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엘로힘) 수요성서학당 하나님의 이름 #.10

 창조주 하나님(창세기 1:1)

"창조주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Elohim)"이라고 합니다.
엘로힘(Elohim)이란 "창조주우주의 심판자"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엘로힘의 하나님을 "크고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엘로힘의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엘로힘"이란 단어가 복수명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엘로힘)”만 언급되며,

창세기 2:4에서 비로소 “(LORD)” 가 언급된다.
여호와 하나님천지창조하신 때에 천지창조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영어로 the Lord God 이라고 번역하였다.

(LOR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웨이며,
자비를 베푸는자긍휼을 베푸는자용서하는 자구속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 분의 긍휼이 필요함을 아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어야 합니다.
한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습니다.
* 히브리어에는 원래 모음이 없었습니다.
자음만 표기되었지만 전통에 따라 모음이 있는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읽습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בראשית)  바라(ברא)         엘로힘(אלהים)  에트(את),  하샤마임(השמים), 베에트(ואת),  하아레츠(הארץ)  
처음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하늘                      과                   땅을

히브리어로 창세기 1장 1절은 일곱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1:1-3
태초
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
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습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בראשית)  바라(ברא)         엘로힘(אלהים)  에트(את),  하샤마임(השמים), 베에트(ואת),  하아레츠(הארץ)  
처음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하늘                      과                   땅을

히브리어로 창세기 1장 1절은 일곱 단어입니다.

처음” 이라는 히브리어는 "레쉬트(ראשית)" 이다.
레쉬트의 관주구절을 살펴보자.
 
이사야 46:10,
(개역 한글 성경) 처음
내가 종말을 처음(레쉬트)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처음(레쉬트)부터 결말을 밝히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고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터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일을 모두 이루리라 하였노라.
 
레위기 23:10 
(개역 한글 성경) 첫 열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레쉬트)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너희 수확물의 첫 열매(레쉬트)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고린도전서 15:20 
(개역 한글 성경) 첫 열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레쉬트)가 되셨도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레쉬트)가 되셨도다 ·         

골로새서 1:18 
(개역한글 성경) 레쉬트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레쉬트)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예수님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레쉬트)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레쉬트(처음)첫열매이시고 교회의 머리되시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처음에”에서 ”~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트(ב) 이며,
그 의미는 “~안에”, “~통하여”, “~때문에”, “~위하여” 등이다.
따라서, 창세기 1:1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이 될 수 있다.

창세기 1:1,  예수님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하나님(Go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엘로힘 이며,
창조주우주의 심판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만 언급되며,

창세기 2:4에서 비로소 “(LORD)” 가 언급된다.
(LOR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웨이며,
자비를 베푸는자긍휼을 베푸는자용서하는 자구속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 분의 긍휼이 필요함을 아셨다

"에트"는 히브리 알파벳의 첫 문자 알렢(א‎)과 마지막 문자 타브(ת‎)
에트(את)는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이 에트는 동사전치사의 의 목적어를 강조할 때 사용되는데,
영어에는 이러한 용법이 없기 때문에 번역이 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A)와 오메가(Ω )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헬라어로 알파(A)와 오메가(Ω )는 히브리어로 알레프(ת, Tav)타브(ת, Tav) 이다.
바로 이 번역되지 않은 에트(תא)가 알레프( א, Alef)와 타브(ת, Tav)이신 예수님인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기 1:1절의 히브리어 일곱글자 가운데 정 중앙에 위치하신다.
 
“~과(and)” 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에트(ואת)이다.
이 단어의 맨 앞(우측)글자인 바브(ו, Vav )는 못(nail)이라는 뜻을 가진 상형문자이며,
字價 가 6인데, 창 1:1절에서  여섯번째 단어에 사용되고 있다.
그 다음에 다시 알레프( א, Alef)와 타브(ת, Tav)라는 문자는 역시 예수님을 나타낸다.
즉, 예수님께서 天地를 붙들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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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족보(마태복음 1:6) 주일설교 원고(08-09-20) 이승혁목사

예수님의 족보(마태복음 1:6)

이새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1. 선입견(先入見)
2. 편견(偏見)
3. 고정관념(固定觀念)

미국 영화의 등급제

G(General) 등급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는 영화.

PG(Parental Guidance) 등급은 부모의 감독을 받아야만 볼 수 있는 영화
예를 들면 PG 13은 13세 이하는 부모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영화

R(Restricted)의 약자로 폭력적이고 성적인 내용이 많아 16세 이상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  

영화의 등급에 따라 성경의 이야기를 적용한다면 상당한 어떤 내용은 R 등급에 속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이야기는 우리아(Urias 또는 우리야, Urias. 여호와는 빛)의 아내 밧세바(Paddan, 맹약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글자 수로는 여섯 글자입니다.
그러나 여섯 글자 안에 엄청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우리야 또는 우리아라고도 합니다.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빛이시다"
우리아를 "헷 사람" 이라고 합니다.
헷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야 합니다.

"헷 사람 우리아"라는 짧은 문구에서 우리는 여섯 글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밧세바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사무엘하 11:2-5)
우리아는 다윗의 30인에 속한 인물로(삼하 23:39) 밧세바는 다윗의 충성된 신하의 아내였다.
우리아는 가나안 족이나 그의 이름으로 보아 유대교로 개종했거나 이미 개종한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름이다.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라는 경건한 뜻이다.
우리아헷 사람이라고 상기시킴으로 이방인인 그가 이스라엘의 왕보다 더 의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전사했다.
아니 살인을 당했다.
그것도 자신의 아내를 빼앗은 자에게, 자신이 그렇게 충성을 다 바쳤고 신뢰했던 자에게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마태복음 1장 6절의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다윗은 우리아(개역한글판의 마태복음에서는 우리야라고 표기하고 있음)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라는 대목이 나온다.

두 가지의 의미를 묵상해 볼 수 있다.

먼저 밧세바라고 해도 되는 것을(비교: 마 1:5) 굳이 우리아의 아내라고 함으로 우리아에 대한 명예 회복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비록 비명에 죽었으나 족보에 언급됨으로써 그를 기억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삶을 산 사람을 궁극적으로 높이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윗 개인의 삶에는 커다란 오점이요, 다윗의 집안에는 칼이 떠나지 않게 한(삼하 12:10) 우리아 사건을 상기시킴으로써 결국 이러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그분은 불완전한 인간들을 통해 오셔서 그 가운데 구원을 베풀러 오셨음을 그분의 족보를 통해 상기시켜 준다.
동시에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감당하신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인간적 관점에서 우리아는 비록 억울하게 죽었지만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스러운 종의 삶을 살았다(삼하 11장). 
이 점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큰 상을 얻었습니다.
우리아가 받은 상급은 밧세바라고 기록되야 할 자리에 밧세바가 아니라 우리아의 아내라고 우리아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 즉 왕의 족보 구세주의 족보에 이방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을 믿고 따름으로 받은 상급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삶과 죽음은 성군 다윗이 속으로부터 부패한 인간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죄인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성군 다윗도 아무 것도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헷 사람이란 헷 족속에 속한 사람을 말합니다.
헷 족속은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 중에서 함의  아들 가나안의 아들을 말합니다.
노아와의 관계는 손자가 됩니다.
헷 족속은 오래 전부터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원주민이었습니다(창세기 15:20)
헤브론 지역(창 23:3-20))과 가나안 중앙 산지에 거주(민 13:29)하였으며 가나안에 가주한 족속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족속이었습니다(수 1:4).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헷 족속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 에서의 아내 유딧과 바스맛(창세기 26:34)
2. 에브론(창세기 23:10)
3. 아히멜렉(사무엘상 26:6)
4. 우리아(사무엘하 23:39)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거주할 때 막벨라 굴을 팔았습니다(창세기 23:9)

이제까지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 할 때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네 명의 여자들의 이름이 소개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29일(수) 마태복음 1장을 오늘의 묵상을 위한 말씀으로 읽으면서 네 명의 여자들이 아니라 세 명의 여자들이었고 한 명의 남자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를 포함하면 네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라고 하겠습니다.

헷(Hittites) 사람 우리야(우리아)

가나안의 아들들 가운데 두 번째로 이름이 나오는 사람인 의 자손으로 이루어진 민족(15,  18).

15, 가나안은 장자 시돈을 낳고.
18, 아르왓 족속스말 족속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

따라서 그들은 함족이었다(창세기 10:6).

의 아들은 구스미스라임가나안이요.

우리아의 충성

첫째, 헷 사람

헷 사람이란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이방인이면서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건입니다.
헷 사람이란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으로 함이 낳은 아들 가나안의 후손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상당한 강한 세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막벨라 굴을 구입할 때 막벨라 굴이 헷 사람의 땅이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명하셨던 이야기를 여호수아 1:1∼4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둘째 충성(忠誠)

우리아 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빛이시다"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우리아는 빛과 삶을 실천했던 충성스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아의 충성스런 모습은 전쟁터에 나가라고 명하면 그 명령에 따라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라고 하면 전쟁터에서 돌아왔습니다. 다시 전쟁터로 나가라고 하면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가장 치열한 전투에 참가하라고 하면 그 전투에 앞장서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이 전쟁터에서 불러 왕궁에서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술을 주어 마시고 취하게 한 후에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했으나 그 명령을 거역하고 왕궁에서 머물렀습니다. 다윗 왕은 우리아의 강직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고 전쟁터에서 지휘를 하던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우리아에게 전달하게 했습니다. 다윗 왕의 편지 내용은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투 맨 앞에 내세워 죽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아는 결국 치열한 전투에 앞서서 나갔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아는 개죽음을 당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잊혀 질 수밖에 없는 우리아라는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주셨습니다. 밧세바라는 이름이 기록되어야 할 그 자리에 헷 사람 우리아라고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충성하라는 주님의 명령

충성(忠誠)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아를 통해 볼 수 알 수 것은 우리아는 매우 우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전투에 나가라면 나가고, 궁궐에 오라면 오고, 편지를 써서 가져가라면 가져가고, 성 밑에 가서 싸우라면 싸우고, 죽으라면 죽는 철저한 군인정신을 가졌던 우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특징은 "우직한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보고 듣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실천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이런 현상이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잔 꾀" 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잔 머리 굴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정보의 양은 많은데 많은 정보를 소화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므로 나타나는 기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우직하게 기도하는 사람이 충성스런 사람입니다.
우직하게 성경을 읽는 사람이 충성스런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소금은 음식에 들어가면 완전히 녹아서 없어집니다.
나라고 하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나를 고집합니다.
내가 없어지면 나는 망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어두운 곳에서 방향을 알려줍니다.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하여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빛으로 드러나야 할 텐데 빛이 아니라 오히려 빛을 덮어버려 더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헷 사람 우리아처럼 충성스런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의 조국 자유대한민국이 헷 사람 우리아와 같은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뉴욕이 헷 사람 우리아와 같은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아는 모든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요압 장군과 군사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잠자리를 가지라는 명령에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왜 거절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 전쟁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전쟁이란 거룩한 싸움이었습니다.
거룩한 싸움을 "성전(聖戰)" 이라고 합니다.
전쟁은 거룩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전쟁터에 나갈 때 항상 하나님의 궤를 갖고 나갔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진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진이 있기 때문에 여자들은 진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아는 지금 진과 함께 있으므로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동침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충성해야 할까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약간만 받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받아야 합니다.
너무 많이 받아서 내 속에서 흘러넘쳐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저희들에게 성령으로 넘치도록 채워주셔서
우리가 하는 말이 주님의 언어와 같이 들려지게 하시고
우리가 하는 행동이 주님이 베푸시는 사랑과 같이 나타나게 하셔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시달리는 많은 영혼들에게 소망이 되며 위로가 되고
우리와 더불어 영생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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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스런 일군 모세(민수기 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히브리서 3: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히브리서 3: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시편 101:6
내 눈이 이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잠언 28: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누가복음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라디아서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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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이주했을 때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헷 사람들과 얼마의 접촉을 가졌다.
그 전에 여호와께서는 헷 민족을 포함해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씨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있었다(창 15:18∼21).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사람들(종종 가나안에 있는 나라들을 전체적으로 지칭하는 데 사용된 용어)의 잘못이 아직 온전히 차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창 15:16).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 땅에 대한 헷 사람들의 소유권을 존중해 주었으며, 자기 아내 사라가 죽자 사라를 장사 지낼 동굴을 얻기 위해 헷 사람 소할의 아들 에프론과 거래하였다(창 23:1∼20).

여호수아 시대에 헷 사람들은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 강까지, 곧 헷 사람들의 모든 땅”을 망라하는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수 1:4). 그들은 주로 산간 지방에 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는 레바논과 어쩌면 시리아의 여러 지역도 포함되었을 것이다(민 13:29, 수 11:3)

노아의 저주 아래 있게 되다 헷 사람들은 가나안의 자손이기 때문에 노아가 가나안에게 내린 저주 아래 있었으며, 이스라엘이 그들을 복종시켰을 때 창세기 9:25∼27에 있는 노아의 말이 성취되었다. 헷 사람들의 종교는 다른 가나안의 종교들처럼 틀림없이 남근 숭배를 행하는 이교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손자 에서가 헷 여자들과 결혼했을 때, 이것은 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이삭과 리브가에게 영의 비통함의 근원”이었다(창 26:34∼35, 27:46)

하느님께서는 헷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언급되는 여러 나라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하셨다(출 3L8). 하지만 이러한 나라들은 매우 타락하게 되어, 그 땅에 그들이 있는 것으로 인해 그 땅은 더럽혀졌다(레 18:25, 27).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교제하여 그들의 타락하고 불결한 행위에 빠지는 것의 위험성에 관해 이스라엘에게 많은 경고를 하셨다. 그분은 여러 가지 부도덕한 행위들을 열거하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들을 행하는 것을 금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들 가운데서 어떤 것으로도 너희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헷 사람들을 포함하여]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나라들이 이 모든 것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레 18:1-30.

멸망이 선고되다 헷 사람들은 멸망에 바쳐져야 할 것으로 이름이 언급된 일곱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이 나라들은 이스라엘보다 “인구가 더 많고 강대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당시 이 일곱 나라는 틀림없이 인구가 삼백만 명이 넘었을 것이며, 산악 지방을 본거지로 삼고 있는 헷 사람들은 만만찮은 적이었을 것이다. (신 7:1, 2) 그들은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넜고 도시들인 예리코와 아이를 멸망시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나안의 다른 나라들과 모여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과 싸움으로 적의를 나타냈다.(수 9:1-2, 24:11). 그러므로 헷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잃게 만드는 일이 없게 하려면, 그들의 도시는 멸망되어야 했고 그 주민들은 멸절되어야 하였다. (신 20:16-18)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명령을 철저히 이행하지 않았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그들은 불순종하여 이 나라들을 제거하지 않았으며, 이 나라들은 옆구리의 가시로 그리고 그들을 항상 괴롭히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민 33:55, 56.

후기 역사 이스라엘이 가나안 나라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았고 그래서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다. “나는 말한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을 것이니, 그들은 정녕 너희에게 올무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은 너희에게 유혹물이 될 것이다.’” (판 2:3) 이스라엘 가운데 남아 있던 가나안 사람들은 관대한 대우를 받았으며, 드문 경우이지만 존경받고 책임 있는 지위를 받기까지 하였다. 가나안 나라들 중에서는 헷 사람들만이 하나의 나라로서 지위와 세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왕첫 10:29; 왕둘 7:6.

다윗 군대에 속한 군인 중에는 두 명의 헷 사람 즉 아히멜렉과 우리아가 있었는데, 이들은 장교들이었던 것 같다. 우리아는 이스라엘이 적들에게 승리를 거두는 일을 위해 열심을 나타내는 인물이었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관계를 가졌고, 뒤이어 우리아를 전투에서 위험한 위치에 배치하여 그곳에서 죽게 하였다. 이 때문에 다윗은 하느님께 처벌을 받았다.—삼첫 26:6; 삼둘 11:3, 4, 11, 15-17; 12:9-12.

솔로몬 왕은 헷 사람들 가운데 남자들을 동원하여 노예처럼 강제 노역을 하게 하였다. (대둘 8:7, 8) 그런데 헷 여자들을 포함한 솔로몬의 타국인 아내들은 솔로몬이 자신의 하느님 여호와에게서 돌아서게 만들었다. (왕첫 11:1-6) 헷 사람들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 통치(기원전 917-905년경) 때에는 왕도 있었고 전투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성서에 언급되어 있다. (왕둘 7:6) 하지만 시리아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가 그 땅을 정복했을 때 하나의 세력으로서 헷 사람들은 무력해진 듯하다.

이스라엘이 기원전 537년에 유배에서 회복된 뒤에, 이스라엘 백성과 심지어 일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가나안 민족들의 여자들과 결혼하고 자기들의 딸을 가나안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그중에는 헷 사람들도 있었다. 이것은 하느님의 율법을 범하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에스라는 그들을 질책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타국인 아내들을 내보내기로 합의하게 하였다.—라 9:1, 2; 10:14, 16-19, 44.

비유적 용법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시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에서 “헷 사람”이라는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근본과 태생은 가나안 사람의 땅이었다.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었고,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었다.” (겔 16:3)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그 위에 두신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왔을 당시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도시였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부족이 아모리 사람들과 헷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여부스 사람들을 포함한 가나안 나라들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사용된 듯하다. 따라서 그 도시의 유산은 보잘것없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도시를 아름답게 하셨다. “여호와의 왕좌”에 앉은 다윗 왕을 통해(대첫 29:23), 그리고 시온 산 위에 있던 계약의 궤와, 끝으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찬란한 성전으로 인해, 예루살렘의 명성은 나라들 가운데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그 주변의 가나안 나라들처럼 타락하고 부도덕해졌으며, 이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결국 그 도시를 황폐시키셨다.—겔 16:14, 15.

정체를 밝혀내려는 세속 학자들의 노력 역사가들과 고고학자들은 성서에 나오는 헷 사람들이 세속 역사에 나오는 어떤 민족들인지를 밝혀내려고 애써 왔다. 그들은 주로 언어학적인 방법 즉 소리나 철자가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을 비교하는 방법을 근거로 같은 민족을 밝혀낸다.

아시리아의 설형 문자 문헌들에는 “하티”가 자주 언급되어 있는데, 대개의 경우 문맥에서는 하티가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에 있었음을 알려 준다. 그러한 내용들은 성서에 나오는 헷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하티”라는 표현에 근거하여, 학자들은 성서에 나오는 헷 사람들(Hittites)을, 가나안 땅에서 북쪽으로뿐 아니라 서쪽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소아시아에 수도를 둔 소위 히타이트(Hittite) 제국과 동일시하려고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데, 그렇게 하는 가운데 그들은 서로 다른 세 부류의 사람들을 관련시킨다.

헷 사람들과 “동일시되는” 세 민족 집단 소아시아의 아나톨리아(현재 터키로 불리는 지역의 일부)에서는 이전에 “하투샤시”라고 불리던 보가즈쾨이에서 많은 고대 문헌들이 발굴되었다. 이곳은 현대의 학자들이 하티라고 불러 왔고 그 주민이 “하티어”를 사용하던 나라의 수도였다. 초기의 이 민족은 정복자들에게 침략을 당한 것 같은데, 그 정복자들은 다른 언어, 즉 학자들에 의하면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한 언어를 들여왔다고 한다. 이 언어는 설형 문자를 사용했으며, “설형 문자 히타이트어”라고 불린다. 후에 이 설형 문자는 상형 문자를 사용하는 또 다른 인도·유럽 어족 언어로 대치되었는데, 이 언어는 “상형 문자 히타이트어”라고 불린다. 이 언어로 쓰여진 실례가 될 만한 문헌들은 소아시아와 시리아 북부, 이 두 곳 모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 세 가지 언어가 세 개의 민족 집단이 존재하였음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떤 사람들도 성서에 나오는 헷 사람들이었다는 증거가 없다. 소위 설형 문자 히타이트어에 관해서, 마르틴 노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히타이트’라는 용어는 고대 문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연구가들이 이 언어와 소아시아의 하티 왕국 사이의 역사적 관련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히타이트 상형 문자”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히타이트라는 관례적인 용어를 그 문자들에 적용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며 혼란을 초래한다.” (「구약 성서의 세계」 The Old Testament World, 1966년, 231면) 또 다른 역사가인 E. A. 스파이저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성서에 나오는 헷 사람들에 관한 문제는 ··· 복잡하다. 우선, 성서 어느 구절에 헷 사람들(Hittites)이 나오든 간에, 그것이 어떤 히타이트인들을 말하는 것인지, 즉 하티인들인지, 설형 문자 기록을 사용한 인도·유럽 어족의 히타이트인들인지, 아니면 상형 문자를 사용한 히타이트인들인지부터가 문제이다.”—「유대 민족의 세계사」(The World History of the Jewish People), 1964년, 1권, 160면.

위의 내용을 볼 때, 성서에 나오는 헷 사람들을 하투샤시를 수도로 삼았던 “히타이트 제국”과 동일시하는 어떤 견해도 증명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점들 때문에 본 출판물에서는 세속 역사 속의 “히타이트인들”을 언급할 때는 대개 따옴표를 사용하여, 독자에게 그들의 정체에 대한 그러한 견해가 증명되지 않은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견해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증거가 강력하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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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가 주는 의미


창세기 5장에는 많은 사람의 이름을 담은 족보가 나옵니다. 성경에서 족보를 자주 소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족보는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 그리고 유한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되어 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1975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이 60세, 여성은 68세였습니다. 2005년에는 남성 76세, 여성 83세로 늘어나 평균 80세 정도가 되었습니다. 고려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42세이고, 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고, 불과 30년 사이에 수명이 15년 이상 연장됐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수명은 차원이 다릅니다.
아담은 930세, 셋은 920세, 에노스는 905세, 가장 장수한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365세라는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았던 에녹을 제외하면 창세기 5장에 나타난 이들의 평균 수명은 912세나 됩니다. 홍수 이전에 장수한 사람들의 모습은 장차 천국에서 신앙인이 누릴 영원한 생명의 그림자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의 질병을 이기고 승리한 그리스도인은 주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지상에서 오랫동안 사는 것은 주님의 축복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을 생각하면 나그네 같은 땅 위의 삶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은 근원적인 절망의 삶에 온전한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어느 시대든 하나님은 사람을 택하고 세우셔서 그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세상이 암흑으로 덮이고 인류에 죄악이 물결쳐도 시대를 거슬러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경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족보 이야기 가운데 혜성처럼 빛나는 한 인물, 바로 에녹입니다.


