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훼퍼목사






독일의 설교가요 신학자였던 본 훼퍼 목사는 히틀러의 독재 정권 앞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몸소 보여준 참신앙인이었다.

16세때 이미 신학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깊은 사고력과 성찰력까지도 겸비해 그의 나이 20세 때 이미 신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당대에 뛰어난 학자였다. 

후대에 그를 평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본 훼퍼를 존경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의 타고난 능력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한평생을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한순간 한순간을 아낌없이 삶을 살았다는 점에 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본 훼퍼는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강단에서, 교회에서, 방송에서 쉼 없이 외치며 선포했다. 이 때문에 그는 히틀러 정권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연금되며, 감옥에까지 갇히는 고초를 당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아까워 하던 미국 유니온신학교의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에 의해 1939년 6월 12일에 초대되어 교환교수로 미국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히틀러가 그해 9월 1일에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키자 본 훼퍼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동료들과 독일 백성들이 미치광이 히틀러 때문에 전쟁의 노예가 되고, 살상과 피흘림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다시 독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이 때 그의 독일행을 만류하며 미국에 남아 살 것을 권했던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에게 본 훼퍼는 이런 편지를 남기게 된다.

나는 독일의 역사에서 어려운 시기를 독일의 크리스천과 함께 보내야겠습니다.
만일 내가 나의 동료들과 같이 이 고난의 시기를 보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난 후에 독일 크리스천의 재건에 동참할 권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 훼퍼는 그 독일에서 주님이 자신을 부르신 그 목적대로 히틀러를 향하여 준엄한 신앙의 양심을 선포하다가 히틀러가 자살하기 20일 전인 1945년 4월 9일 39살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당한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탁월한 학자로서 자신의 뜻과 명예를 얼마든지 펼칠 수 있었던 본 훼퍼가 이런 삶을 살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내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신약의 초대교회 시절에 비로소 안디옥에 살던 성도들을 향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된 것은 저들의 모습 속에 무엇인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믿는다고 하는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남들이 아무리 상대방을 속이고 실속을 챙기는 그 순간에도 결코 남의 것을 취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손해보고,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는 그 이상한 모습 때문에 드디어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될 때에는 그리스도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본 훼퍼의 삶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 훼퍼는 독일의 격변기에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았던 용기있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 틀림없다.

2020년은 종교개혁 503주년을 맞이한다.
1517년 마틴 루터가 중세의 교회를 향하여 외쳤던 95개조 반박문의 핵심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이 단순한 구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모습을 위해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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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이해



죽음은 끝이 아닌 영원한 삶의 시작
본회퍼 목사의 고백 담긴 CCM ‘선한 능력’



CCM 워십팀 위러브(WELOVE)가 최근 앨범 ‘위러브 리터치드(WELOVE Retouched)’를 발표했다.
앨범에는 ‘내 마음을 가득채운’ ‘나를 향한 주의 사랑’ 등 총 5곡이 수록됐다.
이중 주제곡인 ‘선한 능력’에 담긴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간증이 주목받고 있다.

위러브는 “작가(가사)에 대한 저작권은 보호 기간이 만료됐으나 국내 작가에 의해 한글로 번안됐다”며
“작곡(멜로디)에 대한 권리는 유효함에 따라 독일 회사 ABAKUS(Siegfried Fietz 소속사)와 독일 저작권협회 GEMA가
한국의 저작권 대리중개사인 카이오스와 1년의 소통 끝에 저작물 사용승인을 받았다”고 23일 밝혔다.

작사가인 본회퍼 목사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 나치운동가다.
1933년 독일교회는 집권한 나치의 독재에 대해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했다.
본회퍼 목사는 이 같은 현실을 한탄하며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독일교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45년 4월 9일 39세 나이로 새벽에 처형됐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본회퍼 목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과 약혼녀에게 보낸 시가 ‘선한 능력으로’이다.
그는 유언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은 ‘디트리히 본회퍼–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위러브는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능력”이라며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이 우릴 이끄신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곡이 시대를 넘어선 우리의 고백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선한 능력으로
작사 : Dietrich Bonhoeffer
작곡 : Siegfried Fietz
노래 : WELOVE

1.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2.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3.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4.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후렴.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믿음이란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하박국 2:4) 수요성서학당 #. 19(10-21-20)

수요성서학당 # 19(10-21-20)

믿음이란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NIV)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KJV) Behold, his soul which is lifted up is not upright in him: but the just shall live by his faith.
(NASB) Behold, as for the proud one, His soul is not right within him;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소개하기 전에 최근 제가 경험했던 한 사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어느 의사는 방문하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의사가 이런 기독교 용어를 자주 사용하면 마치 믿음이 좋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가족 중 누가 자기 집 근처에 약국을 시작했는데 진찰을 받은 환자들의 약 처방전을 동의도 없이 그 약국으로 보냅니다.
원래 약국은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이 D약국에서 60% 정도 라고 합니다.
결국은 가족이 운영하는 약국을 위하여 이미 지정된 약국을 마음대로 변경한 것입니다.
마치 믿음이 좋은 것처럼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일을 처리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가?
과연 이런 것이 믿음일까?

결론부터 소개합니다.

" 믿음이란 기준을 바르게 정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성경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1st. 하박국 2:4b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믿음"이란 단어에 "" 라는 정관사가 있습니다.
"그" 라는 정관사가 사용될 때는 "믿음"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일부분을 말합니다.
제한된 믿음을 말합니다.

킹제임스 한글 성경에서는 "그 믿음"을 "자기 믿음"이라고 번역합니다.
믿음의 기준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믿음의 기준이 사람이 될 때부터 이미 복음에서 어긋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믿음을 히브리어로 "에무나" 라고 합니다.
에무나의 뜻은 "진실" "성실"입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진실하게 살리라" 또는 "성실하게 살리라"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방법도 진실해야 합니다.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믿음의 기준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따라야 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익과 유익을 따라 살아갈 때는 이미 복음의 의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를 남 유다북 이스라엘로 구분합니다.
남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오바댜, 요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라고 하겠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요나, 아모스, 호세아" 라고 하겠습니다.

하박국서의 특징지혜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특이한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시기오놋(3:1)" "영장(3:19)"과 같은 전문 음악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레위 자손으로 측정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왜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하박국 선지자의 대답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좁은 생각과 의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는 나타날 것이고 실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 대통령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바이든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현 대통령 문재인과 여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우파 정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언론에서 국민들에게 장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사법부에서는 잘못된 것을 법대로 판단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도록 법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 심지어 치안을 맡은 경찰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부까지도 때로는 판단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제는 기도할 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물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믿음의 정의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믿음은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 이라고 서두에 소개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발생했던 문명들이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 무너지고 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때문에 무너지고 망했다고 강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문명고 한국의 문명도 무너질 때는 외부의 침략적인 전쟁보다는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의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25%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정도라고 한다면 부정과 부패가 세상을 주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북한과 남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체재를 갖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론 체재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주의라고 하겠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한 마디로 "공감(共感)"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표기한다면 Sympathy, Empathy 라고 하겠습니다.
공감대(共感帶)를 Bond of Sympathy
공감이란 단어의 뜻은
1. 다른 사람의 의견(意見)이나 주장(主張)에 대하여 자기(自己)도 똑같이 느끼는 것.
2.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자기도 같은 감정을 같는 것.

예를 들면 아직도 남한에서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자기 집을 온갖 쓰레기로 채워놓고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기관의 사회복지사와 정신과 의사를 비롯하여 동네 부녀회와 청소 업체에서 발벗고 나서 그 사람은 병원으로 안내하여 검사를 받게 하고 입원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모두가 힘을 모아 쓰레기가 선더미처럼 쌓였던 집을 깨끗하게 청조하고 정리한 후 심지어 새로운 가구까지 들여놓고 다시는 이웃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감이란 것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이나 남한 모두 먼저 주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워야 할 때라고 하겠습니다.


2nd. 데살로니가후서 3:2b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 For all men have not faith.)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습니다.
특히 불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세계삼대 종교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분류이지만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분류에 에 따라 신앙생활을 할 경우의 믿음과 생명으로 믿는 것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생명의 믿음이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먼저 생각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3rd. 마태복음 5:26-30

공중
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란 첫째는 도덕, 둘째는 상식, 셋째는 양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산상복음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 17을 다락방 복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기준을 바르게 찾고 정하려면 먼저 산상복음과 다락방 복음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4th. 고린도전서 12:9a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To another faith by the same Spirit.)

기독교를 생명으로 믿는 성도들은 믿음을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은사로 받은 믿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많은 교회이었습니다.
그런데 은사를 받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분쟁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 당파를 만들었습니다(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방언의 종류에 따라 분쟁했습니다(어떤 방언을 하느냐?)

- 김종수목사님(태능 영세교회), 천국 방언(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 왜 방언이 필요한가?
  (어느 농촌교회의 목회자와 가정부의 아들)

5th. 누가복음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And the Lord said, If ye had faith as a grain of mustard seed, ye might say unto this sycamine tree, Be thou plucked up by the root, and be thou planted in the sea; and it should obey you.)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라고 하였는데 겨자씨는 모든 씨앗들 중에서 가장 작은 씨앗을 말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아마 채송화 씨앗처럼 아주 작은 씨앗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겨자씨 한 알을 방바닥에 떨어트린다면 마치 먼지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씨앗만한 믿음이 있다면 뽕나무가 뿌리채 뽑혀 바다에 던져질 수 있다고 합니다.

6th. 디모데전서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Holding on to faith and a good conscience. Some have rejected these and so have shipwrecked their faith).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양심을 버리면 그 믿음은 파선한 믿음입니다.

7th. 야고보서 2:26

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죽은 믿음이란 결국 믿음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죽은 믿음은 무엇일까요?

8th. 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Receiving the end of your faith, even the salvation of your souls.)

죽은 믿음이란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하박국서소선지서에 속한 책으로 3장으로 구성된 비교적 내용이 짧은 말씀입니다.
하박국이란 이름의 뜻은 "포옹하다" 라고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를 남 유다북 이스라엘로 구분합니다.
남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오바댜, 요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라고 하겠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요나, 아모스, 호세아" 라고 하겠습니다.

하박국서의 특징지혜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특이한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시기오놋(3:1)" "영장(3:19)"과 같은 전문 음악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레위 자손으로 측정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왜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하박국 선지자의 대답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좁은 생각과 의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는 나타날 것이고 실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 대통령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바이든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현 대통령 문재인과 여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우파 정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언론에서 국민들에게 장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사법부에서는 잘못된 것을 법대로 판단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도록 법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 심지어 치안을 맡은 경찰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부까지도 때로는 판단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제는 기도할 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물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믿음의 정의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믿음은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 이라고 서두에 소개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발생했던 문명들이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 무너지고 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때문에 무너지고 망했다고 강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문명고 한국의 문명도 무너질 때는 외부의 침략적인 전쟁보다는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의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25%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정도라고 한다면 부정과 부패가 세상을 주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북한과 남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체재를 갖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론 체재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주의라고 하겠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한 마디로 "공감(共感)"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표기한다면 Sympathy, Empathy 라고 하겠습니다.
공감대(共感帶)를 Bond of Sympathy
공감이란 단어의 뜻은
1. 다른 사람의 의견(意見)이나 주장(主張)에 대하여 자기(自己)도 똑같이 느끼는 것.
2.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자기도 같은 감정을 같는 것.

예를 들면 아직도 남한에서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자기 집을 온갖 쓰레기로 채워놓고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기관의 사회복지사와 정신과 의사를 비롯하여 동네 부녀회와 청소 업체에서 발벗고 나서 그 사람은 병원으로 안내하여 검사를 받게 하고 입원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모두가 힘을 모아 쓰레기가 선더미처럼 쌓였던 집을 깨끗하게 청조하고 정리한 후 심지어 새로운 가구까지 들여놓고 다시는 이웃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감이란 것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이나 남한 모두 먼저 주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워야 할 때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파트리스교회가 후원하는 기관들의 후원을 멈추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후원을 받는 기관의 책임자의 말이 흔들렸던 제 마음과 생각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도록 멈추게 했습니다.
"너무 많은 후원자들이 더 이상 후원을 할 수 없다"며 후원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19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는데 파트리스교회마저 끊어야 하겠는가?
정말 끊어여 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후원을 계속해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적은 믿음과 큰 믿음

믿음이 자은 자들은 누구인가?

첫째,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힌 자(마태복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적은(a little faith)

둘째, 문제에 당면했을 때, 무서워 하는 사람(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셋째, 두려워하는 사람(마태복음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믿음이 큰 사람은 누구인가?

첫째,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 이만한 믿음 (Great Faith)

둘째, 주인을 아는 사람(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 손에 손톱이 있습니다. 발에는 발톱이 있습니다.
손톱과 발톱이 누구 것인지 아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톱과 발톱이 내 손과 내 발에 있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입니다.
왜 착각이냐 하면 내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톱과 발톱이 내 말을 듣습니까?
내 삶의 내 생명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내 삶의 내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그럼 누가 주인입니까?

개들의 주인이 있는 것처럼
인생의 주인도 있습니다.
그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설득하는 믿음을 보며 그과부가  큰믿음을 가졌다고 칭찬하면서 그딸을 고쳐 주었다 (마 15:21-28)

(예화) 바람 몸살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바람 몸살이란 나무를 옮겨서 이식할 때 옮겨진 곳에서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려면 악력(握力)이 4배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악력(握力, 쥘 握. 힘 力. Grip)이란 "물건을 쥐는 힘"을 말합니다.

성경적 믿음이 내 삶에 뿌리를 내리려면 얼마의 힘이 필요할까요?
나무가 4배의 악력이 필요하다면 사람은 그 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대략 10배가 더 필요하다고 환산하면 약 40배의 힘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적인 믿음을 내 삶에 적용하려면 성령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은 악력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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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음과 믿음의 결핍

믿음에 반대되는 것은 믿지 않음 즉 불신(不信)이라고 하겠다.
불신이란 믿음의 결핍 현상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예수님도 기적을 일으킬 수없었다(마가복음 6:1-6).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요셉유다시몬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그의 부활을 본 증인들의 말을 믿지않은 그의 제자들의 믿음을 결핍했다고 꾸짖기도 하였다(마가복음 16:14).

   14.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믿음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완악한 증거라고 하겠다.


약한 믿음과 강한 믿음(로마서 14:1-23)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이는 신앙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많아서 분별력이 있어서 현실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이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약한 믿음을 가졌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해서 처신할 것을 권하는 의도가 있다.   

