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癡呆, dimentia)


치매(癡呆, dimentia)

1. 한자 : 어리석을 치(痴, ), 어리석을 매(呆).
정상적이던 지능이 대뇌의 질환으로 저하된 것.
기억 장애, 이해력과 계산 능력의 저하, 같은 말이나 행동을 계속하는 것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2. 영어 : (의학) dementia, (노인성) Alzheimer's (disease), senile dementia
치매 노인 /  dotard


부모님 '눈'과 '귀' 살펴보면… 치매 위험 알 수 있다?


눈에 노란 반점을 띠는 '드루젠(drusen)'이 있다면 뇌 혈류 감소를 의심할 수 있다./사진=헬스조선 DB

* 드루젠(drusen) / 망막에 노화로 생긴 찌꺼기를 말합니다.



황반변성은 노화나 유전, 담배, 자외선 등과 관련되어 드루젠이라는 찌꺼기가 황반부에 끼어서 산소나 영양공급을 방해하게 되고, 망막아래의 혈관에서 비정상적인 혈관이 망막으로 자라들어와 출혈을 일으켜서 황반부를 손상시키는 병입니다.

치매의 가장 흔한 전조 현상은 '인지기능 저하'로, 기억력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인지기능 저하 외에도 뜻밖의 전조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
눈에 노란색 반점이 생겼거나, 귓불에 대각선 모양의 주름이 있는 노인은 인지기능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

갑자기 눈에 생긴 노란색 반점, 치매의 징후?

드루젠은 지방과 칼슘이 결합해 생긴 침전물로, 노폐물의 일종이다. 캐나다 퀸스대 연구팀에 따르면 망막은 뇌 중추신경계의 한 부분인데, 드루젠으로 안구 혈류가 줄어들면 뇌에서도 이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즉, 눈의 혈류 감소는 뇌 혈류 감소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알츠하이머 치매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육안으로 보이는 노란 반점은 드루젠이 아닌 '결막모반'일수도 있으니 안과에서 안저검사를 해볼 것을 권한다.

실제 연구팀이 성인 117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25.4%에서 망막에서 노란색 점이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건강한 사람은 4.2%만이 노란색 점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2년 후 응답이 가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시 한번 눈을 검사했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노란색 점이 더 넓어졌고, 그 수도 증가했다.

귓불의 대각선 주름, 뇌혈관 상태 반영한다
흔히 '귓볼'로 잘못 알려진 귓불에 대각선 모양의 주름이 있어도 치매를 의심할 수 있다. 실제 경희의료원과 삼성의료원의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귓불에 주름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약 2배 높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귓불은 뇌혈관의 건강 상태를 반영한다. 귓불의 작은 혈관이 약해진 것은 뇌혈관 건강이 약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미국의 연구도 있다. 급성 뇌졸중으로 입원한 환자 241명을 조사했더니, 이중 78.8%에서 귓불 주름이 발견됐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0/20/2020102002395.html


[치매 전쟁①] '기억'을 잡아라... '뇌 재활'로 藥 한계 보충

노인들에게 '치매'는 공포다. 병이 진행될수록 정신은 피폐해진다.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과 사회의 부담도 크다. 치매가 ‘고령화 시대의 재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치매 환자는 갈수록 증가 추세다. 중앙치매센터 자료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10.25%(약 84만명)이며, 2050년에는 15.91%(약 300만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도 12분마다 1명의 새로운 치매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보건복지부).

치매는 노인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이지만, 치매 치료에 대한 정보는 막연하다. 아직 '완치'를 위한 약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병의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는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현재 치매 환자가 해볼 수 있는 치료법은 어떤 게 있으며, 앞으로 나올만한 치매 치료 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말로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는 하는 걸까? 앞으로 4주간, ‘치매 치료’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간다. 1편은 치매 치료의 현황이다.

◇시판 중인 치매약, 진행 속도 늦추는 게 목적
현재까지 치매를 낫게 하는 약은 없다. 지금 이뤄지는 치매 치료의 목표는 인지기능 저하를 최대한 더디게 하거나, 더는 진행되지 않도록 멈추는 것이다. 주로 치매 약제를 사용하거나, 재활치료 개념의 '인지중재치료'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또한 치매에 걸리면 인지기능 저하 외에도 정신장애나 이상행동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등 보호자가 상당한 부담을 짊어지게 만든다. 치매 치료는 보호자의 부담을 최대한 덜 수 있도록 증상 조절을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가족에 관한 상담 치료가 이뤄지기도 한다.

먼저, 현재 시판되는 치매 약제는 크게 두 가지 기전으로 나뉜다.

▶첫째는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 억제제 계열로, '도네페질(한독-아리셉트 등)' '갈란타민(얀센-레미닐 등)' '리바스티그민(노바티스-엑셀론 등)'이 있다. 아세틸콜린은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이것이 분해돼 사라지는 것을 억제해 치료 효과를 낸다. 치매 초기에 사용하면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리바스티그민은 파킨슨병과 치매가 동반된 환자에게 더욱 효과적이다.

▶둘째는 글루타메이트와 관련된 'NMDA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 '메만틴(룬드벡-에빅사 등)'이다. 글루타메이트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로, 이를 억제하면 신경세포 독성을 줄여 기억력 개선에 도움을 준다. 메만틴 계열 약제는 과도한 불안·흥분·공격적 성향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졌다.

▶그밖에 인지질 공급을 돕는 '콜린알포레세이트(종근당-글리아티린 등)'도 있다. 앞선 약제에 비해 임상 증거는 부족하지만, 부작용이 적어 보조적 수단으로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혈관성치매 환자에게서 효과가 더욱 장기간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 초기에는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 억제제 계열의 약을 사용하고, 중등도 치매로 발전하면 글루타메이트 길항제 계열의 약제를 사용한다. 두 약제를 함께 처방하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신경과 이준홍 교수(대한치매학회 회장)는 "치매 약제를 사용한 환자는 치료받지 않는 환자보다 간이치매선별검사(MMSE) 점수가 해마다 더 적게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다만, 약효가 강력하지 않고 약한 편이며 30~50%의 환자에게서만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특정 약물이 치매 환자에게 100%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므로 환자 증상에 따라 적합한 약제를 처방하는 게 중요하다. 치매 증상 개선을 위한 '묘약'은 없다는 것. 이준홍 교수는 "치매 치료약을 선택할 때는 환자 상태와 동반 질환을 고려해야 한다"며 "일부 약제는 대사 과정에서 몸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처방하기 전 심장, 간, 콩팥 기능 검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지중재치료, 약물만큼 효과 내기도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는 원한다면 대부분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그러나 치매 약물 복용자 10명 중 1~2명은 부작용이 심해 복용을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증상 개선 효과보다 부작용이 심하다고 판단되면 약물치료를 중단한다. 치매 치료약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위장장애다. 식욕이 떨어지거나, 메스껍고, 체중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치매 약물 복용 후 체중이 감소했다면 부작용을 의심하고 담당의와 상담해야 한다. 치매 증상 자체로도 식욕이 떨어질 수 있는데, 약효까지 더하면 고령의 노인에게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으로 약물치료가 불가능하다면 인지중재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약물치료로 효과를 보더라도 병행하면 도움이 된다. 인지중재치료는 쉽게 말해 '뇌 재활 운동'이다. 인지기능을 높일 수 있도록 자극하며, 일상생활에서 인지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방식이다. 인지중재치료의 범위를 넓게 보면 생활습관 개선이나 자석·전류·빛·소리를 이용한 자극치료까지 포함된다.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교수는 "인지중재치료는 초기 인지장애를 보이는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치매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약물과 비슷한 정도의 효과를 보인다"고 말했다.(→인지중재치료는 3편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의 치매 치료, 차이점은?
치매 치료는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모두 진행한다. 병원에 따라 두 진료과가 협진하기도 한다. 환자 입장에선 치매 치료를 받고자 할 때 어느 과에 방문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우선, 치매 진단을 위해서는 두 과에서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인지기능 검사나 뇌 영상 촬영(MRI·CT·PET) 등을 진행해 치매의 원인을 찾는다. 치매 환자의 약 70%는 알츠하이머치매인데, 두 과에서 알츠하이머치매 치료를 위해 처방하는 약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곳을 찾아도 상관없다는 의미다.

다만, 치매의 원인과 증상 유형에 따라 적합한 진료과를 선택할 수 있다.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혈관성치매', 파킨슨병으로 인한 '파킨슨치매' 환자는 신경과에서 더 많이 진료한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주수현 교수는 "우울, 감정기복, 공격성, 수면장애, 환시, 망상, 섬망 등 정신행동 문제가 심한 환자는 주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한다"며 "이로 인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중등도 이상으로 진행된 환자 비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항정신병약제, 항우울제, 기분조절제 등을 이용해 증상을 조절한다. 과격한 행동으로 인한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고, 보호자의 간병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치매 전쟁②]뇌 망치는 단백질을 잡아라... 멈춤 없는 '완치약'의 꿈

치매가 특히 두려운 이유는 '완치' 가능한 약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매 전쟁] 1편('기억'을 잡아라… '뇌 재활'로 藥 한계 보충)에서 언급한 대로, 현재 출시된 치매약들은 치매 증상을 완화하거나 다소 지연시키는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 전 세계 연구진들은 새로운 치매약을 개발하기 위해 지금도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 새 치매 치료제 아두카누맙은 기존 약들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치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아두카누맙마저 미국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치매 치료제의 미래는 다시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치매를 잡으려는 인류의 꿈은 식지 않는다. 치매 치료제 관련 최신 연구를 모아봤다.

◇최초의 '치매 치료약' 나오나? 내년 3월 결정된다
치매 치료약 개발이 늦어진 것은 치매의 '원인 기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탓이 컸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그에 맞춘 치료약을 개발하기도 어려웠던 것. 가장 유력한 가설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축적설이다. 이 물질이 뇌에 과도하게 쌓이면 알츠하이머치매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약 아두카누맙도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해 약효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약이다.

'아두카누맙(바이오젠)'은 대규모 3상 시험을 두 차례에 진행했는데, 이 중 한 번을 실패해 개발을 중단했었다. 그런데 실험 참가자들을 장기간 관찰한 결과, 고용량에서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며 FDA 패스트트랙(신속심사) 심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지난 11월 FDA 자문위원회는 아두카누맙의 효과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승인 여부는 FDA 내부에서 결정하지만, 자문위원회의 의견이 일부분 반영될 수 있다.

아두카누맙의 FDA 최종 승인 여부는 내년 3월 중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교수는 "지금까지 아두카누맙 정도의 효과를 보이는 약은 없었다"며 "만약 승인된다면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의 획기적인 전환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승인되더라도 약값이 수백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근본적인 치료제가 아니라면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타우' 겨냥한 치료약, 국내 연구진이 개발 예정
아직은 아두카누맙, 크레네주맙·간테네루맙(로슈) 등 베타아밀로이드 제거를 목표로 했던 약제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치매 학계에서는 베타아밀로이드 외에도 다양한 기전이 복합적으로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이준홍 교수는 "(학계에서) 치매 약제가 복합적 기전으로 작용해야 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을 목표로 작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된 것은 '타우' 단백질이다. 치매 초기에는 베타아밀로이드가 먼저 쌓이지만, 이후 악화될수록 타우 단백질이 쌓이기 시작한다. 베타아밀로이드가 많이 쌓일수록 타우도 많아진다. 국내에서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배애님 박사가 타우 단백질을 겨냥한 치매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해 지난 2019년 동아ST에 기술이전하고,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아직은 임상 전 단계에 있다.

◇젬백스, '중등도' 치매 환자 대상으로 개선 효과 입증
'신경 염증'이 원인이라는 가설도 있다. 노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신경세포의 손상을 부른다는 것이다. 신경세포가 손상되며 분비하는 염증 물질(사이토카인)은 나쁜 단백질을 제거하기 위해 생성되지만, 과도하게 분비되면 염증을 더욱 악화시켜 정상세포까지 공격하게 된다.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고성호 교수는 "아밀로이드나 타우 가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 염증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GV1001(젬백스)'이라는 후보물질이 임상 중에 있는데 고성호 교수가 연구에 참여했다. 항염증을 비롯한 다중기전을 목표로 하는 약으로, 임상 2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고성호 교수는 "연구 중인 다른 후보물질들은 치매 초기 경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반면, 젬백스는 중등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에서 유의한 개선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젬백스는 3상 시험을 계획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엔 미국·유럽 지역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준비 중이다.

◇중국은 '생약'으로, 미국은 '항체' 이용해 개발 중
이 밖에도 신약 후보물질은 'GV-971(그린밸리)'와 'BAN2401(바이오젠·에자이)'가 있다. GV-971는 중국에서 개발돼 중국 당국의 조건부 승인을 받은 상태다. 갈조류(해초)에서 추출한 생약 성분 화합물인 '올리고마네이트'를 이용해 경미한 인지기능 저하 환자를 대상으로 효과를 입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GV-971 다른 후보물질에 비해 객관적 증거가 부족해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BAN2401은 현재 2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3상을 진행 중이다. 3상을 치매 환자가 아닌, 치매 전 단계 무증상 환자에게 적용키로 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두카누맙과 마찬가지로 베타아밀로이드 억제를 주요 기전으로 하지만, 항체를 이용한다는 게 특징이다.

◇치매 완치 가능한 시대, 정말로 오긴 오나요?
가장 궁금한 것은 결국,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약이 개발되냐는 것이다. 물론 신약 개발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언제쯤'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치매 전문가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10년 안에 치매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많은 학자들이 치매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근본적인 치매 치료약이 개발되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2/11/2020121102283.html

[치매 전쟁③] 약만큼 중요한 '사랑'… '아픈 뇌' 재활시킨다

'약'에 대한 의존만으론 치매를 극복할 수 없다.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은 눈물겹지만, 한계도 뚜렷하다([치매 전쟁] 1, 2편). 중요한 것은 재활이다. 아픈 관절에 운동 재활이 필요하듯, 치매 환자에게도 '뇌 재활'이 필수적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인지중재치료'라고 부른다. 인지중재치료에는 가족의 사랑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처럼 변해버린 치매 환자를 섬세하게 지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가족의 노력을 통해 조그마한 추억 하나라도 더 기억할 수 있다면 환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 아이들 교육하듯… 치매 환자도 훈련이 도움

아이들이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훈련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노년기에도 지적, 사회적, 신체적 활동을 통해 인지기능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고안한 것이 인지중재치료다. 인하대병원 신경과 최성혜 교수(인지중재치료학회 차기이사장)는 "인지중재치료는 치매의 진행을 늦추고, 낮아진 인지능력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치매 전 단계 환자에게는 예방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인지중재치료학회에 따르면 인지중재치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인지 훈련'은 경도의 인지기능 저하를 이전 상태로 되돌리거나, 보존된 인지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로 정해진 환경에서 특정 인지영역을 훈련하기 위해 과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지 재활'은 인지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최대한 일상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다. ▶'인지 자극'은 인지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광범위한 중재 활동을 말한다. 단어 게임, 퍼즐, 악기 연주, 원예, 요리 등 다양한 활동이 인지 자극에 포함된다.

◇ 비약물적 노력한 미국·유럽, 치매 발병 줄어

치매는 약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데, 인지중재치료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최성혜 교수는 "인지중재치료로 치매 진행을 완전히 멈추는 것은 어렵다"며 "다만, 인지중재치료를 하지 않은 사람과 비교했을 때 확실한 지연 효과가 있다는 점이 임상에서 밝혀졌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교수(인지중재치료학회 회장) 또한 "치매 초기 환자에게는 약물 만큼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최성혜 교수는 직접 개발한 '슈퍼브레인'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중재치료의 효과성을 입증했다. 최 교수는 치매 전 단계나 고령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6개월 동안 ▲운동 ▲영양 관리 ▲혈관 위험인자 관리 ▲인지훈련 등을 진행했다. 그 결과, 교육을 받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인지 기능, 우울감, 삶의 질, 건강 상태가 모두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비약물적 치료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유럽에서는 치매 발병률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 일기 쓰고 그림 그리기… 생활습관도 개선을

인지중재치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 걸까. 인지중재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으면 종이나 펜,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파악해서 인지재활적 접근을 하기도 한다. 치매 환자에게는 생활 중재도 중요하다. 운동, 영양, 건강 상태를 파악해 치매 위험요인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교육도 이뤄진다. 예컨대 고혈압, 당뇨병, 비만 등은 치매 발병률을 높이는 위험요인으로 개선을 권하게 된다.

당장 병원에 방문하기 어렵다면 집에서 간단히 해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일기 쓰기'다. 글을 읽고 쓰며 창의성을 요구하는 뇌 활동은 인지기능 향상에 매우 효과적이다. 저녁 취침 전 온종일 있었던 일과를 돌이켜 보면 반복 학습할 수도 있고, 나중에 기억이 가뭇할 때 다시 읽어보며 회상할 수도 있다. 일기에 간단한 그림을 추가하면 좌·우뇌를 고루 발달시킬 수 있다. 역사, 문학, 미술, 무용 등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취미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집에서 하는 인지재활은 꾸준히 실천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치매 환자는 저마다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치료법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최성혜 교수는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것도 혼자서는 지속적으로 공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100% 집에서 하기보다는, 1~2주에 한 번 교육받고 숙제를 받아서 병행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치료를 진행하시는 게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2/18/2020121801255.html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치매의 초기증상 10가지

[김기훈의 天地人] 김시효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원장 ②/③



치매 명의’ 김시효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원장과의 대화는 그의 암 투병 이야기를 넘어 그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임상 진료한 치매의 치료와 예방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의사와 한의사를 겸하다

―의사가 의원과 한의원을 동시에 개업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언제부터 동시 진료했나?

“1988년에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개업을 했다. 이후 2000년에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한의사 과정도 마쳤는데, 당시 법으로는 의사나 한의사 중 하나만 개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양의 쪽으로 계속 진료를 했다. 2002년에 의사와 한의사를 동시에 개업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 그 때부터 의사와 한의사 진료를 동시에 하고 있다.”

양방 전문의인 김시효 원장이 한의학을 공부한 경희대 한의과대학./경희대

―치매 진료를 전담하게 된 계기는?

“한 10년이 넘은 것 같다. 2002년부터 의사와 한의사로 동시에 진료를 하다 보니 의학적 난치병에 한의학적 치료가 효과를 내는 임상 경험을 여러차례 했다. 그러다가 5세 때부터 내 병원에 다니던 23세 청년이 2010년 쯤에 찾아왔다. 군 제대를 한 뒤 큰 대학병원 2곳에서 70대 노인의 뇌라고 진단을 받고 치료를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자 한약을 써보기 위해 나를 찾아 왔다고 했다. 2년 정도 치료한 이후에 거의 완치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91세 할아버지 환자가 있었다. 걷지도 못하고 누워 있고, 대소변도 못가리고, 밥도 떠먹여 주고, 헛것을 보고, 잠도 자지 않았는데, 11개월 치료를 받자 제반 증상이 호전되어 본인이 직접 걸어서 병원에 왔다. 이런 치료 과정을 통해 나는 뇌 세포의 재생은 불가능하지만 활력이 떨어진 뇌세포의 활력을 회복하는 재활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 원장이 이어 치매에 걸렸던 장모 이야기를 꺼냈다.

“그 즈음에 장모님이 치매로 아산병원에서 3년간 약을 타서 드시고 있었다. 그런데 급속하게 상태가 나빠져서 혼자 생활을 할 수 없어서 집으로 모시고 와 한의학적 연구와 치료를 적극적으로 했다. 이후 이사 온 동네 노인정 할머니들에게 평양만두 만드는 법을 가르칠 정도로 많이 호전됐다. 이렇게 우연히 치매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치료하다 보니 치매 진료를 전문으로 하게 됐다.”

치매가 무서운 이유

치매에 관해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치매가 왜 무서운가?

“치매는 쉽게 이야기하면 정신이 나가는 병이다. 치매의 영어 단어 dementia는 라틴어 de(~로부터 나간)+mens(정신)+ia(상태)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정신이 나가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신의 인생길을 알지 못하고 잠시도 자신의 인생길을 제대로 운전할 수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도 없게 되고 주변의 사람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삶도 피폐하게 만든다.

비유하자면 만취로 정신이 나간 사람이 인생길을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본인은 제대로 운전을 못해서 자기 의사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옆에서 간병하는 사람은 사고가 안나도록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으니 인생이 피폐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다 그래’ ‘설마 내가 치매가 되겠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치매의 온상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치매가 되어 우리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의 생활을 치명적으로 파괴한다.”

A-B
A-B 주관적인지장애를 겪는 사람의 뇌 상태. 촬영 사진만 보면 정상 뇌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후 경도인지장애와 치매로 진행되면서 뇌의 모습이 확연히 변한다.
B-C
B-C 경도인지장애
C
C 치매의 뇌 상태

―치매는 진단도 치료도 어렵다고 하는데.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너무 늦게 발견된다. 현대 의학은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병으로 진단한다. 예를 들어 MRI(자기공명영상)나 인지기능 검사를 통해 이상이 발견되어야 치매로 진단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치매가 발견되었을 때에는, 대표적인 치매인 알츠하이머의 경우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알츠하이머치매 진행 7단계 중 4단계로 진행된 상태이다. 치매라고 진단을 받으면 많은 뇌세포가 이미 죽었거나, 제 기능을 못하는 좀비 상태이다. 더구나 MRI 촬영을 하면 죽은 세포 집단은 위축된 상태로 화면에 나타나지만 좀비세포 집단은 정상세포 집단과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치매의 진단이 어렵다.

둘째, 치매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는 남아 있는 뇌세포가 약해져 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악화된다. 수학적으로 보면 시간의 세제곱분의 1의 속도로 나빠진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뇌세포는 신체의 다른 세포와 달리 대부분 재생이 안 된다. 우리 몸의 세포 대부분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 위장의 점막 세포는 2~3일, 적혈구는 120일, 백혈구는 10시간이면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뇌세포 수명은 12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물갈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치매가 무서운 병이다.”

치매는 왜 생길까?

―치매의 원인은?

“원인은 치매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치매는 뇌세포가 약해지는 병이다. 뇌세포가 약해지고 부서진 것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질병이다. 예컨대 알츠하이머치매의 발생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활성산소의 산화작용이 주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베타아밀로이드 앙금이 뇌세포 바깥에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타우단백이 주성분인 세포 내 찌꺼기가 발생한다. 베타아밀로이드 앙금과 타우단백 찌꺼기가 뇌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치매 진행을 촉진시킨다.

혈관 치매는 심혈관 질환이 원인이 된다. 대사증후군을 잘 관리하지 못했을 경우 심혈관 질환이 발생하고 뇌졸중이 일어나면서 뇌세포가 약해지고 치매로 진행된다. 대사증후군은 혈당이 높아지면서 비만, 고혈당,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고혈압이 발생하는 것이다.

루이바디 파킨슨 치매는 세포 안에 루이바디라는 덩어리가 생기면서 뇌세포가 파괴되는 것이다.”

1960 1970                        1960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전설적인 미국 복서 무하마드 알리(왼쪽)는 노년에 파킨슨 치매가 진행되자 자신의 투병 모습을 대중들에게 공개하며 파킨슨 치매 환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을 했다. 사진은 1960년 트레이너 조 마틴과 함께 있는 모습./위키피디아

―좀 더 쉽게 설명해 달라.

“치매는 뇌가 나빠진 병이다. 뇌가 나빠지는 것은 뇌세포가 죽거나 약해지기 때문이다. 뇌세포를 집으로 비유해 보자. 예컨대 집이 부서지는 이유를 보면 나쁜 자재로 지은 집은 빨리 부서진다. 이처럼 유전병이 있으면 빨리 나빠진다. 좋은 자재로 지었다고 해도 비바람과 지진 등 환경 요인도 원인이 된다. 영양부족, 술, 담배, 머리에 충격을 받는 것 등이 뇌에 나쁜 환경이 된다.

사람이 안 살아도, 험하게 써도 집이 잘 망가진다. 머리를 안 쓰는 것과, 운동이나 움직임이 적은 것은 사람이 안 사는 것과 같다. 스트레스가 많은 것은 집을 험하게 쓰는 것과 같다. 또 생활하다 보면 활성산소가 생기는데 이것을 휴식을 통해 중화시키지 못하면 치매로 연결되기 쉽다. 수면이 부족해도 뇌가 힘들게 된다.”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단백을 제거하면 치매가 많이 호전되나?

“알츠하이머치매가 진행되는 도중에 뇌세포 바깥에는 베타아밀로이드 앙금이, 뇌세포 내에는 타우단백 찌꺼기가 쌓인다. 둘 다 치매 진행의 악화요인이 된다. 집이 부서져서 마당에 생활쓰레기가 쌓이는 것이 베타아밀로이드이고, 집안에 생활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이 타오단백이 주성분인 세포 내 찌꺼기이다.

베타아밀로이드를 없애는 약은 개발되었지만 이 약을 써서 베타아밀로이드를 없애도 치매가 호전되지 않았다. 이미 뇌세포가 약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타오단백을 없애도 베타아밀로이드보다 효과는 있겠지만, 부서진 집이 다시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타오단백이 생기지 않으려면 아예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알츠하이머치매가 진행되는 동안 뇌세포 밖에는 찌꺼기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되면서 치매 진행을 촉진한다. 사진 오른쪽 위에 베타아밀로이드가 보인다./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어떤 종류의 치매가 가장 많나?

“알츠하이머치매가 전체 치매의 60~70%로 가장 많다. 이어 혈관 치매가 15~20% 정도이다. 혈관이 병들어 생긴다. 루이바디 파킨슨 치매가 15~20% 정도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치매와 다른 치매가 같이 있는 경우도 많다.”

치매의 전조

―치매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있다면?

“쉽게 말하면 예전보다 뚜렷하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면 치매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치매에 걸리면 특히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고 다른 인지기능도 많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를 의심해 볼만한 증상은 대략 이렇다.

첫째, 기억력이 떨어진다. 오래된 옛날 일은 저장이 되어 있어 잘 기억해 낸다. 그러나 새로운 기억이 저장되지 않아 방금 했던 웬만큼 중요한 일도, 최근에 경험한 아주 중요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력에 장애가 생기면 본인이 먼저 자주 깜빡거린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경우, 물건이나 약속을 자주 잊어버리는 경우, 기억나지 않아 오리발 내미는 것처럼 완강히 부정하는 경우, 전화를 받고도 전화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경우에는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둘째, 지남력이 떨어진다. 즉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떨어진다. 여름에 겨울철 옷을 입거나 저녁이 됐는데도 점심밥을 아직 안먹고 있다던가 하는 식이다. 길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치매가 되면 늘 다니던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셋째, 시공간 능력이 떨어진다. 즉 시간과 공간과의 관계인 속도감이 떨어진다. 발을 헛디뎌 잘 넘어진다. 차를 몰고 가다가 신호등을 보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그냥 간다던지, 신호등의 빨간 불이 깜빡거리는데도 마구 건너는 경우는 시공간 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교통신호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빨간불에도 차를 몰거나 건널목을 건너면 치매 여부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넷째, 숫자와 경제적 관념이 떨어진다. 필요 없는 물건을 잔뜩 사온다. 효도 관광을 가서 매일 똑같은 것을 사오는 사람 가운데 잘못 사왔다는 것을 알면 경도인지장애이고, 잘못 사왔다는 것을 설명해도 못 알아 들으면 치매이다.

다섯째, 언어능력이 떨어진다. 자주 쓰던 단어도 안 떠올라 더듬거린다. 또 이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청력에 문제가 없어도 TV를 볼 때에 잘 이해가 안 돼 음량을 키운다. 이야기 전개를 이해하지 못하니 드라마보다는 간단한 오락 프로그램을 주로 보게 된다.

여섯째, 성격이 변한다. 참을성이 줄어들고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 화가 많아지고 성질이 나빠진다. 남의 눈치를 살피지 못하고 남부끄러운 행동을 한다. 의욕이 없어지고, 무덤덤해지고, 귀찮아지고, 방에만 처박혀 있으려고 한다.

일곱째, 늘 해오던 익숙한 일도 어려워진다. 조리 있게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집을 정리하지 못해 집이 지저분해질 수 있다. 음식맛이 심하게 짜지거나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워한다.

여덟째, 노인성 우울증이 심해진 경우이다. 노인성 우울증은 경도인지장애이고, 심해지면 치매이다.

아홉째, 안자던 낮잠을 많이 자거나, 잠꼬대를 많이 하거나, 몸부림을 많이 치거나, 헛것을 많이 보면 루이바디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루이바디치매가 오기 전에 낮잠이 느는 경우가 많다. 헛것이 자주 보이면 루이바디치매가 시작되었을 수 있다.

열번째, 행동이 굼떠지고 뒤뚱거리는 것도 치매의 전단계로 의심해봐야 한다. 행동이 예전보다 못해지면 치매 검사를 해봐야 하고 병원에서 치매가 아니라고 해도 경도인지장애나 주관적인지장애일 수 있으므로 뇌세포 재활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생활습관이 나쁘면 치매 걸린다

―치매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나이가 많을수록 걸리기 쉽다. 유전병이 있으면 65세 이전에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아포지단백E4′ 유전인자를 갖고 있으면 65세가 넘어 치매가 될 확률이 높다. 남자보다 여자가 걸리는 경우가 더 많다. 폐경기 이후 에스트로겐을 쓰는 경우, 소염제를 많이 쓰는 경우에는 치매가 되기 쉽거나 반대로 예방이 된다는 상반된 주장이 있다.

생활 환경과 습관의 문제도 있다. 공해가 많거나 산소가 부족한 곳에 살면 좋지 않다.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이 있는 사람, 술 담배를 많이 하는 사람,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거나 비사교적인 사람, 음식을 불균형하게 먹는 사람, 수면이 부족한 사람,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 정신적 충격이 많은 사람, 대사증후군을 조절하지 않는 사람, 알루미늄이 많은 제산제를 장기복용하는 사람, 머리가 유독 작은 사람도 치매가 되기 쉽다.”

담배와 술은 나쁜 생활습관과 함께 치매를 촉진하는 요인이다./위키피디아

―또 다른 요인이 있다면?

“교육 수준이 낮으면 치매가 되기 쉽다. 출생시 신경원세포 1개당 1만5000개의 시냅스가 있는데, 자극을 받지 못하면 사라지게 된다. 태어나서 1년 내에 절반 가까이 없어진다. 시냅스의 활성화 작업은 6세 이전에 대부분 끝나고, 고차적인 기능도 12~13세에 끝난다. 그 때까지 교육을 받아서 시냅스를 많이 만들어 놓은 사람은 시냅스가 많고 계속 사용하므로 오래 유지된다.”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스트레스도 치매의 원인이 되나?

“그렇다! 심한 스트레스는 뇌를 약하게 만든다. 스트레스가 장단기적으로 뇌를 손상시키는 이유는 많다. 스트레스를 한의학적으로 말하면 기가 체했다는 뜻으로 기체라고 한다. 기체(氣滯)에서 습(濕)으로 담(痰)으로 열(熱)로 풍(風)으로 변화된 다.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다.”

치매의 원인과 증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다면 치매는 치료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을까?


“치매를 예방하려면 좀 불편하게 살아라”

‘치매 명의’ 김시효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원장에게 치매의 치료와 예방법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치매는 진단도 치료도 어렵다

―병을 치료하려면 진단이 정확해야 하는데 치매는 조기 진단이 어려우니 치료도 어려운 것 아닌가?

“그렇다. 조기 진단이 어렵기 때문에 치매라는 객관적 진단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 보다는 뇌가 나빠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의학적 사고를 하는 상태에서 한의학을 공부했다. 의학은 주로 검사에서 발견되는 이상 징후, 즉 근거 중심으로 사고한다. 예를 들면 치매의 경우 촬영된 뇌 영상에 많이 의존해 진단한다. 인지기능검사와 다른 검사의 결과도 반영된다.

그러나 진단과 검사가 되지 않는 질병도 많다. 근거가 없는 병, 이른바 미병(未病)이다. 인간의 건강 상태는 정상에서 미병 단계를 거쳐 병의 근거가 드러나는 이병(已病)으로 진행된다. 미병은 현대 의학의 진단기술로는 근거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병도 병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단이나 검사도 어려운 미병을 어떻게 찾아내나?

“의사의 경험과 직관에 근거한 유추이다. 환자의 행동이 이러이러하므로 뇌세포가 많이 나빠졌을 것이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치매의 경우 진단검사를 통해 초기에 발견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7단계 중 4단계에 접어든 상태이다. 뇌가 이미 많이 나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매와 같은 중병의 경우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미병 상태에서 병을 알아보는 것이 치료와 예방에 특히 중요하다.”

―병의 이상 징후가 진단 검사에서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병이라고 규정하고 치료를 한다면 의사의 재량권이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보아야 한다. 예전에 미병이었던 것도 진단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이병이 된다. 지금 검사에 이상 징후가 안 나타난다고 해서 몸이 괜찮은 것이 아니다. 이 미병 상태에서 병의 초기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숙련된 의사의 경험과 직관을 통한 유추 밖에 없다. 나는 이것을 한의학적 지혜라고 생각한다. 한의학에 치미병자상공(治未病者上工)이라는 말이 있다. 미병을 치료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라는 말이다.”

불치병에서 난치병으로

―치매는 불치병인가 난치병인가?

“예전에 치매는 불치병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요즘은 난치병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 치료가 쉽지는 않지만 의학 기술이 더 발달하면 치매는 치료가 되는 병이 될 것이다. 세상에 고정되고 불가능한 일은 없다. 병도 마찬가지이다. 불치병이나 난치병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인식의 저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인식의 저편이라니?

“치매는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을 보면 안 된다. 물 속에 숨어 있는 부분, 즉 뇌가 나빠지고 있는 본질을 보아야 한다. ‘무슨 근거로 뇌가 나빠지고 있다고 말하는가?’ ‘무슨 근거로 재활된다고 하는가?’ ‘근거를 제시하라!’라고 하는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드러난 치매 현상 뿐 아니라 그것을 유발하고 촉진하는 생활습관과 음식도 함께 봐야 한다. 치매 치료를 위해서는 나의 현재 인식이 전부가 아니라 새로운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찾아가야 한다.”

치매는 나빠진 뇌가 빙산의 일각처럼 표면으로 드러난 증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수면 아래 있는 뇌의 나빠진 상태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사진은 북극의 빙산./위키피디아

―치매 가운데 어떤 것이 치료가 가능하고 어떤 것이 불가능한가?

“뇌세포가 빨리 노화되면서 생기는 퇴행성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치매 진단을 받기 전에 뇌세포 재활치료를 미리미리 받아 치매 진행을 늦추는 것이 좋다. 그러나 혈관치매는 빨리 발견해 잘 치료를 하면 거의 진행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인지기능 개선약과 재활치료 약을 쓰면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뇌 수두증, 경막하출혈, 뇌의 양성종양, 뇌전증, 갑상선기능저하증 같은 다른 질병으로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가짜치매’는 병의 원인을 치료하여 완치시킬 수 있다.”