그의 삶도 다른 사람들처럼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5:21~24). 단순한 그의 삶에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에녹의 삶에 동행이라는 말은 두 번이나 반복돼 그의 삶이 하나님과 전적으로 동행한 것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삶이 하나님께 헌신되었는지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는 365년의 생애 가운데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동행이란 ‘함께 걷다’ 또는 ‘함께 살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함께 걷고 살아간다는 것은 평소의 삶 자체를 보여 줍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칭송받은 사람, 피조물이 창조된 목적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그대로 실현했던 에녹이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가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갈 때, 에녹은 캄캄한 밤하늘에 혜성처럼 빛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시대의 흐름에 물들지 않고,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하늘을 향해 호흡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신의 행복이 최대 관심거리가 된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에녹이 평생 주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녹은 매일 동행하기 위해 매 순간 주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결단입니다. 위대한 인생을 살려 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삶은 예수님의 일생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하나님 자신이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뿌리 없는 나무는 곧 시들어 말라버려 죽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뿌리가 있습니다.
Family Tree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가계도(家系圖)” 라고 합니다.
내 조상의 뿌리를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신앙의 뿌리도 정리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고 어떻게 봉사하며 섬겼는지 신앙의 이력서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은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할 때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네 명의 이방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하는 설교를 자주 들었습니다. 이렇게 자주 듣던 설교 때문에 성경을 성경대로 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족보를 다시 살펴보면 네 명의 이방 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세 명의 이방 여인의 이름과 한 명의 이방 남자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성경을 읽을 때 습관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 퀴즈 대회를 할 때에도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이방 여인의 이름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다말, 모압 여인 룻, 그리고 밧세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답에서 성경을 읽는 자세를 다시 한 번 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 명의 이방 여인들의 이름은 



우리아(Urias) / 뜻 - 빛

1. 헷 족속의 사람으로 다윗의 충성된 군인이요 미인 밧세바의 남편이다.

그가 랍바에 출정 중 다윗 왕이 그 처를 간통하고 그 죄의 자취를 감추려고 그를 소환 하여 집에 가서 편히 쉬라 하였으나 전쟁 중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고 불응하였다.

부득이 전쟁에 다시 보내며 대장 요압에게 편지하기를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의 제일 앞에 세워 죽게 하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는 전사하였다 애석하다, 충성된 군인이 불의의 화를 당함이여. 그 아내 밧세바는 다윗왕의 왕비가 되었다(삼하 11: 마 1:6).

2. 유대국 아하스 왕 때의 제사장으로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 가서 보낸 우상의 제단 도형을 받아 그대로 만들어 왕으로 제사하게 하였다(왕하 16:20∼21).

3.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의 선지자로서 여호야김과 나라에 대하여 예언을 하 였더니 그를 잡아 죽이려하므로 애급으로 도망하였다(렘 26:20∼21)>

밧세바(Bathsheba) / 뜻 -

밧세바는 엘리암의 딸이자 히타이트 사람으로 다윗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였다. 어느 날 다윗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그 남편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에 그녀와 여러 차례 정을 통하였다. 결국 밧세바가 다윗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다윗 왕은 밧세바를 영원히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이자 군대장관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 도저히 살아올 수 없는 위험한 전투에 우리야를 내보내 우리야를 죽게 했다.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 왕은 즉시 밧세바와 혼례를 올렸으며, 밧세바는 임신했던 첫째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예언자 나탄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윗을 꾸짖고 저주하였고 아이는 일주일 만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이후 밧세바는 둘째 아들 솔로몬을 낳았고 이후 솔로몬은 다윗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이 되었다.

다윗 왕 말기에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 행세를 하자 밧세바는 나단과 함께 이를 다윗에게 보고하여 아도니야의 반란에 미리 대처할 수 있었다. 밧세바에 관한 그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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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밧세바 - 사무엘하 11장

1.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두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골리앗과 밧세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살펴보면 이 두 사람은 완벽한 대조를 이룹니다. 골리앗을 만난 다윗은 아직 어리고 무명 이었며, 세상 경험도 많지 않았던 반면, 밧세바를 만났을 때 다윗은 왕이었고, 충분히 나이도 들었으며, 여러 가지 시련들을 극복하며 백성들로 이미 용기 있고 지혜로운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던 때 이었습니다.

2. 이 둘의 외모 또한 극과 극이지만, 다윗과의 관계 측면에서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윗을 일종의 시험장, 곧 그의 속마음이 어떠한지 드러내는 자리로 데려갔다는 사실입니다. 골리앗과의 만남에서는 다윗이 상황에 지배받기 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밧세바의 경우에는 그가 기도의 자리에 있지 아니한 것을 깨닫게 되고, 이후로 기도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3. 본문 당시의 상황은 계절 상 봄이었습니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봄에 주로 전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출전 중이었던 이스라엘 군대를 뒤로하고, 다윗은 궁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궁전 옥상을 거닐다 우연히 한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으로서의 모든 힘을 과시하며 그 여인을 불러오고,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이는 기도하는 자의 정체성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권력자의 모습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4. 당시 그 여인,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전쟁에 나가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밧세바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다윗 왕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밧세바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다윗 왕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을까요?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다가 휴가를 줍니다. 이러한 다윗의 반응에서 보여 지는 다윗 왕의 모습은 이미 세상일과 처세에 능하며, 어떻게 자신의 위기를 빠져나가야 할지를 알고 있는 모습입니다.

5. 하지만, 아무리 능수능란하여 상황은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아는 집에 돌아왔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며 편하게 잠자리를 갖지 않습니다. 우리아에게 술을 먹여보아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다윗왕은 우리아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우리아를 다시 전쟁터에 보내며 위험한 최전방에 배치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6.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윗왕의 모습, 특별히 지도자로서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이 순간만큼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자의 정체성으로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있는 탐욕스런 왕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윗 왕은 첫째로, 간음의 죄를 저질렀고, 둘째로, 간음한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한 여인의 남편을 고의적으로 죽게 한 죄를 범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셈입니다.

7. 하지만 이것이 다윗의 저지른 죄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 본문을 살펴보면, 의도적으로 보이리만큼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보내다" 라는 단어입니다. 다윗 왕은 군대를 보내고, 신하를 보내고, 전갈을 보내고 우리아를 보내고 사람을 보내고,,,등등 이 본문에서 '보내다'는 동사/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보낸다'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신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8. 그런데 바로 다음 장인 사무엘하 12장을 보면, 다윗의 죄를 깨닫게 한 선지자 나단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12장 1절에 '보내다'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어쩌면 성경의 저자는 다윗의 이야기를 전하며 수 많은 상황 속에 보내는 주체로서의 다윗을 서술하다가 마침내 선지자 나단을 등장시키며, 하나님의 보내심을 말합니다. 즉, 보내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영역일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사람들의 삶에 스스로 하나님 역할을 했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보내고, 전갈을 보내며 사람들의 삶을 조종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본질적인 죄입니다.

9. 그렇다면, 다윗 왕이 이러한 죄악의 길로 빠지게 되는 통로는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옥상으로 올라간 다윗의 행동이 문제였는지, 혹은 다 보이는 곳에서 목욕을 한 밧세바가 더욱 문제였는지 하는 사실여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어느 순간부터 잘못되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본문의 상황 안에서 어떠한 행동 혹은 환경이 다윗으로 하여금 죄의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 살보며 우리 역시 죄의 통로를 경계해야 합니다.

10. 알다시피 다윗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일종의 군사적인 이유에서 왕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삼상 8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할 때. 사무엘은 그들에게 왕이 생겨나면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을텐데 괜찮을지 물어봅니다. "왕이 세워진 그 때는 너희 손으로 세운 왕을 인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11. 하지만 사무엘의 말에 장로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삼상 8장 19-20절) 그들의 말에 의하면 왕의 역할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백성을 다스리는 것과 둘째는 군사를 이끌고 앞에 나가서 전쟁을 지휘하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해가 돌아와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즉, 전쟁의 때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요압과 그 신복 온 이스라엘 군대를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원문의 표현에 보면 그 다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예루살렘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는 저녁에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가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13. 그렇다면 다윗이 죄로 빠지게 된 통로가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그것은 나라가 전쟁 중인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끌어야 할 왕이 전쟁에 나가지 않은 것입니다. 왕이 왕으로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자신의 몸이 편한 곳,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특별히 지도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14.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리적인 위치도 있지만, 영적이고 상황적인 위치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과연 이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요즘과 같은 때에 국내외 정치를 보면서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감사절과 연말이 다가오는 시점에 우리는 과연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끊임없는 고민과 실행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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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세바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불의하게 자신의 부인으로 취한 여인이었다(삼하 11∼12장).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아비가일과 아히노암은 다윗이 왕 되기 전 고난 중 변함없이 함께 한 여인들이다.  이 점에서 이 여인들과 비교한다면 밧세바가 어떤 여인인지  짐작된다.


그러나 나중 밧세바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외적 미모가 죄의 유혹을 일으켰고 그 결과 불행과 비극을 당했지만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정말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자신의 무가치함과 하나님의 은총의 위대성을 철저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밧세바는 헌신적인 신앙인으로 날마다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아비가일이나 아히노암이 밧세바보다 성경에 더 많이 기록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 반대였다. 밧세바의 기록은 자랑스럽지 않은 일로부터 시작하여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까지 기록된다. 사무엘하 11장부터 열왕기상 2장까지 밧세바의 삶은 성경에 계속 기록된다. 이와 비교한다면 그렇게 훌륭하고 지혜로운 여인인 아비가일은 사무엘상 25장 한 장에만 그리고 아히노암은 아비가일의 기록 중 겨우 한 줄(삼상 25:43)만 언급되었다.

상급을 공평하게 줄 하나님이 불공평하게 이들을 대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는 하나님이 주인공으로 어떻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일했는가를 기록한다.  주인공 이외 다른 인물들을 조연(助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연들도 하나님의 구속사에 공헌을 한다.  조연들은 이 공헌에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한다.


조연들은 맡은 사역이 있고 그에 따른 직분이 있다.  사역이나 직분에 따라 은사도 다 달리 주어진다.  이 때문에 은사의 크기를 서로 비교하며 좋고 나쁘다는 이분법으로 조연들을 평가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그 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느 누가 더 자신의 역할에 충성했는가가 더 중요하고 이것이 하나님이 평가하는 기준일 것이다.  어떤 충성을 하였느냐에 따라 상급이 결정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밧세바가 종국적으로 자신의 외적 미모 덕분에 다윗의 부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두 여인들과는 완전히 다르고 영적 차원에서 본다면 한참 저차원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세바는 솔로몬이라는 위대한 왕을 낳는 영광을 얻었다.  인간적 관점에서 보아 정말 하나님은 불공평한 것처럼 보인다.


밧세바 때문에 그의 남편이며 다윗에게 충성한 신하이며 용맹스런 장군이었던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물론 다윗이 꾸민 음모의 결과였다.  다윗은 참으로 비열하고 몰인정하며 가증스런 왕으로 하나님 앞에 드러났다.  그가 비록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였지만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가 모형이라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 같은 성군이라도 일단 죄를 범한다면 연이어 죄를 짓게 된다.  죄는 죄를 또 낳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했다.


인간적 관점에서 비록 억울하게 죽었지만 우리아는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스러운 종의 삶을 살았다(삼하11장).  이 점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큰 상을 얻었을 것이다.  그의 삶과 죽음은 성군 다윗이 속으로부터 부패한 인간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죄인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성군 다윗도 아무 것도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결국 밧세바와 그의 삶은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이 사실은 그녀에게서 솔로몬이 출생했다는 사실에서도 잘 증명된다.  불의한 관계로부터 출발된 다윗과 밧세바의 인연은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 불의하고 가증스러워 죄와 죄악 자체였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이런 불완전한 다윗과 영원한 왕국 언약을 이미 맺었다는 것이다(삼하7장).


이 언약 체결 덕분에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영광과 명예와 존귀를 얻은 다윗(삼7:18-19절)은 그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아의 부인인 밧세바와 불의한 성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취소불능했다.  다윗에게 약속한 대로 하나님 나라 다윗 왕국을 계속 이어나갈 후손을 하나님은 주어야 했다(삼하7:12-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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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
https://zekesnote.tistory.com/1123 


질문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가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답변 : 예수님의 족보는 성경의 두 곳, 즉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23∼3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계보를 추적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으로부터 아담까지 계보를 추적합니다.
하지만 마태와 누가가 완전히 다른 족보를 추적하고 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는 요셉의 아버지를 야곱(마 1:16)이라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요셉의 아버지를 헬리(눅 3:2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마 1:6)의 계열을 따라 추적하지만, 누가는 다윗의 아들 나단(눅 3:31)의 계열을 따라 추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과 예수님 사이에서 각 족보가 공통으로 서술하는 이름들은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뿐입니다(마 1:26, 눅 3:27).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점을 성경의 오류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꼼꼼한 기록 관리자들이었으며, 특히 계보와 관련해서는 더욱 세심하였습니다. 마태와 누가가 동일한 혈통에 대해 완전하게 서로 모순되는 족보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윗으로부터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계보는 각각 완전히 다릅니다. 심지어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에 대한 언급조차도 동명이인에 대한 언급일 수 있습니다. 마태는 “스알디엘”의 아버지를 “여고냐”라고 언급하는 반면 누가는 “스알디엘”의 아버지를 “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알디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스룹바벨이라고 짓는 것은 그런 이름을 가진 자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것입니다(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읽어 보십시오).


이에 대해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가 제시한 한 가지 설명은 마태가 장자 또는 생물학적 계보를 추적하는 반면 누가는 “수혼 결혼”의 경우들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한 남자가 아들을 갖지 못하고 죽으면 그 남자의 형제가 그 과부와 결혼하여 죽은 사람의 이름을 이어받을 아들을 갖게 하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유세비우스의 이론에 따르면, 멜기(눅 3:24)와 맛단(마 1:15)은 똑같은 여인(전통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은 ‘에스다’임)에게 다른 시기에 결혼했습니다. 이에 헬리(눅 3:23)와 야곱(마 1:15)은 이부 형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 헬리는 아들이 없이 죽었고, 이에 그의 이부 형제 야곱이 과부가 된 헬리의 아내와 결혼하여 요셉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합법적으로는 ‘헬리의 아들’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야곱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태와 누가는 모두 요셉의 동일한 계보를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는 법적인 계보를 따르고 마태는 생물학적인 계보를 따릅니다.


오늘날 보수적인 성서학자들은 누가는 마리아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고 마태는 요셉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는 다른 견해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마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요셉(예수님의 합법적인 아버지)의 계보를 따라가며 누가는 다윗의 아들 나단을 통해 마리아(예수님과 혈연관계)의 계보를 따라갑니다. 요셉은 헬리의 딸 마리아와 결혼하면서 헬리의 사위가 되었지만 헬라어에는 ‘사위’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헬리의 아들”로 불립니다. 아무튼 마리아의 계통을 따르든지 또는 요셉의 계통을 따르든지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에 메시야가 되실 자격이 있습니다. 모계 쪽으로 족보를 추적하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처녀 마리아를 통한 탄생은 더욱 그러합니다. 누가의 설명은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었고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눅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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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왕의 계보(마태복음)

* 마태는 예수님의 조상을 14대씩 3세대로 나누어 기록하였다(일반적인 유대 선택적 족보기록 법을 따름)

왕국 이전 /   
①. 아브라함, ②. 이삭, ③. 야곱, ④. 유다, ⑤. 베레스, ⑥. 헤스론, ⑦. 람, ⑧. 아미나답, ⑨. 나손, ⑩. 살몬,  ⑪. 보아스, ⑫. 오벳, ⑬. 이새,  ⑭. 다윗

왕국 시대 / 
①. 다윗, ②. 솔로몬, ③. 르호보암, ④. 아비야, ⑤. 아사, ⑥. 여호사밧, ⑦. 요람, ⑧. 웃시야, ⑨. 요담, ⑩. 아하스, ⑪. 히스기야, ⑫. 므낫세,  ⑬. 아몬, ⑭. 요시야


왕국 이후 / 
①. 여고냐, ②. 스알디엘, ③. 스룹바벨, ④. 아비훗, ⑤. 엘리아김, ⑥.아소르, ⑦. 사독, ⑧. 아킴, ⑨. 엘리웃, ⑩. 엘르아살, ⑪. 맛단, ⑫. 야곱, ⑬. 요셉, ⑭. 주 예수 그리스도 


* 다윗만 유일하게 이 족보에서 왕으로 묘사된다(마 1:6)


예수 그리스도,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왕이셨다. 다윗조차도 그를 왕으로 불렀다(시 110:1, 참조 눅 20:43)


여호와(성부 하나님)께서 나의 주님(예수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앞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거라.”(시편 110:1)

4명의 이방 여인

* 마태는 4명의 이방여인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특별하고 독창적인 족보기록 법을 만듦) 

1. 다말(3절)   

①아람인

②첫 번째 남편 ‘엘’- 주의 눈 앞에 사악한 자, 그래서 죽음(창 38:7)

③‘오난’- 하나님을 뜻을 거역함, 그래서 죽음(창 38:10)

④ ‘셀라’- 유다는 또 죽을 까봐 시간만 질질 끔(창 38:14)


*계대결혼(수혼법) 신명기 25:5∼6 

창 38:26 / “유다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녀를 내 아들 이게 워냐 니들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 라합(5절)  

①가나안인-여리고의 창녀

②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믿음을 가짐(수 2:9상, 11하) 

③정탐꾼을 숨겨줌(수 2:10, 11, 히 11:31, 약 2:25)

* 붉은 동아줄? 


3.(5절)  

①모압인- 여호와의 회중에 들어올 수 없는 족속(신 23:3-6)

②시어머니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자 함, 죽음 남편의 친족 보아스를 만남

     

* 보아스는 룻의 증손자

* 기업무를 자 :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시니라”(룻 4:12)


4. 밧세바(6절)

①헷사람 -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삼하 11:3)
* 밧세바라 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② 솔로몬를 낳는다(간음을 통해 태어난 첫째 아들은 태어난 지 7일 만에 죽음(삼하 12:15-18)

       

* 예수는 이방인의 하나님, 이방인의 구주이시다.

*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라합’과 ‘밧세바’는 부도덕/ ‘다말’과 ‘라합’, ‘룻’은 믿음).

요셉과 그리스도

마태복음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목록에 나오는 다른 아버지들의 경우 중요하게 사용된 용어인 “낳고”가 빠져 있다! 요셉의 이름이 법적 아버지요 계보의 연결로서 언급되는데, 이것은 1세기에 유대인들이 법적으로 요구했고 또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동정녀를 통해 탄생하셨다(참조, 1:23-25; 눅 1:34-35).

*“요셉과 약혼하고”: 약혼은 두 사람의 관계를 법적으로 묶는 유대인의 관습으로서 대개 결혼에 앞서 1 년 전에 행해졌다. 두 사람이 따로 떨어져 살았지만, 계약적으로는 결혼상태로 여겨졌다. 죽음 혹은 이혼만 약혼 관계를 파할 수 있었다.


요셉

“의로운 사람이라”(1:19)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이 이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법적 조치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1) 법정에서의 공개적인 비난 혹은 (2) 두 증인 앞에서 이혼증서를 기록하여 주는 일(참조, 신명기 24 장). 마리아는 잉태와 관련된 환상을 요셉에게 말하지 않았다. 구약의 율법은 성적으로 신실하지 못한 사람에게 사형을 선언했다(참조, 신 22:20-21,23-24).


끝까지 마리아를 지켜줌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 주님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요셉은 이름을 ‘예수’ 라 하였다."(마태복음 1:24‭-‬25)


마리아

1.  마리아는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씀을 믿었다(눅 1:37-38).

2.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데도 그 말씀을 믿은 것이다.

마태복음의 족보와 마가복음 족보의 차이

1. 마태는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을 위한 족보를 기록했다.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족보이다.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하향식족보(총 41명)이다.
마태복음 첫머리에 이 족보가 등장한다.

* 히브리어로 다윗의 이름이 갖는 수는 14를 이룸
 D(4) + V(6) + D(4) = 14 유대인들은 다윗을 상징하는 숫자를 14로 여긴다.

2. 누가는 창세기의 예언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이방인 독자).
솔로몬의 동복 형인 나단(삼하 5:14, 대상 3:5, 14:4)으로 이어지는 족보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상향식 족보 총77명).

아담- 하나님께 이어지는 족보이다(인성).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요한의 세례 이후에 기록되었다(회개의 세례 눅 3:3)

3.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의 위를 야곱으로 기록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요셉의 위를 헬리(또는 엘리)로 기록합니다.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 즉 요셉의 장인이다.
그러나 헬리는 아들이 없어서 요셉이 데릴사위 겸 양자로 맞이하게 된다. 

4. 누가는 이 족보의 신빙성과 동정녀 탄생을 고려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삼십세쯤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누가복음 3:23)"  

• 참고 성경구절/

* 누가복음 3:38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 창세기 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이사야 11:10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 사무엘하 7: 15~16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뺏은 것처럼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 창세기 3:15
"내가 너와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니"

* 갈라디아서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수요성서학당(08-12-20) #.9


창세기는 모두 50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창세기전편 후편으로 구분합니다.
전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1장부터 11장까지를 말하며 "세속사(世俗史)" 라고 합니다.
후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12장부터 50장까지를 말하며 "구속사(救贖史)" 라고 합니다.
구속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네 사람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입니다.
이 네 사람의 이름의 첫 글자를 모아 "아이야요" 라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가시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애급으로 돌아가서 내 백성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때 모세는 애급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누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누구라고 말해야 할까요? 하고 묻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여호와)" 라는 이름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의 하나님은 히브리민족 공동체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에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으로 역사속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여호와, 예수의 이름을 요한계시록에서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는데 속뜻은 구원의 시작과 구원의 완성이라고 하겠습니다.

모세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조상의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조상의 하나님이란 신앙이 대를 이어가며 계승된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께서 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나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신앙의 대를 이어가야 할 민족을 이 땅에 세우고 그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실현하시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조상의 하나님으로서 세 가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첫째는 언약의 하나님
둘째는 생명의 하나님
셋째는 순종의 하나님

이와 같은 세 가지 의미를 통해서 민족 공동체를 세우셨고 민족 공동체가 발전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려는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순종의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순종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했습니다.


