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 강의안

2018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

주제 / 고백과 성령(Confession & Holy Spirit)


성경 - 베드로전서 1: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Be holy because I am holy.)

주제 찬송 / 15장 내 영혼 이제 깨어서


Sep. 1(Sat) ∼ 3(Mon)

Mt. Giles Conference Center

Add: 439 East Rinker Rd. Stroudsburg. PA 18360

Phone (570) 629-0920

1강(9월 1일) / 토요일 오후 6:30-9:20
☞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5:1∼11)

2강(9월 2일) / 주일 오전 6:00-7:30

☞ 죄를 자백하자!(요한일서 1:9)

3강(9월 2일) / 주일 예배 오전 9:30-12:00

☞ 서로 사랑하자!(베드로전서 4:8)

4강(9월 2일) / 주일 오후 5:00-6:20

☞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 19:2)

5강(9월 3일) / 월요일 오전 6:00-7:30

☞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고린도후서 6:10)

6강(9월 3일) / 월요일 오전 9:30-12:00
☞ 예수의 흔적(갈라디아서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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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고백과 성령(Confession & The Holy Spirit)
성경 / 베드로전서(1Peter) 1: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Be holy because I'm holy.
찬송 / 15장 내 영혼 이제 깨어서

고백(告白)
1. 마음속에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함
2. 죄를 용서받고자 고해 신부에게 죄를 숨김없이 밝힘

- 알릴 고(告), 고할 고(告)
- 말할 자 백(白)

성령(聖靈)
1. 성부 성자와 함께 성삼위의 하나

- 성스러울 성(聖), 거룩할 성(聖)
- 신령 령(靈)

Ⅰ. 역사적 의미
-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1938. 9. 9. - 신사참배 장로교단의 결의(27차 총회)
* 1948. 8. 15. -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 9. 9.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 공산정권 시작)
1958. 9. 9. - 북한의 교회 폐쇄
* 1994. 7. 8. - 김일성 사망 후 김일성 유훈 통치 대략 4년 동안
1998. 9. 9. - 김정일 정권 세습

9월 9일은 한국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사건들이 9월 9일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9월 9일을 맞이하여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Ⅱ. 교회사적 의미
- 이민교회의 과제

1902. 12.  20. 첫 이민의 시작(102명), 58명은 인천 내리교회 교인(56.8%)

1903. 1. 12. 하와이 도착 후 기도의 제단을 쌓다(미주 한인 이민교회의 시작).

1903. 11. 미연합감리교회의 도움을 받아 교회를 조직하고 “하와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 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Ⅲ. 성경은 고백의 말씀

(예화) 희랍의 민화 중에 ‘포대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
일생동안 밀가루 포대를 만들면서 늘 ‘내가 막아버렸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

밀가루 포대를 만들던 사람이 하루는 꿈을 꾸는데 넓은 들판에 수많은 샘들이 솟아나는데 특이한 것은 샘마다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들판을 지키는 사람에게 샘물에 쓰여 있는 사람의 이름과 샘은 무슨 의미인가? 하고 물었더니 샘에 쓰여 있는 이름은 그 사람이 샘물이 솟아나는 것만큼 복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넓은 들판에서 자기 이름이 쓰여 있는 샘을 찾았는데 샘에서 물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 다른 샘에서는 물이 콸콸하고 잘 나오고 있었다.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이 샘이 막혀버렸구나! 그렇다면 내가 샘을 뚫어줘야지 하고 긴 장대를 갖고 자기 이름이 쓰여 진 샘의 구멍에 긴 장대를 넣고 마구 쑤셨다. 그리고 장대를 뽑았더니 순간적으로 흙탕물이 솟구치더니 그나마 졸졸 나오던 물마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떴는데 꿈이었다. 참 이상한 꿈이구나! 하고 아침을 맞아 평소와 다름없이 가게 문을 열고 열심히 밀가루 포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 마을을 민정 시찰하던 어진 왕이 그 가에 앞을 지나가며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주위 사람들에게 묻기를 “왜 저 사람은 하루 종일 내가 막아버렸지!” 하며 웅얼거리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말하기를 “저 사람이 참 착합니다. 거짓을 모르고 속일 줄도 모릅니다. 너무 정직해서 저렇게 어렵게 지낸다.”고 하였다. 어진 왕은 그날 저녁 신하에게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의 집에 왕이 먹는 빵을 한 접시 만들어 보내라고 하였다. 왕의 신하가 보낸 빵을 받은 사람이 한 접시의 빵으로는 우리 식구 한 끼 정도의 식량밖에 안 되니 차라리 빵집 주인에게 이 빵은 왕궁에서 만든 왕의 식탁에 올라가는 아주 맛있는 빵인데 내가 이것을 줄 테니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주겠소? 하고 제안을 하자 빵집 주인은 당신 가족들이 한 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빵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역시 나는 머리를 잘 굴리는구나! 하며 앞으로 일 주일은 빵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가족들에게 자랑하였다.

얼마 후 어진 왕이 그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여전히 “내가 막아버렸지!” 하며 중얼거리는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의 말을 듣고는 아직도 부족한가 하며 그날 저녁 신하에게 궁궐에서 왕이 먹는 맛있는 과일 한 접시를 보냈다. 그러자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또다시 머리를 굴려 과일도 늘 먹던 사람이 먹어야지 평소에 먹지 않던 과일을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으니 차라리 과일을 과일가게 주인에게 가져간 후 임금님이 보내주신 과일인데 당신은 내게 무엇을 주겠느냐? 하고 제안하였더니 과일 가게 주인은 당신 가족들이 평소에 먹던 과일을 일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만큼 가져가라고 한다.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역시 사람은 머리를 굴려야 한다며 가족들에게 자랑을 하였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왕이 그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여전히 “내가 막아버렸지!” 하며 웅얼거린다. 왕은 또다시 신하에게 이번에는 금화가 가득한 자루 하나를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이 가게에서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므로 그 다리 중간에 자루를 놓고 기다렸다가 그 사람이 집으로 갈 때 들고 가도록 지키라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던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이 다리 앞에 서더니 평생토록 건넌 다리가 아닌가! 오늘은 눈을 감고 건너야지 하고 두 눈을 감고 다리를 건너가므로 다리 중간에 있던 금화가 가득한 자루를 볼 수 없었다. 결국 그 자루를 신하가 다시 들고 와서 왕에게 내려놓자 왕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하고 묻자 신하는 자기가 본 그대로 설명하였다. 그러자 왕은 할 수 없구나! 그 사람의 복은 그것뿐이구나! 하고 더 이상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빵을 만들던 사람은 도대체 왕이 먹는 빵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고 빵을 잘랐더니 그 안에 금화가 감추어져 있었다. 또한 과일 가게 주인은 도대체 왕이 먹는 과일은 어떤 맛일까? 하고 과일을 잘랐더니 그 안에 역시 금화가 있었다. 결국 빵집주인과 과일가게 주인만 부자가 되었다.

오늘 2018년 수련회를 시작하는 첫 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무슨 복을 내려주셨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It is as if the dew of Hermon were falling on Mount Zion. For there the LORD bestows his blessing, even life forevermore.)

영생이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백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에서 대표적인 고백을 소개합니다.

☞ 욥의 신앙고백(욥기 23:10)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 욥기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My ears had heard of you but now my eyes have seen you.)   

☞ 백부장의 신앙고백(마태복음 8:8)

-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The centurion replied, Lord,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But jus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When Jesus heard this, he was astonished and said to those following him, I tell you the truth, I have not found anyone in Israel with such great faith.) 

* 마태복음 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Then Jesus said to the centurion, Go! It will be done just as you believed it would. And his servant was healed at that very hour.)   

송재천목사와 아들 송문호

뇌에 이상이 생겨 수술 후 시력을 잃었다. 사춘기 소년에게 찾아온 불행한 사건이었는데 송문호군의 고백은 “세상의 온갖 더럽고 추한 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하시려고 시력을 가져 가셨다.”

소년의 입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백의 믿음을 갖는 사람에게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나.

이상현박사와 아들의 죽음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가의 도랑에 빠져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을 때 신학자로서 목사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슬픔에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미국인 교수가 저녁마다 찾아와서는 거실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몇 시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고 가더랍니다.

그런데 한인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와서 찬송을 부르고 위로하고 기도하는데 도저히 마음의 위로가 안 되고 평안이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인 교수가 처음에는 참 이상하구나! 생각했는데 일주일을 계속하여 거실을 지키는데 그 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지켜보시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슬픔을 당한 가정에 찾아가서 찬송하고 성경을 찾고 설교하는 것보다 그 곁에서 진심으로 함께 하는 위로가 참된 위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클레이풀 교수의 고백

미국의 철학자인 클레이풀 교수가 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그곳에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소녀는 기형아였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정서가 발달해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클레이풀이 소녀에게 물었다.

내가 네 처지였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바꾸어 놓았는가?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가 가진 것은 너무 많아요. 음악을 듣고 명작을 읽을 수 있는 귀와 눈이 있어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도 있구요.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물이 많은데 왜 내가 슬퍼해야 하나요?

클레이풀 교수는 소녀의 고백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신앙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복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심지어 사람의 표정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표정이 우울한 신자는 자신의 삶을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고백이 주위에 누군가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의 길을 길었던 우리들이 이 시대에 고백을 회복하므로 이제까지 누릴 수 없었고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스펄전의 고백

위대한 설교가로 알려진 스펄전(C. H. Spurgeon)은 그의 생(生)의 말년에 투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 때 한 성도가 병문안을 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목사님, 많이 아프시죠?” “네. 너무 아픕니다. 이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가 이렇게 아플수록 더욱 가까이 제 곁에 와 계십니다.” 그는 자신의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놀라운 주님의 사랑의 체험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틀러 경호원 쿠르트 바그너의 고백

히틀러의 경호원 중에 쿠르트 바그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히틀러를 신처럼 숭배했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히틀러가 자살하자 자신의 인생도 붕괴되는 것을 깨닫고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하던 중 전도책자를 보고 집어 들었다가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크게 변화되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경배대상을 찾은 그는 바로 부근의 목회자를 찾아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며 평화의 주인이시다.”

성경은 성령의 말씀
- 성령은 깨닫는 영이다!

(도입 이야기) 나의 출생과 목회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내 모습을 알게 된 그 때의 모습

조부 이성봉장로(윤봉선), 외조부 김창하장로(백애제)
부 이영복장로, 모 김은신권사
아들을 낳으면 목사로 바치고, 딸을 낳으면 전도사로 평생 독신으로 살아라.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후에 6. 25 전쟁이 일어났고 그 시대에 어머니의 젖을 빨면 젖지 나오지 않아 헛배가 불렀다고 합니다.

1. 급성 폐렴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
출생 후 여덟 달이 지나 한국전쟁(1950. 6. 25)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제대로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에 급성폐렴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후 목사로 바쳤으니 죽어도 교회 강단 앞에서 죽어야 한다며 강단 앞에 내려놓고 밤새도록 눈물로 기도하셨던 어머님. 다음 날 아침 열이 내리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어서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하는 말은 ‘무슨 약을 사용했느냐? 이 난리 통에 그런 약이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며 동업을 하자고 제안하더랍니다. 그때 예, 다른 특별한 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신구약을 썼습니다.

2. 자동차 사고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
유치원 때에 당시 경전병원장의 지프차 뒤에서 여자 아이와 함께 있었는데 여자 아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엄마가 죽은 딸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머리가 깨져 골이 머리 밖으로 나온 것을 안고 다녔다). 마침 내가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오는데 죽은 딸을 안고 있던 엄마가 나를 보더니 달려오며 너는 살았는데 내 딸은.......하며 내게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즉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었다.

3. 고압선에 감전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
초등학교 때 등교하려고 학교로 가는 길에 마침 대한석탄공사 건물 신축 중 4층 위에서 시멘트 강화벽으로 세웠던 판자를 제거하는 중에 고압선을 끊어 그 아래에 지나가던 내 왼쪽으로 스쳐 지나갔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쓰러져 허우적거리다 다시 일어나 학교로 갔는데 왼편 발 옆이 터져있었고 기적적으로 살았습니다.

이번 수련회는 제가 주님의 부름에 대한 소명과 사명을 확인하려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과정에서 함께 내게 역사하셨던 주님의 은혜와 앞으로 인도하실 주님의 은혜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2000년 7월 4일 저희 가족들이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공항으로 이민자로 첫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큰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작은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50이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늦은 나이에 왜 미국으로 가려는가?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목사가 되려면 좀 더 넓은 세계에 가서 일찍부터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큰 아들의 국민학교 담임선생이 “사무엘아, 너무 참 좋겠다. 일찍부터 너의 목표가 정해졌고 그 목표를 위해 아버지가 너를 뉴욕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이 되는구나! 앞으로 유명한 목사가 되거든 선생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당시는 조기 유학이라는 것을 생각도 할 수 없는 때 이었습니다. 마침 저희 교회에 세브란스 병원 내과 과장 이선주 집사님이 뉴욕의 국제 면허증을 갖고 세브란스 외국인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인요한박사가 있다며 그 분을 소개하여 뉴욕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신체검사 및 예방 접종에 대한 서류를 준비하여 뉴욕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바로 학교 입학시켰습니다. 당시 아들이 입학했던 학교가 Rego Park에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다시 서울로 나갔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큰 아들이 고등학교를 마치자 이제는 뉴욕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때 제가 아들에게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 혼자는 보낼 수 없다. 만일 네가 원한다면 다른 가족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 아들 다니엘은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자베트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뉴욕에 와서 다시 검사한 후에 댄디 워커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의 머리에 큰 뇌와 작은 뇌가 있는데 이 병은 작은 뇌의 일부가 물로 채워져 있는 병이라고 합니다. 원인은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장애인 학교에 입학을 해야 하는데 작은 아들이 장애인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여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들 때문에 제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장을 2년 동안 맡았습니다.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 배경은 세브란스 병원 담당 의사가 뉴욕시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므로 다니엘에게 맞는 과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 뉴욕으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당시 저희 부모님과 제 동생 세 명의 가족들 모두 뉴욕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뉴욕 생활의 출발이었습니다.
저희가 한국미대사관에서 7월 3일에 영주권을 받고 그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는데 그 날이 7월 4일이었습니다.

저희 가족들이 뉴욕 행 대한항공 비행기에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뉴욕에서 목회자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들 어렵다고 합니다. 만일 목회를 전념하지 못하면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결국은 세상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사오니 무슨 이이 있든지 목회가 우선이 되게 하시고 목회를 하는 동안 목회자 사례는 매월 $1000만 받겠습니다.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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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9월 1일 오후 6:30∼7:30)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5:1∼11)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When Simon Peter saw this, he fell at Jesus' knees and said, "Go away from me, Lord; I am a sinful man.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은?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은?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은?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은?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에는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것,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시간(時間)입니다.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대이(Michael Faraday, 1791. 9. 22∼1867. 8. 25)가 남긴 말입니다.

시간에 대한 두 가지 용어를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크로노스(Chronos)
둘째는 카이로스(Kairos)

크로노스는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하루가 지나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일 년이 지나갑니다. 지나간 인류의 역사를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크로니클(Chronicle, 연대기) 이란 영어 단어가 크로노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하여 진행합니다. 예를 들면 해마다 나이가 한 단계씩 올라갑니다. 내 의지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시간을 크로노스 즉 일상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특별한 시간을 말합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가 모두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나만의 특별한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왜 우리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파스칼(Pascal) 인간은 중간적 존재

시간적으로 과거와 미래의 중간 현재
공간적으로 하늘과 땅의 중간 땅위에서 활동
형태적으로 하나님도 아니고 천사도 아닌 인간

2018년 가족수련회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의 생애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베드로의 생애를 살펴보면 베드로에게서 세 가지 고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 가지 고백이란 죄의 고백과 믿음의 고백 그리고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첫째는 죄(罪)의 고백 / 누가복음 5:10
둘째는 믿음(信)의 고백 / 마태복음 16:18
셋째는 사랑(愛)의 고백 / 요한복음 21:15, 16, 17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고백에 따른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죄의 고백에 대한 말씀

누가복은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죄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5:10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죄(罪)란 무엇인가?

허물 죄(罪)의 한자를 파자하면 넉 사(四)와 아니 비(非)자의 결합이 된 것입니다.
네 가지 아닌 것들에 대해서 성경에서 찾아봅니다.

죄(罪)라는 한자는 두 사람이 등을 돌린 상태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담은 하와를 향하여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후에 아담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저 여자 때문’이라고 잘못의 원인을 여자에게 돌렸습니다. 등을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언제나 등을 돌린 우리들을 지켜보십니다. 주님이 등을 돌리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불신(不信) 요한복음 16:9, 마가복음 16:16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In regard to sin, because men do not believe in me.)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불선(不善) 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Anyone, then, who knows the good he ought to do and doesn't do it, sins.   

불의(不義) 요한일서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All wrongdoing is sin, and there is sin that does not lead to death.

불법(不法) 요한일서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Everyone who sins breaks the law; in fact, sin is lawlessness. 

죄의 특징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믿음의 고백에 대한 말씀

마태복음 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믿음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란 한자는 믿을 신(信)
믿을 信자를 파자하면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

1968년 여름 가나안농군학교 고등학생으로 입교하여 특수훈련을 받을 때 식사 때마다 반드시 암기해야 하는 열 가지 구호가 있었습니다. 그 구호 중에 ‘한마디의 말이 약속어음이 되어야 한다.’ 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이었던 윌리암 제임스의 명언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면 말이 바뀔 것이다.
말을 바뀌면 행동이 바뀔 것이다.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뀔 것이다.
습관을 바꾸면 인격이 바뀔 것이다.
인격을 바꾸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맡길 수 있습니까?
기도로 맡겨야 합니다.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Cast your cares on the LORD and he will sustain you; he will never let the righteous fall.)      

믿음이란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맡기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솰라크’ 라고 합니다. 솰라크의 뜻은 ‘던지다’ ‘신뢰하다’입니다. 즉 신뢰하므로 모든 짐을 던져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산꼭대기로 커다란 둥근 돌을 밀고 올라가서 반대편 방향으로 밀어버리는 것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결코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긴장해야 하고 둥글고 큰 돌이 다시 원위치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마쳐야 맡겨 버리는 것이 됩니다.

어려운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시각장애인 교수 김기현집사(연대 94학번)
대학 입학 후 턱 부정교합 수술 중 실명하여 중도 실명자가 되었다. 기독교 교양 과목을 가르치는 김정주교수의 도움을 받아 졸업하기 전에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1. 실명하지 않는 남자
2. 요리를 잘 하는 남자
3. 아이를 잘 양육하는 남자
4. 시댁의 가족들이 시각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족
5. 예수를 잘 믿는 남자
6. 나이 차이가 3살 터울로 위 또는 아래의 남자
7. 생활 능력이 있는 남자
8. 가정적인 남자
9. 미국 유학을 갈 때 같이 가서 도와줄 수 있는 남자


시력이 온전한 여자일지라도 이런 조건을 갖춘 남자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아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믿음을 갖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도움을 주던 김정주교수도 그것은 아니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나이 차이가 6살 터울이라 기도 제목에서 어긋났으므로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에 깨닫게 된 것은 나이 차이가 3살 터울이면 자주 다투고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보스톤 대학에 유학을 한 후 장애인 재활 상담학을 전공하고 평택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랑의 고백에 대한 약속

요한복음 21:15, 16, 17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Agapao)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Agapao)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Phileo)

요한복음 21:15, 16, 17
내 어린 양을 먹이라(Feed my lambs.)
내 양을 치라(Take care of my sheep.)
내 양을 먹이라(Feed my sheep.)    

