 속의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부패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한 것은 “나사로야 나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된 것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자기도 그렇게 구원받았음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자이다.
    죽은 시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걸어 나온 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수의로 칭칭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께서는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자는 자기가 구원 받기 전에는 물론, 구원 받은 후에도 행한 것이라고는 죄짓는 것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리고 그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베드로처럼 절규한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율법주의자와 행위주의자들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이교도들일 뿐이다.
    그들이 참으로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때는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과 무능력을 깨닫고 겸손히 고백하는 때이다.
    그 때가 어서 왔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그들로 인해 큰 기쁨의 잔치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납니다.
    선생님들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생님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는 아닙니다.

    ‘박군의 마음’ 이라는 전도지

    박군이라는 청년에게 전도를 하는 내용인데 박군의 마음속에 있는 일곱 가지 악한 성향,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짐승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을 주님이 온전하게 들어오심으로 일곱 짐승이 다 나가고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 되는 것을 설명한 전도지입니다.

    영적 전쟁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아마 이 전도지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적으로 많이 열려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일곱 가지 짐승의 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다쟁이 영 / 개구리

    말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람의 안에서 개구리가 쉬지 않고 개굴개굴 하고 울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개구리는 입에 관련된 것으로 설명됩니다(요한계시록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말이 많은 사람은 절제하지 못하고 수없는 말들을 입에서 쏟아냅니다.
    그리하여 영적 에너지를 잃게 하고 주변에 악한 기운으로 가득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이들은 침묵을 배우고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고 높여야 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는 대화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사랑하고 세속에 깊이 물든 대화가 있습니다.
    덕을 세우는 말이 있는가 하면, 남을 비방하고 또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날카로운 말도 있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절제되지 못한 말들이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말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축복의 말은 반드시 축복으로 돌아오지만 저주의 말을 하면 나쁜 저주가 임합니다.
    이것이 혀의 권세입니다(잠언 18:21).
    말한 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둘째, 교만의 영 / 공작새

    공작새가 그 날개를 활짝 펴서 자랑을 하듯이 교만의 영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선하고 지식이 많으며 영적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이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교만은 스스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과거에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이 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또 다시 대홍수가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높은 탑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믿으며 사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불신앙이 가장 큰 교만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가지요. 이 사실이 부당한가요?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이 사람들 안에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심지어 공산당들도 죽을 위기를 만나면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하나님, 잘못했어요. 하나님, 제발 한번만 살려주세요!" 이렇게 나옵니다.
    무신론자라도, 부처를 섬기는 사람이라도 죽기 직전엔 하나님을 찾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자 하는 악독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순순히 그분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셋째, 간교한 영 / 뱀

    뱀은 간교한 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세기 3:1).

    간교한 영의 사람은 지혜가 많고 머리가 좋아서 말을 잘 하며 사람들을 잘 속입니다.
    잘못을 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추궁하면 교묘하게 변명하여 오히려 상대방이 잘못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영은 “배신의 영”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유혹의 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강자 앞에서 약하며 약자 앞에서 잔인합니다. 영안이 열린 이들에게 이들은 뱀의 형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야곱은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겨우 한 끼 먹을 팥죽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권리)을 빼앗았습니다.
    그의 지혜는 분명히 타고난 것입니다.
    하지만 바르게 사용하지 않을 때, 그것은 악한 영의 도구가 됩니다.
    간사하게 부리는 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다듬어져야 합니다.
    야곱은 그로 인해 험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넷째, 음란한 영 / 염소

    염소는 성적으로 더러우며 정욕이 강하다고 합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이 시대에 음란을 피해가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비해 생활이 많이 편리해졌습니다.
    과거에 없던 것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문제도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편리한 도구들은 우리의 생활을 풍성하게 해줍니다.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문제입니다.
    죄를 짓는 데에도 쉽고 빠릅니다.
    음란과 세속에 빠지는 죄는 지금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베드로전서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다섯째, 혈기의 영 / 호랑이(사자)

    사자 또는 호랑이는 분노의 영 또는 화의 영을 상징합니다.
    속에서 폭발적으로 분노와 혈기가 일어나는 이들은 속에 호랑이나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성질이 강하고 사나워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성경에서 최초의 살인 사건은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왜 죽였을까요? 미움과 혈기를 참지 못해서 죽였습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이 학교에서 왜 일어날까요? 혈기 내는 영이 사람 안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여섯째, 탐욕의 영 / 돼지

    돼지의 영을 “탐욕의 영”이라고 합니다. 돼지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면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며 그 욕망으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이 있어도 남들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주려고 하지 않으며 더 많이 얻으려고 합니다.

    나발이란 사람은 부자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데 인색했습니다. 굶주린 다윗과 그의 일행을 먹이기는커녕 조롱하는 말로 다윗을 노하게 했지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그는 몸이 돌처럼 굳어져 며칠 후 죽었습니다.

    누가복음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일곱째, 게으름의 영 / 거북이

    거북이와 같은 게으름의 영의 지배를 받으면 항상 나태하고 게을러서 모든 것을 미루며 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명을 받았어도 제대로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아(You wicked, lazy servant!)” 라는 책망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6∼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46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죄의 종류와 마귀의 역사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죄들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일곱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who want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디도서 3:4-6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새 사람은 도덕과 윤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그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시편 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에베소서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중요 단어 정리(관심,

    관심(觀心)

    라틴어 / interesse(인테레세)
    intersum(인테르숨)의 현재 능동태 부정사형
    사이에 있음

    형태분석 : inter(접두사) + esse(어근)

    인테르숨(intersum)

     불규칙 변화 동사; 불규칙 상위1000위 고전 발음: [인테르숨] 교회 발음: [인테르숨]

    기본형: intersum, interesse, interfuī, interfutūrus

    어원: inter(~사이에, ~중에) + sum(있다, ~이다)


    1. 사이에 있다(I am or lie between)
    2. ~와 떨어져 있다(I am apart)
    3. 다르다, 차이가 있다(I differ)
    4. 출석하다, 참석하다(I attend)
    5. 중요하다, 변화를 가져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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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 증상과 예방법





    'mRNA-1273백신' 인류를 구원할 신의 선물
    '워프스피드(Warp Speed)'작전 성공!

    미국이 또 해냈다 정말 놀랍다.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다.
    사이토카인(cytokine storm) 면역폭풍 없이 'mRNA(핵산백신)-1273백신'을 사람 몸에 안전하게 집어 넣는 기술에 성공했다.
    정말 중요한 핵심기술인데 미국 정부의 '워프스피드 작전팀'이 그 어려운 걸 단 몇개월 만에 완성 시켜버렸다.
    임상3상 시험까지 이렇게 최단기간에 백신 물질을 안전하게 만들어낸 적은 이전에 없었다.
    이젠 제발 코로나 약도 없고,치료제도 없단 말 그만하라


    임상1상 45명 시험참가 전원 항체 성공!
    임상2상 600명 시험참가 전원 항체 성공!
    임상3상 코로나에 걸린적 없는 3만명 진행중(7월시작~9월 종료예정) 3만명 또한 무난히 항체형성 예정이고
    11월~12월 드디어 백신출시 대박 (당연히 美자국민 먼저겠지)

    이미 5억개 생산계획이 전부 완료 스탠바이 대기중에 있고, 곧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있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백신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Fatigue 피로(80%),chill 오한(80%),headache두통(60%),myalgia근육통(53%) 그런데 독감접종과 비슷한 유형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쉽게 말해 이런 수준의
    부작용은 거의 부작용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COVID-19바이러스 중화 항체가 첫 접종을 받은지 2주만에 임상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서 생겼다

    'mRNA-1273백신' 2차 접종 43일째 평균 중화 항체의 농도가 실제로 COVID-19에 걸렸다가 회복된 환자의 항체보다 무려 4.1배가 높게 나왔다 드디어 인류가 강력한 면역력을 탑재하게 되고 더이상 COVID-19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단 뜻이다
    이것의 의미는 일상이 회복되는 것이고,경제가 회복되는 것이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할 명분과 근거들이 모두 사라진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 역사상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백신개발이 완료된 적이 없다 'mRNA-1273백신'에
    올인한 백신개발팀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간섭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을 인류가 함께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워프스피드 작전'은 인류가 최초 달에 간것 만큼에 버금가는 백신개발 혁명사다.

    'mRNA-1273백신' 상용화 되는 그 날부터 더이상
    사회적 거리두기,마스크,경제셧다운,락다운 전부 해제다 이 백신은 빌게이츠 백신과 철저하게 구분되고 차별성을 띤 미국정부 주도의 민관협력의
    결과물이다 'mRNA-1273백신'은 미국을 구원할 그리고 인류를 구원할 '신의 선물'이다

    나는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mRNA-1273백신'을 가장 먼저 맞을 각오가 되있다

    창조주로부터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권이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다 그 정부는 지금  'mRNA-1273백신'이라는 신의 신물을 받았고 ,미국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진리앞에 정렬되어 지고 있다 so help us God...

    (mRNA-1273 백신 임상시험 보고서 논문)
    https://investors.modernatx.com/node/8986/pdf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022483?query=recirc_curatedRelated_article

    (올해 연말까지 백신3억개 제공 목표 美국방뉴스)
    https://www.defense.gov/Explore/News/Article/Article/2311177/operation-warp-speed-on-track-for-end-of-year-vaccine-deli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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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우한 코로나 완치여성의 체험기를 읽어보시고 예방에 도움이 되셨음합니다.

    우한코로나에 걸렸다  완치한 20대 후반의 여성입니다.

    사람들에게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과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 또 후유증에 대해 알리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별다른 약물 치료는 하지 않은 채 자연치유로 37일 만에 음성 두 차례 판정을 받고 퇴원하였습니다.

    물론 증상이 있었습니다.
    기침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잔 적도 있고 생리가 열흘이나 지속되고 설사, 후미각 상실 등의 증세가 있었지만 이것은 비교적 약한 증상에 해당되어 이 정도의 환자는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경우가 회복이 빨랐다는 담당의 선생님의 임상적 소견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는 애초에 치료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고통은 퇴원 후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현재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습니다.

    치료 중에는 병실 안에 누워 쉬는 것 밖에 하지 않으니 몰랐던 후유증이 일상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갑갑해집니다. 또 코부터 머리까지 울리는 것처럼 두통이 찾아옵니다.

    병원에서부터 있던 후각 이상 증상은 계속되어 음식 맛은 둘째 치고 이 음식이 상했는지 판단도 어려워 더운 날 빠르게 쉰 음식을 먹고 배탈도 한두 차례 났습니다.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삶의 질의 저하를 가져옵니다. 팔다리가 저릿저릿하고 온몸에 기운이 없습니다. 두세 시간이 안 되는 짧은 외출에도 이런 후유증이 올라오기에 일은 도저히 다닐 수가 없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방 안에만 누워있는 게 너무나 억울하고 몸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힘이 듭니다.

    저는 이태원 클럽 발 감염자의 직장 동료로 2차 감염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이 많았던 저는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였고 내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만지면 꼭 손소독을 했습니다. 버스 손잡이도 가게 문 손잡이도 잡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만졌다면 바로 소독했습니다. 또 사무실에서도 늘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켜왔지만 지키지 못한 단 한 가지는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은 모두 식사 시간에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는데 저는 모두가 이때 코로나에 노출된 것이라 확신합니다.

    제발 많은 분들이 식사 자리와 카페에서 얼마나 본인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스크의 중요성입니다. 저는 제가 코로나에 걸릴까 무서워 마스크를 정말 빠짐없이 착용하였습니다. 출근 전 방에서 나서기 전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퇴근 후 곧바로 손을 씻고 방 안에 들어와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그 덕에 가족들과 남자친구 및 저와 접촉했던 사람들 모두가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와 남자친구는 퇴근 시 몇 차례 픽업을 도와주며 차 안이라는 밀폐되고 좁은 공간에 일정 시간 이상 함께 있었음에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여 3차 감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쓴 마스크였지만 결론적으로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생판 모르는 남한테 걸리는 경우보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 가족 동료로부터 걸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끼리만 놀면 안 위험해. 내 친구, 가족은 안 걸렸을거야.' 라는 안일한 마음. 그 틈을 코로나는 파고든다는 걸 항상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코로나가 단순 감기가 아니라 정말 위험하고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고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지키는 방법은 현재 마스크뿐이라는 걸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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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뇌세포 공격 발작·정신착란 유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뇌세포를 공격해 코로나19에 걸린 환자가 발작이나 정신착란 증상을 보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뇌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고, 인체 다른 부위의 감염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예일대학교 면역학자 이와사키 아키코 박사의 논문을 보도했다.

    이와사키 박사는 코로나19로 숨진 환자의 뇌세포와 함께 실험용 생쥐, 줄기세포로 만든 장기유사체를 이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뇌세포를 공격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뇌세포의 복제 기능을 통해 번식한 뒤 산소 공급을 막아 신경세포를 괴사시킨다는 것이 이와사키 박사의 연구 결과다. 지카 바이러스처럼 뇌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바이러스에 대해선 인체의 면역기능이 작용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것처럼 바이러스가 은밀한 공격을 할 경우엔 면역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와사키 박사의 연구는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에게서 산소공급 부족으로 인한 뇌세포 손상을 확인한 다른 연구 결과와도 부합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의학계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호흡기관과는 달리 두뇌 침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일반적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의 앤지오텐신 전환효소2(ACE2)를 이용해 세포에 침투하지만, 두뇌엔 ACE2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와사키 박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두뇌의 신경세포(뉴런) 연접부인 시냅스를 이용해 두뇌에 침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코로나19 환자가 발작 등 신경계 관련 증상을 보이는 것은 뇌세포가 바이러스에 직접 공격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인체 다른 부위의 염증이 뇌세포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http://eviewer.koreatimes.com/online_viewer.aspx?seq=7495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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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00907/102827202/1?ref=main

    “코로나19 완치 후 87% 후유증 시달려”
    가장 심한 증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완치된 후에도 피로감, 호흡곤란 등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7일자)에 따르면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바티칸가톨릭대 부속병원은 코로나19로 입원했던 감염자 중에서 완치돼 퇴원한 143명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다.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고 2개월이 지난 뒤 완전히 증상이 없어진 사람은 18명(13%)뿐이었고, 87%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후유증이 있는 사람 중 55%는 3가지 이상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답했고 1, 2가지 후유증을 가진 이는 32%였다.

    코로나 후유증(복수 응답)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피로감(53%)이었다. 이어 호흡곤란(43%), 관절통(27%), 가슴 통증(22%)이 뒤를 이었다. 후각이나 미각에 장애가 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후유증은 다른 국가에서도 확인됐다. 아에라는 “중국, 프랑스 등에서는 환자 상당수가 폐 기능이 저하돼 퇴원 후에도 숨쉬기가 답답하다고 고통을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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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치료제 1순위 후보 렘데시비르 첫 임상, "68% 호전"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1/2020041100750.html

    가장 유력한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로 꼽히는 렘데시비르(Remdesivir)의 첫 인체 임상 실험 결과가 공개됐다.
    중증환자의 68%가 증상이 호전됐고, 47%완치돼 퇴원했다. 하지만 13%사망했다.


    항바이러스 치료제 렘데시비르./로이터 연합뉴스

    미 시나이산의대 조나단 그레이 교수 연구진은 10일(한국 시각)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지에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28일간 미 길리아드 사이언스사(社)의 렘데시비르를 코로나바이러스 환자에게 투약하는 임상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산소 포화도가 94% 이하인 중증환자 61명에게 최대 10일간 렘데시비르를 투여했다. 이 중 치료 데이터가 불분명한 8명은 제외됐다. 53명 가운데 30명(57%)은 투약 당시 스스로 인공호흡장치로 의지하고 있었고, 4명(8%)은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연구진은 53명 중 36명(68%)의 환자가 호전됐고, 완치된 환자는 25명(47%)이라고 밝혔다. 실험 전 인공호흡장치로 산소를 공급받고 있었던 환자 30명 중 17명은 장치를 떼어낼 수 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증에 속하는 산소 치료 환자 집단에서 가장 좋은 효과를 보였다. 이 집단 7명 중 5명(71%)의 증상이 개선됐다.