순종(順從)에 대한 대표적인 성구는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어떻게 순종해야 할끼요?

신명기 13: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It is the LORD your God you must follow, and him you must revere. Keep his commands and obey him; serve him and hold fast to him.

순종하며 - 따르며(follow)
첫째, 경외하며(revere)
둘째, 명령을 지키며(keep)
셋째, 청종하며(obey)
넷째, 섬기며(serve)
다섯째, 부종하고(hold)

(현대인)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따르며 그분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 명령을 지키며 그분에게 순종하고 충성하십시오.

(새번역)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을 따르고 그분만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잘 지키며, 그분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그분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충성을 다하십시오.


순종하며 - 따르며(follow)

마태복음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첫째, 경외하며(revere)
- 악에서 떠나라

*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

잠언 3:7b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Fear the LORD and shun evil.

둘째, 명령을 지키며(keep)
- 간직하라

* 유대인의 전통 쉐마를 출입문에 기록하여 들어가며 나오며 보고 읽고 마음에 새기게 하라.

잠언 7: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My son, keep my words and store up my commands within you.

셋째, 청종하며(obey)

- 하나님 만을 듣는 것

시편 81:13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 성전의 어린 사무엘에게 들린 음성

넷째, 섬기며(serve)
- 자기를 낮추는 것

시편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 섬김의 자세는 기쁨이다.
억지로 하는 것에도 복을 주셨다(구레네 사람 시몬)

다섯째, 부종하고(hold)
- 예수만 바라보라

히브리서 12:2a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삭개오의 부종

* 부종하고(신명기 13:4, 11:22, 30:20, 열왕기상 9:22, 역대하 7:22)
부종이란 단어가 개역 한글 성경에서 5회 사용되었다.
부종(附從) - 붙을 부() , 쫓을 종()셋째, 순종(順從)의 하나님


브라함의 하나님 - 하나님에게 순종

이삭의 하나님 -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

야곱의 하나님 -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


첫째, 아브라함의 하나님 - 하나님에게 순종

창세기 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은 175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고향을 75세에 떠나 100년을 더 살았습니다.
75년 동안 태어나서 자라났던 고향을 떠나는 것은 결코 쉽게 결정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삭의 하나님 -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
The God of Isaac/ God who gives blessing of Obedience

창세기 22:9∼10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브람이 고향을 떠날 때의 나이는 75세 이었습니다.
아들 이삭을 낳은 때는 99세이었고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 때는 대략 세 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의 나이는 세라고 한다면 이삭은 기력이 왕성한 나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묶고 번제물로 바치려 할 때 아들 이삭이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브엘세바에서 헤브론, 헤브론에서 베들레헴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모리아산(오늘날의 예루살렘)으로 3일 길을 옮겨갔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3∼4).

일반적인 그 시대의 여행 방식에 따라, 아브라함이 길을 가는 속도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무렵(3절에 나타난 시간은 그렇다)에 길을 나서서 해가 지기 전에 머물 장소를 찾고 밤을 지새우고, 다시 그 다음날 이른 아침 길을 나섰을 것이다.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4절이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서 바라본지라.” 베들레헴에서 하루 밤을 지낸 아브라함 일행은 셋째 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선다. 베들레헴 지역에서 예루살렘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 지역 까지는 10킬로 안팎이다. 2∼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여기서 성경 내러티브의 흐름을 따라, 그리고 그 때 그 자리의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여 상상해 본다. 아브라함 일행이 모리아 산에 도착한 시간대는 언제였을까? 이른 아침(물론 성경 본문에 글로 적혀 있지 않다)에 길을 나섰던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정확한 시간대는 몰라도, 오전이었음은 분명하다. 모리아 땅의 그 산기슭에 도착하여 땔감을 메고, 불과 칼을 들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이동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언덕까지 오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세기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유대인들은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아케다(aqedah)" 라고 합니다.

* 함께(에하드, echad) - 한 마음으로, 한 사람처럼
이삭은 제물을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의지한 것처럼 동일한 믿음으로 아버지를 믿었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이제 이삭이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바쳐질 제물로서 이삭의 처지를 떠올려보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할 때 이삭이 순종한 것을 두고 많은 독자들은 부전자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아들이 더 나았다고 평가한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려고 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물론 성경은 이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라가 90세 때에 이삭을 낳았고 127세에 죽었다. 어머니 사라가 죽었을 당시 이삭은 37살이었다. 혹자는 이삭이 번제물로 드려질 뻔했을 때의 나이를 37세 직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맥락으로 볼 때는 무리한 계산으로 보인다.

모리아 산(정확하게 표현하면, 모리아 땅에 있는 하나님이 일러준 한 산)으로 향하던 당시 이삭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사흘 길을 갔다. 물론 나귀를 타고 가기도 했을 것이고 걸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나귀를 이용하였고 수행원도 동행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왕복 엿새 길을 여행을 할 만큼 자란 나이였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등에 제물을 불사를 나무를 짊어지고 모리아 산을 올라가게 하였다. 묘하게도 이 대목에서 아브라함은 나귀도 사용하지 않고 이삭과 더불어 맨몸으로 제사 장비를 챙겨가지고 산에 오른다.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면 이삭의 나이는 사춘기가 지난 무렵으로 보인다. 장거리 여행길을 어린아이를 동행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과 이삭의 출생 후 이스마엘이 쫓겨나고 브엘세바로 이주하고 재정착하는 시간들들 염두에 둘 때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에 여자 아이들의 경우는 사춘기 나이부터 결혼이 가능했던 조혼 풍습이 엿보이지만 사내아이들의 결혼 허용 연령은 불분명하다. 어쨌든 이삭이 그 나이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사춘기의 사내라 하여도 110세가 훨씬 넘었을 노인의 물리력을 제압할 힘은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하면 아브라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히 당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묶는다고 해서 그저 묶일 나이도 아니었고, 칼을 들어 내리친다고 그냥 당할 그런 나이는 아니었다.

2. 이삭을 마주하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다. 이삭이다. 이 이야기를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읽을 때면, 그의 순종과 헌신, 자식을 포기하는 희생을 칭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삭은, 이삭은 또 어떤 존재인가? 이삭의 의견, 의중, 감정, 생각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이삭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이 번제 시도 사건을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일까?

동행하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창 22:6).

위의 구절에서 “동행하다” 또는 “함께 나아가다”는 표현을 두 번씩 반복하여 사용되고 있다. 많은 경우 아브라함과 이삭이 한마음을 갖고 이 일을 행하였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풀이한다. 사실이 그랬다. 이삭은 어떤 이유에서든 아브라함의 행동에 복종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행’이 연합된 마음으로 함께 걷는 걸음이었다고만 볼 필요는 없다. 동행은 외형적인 형태이지만, 동행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성경이 침묵 가운데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동행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동행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이삭은 장차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알았다고 하여도 운명으로 체념하였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도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전통, 관습, 운명 또는 숙명의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있다. 게다가 그 폭력을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기도 한다.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만행이 그것이다. 여성성기절제술이 그렇게 버젓이 자행된다. 그 가운데서 고통 하는 어린 소녀들과 여성들을 떠올린다. 이 악행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하여 고통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저항할 힘을 갖지 못한 이들의 체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세기 22:7)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는 어떤 대화들이 오고갔을까? 아브라함은 그와 동행하는 종들에게는 어떤 말을 했을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한 것 말고, 주고받을  대화가 있었을까? 사실 종과 왕 같은 주인 사이에 오고갈 대화가 무엇이 있었을까? 아브라함의 기분과 생각은 어떠하였을까? 동행으로 표현된 그 단어 안에 가득히 흐르는 무거운 침묵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최소한 즐거운 여행, 축제의 분위기는 아니지 않았던가?


3. 트라우마 신앙인 조장을 멈추는 성경읽기


잠시 뒤 이삭은 손발이 묶인 채로 돌 단 위에 놓여진다. 이삭의 얼굴은 어떻게 자리 잡혔을까? 엎어져 있었을까? 눕혀져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눕혀 있었을 것이다. 눕혀져 있던 이삭의 얼굴에 해 빛이 강하게 내리쬔다. 해는 점점 중천에 떠올랐고, 그 강하고 눈부신 햇살을 이삭을 위협적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이삭은 혼란스러웠다. 공허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이삭이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부심은, 죽음을 앞둔 이삭에게는 그 밝은 빛도 깊은 흑암, 어두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이삭은 죽어갔다. 아니 그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그가 죽음으로 그의 아비 아브라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어디에? 이삭의 하나님은 아니었던 것일까?


이삭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고, 다시 눈을 떴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이 이야기를 읽는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의 삼일 길,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고갔을까? 전형적인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어리거나 젊은 자식과 가부장(아버지) 사이에 오고갈 대화가 아기자기할 것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 시대는 그랬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조차 저항하지 않는 것을 순종이라 말하던 시대였다. 부당한 악행조차 “관행이다” “운명이다” “신의 뜻이다” 고백하던 시대였다.


아름다운 순종의 이야기로 무덤덤하게 회자되는 이 이야기 안에 담긴 무거운 침묵, 그리고 하나님의 아픈 사랑을 떠올려본다. 마침내 자식까지 번제로 바치는 우상숭배, 전통, 관습, 운명의 신이 아닌 것을 아브라함이 깨우치기를 기다리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맹목적인 종교의 신이 아닌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챈 아브라함으로 인해 눈물 흘리셨을 하나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이삭을 바라본다.


이 사건 이후, 성경 창세기는 이삭을 어떤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이삭은 자기 자신, 아내 리브가, 두 아들 에서와 야곱 그리고 그의 며느리들, 아버지 아브라함, 하나님, 그랄 왕 아비멜렉 같은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갔을까? 아브라함의 나이도 들어가고 이삭의 나이도 늘어갔다. 그의 아내도 아브라함이 맺어주었다. 성경 내러티브에서 이삭의 의견이나 의중,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다만 24장 67절에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시도) 사건을 읽으면서 가르치면서, 자기 목에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칼이 들어오던 순간이 그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를 않는다. 죽음에서 살아난 이의 공포로 전혀 생각하지를 않는다, 때때로 우리의 성경공부가 참 차가운 성경읽기, 무서운 성경 이해라는 생각을 한다.


쓰나미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건강과 삶의 빼앗겼을 때,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였다고 쉽게 선언하는 그런 담대함은 고통스럽다. 누군가를 희생해서 내가 의로워지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삶을 따르는 신앙을 다시 생각한다. 당사자의 자리에 서지 않는 묵상은 유체이탈 고백(만)이 가득하게 만든다. 스스로 절망하는 것을 내려놓음, 헌신이라 말하게 하지 말라. 이삭이 갖게 된 고통스런 기억을 아파하는 하나님 생각도 하고 싶다.

아브라함 125∼136세, 이삭 25∼36세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언약의 최종 확증을 받았습니다(창 22:1∼18). 이 모리아 산은 훗날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곳이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입니다(대하 3:1, 대상 21:18∼28).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사건은 이삭의 나이 37세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소개된 사건 이후에 사라가 127세를 향수하고 죽는데, 이때 이삭의 나이가 37세입니다(창 23:1).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린 때는 사라의 죽음 이전이었고, 이때 이삭의 나이는 37세 전이었으므로 약 25∼36세 정도에 행하여진 사건으로 추정됩니다.

이미 장성하여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산에 오를 정도로 힘이 왕성한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이삭이 아버지의 신앙에 대한 신뢰와 자신이 섬기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에 이삭과 아브라함이 동행했다는 말씀이 두 번이나 언급된 것은 이 일에 두 사람의 믿음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창 22:6, 8).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모리아의 한 산으로 올라가 제물이 되기까지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마침내 인류의 대속 제물로 순종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합니다(마 20:28, 요 1:29).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드린 후에 아브라함이 언약을 확증 받았듯이(창 22:16∼18, 히 11:17∼19),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요 1:18, 3:16, 롬 5:8).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12에서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축복’(창 22:14), ‘큰 복의 축복’(창 22:17), ‘네 씨가 크게 성하여 그 대적의 문을 얻는 축복’(창 22:17),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축복’(창  22:18)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창 22:2)와 같은 시험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큰 믿음으로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드려 헌신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시험들은 놀라운 축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 파스칼은 젊어서부터 질병이 있었다.  몸이 약했다. 그걸로 일찍 죽게 되었다.  죽기 얼마 전 마지막 그의 기도다. 2가지가 인상적이다.

 “이 질병의 고난 앞에서 믿지 않는 자처럼 행동하지 않게 해주소서.” 

 “이 고난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찬송할 뿐입니다.” 

 우린 다 모른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른다. 믿음은 반응이다. 

 “고난당하면 기도하라. 즐거운 일이 있으면 찬송하라.”(약 5:13)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 외아들을 하나님께 남김없이 번제로 태워드리려 했던 이삭의 순종을 배워야 한다. 번제로 바쳐졌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모든 복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다. 내가 할 것은 순종뿐이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뿐이다. 결박에 순종했던 이삭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 번제보다 순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역사가 이루어지며 모든 복이 임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순종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야곱의 하나님 -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

창세기 27:13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순종(順從)

민수기 32:11
애급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사무엘상 15:22b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마태복음의 말씀 한 구절만 생각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란 조상은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을 어느 나한 구절만 인용하여 설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방법입니다.

마태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말씀은 전후 문맥을 살펴야 합니다.

또는 이렇게도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으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었어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말씀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일곱 번 결혼한 여자가 부활하면 도대체 누구의 부인이 되느냐고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변의 일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29∼3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말씀의 시작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죽은 사람들이 현재 어딘가에 살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고 그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하는” 내용입니다.

야곱의 순종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라
창세기 35:9∼15

야곱은 변했습니다. 야곱의 삶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변화는 결단과 행동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변화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의심하거나 주저하거나 갈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변화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고민하는데 씁니다. 의심하고 갈등하는데 시간을 사용합니다. 결정하기까지 너무나 힘들어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갈등하고 고민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 야곱은 그의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 거기서 ‘단을 쌓고 나를 예배하라 이 말씀은 야곱에게 있어서는 복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듣자 야곱의 영안이 열렸고 수많은 갈등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5장 6-7절을 보면 야곱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야곱은 즉시 순종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모아놓고 결정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순종보다 더한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절정은 순종으로 표현 됩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 라고 합니다. 믿음을 갖고 변화받은 사람은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불신이 싹트면 갈등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교만이 자리잡고 있을 때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가족을 이끌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은 벧엘을 가리켜 엘 벧엘 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벧엘의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가 엿보이는 말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사실을 묵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백년을 살고도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허물도 있고 실수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들도 마찬가지로 허물과 실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은 과거와 단절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완벽하고 허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에 허물이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미래를 향해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에 의지해서 권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지금까지 좌지우지 해왔던 과거와 단절하십시오. 과거는 과거가 되게 하십시오. 그 과거가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과거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래를 만드신다!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가 애를 쓰고 노력해도 과거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도움을 구하면 미래는 바뀌게 됩니다.

과거와 단절되는 것이 야곱의 복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과거와 공포와 불안에서 탈출합니다. 일어나라 이 말씀처럼 여러분이 현실에서 일어나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쫓기듯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줍니다. 그렇게 야곱이 믿음을 갖게 되면서 그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놀랍기만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너무나 사랑했던 어머니 리브가에게는 유모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드보라 입니다. 성경에는 이 구절에 대한 다른 설명이 없이 갑자기 돌출되듯이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유모 돌보는 성숙함으로의 변화리브가의 유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 리브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유모로서 야곱을 돌보았던 드보라는 달리 갈 곳이 없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이 드보라의 말년을 야곱이 행복하게 거두어 주었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정성스럽게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를 장사지낸 곳의 상수리나무의 이름을 알론바굿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굉장히 상심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드보라의 죽음에 굉장히 슬퍼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야곱이 성숙해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그래도 쉽지만 그 어머니의 유모를 돌보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숙이란 무엇입니까 하찮은 사람을 돌보는 것입니다. 가치 없는 사람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까지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사람만 돌봅니다. 유명한 사람만 골라서 사귀는 사람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만나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까지 사랑하고 죽음의 순간을 지켜주고 장사 지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성숙한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얼마나 이기적이고 손해 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주위에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돌보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에게까지 여러분의 사랑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주위에 돌보지 않아도 되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이 부리는 아랫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쉽게 해고도 시키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들을 돌보는 마음이 성숙하고 믿음이 있는 마음입니다.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복이 그림의 떡이었다면 이 무렵부터는 복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한 사건을 회상 시키십니다. 그것은 몇 년 전에 야곱이 위기에 빠졌을 때 야곱에게 약속하신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옥과도 같습니다. 이 두려움은 급기야 그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형 에서에게 뇌물을 보냅니다. 그렇게 하고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하인들과 가족들까지 보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지 못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얼마나 많이 두려워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가족을 모두 보낸 후에 그는 얍복강 강가에서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때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런 순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절망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의 단절 의미하는 거듭남 그렇지만 당신이 눈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 절망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그때 천사를 만납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잡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해주고 가기 전까지는 놓아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묻고는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때서야 야곱은 천사를 놓아줍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아내가 불러준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속이는 자”라는 의미가 담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야곱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야곱이라는 이름 가지고는 좌절과 인생의 어려움을 막을 수 없습니다. 새 이름을 주겠다고 천사는 말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거듭남 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말로 구원 이라고 합니다. 참된 구원은 과거와의 연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참된 구원은 과거와의 단절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예수를 믿어도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옛사람과 단절하지 않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잘해보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와 단절하지 않으면 미래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나쁜 포도주가 좋은 포도주가 된 것이 아니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참된 구원은 우리 신앙의 발전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고 예수 믿어도 변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옛사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나기 바랍니다. 이름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야곱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고 새 이름 이스라엘을 쓰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을 이겼다”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인정받은 야곱 하나님은 야곱의 존재를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의 믿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정하셨다고 믿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남편한테 인정받지 못한 아내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한 남편은 불행합니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녀는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해도 불행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인정하고 배우자를 인정하고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10절의 끝부분을 보면 야곱의 이름을 불러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이스라엘 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자신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겨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 가지고 살면 팔자가 사납다고 작명소에 가서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어도 별로 나아지는 바가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바뀐 이름을 불러주셔야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시몬이 베드로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을 때 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바꾸어주신 사실을 아십니까?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악마의 자녀였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땅의 상속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상속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주시고 그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에 네게서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이름을 바꾸어주신 하나님 새 이름을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자신을 세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첫째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입니다
약속은 능력이 있는 자가 할 때 지켜질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실 줄을 믿습니다. 전능하다는 뜻은 하나님에게 불가능이 없고 부족함이 없으며 그 능력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처음에는 있고 나중에는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끝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영원토록 동일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고 후회도 없으십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지키시는 약속

둘째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축복의 원형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은 풍성함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복을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가 복 받을 그릇이 못된다 할지라도 그를 변화시켜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1-2절을 보면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나오리라 내가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주리라.

이 말은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이삭이 이어 받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로 이어져야 하는데 야곱은 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년 동안 그를 고생시켜서라도 기어코 그를 복 받을 만한 그릇으로 바꾸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 아닐지라도 여러분을 고쳐서라도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변덕이 많고 어리석고 늙고 병들었다고 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신 신실한 약속을 지키십니다. 결국 야곱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복은 계속됩니다. 그분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시고 상처 나면 싸매 주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하나님은 야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고는 가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또 오시는 하나님 떠나시는 하나님 드러내시는 하나님 숨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기쁩니다. 그러나 그분이 떠나셨다고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는 괴롭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가? 라고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알면 이 문제가 풀립니다. 하나님은 오시고 또 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나 떠나시는 것 말씀하시거나 침묵하시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동전의 앞과 뒤에 불과할 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오셨을 때 믿음을 얻고 기쁨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떠나셨어도 그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날마다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여기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병들고 죽어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야곱이 그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떠났을 때 야곱은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고 복과 위로가 계속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제단을 쌓고 기름을 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라 나는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 벧엘 여러분의 가정에서 예배가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찬양이 멈추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는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이것이 벧엘입니다. 벧엘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다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찬양이 불처럼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신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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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順從)과 순명(順命)

순종은 창세기 22장의 중심 주제이다.
학자들은 창세기 22장의 모리야 산 이야기를 일컬어 “아케다 사건”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한 것을 가리켜서 편의상 붙인 명칭이다.
결박하다”란 히브리어 동사는 “아카드”이며 그 명사형은 여성명사로서 “아케다”이다.
“아케다 사건”을 “결박 사건”이라고 옮겨도 좋을 것이다.

* 아케다 사건
아케다는 히브리어로 '묶기'라는 뜻이다(여성 명사형).
아카드는 히브리어로 '묶다'는 뜻이다(동사)
아브라함이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제단 위에 묶어 올려놓은 사건을 총체적으로 지칭한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겨우 얻은 외아들 이삭을 밧줄로 결박하였다(아카드).
늦게 낳아서 금지옥엽으로 키우고 있던 아들을 결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그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 있는 한 산으로 가서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내렸던 것이다.

* 모리아 산의 사건이 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 : 116세
사라의 나이 : 107세
이삭의 나이 : 16세

- 사라가 127세에 죽었으니 이때 아브라함은 136세였고 이삭은 36세였다.
사라가 91세 되던 해에 이삭을 낳았음을 기억하자.
아케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삭이 16세, 아브라함이 116세, 사라가 107세였다.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사라가 죽었다.
이 20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마침내 부부 사이는 별거하기까지 파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사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 명령의 목적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데 있었다(창 22:1).
시험은 연단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무엇을 시험해 보시려고 했나?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은 어떻게 연단을 받았는가?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지 여부를 하나님은 점검하신다.
아브라함은 너무나 불합리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순종하여 이삭에게 나무 짐을 지워 산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이 일러 주신 그 장소에 이르러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다음 외아들 이삭을 결박한다.
막상 아들을 희생 제물로 잡으려는 찰나에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아브라함의 행동을 제지한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한 제물을 친히 준비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 대신에 수풀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을 잡아서 번제물로 바쳤다.
하나님의 시험 결과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중히 여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무난히 통과한 것이다.