뇌세포 재활치료

―어떤 방식으로 치료하나?

“치매는 뇌세포가 나빠져서 생기는 병이다. 뇌세포가 죽으면 대신할 새로운 뇌세포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빠진 뇌를 다시 좋게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약해진 뇌세포의 활성을 어느 정도 회복시킬 수는 있다. 치매가 진행되면 이런 재활치료 대상 뇌세포도 줄어들기 때문에 치매가 되기 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치매 초기에는 진단 기술을 통한 객관적인 진단이 어렵기 때문에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주관적 증상을 통해 자신의 뇌 상태를 유추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뇌의 활동(전기 신호의 전달)

―치료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혈관치매는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고 뇌졸중을 예방하는 치료와 인지기능을 개선시키는 치료를 같이 한다. 알츠하이머치매는 주로 인지기능을 개선시키는 치료로 증상을 호전시키고 진행을 늦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의학 지식에 한의학적 지혜를 융합해 뇌세포 재활치료를 하려고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재활의 대상이 되는 뇌세포가 많이 남아 있을 때 시작해야 진행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는 뜻인가?

“치매는 계속 나빠지는 병이다. 뇌세포 재활치료로 뇌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고 진행을 느리게 할 수는 있지만 진행을 멈출 수는 없다. 뇌세포 재활치료의 대상이 되는 뇌세포가 부족해졌을 뿐 아니라 뇌세포 자체가 많이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한약

―치료에 약을 쓰기도 하나?

“재활 치료는 한약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집이 낡으면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이 생긴다. 대문의 경첩에 기름도 칠해주고, 문풍지에 구멍이 나면 문풍지도 발라줘야 한다. 치료의 대상이 매우 많다. 이 많은 대상을 동시에 치료하려면 한약이 적합하다고 본다.”

―치료 대상이 많기 때문에 한약이 적합하다니?

“세포 재활에 어떤 한 성분만 필요하다고 할 경우 우리가 자연 속에서 그 성분 하나만 추출하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해 주입하면 된다. 물론 그 성분만 제대로 순수하게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수많은 곳을 동시에 손을 봐야 하는 뇌세포 재활치료의 경우 수많은 성분과 영양분이 필요한데, 그 수많은 성분과 영양분을 일일이 약이나 주사로 투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여러 영양 성분의 복합체인 자연의 음식을 그대로 약으로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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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건강을 돕는 음식 ② 오메가 3가 풍부한 음식 : 등푸른 생선이 가장 좋다. 견과류와 들깨 가루도 좋다. 사진은 등푸른 생선에 속하는 고등어 구이./위키피디아

―자연의 음식이라면?

“대추, 생강, 파, 은행, 연뿌리, 밤 등은 모두 음식이면서 한약 재료이다. 이런 복합적인 약을 써야 한다. 그래서 뇌세포 재활에는 30여가지 한약 재료를 써서 종합처방한다. 각각의 한약 재료 안에 이미 수많은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약의 개별 성분만 따져서는 이병 치료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미병을 치료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병은 병의 근거가 진단도 되지 않는 상태인데, 그러한 상태의 사람에게 준 한약이 미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나?

“현대 의학이 요구하는 방식의 의학적 증명은 어렵다. 다만 약을 먹었더니 이렇게 상태가 호전 되더라 하는 것을 보고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다. 환자들에게 한의학적 방법을 쓰자 이들이 ①피곤하지 않다 ②기억력이 좋아졌다 ③두통이 없어졌다 ④잠이 잘 온다 ⑤이명이 없어졌다 ⑥성욕이 좋아졌다 ⑦눈이 밝아졌다 ⑧머리카락이 난다 ⑨피부 주름살이 없어졌다 ⑩바둑 실력이 2점 이상 향상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피검사를 해보면 나쁜 상태였던 간, 콩팥, 골수의 상태가 좋게 나타난다. 나는 이것이 뇌세포가 재활되는 증거라고 본다. 음식을 써서 뇌세포를 재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호전될까?

―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나?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기능이 좋아진다. 중기 치매는 초기 치매로, 초기 치매는 경도인지장애로, 경도인지장애는 정상수준으로 회복된다. 주관적인지장애는 뇌세포의 활성이 많이 회복되지만 증상 호전의 느낌이 크지는 않다. 그렇지만 주관적인지장애나 그 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상의 수치로 설명해 보자. 치매가 되는 시점에 어림 잡아 10% 정도의 뇌세포가 사멸되었고, 약 30%의 뇌세포는 기능이 100% 사라진 좀비 뇌세포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좀비세포는 살아 있지만 죽은 뇌세포보다 못한 뇌세포이다. 나머지 60%의 세포가 살아 있는 세포인데, 이 세포도 부분마다 다른 정도로 활성이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면 부분마다 활력이 90%, 70%, 50%, 30%, 10%로 줄어들었을 수 있다. 활성이 떨어진 뇌세포의 평균 활력을 50% 정도로 잡아보자. 그러면 치매가 되는 시점의 뇌는 원래 뇌의 30%만 기능을 발휘하고, 뇌 기능의 70%는 사라진 상태이다.

사멸한 10% 뇌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 30% 좀비 뇌세포는 재활이 되지 않는다. 활력이 떨어진 나머지 60%의 뇌세포가 재활치료의 대상이다. 이 뇌세포의 활력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치매가 급격하게 악화되는데, 활력을 회복하고 치매를 억제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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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건강을 돕는 음식 ③ 엽산, 비타민B군 : 시금치./위키피디아

―치료를 통해 뇌세포의 활력이 얼마나 회복되나?

“뇌세포가 남아 있는 것에 따라 다르다. 앞의 예를 다시 들어 보자. 치매가 되는 시점에 먼저 설명한 대로 70% 정도의 뇌기능이 소실되었고 30%만 남았다고 보자. 뇌세포 재활치료 효과가 20%라고 가정하면 30%X0.2(20%)=6%, 즉 뇌세포 재활치료 효과가 6%로, 30%의 뇌 활성이 36%로 회복된다. 이렇게 되면 다시 30%로 줄어들 때까지 치매 증상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치료를 하지 않고 지내면 치매가 진행되어 2년 사이에 뇌세포의 활성 30%가 3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 뇌의 활성이 정상의 10%가 된다. 이 때 치료를 시작하면 10%에서 12%로 밖에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많이 떨어진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다. 김시효 원장은 3시간 30분간의 인터뷰 동안 풍부한 임상 경험 사례를 들어가며 치매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다. 설명을 돕기 위해 컴퓨터 화면에 자신의 외부 강연 자료를 띄워 사진과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서 끊이지 않고 인터뷰에 응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것을 보니 그의 암 투병 치료가 상당히 효과를 낸 것 같았다.

뇌 건강을 돕는 음식 ④ 콜린이 풍부한 음식 : 브로콜리, 케일 같은 십자화과 채소. 사진은 브로콜리./위키피디아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점이다. 병이 났을 때 치료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치료 과정은 환자에게 매우 고통스럽다. 가장 좋은 것은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치매는 예방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 부분을 물어보기로 했다.

―치매 예방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현대인이 요즘 오래 살게 된 이유는 머리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아졌다는 것은 뇌의 상태가 가변적이라는 뜻이다. 머리를 좋게 할 수 있는 만큼 치매를 멀리 보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예방 노력을 하면 치매 발생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치매 환자 약 1500 가족을 관찰하며 내린 결론은 노후의 경제생활을 미리 준비하듯, 치매 예방도 30대에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매 예방과 치료 없이 행복한 노후 인생은 없다.”

조금 적게 먹어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몇가지 원칙과 방법이 있다. 뇌를 보호하는 원칙은 ①머리의 혈액 순환이 잘 되어야 하고 ②뇌를 충분히 잘 사용해야 하고 ③뇌를 충분히 쉬게 해야 하고 ④머리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독소나 활성산소를 잘 없애야 하고 ⑤물리적 화학적 손상을 방지해야 한다.

방법은 첫째, 잘 먹어야 한다. 잘 먹는다는 것은 많이 먹거나 산해진미를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몸에 필요한 음식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먹는 것이 바르게 먹고 잘 먹는 것이다. 건강식으로 잘 먹되 건강하기 위해서는 몸에 필요한 것보다 조금 적게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건강도 질병도 음식에 의해 생기고 음식으로 고칠 수 있다. 식약동원(食藥同源), 음식과 약의 뿌리는 같다.

둘째, 잘 먹은 뒤에는 배설을 잘해야 한다. 잘 배설하는 것은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조화가 잘 된다는 의미이다. 변비나 설사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다 잘 안다. 요즘에는 인체 내 미생물유전체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중요하다고 한다. 대장에서 미생물이 농사를 지어 우리 몸에 부족한 성분을 보충해준다.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세로토닌의 90%는 뇌가 아닌 대장에서 만들어진다. 장 건강이 좋으면 뇌와 면역기능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뇌 건강을 돕는 음식 ⑤ 대뇌를 자극하는 음료 : 커피와 녹차 적당량. 사진은 녹차를 우려내는 과정./위키피디아

셋째, 열심히 운동하고 자주 움직여야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열심히 살아야 뇌건강이 유지된다.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30분에 한 번씩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남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말고 본인이 직접 하라. 열심히 사회생활하고 취미활동을 하면서 대뇌를 자극해야 한다. 대뇌를 자극하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잡이 활동을 해보는 것도 대뇌를 자극하는 행위이다.

넷째, 잘 자고 충분히 쉬어야 한다. 열심히 활동하여 생긴 노폐물과 활성산소를 푹 쉬면서 없애주는 것이 좋다. 충분한 수면은 기억을 정리하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명상을 하는 것도 좋다.

규칙적인 명상도 치매를 예방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하이힐링원’에서 한 참가자가 명상에 빠져 있다./하이힐링원

다섯째, 혈액 순환이 잘 되게 해야 한다. 혈액순환이 막히면 협심증 심근경색으로 생명이 위독해질 수 있고, 뇌경색이 생기면 중풍으로 고생하거나 혈관치매가 될 수 있다. 뇌의 세동맥이나 모세혈관의 순환이 나빠지게 되면 알츠하이머치매가 될 수 있다. 기(氣)가 잘 만들어지고 잘 통하는 것이 정상 생리이다. 기는 혈액이 있어야 생기고, 혈액이 순환하려면 에너지인 기가 필요하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通卽不痛 不通卽痛).

여섯째,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공해를 피해야 한다.

일곱째, 교통사고나 실족으로 머리가 다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만약 뇌가 충격을 받았다면 뇌세포 재활 치료를 해야 한다.”

고구마·토마토·콩이 좋다

―식습관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과식을 피해야 한다. 또 열량이 높은 음식과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당지수가 높은 음식은 피해야 한다. 밀가루, 쌀가루, 떡, 엿기름, 설탕, 아이스크림, 주스, 과자류, 음료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라면, 튀김, 부침개, 닭튀김, 짜장면, 탕수육, 치맥은 피하는 것이 좋다. 육류는 기름기를 제거하고 소량을 섭취하라. 조금 많이 먹어도 괜찮은 음식은 섬유소가 풍부하고 열량이 적게 든 고구마, 토마토 같은 뿌리채소와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는 콩, 팥, 잡곡, 두부 등이다.”

뇌 건강을 돕는 음식 ⑥ 열량 적고 섬유소가 풍부한 고구마 등 뿌리채소. 사진은 고구마./위키피디아

―3대 영양소, 즉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각각 어떤 비율로 섭취해야 하나? 육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50 : 30 : 20의 비율로 먹는 것이 좋다. 쌀보다는 잡곡에 단백질이 많다. 곡류에 들어있는 식물단백질에는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육류의 보충이 필요하다. 하루 적당량의 육류 섭취는 체중 1kg당 1g, 즉 체중이 60kg이면 60g을 권장한다. 쇠고기 1인분을 서너명이 하루 동안 나누어 먹으면 좋다. 지방도 오메가3가 풍부한 등푸른 생선을 자주 챙겨 먹는 것이 좋다. 견과류도 곁들이면 좋다.

3대 영양소 외에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 항산화제, 피토케미컬 같은 영양소는 색소가 풍부한 채소, 나물, 과일에 많이 들어 있다. 지용성 비타민은 육류와 생선에 풍부하다.”

―치매 예방은 언제부터 하는 것이 좋은가?

“빠를수록 좋다. 30대부터 하면 가장 바람직하다.”

―60대가 넘어서도 치매 예방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머리를 많이 써라. 그래서 머리에 혈액 순환이 잘 되게 하라. 다만 머리를 쓰면 찌꺼기와 활성산소가 많이 생기므로 그것을 잘 해독하기 위해 동시에 충분히 쉬고 잘 자야 한다.”

뇌 건강을 돕는 음식 ⑦ 인지질이 풍부한 음식 : 콩, 계란 노른자. 사진은 콩 요리./위키피디아

절에서 자원봉사하는 90대 할머니

―치매 예방에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면?

“90대 중반의 할머니가 보약을 지으러 온 적이 있다. 그는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불경을 필사하고 절에 가서 따님 같은 할머니들에게 밥 퍼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하며 가까운 길은 아직도 걸어 다닌다고 한다. 식욕이 좋아 이것저것 잘 먹지만 소박한 음식을 좋아하며 잠도 잘 잤다. 특별하게 앓고 있는 병이 없고 건강하다고 했다.

남편과 사별 후 혼자되자 큰 집에서 지내는 것이 적적하지만 감사하는 마음과 하루하루 경배하는 마음으로 지낸다고 했다. 절에서 봉사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사고구조와 생활습관은 건강 유지와 치매예방의 모범답안이다.”

                           DB
노년에 종교 단체 등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며 활발히 움직이는 것도 치매 예방의 한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진은 부산의 한 사찰에서 열린 경로잔치에서 노인들이 불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조선일보 DB

―집안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하나?

“온전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치매에 걸리면 주로 기억력이 떨어지고, 이해력, 사고력, 표현력, 일처리 능력도 떨어진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존심이나 감정이나 인격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진료실 창밖에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는데, 진료실 밖에 있던 김 원장의 아내가 급히 들어와 김 원장에게 스마트폰을 넘겨줬다.

“치매 치료 받겠다며 벌써 3시간째 전화 통화를 원했어요. 빨리 받아 보세요.”

    WHO
치매에 관해 설명해 놓은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

[5 Questions : 치매]

Q1) 치매는 불치병인가?

“난치병이다. 치매는 증상보다 뇌가 나빠진 것이 본질이다. 치매가 되기 오래전부터 뇌가 나빠진다. 그래서 치매가 되기 오래전부터 예방 노력을 해야 한다.”

Q2) 치매에 걸리면 지능이 떨어진다?

“그렇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Q3) 치매 환자는 위험하다?

“위험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대부분의 치매 환자는 남에게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치매 환자는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뇌의 전두엽이 손상되면 정신병 증상이 생기고 불을 지르거나 남에게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Q4) 건망증은 치매의 초기 증상이다?

“초기 증상은 아니지만 뇌가 제법 나빠졌다는 신호이다. 치매 예방 노력을 적극적으로 시작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젊은 나이에 건망증이 증가하면 무시할 수 없는 신호이다.”

Q5) 치매는 유전된다?

“대부분은 생활방식이 잘못 되어서 생긴다. 그러나 알츠하이머치매의 경우 1~2%는 유전병이다. 혈관치매는 대부분 생활습관병이지만 유전되는 혈관치매도 있다.”

김시효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원장이 지난 10월 22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치매의 원인과 치료, 예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기훈 기자

치매 책 쓴 의사는 왜 암 수술 후 항암 대신 자연치료를 선택했나

‘치매 전문 명의’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철수 킴스패밀리의원·킴스패밀리한의원 원장이 새 책을 출간했다며 책을 한 권 보내왔다. ‘치매를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 치매 전문 의사가 치매 관련한 새 책을 썼다는 것은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책 소개 안내문 가운데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위암 극복으로 인생 2막을 살며 쓴 치매 이야기입니다.…고심 끝에 항암을 하지 않고 자연치료를 택했으며….”

의사가 암에 걸려서 선택한 자연치료법은 어떤 것일까? 그는 왜 병원에서 암 환자에게 권하는 항암치료 대신 자연치료법을 선택했을까? 그 치료법은 일반인 암 환자들도 쓸 수 있는 방법일까? 의사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치료법을 선택하는 극단의 과정이 사업 결단을 수시로 내려야 하는 회사 CEO(최고경영자)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하지 않을까?

사연을 듣기 위해 지난 10월 22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312 5층짜리 건물의 4층에 위치한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을 찾았다. 병원 입구에 서자, 북쪽의 한강 방향으로 압구정파출소와 한양·현대 아파트 건물들이 새파란 하늘 아래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김시효 원장은 연세대 의과대학과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모두 졸업해 ‘양방전문의가 한의사가 된 1호’로 알려져 있다. 질병 치료에 의학과 한의학의 관점을 융합해 현대 의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10여년간 치매 치료와 예방에 관해 많은 책을 쓰고, 여러 신문·방송과 활발히 인터뷰하고 칼럼을 게재하며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외부 강연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줌 강의와 유튜브 ‘김시효양한방TV’를 운영하면서 대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연세대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4년전 찾아온 위암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접수처 뒷벽에 작은 한약재 서랍들이 아파트 건물처럼 종횡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 한의원 약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에 위치한 진료실로 들어가 김 원장의 책상 앞 환자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 혈압측정기와 청진기가 놓여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그에게 치매와 위암 중 어느 것을 먼저 물어볼까 생각하다 위암에 관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위암에 걸린 것을 언제 알았나?

“처음 이상 증상을 느낀 것은 2017년 9월이었다. 그동안 위에 이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소화가 안되고 더부룩했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료가 밀려 있어서 검사를 받을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한달 뒤인 10월쯤에 영상의학과에서 위장조영술로 위를 방사선 촬영했더니 내시경을 받아보라고 했다. 병원 진료 일정 때문에 계속 미루다가 2018년 1월에 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받았더니 ‘위암 Ⅱa(2a)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인간의 내장 구조. 붉은색 표시 부분이 위이다.
암(오른쪽)은 신체의 일부 세포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증식하면서 신체의 다른 세포로 확산하는 현상을 말한다.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느낌은?

“실망했다. 그러나 담담했다. 안 좋은 증상이 있었으니 위암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조금 실망스러웠다. 위궤양이나 위염이길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원래 삶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설마 죽겠어’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안좋은 정도였다고나 할까?”

―의사의 처방은?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2018년 1월에 담담하게 수술을 받았다. 내가 의사니까 수술 의사를 믿었다. 그런 믿음이 있어서 일반 환자들보다 더 차분하게 넘어간 것 같다.”

나쁜 식습관과 스트레스가 원인

―위암에 걸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쁜 식습관과 스트레스가 주원인이고, 술 담배도 중요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가 하는 말은 잘 듣되 의사가 하는 것을 따라 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돌볼 틈도 없이 강행군해 온 산업 역군들처럼 우리 의사들도 환자 시간에 맞춰 진료에 쫒기다 보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술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의사도 있다. 나도 그런 의사 중 한명이었다. 환갑이 되면서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술 담배를 끊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던 것 같다.”

―정기 검진을 받지 않았나?

“1년에 한번 정도씩 혈액 종합검사를 했다. 병원에서 피를 직접 뽑아서 검사를 의뢰했다. 항상 정상이었다.”

―위 내시경 검사는?

“한 번도 안했다. 내시경을 하는 주목적은 위암을 조기에 진단받기 위해서이다. 위암이 꼭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증상도 별로 없는데 환자 진료를 하지 않고 시간을 따로 내어 다른 의사에게 검사 받으러 가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이유 때문에 미루다가 첫 증상 이후 3~4개월 지난 뒤에 갔더니 이미 2기로 진행됐다.”

        DB
의료진이 위암 검진을 위해 위 내시경을 하는 모습./조선일보 DB

―수술은 했나?

“2018년 2월 6일에 위의 3분의 2를 절제했다.”

―위암 Ⅱa(2a)기란 어떤 상태인가?

“2기중 조기 위암에 들어가지만 가까운 임파선 몇 군데는 전이된 상태이다. 조직검사로는 임파선 한두개에 전이됐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곳으로도 이미 전이됐을 수 있다. 의사가 항암치료를 권유했다.”

항암제 대신 자연치료를 택하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심사숙고 끝에 항암제를 먹지 않았다. 대신 자연치료를 하기로 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김철수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 김시효로 개명했다. 그리고 오대산에 52주, 지리산에 52주 살면서 서울로 역출근하며 환자들을 진료하고 의학적 한의학적 치매에 관한 책을 썼다.”

지리산 노고운해./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일반인들은 의사가 항암치료를 권유하면 대부분 받아들인다. 그런데 왜 다른 길을 선택했나?

“보는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의학적 지식과 한의학적 지혜, 그리고 그동안의 임상 경험을 모두 동원해 고심했다. 항암치료를 할 경우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는데, 이 면역력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암세포를 잡을 것인지, 면역력을 키워서 자연적으로 이길 수 있게 할 것인지 내 몸 상태가 갈림길에 서 있다고 판단했다. 후자를 선택했다.”

김 원장은 이 대목에서 ‘지뢰밭’ 비유를 꺼냈다.

“암 환자가 치료를 거쳐 정상인이 되어가는 길의 중간에 지뢰밭이 있다고 해 보자. 여기서 지뢰는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나쁜 생활습관이나 행동을 말한다. 바른 생활을 하며 면역력을 키우는 치료법은 지뢰밭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중간에 지뢰만 제대로 피해갈 수 있다면 이 방법이 정상생활을 하면서 암치료를 마칠 수 있는 가장 좋고 빠른 길이다.

반면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정상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지뢰밭을 피해서 멀리 돌아가지만 안전하게 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지뢰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나는 의사이며 한의사로서 지뢰를 발견해서 피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간에 위험 변수가 있지만 빠른 길을 선택했다.”

오대산에서 지낸 52주

선뜻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치료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추가 질문을 이어가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떤 자연치료 과정을 거쳤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오대산과 지리산에서 각각 52주씩 있었다고 했다. 오대산에서는 어떤 치료를 했나?

“체온을 올리고 면역력을 높이는데 중점을 뒀다. 먼저 오대산에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피톤치드가 풍부하고 산소가 많은 맑은 공기를 쐬며 많이 걸었다. 처음에는 아내가 매끼 새로운 음식을 해줬다. 야생 버섯과 야생 산나물, 신선한 채소가 주된 반찬이었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풀로만 키운 염소고기를 냉동해 하루 50g씩 먹었다. 일주일에 2~3번은 염소고기 대신 생선을 먹었다. 초기에 염소고기가 준비되기 전에는 옻닭도 자주 먹었다.

암이 전이되어 자리를 잡으려면 신생 혈관이 필요하다. 산소가 풍부한 공기를 잘 마시면 신생 혈관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이된 그 암세포가 사라질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운동을 하면 몸에 열이 나니까 암세포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진다. 많이 걷고 산에 다니고 버섯을 잘 먹은 것도 도움이 됐다.”

오대산국립공원의 설경./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면역력을 키우려면 많이 먹어야 하나?

“아니다. 우리 몸은 에너지가 부족하면 낡은 세포를 잡아 먹어서 에너지원으로 쓰고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자식작용(autophasy)을 하는데 자식작용을 항암치료에 이용하기 위해 잘 먹으면서도 과식은 피했다. 충분히 잠도 잤다. 이런 방법으로 면역력을 키우고 지뢰밭을 피해갔다.”

―일주일 내내 오대산에 머물렀나?

“일주일에 3~4일간은 거기에 머물면서 자연치료를 했고, 나머지 시간에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치매 환자 진료를 했다. 환자들이 의사를 기다리고 있으니 몸이 아파도 쉴 수 없는 것은 의사의 숙명이다.”

지리산에서도 52주

―오대산에 1년 있은 후에 지리산으로 간 까닭은?

“오대산에서 건강을 많이 회복했지만 좀 더 적극적인 체력단련을 하고 싶었다. 남원시 운봉읍에 머물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하루에 2번 정도 지리산 계곡물에 몸을 담그면서 물수련을 했다. 겨울철에는 단전까지 물 속에 넣고 15분 정도 머물고, 여름철에는 목까지 담그고 한시간 이상 있기도 했다.”

―물수련의 원리는?

“이냉치냉(以冷治冷) 이한치한(以寒治寒)이다. 위암 수술을 했으니 몸이 차져 있었다. 추위를 이기려면 몸이 따뜻해져야 한다. 몸을 찬물에 담궜다 나오면 차가워진 몸이 스스로 따뜻해지기 위해 숨을 크게 들락날락 쉬면서 가호흡을 하게 된다.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에너지를 많이 태워야 하므로 산소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흡 과정에서 몸이 따뜻해진다.”

지리산 칠선계곡./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일반 암 환자들도 이러한 치료법을 쓸 수 있나?

“아니다. 체력이 약하면 오히려 감당이 안되고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

지리산 식이요법

―지리산에서의 식이요법은?

“머무는 곳에서 지리산 식재료로 요리를 해줬다. 텃밭에서 나오는 각종 나물이 주류였다. 물론 육류도 생선도 자주 챙겨줬다. 골짜기에서 나는 산나물을 섞은 비빔밥도 먹었다. 대신 과식을 하거나 편식을 하지는 않았다. 암에 좋다는 것을 특별히 챙겨 먹지는 않았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한약도 먹었다.

음식은 기름지지 않게 비교적 척박하게 먹었다. 격일로 육류와 생선을 조금씩 먹으려고 했다. 영양 결핍을 방지하기 위해 드문드문 영양제를 먹었다. 아침 한끼를 안먹는 일일 간헐적 단식도 일주일에 2~3일은 했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자식작용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자식작용은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매일 단식을 해서 너무 자식작용이 심하게 되면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 영양제도 하루씩 걸러서 먹는다. 모든 치료법은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같이 있기 때문에 과한 것은 좋지 않다.”

각종 산나물은 병을 치료하거나 건강을 회복할 때 애용되는 음식이다./위키피디아

―물은?

“오대산과 지리산 모두 물이 좋아서 지하수를 그대로 마셨다. 생수보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오대산과 지리산에 있을 때 누가 항상 같이 붙어서 보살펴줬나?

“아내가 항상 같이 있었다. 지리산 물수련 당시에는 아내도 같이 죽겠다는 각오로 함께 했다.”

일주일에 사흘은 서울로 출근

―오대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리산에서도 KTX 타고 서울로 역출근 했나?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서울서 근무하고, 3일 정도는 지리산에 머물렀다.”

―지방에서 치료를 하면서 서울로 출퇴근해 환자 진료를 계속하면 매우 힘들지 않은가?

“힘들지 않았다. 수술하고 2주쯤 되는 날에 실밥도 완전히 뽑지 않은 상태에서 배에 복대를 하고 서울에서 약 70㎞ 떨어진 곳으로 왕진을 간 적도 있다. 그처럼 어려웠던 상황에 비추어 보면 그래도 일주일에 반은 몸을 돌보는 호사를 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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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효 원장은 일주일에 사흘은 오대산이나 지리산에서 자연치료를 했지만 나머지 3~4일은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환자 진료를 했다. 사진은 KTX./위키피디아

―진료를 계속할 것 같으면 오히려 서울에 있으면서 몸치료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의 차이다. 열심히 일하고, 동시에 열심히 치료하는 것이 좋다. 서울에만 있으면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걷는다는 것이 주는 회복력을 가질 수는 없다.”

위암과 치매 사이

―지금 몸 상황은?

“좋다. 2년 정도 그런 생활을 한 덕분인 것 같다. 2년이 지난 후에는 진료에 전념하고, 책도 쓰고, 칼럼도 쓰고, 강의 준비도 하고, 유튜브 방송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산 것 중에 가장 바쁘게 살고 있다.

수술 받은지 만 4년이 다 되어 간다. 암 수술하고 몸이 좋아지는 것이 최소한 1년은 지나야 하고 그 다음 단계로 3~5년이 지나야 많이 좋아진다. 수술 받을 당시에 몸 속에 숨어 있던 암은 5년 내에 다시 말썽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아직 5년은 안됐지만 지금 상태는 좋다. 하지만 아직 5년이 지나지 않았고, 이후에도 다른 암이 잘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있어 항상 신경은 쓰고 있다.”

                  DB
자연에서 맑은 공기를 쐬며 걷는 것은 건강을 회복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사진은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조선일보 DB

―그래도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무리하는 것은 맞다. 매일 열심히 사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닌데 생각을 바꾸면 덜 피곤하다.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우울해질 수도 있지만, 하고 싶어서 한다고 생각하면 덜 힘들고 즐겁다.

지금 내가 은퇴하면 2년 뒤 70세가 된다. 편안하게 산다면 빨리 늙고 치매가 오기 쉽다. 열심히 일하면 암이 재발할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지만, 치매가 되지 않을 확률은 높아진다. 만약 열심히 살면서 암만 걸리지 않으면 100세까지 똘똘하게 살 수 있다. 만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있는 법이다. 인간의 선택도 그렇다. 지금 내가 선택한 방법이 억울하거나 나쁜 방법이 아니고 즐겁고 행복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니 괜찮다.”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재발 확률은 확실히 떨어진다. 그 때는 암에 대해 신경을 안 써도 되지 않을까?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암이 생기기 쉽다. 5년이 지나도 암 환자는 또 다른 암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평생 건강을 챙기며 살려고 한다. 건강하지 못하면 활력이 떨어지고 우울해진다. 장수가 목표가 아니라, 건강하고 똘똘한 노후를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자연치료를 택한 이유

김 원장이 어떤 자연치료 과정을 거쳤는지 충분히 들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그가 왜 그러한 방식의 자연치료를 선택했는지 이유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다시 물어 보자. 의사가 암 수술을 받은 뒤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권고 받으면 순순히 따를 것이라고 일반인들은 예상한다.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는?

“의사가 제시하는 치료법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가장 좋다. 그러나 나는 좀 특수한 경우이다.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안 받는 것보다 통계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꼭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단계는 아니었다. 항암치료가 선택사항이었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회복할 수 있는 빠른 길이 있었다. 비록 그 중간에 지뢰밭이 있지만 의사는 지뢰를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지뢰만 잘 피해갈 수 있다면 정상생활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몸이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힘들지만 안전하다. 다만 그 길은 돌아가는 길이다. 나는 힘들고 안전한 길보다 편하고 조금 위험한 길을 택한 셈이다.”

―항암 치료가 안전하지만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인가?

“항암 치료를 받으면 약 효과 때문에 정상 세포도 기능이 약화된 뒤에 다시 회복된다. 일단 기능이 약화된 뒤에 회복된다고 해도 다시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DB
항암치료는 안전하지만 정상으로 회복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먼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은 한 대학병원의 항암치료 모습./조선일보 DB

―항암치료와 자연치료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을 때 어떤 방식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나?

“첫째, 지뢰밭을 둘러 갈 것인가, 지뢰밭을 가로질러 지름길로 갈 것이냐? 암 2기이므로 지뢰를 알아 볼 수 있다면 지름길로 가는 것이 좋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암 3기와 4기가 되면 지뢰가 너무 많으니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자신감을 갖고 가다가 지뢰를 밟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셋째, 항암치료를 받아도 암이 재발할 수 있고, 안 해도 재발할 수 있다. 만일 재발하여 항암치료를 받게 된다면 치료 받은 전력이 없는 경우가 항암치료에 더 효과가 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암 치료를 방해하는 지뢰들

―지뢰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주로 나쁜 생활습관이다. 몸을 차갑게 하는 것, 식사 도중에 물을 먹지 않는 것 등이다. 내가 위암에 걸린 주된 원인은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 짜거나 맵거나 뜨겁거나 하면 위를 보호하기 위해 중간 중간에 물을 조금씩 마시면서 먹는 습관이 중요하다. 진하고 짠 된장찌개를 평생 동안 그대로 먹는 사람과 중간에 물로 희석을 하면서 먹는 사람이 10년, 20년, 30년 지나면서 위암에 걸릴 확률 혹은 위암이 재발할 확률은 차이가 날 것이다.

반면 위산이 부족한 사람은 물을 마시면 안된다. 이런 사람은 고기를 싫어하는데, 싱겁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꼭꼭 잘 씹어 먹어야 한다. 이렇게 사람마다 지뢰가 다르므로 자기 몸의 특성을 잘 파악해 지뢰를 피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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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생활습관과 환경은 암을 유발하고 회복을 방해하는 지뢰에 비유된다. 사진은 2차대전 당시에 사용된 지뢰./위키피디아

―지뢰의 사례를 좀 더 든다면?

“자극적인 모든 음식이 지뢰다.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스트레스를 받아 위가 쓰린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도 지뢰이다. 뜨거운 것을 마실 때 입이 뜨거우면 바로 삼키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입은 괜찮지만 위가 화상을 입는다.

너무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 음식이 몸 속에서 정체되므로 자세를 자주 바꿔주는 것이 위는 물론 몸 건강에 도움이 된다. 차가운 음식도 해롭다. 또 로스팅을 많이한 고소한 커피도 좀 줄여 먹어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지뢰이다. 지뢰를 피하는 방법은 쉬운 일이나 꾸준히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위암 수술 후 식사 때 먹을 수 있는 육류의 양을 정해 놓고 정확하게 그 양을 지키고 있다. 자연치료를 하려면 실천력이 중요하다.”

―만약 김 원장이 암 전문의였다면 위암에 걸린 환자에게 어떻게 권했을까? 자연치료를 권할 수도 있었을까?

“있다!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때로는 지뢰밭을 통과하는 자연치료를 권했을 것이다. 밝은 눈은 보이는 것만 보는 눈이 아니다.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인식 너머에 있는 현실, 즉 자연현상을 볼 수 있는 열린 눈이다. 다시 말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순리나 이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면 나와 같은 길을 가라고 권할 수도 있다.”

암 몇기 때 자연치료 가능할까?

―일반인이 암에 걸렸을 때 항암치료와 자연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암이 몇기일 때인가?

“의학적 논란의 여지가 많은 질문이다. 내 개인적 견해로는 대체로 2기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수술이라는 항암치료를 받았고, 후속 치료로 항암 약물치료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자연치료할 것인지 선택이 필요했다. 위암이 분명한데 수술을 받지 않고 자연치료만 할 수는 없다.

수술이나 약물치료, 방사선 치료는 몸에 큰 부담을 주는 방법이다. 얻는 득이 몸에 부담이 되는 것보다 클 때는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얻는 득보다 몸에 부담이 더 크다면 안하는 것이 좋다. 수술은 암세포 대부분을 제거할 수 있을 때는 좋다. 그러나 수술 상처를 아물게하는 신체 작용이 남아 있는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는 나쁜 점이 같이 있다. 암 초기에는 수술만 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김 원장이 말을 이어 갔다.

“문제는 나처럼 가까운 임파선으로 전이된 경우이다. 단순하게 보면 수술 후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암세포를 박멸하기 위해 항암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약물치료로 얻을 수 있는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이 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이 3기와 4기로 진행된 경우에도 체력과 면역력이 약하다면 수술이나 약물이나 방사선치료와 같은 치료가 오히려 나쁠 수도 있다.”