    다만 53명의 환자 중 7명(13%)은 실험 중 사망했다. 32명(60%)은 장기능 장애, 저혈압 등 부작용을 보이기도 했다. 조나단 교수는 “현재 데이터만으로는 약효에 관한 결정적인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렘데시비르를 투약한 환자들의 관찰은 희망적”이라고 했다.

    연구진은 실험한 환자 수가 적고, 무작위 임상실험에서처럼 대조군과 비교한 데이터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세계적으로 1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승인된 치료법이나 백신은 아직 없다.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에볼라바이러스 치료제로, 현재 가장 유력한 치료제 후보로 꼽힌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개발한 제약사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서울대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등이 렘데시비르의 코로나 치료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3건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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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한 코로나 극복 제일 좋은 방법
    이스라엘에서는 죽음 자 한명도 없음

    레몬차에 베이킹 소다(빵 제조시 사용되는 가성 소다)

    이스라엘에서는 C-19에서 죽음이 없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슈퍼 뉴스를 말했다.
    이것이 그것이 도착한 방법이며 이것이 내가 보내는 방법입니다.

    C19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법 또는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방법이 달성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이 바이러스가 사망하지 않은 정보

     레시피는 간단합니다 
    1.  레몬
     2.  중탄산염

    매일 오후 뜨거운 차로 섞어 마시면 더 뜨거운 베이킹 소다와 레몬의 작용은 즉시 바이러스를 죽입니다
    몸에서 완전히 제거합니다.
    이 두 성분은 밤이되면 시스템이 산성이되고 방어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면역계를 알칼리화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이 바이러스에 대해 긴장을 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밤에 레몬과 베이킹 소다가 든 뜨거운 물을 마신다.

    나는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모든 가족 및 친구들과 공유합니다.
    나는 당신의 기준에 맡깁니다.


    참조 #. 1

    베이킹소다가 몸에 좋을까요? 의학적 증거자료 (1편)

    참조 #. 2

    베이킹소다: 몸에 작용 기전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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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ollowing is from Irene Ken physician, whose daughter is an Asst. Prof in infectious diseases at Johns Hopkins University, quite informative.

    이글은 존스홉킨스 감염학과 조교수의 엄마이며 의사인 아이린 켄 이란 분이 올린 글입니다.

    *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but a protein molecule (DNA) covered by a protective layer of lipid (fat), which, when absorbed by the cells of the ocular, nasal or buccal mucosa, changes their genetic code. (mutation) and convert them into aggressor and multiplier cells.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고 지방껍질로 쌓여 있는 단백질 분자이고, 눈, 코, 입안 점막의 세포 등에 흡착되면 유전정보가 바뀌게(변형) 되고, 공격인자와 중폭세포로 전환됩니다.

    * Since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but a protein molecule, it is not killed, but decays on its own. The disintegration time depends on the temperature, humidity and type of material where it lies.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고 단백질분자기 때문에 죽는게 아니고 스스로 부패됩니다. 분해시간은 온도, 습도, 그리고 붙은 표면에 따라 다릅니다.

    * The virus is very fragile; the only thing that protects it is a thin outer layer of fat. That is why any soap or detergent is the best remedy, because the foam CUTS the FAT (that is why you have to rub so much: for 20 seconds or more, to make a lot of foam).

    바이러스는 외부 단백질막이 유일한 방어막이기 때문에 아주 약합니다. 바로 비누나 세탁제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되는 이유인 것이, 비누거품이 지방을 분해하기때문입니다. (이것이 손을 20초이상 잘 씻어 충분한 거품을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By dissolving the fat layer, the protein molecule disperses and breaks down on its own.

    지방막을 녹이므로서 단백질분자를 녹이고 스스로 분해되게 합니다.

    * HEAT melts fat; this is why it is so good to use water above 77 degrees Fahrenheit for washing hands, clothes and everything. In addition, hot water makes more foam and that makes it even more useful.

    열은 지방을 녹입니다. 때문에 손 옷 등 무엇이던 씻을 때는 25C 이상 따듯한 물을 쓰도록 하고, 특히 거품이 잘 나면 더 이롭습니다.

    * Alcohol or any mixture with alcohol over 65% DISSOLVES ANY FAT, especially the external lipid layer of the virus.

    알콜이나 65프로 이상 알콜 혼합용액이 모든 지방을 녹입니다. 특히 바이러스의 외지질막을 잘 녹입니다.

    * Any mix with 1 part bleach and 5 parts water directly dissolves the protein, breaks it down from the inside.

    표백제 1 당 물 5을 희석한 용액이 단백질을 직접 녹이고 속에서부터 분해시킵니다.

    * Oxygenated water helps long after soap, alcohol and chlorine, because peroxide dissolves the virus protein, but you have to use it pure and it hurts your skin.

    바이러스 단백질은 비누 알콜 클로린 소독 후 산소화용액으로 지속적 효과가 있는데, 순수형태이야 하고 피부를 상하게 할 수 있슴

    * NO BACTERICIDE OR ANTIBIOTIC SERVES.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like bacteria; antibodies cannot kill what is not alive.

    항박테리아나 항생제는 소용이 없슴.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같이 생물이 아님. 항생제로는 생물이 아닌 것을 죽일 수 없슴

    * NEVER shake used or unused clothing, sheets or cloth. While it is glued to a porous surface, it is very inert and disintegrates only
    -between 3 hours (fabric and porous),
    -4 hours (copper and wood)
    -24 hours (cardboard),
    - 42 hours (metal) and
    -72 hours (plastic).

    사용했거나 쓰지 않은 옷, 시트, 옷감을 절대 털지 마세요. 구멍있는 곳에 자리 잡으면 털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야 분해 됨.
    - 옷감, 구멍 3시간
    - 구리, 목재 4시간
    - 카드보드박스 24시간
    - 금속 48시간
    - 플라스틱 72시간

    But if you shake it or use a feather duster, the virus molecules float in the air for up to 3 hours, and can lodge in your nose.

    그렇지 않고 털거나 먼지털이로 털면 바이러스분자가 최고 3시간동안 공기중에 떠다니다 코속으로 들어가 자리잡을 수 있슴

    * The virus molecules remain very stable in external cold, or artificial as air conditioners in houses and cars.

    바이러스분자는 바깥 추위나, 집 차안 에어컨에서 아주 안정적임.

    They also need moisture to stay stable, and especially darkness. Therefore, dehumidified, dry, warm and bright environments will degrade it faster.

    또 놈들은 안정화되려면, 특히 어두운 곳에서, 습기가 필요함  따라서 습기가 재거된, 건조하고 따듯하고 밝은 환경에서 더 빨리 분해됨

    * UV LIGHT on any object that may contain it breaks down the virus protein. For example, to disinfect and reuse a mask is perfect. Be careful, it also breaks down collagen (which is protein) in the skin.

    자외선이나 자외선이 포함된 모든것이 바이러스단백질을 분해함. 예를 들어 자외선으로 마스크를 소독해서 다시 쓸 수 있슴. 하지만 피부도 콜라겐 단백질로 되어있으니 조심해야 함

    * The virus CANNOT go through healthy skin.

    바이러스는 건강한 피부를 통과할 수 없슴

    * Vinegar is NOT useful because it does not break down the protective layer of fat.

    식초용액은 지방보호막을 분해하지 못하니 소용이 없슴

    * NO SPIRITS, NOR VODKA, serve. The strongest vodka is 40% alcohol, and you need 65%.

    술, 보드카도 소용 없슴. 아무리 쎈 보드카도 40프로 정도임. 65프로가 필요함

    * LISTERINE IF IT SERVES! It is 65% alcohol.

    구강 가글 리스테린은 65%알콜이라 효과가 있슴

    * The more confined the space, the more concentration of the virus there can be. The more open or naturally ventilated, the less.

    밀폐된 공간일수록 바이러스 농도가 높을 수 있슴. 열린공간이나 야외 일수록 농도가 낮음

    * You have to wash your hands before and after touching mucosa, food, locks, knobs, switches, remote control, cell phone, watches, computers, desks, TV, etc. And when using the bathroom.

    점막, 음식, 자물쇠, 문고리, 스위치, 리모콘, 핸폰, 시계, 컴퓨터, 책상, TV 등을 만진 전 후 꼭 손을 씻을것. 그리고, 화장실도...

    * You have to Moisturize dry hands from so much washing them, because the molecules can hide in the micro cracks. The thicker the moisturizer, the better.

    손을 자주 씻기때문에 꼭 보습제를 쓰는데, 안 그러면 피부 미세 걸라진곳에 바아러스가 숨을 수 있슴.
    두텁게 보습제를 바를 수록 더 좋음

    * Also keep your NAILS SHORT so that the virus does not hide there.

    그리고, 손톱도 짧게해서 바이러스가 숨지 못하게 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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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여기 이렇게 글을 남기기가 좀 민망하지만 지금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글을 올립니다

    저는 메릴랜드에서 근무하는 중환자 및 호흡기 의사입니다.
    지금 미국은 점점 코로나 케이스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3/16 11:45 PM) 기준으로 4661 케이스입니다. 거의 이태리 그래프를 따라가고 있는 추세이고 이제 곧 아마 1주 이내로 1만 케이스 이상으로 넘어갈 것으로 추정됩니다. 밑에 사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미국은 한국처럼 전국민 보험이 아니기때문에 혹시 증상이 있으시더라도 state 에서 지정한 보건소라던지 검사 센터가 있는게 아닙니다. Primary care physician한테 전화하셔야합니다. 각 PCP office마다 protocol 이 아마 지금은 정해졌을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아직 정확한 protocol 이 없는 곳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오니 일단은 PCP 연락하시고 거기서 하라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대부분 큰 병원같은 경우는 이미 drive through site를 주차장이라던지 어떤 공터에 만들어서 그곳으로 환자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처럼 많이 검사 kit가 없기 때문에 아직은 아주 strict 한 criteria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1>한국이나 이태리, 이란, 중국, 일본을 다녀온 사람중에 증상 있는 사람

    2>14일 이내 covid-19 확진된 사람과 contact이 있었던 경우는 검사를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증상이 없거나 mild 한 경우는 집으로 가서 14일 동안 자가격리하라고 합니다. 아주 아픈 경우는 입원시켜줍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집으로 보냅니다. 지난주 금욜에 press conference에서 검사 kit을 million 인가 만들었고 배급했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실정입니다.

    지금 미국은 케이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고 마스크가 저희 의료진들에게도 부족해질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지금으로써 virus 를 contain할수 있는 방법은 social distancing 밖에 없습니다. 모두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하고싶지만 그러면 정말 나중에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없을 가능성이 다분히도 높기때문에 아예 사람과의 접촉을 말라는 것입니다 (=social distancing).

    중국과 한국 케이스에서 봤듯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중에 증상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asymptomatic carrier 들 때문에 community spread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사람들은 검사도 안해주기 때문에 만약 social distancing (집에 있고 사람들 안만나기) 을 하지 않으면 계속 케이스 숫자는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 혹시 한국 다녀온 친구랑 놀고있나요? 아무 증상 없어도 carrier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social distancing이 중요합니다. 지금 유학생들이나 학생들 중에 왜이렇게 난리인가 하며 밖에 나가시는 분들 있으실수 있는데 그러면 계속 미국은 케이스가 늘어날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medical resources가 고갈되어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게 될수 있습니다.

    저 그래프에서 보시다시피 만약 지금대로 계속 가다가는 이태리랑 같은 상황이 될것입니다. 약 3주 이내에 미국 전역의 ICU bed는 차게 됩니다. 이태리가 병원보다 환자가 많아서 입원을 못하고 치료를 못받아서 그만큼 죽은 환자가 많은겁니다 (이태리 100명중에 8명 죽음. 한국 100명중에 0.9명 죽음. 미국 지금까지 데이터에 의하면 100명에 2명 죽음).

    이태리도 처음에는 사망률이 미국정도였습니다. 즉처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을때는 100명중에 2명 죽었는데, 점점 병원과 health care resources가 고갈되고 입원 및 치료를 못하게 되어 100명중 8명이 죽는 상태가 된겁니다. 미국도 지금대로 가면 그렇게 될것입니다.

    지금 미국 의료진들이 social distancing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빠, 레스토랑, 영화관 등등이 문을 닫은 이유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늘어난다면 곧 의료 시스템은 마비가 될것입니다.

    그러면 원래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heart attack, stroke, shock 환자들은 ICU에 들어오지도 못할수도 있고 ICU bed를 기다리다 죽을수 있습니다. 또한 medical resource가 고갈되어 원래 받을만한 치료수준의 치료를 받지 못할수있습니다.

    지금 이태리 그리고 심지어 시애틀에서조차 누구를 살릴지를 의사들이 결정해야하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이태리는 60대 이상은 포기하고 어린, 가능성 있는 환자들을 선택적으로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 outbreak는 심각합니다

    현재 elective surgery는 미국 거의 모든 병원에서 이미 취소가 되었으며 routine follow up 또한 취소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어디 나가지 마시고 집에 계시는 것을 권유드리고,
    wash your hands, stay away by 6 feet if you have to go out and meet someone. If you feel sick, don’t go to work and spread the virus and get other people sick. Thats how the virus spreads and conitnues to spread because the people that you work with are now exposed and they are gonna go home and expose to their familes and they will go out and expose/spread to others. This is extremely important that we practice social distancing!!!

    It will most likely not be under containment at least until June/July and maybe even through the fall season.

    이렇게 심각합니다.
    의료진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수술실이 중환자실로 변환되고 있습니다.
    미국 모든 사람들이 social distancing 하지 않으면 정말 곧 제가 말하는 심각한 health care capacity saturation 상태가 올것입니다.

    이거 많은 곳에 퍼트려주세요.
    정말 social distancing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나하나쯤이야 했다가는 그로인한 파장이 너무 큽니다.
    모두가 같이 social distancing을 할때 그나마 flatten the curve를 할수 있고 그래야 저 그래프에서 빨간 라인을 넘기지 않을수 있고 그래야 ICU가 overflow되지 않고 그래야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이 제대로된 healthcare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노력합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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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북한에서 감옥살이 한바 있는 임현수 목사님께서 페북에 쓰신 내용을 공유합니다.

    코로나 방콕하면서 묵상한 글

    요즘 세상을 보면서 속수무책 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막강한 미국도 힘을 못쓰고, 거대한 중국도 맥을 못추고,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도 대책이 없습니다.

    떵떵 거리던 대기업도 주저앉고, 부자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최고로 건강하다는 세계적인 운동선수도 쓰러지고, 20 대 젊은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 아기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속수무책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잠18:14)

    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마음을 강하게 하라 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근신의 마음이라...(딤후1:7)

    오늘도 지구상에서는 매일 15만 명이상이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사실 몇 백명 죽는 것은 큰 이슈가 될 수 없지요.

    그러나 지금은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입니다.

    불과 지난 한 두달 동안 너무도 놀라운 변화가 우리에게 찾아 왔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예술 체육 등 모든 분야에 쓰나미 같이 엄청난 파도가밀려 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불황이 찾아왔고, 모든 사람들의 왕래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식당도, 극장도, 비행기도, 기차도, 버스도 텅텅 비었습니다. 공항은 패쇄 되다시피 되었고 200개 이상의 나라가 한국 사람 오지 말라고 쇠 빗장으로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100년 200년 만에 아니 500년 1,000 년 만에 예배당을 닫았습니다. 강제로 닫은 것이 아니고 교회 스스로 문을 닫았습니다.