사랑 애(愛)
사랑 애(愛)자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로 소개됩니다.

첫째는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
둘째는 힘들고 괴로워도 참는 것

사랑에 대한 한문자의 두 가지 정의를 이해하려면 사랑 애(愛)자를 분석해야 합니다.
  
사랑 애(愛)자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손톱 조(爪), 덮을 멱(冖), 마음 심(心), 뒤져올 치(夂)

그런데 사랑 애(愛)자의 고어는 마음 심(心)을 중심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 애(愛)자의 윗부분은 다시 목메일 기(旡)자와 마음 심(心)의 합자라고 중문자보에서 소개합니다.

첫째는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

사랑을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사랑 애(愛)자가 한문자 받을 수(受)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둘째는 힘들고 괴로워도 참는 것
사랑을 힘들고 괴로워도 참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사랑 애(愛)자가 한문자 사랑 애(愛)자의 윗부분은 목메일 기(旡)자와 마음 심(心)의 합자라고 중문자보에서 소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랑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대학시절 교양 과목을 수강할 때 여러 문학부 학생들이 함께 강의를 듣습니다. 그런데 영문과 여학생을 사모하는 철학과 학생이 한번 만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여 그 여학생을 만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한 후 두 사람이 당시 시청 앞에 있는 어느 다방에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때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있었던 사례를 소개합니다.
고백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일방적인 고백을 자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올바른 고백에 대해서는 분명한 약속과 축복이 있습니다.

죄의 고백에 대해서는 제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고백에 대해서는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고백에 대해서는 내 양을 먹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8년 수련회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크로노스와 같은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와 같은 주님의 은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복된 시간으로 새겨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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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9월 2일(주일) 오전 6:00∼7:30

죄를 자백하자!(요한일서 1:9)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to forgive us our sins, and to cleanse us from all unrighteousness.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처럼 어제 함께 나누었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여정에서 세 가지 고백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죄의 고백

죄를 고백했을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분의 변화가 되었습니다. 어부에서 제자 또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의 고백

믿음을 고백했을 때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직분의 변화가 되었습니다. 어장을 관리하던 어부가 이제는 교회에서 교인들을 관리하는 목자가 된 것입니다.

셋째는 사랑의 고백

사랑을 고백했을 때는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베드로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을 말합니다.

상급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어부는 어부로서 일생을 마쳐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양을 먹이는 목자는 주님 나라의 상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받은 상급은 순교의 반열에 세워진 것입니다.

왜 죄를 고백해야 하는가?
어떻게 죄를 고백해야 하는가?

자백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호모로게라고 합니다. 호모로게는 같다는 뜻의 호모와 말한다는 레고라는 두 개의 단어가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자백은 자기의 죄를 아뢰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죄를 내가 모두 기억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잊어버린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모로게라는 단어는 내가 지은 죄를 내가 모르지만 하나님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억하고 있는 그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자백이 온전한 회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죄를 내가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내게 임하여 나로 하여금 내가 지은 모든 죄를 기억나게 합니다. 따라서 자백이란 내 의지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내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자백했습니다.
이제까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잘 잡는 사람은 베드로이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이런 것이 기적입니다.

(예화) 동해안 울산해안경비사령부, 해안경비 초소 내무반원들에게 주일마다 심방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 울산의 낚시꾼들이 제게 부탁하기를 해안가에 들어가서 낚시를 한 번 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하여 해안경비사령관의 허락을 받아 교회 청년들과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아무도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 다니엘이 던진 낚시에 물고기 한 마리가 올라왔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이 고기를 잡는 순간 모두 와! 하고 소리쳤습니다.

왜 베드로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겠습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합니다.

자백하기 이전에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다만 내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도 없었고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백이 이루어진 후에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화) 신입 사병들이 훈련소와 특수학교에서 과정을 마치고 부대로 전입해 오면 인사과에서 사병들을 주특기에 따라 분리하여 예하 부대로 보냅니다. 한번은 여러 사병들이 전입신고를 하려고 준비할 때 먼저 신병들의 소지품 검사를 합니다. 대부분 주머니에서 모든 소지품을 모자를 벗어 그 안에 담게 합니다. 그러면 신병들은 순식간에 모든 소지품들을 모자에 담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책상 앞에 서게 한 후에 모자에 담았던 소지품들을 책상 위에 쏟아 놓게 합니다. 그리고 자대생활에 필요한 것은 소지할 수 있도록 다시 돌려주고 자대생활에 필요하지 않는 것은 인사과에 보관하거나 아니면 배치를 받는 부대의 지휘관에게 전달하여 관리하도로 합니다. 한번은 어느 사병의 소지품 중에서 사용할 수 없는 볼펜이 나왔습니다. 그 사병에게 이 볼펜 써지지 않는다. 버려도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예 버려도 됩니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그래서 쓰레기통으로 볼펜을 던져 넣는데 그 사병의 눈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볼펜을 지켜봅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이 있어서 볼펜을 다시 꺼내 볼펜을 분리하였더니 그 안에 만 원짜리 지폐가 똘똘 말아서 대략 1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사병에게 돈이 있으면 맡기라고 하였는데 왜 맡기지 않았는가? 물었더니 혹시 자대에 배치되면 고참들이 돈을 빼앗을까 하여 감춘 것이라고 합니다. 사병에게 인사과에 돈을 맡겼다는 증서를 발급하고 사병의 사인을 받은 후에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들에게 신앙생활에 필요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버리는 것이 자백이며 회개라고 하겠습니다.

회개(Shoov 슈브)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마음속에 모셔 드리며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순간 인간은 영은 중생(born again)하여 영적으로 변화된 상태(change of status) 즉 미크바(Mikvah)가 된다. 이렇게 될 때 죄인이 구원 받고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를 함께 누릴 예슈아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히브리 뿌리를 통해서 본 회개는 참으로 구체적이다.

회개를 슈브(ב ש)라고 합니다.
슈브는 신(ש)은 ‘파괴 시킨다(destroy)’는 뜻이며,
베트(ב)는 ‘집(the house)’ 이란 뜻입니다.
즉 예전에 살던 집(베트) 즉 옛 성품과 구습과 행동은 불로 태워 신(신) 부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 옛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고대 히브리 글자의 모양과 뜻은 우리에게 회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원래의 뜻은 정복자가 모든 포로들을 귀화시키기 원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포로들이 자기가 살던 옛 고향 집을 사모하고 돌아가려고 한다면 이 계획을 이룩할 수 없게 된다.

과거와의 인연을 완전히 분쇄시키기 위해 정복자는 포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들이 살던 옛집을 완전히 불태워 버려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이 같은 배경에서 “회개(Return, Repentance)” 란 말이 비롯되었다. 즉 돌아갈 옛 집이 없으면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옛 성품을 완전히 부숴뜨려야 구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때가 바로 진정한 회개한 상태다

회개라는 헬라어 단어는 ‘메타노이아’ 라고 합니다. 메타노이아의 의미는 ‘과녁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소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라고 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한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영광 돌린다고 말합니다.
영광(榮光)이란 한자어를 파자합니다.
불 화(火), 덮을 멱(冖), 나무 목(木).
나무 목(木)자는 사람 인(人), 열 십(十)자가 합성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반드시 내가 십자가를 감당한 후에 그것을 짊어지고 완전히 불에 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랑과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예화) 이솝 이야기 중에 머리가 좋은 개구리와 독수리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 개구리가 머리는 좋았지만 결국 자기 자랑 때문에 그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것은 비록 개구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교훈입니다.

마태복음 16:24b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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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9월 2일(주일) 오전 9:30∼12:00

서로 사랑하자!(베드로전서 4:8)

그동안 함께 나눈 말씀들을 정리해봅니다.

베드로에게는 세 가지 고백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죄인의 고백(신분의 변화, 사람을 낚는 어부)
둘째는 믿음의 고백(직분의 변화, 교회의 일군)
셋째는 사랑의 고백(상급의 변화, 세상의 안일한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누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순교자의 반열에 세워진 것)


그러므로 자백을 해야 합니다. 자백이란 내가 기억하는 죄를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성령의 도움을 받아 모두 고백하는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방향을 바꾸려면 입으로만 인정하는 것이 안리 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삶을 통하여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이 무엇인가요?
정말 사랑해 보셨습니까?

(도입 이야기) 전도사 시절 중고등학교 학생을 맡았을 때 어느 중학교 여학생이 찾아와서 상담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 중학교 여학생의 고민은 언니가 있는데 언니가 너무 밉다고 합니다. 이유를 들어보면 언니는 수시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라면도 끓여 먹고 전축을 틀어놓고 놀기도 하는데 한번은 시험이 끝나는 날 언니처럼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라면도 끓이고 떡볶이도 만들어서 맛있게 먹고 놀고 있는데 언니가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서 친구들 앞에서 ‘다 나가!’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친구들 앞에 너무 미안할 뿐 아니라 동생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행동 때문에 그때부터 언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여학생에게 언니가 죽으면 좋겠느냐? 하고 물었더니 죽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제가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는데 오늘부터 너하고 나만 아는 비밀 처방을 할 테니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한 후에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요한일서를 읽고 하나님, 우리 언니 빨리 죽여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두 주간이 지난 후 그 여학생이 찾아와서 전도사님 우리 언니 죽으면 안돼요! 언지 죽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드디어 주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제가 그 여학생에게 왜 언니가 죽으면 안 될까? 언니가 미워서 죽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랬더니 성경을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내가 죽어야지 언니가 죽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그 사랑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랑이었지 희생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전개 이야기) 온산공업단지에서 교회를 시작할 무렵 그 지역은 학성 이씨 문중 마을입니다. 당시 이후락씨 선조의 묘가 도로가 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런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으니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싫어했는지 교회를 세우면 또 헐러버리고 세우면 헐어버리고 이러기를 반복하던 중 처음 교회를 시작하던 목사님을 부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제게 연락이 와서 주일에 설교를 부탁하여 주말이면 서울에서 울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울산에 내려가서 다시 온산공업단지가 형성된 공장 지대에서 벗어난 마을에 세워진 교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월요일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위치가 그 마을 당수나무가 있는 바로 옆입니다. 당수나무가 당시 소나무로 수령이 대략 240년 이라고 합니다. 왜 당수나무인가 하고 물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대답이 사라호 태풍 때 온 마을이 물에 잠겼는데 소나무는 물에 감긴 후에도 그대로 그 자리에 흔들림 없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수나무가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마을을 부도하는 서울 무당이 있는데 그 무당이 마을 사람들에게 당수나무 옆에 교회가 있기 때문에 마을이 평온하지 못하다며 마을 굿을 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을 충동질 하던 때입니다.
매월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당수나무에 동제를 지내려고 마을 사람 중에서 제를 맡아서 지낼 제관을 선출하고 제관은 한 밤중에 목욕하고 당수나무 앞에 제를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마을 이장이 교회에 찾아와서 교인들에게 오늘 제를 지내야 하니 교회 전기불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목사님, 절대로 전기 빌려주면 안 됩니다. 어떻게 우상 제사를 지내는 곳에 교회 전기를 빌려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를 세울 때 얼마나 우리들을 힘들게 했습니까? 그러므로 절대로 교회 전기불 빌려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인들의 이야기가 일부는 맞지만 전부가 맞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교인들에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제관이 제사 음식을 바칠 때 다른 불도 아니고 교회 전기불이 그곳에 비추이니 귀신들이 오겠습니까? 절대로 귀신은 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전기를 빌려주고 돈도 받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제게 맡기시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시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철야기도하시든지 편하게 하세요. 그러자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서울무당이란 사람이 동네 사람들에게 당수나무 귀신이 마을 떠났으니 다시 당수나무 귀신을 불러와야 하므로 큰 마을 굿을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당시 대략 300만원이 필요한 굿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돈을 지불합니까?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그때 제가 마을 이장에게 교회에 와서 예배하면 돈이 필요 없습니다. 아무 때나 오셔서 예배하면 좋습니다. 더구나 교회 전기불 잠깐 사용했는데 도망가는 귀신이라면 뭣하러 그런 귀신을 섬겨야 합니까?


기독교의 사랑이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전개 이야기) 시주를 받으려고 문을 두드린 어느 스님과의 이야기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독교의 사랑은 덮어주는 것입니다. 덮어준다는 것은 용서를 의미합니다. 기독교에는 용서가 있지만 불교에는 요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있는 그 어떤 것도 죽일 수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조상으로 오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덮어주는 사랑을 확인해 봅시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손수 만드신 가죽 옷으로 아담과 하와를 덮어주셨습니다.

노아 시대가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곳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잣나무를 켜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주 안과 밖에 역청을 바르게 하셨습니다. 역청이란 몰론 요즘으로 골타르와 같은 방수용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보 역철청을 카파르 라고 합니다. 카파르는 속죄를 의미하는 덮어준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430년 동안 고역에 시달 릴 때 열 가지 재앙이 임했습니다. 마지막 재앙이 임하기 전에 장자와 초태생의 죽음을 말씀하셨는데 이 재앙에서 안전하려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피를 보고 재앙이 넘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의 시작입니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에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은 이제까지 덮어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셨던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테텔레스타이(요한복음 19:30)

유대인들이 제물을 바치려고 가져왔을 때 제물을 검사하는 제사장이 그 제물이 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테텔레스타이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속죄의 완전한 제물이셨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완성한 후 그림의 한쪽 구석에 사인을 합니다. 이때 화가는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합니다. 그림을 완성하였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창조 후에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그림을 완성하셨습니다.

빚을 진 사람이 모든 빚을 다 갚은 후에 채무자에게 외치는 말이 테텔레스타이 라고 합니다. 이제 모든 빚은 다 갚았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원수 사탄 마귀에게 붙잡혀 있던 모든 죄의 빚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심부름꾼이 심부름을 모두 마친 후 자신을 보낸 주인에게 돌아와서 하는 말이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심부름을 잘 마쳤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셨던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 어린 양이 이제는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십자가의 현장으로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죽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게 두려운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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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 9월 2일(주일) 오후 5:00∼7:30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And asked them,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ey answered, "No, we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여러분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받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까? 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해서 분명하게 고백하지 못하느냐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구원 받은 삶을 살았습니까?

성령도 구원과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을 받은 삶을 살았습니까?
- 성령 받은 삶을 유지하려면 성령으로 계속하여 채워져야 합니다.

은혜는 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문제는 내가 채워지지 않고 계속 주기만 하면 내 안에서 불만과 불평 그리고 감사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계속 채워져야 하고 채워진 것을 나눠주는 것이 은혜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은사 중심의 성령

(도입 이야기) 중국 대륙을 말을 타고 가던 사진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중 갑자기 사진을 찍으라는 음성을 듣고 사진기를 들어 눈 덮인 벌판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한 후에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주님의 얼굴이라는 흑백 사진입니다.
고등학교 동창, 종로 2가에서 한식당을 운영, 부인 집사님은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출석한다. 어느 날 부인과 딸이 그림 하나는 보여주며 이 그림에서 예수님이 보이느냐? 묻더랍니다. 아무리 뚫어져라 보아도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대뜸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랍니다. 매일 저녁 집에 들어가면 그림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그림을 가져와라 그리고 그림 위에 눈과 코와 입과 얼굴 윤곽을 그려준 후에 자 이제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느냐? 물었더니 분명하게 보인다고 대답합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윤곽을 지우고 다시 그림을 보여주었더니 정말 보인다고 합니다.

오늘 저녁 집에 들어가서 또 그림을 보여줄 때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느냐 묻거든 눈과 코와 입을 가리키고 보인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구원을 받았구나 하고 소리치거든 구원은 그런 그림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이란 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에 의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방언을 할 줄 아느냐? 방언을 하면 구원을 받은 것이고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성령을 마치 무슨 은사를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주 경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은사 중심의 성령은 무슨 기적 같은 것이 나타나야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

한 경 직

 

아버지

이제 저희의 신령한 눈을 열어서

아버지의 형상이시오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소서

그 눈물 어린 얼굴,

가시 면류관 쓰신 그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얼굴도 주님의 얼굴로 변하고

우리 교회의 모습도 주님의 얼굴로 변할 때까지,

그리하여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감히 주님의 얼굴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얼굴을 앙망하게 해 주소서


둘째는 이론적 성령

이론적 성령을 다른 말로 말씀 중심이라고 합니다. 말씀 중심으로 가르치면 이론적으로는 강하지만 은사면에서는 약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성경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은사(恩賜) - 1. 임금이 물건을 내려 줌
              2. 하느님이 주신 재능

* 은혜 은(恩), 줄 사(賜)

* 헬라어 / 카리스마(은사), 카라(기쁨), 카리스(은혜) 

내가 정말 은혜를 받았는가? 검증하는 방법
1. 사용하라(use)
2. 기쁨이 있는가?(joy)
3. 계속 사용하는가?(keep ues)
3. 열매가 있는가?(fruit)
4. 재창조가 진행되는가?(recreation)
5.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가?(glory)

성령을 받은 증거

초대교회 때는 성령이 불과 같고 바람과 같고 방언을 말하고 이러한 현상적인 것에 의해서 처음으로 성령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지금도 초대교회 전통적인 성령의 이해가 강조되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 사건은 성령을 가시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가 반드시 가시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Therefore I tell you that no one who is speaking by the Spirit of God says, "Jesus be cursed,"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령을 받았다는 성경적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주를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라는 고백과 함께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천국 열쇠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 열쇠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 즉 구세주로 고백하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받았을 때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곧 성령께서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알려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

충만이란 헬라어 단어는 ‘플래래스’ 라고 합니다. 플래래스는 내 안에 가득 채워진 상태가 아니라 내 안에 가득차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And the disciples were filled with joy and with the Holy Spirit.)    

본문의 상황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쫓겨났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과 유대 귀부인들에 의해서 쫓겨난 상황입니다. 그런데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은 내적 충만함에 멈춘 상태가 아니라 외적 충만함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믿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내 죄가 깨끗이 씻어졌기 때문에 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삶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화) 사울은 계속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예화) 요셉은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애급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애급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 형들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먼저 애급으로 보냈다고 위로했습니다.

내게 손해나 불이익이 있을지라도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 내 안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런 삶을 살아가게 한다. 나의 각오나 결심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각오나 결심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처럼 무용하며 간사하다.


오늘날 세상은 끊임없이 줄 세우고 편을 갈라서 자신의 잇속을 채운다. 그리고 자신의 편에 서지 않은 사람은 무자비하게 쳐내고 짓밟고 죽인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할 때 이미 성령께서 고백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셔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성령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베드로의 삶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심문을 받을 때 베드로는 멀리서 어떻게 될 지 상황을 주시하려고 모닥불 곁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여종이  베드로에게 당신도 예수와 같은 무리가 아니냐 하며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나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며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떠날지 몰라도 자신은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성령을 받지 못해서 부인했을까요? 아니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인했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 번 나타나셨었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씩이나 목격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루는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간다며 그물을 들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노련한 어부였던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니 고기를 잡지 못하고 동이 틀 무렵 해안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고리를 얼마나 잡았느냐 하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지라고 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바다로 뛰어내려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아침 식사를 마쳤을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며 고백했습니다.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는 말을 들으셨던 예수님은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며 베드로를 부르셨던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며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 그리고 주를 따르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성령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가 이때부터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 성령을 받은 것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은 구원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이라고 한다면 성령 충만함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은 구원 받은 삶을 살았느냐 라는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된 사람과 성령을 받은 사람과의 차이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래 도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사람을 만든 재료는 흙과 생기입니다. 동물을 만든 재료는 흙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기를 육체의 몸에 갖고 살아가는 영적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성경

개역한글

영어

새번역

공동번역

현대인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

natural man

자연에 속한 사람

영적이 아닌 사람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

고전 3:1

육신에
속한 자

carnal man

육에 속한
사람

육적인
사람

세속적인
사람

고전 2:15

신령한 자

spiritual man

신령한
사람

영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유다서 1: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누구일까?