아케다 사건은 이삭의 나이 16세 즈음에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그해는 아브라함 116세, 사라는 107세 되던 해였다.
사라는 향년 127세로 헤브론의 기럇 아르바에서 사망하였기에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째 되던 해에 죽은 셈이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다.
이 무렵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살고 아내 사라는 헤브론에 살고 있었다(창 22:19, 23:2).
두 사람이 부부이지만 서로 별거하고 있던 중에 사라가 죽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창세기 23장 2절에 나오는 사라의 죽음 보도를 보면 '아브라함이 들어가서'라는 이상한 표현이 나온다.
우리말 역본을 읽어 보면 남편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빈소에 들어가서 애곡하는 장면처럼 읽힌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서를 읽으면 그 느낌이 확 다르게 다가온다.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창23:2a, "와야보 아브라함 리스포드 러사라 월리브코타흐"

'와야보 아브라함'을 직역하면 '아브라함이 왔다'가 된다.
그리고 '리스포드'를 직역하면 '문상하러'가 된다.
그리고 '월리브코타흐'의 동사 '바카'는 '울다'는 뜻인데 거기에 '그녀를'이란 접미어가 붙어 있다.
아브라함은 사라로 인해 통곡했다는 말이다.
위의 구절을 잘 정리해 보면,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다는 부고를 접하고 아내의 빈소를 찾아 와서 문상하는데 사라의 시신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말이 된다.

종래의 주석가들은 '와야보 아브라함'이란 구절이 아브라함이 먼 데서 빈소로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아내 사라와 함께 살던 중 사라가 죽으니 그녀의 빈소를 차리고 그 시신 앞으로 가서 애곡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왔다'란 뜻의 동사 '야보'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가 별거하고 있는 상황이 뚜렷하게 감지되므로 이러한 종래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다가 아내 사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를 문상하러 헤브론의 기럇아르바로 왔다.
이 점을 창세기의 저자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아브라함 부부는 별거하게 되었을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러 갈 때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다.
사라가 천신만고 끝에 노년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포기할리는 만무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속이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갔다.
사라는 이삭이 아버지를 따라 산에서 번제를 드리는 법을 배우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아케다 사건 이후에 사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사라는 자기를 속인 남편 아브라함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들을 죽이려 한 남편에게서 아들 이삭을 떼어 놓아야 했다.
그래서 아내 사라는 이삭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이사하였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혼자 살았다.

사라가 127세에 죽었으니 이때 아브라함은 136세였고 이삭은 36세였다.
사라가 91세 되던 해에 이삭을 낳았음을 기억하자.
아케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삭이 16세, 아브라함이 116세, 사라가 107세였다.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사라가 죽었다.
이 20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마침내 부부 사이는 별거하기까지 파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사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감당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사별한 후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브엘세바에 버려두고 브엘라해로이로 떠나간다.
아버지와 별거한 것이다.
자기를 찔러 죽이려 했던 아버지가 못내 무서웠을 것이다.
이삭은 40세에 혼인하였다(창 25:20).
아케다 사건 이후 24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 당시 아브라함은 140세였을 것이다.
아내를 사별한 아브라함이 아들의 배필을 구하려고 늙은 종을 메소보다미아 고향 땅으로 보냈다. 그
런데 늙은 종은 하란에서 리브가를 데리고 돌아오는 도중에 마중 나온 이삭에게 리브가를 넘겨준다.
이상한 것은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마중을 나왔다는 점이다(창 24:62).
늙은 종은 브엘세바에 사는 아브라함에게 며느리를 보여 주지도 못했다.
브엘세바로 돌아가기도 전에 네게브 지역의 브엘라해로이에서 마중 나온 이삭에게 리브가를 아내로 넘겨준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는 브엘라해로이에서 20년을 자식 없이 살다가(창 25:21),
이삭이 60세가 되던 해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창 25:26).
이때는 아브라함이 160세 되던 해이다.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으니까 브엘라해로이에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에는 아브라함이 살아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창세기 25장 11절의 아브라함 사망기가 에서와 야곱의 출생기보다 먼저 보도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140세에 아들을 결혼시켰고 20년 후인 160세에 손자를 보았으며 향년 175세로 죽었다.
아브라함은 116세 이후로 175세가 되기까지 물경 59년 동안이나 아들 이삭과 떨어져 살았다는 말이 된다.
이삭은 아버지를 모시지 않고 브엘세바에 그냥 버려두었다.
아브라함이 노인이 다 되었을 때에도 별거 상태는 지속되었다.
이삭은 왜 이처럼 불효막심한 짓을 했을까?

이삭도 아버지처럼(창 20장) 그랄 도성에 들어가 살았다.
이때 이삭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다.
창세기 26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은 흉년을 만나서 브엘라해로이를 떠나 그랄 도성으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아직 에서와 야곱이 출생하기 이전의 시점으로 보인다.
자식을 둘이나 거느린 남녀가 어찌 오누이 사이라고 속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에서와 야곱의 출생기는 그랄 도성 이야기의 바로 앞에 보도되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은 근거를 잃는다(창 25:26).
아무튼 이삭은 아버지 사후 브엘세바를 떠나 그랄 도성으로 들어갔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살던 브엘세바로 돌아간다.

아내를 여읜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후처로 맞이한다.
그두라에게서 무려 여섯 명의 아들을 더 본다.
그들은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로서 나중에 이스라엘의 철전지 원수가 되는 미디안 족속의 조상이 이 아들 중에 들어 있다.
그리고 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불구대천의 원수인 앗수르 족속이 욕산의 아들 드단에게서 나왔다.
여섯 아들이 장성하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큰 재산을 상속해 주고 서자들에게도 상속분을 주어 모두 동방으로 이주시켰다.
그 후 아브라함은 죽었다.
그가 죽었을 때 이삭은 이스마엘과 함께 아버지를 어머니가 묻힌 막벨라굴에 합장하여 장사하였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아버지에게서 이삭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어머니 사라가 그러한 아버지를 떠나 이삭을 데리고 별거에 들어갔을 때 이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진 시험을 이겨내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인정을 받은 아버지 아브라함이지만, 정작 그 가족 성원들의 마음에는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게다가 어머니를 여의고 아내 리브가에게서 위로를 찾던 이삭(창 24:67)에게 아버지의 재혼은 어떤 충격을 주었을까?
게다가 새 어머니가 아들을 여섯 명이나 줄줄이 낳았을 때 그 과정에서 이삭의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일고 있었을까?
아브라함은 이 여섯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이삭에게 마음이 쓰였어도 어쩔 수 없이 생활에 매여 아들 이삭을 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 바쁘게 사는 사이에 부자지정은 점점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험을 이긴 아브라함에게서 어떠한 행복한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진 시험을 이겨낸 결과는 가족해체의 아픔뿐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사라는 아케다 사건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일찍 죽은 듯하다.

사랑했던 남편은 애급에서 자기를 누이라고 속였고(창 12장) 그랄에서도 자기를 누이라고 속이더니(창 20장) 마침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또 속였던 것이다.
사라의 가슴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기를 또 속이고 금지옥엽 키워 청소년이 다 된 이삭을 몰래 납치하여 죽이려고 했다니!
사라는 남편과 별거하며 살다가 임종을 맞았다.
그녀는 임종을 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는 끔찍하다.
온전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해체의 아픔을 겪은 것이다.
이삭의 출생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은 눈물을 머금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막으로 추방해야 했다.
아내 사라의 외아들 사랑이 너무나 끔찍하였다.
오직 자기 아들밖에 모른 인간으로 사라는 변모해 갔다.
사라에게는 야훼 하나님보다도 아들이 우선이었다.
자기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 이삭을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남편도 모든 주변 사람들도 다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어머니 사라!
이 여인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가족에는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만민에게 복을 끼치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고, 그 아들 이삭으로 하여금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끼치는 복덩이가 되게 하려고 계획하셨다(창 22: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그런데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한 집안에 용납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기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육적인 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가족 이기주의를 해체하기로 작정하시고 아케다의 시험 사건을 일으키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더욱 넓은 보편의 바다로 끌고 가시는 역사를 하나님은 기획하셨다.
사라를 일찍 데려 가신데다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에게서 많은 이방 민족이 생겨나게 하시고 급기야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사이에도 더욱 덤덤한 보편적 인간관계로 발전시키셨다.
이로써 나중에 이스마엘도 장례식에 참여하러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족주의에서 생긴 셈 민족주의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유대 민족주의는 아케다 사건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무너진다.
만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앞에서 개인주의와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마침내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게 내어 주셨다.

지금까지 아케다 사건을 문맥 속에서 되짚어 보았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들과 기독교 법인 단체들과 기독교 사회 운동가들이 좌나 우를 막론하고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설교가들이 복을 약속하면서 가족주의를 부추기지나 않았는지?
사회운동에 나선 목회자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자기 입장에 맞추어 성경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만민에게 두루 복을 끼치는 교회의 보편주의적 본질을 오늘의 교회나 교역자들이 얼마나 잘 보전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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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문학 구조로 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hav_yeshua&logNo=50087293541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공통점

1. 믿음의 사람(히브리서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

-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장'에 그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결박에 순종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속임수에 순종

3. 실천의 사람


4. 제사의 사람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
창세기 27:1∼40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빌어줄 테니 별미를 만들어오라는 장면과 리브가가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내라고 지시하는 장면만큼 자식을 둘러싼 부부 사이의 편애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도 없을 것이다.

이삭은 에서를 자기 아들로 간주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자기 아들로 간주한다.
히브리어로 된 성경 원문을 보면 에서는 “그의 아들”(5) 곧 이삭의 아들로 불리고, 야곱은 “그녀의 아들”(6) 곧 리브가의 아들로 불린다. 각각의 아들을 부를 때 이삭도 리브가도 자신의 아들에게만 내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선별적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축복의 대상이 “에서” 한 사람뿐이었다는 점이다.
성경의 많은 예문이 보여주듯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는 장남을 포함한 아들들을 모두 불러 마지막 유언과 함께 축복을 준 다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삭은 이러한 규범을 무시하고 장남에게만 축복을 주려 한 것이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베풀어 줄 테니 사냥을 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명할 때 리브가는 이삭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우리말 번역에 ‘들었다’로 되어 있는 ‘엿듣다’라는 히브리어는 그 시제가 분사 형태로 되어 있다.
그것은 일회적인 동작이 아니라 계속적 행위를 나타내는 시제이다.
리브가는 항상 이삭과 에서가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는 말이다.

리브가는 눈먼 남편을 속여서 에서 대신 야곱이 축복을 받아낼 수 있도록 계략을 꾸민다.
리브가는 야곱이 에서가 되어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도록 세 가지 방안을 실천한다(8∼17).

첫째는 에서가 사냥감을 잡아와 요리한 것처럼 염소 고기를 요리한다.

둘째는 눈먼 사람은 냄새에 예민하기에 야곱에게서 에서 냄새가 나도록 에서의 옷을 야곱에게 입힌다.

셋째는 야곱의 매끄러운 살결을 가리기 위해 새끼 염소의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감아 준다.

이러한 리브가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있다.
장남이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채 자신이 편애하는 작은 아들이 받도록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리브가의 행위는 몇 가지 합당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리브가가 꾸민 책략은 야곱에 대한 편애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임신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마음에 품고 20년을 살아왔다.
그녀가 받은 계시는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삭이 이 신탁을 몰랐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리브가에게만 주어졌고, 성경 어디에도 리브가가 이 계시를 남편 이삭에게 전했다는 말이 없다.

그런데 남편 이삭이 야곱이 아닌 에서를 축복하고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임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리브가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완성시키려고 한다.
속임수, 즉 '거룩한 속임수'를 쓰려는 것이다.

이렇게 리브가의 행위를 해석한다면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남편을 지배하고 조종한 여자.
남편을 속인 여자로 낙인찍기보다는 확고한 신념에 따라 행동한 여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눈먼 남편을 속이고 야곱에게 속임수를 쓰도록 지시한 리브가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변명할 길이 없다.
또 세상 속에서 당신의 계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보다 자기 손으로 그 계획을 성취시키려 한 허물도 변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리브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행동한 여성, 신탁의 주인공인 야곱을 위해 저주받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은(13) 믿음의 여성이다.
아브라함이 시련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처럼, 리브가 또한 시련을 통해 믿음의 여인이 되었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였다면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신탁에 순종한 것이다.
그래서 리브가는 훗날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세워진다. 야곱이 나중에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어머니로서 두 아들의 품성과 자질을 잘 알고 있다는 점도 그러한 책략을 꾸밀 수 있었던 이유이다.

셋째, 에서가 동족 여인과 결혼하지 않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것도 리브가의 행위를 정당화해 줄 수 있다.

창세기 기자는 본문 배치를 통해서 그 정당화를 시도한다.
기자는 에서가 두 명의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기록한 다음 즉시 야곱이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에 부족한 존재임을 알리면서 동시에 속임수를 써서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도록 한 리브가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의도적인 배치다.

게다가 에서는 부모에게 반항적이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창 28:6-9).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여자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을 보고 이미 장가를 들었으면서 또 장가를 들었다.
큰아버지의 자식이니 동족이 아니냐는 시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한 인물이었다.

말라기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말 1:2-3).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것은 에서가 아니라 에서의 그릇된 행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속물적인 태도, 반항적 태도를 미워하신 것이다.
에서가 부모를 거스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장자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넷째, 장자 상속권이 실제로 준수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유다의 쌍둥이 아들 세라도,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도,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도 모두 장자가 아니었다.
다윗도 솔로몬도 장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리브가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에서가 분노하여 야곱을 죽일 계획을 세우자 리브가는 멀리 친정 오빠가 있는 하란으로 야곱을 보낸다.
야곱이 떠난 뒤 리브가의 말년은 비참하고 공허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에서에게 구박도 받았을 것이다.
이방 며느리들의 냉대도 받았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보지 못해 힘들었을 것이다.

성경은 리브가의 말년이 얼마나 힘겨운 삶이었는가를 상징적인 방법으로 보여 준다.
리브가의 이름이 28장 5절과 35장 9절에 등장하는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에 대한 기사이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성경은 리브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유모의 죽음은 언급하면서 리브가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족장들과 족장의 아내들의 죽음은 모두 다 기록하면서 리브가의 죽음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왜 성경은 리브가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부부 사이에 한쪽이 죽으면 남아 있는 사람은 먼저 간 배우자를 애도한다.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그랬고, 라헬이 죽었을 때 야곱이 그랬다.
하지만 리브가가 죽었을 때 이삭은 애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본문은 리브가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치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 사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리브가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리브가의 이야기를 통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삶 속에 스며든 하나님의 손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계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이 이루어진다.
약점, 조급함, 어리석음 등 수없이 많은 인간의 제약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이기적인 편애라는 잘못된 선택 속에는 리브가의 올곧은 헌신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참여하게 하셔서 계획하신 대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남편 하나 믿고 고향을 떠났던 리브가는 하나님의 신탁을 붙들고 야곱을 선택했고, 야곱과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잊힌 여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나라 역사에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영원히 기록되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하고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해주지만, 사실 믿음의 가문의 초기에 살았던 리브가에게는 배울 만한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믿음의 길을 달려갔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을 희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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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서와 야곱은 형제인데 왜 야곱만 복을 받았는지요.

: 이삭이 낳은 큰아들은 에서, 둘째는 야곱입니다.
그들은 태 속에서부터 서로 싸우는 사이였고 태중에 두 국민이 있다고 했습니다.(창 25:22~23)

두 형제는 장성한 후 장자의 명분 때문에 싸워야 했고 야곱은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사람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창 28:1)는 이삭의 당부를 따랐고 에서는 따르지 않았습니다.(창 28:8~9)

훗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왔고(창 33:18) 에서는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창 36:6)
둘의 거주지와 길이 달라진 것입니다.
주경가들은 에서가 야곱을 떠났다는 것은 신앙의 거점을 떠났다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6장은 에서(에돔)의 계보를 기술하고 있는데, 단 한 사람도 명사나 위인이 없습니다.
예언자 오바댜는 “야곱 족속은 불이요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 그래서 남은 자가 없으리라”고 했습니다.(옵 1:18)

야곱은 허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숱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떠났습니다.
에돔이라는 무신론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원수가 돼 공격도 되풀이했습니다.

오바댜서의 예언 중심은 에돔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간 사건이 아닙니다.
진행형이고 미래 완료형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회개한 사람들은 구원과 회복의 은총을 받았지만, 에서처럼 떠난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기 위해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생육 번성하고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는 복을 받았습니다.(창 35:11)
복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원로)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50774&code=23111619&sid1=ser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수요성서학당(08-05-20) #.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祖上)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 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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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주 성경(貫珠 聖經)

  • 貫(꿸 관, 당길 만)
            1. 꿰다 2. 뚫다 3. 이루다 4. 달성하다(--) 5. 섬기다 6. 통과하다(--) 7. 익숙하다 8. 이름을 열기한 문서()
            9. 조리(
    )  10. 돈꿰미 11. 명적(: 이름 문서) 

  • (구슬 주) 
    1. 구슬 2. 진주() 3. 방울 4. 붉은색(--) 5. 붉다



    출애굽기 4:5,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열왕기상 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12: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하였느냐.

    누가복음 20:37,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열왕기상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사야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불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불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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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수요성서학당 시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첫째는 언약(言約)의 하나님
    둘째는 생명(生命)의 하나님
    셋째는 순종(順從)의 하나님

    첫째, 언약의 하나님

    언약이란 약속하신 땅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요한복음 14:2-3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처소(τόπος. 토포스, topos) -  a place

    * 종교통합을 위한 계획
     1. 2018년 9월 26일(수) 발표
     2. 2020년 6월 23일(화) 발표 - 네델란드 유엔 평화의 궁전(Peace Place)에서 세계 종교대통합 발표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연기
     
    4-5년 후에 역학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며 선교하라는 명을 받아 아프리카에 가서 사역을 하는데 흑인들 어울려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학원을 차렸으나 코로나에 의해서 문을 닫을 위기를 맞았다.
    너무 답답하여 무당 점집을 찾아가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자 무당이 여자가 문으로 들어올 때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하며 노래를 한다.
    그리고 점을 치는데 "당신은 실력이 없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끝까지 죽도록 믿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문제는 끈기가 없다.
    그러므로 사주에 따라 무녀가 되든지 아니면 절에 가서 스님 밑에서 글을 써주는 일을 하라.

    오늘은 두번째 "산 자의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소개합니다.
    산 자의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산 자(The Living) - 자오(ζάω, 2198. zaó: to live)
    Cognate: 2198 záō – to live, experience God's gift of life.

    조에(
    ζωή, 2222. zóé: life) - both of physical (present) and of spiritual (particularly future) existence.

    산 자라는 용어 자오에서 조에라는 단어가 파생합니다.
    조에는 성경에서 현실세계에서는 육체적인 생명을 말하지만 부활 때에는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12: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하였느냐.

    누가복음 20:37,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산 자"를 영어 성경에서(마태복음 22:32) 찾아보겠습니다.

    I am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산 자"는 "the living"이라고 합니다.
    "the living"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 생명(生命,  ζωή)
    * (主, ἀρχηγός) - archégos : founder, leader
    * 생명의 저자, 생명의 지도자, 생명의 창설자

    성경을 해석할 때 어느 한 구절만 인용하는 것보다 그 말씀의 전후 배경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읽어보겠습니다(마태복음 22:23-32).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
    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유대의 전통적인 풍속에 여러 형제들이 있을 때 맏형이 결혼 후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다음 형제가 형수를 아내로 맞아 후사를 이어주는 "계대결혼(繼代結婚)" 이란 전통이 있었습니다.

    계대 결혼

     계대 결혼이란 고대 중근동 문화권 내에서 주로 행해지던 풍습으로서 죽은 형제에게 자손이 없을 경우 그 대를 이어주기 위해 죽은 자의 남은 형제가 미망인과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이는 가계의 보존과 재산권을 중시하던 당신의 상황 속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이때 그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는 법적으로 죽은 형제의 자손이 되어, 그 죽은 자의 모든 권리를 이어받게 된다.
    한편 이 계대 결혼의 풍습은 사회적으로 아주 강한 구속력을 갖는 것이었으며, 만약 남은 형제가 이 결혼을 거부할 경우 심한 사회적 비난과 수치를 당해야만 했다. 이후 이 풍습은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하나의 율법으로 정착되어 예수님 당시까지 이어져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예 / 창세기 38 : 6-11
    유다는 큰 아들 엘이 죽어 둘째 아들 오난에게 큰 며느리 다말과 결혼하게 된다.
    이 관습을 이행치 않은 오난은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로 보아 하나님께서도 이 관습을 허용하신 듯 하다.

    룻기에 소개된 계대결혼 및 기업 무르기(고엘)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일곱 형제가 계대결혼에 따라 모두 한 아내를 맞이했는데 만일 부활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 라는 질문을 합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 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부활 때에는 시집이나 장가를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부활 생명의 하나님" 이란 뜻입니다.

    조화(造花) 생화(生花)
    조화가 아주 멋있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조화가 잘 만들었어도 생화보다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조화와 같은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죽은 신앙이란 그 안에 부활생명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살아있는 신앙이란 교회 안과 밖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면 별로 신앙이 없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부활생명이 분명한 것을 말합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가사를 작사했던 "존 뉴톤" 목사님의 간증에서 천국에 올라갔을 때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이 사람은 반드시 천국에 있겠구나 하던 사람이 천국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사람은 천국에 없겠구나 하던 사람이 천국에 있다고 합니다.
    셋째는 나와 같은 사람의 이름이 천국에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갖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아주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모든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열심도 없고 잘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모두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물론 직장에서 가정에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때로는 당황하게 됩니다.

    부활 생명을 소유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주님께서 사데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Sardis)란 "남은 물건" 이란 뜻입니다.
    사데란 남은 물건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죽었다는 것은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았는데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수고했어요.
    그러다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천국에서 여기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비참합니까?
    이런 믿음이 죽은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봅시다.
    우리는 믿음이 살아 있습니까?
    아니면 죽었습니까?

    전도서에 보면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전 9:4).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죽은 자가 되지 말고, 산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아서 생기가 넘치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생화와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
    죽은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은 제한된 세상이지만 저 하나님 나라는 제한을 받지 않는 영원한 세상이거든요.

    본문에서 겉으로 볼 때는 산 자처럼 보이지만 그 속 내면은 죽은 자인 사두개인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인들이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율법을 고수하고자 하는 철저한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엣세네파들 입니다.
    타락한 세상을 거부하고 동굴 속에 들어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수도사같이 사는 은둔주의자들이었습니다.