    갑자기 일상 생활이 바뀐 것 입니다.
    저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의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거의 3년 가까이 어둠의 길고 긴 터널을 걷게 되었습니다. 긴긴 어둠의 시간이 계속 되었습니다.

    정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한두 달이 아닙니다.

    독방에서 949일을 혼자 보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두달 집안에 있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입니다. 오히려 즐겁고 기쁩니다. 잘 먹고 잘 쉬고 운동하고 책 읽고 영화도 보고 찬송과 예배시간도 제한 받지 않고.... 너무 좋지요.  매일 8시간 씩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노동이 없는 안식이란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혼자서 3,000번 밥을 먹었습니다. 같이 식구들과 밥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지상천국이지요. 가정의 회복도 축복이고요. 주일을 134번을 혼자 예배 드렸습니다. 인터넷으로 유투브로 예배 할 수 있다는 것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이지요.

    많은 죄수를 수용할 수 있는 감옥 이었지만 저 하나 집어넣고 50명의 간수가 지켰습니다.....24시간 2 시간 씩 교대로 2.7개월을 .... 아무도 감독하지 않고, 자가격리라는 것도 2 주간만 지나면 자유니까 어려울 것이 없지요. 총 차고 옆에서 24시간 감사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노래 할 일이지요.

    처음에 두 달 노동하면서 몸은 다 망가졌습니다. 12지장이 상해서 한 달 동안 배를 움켜 잡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몸이 망가지지는 않지요. 12지장이 상할 일도 없지요. 정신상태만 건강하면 잠 못주무실 일은 없지요.

    엄청난 욕설과 스트레스로 3개월간 논스톱으로 설사를 하며 고생했습니다. 차가운 곳에오래 앉아 있으면서 병이 생겨 전신마취 하고 수술도 하였습니다. 끔찍한 병원에서 공포스런 분위기를 느끼면서 수술대 앞으로 갈 일도 없지요.

    겨울에 석탄 창고에 들어가 하루 8시간 씩 중노동하며 얼어붙은 석탄을 까다가 손 바닥에물집이 생기고 피가 터지더니 열손가락이 전부 관절염이 걸려 접히지가 않았습니다. (손은 아직도 많이 아픕니다) 갈아 입을 옷도 없는데 석탄재로 더러워진 몸을 겨울에 찬물로 씻고 잘 이유도 없지요. 우리는 따뜻한 잠옷 입고, 침대에서 전기장판 갈아 놓고 자고, 따뜻한 온돌에서 자지요.

    몸무게는 23키로그램이 빠졌고 발가락은 전부 동상에 걸려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2년 7개월 9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 할수가 없습니다. 두 달동안의 일을 말씀드린 것 입니다. 이런 고통이 15번 이상 계속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예기치 않은 일이 갑자기 나에게도 찾아 올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감옥에 혼자 있다보니 함께하던 가족들, 교회 성도들, 함께 예배하던  성도들, ... 교제하던형제들이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가족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 싶었습니다.
    지나고보니 ......평범했던 일상생활이 엄청난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누구나 이야기 하는 것처럼 평범한 삶의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날마다 먹는 평범한 식사를 감사해야 합니다.
    매일 사용하는 평범한 온수 사용을 감사해야합니다.
    잘 모르고 매일 누렸던 평범한 자유의 소중함을 알아야합니다.
    요즘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있는 우리 국민들이 ... 지난 한 달전 평범하게 살던 삶의 귀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 입니다.

    패쇄된 공간에서 해방된 것이 마치 죽음에서 해방 된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자유의 기쁨을 맘껏 누리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집안에서 1년을 꼼짝없이 지내라고 해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닙니다….

    • 가정의 중요성

    오랜만에 집에서 된장국에 집밥을 먹으며 가정을 느낍니다.
    겨우 산책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행복해하는 강아지들 모습도 보게 됩니다.

    무너져 가는 로마를 보면서 “ 애국자며 가정을 지키라” 고 했던 철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지금 가정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사재기 하는 모습들을 보며 인간의 이기성을 봅니다.
    조금만 더 심해지면 사회 폭동이 일어나게 될 것 입니다.

    아이티는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사재기, 총기 소지, 주민 폭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총과 총알 사재기가 극성이고 수퍼마켓에서 사재기는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나눔의 정신이 아직도 빈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입니다.

    • 영향력의 청지기

    병균의 급속한 전파를 보며 관계를 통한 영향력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스킨쉽을 통해, 대화 하는 가운데 코로나 19 가 전염 되듯이 ....
    반대로 우리는 이런 친밀함 속에서 복음을 편만하게 전파하는 영향력의 청지기가 될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초대교회의 영향력을 말하면서 성경은 “염병처럼 번져갔다”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이렇게 무섭게 번져가는 새로운 부흥을 꿈꾸어 봅니다.

    과소비 성향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물,식료품, 약 등 몇가지 라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너무 과소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별로 필요없는 것들, 안 먹어도 안 사도 되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나요?
    오히려 몸에 해로운 것, 몸을 망치는 것도 살펴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집안에서 썩고 있는 것들, 곰팡이 생기고 있는 것들, 전혀 안쓰고 물건들, 한번도 입지 않고 있는 옷가지들, 신지 않는 신발등을 전부 내다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습니다.

    • 자유의지

    나누는 삶을 살든가 내 것부터 사재기 하던가 우리들의 자유의지가 시험 받는 시간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세상이 지상천국이 될 것인가?
    세상 지옥이 될 것인가?
    자신을 살펴 볼 수 있는 시간 입니다.
    자유를 선용하시나요?

    • 생활습관 고침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개발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는 화장지, 휴지, 물수건, 페퍼 타올, 냅킨 등을 너무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신문, 잡지, 책 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나무를 수없이 베야하고 그래서 지구의 사막화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현실화 시키는 것이 힘들겠지만 화장실 세척도 종이 보다는 물이 훨씬 위생적입니다.
    원시적인 방법도 있고 비대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북한 감옥에서 근 3년 동안 물로 세척한 경험이 있습니다.
    비대가 아니고 화장지도 모자랐지만 물로 세척하니 한결 깨끗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개발 할 수도 있겠다는 말 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공장이 서고, 비행기가 서고, 자동차가 서니 지구가 건강해졌습니다.
    그동안 인간의 소유욕을 넘은 탐욕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코로나가 지구 살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네요.

    • 양자택일

    더 악해질지 아니면 더 겸손하게 회개 할지? 사람은 고통을 겪게 될 때 두 극단으로 나누어 집니다.

    이런 기회에 겸손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인간이란 흙으로 만들어지고 코로 숨쉬는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아직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감기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아직도모르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전부 모르는 것 뿐 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들은 대적 하십니다.

    • 시간 관리

    꼼짝없이 방콕하면서...그동안 너무 분주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그동안 우리는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갈 때 안갈 때 가리지 않았습니다.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야 합니다.

    최선과 차선을 구별해야 합니다. 책 읽는 시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 신천지 심판

    신천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이비 집단 같은 것이 수 많은 젊은이들을 저렇게 바보로 만들어놓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번에 신천지의 모든 실체가 드러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나 상처는너무도 클 것입니다.

    신천지 뿐이 아닙니다. 만민중앙교회를 비롯해 적어도 200 만명의 영혼들이 사이비 집단에 도둑질 당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영적 무관심, 도덕적 해이, 정치적 타락, 육체만생각하는 물질적 가치관, 성적 부패로 사회가 혼란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 큰 소리치던 미국

    미국 조차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권력무상을 느낍니다.

    911사태에 이어 미국에게 주시는 두 번째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뉴욕은 굉장히 심각 합니다. 완전 공포 분위기 입니다. 죄가 많아서 그럴까요?

    • 공산당 심판...

    중국,이란, 이탈리야, 한국, 스페인, 등 친중 국가들이 먼저 매를 맞는 것을 보면서 공산당을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됩니다. 무신론 공산주의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백해무익한 집단입니다.

    미국과 호주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가장 더럽고 추하고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동성애자를위한 미친 대 축제를 없애야 합니다.

    말세 징조

    다니엘 12:4누가복음 21:11절을 연결해 보면 코로나 19이 급속확산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세에는 교통이 빨라지고 지식이 급증 합니다.
    하루 동안에 수 천만명이 지구촌의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세에는 전염병이 많아 질 것 이라고 말씀 하셨기에 전염병이 초고속으로 확산되는 것 입니다.

    모빌리티(mobility)라는 신용어가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장 크게 변화 시켰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분주합니다.
    좀 자제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전화위복의 경우도 있습니다.

    호경기는 7:3 그리고 불경기는 3:7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경기 때는 7명이 웃고 3명이 운다.
    그러나 불경기 때는 3명이 웃고 7명이 운다는 말 입니다.

    홈쇼핑 마켓, E 컴머스, 아마존을 비롯한 배달 사업체는 지금 호황을 누리고있습니다.
    마스크 만드는 업체도 대박이고, 식품점과 슈퍼마켓도 사재기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소독제, 휴지 등도 마찬가지로 호황입니다.
    소규모 편의점도 잘 됩니다.
    피자를 비롯한 take out 비지니스 도 잘되네요.

    불경기 중에도 좋은 비지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빨리 감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마스크 손으로 만들어서 팔아도 용돈 벌 것 같네요....

    •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신의 목소리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말처럼 지금은 인류가 겸허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주님과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죄와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 인간의 죽음 :

    코로나바이러스 입자 크기는 고해상 전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80-100nm (나노미터)크기의 지극히 작은 입자입니다. ( 참고로: 나노미터 nm는 1/천만 센티미터cm )

    그런데 지금 지구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숨어있고 바이러스만이 죽음의 사자가 되어 자유롭게 활개치고 다닙니다. 기가막힌 노릇 입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정말 무력한 존재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내게 가까이오면 상황은완전히 달라 집니다.

    이탈리아에서, 중국에서 몇 명 죽었데 하면서 남의 얘기처럼 말하던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무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죽음은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흑인이나 백인에게나 여전히 무섭고, 어둡고, 차갑고, 너무나 이질적이고, 가장 비자연스러운것 입니다.

    이번에 인류는 모두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엄밀히 말하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고 있는 것 입니다. 죽음은 이미 정해진 것이니까...

    그러나 이젠 어둠(패쇄된 공간) 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절을 기쁨으로 맞이 합니다.

    • 분주한 여행

    북한 산골 감옥에 혼자 감금되어 있으면서 자유가 축복이었음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안에 저 멀리 보이는 산 위의 오솔길을 너무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병원에 갇혀 있던 두 달간은 한발자국도 움직일수 없는 패쇄 공간이었습니다.
    완전한 고립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분주히 돌아 다녔던 삶을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다녔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내게 맡겨진 일에 불성실했고, 경건의 연습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고, 오히려 세상 구경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것도 사실 입니다.

    우리들도 너무 분주하지 않습니까?
    너무 많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 짓고 여행 다니느라 분주하며... 그러면서도....
    배고프고 굶주리고 외롭고 병든 자들에게 무관심 하지 않나요?

    혼자 즐기느라...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안낳고... 시간나면 온 세상 다니고... 심지어 섹스 관광까지 하며....라이따한.... 피코노.... 중국에..파라과이에.... 책임 지지도 못 할 아이들 낳게하고...... 얼굴도 모르는 한국 아버지 기다리게 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주님 말씀 하십니다.
    내게로 돌아 오라.
    이젠 나와 함께하자.
    내손 잡고 걷자.
    나와 동행하자.
    내음성을 들어라.
    너무 분주하게 살지 말라.

    제가 노동하면서 가장 많이 불렀던 찬송 가사입니다.
    나는야 친구 되신 하나님과 푸른초장 한없이 거니네.
    손을 잡고 기쁨을 누리면서 단 둘이서 한없이 거니네.

    지나간 일들 내게 말씀하며 앞날의 될 일 내가 들을 때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사실 믿으니 이 세상 천국같애.
    나는야 친구 되신 하나님과 영원히 다정하게 지내리.
    천지는 모두 없어진다해도 우린 영원히 지내게 되리.

    이 찬송을 노동하면서 끝없이 불렀습니다.
    주와 함께 함이 축복 입니다.
    아버지 집에 거함이 축복 입니다

    너희가 정욕과 음란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자들의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뜻을 따라 살았던 것이 지나간 때로 족하지 않느냐?

    돼지가 다시 시궁창에 눕고,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살면 안됩니다.
    지금 어디에도 여행 다니지 못하고,
    돈이 있어도 비행기 타지도 못하고,
    텅텅빈 KTX 타고 시외버스타고 다니면서 국민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 200 개 이상 나라 한국인 입국금지

    강제격리, 입국금지, 왕따, 노 코리아 50억 인구 반대, 갑자기 죄인 취급....

    한국 사람들 남 무시 하는데는 일가견 있는 것 같습니다.
    흑인 무시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 무시하고, 없는 사람 무시하고, 헌차 타는 사람들 무시하고, 셋방 사는 사람 무시하고...

    사람 쳐다 보지 않고 자동차 쳐다 보면서 인사하는 호텔 주차 요원들....

    그렇게 사람 무시 하더니 지금 갑자기 전 세계 200 개국이 넘는 나라들이 한국 사람들 입국 금지를 내리네요.

    동남아와 중동국가들, 그리고 아프리카 나라들까지도 한국인을 무시하고 강제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철저하게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무시해 온 것에 대한 정확한 인과응보 같이 느껴집니다.

    캐나다에서도 한국 사람에 대한 테러가 여러 차례있었습니다 (4.1일 캐나다 한국일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시 하지말아야 합니다.
    흑인을 연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국에 가기도 힘든데 자기 발로 찾아온 외국인들을 귀중히 여기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제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 입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 마스크

    전 국민이 마스크 쓰는 것은 말을 적게 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너무 많은 거짓 뉴스를 퍼날르고,
    무책임한 욕설을 너무 함부로 내 뱉고,
    기도하기 보다 남 비난하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았나요?
    침묵하고 자제하고 진실하고 의롭고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삶을 노력하라는 말씀 아닐까요?

    • 교회 예배 금지

    교회들이 갑자기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공산국가의 지하교회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모이는 것 좋지만 흩어져 전도하는 사역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Coming structure 와 Going structure 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가라! 는 명령이 지상명령입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모든 민족에게 가라.
    일어나 가서 외치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교회의 소금이 아니다.
    우리의 사역의 현장은 세상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 입니다.

    세상의 직업, 직장은 우리 크리스천 들의 사역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 예배당 교회 크기 자랑

    텅빈 허무한 예배당을 바라 보면서 우리는 한국 교회의 거품을 봅니다.
    사람 머리 수만 세면서 숫자가 많아지면 부흥이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신천지 같은 엉터리 이단안에 사람들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신천지 졸업식 장면)

    교회 지도자들이 기도하지 않고 졸며 자는 사이에 사탄이 가라지를 뿌려 수 많은 사람들이 미혹의 영에 걸려 이단에 빠졌습니다.

    예배당 자랑, 숫자 자랑, 늘어 놓으면서 교회 성장을 외적인 화려함에 두는 사이에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이 교회에서 대거 빠져 나가는 대이동을 했습니다.

    지도자들의 상업화된 사고 방식 때문 입니다.
    교회 중직자들의 세상적인 가치관 때문입니다.