(새번역) 자연에 속한 사람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 영적이 아닌 사람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현대인의 성경)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일에는 깜깜하고 도무지 깨닫지를 못합니다. 육체대로만 살기 때문에 영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천국, 지옥,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해도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자연인이라고 합니다.

육신적인 신자(Carnal man) 고린도전서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공동번역) 육적인 사람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할 때와 같이 말할 수가 없어서 육적인 사람, 곧 교인으로서는 어린 아이를 대하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번역) 육에 속한 사람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세속적인 사람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하듯이 말할 수가 없어서 세속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를 대하듯 말합니다.

육신적인 신자란 예수를 믿지만 영적으로 성숙하여 신령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구원은 받았어도 아직 육체의 소욕을 버리지 못하고 영적인 세계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지만 의무적으로 읽고 예배에 참여하지만 의무적으로 예배하기 때문에 기쁨이 없습니다.

말씀과 예배의 기쁨이 없기 때문에 만약 주일에 다른 행사가 있다면 예배보다는 그 행사가 우선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남이 먹여 주어야지 스스로는 성경도 제대로 읽을 수 없고, 또 은혜를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시기, 분쟁, 다툼이 많습니다. 모든 교회에서 일어나는 시끄러운 문제들도 바로 이런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육적인 사람들 때문에 말썽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령한 신자(Spiritual man) 고린도전서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새번역) 신령한 사람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공동번역) 영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은 무엇이나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신은 아무에게서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영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제대로 평가하지만 세상 사람은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고 장성하여 분별력이 있고 영적인 힘이 있는 장성한 교인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교인은 잘못된 교리, 잘못된 신학, 잘못된 영의 역사 등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단사상에 현혹되거나 매혹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심령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어서 모든 것을 알게 해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


첫째, 분별의 지혜(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한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성령의 기름 부음이 내 안에 가득하게 채워질 때 모든 것들을 분별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요한일서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성령의 기름 부음이 오면 자연히 깨달아지고 알아지는 것입니다.


둘째, 온유한 심령(갈라디아서 6:1)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온유하다는 것은 부드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잘못된 길에 들어간 사람을 잘 인도하여 주께로 나오게 합니다.

시험받는 사람이 있을 때에 자기를 반성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으라고 했습니다.


셋째, 죄를 다스리는 능력(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욕망에 이끌리는 것은 아직도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증거이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얻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증거자의 삶(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 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육은 영적인 일에 무능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봉사에 쓰여 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의 목적은 영적인 봉사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무디(D. L. Moodv) 같은 이는 국민학교 3학년 밖에 못나온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키도 작고 목소리도 나빴다고 합니다. 배운 것이 없고 훌륭한 체모를 가지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무디와 같은 부흥사는 없다고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될 때에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나타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나 기도나 봉사나 무엇이든지 성령을 받아야 그 능력이 오는 것을 믿으시고 아무쪼록 열심히 기도하고 사모하고 기다려 성령 충만히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를 체험하는 길을 영어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Something, Nothing, Everything

Something,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존재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러나 내가 아무 것도 아님(nothing)을 깨닫고 주께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Everything,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구한말 언더우드 선교사(Horace Grant Underwood, 1859. 7. 19∼1916. 10. 12)
영국 런던에서 출생하여 13세 때 미국으로 이주
한국어 이름 원두우(元杜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에 제물포 항구에서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 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그의 겸손한 순종(Nothing)은 이 땅에 하나님의 큰 은혜, 선교의 열매(Everything)를 맺게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poor, yet making many rich;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everything.    

세기적인 과학자 뉴턴이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 많던 지식을 망각해버렸습니다. 답답해하던 제자들이 안타깝게 묻습니다. “이제 와서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뉴턴은 여유 있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내 구주라는 사실이다. 이것 외에 더 무슨 지식이 필요 하느냐?”

세상이 아무리 복잡할지라도 신앙인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
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배려하며 겸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가 내 구주라는 것.
환경에 요동하지 않고 조용히 주를 기다리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십니다. 두 가지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인식하고 예수가 내 구주임을 믿는 사람 그로 인해 계시에 절대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도 못 받은 자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하셨겠습니까? 이렇게 그 때에도 성신의 감동을 받아 신앙 고백을 바로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천국 열쇠는 베드로가 잘 나서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신앙 고백이 곧 천국 열쇠가 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내가 죽을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을 믿고 시인하면 다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도 보면 70인 전도대들이 돌아와서는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하며 굉장한 보고를 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벌써 그 때에 오순절 전에도 제자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여기서 목욕한다는 말은 죄 사함을 받고 중생하여 구원받았다는 말이요, 또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도 매일매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발에 먼지가 묻는 것과 같이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으면 그때그때에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라는 말씀도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 곧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인 가룟 유다를 지적하여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 한 사람을 빼놓고는 다 중생을 한 사람이라고 분명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옳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다른 뜨거운 체험, 은사 같은 것들을 몰라도 중심으로 믿는다면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따라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그러한 신자들이 있는 교회가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9장 l절부터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보니까 성령을 못 받은 것 같았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아볼로라고 하는 젊은 목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말도 잘하고 학식도 많고 성경도 잘 알고 열심도 있었으나 성령의 세례를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성령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바울이 그 교회에 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고 물으니 우리는 성령이 계시다는 말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만일에 예수를 믿는 것으로 다 된다고 하면 네가 믿느냐? 하고 물을 것이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말은 또 무엇입니까? 그러나 믿어 중생하는 것과 성령 세례를 받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울이 다시 그러면 너희들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바울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자기 뒤에 오시는 이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했는데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다시 설교하며 예배드리며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안수했더니 성령도 받고 방언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안수도 해야 합니다. 방언하는 것도 성령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성령을 받는다 안수를 한다 하면 반대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 목사님들 가운데도 성령 세례를 모르고 체험이 없어서 성령을 받는다던지 소리를 내며 기도를 한다고 하면 질색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물로 세례를 받았지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후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l20명이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하루, 이틀, 사흘… 열흘 동안이나 기다리면서 열심으로 기도하던 중 열흘째 되던 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뜨거워지더니 이상한 말을 하고 능력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기도하며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자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교회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목회하는 데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 이상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해 진다는 말은 마치 돈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물을 많이 가지고 있듯이 성령을 많이 소유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하려고 할 때에는 예수를 믿는 생활이 힘들고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은혜를 받으면 기쁨으로 하게 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성령이 충만해지면 모든 의심과 부조리가 해결됩니다. 과거에는 설교를 들어도 성경을 읽어도 의심이 자꾸 생겨납니다.


그러나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그러한 의심이 다 사라지고 부조리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믿음 안에서 다 해결되고 완전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중생하지 못하고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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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9월 3일 오전 6:00∼7:30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poor, yet making many rich;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everything.)

기독교 신앙은 역설적 신앙(paradoxical faith)
- 논리에 맞지 않는 말
-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예) 급할수록 돌아가라!

- 급하면 지름길로 가야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지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
(예)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며(마태복음 5:39)
(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복음 7:13)

(도입 이야기) 쟁반에 사과 10개가 있습니다. 먹는 방법은 반드시 하루에 1개씩만 먹어야 합니다. 열흘 후에 사과를 먹은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사과를 어떻게 먹었느냐? 질문했을 때 첫 번째 그룹에서는 매일 같이 상한 것을 골라서 먹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그룹은 매일 같이 가장 좋은 것만 골라서 먹었다고 합니다. 어느 그룹이 가장 맛있는 사과를 먹었을까요? 물론 두 번째 그룹입니다. 그 이유는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믿습니까?
문제 해결이란 환경과 조건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바뀌느냐?
생각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declares the LORD.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than your thoughts.)    

역설적 신앙은 체험하면 할수록 그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신학자 워치만니의 간증, 계단식 논에서 가장 위쪽에 논을 소유한 어느 성도의 질문과 대답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가톨릭교회의 평신도 회장을 지냈던 우해석씨의 경우 24시간 빨래방을 운영할 때 뉴욕에 이주하고 한 달이 지난 사람을 채용한다. 왜 저 사람을 채용하는가? 저 사람은 지금 당장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계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루마니아교회 앞의 눈을 치웠을 때 신부께서 성찬용 포도주 한 병을 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신앙입니다.

김동익목사(1941.∼ 1998. 4. 1 신장암 사망, 56세)
수술을 받기 전 황산성변호사가 김목사에게 이번 기회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 전 담당 의사를 위하여 기도하자 의사는 환자가 의사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술 후 밤에 꿈을 꾸는데 주님이 오셔서 아픈 곳을 만지시며 회복될 것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복하여 강단에서 설교할 때 주님을 만났고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셨다고 간증할 때 모든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암이 전이되어 결국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황산성변호사는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영수님이셨고 아버지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님이셨습니다. 더구나 새문안교회 작고하신 김동익목사님의 사모가 되었습니다. 목사의 부인이 되었어도 신약은 읽었지만 구약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체험하게 된 동기가 꿈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꿈에 지옥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 천국은 분명하게 있습니다. 고백하며 주여! 하고 외쳤을 때 꿈이 깨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신앙이 분명해 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아들을 주의 종으로 바치라는 음성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법조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들의 마음을 주님이 바꿔달라고 하였다. 이 땅의 공무원이 좋겠느냐? 하늘나라의 공무원이 좋겠느냐? 어머니 정말 거창하게 나오십니다. 그리고 아들은 결국 결정된 하나님의 종이므로 앞으로 고난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연세대 신학교 원서를 구입하여 갖고 다니며 결국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토저 목사와 레이븐 힐 목사의 대화 중에서


토저는 레이븐 힐에게 종이에 쓴 편지 한 장을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레이븐힐 목사, 나는 미국 대통령의 편지보다, 이 편지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네.”

제가 토저에게 물었습니다. “이유가 뭐지?”
그때 토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레이븐힐 목사, 들어보게. 이 편지는, 아프리카에 사는, 키가 작은 흑인 남자가 내게 보낸 것이야. 그의 이름은 듀마야.

그는 어느 날 밤, 한 침례교회에 갔고,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서, 그날 놀랍게 구원을 받았어. 회심의 체험을 한 거야! 듀마는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그 교회 목사가 말했지.

“형제님, 교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또 오실 거죠? 제가 뭐 도와 드릴게 있나요?” “네, 있지요.”
“그게 뭔가요?”
“제게, 교회를 맡겨주십시오.”
“방금 뭐라고 그랬죠?”
“제게, 교회를 맡겨달라고요!”

듀마는 당황해하는 그 목회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평생 저를 변화시켜 줄, 그 무엇인가를, 애타게 찾아 다녔습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사람입니다. 제 짐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저를 묶고 있던 무거운 족쇄에서, 제가 해방되고 완전히 풀려난 것을 느낍니다. 제 등 뒤에 항상 있던 무거운 짐이, 지금 다 사라졌어요. 오늘 예배시간에, 무엇인가 내 속에서 뿜어 올라와서 나를 정결하고 의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제게 교회의 강단을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듀마 형제님, 정식 학교 교육을 받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학교에 다니신 적은 있으십니까?”
“아직 아닙니다.”
“그럼 그냥 교회나 다니세요.”

그러나 듀마는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거듭남에 대해서 들어왔는데, 그런 일이 제게, 오늘, 지금 일어났습니다. 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식욕도 없고, 다른 욕망도 없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만을, 하나님만을, 하나님만을 원합니다.”

그 목사는, 적어도 정직했습니다.
“형제님, 나도 옛날에는 형제님처럼 그랬었어요.”

사람들은, 회심하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한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 신앙이 냉담하게 식어 버립니다.

듀마는 한 달 후에, 다시 교회로 나왔습니다. 그 목사는, 설교 중에, 듀마를 알아보았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는, 듀마에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잘 지냈어요?”
그 작은 흑인 듀마가 말했습니다.
“네, 그런데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요?”
“목사님, 제게, 설교할 교회를 맡겨 주시겠어요?”
“형제님은, 전에도 그러더니만, 교회에 단 두 번 나오면서, 올 때마다 교회를 맡겨달라니. 내가 이 주머니와 저 주머니에 교회를 잔뜩 넣고 다닌다고 생각하나 보군요.”

예 목사님,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이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전에, 이 교회 문 앞에서 목사님과 헤어진 후에, 곧장 저는 이 길을 쭈욱 따라 걸어갔고, 마을을 빠져나와, 숲으로 갔습니다. 숲길을 계속 따라 걸었고, 한 시내가 나왔는데, 그 곳 시냇가에 있는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동굴 벽에 표시를 하면서, 21일 동안, 밤낮으로 성경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하나님, 당신과 나, 둘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제가 이 문을 나서기 전, 설교자로 불렀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평생 설교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저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면 시냇가에서 세수를 했습니다. 11일째 되는 한 밤 중에 성령이 제게 임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를 목사로 불렀다. 네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가라!”
“그러니 목사님, 제게 교회를 맡겨 주시겠어요?”
“수요일 밤, 장로 회의가 있으니, 주일날 다시 와 보세요.”

그 목회자는, 수요일 날, 장로들과 상의를 한 후, 그 흑인이 끈덕진 광신자 같으니, 마을 반대편에 있는, 성도 5명이 모이는 오두막 지교회를 한 번 맡겨보자고 했습니다. 어차피 그 키 작은 흑인은 무식하고, 무례하고, 글도 제대로 모르니 교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구박이나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교인들은, 며칠 혹은 몇 주간 그의 설교를 듣다가 문을 닫아걸고, 그에게, ‘당신은 목사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으니 이 교회를 떠나라!’고 할 것이라고 장로들은 예상했습니다.

듀마의 남다른 점

평소에 성격상, 감상적인 곳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인 토저가 그 낡은 듀마의 편지에 키스를 하고, 서랍에 고이 넣는 것을, 저 레이븐힐은 보았습니다.

“이건 내게, 미국 대통령의 편지보다 더 귀한 편지야. 내가 듀마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그가 내게 편지를 보냈어. 사람들이 그 마을에서 쫓아낸 듀마, 장로들은, 다섯 명의 흑인 신자들을 통해, 그를 쫓아내려고 했는데, 듀마는, 현재 남아공 더반시에서 가장 큰 교회를 목회하고 있고, 지금 1200명의 교인들이 모이고 있어. 그 작고 초라한 교회에서, 그 버려졌던 교회가, 그렇게 부흥된 거야.”

그렇다면 여러분, 그런 부흥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동굴 속에서 21일 동안 밤낮으로 하나님께 “주님, 영원의 빛 가운데서, 제 작은 마음에 말씀해 주세요. 제가 설교자로 기름부음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말씀해 주세요.”

이렇게 간절히 간구했고 그래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 그의 사역의 비밀은 아닐까요? 목회자 여러분, 그렇게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비밀이 아니라, 다 알지만, 실행하기가 어려운 거죠.

듀마는 매년 11월 17일이면 다시 그 동굴로 간다고 합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11월 17일이면, 그는 아내와 자녀에게 키스를 하고 장로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그 동굴로 가서, 21일 동안 21일 낮과 밤을, 꼬박 그곳에서 혼자 보냅니다.

매년 21일 동안,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소명과 사명을 새롭게 하고 21일 동안, 영적으로 새 힘을 얻고, 21일 동안, 새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이렇게 매년 그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와 새로운 모략(counsel)과 새로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한 번 성령세례를 받고 그것으로 지금부터 영원까지 계속 버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기름부음은 일생동안에 거듭 반복해서 부어집니다. 한 번 회심한 후에도 거듭 회심하는 체험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끔은 숨어버리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두운 나락에 떨어진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당신이 기름부음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아니면 혼자 스스로의 능력과 웅변력에 의존해 사역하는 쪽을 택하는지를 하나님은 시험하기 위해 즉 당신을 알아보시려고 당신을 혼자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이때 저와 여러분이 택할 길은 기름부음을 새롭게 받기 위해 간절히 주님께 매달리는 길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런 목적으로 함께 모였다가도 사흘도 못 버티고 다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듀마가 남다르고 위대한 것은 바로 그 목적을 바꾸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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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강 9월 3일 오전 9:30∼12:00

예수의 흔적(갈라디아서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Finally, let no one cause me trouble, for I bear on my body the marks of

흔적(痕跡)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스티그마’ 라고 합니다. 영어 단어에 ‘stigma’ 라는 단어는 ‘오명’ 이라고 합니다. 원래의 뜻은 흔적입니다.

흉터 흔(痕), 흔적 흔(痕), 자취 적(跡), 발자취 적(跡) - mark, stigma

예전에 가축들을 방목하는 시절에 여러 목장에서 많은 가축들이 들판에 모여서 지냅니다. 해가 질 무렵 목동은 자기 목장의 소유를 구분하여 가축들을 불러 모아야 합니다. 이때를 위해서 각 목장마다 자기 가축들에게 불로 달궈진 이니셜 마크를 짐승의 몸에 새깁니다. 새기는 것 보다는 오히려 불로 지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살갗이 불에 타들어가며 화상을 입은 피부에 자국이 남습니다. 이 자국을 스티그마라고 합니다.

2018년 가족 수련회를 마치면 각자 자기 삶의 현장으로 떠나야 합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수련회에 참석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삶의 시간은 여전히 크로노스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결단한다면 환경은 똑같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될 것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다듬기 위하여 이 시간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흔적을 갖기 위해서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뻘건 쇳덩이가 짐승의 몸에 닿은 순간 짐승은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흔적이 내가 누구의 소유가 되었다는 표시가 됩니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갖게 된 사도 바울은 어떤 흔적을 가졌을까요?
신학자들마다 흔적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안질(eye trouble)이라고 하는 해석은 다메섹 도상에서 너무 강열한 빛을 보았기 때문에 시력이 약해졌다고 합니다.

간질(epilepsy)이라고 하는 해석은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한 후에 갑자기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면 이제까지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 중에 상처가 되어 복음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안질이든 간질이든 구체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은 그 흔적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바울을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멀어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런 흔적을 갖고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입니다.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For everything God created is good, and 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received with thanksgiving, because it is consecrat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예수의 흔적은 세상과 구분되는 거룩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목장의 가축들이 그들의 몸에 목장주인의 표시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거룩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쉬 라고 합니다. 카도쉬의 의미는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기준을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감사 - thanksgiving

고린도후서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육체의 제한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육체적인 조건에 만족할 때만 감사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을 회복할 때는 육체적인 조건을 불이익을 당하고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 자리에서 감사가 가능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 감사와 찬송을 하였습니다. 그때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화) 독일의 화가 알버트 듈러의 기도하는 손
(예화) 대학 시절 친구의 집에서 야간에 학교에 다니고 주간에는 집안의 일을 돕는  어느 친척 여학생의 모습

둘째, 하나님의 말씀 - the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며 내 길에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발의 등은 현실과 현재를 비추는 빛입니다.
내 길의 빛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소망의 빛입니다.