    셋째는 사두개인들입니다.
    모세오경을 믿으면서도 세속 권력자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논리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권과 결탁해서 종교정치를 일삼았습니다.
    당시에 대제사장들이 대부분 사두개파였습니다.
    그들은 종교 귀족들이요, 기득권층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곳, 현실이 좋았기 때문에 사후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과 사후 세계를 인정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담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면 부활도, 천사도, 내세도, 심판도 없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 -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실제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셨습니다.
    이 땅의 삶보다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예수님은 분명히 심판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29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세상 권력자들과 적당히 타협해서 지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이 예수님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서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활을 부정하고 내세가 없다고 할 것인가?
    며칠동안 고민 끝에 한 가지 기발한 스토리를 만들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당시 이스라엘에는 계대결혼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형이 결혼했는데 자식이 없이 죽으면 가문을 보존하고, 과부된 여자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사는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분의 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이런 일이 한 가정에서 7형제 사이에 계속해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고, 부활과 영생, 내세와 심판을 부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별의 별 이상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나와서 반박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세상에 불행이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세상이 이처럼 불공평하고 불쌍한 사람, 장애인들이 있는가?”

    자꾸 세상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적세계를 대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자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본문의 사두개인들처럼 주로 비극적인 스토리만 늘어 놓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현대판 사두개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이나 하나님 나라의 상급, 그리고 마지막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습니다.
    “주님, 그저 자녀들 공부 잘하고, 남편 사업 잘 되고,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부처님에게 비는 것인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제목이 자기와 현실문제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 가운데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그런 것은 관심 없습니다.
    정말 내 인생에 기적이 나타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양성하고, 태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고, 척박한 오지를 개척하는 세계선교를 감당하고, 그래서 한 나라, 한 캠퍼스가 뒤집어지고.
    그런 꿈과 기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겨우 이 땅에서 나 한 사람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이라면, 하나님을 현실의 상자 속에 가두어 두는 현대판 사두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너희가 성경을 잘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곡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세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전혀 차원이 달라지게 됩니다.
    시집도 장가도 아니가고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활 후의 세계를 1차원적으로 평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부활한 뒤에 천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입체적이고 다차원적인 세계입니다.

    성경에서 반드시 찾아야 할 신앙의 삼대 원칙은 무엇일까요?

    창조 신앙
    구원 신앙
    부활 신앙.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절.

    우리 하나님은 흙덩이에 불과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아 있는 존재, 영의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신비 아닙니까?
    창조의 신비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역사를 이루실 수 없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인정하였는데 모세오경 안에 부활에 대한 기사가 없기 때문에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오경 안에 분명히 부활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증거로 출애굽기 3:6절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다같이 26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모두 현재형을 사용하셨습니다.

    I am the God of Abraham, I am the God of Isaac, I am the God of Jacob.

    ‘I am’ 모두 현재형입니다.
    아브라함은 모세보다 400년이나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자신을 현재형으로 소개하신 것은 하나님이 현재,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도 지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I am’ 입니다.
    지금 살아계십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도, 모세시대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항상 ‘I am’ 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단절이 없고, 죽음이 없습니다.
    항상 살아 계시고, 항상 능력이 충만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항상 살아 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 영이 생명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영이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육체도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담고 계시기 때문에, 그에게 붙어 있으면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창조신앙과 부활신앙이 다 있었습니다.

    로마서 4:17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며’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고자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창조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태가 말라서 전혀 임신할 가능성이 없었지만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창조신앙과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부활을 믿어야죠.

     창세기 1:1절, 창조는 믿는데 부활은 못 믿는다.
    그게 말이 됩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면 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지 못하시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고 하나님을 반쪽으로 만드는 심각한 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상자 속에 가두어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좁은 자기 생각, 자신의 얄팍한 경험과 이성의 세계에 가두어 두고자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고, 크나큰 죄악입니다.
    도덕적인 죄보다 더 큰 죄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고, 하나님을 자기 생각의 범주에 가두어 두고, 마음대로 하나님의 존재를 제단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때 마르시온이라는 유명한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한 하나님이요, 신약의 하나님은 우수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툭 하면 화를 잘 내시고, 심판하시고, 진멸하시는 무서운 하나님, 신경질적인 하나님, 진화가 덜 된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신약의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 더 발전된 하나님, 업그레이드 되고 진화한 하나님, 우수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얼마나 우습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잘 모르니까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당하기 직전에 쓴 디모데후서 4:6-8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의의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릴 것을 생각할 때 조금도 죽음이 두렵거나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청년의 스피릿으로 복음역사를 진두지휘하며 이 곳 저 곳에 흩어져 있는 복음의 동역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되었을 때 아들을 주셨다면 지금 나에게도 왜 지금 나에게도 소원있는 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근 가운데서도 이삭에게 100배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왜 내 인생과 장래를 책임지시지 않겠습니까?
    사기군같은 야곱도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로 변화시키고 키우신 하나님이라면 왜 나를 변화시키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실 수 없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16) 수요성서학당(07-29-20)

    수요성서학당(07-29-20) 제7강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급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Go, assemble the elders of Israel and say to them,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s--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appeared to me and said: I have watched over you and have seen what has been done to you in Egypt.


    첫째, 조상의 하나님

    조상(祖上)이란 "한 집안이나 한 민족의 옛 어른"을 말합니다.

    "여호와 너희 하나님" 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던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애급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과 다른 신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란 명칭을 영어로 "갓(God)"이라고 합니다.
    "갓(God)"이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 다른 종교에서는 신(神)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모세가 가야 할 애급에는 다양한 신들(Gods)이 있었습니다.
    애급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들은 애급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다른 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어떤 조상일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조상을 말합니다.

    창세기 50: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조상의 하나님이란 조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 공통점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
    이삭에게 약속하신 말씀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
    이러한 말씀을 언약이라고 하며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출애굽기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조상의 하나님은 언약으로 맥을 이어갑니다.
    언약이란 “맹세하신 땅으로 인도할 것”을 의미합니다(창세기 50: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사도행전 3:13a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설교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라고 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라고 해도 잘 알아들을 텐데 하나님 앞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수식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시고,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의 신들과 다른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이 설교를 할 당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신들을 모두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는 하나님은 그런 신들과 다른 신이라는 것을 구별하려고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룻기서에서 모압 지방의 여인 룻은 모압 지방의 신을 섬기고 살았으나 출가하여 나오미의 집안 사람이 된 후에 하나님이란 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압 지방에서 섬기던 신은 인간에게 좋은 일만 제공하는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사람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불행과 고통과 어려움을 줄지라도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죽었지만 시어머니가 모압의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도 된다고 허락했지만 모압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분명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약 성경에서는 데오스(θεός)라고 하고 영어에서는 God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에서는 하느님 우리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데오스(θεός)나 God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신들을 데오스(θεός) God으로 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 무슨 어려운 일을 만나면 “아이고 하나님!” 하고 부릅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Oh, my God!" 이라고 소리칩니다.
    그냥 인간이 아닌 신을 부르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신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부를 때는 그 앞에 수식어를 붙여서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세상 신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거나 아니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올 때 감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대신 "주님(아도나이)"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특별한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고 모든 신들 중에 한 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란 이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그 종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해야 되고 그런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하고 신부하고 심지어 목사들까지 함께 모여서 각기 자기 신을 부르고 종교행사를 하고 서로 평화를 누리고 서로 잘 해보자고 합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을 좋아합니다.
    종교인들끼리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니까 좋고 또 자기가 가진 종교가 우월하다고 다른 사람 깔보지 않으니까 좋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유교 불교 기독교의 좋은 사상만 뽑아가지고 혼합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하게 이런 종교다원주의나 종교혼합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그런 잡신들과 다른 참 하나님이시고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성령님이 그 마음에 와 계시지 않아서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주장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무슨 말로 우리를 설득하고 유혹을 한다고 해도 우리 하나님은 특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특별하신 하나님이시오 참 신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거나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는 단순하게 다른 신들과 구별하여 부르려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가장 중점적으로 하시는가를 알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되어서 구걸이나 해서 먹고 사는 불쌍한 인생을 일어서게 하고 걷고 뛰면서 성전에 들어가게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모두 다가 사실은 스스로 걸을 수도 뛸 수도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게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를 드리게 해 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하나님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천지 만물을 창조해 주시고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 인간이 욕심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서 쫓겨나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고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으며 죽은 후에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고 세상에서 지은 모든 죄로 인해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처하게 된 저주받은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인생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람들을 구원해서 죄를 용서받게 해서 다시 영원한 생명을 주고 다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게 하시기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게 해주셨고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에 주신 복의 약속을 아들 이삭에게 주셨고 또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되게 해 주셔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특별한 나라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그들을 구원할 구주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나 우리 조상의 하나님으로 부를 때는 그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부를 때 그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잡신들이 아니라 참신이신 하나님이시오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낼 때 쓰는 호칭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을 세상의 신들 중에 하나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거짓 선생들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대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자손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특별히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말씀하고 있다면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설명해주는 말씀입니다.

    “그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종”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종이라는 말은 아들이라는 뜻도 있기는 하지만 하인 신하 종이라는 뜻도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종이라고 하신 것은 종처럼 낮은 신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하신 일을 맡기신 특별한 일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일을 하게 하시려고 특별한 일꾼으로 세워서 이 세상에 보내신 특별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 특별하게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임무를 가진 분을 그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딛 1:1)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고난의 종”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실 분으로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그 고난의 종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그 하나님의 종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아주 높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아들 자리로 높여 주셨고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실 구주가 되게 해 주셨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게 하셨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게 해 주셨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할 최후의 재판장이 되게 해 주셨고 영원한 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영화로우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부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해 주시지 않으신다고 해도 원래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삼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하나님 이렇게 세분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유일하시다 한분이시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 세분의 본질과 영광과 모든 것이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의 종이라고 부르고 또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수행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그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낮아지셨습니다. 
    사람이 되셨어도 우리와 똑 같은 연약함까지 가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까지 지내신바 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다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올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몸을 가졌으되 신비하고 완전한 몸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실 만왕의 왕이 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더 이상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던 그런 예수님이 아닙니다. 엄청난 권능과 능력을 가지시고 천사와 함께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나라에서 살게 해 주실 분이십니다.
    사대성인 중에 한 사람이라거나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시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보여주신 분이라거나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러 오셨다거나 믿고 따르면 마음이 좀 행복해진다거나 그런 사람들 중에 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신을 믿어도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거나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스스로 의롭고 선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롭게 되신 예수님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신들과 전혀 다른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역사 가운데서 이 일을 진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을 그의 종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 임무를 수행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영생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구원의 주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을 하셔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하시는 심판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만큼 나타나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


    아브라함(Abraham)

    뜻 : 열국의 아버지

    부친은 데라, 아우는 나홀과 하란이다.(창 11:26).
    구명 아브람을 여호와가 아브라함이라 고쳐 주었다(창 17:5).

    노아의 12대 손으로 갈대아 우르에서 출생하였다.
    얼마후 메소보다미아 하란에 이거하는 중에 부친상을 당하고 여호와가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크게 창대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 말씀을 순종하여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갔다(창 12:).
    흉년으로 인하여 잠시 애급에 가 있는 중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이 있다(창 12:13).

    가나안에 다시 돌아왔을 때 노복과 우양이 많으므로 롯이 거주하는 지방에 전쟁이 일어나 롯이 포로 되었다 하는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쫓아가 롯과 재물을 찾아 가지고 오는 중에 살렘왕이오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그에게 소득의 10분의 1을 바치니 이것이 십일조의 규례가 되었다(창 14:9-20).

    그 후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땅의 티끌같이 번창할 것과 애굽에서 4백년간 고난 당할 것을 예언하셨다(창 13:1615:522:1715:13). 사라가 생산치 못하여 그의 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으니 이 사람이 아라비아인의 시조요 회교의 교조 모하멧의 시조이다.

    사라의 생산할 것과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할 것 그리고 할례법을 창설하였다(창 17:8-10,19).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소돔 멸망에서부터 롯을 구하였다(창 18:1-8,20:32).

    백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창 21:1,14).

    여호와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여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셨다(창 22:1-19).

    사라가 죽은 후 며느리 리브가를 얻고 175세에 별세하니 이삭과 이스 라엘이 그 모친 사라를 장사한 막벨라 굴에 합장하였다(창24:6725:7-10).

    교훈과 적용

    첫째
    , 아브라함의 특수한 신앙과 전적인 순종을 우리 각자가 신앙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 아브라함은 갈바는 몰랐어도 인도자는 알았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의존하십니까.
    셋째
    , 율법과 복음,선민과 이방인까지 모든 사람에게 신앙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삭(Isaac)

    뜻 : 웃음

    1.
    아브라함 100세에(B.C. 1890) 사라의 몸에서 출생한 아들(창 21:-3, 마 1:2).
    2.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하고 정직하여서 농업에만 전심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이나 야곱같이 다사한 생활을 하지 않고 평온 하였다.
    3.  25세에 부친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 놓고 잡아 제사하려고할 때 효심이 극진한 그는 조금도 원망이나 반항이 없었으나 이 광경은 흡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태도와 같은 모형이다(창 20:1-5,22:2-13).
    4.  40세에 외종형 부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취하여 60세에 쌍동이를 낳으니 곧 에서와 야곱이다(창 24:6725:20-26).
    5.  흉년을 피하여 그랄에 거하는 중 그 아내를 누이라 하였다가 탄로되고 농사로 거부가 되니 그곳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메우니 다른 곳에 옮겨 팠더니 또 메우고 이같이 4차나 따라 다니며 메웠다. 그 다음에 파매 메우지 않는고로 그 우물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였다(창 26:1).
    6. 나이 많아서 장자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야곱이 알고 가장하여 들어 가니 눈이 어두운 이삭은 속아서 축복하였고 에서가 축복을 빼앗기고 야곱을 죽이려 하니 야곱을 불러 다시 축복하고 이르기를 밧단 아람에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에게 장가들라 하여 보냈다(창 27:28:1-4).
    7. 180세에 헤브론에서 별세하니 막벨라굴에 장사하였다(창 35:28-29).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열국의 어미 사라 사이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출생한 아들이다. 이삭(Issak)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이며 그의 출생지는 브엘세바이다. 왜 그의 이름을 [웃음 ]이라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면 그의 출생목적과 생애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90세때 하나님께선 그들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라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5-16).

        이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백세된 사람이 어찌 아들을 낳을 수 있으며 사라의 나이 구십세인데 어찌 생산이 가능하리오]하며 웃었다. 이 웃음은 하나님의 해학적 언약에 대한 반신반의의 웃음이며 그의 합리적 사고에서 발생된 불가능의 웃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언약하신대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안기심으로 그들의 해학적 웃음을 참된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은혜를 히브리어로[핸](친절)이라 하며, 헬라어로 [카리스](기쁨)라 한다. 이삭은 인간의 합리성과 자연질서를 초월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얻은 생명이기 때문에 은혜의 동사격인 [웃음]이 그의 이름이 되었던 것이다.

        이삭은 모리야산의 제사 경험을 통하여 다시한번 그의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자기의 생명 대신에 예비하신 한마리 양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나게 된 생명, 그는 이러한 은혜의 체험으로 인하여 다시 한껏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은혜가 동기가 되어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이상적 가정의 장막을 치며 자신 과 이웃의 번영을 위하여 우물을 파는 자가 되엇다. 이러한 이삭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 신자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삭의 가정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그가 어머니 사라를 여의도 수심에 잠긴 날을 보낼 때 아브라함은 아들의 결혼을 위해 종을 고향땅 메소보다미아에 보내어 밧담아람에서 신부 리브가를 데리고 오는데, 오늘 본문은 이삭이 신부 리브가를 만나는 광경을 기록한 대목 입니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된 이삭에게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오늘 우리는 이삭의 가정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받아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이삭의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1.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이루어진 가정입니다.

        나이 많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배우자를 구하려 그의 종을 보내며 몇가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모르는 가나안 족속중 에서 신부를 구하지 말고 내고향 족속에게서 아내를 택할것이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였으니 그가 사자를 네앞 에 보내실 것이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해 아내를 택할지니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그 자손이 하늘의 별, 땅의 모 래같이 무수히 많은 것을 약속하신것을 믿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아내를 분명하게 준비해 놓으신 것을 믿고 종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은 주인의 말을 순종하여 참으로 순적하게 밧단아람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신부감인 리브가를 만나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안에서 주신 가정이었습니다. 믿는 성도의 가정은 이같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가정입니다. 때문에 주안 에서 믿음으로 결혼한 가정은 서로 나누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막10:9). 또한 성도는 믿지 않는 불신자와의 결혼을 삼가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입니다.

        2. 믿음으로 결합된 가정이었습니다.

        이삭은 믿음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를 모리아산 제단에서 제물로 드리려할때 순종한 아들이었으며 그는 일생을 온유, 겸손한 성품의 인격으로 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그가 판 우물을 세번이나 빼앗아도 양보하고 물러섰으며, 이런 그의 신앙의 성품은 180세 일생을 큰 대가없이 지나게 하였습니다. 리브가도 또한 믿음의 아내였습니다. 먼 밧단아람 나흘의성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종과 약대를 물을 길러 대접한 사건과 그가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서 아브라함의 가정으로 오는 결단의 모습에서 그의 신앙의 인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정은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진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1) 리브가는 이삭에게 모친 상사후에 큰 위로가 된 아내였습니다.
        F.Bacon은 "아내는 청년에게는 연인이고 중년에는 친구이며 노년에는 간호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모두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를 통한 행복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부간엔 서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2) 그들은 피차 예의를 지킨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 64-65절에 그들의 첫 만남의 장면중에(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보고 약대에서 내려..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부부간의 예의가 매우 소중합니다.

     (1)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 나는 아내(남편)때문에 떳떳한 사회인이 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나에게 맞추려 하면 실패합니다. - 완전한 아내 (남편)가 되어 주기를 
         바라지 않는 아내(남편)가 가장 완전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3) 아내는 남편에게 (주안에서)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 정숙한 아내는 
         순종함으로 남편을 뜻대로 움직입니다.
     (4) 남편은 아내에게 양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5)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6) 양가의 부모를 잘 섬겨야 합니다.
     (7) 단정한 용의모를 관리해야 합니다.
    

    3) 이삭은 일생동안 일부일처의 가정이었습니다. - 성도는 부부외에 다른 권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말2:15) 에 하나님께서 영이 유여하여도 한 아내를 주신것은 경건한 자녀를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외에 다른 사람이 개입되면 부부의 신뢰가 금이 가게 되고 이것은 일생동안 회복되지 못하는 상처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3. 기도하고 가는 곳마다 먼저 제단을 쌓았습니다.

    결혼후 20년동안 자녀가 없이도 기다리다가 기도하여 마침내 에서, 야곱,쌍동이를 얻은 가정이었습니다 (25:19-26) 그리고 어디를 가던지 먼저 제단을 쌓고 그 곁에 장막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예배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의미하며, 그리고 자기의 집을 세우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가정은 언제나 예배중심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그리고 자기의 집을 세울줄도 알아야 합니다. 성도중에는 하나님제단을 쌓을줄은 알면서 자기집을 세우지 못하면, 도리어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1) 물질자립 (2) 자녀교육 (3) 교회봉사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4. 이웃에게 인정받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와서 "내가 보니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보았다."고 칭찬하고 화평을 청하였습니다.이웃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야곱(Jacob)

    레아가 낳은 1. 르우벤  2. 시므온  3. 레위  4. 유다  5. 잇사갈  6. 스블론. 디나
    라헬이 낳은 7. 베냐민  8. 요셉
    빌하(라헬의 종)가 낳은 9. 10. 납달리
    실바(레아의 종)가 낳은 11. ] 12. 아셀

    뜻 : 발 뒤축을 잡음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요 부친은 이삭 모친은 리브가이다(주전 1836년 곧 이삭의 나이 60세에 쌍둥이의 동생으로 나면서 그 형 에서의 발 뒤축을 잡아 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창 25:26).

    그 형 에서는 성질이 용맹하고 사상이 천박하고 들에서 사냥을 잘하나 야곱은 대조적으로 위인이 유순하고 지혜가 예민하여 집에 있어 양을 치니 이삭은 사냥 고기를 좋아하여 에서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여성적인 야곱을 편애 하였다(창 25:27-28).

      어떤 날 형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 올 때 주린 기색을 알고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다(창 25:20-34).
      그후 이삭이 에서를 불러 네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오면 먹고 축복하 여 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 모친 리브가가 야곱을 에서의 모양으로 꾸며 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가서 눈이 어두어 잘 보이지 않는 부친을 속여 형의 받을 축복을 대신 받고 축복을 빼앗은 원한과 분노를 형으로부터 받고 해침을 받을까 두려워 하여 부모를 이별하고 1천 8백리 되는 하란에 있는 외가로 피하여 가게 되었다(창 27:).

      2. 마태복음(마 1:16) 예수님의 족보에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부친으로 나온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아의 동생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발꿈 치를 잡았다"는 뜻인데 상당히 경쟁적이며 투쟁적인 성품의 소유자임을 말해준다.

      창세기를 읽을 때 그는 독자로 하여금 "어찌하여 이런 사람이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우선 그의 비정함과 교활함이 독자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고 형제간의 의리를 저버린 부도덕성도 무척 못마땅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광야에 사냥을 나갔다가 허기져 돌아온 형의 곤경을 이용하여 팥죽 한그 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사실, 형으로 가장하여 눈 먼 아버지를 속이고 형님이 받아야할 축복을 가로챈 사건은 계명에 위배되는 범죄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야곱에게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 28:13-14)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은 인간행위의 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계약과 하나님의 아들 명분(장자)으로 인하여 주어진다는 것이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 암아 유업을 이를 자니라." (갈라디아서 4:6-7)

      야곱의 위대한 점은 장자의 기업을 얻기 위한 인간적 수단과 재물을 얻기위한 20년간의 인간적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이라는 새 이름을 얻기 위하여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하나님의 사자와 겨룬 거룩한 체험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곱의 허리에서 온 국민과 왕들이 나오리라"(창 35:11 )는 예언은 십자가의 죽음이 있는 곳에 새 국민이 나오리라는 말과 같다. 이렇게 볼 때 야곱은 고난 신학의 실상을 보여준 구원사의 주역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앉아서 축복 기다리지 않는 적극적 행동파 ; 
      하나님 약속 투쟁으로 쟁취 야곱은 독특한 삶의 스타일을 보여준 인물이다.
      야곱의 신앙은 아브라함 같이 묵묵히 기다림도 아니요, 이삭과 같이 순종으로 일관된 유순한 삶도 아니었다.
      히브리적 사고는 사유가 아니라 행동에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히브리인이 야곱이다.