    교파의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각교단마다…파벌의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좌우 보수 진보 중도…권위의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평신도와 성직자를 나누는 잘못 차별의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빈부차가 심해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일 지방차별을 회개해야 합니다.
    지방색 때문에 갈라지는 국력 교만 혈기 방자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나운자도 회개해야 합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왕따 만든것 회개해야 합니다.
    용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통일을 앞두고 한국 교회부터 통일되고, 연합 되고, 화목해야 합니다.
    교단과 교파의 장벽이 무너져야 합니다.
    싸움이 그쳐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섬김의리더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형제우애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자아의 죽음을 선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세상을 본 받지 않음으로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령충만 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주 예수님 !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더러운 죄악에서 건져 주세요.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세요.
    교회의 거룩성이 회복되게 하소서.
    찬송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산기도 금식, 새벽, 철야 기도가 회복되게 하소서.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다시 부흥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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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을 볼 때 장갑을 끼면 더 안전할까?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는 물론 장갑을 끼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히 마트의 과일 매대 앞에는 장갑 낀 손으로 오렌지를 만지고
    바나나를 고르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장을 볼 때 장갑을 끼면 더 안전할까?

    미국 ‘멘스헬스’가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세균학자 켈리 레이놀즈 박사에 따르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손을 통과해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손에 보호막을 칠 필요는 없다.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해도 마찬가지.
    손잡이가 오염된 카트가 있다고 하자.
    장갑을 끼고 카트를 밀면 좀 나을까?
    손잡이를 잡았다가 마요네즈를 만지고, 참치 캔을 만지고, 또 휴대폰을 만진다면?
    맨손으로 만진 것과 똑같이 바이러스를 퍼뜨리게 될 것이다.

    레이놀즈 박사는 장갑을 끼면 손을 덜 씻게 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맨손으로 장을 봤다면? 집에 들어와 장바구니를 내려놓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을 것이다.
    고기며 두부를 정리해 넣는 건 그 다음 일. 그런데 장갑을 꼈다면?
    바로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과 딸기를 넣은 다음 장갑을 벗기 쉽다.
    즉 마트에서 묻혀온 바이러스를 부엌 곳곳에 퍼트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장갑을 잘못 벗으면 거기 있던 온갖 바이러스가 몸에 묻게 된다.
    그런데 장갑을 제대로 벗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의료계 종사자들 중에도 30%는 장갑을 잘못 벗는 오류를 범했다.

    혹시 일회용 장갑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벗어야 할까?
    우선 장갑 목을 잡는다.
    그런 다음 뒤집듯이, 즉 안이 밖으로 나오도록 벗어야 한다.
    그걸 다른 손, 즉 장갑 낀 손에 말아 쥐고 맨손으로 장갑 목을 잡는다.
    다시 조심스럽게 거꾸로 벗겨내서 두 짝이 공처럼 말리도록 한다.
    장갑을 벗어 휴지통에 버린 후에는 손에 비누를 묻혀 따뜻한 물에 깨끗이 씻어야 한다.

    장갑은 환자를 볼 때 필요하다.
    장을 볼 때는 장갑을 낄 이유가 전혀 없다. 장갑은 바이러스를 막는데 도움이 되기보다 해를 끼치기 쉽다.
    중요한 건 장을 보고 마트를 나설 때, 그리고 집에 돌아와 바로 깨끗하게 손을 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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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에 걸려 입원 했다가 퇴원한 30대 여성의 이야기

    저는 코로나 걸려서 3주를 죽음을 넘나들다 지금은 회복단계에있는 30대 여자입니다.
    제 증상은 아래와 같았어요.

    1. 미열 시작 되면서 , 냄새 입맛등이 없어지는데. 그수준이 배에서는 꼬르륵되고 어지럽고 난리가나는데
    입에 음식이 들어가질 못합니다. 목이 말라서 물을 찾게되는데, 밥은 뱉어내거나 토하구요.. 물도 역해서
    단맛들어간 게토레이만 주구장창 먹었어요..

    2. 미열이 시작된후 3일이 흘렀고 열이 점점 오르는게 느껴졌을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전트 케어를 갔습니다.
    가서 진단을 받고 닥터가 플루검사 먼저해보자고 플루검사를 했으나 네거티브(플루아님) 으로 나와서 닥터는
    감기증상 같다고 혹시모르니 집에서 일주일 격리하라고 했고 만약 열이 가라앉지않고 증상이 악화되면 일주일후에
    병원응급실로 가라고했어요.. 그래서 격리했습니다.

    3. 일주일이 지났고. 미열이던저는 고열로 바뀌고 어마무시한 두통이 동반되기 시작됬어요. 
    두통은 뇌를 쪼게서 딱아내고 싶을만큼 아팠습니다. 당연히 일주일동안 밥은커녕 게토레이만 마셨구요..
    저는 너무 초반에 걸려 타이레놀대신 에드빌을 먹었고, 그로인해 제상태는 악화되었어요.
    에드빌..절대 먹지마세요.
    * 추가 : 이때, 엄청 추웠어요.. 너무추워서 침대 가 같이 덜덜덜 떨릴정도로 추워요..

    4. 남편이 너무 놀라서 저를 홀리네임병원 으로 데려갔으나, 제 상태를 본 응급실 레지스터 분은 소리를 지르면서
    빨리 마스크 쓰고 나가라고, 너희한테는 코로나 검사 안해준다고 하더군요.. 그분...덕분에 저는 다음날 죽을 고비를 맞았습니다.
    그래도 간호사 어떤 분이 나와서 코로나 검사 해주긴 할꺼지만, 여러 상황때문에 너네가 여기서 걸려갈수있고 입원은 당연히 안되고 등을 설명해줬습니다. 그말듣고 저는 그냥 됬다고 집에가자고 했죠...

    5. 이날은... 제가 두통때문에 계속울고 기침을계속하며, 가슴통증이 너무심했고 일주일넘게 물만마신저는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어요.. 다행히 저희 회사사장님이 저 처음아플때부터 하루에 한번씩 전화해서 관리 해주셨는데.. 에드빌먹었다는사실에 너무놀라면서 타이레놀만 먹으라고하셨고 안되겠다며, 잉글우드 병원으로 가라고 말씀주셔서 저희는 잉글우드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6. 잉글우드 병원에서 한국 간호사 분을 만나 증상을 체크하고 바로 폐사진을 찍어보더니 폐에 인펙션이 너무심해서 당장 입원하고 코로나검사하라고하고는 산소튜브를 끼고 바로 입원을했어요...

    7. 코로나검사 그때는 결과가 2주정도 걸렸거든요... 아직 확진은 모르지만.. 폐 인펙션이 심하고 고열에 면역력이 너무약해 노인같다라는말씀하시고, 모든증상은 코로나와 일치한다하여 다음날 안되겠다며, 코로나 확진으로 하고 바로 약투여를 시작하는데.. 모두 아시다시피.. 지금 약이 없어요.. 그래서 비타민씨를 미친듯이 IV로 맞구요...  저는 말라리아 그 약 한번 투여 받았었습니다( 저도지금생각하면 .. 이해가 가질않는데 그땐 fda승인전이었고, 트럼프가 승인됬다고 거짓말 했던 그 시기에요.. 그래도 그약덕에 산거같아요 저는 ㅠ). 엄청난 두통은 계속 타이래놀과 안티바이오틱스?항생제 같은약을 계속 먹었구요.. 엄청난 설사와 두통그리고 산소로 병원입원하고 5일정도 힘들었어요... 저녘에는 산소투브때문인지 제가 패닉어택이온건지 너무무서워서 숨이 멈추는듯하게 놀라서 깨는데 잠을 못자요  ㅠ 깨면 두통이 어마무시하게 오구요...

    8. 여러 닥터들과 여러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저는 5일째 저녘즘부터는 두통도 사라지고 산소포화도 도 87~90% 를 와따가따햇고 혈색도 좋아졌어요.. 설사는 계속했지만, 저혼자 IV끌고 화장실 와따가따 할정도로 좋아졋어요..
    그리고 저는 그다음 일요일에 아직 다 나으진 않았지만 퇴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병실도 부족하고 간호사 의사분들도 부족한 상황이라.. 저처럼 나아지는게 보이고 산소포화도만 올라가면 바로 퇴원시키더라구요...

    9. 퇴원 하고 저는 집앞계단도 못올라가 쓰러질뻔했지만, 집에돌아와 몇주만에하는 샤워를하고 사람처럼 침대에 앉을수있어서 너무편햇어요..
    그날이후 2~3일후부터 저는 밥을먹기시작했고 폐가 쪼그라드는 바람에 숨쉬는 연습을 해서 폐를 펼쳐야 해서 지금도 연습중이에요.. 아 그리고.. 기침은 현재 2주정도 지났는데도 계속 합니다. 아직 다 낫진 않았지만~ 지금은 재택근무도 수월하게 하고 스트레칭?정도 할수있을만큼 건강올라왔어요...


    제 경험담이구요...아직 무서워하면서 집밖으로는 안나가고있지만..
    여러분....저는 30대 중반 여성이었고 그래도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여러분들의 아이와 부모님을 생각해주세요 ㅠ 그들은 견디지못하고 죽을 확율이 너무큽니다... 약도없어 비타민씨만 어마무시하게 퍼붓기때문에.. 아픈걸 다 견디고 혼자 이겨내야 살수있는 형태에요...
    어떤분들은 회사에 나가야하는 현실인걸 알고있습니다. 그런분들은 마스크 꼭 끼시구요.. 집에돌아오면 아이있는 집은 아이에게 다가가지 마세요... 바로 옷갈아입고 샤워부터 하세요...

    저는.. 아직도 왜 걸렸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회사 집 회사집 이었던 저는 지하주차장에서 회사로 올라가는 버튼 한번눌렀다고.. 혹은 남편에게 옮았다고 그렇게 추정할수밖에없구요.ㅠ

    난 무증상일꺼야. 감기처럼 지나가겠지 하는분들은 명심하세요... 당신이 문제가 아닙니다. 소중한 가족들이 문제이며, 가족이 없으신분들은 .. 이 바이러스는 혼자서 이겨낼수없어 혼자 죽어갈수밖에 없어요.. 지금 뉴저지 병원들은 혼자서 걸어오는 코로나환자들을 받지 않습니다. 쓰러져 구급차 혹은 실려와야 받아줘요....

    저 입원하고 퇴원을 일요일날했는데 , 저랑 같은 증상으로 다른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월요일아침에 죽었다더군요.. 심지어 나이차도 얼마 나지않는데...

    너무 무섭습니다.. 근데 아직도 산책하겠다며 오버펙 공원을 걸어다니는사람이 그렇게 많더군요...

    가족..꼭 생각하세요..
    지금은 가족을 챙길 시기에요...

    약간 증상이 있으신분들은 오렌지주스나 비터민씨를 많이 드시는걸 추천드려요..
    저처럼 몰라서  증상 끝까지 가셨다 하나님이 삶을 한번 더주셔서 다행히 돌아왔지만,
    그렇게까지 않가고 모두 건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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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알림

    저희가 의사들 정보통에서 받은 것 중요해서 알립니다.
    이것은 뉴욕 의과대학에서 온 것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비엔나 실험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환자들 대부분의 피에 애드빌 (Advil/ibuprofen)이 들어있음이 발견됐고,
    바이러스 증상에서 회복된 사람들은 ibuprofen을 복용하지 않은 것이 발견됐으니,
    꼭 필요하시면 Acetaminophen (바이엘 아스피린)을 복용하시래요.
    이 바이러스는 Advil이 10배는 증상을 악화시키고, 이것이 폐염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합니다.
    꼭 필요하시면 당분간 타이레놀(Tylenol)이나 바이엘 아스피린을 복용하세요.
    그리고 되도록 공중 화장실을 쓰시지 마시고 현재와 4월 첫번째 주까지 Virus가 창궐하는 시기라고하니
    더욱 외출을 삼가고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로 오히려 걱정을 유발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조심스레 이 정보를 나눕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라며 가까운 장래에 모든 동문님들을 반갑게 만나뵐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Doctor from NYU- FYI:
    Information from Vienna’s laboratory studying COVID-19 say vast majority of people who died had ibuprofen/Advil in their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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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 걸려서 죽을뻔하다
    살아난 경험담 이야기


    3주전에 기침나고, 열나고, 머리아프고, 두통있고, 설사도하고, 병원에 갔더니 받아주지도 않고
    집에만 있으라고하며 약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습니다.

    그 친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니 자신이 병을 고쳐야된다며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워서
    승리한 처방 이야기를 적어 올립니다.

    1. 생강을 껍질까고 깨끗이 씻어서 아주 얇게 썰어서 말린다.
    ( 말리는 이유는 한방에서 생 생강 보다 말린것이 효력이 4배나 많다고해서 말림) 말린 생강 한주먹.

    2.생 마늘 20개를 반씩 자른다.

    3.큰 커피컵으로 물 10컵.

    4.1.2.3.번을 냄비에 넣고 1시간을 끓여서 하루에 5. 6컵을 마시는데 마실때는 꿀을 꼭 넣어서 마시는데
    단맛이 더 좋다고 하네요. 그렇다고 너무 달게는 말구요 (적당히) 그리고 삶아진 생강은 말고 삶아진
    마늘 4. 5알씩 씹어서 울킨 물이랑 잡으수세요.

    * 곁들어서 먹은 약은 Echinacea complex와 열 떨어지는약과 몸살 감기약을 먹고 완전히 났다고 합니다.

    *코로나 걸리지 않으신 분들은 미리 예방하기 위에서는 위에 1번부터 4번과 Echinacea complex 2알씩 잡수시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와도 물리칠 수 있다 합니다.

    Echinacea complex는 화학제품에서 만든 약이 아니고 (Herb)약초로 만든 겁니다.



    * 참고로 제가 잘 아는 어느 화백(집사님)께서는 스웨덴에서는 Echinacea complex를 잘 사사용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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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본토가 지난 며칠 동안 감염된
    사람의 수를 크게 줄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루에 3번 식염수로 입을 헹구기만 하면 됩니다.
    완료되면 5분 동안 물을 마신다.

    바이러스는 목구멍과 폐를 침범 할 수 있기 때문에 식염수의 공격을 받으면 바이러스가 죽거나 위에서 흘러 나와
    위장에서 파괴 될 수 있습니다.

    약은 구입하지 마십시오.

    종합 아동 병원 왕 S 박사 :
    폐렴에 새로운 폐렴이 오기 전에 4일 동안 목구멍에 살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기침과 인후통을 시작합니다.
    그가 가능한 한 많은 따뜻한 물과 소금 또는 식초를 마실 수 있다면 세균을 제거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대로 이 메시지를 전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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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와 마스크


    NY Times에서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부족해 일반인 마스크 사용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N95가 아닌 home-made 마스크라도 사용함이 절실한 때입니다.  마침, 어제 저녁 TKCTV 내용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미국에서는 코로나19 급속히 확산 되었다고 합니다.

    전염병 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가 코로나19초기부터 갈팡질팡하며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등
    대재앙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김세연 기자의 보도입니다.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네바다주 정부로부터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연방정부, 그리고
    네바다주 보건당국자간에 주고 받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메일을 공개하고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혼돈과 재앙 그자체 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15명이 발생, 위기가 현실화 될 무렵인 지난달 13일에야 세계 각국의 코로나를 추적하고 관련문서를 검색 할 전문인력을 긴급채용한다고 공고를 냈고, 그뒤 2주간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로 확산돼 커뮤니티를 위협할 때도 명백한 혼돈 상태였다고 이 매체는 밝혔습니다.