             Lymph node
임파선(림프절)은 감염 등으로 인체에 들어온 병원체를 인식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데 관여한다. 사진 오른쪽 위가 림프절(Lymph node) 해부도./미국 국립암연구소

―의학과 한의학을 모두 공부해 의학적 안목이 넓어진 것이 항암치료와 자연치료 가운데 선택할 때 도움이 됐나?

“내가 의사일 때는 의학적 견해가 100%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의학까지 공부하고 나서는 의사의 견해가 100% 최선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적 시각에서는 최선의 인식이지만, 볼 수 없는 뒷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위암 수술 후 지방에 머물며 자연치료를 하던 와중에도 ‘치매를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 집필에 혼신을 다해 매달렸다고 했다. 그는 “기획과 집필, 그리고 마지막 교정까지 혼자의 힘으로 완성했다. 마지막 며칠 동안은 소리 내어 읽으며 띄워쓰기와 교정을 마쳤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강 관리를 잘 해 치매 환자가 되지 않길 바라는 의사·한의사의 마음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집필 활동이 자신의 목숨과 건강에 부담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남기려 했던 치매 지식과 지혜는 어떤 것일까? 노령의 독자들이 관심 있을 듯 해 그의 전공인 치매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자료출처 /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1/11/01/Q4JVLXMZ5VEOPKMJNJIEHYZIGE/?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예수 탄생의 예언과 성취 / 수요성서학당 원고(12-09-20)(12-16-20)


예수 탄생의 예언과 성취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 구절은 누가복음 2장 14절 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을 기록할 당시 그 대상은 헬라인들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의 특징은 "이원론" 입니다.
이원론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시간적 이원론 : 과거와  미래
둘째는 공간적 이원론 : 하늘과 땅
셋째는 행위 주체의 이원론 : 선한 자와 악한 자

지극히 높은 곳과 땅은 공간적 이원론을 표현한 것으로 이러한 사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요한계시록이라고 하겠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을 때는 정치적으로 로마 권력이 지배했던 시대입니다.
유다는 헤롯이란 분봉 왕이 다스리고 있었지요.
베들레헴에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경배하러 왔을 떼 헤롯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박사들이 말한 아기를 찾아내어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박사들이란 조로아스타교 제사장으로 왕을 만나 직접 조언할 수 있는 신분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성탄의 의미를 살펴보려면 먼저 구약에서 정치 권력의 형서 과정을 살펴야 합니다.

북 이스라엘 : 앗수르 
남 유다 : 바벨론(BC 605-539 BC)
바벨론 : 페르시아(바사, 파사 波斯)(BC 539-331 BC)
페르시아 : 그리스(헬라)(BC 331-168 BC)
그리스 : 로마(BC 168-476 AD)

* 아기 예수 탄생 - 로마
  - 헤롯 ; 유대 분봉 왕

팍스 로마나(Pax Romana) : 로마의 평화
BC 28년 로마제국을 평정한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Augustus)” 라는 칭호를 주었다.
아우구스투스란 "존귀한 자" 라는 뜻이다.
당시 로마가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존귀한 자라는 아우구스투스는 "구원자, 복음(기쁜 소식. 전쟁의 승리 소식), 왕, 은혜, 평화" 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에서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것은 로마 황제와 심지어 유다 분봉왕 헤롯에게는 심각한 도전이었다. 더구나 헤롯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왕으로 태어났다는 존재는 헤롯에게 도전적이 사건이었기 때문에 박사들이 다녀간 그 때를 기점으로 많은 아이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평화를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세상이 주는 평화는 로마 권력 특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주는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곧 성탄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성육신(Incarnation)
예수님께서 그의 몸으로 이 땅에 성막을 치신 사건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거(居)한다는 것은 "tabernacle with us" "dwell with us"
즉 구약의 하나님께서 성막 성전에서 함께 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장막을 치셨다는 사건이 성육신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성막을 치셨는가?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순종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신 후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사건은 재림입니다.
요한계시록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마지막으로 이루신 것은 생명수 샘물 즉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따라서 팬데믹 시대에 맞이하는 성탄의 의미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먼저 교회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역설적 기능을 갖는 유기체라고 하겠습니다.

위기 - 경제의 위기, 예배의 위기(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
핍박 - 이념과 사상(예수주의는 믿으면 살리라와 사회주의는 무상복지)
평강 - 정치(하나님의 섭리와 권력)

미국의 신학자 "도널드 크레이빌(Donald B. Kraybill)"
예수가 본 하나님 나라에서 역 삼각형 구도의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였다.
정치적 평강의 구도는
부자 - 큰자, 어른, 경건한 바리새인, 권력자, 작은 자, 아이, 세리, 비천한 자, 가난한 자

하나님의 통치 구도는
가난한 자, 작은 자, 아이, 세리, 권력자, 경건한 바리새인, 큰자 어른, 부자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교회 회복을 위한 순서
1. 개인
2. 가정
3. 교회
4. 사회

말라기 3: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점을 치는 사람)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겡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의 특성은 '악을 즐겨하는 것"을 말합니다(잠언 8:13).

2020년 팬데믹 시대에 맞이하는 성탄의 의미
정치 권력에 의해서 세상을 지배하려는 사악한 세력을 무너트리고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양육하여
교회를 반석 위에 세워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팬데믹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

사회적 거리
그러나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는 이전 보다 더 가까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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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20 수요성서학당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
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NIV)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or when you eat of it you will surely die."

*
"정녕 죽으리라" :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죽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면 죽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죽는다는 것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살려 주는 이 되었나니.
(NIV)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현대인)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존재가 되었다.' 라고 쓰여 있으나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이 되셨습니다.
(KJV)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첫 사람 아담 = 산 영(a living being)(산 존재)(a living soul)

마지막 아담 = 살려주는 영(a
life-giving spirit)(생명을 주시는 영)(a quickening spirit)

* quickenning : quicken(활발해지다)

디모데전서 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NIV) And Adam was not the one deceived; it was the woman who was deceived and became a sinner.
(현대인)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서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KJV) And Adam was not deceived, but the woman being deceived was in the transgression.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죄를 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음으로 누구의 죄가 속해지는가?

1. 예수를 믿는 사람
2. 불자
3. 무슬림
4. 세상 모든 사람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세상 모든 사람의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는 것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결과) 영적 죽음이었다.

로마서 5:8-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 "우리"는 모든 사람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 "우리"는 모든 사람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 피 즉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사람은 의롭게 된다.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게 구원을 얻을 것이니 : 진노하심이란 심판

시편 59:13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기까지 소멸하사.

칭의(稱義) 구원
성화(聖化) 구원
영화(靈化) 구원


칭의로 의롭게 된 구원 받은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거룩한 삶을 유지하여 성화되면서 마지막 주님 앞에 나갈 때 영화로운 모습을 나타날 것이다.

에스겔의 증거

1. 공평하실 것을 예언(에스겔 33:17)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현대인) 그래도 네 민족은 내가 행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바로 그들이다.
(NIV) "Yet your countrymen say, 'The way of the Lord is not just.' But it is their way that is not just.

2. 선지자로 예언(에스겔 33: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현대인) 그러나 너의 모든 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말이 이루어지면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한 예언자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NIV) "When all this comes true--and it surely will--then they will know that a prophet has been among them."

3. 평화의 왕으로 예언(에스겔 34:25)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찌라.

(현대인) 내가 또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고 그 땅에서 맹수를 제거하여 그들이 빈 들에서 안전하게 살고 숲속에서도 마음 놓고 잘 수 있게 하겠다.
(NIV) 'I will make a covenant of peace with them and rid the land of wild beasts so that they may live in the desert and sleep in the forests in safety.

* 화평의 언약(베리트 솰롬)
①. 하나님만이 계약의 주체가 되어 계약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진다.
②.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약의 핵심이 된다.
③. 물질적인 것이나 상호 이해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한편 본절의 언약 성취는 일반적으로 바벨론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는 BC 538년에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메시아 왕국의 시대에 성취될 것이다(예레미야 23:5, 33:14∼16, 26)

예레미야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예레미야 33:14∼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예레미야 33:26,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4. 세상의 모든 자가 부활할 것을 예언(에스겔 37:1~28)

아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므로 거대한 군대가 형성되었다는 말씀은 마지막 날에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살아 있는 자들과 죽었던 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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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크(Tanakh: Tenakh: Tenak)



타나크(Tanakh: Tenakh: Tenak)는 유태교의 기반이 되는 전체 경전을 말한다.
타나크는 유태인들이 준수하는 세가지 전통적인 경전인 토라(Torah), 네빔(Neviim), 케투빔(Ketuvim)을 한데 묶은 것이다.
타나크라는 명칭은 이들 세 경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약어이다.
즉, Torah의 T, Neviim의 N, Ketuvim의 K를 가져와 Ta-Na-Kh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토라는 구약성경의 ‘모세 5경’을 말한다.
네빔은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예언서'를 말한다.
케투빔은 그밖에 기록으로 남겨 있는 '율례와 율법'을 말한다.

나중에 기독교는 타나크의 주요 내용들은 여러 형태로 발췌하여 구약성경(Old Testament)으로 펴냈다.
즉,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의 39권 구약성경(개신교의 경우)은 타나크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타나크는 언제 만들어졌나?

탈무드에 의하면 주전 450년경 Men of the Great Assembly(70인 대의회)에서 집대성되었고 그 이후로는 내용이 한번도 변경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 신학자들은 타나크가 주전 200년부터 주후 200년 사이에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렘브란트의 '시내산의 모세'.

하나님으로부터 토라를 받은 모세는 이를 여호수아에게 전했으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전했고 장로들은 선지자들에게, 선지자들은 주전 520년경에 선지자 에즈라가 구성한 '70인 대의회'(Men of the Great Assembly)에게 전하여 토라를 최종 정리토록 했다.

'70인 대의회'는 타나크에 대한 세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는 무엇이든지 판단함에 있어서는 신중히 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후세들이 타나크를 잘 이해할수 있도록 많은 학생들을 양성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누구든지 토라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 이에 대하여 충분히 답변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나크의 의미

타나크는 미크라(Mikra 또는 Miqra)라고 부른다.
미크라는 ‘읽는 것’ 또는 ‘읽힘을 받는 것’이라는 뜻이다.
타나크가 문서로서 집대성된 것은 ‘제2의 성전’ 시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편, 라비(유태교회의 목사와 같은 존재, 선생이라는 의미, 유태교의 율법사)가 활동하기 시작한 시대부터라는 주장도 있다.
‘제2의 성전’ 시대에는 타나크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대신 미크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전에 기록된 말씀을 회중 앞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미크라는 라틴어의 스크립투스(Scriptus)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라틴어의 스크립투스는 ‘기록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영어의 스크립쳐(Scripture)는 라틴어의 스크립투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영어의 Holy Scriptures라는 용어는 성경(Bible) 자체를 말한다. 미크라는 타나크와 같은 뜻이므로 오늘날에도 유태인들 사이에서는 타나크라는 용어와 미크라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히브리어로 적힌 성경은 미크라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 제2의 성전이 파괴됨.

솔로몬이 세운 성전을 제1성전이라고 한다.
제1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 파괴되었다.
기원전 586년이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들이 솔로몬의 성전 터에 세운 성전이 제2의 성전이다.
이 성전을 헤롯 대왕이 크게 보수했기 때문에 헤롯의 성전이라고도 부른다.
제2의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의 학정에 항거하여 봉기하다가 주후 70년 4월에 로마군에 의해 완전 파괴되었다.   

타나크는 언제 어떻게 편찬되었는가?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탈무드에 의하면 타나크의 거의 모든 내용은 유태교 지도자들의 모임인 ‘70인 대의회’(Men of the Great Assembly)에서 집대성되었으며 그 작업이 완성된 것은 주전 450년경이라고 한다.

일부 유태교 라비들은 타나크가 공식적으로 집대성된 것은 ‘제2의 성전’이 파괴된 후인 주후 70년경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타나크에 전도서(Ecclesiastes), 아가(Song of Songs), 에스더(Esther)가 포함된 시기에 대하여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타나크의 첫번째 파트인 토라(모세 5경)이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하여 먼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으로부터 탈출할 때에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토라의 일부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 전해 왔겠지만 대부분 내용은 구전이다.
그것을 주전 450년경에 정리하여 두루마리에 정식으로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현대에 출판된 타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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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예수 탄생의 예언을 찾아보겠습니다.
다양한 예언들로 구약에서 소개됩니다.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아담의 증거

여자의 몸을 빌려 성육신 하실 것을 예언(창세기 3:15)
- 참고 / 이사야 7:14, 미가 5:3, 마태복음 1:23, 누가복음 1:34~35)

* 아담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표(가죽옷, 창세기 3:22)
 십자가에 몸이 상하여 죽어 주심을 예표.

에녹의 증거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것은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과 사망과 무관 한 삶을 증거 한다(창세기 5:24)
- 참고 / 히브리서 11:15, 열왕기하 2:11, 마태복음 24:3, 요한복음 5:39)

노아의 증거 

홍수로 인한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셨고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1) 나라와 민족이 사고파는 시대가 온다.

(2) 세계적인 성의 타락과 함께 평화로다 할 때에 종말이 온다. 

3. 예수님이 속죄의 희생이 되실 것과 오실 것을 예언(창 6:5~8, 벧전3:18~20, 벧후2:5, 창 6:13~22, 마24:38~39, 눅17:26~27, 히11:7, 살전5;3, 창8:20~21, 사54:9, 창8:1~13)

아브라함의 증거

1) 약속의 씨(창18:17~18, 갈3:16, 창22:18, 요8:56)

2) 이삭의 출생과 제물로 바쳐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특히 부활 을 믿었 다는 것(히11:17~19)

이삭의 증거

이삭은 자신의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다.(창 22:16~18 = 이 말씀 은 하 나님께서 이삭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양이 되심을 예언하시고 약 속의 씨로 오신 구세주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고 예언하신 것이다.

(갈 3:8, 16)

 

야곱의 증거

천국까지 올라가는 계단을 보며 메시야 되신 구세주를 증거 했다.(창 28:13~15)

모세의 증거

1) 모세 자신과 같은 선지자가 오실 것을 예언(신18:15~20)

2) 제 2의 출애굽을 일으킬 것을 예언(신18:15~20)

3) 모세가 만든 놋 뱀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민21:9)

4) 모세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실 것을 이미 보았다.(출33:22~23)

8. 여호수아의 증거

1) 여호수아는 제 2 출애굽의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습을 예표

2) 여리고 성의 무너짐은 복음의 나팔소리에 마음의 벽이 무너짐을 예표

3) 가나안 입성은 천국을 예표

4) 도피성은 영원한 도피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민3:11,25)

욥의 증거

1) 구세주가 이 땅에 오실 것을 보았다.(욥19:25)

2) 죽은 후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말함(욥19:26)

사무엘의 증거

사무엘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직 등 3권을 겸한 그리스도의 예표

다윗의 증거

1) 다윗은 세상의 왕을 상징, 후계로 그리스도의 왕권을 확실히 보여준다.(마1:1)

2) 그리스도의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예언(시16:8~11)

3) 예수님을 배반할 제자를 예언(시69:21~29, 109:8, 41:9)

4)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조롱할 것을 예언(시22:7~8)

5) 십자가 아래에서 옷을 나누는 예언(시22;18)

6) 예수님께서 옆구리에 창이 찔리실 것을 예언(시22:16)

7) 예수님께서 뼈가 꺾이지 않을 것을 예언(시22:17)

8) 예수님의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것을 예언(시110:1)

9) 많은 왕들 중의 왕이 되심을 예언(시24:7~10, 47:6~7)

10) 심판의 주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예언(시119:119~120)

솔로몬의 증거

1) 모세와 예언자들의 예언이 반드시 되리라는 그 뜻을 깨닫는 것이 지혜의 근본 이라고 하였는데(잠8:1~14) 모세와 예언자들의 예언이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다는 예언인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전부터 계셨음을 증거(잠8:22)

엘리야의 증거

1) 사렙다 과부를 통해서 이방 민족이 예수님께 돌아와 구원 받을 것을 예고(왕상 17:9)

2) 죽음에 이르지 않고 승천함으로서 예수님의 승천 모습을 보여준다.(왕하2;11)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을 살리시되 영혼이 돌아오게 하시며 살 려 주실 것을 예고(왕상17:18~22)

엘리사의 증거

1) 나아만 장군처럼 이방 민족이 예수님께 돌아올 것을 예고(왕하5:10~14)

2)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예고(왕하4:42~44)

3) 병 고침과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예고(왕하4;35)

4) 영안이 없는 자의 영안을 밝혀주었다.(왕하6:20)

이사야의 증거(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고도 한다.)

1) 동정녀 탄생을 예언(사7:14)

2) 예수님의 성장 과정과 모습을 예언(사53:2)

3) 예수님의 사역(신유와 생수가 되실 메시아)과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실 것을 예언

(사53:5~6)

4) 예수님께서 창에 찔리실 것,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 따르던 무리들이 각자의 길로 행할 것, 무덤을 부자의 것과 같이 될 것을 예언(사53:9)

5) 얼굴이 가시 면류관으로 상한 것을 예언(사52:14)

6)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을 예언(사66:15~16)

7) 지옥의 모습을 증거(사66:24)

8)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있음을 증거(사9:6)

9) 세례 요한의 사역을 예언(사40:3)

10)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43:25)

예레미야의 증거

1)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멀리할 것을 예언(렘2:1~13)

2) 만국 백성들은 예수님을 사모하게 될 것을 예언(렘31:7~9,31~34)

3) 예수님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로 예언(렘23:4~8)

4)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누구이심을 알게 될 것과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실 것을 예언(렘31:34)

5) 그리고 모두가 부활할 것을 예언(렘8:1~3)

6) 예수님께서 세계 만국의 왕 되심과 재림을 예언(렘31:8~10)

7) 창조주 되신 예수님께서 토기장이로서 우리가 그의 손안에 있음을 증 거(렘18:6, 18:1~17)

에스겔의 증거

1. 공평하실 것을 예언(에스겔 33:17)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현대인) 그래도 네 민족은 내가 행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바로 그들이다.
(NIV) "Yet your countrymen say, 'The way of the Lord is not just.' But it is their way that is not just.

2. 선지자로 예언(에스겔 33: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현대인) 그러나 너의 모든 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말이 이루어지면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한 예언자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NIV) "When all this comes true--and it surely will--then they will know that a prophet has been among them."

3. 평화의 왕으로 예언(에스겔 34:25)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찌라.

(현대인) 내가 또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고 그 땅에서 맹수를 제거하여 그들이 빈 들에서 안전하게 살고 숲속에서도 마음 놓고 잘 수 있게 하겠다.
(NIV) 'I will make a covenant of peace with them and rid the land of wild beasts so that they may live in the desert and sleep in the forests in safety.

* 화평의 언약(베리트 솰롬)
①. 하나님만이 계약의 주체가 되어 계약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진다.
②.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약의 핵심이 된다.
③. 물질적인 것이나 상호 이해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한편 본절의 언약 성취는 일반적으로 바벨론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는 BC 538년에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메시아 왕국의 시대에 성취될 것이다(예레미야 23:5, 33:14∼16, 26)

예레미야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예레미야 33:14∼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예레미야 33:26,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4. 세상의 모든 자가 부활할 것을 예언(에스겔 37:1~28)

아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므로 거대한 군대가 형성되었다는 말씀은 마지막 날에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살아 있는 자들과 죽었던 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코로나 19와 교회(언론 보도 자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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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교회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

미국 ‘처치리더스닷컴(churchleaders.com)’은 최근 조나단 리맨(Jonathan Leeman)이 쓴 ‘가상 교회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조나단 리맨은 성경적 정보자원 제공기관인 ‘9Marks’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을 맡고 있으며, 매릴랜드 주 채벌리 침례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다.

그는 오늘날 온라인 예배 방송과 그룹 채팅에 대해 “하나님이 이것을 선을 위해 사용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활동을 교회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했다.

리맨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세우는 방법’의
첫 번째 단계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독교인들을 모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교회의 어원은 ‘모임(assembly)’을 뜻하는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설명하며
“교회는 무엇보다도 예수의 이름과 복음을 확인하고 선언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마태복음 18장 20절을 인용, “예수는 교회의 행동을 언급하신 후, 물리적 모임이 자신을 대표한다고 말하면서,
교회가 행동할 수 있는 자격을 확인했다”며 “교회가 공식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과 동일시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physical space)”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그는 마태복음 28장을 근거하여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성경 전체를 가르쳐야 하며 그 대상은 그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시간과 공간을 떠날 때 항상 함께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라면서 “(예수는) 결코 인터넷 공간에 머물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리맨은 “이 모임은 교회가 일주일에 한 번은 지정학적 위치를 찾는 곳이며, 에덴 동산과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신 성전을 되돌아 보는 성화 된 공간”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함께 거할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는 곳이다. 

이 집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하나님은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라 정의했다.

그러면서 3단계는 “이 복음을 연습하고 성찬을 통해 같은 몸의 지체로서 서로를 재확인하는 것”이라며 “바울은 ‘교회로서 함께 모일 때’ 교회가 성찬을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고린도전서 11장 18절부터 34절에 대해 “교회가 모이기 전까지는 교회가 아니라는 의미”라면서 “그러므로 그들이 성찬에 참여할 때 ‘몸을 분별할 것’과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단호히 말했다”고 설명했다.

리맨은 “줌(Zoom)이나 구글 채팅(Google Chat) 기술은 우리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이점 중 일부를 제공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가상 공간에 대해 “당신과 나는 성경의 진리를 가상으로 다운로드 할 수는 있다. 그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진리가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고 형제 자매들 사이에 사랑의 끈을 만드는 채워짐을 느끼고 경험하기에는 부족하다”면서 “성서적 기준으로 볼 때 가상 교회라는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상 교회를 시작하는 목회자들에게 “사람들을 속이지 말고 성경과 함께 서 있기 바란다”면서 “실제 사랑은 가상의 사랑보다 항상 더 낫다. 만일 확실하지 않다면, 여러분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물어보시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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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 참석이 감소하는 7가지 이유

미국 크리스천 포스트는 최근 톰 레이너(Thom S. Rainer)
온라인 예배 참석이 감소하는 7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레이너는 비영리 기독교 지원단체인 라이프웨이(Lifeway)의 전 대표
현재 기독교 온라인 커뮤니티 지원단체인 ‘처치 앤서즈(Church Answers)’ 의 설립자 겸 CEO

레이너는 최근 수백 명의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온라인 예배 참석자들이 상당히 줄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서,
처치 앤서즈가 분석한 7가지 주요 이유에 대해 소개했다.

1. 호기심을 끌만한 요소(curiosity foctor)는 끝났다.

교회들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시청했다.
결국 우리는 많은 시청자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거나 명목상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애초에 그들은 오래 머물 계획이 없었다.
물론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접속자 증가)현상은 인터넷의 다른 요소로 옮겨갔다.

2. 교회 지도자들은 대면 모임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교회가 현장 예배를 위해 다시 문을 열면서 초점과 에너지가 대면 예배에 다시 투입됐다.
교회 지도자들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양질의 디지털 서비스를 개선하고 홍보하려는 처음의 노력은 시들해졌다.

3. 많은 교회가 디지털과 대면 예배 모두를 잘 해낼 만한 자원이 없다.

격리 기간 동안 교회 지도자들은 스트리밍 예배에 많은 관심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현재는 많은 교인들이 격리를 끝내고 직접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은 여기에 힘을 쏟고 있다.

4. 교회 지도자들은 디지털 교회에서 끈끈함(stickiness)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 대부분에게 디지털 교회는 새로운 세상이다.
디지털 시청자를 (현장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그룹이나 부서, 예배 등의 밖에서의 모임에서도 끈끈한 관계로 발전될 수 있을까?
디지털 사용자들 속에서 자신의 신원을 밝히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5. 많은 스트리밍 예배의 질이 떨어진다.

나는 최근에 헤어샵에서 미용사와 교회에 관해 대화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니는 교회는 없었지만, 스트리밍 예배를 시청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질문은 “교회에서의 음악은 항상 그렇게 나쁜가?” 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실망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마침내 이해하게 됐다.
그녀는 목소리와 악기의 오디오 믹스(audio mix)를 언급한 것이다.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인터넷을 통해 듣는 음향은 정말 나쁘게 들릴 수 있다.

6. 스트리밍 예배를 위한 리더십이 부족하다.

목사는 앞장서서 예배를 홍보하고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예배 인도자인가?
아니면 소리와 조명을 담당하는 사람인가?
많은 교회에서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 일차적인 책임을 지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명확한 리더십이 없으면 이 사역은 허우적댈 수 밖에 없다.

7. 전반적으로 다들 지쳐있다.

전염병은 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 투쟁과도 같다.
제스 레이너(Jess Rainer)가 최근에 말했듯이 “교회 지도자들은 전에 한번도 한 적이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제 교회 지도자들은 끝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할 일의 목록에 ‘분명한 디지털 전략’을 추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단순히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심을 기울일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방심은 디지털 예배의 출석 감소에 반영된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는 여전히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선교지”라고 강조했다.

* 자료 출처 /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97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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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보여주는 교훈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의 자유는 한계성과 책임성을 전제하여 행사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 준다.
인간은 본래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창 1:26~28).
그리고 인간의 신 형상은 3가지 특성(가치)을 가진 것으로 본다.

첫째는 이성적 사고의 능력
둘째는 창조세계의 신적 대리인의 역할
셋째는 자질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신 형상의 특성을 남용함으로써 타락한 존재가 됐으며(창 3:1~5),
그것은 부여된 신적 형상의 온전한 특성을 상실했거나, 장애를 입게 된 것으로 보며,
현대신학은 창조주와의 관계의 단절, 또는 본래의 의(Iustitia orginalis)의 상실로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간 존재가 얼마나 창조주와 창조세계(자연)와 인간(이웃)과 함께해야 하는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며, 인간은 결코 창조주를 떠나 마음대로 사고하며, 자유롭게 선택하며 사는 존재가 아닌, 그야말로 관계성과 책임성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라며 “즉 인간이 원하는 이성적 사고와 행동하려는 자유로운 선택의 의지는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작동되어야 하는 제한적이며 관계적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또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코로나 팬데믹은 창조주와 무관한 인간적인 사고와 행동의 결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대체로 코로나 팬데믹의 발생에 관한 근본 원인의 연구에서 확인되는 것은 ‘생태계의 교란설’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습”이라며 “특히 자연과학의 학문 연구가 발전시킨 과학 기술과 이기적인 자본주의가 서로 결합하여 벌린 인간의 경제발전은 실제로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에 심어놓은 가치들을 이용한 결과인데, 그러한 행위의 가속화가 마침내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혼란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또한 그동안 생산 활동에서 품어낸 과잉 에너지는 자연의 기후변화(온난화 현상)에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기후변화는 각종 바이러스의 진화와 변종을 촉진하여 감염 바이러스의 만연상태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지금부터라도 인간이 창조주와의 관계성을 전제한 이성적 사고와 자유의지 선용의 책임성이 자연과학자들에게서 먼저 각인되기를 바라며, 모든 인류에게 이러한 사실을 깨우치는 선교적인 노력이 우리 기독인들을 통하여 병행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전제에서 인간은 창조세계의 경작과 관리와 보전의 책무를 힘쓰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여전히 미로에 처한 환경이 될 것이며, 또 다른 코로나 팬데믹의 위협적인 혼란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땅에서 실현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는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교훈 받게 된다.”고 했다.

“두 번째로, 코로나 팬데믹은 신의 경고, 또는 경종의 종말론적인 의미로 다가온다”며 “전염병이 과연 하나님의 징계이며 심판인가? 이러한 질문은 지금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도 던져질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열광주의자들은 역시 이러한 현상을 말세의 징조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전염병과 관계된 징계는 그 목적이 그의 백성들이 뉘우치고 언약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경종의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중요한 것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관한 일들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염병을 통한 징계의 위협은 위협 그 자체보다, 그것을 통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경종의 의미로 여겨진다는 점”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경종과 각성의 의미는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서도 발견하게 된다.”며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은 인간을 향한 징계나, 징벌 그 자체이기보다, 오히려 미래의 심판에 대한 신앙준비와 그것에 대한 사전경고의 의미, 또는 경종과 깨어 있어야 함에 대한 의미로 여겨진다.”고 했다.

더불어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은 최선을 다해서 우리 인간이 저지른 실수들에 대하여 함께 막아내야 할 공동의 책임 적인 과제이면서, 동시에 신앙적으로 이 시대를 향한 경종의 의미가 분명하다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실하게 깨어 있어야 하며, 개인적인 심판과 종말의 준비뿐 아니라 공동체의 위기 극복에 대한 책임을 일깨우는 경종이 분명하다 할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로, 코로나 팬데믹은 교회의 본질을 되묻게 하는 도전의 의미로 여겨진다.”며 “코로나 팬데믹은 이러한 교회관에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 이유는 이러한 형태의 교회 모임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코로나 팬데믹이 교회의 본질에 관한 질문과 함께 교회 전체의 구조변화를 시도할 기회를 부여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교회의 공동체성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요구되는 한국교회의 구조개혁으로 여겨진다”며 “그것은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개교회주의 적이며, 개교파주의 적인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무엇인가?”

첫째,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에 역행하는 말이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모여야 한다. 오늘날 대형교회는 너무 많이 모아서 문제이다. 가능한 소수의 모임으로, 대형교회도 소수의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진 모임이 계속될 수 있다. 골방에서도, 들판에서도, 작은 홀에서도, 가정에서도 소모임은 가능하다”고 했다.

“믿음, 소망, 사랑을 하나님 앞에서 확인해야 한다. 바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라는 것”이라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믿음, 소망, 사랑을 확인하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는 모임이 필요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둘째,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공동체에 속한 기독인의 지체들이 모여야 하며, 모였으면 다시 세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평신도 선교사로서 파송되어야 하는 관계에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마5:13~16)을 잘 수행하기 위함이다. 즉 교회의 공공성과 관계된 일”이라고 했다.

셋째, 교회는 코로나 팬데믹의 방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조해야 한다.

초기에 한국교회는 코로나 방역에 비협조적인 기관으로 비난하는 소리가 사회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에 국가적인 방역에 참여하며 협조하는 일에 한국교회가 책임성을 가지고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이웃과 사회와 국가적인 고통과 시련은 함께 짊어지고 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교회의 공공성을 보여주는 일이며, 그것이 교회를 신뢰하게 하는 방편임을 기억해야 할 것(마 25:31~46)”이라고 했다.

넷째, 영상예배의 다양성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예배의 본질은 장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요 4:20~24). 이것은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마음으로 의존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개신교 예배의 근본 원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온 성도들이 모여 행하는 공동체 예배로 돌아가는 것이 여전히 한국교회가 고대하는 바이기도 하다”며 “그러나 이미 시작된 인터넷을 활용한 영상예배는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본다. 물론 설교 중심의 예배에 한정된 모습에서 영상예배는 아직 기독교 신앙에 이르지 아니한 가족이나, 이웃에게 선교의 접촉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섯째, 생명존중의 책임의식과 생태학적인 영성 기르기를 힘써야 한다.

교회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 구원론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는 일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개인의 영혼 구원에 한정하지 않고 전인 구원의 이해가 요망된다. 전인 구원은 개인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타인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며, 오늘날은 자연 생태계의 문제와 관련하여 자연 피조물의 탄식을 이해할 줄 아는 영성을 길러야 한다(롬 8:18~22)”고 했다.

여섯째, 다음 세대에게 기독교 신앙을 깨우는 종교교육을 힘써야 한다.

17세기 유럽의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의 마인드를 빌리면, 그는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학교의 공교육에서 3가지 영역의 내용이 가르쳐지도록 제시했다. 그것이 자연(창조세계)과 정신(이성)과 성경(종교)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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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메니우스 /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Iohannes Amos Comenius, 체코어 Jan Amos Komenský 얀 아모스 코멘스키. 1592. 3. 28~1670. 11. 15) 체코의 철학자, 신학자, 교육자이자 종교 개혁가이다. 근대 교육학의 선구자로 유럽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교육의 제도를 새롭게 바꾸는 데 노력하였다.
세계를 하나의 조화체로 보고 그에 대한 통합적 지식을 역설한 범지학(汎知學)사상과 실물을 통한 감각적 경험을 중시한 감각적 실학주의로 요약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최초의 그림책인 “세계도회(Orbis Pictus)”를 펴냈으며 “대교수학 (Didactica magna)”에서 교육의 단계를 6년 주기의 4단계로 제시하였다. 또한 그는 보편교육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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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다음 세대의 공교육에서 종교교육을 시행하는 일은 전 세계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국가교육은 무신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모습(종교 중립적인 태도) 이라며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를 모두 무신론자들로 교육하게 하는 일은 미래의 대한민국 사회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높이는 관점에서라도 종교교육이 실천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일곱째, 한국교회의 사명은 국가의 시련과 이웃의 고난을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합심 기도는 하나님께서 고난의 때를 이기도록 힘을 더하실 것이며, 지혜를 주실 것이며, 새로운 모습의 한국교회 부흥에 우리 하나님이 응답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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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의 유래

구약시대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wheat) 추수가 끝날 무렵 첫 수확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제였다(출 23:16, 34:22).

출애굽기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Celebrate the Feast of Harvest with the firstfruits of the crops you sow in your field. "Celebrate the Feast of Ingathering at the end of the year, when you gather in your crops from the field.

출애굽기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Celebrate the Feast of Weeks with the firstfruits of the wheat harvest, and the Feast of Ingathering at the turn of the year.

근대적 유래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로부터 유래한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온 경건한 신앙인들이었다.

청교도들이 북미로 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영국 헨리 8세제임스 1세, 찰스 1세 때 이어진 종교 박해였다.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 불리는 영국 청교도들은 1600년대 초기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이주한 것이 직접적인 유래이다.

청교도들은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서 1620년 8월 5일(지금 달력으로 8월 15일) 스피드웰(Speedwell)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美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초반에 배가 고장나 물이 새 다시 귀항했다.

한 달 후인 1620년 9월 6일, 결국 메이플라워호만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하여 미국 동해(대서양) 중부지방 버지니아(Virginia)를 목적지로 삼고 재차 출발했다. 남자 78명여자 24명 등 전체 102명이 출발했으나, 항해 도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탄생했다.

그들은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메사추세츠 케이퍼 카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5일간 주위를 답사한 후 11월 16일 현재의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했다. 63일간 3,400마일(5,440km)의 멀고도 긴, 그리고 위험한 항해 끝에 닻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영국을 떠날 때 항구 이름을 따라, 그곳을 플리머스라 명명했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이 불기 때문에, 남쪽 버지니아로 가려던 배는 북쪽 메사추세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들은 토요일에 도착했지만, 주일을 지키기 위해 길고도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를 거쳤음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보냈다.
그들은 항해 동안 어떻게 보냈는가?
그들은 찬송을 많이 불렀다.
"우리는 대부분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다. 주일은 모두가 찬송만 불렀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청교도 개척자들)은 도착한 후 형언할 수 없이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다.
11월 중순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집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결국 그해(1620-1621) 겨울, 2-3개월 내 102명 중 절반 이상이 운명을 달리했다.