(예화) 배명준목사, 황해도 당수나무에 성경을 붙여놓아 마을에서 추방당했다.

셋째, 기도 - prayer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곧 삶을 의미합니다.
기도와 삶이 분리될 때 세상은 혼돈 가운데서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곧 삶이 될 때 로마의 황제 서내면의 기도

(예화) 나의 원대로(불래)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델레마) 하옵소서!

(예화) 골방(마태복음 6:5∼8)
골방의 기도 - 탈무드의 랍비와 제자들(행동이 느리다고 비웃던 사람들에게 새 한 마리씩 나눠주며 2시간 안에 죽인 후에 그 새를 갖고 오너라. 제자들은 새를 가장 빨리 죽이면 수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재빠르게 행동하였다. 과연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곳은 어디인가?

하나님의 속성(성품) - 윤리적 속성(성품), 비윤리적 속성(성품)

골방 기도는
1. 집중하는 기도
- 오직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을 간절히 찾는 기도

(예화) 안치규(처조카) 이상한 꿈에 대한 해석(8월 18일, 토요일)
젊은이들이 혼돈할 수밖에 없는 현실 

(예화) 엘리야와 갈멜산의 대결(열왕기상 18:1∼46)

2. (사랑과 은혜를) 확증하는 기도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확증하는 기도

(예화)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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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에서 베드로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라는 고백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게네사렛 호수가 소개됩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구약에서는 긴네렛 이라고 불렀습니다(민수기 34:11, 여호수아 12:3). 긴네렛이란 명칭이 잘못 전달되어 게네사렛 이라고 합니다.
신약에서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갈릴리 바다, 요한복음에서는 디배랴 바다, 누가복음에서는 게네사렛 호수라고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긴네렛, 게네사렛, 갈릴리, 디베랴는 모두 같은 곳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게네사렛 호수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아무 것도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베드로와 동료 어부들은 그물을 씻어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 두 개의 배가 있는 것을 보시고 마침 시몬의 배에 올라타신 후에 배를 조금 띄우라 하시고는 배 위에서 호숫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사용하는 그물은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머리 위로 던져서 고기를 잡는 투망식의 그물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물을 길게 쳐 놓고 물의 흐름에 따라 그물을 드리우는 자망이란 그물이었습니다. 본문에 소개된 그물은 머리 위로 던지는 그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두 가지 이상한 것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물을 내리라

당시 어부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물고기를 잡는 방식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둘째는 깊은 데로 가라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에게 날이 밝은 때는 물고기들이 깊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은 당시 어부들에게는 물고기를 잡는 상식에도 맞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상식에도 맞지 않는 방식대로 행했을 때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한 번 그물을 내려 많은 물고기를 잡아본 예가 없었기에 베드로는 다른 동료들의 배를 불러 두 배에 물고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데 여기서 베드로도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밤새도록 잡을 수 없었던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예수님에게 “물고기를 잘 잡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아니면 “나와 같이 동업하여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봅시다” 아니면 “오늘 운수대통이다” 외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잠간 배를 빌려주었는데 그 배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곧 믿음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특별한 장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늘 머무는 그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하여 다시는 그물을 던지지 않겠다고 결단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어젯밤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다시 희망을 갖고 그물을 던지려고 그물을 씻고 정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가 하는 일을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보다 내가 하는 일에 더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대상 선생과 주여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이여” 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물고기를 그물 가득히 잡은 후에는 예수님을 “주여” 라고 불렀습니다.

선생이 아니라 주여 라고 호칭이 바뀐 것입니다. 믿음이란 대상의 호칭이 바뀌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내 삶의 자리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주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셋째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기를 잡던 어부 베드로가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자아관(自我觀) 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선지자 이아샤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주위에 여섯 날개를 갖고 있는 스랍들이 거룩하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며 노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 때문에 나는 망하게 되었다며 절망합니다. 그 이유는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기도하는 중에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환상을 보았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할까요?

지난 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를 만나주셨다면 자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오히려 두려워했습니다. 나와 같은 부정한 사람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뵐 수 있느냐 하며 자기의 죄성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거룩한 임재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메섹 도상의 사울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듣고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율법으로만 알고 믿었던 사울에게 직접 들려온 음성은 사울을 믿음의 사도로 변화시켰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죄의 고백으로 인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 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많이 잡은 것 때문에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가치를 선택하지 않고 죄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제자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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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수련회(9월 1일∼3일)

· 영적 생활의 원리(로마서 12:1∼2)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 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영적 생활의 의미
- 신앙생활은 영적 생활입니다.

- 영적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입 이야기) 초대교회 교부 시므온은 원형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앉아서 묵상하며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낮게 세워진 원형 기둥이 마지막에는 무려 30미터 높이까지 세워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시므온처럼 생활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매일같이 생활의 터전에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낯선 땅에서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처럼 세상과 분리하면 생존이 어렵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가족들을 위하여 더구나 성도들은 교회 봉사를 위하여 더 많은 수고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신앙생활이 결코 용이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즉 영적생활의 원리를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전개 이야기) 온산공업단지 주거지로 선정된 신경 마을에서 교회를 시작할 때 경험했던 서울 무당과의 보이지는 않는 전쟁
“교회 전기를 절대로 마을 제사 지내는 일에 사용하면 안 된다”
“교회 전기가 밝혀지면 귀신이 제사 음식을 먹으로 올 수 있겠느냐?”

(현실 이야기) 저는 2000년 7월 4일에 서울에서 영주권을 받은 후 케네디 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50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뉴욕에서 가족들과 살아야 했습니다. 목회자로 살았기에 저희들이 갖고 있던 돈은 몇 달 렌트비와 자동차 할부금을 지불하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두 아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저희 가족들이 뉴욕에 도착하기 전에 비행기에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목회자로 불러주셨기에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생존의 문제에 붙잡혀 목회가 우선이 아니라 생존경쟁에 나서야 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제가 나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목회자로 보입니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저는 목회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목사로 살아가지 않으면 당장 세상으로 쉽게 동화될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교회 중심의 삶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즉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저와 같은 사람은 교회를 떠나면 당장 무너져서 방탕한 삶을 즐기게 될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생활은 영적 존재를 알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 영적 존재에는 어떤 존재들이 있을까요?

1. 하나님(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2. 천사(히브리서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3. 사탄, 마귀, 귀신(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악령(惡靈)의 실체


사탄(사타노스) - 대적자
48회(구약 14회, 신약 34회)

마귀(디아보로스) - 고소자(주로 단수형으로 사용)
38회(구약 5회, 신약 33회)

귀신(다이몬, 다이모니온) - 신적힘(주로 복수형으로 사용)
99회(신약 99회)

4. 사람(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독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영적 생활은 사탄과 마귀와 귀신을 물리치는 생활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 마귀의 일을 멸하려는 것이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의 일은 무엇인가?
- 믿고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빼앗는 것이다.
-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가룟 유다(누가복음 22: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베드로(마태복음 16:21∼23)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광명의 천사(고린도후서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히브리인의 마귀론
- 타락한 천사(이사야 14:12∼15, 에스겔 28:11∼19)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유다서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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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예배(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영적 생활은 영적 예배로부터 출발합니다.


(도입 이야기) 온산에서 교회를 시작하고 새벽 기도회를 시작하려는데 교인들이 아무도 나오지 못합니다. 혼자서 예배실에 모든 교인들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새벽 기도회 순서에 따라 혼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른 새벽에 한 농부가 논을 살피러 논으로 가던 중 교회 창문으로 불빛이 환하게 비추므로 창문 가까이 와서 예배실 안을 들여다보았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신기해서 몇 날 며칠 계속 지켜보다가 하루는 마을 회관 앞에서 교회에 출석하던 교인에게 “당신은 왜 새벽에 교회에 가지 않느냐?” 하고 묻더랍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새벽 기도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일생동안 정말 감격적인 예배에 대한 경험이 있었습니까?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북한 지하교회 성도의 예배)
찬송은 소리 내지 않고 입만 벌려서 찬송을 한다.
성경은 지하교회 성도들이 갖고 있는 성경 구절들을 돌려가며 카피한 것을 돌아가면 속으로 읽는다.
마음껏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싶다

(중국 단동 지역의 조선족 교회 예배)
1996년 5월경에 중국 집안시 에 거주하는 저희 어머님의 조카 가족들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집안이란 도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능이 있는 곳입니다. 마침 주일을 맞이하여 조선족 교회에 방문하여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부르는데 우리들이 부르는 곡조와 전혀 다르게 부릅니다. 반주자도 없고 피아노는 물론 올겐도 없는 교회이어서 인도자가 부르는 대로 같이 따라 부르는 것입니다. 저희가 찬송을 부르는데 자꾸 저희를 쳐다봅니다. 저희들이 부르는 곡이 그들과 맞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찬송을 부르지 않고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기만 했습니다. 왜 이렇게 찬송이 곡조가 바뀌었을까? 한참 생각하는데 공산국가에서 찬송을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던 시대에 누군가 부르던 찬송을 듣고 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 서 찬송의 곡이 원곡과 다르게 부르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배의 인도자가 잘못 인도하면 예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예배를 회복해야 할까요?
예배를 회복하는 지름길은 주님을 바르게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주님을 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 베드로의 경우 두 가지 고백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고백입니다(마태 16:16)
둘째는 사랑의 고백입니다(요한 21:15∼17)

신약 성경의 언어 헬라어에서 사랑의 용어로 사용된 단어
1. 아가패
2. 필로스
3. 에로스
4. 스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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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고백(마태복음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신앙고백은 영적고백입니다.
입으로는 누구든지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고백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백은 아닙니다.

(도입 이야기) 대학 시절 영문과 여학생을 사랑하던 철학과 학생의 독백
어렵게 덕수궁 분수 주위를 한 바퀴 두 바퀴 돌고 난 후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때 여학생은 ‘나는 약혼자가 있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학생이 ‘그동안 영화를 본 것과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것 그리고 덕수궁 입장료금과 차를 마신 것 모두 얼마인데 절반 값을 내놓으시오!’ 그러자 여학생이 지금 내 수중에 돈이 없으니 나중에 주겠다고 하고 서로 헤어져서 기숙사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여러분 남학생의 고백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한다면 약혼자가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마음을 떠 보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성급하게 그동안 함께 데이트 하며 사용한 돈의 절반을 내놓으라는 것은 뭔가 사랑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요?

신앙고백이란 주님에 대한 사랑 고백입니다.
사랑의 정의를 성경 신약성경 베드로전서 4장 8절에서 찾아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갈라디아서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골로새서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베드로전서 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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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한 사람들의 특징

1. 죄에 대한 인식(깨달음)이 달라 진다.

- 죄에 대한 심각성과 경각심이 생긴다.

 

2. 죄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 회개하기 전에는 죄는 지을 때 우리의 느낌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느낌

을 따라가게 만드는데 회개한 후에는 사소한 죄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죄에 대

한 슬퍼하는 마음과 역겨운 마음을 갖는다.

3. 죄에서 돌이켜 죄와의 타협을 거부하며 죄와 처절하게 싸운다.

- 죄를 짓지 않을 순 없지만 회개한 후에는 더 이상 죄가 나를 지배할 수 없게 된

다. 전처럼 죄에 대해 결코 관대하지 않으며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또 싸운다.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죄와 싸운다.

4. 삶의 목적과 방향이 바뀐다.

- 내 야망과 꿈 대신 하나님의 소원으로,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뀐다.

항상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는 삶으로 바뀌게 된다.

(“Self centered” 에서 “God centered” 로의 전환)

 

5. 나의 기쁨, 관심, 사랑의 대상이 바뀐다.

- 세상의 것에서 하늘의 것으로, 육신의 것에서 신령한 것으로 그 대상이 바뀐다.

 

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과 그 결과로 순종의 기쁨을 알게 된다.

 

7.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한다.

- 자신 안에는 전혀 소망이 없음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회개하고 자아가 죽은 자들의 특징

1. 그들은 야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자기 왕국을 세우는데 관심이 없다.

2.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고 세워주는데 관심이 있다.

3.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하거니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4. 그들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한다.

5. 그들은 주님 앞에 홀로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6. 그들은 다른 사람을 시샘하지 않는다.

-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을 나누어주기를 기뻐한다.

7.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그들은 빨리 주님께로 가고 싶어 한다.

회개의 4가지 요소(4R)

 

1. Revelation of the truth about sin, sins, and sinful nature.

원죄와 나의 죄, 그리고 자아의 죄성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선포됨으로 죄

가 드러남.

 

2.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my condition before God. 

하나님 앞에서 내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는 것.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는 모든 죄가 상대적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빛 아래 나의 모든 어둠이 (죄가) 드러난다.

그러나 죄를 드러내 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회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가 하나님이 하시는 부분(God initiates)

 

3. Renunciation of my sins: 죄를 끊고 버리는 것.

a. 죄를 고백하는 것: 하나님이 죄라고 하시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하나님과 사람(피해자) 앞에 죄를 입으로 낱낱이 고백하는 것(고백이 없는 것은 회

개가 아니다)

b. 하나님이 용서하셨음을 받아들이는 것.

c. 내 삶에 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

나로 하여금 죄짓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

 

4. Restitution and reconciliation: 피해보상(변상)과 화해. 

회개의 완성단계.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회개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해야 할 몫(Our response)

 

이 네 가지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회개를 했다고 할 수 있다.

Repentance(회개)= God’s initiation (하나님의 주도하심) + Our response (우리 반응)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12가지 죄

 

1. 고집스러운 무지의 죄:

당신의 무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무지의 죄를 버리지 않으면

이 죄가 당신의 생명을 취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지의 죄를 회개하라.

 

2.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은밀한 죄:

자기만 아는, 몰래 즐기는 죄를 버리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영원한 멸망으로 이끈

다.

 

3. 형식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죄:

종교적 의무(기도, 금식, 봉사 등)를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죄. 

 

4. 잘못된 동기에 이끌려 신앙 생활하는 죄:

육신적인 동기 곧 자기의 양심을 달래기 위해, 경건하다는 평판을 듣기 위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자기의 재능을 과시하기 위해,

세속적이고 불경건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등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신앙 생활하는 죄. 이러한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당신의 행위뿐만 아니라 당신의 동기까지도 깊이 살펴야 한다.  

 

5. 자기의 의를 믿는 죄: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부인하는 것이므로 이것이야 말로

자기 영혼을 멸망으로 이끄는 죄이다. 악한 죄로 멸망할 수 있듯이

겉으로 드러난 의와 선행 때문에 멸망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한 후에 당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인정하라.

나의 의를 더러운 옷처럼 여겨라.

 

6. 철저한 신앙생활에 대한 은밀한 증오:

제대로 뜨겁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은근히 미워하는 죄.

이들은 철저한 신앙생활을 기묘한 것, 경솔한 것, 무절제한 열정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사람들은 거룩함을 사랑하지도 않고 거룩함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결국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이다.

 

7. 일정 수준의 신앙생활에 안주하는 죄:

자기가 정한 어떤 범주의 테두리 안에서만 신앙생활 하려는 죄.

곧 자기들의 신앙생활이 구원받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면

더 이상 진전하려고 하지 않는 죄로

이것은 오히려 그들이 진정한 은혜를 받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진정한 은혜는 사람들로 하여금 언제나 완전함을 열망하도록 만들기 때문

이다.

 

8.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죄:

이것이야 말로 거룩하게 되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이것은 또한 회개하지 않았다는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이다.

 

9. 자기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에게 악의와 시기심을 품는 죄:

겉보기에 경건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당한 모욕을 기억하고 원한을 품고

악을 악으로 갚고 보복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악이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데도

그것을 미워하거나 억제하지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오히려 습관적으로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악독이 가득하며 죽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

다.

 

10. 억제되지 않은 교만의 죄: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더 사랑하고

사람의 존경과 갈채와 인정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은

아직도 진정한 회개를 모르고 죄 가운데 있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교만을 보지도 못하고 문제 삼지도 않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죄 가운데 완전히 죽어 있는 것이다.

 

11. 쾌락을 사랑하는 죄:

육신에게 자유를 주고 육신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육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

배와 감각을 만족시키면서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리 경건해 보여

도 다 가짜이다. 육신을 기쁘게 하는 삶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

다.

 

12. 육신의 안전을 의지하는 죄:

돈, 명예 등 자신을 안전(secure)하게 지켜줄 수 있을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붙들고

그것을 의지하여 거기에 안주하려는 죄.

 

이렇게까지 꼭 회개해야 하는 이유 – 생명으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며

구하여도 얻지 못할 수 있으므로.

또한 구한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4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 19:25)

우리 힘으로는 회개할 수 없으나 성령께서 도우시면 가능하다.  


회개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1.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롬 3:23)

2. 회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겔 33:11, 눅 5:32, 벧후 3:9)

3.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기 때문(눅 13:3, 5)

4. 회개는 심판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유일한 길(롬 2:4∼5)

 (회개치 않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이다)

5.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눅 16:28∼30)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Ⅵ(요한계시록 20:6) 설교 원고(2019-08-25)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Ⅵ(요한계시록 20:6)


-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의 복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19장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양은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이 이십니다. 신부는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이며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가 동일한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에서 모든 교회에 공통된 말씀은 두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교회
둘째는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는 교회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신 교회는 반드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신 교회는 반드시 예수 이름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려 몇 가지 중요한 용어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첫째는 첫째 부활(復活)

둘째는 둘째 사망(死亡)
셋째는 천년왕국(千年王國)

먼저 이러한 용어들을 정리하기 전에 구원에 대한 믿음을 성경적으로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믿음입니까? 아니면 행위입니까? 믿음에 의한 것을 구속론적 구원이라고 합니다. 행위에 의한 것을 도덕론적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속론적(救贖論的, redemptional)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속론적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께 죄 값으로 지불되어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속론적 구원이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신앙입니다. 

도덕론적(道德論的, ethical) 구원이란 무엇인가?

도덕론적 구원이란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위(行爲)가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도덕론적 구원이란 모든 종교에 적용되는 보편적 속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즈음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화해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기독교를 편협한 종교라고 하기 때문에 종교다원화주의와 같은 사상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는 변질 될 수 없으므로 오직 예수의 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혼돈과 갈등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구속론적 구원인가 아니면 도덕론적 구원인가를 서로 혼합하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은 마치 구원을 도덕론적 구원의 근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번 받은 구원은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은 구속론적 구원의 근거에 의하여 사람이 선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기 때문에 사람의 행위가 구원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속론적 구원을 근거로 오늘의 말씀을 살펴보면 첫째부활과 둘째사망과 천년왕국이란 개념을 잘 몰라도 분명히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과 천년 왕국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復活)이란 무엇인가?

첫째 부활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된 첫째 부활에 관한 성구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부활이란 용어를 20장 5절과 6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5∼6,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첫째 부활이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둘째 사망의 해는 무엇일까요? 둘째 사망(死亡)이란 용어가 2:11, 20:6, 14, 21:1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에서 ‘둘째 사망’이란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불못이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을 말합니다(21:8). 불못에 던져지는 것들은 사망과 음부(20:14) 그리고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행음자들, 술객들, 우상숭배자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21:8).