    또 네바다주 보건당국이 코로나 잠재 감염자 80명이 발생했다고 질병통제 예방센터에 알렸으나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지난 4일에도 네바다주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정보가 부족하다. 미안하다’고 답하자, 네바다주는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답장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외에도 지난달 17일 앤소니 파우치 전염병 연구소장은 USA투데이 기고문을 통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손만 깨끗이 씼으면 된다’며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뉴욕 등지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파우치박사가 이같은 의견을 개진하자 미국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미국내 최고 전염병 전문가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대서특필했으며 이에 따라 엄청나게 붐비는 뉴욕시 지하철등이 코로나19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또 파우치박사는 미국에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후인 지난 8일 CBS 60미닛에 출연,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걸어다닐 이유가 없다. 마스크를 써야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만, 미국내에서는 절대적으로 마스크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에서는 메르스 상태 당시 한 여성 확진자가 2천여 명을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마스크를 쓰고 다녀 단 1명도 전염시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 뒤 마스크의 중요성이 알려졌고, 서울 등에서도 대부분이 마스크를 씀으로써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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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정부에서 지급하는 현금에 대한 업데이트

    많은 혼돈이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현금지급 발표 후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불확실 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3월30일에 IRS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1) 현금지급은 어떤 해의 세금보고를 기준으로 하나?
    답) 현금지금은 2018년이나 2019년 중 한 해라도 세금보고를 했으면 가능합니다. 싱글은 $75,000까지는 100%가 지급되지만, 초과되는 매 $100마다 $5씩 금액이 줄어 듭니다. 따라서 $99,000이 넘어가면 전혀 받지 못 합니다. 부부의 경우 $150,000까지 100% 지급, $198,000 이 넘어가면 전혀 받지 못합니다.

    2) IRS에서 어디로 돈을 보낼지 어떻게 파악하는가?
    답) 2019년 (2019년 세금보고가 아직 안되었다면 2018년) 세금보고에 나타난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된 금액을 세금보고에 사용한 은행계좌로 입금합니다.

    만약, 세금보고에 은행계좌 정보를 보고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IRS에서는 몇 주안으로 은행계좌 정보를 접수 받기 위한 웹사이트를 새로 만들어서 올릴 겁니다. 그 웹사이트에서 계좌 정보를 접수하시면 은행계좌로 현금 지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세금보고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현금 지급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
    답) 저소득측, 노약자, 사회보장금 수급자, 장애수당 수급자 등 세금보고를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현금 지급 자격이 되려면, IRS가 제공하는 간단한 세금보고 양식 (현재 IRS에서 준비 중)을 접수해야 합니다. 이때 은행계좌 정보도 같이 제공해야 합니다.

    4) 2018년이나 2019년 세금보고를 아직 하지 않았다면?
    답) 지금이라도 2018년이나 2019년 세금보고를 하시면 현금 지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현금 지급은 2020년 동안 계속 진행이 되기 때문에 안심하시고 차근차근 준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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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id 19백신을 위해,
    UH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의 친구로부터...

    빈의 COVID-19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소의 정보에 의하면 사망한
    사람의 대다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해열제
    "이부프로펜" 계열의 "애드빌" 등을
    복용했습니다.

    회복된 사람은
    "이부프로펜" 계열의 약을 복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증상이 있는 경우
    "아세트아미노펜"만 복용하세요!

    이 바이러스는 "이부프로펜"에서 번영시켜
    버립니다.
    복용하지 말아주세요.

    이 정보를
    각 가족 모두에게 전해주세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공유합시다.

    또는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세요.

    나는 밴쿠버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VGH(VGH, 밴쿠버에서 간호사이다)

    제 친구와 이야기했어요.
    그들은 "애드빌"이 폐에 바이러스를
    10배 악화시킬 것을 알았어요.

    또, 40대와 50대 이전의 건강하고
    환기장치를 사용하고 있던 사람이,
    "애드빌"을 복용했기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진 사람들을 발견했다
    말하고 있습니다.

    "타이레놀"은 당분간 복용하기에
    적합합니다.

    VGH의 4명의 의사가 현재 감염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의사들은 이러한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온라인으로 몇 가지 기사가 있어요.
    네그린 박사의 병원에서

    중국인은 현재 부검 결과
    Covid-19 바이러스의 거동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기도와 폐를 고화시켜 차단하는 점액으로,
    점액으로 호흡 경로를 방해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을 적용할 수 있게 하려면
    이러한 기도를 열고
    차단을 해제해야 하므로
    미래에 치료에 사용할 수 있어 유효해질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는 아직 시간이 걸립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권장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많은 뜨거운 액체를 마시다
    커피
    수프

    온수

    입을 축이고,
    위액으로 입에 들어가는 바이러스를
    씻어내기 위해 20분마다 온수를 한 모금
    드세요.
    바이러스는 폐에 도달하기 전에 중화됩니다.

    2. 온수로 방지제가 되는 것을 사용해
    양치질을 합니다. 매일입니다.
    식초,
    소금,
    레몬 등을 사용합시다.

    가글약은 때로는 목 좋은 균도
    죽여버리는 일이 있으니까,
    자주 가글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바이러스는 폐에 들어가기 전에 목구멍
    속에 3~4일간 머무를 겁니다.
    가글은 바이러스 공격에 적합합니다.

    3. 바이러스는 머리카락이나 옷에 부착합니다.
    세제나 비누는 그것을 죽입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목욕이나 샤워를 해야 합니다.
    어디에도 앉지 않도록
    만지지 않도록 해
    욕실이나 샤워실로 바로 갑니다.

    매일 세탁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바이러스를 중화하다
    직사광선에 쬐세요.

    4. 바이러스는
    9일간 계속 감염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금속면을 주의 깊게 살균해 주십시오.

    내 집 안의 난간이나 문 핸들 등에
    만지는 것에도 주의하세요.
    그것들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닦아내세요.

    5. 흡연하지 말아주세요.

    6. 거품이 이는 비누를 사용하여 20분마다
    20초간 손을 자주 씻습니다.
    (Happy Birthday의 곡 2회 정도의 시간)

    7. 과일과 야채를 먹다.
    비타민C 레벨 뿐만 아니라
    아연 수준을 취하고,
    자신의 면역력을 높이도록 하세요.

    . 동물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아요.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감염됩니다.

    9. 또 일반적인 인플루엔자에
    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차가운 것을 먹거나 마시거나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10. 목의 통증 등 목에 불쾌감을 느꼈을 때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바로 바이러스를 공격하세요.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


    *어느 교인의 코로나 바이러스 일지*

    3/19/20 목요일 새벽 3시 쯤  아들이 몸이 아프다고 깨워서 보니
                   아들이 열이 많이 남.( 집에 체온계가 없어서 정확히 알수 없음 ) 머리도 아프다고 해서 아침에  혹시나 코로나 인가 ? 겁이나서 아들을 데리고 littleneck urgent care( 코로나 검사 해주는  장소 )  방문 하였음.
            Drive through 라서 차들이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온라인으로 예약 안되면 검사 안해 준다고 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온도계 찾으니 하나도 없고 타이놀 한 박스만  손님당 팔기에 사서 가지고 왔습니다.
      오후에 온도계 준비 해서 아들 열을 재보니 99.7 - 103 왔다 갔다 함
    저도 오후 부터 몸이 무겁고 머리가 몹시 아프고 귀도 먹먹해지고 타인놀을먹어도 가라앉지 않아서 저녁 7시에 northern urgent care 방문하여 flu 검사하니 negative 라고 합니다.
    낮에는 CDC, 311, urgent care 다 전화를 했는데 숨쉬기 힘들고 입술이 파래 지면  ER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지켜 보면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비상으로 CDC에  우리 전화 번호를 남겨 놓있지만 한번도 우리 상태가 어떤지 전화로 확인 안 옵니다. ㅜㅜㅜ  그만큼 미국 보건부가  혼란 스러운 상태 였습니다.
     Urgent care 의사는 자기네는 코로나 검사를 못하고 아들과 저의  증상이 혹시 코로나 일줄 모르니 체크 해보라고 의사가 말하면서 본인도 코로나 바이러스라 솔직히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들이랑 일단 아무도 만나지 말고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자고 했습니다.

    3/20/20  금요일  잘때는 기침 약이랑 5시간 마다 타이놀을 복용. 간간히 기침을 하면서 잤습니다. 두통과 근육통이 엄청 났고 억지로 물도 마셨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키면 눈 부심 때문에  오래 보지를 못했습니다.
    두통이 심하니까 속도 미쓱 됐습니다.  아들도 자기 방에서 중간 중간 약을 먹으면서
     계속 자더라구요.  남편은 근육만 조금 뻐근 하고 기침만 하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우리 식구 3명 다 입맛이 없고 입맛이 씁니다.

    3/21/20 토요일 아침에 아들과 저의 열이 내려 가고 두통도 없어지고 몸도 가벼워져서  독감이었나 보다 하고 안도를 하며 좋아 했습니다.
     그날밤에 아들이 머리가 아프다고 다시 타이놀을 먹고는 일찍 잠이 들고 저도 몸은 뻐근했습니다. 

    3/22/20 일요일 아침 예배를 드리려고 준비 하는데 순간 몸이 조요 오는것 같고 손가락 끝까지 저릿 하면서 다시 근육통이 심하게 왔습니다.  다행히 열은 없고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다시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아들도 자고 저도 잤습니다.

    3/23/290 월요일 몸이 기운은 없지만 두통이 느낌만 있고 심하지 않았습니다.
     약간 귀도 먹먹한 상태 는 지속 되었습니다. 다행히 열은 계속해서 없었습니다 .
    아들은 자택 근무를 하다가 중간에 침대에 드러눕고 저도 누워 있다 너무 지겹고 좀 나은을 같으면 화장실에 가서 청소를 하였습니다
    크로락스를 여는데 이상하게 냄새가 하나도 안나서 남편과 아들을 불러 냄새를 맡아 보라 하니 들다 냄새가 안 난다고 이상하게 생각 했습니다.  다시 알코올을 가져다 코에다 대니
    냄새가 안 났습니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   후각, 미각을 잃어 버리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아는 중요한 단어라는 것을 읽고는 아 !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구나 !! 했습니다.
    3/24/20-3/27/20
    아들은 정상 자택 근무를 하면서 중간 쉬는 것을 봤는데 본인은 다 나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중간 중간에 가벼운 두통, 근육통과 기운 빠짐이 왔지만 견딜만 하고 타이놀도 하루에2번정도 복용했습니다. 기침도 많이 줄었습니다
     남편은  전혀 통증도 없고 근육통도 없고 기침만 간간히 하면서 후각만 기능을 못했습니다.

    3/28/20 아들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저는 토요일 아침 하루종일 다시 기운이 빠지고 근육이 아파서 침대에서 있고 중간 중간 물도 억지로 마시고 식사도 맛 없어도 기운을 내기 위해서 먹었습니다

    3/ 29/20 일요일.  최고로 컨디션이 좋고 입맛도 돌아왔습니다.
         약간의 두통이 있지만 머리속은 깨끗해졌고 몸 상태는 다 낫지만 근육에 이상한 느낌은
        지금도 있습니다.

    앞으로 2주 더 자가 격리를 하려고 합니다.  확실히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것은 아니지만
    ( 중증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저희 처럼 경증 상태는 병원서 안 받습니다 ) 코로나 증상 이었던 것을 알려 드리고 나누어서
    혹시라도  코로나에 걸려도 당황하시지 말고 자가격리를 하시면 됩니다. 

    어제도 롱아일랜드에서 저희 식구랑 똑같은 증상을 가진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많이 이런 증상들이 생기는 것 같으니 재 경험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을 교회에서 교인 들에게 나누어 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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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리의 코로나 비밀

    이태리 북부 프라토의 천년도시가 차이나 타운이 되어 5만여명의 중국인이 섬유업체 4000여개를 설립하여 메이드인 이태리 옷을 찍어내고 주말이면 수천명의 유럽 보따리상이 이곳에 몰려옵니다.

    중국인이 많다보니 중국마피아도 진출하여 도박 마약 매춘 불법 등 등, 돈이 되는 모든곳을 관여하고 있음.
     
    중국직항로를 차단해도 중국갱단이 알선하는 밀입국자를 막지 못하게됨.

    이태리 프라토는 중국인 근로자 5만명 가운데 90%는 중국유태인이라 부르는 저장성 출신으로 상술이 우수함.

    원저우는 우한에 이어 두번째로 봉쇄된 곳이며 프라토 중국인은 금년 춘제때 중국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년간 300만명의 중국인이 이태리 관광을 실시하는 것을 알려졌는데 이태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다가 전국민 이동중지라는 최악의 사태를 격고있습니다.

    이제 이태리 의문 풀리셨지요.

    윈저우 얘들이 손기술이 좋아서 이태리 명품을 만들고 있다합니다.

    중국은 이미 이태리의 많은 명품 회사들에 참여하거나 인수를 했습니다.
    ( 곳곳에 차이나 타운을 만들어 이태리의 치안 밖에 놓이게 했으며, 이태리 경찰과 중국 공안이 같이 현지에서 치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정부는 이렇게 하는것을 감추고선 전 세계에 이태리 명품이라고 팔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태리 명품이란게 Made in China 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태리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하여 4개의 항구를 중국에게 개방하였습니다.

    이태리, 이란, 한국은 친중의 댓가로 이런 참담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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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af Bitton MD, MPH (Executive Director, Ariadne Labs, Brigham and Women’s Hospital,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아사프 비튼 박사 - 하바드 대 공중위생과 브릭햄 여성병원 디렉터가 미 국민에게 보내는 글:
    학교와 스포츠 이벤트를 닫고 사회적인 불황을 가져오고 있는 예전에 없었던 이 팬더믹 기간에 우리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돈이 많이들 있는 줄 압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인포를 가지고 몇가지 기본적인 행동지침을 나누고자 합니다.
    의사로서, 그리고 공중위생 리더로서 제 의견으로는 온 국민이 앞으로 몇주간 무엇을 하고 안 하고 에 달려 코로나바이러스의 사선에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 예상이 됩니다.  모든 현제 상황을 볼 때, 미국은 오직 11일만 있으면 이태리의 불행한 처지 쪽으로 pace 를 맞추어 가고 있습니다.  빠른 방법으로 테스트를 하는 것은 오직 부분적인 해결 대책입니다.  지금은 빠른 속도로 번져가는 일을 막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래서 모든 밀집과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폐쇄하여 코로나 확산 그래프 커브를 가능한 평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 시스템은 앞으로 나올 중 환자들을 감당할 수용력이 없습니다.  현제로 미국 전체 병원에 4만5천 ICU 침대가 있습니다.  이것을 위기 상황에 두배로 늘린다고 해도 지금 코로나 사선 경향으로 계속 간다면 4월 중순에는 이미 다 넘쳐 흐를 것입니다.  이 상태를 막는 오직 길은 당분간 서로 거리를 두고 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적극적이고 극단적인 사회적 간격 두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하지 않으면 미국은 앞으로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전반적인 사회적 간격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가족과 친구들과의 만남을 자제한다.  슬립 오버, 파티, 함께 모여 집에서 노는 이벤트를 중단한다.  가족 친지들 가운데, 특히 어린이들이 함께 만나 서로 모이는 걸 하지 않는 것은 극단적인 것 같지만, 한 사람도 내 직 가족 외에 접촉을 하게 되면 감염 찬스가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공공장소 모임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이런 모임을 가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증상은 4-5일 후에 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아무 증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 같아도 옮길 수 있습니다.  음식을 나누는 것이 특히 위험합니다.  자기 직계 가족 외에는 같이 음식을 나누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불편해도 일찍부터 사회적 간격 두기를 실행하면 우환과 이태리 같은 불행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2.    걷기운동이나 뛰는 혼자 운동하는 것은 밖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과 6피트 간격을 꼭 두기 바랍니다.  농구나 축구 같이 사람들과 같이 하는 운동은 금물입니다.  공공 장소에 있는 구조물을 될 수 있으면 만지지 말것 – 바이러스가 쇠에나 플라스틱에 닿을 경우 3일동안 살아 있습니다.  내 직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은 접촉하지 마십시오.  밖에 나가도 사람들과 적어도 6피트 간격을 두십시오.  특히 아이들을 주의시켜 다른 아이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주십시오.  나이든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들이 제일 risk 가 높습니다.  병원도 emergency 아니면 당분간 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3.    스토어나 식당, 커피숍 등을 당분간 자제하고 마켓도 꼭 가야 할 때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없는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마켓을 갈 때에는 장갑 사용하십시오 (메디컬 글러브 말고 씻을 수 있는 장갑).  쇼핑을 마치고 꼭 손을 씻기 바랍니다.  Take-out 음식은 집에서 만드는 음식보다 위험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의 접촉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4.    내가 아프면 집에서 나가지 말고 병원에 연락하십시오.  내가 아프면 될 수 있는 대로, 집사람들과도 간격을 두십시오.  내가 코로나비이러스 테스트를 해야 할 지 궁금하시면 먼저 병원에 연락을 하십시오.  절대로 먼저 병원에 먼저 들어가지 마십시오.  정 위험하거나 급하면 911 을 부르십시오.