      야곱의 신앙은 곧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복을 믿는 것일뿐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는 일어나서 싸우고 행동으로 쟁취했다.
      그는 인도주의자도 아니고 사변적인 사상가는 더욱 아니었다.
      기근과 전쟁이 많은 척박한 현실에서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복도 현실화 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에서의 진노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타향살이를 하면서 아내를 넷이나 얻고 아들 열하나(또 하나는 그 후에)와 많은 가축을 이끄는 큰 부자가 되었다.
      야곱은 현실을 타개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속이기도 하고 끈질기게 찾기도 하고 대들기도 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는 고투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 가축을 모두 이끌고 밤중에 도망쳐 나온다.
      뒤늦게 이를 안 라반은 야곱을 추적해 따라잡았으나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 없이" (창 31:40) 외삼촌을 위해 20년간 일했다는 야곱의 항변에 오히려 수그러지 면서 돌무더기를 쌓아 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고 헤어진다.

      라반과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지은 야곱에게 남은 문제는 형 에서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는 우선 형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어 최대의 경칭 어인 "주"라 부르고 자신은 "종"이라 비하하면서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창 32:5)라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형이 400명의 사병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전략을 바꾼다.
      이번에는 선물공세를 펴는 것이다.
      또 야곱은 에서가 한 떼를 치면 나머지 한 떼는 피하라는 작전도 세웠다.
      그는 또 여종과 그 자식들을 제일 앞에,그 다음에 레아와 그 자식들, 그리고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을 그 다음에 두는 계략까지 만들어 놓았다.
      야곱의 이름에 "속이는 자, 간사한 자"라는 뜻이 있듯이 그는 모든 수단을 다 강구 했다.
      이처럼 야곱은 철저히 준비하고 나섬으로써 하나님의 복을 쟁취했던 것이다.

      본문 : 창 29:1-35
      요절 : 창 29:20


      1. 야곱의 가정은 연애로 이루어졌다.

      1) 야곱은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므로 그를 자기의 아내로 삼기 위하여 외삼촌의 집에서 일을 하였다.

       (1) 라헬과 결혼하기 위한 계약 조건은?(창 29:15-20)
       (2)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얻지 못하고 언니인 레아와 결혼하게 된 원인은 누구에게 있나?(창 29:21-25)
       (3) 야곱은 그가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하여 몇 년이나 봉사하였나?(창 29:26-30)

      2) 야곱은 두 아내들의 질투와 경쟁에 의하여 그들의 여종들로부터 자녀를 낳게 된다.
       (1) 야곱과 라헬의 부부싸움의 내용은?(창 30:1-2)
       (2) 라헬의 몸종 빌하가 낳은 아들의 이름은?(창 30:4-8)
       (3) 레아의 몸종 실바가 낳은 아들의 이름은?(창 30:9-13)

      *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무를 때 결국 4명의 여인에게서 12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생활은 혼란스러웠고 시기와 분쟁 속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2. 야곱의 가정은 고난 속에서 번성한 가정이다.

      1) 야곱이 아내들을 위하여 일을 한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 외삼촌 라반의 제안을 따라(창 30:28) 일을 하되 야곱이 원하는대로 양과 염소의 점박이와 아롱진 것 검은 것을 가지기로 하고 일을 한다.

       (1) 야곱의 재산증식 방법은?(창 30:37-43)
       (2) 야곱의 성실한 면모를 기록하여 보자(창 31:36-42)

      2) 야곱은 20년간 외삼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1)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창 31:3)
       (2) 야곱의 가족회의 내용과 결론은?(창 31:4-16)
       (3) 야곱의 간증(창 32:10)

      *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축복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이루어진다.
      야곱은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와서 20년간 머슴살이를 하는 중에 그의 근면 성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 속에서 축복자가 되었다.


    오늘의 묵상(7월)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1

    누가복음 1:1∼80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38절)

    7

    2

    누가복음 2:1∼52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

    7

    3

    누가복음 3:1∼38

    하늘이 열리며(21절)

    7

    4

    누가복음 4:1∼44

     주의 은혜의 해(20절)

    7

    5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1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1∼80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38절)
    ♦ 성구 :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I am the Lord's servant, Mary answered. May it be to me as you have said. Then the angel left her.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It is done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2020년 전반기 6개월을 마감하고 오늘부터는 하반기를 시작합니다. 전반기에 이루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어 하반기에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하며 출발합니다.

    주의 말씀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면 할수록 더욱 그 말씀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대한 놀라운 경험을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더 많이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갈 때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 진리의 말씀에 따라 행복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에서 주의 말씀에 대한 교훈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곤란 중에 위로(시편 119:50)
    둘째는 깨닫게 하는 통로(시편 119:169)
    셋째는 새롭게 하는 은혜(시편 119:25)
    넷째는 힘을 주시는 능력(시편 119:28)

    ♪ 찬양 / 주의 말씀 듣고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1∼52
    ♦ 묵상을 위한 주제 :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
    ♦ 성구 :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The child grew and became strong; he was filled with wisdom, and the grace of God was upon him.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성경을 읽을 때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는 것은 “정관사(Definite article)”라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은혜가 아니라 “그 은혜”라고 말씀한 것은 모두에게 내려지는 은혜가 아닙니다.

    이때 정관사 “그”는 제한적 용법입니다.
    지정된 사람이나 장소에게만 은혜가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용법으로 표현된 구절이 52절에서도 소개됩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Jesus grew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정관사 “그”가 사용되었으므로 모든 아이들에게 임하는 은혜가 아닙니다. 이러한 은혜를 “보편적 은혜” 또는 “일반적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관사 “그”가 사용되므로 “특별한 은혜”라고 합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이 특별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정말 자기 자녀들이 특별한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이제부터 자녀들을 위한 특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내 자녀가 특별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한 방식의 기도를 작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매주 어느 한 날을 정하고 시간을 정하여 부모가 함께 자녀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정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한두 번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한 은혜를 원한다면 특별한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특별한 투자가 없이는 특별한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특별한 투자를 나를 위한 이기적인 투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깨닫게 할 수 있는 특별한 투자를 계획하고 실천하므로 2020년 하반기에 특별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 찬양 / 기도하는 이 시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3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3: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늘이 열리며(21절)
    ♦ 성구 :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When all the people were being baptized, Jesus was baptized too. And as he was praying, heaven was opened.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다고 합니다(마 3:16).

    정말 하늘의 문이 있어서 열렸을까요?

    하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특별한 경우에 하늘이 열렸다고 말씀합니다(행 7:56, 행 10:11, 겔 1:1, 요 1:51).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마 3:17, 마 17:5, 벧후 1:17).

    더구나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임했다고도 합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롬 8:2, 요 6:63).

    주님을 찬양 할 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의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하늘 문이 열려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날마다 새롭게 다져지기를 소망합니다.

    ♪ 찬양 /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6

    누가복음 5:1∼39

    죄를 사하는 권세(24절)

    7

    7

    누가복음 6:1∼49

    듣고 행하는 자(49절)

    7

    8

    누가복음 7:1∼50

    말씀만 하소서(7절)

    7

    9

    누가복음 8:1∼56

    믿기만 하라(50절)

    7

    10

    누가복음 9:1∼62

    별세하실 것(31절)

    7

    11

    누가복음 10:1∼42

    좋은 편을 택하라(42절)

    7

    1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6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5:1∼39
    ♦ 묵상을 위한 주제 : 죄를 사하는 권세(24절)
    ♦ 성구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오직 주 예수님께만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교회법을 근거로 예수님이 아닌 사제들에게도 용서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하고 말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예수 중심의 신앙과 교회 중심의 신앙으로 구분합니다.
    예수 중심의 신앙은 “성경”이 기준이 됩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은 “교회법”이 기준이 됩니다.
    교회법이 성경보다 위에서 권위를 갖게 될 때 신앙은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신앙생활이 습관적으로 길들여질 때가 위험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약속보다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내일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타락한 마음 때문입니다.
    문제가 드러난 죄보다 드러나지 않은 생각하지도 못한 죄를 찾아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됩시다.
    애통하는 자가 됩시다.
    온유한 자가 됩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됩시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됩시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됩시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됩시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됩시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도를 합니다. 

    주여,
    주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받아주옵소서!

    ♪ 찬양 / 나의 죄를 씻기는

    https://www.youtube.com/watch?v=WE4nqto723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7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6:1∼49
    ♦ 묵상을 위한 주제 : 듣고 행하는 자(49절)
    ♦ 성구 :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But the one who hears my words and does not put them into practice is like a man who built a house on the ground without a foundation. The moment the torrent struck that house, it collapsed and its destruction was complete.

    하나님 앞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와 “듣고 행하지 않는 자”

    ‘듣고 행하는 자’는 기초를 깊이 파고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깊은 기초와 든든한 반석을 위하여 마음에 새겨야 할 진리를 살펴봅니다.

    “남에게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절)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36절)

    신앙생활의 유형을 “이기적인 신앙”과 “이타적인 신앙”으로 구분합니다.
    ‘이기적인 신앙’에서 ‘이타적인 신앙’으로 성숙해 질 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입니다.
    소금과 빛은 대상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신앙은 대상을 구분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믿음으로 거듭날 때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란 그 영광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같고, 그의 더러움에 있어서는 동물과 같다”(성 어거스틴).

    인간이 고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사죄의 은총
    둘째는 성령의 임재와 충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말씀의 깊은 뿌리와 실천의 든든한 터전 위에서 좋은 나무로 반듯하게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주의 말씀 듣고서

    https://www.youtube.com/watch?v=JI8vncK8wa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8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7:1∼50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씀만 하소서(7절)
    ♦ 성구 :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Bu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이라고 합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언어를 “코이네 헬라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헬라어에서 말씀이란 단어가 두 가지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로고스(λόγος, logos)”
    둘째는 “레마(ῥῆμα, rhéma)”
    ‘로고스’ 라는 말씀은 성경의 모든 내용을 말합니다.
    ‘레마’ 라는 말씀은 특별히 내게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말합니다.
    레마라는 말씀의 대표적인 성구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로마서 10:17).

    “말씀만 하사” 라고 하셨을 때 사용된 말씀은 “로고스”라는 단어입니다.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모두 “로고스”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강조하려면 “로고스” 보다는 “레마” 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백부장의 이와 같은 언어 사용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고 극구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계속되는 위협,
    삶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답답하게 느껴질지라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다만 말씀만 하사 낫게 하소서!”
    이렇게 고백하며
    어려운 때를 말씀으로 무장하여
    건강하게 견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전능왕 오셔서

    https://www.youtube.com/watch?v=tySNuzGINh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9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8:1∼56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기만 하라(50절)
    ♦ 성구 :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Don't be afraid; just believe.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움의 원인은 “불안(不安)”이라고 합니다.
    불안한 사람은 “공포(恐怖)”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에도 무너져버립니다.

    보헤미아의 국왕 “페르디난도 5세(Ferdinando V)”에게 어느 점쟁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는 ‘마드리갈’이라는 곳에는 가지 마십시오. 그곳에 가면 죽을 것입니다. 그 후로 국왕은 그곳에 아주 좋은 별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21년 동안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작은 도시를 방문하게 되어 작은 집에서 하루 밤을 지낼 때 그만 병이 났다고 합니다. 국왕은 신하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신하는 즉시 대답하기를 “예, 여기는 ‘마드갈레’ 라고 합니다.” “마드리갈”과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그 순간 국왕은 “아이구, 이제는 죽겠구나!” 하더니 결국 며칠 지나 죽었다고 합니다.

    병(病)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공포”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두려움에 붙잡힐 때 사람의 몸은 신경이 쇠약해지고, 혈압이 높아지며, 위액 분비가 잘 안되어 소화도 안 된다고 합니다. 세균보다 더 무서운 두려움이 건강을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워 말고 믿어야 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의 골짜기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찬양 /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https://www.youtube.com/watch?v=Wgu4-Zump6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0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9:1∼62
    ♦ 묵상을 위한 주제 : 별세하실 것(31절)
    ♦ 성구 :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 할쌔.
    appeared in glorious splendor, talking with Jesus. They spoke about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bring to fulfillment at Jerusalem.    

    “별세(別世)”
    ‘별세’를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서는 죽음 아니라 “떠나는 것(departure)” 이라고 합니다.
    지구를 떠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곳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 여행을 “죽음 여행”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여행은 다시 돌아와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여행은 내가 죽어서 그곳으로 가야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행입니다.

    “우리들은 일이 끝나기까지 죽는 것이 아니다.”

    스코트란드 조합교회(Congregationalist) 선교사이자 탐험가이었던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 3. 19~1873. 5. 1)이 남긴 말입니다.

    리빙스턴은 살아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거니와 죽어서도 하나님의 뜻을 무언으로 대변하여 성취시키려고 “죽음도 하나님 사업 일부”라고 고백했습니다.

    언제인가 반드시 아주 특별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삶의 자세라고 하겠지요?
    오늘은 특별한 여행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시렵니까?
    여행의 즐거움은 준비한 만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때와 장소를 알지 못하는 특별한 여행을 준비하며 소망의 닻을 끌어올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하늘가는 밝은 길이

    https://www.youtube.com/watch?v=6ON12J-aoZ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0:1∼42
    ♦ 묵상을 위한 주제 : 좋은 편을 택하라(42절)
    ♦ 성구 :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Mary has chosen what is better, and it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선택(選擇)에 의해서 삶이 결정됩니다.
    좋은 것을 선택하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나쁜 것을 선택하면 나쁜 삶이 될 것입니다.
    좋은 삶을 원한다면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시력이 악화되어 눈이 멀어가고 있었습니다. 담당의사가 그에게 수술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그의 시력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수술하던 중에 뇌신경을 다쳐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수술을 한 결과 이번에는 기억력은 되살아나고 시력은 나빠졌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환자에게 "어느 것을 택하겠습니까? 시력이요, 아니면 기억력입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사람은 "시력을 되찾겠습니다. 지나간 일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될 일을 눈으로 보는 것이 낫겠지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 속에 파묻힌 삶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지난 날 나쁜 기억을 다듬어 더 좋은 기억으로 새겨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마리아와 같이 좋은 편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기회를 붙잡아 코로나 바이러스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강건하여 하늘의 뜻을 실현하는 복음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일어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오 놀라운 구세주

    https://www.youtube.com/watch?v=TvF7KjM0h3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13

    누가복음 11:1∼54

    구하는 자에게 주실 성령(13절)

    7

    14

    누가복음 12:1∼59

    어리석은 자(20절)

    7

    15

    누가복음 13:1∼35

    망할 징조(3절)

    7

    16

    누가복음 14:1∼35

    강권하여 채우라(23절)

    7

    17

    누가복음 15:1∼32

    하늘에서의 기쁨(7절)

    7

    18

    누가복음 16:1∼31

    위로와 고민(25절)

    7

    1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13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1:1∼54
    ♦ 묵상을 위한 주제 : 구하는 자에게 주실 성령(13절)
    ♦ 성구 :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은 문제를 갖고 해결하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에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聖靈)”을 구하라고 강조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께서 마치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으며,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승리하셨던 예수님께서 부활 후 모든 문을 닫아걸고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 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성령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무슨 신비한 힘과 능력에 제한시키지 말고 예수님처럼 성령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은 순수하고 거룩한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붙잡힌 사람은 인격적인 삶에 만족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정의와 정직을 주장하면서도 자신은 불의와 추함에 갇혀 있었기에 그 불의와 추함이 세상에 알려지게 될 때 인간은 자기모순이란 함정에 빠져 비극적인 삶을 선택합니다.

    예로부터 윤리를 전공한 사람은 윤리가 없다고 합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정의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이 이렇게 자기모순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기만족에 도취한 삶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구하는 사람은 자기모순을 넘어야 하고 자기만족을 버려야 하는 고통과 연단의 과정에서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은 진리의 길을 찾아 가난하지만 부요하게 연약하지만 강건한 삶을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을 구하는 믿음으로 성령과 함께 진실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새겨질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https://www.youtube.com/watch?v=kNQcjnrGiS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2:1∼59
    ♦ 묵상을 위한 주제 : 어리석은 자(20절)
    ♦ 성구 :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죽을 것을 모르고 세상 삶에 만족하며 살았던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기도를 찾아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언 30: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내가 만족 할 때 어느 누군가 고통의 자리에서 답답해합니다.
    내가 즐거워 뛸 때 어디에선가 슬픔의 통곡 소리가 진동합니다.
    내가 배부를 때 어떤 사람을 굶주린 배를 붙잡고 도움의 손을 찾습니다.
    내가 건강할 때 병상의 자리에 누워 소망 없는 눈으로 치료의 길을 헤맵니다.
    이제부터는 나 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아니라 더불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가장 작은 파동에 의한 움직임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나누며 즐기며 기뻐할 수 있는 그 날을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가장 낮은 사랑이

    가장 깊은 사랑입니다


    내 사랑의 크기만큼
    그의 사랑이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며

    받아서 채워지는 사랑보다는

    주면서 채워지는 사랑


    그로 인해 알게 된

    아픔과 슬픔에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랑


    그렇게 낮은 사랑이 가장 깊은 사랑입니다


    내 가슴 비워가는 사랑이

    가장 절실한 사랑입니다


    그가 보고픈 만큼

    그가 그리운 만큼

    내 가슴 오려 내주는 사랑


    그와 같은 눈높이에 서서

    나 자신을 하나하나 비워감에 따라

    그 자리에

    어느새

    그가 하나하나씩 쌓여가는 그런 사랑이

    가장 절실한 사랑입니다.

    ♪ 찬양 /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https://www.youtube.com/watch?v=nm6-X3jGz0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5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3:1∼35
    ♦ 묵상을 위한 주제 : 망할 징조(3절)
    ♦ 성구 :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망할 징조(徵兆)는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잘못된 삶을 정상적인 삶이라 생각하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잘못을 깨닫는 사람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회개(悔改)는 성령의 강한 불빛에 의해 깊숙이 숨어있던 죄를 찾아내어 그 죄를 밝은 세상으로는 드러내어 태워버리고 죄가 숨어 있던 그곳에 성령의 거룩한 빛을 담아 그 빛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회개하지 못하면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될 것이라고 합니다.
    쓰레기와 같은 죄 때문에 버림을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쓰레기를 치워버리고 맑고 깨끗한 집으로 청소한 후 그 안에서 즐겁고 복된 삶을 누려야 할까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지난날의 죄악을 깨닫고 영원한 주님 나라 백성으로 즐거운 찬송을 부르며 승리의 행진 대열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행군 나팔 소리에

    https://www.youtube.com/watch?v=jgsaNnViFQ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6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4:1∼35
    ♦ 묵상을 위한 주제 : 강권하여 채우라(23절)
    ♦ 성구 :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Then the master told his servant, 'Go out to the roads and country lanes and make them come in, so that my house will be full.

    “강권하라”는 헬라어는 “아낭카조(ἀναγκάζω)”라고 합니다.
    ‘아낭카조’는 “억지로라도 하게하라”는 뜻입니다. 
    한번 권면하고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매달려 간청하라는 것을 말합니다. 심지어 안 되면 멱살이라도 잡아서 끌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한 초청은 유대인들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으므로 차라리 이방인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음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문을 열어야 할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문을 열어놓지 않고 구원을 받으라고 외칩니다.
    그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입니다.
    복음의 문을 열고 구원받을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합시다.
    그리고 거리에 나가 구원받아야 할 사람에게 복음을 외치고 가르치고 깨우쳐서 구원의 잔치 자리를 채워야 하겠습니다.

    오 주여,
    화산이 터져 오르듯
    복음의 용암이 넘쳐흘러
    거리를 채우고 흔들어
    방황하던 영들이
    구원의 문을 찾아
    달려오게 하소서!
    ♪ 찬양 / 구원으로 인도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i1UbpDjlDt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7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5:1∼32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늘에서의 기쁨(7절)
    ♦ 성구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I tell you that in the same way there will be more rejoicing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ninety-nine righteous persons who do not need to repent.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But Abraham replied, 'Son, remember that in your lifetime you received your good things, while Lazarus received bad things, but now he is comforted here and you are in agnoy.

    “하늘에서의 기쁨”이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실에서는 “어버이의 기쁨”이라고도 하겠지요.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언제 가장 기뻐했을까요?
    물론 여러분들이 태어나던 날 바로 그날이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기쁨은 그 아이가 자라나면서 기쁨을 무너져 내리고 근심과 걱정으로 쌓여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나를 낳으시고 그렇게 기뻐하셨던 부모님이 나로 인하여 기쁨을 잃어버리셨을까요?
    마찬가지로 하늘의 어버이 하나님께서 나를 낳으셨던 부모님처럼 나로 인하여 기쁨을 잃어버리셨다면 신앙인으로서 큰 불행이 아닐까요?
    그런데 오늘 잃어버렸던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비결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 이라고 합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뻐하셨던 부모님의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부모님에게 잘못한 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어버이에 대한 회개가 부모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이제는 영적으로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 앞에 지난 날 거짓되고 망령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늘에 기쁨을 쌓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이 땅의 기쁨
    하늘의 기쁨으로 치솟아
    기쁨의 날개 펄럭이며
    모두 함께
    기쁨을 누리며
    살아봅시다.

    ♪ 찬양 /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https://www.youtube.com/watch?v=a6zCE70-r8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8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6: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위로와 고민(25절)
    ♦ 성구 :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But Abraham replied, 'Son, remember that in your lifetime you received your good things, while Lazarus received bad things, but now he is comforted here and you are in agony.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민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에서 위로받는 비결이 있다고 합니다.
    고민에 붙잡혀 시들어가는 인생으로 기억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위로 받으며 소망의 길을 걸어가야 할까요?
    왜 부자는 풍족한 환경에서 고민하는 자리에 머물게 되었을까요?
    왜 거지 나사로는 구차한 환경에서 위로받는 자리에 앉게 되었을까요?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고민과 위로의 차이는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의 삶의 질이 결정될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소망의 마음을 갖게 될 때에 위로가 흘러들어 올 것입니다.
    풍족한 환경에서도 만족과 감사를 모른다면 실망과 고통의 작은 구멍이 점점 더 확대되어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의 바위가 될 것입니다.