특히 1-2월의 혹독한 겨울에는 하루에 2-3명씩 죽어나갔다.
생존자는 50명뿐이었고, 그들 중 다수도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져 질병으로 신음했다.
그러나 6-7명의 건장한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입히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는 등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경건한 청교도들은 굳건한 믿음 위에 마음을 하나로 통일한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

엄동설한도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자, 생존한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여름과 가을 기대 이상의 추수를 하게 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 126:6)".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주신 것 등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렸다.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건너 온 다음 해인 1621년 가을,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기도 중에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청교도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추수 감사예배를 드렸다.
첫날인 주일에는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부르고, 말씀 받아 묵상했다.
둘째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고,
셋째날에는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 등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친교했다.

90명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pumpkin pie)를 가져와 같이 친교를 나눴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먹게 됐다.

청교도들은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은 다음에야 자신들의 집을 지었다.
그들이야말로 북아메리카의 개척자들이요, 믿음의 선조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경건생활을 했다.

22일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2차 감염을 일으켜 모이기가 어려운 팬데믹 시대에 과연 주님께서 추수감사주일을 어떻게 지키기를 원하실까?
청교도들의 신앙을 따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메이플라워 호가 영국을 떠날 때 또 한 척의 배가 영국을 떠났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매스터 호라고 합니다.
매스터 호는 남미를 향해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남미에 황금이 많이 발견되는 곳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목적이 황금이었습니다.
그러나 북미를 향해 출발했던 메이플라워 호는 목적이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남미와 북미는 전혀 다른 나라들이 세워졌습니다.
남미는 빈민국가 형태로 남아있지만 북미는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로 세워졌습니다.
그 이유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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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목회 계획 컨퍼런스’ 준비 중인 김두현 21C목회연구소장

예배 회복률 20-30%, 대부분 교회 피로 누적
분노, 허탈에 심지어 자포자기 목사들도 많아
30-40대와 그들 자녀 세대 잃어… 회복 필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 기독교계의 목회자들은 이런 사태를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교회를 세워가야 할 것인가.
21C목회연구소(소장 김두현 목사)가 2021년을 앞두고 현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응,
그리고 미래 교회의 목회와 전략 제시를 위한 ‘2021 목회 계획 컨퍼런스’를 마련했다.

컨퍼런스는 2020년 11월 30일(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진행된다.
21세기목회연구소가 주최하고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가 후원하는 이 컨퍼런스에서는
김두현 소장이 코로나 시대의 목회 매뉴얼을,
소강석 목사가 실전 목회 전략을 통해 ‘교회 세움’의 희망을 전할 계획이다.
본지는 김두현 소장을 만나 이 컨퍼런스의 취지와 배경, 그리고 현 한국교회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 봤다.
다음은 김 소장과의 일문일답.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교회 목회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나.

“코로나 전후가 거의 갈림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반적 목회, 즉 주일예배, 기본적 행사, 조직이나 사역 등 그 동안 해 왔던 포맷들을 유지하면 됐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시대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한국교회는 여러 면에서 고립되는 상황까지 왔기에, 목회적 돌파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본질을 놓치고 자꾸 비본질의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는데,
성경과 교회 중심으로 돌아와 성령과 영성 중심으로 가야 빠른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라 본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지.

“지금은 코로나로 장기화로 인해 목회 자체가 셧다운돼 있기 때문에 예배 회복률이 2, 30%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의 교회들에 피로가 누적돼 있다.
따라서 지금은 컨트롤 타워에서 수요에 따른 공급을 원활히 해 주지 않으면 어렵지 않겠나 생각한다.
필요한 것을 세 가지 꼽자면
첫째는 정확한 메시지다.
메시지에는 시대의 관점, 교회의 현 상황 진단, 그리고 미래로 가기 위한 대안들이 담겨야 한다.

두 번째는 하루속히 대립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통합과 연합과 소통의 환경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무조건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
이번에 목회 컨퍼런스를 하는 이유는,
목사님들이 모여서 교회를 어떻게 세우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진솔하게 논의해서 매뉴얼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현 정부의 교회에 대한 방역 정책과 이에 대한 기독교계의 대처를 평가한다면.

“기독교는 연합체가 부실하다 보니 초기 대응에 어려움이 많았고,
정부는 교회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대해 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지금 한국교회에 분노하거나 허탈해하거나 심지어 자포자기하는 목사님들도 많고,
약 30% 가량은 회생 불가의 타격을 입었다.
초기 골든타임에 잘 대응했다면 이 정도까지 위기는 안 왔을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기독교계의 리더가 나와서 허와 실을 구분하고,
정부와도 소통하고 도울 건 도와 가며 함께 문제를 풀어갔으면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어떻게 예상하나? 이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코로나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전과 이후의 교회는 그야말로 모든 게 다 변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 팬데믹 가운데 교회들이 세워졌는데, 그 교회를 ‘포스트 팬데믹 처치’라고 말한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도 얼마든 교회가 잘되고 사람이 모이고 사역할 수 있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마스터되고 준비되고 모든 것이 살아 있고 모든 것이 중심이 될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있는 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 나빠지는 게 아니다.
팬데믹 속에 개척되고 부흥되고 영적으로 더 강력해지는 교회들, 하나님께서 그런 교회를 만드시는 것이다.
그럼 예전에 세워진 교회들은 어떻게 되나?
그 교회들을 버릴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이번 컨퍼런스에서 그 원리와 전략들을 말씀드릴 것이다.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것은 코로나로 인해 30 40세대, 그리고 그들의 자녀세대를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교회들이 30 40을 회복해야 하고, 고령화된 교회 구조를 혁신하고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는 목회 패러다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걸 희생이 아닌 건강한 발전이라고 여기고 새 판 짜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코로나가 종식돼도 2021년부터 찾아오는 코로나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포스트 팬데믹 처치를 세우고, 새 패러다임을 만들고, 교회 구조를 변화시키고, 새 플랫폼을 활용하고, 교회 내 갈등을 치유하고, 이러한 것들을 신학적·목회학적·성경적으로 잘 해석해서 결국은 교회를 떠난 이들을 돌아오게 하고 무신론자와 반신론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예방이 치료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방어, 유지, 관리에만 집중하고, 예방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하다.
또한 목회자들은 목회에, 성도들은 신앙에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서 교회와 가정이 자기 포지션을 지키며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지금 모두가 셧다운돼 있다. 이래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고, 지금이라도 결단이 필요하다.

또 저는 하나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생각한다. 지금은 서로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고, 함께 책임지면서 더 나은 단계로 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님들, 특히 우리 목사님들이 정말 2021년 목회를 잘 준비해서, 우리가 올해 부활절다운 부활절을 지키지 못했는데 2021년 봄에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한국교회가 새롭게 부활되는 그런 모멘텀이 확실하게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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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적 리뉴얼'은 필수

[ 인터뷰 ] 코로나 시대 교회 공동체에 대해 듣다
모새골 공동체 임영수 목사

"개교회 모임이 해체되더라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는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와 교파의 장벽이 낮아지는 동시에 전 세계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의 유대가 더 깊어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교회 공동체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과 교회 공동체의 결속마저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가운데, 지난달 29일 경기도 양평 모새골공동체에서 교회 은퇴 이후 모새골공동체를 설립해 하나님 나라
공동체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는 임영수 목사를 만났다.

"세상은 우리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지엽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자꾸 깨어지게 만듭니다.
세상 속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적으로 계속 '리뉴얼'해야 합니다."

임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변화에 대해 교회의 대형화 추세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많은 교회들이 새로운 각성 속에 새로운 카리스마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시대 별로 새로운 모형을 창출해 냈듯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카리스마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구도자적인 삶을 살기 위해 지난 2003년 모새골공동체를 설립했다.
영락교회와 주님의교회를 담임했던 그는 그 동안의 사역이 책의 서론과 본문 1,2,3이었다면,
이제는 결론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이 공동체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 공동체가 올해로 여든이 된 노 사역자의 목회와 신앙의 결정체인 셈이다.

임 목사는 구도자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교파를 초월해 세상 속에 살면서 어느 순간 하나님이 잊히거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신앙을 항상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고민인 젊은 세대들이 비대면 예배에 익숙해지고 교회를 떠날 것에 대한 기독교계의 우려에 대한 물음에는 동성애 운동에 천착하던 뉴질랜드 교회의 예를 들었다. 복음의 본질과 기쁨을 뒤로 한 채 거리로 나가 반동성애 운동에만 집중하던 교회의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복음 외의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어차피 복음의 능력이 없는 교회에는 코로나 펜데믹 전에도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았다며, 교회가 복음의 능력이 있고 본질이 살아있다면 젊은이들은 자연히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람을 잡으러 쫓아다니지 마세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집중하지 마세요. 매일 신앙을 새롭게 하고 복음의 능력이 있으면 팬데믹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70542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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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 문화 정착하면, 교인들은 어디로 갈까?

코로나19로 임시방편처럼 시작한 온라인 비대면 예배가 새로운 예배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지난 10월 14일 밝힌 개신교인 인식조사에 따르면 3월 29일과 7월 19일 기간 사이,
'온라인·기독교방송 예배가 현장예배보다 더 좋았다'는 반응이 9.3%에서 14.5%로 상승했다.
또한 '필요한 경우 교회에 가지 않고 온라인·기독교방송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반응도
12.5%에서 16.7%로, '교회에 잘 안가게 될 것 같다'라는 응답은 1.6%에서 5.7%로 증가했다.

설문결과를 발표한 이민형 책임연구원은 "기독교의 다른 종파에 비해 개신교 교회는 목사의 설교에 무게가 실린
(주일)예배를 신앙의 핵심으로 강조해왔다.
아이러니하게 이 특징이 설교 중심의 온라인 예배를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작용했다"라면서,
"거칠게 비유하자면 코로나19 전후의 예배는 오프라인 강의를 듣는가, 온라인 강의를 듣는가의 차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예배 문화의 정착을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와, 예배를 '오프라인·온라인 강의'에 빗댄 비유를 보고,
총회 산하 '교인 수별 교회 수 비중'의 변화가 우려됐다.

10여 년 사이 교육과 콘텐츠의 온라인화를 통한 쏠림과 분산 현상을 목격한다.
오프라인 학원을 다니던 학생들이 대거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면서 온라인 교육 플랫폼들이 크게 성장하고
'일타강사'들이 등장했다.
반면 SNS 플랫폼이 확장하면서 유튜브에서 1인 크리에이터들이 나타났고,
페이스북 등에선 여러 시위 현상들이나 행사가 편집없이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언론매체의 역할이 분산되기도 했다.

제105회 총회 통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사이 초소형 교회의 비중은 급증하고 전체의 0.2%를 차지하는 초대형교회 21곳이 교단 전체 교인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교인 수 30명 이하 교회의 비중은 33.8%로 10년 전보다 10.0% 증가했고,
101~300명 사이 교회는 10년 전보다 3.6% 감소해, 교단의 허리가 약해졌다고 분석됐다.

코로나19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코로나19 종식 후 성도들의 예배 방식이 온라인화되면,
교인 수별 교회 수 비중이 변할 수 있다.
거칠게 비유해서 대형교회에 오프라인으로 모이던 성도들이 시골 오지에서 사역하는 목사를 1인 크리에이터처럼 만나는 기회가 될까, 아니면 온라인 교육계의 '일타강사'처럼 새로운 스타 목사에게 관심이 집중될까?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70834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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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개신교인 유튜브 이용률 타종교인보다 높았다
예장합동, 전국 1000명 설문 조사

종교인 중 개신교인의 유튜브 이용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개신교가 힘써야 할 분야로는 ‘사회적 약자 구제·봉사’를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소강석 목사)은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시대 종교 영향도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 13~20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다.
예장합동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전략을 수립할 방침이다.


이번 조사에서 유튜브 사용 빈도를 묻는 항목에 ‘거의 매일’ 이용한다고 답한 비율은 53.8%였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8.7%에 그쳤다.
종교별로는 일주일에 3~4번 이상 사용한다고 답한 개신교인이 70.6%로 천주교(53.3%) 불교(67.3%)보다 높았다.
온라인 종교집회에 참여한 경험도 응답자 중 37.5%가 있다고 답했는데 개신교인이 62.6%로 종교 가운데 가장 높았다.
천주교와 불교는 각각 33.4%와 11.7%였다.

온라인 종교 집회에 대한 느낌을 묻는 질문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45.8%)
‘현장 집회보다 못했다’(49.1%)는 의견이 갈렸다.

소 목사는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영적인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고 본다”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교인들이 영적인 문화와 접점을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은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물건구매(57.7%) 영화감상(35.1%) 회의(33.7%) 종교활동(27.1%)에서 변화가 가장 컸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이후 개신교가 힘써야 할 분야로는
‘사회적 약자 구제·봉사’(49.6%) ‘정부와 소통’(21.7%) 사회 통합’(17.2%) 등의 순으로 꼽았다.

개신교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 교회상에 대해선
‘사회적 약자를 돕는 교회’(52.4%)와 ‘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교회’(49.7%)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64.6%는 ‘종교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소강석 목사는 “신학자 한스 큉은 ‘미래로 갈수록 현대인은 기존 교회에 대해 저항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커지겠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심과 종교적 욕구, 영성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여론조사 결과는 영(靈)택트가
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과제로 부상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영택트’는 영적인 콘텐츠를 개발해 종교의 건강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팬데믹을 극복하자는 의미의 조어다.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사회가 직면할 위기에 대한 질문에는 45.6%의 응답자가 ‘경제적 양극화와 고용 불안’을 꼽았다.
이어 ‘저출산 고령화’(40.6%) ‘기후·환경’(35.2%) ‘세계적인 전염병의 일상화’(24.6%) ‘진보와 보수의 갈등’(15.5%) 등이 뒤를 이었다.

소 목사는 “코로나19로 한국교회는 부흥과 쇠락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고민하면서 전략 수립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번 조사를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의 미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 목사는 총회장 취임 직후 총회 본부에 미래전략본부를 조직하고 교단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번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오차 범위는 ±3.1% 포인트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3177&code=23111113&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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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면예배 참석 성도수 아직은…
라이프웨이리서치 목회자 설문… 10곳 중 9곳 대면예배 재개

최근 미국교회 10곳 중 9곳이 대면예배를 재개했지만,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기독교 여론조사기관 라이프웨이리서치는 최근 미국 목회자 10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87%는 ‘9월 현재 대면예배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조사결과(71%)에 비해 16%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현장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수는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지난 2월 평균 예배 참석자가 ‘250명 이상’이라고 답한 목회자는 20%였지만 9월에는 6%에 그쳤다.
‘100~249명’이라는 응답도 35%에서 22%로 감소했다.
반면 예배 참석자가 ‘50~99명’이었다는 응답은 28%에서 34%로 늘었고, ‘49명 이하’는 17%에서 38%로 대폭 증가했다.

스콧 매코넬 라이프웨이리서치 대표는 “미국교회가 다시 모여 예배 드리는 방법은 찾았지만,
코로나 확산 이전으로 돌아가기엔 갈 길이 아직 멀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 규모가 클수록 코로나19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성도도 많기 때문에 출석률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형교회가 지역 내 작은 교회와 협력해 코로나에 대응하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코로나 19 장기화가 교회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응답도 눈길을 끌었다.
‘교회 건축 등 대규모 예산 집행을 연기했다’(12%)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아웃리치 주일학교 등 사역 부서 폐지’(8%) ‘교직원의 급여나 복리후생비 삭감’(6%) ‘교직원 감축’(6%) ‘교단 분담금 삭감’(6%)
‘선교활동 지원 중단’(5%) 등이 뒤를 이었다.

매코넬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은 사역 현장에 여전히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목회자들은 중단되거나 위축된 목회 활동과
교회 사역이 곧 재개되길 바라겠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코로나 시대 속 사역을 위해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2일부터 지난달 1일까지 전화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진행됐으며 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는 ±3.4%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3343&code=23111211&sid1=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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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줄었으니…” 교회들 포용 대신 감원
코로나 시대, 교계에 드리운 그늘
부교역자가 내몰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적지 않은 교회들이 교역자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 줄이기에 돌입했다.
내년 사역계획과 예산을 확정하기 위한 정책 당회를 마친 교회 중에는 예산을 최대 30%까지 줄인 경우도 많다.
예산이 줄어들면서 교역자들의 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교역자가 사임한 교회들은 충원 대신 인사이동을 통해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예배가 확대되면서 영상 콘텐츠 제작에 특화된 교역자를 선호하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경기도 안산의 한 교회는 몇몇 전도사에게 사직서를 받으면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전도사들은 붙잡았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교역자들만 있으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대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인천의 한 교회도 전도사 7명과 이별했다.
이들의 업무는 전임전도사들이 대신 맡았다.
교회의 한 관계자는 “영상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이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부득이 사직서를 받았다”면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 이라고 전했다.

선교사들도 구조조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아시아 A국에서 사역하던 B선교사는 후원교회가 귀국 명령을 하면서 지난달 가족과 급히 귀국했다.
후원교회는 목사인 이 선교사에게 교육부서와 선교부 업무를 동시에 맡길 예정이다.
이런 결정으로 교회는 2명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

교회를 사임한 이들은 추운 겨울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교회들이 신규채용을 꺼리고 있어 새 사역지를 찾는 게 어려워졌다.
이전 교회에서 사택을 제공받았던 목회자들은 당장 오갈 데도 없는 형편이 되기도 한다.

간혹 신규 청빙을 하는 교회들도 ‘영상 콘텐츠 제작과 편집’이 가능한 사람을 찾고 있다.
신학대 홈페이지의 초빙 게시판에서도 영상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 교역자를 우대한다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교회 승합차 운전을 위해 1종 보통면허 소지자나 찬양인도자를 우대했지만,
비대면 예배가 늘면서 교회의 관심이 영상 콘텐츠 제작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신학대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장로회신학대 글로컬현장교육원(교육원)은 지난 3월 ‘디지털 영상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지난 2일부터 개척교회 지원 기관인 ‘처치브릿지’의 후원을 받아 졸업생을 위한 기초영상반도 운영하고 있다.
박재필 교육원 교수는 8일 “비대면 예배를 준비하기 어려운 작은 규모의 교회를 돕기 위해 영상 아카데미를 개설해
실무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이미 90명을 배출했다”면서 “졸업생을 위한 기초영상반을 통해서도 목회자 영상 재교육에 나섰다”고 소개했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교회들이 어렵더라도 사회에서 사용하는 구조조정 대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길을 찾아야 교회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무조건적인 구조조정을 지양하고 건강한 방향의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3869&code=23111113&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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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간 반석(에스겔 26:1-6) / 주일 설교 동영상(12-13-20)


말간 반석이란 용어가 에스겔서에서만 4회 사용되었다.
에스겔 24장에서는 2회 "예루살렘"
에스겔 26장에서는 2회 "두로"라고 한다.
오늘날 예루살렘은 "교회"에 비유한다면, 두로는 "뉴욕 맨해튼"과 같은 대도시라고 하겠다.
화려한 예루살렘과 맨해튼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거대한 바윗 덩어리만 솟아오른 것을 말간 반석이라고 한다.

말간 반석(에스겔 26:1-6) / 주일설교 원고(12-13-20)


말간 반석(에스겔 26:1-6)

1. 제 십 일년
어느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아하 좋다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로 흉용케 함 같이 열국으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4.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훼파하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서 말간 반석이 되게 하며
5.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가 이방의 노략거리가 될 것이요
6. 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오늘 설교 제목은 "말간 반석"입니다.

말간이란 단어를 한글 사전에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첫째는 말을 기르는 곳(말간)(馬間)(마굿간)
둘째는 터무니 없다(경상도 사투리)
셋째는 (형용사) 말갛다
 1. 산뜻하게 맑다.
 2. 국물 따위가 진하지 않고 묽다.
 3. 눈이 맑고 생기가 있다.

에스겔서에서 사용한 "말간"이란 의미와 전혀 다른 설명입니다.
"말간 반석"이란 용어가 에스겔서에서만 4번 사용되었습니다.
에스겔 24:7, 8절에서는 예루살렘은 "녹슨 가마솥"으로 비유하면서 "말간 반석" 위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때 "말간" 이란 히브리어 "체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의미는 "높은(top of. KJV)" 즉 "눈에 잘 띄는" 또는 "노출된(bare. RSV)

반석(盤石)
1. 넓고 평평한 큰 돌.
2. 사물, 사상, 기틀 따위가 아주 견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에스겔 24장에서 "말간 반석"이란 모든 사람들이 분명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위치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전 세계가 집중하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하겠습니다.

에스겔 26:4, 14절에서 "말간 반석"이란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두로(Tyre)란 지명는 "바위(Rock)"라는 뜻입니다.
두로를 영어로 발음하면 "타이어(Tyre)"라고 합니다.
자동차의 바퀴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습니다.
두로의 유명한 왕은 "히람"이었습니다.

히람 왕은 다윗 왕이 궁궐을 건축할 때 백향목과 석수를 보내어 집을 짓게 했습니다(사무엘하 5:11).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는 사절단을 보내 축하했습니다(열왕기상 5:1).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는 백향목과 놋을 다루는 기술자를 보내어 협력했습니다(역대하 2:3, 열왕기상 7:14).

히람 왕이 죽은 후에 후계자들이 서로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심각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엣바알"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딸 "이세벨"을 "아합"의 부인으로 보내어 서로 동맹을 맺게 됩니다(열왕기사 16:31).
이세벨은 사마리아 성에 아세라 신전을 짓고 우상 숭배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전역에 3년 6개월 동안 심각한 가뭄이 일어났습니다.

두로라는 작은 도시 국가가 이스라엘 나라와 서로 협력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는 두로는 평화롭고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고 우상 숭배에 전념하게 될 때는 가뭄과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서 이스라엘도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고 두로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겔서 24장 예루살렘을 통하여 오늘의 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이 황폐화 되어 말간 반석 위에 드러나 이제는 통곡의 벽이라는 서쪽 벽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의 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 라는 심각한 타격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마치 예루살렘이 말간 반석위에 드러난 것처럼 머지않아 화려하던 교회들 모두 말간 반석 위에 올려지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을 살펴보면 가이사려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누구냐?"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주님의 교회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음부의 권세가 다가왔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졌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신앙고백의 내용에 어긋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어 회개한다면 교회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될 때 모든 선교사들을 추방했습니다.
신앙의 큰 핍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나면서 중국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수를 대략 70만명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추방당하고 중국은 모든 교회의 문을 닫았습니다.
오직 공산정권이 인정하는 삼자교회만 허락했습니다.
중국에서 사역을 했던 선교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분명히 현저하게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0년 후 1979년에 중국 지하교회에 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대략 7천만명이라고 합니다.
무려 100배가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30년 후 2009년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1억 5천만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핍박과 환난의 시기에 신앙이 위축되거나 약화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강해지고 부흥하고 성장한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오늘의 교회를 향한 중국 지하교회 성도들과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ㅇ이 신앙을 지키려고 목숨까지도 내려 놓는 헌신적인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매월 북한에 북한어 성경 보내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권에 15불입니다.
현재 저희들이 매월 6권씩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2020년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북한의 주요 도시와 지역에 북한어 성경이 은밀한 가운데 보급되고 있다는 선교단체의 보고를 듣고 있습니다.

만일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지역의 성도들이 깨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중국과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을 통하여 새로운 부흥의 문을 여실 것입니다.

에스겔 26장 두로를 통하여 뉴욕 맨해튼을 생각합니다.

맨해튼은 초고증 빌딍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행과 금융의 중요한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지난 2000년 7월에 뉴욕으로 이주하고 그해 가을 사우스캐로라이나 한인교회를 방문했을 때 현재 제가 타고 다니는 승합차를 몰고 갔습니다. 어느 식당에 주차하고 들어갔는데 그 지역의 주민들이 뉴욕에서 온 차구나! 하며 평생 소원 중 하나가 뉴욕 맨해튼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맨해튼의 지반은 거대한 반석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말간 반석 위에 놓여질 줄 누가 알았습니까?
두로가 말간 반석 위에 놓여질 줄 누가 알았습니까?
뉴욕 맨해튼이 말간 반석 위에 놓여질 줄 누가 알겠습니까?
오늘의 화려함과 부를 계속적으로 자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책망하셨듯이 지금도 주님께서는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는 교회와 화려한 맨해튼이란 도시를 향하여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44: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편 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
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국제 정치학자들은 현재 유엔에 가입한 나라의 수가 193개국이라고 합니다.
이 많은 나라들 중에서 하나님이 세운 나라는 세 나라라고 합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둘째는 미국
셋째는 한국

한국은 제헌국회 개회시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지만 개회 기도를 하므로 시작한 나라입니다.

임시의장(이승만)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윤영 의원 기도(일동기립) 

제헌국회 기도문 
(국회의원 이윤영목사)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속기록 소개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 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伸寃)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데 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 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 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회의를 사회 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이겨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소통(疏通)(누가복음 4:18-19) / 2020 성탄축하예배 설교 원고(1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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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疏通)(누가복음 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소통(疏通)이란 한자의 훈(訓)을 살펴봅니다.

"소통할 소(疎), 트일 소(疎). 통할 통(通)"


1. 사물이 막힘이 없이 잘 통함.

2. 의견이나 의사 따위가 남에게 잘 통함.


소통이란 단어를 영어로 "컴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회복을 위한 소통" 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주의 은혜의 해는 희년을 의미합니다.

희년이란 안식년을 일곱번 지낸 후에 맞이하는 50년을 말합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것들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회복됩니까?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2.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3.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4.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세 가지 회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기쁜 소식을)

2. 포로된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를(죄의 멍에를 벗는 것)

3.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영적 시력)


주의 은혜의 해(the year of the Lord's favor)

은혜를 원어로 살펴보면 "받으실만하다"는 뜻입니다.

받으실만하다는 뜻은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는 것을 말합니다.


세속적인 의미로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나니" 라는 말씀에서 성령은 영적인 것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의미로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라고 하겠습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육신적으로는 가난할지라도 믿음에는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포로되고 눌린 자는 죄의 포로가 되어 죄의 짐에 짓눌린 사람입니다.

죄는 내가 내 마음대로 죄를 짓지만 한 번 죄를 지으면 내 마음대로 벗어버릴 수 없을만큼 무겁습니다.


눈먼 자는 심판의 때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탄(聖誕) : 성스러울 성(聖), 태어날 탄(誕)

쉽게 설명하면 거룩하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태어나야 할 시기를 세 가지 절기로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아기 예수께서 2천 년전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면 성탄의 참된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2천 년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께서 성탄의 의미를 완성하시려고 그 다음의 성탄을 이루셨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제1, 제2, 제3의 성탄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제1의 성탄


제1의 성탄은 "성육신(成肉身)"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 날을 성탄절(聖誕節) 또는 크리스마스(Chfist + Mas)라고 합니다.

영어로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이란 영이 육으로 내려오신 사건을 말합니다.

성육신 사건은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일어났습니다.


둘째는 제2의 성탄


제2의 성탄은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죽으신 사건을 말합니다.

이날을 성 금요일 또는 굿 프라이데이(Good Friday)라고 합니다.

영어로 Crucifixion이라고 합니다.

성 금요일은 육이 죽는 사건을 말합니다(死亡).

성 금요일 사건은 갈보리 언덕에서 일어났습니다.


셋째는 제3의 성탄


제3의 성탄은 "부활(復活)"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 날을 부활절(復活節)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Easter 또는 Resurrection이라고 합니다.

부활의 사건은 육이 영으로 완전하게 회복되는 사건을 말합니다.

부활의 사건은 빈 무덤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제1의 성탄과 제2의 성탄 그리고 제3의 성탄 과정을 거쳐 비로서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마무리 할 수 있는 은혜가 오직 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할 때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19절을 읽어봅니다.

"주께서 은혜 베푸실 때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은혜 베푸실 때는 희년(禧年)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회복되는 해를 말합니다.


(도입 이야기)

팬데믹 시대에 성탄을 맞이하는 분위기를 풍자하는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20년 12월 25일에 산타 할아버지가 도착했지만 14일 동안 격리해야 하므로 산타 할아버지는 2021년 1월 9일에 등장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의견을 말합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지혜롭기 때문에 격리 기간을 미리 알고 서둘러서 12월 9일에 출발하셨기 때문에 12월 25일에 등장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지역을 여행하거나 방문 할 때 14일 동안 격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칙을 풍자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와 소통이 잘 된다면 정해진 날자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타 할아버지와 소통이 잘 안된다면 정해진 날자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 주제를 소통이라고 정했습니다.


성탄이란 하늘과 땅의 소통이 이루어진 날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란서의 철학자 파스칼(Blaise Pascal. 1623. 6. 19~1662. 8. 19)은 인간을 "중간적 존재" 라고 정의했습니다.


첫째는 시간적 의미


인간은 과거에 붙잡혀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에 머물며 살아가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중간적 존재라고 합니다.


둘째는 형태적 의미


인간은 하나님도 아니고 천사도 사탄도 아닌 다르게 표현한다면 영적인 형태가 아니라 육체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 육체적 존재이므로 중간적 존재라고 합니다.


셋째는 공간적 의미


인간은 하늘 위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고기처럼 바다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땅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중간적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이 중간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내려 보내지 않았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 수도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이와 같은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느 산골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공중을 날던 참새들이 먹이를 찾아 눈 덮인 땅을 빙빙 돌고 있습니다.

마침 그 광경은 농부가 보고는 참새들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해서 저렇게 공중을 돌고 있구나!

내가 먹을 것을 주어야지 하고는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땅 위에 참새들이 먹을 수 있는 곡식들을 흩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참새들을 향해 손짓하며 소리칩니다.

"참새야! 이리로 내려와서 여기 있는 곡식을 쪼아 먹어라!"

그런데 참새들은 여전히 공중을 빙빙 돌며 먹이를 찾아 다닙니다.

왜 참새들이 농부가 눈을 쓸어버리고 곡식을 뿌려놓은 것은 먹지 못할까요?

참새와 농부의 존재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합니다.

인간은 육체로 존재합니다.

영적 존재가 영적인 방법을 아무리 설명하지만 육체로 존재하는 인간은 모두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곧 영적인 하나님이 육체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성탄이라고 합니다.

성탄은 곧 영적인 하나님과 육체적인 인간이 소통하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탄은 소통의 은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소통의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까?


인크루레(InCruRe)

성육신(Incarnation) : 영이 육신이 되었으므로 육신으로 영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하늘에서 땅으로)

십자가(Crucifixion) : 육신이 죽어야만 하는 것(땅 위에서 땅 아래로) 

부활(Resurrection) : 육이 온전한 영으로 회복하는 것(땅에서 하늘로)



첫째는 사랑의 소통


어른들이 철 없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이 다음에 네 자식 낳아 길어보면 그때 내 심정을 알 것이다!"

육체로 살아가는 어른들과 아이들도 서로 소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제야 철이 들었구나!" 하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서로 소통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갖고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하늘의 아버지께서 땅의 자녀들에게 베푸는 사랑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너무 막막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직접 보여주시려고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게 하셨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30년 동안 세상에서 모두가 겪는 과정을 다 겪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30년 후에 비로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이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이서 가르침을 받았고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도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제자들은 모두 그 자리를 피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고통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다이바 부인(Lady Godiva, 990년경 - 1067. 9. 10)


고대 머시아 왕국(현재 코번트리)의 백작 부인.

전설에 의하면 레프릭 영주의 무리한 세금 징수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의 부인 고다이바는 남편에게 백서들에게 부과한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레프릭 영주는 부인에게 "당신이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생각해 보겠다"고 합니다.

남편의 말을 듣고 고심하던 고다이바 부인은 남편의 제안을 받아드리기로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부과한 세금을 감면해 주려고 영주의 부인으로 몸소 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


잠언 17:9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니라.


사랑은 내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사랑으로 시작하지만 사랑을 확인한 후에는 양방적인 사랑으로 발전해야 믿음이 형성됩니다.



사랑의 소통이 실현된 후에는 반드시 믿음의 소통이 따라와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소통


믿음이란 서로 신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맡기지 못한다면 같은 공간에 머물지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활동하셨던 채필근목사님이 어느 날 지방의 여러 교회들을 돌보기 위해 마침 어느 여관에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방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에 여러 사람이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채필근목사님이 머물게 된 그 방에 나중에 낯선 사람이 또 들어와서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목사님은 당시 지방의 여러 교회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교회를 지원한 돈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밤중에 곁에 있는 사람이 부스럭하고 움직이면 목사님은 헛기침을 하며 나도 깨어있소 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밤새도록 부스럭 거리면 헛기침을 하였는데 날이 밝고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여관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같은 밥상에 앉았는데 채목사님이 식사기도를 하는데 마침 함께 머물렀던 그 사람도 기도를 합니다. 서로 기도를 마친 후에 누구십니까? 하고 서로 통성명을 하는데 나는 채필근목사외다! 아 그러시군요 나는 아무게 영수라고 합니다.


그때 채필근목사님께서 깨달은 것은 목사와 영수가 같은 방에 머물면서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부시럭 거리면 헛기침을 하는구나! 밤이 늦었더라도 서로 통성명을 먼저했으면 평안한 밤을 보냈을텐데 하며 믿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화근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 아들을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보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라고 비난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 받아드릴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믿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모든 것이 이해되겠지만 문을 열지 않으면 여전히 어둠 가운데서 서로 부스럭 거리며 헛기침만 계속할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

문이 없는데 어떻게 문을 열어야 할까요?


1. 듣는 단계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 먼저 들어야 합니다.

2. 이해하는 단계

들은 것이 있으면 들은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들어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3. 아는 단계

듣고 이해했다면 그 다음에는 알아야 합니다.

영어라는 것을 모두 듣습니다.

어떤 것은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4. 믿는 단계

아는 것은 행동하므로 정확하게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행하므로 믿음은 더욱 크게 확산되고 증가될 것입니다.

 


믿음을 위하여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빛을 들고 서 있는 예수님이란 그림을 소개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셋째는 소망의 소통



소망이란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로마서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어떻게 제1의 성탄을 제2와 제3의 성탄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까?


누가복음 4:18a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사야 61:1a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팬데믹 시대에 맞이하는 2020년 성탄은 우리들에게 제1의 성탄을 제2의 성탄으로 그리고 제3의 성탄으로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일의 열매를 얻기 위하여 주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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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성찬식

온라인 성찬식

2021년 온라인 성찬예식 준비

1. 각 가정에 성찬용 컵(플라스틱 제조)을 발송한다.
2. 웰치 포도쥬스를 각 가정 또는 개별적으로 구입하도록 한다.
3. 성찬식 용 빵을 각 가정 또는 개별적으로 구입하도록 한다.
4. 예배 때에 인도자의 집례에 따라 가정에서 또는 개인별로 함께 참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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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Table) / 하나님의 뜻 이해하기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시작하고, 반복적이며 단순하지만 우리의 평상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예배의 4중 구조의 ‘만남’과 ‘말씀’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경배하며 찬양으로 영광 돌리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일상의 삶은 순탄하지 않으며, 어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 불명확한 삶이다.