믿음은 바뀐다

성경이 제시하는 믿음은 바뀐다.
일시적으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누가복음 8:13).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또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제자들이 자신을의 믿음을 증가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과
예수님이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하는 것(누가복음 17:5-6)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믿음의 조심성

성경은 믿음이 선별적임을 보여 주면서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곧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 아무거나 다 믿으나 지혜있는자는 행동하기전에 심사숙고 한다는 것이다(잠언 14:15)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정리

믿음은 봄으로, 체험으로, 실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인정하고 의심않는 것뿐만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미리 알지 못했어도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증언이나 말만으로도 생기게 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보는 경우이고 우리 삶에서 겪는 것이다.
어렸을 때, 또 자라면서, 우리는 부모를 비롯해서 많은 권위적인 사람들과 상징들, 선생님들, 정치 사회 지도자들의 교훈, 우리가 읽는 고매한 사상가들의 책들, 전통, 풍습, 언어 등, 문화의 영향에 무의식적으로 믿음의 자세로 대하는 것이다.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천차만별의 자기만의 믿음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곧 “마음으로 꼭 그렇게 인정하거나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각하는”과정에서 무한한 각자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확인해 간다.
“생각하는” 나는 이 믿음이라는 창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믿음을 통해서 일생동안 나의 사고의 틀과 내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믿음에 대해서 기독교의 성경은 훨씬 특정된 의미의 믿음을 정의하고 있으니, 곧 천지 창조자와 그가 보내서 세상에 온 예수에 대한 믿음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곧, 그전능자와 그가 인간에게 그의 사자들을 통해서 인간 역사를 통해서 인류에게 전해 준 모든 교훈과 그 장래에의 약속에 대한 신앙과 신뢰라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관련된 모든 것, 곧 믿음의 결과인 복종의 요구, 행동에의 필연성, 또 모든 선택과 결정이 믿음을 선행해야 한다는 조건의 논리는 결코 신중한 사고와 행동에의 책임을 묻는 데서 성숙을 기대한다.
그러나  참으로 격려적인 것은 신앙은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신앙에 수준이 있는 데, 곧 갓태여난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철이 들고 분별력이 생기고 성숙해지면서 지혜자가 되듯이, 우리의 신앙도 성숙해간다는 것이다.
신앙 정도가 있어서 약한 믿음이 지식을 얻음으로 강한 믿음, 성숙하는 믿음, 큰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이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허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과정은 일생에 걸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믿음에는 첫믿음이 있다.

이것은 시작인 만큼 미약한 것이지만, 이후의 모든 생애를 결정짓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사전 지식이 있던지, 없던지 간에, 믿음은 관계의 시작이냐 아니냐를 결정하게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경우도 그러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데도 관심을 가져 보기로 작정하는 것의 중요성. 이것은 아주 쉬운, 가벼운 정도의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않을 것인가하는 기로에서, 파스칼의 제안은, 하나님이 있다는 가정에 도박하라는 것은, 이런 첫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일단 있다는 쪽을 선택해서 계속 찾다 보면,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음을 본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독교인들이 비난을 받는 경우 그내용은 믿음의 정도, 수준의 문제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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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사람은 그 믿음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성경 /
악인은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므로 살아 남지 못할 것이나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11
다양한 은사들을 소개합니다.

1. 형제
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은사장에서 다양한 은사들을 소개합니다.
은사의 종류를 헤아려 보면 9가지로 소개됩니다.

1. 지혜의 말씀
2. 지식의 말씀
3. 믿음
4. 병 고치는 은사
5. 능력 행함
6. 예언함
7. 영들 분별함
8. 각종 방언 말함
9. 방언들 통역함

다양한 은사들 9가지 중에 네번째 은사를 "믿음" 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4:13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이야기)
어느 가정에서 할머니는 시골에 거주하시며 절에 다니시는 불자(佛者)입니다.
손녀딸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데 서울에 거주하며 교회에 다니는 신자(信者)입니다.
할머니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며 손녀딸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므로 대학에 입학해야 하므로 매일 불공을 드리고 부처님에게 손녀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기도합니다.
손녀딸과 어머니는 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에게 딸을 위하여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불자인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아니면 며느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생각하니 가슴디 답답하여 사찰의 주지 스님을 만나서 집안 사정 이야기를 하며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사찰의 주지 스님께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실력이니 열심히 공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소문난 사찰의 스님을 찾아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그렇게 속이 좁지 않다.
그러니 할머니가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기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이러한 사례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은사라고 합니다(고린도전서 12: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데살로니가후서 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And pray that we may be delivered from wicked and evil men, for not everyone has faith.


믿음이란 기준을 하나님(성경)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동일한 업종의 가게를 운영하는 업주가 있습니다.
한 가게의 업주는 하나님을 향하여 가게가 잘 운영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다른 가게의 업주는 부처님을 향하여 가게가 잘 운영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가게의 업주가 기도하는 것이 응답될까요?

아마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다니는 업주의 가게가 잘 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반면에 절에 다니는 불자들은 부처님을 믿는 업주의 가게가 잘 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마태복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태복음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마태복음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6: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마태복음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마태복음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하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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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대화로 의심의 해답을 찾은 선지자

1. 인적 사항
 (1) 하박국은 '껴안은 자', '매달리는 자'라는 뜻.
 (2) 남유다의 선지자(합 1:1).
 (3) 하박국서 저자.
 (4) 레위 지파 출신의 제사장 또는 성가대원으로 추정(합 3:19) 

2. 시대적 배경
하박국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와 신바벨론 제국의 창건자 나보폴라살(B.C.625-605년)과 메대의 시악사레스(B.C.625-585년)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B.C.612년부터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제1차 침입을 당했던 B.C.605년 사이에 주로 활동한 선지자다.
이 시기에 남유다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의 통치 시대로서 B.C. 586년 바벨론 제국에 의한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이다.

3. 주요 생애

 (1) 출생
 (2) 남 유다의 종교적 도덕적 죄악의 심각성을 인식함  1:3-4
 (3) 남 유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의로 BC 612-605, 1:2-4
 (4) 갈대아로 인한 남유다의 심판에 대한 항변 1:12-2:1
 (5) 하박국서 기록 1:1
 (6) 죽음

4. 성품
 (1) 자기 백성의 죄악 됨을 보고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만큼 진정한 애국심의 소유자(합 1:2-11)
 (2) 이해할 수 없는 신앙문제로 혼자 고민하지 않고 그 문제점을 하나님께 아뢰고 해답을 찾고자 한 것을 볼 때 용기 있고 지혜로운 자(합 1:2; 2:1)
 (3)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에 재차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변을 기다리고 바랄 만큼 매우 진지하고 솔직한 사색가(합 2:1).

 

5. 구속사적 지위
 (1) 구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찬송 중의 하나인 송시(頌詩)를 남긴 선지자(합 3장)
 (2)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위대한 진리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선포한 자(합 2:4) 

6. 평가 및 교훈

 (1) 하박국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끊임없이 일어날 때에 혼자 고민하며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해답을 얻고자 하였고 하나님께만 끈질기게 매달렸다(합 1:2-4).
 오늘 우리도 성도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신앙문제로 심각한 고민과 낙심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주와 역사를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는 줄을 알고 그 분께 매달리는 하박국과 같은 참된 지혜자가 되어야 하겠다(롬 11:33).

 (2) 자기 백성의 범죄 함을 보며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박국처럼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의 범죄 함을 볼 때 안타까움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가? 혹 온 사회에 만연하는 불의함 때문에 오히려 넘어지고 마는 힘없는 자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3) 하박국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증거 한다(합 2:4).
이는 단지 습관적으로 입술로만 외치는 교리적 선언이 결코 아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인생의 고통과 문제를 실제로 체험하고 깊이 상고해 본 결과 가슴 깊은 곳에서 말하는 신앙고백이다. 우리도 각자의 삶 속에서 이같은 신앙고백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하바국

하박국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3장(구약 929장), 56절(구약 23,191절), 670단어(구약 304,901단어), 약 2,500자(구약 약 116만자)로 이루어진다.

하박국서의 히브리어 이름은 ‘하박국( חֲבַקּוּק )'이다.
칠십인역에서 ‘암바쿰(Ἀμβακούμ)'이라고 한다.
불가타에서는 ‘Habacuc’, 영어성경에서는 ‘Habakkuk’, 그리고 중국어성경에서는 ‘哈巴谷書’이라 불린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박국 1장 5절(행 13:41), 2장 3~4절(히 10:37~38), 2장 4절(롬 1:17, 갈 3:11, 히 11:1~12:2)이 인용된다.
사도 바울은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하박국을 인용한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은 오직 이 책의 표제와 시에만 나오며(1:1; 3:1)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하박국은 왜 주님의 정의는 이렇게 악하고 부패한 시대와 사회와 인간들에게 시행되지 않는가 묻는다.
야훼 하나님은 불의한 백성과 왕들은 반드시 벌을 주고 징계할 것이라고 대답해 주신다.
갈대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채찍이 되어 범죄한 유대 민족과 왕들을 벌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하박국은 종교적 세계관의 중심 문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궁극적 대답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이다(하박국 2:4).


역사적 이해

하박국은 이스라엘 역사 구분에서 분열왕국시대라고 한다.
하박국은 갈대아 우르 사람들이 일어난 때인 기원전 7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6세기 초까지 쓰여졌다.
이 때를 고려한다면 어쩌면 하박국예레미야, 스바냐, 나훔, 그리고 요엘 등과 동시대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비평학계 일부에선 갈대아 인들을 깃딤인 곧 헬라인으로 간주하여 극단적으로 늦은 시기로 잡는 사람들도 있다.

갈대아 사람들이 일어난 시대(1:6)를 고려할 때, 이 책의 내적인 증거는 저작 연대에 대한 확고한 시기를 제시해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비평학계는 이러한 자료에 언제나 만족하지는 않았다.

어떤 학자들은 이 책의 보다 이전의 판본이 정말 3장의 시로 끝이 났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는데. 이 시가 현재처럼 이 책의 결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했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구조와 개요

구조는 글의 구성요소를 규명하는 단계, 각 요소의 배열을 분석하는 단계, 구조의 의미를 파악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하박국 장르 이해는 설화, 시, 예언, 신탁 등에 대한 분석이다.

첫 부분은 선지자와 하나님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선지자는 애가의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함으로 시작한다.
악인의 형통에 대한 불평에 대해서 주님은 갈대아인을 통해서 벌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보다 더 큰 불평이 이어진다.
주님께서 악인을 들어서 선민을 치시는 것에 대한 불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장에서 주님은 그 심판의 확실성을 재차 확인하셨다.
3장은 고어체적인 히브리 시로 구성되어 있다.

1. 일반적인 하박국 구조 : 하박국서의 선형 구조

A  최초의 대화(1:2~11)
 a 선지자의 불평(1:2~4)
 b 주님의 응답(1:4~11)

B 두 번째 대화(1:12~2:5)
 a 선지자의 불평(1:12~17)
 b 주님의 응답(2:1~5)

C 압제자들에 대한 저주의 신탁(2:6~10)
 a 노략자가 노략될 것임(2:6~8)
 b 정복자가 수치를 당할 것임(2:9~11)
 c 건축자가 헛됨(2:12~14)
 d 수치가 없는 자가 수치를 당할 것임(2:15~18)
 e 우상 숭배자들이 잠잠할 것임(2:19~20)

D 하박국의 순종의 시(3:1~19)
 a 기도(3:2)
 b 용사이신 하나님의 등장(3:3~15)
 c 믿음으로 사는 선지자(3:16~19)

하박국의 대칭 구조

A 하박국의 첫 번째 불평(1:2~4)
B 야훼의 첫 번째 대답(1:5~11)
C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1;12~17)
D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됨(2:1~5)
C' 두 번째 불평에 대한 주님의 대답(2:6~20)
B' 야훼의 마지막 대답(3:1~5)
A' 첫 번째 불평에 대한 하박국의 마지막 대답(3:16~19)

이 책의 첫 부분(1:2~2:5)은 하나님과 선지자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1:2~4와 1:12~17에서와 같은 애가 양식은 시편의 애가시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시편에서는 보통 이러한 애가시들은 주님께서 그 시편 기자의 불평을 들으시고, 그를 구원하고, 보호하시며 그나 이스라엘의 적들을 심판 하실 것을 확약하시는 주님의 응답으로 이어진다.

하박국은 “왜 악인이 번성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지며, 유다에 힁행하고 있는 악과 불의와 폭력에 대해서 불평했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선지자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되, 이를 위해서 유다의 악보다 더 악한 악을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며, 보다 악한 이들은 더욱 번성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 선지자의 두 번째 불평을 도입하는데(1:12~17)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참아 보실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이 자신들보다 의로운 자들을 집어삼키도록 허락하실 수 있는가(13절)?
그들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그들의 그물을 채우며, 계속해서 사치롭게 살 것인가(16~17)? 에 대한 주님의 대답을 보려고 파숫군처럼 인내하며 기다린다(2:1).

2. 돌시의 하박국 구조 : 돌시는 에스델 구조를 7중 대칭구조로 분석한다. 돌시의 하박국 구조

A 1:2~4 하박국의 첫 번째 불평
B 1:5~11 야훼의 첫 번째 응답
C 1:12~17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
D 2:1~5 기다리라는 권고
C′ 2:6~20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에 대한 야훼의 응답
B′ 3:1~15 야훼의 마지막 응답
A′ 3:16~19 야훼의 첫 번째 응답에 대한 깨달음

돌시는 하박국을 7중 대칭구조로 보았다.
이 구조에서는 핵심부분(D, 2:1~5)이 ‘기다리라는 권고’를 한다.

신학적 이해

하박국은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다.
내적으로는 부패하였으며, 신흥하는 바빌론의 세력으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선지자는 이런 정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시다고 불평을 하고 있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나아가서 온 땅에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했다.
결국 하박국은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며,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야훼를 찬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하박국은 내적인 부패로 썩어 있었으며 새롭게 부각하는 바빌론의 세력이 곧 성전과 도성을 멸망시킬 운명에 있는, 역사적 마지막 시기의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지만, 선지자의 시각으로는 이러한 이중의 악이 힁행하는 가운데 주님은 활동하시지 않고 무관심 하신 것처럼 보였다.

많은 학자들은 하박국의 불평들을 욥기와 비교 했는데, 욥처럼 이 선지자도 아무리 현상이 반대로 된 것처럼 보이고 아무리 정황이 어려워 보여도 계속해서 주님의 약속들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온 땅의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함을 배웠다.

또한 믿음으로 사는 법과,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야훼를 찬양하는 법까지 배웠다.
이후 수백년 후에 다시 악과 불의가 전에 자주 그랬던 것처럼 흥왕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은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상징되는 성전이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조롱하였지만, 이 선지자는 주님을 신뢰했으며(마태복음 27:43: 히브리서 10:35상),
주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서 그를 변호하셨다(로마서 1:4).
예수의 부활은 멀리 계신 게 아니며, 악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 자신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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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노예 매매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집에 죠(Joe)라는 노예있었는데 일을 잘했다.
그래서 주인은 죠를 사랑했고, 무엇을 하든지 의논을 해서 했다.