흔히 ‘지옥(地獄)’을 마치 “유황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전에서 정의하는 지옥(地獄)이란 “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현실에서 악한 일을 한 사람이 죽어서간다고 하는 세계.” “큰 죄를 짓고 죽은 사람이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악마와 함께 영원히 벌을 받는다고 하는 곳.” 이라고 합니다.

첫째 부활이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예수님께서 재림의 심판주로 오셨을 때 유황불 못에 던져지는 것은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첫째 사망은 육신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무엇인가?

‘천년(千年)’이란 단어가 한글개역성경에서 9번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시편에서 1회(90:4), 전도서에서 1회(6:6).
신약에서는 베드로후서에서 1회(3:8), 요한계시록에서 6회(20:2, 3, 4, 5, 6, 7)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된 ‘천년(千年)’에 관한 말씀들을 중심으로 과연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용어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를 소개하려고 한다.

2절, 일천년 동안(a thousand years) - χίλια ἔτη.  

3절, 천년이 차도록(till the thousand years) - τὰ χίλια ἔτη. (the thousand years)      

4절, 천년 동안(a thousand years) - χίλια ἔτη.      

5절, 그 천년이 차기까지(until the thousand years) - τὰ χίλια ἔτη. (the thousand years)      

6절, 천년 동안(a thousand years) - τὰ χίλια ἔτη. (the thousand years)       

7절, 천년이 차매(the thousand years are expired) - τὰ χίλια ἔτη. (the thousand years)

* τὰ /  ὁ, ἡ, τό. 3588. ho, hé, to. the  
* χίλιοι. 5507. chilioi, a thousand     
* ἔτος. 2094. etos. a year    


분명한 사실은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천년왕국’이란 용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학교와 교회 그리고 성도들이 ‘천년왕국’을 언급하고 마치 머지않아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처럼 믿고 기다리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이란 용어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년’이란 ‘상징적인 수’로 사용한 것이다. 상징이란 증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요한계시록 20:2∼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이 말씀에서 ‘용’ ‘옛 뱀’은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다. 사단과 마귀에 대한 상징으로 표현한 것처럼 ‘천년’이란 단어 또한 상징으로 사용한 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년을 마치 천년동안 지속되는 어느 특정한 기간이라고 해석하므로 ‘천년왕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는 말씀은 천년이라는 기간과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왕 노릇하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은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미래의 사건입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는 그 순간에 이루어진 과거의 사건이었으며 지금도 계속되는 사건이고 또한 장차 미래에도 확실하게 증거 될 것입니다. 따라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것은 미래에만 이루어질 사건이 아닙니다.

과거에 실현된 사건은 지금도 계속되며 미래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천년동안이란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는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용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 의해서 자주 천년왕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왔기에 대부분의 교인들은 마치 ‘천년왕국(千年王國)’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깨우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 왔다 하고.

* 천국(ἡ βασιλεία) - βασιλεία, 932. basileia.
kingdom, sovereignty, royal power  

천국은 하늘 왕국 즉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하늘의 왕국은 이미 이 땅에 임했습니까? 아직 임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미 하늘 왕국은 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왕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분명하게 하늘 왕국은 완성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 왕국이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왕국을 말합니다.
하늘 왕국이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아미 임했습니다.

다니엘 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마태복음 23:37∼3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스가랴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이사야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시편 46:9∼10,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성경은 하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늘의 예루살렘 강하 사건(계 21:1~5)을 통해 본 하늘의 의미를 발표하고 “하늘은 더 이상 피안의 세계로서 이 세상과는 이질적인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이 세상과 통일돼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공간이 된다.”며 “새 예루살렘 강하 사건은 이러한 새 창조의 정황을 교회론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그림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예루살렘 강하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하늘과 땅이 통합되는 새 창조의 환경에 대한 묘사라는 것이다. 이 소장은 “새 예루살렘은 장소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인 성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성경에서 일관성 있게 사용되고 있다”며 “이는 24장로(계 4), 14만 4000(계 7:1~8),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17)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서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 공동체는 지상에서 전투하는 모습을 띠지만 동시에 하늘에서 승리한 공동체로 존재하는 이중적 특징을 지닌다”며 “이 땅은 우리가 버리고 떠나야 할 소멸의 결과를 기다리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하늘은 언제나 땅과의 통일을 이루도록 존재한다(엡 1:10). 하늘과 땅을 통합돼 온 우주가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혜(세인트앤드루대) 박사도 ‘히브리서 12장 25~29절의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위한 하늘의 진동’을 주제로 발표하고 “해당 본문은 창조 세계가 진동해 멸망할 것이라는 마지막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창조세계와 하늘의 세계를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할 영원한 처소로 준비시킬 것임을 전하는 약속의 메시지”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종말 상태에 대한 전통적 경향은 죽어서 하늘로 가는 데 집중돼 왔지만 이는 땅의 환경문제나 세상의 사회적·구조적 불의를 무관심하게 만든 불균형적 신앙 모습을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천년왕국(千年王國)

성경에서 중요한 주제 두 가지를 소개한다면 구원과 왕국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부분 구원만 강조하는 경향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르게 읽어볼 때 왕국을 건설하고 그곳에 구원받은 백성들을 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에베소서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하신 은혜는 왕국 안에서 구속하신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에덴동산(왕국)에 거주할 수 없도록 쫓아내셨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에서 왕국을 다스릴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기원전 606년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후 다른 나라와 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비록 약속의 땅에 거하면서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기원전 4년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32,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한글 번역에서 살펴보면 마치 천년이란 기간이 채워져 지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천년설 - 천년이 있기 전에 재림이 있다.
후천년설 - 천년이 지나고 재림이 있다.
무천년설 - 천년은 상징적인 수가 되어 천년은 없다.

* 천년의 기준에 의해서 시기가 다를지라도 중요한 것은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오늘의 묵상(8월)

오늘의 묵상 8월

오늘의 말씀

8

1

대하 26:1∼28:27, 롬 15:1∼15:21, 시 118:8∼118:17

8

2

대하 29:1∼30:27, 롬 15:22∼16:7, 시 118:18∼118:29

8

3

대하 31:1∼32:33, 롬 16:8∼16:27, 시 119:1∼119:8

8

4

대하 33:1∼34:33, 고전 1:1∼1:17, 시 119:9∼119:16

 
8월 1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역대하 26:1∼28:27
웃시야는 통치 초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형통케 되었으나, 후기에는 교만한 마음으로 제사장의 고유 역할인 성전의 분향 사역을 대신하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문둥병으로 일생을 마쳤다. 요담은 하나님의 전 건축 사업에 힘썼으며, 바르게 행하여 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서 우상 숭배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  

♦ 로마서 15:1∼15:21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약한 형제를 돌보고 서로 포용해야 하며, 이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일꾼으로서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셨다고 하였다.  

♦ 시편 118:8∼118:17
시인은 자신의 대적 앞에서 권능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시편 118:17)

8월을 맞이합니다.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어떤 비결을 갖고 있는지요?

늙은 소금장수와 젊은 소금장수가 산 너머 마을에 가서 소금을 팔려고 무거운 소금을 짊어지고 높은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산 중턱 쯤에서 잠시 쉬려고 젊은 소금장수가 소금지게를 내려놓으며 “아이고, 이 산이 지금보다 반만 됐으면 소금장사 해먹기가 좋을 텐데.” 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늙은 소금장수가 젊은 소금장수에게 “이 사람아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이 산이 세 배는 더 높았으면 좋겠네.” 하고 말했습니다. 젊은 소금장수는 깜짝 놀라며 “어르신, 지금 산도 너무 높아서 힘이 드는데 세 배나 더 높으면 좋겠다니요?” 그러자 늙은 소금장수가 “이 사람아 이 산이 낮으면 저 동네 사람 중에 누가 우리 소금을 사 먹겠는가? 다 산 너머로 와서 소금을 사 먹을 것 아닌가? 오히려 산이 세 배나 높으면 우리가 소금을 더 비싸게 더 잘 팔 수 있을 것 아닌가!”


어렵고 힘든 훈련을 받으면 그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나를 훈련하는 하나님의 다양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교우가 전화를 하며 ‘목사님, 정말 더워요!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때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옥은 이것보다 더 뜨거워요. 지옥을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견뎌야지요!’

아직도 지옥에 가야 할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하며 생명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므로 더위를 이기는 훈련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주여!
복음의 길 열어
방황하는 뭇 생명
구원 복음 이정표 따라
무더운 8월의 땀방울 모아
지옥의 불 끄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역대하 29:1∼30:27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아하스 시대에 파괴된 성전 복구 사업에 헌신하였다. 또한 성전을 성결케 한 후 성전에서 시행되던 각종 제사들을 실시하였으며, 복구된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키도록 결정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유월절 의식을 시행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 로마서 15:22∼16:7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방문하고 싶다고 밝히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여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모금한 구제 헌금을 전달하려고 하였다. 그 후 로마 교회를 지나 서바나로 갈 것을 계획하였고, 성도들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해 줄 신실한 자매 뵈뵈를 천거하였다.  

♦ 시편 118:18∼118:29
시인은 의인에게 응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시편 118:25)

이제 구원하소서!
이제 형통케 하소서!

나만 구원 받고
나만 형통하면 좋을까요?

두 사람이 여행을 하고 있었지요. 

한 사람은 고집이 세고 욕심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은 부드럽고 친절합니다. 


욕심 많은 사람이 이것저것 요구합니다. 

친절한 사람이 그것을 들어줍니다. 


다음에 다시 여행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누가 같이 가자고 하겠습니까? 


남들과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들이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누구와 함께 있고 싶어 합니까?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을 구원하고
남을 형통케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오 주여,
주 사랑 따라
주님 본 받아 살며
주 구원
주 형통
모두에게 전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3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역대하 31:1∼32:33
히스기야는 전국에 있는 우상을 없애고, 성전 일을 맡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책을 회복시킨 후 보수 규정을 마련하여 그 직책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십일조와 예물의 효과적 관리 분배로 불필요한 낭비를 방지하였다. 또한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물리쳤다.  

♦ 로마서 16:8∼16:27
바울은 로마 교회에 있는 복음의 동역자들과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들을 엄히 경계하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19:1∼119:8
시인은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고 교훈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시편 119:8) 

주문(呪文)을 외우면 40인 도둑 떼의 돌문이 열립니다.

주문을 외우면 손오공이 변신합니다.

주문을 외우면 돌이 금이 됩니다.

주문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외우나
선한 사람이 외우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祈禱)는 다르지요.

기도를 한다고 돌문이 열리거나 돌이 금이 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다른 사람이 드린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유롭고 은혜로우신 응답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임하게 되는 축복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주의 율례를 생각하며 그 울타리 안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우뚝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사람의 눈에 띄기 보다는
주님의 눈에 들게 하소서

주님의 눈에 띌 때
사람의 마음에 울림이 있게 하소서

간절한 기도자의 마음
주의 사랑으로 채워주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4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역대하 33:1∼34:33
므낫세는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앗수르의 침입을 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그는 회개 기도를 통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위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그의 아들 아몬은 우상에게 제사하며 야웨께 범죄하여 신복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으며, 요시야는 우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정화하는 개혁 운동에 착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했다.  

♦ 고린도전서 1:1∼1:17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강조하면서 교회에 문안 인사를 한 후, 고린도 교회의 파당으로 인한 분열을 지적하면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19:9∼119:16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자가 범죄하지 않고 깨끗한 행실을 할 수 있다고 교훈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시편 119:14)

재물을 좋아하듯 주의 말씀을 좋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믿음이 아닐까요?
재물은 좋아하는데 주의 계명을 멀리한다면 그것은 세상의 길에서 방황하는 것이겠지요?

천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합니다(롬 14:17)
그렇다면 지옥은 악령 안에서 불의와 분쟁과 괴로움일 것입니다.

천국방언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주어 천국을 만듭니다.

지옥방언은 불의와 분쟁과 괴로움을 주어 지옥을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말은 천국방언입니다.

“이게 뭐야!”
“네 까짓 것이 뭔데!”
이런 말은 지옥방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는 천국방언입니다.

“하려면 제대로 하지.”는 지옥방언입니다.


천국 방언은 천국을 소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지옥 방언은 지옥으로 점령된 삶에서 나오겠지요?
천국 방언으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역자로 승리합시다.

오 주님,
천국 마음에
주 사랑 깃발 날리고
주님 닮은
빛난 얼굴 미소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8

5

대하 35:1∼36:23, 고전 1:18∼1:31, 시 119:17∼119:25

8

6

스 1:1∼2:70, 고전 2:1∼2:16, 시 119:26∼119:32

8

7

스 3:1∼4:24, 고전 3:1∼3:23, 시 119:33∼119:40

8

8

스 5:1∼6:22, 고전 4:1∼4:21, 시 119:41∼119:48

8

9

스 7:1∼8:20, 고전 5:1∼5:13, 시 119:49∼119:56

8

10

스 8:1∼9:15, 고전 6:1∼6:20, 시 119:57∼119:64

8

11

스 10:1∼10:44, 고전 7:1∼7:24, 시 119:65∼119:72


8월 5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역대하 35:1∼36:23
요시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으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애굽 왕 느고의 말을 듣지 않고 애굽과 싸우다가 므깃도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 후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으나 애굽의 포로가 되었고, 뒤이어 왕위에 오른 여호야김과 여호야긴도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시드기야로 인해 결국 유다는 멸망하였다.

 
♦ 고린도전서 1:18∼1:31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대조하면서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임을 강조하였다. 
♦ 시편 119:1∼119:25
시인은 훼방과 멸시를 받을지라도 주의 율례를 묵상한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증거가 바로 자신의 즐거움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十字架)의 도(道)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말씀
십자가의 진리
십자가의 정신
십자가의 믿음
주여
이제는 모두가
십자가의 삶을
자랑할 수 있는 용기
더 하소서
이 작은 몸에

기도
김수영(1921∼1968)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는 마음으로

우리가 찾는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루자!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6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1:1∼2:70
하나님께서는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라는 조서를 내리게 하셨다.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 고린도전서 2:1∼2:16
바울은 오직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령한 일은 오직 신령한 것으로 분변한다고 하였다.  

♦ 시편 119:26∼119:32
시인은 영혼의 눌림을 호소하면서 주의 말씀대로 세워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시편 119:28b)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워주세요!
어제 시리아에서 근무하는 정형외과 군의관으로부터 사고로 인하여 여러 동료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지역에서는 상상도 못한 사건과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편하게 지냅니다.
정말 이 평안이 주님이 주신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음식(飮食)은 우리 몸을 보하여 건강을 줍니다.

약(藥)은 우리 몸의 잘못된 부분을 치료하여 건강을 줍니다.


건강한 사람은 약보다 음식이 더 필요합니다.

격려는 우리 마음과 삶 전체에 활력을 줍니다.

경책은 잘못된 부분을 치료해줍니다.

보통은 격려가 더 필요합니다.

격려만으로도 여러 가지 잘못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책으로 고쳐야 할 잘못도 있습니다.


바르고 건강한 삶을 살려면 경책만 있어도 안 되지만 격려만 있어도 안 됩니다.

적절한 격려와 적절한 경책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책인 성경에도 격려와 경책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오 주여,
그 말씀으로
바르게 세워주소서
세상의 소금과 빛 되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7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3:1∼4: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단을 쌓고 야웨께 번제를 드린 후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다. 성전 재건은 바사 왕 고레스 시대부터 다리오 즉위 때까지 방해를 받았는데, 아닥사스다 왕 때에는 방해 세력의 고소로 성전 건축이 완전히 중단되어 다리오 제2년까지 계속되었다.  

♦ 고린도전서 3:1∼3:23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육에 속하였기 때문에 분쟁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복음 전도자와 신자들의 관계를 밝히 드러냄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화합을 간곡하게 권면하였다.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공력을 쌓도록 권면하였다. 

♦ 시편 119:33∼119:40
시인은 주의 의에 더욱 합치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시편 119:34b)  

깨닫는다는 한자는 각성(覺醒)이라고 합니다.

각성이란 의미를 소개합니다. 
1. 어떤 잘못이나 사실 등을 깨달아 앎
2. 깨어나 정신을 차림
3.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태도

그리스도인들이 각성해야 할 것을 오늘의 말씀에서 생각합니다.
구약에서 성전은 예루살렘에 건축된 솔로몬 성전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성전은 주의 영이 거하는 몸과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당신의 마음에 주의 영이 거하십니까?
주의 영이 거하신다면 주의 영이 인도하는 생각과 행동에 의한 거룩한 삶이 드러나야 합니다.
거룩한 입술보다 거룩한 몸에 의한 삶이 자랑스러운 가정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자비하신 주님!
언어의 거룩함이
몸의 거룩함으로 드러나
거룩한 하루가 쌓여지게 하소서

거룩한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주의 거룩함이
온 천지를 덮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8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5:1∼6:22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을 통해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성전 건축의 열정을 다시 회복하여 성전 건축을 재개하였다. 방해 세력들은 다리오 왕에게 조서를 올렸는데, 오히려 성전 건축의 완결 조서가 내려서 성전이 완공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완공 후에 성전 봉헌식을 하고 유월절을 지켰다.  

♦ 고린도전서 4:1∼4:21
바울은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뿐이며, 충성에 대한 판단은 오직 예수님께서 하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역자 중심으로 당파를 만든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지적하였다.  

♦ 시편 119:41∼119:48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이 묵상하고 지키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2)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忠誠)’입니다.
최근 잘 훈련된 군견이 길을 잃어버린 여자 중학생을 10일 만에 찾아냈다고 합니다. 군견과 인명구조견과의 차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군견은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명구조견은 사람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마구 짖는다고 합니다. 목적은 같은 것일지라도 드러내는 방법이 전혀 다른 것은 만일 전쟁터에서 적군을 발견한 군견이 짖어댄다면 더 큰 위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잘 훈련된 십자가 군병입니다. 십자가 군병은 일반 군사와 다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차이는 일반 군사는 눈에 보이는 적군들과 싸우는 것이지만 십자가 군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하므로 반드시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보이는 현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실체를 알 수 있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주의 계명에 따라 선택과 결정과 실천에 의한 방법으로 승리하는 싸움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눈을 들어
어둡고 냉랭한 거리
헤매는 무리들 속에
숨어 있는 악한 세력
믿음의 손으로 붙잡아
광야로 몰아내고
승리의 깃발 세우게 하소서
진리의 빛 비추게 하소서
사랑의 노래 부르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9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7:1∼8:20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내려 율법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와 그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시켰다. 이는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제2차 귀환이었다.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명단이 유명 가문별 족보로 기록되었다.  

♦ 고린도전서 5:1∼5:13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행해진 근친상간의 죄와 부도덕한 악행을 언급하면서 죄를 보고도 방치한 성도들을 책망하였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내쫓으라고 명령하였다. 

♦ 시편 119:49∼119:56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곤란 중에 있는 자에게 위로와 노래가 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시편 119:56)

소유(所有)의 의미는 '자기 것으로 가짐' 또는 '대상을 전면적 또는 일반적으로 지배함'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자랑할 소유는 무엇입니까?