평온했던 일상의 삶을 깨뜨리는 슬픔과 고통, 어려움은 우리 예배자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4중 구조의 예배 형태에서 ‘만남’과 ‘말씀’ 이후에 ‘성찬’이 이어진다.
성찬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 생명과 호흡이 있어 예배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하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의미를 더 강하고 깊게 한다.
포도주와 빵을 함께 나누는 성찬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은혜를 상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붉은색의 포도주를 마시며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생각하고, 생명의 양식인 빵을 뗄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 예배 공동체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서의 성찬은 어떤 의미인가? 

첫째,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시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평상의 삶에서 자칫 잊고 있었던 의미들을 되살리는 시간이다.
사람의 속성은 평안할 때에는 감사하기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나의 생각과 뜻대로 흘러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는 더욱 어렵다.
또한 우리가 슬픈 일을 당하거나 힘든 일로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언제나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고 싶어 하시는 선한 목자시다.
우리의 일상이 평탄치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 원하신다.

“나, 너와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온전한 예배자로 하나님께 민감한 영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저 무덤덤한 일상으로 휩쓸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새로운 변화는 더 깊은 교제로 들어가는 관문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미건조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를 서로 다른 모양으로 창조하시고 빚으셨다는 의미는 우리 모두를 각 달란트대로 늘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고자할 때 우리에게 보내시는 사인(sign)이다.

하나님은 그의 예배자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하나님은 본래 좋으신 분이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시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잘못되기를 전혀 원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일상의 삶이 어그러지거나 힘든 길로 들어설 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이와 같은 신뢰의 관계는 예배의 기초가 된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든 자들의 기본자세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라 선언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왜 예배자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믿음 위에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믿고, 더 나아가 어려움과 핍박, 고통, 슬픔까지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인정해야하는 것이다.

하루 일상에서의 성찬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일들이다.
평상적이지 않은, 실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일들이 있다.
갑자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프다든지, 예기치 않던 자동차 사고가 난다든지, 심지어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보다 보이지 않는 내적인 일들도 많이 있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일어나거나, 가족 간의 불화가 있거나, 여러 관계 속에서 오는 마음의 고통들은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사인들은 우리가 좀 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바라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우선적으로 기억해야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이 우리를 예배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축복의 간섭임을 인정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자.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겪었던, 당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되어 열매로 맺혔음을 증거 한다.
요셉은 원인이 없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승리하여 가족을 구하고 민족을 세웠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애굽으로 팔렸을 때의 요셉의 상황은 마치 하나님이 버리신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원대한 큰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감사한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의 고난이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서 어떤 열매를 맺혔는지도 이와 마찬가지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2)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들의 미시적인 눈으로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선한 분이심을 믿는 예배자들에게는 결국 축복의 계획임을 알게 된다.

또한 바울의 고백은 그가 참된 예배자였음을 증거하고 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이 얼마나 가슴 벅찬 고백인가! 이 같은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고난이 축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의 창으로만 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교제하면서, 굳건한 믿음의 관계가 된다면 우리에게 당면한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섭리임을 인정하게 되고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하는 축복의 길이다.
주님의 피와 살과 함께하는 ‘성찬’의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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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을 이해할 때, 우리는 성찬의 몇 가지 학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천주교의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

화체설은 성찬을 시행하는 가운데 신부의 축사를 통해서 빵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님이 살과 피로 변한다는 미신적(迷信的) 주장이다.

둘째, 공재설(共在說, coexistentialism)

공재설은 마틴 루터가 주장한 것이다.
공재설은 떡과 포도주는 있는 그대로 남아 있으나,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의 안에, 밑에, 함께(in, under, along with)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있다는 주장이다1).

공재설의 핵심은 성찬의 신비를 지켜내고 가톨릭의 미신을 제거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로마 가톨릭의 미신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의 차이가 있다면 천주교는 집례 하는 사람(신부)의 영적상태나 받는 사람(신자)의 신앙에 관계없이 성례전 집례와 동시에 은혜가 기계적으로 주입된다고 주장한다면, 루터는 받는 사람의 신앙(믿음)이 필수라 할 수 있다2).

셋째, 기념설(記念設, memorialism)

기념설은 쯔빙글리가 주장한 것이다.
기념설은 가톨릭의 미신에 대해 극단적 반대로 간 나머지 성찬의 신비까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 주장이다.
때문에 기념설 성찬에는 어떤 신비도 없다.
단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감상적으로 기념하는 정도로 끝난다.
애석하게도 상당수의 장로교가 칼빈이 아닌 쯔빙글리의 기념설을 따르고 있다.

넷째, 영적 임재설(영적 임재설, spiritual existing)

개혁파 교회가 주장하는 ‘영적 임재설’이다.
영적 임재설은 성찬의 신비를 결코 상실시키지 않으면서 가톨릭의 미신을 정확하게 극복한 교리다.
그러므로 칼빈은 영적 임재설을 설명하면서 두 가지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다음과 같이 경계했다.

“첫째로 표징에 대해서 주의를 게을리 하는 나머지 표징이 나타내는 신비를 표징과 완전히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둘째로 표징 자체를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나머지 그 속에 담긴 신비를 조금이라도 흐리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3).”

이처럼 성경적인 성찬은 신비는 살리고 미신은 철저히 제거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러면 신자가 성찬에 참여할 때, 어떻게 그리스도의 임재라는 신비를 경험하면서 미신에 빠지지 않으면서 믿음에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는 영적 임재설이 가르치는 바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영적 임재설은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념하거나 묵상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엔 성찬의 신비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단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에 대한 감사와 애통이 주를 이룬다. 예수님께서 재정하신 성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성도의 영적 양식으로 삼도록 하는 신비한 예식이다. 칼빈은 성찬의 이러한 사실을 아주 잘 지적해준다.

“요컨대, 떡과 포도주가 육체의 생명을 지탱시키고 유지시켜 주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우리의 영혼에게 양식이 된다는 것이다4).”

이 고백과 직결된 성경구절이 바로 신명기 8:3의 말씀이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의 이 말씀을 성찬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사건이 바로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기적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자신이 광야에서 만나를 베풀었던 모세와 같은 메시아라고 스스로를 입증하셨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6:51)고 선언하신다. 광야의 만나는 그림자에 불과하며 실체는 예수님 자신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고 선언하시면서 성찬의 의미를 명확하게 가르치셨다.

이 말씀은 구속의 은총을 받은 성도라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을 양식으로 삼아야 하며, 결코 애굽의 양식(옛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구약의 성례로서 생명나무의 실과와 선악을 아는 실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여기서 영적 임재가 강조된다. 성도는 손으로 떡과 포도주를 잡는 것을 통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을 묵상한다5). 믿음으로(성령의 은총을 힘입어) 빵을 입에 넣고 씹으며 삼키면서 양식을 먹으면 그 양식이 살과 피가 되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소화 할 때, 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연합됨(신비적 결합)을 경험하게 된다. 성령께서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에게 임재 하여(빵과 잔에 임재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살에 연합시킴으로 믿음을 견고케 한다.

두 번째로 성찬이 말씀과 기도처럼 은혜의 방편으로 여겨지려면, 성찬이 보이는 말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6).

성경이 읽는 말씀, 혹은 듣는 말씀이라고 한다면, 성찬은 보이는 말씀이다. 보이는 말씀이란 글이나 음성으로 성도들에게 인식하도록 하는 성경과 다르다. 눈으로 봄으로써 복음을 인식하게 한다는 말이다. 성찬은 오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살과 피가 되는지 깨닫게 한다. 빵을 냄새 맡고, 입으로 맛있게 씹어 먹으며, 그 후에 삼켜 소화를 시켜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주린 영혼에게 구미를 당기게 하는 향기를 내며 먹음으로 즐겁게 소화를 하여 살과 피가 된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만 하고 먹지 않으면 소용없음을 깨닫게 한다. 칼빈의 주장을 들어보자.

“떡이 보는 것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먹어야만 몸에 영양이 공급되는 것처럼, 영혼도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깊이 참여하져야만 비로소 그의 능력으로 살리심을 얻게 되는 것이다7)”

개혁파 교회는 성찬을 집례 할 때마다 설교를 통해서 성찬의 이러한 신비한 유익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찬의 유익이 보이는 말씀이 되어 성도들에게 말씀처럼 유익이 되고 궁극적으로 말씀에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퍼킨스의 주장처럼 “성찬의 결과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8).

세 번째로 성찬이 말씀과 기도처럼 은혜의 방편으로 여겨지려면 성찬을 통해서 성도가 한 몸이라는 점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과 한 피에 같이 참여한다는 점을 가르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성찬을 하실 때, 하나의 빵을 찢어서 나누신 것은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함, 혹은 연합됨을 가르친다. 이 가르침은 사도신경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심을 믿사오며”라는 고백과 관련을 맺는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할 때, 성도들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임을 고백하며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심리적 하나 됨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도들은 반드시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이렇게 강력한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는 성령의 하나 됨을 경험함으로써 인간이 스스로 고안해 낸 종교적 프로그램보다 탁월한 교회의 일치를 일구어 낸다.

칼빈은 성찬에 대하여 말하기를 “성찬의 약속들이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것은 그저 겉모양과 단순한 지식에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을 진정으로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라 했다9). 성찬은 은혜가 성도에게 주어지도록 주님께서 만들어주신 은혜의 방편이다. 성찬의 은혜가 주어지는 방식은 퍼킨스의 말처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매번 성찬에 참여하면서도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열매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성찬의 효력이 나타났다고 할 수 없다.

오웬의 주장 /

“우리가 [성찬] 규례에 가치를 별로 부여하지 않고 성찬을 통해 그리 유익을 얻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성찬에서 그리스도와 갖는 특별한 교제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잇기 때문이다10).”

미주

1) 루이스 뻘콥,공영민 역,「뻘콥 조직신학 제6권 교회론」,(기독교문사,1981),p.199.
2) 이형기,「종교개혁신학사상」,(장로회신학대학교,1997),pp.112-113.
3) 기독교 강요 Ⅳ.17.5.
4) 기독교강요,Ⅳ.17.10.
5) 조엘비키, 마크 존스,「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부흥과 개혁사,2015),p.854.
6) 칼빈은 기독교 강요Ⅳ.17.11에서 성찬은 “물질적인 표징들로서 우리의 연약한 능력에 맞도록 우리의 눈앞에 제시됨으로써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7) 기독교강요,Ⅳ.17.5.
8) 조엘비키, 마크존스,op.cit.,p.851.
9) 기독교강요,Ⅳ.17.11.
10) 조엘비키, 마크존스,op.cit.,p.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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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칼빈, 쯔빙글리의 성찬에 대한 견해와 신학 사상

 
1, 개혁가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구 분
 
 
 
           루 터
 
    Martin Luther
 
 
 
               칼 빈
 
        John Calvin
 
 
 
        쯔 빙 글 리
 
     Ulrich Zwingli
 
 
           국적
 
 
  
  독일(Germany)
 
  프랑스(France)
 
  스위스(Switzerland)
 
     신학의 중심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의 절대적 중심
 
  하나님 의지 중심
 
     신학의 출발
 
  이 신 득 의
  
  만인제사장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
 
  예정 사상
 
  이 신 득 의
 
 
        성 찬 론
 
 
  공 재 설
 
  영적 임재설
 
  기 념 설
 
 
    국가와의 관계
 
 
  교회는 국가에 복종
 
  국가와 교회의 분리
  민주 헌법, 교권 배격
 
      교회의 정치
 
.
  장로 정치
.
 
 
 
2, 개혁자들이 나누어진 배경 
 
성찬에 대한 이견
 
1529년 말브르그에서 루터와 쯔빙글리가 프로테스탄트의 연합을 위해 서로 만났으나 성찬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좁히지 못하였습니다. 이 성만찬 논쟁으로 루터파, 칼빈파, 쯔빙글리파로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1) 루터파 지역 : 독일과 동북 유럽
2) 칼빈파 지역 : 제네바 중심 불어를 사용하는 프랑스,스코틀랜드,네덜란드
3) 쯔빙글리파 지역 : 쮜리히 중심으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와 남부 독일
 
16세기 당시의 개혁자들이 개혁파, 루터파로 갈린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개혁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있었다라고 교회사가들은 일반적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개혁주의 교회사가들은 그 당시의 개혁주의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넓은 의미의 개혁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좁의 의미의 개혁주의입니다. 넓은 의미로 말할 때는 로마교에 반대하는 모든 개혁가들을 포함시킵니다. 하지만 좁은 의미로 말할 때는 루터파를 개혁하기 위한 개혁파를 개혁주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루터는 교회 개혁에 대한 그다지 큰 열망은 없었다라는 것이 현재의 교회사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것은 루터의 '아디아포라'와 '디아포라'에 대한 견해에서 잘 나타납니다. 루터는 '디아포라' 곧 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성경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디아포라' 즉 비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성경이 금하지 않는한 교회 안에서 해도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당시 로마교 안에서 행해지던 많은 예배 의식들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하지만 칼빈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혁파들은 루터의 이러한 태도에 강하게 반대하여 로마교의 모든 잔재들을 개혁된 교회 안에서 없애기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다합니다. 이것은 칼빈의 '아디아포라'에 대한 견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성경이 명하지 않는 것은 교회 안에서 그 어떠한 것이든지 행 할 수 없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었습니다. 이것은 루터파와 개혁파의 성경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개혁주의는 오직 성경에 의거하여 성경만이 우리 신앙과 삶에 있어서 유일한 표준이며 기준(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1장1절)인 것을 고백하며 오직 성경에 따라서 살 것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설교자 곧 목회자는 성경에 없는 그 무엇도 성도의 예배와 삶에서 강요하지 말 것을 가르쳤으며, 만일 이것을 어긴다면 그 목회자는 하나님이 죽으심으로 주신 성도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한 죄를 범하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차이는 성찬관입니다
 
 
3, 공재설, 영적 임재설, 기념설
 
1) 공재설(共在說, consubstantiation)
로마 천주교의 화체설은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실제적으로 변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루터의 공재설은 그것들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고 대신 그리스도가 그 요소들의 "안에, 함께, 아래에, 몸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한다.
 
2) 영적 임재설(靈的 臨在說, spiritual presence)
칼빈의 견해로 성만찬의 현장에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임재 한다는 해석이다. 그에 의하면 성례전은 "눈에 보이는 징표로서 우리에게 영적인 모든 일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외부적 증명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여러 약속을 우리 마음에 한층 더 강하게 각인하여 우리가 그 약속을 보다 더 확실하게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장로교회는 영적 임재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말은 영적 임재설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천에 있어서는 거의 기념설로 이해한다.

그 결과 성찬에 대해서 너무나 피상적인 이해가 교회 안에 보편화 되어 있다. 예수님의 참된 몸을 먹는다는 성찬의 본질은 사라지고,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죄와 그분의 은혜를 자각하게 하는 도덕적, 영적 적용이 주가 되어버린다.

이런 잘못된 견해들에 대항하여 개혁신학은 성찬을 영적 임재설로 올바르게 설명하였다.
본인이 항상 강조하듯이 영적 임재설이란 단어 자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먼저 살펴 보자.
일단 ” 영적으로 임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떡에 정확히 무엇이 임하는 지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없다.
대부분, “예수님의 영혼이 임한다”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성찬에 임재하신다”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
“영으로 임하신다” 정도로 희미하게 이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영적 임재설을 실재적 임재설 (real presence)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실재적인 몸은 성찬과 별 관계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어떤 개혁신학자나 심지어 기본적인 신학교재도 이런식으로 설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견해가 성도들, 심지어 목사들에게도 보편화 되어 있다는 사실은, 영적임재설이 얼마나 잘못 이해되고 있는 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영적 임재설에 대한 이러한 희미한 이해는 성찬에 대한 희미한 이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영적 임재설의 정확한 뜻은 “예수님의 몸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실재로(realis:  원래 이 단어는 res (thing)에서 유래하였다) 혹은 참으로 (vere) 떡에 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임재설은 전달 내용에 있어서는 실재적이고, 전달 방식에 있어서는 영적이다.
따라서 영적/실재적 임재설이 보다 정확한 개념이다.

임재설에 관한한 논쟁의 핵심은 무엇이 전달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전달되는가이다. 
쯔빙글리나 현대의 복음주의자를 빼고, 떡에 임하는 것이 예수님의 실재적인 참 몸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교파는 없다.
어떻게 보면 아주 사변적인 논쟁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은덕에 참여하는가에 대한 매우 실천적인 논쟁이다.

개혁신학이 이것을 영적 임재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임재가 성령님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은 성령을 말한다.
또 이 사역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기 때문에 영적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성령의 역사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성령은 예수님의 몸에 역사하셔서 우리의 영혼이 먹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다른 한 편으로,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셔서 예수님의 몸을 먹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이 점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결하는 고리이다.

따라서 우리가 떡을 먹을 때, 우리의 몸은 입을 통하여 정말로 떡을 먹듯이, 우리의 영혼은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참 몸을 정말로 먹는다. 그래서 믿음을 영혼의 입이라고도 한다.
성경은 “예수님의 몸은 영혼의 양식”이라고 분명히 가르친다. 
다시 한번 분명히 강조하지만, 우리의 영혼이 먹는 것은 예수님의 영혼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의 “몸”은 예수님의 육체, 즉 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카톨릭이나  루터교와 명백히 다르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의 육체가 그대로인 채 자신의 몸을 영혼의 양식으로 만들어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나누어 주실 수 있다.
마치5병 2어로 5000명을 먹이신 것처럼.  

칼빈은 이렇게 비유하였다.
태양은 지구상에 그 자체로 임하지 않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을 지상에 있는 생명체에게 전달한다. 
즉 지상의 생물들은 태양 자체를 먹는 것은 아니지만, 태양이 주는 빛을 먹는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영혼은 예수님의 몸 자체를 먹지는 않지만, 그 몸이 전달하는  영혼에 필요한 양식을 먹는다.  
즉, 우리의 영혼이 실재로 주님의 몸을 먹는다. 
성찬은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채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찬은 우리 영혼을 위한 식사시간이다.
우리의 몸은 땅에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늘에 올라(Sursum Corda)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는,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성찬식을 행할 때, 주님의 몸이 이 땅에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 그리스도 몸 앞에 임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성찬을 통하여 우리의 피폐한 영혼이 소생함을 얻는다.
성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된다면, 일년에 겨우 2-3차례 실시되는 성찬식과 장례식 비슷한 분위기의 성찬식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많이 벗어낫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성찬식을 주로 행하였다는 사실은 이 점에서 매우 의미 심장하다.

 
3) 기념설(記念說, memorialism)
성만찬을 단순한 하나의 기념으로 해석하는 쯔빙글리의 견해로 개혁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쯔빙글리는 고린도전서 11장을 근거로 성만찬에 대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그 이상의 뜻이 없다라고 말한다. 즉 성만찬은 죄의 대속물로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이다.
 
 
 루터의 성찬론

루터의 성만찬교리는 대략 세 시기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첫 시기는 1519년 '성찬에 관하여'를 썼을 때까지이며, 둘째 시기는 1520년부터 1529년까지, 곧 교회개혁의 3대 작품 중의 하나이자 성만찬에 관한 견해를 보여주는 '교회의 바벨론 감금'을 썼을 때부터 마부르그 논쟁 때까지이며, 세 번째 시기는 마부르그 논쟁 이후 루터 자신의 신학형성과 더불어 구체화된 시기이다.

   루터는 1519년 한편의 시편강해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원형"이란 개념으로 성찬의 상징적 의미를 가르친 바 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의 몸된 성례전과 형제의 사귐에 관한 설교"(Ein Sermon von der hochw, Sacrament des Leichnams Christi und von den Bruderschaften, 1519)에서는 성찬을 화체설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즉 루터는 "그의 참된 자연적 살이 떡 속에 있다. 왜냐하면 떡이 그의 참된 자연적 몸으로 변하고, 포도주가 그의 참된 자연적 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또 "떡이 어떻게 남아 있으며 그것이 어느 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 루터는 화체(化體)의 '불가사의함'을 말한바 있다.

   그런데 다음 해(1520)에 쓴 '교회의 바벨론 감금'에서는 화체설적 견해를 포기하였다. 왜냐하면 화체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영향 받은 토마스주의의 그릇된 개념으로 보았고, 화체설은 토마스주의로 복귀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떡의 실체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동시에 전달된다는 사상, 곧 공재설(共在設, consubstantiation)을 주장하게 되었다. 즉 떡과 포도주는 물질이며 상대적 요소이지만 떡과 포도주 안에(in) 아래(under), 그리고 떡과 포도주와 더불어(with) 그리스도 예수의 참된 살과 피가 임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떡과 포도주와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신비스런 관계를 '가열한 철'(ferrumignitum)이란 비유로 설명했다. 철과 열은 별개의 것이지만 일치가 되면 특수한 조재가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1522년에 이르러 루터는 네델란드 출신의 내과 의사였으며 인문주의자였던 코넬리우스 호니우스(Cornelius Honius)로부터 서신을 받았는데 그는 성만찬 제정의 말씀 곧 "이것은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의 est는 significat라는 단어와 동등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듣게 된다. 그러나 루터는 호니우스에게 답하기를 상징적 해석방법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 바는 아니나, 성경에 분명히 "이것은 나의 몸이라"하고 아무런 수사법도 없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이 '이다'(est)라고 말씀할 때 그 문자적 의미를 감히 '상징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진실로 성찬 속에 함께 하시며, 이러한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는 그의 무소부재성에 근거한다. 그래서 1529년까지의 루터의 성찬교리는 공재설과 그의 기독론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설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쯔빙글리의 성찬론

루터가 수도원에서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찾고 있을 때인 1506년 말에 쯔빙글리는 글라우스(Glarus)에서 신부가 되었다. 루터가 자신의 종교적 갈망과 당시의 종교적 상황에서 개혁자로서의 길을 갔지만 쯔빙글리는 원전들로 돌아가고자 하는 에라스무스적 권고와 당대의 인본주의적 경향에서 출방하였다. 그래서 쯔빙글리는 에라스무스 외에도 왈프린(H. Walflin), 비텐바하 등과 같은 인본주의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성만찬에 관한 쯔빙글리의 견해를 찾을 수 있는 최초의 문헌은 1523년에 쓴 그의 서신이다. 그는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 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그는 화체설은 성경적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도 없었고 가톨릭의 창작이라 하여 거부하였다. 쯔빙글리는 '이것은 나의 몸이다'의 est라는 말은 윤리적-비유적(typolgisch)인 것으로 이해하였고 성찬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 요한복음 6장 63절의 "육은 무익하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어거스틴과 초기 스콜라주의자들처럼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의 존재를 지역적인 것으로 생각함으로써,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를 배격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성만찬 제정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였다. 즉 쯔빙글리는 성만찬은 이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이미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고 확인하는 증거로서 의미가 있을 분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나누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주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쯔빙글리가 이처럼 성찬을 단순히 기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코넬리우스 호니우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호니우스는 1523년 헤이그에서 쯔빙글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것은 나의 몸이다'는 하나의 수사법 혹은 문학적 표현 양식이므로, 이 구절은 '이것은 나의 몸을 상징한다.'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호니우스는 '우리는 입으로 받아들이는 빵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쯔빙글리는 호니우스의 해석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이 해석을 가리켜 어려운 난제를 명백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준 '값진 진주'라고 극찬하였다.
 

칼빈의 성찬론
 
칼빈은 “불가시적 은총의 가시적 형태”라고 규정한 어거스틴의 성례전 정의를 인정하지만 그보다도 “성례전이란 외적 표징에 의해 확증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증거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입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은유들을 사용하여 그는 말씀과 성례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명확히 표출하였다. 이 관계에 의하면, 성례전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하는 인(印)이며,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교환되는 서약이며, 우리의 제자됨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징표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믿음이고 성령께서 공급하는 불가시적 은총이 없으면 공허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세례를 다룸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것은 유아세례를 옹호하는 점이다. 유아세례와 관련하여 구약성서의 합법적인 입회 성례전으로서의 할례의 역할이 특별히 강조된다. 이 외에도 칼빈은 가장 타당성 있는 신약성서의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께서 어린 아이들을 불러 팔에 안으시고 “천국은 이와 같은 자의 것”(마19:13-14)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신도의 자녀들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곧 “죄”다.
 
세례가 구원의 경륜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은 구원의식이 아니다. 그는 쯔빙글리처럼 유아기에 죽은 유아들은 모두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세례받지 않은 자를 그 때문에 정죄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음을 지적한다. 전통적 견해인 세례 중생론을 폐기시키면서, 칼빈은 어린 아이가 자신을 교회가 용납하고 교회에 입회할 것의 의미를 점차 배우고 교회의 보호와 가르침에 영향을 받을 때 은밀한 영향력이 그 아이의 마음 안에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아들은 세례를 받고 미래의 회개와 믿음을 성취한다.
 
‘주의 만찬’을 논하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지만, 루터파에서 발전된 그리스도의 부활성체 편재설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례전용 빵과 포도주를 통해 현재화된다는 것은 거부한다. 다른 구절들에서 유추하여 “이는 내 몸”이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일종의 환유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로 들리워 가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다. 그러므로 그 몸은 현재까지도 하늘에 계시고 빵과 포도주에 갇힐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성례전에 참예하는 자는 영적으로 하늘로 들리워 올라가 그 몸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과 피에 영적으로 참여한다는 이 교의는 칼빈주의 교회의 특징이다. “나는 그 신비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경험 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Communion)은 성령의 은밀한 역사를 통해 가능해진다. 교회의 공동체적 삶에서 이 성례전이 중요함을 평가하는데 칼빈을 능가하는 사람이 아직 없다. 그는 성례전이 자주 행해져야 한다고 역설하며 경건한 참예자의 종교적 경험을 열렬하게 묘사하고, 성례전에 참예함으로써 생겨나는 “사랑의 띠”를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무라는 의미와 아울러 강조한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의 신앙
 
1)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아이스레벤에서 출생한 루터는 사제품을 받고 비텐베르크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는 중 ‘탑의 체험’을 하고 은총의 중재가 신앙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게 된다. 그의 종교개혁의 불씨는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문에 게시된 대사에 대한 '95개항'으로,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루터를 교황청에 이단자로 고발하였다.
 
교황은 루터를 지지하던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요청을 받아들여 1518년 10월 아욱스부르크의 제국의회에서 심문을 받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루터는 자신의 명제철회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1520년 레오 10세는 Exsurge Domine 교서를 통해 루터의 모든 저서를 불태우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그해 12월 10일 교회법률서와 파문위협의 교황칙서를 소각함으로써 교회와의 단절을 공식화하였다.
 
한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알 5세는 보름스 제국의회(1512)에서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국가적 법익을 박탈하고 추방령을 내리는 ‘보름스 칙령’을 공포하였고, 반면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루터를 바르트부르그성으로 데려가 보호하였다. 루터가 바르트부르그에 은거해 있는 동안 독일은 제국의 기사들의 항거(1522)와 지방 영주들에 대한 농민의 봉기로 개혁의 요구가 강하게 일게 되지만 루터는 과격한 지도자들을 비난하면서 독자적인 중도적 개혁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농민들의 요구에 대한 루터의 소극적인 태도와 농민들에 대한 탄압에의 권고는 많은 지지세력을 상실하였고, 상당수의 지지자들이 재세례파로 떨어져 나가게 되었으며, 농민들의 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루터와 지방 영주들과의 동맹은 결국 프로테스탄트적 영방교회를 형성하게 된다.
 
한편 가톨릭을 지지하는 제후들은 1524년 ‘라티스본 동맹’을 맺고 루터파의 확산을 저지하려 하였고, 또 루터파를 지지하는 제후들은 1526년 6월 ‘토르가우 동맹’을 맺어 루터파를 보호하고 있었다.그래서 1526년 제1차 슈파이어 제국의회는 ‘그 지역의 종교는 그 지역 통치자의 종교로’하는 지역별 종교선택의 자유의 원칙이 잠정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1529년 터어키의 공격에 대비하고 신교운동의 확산방지를 위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가 개최되었고 제국의회에서는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한 보름스 칙령을 재확인하고 제1차 슈파이어 제국의회의 결정사항을 번복하면서 ‘로마 가톨릭 신앙만이 유일한 합법적 신앙이기에 모든 이는 가톨릭 신앙에 남아야 한다’고 결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때에는 정치적 상황이 제1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때와는 달리 불화 관계에 있던 황제와 교황은 화해를 하였고, 황제와 프랑소와 1세도 평화조약을 체결한 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에 대하여 5명의 제후들과 14개 도시의 대표들이 루터를 지지하면서 제국의회의 결정에 항의하였고 슈말칼덴 동맹을 체결하게 되고 카알 5세는 슈말칼덴 동맹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하여 1547년 4월 엘베 강변의 뮐베르크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프로테스탄트의 헤센의 필립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를 사로잡게 되어 공의회를 개최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나 교황 바오로 3세와 황제 카알 5세와의 불화는 갖기로 한 공의회 개최를 어렵게 하였으며, 결국 황제는 종교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생각으로 1547년 아욱스부르크 ‘무장 제국의회’에서 자신의 해결 방안을 지시하였는데 1548년 ‘아욱스부르크 잠정 규정’을 잠정적으로 통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영주들의 혁명’이 일어나 황제는 동생 페르난디에게 종교문제를 맡기도 물러났다.
 
그리고 페르디난디는 혁명세력과 1552년 파싸우 휴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측 종파들에게 상호 간의 관용을 보증하였다. 그리고 1555년 9월 아욱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종교협정이 체결되었다. ‘그 땅이 속한 자에게 종교도 속한다’는 지역별 종교선택의 자유의 원칙이 최종 결정되었다. 이로써 독일에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동등권이 인정되었으며, 백성들은 영주의 종교를 따르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였다. 한편 루터는 1546년 2월 18일 개혁운동을 멜랑히톤에게 맡기고 죽었다.
 
 
2)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루터와 쯔빙글리와 더불어 종교개혁의 3대 인물로 불려진다. 루터나 쯔빙글리보다는 한 세대 후배이지만 제네바를 중심으로 전개한 그의 개혁운동은 전 유럽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루터가 프로테스탄트의 길을 개척했다면 칼빈은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을 집대성하였다.
 
칼빈은 1528년 오르레앙 대학에 입학하여 인문주의를 배웠다. 특히 성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했던 인문주의자 올리베탄(1506-1538)에게서 성서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1533년 파리로 돌아온 칼빈은 친구 니콜라스 콥이 파리대학 학장으로 취임하는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이 연설문은 소르본 대학과 그 신학자들을 비판하였고,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교회개혁운동에 동조하였으며, 복음주의적 신앙을 강하게 표현하였다.
 
그로 인해 칼빈과 콥은 파리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마련해 준 성직록을 거부하고 가톨릭 교회와의 결별을 표하고 슈트라스부르그를 거쳐 바젤로 도피하여 프로테스탄트 최고의 신학적 저서인 ‘기독교강요’를 발간(1536)한다. 그런후 종교적 관용정책을 쓰던 슈트라스부르그로 갈 생각으로 제네바에 도착한다. 거기에서 빌헬름 파렐의 제네바의 개혁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고 개혁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1536년 10월 로잔에서 가톨릭측과의 신학토론을 벌이고 1537년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조례’를 시의회에 제시하여 채택된다. 그래서 제네바 시의회는 모든 주민이 ‘신앙고백서’에 대하여 서약하도록 하였으나 주민들의 저항이 강하게 일어났고 1538년 새 시의회가 선출되자 칼빈과 파렐은 제네바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혼란이 가중되어 1540년 시의회의 요청으로 제네바에 돌아온 칼빈은 1541년 새로운 교회제도를 조직을 위해 ‘교회법규’를 시의회에 제출하여 채택되게 된다. 칼빈은 국가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와 긴밀한 관계 하에 두었고, 제네바시를 하나의 교회적 구조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제네바시의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들의 생활을 감독하고 정화하기 위해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는 감시위원회, 즉 ‘종무국’(宗務局)을 구성하였다.
 
그래서 1555년까지 엄격하게 조직된 신국(神國)이 제네바에 형성되었고, 제네바는 개혁된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1559년 칼빈은 제네바 신학교를 설립하여 거기에서 배출된 수많은 설교가들은 전유럽에 칼빈의 교회제도, 신학과 사상 등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그의 종교개혁은 프랑스로 전파되어 박해에도 불구하고 1559년 최초의 국가 종교회의를 파리에서 개최하여 칼빈이 기초한 ‘갈리아 신조’를 채택하고 ‘위그노파’(Huguenots)로 불리게 되었다.
 
3)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
흔히 종교개혁의 ‘제3의 사나이’라고 불린다. 그도 성서, 신앙, 의화 개념이나 새로운 교회상의 정립, 정통교회에 대한 투쟁 등에 있어서 루터나 칼빈, 재세례파 등과 공통된 기본원칙들을 갖고 있다.
 
쯔빙글리는 글라루스에서 사목하던 중 군종신부로서 전투에 두 번 참전하고 용병제도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취리히에서 사목하면서 에라스무스적인 개념의 설교를 하고 패스트 발병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신앙에 대해 더욱 깊이 탐구하게 되었고 1521년 카알 5세와 전쟁 중이던 프랑소와 1세의 스위스에 대한 용병파병 요청으로 다시 한번 용병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그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교회와의 갈등과 분열은 순전히 외형적인 교회법의 위반 때문에 촉발되었다. 1522년 사순절임에도 아인지델른의 사제인 레오 쥬드와 취리히 교회 지도자들이 금육을 지키지 않고 소세지를 먹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것에 대하여 취리히를 관장하던 콘스탄쯔 주교는 취리히 시의회에 이들의 처벌을 요구하였고, 시의회는 이들을 투옥하고 벌금형에 처하였다. 그래서 쯔빙글리는 먹는 음식을 금지하는 교황의 법령에 대하여 복음에 의해 선포된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비난하였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서만이 필요하며, 교회, 공의회, 교황이 하느님의 말씀을 정의․해석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행위라고 주장하였다.
 
콘스탄쯔의 주교가 쯔빙글리를 취리히 시의회에 고발하자 1523년 제1차 토론회에서 쯔빙글리는 히브리어․희랍어․라틴어 성서와 자신의 개혁안인 ‘67개 조문’을 근거로 논쟁하였다. 시의회는 쯔빙글리의 ‘67개 조문’에서 나온 개혁안을 채택하였고, 칸톤(Canton)내의 모든 신부들에게 실행하도록 명하였으며 시의회는 4차에 걸친 토론회를(1523-1524)통해 미사제도는 인정하되 성상폐지론은 결정하였으며 신자들의 성가, 오르간 음악 등, 성서에 명시되지 않은 모든 예배수단을 제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미사와 관련된 가톨릭 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반대하며, 새로운 양식에 의한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취리히 시의회가 개혁을 더디게 진행하자 일부(재세례파)가 과격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하면서 과격한 개혁운동을 전개하자 쯔빙글리는 그들과 결별하였다.
 