어느 날 주인은 몇 명의 노예를 사기 위해서 노예 시장을 죠와 같이 가게 되었는데 상품처럼 진열된 많은 노예 중에 늙고 야윈 검둥이 노예가 하나 있었다.

"죠"는 잠시 바라보다 주인에게 저 늙은 노예를 사라고 했다.
그때 주인이 아니 살찌고 젊은 노예가 많은데 왜 늙은 것을 사야 하느냐고 하면서 거절을 하였다.
그러나 "죠"는 계속 우겨 결국은 사오게 되었는데 "죠"는 정성스럽게 잘 돌봐 주었다.

이것을 주인은 먼 거리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느 날 "죠"를 불러 너는 왜 늙은 노에를 사라고 했으며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돌봐주는데, 혹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죠"는 아닙니다. 주인님! 그는 "나의 원수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 그는 나를 유괴해서 지금 주인님께 판 자입니다.
우리가 시장에 나갔던 그날 거기서 그를 보았을 때, 한 작은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려 왔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이마르거든 마시우라"(로마서 12:20)
저는 크리스챤이 되었는데 그를 돕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수를 초월한다.

마태복음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26-28,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3536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Be merciful, just as your Father is merciful.)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사랑의 기준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기록된 말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거북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누가복음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라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연보(捐補)와 헌금(獻金)(고린도후서 8:1-5) / 주일설교 원고(10-18-20)


연보(捐補)와 헌금(獻金)(고린도후서 8:1-5)

1. 형제
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아멘

고린도후서 8장9장을 "연보장" 또는 "헌금장" 이라고 합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연보(捐補)헌금(獻金)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연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13구절입니다.
구약에서 2구절(역대하 34:9, 14) 신약에서 11구절입니다.

헌금(獻金)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2구절입니다.
신약 누가복음에서만 2구절 사용되었습니다(누가복음 21:1, 4).

연보와 헌금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들 중에 "십일조 절대 바치지 마라!" "연보는 신약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헌금은 인위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영상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코로나 19에 의해서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던 교회 전통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 장소에 대한 생각

그리심산이냐? 예루살렘 성전이냐?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라고 합니다.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실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둘째는 헌금에 대한 생각

교회 설립의 목적이었던 선교와 구제보다는 인건비와 관리비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CBS(기독교방송국)의 보도에 의하면 서울에서 10여개 교회가 강제 경매 위기를 당하고 있으며,
교회 파산이 급증하여 전국적으로 100여개 교회들이 경매의 매물 물건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은행의 융자를 받았으나 코로나 19로 인하여 모일 수 없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적은 헌금 때문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뉴욕의 작은 교회 사역자들은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렌트비를 내지 못해서 교회 간판을 내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교인들의 가정과 직장을 찾아다니며 헌금을 거두고 있다고도 합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 할 때는 예베 순서에 따라 모든 예배자들이 헌금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각 가정에서 개인별로 또는 가족단위로 예배하므로 헌금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연보와 헌금에 대한 정의를 소개합니다.

연보(捐補)란 한자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 라는 (訓)으로 “돕기 위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 (訓)이란 "가르칠 훈(訓)" 으로 "한자(漢子)의 뜻의 새김. 예를 들면 "해(海)"를 "바다 해(海)" 라고 할 때 "바다"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컨트리뷰션(contribution)”이라고 하며, “함께(con), 돈을 나누어 낸다(allot, 할당하다)”는 뜻입니다.

헌금(獻金) “드릴 헌(獻), 쇠 금(金)” 이란(訓)으로 “드리는 금” 즉 금은 예로부터 재물을 상징하므로 "드리는 돈" 이란 뜻입니다.

연보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내놓은 것을 말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파트리스교회에서 헌금 내역으로 헌금 봉투에 적혀 있는 내역은 "십일조, 감사, 주일, 선교, 구제, 옥합, 생일" 이렇게  7개로 구분합니다.

이러한 헌금 내역 중에서 연보에 해당하는 것은 "구제, 선교, 옥합"이라고 하겠습니다.

헌금에 해당하는 것은 "십일조, 주일, 감사, 생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파트리스교회에서 헌금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거래 은행에서 파트리스교회 구좌로 송금하는 방법
둘째는 인터넷으로 계좌 이체하는 방법
셋째는 수표를 발행하여 우편으로 보내는 방법
넷째는 헌금을 모아 직접 전달하는 방법

코로나 19라는 팬데믹(Pandemic)이란 시대를 살아야 하므로 어떻게 헌금하는 것이 성경적일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8:1-5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절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시간적으로는 대략 기원 후 50년 경쯤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 편지를 보낼 때 당시 상황은 세계 교회의 모교회이었던 예루살렘교회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이방교회들 중에서 가장 먼저 마게도냐 교회들(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뢰아, 네아볼리, 아볼로니아)이 힘을 모아 영적 복음이 출발한 발원지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하여 나선 것이라고 합니다.

마게도냐교에 있는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아시아로 진출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어느 날 환상을 통하여 마게도냐 사람이 손짓하며 바울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시아로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을 막고 유럽으로 가라는 것으로 깨닫고 복음의 발길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사도행전 16장에 소개됩니다.

마게도냐 지역에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뢰아, 네아볼리, 아볼로니아"와 같은 교회입니다(사도행전 16:9-10).
당시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신앙적으로는 극성스런 유대인들의 훼방과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2절 참조).

2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들도 예루살렘 교회처럼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모교회유대인의 교회라고 한다면 마게도냐 교회이방인의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이방인 교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헌금은 은혜를 깨닫게 될 때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깨닫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지난 목요일(15일) 다니엘과 함께 노던 164가 응급 진료센터에서 코로나 감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17일) 오전 10시경에 전화를 하였더니 방금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하며 담당자가 "음성"이라고 하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2주일 전부터 호흡을 하려면 가슴이 답답하고 약간의 통증을 느껴 정상이 아니구나! 하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음성이란 결과를 받았지만 만일 양성이라고 하면 치료를 위한 방법도 생각했습니다.

검사를 받기 위해 응급 진료 센터를 찾았을 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실내에서 수용 가능한 인원은 거리를 두고 앉아서 기다리지만 실내로 들어오지 못할 때는 거리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사하는 방법은 먼저 체온과 혈압을 측정한 후에 어떤 증세가 있는가 확인을 한 후에 긴 면봉을 코속으로 집어넣은 후 균을 채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긴 면봉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콧구멍이 참 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19에 의해서 세상을 떠났고 또 감염자가 되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니엘에게 물었습니다.
"다니엘아! 만일 지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한다면 무슨 은혜를 구하겠느냐?"
다니엘이 구하는 은혜가 있듯이 여러분들이 구하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 은혜가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깊고 넓고 높게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헌금의 은혜가 따르지 못한 은혜는 참 은혜가 아니다.
영국의 설교자 '요한 웨슬리'는 "나는 너의 돈주머니가 회개하기까지 너희 회개를 믿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 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장면이 소개됩니다(마가복음 14:3). 그런데 이 여자를 누가복음에서는 그 동네에 죄를 지은 여자라고 설명합니다(누가복음 7:37). 그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만일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겠느냐? 하며 여자의 행동과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비난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 여자는 죄를 많이 지었지만 그 모든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행한 것이라며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용서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발을 닦는 여자의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며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방인으로 구성된 마게도냐 교회가 모교회 유대인의 예루살렘 교회가 어렵다는 소식을 바울로부터 들었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이방인 교회 마게도냐 교회들을 흔들었습니다.
비록 우리들도 어렵지만 우리를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게 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하여 강제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돈을 모았습니다(3절 참조).

3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 자원하다는 단어의 원 뜻은 "스스로 선택하다" 라고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자원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힘에 넘치도록 돈을 모았습니다.
이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첫번째는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은혜를 깨닫게 하는 원동력은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두번째는 헌금은 자원하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입니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을 위하여 무릎을 꿇습니다.
누군가 슬픔에 잠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길을 걷다가도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위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도가 시작됩니다.

자기 힘과 능력에 맞도록 자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넘치게 받은 사람만이 넘치도록 자원할 수 있습니다.

죄 않은 여인이 아주 값비싼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님이 머리레 순식간에 부어버린 것은 그 여인이 그만큼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원한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시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가 보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 힘입어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목회 초기 교회를 함께 시작했던 집사님께서 어느 공장의 3교대 근무자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그만 실족하여 거대한 탱크로리 차 위에서 바닥을 떨어졌습니다. 병원에 진단 결과 허리 뼈가 상하여 4급 장애 판정을 받고 장애 판정에 따른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상금의 절반을 교회 건축을 위한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가족들이 동의한 줄 알았는데 부인 집사님이 극구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장애 등급 판정을 받으면 근무하기가 어려운데도 정년 퇴직할 때까지 계속해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정말 하나님만을 위한 일에 보탬이 되겠다고 결단하셨기 때문에 그 이후에 전개되는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풀무불에 던져지는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이란 유대의 젊은이들은 풀무불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우상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거대한 코로나 19라는 괴물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버티고 있습니다.
왜 전염병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왜 육신의 몸이 약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나 죽으나 우리가 다 주의 것이로다.

헌금은
은혜를 깨닫는 자가 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헌금은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신앙입니다.

세번째는 헌금은 섬김의 신앙입니다.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헌금을 하는 이유는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이방인 교회 중에서 가장 먼저 참여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잠시 흔들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매월 파트리스교회가 후원하는 기관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후원하는 기관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파트리스교회도 결국 줄어드는 편에 서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후원하는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결정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아버지 하나님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파트리스교회 성도들이여!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이여!

연보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물질입니다.
헌금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 바치는 물질입니다.
어떤 내역으로 물질을 드리든지 바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먼저 감동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좋아서 자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섬겼듯이 우리들도 섬김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화) 자신을 바치는 헌신

영국에 부흥운동이 한창이던 19세기 말엽 영국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리더는
그리스도교회의 마이어목사(F. B Meyer. 1847-1929)
침례교의 대부흥사 스펄전(Charlson Spurgeon. 1834-1892)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켐벨 몰간목사(Campbell Morgen. 1863-1945)

그런데 이 세 목사님 중에서 마이어 목사님의 인기가 제일 약하였습니다.    

마아어 목사님의 일기장에는 "왜 그런지 나는 기도하려면 스펄전 목사와 몰간 목사님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자꾸 일어난다고 할 정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어 목사님은 그들을 시기하거나 질투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질투와 시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만 했을 뿐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축복하는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을 들은 마이어 목사님은 크게 뉘우치며 두 목사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마이어 목사님의 일기장에는
"나는 이제 자유함을 얻었다. 평안을 얻었다. 내 마음 속에 기쁨이 샘솟는다.
하나님! 이제 내게 다시는 비판하는 종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계속하여 사람을 축복하며 살도록 도와 주소서"하고 기록하고 있다.

(예화) 고름을 빨다

중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김요석 선교사 간증입니다.
친구와 같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센병 환자의 등에 고름이 들어있는데 아직 덜 곪아 쉽게 짤 수 없었습니다.
김선교사는 그 부분을 입으로 핥았습니다.
자꾸만 빨았더니 그 부분이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고름을 짰습니다.
고름이 터지면서 옆에 친구 얼굴에 튀었습니다.
순간 그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센병에 전염될까 봐 울었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네 고름을 빨 때 예수님이 옆에 와 계셨다.
나는 그 주님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고름이 터져 내 얼굴에 튀는 순간 예수님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아쉬워서 울었다”

사랑할 때 예수님은 임재하십니다.
사랑할 때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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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10-17-20) 토요일

♦ 10월 1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8: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연보(2절)
♦ 성구 :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Out of the most severe trial, their overflowing joy and their extreme poverty welled up in rich generosity.   

 “연보(捐補)와 헌금(獻金)”

“연보(捐補)”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라는 훈(訓)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컨트리뷰션(contribution)”이라고 하며, “함께(con) 돈을 나누어 낸다(allot)”는 뜻입니다.

“헌금(獻金)”은 “드릴 헌(獻), 쇠 금(金)”이란 훈(訓)으로 “드리는 쇠(money)”이란 뜻입니다.

헌금(獻金. offering)은 성경에서 주로 ‘고르반(qorban)’과 ‘도라(dora)’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레 1:3, 민 31:50, 마 5:23∼24, 막 7:11)” 또는 “예물(레 1:2, 2:1)” “헌물(민 7:10)”이란 뜻이다.

“도라”는 “예물(마 2:11, 5:23∼24, 8:4, 23:18, 19장, 히 5:1, 8:3∼4, 9:9, 11:4, 계 11:10)” 혹은 “헌금(눅 21:1, 4)” 이라고 개역 한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본문에서 사용되든 “고르반”과 “도라”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연보(捐補)”의 한자 의미는 “남을 돕기 위해 내어 놓는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로기아(collection, 모금)” “하플로테스(generosity, 관대)” “유로기아(blessing, 축복)”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위한 연보(고전 16:1)” 또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고린도 교회의 연보(고후 9:5)”라는 말에서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성도를 돕는 일과 교회 간의 물질적 도움을 주는 “코이노니아(친교, 협력)”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연보”라는 말보다는 “헌금”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 이라고 하겠습니다.

파트리스교회의 설립 목적은 선교와 구제를 중요시 합니다.
현재 저희들이 지원하는 기관은 다섯 곳입니다.

1. 북한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유진벨 재단(대표 인세반회장)

2. ”북한어 성경을 보급하는 “모퉁이돌 선교회(대표 이삭목사)”

3. 뉴욕국제장애인협회(대표 임선숙사모)

4. 뉴욕밀알선교단(대표 김자송)

5. 은퇴 여자 선교사들을 안식관을 건축하는 “세빛 자매회(대표 김화자목사)

”비대면 예배로 인하여 헌금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지만 매월 꾸준히 후원금을 송금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협조와 후원에 의한 이와 같은 선교와 구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를 바쳤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얼마나 남았는가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부자가 성전에서 쏟아 붓는 많은 양의 헌금 보다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바쳤을 때 부자보다 더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친 양으로 계산하면 부자가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남은 것이 없는 구제와 선교를 위하여 힘차게 달려봅시다!
그리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워주심에 감사합시다!

♪ 찬양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연보에 대한 성구


마가복음 12: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고린도후서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요한복음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마가복음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누가복음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고린도전서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후서 8: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역대하 34:14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고린도후서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 헌금에 대한 성구


  누가복음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누가복음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면류관(冕旒冠) 베드로전서 5:4 / 수요성서학당 #18(10-14-20)


면류관(冕旒冠)에 대한 신앙(베드로전서 5:4)

(도입 이야기)  - 개털 모자와 영광의 면류관

독립문성결교회에서 시무하셨던 임영재 목사님께서 부흥회 중에 개털모자 장로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소개했습니다. 