    5.    모든 공공기관이나 이벤트는 닫고 공적인 장소에서 모이는 것을 즉시 폐쇄해야 합니다.  이 준비를 대대적으로 즉시 실행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 입니다. 
    위의 권하는 내용들이 많고 힘이 드는 일들이지만 사회적 간격 운동은 사회적으로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홈리스나,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겠지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대책을 정부가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간격 운동은 특히 노약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 있어서 필수입니다.  그리고 공공 건강을 위해서 지금은 절대적입니다.  우리가 자원하여 이 운동을 지금부터 펼치지 않으면 나중에는 강제로 해야할 날이 올 것이요 그 날에는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Asaf
    Asaf Bitton MD, MPH | Executive Director | Ariadne Labs
    Brigham and Women's Hospital |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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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통령 트럼프 발표

    US는 국가 비상 사태에 들어갑니다

     해당 측정에는 136이 포함됩니다.  가장 효과적인 조항은 미국이 필요로하는 모든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으며 가격이 얼마인지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정부는 적절한 보조금 계획을 제시 할 것입니다.  이는 미국 제조 회사가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으로 수출하여 저렴한 돈을 버는 일부 국가는 사망 할 것이며 미국에 필요한 모든 의료 제품은 미국에서 완전히 생산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 주식 시장에서 2,000 포인트 급증의 근본 원인입니다.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삶입니다. 

    1.  누구나 무료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를 수락 할 수 있습니다.  개인 진료소를 포함한 모든 병원은 이제 검사 예약을 할 수 있으며 많은 약국이 이번 주말에 검사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들어갈 필요가 없으며 테스트를 위해 밖에 운전할 수 있습니다.  3 월 말까지 미국 전역의 모든 약국에서 무료로 테스트 할 수 있습니다.

    2.  바이러스 증상으로 진단 된 사람은 집에서 14 일의 검역 기간 동안 비용을 지불 받게되며 3 개월 동안 휴식을 취해야하는 경우 동일한 비용을 지불합니다. 

    3.  개인 세금 시즌은 4 월 15 일부터 6 개월 동안 10 월 15 일 이전에 정부에 납부해야하는 세금으로 연기됩니다. 

    4.  전국의 학교에는 가정에서 수업이 있으며, 학생에게 iPad가없는 경우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합니다.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은 학교 시간 동안 학교에서 집으로 점심을 무료로 제공 할 것입니다 ( 미국에서는 가난한 것이 좋습니다). 

    5.  인터넷 회사는 모든 저소득 가정에 2 개월의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여 텔레비전의 전염병에 대해 적시에 배울 수 있습니다. 

    6.  신용 카드 회사와 은행은 모든 소비자에게 가장 낮은이자 대출을 제공하여 위기를 통해 모든 사람을 지원합니다.  (Bank of America는 현재 자금을 잘 지원하고 금융 시스템은 강력합니다.)

     National 미국 국가 비상 법의 공포는 2 차 세계 대전 진주만 사건 이후 미국 대통령이 발표 한 발표와 다소 유사하다.  이 특정 단계에서 대통령은 미국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제 2 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 경제가 급등하는 것과 같으며, 미국 경제는이 전염병의 발달로 인해 확장이 가속화 될 것이며, 일부 사람들과는 달리 전염병이 미국 경제를 쇠퇴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염병은 미국 사람들을 더욱 통일시키고 세계에서 그가 가장 강한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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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여기 이렇게 글을 남기기가 좀 민망하지만 지금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글을 올립니다

    저는 메릴랜드에서 근무하는 중환자 및 호흡기 의사입니다.
    지금 미국은 점점 코로나 케이스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3/16 11:45PM 기준으로 4661 케이스입니다.
    거의 이태리 그래프를 따라가고 있는 추세이고 이제 곧 아마 1주 이내로 1만 케이스 이상으로 넘어갈 것으로 추정됩니다.
    밑에 사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미국은 한국처럼 전국민 보험이 아니기때문에 혹시 증상이 있으시더라도 state 에서 지정한 보건소라던지 검사 센터가 있는게
    아닙니다.

    Primary care physician한테 전화하셔야합니다.
    각 PCP office마다 protocol 이 아마 지금은 정해졌을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아직 정확한 protocol 이 없는 곳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오니 일단은 PCP 연락하시고 거기서 하라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대부분 큰 병원같은 경우는 이미 drive through site를 주차장이라던지 어떤 공터에 만들어서 그곳으로 환자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처럼 많이 검사 kit가 없기 때문에 아직은 아주 strict 한 criteria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1. 한국이나 이태리, 이란, 중국, 일본을 다녀온 사람중에 증상 있는 사람

    2. 14일 이내 covid-19 확진된 사람과 contact이 있었던 경우는 검사를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증상이 없거나 mild 한 경우는 집으로 가서 14일 동안 자가격리하라고 합니다. 아주 아픈 경우는 입원시켜줍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집으로 보냅니다. 지난주 금욜에 press conference에서 검사 kit을 million 인가 만들었고 배급했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실정입니다.

    지금 미국은 케이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고 마스크가 저희 의료진들에게도 부족해질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지금으로써 virus 를 contain할수 있는 방법은 social distancing 밖에 없습니다. 모두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하고싶지만 그러면 정말 나중에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없을 가능성이 다분히도 높기때문에 아예 사람과의 접촉을 말라는 것입니다 (=social distancing).

    중국과 한국 케이스에서 봤듯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중에 증상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asymptomatic carrier 들 때문에 community spread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사람들은 검사도 안해주기 때문에 만약 social distancing (집에 있고 사람들 안만나기) 을 하지 않으면 계속 케이스 숫자는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 혹시 한국 다녀온 친구랑 놀고있나요? 아무 증상 없어도 carrier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social distancing이 중요합니다. 지금 유학생들이나 학생들 중에 왜이렇게 난리인가 하며 밖에 나가시는 분들 있으실수 있는데 그러면 계속 미국은 케이스가 늘어날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medical resources가 고갈되어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게 될수 있습니다.

    저 그래프에서 보시다시피 만약 지금대로 계속 가다가는 이태리랑 같은 상황이 될것입니다. 약 3주 이내에 미국 전역의 ICU bed는 차게 됩니다. 이태리가 병원보다 환자가 많아서 입원을 못하고 치료를 못받아서 그만큼 죽은 환자가 많은겁니다 (이태리 100명중에 8명 죽음. 한국 100명중에 0.9명 죽음. 미국 지금까지 데이터에 의하면 100명에 2명 죽음).

    이태리도 처음에는 사망률이 미국정도였습니다. 즉처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을때는 100명중에 2명 죽었는데, 점점 병원과 health care resources가 고갈되고 입원 및 치료를 못하게 되어 100명중 8명이 죽는 상태가 된겁니다. 미국도 지금대로 가면 그렇게 될것입니다.

    지금 미국 의료진들이 social distancing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빠, 레스토랑, 영화관 등등이 문을 닫은 이유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늘어난다면 곧 의료 시스템은 마비가 될것입니다.

    그러면 원래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heart attack, stroke, shock 환자들은 ICU에 들어오지도 못할수도 있고 ICU bed를 기다리다 죽을수 있습니다. 또한 medical resource가 고갈되어 원래 받을만한 치료수준의 치료를 받지 못할수있습니다.

    지금 이태리 그리고 심지어 시애틀에서조차 누구를 살릴지를 의사들이 결정해야하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이태리는 60대 이상은 포기하고 어린, 가능성 있는 환자들을 선택적으로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 outbreak는 심각합니다

    현재 elective surgery는 미국 거의 모든 병원에서 이미 취소가 되었으며 routine follow up 또한 취소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어디 나가지 마시고 집에 계시는 것을 권유드리고,

    wash your hands, stay away by 6 feet if you have to go out and meet someone. If you feel sick, don’t go to work and spread the virus and get other people sick. Thats how the virus spreads and conitnues to spread because the people that you work with are now exposed and they are gonna go home and expose to their familes and they will go out and expose/spread to others. This is extremely important that we practice social distancing!!!

    It will most likely not be under containment at least until June/July and maybe even through the fall season.

    이렇게 심각합니다. 의료진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수술실이 중환자실로 변환되고 있습니다. 미국 모든 사람들이 social distancing 하지 않으면 정말 곧 제가 말하는 심각한 health care capacity saturation 상태가 올것입니다.

    이거 많은 곳에 퍼트려주세요. 정말 social distancing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나하나쯤이야 했다가는 그로인한 파장이 너무 큽니다. 모두가 같이 social distancing을 할때 그나마 flatten the curve를 할수 있고 그래야 저 그래프에서 빨간 라인을 넘기지 않을수 있고 그래야 ICU가 overflow되지 않고 그래야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이 제대로된 healthcare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노력합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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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值得細看
    Worth reading.

    這是留美醫學教授黃建中先生發到同學群的微信。講的很好。
    This is a message from Professor Wong Kin-Chung, a medical professor in USA, to his students in a chat group. Very well said. (Translator Alice’s note: the original message was in Chinese, I am translating this for the benefit of my non-Chinese reading family and friends residing overseas. With apolgies to Professor Wong, I have made some editorial changes while not affecting the meaning of the original message.)

            現在.... 有很多的疑似或確診但病情輕微的病人住不進醫院。這個可以理解,因為任何城市都不可能在平時建設這麼多的傳染病醫院和傳染病床,還要有這麼多的傳染科醫護人員待命。
    Now ......there are lots of suspected and confirmed cases (of coronavirus) where the patients cannot be admitted into hospital.  This is understandable.  It is simply not possible for any city in normal times to build and maintain so many infectious disease hospitals and hospital beds, and to have so many qualified infectious disease control medical staff to be on stand by.

    其實去醫院也沒有針對性的特殊治療,主要還是支持療法。住不進醫院急也沒用。按照我下面說的,應該可以先延緩病情發展,等待進院。
    In reality, even if you go into hospital, they do not have any special treatment that target (the coronavirus), they only offer supportive therapy.  It won’t help to get frustrated if you can’t get into hospital. Do as I say below. It would help delay the progress of your condition, while waiting for admission.

    我是醫生多年,又是營養師多年,我的方法是有科學依據的,可以把我的這個微信發到有需要的群里,以便如果有人遇到這樣的情況時可以參考自救。
    I have been a doctor as well as a nutritionist for decades. My method is scientifically based. Please feel free to circulate my message to your other chat groups, my advice may help people who find themselves in the situations I describe.

    這不是鼓吹靠自己來治療,而是用這些生活中的方法給自己贏得時間等待 .... 整體條件改善時住進醫院治療。
    我寫的這些方法都是有依據的。
    I am not recommending self healing, only to use everyday actions to buy time.... to improve one’s general health condition while waiting for hospital admission.

    1. 患者家人全部進出門用鹽水漱口,要涼水,不要用熱水,涼水可以讓口咽部黏膜下血管收縮,減少病毒進入血液的機會。鹽水可以固定病毒表面的S-蛋白,使其不易附著到黏膜上。冠狀病毒只有先與黏膜上的特定蛋白 結合,才能進入到我們人體細胞,再大量複製。要經常漱口 ,用含酒精的漱口液更好。
    1.  Patients’ family members, on entering and leaving home, should rinse their mouths with salted water, using cold water, not hot.  Cold water will contract blood vessels in one’s mouth and throat, thereby reducing chances of viruses entering one’s blood stream.  Salted water can stabilise the s-protein on the virus’ surface, making it less easy to attach to the mucous membranes. To enter human bodies, the coronavirus first has to bind itself to certain specific proteins in the membrane and then self multiply massively.  So rinse your mouth frequently, it will be even better if you use mouth rinse that contains alcohol.

    2. 如果已經確診,但住不進醫院,只能在家自我隔離(單房間),時刻帶上口罩。家人也時刻帶口罩,只要沒有直接的飛沫傳播,就很難傳染。用75%酒精噴灑家裡,盡可能不留死角。傢具用酒精搽拭。這個病毒對酒精不耐受,用酒精可以滅活。家裡的衣服能用開水燙的就用開水燙,這個病毒能耐受的溫度是60度以下,高溫可以滅活。不能開水燙的衣服鞋子噴灑酒精消毒。
    2.  If you have been tested positive but cannot be hospitalised, your only option is to self-isolate at home (in a room by yourself), wearing a mask all the time.  Family members must also wear masks at all times. So long as there is no transmission via droplets, transmission of the virus is unlikely. Clean your house using 75% alcohol, clean every corner and even the furniture.  Alcohol kills this virus. As does high heat, so use hot water of over 60 degrees to wash your clothes. This virus cannot survive heat above 60 degrees.  For shoes or clothes that can’t be washed in hot water above 60 degrees,  clean them with disinfectant.

    3. 如果有症狀但不重,首先注意多喝水,每次喝水量不要大,幾口就行,頻繁的喝,保持水份平衡。大蒜生薑洋蔥都有抗病毒作用,生吃或煮水喝。尤其生薑可以煮濃姜湯,喝了加快血液循環,如果能出汗更好。可以喝一些白酒,加快血液。循環。血液循環對自身免疫功能非常重要。這個病即使住院,也是要靠自身免疫力來控制的。
    4.  Those tested positive but not too unwell, drink lots of water.  It doesn’t have to be lots of water each time, a few sips are sufficient. Drink frequently, keep the body hydrated.  Garlic, ginger and onions also have properties that help one’s fight against this virus, eat raw or make into drinks to consume. Ginger is best. Make drinks by boiling fresh ginger in water, it will help one’s blood circulation which in turn boosts the immune system. Good immune system is of overriding importance whether or not one gets hospitalised.

    4. 熱雞湯是美國傳統上抗感冒的,醫生也提倡,可以多喝。到藥房去買維生素C,大劑量服,每天4000毫克,維生素C既可以影響病毒複製,又可以穩定血管璧,減少肺部炎性滲出。紅酒里含紅酒多酚,有一定的類似激素作用,可以喝。因為中國國家衛健委的治療指南也是用短期的激素,紅酒多酚消炎是很有效的(紅葡萄酒,不是白葡萄酒)。
    4.  Hot chicken soup is a common American remedy for colds and flus, which even doctors recommend.  Drink more.  Go to the pharmacy to buy high dosage Vitamin C, 4000mg daily.  Vitamin C affects virus’ self duplication, and can also stabilise the blood vessels’ outer surface, helping to reduce seepage of infection from the lungs.   Drink red wine (not white).  Red wine contains polyphenol which acts like hormones to protect tissues against inflammation.  This is in line with the treatment recommendations issued by the health authorities in China.

    5. 好的蘑菇如花菇含有豐富的多糖類物質,可以刺激免疫系統,日本對花菇的研究很多,要多吃。烹飪之前,在水里多泡泡,去除蘑菇可能吸附的農藥殘留。如果家裡有靈芝等,那就更好,沒有就多吃花菇(不是平菇)。人參西洋參都可以煮水喝,對提高免疫機能有好處。可以和雞湯一起煮。
    5.  Eat more mushrooms.  Good mushrooms, like shiitake, contain properties that stimulate the immunity system. The Japanese have done much research in mushrooms.  Must soak well before cooking, in order to get rid of any remnants of agricultural insecticides. If you have Lingzhi, that’s even better. Eat good shiitake mushrooms (not the cheap produce).  Ginseng and american ginseng are also good for boosting the immune system. Cook with chicken to make soup.