그리고 쯔빙글리는 루터와도 성만찬 논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루터는 성찬식에 상징적 성격이 있다는 것과 영적인 의미의 먹고 마심을 물론 전제하고 있었으나,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실재(實在)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쯔빙글리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성찬식이 순전히 영적․상징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로써 루터와 쯔빙글리는 입장을 달리하는 교파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1529년 가톨릭 동맹주들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가의 페르디난드 공작과 연맹을 맺자 쯔빙글리는 카펠로 진군하여 가톨릭 속한 주들은 페르디난드와 맺은 동맹을 취소할 것과 복음적 교회들의 존립을 허용할 것을 규정하는 제1차 카펠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동맹주들이 오스트리아와의 동맹관계를 취소하지 않자 쯔빙글리는 경제 봉쇄령을 내렸다. 이에 반대하여 가톨릭 주들은 1531년 취리히 주의 카펠을 침입하였고 가톨릭측이 승리하여 2차 카펠 평화조약이 체결된다. 조약 내용은 프로테스탄트들은 더 이상 영토확장을 하지 않고, 신교 안에 있는 소수의 가톨릭파들에 대해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여야만 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적지 않은 교회가 성찬식을 진행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제자들과 가진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성도끼리 성찬기를 주고받는 방법으로 진행되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선 감염 우려 때문에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4월 12일 부활주일을 전후해 일부 교회가 온라인으로 성찬식을 진행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최근에는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개인 성찬기까지 등장했다.
성찬용 빵과 포도주를 개인 용기에 담아 제공하는 것이다.

포항오천교회(박성근 목사)는 지난달 8일 성찬식을 하면서 성찬용 빵을 개인 용기에 담아 교인들에게 나눠줬다.
포도주도 기존 금속잔 대신 일회용 잔에 담았다.

박성근 목사는 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성찬 빵을 개별 포장하고 포도주는 일회용 잔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올해 들어 두 차례 성찬식을 진행했다”면서 “700명 가까운 교인과 성찬을 나눴는데 감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서인지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팬데믹 상황인 만큼 안전한 성찬식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일회용 성찬기 모습. 

아마존 닷컴에서 "성찬키트"를 구입하여 각 가정에 배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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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림교회(김정석 목사)도 코로나19 이후 자체 제작한 개인 성찬기로 세 차례 성찬식을 진행했다.
친환경 재료로 만든 용기에 성찬 빵과 포도주를 개별 포장한 뒤 예배당 입구에서 교인들에게 나눠줬다.
교인들은 성찬 집례자의 안내에 따라 용기를 열어 빵과 포도주를 먹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교인과 접촉할 일은 없었다.

예배학자들은 팬데믹 때마다 성찬 방법이 바뀌어 온 만큼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감염을 막기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찬식의 경건성과 의미만 잘 살린다면 형식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한다.
이전에도 팬데믹은 성찬식 방법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김병석 숭실대 베어드교양학부 교수는 “1918년 스페인독감을 기점으로 큰 잔에 포도주를 담아 돌려 마시던 성찬의 방법이 개인 잔을 사용하는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며 “성찬의 본래 의미는 살리고 감염을 막기 위해 성찬의 형식을 바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성찬의 방법이 또다시 바뀔 게 분명하다”면서 “성찬의 의미와 경건성에 강조점을 두면서 감염병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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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携擧, Rapture) 1 데살로니가전서 4:17 / 수요성서학당(12-02-20)

휴거(携擧, Rapture) 1 데살로니가전서 4:17

휴거에 대한 주제를 설명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학적 고찰

신학적 고찰이란 "휴거가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때에 나타날 7년 대환난이 일어났을 때 환난 전에 휴거한다.
아니면 환난 후에 휴거한다.
이런 논쟁을 합니다.
또는 대환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휴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둘째는 실천적 논쟁

실천적 논쟁이란 어떤 신학적인 주제라도 예수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휴거라는 주제를 이야기 할 때 환난 전에 휴거하든지 아니면 환난 전에 휴거하든지 휴거라는 것을 예수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휴거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환난 전이냐 아니면 환난 후인가 이런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으면 휴거라는 사건이 일어날지라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짐승의 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둘째, 주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
셋째, 짐승의 표가 우월합니까? 예수 구원이 우월합니까?
당연히 예수 구원이 짐승의 표보다 더 우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이 휴거에 대한 실천적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휴거에 대한 이해를 신학적인 논재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실천적 신앙을 갖고 접근하려고 합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기화 되면서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징조라고 하며 휴거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휴거에 대한 주제가 급부상하는 배경은 사회적인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이장림목사가 주장하던 공중으로 들려올라간다는 가르침에 따라 많은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한곳에 모여 찬송을 부르며 공중으로 올라가려고 기다렸지만 결국 잘못된 가르침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나타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걸프 전쟁

1991년에 발발한 걸프전쟁을 CNN 등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세계적인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둘째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1999년 세상 멸망설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걸프 전쟁과 더불어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감을 갖고 살았습니다.
7년 대환난이 있다고 한하면 1999년 세상 멸망설이란 불란서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라 1999년에서 7년을 빼면 1992년이 됩니다. 이렇게 교묘하게 짜맞추기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므로 신앙의 질서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마침 감리교 목사이었던 이장림목사가 미국에서 발행된 휴거라는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므로 휴가에 대한 열풍이 불어닥쳤습니다.

요즈음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사회적 거리 유지와 일상생활의 비정상적인 생활이 계속되므로 또다시 마지막 징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갖게 되므로 휴거라는 주제로 자주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적인 고찰보다는 실천적인 고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데살로니가전서 4:17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성경에는 "휴거"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휴거라는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 근거를 정확하게 살펴야 합니다.

휴거라는 단어는 라틴어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서 "끌어올려"에 해당하는 “라베무르(Rapiemur)” 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라베무르"의 뜻은 "잡다, 낚다, 잡아채다, 납치하다”는 뜻입니다.

"라베무르(끌어 올려)"라는 단어에 대한 분석

1. 한글 성경 : 끌어 올려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2. 헬라어 성경 : 하르파조(ἁρπάζω)
"하르파조(ἁρπάζω. harpazó. 726)"를 영어로 “to snach away” 라고 하며
그 의미는 “낚아챈다, 빼앗는다”는 뜻입니다(to seize, catch up, snatch away)

3. 영어 성경 : 랩처(Rapture)
- NIV ; be caught up
- KJV ; be caught up
- NASB ;  be caught up

랩처(Rapture)”의 뜻은 “환희(delight), 열중, 넋을 잃음”입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간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4. 한문 성경 : 휴거(携擧, Rapture) 

휴거(携擧)”라는 한자는 “이끌 휴(携)” “들 거(擧)” 라는 훈으로 “이끌려 들려지다”라는 뜻입니다.

"끌어 올려(하르파조, ἁρπάζω)" 라는 의미를 살펴본 결과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한 세력의 손에 끌려 갈 수 없다."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라는 것에 열광할 이유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6:15 - 붙들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한복음 10:28 - 빼앗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12 - 물어 가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도 제 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물어 가고) 라는 말씀에서 “늑탈하고” 또는 "물어 가고" 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문법적 의미

* 끌어올려 - 수동태(Caught up)

“갑작스럽게 잡아서 옮기다.” “강한 힘을 가지고 강하게 빼앗아 가다”, “재빠르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다”

* 데려감을 당하고 (마 24:40∼41, 눅 17:34-35) - 수동태(Taken away)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오늘의 주제가 휴거이므로 휴거에 대한 믿음이라고 범위를 좁혀 놓고 소개하겠습니다.

휴거에 대한 믿음이란 "오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휴거 안에 예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휴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666표에 적용하면
666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666표 안에 예수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라고 하면
1.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2. 666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3.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666표가 구원의 근거가 되므로 이러한 가르침을 비성경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들어가는 것만이 구원의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수아의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4:14b,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 24:15b,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의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도입 이야기)
아버지가 장난감을 사 오겠다고 약속하셨다.
날이 어두워졌으나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았다.
아들은 현관을 바라보며 "왜 아버지가 안 오시지?" 하고 말할 때
마침 어머니가 "왜 아버지를 기다리느냐?"
"아버지가 장난감을 사오기로 약속하셨다!"

아들이 아버지를 기다릴 때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장난감을 기다리는 것인가?
아들의 입장에서 장난감이 분명하다.

(전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24:14b,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 24:15b,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로마서 1:16-17,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020년 오늘의 묵상 자료(1월-12월)



♦ 1월 1일(수)

말씀 : 요한일서 1:1∼10
묵상 : 하나님은 빛이시라(God is Light)(5절)
성구 :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참조 :
야고보서 1:17(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
요한일서 4:8(하나님은 사랑)
요한복음 4:24(하나님은 영)

☞ 빛(φῶς, 5457. phós) ;
빛(light, radiance),
빛의 근원(a source of light)
radiance의 빛이란 첫째는 행복감과 건강 등이 얼굴에 나타나는 빛, 둘째는 따스하고 밝은 빛을 말합니다.
 
♦ 빛의 특징
1. 불변(야고보서 1:17)
2. 사랑(요한일서 4:8)
3. 영(靈)(요한복음 4:24)

♦ 빛의 이야기
어느 날 시각장애인이 등불을 켜들고 밤길을 나섰습니다. 나는 비록 불빛을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을 보고 부딪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얼마동안 잘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은 버럭 화를 내며 “당신은 눈도 없소? 나는 앞을 못 보지만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등불을 보지 못하시오?” 그때 상대방이 “꺼진 등불을 어떻게 봅니까?”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시라!(마태복음 5:14)
2020년 빛의 사람으로 세상을 밝혀줄 당신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합시다.

♦ 주여, 빛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미국의 정치가이며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 라고 불렸단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 1. 17~1790. 4. 17)은 그가 살고 있던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선한 일을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좋은 등을 하나 준비해서 집 앞에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등불은 집 안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집 밖에 두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뭔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 등불을 두니까 밤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좋게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 밖에 등불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가 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로등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길거리에 가로등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캄캄하고 어둡겠습니까? 세계적으로 가로등이 생기게 된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위하여 집 밖에 등불을 둠으로써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준 것입니다.

♦ 나는 어떤 방법으로 빛의 삶을 실천할 것인가 살펴봅시다!

- 빛에 거한다면 어둠이 없습니다. 어둠이란 “죄성”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할수록 숨어 있던 우리의 죄를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주여, 나의 숨은 죄를 깨달아 온전히 벗어버리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1월 1일(수)
오늘의 주제 묵상 단상(斷想)
- 하나님은 빛이시라(God is Light)
* ὁ Θεὸς φῶς ἐστιν(the God light is)

빛(φῶς, 포스, phós)이란 물리적인 빛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은 신령한 존재를 말합니다.
신령한 존재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통된 존재 양식은 “생명(生命)”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으로 스스로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으로 성령으로 임하여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성령은 살리는 생명으로 죽음이 육체와 영혼의 분리 상태라고 합니다. 죽은 육체 안으로 영이 들어가면 죽은 사람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것이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살려내는 생명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생명으로 하나가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주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 몸과 마음으로 믿어
이 세상에서
육체로 살아갈 때
온전한 건강으로
세상의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 1월 2일(목)

♦ 말씀 : 요한일서 2:1∼29
♦ 묵상 : 대언자(An Advocate)(1절)
♦ 성구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참조 : 요한일서 14:16

☞ 대언자(代言者)(παράκλητος, 3875. paraklétos)
대언자는 요한복음에서 “보혜사”(14:16, 26. 15:26. 16:6, 13) 또는 “진리의 영” “진리의 성령”(14:17. 15:26. 16:13)으로 소개합니다.

♦ 보혜사 이야기

특별감지기능(特別感知技能)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각(視覺), 촉각(觸覺), 미각(味覺), 청각(聽覺), 취각(吹角) 등 오감(五感)만으로는 감지할 수 없고 판단할 수도 없는 것을 과학적 기계를 가지고 감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북극의 자력을 감지하는 나침판이 있고, 먼 곳에 오는 전파는 레이더(radar)로 감지합니다. 먼별에서 날아오는 에너르기는 레이더(radar) 망원경으로 감지합니다.

세상에는 특별감지기능을 갖고 있는 기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들이 있는 것처럼   만일 인간이 갖고 있는 오감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는 것만 인정한다면 세상의 일부분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의 오감으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없다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성령을 모신 자만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는 특별감지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한복음 14:16).

♦ 보혜사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심을 증거 할 수 있습니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1월 2일(목)
오늘의 주제 묵상 단상(斷想)
- 대언자(代言者, 파라클래토스, παράκλητος, paraklétos)

성령께서 나의 대언자가 되려면 반드시 내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가 무엇인가요?

“방언” “예언” “신유 은사” “방언 통역” 등과 같은 현상적인 것을 자주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현상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성령을 받았는지 점검하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주를 고백한 후에는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지혜롭게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가복음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성령의 사람은 지혜로운 말을 합니다.
그 지혜는 지식이 아닙니다.

♦ 1월 3일(금)

♦ 말씀 : 요한일서 3:1∼29
♦ 묵상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심(8절)
♦ 성구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라고 합니다(요 1:12).
예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권세(權勢)”를 주셨습니다. 그 ‘권세’를 합법적(合法的) 권세(權勢, ἐξουσία, 에쿠시아)라고 합니다.

합법적 권세란 마치 교통경찰이 도로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량에게 범칙금 티켓을 발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경찰보다 키가 크고 힘이 강한 사람이 도로에서 경찰처럼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량을 멈추라고 하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받았으므로 얼마든지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량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마귀의 일 즉 죄를 짓는 유혹의 손길을 합법적으로 주신 권세를 사용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이 권세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권세를 주를 믿는 자녀들이 사용할 수 있는 법적인 권세를 말합니다.

♦ 내 삶의 영역에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할 것이 무엇인가 찾아봅시다.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명령해 봅시다. 아직도 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나의 믿음을 더 강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1월 3일(금)
오늘의 주제 묵상 단상(斷想)
- 합법적(合法的) 권세(權勢) 에쿠시아(ἐξουσία)

예수 이름으로 명(命)하여 더러운 귀신(鬼神)을 내쫓는 힘은 어디에서 나와야 할까요?
합법적으로 이미 주어진 권세는 두 가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보증(고린도후서 1:22, 5:5)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둘째는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기도(마가복음 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미 주어진 합법적인 권세를 믿음의 기도로 무장할 때 성령께서 보증하여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 외치고 선포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증거 하는 성령의 사람으로 쓰임받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ἐξουσία(1849. exousia)
정의(Definition) : power to act, authority
용법(Usage) : (a) power, authority, weight, especially: moral authority, influence.
(b) in a quasi-personal sense, derived from later Judaism, of a spiritual power, and hence of an earthly power.  

♦ 1월 4일(토)

♦ 말씀 : 요한일서 4:1∼21
♦ 묵상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8절)
♦ 성구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od is Love)
(ὁ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

☞ 사랑(ἀγάπη, 26. agapé) 
(정의, Definition) : love, goodwill
(적용, Usage) : love, benevolence, good will, esteem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희생적 사랑입니다.
에로스의 사랑은 남녀 간의 쾌락적 사랑입니다.
필리아의 사랑은 친구들 사이의 우정입니다.
스토르게의 사랑은 가족 특히 혈연관계의 가족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경험하셨나요?
내가 직접 경험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해 봅시다.
그리고 나와 다른 경험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넓고 깊고 위대한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 하나님의 사랑은 “피의 사랑”입니다.
피를 통하여 사랑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사랑을 완성하는 은혜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 주님의 피로 사랑을 확인하셨는지요?
그 사랑을 아가패(agape) 즉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 스토르게(가족의 사랑)의 사랑을 확인해 봅시다.

1988년 12월 7일 11시,
당시 소련의 영토인 “아르메니아”에 지진이 감지되었습니다.

원래 지진이 많은 지역이어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곧 일상으로 돌아가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30분 후, 진도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하였고 대부분 내진설계가 되어있지 않던 

석조 주택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도시는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지진이 벌어지고 3일 만에 2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확인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피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만 했습니다.

끔찍하게도 사망한 대부분의 사람은 무너진 건물에 깔린 압사였습니다.

이때, 지진으로 무너진 9층 건물의 잔해 속에 26살의 어머니 “스잔나 페트로시안”과 4살 된 딸 “가야니”도 갇혔습니다.

모녀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의 공포뿐이었습니다.

여진이 느껴질 때마다 머리 위의 잔해들이 다시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들을 뚫고 나가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몸을 들썩이는 것조차 두려운 와중에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엄마. 너무 목이 말라요.”

그때 “스잔나”는 부서진 유리 조각으로 손가락을 찔러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였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차례 손가락을 베어 아기의 입에 물렸습니다.

이 모녀가 극적으로 구출된 것은 매몰되고 14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렇게 빠져나온 어머니 “스잔나”의 손가락 열 개는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그저 딸이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안도했습니다.

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피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위해서 어떠한 고통도 감당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십자가에서 흘리셨던 주님의 피가
죄와 사망의 사슬을 풀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피로 얻은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요?

♦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인가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1월 4일(토) 나의 묵상 노트

오늘의 묵상 주제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od is Love)
* ὁ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

신약 성경은 세 개의 기둥으로 세워졌습니다.
첫째는 복음의 기둥
둘째는 바울의 기둥
셋째는 요한의 기둥
요한의 기둥에는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이 채워져 있습니다.

요한의 기둥에서는 하나님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나님은 생명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의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반열에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확인하셨는지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요?
처음 사랑을 되찾아 믿음의 길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되었기에 사랑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같은 민족이기에 사랑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었기에 그 생명을 전해야 하고 서로 나눠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가족과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먼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가증스런 위선적 신앙을 주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먼저
내 집 근처 다니면서
생명을 나눠줘야 할 영혼을 찾아
사랑으로 베풀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한 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복음의 기회를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주여,
복음의 문을 열게 하소서
진리를 가르칠 지혜를 주소서
상한 심령을 위로할
사랑의 언어를 주옵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6

요한일서 5:1∼21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1

7

야고보서 1:1∼21

시련 받는 믿음

1

8

야고보서 1:22∼27

실천하는 믿음

1

9

야고보서 2:1∼13

형제애와 믿음

1

10

야고보서 2:14∼26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1

11

야고보서 3:1∼18

혀의 억제와 믿음

1

12

주일

설교 묵상

 


야고보는 “실천(實踐)의 사도(師徒)”
야고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本)”
야고보서의 메시지는 “복음(福音)을 살라!”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로마서의 교훈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성경에서 서로 다른 것을 교훈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는 이방인들을 위한 가르침이라면 야보고서는 주의 백성들을 향한 깨우침입니다.

종교란 인간이 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너희의 믿음은 너희가 행동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없는 행동을 하는 것과 믿음이 없다고 하면서 믿음이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믿음이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야고보서는 기도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기도의 약속 ; 1:5∼8, 4:8, 5:15∼18
기도의 장애물 ; 4:1∼4
기도의 시각 ; 1:5, 4:1∼2, 5:13∼14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6

요한일서 5:1∼21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1

7

야고보서 1:1∼21

시련 받는 믿음

1

8

야고보서 1:22∼27

실천하는 믿음

1

9

야고보서 2:1∼13

형제애와 믿음

1

10

야고보서 2:14∼26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1

11

야고보서 3:1∼18

혀의 억제와 믿음

1

12

주일

설교 묵상

 



♦ 1월 6일(월)

♦ 말씀 : 요한일서 5:1∼21
♦ 묵상 :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3절)
♦ 성구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βαρεῖαι οὐκ, 바레이아이 우크, burdensome not)
- 무겁다(βαρύς, 926. barus) heavy, weighty, burdensome
- (현대인의 성경)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 (새번역, 공동번역) 무거운 짐이 아니다
- (NIV) his commands are not burdensome.
 
♦ 계명(誡命)과 사랑(愛)
계명을 계시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계명을 마치 사람을 억압하는 법으로 이해합니다.

예를 들면 에덴동산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할 것을 비교하면 먹지 못할 것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이외에는 모두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계명이었습니다. 단 하나를 지키지 못하여 사랑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 사랑의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킬 수 없었습니다. 사랑의 나침반을 수정하려면 먼저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어떻게 계명을 지킬 수 있을까요?

♦ 무겁지 않느냐?
한 어린이가 자기 몸만큼 큰 아기를 업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린이에게 “무겁지 않니?” 하고 물었을 때 어린이는 “아니요 내 동생이라 무겁지 않아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어린이가 동생을 업고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무거운 길입니다. 그러나 동생을 사랑하는 형의 마음은 무거운 것이 될 수 없었겠지요.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성령님의 도움을 기도합시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성령의 도움을 받는다면 사랑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은 성령의 사람이 되어 돌을 던지고 침을 뱉고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는 무리들을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주님 닮기 원하네
그 아름다운 주 예수를
사랑의 주님 따르기 원하네
그 성령의 도움을 따라
주여,
세상을 변화시킬 사랑의 영으로
늘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1월 6일(월)
나의 묵상
사랑은 영원합니다.

유네스코 연구보고서에 의한 생물의 수명 연한을 소개합니다.
거북이는 200년,

앵무새는 140년,

매는 90년,

코끼리는 65년,

말은 62년,

뱀장어는 56년,

고양이는 39년,

고래는 37년,

개는 34년,

원숭이는 26년,

오리는 14년
생물들의 수명과 사람의 수명을 비교하면
사람의 수명은 코끼리, 말, 뱀장어와 비슷합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사람의 평균 수명을 120년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을 보장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계명에 따라
순종하므로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은혜의 길에서 행복하기를 기도합시다.

♦ 1월 7일(화)

♦ 말씀 : 야고보서 1:1∼21
♦ 묵상 : 시련 받는 믿음(3절)
♦ 성구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믿음의 시련(試鍊)과 인내(忍耐)

시련(試鍊)이란?
“겪어 내기 힘든 어려움”을 말합니다.

시련(δοκίμιον)이란?
헬라어로 “δοκίμιον(1383. dokimion. 도키미온)” 이라고 합니다.
‘도키미온’이란 “시험(a testing, a test, trial)”이란 뜻입니다.

왜 믿음에 시련이 있습니까?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왜 고난이 닥쳐옵니까?
값비싼 은혜(恩惠)는 고난(苦難)을 통해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에 “야고보”라는 인물이 세 사람입니다.
첫째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둘째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셋째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라고 합니다.
야보고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말합니다.

야고보는 “실천(實踐)의 사도(師徒)”
야고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本)”
야고보서의 메시지는 “복음(福音)을 살라!”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以信得義)”는 로마서의 핵심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以行得義)”고 강조합니다. 성경에서 서로 다른 것을 교훈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는 이방인들을 위한 권면 입니다.

야보고서는 주의 백성들을 향한 깨우침입니다.

주의 백성들은 이방인들보다 성숙한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이란 고난이 없는 행복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 오래 참으며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 믿음으로 고난과 시련을 받아드립시다.


어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그리스도인 대장장이에게 “당신이 그토록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든 거듭나면 그의 고난이 끝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대장장이는 주저함 없이 “이 쇳조각을 보십시오. 이것이 농기구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열처리가 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불에 달구어서 망치질을 합니다. 쇠의 강도가 높아질 때까지 반복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잘 부러져서 의도된 목적에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들의 안일과 즐거움만이 아닌 더 큰 목적을 위하여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따르고 섬기기를 원합니다. 진실과 섬김을 위하여 시련과 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믿음을 단련합니다.

만일 시련과 단련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세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받았지만 아직도 주님께서 사용하기에는 부적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우리를 주님의 방법에 맡겨야 합니다.

주님,
아직은 불같은 시련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유익한 목적을 위하여
고난의 문을 열었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더 큰 영광과 사역을 위해
내 삶을 위하여 예비하신
주님의 계획에 따라
믿고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1월 7일(화)
나의 묵상
- 믿음의 시련으로 나를 새롭게 하소서!

왜 나에게만 이런 고난이 있는가?
사람들은 시련과 고난이 닥쳐오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난을 받는가?
이렇게 의심하고 잘못한 무엇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모두 거부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실 때
마침 태어날 때부터 볼 수 없는 시각장애자를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 사람은 누구의 죄 때문에 이렇게 태어났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왔을 때
물론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이런 틀에 붙잡혀버리면 자기 발전과 성장이 없습니다.

이런 고난과 시련 때문에
나를 새롭게 하시고
순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고
목적에 합당한 삶을 결단합시다.

주여,
나를 주의 뜻에 맞는
거룩한 사람으로
다듬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인 여러분! 당신은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겸손하게 당신 자신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그와 같은 시련을 통해 “연단받은 자”가 주님을 보다 가장 잘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믿음의 시련을 즐기는 평범한 여인의 이야기

일찍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재래시장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며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던 여인을 지켜준 것은 힘들게 믿음의 길을 자식들을 교육시켰습니다.

자식들은 장성했고 모두들 나름대로 성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고 혼자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고생과 수고를 잘 아는 자식들은 “어머니, 이제는 아파트로 이사 가시든지 아니면 단독 주택으로 옮기자.”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모은 후에 “너희들이 정말 원한다면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라.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은 맑은 유리로 깔고, 기둥은 황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둥 밑바닥에는 보석을 박아야 한다. 그런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달라야 한다. 그리고 12개의 문을 만들어야 한다.”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집이 어디 있어요?”

그때 어머니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그만 둬라! 나는 그런 집을 하늘나라에 갖고 있단다.”


세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오히려 작은 오두막집에서 하늘나라의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믿음의 어머니처럼
비록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하늘나라에 쌓여 있는 믿음의 상급을 바라보며 항상 행복하기를 기도합시다.

1

8

야고보서 1:22∼27

실천하는 믿음


♦ 1월 8일(수)

♦ 말씀 : 야고보서 1:22∼27
♦ 묵상 : 실천하는 믿음(22절)
♦ 성구 :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아멘

♦ 행동하는 믿음으로

믿음의 다양성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듣기만 하는 믿음
둘째는 말하는 믿음
셋째는 행동하는 믿음

듣기만 하는 믿음은 꿀 먹은 벙어리와 같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듣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들었으면 반응이 나타나야 합니다.

말하는 믿음은 앵무새와 같은 믿음입니다.
앵무새는 언어의 유희와 같은 말장난입니다.
듣는 사람에게 흥미를 줄 수 있지만 감동은 줄 수 없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은 꿀벌과 같은 믿음입니다.
꿀벌은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얻지만 꽃가루를 옮겨주며 열매를 맺게 합니다.
말씀을 듣고 가르치고 행하므로 신앙이 성장하고 그 삶을 지켜보는 사람을 움직여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군으로 헌신하게 합니다.

♦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다섯 가지 법칙

첫째, 열정보존의 법칙

열정은 열정의 양만큼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올 것입니다.


둘째, 힘의 법칙

힘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모이고, 힘이 있는 자가 항상 앞자리에 앉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힘을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힘을 갖는 순간부터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있을 때 상대방을 배려해 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셋째,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법칙

뿌린 대로 거둘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원한다면 먼저 상대에게 더 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넷째, 습관의 법칙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이 곧 삶이라고 합니다.
좋지 못한 습관이 있다면 빨리 버리고, 좋은 습관이 있다면 더욱더 활성화 시켜 삶의 무대를 더 넓게 확장시켜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위대함의 법칙

인간의 내면에는 크기를 알 수 없는 능력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성공의 크기가 아니라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을 성공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람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질적인 부를 추구할 때가 아니라 소중한 무엇을 지키려고 할 때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 바울과 야고보의 조화


불협화음이란 소리의 조화를 무너트린 것입니다.
화음이란 소리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람직한 믿음을 위하여 바울과 야고보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복음을 안으로 받아드리라”고 합니다.
복음을 안으로 받아드리기 위해서 위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므로 위에 계신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야고보는 “복음을 밖으로 드러내라”고 합니다.
복음을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땅위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바울은 신앙의 근원을 말하고, 야고보는 신앙의 결실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나를 변화시켜 세상 어느 한 구석에 복음의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그 날을 함께 기다려 봅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8일(수)
나의 묵상 노트
- 실천하는 믿음(야고보서 1:22)

실천(實踐)이란 한자의 훈은 "열매 실(實)" "밟을 천(踐)"으로 사전에서 말하는 정의를 살펴봅니다.

1. 생각한 것을 실제로 행함.
2. 자연이나 사회를 변혁하는 의식적․계획적 활동의 전체.
3. 인간의 윤리적 행위.

행하는 자(ποιηταὶ)란 헬라어의 의미를 찾아봅니다.
"포이에태스(ποιητής,4163, poiétés)"란 "만드는 사람(maker))" 또는 "행하는 사람(doer)"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든다는 것은 말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질서는 법을 지킬 때 유지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지킬 때에 아름답게 유지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힘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믿음은 한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베드로 한 사람을 통하여 전달된 복음은 유대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바울 한 사람을 통하여 전달된 복음은 이방인들 변화시켰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킨다는 복음송가의 가사를 생각하며 이제부터라도 작은 불꽃이 되어 큰 불을 위한 불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작은 불꽃에 성령의 불씨가 남아 있어야 불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큰 불을 일으키려면 먼저 불씨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령의 불씨를 찾아내어 작은 불꽃을 만들어 이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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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야고보서 2:1∼13

형제애와 믿음


♦ 1월 9일(목)
♦ 말씀 : 야고보서 2:1∼13
♦ 묵상 : 형제애와 믿음(5절)
♦ 성구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형제들(ἀδελφοί)”이란 “형제(ἀδελφός)”의 복수형입니다.
“아델포스(ἀδελφός, adelphos)”의 뜻은 “형제(brother)” 또는 “같은 종교 공동체의 회원(member of the same religious community)” 그리고 “기독교인(especially a fellow Christian)”을 말합니다.  

♦ 형제들을 향한 말씀

형제(兄弟)는 “혈연관계(血緣關係)”로 맺는 형제와 “신앙관계(信仰關係)”로 맺어진 형제가 있습니다. 성경은 혈연의 형제가 신앙의 형제로 연결되는 관계가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아직도 내가 만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형제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형제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첫째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1절, 9절)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는 말씀은 교회에서 부자(富者)와 빈자(貧者)를 구별하여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 공동체에서 서로 구별하여 판단하는 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더 나아가 누가 더 잘 믿고 더 잘 섬기느냐에 의해서 신앙을 판단하는 것 또한 잘못된 판단이라고 하겠습니다.

열 손가락 중에서 깨물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신앙 공동체는 사랑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누구 편이냐 하는 식의 편을 나누려는 잘못된 생각은 신앙 공동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오직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하나 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약속의 나라를 유업으로 삼아라(5절)

유업(κληρονόμους)이란 상속인(heir, inheritor)이란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는 아버지의 유산을 함께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유업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구의 편에 속하느냐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형제들은 어떤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진리 위에 세워진 주님의 몸이 법의 심판을 받으려고 서로 고소하고 헐뜯는 안타까운 일들이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뭉쳐서 온전히 하나가 되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거룩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약속하신 나라(βασιλείας)
βασιλεία(basileia, 932)
Definition : kingdom, sovereignty, royal power.
Usage : kingship, sovereignty, authority, rule, especially of God, both in the world, and in the hearts of men; hence: kingdom, in the concrete sense  ,  

♦ 1월 9일(목)
나의 묵상 노트
- 형제를 사랑하라

종교(宗敎)란 “인간(人間)이 신(神)을 위하여 최선(最善)을 다하는 것”입니다.
기독교(基督敎)는 “하나님이 죄인(罪人)들을 위하여 최선(最善)을 다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너희의 믿음은 너희가 행동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행위의 실질적인 안내서” 즉 “신약의 잠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최고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최고의 법을 세속의 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이미 신앙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믿는다면 사람을 사람이 판단할 것이 아니라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한 번 더 기도하며 모두가 진리의 터전에 모일 수 있는 그 날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넓고 높고 깊게 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을 주님은 지금도 참고 기다립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구원 받아야 할 백성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참으셨습니다.
나도 참아야 합니다.
너도 참아야 합니다.
모두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며 주님의 임재를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져야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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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야고보서 2:14∼26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 1월 10일(금)
♦ 말씀 : 야고보서 2:14∼26
♦ 묵상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17절)
♦ 성구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아멘

죽은 것(νεκρά)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죽은 것(νεκρός. nekros, 3498)이란 단어가 “형용사”로 사용될 때와 “명사”로 사용될 때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형용사로 사용될 때는 죽은 것(dead), 생명이 없는 것(lifeless)을 말합니다.
명사로 사용될 때는 죽은 몸(dead body), 시체(corpse)를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생명이 없는 믿음” 다시 말하면 소망이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의 소망은 영생입니다.

세상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만족하는 신앙은 소망이 없는 믿음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란 이 세상에서 고난과 핍박과 궁핍함과 곤고함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끝까지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Receiving the end of your faith, even the salvation of your souls.) 

행함이 없는 믿음을 영혼이 없는 믿음이라고 합니다(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For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works is dead also.) 

영혼의 구원이 없는 믿음을 자랑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혼의 구원이 있는 믿음을 자랑할 수 있을까요?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때로는 고난을 받을지라도 그 고난을 딛고 일어나서 바른 길을 찾아가는 좁은 길과 좁은 문은 편리한 길이 아니라 진리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길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길에서 주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10일(금)
나의 묵상 노트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생명(生命)과 사망(死亡)
우리 모두는 생명과 사망의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망(死亡) 후에는 “영생(永生)”과 “영벌(永罰)”이 있습니다.
생명(生命)에는 “육체적 생명”과 “정신적 생명” 그리고 “영적 생명”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생명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육체적 생명은 의식주(衣食住)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정신적 생명은 지식(知識)과 상식(常識)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영적 생명은 신앙(信仰)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신앙이란 종교(宗敎)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종교는 기독교(基督敎)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결정됩니다.

왜 기독교만이 신앙이라고 고집할까요?
다른 종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내부에는 초월자를 의지하려는 자리가 항상 비어 있습니다.
그 자리를 “영혼(靈魂)의 고독처(孤獨處)” 라고 합니다.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의욕(意慾)과 허무(虛無)가 초월자를 찾아다닙니다.
역사적으로 그 자리를 완벽하게 채웠던 절대자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종교는 고독한 영혼이 절대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절대자가 고독한 영혼을 찾아온 것입니다.

인간이 절대자를 찾아 올라가려는 것과
절대자가 인간을 찾아내려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쉬운 방법일까요?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내가 찾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따라가는 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만을 따라가는 믿음으로
날마다
매 순간마다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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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야고보서 3:1∼18

혀의 억제와 믿음


♦ 1월 11일(토)
♦ 말씀 : 야고보서 3:1∼18
♦ 묵상 : 혀의 억제와 믿음(2절)
♦ 성구 :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아멘

작은 것으로 통제하는 것은 "소의 코 두레" "배의 키" "말의 입에 재갈" "사람의 혀"라고 합니다.