1954년경 경상도 어느 시골 산기슭에서 개를 200여 마리 키우던 계씨 성의 장로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교인들 모두가 작정 헌금을 하게 되었고 계 장로님도 작정 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촌 마을에서 개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개를 팔아서 건축헌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를 키우려고 이것 저것 제하고 나면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아시고, 목사님도 아실 것이니 개 한 마리 값을 헌금하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계 장로님께서 건축헌금을 작정하신 헌금 내역을 보셨던 목사님께서 대단히 실망하셨습니다.
장로님께서 겨우 개 한 마리 값을 작정하시다니 교인들에게 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밤 계 장로님께서 꿈을 꾸었답니다.
천사의 인도를 따라 면류관이 진열된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종류별로 진열된 면류관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모두 갖고 싶었습니다.
내 것은 금 면류관일까?
은 면류관일까?
동 면류관이나 철 면류관은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것이 저의 면류관입니까?

천사가 말하기를 "계 장로님 머리에 꼭 맞는 것이 장로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면류관을 들고 머리에 써보았으나 머리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머리에 맞는 것이 없다고 말하자 천사가 장로님에게 그러면 저 쪽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에는 개털모자만 진열되어 있었답니다.
"저것을 쓰라고요?"
"어떻게 쓰겠습니까?"
그래도 한 번 써보라는 천사의 말에 개털모자 하나를 집어 들고 머리에 써 보니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명색이 장로인데 이것은 아니야!" 하고 소리치고 깨보니 꿈이었답니다. 

계 장로님은 전 교인들 앞에서 꿈 이야기를 하고 키우던 개를 모두 팔아 건축헌금으로 드렸고, 밭도 예배당을 짓는 터로 바치고 예배당을 아주 잘 짓고 수년 동안 진실하게 봉사하다가 천국에 가셨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소개하며 임영재목사님께서는 부흥회를 인도할 때마다 "여러분은 절대로 개털모자나 받는 성도가 되지 말라"고 설교하셨습니다.

(도입 이야기) -

토인비(Arnold Toynbee)에 의하면 지구상에 등장한 문명은 스물여섯 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문명들은 거의 대부분 몰락해서 폐물이 되어 용도 폐기되어 버렸다.
이러한 문명의 몰락은 외적인 힘에 의한 침략에 그 원인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부패가 문명의 기반을 삼켜버려 일어난 것으로 토인비는 진단하였다.
내부의 부패는 그들에게 닥쳐온 여러 가지 도전을 창조적으로 대응치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 로마는 외침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타락이 멸망의 주된 원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로마 문명뿐이겠는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사라센 문명도 그 몰락의 직접 원인은 내부의 타락에 있었다.
남의 이야기로만 느껴진다면 이 땅의 왕조들의 멸망 원인을 조사해 보아도 동일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슈펭글러(Oswald Spengler)도 ‘서구의 몰락’에서 같은 결론을 제시했었다.

신학과 교회를 혁신하지 않으면 기독교 2천년의 역사는 역사로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이 경고하였었다.
몰트만(Jurqen Moltmann) 같은 이는 그 징후가 이미 서구교회에 나타나고 있음도 지적하였었다.
기독교의 적은,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힘은 사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부패와 타락에 있음을 모르는 목사들은 아무도 없으리라.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은 가룟 유다였다.
예수님을 적대하던 자가 아니라 가까운 데서 따라 다녔던 자였다.

지난 주일 황목사님께서 "부활과 생명"에 대한 설교에서 아주 강렬하게 마음에 꽂히는 성구가 있었습니다.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데살로니가후서 3:2b)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for not everyone has faith.

믿는 자를 보겠느냐?
누가복음 18:8b
인자가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면 면류관도 모든 사람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팬데믹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반드시 믿음을 회복해야 하고 면류관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사용된 면류관에 관한 구절

한글 개역 성경에서 면류관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살펴보면 56구절로 검색됩니다.
구약에서 34구절
신약에서 22구절

베드로전서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And when the Chief Shepherd appears, you will receive the crown of glory that will never fade away.

* 영광의 면류관(δόξης στέφανον, of glory crown)

면류관은 무슨 의미인가?

신약 성경에 나오는 면류관은 세 가지 단어로 구별되어 있다.
그런데 면류관이라는 단어를 구별 없이 사용해버려 진정한 그 뜻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를 단순히 표면적인 내용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디아데마(diadehma, διαδήματα) - 계 12:3, 13:1, 19:12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1238) - royal crowns, a diadem, a crown
Usage : a head-wreath, crown, diadem. 

통치와 지위를 의미하는 왕관, 머리띠라는 뜻이 있는 데 diadewo(디아데오, 둘러매다)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9: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 royal crowns

스테파노스(stefanos,  στέφανος)

* 면류관(stephanos. 4735) : that which surrounds, i.e. a crown
Usage : a crown, garland, honor, glory.


나뭇가지와 잎으로 엮은 것으로 승리한 자만이 받는 우승관을 의미한다.
특히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의 이름의 음역과 똑같은 발음이며 뜻도 동일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1. 가시 면류관(마 27:29, 막 15:17)
2. 썩을 면류관(고전 9:25)
3. 기쁨의 면류관(빌 4:1)
4.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
5. 의의 면류관(딤후 4:8) 
6.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약 1:12)
7.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8. (흰말 탄자)면류관(계 6:2)
9. 면류관(계 3:11)
10. 금 면류관(계 4:4)
11. 자기의 면류관(계 4:10)
12. 금 같은 면류관(계 9:7)
13. 열 두별의 면류관(계 12:1)
14. 금 면류관(계 14:14)  

미국의 작가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 1796. 7. 15~1867. 5. 27)의 신화(Mythology) 라는 작품은 희랍과 로마의 신화를 이야기식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신화라는 작품 중에 "아폴로(Apollo)와 다피네(Daphene)"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폴로는 전쟁이 영웅입니다.
어느 날 아폴로가 개선장군으로 거리를 행진할 때 마침 작은 소년 에로스가 활과 화살을 갖고 있습니다.
아폴로 장군은 에로스에게 활과 화살은 장난감이 아니라고 비웃습니다.
그런데 에로스가 갖고 있는 화살은 금촉과 납촉으로 아주 신비한 화살입니다.
에로스가 쏜 화살을 맞은 사람은 내가 무슨 화살을 맞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에로스는 이폴로에게 금촉 화살을 쏘았고 다피네에게는 납촉 화살을 쏘았습니다.
이때부처 아폴로는 다피네를 사모하여 다피네를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다피네는 아폴로를 보기만 하면 소름이 돋고 보기싫다고 도망다닙니다.
어느 날 아폴로가 작정을 하고 다피네를 추격합니다.
아폴로의 손에 다피네가 붙잡힐 때 다피네는 숲의 신 아버지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외칩니다.
그 순간 다피네가 상록수라는 나무로 변합니다.
아폴로가 분명히 다피네를 붙잡았는데 눈을 떠 보니 나무가 된 것입니다.
아폴로는 그토록 사랑하던 다피네가 나무가 된 것을 안타까워 하며 "영원히 푸른 나무가 되어라!"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이 나무를 월계수라고 합니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는 마라톤 경주의 우승자에게 월계수 나무를 엮어 머리에 씌워주므로 영원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스테파노스 라는 면류관은 우승한 사람에게 씌워주는 면류관이라고 하겠습니다.

스템마(stemma, στέμματα) 꽃으로 엮은 화관(행 14:13)

성밖 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 화관(花冠) - στέμματα 
-  στέμμα(4725. stemma) 
Definition : a wreath
Usage : a garland, wreath, crown   

이같이 구별된 헬라어처럼 번역에서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특히 계시록을 연구할 때도 구별하여야 합니다(계 6:2, 9:7, 12:3, 13:1)

면류관이라는 단어를 분석하면 새벽이라는 단어와 아침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뜻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새벽기도회를 열심히 다니는 분들에게도 면류관을 얻게 되는 은총도 되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자에게 그리고 깨달은 진리를 하나님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밭을 가진 자를 찾아가서 전하는 차원으로 발전되어질 때 얻어지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면류관을 아니 우승관을 받는 은총이 있기를 바란다.


요한계시록에 사용된 면류관(冕旒冠)의 다양성
- 요한계시록에 11회 사용되었다.

* 면류관(στέφανον
- 생명의 면류관 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 
- στέφανος(4735. stephanos) ; 2:10, 3:11, 4:4, 4:10, 6:2, 9:7, 12:1, 14:14
Definition : that which surrounds, a crown
Usage : a crown, garland, honor, glory.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 royal crowns
- διάδημα(1238. diadéma  ) ; 12:3, 13:1, 19:12
Definition : a diadem, a crown
Usage : a head-wreath, crown, diadem. 

요한계시록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면류관(στέφανον) 
- 생명의 면류관 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 
- στέφανος(4735. stephanos) 
Definition : that which surrounds, a crown
Usage : a crown, garland, honor, glory.   

요한계시록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면류관(στέφανόν) 

요한계시록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 금 면류관(στεφάνους χρυσοῦς) 
요한계시록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 면류관(στεφάνους)

요한계시록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면류관(στέφανος)

요한계시록 9: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 금 같은 면류관(στέφανοι ὅμοιοι χρυσῷ) - crowns like gold

요한계시록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 면류관(στέφανος)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 royal crowns
- διάδημα(1238. diadéma  )
Definition : a diadem, a crown

Usage : a head-wreath, crown, diadem. 
 
요한계시록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요한계시록 14:14,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 금 면류관(στέφανον χρυσοῦν)

요한계시록 19: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 royal crowns

사도행전 7:59∼60,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스데반(Στέφανον) 

-  Στέφανος(4736. Stephanos)  ,
Definition : "crown", Stephen, the first Christian martyr

Usage : Stephen, one of the seven original deacons at Jerusalem, and the first marty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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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Yi 

계시록에서 디아데마는 계시록 12:3, 13:1, 19:12에 3번 쓰였습니다.
주로 왕관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이 세 번 사용된 문맥도 왕적인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스테파노스는 대부분 신약성경 전반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면류관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관 또는 왕관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계시록에서는 신분을 나타내는 용도로 많이 쓰였습니다.
승리, 기쁨, 영광, 등의 의미로도 쓰였지만 이것도 신분적 상태를 나타내는 간접적인 용도로 쓰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면류관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   



1. [마태복음 27: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2. [마가복음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3. [요한복음 19: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4. [요한복음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5. [고린도전서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6. [빌립보서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7. [데살로니가전서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8. [디모데후서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9. [디모데후서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0.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1. [베드로전서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12. [요한계시록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3. [요한계시록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4. [요한계시록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15. [요한계시록 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6. [요한계시록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17. [요한계시록 9: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18. [요한계시록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19.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20. [요한계시록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21. [요한계시록 14:14]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22. [요한계시록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故 이동훈목사를 추모하며

제1서신
Sep. 28. 2020 오전 10:42 Flushing 길을 걸으며

조카 고(故) 이동훈목사(Pastor Jacob Lee, 36세)
New Life Drseher Church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진리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은 신앙의 초보적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곧 영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체험해야 합니다.
영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진리가 되시며 영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영으로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혼과 몸으로 체험하는 정도로 멈추고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기적의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기적의 예수란 벳새다 들판에서 굶주렸던 사람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고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광주리가 12개 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육신의 몸을 갖고 살아갈 때 육신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기적을 기대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육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 복음서에 나타났던 기적의 사건에 참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모두 외면했습니다.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이성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혼이란 정신을 말합니다.
신앙을 정신적인 영역에 가두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 돌아갑니다.
정신적인 위로자가 되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영으로 세상에 오셔서 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 남편을 잃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우

* 사업의 어려움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극적으로 회복되어 주님을 만났다며 새 힘을 얻었으나 다시 사업이 기울고 어려워 질 때 왜 나를 버리셨느냐 하며 절망에 다시 붙잡히는 경우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신령한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감당하려고 30세까지는 전혀 하늘의 일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의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과 같은 사건을 보여주며 메시아가 되심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께서 임하지 않은 시대이었기에 예수님을 영으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제자로 부름을 듣기 전에 일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후 베드로를 위시하여 그 자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영으로 예수를 체험하였고 그때부터 완전히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이미 성령강림이 일어난 이후의 시대이므로 직접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하며 성령 체험이 있어야만 예수를 영적으로 믿을 수 있는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혼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예수를 믿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몸은 이 세상에서 온갖 질병과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을 갖게 되지만 죽음 후에는 이 모든 질병과 사건과 사고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동훈목사의 경우 36세의 젊은 나이입니다.
더구나 가족들은 아내 라헬과 두 아들 그리고 딸이 살아가야 할 과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동훈목사
Jacob Lee(1984. 5. 4- 09. 28. 20 am 9:42) 36세
Wife / Rachel Tan Lee(1989. 12. 17-) 31세
Son / Zephaniah(2015. 9. 9-) 5세
Son / Jayden(2017. 6. 25-) 3세
Daughter / Kaelyn(2019. 6. 30-) 1세

몸과 혼으로만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생각하면 가장 좋으신 하나님께서 몸과 혼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남은 가족들과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부터는 놀라운 주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이 몸의 소망 무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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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서신
Oct. 10. 2020 오전 9:30 집에서

오늘은 10월 10일 토요일입니다.

오늘 어머님 김은신권사님(92세)에게 손자 이동훈목사(36세)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해 하시면 놀란 얼굴 표정으로 “세상에.........!” “세상에........!”만 연발하셨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에게 손자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식이 아니라 손자가 그것도 목사가 되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때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식을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신앙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故 이동훈목사 천국환송예배 라는 하관 예식 순서를 보여주므로 간접적으로 알렸습니다.