    6. 西藥里的阿斯匹林可以服用小劑量(5-20毫克),既有消炎的作用,也有降低血液粘稠度的作用。資料顯示病毒感染者有的血漿二聚體增高,意味著血液粘度升高,血流流速減慢,這種情況不利於免疫細胞的運動,而有利於病毒複製。中藥里的黃芪黨參西洋參含類黃酮,可以保護各器官的細胞,避免出現器官嚴重損傷。實在沒有這些煮黃豆吃也有作用。
    6.  Small amount of aspirin (5-20 mg) also helps. Other than being anti inflammatory, it reduces the viscosity of the blood.  Available information suggests that confirmed patients’ blood contains elevated Plasma D-dimer Count, suggesting a higher viscosity and reduced circulation rate. Such is not conducive to healthy regenerative activities of one’s immunity system, but rather favours the virus’ replication.  In Chinese medicine, astragalus, codonopsis and American ginseng contain flavonoids, protecting cells from severe damage.  Without these, eating soy beans would help.

    7. 能進食是關鍵,胃口不好可以煮水喝,一切能開胃的方法都可以,只要能吃就問題不大。注意尿量。每天至少要上廁所幾次,排正常尿量。
    7.  The key is to keep eating (= nourishment).  If you have no appetite for solids, liquidise your food. Just eat anything that you fancy.  So long as you eat, the problem is manageable.  Monitor your urination (translator’s note: = body hydration).  You have to pee numerous times a day, in normal quantity. 

    謝謝!可轉發!照顧好自己和家人
    Thank you!  Can circulate! Take good care of yourselves and your fami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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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챠드의 아름다운 문인 "무스타파 달렙"의 글이랍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에 의해 흔들리는 인류.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

    코로나바이러스라 불리우는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뒤집고 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인가가 나타나서는 자신의 법칙을 고집한다. 그것은 모든 것에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이미 안착된 규칙들을 다시 재 배치한다. 다르게..  새롭게..

    서방의 강국들이 시리아, 리비아, 예멘에서 얻어내지 못한 (휴전. 전투중지) 것들을 이 조그만 미생물은 해내었다. 알제리아 군대가 못 막아내던 리프지역 시위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기업들이 못해내던일도 해냈다. 세금 낮추기 혹은 면제, 무이자, 투자기금 끌어오기, 전략적 원료가격 낮추기 등.. 시위대와 조합들이 못 얻어낸 유류가격 낮추기, 사회 보장 강화 등등도 (프랑스경우), 이 작은 미생물 이 성취해 내었다.

    순식간에 우리는 매연, 공기오염이 줄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시간이 갑자기 생겨 뭘 할지 모르는 정도가 되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으며 일은 이제 더 이상 삶에서 우선이 아니고, 여행, 여가도 성공한 삶의 척도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약함'과 '연대성'이란 단어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모두 한 배에 타고 있음을.. 시장의 모든 물건들을 맘껏 살수도 없으며 병원은 만원으로 들어차 있고 더이상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들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우린 모두 똑같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도..

    외출할 수 없는 주인들 때문에 차고 안에서 최고급차들이 잠자고 있으며 그런식으로 단 며칠만으로 세상에는 사회적 평등(이전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였던)이 이루어졌다.

    공포가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다.

    가난한 이들에게서부터 부유하고 힘있는 이들에게로.. 공포는 자기 자리를 옮겼다.

    우리에게 인류임을 자각시키고 우리의 휴머니즘을 일깨우며..

    화성에 가서 살고, 복제인간을 만들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던 우리 인류에게 그 한계를 깨닫게 해주었다.

    하늘의 힘에 맞먹으려 했던 인간의 지식 또한 덧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확신이 불확실로.. 힘이 연약함으로, 권력이 연대감과 협조로 변하는데에는..

    아프리카가 (코로나에)안전한 대륙이 되는 것, 많은 헛된 꿈들이 거짓말들로 변하는 데에는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인간은 그저 숨 하나, 먼지일 뿐임을 깨닫는 것도..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가치는 무엇인가 ? 이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하늘의 섭리가 우리에게 드리울 때를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직시하자 .

    이 전세계가 하나같이 직면한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 우리의 휴머니티가 무엇인지 질문해보자.

    집에 들어앉아 이 유행병이 주는 여러가지를 묵상해보고 살아있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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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Y Times에서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부족해 일반인 마스크 사용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N95가 아닌 home-made 마스크라도 사용함이 절실한 때입니다.  마침, 어제 저녁 TKCTV 내용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미국에서는 코로나19 급속히 확산 되었다고 합니다.

    전염병 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가 코로나19초기부터 갈팡질팡하며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등 대재앙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김세연 기자의 보도입니다.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네바다주 정부로부터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연방정부, 그리고 네바다주 보건당국자간에 주고 받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메일을 공개하고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혼돈과 재앙 그자체 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15명이 발생, 위기가 현실화 될 무렵인 지난달 13일에야 세계 각국의 코로나를 추적하고 관련문서를 검색 할 전문인력을 긴급채용한다고 공고를 냈고, 그뒤 2주간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로 확산돼 커뮤니티를 위협할 때도 명백한 혼돈 상태였다고 이 매체는 밝혔습니다.

    또 네바다주 보건당국이 코로나 잠재 감염자 80명이 발생했다고 질병통제 예방센터에 알렸으나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지난 4일에도 네바다주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정보가 부족하다. 미안하다’고 답하자, 네바다주는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답장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외에도 지난달 17일 앤소니 파우치 전염병 연구소장은 USA투데이 기고문을 통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손만 깨끗이 씼으면 된다’며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뉴욕 등지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파우치박사가 이같은 의견을 개진하자 미국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미국내 최고 전염병 전문가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대서특필했으며 이에 따라 엄청나게 붐비는 뉴욕시 지하철등이 코로나19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또 파우치박사는 미국에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후인 지난 8일 CBS 60미닛에 출연,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걸어다닐 이유가 없다. 마스크를 써야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만, 미국내에서는 절대적으로 마스크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에서는 메르스 상태 당시 한 여성 확진자가 2천여 명을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마스크를 쓰고 다녀 단 1명도 전염시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 뒤 마스크의 중요성이 알려졌고, 서울 등에서도 대부분이 마스크를 씀으로써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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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온 댓가

    프랑스에 93살 할아버지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서 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그는 24시간 동안 산소공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뒤로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때 의사선생님이 할아버지께 50만 프랑의 의료 계산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할아버지를 달래면서 계산서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달랬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저는 지불하게 될 금액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치료비를 전부 지불할수 있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고작 24시간 공급 받은 산소 금액이 50만 프랑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93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산소를 마시면서 돈을 지불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나님한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아십니까 ?"라고 말하자

    의사 선생님도 이 얘기를 듣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도 감사의 하루입니다.

    * 24시간 산소호흡기 사용료 : 50만 프랑

    1프랑 : 한화 160원(매일 경제신문)
    50만 프랑 : 8천만원
    8천만원를 24시간으로 나누면(1시간 산소호흡 사용료) : 3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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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이 1백만명의 기도 체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하시지 안겠습니까?
     

    Good morning!
    좋은 아침입니다!

    I was asked to be part of a 1million Lord's Prayer chain to slow and stop the Coronavirus.
    나는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를 늦추고 중지시키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1백만 명 기도 체인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The idea is you pray and then pass the message on to 8 other people.
    이 아이디어는 당신이 기도하고 이 메세지를 8명의 다른 분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Let me know if you can't, so we don't break the prayer chain.
    만약 당신이 할수없다면 내게 알려주십시요.
    그래서 우리의 이 기도체인이 끈어지지 않도록 해주세요.

    It took me 30secs to do it
    나는 이것 실행하는데 30초 걸렸습니다.

    Here is a prepared prayer you can pray or use your own:
    여기에 준비된 기도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기도문을 만들어하셔도 좋습니다.

    God our Father,
    하나님 아버지,

    please blanket our nation in protection from the Corona virus.
    우리나라를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예수의 보혈로) 덮어주소서.

    Heal our land and protect those who are most vulnerable.
    우리 땅을 고쳐주시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해주소서.

    Give peace to those who struggle with loneliness and isolation,
    고립과 외로움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소서.

    and endurance to the many businesses that are affected by our feeble attempts to control Corona.
    코로나바이러스 통제를 위해
    여려움을 겪는 많은 사업체들에게 참고 견딜 힘을 주소서.

    Come to the bedside of those who are struggling with the effects of contracting the virus.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병상을 방문해주시고,

    Protect and give guidance to those healthcare workers who place themselves in danger caring for the sick.
    병자들을 돌보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의료관계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소서.

    Hear our prayer oh Lord.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We pray this through your son’s name, Amen.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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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알림

    저희가 의사들 정보통에서 받은 것 중요해서
    알립니다.

    이것은 뉴욕 의과대학에서 온 것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비엔나 실험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환자들 대부분의 피에 애드빌(Advil/ibuprofen)이 들어있음이 발견됐고, 바이러스 증상에서 회복된 사람들은 ibuprofen을 복용하지 않은 것이 발견됐으니, 꼭 필요하시면 Acetaminophen (바이엘 아스피린)을 복용하시래요.

    이 바이러스는 Advil이 10배는 증상을 악화시키고, 이것이 폐염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합니다. 꼭 필요하시면 당분간 타이레놀(Tylenol)이나 바이엘 아스피린을 복용하세요.

    그리고 되도록 공중 화장실을 쓰시지 마시고 현재와 4월 첫번째 주까지 Virus가 창궐하는 시기라고하니 더욱 외출을 삼가고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로 오히려 걱정을 유발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조심스레 이 정보를 나눕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라며 가까운 장래에 모든 동문님들을 반갑게 만나뵐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Doctor from NYU- FYI:
    Information from Vienna’s laboratory studying COVID-19 say vast majority of people who died had ibuprofen/Advil in their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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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한균희교수팀이 하신 말씀인데,

    현재 의약계에서는 코로나 2차 파동을 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코로나는 우한바이러스인 S형이고, 이탈리아에서 번지고 있는 코로나는 이미 변형된 바이러스로서 우리보다 감염이 4배나 빠른 악성이라고 합니다.

    즉, 앞으로 2주간이 정말로 중요한 시기라고 하네요. 그리고 지금 절대로 감기에 걸리면 안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몸 따뜻하게 하시고, 절대 외출 삼가 하시고, 건강에 많이 유념해 주십시오.


    가수 박민주
    가와사키 병으로 4살 때 부모님이 포기각서를 썼었다.

    질환명 : [한글명] 가와사키병 [영문명] Kawasaki disease

    정의

    가와사키병은 전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급성 열성 혈관염으로 대부분 5세 이하의 소아에서 발생합니다. 피부, 점막, 임파절, 심장 및 혈관, 관절, 간 등에 이상을 가져올 수 있고, 위장관 장애, 담당수종, 드물게 뇌수막 등의 염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원인

    가와사키병의 원인은 아직 불명확하지만, 유전학적 요인이 있는 소아가 병원체에 감염되면 과민반응이나 비정상적인 면역학적 반응을 일으켜 가와사키병이 발생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증상

    전형적인 증상은 38.5℃ 이상의 고열, 사지말단의 부종, 피부의 부정형 발진, 양측 안구 결막의 충혈, 입술의 홍조 및 균열, 딸기 모양의 혀, 구강 점막의 발적, 비화농성 경부 임파절 종창, BCG 접종 부위의 발적이 있습니다. 발열은 대개 항생제에 반응이 없으며, 열은 치료하지 않으면 대개 1~2주 이상 지속되고, 어떤 경우에는 3~4주 동안 열이 있기도 합니다. 오랜 발열은 관상 동맥 합병증의 위험 요소입니다.
    가와사키병은 다음 3단계를 거쳐 나타납니다.
    ● 급성기
    첫 2주 동안 열이 나며 경우에 따라 설사, 복통, 두통 등을 보입니다.
    ● 아급성기
    2주~4주 사이로 특징적으로 손가락, 발가락 끝, 항문 주위에 막양낙설이 보이며 혈소판 수가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동맥류가 나타날 수 있는데 관상동맥류는 발병 1-2주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4-8주에 최대가 됩니다.
    ● 회복기
    1달에서 3달 사이로, 이때는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돌아오며 심장혈관인 관상동맥의 동맥류가 회복되거나 크기가 감소합니다.

    진단/검사

    ● 임상적 진단
    원인을 알 수 없는 38.5℃ 이상의 고열이 적어도 5일 이상 지속되고 다음에 열거되는 특징 5개 중에서 4개의 증상이 있으면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 양측성 결막의 충혈
    - 경부림프절 비대 (1.5cm 이상)
    - 피부발진
    - 입과 혀의 병화; 입술의 홍조 및 균열, 딸기 혀, 구강 발적
    - 손발의 변화; 급성기의 손발의 경성 부종과 홍조, 아급성기의 손발톱 주위의 막양낙설
    ● 검사
    -모든 의심되는 환자에서 심전도, 심초음파 시행하고, 지속적인 초음파 이상과 허혈징후 시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합니다.
    -염증의 정도를 반영하는 검사결과들이 높게 나타나고 혈액검사에서 적혈구침강속도(ESR)의 상승(대개 비슷한 다른 병들보다 높음), 백혈구수 증가, 빈혈(낮은 적혈구 수) 등을 검사결과들이 나타납니다.
    다.
    -혈소판 수치는 발병 2~3주에 걸쳐 급격히 증가하다가 이후 정상화 됩니다.

    치료

    급성기에는 면역글로불린의 다량 요법과 아스피린을 사용합니다.
    발병 후 1~2주에는 반드시 심초음파 검사를 시행하여 관상동맥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관상동맥의 합병증이 없는 경우 아급성기에 접어들면서 저용량 아스피린으로 6~8주 투여합니다.
    관상동맥류가 있는 환자는 장기적으로 규칙적인 경과 관찰 및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적 심도자술이 요구됩니다. 일부 환자에서는 심장수술(관상동맥 우회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경과/합병증

    관상동맥 합병증이 없는 경우는 예후가 좋아서 현재로는 1년 이후에는 엄격한 추적 관찰은 시행하지 않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중등도 이상의 관상 동맥의 변화가 있으면 심초음파, 심전도, 운동 부하 검사 등을 통해 심근 허혈 유무를 정기적으로 추적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관상 동맥 조영술을 하여 관상 동맥의 협착 혹은 폐쇄를 확인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게 됩니다.

    예방/생활습관

    가와사키병 자체는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현재로서는 특별한 예방법은 없습니다. 진단 즉시 치료를 시작하여 심장의 합병증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FAQ

    Q. 가와사키병의 치료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A. 정맥 주사로 면역글로블린 치료를 12시간 하고 동시에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하여 관상동맥의 이상이 없는 경우 2개월간 유지합니다. 그러나 관상동맥이 늘어나 있는 경우 관상동맥이 정상화 될때 까지 아스피린 혹은 항응고제를 복용합니다.

    Q. 가와사키병을 앓았을 경우 운동에 제한이 있나요?
    A. 심장 초음파상에서 관상동맥에 이상이 없을 경우에는 특별히 운동을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Q. 성홍열과 가와사키병은 어떻게 다른가요?
    A. 두 질환 다 열이 나고 발진이 생기고 입술이나 혀가 빨갛게 나타나는 등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홍열은 세균 감염에 의해 발생하게 되고 가와사키는 면역에 의한 전신 혈관 염증이며 특히 관상동맥을 침범하게 됩니다. 치료는 성홍열은 항생제로 치료를 하고 가와사키는 면역 글로블린과 아스피린을 투여하게 됩니다.