    “마음”이란 단어를 영어로 “마인드(mind)”와 “하트(heart)”로 구분합니다.
    ‘마인드(mind)’란 주로 뇌의 영역에 관련되어 의사결정 및 참과 그릇됨을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하트(heart)’란 문학적 영역 및 느낌과 정서를 조절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한 마음”이라고 말할 때는 “원 하트(One Heart)”를 말합니다.
    서로 한 마음이 될 때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을 때 고민합니다.
    반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하나가 된다면 서로 위로가 될 것입니다.

    행복하다(happy)와 일어난다(happen)는 단어를 살펴보면 동일한 어근(happ)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문자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이 일어날 수 있지만 마지막 문자를 잘못 쓰면 행복은 고민으로 뒤집어 질 것입니다.

    위로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 한 마음으로 회복한 후에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슬픈 마음 있는 사람

    https://www.youtube.com/watch?v=G0Lj_gDVw0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20

    누가복음 17:1∼37

    믿음을 더하소서(5절)

    7

    21

    누가복음 18:1∼43

    믿음을 보겠느냐(8절)

    7

    22

    누가복음 19:1∼48

    주가 쓰시겠다(31절)

    7

    23

    누가복음 20:1∼47

    산 자의 하나님(38절)

    7

    24

    누가복음 21:1∼38

    주의하라(8절)

    7

    18

    누가복음 22:1∼71

    습관을 좇아(39절)

    7

    1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20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7:1∼37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을 더하소서(5절)
    ♦ 성구 :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The apostles said to the Lord, “Increase our faith!”    

    “양(量, Amount)과 질(質, Quality)”
    양(量)에 대해서는 “많다” 또는 “적다”
    질(質)에 대해서는 “좋다” 또는 “나쁘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라 하였을 것이요 그대로 되었을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은 “믿음의 양”을 요구했지만 주님께서는 “믿음의 질”을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을 양으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물질 세상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질이 넉넉하다는 것은 이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충분조건이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비록 물질은 넉넉하지 않지만 행복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오늘의 말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겸손(謙遜, humility)(10절)

    겸손이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자매는 여러 형제들이 부유하게 살아가면서도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 자매에게 “형제들은 모두 풍족하게 살아가는데 마음이 상하지 않는가?” 라고 질문했더니 그 자매가 “내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모두 넉넉하게 살아가므로 나는 참 좋습니다.” 라고 대답할 때 그 자매의 인품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것이 겸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째는 감사(感謝, thanks)(16절)

    열 명의 문둥병자들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아와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謝禮)하였다고 합니다. 사례란 말과 행동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들이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이 있습니다.

    맑고 밝은 태양 빛,
    항상 새로운 공기와 신선한 바람,
    푸른 나무들과 풀밭,
    언제나 가까이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가족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제한적 삶이 다소 힘들고 지칠지라도 결코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는 역설적(逆說的, Paradoxical)인 생각(33절)

    역설적이란 “어떤 내용이 겉으로는 모순되고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는 말씀처럼 삶의 가치와 기준을 자기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에서 항상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베긴” 수상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500배나 강한 아랍과 싸워서 이기는 비결이 무엇인가?”
    기자의 질문에 “베긴” 수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서 상관은 “전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명령할 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부하들이 지휘관을 믿고 따라가므로 승리하게 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견디고 있습니까?
    어려운 때를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세상을 이기셨던 예수님처럼 나를 위한 것이 우선이 아니라 남을 위한 절대 겸손과 감사와 역설적인 신앙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행복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구원으로 인도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aTUNw4llW1Q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8:1∼43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을 보겠느냐?(8절)
    ♦ 성구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I tell you, he will see that they get justice, and quickly. However,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여러분은 믿음이 보입니까?
    아니면 믿음을 느끼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믿음은 깨닫는 것일까요?

    감리교 운동을 일으켰던 “요한 웨슬리”는 “최대로 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무엇을 최대로 해야 할까요?
    첫째는 몸과 마음과 이웃을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로 일하고 벌어라.
    둘째는 검소한 생활로서 번 것을 최대로 절약하라.
    셋째는 네가 가진 것을 최대로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

    믿음이란 최대로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믿음은 언행(言行)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최대로 두려워하라!(2절)
    사람을 최대로 인정하라!(9절)
    자기의 부족한 것을 최대로 살펴라!(22절)
    가장 필요한 것을 최대로 구하라!(41절)

    ♪ 찬양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https://www.youtube.com/watch?v=xT1HDblQkp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9:1∼4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가 쓰시겠다(31절)
    ♦ 성구 :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If anyone asks you, Why are you untying it? tell him, The Lord needs it.

    “주가 쓰시겠다(The Lord will use it)”
    예수님께서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에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거물(Great Man)”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거물”이란 용어를 세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거물(巨物)

    거물(巨物)이란 “클 거(巨)”자를 사용하여 “큰 인물”이나 “큰 물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거물급(巨物級)”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거물(去物)

    거물(去物)이란 “갈 거(去)”자를 사용하여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거나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 또는 “내쫓아야 할 사람”을 말합니다.

    셋째는 거물(距物)

    거물(距物)이란 “상거할 거(距)” “막을 거(距)”자를 사용하여 가깝게 지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만나거나 사귐을 가져야 할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가까이서 교제해야 할 사람 위대한 인물의 거물(巨物)입니다.
    왜 예수님은 거물이 되셨을까요?

    “삭개오”는 뭇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던 “거물(距物)”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을 방문한 후에 “작은 거물(巨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작은 거물(巨物)”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3절)
    둘째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6절)
    셋째는 예수님 앞에 자기 잘못을 고백해야 합니다(8절)
    넷째는 아브라함 자손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9절)

    어두운 세상에 소망의 빛이 되어 주위 사람들을 믿음의 거물급(巨物級)으로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회복하여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일에 다 함께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 찬양 /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https://www.youtube.com/watch?v=qhnLNAlK3e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3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0:1∼48
    ♦ 묵상을 위한 주제 : 산 자의 하나님(38절)
    ♦ 성구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for to him all are alive. 

    “산 자의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왜 이런 표현이 소개되었는지 그 배경을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 전통에 “계대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 이란 것이 있습니다. ‘계대결혼’이란 “리비르(Levir, 남편의 형제)”란 말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수혼(嫂婚)” 또는 “형사취수제도(兄死取嫂制度)”라고 합니다(참조, 신명기 25:5∼10).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했다가 자녀가 없이 죽어 그 다음 형제가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형제도 또 죽었고 다시 셋째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고 이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면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산 자의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란 부활 때에는 시집도 장가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계대결혼의 영적 교훈은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중에는 “대(代)”가 끊어지는 가문이 생긴다는 것은 여호와의 약속과는 상치되는 일이었으므로 계대결혼을 통해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이란 분명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부활 후에도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生命)을 말합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생명(生命)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산자의 하나님 편에서 강건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생명 진리 은혜 되신

    https://www.youtube.com/watch?v=JEhz2nrstH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4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1: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하라(8절)
    ♦ 성구 :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 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He replied: Watch out that you are not deceived. For many will come in my name, claiming, I am he, and, The time is near. Do not follow them.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그 영혼을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라(I am He, ego eimi, Ἐγώ εἰμι)”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예수가 아닌 사람이 “내가 예수라!(ego eimi, Ἐγώ εἰμι)”고 말할 때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명품(名品)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붙잡혀 가짜를 찾게 됩니다. 가짜는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진품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를 만나려면 예수님이 좋아하는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좋아하는 마음과 생각은 회개(悔改)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회개 없이 거룩하신 주님을 찾고자 할 때 거짓의 가르침에 쉽게 흔들려 가짜에 미혹 당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파멸입니다.

    미혹당하지 않으려면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의 빛이 되신 주님과 더불어 어두운 세상에서 저 천성을 향하여 힘차게 나가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I am He)”라고 하셨을 때 일곱 가지 특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일곱 가지 특징을 잘 기억하셔서 예수와 참된 예수를 바르게 분별하여 미혹당하는 일이 없도록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Ⅰ.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Ⅱ.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Ⅲ. 나는 문이다(10:7, 9)

    ἐγώ εἰμι ἡ θύρα τῶν προβάτων


    Ⅳ. 나는 선한 목자라(10:11)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Ἐγώ εἰμι ἡ ἀνάστασις καὶ ἡ ζωή·

    Ⅵ.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Ⅶ.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5)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 찬양 / 신랑 되신 예수께서

    https://www.youtube.com/watch?v=2mlMA_YAis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2:1∼71
    ♦ 묵상을 위한 주제 : 습관을 좇아(39절)
    ♦ 성구 :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Jesus went out as usual to the Mount of Olives, and his disciples followed him.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기도하셨을까요?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일에 삶에 익숙해졌기에 습관을 좇아 감람산을 찾아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습관에 몸이 익숙해지려면 사회학에서는 대략 3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3만 시간이란 1,250일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1,250일 3년 4개월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낸 시간과 거의 비슷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의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을까요?
    그 이유는 제자들에게 거룩한 습관이 제자들의 몸에 익숙해질 때 까지 훈련하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습관을 갖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네 가지 습관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배하는 습관
    둘째는 성경을 읽는 습관
    셋째는 기도하는 습관
    넷째는 전도하는 습관

    습관(習慣)이란 헬라어는 “에도스(edos, ἔθος. custom)”라고 합니다.
    에도스는 성경에서 “전례(典禮)”(눅 2:42) 또는 “규례(規例)”(눅 4:16) 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주님의 에도스가 나의 에도스가 될 때 비로써 주님처럼 이 세상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먼저 거룩한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습관이 몸에 익숙해졌을 때 나도 모르게 나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뭇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 찬양 / 저 죽어가는 자

    https://www.youtube.com/watch?v=jl7Kf79QQss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27

    누가복음 23:1∼56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

    7

    28

    누가복음 24:1∼53

    너희는 증인이라(48절)

    7

    29

    마태복음 1:1∼25

    죄에서 구원할 자(21절)

    7

    30

    마태복음 2:1∼23

    현몽(19절)

    7

    31

    마태복음 3:1∼17

    하늘이 열리고(16절)

    8

    1

    마태복음 4:1∼25

    회개와 천국(17절)

    8

    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2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3:1∼56
    ♦ 묵상을 위한 주제 :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
    ♦ 성구 :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Jesus turned and said to them, Daughters of Jerusalem, do not weep for me; weep for yourselves and for your children.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이마엔 땀이 얼룩지고 지친 발걸음은 딱딱한 돌계단에 쓰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힘들 때 제자들마저 보이지 않고 지나가던  구경꾼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따라가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구속사적 의미에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강제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 ‘비아돌로로사’를 함께 걸어가며 눈물로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고통의 길은 곧 구속의 길로 활짝 열릴 것이지만 너희 자녀들은 아직 구원의 은혜를 모르고 있으므로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울어야 한다고 깨우치셨습니다.

    여성(女性)은 연약하지만 모성(母性)은 강합니다.
    모성의 힘으로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할 때 어려운 시대를 살아야 할 자녀들은 반드시 믿음의 길을 벗어나지 않고 진리를 따라 경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꿋꿋하게 세워질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자녀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의 씨앗이 자녀들의 마음에 믿음으로 심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https://www.youtube.com/watch?v=ZOcEGrqjpBA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8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4:1∼53
    ♦ 묵상을 위한 주제 : 너희는 증인이라(48절)
    ♦ 성구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You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

    “증인(證人, witness)”이란 어떤 사건의 목격자를 말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 증인을 “마루투스(martus, μάρτυς)” 라고 합니다.
    “마루투스”라는 단어의 특별한 의미는 “순교자(殉敎者)” 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수의 증인은 복음을 전하려고 자기 목숨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거리에서 “예수를 믿으세요!” 이렇게 외치는 것만이 증인이 아니라 이기적인 세상에서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복음적인 삶 또한 증인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북한에서는 성경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핍박을 받고 심지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경을 북한에 전달하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각오하면서 이 일에 헌신하는 일군들이 있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지기 전에 북한에는 3,035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밖에 없지만 지하교회 성도들은 끈질기게 그들의 신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고, 마음대로 찬송을 부를 수 있으며, 성경을 소유하고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지하교회 성도들에게는 굉장한 은혜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핍박과 고난이 닥쳐올 때 겨우 깨닫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핍박과 고난이 닥쳐오기 전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의 기준을 세속의 가치에 따라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찬송과 기도와 말씀의 자유를 박탈당하기 전에  증인으로서 순교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더운 여름 날 몸과 마음이 힘들지라도 지하교회 성도들을 생각해 봅시다.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정치범 수용소에서 억압당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지 맙시다.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증인으로 거듭나야 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부르짖는 성령의 탄식 소리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어느 민족 누구게나

    https://www.youtube.com/watch?v=nBSQMx4IjI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태복음 1: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죄에서 구원할 자(21절)
    ♦ 성구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She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give him the name Jesus, because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죄(罪)에서 구원(救援)할 자”

    죄는 에덴동산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 헛된 꿈을 갖습니다.
    헛된 꿈은 금지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깨닫습니다.
    부끄러움이란 벌거벗었다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감추려고 할 때 하나님은 새로운 방법으로 부끄러움을 덮어주셨습니다.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덮어주신 것입니다.
    덮어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를 “사랑의 주”라고 부르는 까닭은 “죄를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들추어내는 사람”과 “덮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들추는 사람은 아직 자기의 부끄러움을 자기 방법으로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덮어주는 사람은 자기의 부끄러움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용서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나누려고 다시 덮어주는 삶을 기뻐합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처럼 이제부터 덮어주는 은혜를 함께 경험하며 그 은혜의 세계에서 주님을 닮아 가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사랑의 주님 닮기 원하네

    https://www.youtube.com/watch?v=bsA_JjDhxc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3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태복음 2: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현몽(19절)
    ♦ 성구 :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급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After Herod died,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in a dream to Joseph in Egypt.   

    “현몽(現夢, in a dream)”
    현몽이란 헬라어는 “오나르(onar. ὄναρ)”라고 합니다.
    “오나르”란 잠을 잘 때 특별한 계시를 받는 현상을 말합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은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됩니다.

    첫째는 정혼(定婚)

    신랑과 신부의 부모(아버지)에 의해서 신랑과 신부가 어렸을 때 ‘네 딸하고, 우리 아들하고 결혼시키자.’ 라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약혼(約婚)

    신랑과 신부가 성인으로 성장했을 때 약혼하므로 법적 구속을 받는데, 이 관계를 깰 수 있는 것은 오직 법적인 약혼 파기로만 가능합니다. 약혼 기간은 대개 1년 정도 되며, 약혼 기간에 신랑과 신부는 육체적 접촉을 하지 않으며, 서로의 순결을 지키게 됩니다.

    셋째는 결혼(結婚)

    신랑은 큰 잔치를 벌이며,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맞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8절). 이 문구에서 ‘성령으로’라는 말을 빼면, 마리아는 약혼한 상태에서 요셉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약혼 기간에 여인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임신하는 것은 모세 율법에 의하면 ‘간음죄’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19절).

    ‘의롭다’는 것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면  ‘간음한’ 마리아를 돌로 쳐 죽였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에게 의로움이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몽”이란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현몽의 은혜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우리에게도 나타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대로가 활짝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https://www.youtube.com/watch?v=4mkxZZ2AKZ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31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태복음 3: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늘이 열리고(16절)
    ♦ 성구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As soon as Jesus was baptized, he went up out of the water. At that moment heaven was opened, and he saw the Spirit of God descending like a dove and lighting on him.

    하늘에 문(門)이 있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성경은 하늘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생명(生命)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순간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감추어졌던 생명의 비밀이 하늘이 열린 것처럼 드러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궁극적 생명이 은폐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듯이 아무도 그 생명이 은폐된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하늘이 열려야만 우리는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여는 문이 예수님이십니다(요 10:7, 양의 문).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생명을 알게 되었고, 그 생명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는 그 증거를 성령의 임재와 하늘의 소리로 드러내셨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임했으며, 성령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하늘에서 들린 소리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마음에 합한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2편 7절의 인용입니다.

    성경에서 하늘이 열렸던 사건들을 살펴보며 하늘이 열리는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가 오늘 내게도 임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 에스겔 1:1
    2. 마태복음 3:16(누가복음 3:21)
    3. 요한복음 1:51
    4. 사도행전 7:56
    5. 사도행전 10:11

    ♪ 찬양 /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https://www.youtube.com/watch?v=Vk1oouyZkF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카톡으로 배우는 구약 성경(창세기 - 말라기) 06 / 15 /20-07 / 29 / 20


    카톡과 유튜브으로 배우는 성경(카유배성)

    6월 15일(월)  #.1

    창세기 /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 히브리 민족의 선택

    요절 /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절 /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율법서 : 5권, 613조항


    6월 16일(화)  #.2

    출애굽기 / 구원하시는 하나님
    - 히브리 민족과의 약속

    요절 /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율법서 : 5권, 613조항

    6월 17일(수)  #.3

    레위기 / 언약하시는 하나님

    요절 / 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분류 : 율법서( 5권), 613조항

    6월 18일(목)  #.4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율법서 : 5권, 613조항

    민수기 / 훈련하시는 하나님

    요절 / 민수기 14:33∼34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율법서 : 5권, 613조항

    6월 19일(금)  #.5

    신명기 / 거듭 말씀하시는 하나님

    요절 /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율법서 : 5권, 613조항

    6월 20일(토)  #.6
    여호수아 / 성취하시는 하나님

    요절 / 여호수아 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역사서 : 12권(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7
    6월 22일(월)

    사사기 / 재판하시는 하나님
    요절 /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In those days Israel had no king; everyone did as he saw fit.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8
    6월 23일(화)

    룻기 / 우리의 기업을 회복하시는 하나님
    요절 / 룻기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The women living there said, Naomi has a son. And they named him Obed. He was the father of Jesse, the father of David.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9

    6월 24일(수)
    사무엘상 / 왕국의 조직
    요절 / 사무엘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Samuel took the horn of oil and anointed him in the presence of his brothers, and from that day on the Spirit of the LORD came upon David in power. Samuel then went to Ramah.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0
    6월 25일(목)

    사무엘하 / 다윗의 통치
    요절 / 사무엘하 6:14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David, wearing a linen ephod, danced before the LORD with all his might.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1

    6월 26일(금)
    열왕기상 / 왕국의 분열, 솔로몬 왕
    요절 / 열왕기상 11: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Yet I will not tear the whole kingdom from him, but will give him one tribe for the sake of David my servant and for the sake of Jerusalem, which I have chosen.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2

    6월 27일(토)

    열왕기하 / 왕국의 몰락, 분열된 왕국의 역사
    요절 / 열왕기하 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And Elisha prayed, "O LORD, open his eyes so he may see." Then the LORD opened the servant's eyes, and he looked and saw the hills full of horses and chariots of fire all around Elisha.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3

    6월 29일(월)
    역대상 / 다윗 왕의 통치, 인간의 계보와 하나님의 섭리
    요절 / 역대상 4:10(야베스의 기도)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4

    6월 30일(화)
    역대하 / 남쪽 왕국의 역사, 하나님의 진노, 단들을 쌓고
    요절 / 역대하 33: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영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단들을 쌓고.
    He built alters in the temple of the LORD, of which the LORD had said, "My Name will remain in Jerusalem forever.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5

    7월 1일(수)
    에스라 / 도우시는 하나님
    요절 / 에스라 9: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  
    Though we are slaves, our God has not deserted us in our bondage. He has shown us kindness in the sight of the kings of Persia: He has granted us new life to rebuild the house of our God and repair its ruins, and he has given us a wall of protection in Judah and Jerusalem.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6

    7월 2일(목)

    느헤미야 / 위로하시는 하나님
    요절 / 느헤미야 6:15∼16
    성벽 역사가 52일 만인 엘룰 월 25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So the wall was completed on the twenty-fifth of Elul, in fifty-two days.  When all our enemies heard about this, all the surrounding nations were afraid and lost their self-confidence, because they realized that this work had been done with the help of our God.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7

    7월 3일(금)

    에스더 / 전화위복을 이루시는 하나님
    요절 / 에스더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For if you remain silent at this time, relief and deliverance for the Jews will arise from another place, but you and your father's family will perish. And who knows but that you have come to royal position for such a time as this?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8

    7월 4일(토)

    욥기 / 시험하시는 하나님
    요절 / 욥기 28:28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And he said to man, The fear of the Lord that is wisdom, and to shun evil is understanding.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19
    7월 6일(월)
    시편 / 찬양받으실 하나님
    요절 / 시편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Let everything that has breath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종교개혁자 칼빈은 “시편은 영혼의 해부학” 이라고 정의합니다.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0
    7월 7일(화)
    잠언 /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
    요절 /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1

    7월 8일(수)
    전도서 /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요절 / 전도서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 에 심판하시리라.
    Now all has been heard; here is the conclusion of the matter: Fear God and keep his commandments, for this is the whole duty of man. For God will bring every deed into judgment, including every hidden thing, whether it is good or evil.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2

    7월 9일(목)
    아가서 /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
    요절 / 아가서 8:6∼7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Place me like a seal over your heart, like a seal on your arm; for love is as strong as death, its jealousy unyielding as the grave. It burns like blazing fire, like a mighty flame. Many waters cannot quench love; rivers cannot wash it away. If one were to give all the wealth of his house for love, it would be utterly scorned.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3

    7월 10일(금)
    이사야 / 메시야아적 예언자(구원하시는 하나님)
    요절 / 이사야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Surely God is my salvation; I will trust and not be afraid. The LORD,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song; he has become my salvation.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4

    7월 11일(토)
    예레미야 / 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한 취후의 노력(심판하시는 하나님)
    요절 /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This is what the LORD says: "When seventy years are completed for Babylon, I will come to you and fulfill my gracious promise to bring you back to this place.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5

    7월 13일(월)
    예레미야애가 : 예루살렘의 황폐에 대한 장송가
    요절 / 예레미야애가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For he does not willingly bring affliction or grief to the children of men.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6

    7월 14일(화)
    에스겔 : 내가 하나님인줄 알리라
    요절 / 에스겔 36: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7

    7월 15일(수)
    다니엘 : 바벨론에서의 큰 예언자 
    요절 / 다니엘 2:20∼21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8

    7월 16일(목)
    호세아 : 이스라엘의 배교  
    요절 / 호세아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29

    7월 17일(금)
    요엘 : 성령 시대의 예고  
    요절 / 요엘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0

    7월 18일(토)
    아모스 : 정의의 하나님
    요절 / 아모스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5:24)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1

    7월 20일(월)
    오바댜 : 에돔의 파괴
    요절 / 오바댜 1: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2

    7월 21일(화)

    요나 / 니느웨에 대한 자비의 부르심
    요절 : 요나 4:10∼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 니느웨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3

    7월 22일(수) 대서
    미가 : 메시야 탄생지 베들레헴
    요절 /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4

    7월 23일(목)
    나훔 : 니느웨의 파괴
    요절 / 나훔 2: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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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5

    7월 24일(금)
    하박국 :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요절 / 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6

    7월 25일(토)
    스바냐 : 깨끗한 입술의 회복

    요절 / 스바냐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7

    7월 27일(월)

    학개 : 성전 재건
    요절 / 학개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8

    7월 28일(화)

    스가랴 : 성전 재건

    요절 / 스가랴 8:3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카톡으로 배우는 성경 #. 39

    7월 29일(수)

    말라기 :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주는 최후의 메시지  
    요절 /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성경 전체 장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분류 :
    역사서(17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17권)
    대예언서(5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예언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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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습관(누가복음 22:39∼46) / 주일설교 원고(07-26-20) 이승혁목사


    예수님의 습관(習慣) 
    누가복음 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습관이란 헬라어를 "에도스(edos, ἔθος. custom)”라고 합니다.