평소에 잘 듣지 못하시는 어머님께서 “언제 죽었니?” 라고 물으시기에 “9월 28일” 이라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28일” 하고 확인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럼 장례는?” 하시기에 이미 장례를 마쳤으며(10월 1일 하관예식) 나중에 알려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명한 의식을 갖고 받아드리고 인정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충격적인 소식일지라도 정말 믿음이라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평소보다 조금 적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겨 읽으시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동훈목사의 죽음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육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2:14)
- The man without the Spirit,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 영적이 아닌 사람, 자연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둘째는 신령한 사람(고린도전서 2:15)
- 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셋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3:1)
- worldly, 세속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가족들 중에서 어린 자녀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믿음의 어른들이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자세는 분명합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신령한 사람(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판단한다는 것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 때문에 신앙의 흔들림이 없으므로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시 믿음이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소망 즉 영생의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디도서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의 소망이란 죽음의 세계에서 분명하게 빛을 발할 것이며 완벽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사람만이 어떤 죽음이라도 신앙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영으로 주님을 찾을 때 그 주님은 이미 죽음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영생의 소망입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제3서신
Oct. 11. 2020 오후 2시경 Bayside 집에서


주일 오후 시간입니다.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가족들이 점심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후 2시경 고 동훈목사의 부모 이경혁, 전한영 내외가 어머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더구나 손자를 먼저 보낸 할머니의 마음은 “왜 나와 같은 사람은 살려두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은 데려 가셨는가?” 하며 깊은 탄식의 질문을 허공에 뿌립니다.
이어서 “동훈이는 행복하지! 아무 걱정도 없는 곳에서 평안히 머물고 있지만 라헬과 아이들은 어떻게 하니? 죽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데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하니?”
그러자 동훈 애비가 “살아 있는 사람은 더 행복합니다!” 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도록 차단의 벽을 칩니다.
여러 시간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암 투병의 과정을 듣습니다.
이럴 때는 듣기만 하는 것이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애비와 어미의 심정에 “하나님의 뜻이니 위로 받으세요!” 라는 형식적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아픔의 대못을 가슴에 내리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젊은 아들이 군목으로 활동하던 중 말기 암으로 통증을 호소하며 고통을 받으면서도 병원에 누워있기 보다는 기도원(대한수도원)에 기거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육체적인 고통을 진통제보다는 주님을 닮아가려고 몸부림 쳤던 아들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교인들이 어머니 전도사님(김용준)에게 “하나님의 뜻이니 위로를 받으세요!” 하며 형식적인 인사를 할 때 그 어머니 전도사님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네 아들이 죽어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이렇게 고통의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고통과 아픔의 소리가 3년이 지난 어느 날 비슷한 아픔을 겪게 된 교인을 만났을 때 그의 두 손을 붙들고 “내가 다 알아! 그 아픔을....... 나도 그 고통의 터널에 갇혀 있었지. 참고 견디자!” 하며 위로할 때 그 교인은 얼굴을 전도사님의 품에 묻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 전도사님께서 깨달은 것은 이런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 할 수 있는지 먼저 경험하게 하셨구나! 하며 아들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생각지도 못한 아픔과 고통을 경험해야 합니까?
더구나 왜 예수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예수를 알기도 전에 십자가의 아픔과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까?
세상에서 잠간 경험하게 하신 그 아픔과 그 고통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주님을 더 가깝게 뜨겁게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세계를 생각하며 고통의 진한 향기 속에서 풍겨나는 영생의 기쁨과 소망을 기대하며 슬픔의 자리를 위로의 자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죽음에 대한 이해


죽음은 끝이 아닌 영원한 삶의 시작






왜 바울을 사도라고 부르는가?(디도서 1:1∼3) 수요성서학당 #17 (10-07-20)

왜 바울을 사도라고 부르는가?(디도서 1:1∼3)

디도서 1:1∼3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사도(使徒)란 누구인가?

* 사도(使徒) : 부릴 (使), 무리 (徒)
- 예수가 복음(福音)을 널리 전(傳)하려고 특별(特別)히 뽑은 열두 제자(弟子).
- 보냄을 받은 자

*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 apostolos, 652) : a messenger, one sent on a mission, an apostle
- 아포(ἀπό. apo. 575) : from, away from
- 두로스(δοῦλος. doulos, 1401) : a slave
- 히브리어 "샬리하(Shakicha)"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란 뜻으로 모세, 엘리야, 엘리사, 에스겔 등에 사용되었다(출 6:11, 왕상 18:1).

출애굽기 6:11, 들어가서 애굽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열왕기상 18:1, 많은 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를 지면에 내리리라.

* 사도란 좁은 의미로는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사도행전 1:21-26, 바사바(유스도, 요셉), 맛디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사도행전 9:15-16, 고린도전서 9:1, 7-15, 15:8).

제자(弟子)란 누구인가?

* 제자(弟子) : 아우(第), 아들 (子)

* 마데테스(μαθητής. mathétés, 3101) : a disciple

사도(使徒)”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때에만 부름을 받았고 보냄을 받았던 사람들로 제한 됩니다.

제자(弟子)”라는 말은 “배우는 자” 또는 “따르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근거에 의하면 바울은 사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가 고린도교회에서 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이 사도가 된 것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고린도후서는 모두 1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8장과 9장은 헌금에 관한 교훈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하 논쟁이 고린도교회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유대인들로부터 제기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12명의 추종자들을 제자라고 불렸습니다.
열 두 명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고, 그분으로부터 배웠으며, 그분에 의해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에, 주님은 그분의 증인으로 제자들을 내보내셨습니다(마 28:18∼20. 행 1:8).
그 때 그들은 열 두 사도로 언급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아직 이 땅에 계셨을 때조차, “제자들” 그리고 “사도들”이란 용어는 어느 정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에 대한 좁은 의미 :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던 제자들을 말합니다.

원래의 열 두 제자들(사도들)은 마태복음 10:2∼4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사도에 대한 넓은 의미 :

성경에서는 사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역사적인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 자신을 사도라고 강조합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은 부활의 증인으로 특별하게 부름을 받은 경우에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합니다(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신약 성경 27권 중에 바울이 기록한 것은 13권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의 중심 인물은 예수님과 바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도와 제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울은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롬 1:1, 갈 1:1, 고전 1:1, 고후 1:1, 엡 1:1, 골 1:1, 딤전 1:1, 딤후 1:1, 딛 1:1).

바울을 사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특별한 은혜라고 합니다.

첫째는 택정함(갈 1:15-16, 롬 1:1)
둘째는 다메섹 도상의 사건(행 9:4-6)
셋째는 아나니아의 예언(행 9:15-16)
넷째는 환상(행 22:21)

디도서 1:1∼3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첫째, 믿음
둘째, 지식
셋째, 영생
넷째, 전도

첫째, 믿음
- 택하신 자들의 믿음

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믿음이란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더프 선교사(1806-1878)는 안식년을 맞아 영국으로 귀환한 후 가는 곳마다 현대 선교사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 선교사에 대하여 칭찬과 그의 업적을 자랑하는 일에 몰두했었습니다.
한번은 윌리암 캐리가 더프에게 부탁하기를 이제부터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더프는 계속하여 윌리암 캐리에 대한 칭찬을 계속하여 말했다고 합니다.
윌리암 캐리가 임종하기 전에 더프를 만났을 때 다시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만 이야기를 하십시오."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더프는 윌리암 캐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 깨닫기를 내거 전할 이야기는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둘째, 지식
- 경건에 속한 진리의 지식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지식이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지식 그노시스를 말합니다.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셋째, 영생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

영생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신앙의 큰 위로가 됩니다.
예로부터 자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기 떄문에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이 아니라 주님 품에 안겨드린 것으로 위로 받으며 다시 만날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이유가 없습니다.

넷째, 전도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바울을 가리켜 성경은 이방인의 사도(롬 11:13, 갈 2:8) 또는 이방인의 스승(딤전 2:7)이라고 합니다.

복음이 유대 지역을 벗어나 더 넓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바울의 업적입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전도에 대한 열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아래에서 항거하던 본 훼퍼 목사님과 마틴 미네르 목사님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본 훼퍼 목사님은 사형을 당했지만 마틴 미네르 목사님은 8년 옥고를 치루고 출옥한 후에 몇 차례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여러 차례 환상을 본 후에 "전쟁백서"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그 책의 내용 중에 이런 고백이 소개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고 심판대 앞에 길게 늘어섰는데 한 사람씩 그 앞에 나가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심판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마틴 미네르 목사님의 차례가 되어 그 앞에 섰을 때 누군가 노려보며 마틴 목사님에게 항의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 그 사람을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힛틀러이었다고 합니다.

힛틀러는 마틴 목사의 죄 때문에 내가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를 하면서도 한 번도 힛틀러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하더랍니다.
이런 환상을 경험하고난 후에 마틴 목사님은 힛틀러가 악독한 독재자가 된 것은 내가 그에게 전도하지 못한 죄 때문이라고 전쟁백서에서 고백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전염병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복음을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하라고 말씀하신 부활의 주님이 분부하신 명령에 온전하게 복종하지 못한 죄가 더 무섭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덱사메타손


정은경 “트럼프에 쓴 염증약, 코로나 중증 환자용”

최근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복용하고 있는 ‘덱사메타손’과 관련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초기의 상황이 지난 환자의 염증을 완화하기 위한 항염제(抗炎劑)”라고 5일 밝혔다.

지난 10월 2일(현지시간) 양성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증상이 악화돼 염증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국내에서도 렘데시비르 등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한 이후 증상이 악화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정은경 청장은 전했다.

정 청장은 이날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국내에서도 코로나19 발병 초기에는 주로 램데시비르와 같은 항바이러스 제제를 주로 투여하고 어느 정도 초기의 상황이 지난 다음 염증 등이 문제가 될 때 덱타메타손을 치료약으로 쓰는 방법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또 “덱타메타손 투여는 항바이러스 효과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염증을 완화하는 항염증 작용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유튜브 백악관 공식 계정에 따르면 대통령 주치의인 숀 콘리는 4일(현지시간) 월터 리드 국립 군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대통령은 두 차례의 산소 포화도 저하를 겪었다”며 “대통령을 상대로 덱사메타손을 투약했다”고 밝혔다. 미국 생명공학 회사 리제네론이 개발중인 항체 약물, 길리어드렘데시비르를 각각 투여받은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처방된 세번째 약물이다.

콘리는 회견에서 “이 경우 치료 초기 (덱사메타손 투약의) 잠재적 이익이 위험성보다 크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덱사메타손은 위염, 구토, 두통, 어지러움, 불면증 등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이다.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퇴원 가능성이 제기돼왔지만, 중증 환자에게 사용되는 덱사메타손을 썼다는 의료진 발표가 나오면서 치료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덱사메타손은 스테로이드 형태의 항염제로 알레르기, 습진, 관절염, 천식 치료제로 사용돼왔다.

지난 6월 16일 BBC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코로나 환자 2000명에게 이 약을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장기간 산소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의 사망 위험이 28~40%가량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당시에도 정은경 청장은 “(덱사메타손은)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치료제라기보다 염증 반응을 완화시켜주는 보조적 치료제로 생각하고 있다”며 “더 체계적인 임상연구가 필요한지 임상전문가들과 협의가 필요하다”라고 밝힌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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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 쓰면 중환자실 간다"는데…내일 백악관 간다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공개한 지 사흘이 지났지만, 그의 상태와 병의 진행 정도를 놓고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숀 콘리 대통령 주치의를 비롯한 의료진이 낙관적 전망을 앞세우며 치료 정보를 뒤늦게 알리거나, 상충하는 설명을 내놓으면서다. 

콘리 주치의는 4일(현지시간) 월터리드 군병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확진 판정 뒤 두 차례 혈중 산소포화도가 정상 범위 아래로 떨어져 의료진이 산소를 공급했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치료받던 지난 2일 오전 고열과 함께 산소포화도가 94% 아래로 떨어지자 추가 산소를 공급했고, 3일 다시 산소포화도가 93% 아래로 떨어져 같은 조치를 했다는 것이다.
 
산소포화도는 정상 범위를 95~100%로 보는데, 코로나19 환자 산소포화도가 94% 아래로 떨어지면 중증으로 여긴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콘리 주치의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산소 공급을 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 요리조리 답변을 피했다.
 
의료진 일원인 브라이언 가리발디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날 "산소포화도가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제부터 덱사메타손 투약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처럼 상태가 좋으면 이르면 내일 백악관으로 돌아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계획"이라고 말했다.
 
덱사메타손은 면역체계 과잉반응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스테로이드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증 코로나19 환자에게만 투여할 것을 권고한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기계식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나 추가 산소가 필요한 환자에게만 투약하도록 했다.
 
의료진은 결국 중증 코로나19 환자에 쓰는 스테로이드제 치료를 막 시작했다면서도 다음 날 퇴원할 수 있다는 '처방 따로, 경과설명 따로' 식 언급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 감염병 전문가인 로첼 월렌스키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환자에게 덱사메타손을 사용한다고 하면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상황이 점점 악화해 중환자실(ICU)로 가는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고 NYT에 말했다.

 
전문가들은 백악관 발표보다 대통령 상태가 더 심각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토머스 맥긴 전문의는 "덱사메타손은 환자 상태가 급속히 악화하는 경우가 아니면 잘 안 쓰는 약"이라면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대통령 상태가 더 심각한가? 대통령이어서 더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건가? 여러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치료 방향을 정하거나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주문한 결과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환자와 주치의 관계가 아니라 최고통치권자와 명령 수행자 관계가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환자가 치료의 결정권을 갖게 되면 심각한 부작용과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VIP 증후군'이다.
 
실제로 참모들은 대통령 심기를 살피느라 거짓 또는 부실 답변을 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콘리 주치의는 대통령 상태가 위중했던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데 대해 "병의 진행에 관해 의료진과 대통령이 가졌던 낙관적인 태도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CNN은 "의사가 아니라 홍보맨이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알리사 페라 백악관 커뮤니케이션 국장은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치료 중인 환자 기분을 끌어올려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일반적인 의료 행위"라며 콘리 주치의를 두둔했다.
 
이날 의료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슴 X레이나 컴퓨터 단층촬영(CT) 등 영상 정보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콘리 주치의는 트럼프 대통령 폐에 손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세한 언급을 피한 채 "예상했던(expected) 대로"라고만 언급했다.
 
응급의료 전문가인 리나 웬 박사는 CNN에 출연해 "가슴 X레이가 정상이었으면 정상이라고 답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코로나19 환자에게 '예상'되는 가슴 X레이 결과는 폐렴인데, 폐렴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 건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언제 마지막 음성 판정을 받았는지, 또 언제 첫 양성 판정을 받았는지 백악관이 밝혀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거듭된 질문에도 백악관이 답변을 거부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 받는다던 코로나19 검사를 최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안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안 하는 이유로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대통령을 만나는 모든 사람은 검사를 받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해왔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신속진단을 통해 1차로 양성 판정을 받고도 이를 숨긴 채 폭스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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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투여된 약이 공개되며 알려진 것보다 더 중증 상태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 대통령 숀 코리 주치의는 4일(현지시간)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처방한 약 종류를 공개했다. 공개한 약 목록은 덱사메타손(스테로이드제), 렘데시비르, 리제네론 신물질, 징크, 비타민D, 아스피린 등이었다.  
 
이 가운데 ‘덱사메타손’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상태가 심각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 약을 “중태이거나 심각한 코로나19 환자에게만 투여해야 한다”며 “우리는 심각하지 않은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해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밝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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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메타손 패키지의 모습. 염증 억제 작용이 있는 합성 부신피질호르몬제인 덱사메타손은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코로나19 중환자의 사망률을 상당히 낮추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을 받았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염증 억제 작용이 있는 합성 부신피질호르몬제인 덱사메타손은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코로나19 중환자의 사망률을 상당히 낮추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을 받았다. 이 실험에 따르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의 경우 35%, 산소 보충 치료를 받는 환자의 경우 20% 정도 사망률이 각각 낮아졌다고 한다.  
 