이민 생활에서 성공적인 삶을 세 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자녀 교육에 성공한 경우, 둘째는 제물을 많이 모은 경우, 셋째는 취미 생활에 즐거움을 누리는 경우라고 합니다. 아마 이런 세가지 모두를 갖춘 이민자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의 고백은 '주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 가지 모두를 갖추지 못했어도 오직 한 가지 주의 말씀대로 살았다면 그 이상 더 좋은 소유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을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의 길을 걸었다면 이 세상 것은 소유하지 못했지만 영원한 삶을 누릴 영생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주여,
예수로 자랑
예수로 감사
예수로 찬양
예수로 섬김
예수로 헌신
예수로 기쁨
예수로 봉사
예수로 사랑
오 주여,
오직 예수로만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10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8:21∼9:15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는 동안 인생길 어려움에 대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다. 예루살렘에 안착한 후, 방백들은 에스라에게 와서 이방 여인과 결혼한 백성들의 죄를 알렸다. 이에 에스라는 백성들의 범죄로 인하여 큰 근심 가운데 하나님께 통곡하며 회개 기도를 하였다.  

♦ 고린도전서 6:1∼6:20
바울은 교우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세상 법정에 소송하지 말고 교회 자체 내에서 해결하도록 권면하였다. 그리고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음행을 피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전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  

♦ 시편 119:57∼119:64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며 주의 율례로 가르쳐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시편 119:62)

한 밤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해 보셨나요?
왜 깊은 잠자리에 있어야 할 시간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을까요?
엄청난 파도가 밀려옵니다.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풍랑이 닥쳐온다는데도 놀라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깊은 밤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어 하늘을 향하여 읊조립니다.

주님!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할 일군을 세워야 합니다.
누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할까요?
일어나 빛을 발하라 하셨지요.
빛이 없는 몸으로 일어날지라도
아무도 그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아하와 강가의 눈물을 회복하게 하소서
거룩한 처소에서 화합하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으로 다듬어 주소서

전능하신 주여!
한반도 땅 새롭게
한민족 하나 되게
교회를 진리로 씻겨 주소서 
주 사랑
이 몸을 흔들어
흘러내리는 틈새 구멍에
밀어 넣어 주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11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10:1∼10:44
에스라가 통회 자복하는 기도를 드리자, 온 백성들이 함께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스가냐가 먼저 이방인 아내를 내어 보내고 에스라에게 그 일을 온 백성에게 주장할 것을 요청하였다. 에스라는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모이게 한 후,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도록 촉구하고 그들의 죄를 인하여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리게 하였다.

♦ 고린도전서 7:1∼7:24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결혼과 성생활에 대해서 말하면서, 절제할 수 없는 자는 음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결혼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자기처럼 독신으로 지내기를 권하면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19:65∼119:72
시인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 10:1) 

지도자(指導者)란 '특정한 집단이나 사회를 앞장서 거느리고 이끄는 사람'을 말합니다.

에스라가 회개하며 자복할 때 모든 백성들도 지도자를 따라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왔습니다.

바울은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라고 권면합니다.

지도자의 올바른 가르침과 본이 되는 삶은 사람들을 바른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바른 길을 벗어날 때 교회는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일어날 수 없다면 세상의 질서와 가치는 무너질 것입니다.

성도여 일어나라!
성도여 빛을 발하라!
빛이 되기 위하여
소금이 되게 하소서
소금으로 녹아내린 세상
그 안에서 모두가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생명의 풍성함을 회복케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8

12

느 1:1∼2:20, 고전 7:25∼7:40, 시 119:73∼119:80

8

13

느 3:1∼4:23, 고전 8:1∼8:13, 시 119:81∼119:88

8

14

느 5:1∼6:19, 고전 9:1∼9:18, 시 119:89∼119:96

8

15

느 7:1∼8:12, 고전 9:19∼10:13, 시 119:97∼119:104

8

16

느 8:13∼9:38, 고전 10:14∼10:33, 시 119:105∼119:112

8

17

느 10:1∼11:36, 고전 11:1∼11:16, 시 119:113∼119:120

8

18

느 12:1∼12:47, 고전 11:17∼11:34, 시 119:121∼119:128


8월 12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느헤미야 1:1∼2:20

느헤미야서는 바벨론으로부터의 3차 포로 귀환과 성벽 재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회복과 부흥의 역사를 기록하여 언약을 성취하신 신실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고 귀향하여 에스라와 함께 성벽을 재건한다. 그 후 백성들은 수문 광장에 모여 에스라가 읽는 율법을 듣고 자신과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율법을 지킬 것을 맹세한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유다 총독으로 12년간 업무를 관장하다가 바벨론을 다녀온 사이 백성들은 다시 죄악의 길에 빠졌고, 이를 발견한 느헤미야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인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능욕을 받는다는 비참한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드렸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고민을 듣고 조서를 내려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에 가도록 허락하였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밤중에 예루살렘 성벽의 참담한 상황을 확인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벽 중건을 호소하였다.  

♦ 고린도전서 7:25∼7:40
바울은 처녀가 결혼하면 마음이 나누인다는 것을 들어 독신을 권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처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마음에 작정한 대로 딸의 결혼 여부를 잘 결정하라고 하였다.  

♦ 시편 119:73∼119:80
시인은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에서 나온 것임을 고백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긍휼을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느헤미야 2:4) 

묵도(黙禱)란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지자 느헤미야의 묵도는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소원을 왕에게 고할 수 있는 믿음의 원천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그 소원을 성취하려면 먼저 마음 깊이 소원을 심어야 합니다.
소원을 마음에 심은 후에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입으로 고백한 후에는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거룩한 소원을 마음에 품고 날마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한 믿음으로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은총의 삶을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아버지!
마음의 소원을
입술의 열매로
삶의 터전에 쌓아
그 날의 감격을 바라며
오늘도
인내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13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느헤미야 3:1∼4: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건축과 중수에 각기 맡은 대로 헌신하였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세력들은 성벽 건축 방해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백성들에게 성벽 공사를 진행할 때 노역과 파수를 번갈아 가며 참여하도록 하였다.  

♦ 고린도전서 8:1∼8:13
바울은 우상 제물 먹는 일에 있어서 연약한 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삼가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19:81∼119:88
시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편 119:88a)

주여!
온 땅의 족속(族屬)들에게
회복(回復)의 영(靈)을 퍼부어 주옵소서.

거룩한 영의 지배를 받는
순결한 백성들이
땅을 밟을 때마다
자비의 숨을 쉴 때마다
인자한 말을 할 때마다
피곤한 몸을 눕힐 때마다

주님!
살아나게 하소서
회복되게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하나 되어
주의 땅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사탄의 비매품(非賣品)이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마귀가 상가의 진열대에 자신의 도구를 모아놓고 경매(競賣)한다는 광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매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물건들 중에 ‘비매품(非賣品, Not Sale)’이라고 표시된 이상하게 생긴 도구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한 사람이 마귀에게 “마귀 양반! 도대체 이것은 무엇에 쓰는 것이요? 그리고 또 왜 이것에만 ‘비매품’이라 써 붙였소?” 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질문에 대해 마귀는 “음, 이것은 아주 귀중한 것이지요. 내게는 둘도 없이 귀중한 것이라네. 이 도구가 마귀의 일을 성공케 하는 아주 특별한 도구라네. 다른 도구는 나누어 줄 수 있지만, 이것만은 절대 안 돼. 이것은 ‘낙심(落心)’이라고 하는데 이것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집어넣으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심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단 말이야. 낙심이라는 도구로 나는 세상의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게 되거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라꼴이 눈뜨고 보기에 힘들지요?
지도자의 말이 듣기에 거북하지요?
어쩔 수 없다고 한탄하지요?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반드시 주님이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14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느헤미야 5:1∼6:19
성벽 공사가 어렵게 진행되는 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취리 행위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였고, 백성들은 부르짖어 불평하였다. 이에 느헤미야는 취리 행위를 금지시키고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또한 대적들은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성벽 건축은 완료되었다.  

♦ 고린도전서 9:1∼9:18
바울은 자신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복음을 위하여 종의 자세를 취하는 자신의 삶을 강조하였다.  

♦ 시편 119:89∼119:96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만물을 보고 계명의 신실함을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시편 119:94a)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공사하는 감격을 나누면서도 백성들 사이에는 덕스럽지 못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감사는 현실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 고백할 수 있는 나눔의 마음입니다.

거리에서 예수를 믿으라며 전도지를 나눠주는 사역도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역도 사도 바울에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므로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일까요?

미국의 선교사 칵스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 미들타운에 있는 대학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대학생에게 “만일 내가 아프리카에서 죽는다면 자네가 직접 아프리카로 와서 묘비를 써주기 바라네.”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학생은 주저하지 않고 “예, 제가 쓰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써야 할까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교사 칵스는 “내가 죽고, 또 수천 명의 선교사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아프리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라고 써달라고 했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잘못된 주체사상에 도취한 사람들에 의해서 나라의 근본이 흔들릴 때 칵스 선교사와 같은 심정으로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내가 죽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할지라도 자유대한민국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 주여!
진리가 약속한 자유
자유가 보장한 민주주의
더 이상 흔들림이 없는
다져진 믿음의 기초위에
주여!
들끓는 온 땅에
진리가 흐르게 하소서
자유가 넘치게 하소서
정의가 실현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15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느헤미야 7:1∼8:12
느헤미야는 하나니와 하나냐에게 예루살렘 성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귀환자들의 보계를 얻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에게 율법 책 낭독을 요청하였고, 율법을 깨닫게 된 백성들은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울며 회개하였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위로하면서 하나님의 성일을 기쁨으로 지키게 하였다.  

♦ 고린도전서 9:19∼10:13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처럼 행하였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출애굽 과정 동안 하나님께 행한 범죄를 거울삼아 죄악에서 돌아설 것을 권면하였다.  

♦ 시편 119:97∼119:104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사모하는 자에게 지혜와 명철이 된다고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0:10) 

원망(怨望)이란 사전적 의미는 “못마땅하게 여겨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함.”입니다.

광복 74주년을 맞이하는 이 날에 역사와 지도자들의 행적으로 뒤집어 놓는 가치가 사람들을 미혹하고 흔드는 이 시대에 이런 현상의 뿌리가 원망이라고 하겠습니다.

광야의 백성들은 노예로 살던 애급 땅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현실을 원망한 것 때문에 무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율법을 찾아낸 후에 그 말씀을 들으며 모든 백성들이 함께 뉘우치며 다시는 원망의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듯이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일어나 다시는 조국의 터가 흔들리지 않도록 자유민주주의 기초를 든든하게 다질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하며 선포합니다.

주님!
74년의 흐름
분단 아픔의 흔적
잊지 못하는 기억을 모아
후손들에게
이런 아픔이 없기를
무릎을 꿇습니다.
두 손을 모아
하늘을 우러러 비옵나니
오 주여!
자유와 평화의 터전위에
겨레 사랑의 큰 샘
분수처럼 솟구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16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느헤미야 8:13∼9:38
백성의 지도자들이 에스라를 찾아와 율법을 배우던 중, 율법 책에 기록된 초막절의 규례를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온 백성들이 그 규례를 지켰다. 초막절을 시행한 후 에스라는 기쁨으로 날마다 율법을 낭독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 고린도전서 10:14∼10:33
바울은 우상 숭배를 피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과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19:105∼119:112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속에서 빛과 등불처럼 앞길을 비춰 주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편 119:107) 

만일 내 인생길에 말할 없는 어려움이 닥쳐왔다면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을까요? 성경은 고난(苦難)을 극복하는 비결을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강조합니다.

주의 말씀의 놀라운 능력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위로의 말씀
둘째는 소망의 말씀
셋째는 인내의 말씀
넷째는 생명의 말씀
이러한 말씀의 진가(眞價)를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체험할 수 있는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능력을 잃은 법이 없습니다.
다만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과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의 생명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뿐입니다.

오 주여!
그 말씀에
온전히 사로잡혀
주님의 삶을
저희들도 살아가도록
힘을 더하여 주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17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느헤미야 10:1∼11:36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충성할 것을 맹세하는 표시로 인을 치는 일에 동참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에 머물렀으며, 그 남은 백성은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은 성에 거하고 나머지는 다른 성읍에 거하였다.  

♦ 고린도전서 11:1∼11:16
바울은 창조 원리에 따라 여자의 머리는 남자임을 강조하면서 여자의 참된 지위는 남자를 섬기는 데 있음을 깨우쳤다.  

♦ 시편 119:113∼119:120
시인은 하나님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며 살기를 원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시편 119:114a)

예수의 흔적(痕迹, 스티그마)를 자랑하던 바울처럼 성벽을 쌓은 후에 인봉한 자들의 명단을 소개하며 섬김의 삶을 다짐한 것처럼 오늘날도 주의 인(印)을 받은 거룩한 성도들이 도처에서 섬김과 헌신의 자리를 다듬어가야 합니다.

요동치는 세상에 거룩한 믿음으로 섬김과 헌신의 삶을 보여주므로 더 이상 세상이 주체사상에 의해서 잘못된 신앙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도록 거룩한 백성들이 일어나기 위하여 우리들의 은신처와 방패가 되신 주님 앞에 모여 회개와 결단의 간구를 함께 높여야 하겠습니다.

능력의 주님!
거짓된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오는 거리에
진리의 외침이 들려지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소망 없는 가치에
몸과 마음을 빼앗긴 생명들에게
참 소망의 기쁜 소리가
귓가에 들려지게 하소서
마음에 새겨지게 하소서
몸으로 부딪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18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느헤미야 12:1∼12:47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 고린도전서 11:17∼11:34
바울은 성찬으로 인한 분쟁을 책망하고, 자신을 먼저 살핀 후에 성찬에 참여하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19:121∼119:128
시인은 하나님 말씀의 증거를 깨닫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나를 기념하라(고린도전서 11:24, 25b)

주의 백성들의 삶은 매일 매일이 주를 기념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기념(記念)이란 뜻 깊은 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는 것을 말합니다. 성찬예식에서 사용하는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기념의 깊은 뜻은 예수님의 삶을 내가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 믿음에 의한 삶의 모습이 이 땅위에 심어져서 구원의 열매를 맺도록 결단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주님의 거룩 본받아 살며  
주님을 증거 하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을 전하게 하소서
이 작은 생명 다하도록.......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8

19

느 13:1∼13:31, 고전 12:1∼12:27, 시 119:129∼119:136

8

20

에 1:1∼2:23, 고전 12:28∼13:13, 시 119:137∼119:144

8

21

에 3:1∼5:14, 고전 14:1∼14:19, 시 119:145∼119:152

8

22

에 6:1∼8:17, 고전 14:20∼14:40, 시 119:153∼119:160

8

23

에 9:1∼10:3, 고전 15:1∼15:28, 시 119:161∼119:168

8

24

욥 1:1∼3:26, 고전 15:29∼15:58, 시 119:169∼119:176

8

25

욥 4:1∼6:30, 고전 16:1∼16:24, 시 120:1∼120:7


8월 19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느헤미야 13:1∼13:31
예루살렘을 떠났던 느헤미야는 다시 돌아와 성전에서 악행을 일삼던 도비야의 거처를 없애고, 레위인들이 받을 십일조를 곡간에 들였다. 또한 안식일을 준수하게 하였으며,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을 금지시키고 제사장과 레위인의 반열을 세워 그들의 일을 하게 하였다.  

♦ 고린도전서 12:1∼12:27
바울은 성령의 다양한 은사는 한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며, 각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 주신다고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지체로서 한 몸이라고 하였다.  

♦ 시편 119:129∼119:136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둔한 자에게 깨달음을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편 119:133b) 

죄가 없는 세상은 어느 곳일까요?
에덴동산, 아브라함의 품, 낙원,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겠지요.
죄가 가득한 세상에서 매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성도들이 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을 하나님의 회에서 쫓아냈습니다. 하나님의 방에서 자리를 잡았던 도비야도 내쫓았습니다.

죄가 나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주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구할 때 반드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손짓하는 거짓된 사람들도 멀리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죄악 된 삶에 동화되어 함께 멸망의 길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주님!
악한 세력들을 향하여
무너지라!
떠나가라!
외칠 수 있는
믿음의 간구를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 나라가 임하기까지
주님 사랑이 증거 되기까지
죄와 끝까지 싸워
이기게 하소서.

죄를 분별하는
지혜의 영을 더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0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1:1∼2:23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에서 왕후 와스디는 왕의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폐위되었다. 그리고 새 왕후로 에스더가 간택되었다. 모르드개는 왕을 모살하려는 두 내시의 음모를 에스더를 통해 보고하였고, 그의 이름은 궁중 일기에 기록되었다.  

♦ 고린도전서 12:28∼13:13
바울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강조하였다. 

♦ 시편 119:137∼119:144
시인은 하나님의 법은 진리이며, 그의 증거는 영원한 의로움이 된다고 고백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시편 119:143)

은사(恩賜)는 카리스마(Karisma)
은혜(恩惠)는 카리스(Karis)
감격(感激)과 기쁨은 카라(Kara)

기쁨(카라)의 원천은 감격스런 구원의 은혜(카리스)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지속될 때 나를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은 은사(카리스마)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시간이 지나면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가짜 뉴스가 세상을 도배하는 때에 진리의 소식을 전하는 유투버들의 작은 외침은 반드시 거대한 매스컴을 무너트릴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환난과 우환 속에 감추어져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말씀 따라 진리의 증거자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승리하는 그 날을 위하여.....

오 주여! 
작은 새의 날개 짓에
신음하는 소리를 싣고
진리 찾아 공중을 배회하는
가련한 몸짓을 붙잡아 주소서
그 소리에 확성기를 대고
더 멀리
더 넓게
더 높게
더 많이
전달되게 하소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 날까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1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3:1∼5:14
신분이 높아진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자, 이에 앙심을 품은 '하만'은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 유대인들을 죽일 음모를 꾸며 왕의 조서를 받아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애통하며 금식하였고, 왕후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께 나아가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석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할 계획을 세웠다.  

♦ 고린도전서 14:1∼14:19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유익성을 말하면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방언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였다.

 
♦ 시편 119:145∼119:152
시인은 위기에서의 구원을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편 119:148) 

도처에 주의 뜻을 거역하는 각종 수단과 방법이 지겹도록 찾아올지라도 오직 주님의 뜻 이루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의 모르드개와 같이 때로는 죽음을 각오한 에스더와 같이 다양한 은사를 동원하여 기도하리라.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이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하여
온 땅이여
주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땅과 백성들로
가득 가득 채워질지어다.

내 삶에 어두움이 오면
빛으로 역주행하고

누군가 나를 미워하면
사랑으로 역주행하라

주여
이 거룩한 역주행으로
주님 닮아가는
복음의 씨앗으로
오늘도
심겨지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2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6:1∼8:17
아닥사스다 왕은 잠이 오지 않아 궁중 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의 공적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그에게 상을 베풀었는가 알아본 다음, 하만을 시켜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였다. 둘째 날 잔치에서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를 왕께 폭로하였고,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는 하만이 처형당했다. 그리고 에스더의 간청으로 인해 유다인들을 죽이라는 왕의 조서는 철회되고 오히려 원수를 갚게 되었다.  

♦ 고린도전서 14:20∼14:40
바울은 교회 안에서 다양한 은사들을 행할 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질서를 따라 적당하게 하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19:153∼119:160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당하는 자에게 증거가 되고 그를 소성시켜 줌을 고백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시편 119:154b)

민족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것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로 세우는 것
고난의 사람을 믿음의 반석 위로 옮기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방법을 찾을 때 실현할 수 있습니다.지금 어떤 짓눌림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내 방법과 내 솜씨를 주의 말씀으로 다듬어 주의 방법을 찾아 무릎을 꿇고 주여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주님 영광 드러나게 하소서 간절히 부르짖고 다시 시작합시다.