사람의 혀는 말의 실수 때문에 통제를 해야 합니다.
어느 회당의 유명한 랍비가 제자에게 시장에 가서 가장 맛있는 고기를 사오라고 했답니다. 제자는 시장을 둘러보더니 소의 혀를 구입해 왔습니다. 얼마 후 랍비는 제자에게 오늘을 가장 맛없는 고기를 사오라고 했지요. 그러자 제자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소의 혀를 구해왔습니다. 랍비는 제자에게 어찌하여 가장 맛있는 것도 가장 맛이 없는 것도 소의 혀라고 생각했느냐? 물었습니다. 제자는 가장 잘 사용하면 모두에게 유익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모두에게 무익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탈무드의 교훈입니다.

언어가 잘못 사용될 때 혼란스럽게 합니다.
혼란은 질서를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오늘도 나의 말이
주님 앞에 열납 되고
모두에게 유익을 선물하는
은혜와 축복의 날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11일(토)
나의 묵상 노트
- 혀의 억제와 믿음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τέλειος ἀνήρ, perfect man)"이라고 합니다. 
"온전한"이란 헬라어는 "텔레이오스( τέλειος, teleios)"라고 합니다.
'텔레이오스'는 "완성된(complete)" "완벽한(perfect)"이란 뜻입니다. 특히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성격이라고 합니다(specially of the completeness of Christian character.)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성품을 잘 다스려도 혀가 자기 멋대로 내 뱉으면 다스려진 성품도 순식간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유치원에서 토라 교육을 할 때 가르치는 언어에 대한 교훈을 소개합니다.

1. 항상 연장자에게 발언권을 준다.
2. 다른 사람의 이야기 도중에 끼어들지 않는다.
3.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
4. 당황하면서 서둘러 대답하지 않는다.
5. 질문과 대답을 간결하게 한다.
6. 처음 할 이야기와 나중에 할 이야기를 구별하여 한다.
7. 잘 알지 못하고 말했거나 잘못 말한 것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말하기를 즐기는 것보다 듣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지혜로운 주의 백성으로 다듬어지기를 소원하며 오늘도 혀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대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13

야고보서 4:1∼17

더욱 큰 은혜(6절)

1

14

야고보서 5:1∼20

믿음의 기도(15절)

1

15

로마서 1:1∼32

믿음으로 살리라(17절)

1

16

로마서 2:1∼29

마음의 할례(29절)

1

17

로마서 3:1∼31

믿음으로 얻는 의(28절)

1

18

로마서 4:1∼25

예수(25절)

1

1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13

야고보서 4:1∼17

더욱 큰 은혜(6절)


♦ 1월 13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야고보서 4:1∼17
♦ 오늘 묵상을 위한 주제 :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자!(6절)
♦ 성구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아멘

더욱 큰 은혜는 무엇일까요?
은혜가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을까요?
은혜는 오직 은혜일뿐입니다.
그러나 큰 은혜란 받은 은혜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약속하신 말씀을 살펴봅니다.

1.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6b)
2. 하나님께 순복하는 은혜(7a)
3. 마귀를 대적하는 은혜(7b)
4.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은혜(8a)
5. 마음을 성결케 하는 은혜(8b)
6. 비방하지 않는 은혜(11a)

왜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할까요?
사람의 생명이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기 때문입니다(14절).
그러므로 생명이 있을 동안에 부지런히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지금도 나를 다스리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처음 은혜의 자리에서 벗어난 것을 찾는 것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한 후에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것이 믿음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은 주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나의 삶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제부터 나의 삶에 익숙하도록 계속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처음부터 걷고 뛰는 것이 아니라 아장자아 걷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걷기도 하고 뛰기고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줄 알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제는 다 컸구나! 이렇게 느낄 때가 있었지요?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바로 그 때는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모습을 볼 때에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은혜(恩惠)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억지로 주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행복하게 주는 것이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기쁘게 내 줄 수 있는 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오늘 내게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것을 누군가를 위하여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봅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13일(월) 나의 묵상 노트
-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자!(6절)

‘은혜(恩惠, 카리스)’는 “기쁜 마음으로 주는 것”입니다.
내게서 소중한 것들은 무엇일까?

시간(時間)을 쪼개어 중보기도 합니다.
물질(物質)을 쪼개어 선교와 구제를 위해 바칩니다.
건강(健康)을 쪼개어 봉사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복음을 증거 합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생명을 쪼개어 나눠 주신 주님의 은혜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믿는다면
나도 나의 것을 쪼개야 합니다.

주여,
소중한 것을 쪼개어
나눠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생각의 질서를
즐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14

야고보서 5:1∼20

믿음의 기도(15절)


♦ 1월 1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야고보서 5:1∼20
♦ 오늘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의 기도(15절)
♦ 성구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아멘 

“믿음의 기도”를 여러 번역으로 살펴봅니다.
NIV - the prayer offered in faith(믿음으로 바치는 기도)
KJV - the prayer of faith(믿음의 기도) 
새번역 -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 
현대인의 성경 - 믿음의 기도
공동번역 - 믿고 구하는 기도

“믿음의 기도”는 마치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베드로가 외쳤던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믿음으로 선포하는 기도
말씀을 믿고 주장하는 기도
오직 주의 능력만을 주장하는 기도

현대 교회는 재정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가 사용했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주장하는 믿음은 없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더 필요할까요?
재정적인 여유가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외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제는 초대교회가 즐겨 사용하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렇게 외칠 수 있는 능력의 기도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이런 기도를 해야 할 때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고난당할 때(5:13)
둘째는 즐거울 때(5:13)
셋째는 병들었을 때(5:14∼15)
넷째는 죄를 지었을 때(5:16)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성품의 사람이었지만 능력의 기도를 통하여 기도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증거 합니다.

오, 주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그 말씀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기도자의 삶을 회복하여
엘리야와 같은 기도자로
든든하게 세워주시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14일(화)
- 나의 묵상 노트
믿음의 기도는 믿음의 찬송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던 길에 귀신들려 점을 치는 여종을 만났습니다. 여종은 점을 치고 복채를 받아 주인에게 바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향하여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날을 계속하자 바울은 그 여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왔고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으므로 여종의 주인은 자기의 이익의 소망이 없어졌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를 관원에게 끌고 가서 우리 성을 요란하게 하는 자들이라고 고소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밤중 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 감옥 안에 있던 모든 죄수들이 기도와 찬송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의 문들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고 있는 것들이 모두 풀렸습니다.

찬송을 부른 바울과 실라에게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찬송을 들었던 죄수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이 찬송할 때 찬송하는 성도들에게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찬송이 울려 퍼지는 그 지역에도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찬송을 해야 할까요?
시편 150편 1절을 읽겠습니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성소와 궁창에서 찬양하라고 합니다.

성소란 구약 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을 말합니다. 성막과 성전이 신약 시대에는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부터 찬송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몸이 성전이라고 깨우쳤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이 성전이므로 우리들이 교회에 모였을 때는 모이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떠나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됩니다. 따라서 찬송은 교회에서 시작하여 내 삶의 자리까지 확산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곧 찬송해야 할 장소라고 하겠습니다.

궁창에서 찬양하라

궁창은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찬송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찬송해야 할까요? 권능의 궁창이란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이 있는 하늘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궁창에서 찬양하라는 말씀은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나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찬양하고 교회 밖에서도 찬양해야 합니다.
이렇게 찬양이 울려 퍼질 때 그 찬양을 듣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마치 감옥의 터가 흔들리고 죄수들을 묶었던 밧줄이 풀려진 것처럼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찬송의 위력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소개합니다.

저희들이 와이스톤에서 거주할 때 어느 날 수맥을 검사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수맥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이 집이 수맥이 분명하게 지나가는데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혹시 교회에 다니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라고 대답하자 역시 그렇군요 집안에 찬송가와 성경이 있으면 수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찬송가를 집안에 놓고 있는데도 그 위력이 나타난다면 그 찬송을 부르고 그 말씀을 묵상할 때에 더 크고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소와 권능의 궁창에서 찬양하라!

성도들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찬송의 자리이며 그 찬송으로 구원의 은혜가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의 찬송을 부르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讚頌)은
기도(祈禱)는
사하심을 얻으리라
He will be forgiven.
* ἀφίημι(863, aphiémi)
to send away, leave alone, permit.
(a) I send away
(b) I let go, release, permit to depart
(c) I remit, forgive
(d) I permit, suffer.   

요한일서 1:7b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에 대한 사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을까요?
오직 성령의 도움으로 알 수 있고 깨닫게 됩니다.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But you have an anointing from the Holy One, and all of you know the truth.

요한일서 2:27a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금요찬양기도회 / 2018-10-19

 찬송의 자리(시편 150: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종교개혁자 칼빈(Jean Calvin. 1509. 7. 10∼1564. 5. 27)은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영국의 성서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 1966. 10. 28~1714)는 시편 150편을 “시편의 기록 목적을 보여주는 시” 라고 정의했습니다.

시편 1편 첫 구절은 “복 있는 사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시편 150편의 마지막 구절은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따라서 시편의 결론은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 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던 길에 귀신들려 점을 치는 여종을 만났습니다. 여종은 점을 치고 복채를 받아 주인에게 바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향하여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날을 계속하자 바울은 그 여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왔고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으므로 여종의 주인은 자기의 이익의 소망이 없어졌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를 관원에게 끌고 가서 우리 성을 요란하게 하는 자들이라고 고소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밤중 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 감옥 안에 있던 모든 죄수들이 기도와 찬송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의 문들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고 있는 것들이 모두 풀렸습니다.

찬송을 부른 바울과 실라에게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찬송을 들었던 죄수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이 찬송할 때 찬송하는 성도들에게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찬송이 울려 퍼지는 그 지역에도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찬송을 해야 할까요?
시편 150편 1절을 읽겠습니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성소와 궁창에서 찬양하라고 합니다.

성소란 구약 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을 말합니다. 성막과 성전이 신약 시대에는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부터 찬송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몸이 성전이라고 깨우쳤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이 성전이므로 우리들이 교회에 모였을 때는 모이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떠나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됩니다. 따라서 찬송은 교회에서 시작하여 내 삶의 자리까지 확산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곧 찬송해야 할 장소라고 하겠습니다.

궁창에서 찬양하라

궁창은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찬송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찬송해야 할까요? 권능의 궁창이란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이 있는 하늘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궁창에서 찬양하라는 말씀은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나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찬양하고 교회 밖에서도 찬양해야 합니다.
이렇게 찬양이 울려 퍼질 때 그 찬양을 듣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마치 감옥의 터가 흔들리고 죄수들을 묶었던 밧줄이 풀려진 것처럼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찬송의 위력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소개합니다.

저희들이 와이스톤에서 거주할 때 어느 날 수맥을 검사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수맥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이 집이 수맥이 분명하게 지나가는데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혹시 교회에 다니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라고 대답하자 역시 그렇군요 집안에 찬송가와 성경이 있으면 수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찬송가를 집안에 놓고 있는데도 그 위력이 나타난다면 그 찬송을 부르고 그 말씀을 묵상할 때에 더 크고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소와 권능의 궁창에서 찬양하라!

성도들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찬송의 자리이며 그 찬송으로 구원의 은혜가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의 찬송을 부르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1. 내 삶의 자리가 찬송으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2. 뉴욕의 모든 교회들을 통하여 찬송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3.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찬송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15

로마서 1:1∼32

믿음으로 살리라(17절)


♦ 1월 15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1∼32
♦ 오늘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으로 살리라(17절)
♦ 성구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 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씀을 어떻게 나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예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미국의 부흥 사였던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는 그대 자신을 믿어 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 친구를 믿어 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해어질 것이다.


셋째는 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후회(後悔)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누가복음 8:24∼25)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가 어디 있느냐?

후회 없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15일(수)
나의 묵상 노트
믿음으로 살아봅시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난관(難關)을 극복해 나아가려면 지혜, 애국심, 기독교 정신 등이 절대 필요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이 나라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 주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것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가정을 천국으로 회복하는 것도 믿음의 가족들입니다.
어지러운 때에 믿음으로 질서를 세우며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16

로마서 2:1∼29

마음의 할례(29절)


♦ 1월 16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2:1∼29
♦ 오늘 묵상을 위한 주제 : 마음의 할례(29절)
♦ 성구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아멘 

할례(割禮)는 육체 즉 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할례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생각을 바꾸는 것이 마음에 할례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종교 개혁자 칼빈은 “우리의 문제는 교회에서 돈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서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듣고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다면 제일 먼저 변화가 있어야 할 삶의 영역 중의 하나가 ‘돈(物質)의 사용처’ 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생활은 우리의 가치관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영역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고,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게 나 자신을 드리고 싶다고 할 때 그의 헌금 생활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헌금’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어느 정도로 헌신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하는 자세를 보면  주님을 향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헌금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응답입니다.

파트리스교회의 헌금에 대한 신앙적인 고백을 소개합니다.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
감사는 성도의 생활!
선교와 성도의 사명!
구제는 성도의 헌신!

이와 같은 신앙적인 자세로 물질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할례를 실천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16일(목)
- 나의 묵상 노트
마음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The Heart) 

할례는 태어난 후 팔일 만에 남자 아이의 성기 표피를 잘라내는 의식입니다. 할례의 유래를 알려주는 말씀에 의하면(창 17:9∼14)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요구하신 언약의 증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겠다는 언약을 하셨는데 그들은 할례로써 그 언약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언약을 크게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할례의식을 통해 자동으로 하나님의 백성(자녀들)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할례의식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할례는 "무효(無效)"라고 선언합니다. 할례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겠다는 서약이라고 합니다(롬 2:25 참조). 

육체의 할례는 유대인의 증거라고 한다면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사람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의롭게 됩니다(칭의 단계).
의롭게 된 사람은 거룩하게 성화되어야 합니다(성화 단계).
성화된 후에는 온전하게 하는 사랑의 단계로 성숙해야 합니다(완전 단계).

할례의 참된 의미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겠다는 서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죄에 물들어 있어 율법을 온전히 지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할례 의식에 주목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 행하는 할례’ 입니다. 이 할례는 율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온전히 살아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마음의 할례를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할례 사건의 첫 단계, 칭의

마음의 할례는 먼저 참된 회개에서 출발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어떤 일을 잘못했다’ ‘저지른 잘못을 후회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보다 훨씬 깊은 차원의 의미를 갖습니다. 참된 회개는 다음 세 가지 내용들을 포함하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판단’입니다. 이는 곧 자신이 지닌 부패한 본성을 철저하게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자기자신에 대한 그릇된 평가, 즉 교만을 의미합니다. 이 교만은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헛된 욕망’과 동일한 것으로 사탄의 형상입니다. 여기서 ‘나는…이다”라는 헛된 망상, 달리 말하면 ‘아집’이 만들어 집니다(계 3:17). 회개는 바로 이 같은 우리의 실상, 곧 ‘비참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둘째는 ‘이런 상황에 처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부패한 본성을 목도하면서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변화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죄에 죄를 더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실상을 명확히 알고 있기에 세상 사람들이 칭찬하거나 심지어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해도 마음을 팔거나 귀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셋째는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의 실상을 분명히 알게 되면, 또한 자기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부터 벗어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은총 가운데 예비하신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죽음의 문 앞에서 죽음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렇게 진실로 회개하는 자는 하늘이 멀지 않습니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진실로 회개 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영적 세계에 눈 멀어 있던 이에게 빛과 같습니다. 눈먼 자에게 갈 길을 알려주며,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춰주며, 어리석은 자에게 진리를 깨우쳐 줍니다. 부패한 본성에서 만들어진 편견과 이 세상 위에 터 닦은 어리석은 지혜(고전 1:20)를 단번에 허물어뜨리는 강력한 무기인 것입니다. 참된 진리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온갖 망상과 장애물들을 쳐부수고 참된 진리의 근원 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이 믿음은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 오셨다는 사실(딤전 1:15)과 우리 죄를 자신의 몸에 온전히 지우신 사실(벧전 2:24), 그리고 우리 죄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요일 2:2)을 밝히 드러내고 확신케 합니다. 곧, 죄인인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대한 거룩한 확신이며 성령으로서 우리 가운데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게 하고 확신케 합니다. 이 인식과 확신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는 내 안에서의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은 죄의 사슬에서 해방됩니다. 죄 사함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게 됩니다.

마음의 할례 사건 둘째 단계, 성화

마음의 할례의 첫 단계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의롭게 되는 칭의의 단계라면, 두 번째 단계는 실제로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변모되는 성화의 단계가 할 수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 복음을 믿어 의롭게 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선물, 곧 성령을 부으십니다. 성령이 임할 때 우리 영혼은 거룩하게 변화되어 실제로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데 이 일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는 그 자신의 영이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게 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끊임 없이 그 영과 더불어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해 그들이 생명의 길을 걷고 있음을 확증해 주기 때문에 그들은 소망을 품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 가게 됩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영광의 면류관을 준비해 두셨다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늘을 온전히 누릴 때까지 그 어떤 도전이나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먼 대양을 내다 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순간순간 일렁이는 파도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묵묵히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교만과 아집이 만들어내는 허상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속적인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합니다. 어둠의 행위를 피하고 모든 부정한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갈 뿐입니다. 이 길은 한 순간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눅 9:23) 날마다 행합니다. 자기의 옛 의견, 정열, 기질을 제거하여 흠 잡힐 것이 없도록 영과 혼과 몸을 완전히 순결케 해 가는 자기 부정의 삶을 늘 살아 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 성화의 삶을 사는 삶의 샘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약한 자가 되었고 모욕을 당했으며 궁핍과 박해와 곤궁을 기뻐했습니다(고후 12:10). 그는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며 앞에 놓인 면류관의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목표를 향해 달음질했던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 사건 셋째 단계, 완전

마음의 할례 사건의 세 번째 국면은 ‘완전’의 단계입니다. 이 완전의 단계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즉, 완전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가장 중심적인 특징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완전에 이른 자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드릴 사랑을 결코 다른 피조물과 나누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마음으로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을 행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행합니다(고전 10:31). 그런데 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이웃을 향하게 됩니다. 사랑이 지닌 속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본질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최고 강령이요, 율법이 성취되는 길입니다.

마음의 할례와 믿음의 길

할례의 참된 의미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겠다는 서약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죄에 물들어 있어 율법을 온전히 지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할례의식에 주목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 행하는 할례’입니다. 이 할례는 율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온전히 살아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요. 

결론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는 의미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죄로 물들어 본래적인 의로부터 이탈되어 부패하고 육신적 생각으로 가득 차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않는 자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끊임없이 심판의 위협 속에서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나아가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자기에게 전혀 없음을 인식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예비하신 복음의 은총에 주목합니다. 그는 기꺼이 복음을 믿습니다. 자연적 인간의 시각을 버리고 믿음의 눈으로, 다시 말해 하나님 안에서의 시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믿음의 길을 통해서 경험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의 영과 함께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롬 8:16). 그러므로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상과 면류관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 할 것을 바라면서 기뻐합니다(롬 5:2). 현재의 수고나 환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앞에 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는 점점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육체와 혼과 영혼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은 또한 우리의 이웃을 향합니다. 그들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마음의 할례 받은 자의 발걸음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으십시오. 육신의 할례가 아닌 심령 안에 이루어지는 할례를 받으십시오. 새롭게 된 혼과 마음과 영의 올바른 상태가 회복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십시오. 마음과 삶이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아 아버지께서 온전한 것처럼 온전하게 되십시오. 풍성한 하늘나라의 삶을 누리십시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17

로마서 3:1∼31

믿음으로 얻는 의(28절)


♦ 1월 17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3:1∼31
♦ 오늘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으로 얻는 의(28절)
♦ 성구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아멘  

“의(義, δικαιόω, 디카이오오, dikaioó)”란 사람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은 “의(義)”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義)”는 믿음에 의한 것을 강조합니다.

알렉산더 왕에게 아주 충성(忠誠)스러운 의사가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의사를 시기(猜忌)하여 어떻게 해서든 그 의사를 곤경(困境)에 빠뜨리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왕이 마시는 컵에 그 의사가 독약(毒藥)을 넣을 것이라는 거짓 편지(便紙)를 써서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왕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편지를 읽어주면서 자신이 의사를 믿고 있다는 표시로 컵에 들어 있는 물을 단숨에 마셔버렸습니다. 의사에 대한 알렉산더 왕의 믿음은 순수하고 전폭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도 알렉산더 대왕처럼 의사에 대한 신뢰와 같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놀라운 힘을 발휘(發揮)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브리서  11:6).

예수님께서는 때로는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책망하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스라엘에 이와 같은 믿음을 본 자가 없느니라.” 라고 격찬했습니다.

과연 큰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이 아닐까요?
그보다 더 큰 믿음은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며 기쁨으로 고난도 감사하게 받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고난을 견디는 것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누렸을지라도 마지막 날에 믿음이 없는 자라고 책망 받는다면 세상의 것은 분명히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17일(금)
- 나의 묵상 노트
믿음으로 얻는 의(義)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의로운 사람 열 명을 찾는다고 합니다.
만일 열 명의 의로운 사람이 없으면 소돔과 고모라 성은 불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의로운 사람을 찾았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열 명의 의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을 찾는 이솝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날 이솝의 주인은 “얘, 이솝아! 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오너라.”

이솝은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목욕탕 문 앞에 돌이 박혀있었는데 목욕탕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 또는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잇, 빌어먹을!” 하며 돌을 향해 욕을 하거나 불평하며 지나갔습니다.

이솝은 저 돌을 누가 치울까 궁금해 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어떤 사람이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웬 돌이 여기 박혀 있나!” 하며 그 돌을 뽑아냈습니다. 그리고 손과 옷을 훌훌 털어버리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솝은 그제야 일어나 집으로 달려가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인님! 목욕탕 안에 단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의로운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운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의(義, δικαιόω)란 ‘내가(我)’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羊)’과 같은 길을 외면하지 않고 그 길을 즐기며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찾아다닐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의롭다 칭함을 받은 성도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너희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향하여 말씀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사람 열 명을 찾아오너라!”

주님이 찾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자원(自願)할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시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주께서 찾는 믿음보다
나를 드러내는 믿음으로
떳떳하게 살아왔어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여,
바른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 세워갈
그 믿음의 길만 걷게 하소서.


의(義, δικαιόω. 1344. 디카이오오, dikaioó)
정의(Definition) : to show to be righteous, declare righteous.
적용(Usage) : I make righteous, defend the cause of, plead for the righteousness (innocence) of, acquit, justify; hence: I regard as righteous.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18

로마서 4:1∼25

예수(25절)


♦ 1월 18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4:1∼25
♦ 오늘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25절)
♦ 성구 :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멘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내어 줄 때 죄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을까요?
먼저 죄(罪)란 “서로 사랑하던 사람이 등을 돌린 형상을 문자화 한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할 때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을 때는 등을 돌려버립니다. “죄(罪)”란 한자는 등을 돌린 상태를 형상화하여 만든 문자라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사하심(용서, 容恕)(로마서 4:7)
둘째는 가리우심(도말, 塗抹)(로마서 4:7)
셋째는 인정하지 않음(망각, 妄覺)(로마서 4:8)
넷째는 간과하심(간과, 看過)(로마서 3:25)

“속에 육조판서가 들었으면 무엇 한다더냐?”
학식이 아무리 풍부하다해도 덕행이 없으면 그 학식이 쓸모없다는 속담입니다.

채근담에 “덕(德)은 재능의 주인이요, 재능은 덕(德)의 종이다. 그러므로 재능만 있고 덕(德)이 없음은 마치 집안에 주인이 없고 종이 일을 휘두름 같아서 어찌 도깨비가 날뛰지 않겠느냐” 하며 재덕(才德)을 겸비하기를 강조했습니다.

성경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 자기 유익만을 챙기고 사랑은 손톱만큼도 없는, 차기는 얼음장같은 신자라면 참 신앙인이 아니겠지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습니다(롬 3:28).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행하기 위한 것입니다(마 7:21).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이 겸비될 때 바람직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A. W. 토저의 “영적인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영적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갈망은 생명을 주며, 또 절제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사실에 있어서 어느 것이 중요한지 순서를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편의상 아래와 같이 구분해 봅니다.

1. 행복해지는 것보다 거룩하고자 하는 것이다.
2. 자신에게는 일시적으로 불명예나 손실이 올지라도 자기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영적인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기 원하는 사람이다.
4. 또한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견해대로 보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사람이다.
5. 영적인 사람은 잘못 살아가기 보다는 바르게 죽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6. 한편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은 자기가 큰 대가를 지불해도 다른 사람이 성장하며 믿음에서 진보되기를 바란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 가운데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되어진다.

아무도 스스로 영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으며 오직 성령께서 자유롭게 움직이시어야 영적인 그리스도인을 만드실 수 있는 것이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18일(토)
- 나의 묵상 노트
오직 예수(Only Jesus Christ)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살아계신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는 새를 보세요.
죽은 새는 날지 못합니다.

어항속의 물고기를 보세요.
죽은 물고기는 헤엄치지 못합니다.

붉게 물든 단풍을 보세요.
죽은 나뭇잎은 물들지 않습니다.

질주하는 말을 보세요.
죽은 말은 달릴 수 없습니다.

해맑은 어린이의 웃음을 보세요.
죽은 아이는 웃지 못합니다.

아름답게 핀 꽃을 보세요.
죽은 식물은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주렁주렁 열린 사과를 보세요.
죽은 사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한결같이 움직이는 것이고,
죽어 있는 것들은 한결같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체(屍體)라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살아 있으면 움직이고 꿈틀대며
활동하지만 죽어있다면 활동이 없는 시체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말은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말은 기상(뜻)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말은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말은 기쁨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말은 미래가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일을 하지 않고,
의미 없이 살며,
희망이 없으며,
기쁨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나
산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오늘도 생명력을 갖고
이 세상을 흔들어 깨워 봅시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0

로마서 5:1∼21

오실 자의 표상(14절)

1

21

로마서 6:1∼23

은혜 아래 거하라(14절)

1

22

로마서 7:1∼25

나는 곤고한 사람(24절)

1

23

로마서 8:1∼39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5절)

1

24

로마서 9:1∼33

약속의 자녀(8절)

1

25

로마서 10:1∼3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13절)

1

26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0

로마서 5:1∼21

오실 자의 표상(14절)


♦ 1월 20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5: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오실자의 표상(14절)
♦ 성구 :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멘 

“오실자의 표상(表象)(a pattern of the one to come)” 이란 ‘오실 자의 모형(模型)’을 말합니다. 아담을 오실 자(메시아)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할까요?
오실 자 즉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윌리엄 페더(William Feather)”의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이 소년 시절에 5달러짜리 지폐를 길에서 주웠다고 합니다.
어릴 때 5달러짜리 지폐를 주웠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항상 길바닥만 보고 다녔다고 합니다.

일생 동안 길바닥만 바라보며 그가 주운 것들은 “단추 29,519개”, “머리핀 54,172개” 그리고 “수천 개의 동전” 뿐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줍느라고 일생 동안 하늘과 구름 그리고 꽃과 새와 자연과 아름다움을 볼 기회가 없었으며 그의 허리는 굽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볼 수 없다면 이 세상에서는 낙오자와 같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즐거움도 누리지 못했고 더구나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오실 자의 표상이 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하늘로 올라가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시다.

오실자의 표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믿음의 대장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0일(월)
- 나의 묵상 노트
오실 자의 표상(a pattern of the one to come)

표상(表象)이란 헬라어는 “투포스(τύπος)” 라고 합니다.
‘투포스’란 “모양(figure), 모델(model), 유형(type)”이란 뜻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마지막 아담 예수의 표상이었습니다.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다시 오실 표상입니다.
예수보다 더 높은 하나님 없도다!
예수보다 더 깊은 사랑도 없도다!
예수보다 더 강한 생명도 없도다!

예수 계신 곳에는 참이 있구나!
예수 계신 때에는 선이 있구나!
예수 계신 일에는 빛이 있구나!

헐벗어도 예수라면 따뜻하오!
굶주려도 예수라면 배부르오!
목말라도 예수라면 시원하오!
알고 싶은 것 예수요!
보고 싶은 것 예수요!
되고 싶은 것 예수로다!

예수만 닮았으면 한다오!
예수처럼 살아봤으면 한다오!

오! 예수
주 예수여,
나를 잡아주소서
그 강한 손으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1

로마서 6:1∼23

은혜 아래 거하라(14절)

♦ 1월 2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6: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은혜 아래 거하라(14절)
♦ 성구 :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아멘  

은혜 아래 거한다는 것은 "예수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은혜의 원천(源泉)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아래 거하는 사람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스페인의 귀족 출신 "이냐시오(Ignatius de Loyola, 1491∼1556)"는 "타는 불"이란 뜻이란 이름입니다. 그가 이단자라는 혐의로 투옥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의 불행을 동정했습니다. 그러자 '이냐시오'는 '불행이라니요?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쇠사슬에 묶이게 되는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하여 묶이고자 하는 만큼의 많은 쇠사슬과 족쇄가 이 살라만카에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괴로움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신앙의 가장 훌륭한 표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삶이 "은혜 아래 거하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기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 주님,
저의 자유를 모두 드리오니
당신 마음대로 하소서.

저의 생각과 이해력,
저의 모든 의지를 받으소서.


제가 가진 것은 모두
당신께서 저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제 당신께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도로 돌려드려

당신께 맡깁니다.
그러하오니,
당신의 뜻대로 처리하소서.


저에게는 오직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함께 주소서.

그러면 저는 충분하게 가져

다른 것을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1일(화)
- 나의 묵상 노트

은혜 아래 거하라!

로욜라는 예수회의 창시자라고 합니다.
예수회를 설립하게 된 신앙적인 체험을 소개합니다.

카르도나 강가에서 이냐시오는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화해했다는 개인적인 확신이었으며,
구원에 대한 두려움과 조바심 때문에 자기 죄를 쉴새없이 고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자비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냐시오는 날마다 행하던 단식을 멈추고,
피가 튀어오를 때까지 채찍으로 제 몸을 매질하던 짓을 그만 두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능력을 봉헌하기로 결단합니다.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온 이냐시오는 33살의 늦은 나이였지만
더 효과적인 봉사를 위해서 바르셀로나, 알칼라, 살라망카 등지에서
문법, 철학,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군인의 주보이자 만학도의 주보성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편 이냐시오는 틈틈이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자신의 고유한 길을 걸어 하느님을 찾아가는 영성수련을 지도했습니다.
아직 학생 신분으로 설익은 지식을 전하다 보니,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양심은 크게 자극을 받았으며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전환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냐시오는 동냥으로 학비를 마련해서 공부를 계속 하였는데,
교회당국의 입장과 달리 그의 영성수련은 동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것이어서
1534년에는 그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성당에서
서원까지 하게 됩니다.

이게 실마리가 되어 ‘예수회’(Jesuit)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1537년에는 다른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사제서품까지 받았으며,
1940년에는 교황 바오로 3세가 예수회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예수회의 수도사들의 삶의 원칙을 살펴봅니다.
수도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먼저 가난해야 하며,
영예로운 자리를 탐하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어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회원들은 자신의 부르심에 어울리게 겸손한 자세로
세상과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로욜라는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당신의 동료를 우리 가운데서 개별적으로 찾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전부를 차지하는
그런 사람을 찾는다고 합니다.

개혁교회가 너무 부요하다고 자랑 할 만큼 비대해졌습니다.
이제는 철저하게 낮아짐과 겸비의 삶을 추구하는
예수회의 삶을 본받을 신앙적인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60년대 어렵던 시절에 목회자의 한 달 사례비는 한 달을 겨우 지탱할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한 달 사례비로 몇 개월 이상을 지탱할 수 있는 많은 금액이 되었기에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어느 신학대학의 진솔한 고백을 생각하며 모든 교회와 지도자들이 스스로 낮아질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2

로마서 7:1∼25

나는 곤고한 사람(24절)

♦ 1월 2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7: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나는 곤고한 사람(24절)
♦ 성구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아멘

당신은 곤고(困苦)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피곤(疲困)한 사람입니까?

피곤이란 마음과 몸이 지쳐서 고달프다는 뜻입니다(tired man).
곤고하다는 말은 어렵고 고생스럽다는 뜻입니다(wretched man).

로마서 6장은 죄와 육체의 관계에 대한 결론으로 “죄의 삯은 사망(The wages of sin is death)” 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은 죄와 정신의 관계에 대한 결론으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What a wretched man I am!)” 이라고 탄식합니다.

곤고한 사람이란 “내 힘으로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선언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큰 죄와 작은 죄를 구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죄인이며 작은 죄를 지은 사람도 죄인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골”은 “가장 심각한 죄는 절망”이라고 합니다.
이 절망을 일컬어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절망을 의미합니다.
죄를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이 절망 즉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셨나요?
어떻게 찾으셨나요?

사망의 몸에서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찾으셨다면 이제는 지체하지 말고 그 방법을 빨리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할 일군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까?
영의 눈을 떠서 길을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에 앞장 설 수 있는 일군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시다.

주여!
보내주소서
찾게 하소서
만나게 하소서
전하게 하소서
빛나고 아름다운
광명의 세계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2일(수)
- 나의 묵상 노트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곤고한 사람의 특징은 아직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곤고한 자리에서 벗어나려면 알아야 합니다.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배움의 동물” 이라고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요람) 죽을 때까지(무덤) 인간은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 속에 있고
감사는 만족 속에 있으며
만족의 나무에 감사의 꽃이 피고
감사의 꽃에 행복의 열매가 열린다고 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정신적인 만족감”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곤고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장 쉽고 가장 좋은 방법에 따라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3

로마서 8:1∼39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5절)


♦ 1월 23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8:1∼39
♦ 묵상을 위한 주제 :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5절)
♦ 성구 :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아멘 

영(靈)의 특징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肉)의 특징은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난감 오뚝이를 던져보셨는지요?
오뚝이는 던지기만 하면 반듯하게 일어섭니다.
무게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과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의 조화를 잘 갖춘 사람은 오뚝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중심이 분명한 사람은 어떤 소리를 해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심이 서지 않은 사람은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죄인(罪人)은 죄(罪)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는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대한 깊은 고민 가운데서 놀라운 진리를 깨달은 사도 바울의 통찰력을 생각해 봅니다.

죄는 육체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로마서 6:23).
죄는 정신을 황폐하게 합니다(로마서 7:24).
그러나 죄를 해결한 후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게 하셨습니다(로마서 8:2).

죄와 사망의 법에 붙잡혔던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容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하는 요소들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은혜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나의 주머니와 행복과 명예와 소원과 “나”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었습니다.

“나”라는 울타리를 털어버리고 “우리”라는 용서와 은혜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중심에는 영(靈)이 있습니다.
영의 자리를 오직 예수로 채워 세상을 바라 볼 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던 모습을 회복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3일(목)
- 나의 묵상 노트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은 절망과 사망입니다.
영의 생각은 소망과 생명입니다. 