김남중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정교하게 진행한 실험은 아니지만 약 6000명이 넘는 환자가 참여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며 “실험 결과 인공호흡기를 하는 환자에게는 효과가 특히 컸고 산소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는 생존율 개선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약을 썼다면 최소한 산소 치료를 필요로 하는 폐렴이 왔다는 설명이 합리적이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감염내과 교수는 “덱사메타손은 면역 반응이 과하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독이는 역할을 하지만 정상적인 면역반응도 억제한다는 단점이 있어 폐렴이 없는 경증 환자에게는 보통 쓰지 않는다”며 “이 약을 썼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폐렴이 동반된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소 공급은 생명 유지에 기본적인 기능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산소 포화도가 정상범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건 폐렴 증상이 뚜렷한 상태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산소포화도는 일반적으로 95~100%를 정상 범위로 보며 90% 밑으로 떨어지면 저산소혈증이라고 판단한다. 5일(현지시간) 숀 코리 박사는 지난 2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의 산소포화도가 94% 밑으로 떨어졌고, 약 2ℓ의 산소 보충이 이뤄진 뒤에 포화도가 95% 이상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에도 산소포화도가 93%까지 떨어졌다고 알려졌다.
 
이재갑 한림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덱사메타손은 산소 포화도가 낮은 중증 폐렴 등 환자에게 효과가 있었다는 데이터가 있다”면서도 “투약 결정은 전적으로 주치의의 판단이기 때문에 이 약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중증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VIP이기 때문에 더 악화하기 전에 치료진이 예방 차원에서 미리 투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덱사메타손 외에도 지난 2일 월터 리드 군 병원에 입원해 렘데시비르도 투여받았다.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이 약은 지난 5월 미 식품의약처(FDA)로부터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렘데시비르는 물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에서 중증 환자에게 투여하지만 꼭 중증 환자에게만 투여해야 하는 약은 아니다”면서도 “덱사메타손은 초기 경증 환자에게는 투여하지 않도록 권장하는 약이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확진 판정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 생명공학 회사리제네론이 개발하고 있는 단일클론항제 약물도 투여받았다.
리제네론은 코로나19 초기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현지시간)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매우 좋은 상태이고, 백악관으로 돌아와 업무에 복귀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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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큰 은사(고린도전서 12:31) 주일설교 원고(10-04-20)


더욱 큰 은사(고린도전서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장(恩賜章)” 이라고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은사에 관한 말씀을 기록한 것은 로마서 12장에베소서 4장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장에 해당하는 말씀은 고린도전서 12장, 로마서 12장, 에베소서 4장, 베드로전서 4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은사(恩賜)와 은혜(恩惠)를 구분해야 합니다.

은사와 은혜는 나무에 비유하면 한 나무의 뿌리에서 자라난 여러 개의 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기쁨이란 헬라어는 "카라(chara, χαρά. 5479 : joy, delight)" 라고 합니다.
카라에서 은혜라는 "카리스(charis,  χάρις. 5485 : grace, kindness)"가 파생합니다.
카리스에서 은사라는 "카리스마(charisma. χάρισμα, 5486 : a gift of grace, a free gift)"가 파생합니다.
따라서 은혜와 은사는 기쁨의 열매라고 하겠습니다.

더욱 큰 은사란 "사랑"을 말합니다.
이때 사랑을 "아가패(agapé. ἀγάπη. 26 : love, goodwill)"라고 합니다.
아가패 사랑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시고 그물이 가득찬 물고기를 잡은 후에 아침으로 그 물고기를 먹으며 처음으로 질문하실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때 사랑이 아가패라따라서 아가패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아가패의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희생적인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에로스의 사랑이란 욕망에 이끌려 자기 보존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에서 최고의 은사는 "사랑"이라고 소개합니다.
왜 사랑의 은사가 최고라고 하였을까요?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많은 교회이었지만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서로 분쟁하는 교회이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은사가 최고의 은사라고 자랑하므로 분쟁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사랑(아가페)의 은사가 가장 좋은 은사라고 강조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은사라는 초대교회를 부흥케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은사는 주의 몸인 교회를 섬기는 중요한 원리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은사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야 하는 성도들에게 올바른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분쟁하는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은사는 아가페적인 자기헌신적인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깨우칩니다.

요한복음 21:15∼17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질문)
1. 베드로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
2. 세 번씩 반복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을까?
3. 무엇을 하라고 하셨는가?

(적용)

1. 주를 믿기 전의 내 모습
2. 직분을 받기 전의 내 모습

1. 모른다고 부인한 것에 대한 검증

베드로가 바깥뜰에 있을 때 한 여종이 다가와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말했을 때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베드로가 앞문까지 나아갔을 때 다른 여종이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 라고 말하므로
“맹세하고 부인하여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라고 말할 때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둘째, 아가페 사랑을 요구하셨으나 필레오라고 대답했기 때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가패라는 단어로 물어보셨으나
베드로는 필레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세 번째는 필레오라고 질문하셨고 필레오라고 대답하였다.

셋째, 자기 사랑에 대한 확신, 자기 용서에 대한 확신

내 어린 양을 먹이라(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라!)
- 어린 양(τὰ ἀρνία) / 아르니온(arnion.  ἀρνίον) a lamb
- 먹이라(Βόσκε, boske) / 보스코( βόσκω, boskó) to feed

양을 치라
(사도직을 수행하라!)
- 양(τὰ πρόβατά) / 프로바톤(probaton. πρόβατον) a sheep 
-  치라(Ποίμαινε, Poimaine) / 포이마이네(Ποίμαινε, Poimaine) Shepherd

내 양을 먹이라(주의 일을 이렇게 하라!)
- 양(τὰ πρόβατά)
- 먹이라((Βόσκε, boske) / 보스코( βόσκω, boskó) to feed

성경에서 은사(선물)로 얻는 것 두 가지를 찾는다면

첫째는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 12:31, 13:13)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둘째는 믿음입니다(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사로 주신 사랑을 회복하고 실천하려면 먼저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기 사랑을 위해서는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죄를 짓지 않는 것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알게 모르게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완전한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따라 완전한 의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새로운 이름으로 알려주신 이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던 예수님께서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이었습니다.
어부이었던 베드로를 부르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예수님 곁에서 듣고 보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정말 전인격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므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네가 누군줄 아느냐?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다.
그러나 내가 네게 묻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아가페)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아시나이다(οἶδα) - 에이도(eidó: be aware, behold, consider, perceive)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믿음을 고백하기 전에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실패한 자리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부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에 오르신 주님은 다시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시간 주님을 향한 나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주를 믿도라고 하면서도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고백과 더불어 주를 향한 믿음을 정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을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마태 5:13)
너희는 세상의 빛(마태 5:14)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들을 깨우칩니다.
소금과 빛으로 살지 못했던 지난 날의 부끄러움을 떨쳐 버리고 이제부터 소금과 빛의 사람으로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을 위한 이야기

오래 전에 저희 처가집 작은 아버님께서 작은 아들이 기독교교육과를 졸업하고 신대원에 입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작은 아버님께서 교회에 상처를 받아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상처를 받은 이유는 집 근처에 어느 교회 목사님이 이사오셨는데 톱을 빌려갔다고 합니다.
며칠이 지나도 톱을 가져오지 않아 그 목사님댁으로 톱을 찾으러 갔더니 톱이 마당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며칠 동안 비가내렸기 때문에 마당에 있던 톱이 녹이 슬었다고 합니다.
그때 목사가 저 모양이니! 교회갈 마음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출석하던 교회에서 대학원 입학했다고 등록금도 도와주지 않아 상실한 마음에 더  크게 실망하셨겠지요.
제가 이런 사정을 듣고 작은 아들 대학원 등록금을 준비하여 작은 아버지 댁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앞으로 아들이 신대원을 졸업 후 목사가 되어 어느 교회에 부임할 때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아버님은 어느 교회에 출석하시나요?
그때 목사가 거짓말은 할 수 없고 "예, 교회로부터 상처를 받아 교회를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할텐데 그러면 그 교회에서 받아줄까요?
그러자 잘 알겠다며 그 다음 주일부터 즉시 교회에 출석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가페 사랑이란 자기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희생이 동기가 되어 믿음을 상실한 사람도 주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 주님을 찾을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신 것은 아가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너희도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자기 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 이런 사랑으로 믿음의 현장을 아가페 사랑으로 잘 관리하고 지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프리카 임은미 선교사의 이야기
어느 택시 운전기사는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던 개소주를 만들던 집사님이 정직하지 못한 모습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났다.
그때 대략 손해본 것이 5만원, 택시 요금 1만 2천원 요금으로 1만 5천원을 지불하며 거스름돈은 가시다가 커피 한 잔 맛 있게 드시고
5만원 손해 본 것은 제가 대신 드릴테니 앞으로 교회에 나가세요 하고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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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9월)


가을의 문턱을 넘어 가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가며 주님의 섭리를 함께 경험하기 바랍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8

31

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는 자의 본(7절)

9

1

데살로니가전서 2:1∼20

강림하실 때(19절)

9

2

데살로니가전서 3:1∼13

장차 받을 환난(4절)

9

3

데살로니가전서 4:1∼18

휴거(17절)

9

4

데살로니가전서 5:1∼28

주의 날(2절)

9

5

데살로니가후서 1:1∼1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5절)

9

6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2: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강림하실 때(19절)
♦ 성구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For what is our hope, our joy, or the crown in which we will glory in the presence of our Lord Jesus when he comes? Is it not you?   

“주의 강림(降臨)을 준비하자!”
구약은 장차 메시아(예수)가 오실 것을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은 메시아(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예언은 하늘로 올라가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임재를 “강림(降臨)” 또는 “재림(再臨)”이라고 합니다.

주의 강림을 준비하는 신앙을 소개합니다.

첫째,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라(데살로니가전서 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둘째,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존하라(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셋째,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아라(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2:28)

세상이 너무 좋아 주님 오심을 사모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돈만 있으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데!"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주님 나라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나라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그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들에게는 신앙으로 경험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우한 폐렴이 만든 고통의 터널을 빛이 되신 주님과 함께 밝고 환하게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

https://www.youtube.com/watch?v=HFQcYkEque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장차 받을 환난(4절)
♦ 성구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In fact, when we were with you, we kept telling you that we would be persecuted. And it turned out that way, as you well know.   

왜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난(患難)이 닥쳐올까요?
환난은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5절).
마치 용광로 속에 넣은 온갖 낡은 고철이지만 그 안에서 끓고 또 끓은 후에는 순수한 철로 재생산되듯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일지라도 환난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삶의 무대 위에 다시 올려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삶의 무대 위에 올라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르짖으라(시편 50:15, 욥기 27:9)
둘째는 인내를 배우라(로마서 5:3)
셋째는 진실한 자를 따르라(잠언 25:19)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염병(染病)이 세상을 흔들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내고 그 가르침을 따라 믿음으로 견디고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환난과 핍박 중에도

https://www.youtube.com/watch?v=UDB0Mpf-6u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3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휴거(携擧, rapture)(17절)
♦ 성구 :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휴거(携擧, rapture)”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다만 “끌어 올려”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용어(用語)’라고 하겠습니다.
휴거는 단순한 ‘승천(昇天)’이 아닙니다.

휴거의 목적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종말(終末)과 세상의 혼란(混亂), 심판이 임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공중에서 재림하여 성도들의 일부를 공중으로 올려서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환난의 날에 공중으로 들려올라가는 성도들에게는 환난에서 면제될 것이라는 위로와 기대를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까지만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태복음 24:36)

마치 재림의 날짜를 아는 것이 신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빨리 지워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휴거란 내게 주어진 하루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와 같은 믿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저들에게도 구원받은 믿음을 실천할 수 있는 생각과 결단하는 용기를 주셔서 모두가 함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할 뿐입니다.

♪ 찬양 / 하나님의 나팔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e2GGYNfEGK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4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날(2절)
♦ 성구 :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You know very well tha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in the night.    

"주의 날"을 두 가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는 마지막 날(The Last Day)

마지막 날은 주님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이며 심판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에 양은 오른편으로 염소는 왼편으로 구분하실 것입니다.
나는 어느 편에 속할까요?

둘째는 주님의 날(主日, Sunday)

주님의 날은 주일(主日)을 말합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모여서 예배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흩어져서 예배하는 삶을 실천하던 주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은혜가 우한 폐렴으로 모일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흩어져서 개별적인 경건의 삶을 실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깨우침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이 살아있을 때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 믿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이 곧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을 하루같이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주님이 오신다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멈추고 주님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양과 염소를 모여서 활동하는 군집형 동물이라고 합니다.
여름철이 되면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자면 덥기 때문에 양은 서로 떨어져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염소는 떨어져서 자면 시원하고 좋지만 다른 녀석이 시원하고 좋은 것을 못견뎌하며 악착같이 붙어서 자려고 한답니다.

겨울철이 되면 양은 서로 붙어서 자는 것이 따뜻하고 좋기 때문에 서로 붙어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염소는 상대방이 따뜻한 것이 배가 아파서 일부러 떨어져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오른편에 속한 거룩한 주의 백성은 나보다 남을 높이고 존경하며 인정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섬김의 삶을 실천하므로 세상을 아름답게 세워가는 일에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주 예수의 강림이

https://www.youtube.com/watch?v=HFQcYkEque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1:1∼12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5절)
♦ 성구 :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All this is evidence that God's judgment is right, and as a result you will be counted worthy of the kingdom of God, for which you are suffering.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알아야 하겠지요.

1.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시편 33:12)
2. 말이 아니라 능력(행동)(고린도전서 4:20)
3.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로마서 14:17)
4.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마태복음 12:28)
5. 내 안에 세워진 나라(누가복음 17:21)

하나님의 나라를 다른 곳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환난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내 의지와 결단과 노력으로는 환난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주의 영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고
저희들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이 
주의 임재를 깨닫고
주님 나라 향하여
모두 함께 손잡고
그곳으로 걷게 하소서.

♪ 찬양 / 내 주의 나라

https://www.youtube.com/watch?v=g--LqfhUCE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9

7

데살로니가후서 2:1∼17

불법의 비밀(7절)

9

8

데살로니가후서 3:1∼18

사랑과 인내(5절)

9

9

디모데전서 1:1∼20

경계의 목적(5절)

9

10

디모데전서 2:1∼15

하나님의 소원(4절)

9

11

디모데전서 3:1∼16

경건의 비밀(16절)

9

12

디모데전서 4:1∼16

경건의 연습(7절)

9

13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2: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불법의 비밀(7절)
♦ 성구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For the secret power of lawlessness is already at work; but the one who now holds it back will continue to do so till he is taken out of the way.   

“不法의 秘密(the secret power of lawlessness)”
성경은 “불법(不法)을 죄(罪)”라고 합니다(요한일서 3:4)
따라서 “불법의 비밀”이란 “죄의 비밀”이라고 하겠습니다.