    사람은 어려운 고비를 잘 견디고 넘기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고비를 누구나 다 겪어야 한다.
    여기서 살아 남는 자만이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살아 있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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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람시의 유령이 한국을 지배한다


    배요한 서부산교회(예장합동) 목사





    누군가가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는 ”안토니오 그람시“ 란 이름의 유령이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성령께서 운행 하셔야 할 교회 안에서도 그람시의 망령이 운행하고 있다.
    그람시의 전략론에 나오는 「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나 진지전(陣地戰)이란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꿈꾸던 자들에게 획기적인 전략을 제공해주는 사상이다.

    그람시는 1924년에서 1926년 사이에 이탈리아 공산당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지만 결국 무솔리니에 의해 투옥되고 20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11년 동안 복역 하다가 1937년에 죽었다.

    당시 검사는 「우리는 이 인간이 20년 동안 두뇌활동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왕성한 두뇌활동을 해서「옥중수고」란 글을 남겼는데 최근 공산주의 정치사상사의 고전이 될 만한 원리를 담고 있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켄타우로스(半人半馬)가 혁명 정당이 갖추어야 할 이중적 전망의 상징이라고 하면서 당은 ‘강제와 동의’, ‘권한과 헤게모니’, ‘폭력과 교화’, ‘선동과 선전’, ‘전술과 전략’이라는 두 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람시는 폭력 혁명적 투쟁에 못지않게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는「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란 말을 만들었는데, 이는 교육, 언론매체, 법, 대중문화 따위가 중요한 역할을 떠맡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념, 가치, 문화적 전통, 신화 등과 같은 상부 구조적 현상이 일반 대중 속에 깊게 파고 들어가서 기존의 권력 체계를 영속 시키는 한, 이에 대한 계급해방 투쟁은 그런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대항 헤게모니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창출해 내어야만 그 체제를 전복 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성공 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빼앗아 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종교 등 광범한 분야에 진지를 구축하여 대항 헤게모니를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람시의 전략론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가진 기동전과 진지전이다. 그는 성숙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동전이나 극적인 대결 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적합하고 기동전은 그런 진지전의 일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지전은 광범위 한 전선에서 전개되는 혁명 투쟁으로서 일종의 정치적 참호전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에 침투하여 진지를 만들고 그 진지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주의 혁명 이념 같은 대항 헤게모니를 확산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노조, 학계, 언론계, 예술계, 종교계 등 그 사회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여, 숙주를 찾아 참호를 만든 다음에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이념을 확산시켜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언론,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은폐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분위기, 가치관, 학설, 예술형태, 논리, 그리고 용어를 확산시킴으로써 진지, 하나하나를 확보해가는 식으로 장기적인 투쟁을 하다가 대세가 유리하게 기울었다고 판단되면 진지에서 뛰쳐나와 기동전으로 돌입하여 결정적으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것이 진지전 이론의 핵심이다. 그람시는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극적으로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라, 舊사회 내부에서 시작되어 극적인 변화의 시기에 일어나며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사회 변화의 全과정을 혁명으로 본다. 그래서 舊사회의 질서는 혁명에 의하여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新질서가 건설된 다음에 비로소 파괴된다는 것이다.「과정으로서의 혁명」은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그 주체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 정치적 정권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람시의 사회주의 혁명 전략이 그대로 적용 된것 같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 아래서 숙주를 찾아 바이러스처럼 번식하며 진지를 구축하고 사회 각 층으로 확산 시키며 진지전을 실행 해 오다가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기동전을 펼치므로 헤게모니를 잡았다고 볼 수 있으며 앞으로 지속적인 혁명완수의 길로 나아갈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혁명이 성공 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만약 성공하여 혁명을 완수 한다면 대한민국에는 교회는 존재 하겠으나 결국 알맹이는 다 변질 되어 버리고 껍질만 남는 한국교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벌써 한국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하여 숙주를 찾아 진지전을 활발하게 성공적으로 펼쳐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국교회 일부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미 전염되어 숙주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고 끌려만 가는 형국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계의 상황도 사회주의자들이 언론, 학계, 학원, 사회단체, 심지어 교회 안에서까지 이념적 주도권을 잡고, 반공, 보수, 우익이란 말을 나쁜 뜻으로 각인 시켰으며, 실제로 보수 세력들은 말조심을 해야 할 만큼 기가 죽어 있다.

    반면, 좌익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민주, 민족, 진보란 이름으로 위장을 하고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윤미향을 비롯한 수많은 자들이 윤리적 도덕적 해악을 저지르고도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고, 잘못을 질타하는 국회의원에게 오히려 호통을 치거나 무시를 할 정도다. 이는 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념적 헤게모니가 그들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람시의 혁명 전략을 우리나라에 적용하여 체제를 완성시키려면 대한민국이 딛고 있는 헌법적 질서와 대한민국을 뒷받침하는 애국적 가치관과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은 대한민국의 태동을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승만이 아닌 김구로 바꾸어 간다. 왜냐하면 이승만으로 하면 공산 세력이 파고 들어올 여지가 없지만 이 민족이 존경하는 김구로 하면 김구와 이승만의 사이에 공산주의 사상과 세력이 맘껏 파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승만이 세운 민주국가의 태동을 부정하는 역사관을 확산시키고 6.25전쟁의 원흉을 국가 유공자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군의 역할을 용병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대한민국을 공산 세력으로부터 지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미국을 위시한 우방들을 배격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라보며 광화문에 모여서 부르짖는 애국자들을 반 민족 친미 세력으로 매도하고 급기야는 코로나 전염병 집단으로 매도한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와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라는 사실을 잘 아는 그들은 코로나 19를 통하여 교회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기독교의 선구자들을 제거 하려고 획책하며 심지어 교회에 깊숙이 파고들어 교회 내부에 구축된 진지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게 하므로 그들에게는 산 같은 거대한 장애물을 제거 하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무력화 하려는 다양한 전략들을 전개 해 가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고 뼈아픈 사실은 일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단 운운 하면서 그들에게 동조하며 협조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정부는 그람시가 주창한 대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논리를 확산시켜, 재벌의 강제 해체라든지, 지주(地主)타도, 재산몰수 같은 무시무시한 용어가 바로 정의로운 행동을 표현하는 것처럼 가치관을 거꾸로 돌리면서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실상 세계적인 성공사례인 해방 후 남한에서 있었던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실패작이라고 주장하고, 북한에서는 지주로부터 강제로 농토를 몰수하여 국가 소유로 했기 때문에 반동 지주계급을 청산하는데 성공했다는 논리를 은근히 지지하면서. 사유재산을 국가가 자의로 빼앗는 것이 당연시 되면 이것은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는 그람시의 전략을 은밀히 진행 시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부동산 정책이다.

    자유 대한민국에서는 강제로 부동산을 뺏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수없이 욕을 들어 먹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부동산 정책을 21번이나 고쳐 가면서 시행하는 것은, 서민들은 부동산을 아예 갖지 못하도록 만들고, 이미 부동산을 가진 자들은 감당 할 수 없는 괴물 부동산법을 통한 과세를 견디지 못하게 해서 부동산에서 손을 떼게 만들고 결국 국가가 권리를 갖게 되는 법적 제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옛날 시골 복덕방의 아주머니 수준도 안 되어 보이고 부동산에 대해서는 상당히 멍청해 보이는 국토교통부 장관을 해임시키라는 원성도 아랑곳 없이 그대로 두는 것은 왜 일까? 부동산 매물 공시자가 상향과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세수는 어마어마한 쌈지 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만큼 올아 버렸기 때문에 오르지 않는 아니 오를수 없는 서울 아파트 가격을 놓고 부동산 가격상승을 잡았다고 선전 선동 한다. 그러나 빌라가 오르고 오피스텔이 올라간다. 영이어 세종시가 올라간다. 이 모든 과정은 상당히 계산적이고 정략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동산 정책을 관리하는 자들의 머리가 비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 국민이 부동산을 소유하기 힘들게 만들면 결국 부동산의 실제 권리는 누가 쥐게 될 것인가? 다양한 경제적 헤게모니마저 거머쥐겠다는 속 샘이 아니겠는가?

    그람시는 혁명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족적인 성향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탈리아의 현실에 맞고 이탈리아 시민들의 열망과 관습, 그리고 욕구를 드러내는 언어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이 나라에서의 그람시의 망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민족의 열망인 통일이라는 욕구를 충동해서 반미, 반일 친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언어 전술을 구사 한다. 그람시의 전략대로 계급투쟁을 단순히 계급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민중적 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위장함으로써 광범위한 지지계층을 확보 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키아벨리의 이중적 전망을 인용해서 당은 ‘강제와 동의’, ‘권한과 헤게모니’, ‘폭력과 교화’, ‘선동과 선전’, ‘전술과 전략’이라는 두 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람시의 이론대로 지금 선동과 거짓 선전을 너무나 잘하고 있다.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명수들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고 교회가 속아 넘어가고 심지어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마저 속아 넘어가고 있다.

    이즈음에 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와 민족의 선견자가 되고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들만이라도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상이나 목전의 이해타산을 좀 내려놓고 말씀과 냉철한 지각으로 그람시의 망령을 몰아내고 성령께서 기쁘시게 교회위에 운행 하시도록 성령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성령님의 종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합심(合心) 기도(祈禱)(마태복음 18:18∼20) 수요성서학당 #. 13 (09-09-2020)

    오늘 수요성서학당의 주제는 "합심 기도"입니다.

    '합심 기도'를 주제로 결정한 동기는 백혈병 환자와 심장 수술을 받을 환자 그리고 암 환자를 위한 기도 제목을 소개하면서 합심 기도의 성경적 의미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합심 기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품앗이 기도(祈禱)

    "품앗이"란 농경사회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 모내기를 할 경우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모내기에 동참하여 일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생활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합심 기도"가 마치 "품앗이 기도"처럼 생각하여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로 동참하면 이 다음에 내가 어려움에 처할 경우 나를 위하여 기도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심 기도가 아닙니다.
     
    둘째는 합력 기도(祈禱)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가 되면 바다가 모여 대양을 만드는 것처럼 나와 같은 힘이 없는 기도일지라고 힘을 더하면 능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암에 걸려 어떤 사람은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나지만 어떤 사람은 2년 3년 이상 고통 가운데 시달리가 결국은 세상을 떠납니다.
    왜 그렇게 고통 가운데 시달리게 하시고 데려 가실까요?
    암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암 환자 주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누군가가 아직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합심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생각하며 오늘 함께 읽을 말씀 마태복음 18:18-20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본문에서 20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왜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 회당 예배를 시작하려면 성인 남자 10명 이상이 참여해야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일 성인 여자 20명이 모였고 성인 남자가 9명이 모였으면 회당 예배를 시작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회당의 제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예배를 시작하는 기준은 성인 남자 10명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얼마든지 예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교회에 모여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과연 교회에서 모여서 예배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이 바람직한 예배일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오늘 이 말씀에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겠습니다.

    20절을 다시 한 번 더 함께 읽어보게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여러분, 온라인으로 예배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실까요?
    아니면 함께 하지 않을실까요?

    이제 합심 기도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 1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함께 읽은 말씀에서 "매면" 그리고 "풀면"이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매면이란 묶는다는 뜻이고, 풀면이란 묶은 것을 푸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할 때 묶는 것은 무엇이고 푸는 것은 무엇일까요?
    합심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묶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합심 기도를 마치면 기도하는 사람을 푸는 것도 아닙니다.

    매는 것 푸는 것을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8장 1절부터 본문의 배경을 자세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첫째,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겸손(謙遜)은 "자아부정(自我否定)"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겸손이다.
    구원은 회개하므로 시작하고, 믿음은 겸손으로 열매를 맺는다!

    둘째, 소자를 잘 대접하는 일(5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소자는 어린 아이를 말합니다.
    그러나 소자의 의미를 확대한다면 어린 아이가 부모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해야 할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소자는 육신적으로는 어린 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움이 철저하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14절)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것도 믿는 자마다 구원 받아 천국에 보내기 위함이고, 이 땅에 교회를 많이 세우신 목적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지 사회 참여나 사회사업 때문이 아닙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The church has nothing to do but to save souls)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이 일을 위해 쓰임 받도록 하시오”(Therefore, spend and be spent in this work).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복음을 깨닫고 거듭난 후에 이 말을 할 수 있었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하나님은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넷째, 범죄한 형제를 용서하여 회개케 하는 일(15절)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17절)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 일을 두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늘에서도 용서와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합심 기도는 어떤 어려운 일을 위하여 힘을 모아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도 필요하지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땅에 풀어야 할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4절)
    소자를 잘 대접하는 일(5절)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14절)
    범죄한 형제를 용서하여 회개케 하는 일(15절)

    이와 같은 일에 열심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합력(合力)과 합심(合心)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합력(合力)이란 "힘을 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할 (合), 힘 (力)

    * 합력하여 / 판타 수네르게이(πάντα συνεργεῖ) all things work together
    - 판타(πάντα) /  πᾶς(pas) all, every. Adjective
    - 수네르게이(συνεργεῖ) /  συνεργέω(sunergeó) to work together. Verb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합심(合心)
    * 헬라어 : 쉼포네소신(symphōnēsōsin, συμφωνήσωσιν) 동의 할 것이다(might agree)
    - 숨포네오(4856, sumphóneó. συμφωνέω),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Definition :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Usage : I agree with, harmonize with, agree together. 

    합심(合心)이란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합할 (合) : 사람 (人) + 한 (一) + 입(口) = 합(合)
    합이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합심이란 사람의 입과 마음이 일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심기도의 본질  
    - 합심 기도는 기도의 방식이며 기도의 본질은 아니다.

     합심 기도는 합력이 아니다.
     합심 기도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8장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살펴야 할한다.

    신자가 동료 성도나 불신자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꼭 두 세 명 이상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심이 갈 수 있습니다.
    혼자 집에서도 열심히, 간절히, 성실히 이웃을 위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해하듯이 합심 기도의 목적과 효능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여럿이 모여 기도하므로 하나님 보좌를 흔드는 능력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둘째는 성도의 교제를 위한 것이다.
    셋째는 힘을 합해 기도하는 것 자체가 바로 서로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합심기도에 이러한 요소들이 분명히 작용합니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지만 기도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기도의 본질을 따져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독립적으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다른 어떤 가르침과도 연결되지 않는 말씀이라면 합심으로 중보 기도만 하면 응답이 잘 된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에 다른 가르침을 주시는 가운데 나온 말씀이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본문 앞에 어떤 기사가 나옵니까?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더 큰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처럼 먼저 낮아져서 소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자여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네 형제 중에 누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권면, 증참(證參)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했습니다.(마18:1-17)    

    그 모든 말씀의 결론으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절)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땅에서 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합심 기도(마태복음 18:19∼20)

    (관주성경)
    19. 眞實(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中(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合心(합심)하여 무엇이든지 求(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爲(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中(중)에 있느니라.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한글개역성경)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Again,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you ask for,
    it will be done for you by my Father in heaven.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합심(合心)
    * 헬라어 : 쉼포네소신(symphōnēsōsin, συμφωνήσωσιν) 동의 할 것이다(might agree)
    - 숨포네오(4856, sumphóneó. συμφωνέω),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Definition :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Usage : I agree with, harmonize with, agree together. 

    합심(合心)이란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합할 합(合) : 사람 인(人) + 한 일(一) + 입 구(口) = 합(合)
    합이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합심이란 사람의 입과 마음이 일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과 입이 일치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입을 사용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언어(言語)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긍정적인 언어와 부정적인 언어로 구분합니다.
    긍정적인 언어는 모두에게 유익하고 힘과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언어는 모두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둘째는 음식 섭취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음식에도 건강한 음식과 건강을 해롭게 하는 음식으로 구분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입이 일치가 되는 것은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말에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말에 책임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솝 우화에서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이야기는 거짓말장이 소년 양치기는 자기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자기 성찰을 하지 못한 이유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재미를 즐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