오 능력의 주님이시여!
나를 나답게 세워주소서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를
내일의 소망에 믿음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오늘을 모릅니다.
내일도 모릅니다.

죽은 사람은
주머니에 남아 있는 것조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오늘의 노력과
내일의 기대에서
제외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 주여,
오늘을 살아갈
새 힘을 주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3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9:1∼10:3
모르드개는 왕궁에서 존귀하게 되었고, 그의 명성은 전국에 퍼졌다. 모르드개는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부림절 규례를 제정하였다.

 
♦ 고린도전서 15:1∼15:28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도들의 부활과 영생의 근거와 첫 열매가 됨을 강조하였다.  

♦ 시편 119:161∼119:168
시인은 핍박과 곤고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굳건히 지키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22)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성경에서 처음이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시작(始作)'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대표(代表)'라는 뜻입니다.
첫 아담의 죄와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전가(轉嫁)된 것처럼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適用)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림절 축제를 즐기게 되는 것처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소망은 모든 인류에게 새 생명 축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새 생명의 감격을 즐기며 주님을 찬양합시다.

생명의 주여
죽음의 틀에서
그 틀을 벗어난 삶을 보게 하소서

소망의 주여
암울한 현실에서
그 틀을 넘어선 삶을 얻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4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1:1∼3:26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그러나 사단의 참소로 인해 욥은 그의 모든 소유물들과 자녀들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생겼다. 그렇지만 욥은 하나님께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으며,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욥의 상태를 보고 7일 동안 말을 걸지 못하였다. 절망한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였다.  

♦ 고린도전서 15:29∼15:28
바울은 하나님의 권세에 대해 선언한 후,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씨앗의 비유를 들어서 부활의 소망인 둘째 아담 그리스도와 썩지 않을 부활체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그는 부활에 관한 분명한 확신 위에서 사망을 향해 담대한 승리의 선언을 하였다.

♦ 시편 119:169∼119:176
시인은 주의 계명을 깨닫게 하실 것을 간구하며, 깨달을 때마다 즐거움으로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시편 119:175a)  

사탄은 참소(讒訴)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탄이 의로운 사람 욥을 참소하는 까닭은 하나님 경외하는 자리에서 떨어트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욥의 믿음이 정말 하나님 중심인가? 아니면 세속의 부를 즐거워하기 때문인가?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즐거움을 높이려는 것 때문입니까?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시인의 애달픈 외침을 마음에 담고 주님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나도 가야 합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주님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고난의 길을
믿음으로 걷게 하소서

주님,
흩어 진 마음을
사랑으로 달래게 하소서

주님,
눈물 골짜기
통곡의 소리로 덮어
영혼의 멋진 삶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5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4:1∼6:30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이 ‘숨겨진 죄’ 때문이라고 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회개 후에 받게 될 축복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욥은 불성실한 그의 태도와 말을 책망한 뒤,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하면 잠잠하겠다고 하였다.  

♦ 고린도전서 16:1∼16:24
바울은 성도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요청하면서 신실한 일꾼을 추천하였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대한 자신의 간절한 사랑을 표현한 후,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간구하였다.  

♦ 시편 120:1∼120:7
시인은 환난과 곤고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린도전서 16:14) 

고난의 웅덩이에 빠진 욥을 향하여 은밀한 죄를 회개하라는 엘리바스가 친구일까요? 아니면 타인일까요?

어려움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와 함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친구가 내 주위에 누구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신앙의 동지와 더불어 이 땅에서 겪게 될 고난을 당당하게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합시다. 실력과 힘이 없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랑과 믿음의 용사로 거듭나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의 주여,
메마른 마음에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소서

믿음의 주여,
갈라진 심령에
뜨거운 성령을 부어주소서

위태로울 때
괴로울 때
어려울 때
즐겁게 찾아올 수 있는
친구가 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8

26

욥 7:1∼9:35, 고후 1:1∼1:14, 시 121:1∼121:8

8

27

욥 10:1∼12:25, 고후 1:15∼2:4, 시 122:1∼122:9

8

28

욥 13:1∼15:35, 고후 2:5∼2:17, 시 123:1∼124:8

8

29

욥 16:1∼19:29, 고후 3:1∼3:18, 시 125:1∼125:5

8

30

욥 20:1∼22:30, 고후 4:1∼4:15, 시 126:1∼126:6

8

31

욥 23:1∼26:14, 고후 4:16∼5:10, 시 127:1∼127:5

9

1

욥 27:1∼29:25, 고후 5:11∼5:21, 시 128:1∼128:6



8월 26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7:1∼9:35
욥의 답변과 호소가 계속되는 가운데 수아 사람 빌닷이 욥의 변명을 반박하였다. 빌닷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말하면서 욥의 자녀들이 죄의 대가로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욥에게 옛 열조들의 경험과 지혜를 배우라고 권고하면서, 욥이 회개하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그러자 욥은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과 자신의 약함을 대조하면서 자신의 순전함을 고백하였다.  

♦ 고린도후서 1:1∼1:14
바울은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를 잊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의 자랑임을 밝혔다.

♦ 시편 121:1∼121:8
시인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만이 완벽한 도움이 된다고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2) 

가장 강력한 도움의 원천(源泉)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자유대한민국의 위태로운 현실을 위하여
병상의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위하여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갇혀있는 정치범 수용소의 문이 열려지기를 위하여
영적 갈급함을 신령한 은사로 채우기 위하여
우리 모두 야훼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공허한 말들과 
경건한 문구들을 늘어놓지 말게 하시고, 
사랑이 말을 짓는 것보다 더 나으며 
순종이 논증보다 더 좋음을 알게 하소서. 
우리는 항상 말들과
온갖 경건한 상투어들을 갖다 붙이며 
당신의 계명으로부터 도망치려합니다. 

우리를 굳게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사로잡아 
오늘날 필요한 당신의 말씀에 굴복시키시고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행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를 믿음으로 행하게 하소서.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의 기도 중에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7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10:1∼12:25
욥의 계속되는 한탄 가운데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의 변명에 대해 공격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내세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는 욥의 고백을 비난하면서 욥이 회개하면 용서를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가 올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욥은 자신이 친구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자신도 지혜와 명철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 고린도후서 1:15∼2:4
바울의 고린도 교회의 방문 계획이 변경된 이유는 인간적인 이익과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이며 고린도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랑의 배려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들로 근심하게 한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시편 122:1∼122:9
다윗은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평강과 형통을 기원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린도후서 1:22) 

성령(聖靈)은 성도들의 믿음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영(靈)입니다.
성령의 보증(保證)이 없다면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힘으로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합시다.
나라와 민족,
교회와 성도,
가정과 가족,
사회와 이웃,
영적 장애가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주 하나님, 
이 세상을 좀 보시옵소서. 
굶주림과 목마름, 
실향과 실업, 
눈물과 절망을 보시옵소서. 

하나님, 

이것이 당신의 자비의 자녀들이란 말씀입니까? 

이것이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이란 말입니까? 

오, 

당신의 피조물들이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만 하니 

우리는 분명 너무나 당신으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곧 끝장이 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아무것도 소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당신이 오소서, 

오 하나님, 

그리고 이 모든 불행과 

이 모든 비탄을 없애 주시며 

부디 당신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려 하신다는 

그 언약을 우리에게 감추지 마소서. 

당신께서 가난한 자들과 슬픔에 빠진 자들, 

근심하는 자들과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당신의 나라에 초대하셨던 그 언약을 

우리에게 감추지 마소서. 

하나님, 우리를 다시 기쁘게 해 주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8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13:1∼15:35
욥은 친구들이 말하는 고난에 대한 이해를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렇지만 그것이 자기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직접 변론하여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원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엘리바스는 이러한 욥의 말을 정죄하면서, 악인의 고통스런 운명을 제시하며 하나님께 용서 구할 것을 촉구하였다.  

♦ 고린도후서 2:5∼2:17
바울은 교회에서 물의를 일으킨 자들을 용서하라고 권면하면서, ‘성도는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생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다.  

♦ 시편 123:1∼124:8
시인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사모하며 그의 도우심에 감사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린도후서 2:15)

사람다운 냄새가 그립습니다.
사람에게서 야수(野獸)의 피 냄새가 진동합니다.
사람에게서 거짓의 오물(汚物) 냄새가 어지럽습니다.
사람에게서 위선(僞善)의 탈이 소리칩니다.
사람에게서 교만(驕慢)의 얼이 유혹합니다.
주여,
내 몸에서 복음의 향기가 분수처럼
솟구치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링컨의 기도가 그리워지는 현실입니다.
미국의 남부와 북부 사이에서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편하게 살던 남부 사람들은 노예 없이는 불편해서 하루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예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비인도적인 표어까지 내걸면서 북군을 밀어 붙였습니다.
그런 남군 앞에 북군은 가는 곳마다 쓴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진 북군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편이 되셔서 북군이 이기게 하소서!”

이러한 기도를 들은 링컨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북군 편이 되어 주시라고 기도하지 말고,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29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16:1∼19:29
욥은 친구들을 ‘번뇌케 하는 위로자’라고 고백하였으며,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의 결백함을 보증해 줄 보증물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빌닷은 친구들을 원망하는 욥을 책망하며 욥을 악인에 비유하여 그에게 닥칠 외적인 재앙을 장황하게 묘사하였다. 그러자 욥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사로 말미암았으며, 이제 근거 없는 비방은 그만 두고 긍휼한 마음을 가져 줄 것과 끝까지 비방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죽은 후에 하나님 보기를 사모하였다.  

♦ 고린도후서 3:1∼3:18
바울은 주의 영광을 위한 사도직의 우월성을 구약의 직분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즉, 구약의 직분은 모세가 그 얼굴을 가림으로써 영광이 가려진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였으나, 신약의 직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세의 얼굴을 가린 수건이 벗어져 영광이 드러나는 것과 같이 영광스럽다고 하였다. 

♦ 시편 125:1∼125:5
시인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그의 능력으로 안전한 삶을 산다고 노래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17) 

진리(眞理)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주의 영이 자유케 하리라(고후 3:17)
그리스도께서 자유케 하리라(갈 5:1)
진리와 주의 영과 그리스도는 결국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이 자유를 주실 수 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의 기쁨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윌리암 바클레이 기도
- 운전자의 기도

오, 하나님! 
차를 운전할 때마다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도록 도우소서. 

차의 흐름이 짜증나게 느껴질 때 

나에게 인내심을 주시어 

몇 분을 단축하려고 모험을 시도하려다가 

나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바트리지 않게 하소서. 


나에게 예의 바름을 주시어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운전자들도 생각할 수 있게 하소서. 


항상 민첩하게 하시고 

지혜를 주시어
멈추고 정지해야 될 때를 알게 하소서. 


도로 위에서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버릇이나 쾌감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운전하는 도로 위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하나이다.
아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30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20:1∼22:30
소발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비유까지 서슴지 않고 하면서 욥에게 회개를 강조하였다. 이에 대하여 욥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악인의 형통함에 관하여 역설하였다. 엘리바스는 욥의 죄악이 크다고 책망하였다. 그러나 훗날에 그는 위로자의 자세로 돌아가 회개하여 불의를 버리면 하나님께서 다시 욥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권면하였다.

♦ 고린도후서 4:1∼4:15
바울은 예수를 위하여 자신이 종 된 것을 증거 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가 담긴 질그릇으로 비유하였다.

♦ 시편 126:1∼126:6
시인은 포로 된 자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된 것을 감사 찬양 드리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 

질그릇에 보배를 담으면 질그릇의 가치는 질그릇의 가치는 보배의 가치로 승격(昇格)합니다. 질그릇에 개밥을 담으면 질그릇의 가치는 개밥그릇으로 전락(轉落)합니다.

내 몸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내 몸의 가치가 결정(決定)되는 것처럼 내 몸에 담는 것은 나의 결정입니다.

주님, 나의 가치를 승격할 수 있는 결정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슈피겔 기도
- 이렇게 살게 하소서

살아가면서
내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며 

불평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침에 일어나 

눈부신 햇살에게 문안드리며 

오늘 하루 

내 곁에 있는 모든 이들과 

따스한 대화와 온기로 

살게 하옵소서. 


아침마다 

내 안에 생겨나는 

높은 마음 낮추이고 

저문해 서산에 넘실거리면 

입술엔 사랑을 담고 

가슴엔 희열을 내뿜으며 

우리의 삶이 공동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내가 할일이 무엇인지 

잘 기억하여 

교만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사람으로 

기억되게 하옵소서. 


그냥 

세월의 흐름 속에 

나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창조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금 

이 시점에서 바라보는 태양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생각을 

영원히 간직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8월 31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욥기 23:1∼26:14
욥은 엘리바스의 답변에 탄식하면서, 하나님께서 결백한 자신의 호소에 답변해 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그리고 악인들의 최후에 관하여 말한 후, 그들을 놓아두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문을 표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빌닷은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말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깨끗한 사람은 없다고 하였다.

♦ 고린도후서 4:16∼5:10
바울은 속사람과 겉사람을 비교하면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였다. 또한 손으로 지은 집과 영원한 집을 비교하면서 현세와 내세의 생명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장차 우리는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든지 하나님 나라에 있든지 항상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할 것이라고 권면하였다.

♦ 시편 127:1∼127:5
시인은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돌보심을 찬양하고 있다 

♦ 묵상과 기도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린도후서 4:16)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위선(僞善)이며 거짓입니다.
나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일까?
내가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주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정말 겉과 속이 같은 삶을 살아왔을까?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겉과 속이 다른 삶과 생각을 가졌다면 이제 이런 잘못된 것을 철저하게 털어버려야 합니다.

아비스 기도(Avis B. Christansen)
- 헌신의 기도

예수,
나의 주 나의 왕이시여, 
당신께 드릴 생애는
단 한 번뿐이라. 
당신의 자비를 찬양할 입도
단 하나 뿐이라. 
당신의 비할 데 없는 영광을 위해
바쳐질 마음도 
단 하나 뿐이라. 
온전히 드려질 마음은
단 하나 뿐이라. 
주여,
당신을 위해 사용될 인생은
이 생애뿐이라. 
지나치는 모든 순간이
영원히 가치 있게 하소서. 
주위에는 영혼들이
죄와 수치 중에 죽어가나이다. 
나를 저들에게로 이끌어 
갈보리 구속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소서. 
당신의 영광스런 이름으로 전하게 하소서. 

주여,
이 단 한 번뿐인 생애를 취하소서. 
아무것도 움켜쥠 없이
이제 당신의 뜻을 준행 하리이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값없이 내어주신 당신께서 
당신을 위해 쓰시고자
이 생명을 요구하시니 
내 구주여,
매 순간 순간을
당신께 드리나이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유대인의 결혼 풍속 10단계

유대인의 결혼 풍속 10단계

1단계 ; 적령기 13세∼18세
(일곱 절기 때 공공의 장소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
(부모의 약속에 따라 만날 수도 있다)

2단계 ; 세 가지 준비물
1. 포도주 한 잔
2. 신부의 값을 결정하는 은과 금
3. 제1 서약서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나는 ∼지파 ∼집의 ∼이다)신신
(찾아온 목적을 분명하게 말한다. 당신의 딸과 결혼을 하고 싶다. 허락해 주세요)

3단계 ; 세 가지 질문
(여자의 아버지가 딸에게 세 가지를 질문한다. 남자가 없는 자리에서)
1. 지적 요소 - 남자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2. 정적 요소 - 얼마나 사랑하는가?
3. 의적 요소 - 고난이 닥쳐와도 정말 헌신할 각오가 되었는가?
* 아버지가 딸에게 ‘내가 이 결혼을 허락해 주기를 원하느냐?’
(딸이 승낙한 후에 남자에게 허락을 한다)

4단계 ; 신부의 몸값을 흥정
(이때 남자는 자리를 피하고 대리인이 나선다. 거래를 위한 흥정이 아니라 서로 상대방의 집안 형편에 맞도록 고려한다)

5단계 ; 첫 번째 계약서를 읽는다.
포도주 한 잔을 남자와 여자가 반잔씩 나누어 마신다.
이때 서약서 위에 여자가 반잔을 마신 후 몇 방울의 포도주를 부은 후 남자가 마신다.
은금을 지불한다.
청혼, 포도주를 나누어 마신다, 서약서를 확인 후 정혼(定婚)으로 부부가 된다.

6단계 ; 신부의 아버지가 뿔나팔을 불어 정혼식을 알린다.
신랑과 신부를 축복기도 한다.
법적으로 부부가 인정되었으나 서로 떨어져 지낸다.

신부여 지금으로부터 약 일 년 후 어느 날 알지 못하는 어느 날 저녁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올 것입니다. 준비하고 기다리십시오!

7단계 ; 일 년간의 별거(別居)

생사가 걸린 일 이외에는 결코 만날 수 없다.
신랑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함께 기거할 집을 준비한다. 
신부는 자기 생활 방식을 버리고 남편 집의 생활 방식을 연습한다.
신부는 신랑 이외에 이성 교제를 중단하고 신랑만을 사모하며 기다린다.

8단계 ; 신부를 데리러 오는 때
신부는 신랑을 맞이할 날을 학수고대한다.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갈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린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을 부른 후에 “이제 신부를 데려 오너라!”
(신부를 데리러 가는 그 시간은 아버지의 권한에 속하므로 아들은 모른다)

신랑과 신랑의 친구들은 횃불을 들고 신부의 동네로 찾아간다.
신부 측에서는 “보라, 신랑이 오고 있다!”
신부는 이때 단장을 하고 친구들과 같이 신랑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서 함께 신랑의 집으로 간다.

9단계 ; 두 번째 계약서
미래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서와 신랑의 징표를 준다.
합방을 한다.

10단계 ; 사랑의 선언
두 번째 계약서를 들고 이 신부는 정절에 관하여 깨끗하였으므로 결혼은 완성되었다고 선언한다.

유대 사회에서 일 주일의 기간은 ‘김추어진 기간(Hidden Seven Days)’ 이라고 한다.

정혼은 신부의 집에서
결혼은 신랑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옳은 행실(δικαιώματα, 디카이오마타)
δικαίωμα. 1345. dikaióma. an ordinance, a sentence of acquittal or condemnation, a righteous deed      

디카이오마란 법령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행위로 옳은 것이 아니라 선포된 의를 말합니다. 행위적인 행위로 옳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선언에 의해서 옳다고 인정된 존재이다(다 이루었다!) 

로마서 3:20∼2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빌립보서 3:4∼9,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옳은 행실은 구원의 은혜로 얻은 것입니다.

유대 풍속은 잔치에 초청을 받았을 때 내가 준비하는 예복이 없었다. 잔치를 준비한 신랑의 집에서 준비한 예복을 받아서 입어야 한다. 따라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한 예복 즉 십자가 보혈에 의한 구원의 옷 세마포의 옷을 받아 입은 후에 그 잔치에 참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유대의 전통은 혼인 잔치에서 입는 예복은 초청을 한 집에서 준비합니다. 철저하게 신랑 위주로 진행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각자 준비하는 예복이라면 빈부귀천에 따라 화려한 명품과 값싼 것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그러나 초청자의 집 즉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것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한 옷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의 의미와 용법

할렐루야!
-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할랄 - 찬양하라
루 - 너희의
야 - 야훼 하나님

구약에서 시편에서 23회
104:35, 45. 106:1, 48. 111:1. 112:1. 113:1, 9. 115:18. 116:19.
117:2. 135:1, 21. 146:1, 10. 147:1, 20. 148:1. 149:1, 9. 150:1, 6.