불법이란 “배도하는 일”을 일으키는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불법의 사람은 “자기를 하나님” 이라고 하며 주의 날이 언제 이를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말로만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속임수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불법의 비밀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 찬양 / 주의 진리 위해

https://www.youtube.com/watch?v=XbOKfMZYpA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8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3: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랑과 인내(5절)
♦ 성구 :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May the Lord direct your hearts into God's love and Christ's perseverance.

사랑(愛)과 인내(忍耐)
사랑이란 헬라어로 “아가페(ἀγάπη)”라고 하며, 인내는 “후포메내(ὑπομονή)”라고 합니다.
‘아가페’라는 “사랑”은 “하나님의 의지” 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합니다.
‘후포메네’는 “끝까지 참고 견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 받게 하려고 끝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산을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 요구하고 그것을 갖고 집을 나가 방탕한 삶을 즐겼던 작은 아들이었지만 그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를 찾아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며 무릎을 꿇었을 때 아버지는 “너는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내 아들” 이라고 하시며 아들을 품꾼으로 맞이한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맞이하셨습니다.

당시 율법은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 유산을 분배받는 행위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죄에 속합니다.

품꾼과 같은 저희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주님의 자녀로 인정하시고 맞아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도 참고 기다립니다.

지체하지 말고 아직도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돌아와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강의 은혜를 우한 폐렴이라는 시련의 시기가 계속될 때에도 마음껏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어서 돌아오오

https://www.youtube.com/watch?v=sB6E4awP8L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1: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계의 목적(5절)
♦ 성구 :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The goal of this command is love, which come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경계의 목적은 신앙을 바르게 지키려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다른 교훈을 배우지 않는 것(3절)
둘째는 무가치한 변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4절)
셋째는 복음만 좇는 것(11절)

참된 그리스도인은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항상 "나는 죄인의 괴수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15절).
이러한 고백을 "깨달음의 은혜"라고 합니다.
자기를 깨달을 줄 아는 믿음은 "선한 양심"을 갖고 살아갑니다(19절).
선한 양심은 "청결한 마음"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주님 사랑 증거 하는 행복한 믿음의 순례자로 맡겨진 본분 잘 감당하므로 착하고 충성된 사람으로 승리하시기 를 기도합니다.

♪ 찬양 / 나 맡은 본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5bb3rVpLcA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2: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소원(4절)
♦ 성구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Who desire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하나님의 소원(所願)

소원(所願)이란 한자는 "바 소(所)" "원할 원(願)"이란 훈(訓)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관리하도록 축복하셨던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급하게 달려가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을 하나님의 소원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속전(贖錢)으로 바쳐진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라고 합니다. 

교부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일곱 가지 대죄(大罪)는 "교만(驕慢, Pride), 시기(猜忌, Jealousy), 분노(忿怒, Anger), 나태(懶怠, Sloth. Indolence), 탐욕(貪慾, Greed), 탐식(貪食, Gluttony), 정욕(情慾, Lust)"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일곱 가지 죄에 하나를 더하면 "허영(虛榮, Vanity)"이라고 하겠습니다.

허영의 정체는 "사라질 광채"라고 합니다. 
죄가 만연하고 사회 정의와 질서가 무너져버린 시대를 급하게 몰아치는 또 하나의 죄는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허영'이라고 하겠습니다.
허영의 그림자는 돈, 권력, 좌파사상, 현실 만족과 같은 것들이겠지요.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믿음의 사람은 영혼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죄의 유혹에 대항해왔던 오랜 교훈과 지혜의 비밀을 되찾을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도 책임을 사명으로 깨닫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을 만족케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https://www.youtube.com/watch?v=uqCyLxesCe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1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3: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의 비밀(16절)
♦ 성구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By common confession, great is the mystery of godliness: He who was revealed in the flesh, Was vindicated in the Spirit, Seen by angels, Proclaimed among the nations, Believed on in the world, Taken up in glory.   

“경건(敬虔)의 비밀(秘密), the mystery of godliness”

“비밀(秘密)”이란 영어 단어는 "secret"과 "mystery"라고 합니다.
‘secret’는 ‘비밀’ 이라고 하며, ‘mystery’는 ‘신비’라고 합니다.

비밀은 그 내용이 밝혀지면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밝혀지면 유익합니다.
 
비밀이 밝혀지면 당사자가 곤경에 처합니다. 그래서 비밀은 그대로 묻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밝혀지면 좋습니다. 
신비는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만 알려집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자연의 신비한 법칙을 발견한 후 이것에 대해 설명해주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경건의 비밀은 신비와도 같습니다.
비밀을 헬라어로 “무스테리온(Musterion)” 이라고 합니다.
‘무스테리온’이란 헬라어에서 영어의 “mystery(신비)” 라는 단어가 파생했습니다.

경건의 비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밝혀질수록 사람들에게 정말 좋습니다. 이 비밀은 깨닫고 알수록 우리에게 큰 복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비밀보다 이 비밀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알려줘도 아무나 알기가 힘이 듭니다. 이 비밀, 이 신비는 들을 귀와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듣기도 하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경건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기도해야 합니다.

경건의 비밀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동정녀 탄생)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속죄의 제물)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부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승천)
다시 내려오실 것입니다(재림)

경건의 비밀은 신비(神秘, mystery)와 같습니다.
신비의 내용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신비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형식적이며 습관적입니다.
날마다 경건의 신비를 경험합시다.
은혜가 충만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승리하는 십자가 군병으로 승전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십자가 군병들아

https://www.youtube.com/watch?v=3K-bA_rj3V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2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4: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의 연습(7절)
♦ 성구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Have nothing to do with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rather, train yourself to be godly.   

경건(敬虔)의 연습(練習)
1986년 11월 어느 날 미국 애리조나 주에 거주하는 한 보석상이 우연히 수석 전시회에 들렀는데 15달러 가격표가 붙어 있는 돌멩이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틀림없는 사파이어 원석이었습니다. 그는 담당자에게 정말 15달러냐고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담당자는 현찰로 사면 5달러를 깎아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석상은 얼른 10달러를 내고 그 돌멩이를 구입했습니다. 그는 그 돌멩이를 쪼개고 다듬어서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까 판매액이 무려 228만 달러이었습니다. 1만원에 구입한 돌멩이가 무려 26억 원의 가치가 된 것입니다.
육체의 연습(bodily exercise)은 몸 즉 겉 사람을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경건의 연습은 심령 즉 속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경건의 연습을 위해서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즉 "성경 읽기"와 "묵상 기도" 그리고 "사랑의 실천"과 같은 훈련이라고 하겠습니다.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앤드류 보나(Andrew Bonar, 1810~1892) 목사는 경건 생활을 위한 세 가지 규칙을 세우고 실천했습니다. 그가 세운 경건생활의 목표를 소개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과도 말하지 않는다.
둘째,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기 전까지는 그 손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셋째, 성경을 읽기 전까지는 어떤 글도 읽지 않는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므로 날마다 심령을 새롭게 하는 영적생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한 폐렴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의 질서를 찾아가는 요즈음 화분에 심겨진 화초에 물을 주고 가꾸듯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경건의 연습을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영성과 인성의 사람으로 세워지시기 바랍니다.

♪ 찬양 / 행군 나팔 소리에

https://www.youtube.com/watch?v=jgsaNnViFQ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9

14

디모데전서 5:1∼25

선한 행실의 증거(10절)

9

15

디모데전서 6:1∼21

지족하는 마음(6절)

9

16

디모데후서 1:1∼18

거짓이 없는 믿음(5절)

9

17

디모데후서 2:1∼26

예수의 좋은 군사(3절)

9

18

디모데후서 3:1∼17

고통하는 때(1절)

9

19

디모데후서 4:1∼22

말씀을 전파하라(2절)

9

20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14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5: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선한 행실의 증거(10절)
♦ 성구 :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And is well known for her good deeds, such as bringing up children, showing hospitality, washing the feet of the saints, helping those in trouble and devoting herself to all kinds of good deeds.  

선한 행실(行實)의 증거(證據)(Proof of good deeds)

교회가 해야 할 사역 중에 하나는 과부를 경제적으로 보살펴야 하며, 과부는 나이가 육십이 넘고 한 아내의 남편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으로 자녀 양육을 잘 했다든지, 나그네를 잘 대접한다든지, 성도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이나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했다는 증거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과부를 책임지고 잘 돌보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권면입니다. 여기서 과부만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생각합니다.

성도는 선한 행실을 보이면 살아야 하는 일군입니다.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하며, 나그네를 대접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길 만큼 굳은 일을 찾아서 감당하며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한 질문에 대답하며 나를 점검해 봅시다.

첫째, 나는 선한 일을 잘 하고 있는가?
둘째, 나는 습관적으로 혹은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물질을 다른 사람과 잘 나누는가?
셋째, 나는 굳은 일을 도맡아서 하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고 외면하는가?

주여!
주님은 모범이시며 구속자이십니다.
결국 구속자이시며 모범입니다.
그래서 분투하는 자가 절망하여 산산조각 날 때
모범이신 것에 의기소침 할 때
구세주는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 순간에도
주님은
계속 분투하게 하시는 모범이 되십니다.
- 철학자 키에르케골(Kierkegaard)
 

♪ 찬양 / 나는 예수 따라가는

https://www.youtube.com/watch?v=94CEguIedp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5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6: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지족하는 마음(6절)
♦ 성구 :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지족(知足)하는 마음”

지족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13:5a)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지족하는 마음은 경건의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빛을 주신다.
-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는 것은 주신 것에 대한 조건 없는 감사를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에만 감사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까지도 합력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기다릴 때 감사의 열매와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족하는 마음은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지족하는 마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울 때 많은 사람들 앞에 선한 증거를 보여줄 것입니다.

우한 폐렴의 연단 시기가 모두에게 지족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족하는 믿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 찬양 / 지금까지 지내 온 것

https://www.youtube.com/watch?v=YHIpJDIjEO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6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1: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거짓이 없는 믿음(5절)
♦ 성구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I have been reminded of your sincere faith.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청결한 양심(3절)
근신하는 마음(7절)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8절) 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1666년에 영국 런던에 큰 불이 일어나서 많은 교회당이 전소하였을 때 당시 영국 왕 Charles 2세가 크리스토퍼 우렌 경을 총감독으로 임명하고 교회당을 재건하였습니다.

어느 날 우렌 경이 공사장에서 돌을 다듬는 석공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첫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이 돌을 깎아서 저 벽에 맞추어 넣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마누라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지금 대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우한 폐렴이 창궐하여 삶의 리듬이 깨어진 세상 같을지라도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를 다듬어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세워가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 찬양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7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2: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의 좋은 군사(3절)
♦ 성구 :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Endure hardship with us like a good soldier of Christ Jesus.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좋다”의 반대말은 “나쁘다” 입니다.
“좋은 군사”가 있으면 “나쁜 군사”도 있습니다.
누구나 좋은 군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교회가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내가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좋은 군사가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총명(聰明, insight)을 구하라(7절)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分別)하라(correctly handles)(15절)
셋째는 자기를 깨끗이 하라(cleanses himself)(21절)

군사(軍士, στρατιώτης. soldier)란 일군을 의미합니다.
충성된 일군은 주인이 분부하신 것을 기억하고 시와 때를 분별하여 자기 본분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군으로 우한 폐렴의 끈질긴 전염성을 물리치며 건강하게 영적 싸움의 현장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https://www.youtube.com/watch?v=XbOKfMZYpA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8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3: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고통 하는 때(1절)
♦ 성구 :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But mark this: There will be terrible times in the last days.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고통(苦痛) 하는 때라고 합니다.
고통(苦痛) 이란 어떤 것일까요?
여러 번역을 참조하여 살펴봅니다.
1. 공동번역 : 어려운 시기
2.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 어려운 때
3. NIV : terrible times(무서운 시기)
4. KJV : perilous times(위험한 시기)
5. NASB : difficult times(어려운 시기)

여러 다양한 번역을 참조하여도 단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 헬라어 단어를 찾아봅니다.

6. 헬라어 : 칼레포스(χαλεπός. chalepos)(difficult, hard)
"칼레포스"란 어떤 내용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hard) 시기라는 것을 말합니다.

"칼레포스"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8장 28절에서는 이런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비록 우리들이 고통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셨기 때문이며, 또한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마지막 고통 하는 때를 잘 견디려면 주님이 원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8:8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결국 성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때의 고통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이전 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릴 수 있는 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고통의 때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늘도 주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https://wwww.youtube.com/watch?v=xNnvmFCAXsA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9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4: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씀을 전파하라(2절a)
♦ 성구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Preach the Word; be prepared in season and out of season.  

성도들이 항상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항상 기뻐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
항상 기도하라(누가복음 18:1)
항상 소망을 품으라(시편 71:14)
항상 감사하라(빌레몬서 1:4)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라(히브리서 13:15)

항상(恒常) 힘써야 할 일들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전파(傳播)하다는 헬라어는 “케루소(κηρύσσω. kérussó)”라고 합니다.
케루소의 뜻은 “전령이 되라(to be a herald)” “선언하라(proclaim)”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말씀을 삶을 통하여 증거하고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장로님께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잘 하는 목사는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님은 목사처럼만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다.”

설교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설교를 자기 삶으로 고백하는 말씀을 전파하는 증인이 필요한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이런 막중한 책임을 갖고 이 시대의 밝은 등불이 되어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밝혀주는 거룩한 빛으로 삶의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주의 말씀 듣고서

https://www.youtube.com/watch?v=JI8vncK8wa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9

21

고린도전서 1:1∼31

십자가의 도(18절)

9

22

고린도전서 2:1∼16

하나님의 지혜(7절)

9

23

고린도전서 3:1∼23

하나님의 성전(16절)

9

24

고린도전서 4:1∼21

그리스도의 일군(1절)

9

25

고린도전서 5:1∼13

유월절 양(7절)

9

26

고린도전서 6:1∼20

주와 합하는 자(17절)

9

27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21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십자가의 도(18절)
♦ 성구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십자가(十字架)의 도(道)(the message of the cross)”
“도(道)”를 아시나요?”
도(道)를 한자에서는 “길”이라고 합니다.
헬라어에서는 “로고스(λόγος, logos)”라고 합니다.
로고스란 “말씀(言)”입니다.
복음서에서는 로고스를 “예수님” 이라고도 합니다.
결국 “도를 아시나요?” 라는 질문은 “예수님을 아시나요?” 라는 질문입니다.
간혹 거리에서 도를 아시나요? 하며 신앙의 질서를 흔드는 잘못된 종교에 미혹되지 말고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정말 주님께서 나를 아실까요?
마지막 날에 내가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노라 이런 책망을 듣지 않으려면 주님께서 나를 인정하시고 아는 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아는 사람은 “죄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죄를 짓는 것도 자유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자유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칼뱅)”은 “참된 자유는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으며,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할 수 있는 의지의 해방”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우한 폐렴의 전염병을 이길 수 있는 방역 수칙을 지키는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예수 더 알기 원하네

https://www.youtube.com/watch?v=CvbkOOoGuoI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2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2: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지혜(7절)
♦ 성구 :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No, we speak of God's secret wisdom, a wisdom that has been hidden and that God destined for our glory before time began.   