    "에도스"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전례(典禮)”(눅 2:42) 또는 “규례(規例)”(눅 4:16)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전례(典禮) / 누가복음 2:42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전례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에도스"라고 합니다.
    따라서 전례를 좇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성전 제사 즉 성전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규례(規例) / 누가복음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규례라는 단어도 헬라어로 "에도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규례댜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하셨다는 것은 당시에는 성경을 개인이 소유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귀중하고 비싸기 때문에 회당에 모여서 성경을 읽어주면 듣는 것이 일반적인 풍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회당 예배에 참여하셨고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습관이라는 에도스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습관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첫째는 기도(祈禱)하는 습관
    둘째는 예배(禮拜)하는 습관
    셋째는 성경(聖經)을 읽는 습관

    오늘은 예수님의 거룩한 세 가지 습관 중에서 특별히 "기도하는 습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하는 습관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왜 기도하셨을까?"

    기독교 신앙의 대상이란 하나님을 "삼위일체(三位一體)" 라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은 하나라는 아주 특별한 교리를 말합니다.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기도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도하셨을까요?

    42절,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힘들어서 기도하셨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의미가 있었을까요?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빌립보서 2:6∼8 말씀을 소개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분은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자기를 비어(ἐκένωσεν) - 케노오(2758, kenoo,  κενόω) to empty
    리필(refill)이란 영어 단어를 사용할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음식점에 가면 커피와 물 또는 음료수를 무제한 제공합니다.
    내가 마시는 것을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계속하여 주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용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때에 어느 화장품 회사에거 용기에 채워서 사용하도록 화장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면 용기 값이 절약될 뿐만 아니라 자원 낭비도 절약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비워지면 나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 수록 자꾸 채워집니다.
    채워지면 채워질 수록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단어가 "케노오" 즉 "비어" 라고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셨을까요?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For you know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though he was rich, yet for your sakes he became poor, so that you through his poverty might become rich.

    첫번째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이유는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채우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므로 무엇을 채우셨습니까?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모든 죄인을 구원의 은혜로 채워주셨습니다.

    어떻게 구원의 은혜로 채우셨습니까?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올라가서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가 없으므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매우 중대한 결정을 하고 모든 백성들이 소유하고 있는 금으로 커다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애급에서 기적같이 탈출했던 히브리 백성들이 모세가 없다는 이유로 어떻게 40일 만에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당시 금송아지는 "비, 천둥, 번개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으로 알려졌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황소신"을 "호통치고 고함을 지르는 자"라는 뜻을 갖는 "바알(Baal)" 이라고 불렀으며 황소는 "폭풍의 신" 이며 "다산의 신" 으로 숭배 대상이었습니다.

    히브리 백성처럼 우리도 눈에 무엇이 보여야만 안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십계명의 두 돌비를 받아 산에서 내려올 때 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주위에서 춤을 추며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어긋난 행동을 보며 이런 망령된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을 철저하게 제거했습니다. 그 결과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무려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금송아지를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든 후에 금가루를 물에 풀어 모든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금순금가루를 물에 풀어넣었더니 물의 색갈이 붉은 색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과학자들이 연구하여 발표한 예수의 피 라는 책에서 밝혀진 내용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그 피에 의해서 용서를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히브리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스데반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사도 바울이 사울 이라는 이름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앞장서서 핍박할 때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사울이란 열성적인 바리새인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 죽는 처참한 현장에서 스데반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태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셨던 예수님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심문을 받은 후에 유대인들의 간절한 소원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일곱 번 말씀하셨는데 이 기도는 네 번째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미움의 대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직 내 기도가 채워지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일곱 번이란 율법에서 세 번 용서하라고 규정한 것의 두 배가 되는 용서를 말합니다.
    율법보다 더 많이 용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 즉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것들이 남아 있다면 나의 기도가 용서할 수 있는 사랑으로 채워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안에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채워질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나의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우선 그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채워진 후에는 계속하여 부족한 것들을 기도하지 말고 다음 기도로 올라가야 합니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이유는
    믿음의 부요한 자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믿음의 부요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물질의 부자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부자는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부자는 예수님께로부터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
    께서 길을 가실때  두 맹인이 따라오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소리쳤습니다.
    예수께서 맹인들에게 나아오거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맹인들은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According to your faith will it be done to you!

    예수
    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가나안 여자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예수
    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
    여자
    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예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말하기를 "주여 옳소이다. 그렇지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가나안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었는데 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까?
    자기를 비워 종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채워야 하므로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을 기도하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디도서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who want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을 내 기준에 따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죄가 될까요?
    아니면 죄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겠기에 기도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According to your faith be it unto you!


    본문 3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습관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습관(習慣)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로 좇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 돌 던질만큼의 거리를 두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때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기도하는 힘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도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에게 갔을 때 제자들은 슬픔을 인하여 잠들었습니다.
    잠든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우리 몸에 익숙해지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제가 생각할 때에 대략 3만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3년 6개월이라고 합니다.
    3년 6개월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365일X3년=1,095일+182,5일=1,277.5일X24시간=30,660시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켰던 기간을 대략 3만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로 세우기 위한 과정을 3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것과 같은 거룩한 습관이 우리들의 몸에 익숙해지려면 3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본문에 습관(습(習慣))이란 헬라어는 "에도스(edos, ἔθος. custom)”라고 합니다.
    "에도스"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전례(典禮)”(눅 2:42) 또는 “규례(規例)”(눅 4:16) 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2:42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누가복음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은 기도하는 것 이외에도 습관적으로 성전을 찾았고,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었습니다.
    기도와 말씀과 예배하는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이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습관적으로 기도하셨고, 성경을 읽었고,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예배하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 성경을 읽었을까요?

    이와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신 것들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기도하라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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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실 때 네 가지 특별한 습관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습관
    둘째는 전도하는 습관
    셋째는 말씀을 읽는 습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라고 합니다.
    같은 저자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특징을 두 단어로 설명한다면 “성령”과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제사장 “사가랴”는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할 때 모든 백성은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했다고 소개합니다(누가복음 1:9∼10).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다락에 모여 사도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합니다(사도행전 1:13∼14).

    누가복음에서 천사가 “사가랴”에게 말하기를 네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누가복음 1:15).

    사도행전에서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2: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도와 성령으로 시작하는 내용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서에서도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누가복음에서는 더욱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을까?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에 따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하나님에게 기도하셨을까요?

    설교를 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에 대한 오늘의 설교와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요성서학당 #.7 에고 에이미(내가 그니라) 요한복음 18:5 / 하나님의 이름


    에고 에이미(내가 그니라) 요한복음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Jesus of Nazareth, they replied. I am he, Jesus said. And Judas the traitor was standing there with them.   

    “내가 그니라”(I am he)
    헬라어 -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ego eimi)”  
    ἐγώ(1473. egó) ; 인칭대명사, 영어의 아이(I)
    εἰμί(1510. eimi) ; 동사, I am, I exist     
    히브리어 - “에히야(אֶֽהְיֶ֑ה) 에쉘(אֲשֶׁ֣ר) 에히야(אֶֽהְיֶ֑ה)”

    요한복음 18:1∼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우리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오래 동안 성경을 읽었고 설교를 들었으며 성경공부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한 것이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이 오늘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기도하셨던 장소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대한 말씀을 복음서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마가복음 14: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누가복음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겟세마네 또는 감람산이라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곳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요한복음에서는 겟세마네 또는 감람산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기드론 시내 건너편이라고 그곳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요한복음에서는 기드론 시내 건너편이라고 하셨을까?

    요한복음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Jesus of Nazareth," they replied. "I am he," Jesus said. (And Judas the traitor was standing there with them.

    "내가 그니라"(I am he)
    헬라어 성경 -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ἐγώ(1473. egó) ; 인칭대명사, 영어의 아이(I)
    εἰμί(1510. eimi) ; 동사, I am, I exist     
    히브리어 - 에히야 에쉘 에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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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드론(Gidron) - 암흑, 백향목의 시내

    예루살렘성벽과 감람산 사이에 있는 이 골짜기는 약 5km에 걸쳐있다.

    1.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이 시내를 건넜다(삼하 15:23)

    온 땅 사람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로 향하니라.

    30절,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2. 아사와 히스기야는 우상을 이 시내에서 불살랐다(왕상 15:13, 왕하 23:6)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3. 예수님이 겟세마네와 베다니를 다니시느라고 자주 이 시내를 건넜다(요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 거기 동산이 있는데(1절) :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하여 감람산과 성전산 중간을 흘러서 사해로 들어간다.
    기드론의 뜻은 ‘암흑’, ‘백향목의 시내’로서 골짜기의 무성한 나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을 가리키는데, ‘겟세마네’는 기름 짠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감람나무가 많아 그 열매의 기름을 짰을 것이다.

    "여호사밧의 골짜기" 라고도 하는 기드론 골짜기는 성경에 12번 정도 나오는데, 시내, 골짜기, 와디 등으로 소개된다.
    오늘날의 지형은 과거보다 3~12m 정도 높아져 있다.
    기드론 골짜기는 천연 요새와 같은 지형이다.

    '여호사밧 골짜기', '브라가 골짜기', '판결의 골짜기' 등과 어우러지기도 하는데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 북서쪽의 전망산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성과 감람산을 가로지른다.
    성 동문을 지나 성전에 들어갈 때에나 겟세마네 동산이나 감람산으로 올라 기도할 때에나, 또 배다니 나사로의 집으로 갈 때에도 매번 이 계곡을 건너셨다.
    훗날 부활을 위한 최후의 심판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해서인지 사후에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거리면 힌놈의 골짜기와 맞닿는 기드론 골짜기에 이른다.
    오늘날은 아랍인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감람산까지 이동하면 걸어서 10~15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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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에 나타난 나는 ∼이다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ego eimi)

    요한복음의 공관 복음서와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집중한다. 일곱 가지의 기적이나 다른 복음서에 비해 과하게 많은 설교 등은 이것을 반영한다. 또한 신학적 표현 중의 하나님 ‘나는 나다’(에고 에이미)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정확하게 ‘나는~이다’ 형태를 띤 구절은 일곱 번 사용된다.

    Ⅰ.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직후에 하신 말씀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고대 이스라엘의 광야시절에 비유될 수 있다. 광야에 식탁을 베풀 수 있을까?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응답하신다. 요한복음은 주리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 뒤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반석의 생수 사건을 연상시키는 은유적 표현을 덧붙이신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정확하게 사십 년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광야의 떡과 예수님 자신의 ‘떡’과 비교되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며, 먹는 자는 영적으로 주리지 않을 것이다. 즉 영생을 얻을 것이다.

    Ⅱ.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온 후에 주어진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다그치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고, 땅에 글을 쓰신다. 다시 재촉하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나이든 사람으로부터 시작 젊은이까지 모두 떠난다. 여자 외에 아무도 없자 여자에게 묻는 ‘너는 정죄한 사람이 있느냐?’ 그러신 후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신다. 그리고 이 말씀이 주어진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생명과 진리, 하나님의 영광으로 비유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상의’ 라는 표현이다. 세상은 예수님의 사역의 장소이며, 구원할 타락한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κόσμος)을 사랑하신다. 세상은 악한 자들의 소굴이며, 사단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세상(κόσμος)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Οὕτως γὰρ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Nestle 1904)

    ‘세상의’는 ‘세상에서’ 또는 ‘세상을’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과 분리된 존재가 아닌, 세상에 있고, 세상을 위한 존재인 것을 드러내신다. 

    Ⅲ. 나는 문이다(10:7, 9)
    ἐγώ εἰμι ἡ θύρα τῶν προβάτων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문은 출입구다. 또한 부여된 자격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문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제한된 사람, 출입이 허가된 존재들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시다. 즉 양들이 출입하는 곳이다. 양이 아닌 다른 동물은 들어갈 수 없다. 모든 양도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이다. 그것은 주인의 목소리로 구분될 것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 자는 그 문으로 들어갈 것이나, 알지 못하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다음 구절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간 결과에 대한 것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9∼10)

    예수님은 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가를 설명하신다. 먼저는 ‘구원’을 얻는다. 문은 구원의 문이다. 둘째는 ‘꼴’ 즉 양식을 얻는다. 먹을 것이 풍부하다. 이 부분은 문인 동시에 생명의 떡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세 번째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Ⅳ. 나는 선한 목자라(10:11)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직역하면, '나는 이다. 그 목자 그 선한' 

    목자는 양들을 돌보는 사람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목자로 소개함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는 그러낸다. 선한 목자는 삯꾼 목자와 다르고, 강도와 반대된다. 당대 종교지도자들은 겉으로는 목자였지만 강도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제사를 빌미로 백성들의 재물을 탐했고, 과부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오히려 양들을 위해 존재한다. 목숨을 바치고, 꼴을 준다.

    여기서 선한(καλὸς)이란 단어는 ‘선하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유(Rieu)는 ‘나는 아름다운 목자다’ 라고 번역하도록 권유한다. 요한이 말하는 ‘선한’이란 말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로마서 7:16에서는 ‘율법이 선하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1:8에서는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율법은 선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4:6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좋은’이란 단어로 번역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좋은 교훈’을 자신이 가르치는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다. 

    마태복음 13:24로 넘어가면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농부가 나온다. 그가 뿌리는 씨앗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8:8에서 ‘더 낫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롬 7:16 νόμῳ ὅτι καλός
    딤전 1:8 δὲ ὅτι καλὸς ὁ νόμος
    딤전 4:6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καλὸς ἔσῃ διάκονος

    영어 성경은 칼로스(καλός)를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beautiful, as an outward sign of the inward good, noble, honorable character; good, worthy, honorable, noble, and seen to be so.) 이러한 의미를 볼 때 ‘좋은’이란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완전한 상태이거나, 흠이 없고, 일반적인 어떤 상태보다 월등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은 양자 삼으신다. 양들은 아무런 힘이 없고, 방어할 수도 없다. 그들은 느리고, 둔하다. 목자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동물들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관계는 이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포용으로 가능하다.

    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Ἐγώ εἰμι ἡ ἀνάστασις καὶ ἡ ζωή·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 선언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나사로의 집에 갔을 때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다가 말한다. 마지막 날에 대한 부활의 확신은 있지만,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말했던 것이다. 마르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자신을 부활과 생명이라고 소개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부활이다. 그리고 생명이다’라는 표현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선언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다. 부활과 생명을 하나로 보며, 예수님을 진정한 생명이라고 재선언한다.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11:4은 생명과 빛이 연결된다. 이제 부활과 연결되고, 부활은 새로운 생명이다. 이로서 생명의 정체가 드러나며,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영원한 능력이 완전하게 드러난다. 죽음까지 정복하신 예수님이시다.

    Ⅵ.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강론이 시작되는 곳이다. 공관복음서와 다르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강론을 길게 넣는다. 도마는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모른다고 투덜거린다. 의심이 많았던 도마는 무엇인가 확실하게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 때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11장에서 부활과 생명이 만났다면, 14장에서는 생명이 길과 진리와 만난다. 세 개의 정의에 모두 관사(ἡ)가 붙어 있다. ‘내가 그 길이고, 그 진리고, 그 생명이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예수님은 여러 개의 길 중의 하나가 아니다. 바로 ‘그 길’이다. 길은 곧 진리와 만나, 예수님의 배타성과 진리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 진리는 다시 생명으로 나아간다. 

    Ⅶ.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5)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곳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도의 관계를 드러낸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절). 예수님은 농부가 기르는 포도나무다(1, 5절). 성도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가지’라고 말씀하신다(5절). 성도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포도나무이시다.

    요한복음 15:1
    내가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gardener.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 I am the vine  
    헬라어 원문은 ‘참’에 관사(ἡ)가 있어, 포도나무와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의 동사를 취함으로 앞선 문장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참’이라는 표현은 다른 거짓된 것과 구분된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거짓된 포도나무, 즉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다른 것과 구분하고 차별화 시킨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에 나타난 포도나무는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돌포도나무다. 그들은 거짓되고, 악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빈약하다.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그릇된 포도나무다.

    ‘안에 있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원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붙어있다. 

    안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계명에 순종하는 삶이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열매 없는 가지(성도)를 잘라 낸다는 말은 종말론적 심판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선택된 백성이 버려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요한은 붙어 있다는 의미는 겉으로 드러난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 듯하다. 즉 교회에 있으나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아니라면 그는 심판의 때에 제해질 것이다. 그가 진정한 제자인지는 열매가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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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고 충돌하는 게 이들 종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이슬람 신자들은 예수님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그런데 이슬람교 신자들이 예수님을 존경한다는 말이 있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더라.
    이슬람교를 믿는 신자를 무슬림이라 부른다.
    무슬림은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낸 사람’으로 생각한다.”
      뜻 밖이다. 그럼 무슬림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무슬림이 예수님을 존경하긴 하는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고 했다. 복잡하다.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다. 둘은 엄연히 물과 기름 아닌가.  
      
    “하나씩 짚어보자.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권에서는 ‘하느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GOD(갓)’이라고 부른다. 한국말로는 어떻게 부르나. 개신교는 ‘하나님’, 가톨릭은 ‘하느님’이라 부른다. 그럼 아랍어로는 하느님을 뭐라고 부르나. ‘알라’다.”
     

    아랍권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지 않나. 그들은 ‘하느님(하나님)’을 뭐라고 부르나.
      
    “맞다. 중동 지역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다. 이집트에도 콥트 기독교인 있다. 그들이 하느님을 부를 때 ‘알라’라고 부른다. 그들이 보는 아랍어 기독교 성경에도 하느님은 ‘알라’라고 적혀 있다. 이슬람교 신자도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르고, 아랍의 기독교인도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그러니 하느님과 알라는 서로 다른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하나의 신을 섬기는 건가.  
      
    “이들 세 종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세 개의 가지와 같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면 심기가 불편한 기독교 신자도 있지 싶다.”
     
    왜 그런가.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른다. 사람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좀 전에는 이슬람교 신자들도 예수님을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슬림은 예수님을 선지자로서 존경한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 노아, 모세, 아브라함, 다윗처럼 말이다. 예수님 역시 그런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구세주, 다시 말해 메시아로는 보질 않는다. 이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결정적 차이다.”
      
    이슬람교는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질 않나.
      
    “이슬람교에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굳이 아들을 따로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왜 그럴까. 하느님이 직접 하면 되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세상을 직접 구원하면 되지, 굳이 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건 좀 따져봐야겠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인간에게 원죄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원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원죄를 대신 없애주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면, 인간의 원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기독교에는 원죄 개념이 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날 때부터 원죄를 안고서 태어난다. 반면 이슬람교에는 원죄 개념이 없다. 가령 이슬람교에서 갓난아기들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점점 자라면서 에고가 생기고, 죄의식도 덩달아 생긴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받지만, 이슬람교의 죄사함은 나와 하느님의 직통 관계다. 중간에 누구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은 받아들이기 힘들겠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이유로 이슬람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많다. ‘예수’라는 구원의 징검다리가 없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기독교는 반드시 대전을 거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 대전이 예수 그리스도다. ‘대전을 거치지 않고서는 부산에 갈 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교리 체계가 다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바로 가면 된다고 믿는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된다고 믿는다. 나와 하느님의 직통 관계니까.”
     
    그럼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으로만 보는 건가.
      
    “그건 또 아니다. 이슬람교도 예수님이 처녀의 몸,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걸 받아들인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기적)들도 인정한다. 그러니까 비범한 선지자로 보는 거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 역시 그런 선지자로 본다. 무함마드를 구세주로 보지 않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어떻게 다른가.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이게 유대교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아들’이 등장한다. 삼위일체론을 통해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더 닮았다.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이슬람교다.”  
     

     
    그럼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나.  
      
    “한국 기독교는 유대교를 사촌 정도로 생각한다. 가까운 친인척의 느낌이다. 그런데 정작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구세주로 보지도 않고, 선지자로 보지도 않는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 성경이다. 원래부터  ‘바이블(성경)’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기독교가 생기면서 유대교의 경전을 ‘구약’이라 고쳐 부르고, 자신들의 경전을 ‘신약’이라 불렀다. 이런 명칭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은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더라.”
      
    이슬람을 테러와 폭력의 종교로 아는 이들도 꽤 많다. 어떻게 보나.  
      
    “불교에도 어떤가. 착한 불교 신자가 있고, 나쁜 불교 신자도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착한 기독교인이 있고, 나쁜 기독교인도 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착한 무슬림이 있고, 나쁜 무슬림이 있다.
    제가 만난 무슬림들은 테러와 폭력을 일삼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누구보다 싫어하더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무슬림 전체로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테러나 폭력을 일삼기에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 때문에 모든 이슬람이 그런 것처럼 비치는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출처: 중앙일보]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믿는다”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