신약에서 요한계시록에서 4회
요한계시록 19:1, 3, 4, 6

19:1 -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라!

19:3 - 심판의 하나님을 찬양하라!(2절 참조)

19:4 - (아멘과 함께 사용)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 질 것을 내가 믿고 찬양한다!

19:6 -  전능하신 통치를 찬양하라!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Ⅴ(요한계시록 19:9) 설교 원고(2019-08-18)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Ⅴ(요한계시록 19:9)


- 어린 양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 자의 복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어린 양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羊)입니다.

☞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어린 양의 신부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 신부(νύμφην) - 눔패(νύμφη), 3565. numphé. a bride, a young woman     

* 아내(γυναῖκα) - 구내(γυνή), 1135. guné. a woman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의 아내는 교회를 말합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22절을 읽겠습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6, 27절을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새 예루살렘은 교회를 말합니다. 새 예루살렘 교회는 곧 예수님이십니다. 새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입니다. 따라서 어린 양의 아내는 교회이며 그 교회는 예수님만을 믿고 예수님만을 살아가는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도입 이야기)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묵시문학으로 기록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려면 혼인에 대한 유대인의 풍속을 알아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개역한글 성경 요한계시록에 '아내'라는 단어가 19장 7절(구네, γυνή)과 21장 9절(눔패, νύμφη) 두 번 소개됩니다.

요한계시록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아내(γυνὴ) - γυνή, 1135. guné

현대인의 성경, 새번역 성경,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모두 '신부' 라고 번역합니다.

구네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에게 여자여(γύναι)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말했을 때 '여자여!' 라는 단어를 '구나이' 라고 합니다. 이때 '구나이'는 아내가 아니라 '부인이여!' 라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 아내(νύμφην) - νύμφη, 3565. numphé, 젊은 아내, 부인

유대인의 결혼 절차
- 유대인의 결혼 풍속은 정혼(定婚)과 결혼(結婚)과 동거(同居)라는 삼단계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단계, 정혼(定婚)

남자가 여자의 집에 증인과 함께 세 가지 예물을 갖고 찾아갑니다. 세 가지 예물이란 서약서와 포도주와 은금을 말합니다. 먼저 남자가 여자의 아버지에게 당신의 딸과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청혼을 합니다. 이때 아버지가 딸에게 청혼을 받아드리겠느냐? 하고 묻습니다. 딸이 청혼을 받아드리면 포도주 한 잔을 따라주고 딸이 반잔을 마신 후에 청혼 서약서 위에 포도주 몇 방울을 떨어트린 후 나머지 잔을 남자가 마신 후에 은금을 딸의 아버지에게 드립니다.

이때 신부의 아버지는 뿔 나팔을 불어 온 동네에 정혼을 알리며 아버지가 딸과 남자에게 축복합니다. 이것을 정혼(定婚)이라고 합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1장 18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정혼(μνηστευθείσης) - μνηστεύω. 3423. mnésteuó,
to espouse(옹호하다, 지지하다), betroth(정혼하다)  
  
* 동거(συνελθεῖν) - συνέρχομαι. 4905. sunerchomai,
to come together(함께하다), to accompany(동행하다)       

두 번째 단계는 결혼(結婚)

정혼의 단계를 마치면 여자는 친정집에서 신부 수업을 받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로부터 1년 동안 신랑 수업을 받으며 신부와 함께 기거할 집을 짓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던 말씀에 해당합니다(요한복음 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집(οἰκίᾳ) -  οἰκία, 3614. oikia.  a house, dwelling      
* 거할 곳(μοναὶ) -  μονή,  3438. moné. an abiding, an abode    
* 처소(τόπον) - τόπος, 5117. topos.  a place      

세 번째 단계는 동거(同居)

신랑이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로부터 신랑 수업을 받으며 신부와 함께 거주할 집을 짓고 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제는 신부를 데려올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면 아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이제 가서 신부를 데려오라'고 하면 신랑은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을 찾아갑니다. 신부를 데리러 가는 날은 아들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가 결정하므로 아들 즉 신랑도 모릅니다(마태복음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고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친구들과 신부의 집에 갈 때 동네 입구에서 큰 소리로 신랑의 친구들을 신부의 집을 향해 신랑을 맞이하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신부를 데리고 신랑의 집으로 돌아오면 두 번째 결혼 계약을 합니다. 이때 계약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을 약속하며 신랑이 신부에게 징표를 줍니다. 그리고 첫 날밤을 지냅니다. 첫날밤을 지낸 후 아침에 신랑은 문을 열고 '신부는 순결하였다!' 라고 외치면 일주일 동안 혼인잔치가 시작됩니다.

가나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부족했다는 것은 가장 즐겁고 기쁜 날 함께 마실 포도주가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포도주는 피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혼인 언약이 없다는 것으로 신랑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은 끊어진 언약 관계를 회복시키셨다는 것이며 이것을 표적(表迹) 이라고 합니다. 표적은 기적(奇蹟)과 다른 것으로 기적은 단순히 놀라운 사건이지만 표적은 놀라운 사건 속에 감추어진 구속의 진리와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맥을 살펴보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라는 말씀은 아직 혼인 잔치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아내" 라고 부르는 것은 정혼 단계에서 부르는 호칭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각각 각자의 집에서 신랑 수업과 신부 수업을 잘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신랑의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혼인 기약이 이르렀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데려오라고 말할 때 비로써 세마포를 입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세마포를 입게 하였다는 말씀은 드디어 신랑이 아버지로부터 신부를 데려올 그 날을 알려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말하기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기록하라고 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고 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다는 것이 참된 말씀입니다.

어느 교주와 교파와 교회에 등록하고 받아주는 것이 복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어린 양 혼인 잔치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라는 찬송의 가사를 작사했던 존 뉴턴 목사님의 간증을 기억하십니까?

어느 날 존 뉴턴 목사님이 천국에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세 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첫째는 세상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성도들의 모습을 천국에서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둘째는 신앙생활을 저런 식으로 한다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염려했던 사람들에 대한 모습 그리고 세 번째는 과연 나와 같은 죄인을 천국에서 받아주실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기에 세 가지 의문에 대해서 확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한 후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성도들을 천국에서 만나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앙생활을 저렇게 하면 안 될 텐데 하고 염려했던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나와 같은 죄인의 이름도 천국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 혼인 잔치란 어린 양이신 부활하여 승천하였던 예수님께서 신랑으로 다시 오실 때 주를 믿던 성도들이 신부로서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천국에 들어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 확증하며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없음을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지만 내가 내 신앙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시험하고 확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정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확실하게 갖고 있습니까? 그것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진노의 자녀로 태어났던 나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힘입어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셨고 일찍부터 예수님을 믿고 섬김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고 그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만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마태복음 22:1∼13,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복(禮服, ἔνδυμα γάμου)을 준비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2:11∼12,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 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 예복(禮服, ἔνδυμα γάμου) 
- ἔνδυμα. 1742. enduma.  apparel
- γάμος. 1062. gamos. a wedding 
   
예복(禮服)이란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하여 입는 옷을 말합니다(ἔνδυμα γάμου).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세마포(βύσσινος)를 말합니다.

세마포를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세마포(βύσσινον) - βύσσινος. 1039. bussinos,  fine linen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부자 청년처럼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 옷(στολὰς) - στολή. 4749. stolé,  equipment(장비), apparel(의류) 

예복이란 일상생활을 위하여 입는 옷과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어린 양 혼인 잔치에 참여할 때 반드시 검증해야 할 옷으로 의복(衣服)이 아니라 행실(行實)을 말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어느 교주도 교파도 교회도 옳다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다만 어린 양의 피 십자가 보혈을 내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신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요약합니다.
어린 양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만 청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각자의 일에 얽매여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참여한 사람들 중에 예복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입으로는 믿고 마음으로 믿지 못한 사람은 예복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어린 양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으셨습니까?
초청장을 받았으면 잔치에 참여하기 위하여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내게 맡겨진 믿음의 본분을 바르게 감당하여 모두가 잔치 자리에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하며 축복합니다.
 

♪ 찬송 162장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Ⅳ(요한계시록 16:15) 설교 원고(2019-08-11)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Ⅳ(요한계시록 16:15)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Ⅳ(요한계시록 16:15)

- 자기 옷을 지키는 자의 복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Behold, I come like a thief! Blessed is he who stays awake and keeps his clothes with him, so that he may not go naked and be shamefully exposed. 

믿음(信)이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광복 74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하며 오늘의 시대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국가관이 마구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국회의원은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설마 하며 동영상을 관심을 갖고 동영상을 보는데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태극기에 경례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믿음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선다면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성도가 있고 교회가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조국을 긍휼히 여길 것입니다.

의식주(衣食住. 옷 衣, 밥 食, 살 住)란 “사람이 생활하는 데 기본이 되는 옷과 음식과 집”을 말합니다. 왜 사람은 옷과 밥과 집이 필요할까요?

첫 사람 아담은 옷과 음식과 집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을 “에덴”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에 에덴에서 쫓겨나므로 그때부터는 옷과 음식과 집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이 세상에서는 옷과 음식과 집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어떻게 얻고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은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일곱 가지 복에 대한 말씀 중에서 세 번째로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일곱 가지 복에 대한 말씀을 함께 기억하려고 코팅 복사하여 주보와 함께 나눠드렸습니다(Laminate). 다음 주일부터 일곱 개의 성구를 암기하신 교우들에게는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나눴던 성구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지키다(테레오, τηρέω. 5083. téreó)는 단어는 단순히 지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다(to watch over)' 또는 '경계하다(to guard)'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복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죽음을 슬퍼하기 때문에 죽은 후에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는 죽은 조상에게 음식을 차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후손들은 하루 세 끼씩 식사를 하면서 조상들을 위한다며 일 년에 단 한 차례 제사를 드리며 음식을 차려주는 것이 과연 효도하는 것일까요?

기독교 신앙은 죽은 후에 슬퍼하며 효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에 더 잘 모시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 소개할 말씀 요한계시록 16장 1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정상적인 사람은 옷을 벗고 다니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여 각 가정을 심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예정된 모든 가정들을 심방하며 마지막 한 가정이 남았습니다. 그 집에 도착하였을 때 집안에서는 분명히 누군가 있는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심방을 왔다가 돌아간다는 표시로 요한계시록 3장 20절이란 성구를 적은 메모를 남기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며칠 후 목사님이 사무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에 지난 번 심방 때에 남겨둔 메모가 사무실에 붙어 있었는데 그 메모지 아래에 창세기 3장 10절이란 성구가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에 그들은 벗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죄를 지은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옷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옷, 흰 옷, 피 뿌린 옷, 세마포, 붉은 옷, 두루마기”와 같이 다양하게 소개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히마티온, 스톨래, 리논, 부시논 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옷이란 몸을 보호하는 기능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사용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옷의 의미는 기능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4∼5절을 찾겠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 교회를 향한 말씀 중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 사람이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라고 합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의미를 요한계시록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옳은 행실(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것(요한계시록 7:13∼14)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옷의 기능적인 의미만 생각한다면 구태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과 가죽옷의 차이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하나님의 방법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의 결과이므로 죄를 감추려고 옷을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옷이란 죄를 감추기 위하여 인간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을까요? 가죽옷을 만들려면 반드시 짐승을 죽여야 합니다. 짐승을 죽이려면 피가 흘러나옵니다. 성경에서 피가 상징하는 것은 생명과 용서라고 합니다.

첫째는 피는 생명(신명기 12:23)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노아 홍수 사건 후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의 식물은 오직 채소 위주의 식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 후에 살아있는 동물을 식물로 주시면서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창 9:4).

둘째는 피는 용서(히브리서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가죽옷이란 죄를 지은 사람이 흘려야 할 피를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림으로 죄를 지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가죽옷으로 약속한 용서의 은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어야 할 옷을 구원의 옷과 의의 옷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구원의 옷이란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자기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만들어 입었던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과 같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서 입혀주셨던 가죽옷 즉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서 해결 받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의 옷과 의의 옷으로 계시된 약속은 오랫동안 짐승의 희생 제사로 그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어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마지막에는 홍포를 입은 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홍포를 입으셨던 예수님

요셉은 어려서부터 채색옷을 입고 자랐습니다.
사사 시대에 미디안 왕들은 자섹 옷을 입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다니엘에게 자색 옷을 입혀 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약속했습니다.

서양 속담에 “자주색에서 태어났다(Born in the purple)” 이란 말은 고귀한 혈통, 부유한 가문에서 탄생했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요즈음 말로는 ‘금수저’ 라고 하겠습니다. 
고대에는 색깔 있는 옷 특히 자주색으로 염색한 옷은 그 엄청난 가격과 염색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최고급 옷감으로 인정되었고 곧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자주색 옷을 입혔습니다. 만왕의 왕이라고 존경한 것이 아니라 조롱하려고 입힌 것입니다. 그러나 조롱의 옷은 결국 영광스런 세마포 흰옷으로 드러났습니다.

가죽옷을 구원의 옷과 의의 옷으로 완성하시려고 십자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서 옷에 대한 신앙의 결론을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깨어' 라는 헬라 단어는 '그래고레오' 라고 합니다.
'그래고레오'란 '잠들지 않고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awake).
'그래고레오'란 '관심을 갖고 주시하는 것'을 말합니다(watch).

왜 깨어 있어야 합니까?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적이 오는 날짜를 통보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만의 장개석 총통은 “예수님은 간첩과 같이 오신다!”고 강조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도적같이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잠들지 않고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관심을 갖고 주시해야 합니다.

자기 옷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원의 옷은 어느 교주가 어느 교단이 어느 교회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린 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허락하십니다.

요한계시록 7장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에 대한 말씀입니다.

7장 10절에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요한계시록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가죽옷은 구원의 옷으로 의의 겉옷으로 이어져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세마포 즉 옳은 행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옳은 행실은 부자 청년과 같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모두 지켰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부족한 것 즉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부활 후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도적 같이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하셨을까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42∼43a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기도하므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누가복은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자에게 약속된 것은 무엇일까요?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왜 깨어 있어야 할까요?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데살로니가전서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요한계시록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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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3:4, 7:14, 19:16 ) - 히마티온
- ἱμάτια, στολὰς, ἱμάτιον   

흰 옷(3:4∼5, 3:18, 4:4, 7:9, 7:13∼14, cf 행 1:10) - 스톨래

피 뿌린 옷(19:13) - 히마티온(ἱμάτιον)

세마포(15:6, 18:12, 18:16, 19:8, 19:14) - 리논

붉은 옷(18:16) - βύσσινον.

두루마기(6:11, 22:14) - 스톨래

헬라어에 의한 옷의 분류(히마티온, 스톨래, 리논)

헬라어

장절

히마티온

3:4, 3:18, 4:4, 19:13,

스톨래

7:9, 7:13, 7:14,

리논

19:14(βύσσινον) 


3:4(옷) ἱμάτια, 2440. himation
3:4(흰 옷) λευκοῖς, 3022. leukos 
3:18(흰 옷) ἱμάτια λευκὰ, 2440. 3022

4:4(흰 옷)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 2440. 3022 

6:11(흰 두루마기) στολὴ λευκή 4749. 3022

7:9(흰 옷) στολὰς λευκάς, 4749. 3022
- στολή, 4749. stolé    
7:13(흰 옷) στολὰς τὰς λευκὰς. 4749. 3588. 3022 
7:14(옷) στολὰς, στολή, 4749. stolé   
- ἐλεύκαναν.  λευκαίνω  3021. leukainó(to make white)

15:6(세마포) λίνον. λίνον 3043. linon 

18:12(세마포) βυσσίνου. 1039 
18:16(세마포) βύσσινον. 1039 
18:16(붉은 옷) κόκκινον,  κόκκινος 2847. kokkinos      

19:8(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βύσσινον, 1039. bussinos 
19:13(피 뿌린 옷) 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19:14(희고 깨끗한 세마포) βύσσινος, 1039. bussinos 

옷에 대한 세속적인 기능과 성경적인 기능은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족장 시대에 요셉은 어려서부터 채색옷을 입고 자랐습니다. 채색옷이란 물론 가장 좋은 옷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셉 시대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녀에게 구별하여 입혀주는 옷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창세기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사사 시대에는 미디안 왕들이 자색옷을 입었습니다.

사사기 8:26,
기드온의 청한 바 금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새 달 형상의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의 입었던 자색 의복과 그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모르드개는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었습니다.

에스더 8: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왕의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에스겔 23:6,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다니엘에게 벨사살 왕이 몇 번이나 약속합니다. 자주옷을 입히겠다는 것입니다. 즉 자주옷은 권력과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다니엘 5:7,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참조 / 다니엘 5:16, 29,

자색옷의 의미를 설명하는 서구사회에서 사용하는 문장을 소개합니다.

‘Born in the purple.’

문자 그대로 하면 “자주색에서 태어났다.” 라는 뜻인데 고귀한 혈통, 부유한 가문에서 탄생했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요즈음 말로는 ‘금수저’ 라고 하겠습니다. 

고대에는 색깔 있는 옷 특히 자주색으로 염색한 옷은 그 엄청난 가격과 염색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최고급 옷감으로 인정되었고 곧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지중해 전역과 그 주변에선 자주색과 붉은 색은 권력과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도 자주색 옷을 입었다, 입힌다함은 왕권이나 최고의 권력과 부유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음식을 대신하였고 약대털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인이란 세속사회와 단절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와 에쎄네파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에쎄네파에 속한 사람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완전히 중립을 지키려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홍포를 입었습니다. 홍포란 당시 황제들이 입는 지배자의 옷을 말합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셨다고 말했기 때문에 홍포를 입힌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도 자색옷을 입었습니다.

누가복음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예수님의 마지막 수난 때에 예수님을 모독하기 위해 입힌 옷도 황제권을 상징하는 자주색 옷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로마시대 때 자주색은 황제 자주(imperial purple)라고 해 오직 황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색이었습니다.

황실 자주색 옷은 기원전 16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이 티레 지방 특산 소라고둥으로 염색을 했다고 해서 티레 자주(Tyrian purple)라고도 불렸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염료를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였는대, 헤라클레스는 조개를 씹어 먹은 자기 개의 주둥이가 자주색으로 물든 것을 보고 염료 물질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부활 후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도적 같이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하셨을까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42∼43a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기도하므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누가복은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자에게 약속된 것은 무엇일까요?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왜 깨어 있어야 할까요?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데살로니가전서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요한계시록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도입 이야기)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여 각 가정을 심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예정된 모든 가정들을 심방하고 마지막 한 가정이 남았습니다. 그 집에 도착하였을 때 집안에서는 분명히 누군가 있었는데도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심방 왔다가 돌아간다는 표시로 요한계시록 3장 20절이란 성구를 적어놓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 주간에 주일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지난 번 심방 때에 왔다가 돌아갔다는 표시로 적어준 메모지가 사무실에 붙어 있었는데 그 메모지 아래에 창세기 3장 10절이란 성구가 적혀있었습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옷에 대한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옷에 대한 명칭이 다양합니다. 교복(校服), 제복(制服), 군복(軍服), 예복(禮服), 법복(法服), 아동복(兒童服), 여성복(女性服), 우주복(宇宙服) 등과 같이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