"하나님의 지혜(知慧), God's secret wisdom"
하나님의 지혜는 신비로운 감추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내가 누구인줄 깨닫는 것입니다.
지혜란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스런 지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는 마음"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은 성령의 능력에 다스림을 받는 마음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모두가 하늘 뜻 찾아 복잡하고 어지러운 땅에 거룩한 씨를 뿌려봅시다.

자유가 지워지는 땅에
공의가 흔들리는 땅에
진리와 생명의 씨를 뿌려봅시다.

♪ 찬양 /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https://www.youtube.com/watch?v=8qS1oqmbnTk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3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3: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성전(16절)
♦ 성구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성전(聖殿)과 교회(敎會) 그리고 예배당(禮拜堂)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시대에 솔로몬 왕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축한 것입니다.
현재는 예루살렘에 통곡의 벽이 그 일부분 유적처럼 남아있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배당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를 믿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곧 성전이라고 깨우칩니다.
심지어 성도들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강조합니다(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전과 같은 몸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위한 수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믿음이란 나는 어떤 질병에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일반상식을 무시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일반상식을 지키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광적인 믿음은 비정상적인 몸에 비성서적인 신앙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기도원에서 40일 금식을 마치고 강가로 나가 강 위를 걷고자 하는데 자꾸만 강물 속으로 빠집니다. 물 위를 걷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함에 갑자기 신앙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 기도원 원장을 찾아가서 왜 나는 물 위를 걷지 못하는가? 하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기도원 원장은 그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는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꾸짖기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당신은 40일 금식을 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 때문에 실패한 것” 이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팬데믹(Pandemic)이 지구촌을 거대한 수용소로 만들었습니다.
성도들은 그 수용소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강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성도들의 건강한 신앙 까닭에 아직도 믿음을 깨닫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가를 알려줄 수 있는 은총의 삶이 오늘이라는 무대 위에서 보기 좋게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 찬양 /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https://www.youtube.com/watch?v=BeFP_3ChK3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4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4: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일군(1절)
♦ 성구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So then, men ought to regard us as servants of Christ and as those entrusted with the secret things of God.

“그리스도의 일군”
일군이란 헬라어는 “후포레테스(ὑπηρέτης, hupéretés)” 라고 합니다.
‘후포레테스’는 “아래, 밑” 이라는 “후포”와 “노를 젓는다”는 “에레테스”가 합성하여 만든 단어로 “밑에서 노를 젓는 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의 배에 수십 개의 노들이 있는데, 배 안에서 한 사람이 하나씩의 노를 붙들고 북소리에 맞추어 노를 젓는데, 배 아래에서 노를 젓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어느 지점에 왔는지도 모르고 신호에 맞추어 노를 젓기만 합니다. 이렇게 노를 젓는 사람을  가리켜서 ‘후페레테스(일군)’라고 합니다.

배의 목적지는 선장이 알고 있을 뿐, 어디로 가느냐고 묻거나 밖을 내다볼 필요도 없습니다. 노를 저으라면 젓고, 멈추라면 멈추며, 빨리 저으라면 빨리, 천천히 저으라면 천천히 저으면 되는 이것이 바로 ‘후페레테스(일꾼)’입니다.

일군의 자세는 충성(忠誠)입니다.
충성이란 선장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선장이 되신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둘째는 서로 대적하지 말라.
셋째는 왕 노릇하라(죄를 다스리는 것).
넷째는 주를 본받으라.
다섯째는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회복하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릴수록 그리스도인은 오직 주님만 닮아가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 찬양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Z0ZFf1JkiM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5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5: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유월절 양(7절)
♦ 성구 :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Get rid of the old yeast that you may be a new batch without yeast as you really are. For Christ, our Passover lamb, has been sacrificed.    

"유월절(逾月節) 양(羊)"(Passover Lamb)

유월절 양은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입니다.
죄를 지은 존재는 사람이지만 죄인을 대신하여 양이 죄 값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만일 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억울하다!"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죄인은 죄를 지으므로 억울한 대상을 만들었고 또다시 양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 또 다른 억울한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본질은 악한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하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유월절 양 앞에서 포장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질을 드러내어 버려야 합니다.
본질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포장으로 덮어버리면 세상은 여전히 억울하다 외칠 것입니다.
본질을 벗어버릴 때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내가 할 일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앨버트 시바이처는 행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할 일이 있다(Something to Do)

둘째, 바라는 것이 있다(Something to Hope)

셋째, 사랑할 대상이 있다(Something to Love)


매일의 할 일은 악한 존재의 본질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매일 바라는 것은 주님 닮은 존재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눈에 사랑할 대상이 다가올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두려워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두 손 모아 기도합시다.
팬데믹 수용소에 갇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위한 유월절 양의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나도 사랑하며 살아보겠노라고..........

♪ 찬양 / 성자의 귀한 몸

https://www.youtube.com/watch?v=RbyeLcrljnQ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6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6: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와 합하는 자(17절)
♦ 성구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But he who unites himself with the Lord is one with him in spirit.    

나는 이 세상을 참가자로 살아 갈 것인가?
아니면 구경꾼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신앙생활에 적용한다면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신앙생활은 참가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믿는 신앙생활은 구경꾼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아는 단계에서 예수님을 체험하는 단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체험할 때 비로써 풍성한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주와 합한다는 것은 곧 예수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험할 때 주의 영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약한 사람에게는 감염의 속도가 빠르게 다가갈 것이지만 강한 사람에게는 감염 속도가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머리만으로 예수를 아는 신앙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온 몸으로 예수를 알려면 반드시 영으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 팬데믹 수용소에서도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너 십자가의 군병

https://www.youtube.com/watch?v=2phVn_cMO5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9

28

고린도전서 7:1∼40

부르심을 받은 자(22절)

9

29

고린도전서 8:1∼13

우상의 제물(1절)

9

30

고린도전서 9:1∼27

부득불 할 일(16절)

10

1

고린도전서 10:1∼33

신령한 반석(4절)

10

2

고린도전서 11:1∼34

주의 만찬(20절)

10

3

고린도전서 12:1∼31

더욱 큰 은사(31절)

10

4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28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7: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부르심을 받은 자(22절)
♦ 성구 :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For he who was a slave when he was called by the Lord is the Lord's   freedman; similarly, he who was a free man when he was called is Christ's slave.  

“부르심을 받은 자”를 “소명자(召命者)” 또는 “사명자(使命者)” 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하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옛 사람”은 부름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옛 생활에 붙잡혀 살아가는 사람으로 신앙의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새 사람”은 부름을 받은 후에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통하여 거듭난 사람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특별하게 부름을 받았다는 첫 번째 증거는 부름 받는 과정의 신비한 요소가 아니라 부름을 받은 후에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오직 그 길만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특별하게 부름을 받았다는 두 번째 증거는 자신과 같이 독신으로 지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라고 합니다.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결혼 적령기”와 “성생활 적령기”를 구분해야 합니다.
결혼 적령기란 결혼할 마음과 준비가 갖추어진 때를 말합니다.
성생활 적령기를 결혼 적령기로 착각하여 결혼을 할 때 그 결혼 생활은 불행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믿음으로 감당하겠다는 마음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때를 결혼 적령기라고 하겠습니다.

결혼 한 것도 결혼 하지 않은 것도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다만 부르심을 받은 대로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순종할 때 세속의 가치를 뛰어넘는 천국 가정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가족들끼리 부딪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힘들어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므로 천국 가정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완전한 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JH90fmLhpQ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29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8: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우상의 제물(1절)
♦ 성구 :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Now about food sacrificed to idols: We know that we all possess knowledge. Knowledge puffs up, but love builds up.   

“우상(偶像)의 제물(祭物)”이란 우상 제사에 사용된 음식을 말합니다.
한국의 경우 “제사 음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제사 음식을 먹어야 되느냐?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하느냐?
제사 음식을 먹으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까?
제사 음식을 먹지 않으면 거룩합니까?

구약에서는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율법으로 명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건강을 위한 것과 건강을 해롭게 하는 것으로 구분합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은 음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믿음이 연약한 사람에게 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가급적 삼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하느냐?
이런 의문보다는 믿음의 덕이 되느냐 될 수 없느냐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온 세상이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사람은 묶인 곳에서 자유를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전염병이 창궐 할 때 병을 이길 수 있는 거룩한 생활과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병이 옮겨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은 모든 병과 질병을 치유하시면서
도시와 마을을 여행 하셨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따라
모든 병자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주님, 우리를 지금 구하소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주님 치유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여 주시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통해 힘과 건강을 되찾게 하여 주소서.

주님, 국가들과 이웃 간에 서로 협력하고

무서움과 두려움에 빠지지 않게 우리를 치유해 주소서.

주님,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하는 이 질병을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는

우리의 교만을 치유하여 주소서.

이 불확실성과 슬픔의 시기에
모든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와 함께 하소서.

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이 주님의 영원한 평화안에서 안식하게 하소서.

주님, 질병과 절망으로 염려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병자와 죽음으로 인해 고통 받는 모든 가족들과 함께 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평화를 얻게 하소서.

주님, 질병에 걸린 자들의 치유를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수고하는
의사, 간호사, 연구자 및 모든 의료 전문가와 함께 하소서.

그들이 주님의 보호와 평화를 얻게 하소서.

주님, 모든 국가의 지도자와 함께 하소서.
그들이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와
진정한 관심과 사랑으로 행하는 예지를 주소서.

그들에게 미래의 발생에 대비하며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장기적 해결책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있게 지혜를 주소서.

그들이 이 세상에서 그것을 달성하기위해 함께 일할 때
주님의 평화를 얻게 하소서.

우리가 집에 있든 해외에 있든,
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든,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가 인내하고 애통해하고 견디며 준비할 때
우리와 함께 하소서.
주님, 우리가 염려하는 대신에 주님의 평화를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를 치유해 주소서. 아멘.

♪ 찬양 / 너 십자가의 군병

https://www.youtube.com/watch?v=2phVn_cMO5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30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9: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부득불 할 일(16절)
♦ 성구 :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Yet when I preach the gospel, I cannot boast, for I am compelled to preach.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부득불(不得不) 할 일”이란 무엇일까요?
한국에서는 “의식주(衣食住)”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식의주(食衣住)”라고 합니다.
북한의 경우 먹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에 “식(食)”이 우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핵심적으로 강조하셨던 말씀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라!
둘째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첫째는 지상명령 입니다.
둘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하기 때문입니다(에스겔 3:18∼19)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사랑하라는 명령의 핵심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깨우치지 않아서 그가 멸망했다면 그 피 값을 우리에게서 찾으시겠다고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깨우치고 애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너무 악하여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아서 멸망했다면 우리의 할 바를 다했기에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처럼 부득불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므로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뒤 흔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병에 감염된 아픈 환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우들을 치유하고 도와주시옵소서.
그들의 몸과 영혼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감염의 확산을 하루 빨리 막아주시옵소서.

♪ 찬양 / 온 세상 위하여 나 복음 전하리

https://www.youtube.com/watch?v=d-vayJOkgh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탄 마귀 귀신(요한계시록 12:9) 수요성서학당 #. 16(09-30-27)

수요성서학당 #. 16(09-23-27)

사탄 마귀 귀신(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The great dragon was hurled down that ancient serpent called the devil, or Satan, who leads the whole world astray.
He was hurled to the earth, and his angels with him.

요한계시록 20:2,
을 잡으니 곧 옛 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He seized the dragon, that ancient serpent, who is the devil, or Satan, and bound him for a thousand years.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사탄과 마귀의 정체에 대한 성경의 결론은 큰 용, 옛 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도입 이야기)

인도 설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파라문교인 한 사람이 제사에 쓰려고 산양을 사 가지고 오는 것을 본 악인 세 사람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그가 오는 길목에서 각각 떨어져 기다리고 있었다.

파라문교도가 가까이 오자 첫 번째 악인이 그 앞에 나타나자
'오! 성자여 당신은 무엇에 쓰려고 그 더러운 개를 메고 가십니까?' 라고 말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이 가지고 가는 것은 산양이라고 대꾸했다.

조금 후 두 번째 사람이 똑같은 말로 물어왔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의아심이 생겨 메고 가던 산양을 내려 살펴보고는 그제서야 안심하였다.

조금 걸어가다 세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자 그도 똑같은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정말인가 하여 결국 그는 산양을 땅바닥에 버려두고 황급히 가버렸다.
이를 본 악인들은 기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귀에 들리는 이야기들 중에는 무고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몇 번 듣다보면 우리 안에서 진실인 것 마냥 자리 잡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단은 이런면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사탄의 전술 전략에 대해서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사탄과 마귀 그리고 귀신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정체성을 성경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사탄과 마귀(魔鬼)는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귀신(鬼神)’과는 다릅니다.

귀신은 헬라어로 다이몬(δαιμων)인데 여기서 영어의 ‘demon’(악령)이 파생합니다.

성경은 ‘사탄’과 ‘마귀’를 단수로 기록하고 있지만 ‘귀신’은 단수와 복수로 모두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단인가? 사탄인가?

한글 성경은 악한 영들의 존재를 ‘사탄’ ‘사단’ ‘마귀’ ‘귀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탄’과 ‘사단’은 같은 말이며 발음상의 문제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 원문이 두 단어를 혼용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다른 음역(音譯)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1961년에 개정된 개역한글성경은 ‘사단’이라고 번역했지만 98년에 개정된 후 대부분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성경과 공동번역, 현대어성경, 표준새번역 등은 ‘사탄’으로 번역했다. 둘 중에 더 정확한 음역은 ‘사탄’(Satan)이며 ‘대적’ ‘대적자’ ‘고소자’라는 뜻이다.

마귀(魔鬼)’는 히브리어인 ‘사탄’의 뜻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디아볼로’(διαβ λλω)이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히브리어이고, ‘마귀’는 헬라어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은 마귀와 사탄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시러 광야에 가셨다(4:1)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는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 지역에서 귀신을 쫓아냈을 때 많은 귀신이 귀신들렸던 사람에게서 나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가기도 했다(막 5:13).

마가복음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께서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이라고 언급하신 것과 성경의 여러 본문을 고려할 때 ‘귀신’은 ‘사탄’ 혹은 ‘마귀’가 부리고 있는 낮은 등급의 악한 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귀를 대적하라!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順服)할지어다 마귀(魔鬼)를 對敵(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避)하리라

* 마귀(魔鬼)를 대적(對敵)하라!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에베소서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에베소서 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대적하다(안디스테미, anthistémi.  ἀνθίστημι) : to set against, i.e. with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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