탈무드에 소개된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자기의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감사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한 우루과이 어느 성당의 벽에 새겨진 “반성하는 주기도문” 이란 기도를 소개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아라.
죄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육의 생각으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영의 생각으로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합시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4

로마서 9:1∼33

약속의 자녀(8절)


♦ 1월 24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9: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약속의 자녀(8절)
♦ 성구 :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아멘 

말씀을 “씨앗”으로 비유합니다.
씨앗이 뿌려지는 땅은 “좋은 땅” 이외에도 “길가” “가시밭” “돌밭”에 떨어집니다.
약속의 자녀는 말씀을 “좋은 땅”에 심어야 합니다.
좋은 땅이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씨앗이 최상급일지라도 좋은 땅으로 다듬어지지 않는다면 씨앗은 자랄 수도 없습니다.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땅을 회복하기 위하여 “Peter Lives” 라는 미국 신학자이자 작가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소개합니다.

돈으로 사람(person)을 살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의 마음(spirit)을 살수는 없다.

돈으로 호화로운 집(house)을 살수는 있어도 
행복한 가정(home)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최고로 좋은 침대(bed)는 살 수 있어도 
최상의 달콤한 잠(sleep)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시계(clock)는 살 수 있어도 
흐르는 시간(time)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얼마든지 책(book)은 살 수 있어도 
결코 삶의 지혜(wisdom)는 살 수 없다.


돈으로 지위(position)는 살 수 있어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respect)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좋은 약(medicine)은 살 수 있어도 
평생 건강(health)은 살 수 없다.


돈으로 피(blood)는 살 수 있어도 
영원한 생명(life)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섹스(sex)는 살 수 있어도 
진정한 사랑(love)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쾌락(pleasure)은 살 수 있으나 
마음속 깊은 곳의 기쁨(delight)은 살수 없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food)은 살 수 있지만 
마음이 동하는 식욕(appetite)은 살 수 없다.

 

돈으로 화려한 옷(clothes)은 살 수 있으나 
내면에서 우러난 참된 아름다움(beauty)을 살수는 없다.


돈으로 사치(luxury)를 꾸리면 살수는 있으나 
전통어린 문화(culture)를 살수는 없다.


돈으로 고급품(articles goods)을 살수는 있으나 
아늑한 평안(peace)을 살수는 없다.


돈으로 미인(beauty)을 살수는 있으나 
정신적인 평화로움(stability)은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성대한 장례식(funeral)을 치를 수 있지만 
행복한 죽음(glorious death)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종교(religion)는 얻을 수 있으나, 
소망하는 구원(salvation)은 얻을 수 없다.

 

돈은 일상생활에 절대 필요하고 편리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생활의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은 결코 아닙니다. 
돈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만 가지고는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것은 살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좋은 땅을 만드는 비결이라고 하겠습니다.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난 것을 가지려는 욕심과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도 좋은 땅을 다듬어 말씀의 씨앗을 뿌려 열매를 맺기까지 수고하는 일에 기쁨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4일(금)
- 나의 묵상 노트
약속의 자녀로 살아갑시다!

신앙생활은 교회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반드시 교회 중심으로만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교회주의(敎會主義)”라고 합니다. ‘교회주의’란 “교회를 위한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敎會)는 건물(建物) 즉 예배당(禮拜堂)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는 한 사람(個人)으로 시작합니다.
개인(男子)과 개인(女子)이 만나서 가정(家政)을 만듭니다.
가장 교회다운 교회는 가정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성 가정(聖 家政)을 회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도 신앙생활은 전개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지 교회를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모험과 도박이라고 정의한 철학자는 ‘파스칼’입니다.
신앙이란 마치 내 생명과 전 인격을 건 도박(賭博)과 같습니다.
만일 잃어버린다면 자아 전체가 ‘무(無)’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얻게 되면 자아는 물론 ‘영원한 천국의 삶’을 얻게 됩니다.
약속의 자녀를 약속의 씨라고 합니다.
약속의 씨가 반드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진리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씨앗을 뿌릴 때 좋은 열매를 기대하고 밭에 뿌립니다.
그런데 원수가 좋은 열매를 얻지 못하게 하려고 비슷한 씨를 몰래 밭에 뿌렸습니다. 몰래 뿌린 씨앗이 밭에서 더 잘 자라고 성장합니다. 열매를 맺는 때까지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씨는 진리의 열매를 맺습니다.

약속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과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일어나서 새로운 삶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성령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5

로마서 10:1∼3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13절)


♦ 1월 2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0: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13절)
♦ 성구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아멘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와 같습니다(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견고한 망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견고한 망대(Strong Tower)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로마서 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하시고 변호해 주십니다(시편 54: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한국인의 습성은 어떤 위기를 만났을 때 “아이구 하나님!” 또는 “아이구 어머니!” 라고 외칩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한국인의 습성에서 생각해 봅니다.
“아이구 하나님!”
하나님을 찾을 줄 아는 백성은 무너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견곤한 망대가 되신 하나님께서 든든하게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명절 설날을 맞이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열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을 세 단어로 표현한 영어 단어를 소개합니다.
“hurry, worry, bury”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인생은 허둥지둥 서두르다가, 근심하던 중에 결국은 땅 속에 묻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인생은 땅속에 묻힐지라도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땅 속에 묻히는 인생이 아니라 반드시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날을 맞아 우리 모두 예수 위에 세워지는 견고한 삶이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5일(토)
- 나의 묵상 노트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스도의 영혼(Alma de Christo)”

그리스도의 영혼은 저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구원하소서.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취하게 하소서.

그리스도 늑골의 물은 저를 씻어주소서.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에게 힘을 주소서.

오 선하신 저의 예수니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의 상처 속에 저를 숨겨주시고

당신을 떠나지 않게 하시며

사악한 원수에게서 지켜주소서.

제가 죽을 때에 불러주시어

당신께 오라 명하시고

당신의 성인들과 더불어

영원토록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리스도의 영혼의 도움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의 이름 부르리라
설날의 기쁨과 더불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설날의 기쁨을
영원한 기쁨으로 만들어 갑시다.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WHOEVER WILL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whosoever shall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shall be saved. 

“그리스도의 영혼(Alma de Christo)”

Alma de Cristo, santifícame.
그리스도
의 영혼은 저를 거룩하게 하소서.


Cuerpo de Cristo, sálvame.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구원하소서.


Sangre de Cristo, embriágame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취하게 하소서.


Agua del constado de Cristo, lávame.

그리스도의 늑방의 물은 저를 씻어주소서.


Pasión de Cristo, confórtame.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에게 힘을 주소서.


Oh mi buen Jesús, óyeme!

오, 선하신 저의 예수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Dentro de tus llagas, escóndeme.

당신의 상처 속에 저를 숨겨주시고


No permitas que me aparte de Ti.

당신을 떠나지 않게 하시며


Del maligno enemigo, defiéndeme.

사악한 원수에게서 지켜주소서.


En la hora de mi muerte, llámame.

제가 죽을 때에 불러주시어


Y mándame ir a Ti

당신께 오라 명하시고


Para que con tus santos te alabe

당신의 성인들과 더불어


Por los siglos de los siglos. Amén

영원토록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은혜란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것도 감사한 믿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것입니다.

오늘도 은혜 아래 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아래에서.............

1월 29일(주일) 예배 안내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편 119:18)
Open my eyes that I may see wonderful things in your law.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해야 하는지 주저하고 망설였던 경험은 없었는지요?
물론 예배하는 은혜로운 교회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요?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에 교회에 가지 않으면 무슨 화(禍)를 당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는지요?

예배는 장소(禮拜堂)가 아니라 사람이 우선입니다.
진리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될 때 예배는 바르게 드려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갇혀버린 예배가 아니라 먼저 내 안에 거하시는 주의 영의 지배를 받아 주님이 기뻐하는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자가 됩시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주일에 왕과 그의 왕족들이 교회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왕실 설교자인 “프넬론 대주교”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회의 많은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왕은 “모든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습니까? 왜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출석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프넬론 주교’는 루이 14세에게 “저는 폐하께서 오늘 이곳에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광고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누가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는지 아니면 단지 폐하께 아첨하러 오는지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왕의 눈도장을 찍으러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왕이 오늘 출석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대부분 교회를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예배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둘째는 예수 기쁨을 찾는 예배자가 됩시다!

미국의 어떤 흑인 농부가 동부의 도시생활에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당시 희망이 넘치는 서부 개척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마차를 타고 가다보니 교회당에서 종이 울립니다. 그 때야 주일인 줄 알고 교회당 밑에다 마차를 세워 놓고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교회당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때 안내위원이 “여기는 백인만을 위한 교회당입니다. 흑인은 못 들어갑니다.” 라면서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가족은 교회 옆 창이 있는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교회당 안에서 들리는 인도자의 소리를 따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인자한 눈빛으로 자기 가족들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흑인은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흑인이 아닌데 왜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 분은 대답합니다. 
“오, 신실하고 착한 나의 아들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이니라. 이곳 마을에서 나를 찾고 내게 진정 예배드리는 이는 너희뿐인데 왜 저곳으로 들어가겠느냐? 저 곳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안내하는 자가 나를 가로 막고 있구나!”

예수님이 없는 예배가 화려하고 아름답게 진행된다는 것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기쁨을 회복하는 예배를 기도합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예배당에서 최고의 찬양대, 최고의 명 설교와 함께 드려지는 예배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해 드리지 않는다면 참된 예배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개척교회에서 몇 명이 모여서 드리는 초라한 예배라도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함을 깨닫는 예배자로 거듭나는 은혜가 임하여 예수 기쁨을 회복하는 예배자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7

로마서 11:1∼36

이방인의 사도(13절)

1

28

로마서 12:1∼21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1

29

로마서 13:1∼14

사랑은 율법의 완성(10절)

1

30

로마서 14:1∼23

하나님 나라의 요소(17절)

1

31

로마서 15:1∼33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29절)

2

1

로마서 16:1∼27

지혜의 자리와 악의 자리(19절)

2

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7

로마서 11:1∼36

이방인의 사도(13절)


♦ 1월 2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1:1∼36
♦ 묵상을 위한 주제 : 이방인의 사도(13절)
♦ 성구 :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아멘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4)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로마서 16:26b)

복음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유대인 즉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성도들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둘째는 이방인 즉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채워질 때까지 이스라엘은 더러 완악하게 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25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저럴까?
교회가 왜 저럴까?

이런 비난의 소리가 믿지 않는 자들을 도외시 하려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을 자극하여 먼저 믿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로마서 15:21).

“늦게 배운 도적질이 무섭다!”고 합니다.
먼저 믿은 사람보다 늦게 믿은 사람이 먼저 믿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그러므로 오래 믿었다는 시간과 날수의 자랑이 아니라 열심히 뜨겁게 간절하게 진실하게 믿었다는 내용을 자랑할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래 믿었다는 시간과 날수의 전통(傳統)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변화(變化)의 힘을 잃어버린 전통을 고집(固執)할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지킬 수 있도록 단점(短點)을 수정(修正)하고 장점(長點)을 장려(獎勵)하여 새로운 힘을 발휘(發揮)하여 교회 안에 속한 성도들과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의 손을 잡고 다 함께 주님 나라를 세워갈 수 있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성전 한 모퉁이에서
부끄러운 삶을 읊조리는 세리처럼
내세울 것 없는
온전하지 못한 지난날의 신앙을
모두 내려놓고
성령의 사랑에 붙잡혀
이방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복음의 사람으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7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소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 입니까?
아니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 입니까?

복음을 전하려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복음의 울타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넓혀지고 있습니까?

서구사회 전통은 전체 인구의 20%가 기독교인 이라면 그 나라를 “기독교국가”라고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가 25%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기독교 인구가 늘어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울타리를 넓히려면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소금에 비유한다면 전체 국민의 25%가 소금이 되었습니다. 만일 25%의 소금을 물에 녹이면 그 물은 너무 짜서 도저히 마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구석구석 부패했다고 탄식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교인들은 전혀 부패하지 않았을까요?

교회와 교인들이 먼저 부패했기 때문에 세상은 자연스럽게 부패한 것이 아닐까요?

소금의 맛을 잃어버린 기독교인들이 25%라는 수치적인 효과만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는 부정과 부패 심지어 좌경화(左傾化) 되고 말았습니다.

이방인의 전도자로 거듭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개혁교회가 세워졌습니다(1517년 10월 31일).
한국의 기독교 원년(元年)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이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되고 125년이 지났습니다.
125년 만에 한국의 기독교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부패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교회 개혁과 더불어 성도들의 신앙개혁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끼리 만나서 수다를 떨고 마음에 맺힌 한풀이 하는 이야기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맺힌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이방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믿음 기도합니다.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8

로마서 12:1∼21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 1월 28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2: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 성구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아멘

성경은 선(善)을 양에 비유하고, 악(惡)을 이리에 비유합니다.
양과 이리가 싸우면 이리가 이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힘이 없는 선이 강한 힘을 갖는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뱀같이 지혜(知慧)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純潔)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0:16).

지혜(知慧)와 순결(純潔)은 양이 이리 가운데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강한 힘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까요?

악한 방법과 선한 방법은 분명히 그 과정(課程)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방법은 일시적으로 이길 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선한 방법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방법보다 더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방법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갈 때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을 “바야 콘 디오스(Vaya con Dios)” 라고 합니다.

스페인에서는 잠시 헤어질 때 “아디오스(Adios)”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먼 길을 떠날 때는 “바야 콘 디오스(Vaya con Dios)” 라고 말합니다.
‘바야 콘 디오스’는 “하나님과 함께 가라(Go with God)”는 뜻입니다.

주의 백성들은 선한 방법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선한 방법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은 악한 방법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2020년 설날을 지내며 다시 한 번 더 다짐해 봅니다.
“바야 콘 디오스(Vaya con Dios)”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8일(화)
- 나의 묵상 노트
♦ 선(善)으로 악(惡)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정치(政治)와 기독교(基督敎)의 목표(目標)는 이기는 것입니다.
정치는 이기기 위하여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기기 위하여 모든 과정(科程)은 반드시 선(善)해야 한다고 주장(主張) 합니다. 그 과정을 선(善)으로 악(惡)을 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인간의 힘은 한계(限界)가 있습니다.
제한된 힘으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새로운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힘은 성령(聖靈)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정말 선으로 악을 이기려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성령의 도움을 기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없는 연약한 나와 같은 사람이 그 힘을 지원받아 끝까지 이기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을 수단(手段)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目的)으로 대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때로는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기독교 복음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인격(人格)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혼탁(混濁)하고 어지러운 현실(現實)에서 오직 사람을 살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는 주님의 나라 주님의 백성들이 도처(到處)에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위기 가운데 있고, 그 위기의식이 기독교인들마저도 극단적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지금만 위기를 겪은 것은 아니며, 위기가 항상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은 회개와 구원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새 시대를 열어가기에 합당한 구별된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반도가 신라, 고려, 조선, 한국 등으로 변모하는 역사의 과정 속에서 한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면서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역사는 계속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왔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망하게 하신다면 막을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살리신다면 죽일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 자부했던 이스라엘도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고,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국가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29

로마서 13:1∼14

사랑은 율법의 완성(10절)


♦ 1월 2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3:1∼14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랑은 율법의 완성(10절)
♦ 성구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아멘  

율법을 완성하는 비결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라(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빚지다(오페일로)는 단어는 ‘의무가 있다’ 또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사랑(아가페)은 선택이 아니라 성도의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성도는 사랑의 빚진 사람으로서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함은 나는 사랑의 빚진 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롬 1:14).

둘째는 율법을 포함하는 사랑(9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행동하지 않는 사랑은 추상적입니다. 추상적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율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율법을 구체적으로 계명이라고도 합니다(10절).

셋째는 사랑을 적용하라

사랑을 적용하려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웃과 내 몸은 구체적인 대상이며 구체적인 실체라고 하겠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사랑을 삶에 적용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엄격하게 적용하라고 가르쳤던 것처럼 나를 엄격하게 가르치고 다스려야 할 때 율법을 온전히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29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사랑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게 하소서!

기독교 신앙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천리안(千里眼)을 갖는 도사(道士)와 같은 사람입니까?
손만 대면 모든 것이 황금(黃金)으로 변하는 미다스 손을 갖는 사람입니까?
온갖 질병(疾病)이라고 안수(按手)하면 고칠 수 있는 신유(神癒)의 사람입니까?
나는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원합니다.

사랑이 없는 도사(道士)
사랑이 없는 미다스 손
사랑이 없는 신유(神癒)
이러한 것은 결국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특히 나를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만족시키는 것으로는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내가 먼저 변화된 후에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먼저 변화된 후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끌어안고 새 생명의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생명을 얻고 회복하는 것이 율법이 완성입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30

로마서 14:1∼23

하나님 나라의 요소(17절)


♦ 1월 3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4: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 나라의 요소(17절)
♦ 성구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아멘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나라가 구성되려면 세 가지 충분필요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첫째는 국민(國民)
둘째는 국토(國土)
셋째는 주권(主權)

하나님 나라의 국민들은 주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聖徒)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국토는 하늘(天)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統治)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섭리(攝理)가 나타나야 합니다.

어떻게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찰스 린드버그(Charles Augustus Lindbergh)는 1930년 당시 프로펠러 하나 달린 단발 비행기를 몰고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영웅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도전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어느 날 린드버그가 파리를 가게 되었는데,

그가 온다는 소문에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느 큰 담배 회사 사장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자기 회사의 담배를 광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린드버그에게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포즈 한 번만 취해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 당 5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5만 달러면 약 6천 만 원입니다.

지금부터 90년 전에 5만 달러라면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러나 엄격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린드버그는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세례 받은 교인입니다. 담배 피울 수 없습니다.”


린드버그는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에

담배 회사 사장의 제안을 받아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린드버그의 그 말이 다음 날

바로 파리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나왔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모금을 하여

10만 달러를 모아서 린드버그에게 전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린드버그의 이러한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아멘


☞ 1월 30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가?

어느 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들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너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하느니라!
정말,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없습니다.
내 안에 없는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설득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내 안에 세운 후에 그 나라가 내 안에 있다고 보여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라 내 안에 세워야 합니다.
주님을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을 내 안에 모시려면
주님이 보내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시는 은혜가
나를 다스리고 지배해야만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
여기 임하소서
지금 이 자리에
생각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성령의 임재를
드러내게 하소서
보여주게 하소서
깨우치게 하소서
모두가
주 성령의 다스림에
무릎 꿇게 하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

31

로마서 15:1∼33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29절)


♦ 1월 31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5: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29절)
♦ 성구 :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아멘 

충만한 축복(πληρώματι εὐλογίας)이란 영어로 “the fullness of blessing”이라고 합니다. 충만(充滿)이란 헬라어는 “플래로마(πλήρωμα, pléróma)”라고 합니다. ‘플래로마’란 “차고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충만이란 성령이 임재 하여 내 안에 가득차서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넘쳐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이란 보잘 것 없는 인생이 주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019년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2019년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라는 단어를 발표했습니다. ‘공명지조’란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갖고 있는 “공명조(共命鳥)”라는 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의 머리가 좋은 열매를 독차지해 먹어버리자 화가 난 또 다른 머리가 복수를 위해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습니다. 결국 몸에 독이 퍼져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되었다는 어리석음을 빗대어 교훈하는 이야기를 말 합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하나의 몸에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개의 머리가 있는 공명조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심지어 기독교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우고 익혀서 작은 차이를 충돌시키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다듬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위하여 서로 기도하며 손을 잡고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31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님으로 하나 되는 축복을 이루어 냅시다!

나는 곧 “길(way)”이요 “진리(truth)”요 “생명(life)”이라.
하나 되는 비결은 이미 세 가지 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길(way)’이란 단어에서 “방법(方法)”을 찾아야 합니다.

‘진리(truth)’라는 단어에서 “과정(過程)”을 찾습니다.

‘생명(life)’이란 단어에서 “목적(目的)”을 확인해야 합니다.

방법과 과정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똑같습니다.
목적을 위하여 서로 다른 방법과 과정을 다듬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救援)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 되는 은혜가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 신학의 거장입니다.
아퀴나스는 훌륭한 학자이며 동시에 경건한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천사와 같은 박사”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수도원에서 기도하던 중 예수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주님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로만 하나 되는 길이 열려지기를 원합니다.
오직 예수 생명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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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오늘의 묵상(2월)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

로마서 16:1∼27

지혜의 자리와 악의 자리(19절)

♦ 2월 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6: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지혜의 자리와 악의 자리(19절)
♦ 성구 :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I want you to be wise about what is good, and innocent about what is evil. Amen

선(善, ἀγαθόν)이란 “양(羊)의 입(口)”이 되는 것입니다. 
양의 입이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죄가 없지만 죄를 대속하려고 자기를 죽이는 현장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말이 없는 어린 양과 같은 행동이 곧 “선(善,ἀγαθός )”이라고 하겠습니다.

악(惡, κακόν)이란 “작은(亞) 마음(心)”을 말합니다.
작은 마음이란 생각이 작고 좁은 것을 말합니다.
생각이 좁은 사람의 특징은 “오해(誤解)”와 “착각(錯覺)”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악(惡, κακός)이란 선천적으로 잘못된 성향에서 출발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입을 가린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려고 시도한 것처럼 악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맹자)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진노(震怒)의 자녀(we were by nature objects of wrath) 라고 말씀합니다(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처절한 모습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What a wretched man I am!)”이라고 외쳤습니다(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선과 악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주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선과 악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오늘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당당하게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기쁨 되시니
그 명령을 준행하여 늘 충성 하겠네
주야로 보호하시며 바른 길 가게 하시니
의지하고 따라갈 이 주 예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일(토)
- 나의 묵상 노트
♦ 선(善)으로 악(惡)을 이기는 믿음으로

선(善, ἀγαθός)은 상대적(相對的)이 아니라 절대적(絶對的)입니다.
절대적 선은 신선한 자극으로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최선(最善)의 길이다.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가 두려워 사랑을 포기라는 것은 절대 선이 아닙니다.

옛날 계단 식 논에서 농사를 짓던 기독교인 농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계단 식 맨 위 논의 주인이었던 농부는 밤을 새워 아래 골짜기에서 물을 길어 논에 물을 채웠습니다. 아침에 다시 일어나 논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논 주인이 논둑을 허물고 위 논의 물을 전부 아래로 내려 보냈습니다. 화가 치민 위 논의 농부는 또다시 아래 골짜기에서 물을 길어 논에 물을 채웠습니다. 다음 날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이 세 차례 반복되었을 때는 도저히 참기 어려웠습니다. 위 논의 주인 농부는 "워치만 니"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질문하였을 때 “워치만 니”는 위 논 주인이었던 기독인 농부에게 “방법을 바꾸세요! 이번에는 아래 논에 물을 채운 후 그리고 당신의 논에 물을 채우세요!”

위 논의 주인 농부는 가르침대로 하고 편안하게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래 논 주인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당신이 믿는 예수를 나도 믿어야 하겠소! 나 같으면 절대로 당신처럼 할 수 없었을 것이오!”

절대 선(善)으로 악(惡)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기도(祈禱)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이집트에 주둔한 적이 있었던 한 영국 상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있던 부대에 예수를 믿는 민간인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들이 그 사람을 아주  못살게 굴었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 밤 그는 지쳐서 들어와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는 진흙이 잔뜩 묻은 내 장화를 그 사람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는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장화가 깨끗이 닦여져서 내 침대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에 대한 그의 보답이었고, 그 대답이 내 마음을 녹였습니다. 나는 그 날 구원받았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살아봅시다!



‘아가돈’의 원형은 “아가도스(ἀγαθός, 18. agathos)”입니다.
‘아가도스’는 형용사이며 뜻은 “선한(good)”이라고 합니다.  

악(惡)이란 “작은(亞) 마음(心)”을 말합니다.
헬라어로 “카콘(κακόν)”이라고 합니다.
‘카콘’의 원형은 “카코스(κακός, 2556. kakos)”입니다.      
‘카코스’는 형용사이며 뜻은 “나쁜(bad)” “사악한(evil)”이라고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31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님으로 하나 되는 축복을 이루어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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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2월 첫 주일을 맞이합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주현 후 제3주(3rd Sunday after the Epiphany)(녹색)”
주일이면 어떤 예배자로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매월 첫 주일은 “파트리스교회”에서 ‘성찬예식(Eucharist, Holy Communion)’을
행합니다.

2월의 성찬예식 주제는 “붉은색”에 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붉은색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첫째는 긍정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보혈”
둘째는 부정적인 의미는 “진홍같이 붉은 죄”

붉은색이 속죄와 구원의 상징이며 동시에 죄와 사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몸으로 상징한 떡과 주님의 피로 상징한 잔을 받으며 죄와 사망이 보혈에 의해서 새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확신과 믿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거룩한 예배로 드려지기를 소원하며 준비합니다.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할 때 이러한 은혜가 함께 확인되는 성결한 예배자로 거듭나시기를 기대합니다.

예배에 성공하여 믿음 생활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월 1일(토)
뉴욕 파트리스교회
이승혁목사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3

에베소서 1:1∼23

영적 소유(3절)

2

4

에베소서 2:1∼22

영적 위치(5∼6절)

2

5

에베소서 3:1∼21

영적 공동체(10절)

2

6

에베소서 4:1∼32

영적 교제(3절)

2

7

에베소서 5:1∼33

영적 생활(18절)

2

8

에베소서 6:1∼24

영적 승리(12절)

2

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2월 3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1: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 소유(3절)
♦ 성구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아멘 

2020년 오늘의 묵상을 위하여 이제까지 “요한일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로마서”를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오직 예수를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일서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생명(生命)”으로 만나야 합니다.
야고보서에서 예수님을 우리 신앙의 “본(本)”으로 만나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의(義)”로 만나야 합니다.

2월을 맞이하여 에베소서를 읽기 시작합니다.
에베소서를 읽을 때에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으로 만나야 합니다.
특별히 에베소서는 “교회론(敎會論)”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獄中書信)”은 모두 4권으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은 영적(靈的) 소유(所有)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세상적인 것을 소유하는 기쁨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세상의 것을 소유한 즐거움에 미쳐버리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소유는 “신령(神靈)한 복(福)”을 말합니다.

신령한 복이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을 말합니다(4절)
신령한 복이란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을 말합니다(11절)
신령한 복이란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13절)
신령한 복이란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17절)

최근 한국교회에 아주 신선한 영적 바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앙 간증의 내용이 주로 “인간의 승리”가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 승리가 아니라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반드시 믿음으로 승리한다는 성경적인 믿음의 간증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성도들이 머물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주님 나라 즉 저 영원한 천국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이 땅의 인간 승리를 자랑한들 어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세속의 인생들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복은 영생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주의 백성들이 영생을 위하여 세상의 고난과 질병과 고통을 모두 참고 견디고 주님 품에 안기는 영광스런 그 모습을 기대한다면 어떤 고난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는 성결한 방법으로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 믿음을 지키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3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靈的) 소유(所有)

영적 소유의 반대는 세속적 소유라고 하겠습니다.
영적 소유가 신앙의 목표라고 한다면 세속적 소유는 마귀의 목표라고 하겠습니다.
영적 소유를 위해서 마음을 굳게 정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마음을 굳게 정한 “단심가(丹心歌)”를 지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충신 “정몽주(鄭夢周)”가 지은 시조를 소개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시조를 현대어로 번역해 봅니다.

이 몸이 죽고 또 죽어
백 번이나 다시 죽어
백골(白骨)이 흙과 먼지가 되어
넋이야 있건 없건
임금님께 바치는 충성심이야
변할 리가 있으랴? 

영적 소유는 주님을 향한 믿음
어떤 환경과 상황과 고난 가운데서도
변할 수 없는 신령한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오 주여,
변함없는 믿음으로
세상 길 가는 동안
치우침 없는
주님 가신 길을 따라
골고다 험한 골짜기라도
맨발로 걷고 걸어
주님 앞에
이르게 하옵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4

에베소서 2:1∼22

영적 위치(5∼6절)



♦ 2월 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2: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위치(位置)(5절)
♦ 성구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아멘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란 작은 움직임이 마지막에는 엄청난 변화와 결과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한 사람이 날마다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갈 때 주위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같지만 어느 누군가에게 구원받은 삶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오늘도 구원받은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진실과 성실의 삶을 계속하므로 영적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신령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영적 나비효과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2: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위치(位置)(5∼6절)
♦ 성구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아멘 

기독교인은 “길 가는 사람들”입니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척을 떠나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화(聖化)와 소명(召命)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유혹에 흔들리면서도 마지막에는 거룩한 사람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실패한 길에서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사모합니다.

오 주님
새롭게 하소서
주의 백성으로
주님 가신 그 길을
끝까지 걷게 하소서
십자가의 길을
주와 같이 가게 하소서
주님 손을 붙잡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4일(화)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靈的) 위치(位置)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예수 밖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에는 예수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 계획이란 틀 안에서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家政)을 다스리라!
가정을 다스리는 원리는 사랑(愛)입니다.

둘째는 교회(敎會)를 다스리라!
교회를 다스리는 원리는 헌신(獻身)입니다.

셋째는 국가(國家)를 다스리라!
국가를 다스리는 원리는 공의(公義)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聖)과 속(俗)의 구조에서 보다 더 거룩하고 경건한 길을 찾아 담대하게 나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께서 먼저 이 세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하신 주님과 더불어 이긴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5

에베소서 3:1∼21

영적 공동체(10절)

♦ 2월 5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3: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공동체(共同體)(10절)
♦ 성구 :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아멘 

“지혜(智慧, σοφία)”란 무엇일까요?
더구나 “하나님의 지혜(σοφία τοῦ Θεοῦ)”를 알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교회가 영적 공동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영적 공동체로 세워져야 할 교회가 건물(建物)과 사람(敎人)의 수(數)와 예산(豫算)에 의해서 결정되는 그릇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많은 예산을 사용할지라도 죽은 영혼 단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공동묘지와 같습니다. 많은 예산으로 선교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지사업일 뿐입니다. 

영적 공동체를 위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이방인들을 구원하라(6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교인의 수가 증가할 때 수평이동(水平移動)하는 것은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부흥(復興)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열매 맺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은혜를 체험하라(8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은혜(카리스)를 받았다는 것은 은혜가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라(18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안다(그노리조, γνωρίζω)”는 단어는 간접 경험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는 내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은 행동할 때 올바른 지식이 될 것입니다.

주 예수를 알고 믿고 행동하는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5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靈的) 공동체(共同體)

혈연관계(血緣關係)에 의한 가족(家族)
성령(聖靈)에 의한 영적 공동체
혈연관계를 영적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분석하면 몇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인(敎人)
둘째는 제자(弟子)
셋째는 사도(使徒)
넷째는 성령의 사람(聖靈人)

혈연관계를 영적 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서로 연결하여”(21)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지어져 가는 현재 진행형인 교회를 영적 공동체라고 하겠습니다.

혈연관계를 넘어서 모두가 서로 하나 되고 또한 함께 가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믿음
아픈 사람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며 회복을 소망하는 믿음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고통을 분담하며 나눌 수 있는 믿음
이와 같은 믿음의 공동체가 초대교회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초대교회는 구호로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나누고 함께 하며 하나 되는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6

에베소서 4:1∼32

영적 교제(3절)


♦ 2월 6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4:1∼32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교제(交際)(3절)
♦ 성구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아멘 

영적 교제란 무엇일까요?

첫째는 겸손과 온유(2절)
겸손(謙遜)이란 나 보다 남을 더 높이는 것입니다.
온유(溫柔)는 부드러움을 말합니다.

둘째는 사랑(2절)
사랑이란 오래 참고(忍耐) 용납(容納)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내 안에 품으려면 받아드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평화(3절)
평화(平和)는 서로 하나 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 ‘비탄’에 가난한 마부 “이오나 포타포브”는 얼마 전 아들이 죽었습니다.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이오나’는 마차를 타는 손님들에게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합니다.

“며칠 전에 제 아들 놈이 죽었답니다.”

첫 번째 손님은 “허, 무슨 병으로 죽었노?” 하고 말대답은 했지만 즉시 마부에게 마차를 잘못 몬다고 야단칩니다.

두 번째 손님은 “사람이란 모두 죽는 법입니다” 하고 초연한 반응을 보입니다.
모두들 건성으로 들을 뿐 ‘이오나’의 슬픔을 함께 나누지 않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이오나’는 젊은 동료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두 마디도 듣지 않고 잠에 곯아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오나’가 드디어 이야기 상대를 생각해 찾아간 곳은 그의 말이 건초를 씹고 있는 마구간이었습니다.

“아무렴, 내가 이제 마부 노릇 하기는 너무 늙었지? 내 아들놈이라면 얼마나 잘할까? 틀림없이 일등 마부일 텐데, 살아 있기만 하다면 말이야.”


질겅질겅 건초를 씹는 말 앞에서야 비로소 ‘이오나’는 아들 이야기를 마음 놓고 꺼낼 수 있었습니다. 

영적교제란 마음 깊은 곳의 속사정을 마음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교제라고 하겠습니다.

겉사람의 대화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속사람의 대화는 서로 통(通)해야 만 가능합니다.
서로 통할 수 있는 관계에서 시작하는 영적 교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23∼24절).

심령으로 새롭게 된 새 사람은 처음 사랑을 회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교회를 향한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계 2:4).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매 순간 나를 지배하는 신령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삶을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6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 교제(3절)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교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의 ‘나와 너(I and You)’라는 저서에서 세 가지의 인간관계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그것과 그것의 관계’

인간관계를 마치 물건처럼 서로를 이용하다가 가치가 없으면 버린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인격이 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둘째는 ‘나와 그것의 관계’

상대방은 나를 물건처럼 이용해도 나는 상대방을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와 너의 관계’

내가 당신을 인격으로 믿어주고 당신이 나를 인격으로 대해 준다고 하여도 이 관계가 항상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와 너 사이에 언제나 이러한 관계를 중매하는 존재가 필요한데 그것을 영원자인 ‘너’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교제는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교제합니다. 교제를 위하여 골프, 화투, 술과 같은 매개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매개체가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근거로 하는 영적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고 고백하듯이 성도의 교제는 세상 사람들의 교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7

에베소서 5:1∼33

영적 생활(18절)


♦ 2월 7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5: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생활(生活)(18절)
♦ 성구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아멘

영적 생활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성령충만이라고 합니다.

식물은 몸(소마, σῶμα)만 있고 동물은 몸과 혼(소마 σῶμα, 푸쉬케 ψυχή, 프뉴마 πνεῦμα)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명은 있으나 혼(魂, ψυχή) 즉 정신이 없기 때문에 지식도 감정도 의지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개나 원숭이 같이 영리한 동물은 혼이 있으므로 간단한 일을 시키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영(靈, πνεῦμα)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Spiritual Being)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개인이라도 하나님을 찾고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영혼(靈魂)이 죽은 상태에 있으므로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교제 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그 피로 대속(代贖)했으므로 그분을 믿을 때에는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가질 수 있고 영생을 얻습니다. 

생물학자 배스티언(S. L. Bastian)은 나뭇가지나 덤불 속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를 관찰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거미는 나뭇가지나 덤불에 걸쳐 있는 울타리 속에 새끼들을 부화하는데, 만일 그곳에 약간이라도 위험한 일이 발생하여 새끼들이 놀라게 되면 즉시 어미 거미가 달려와서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어미 거미가 새끼들의 움직임을 금방 알아차리는지 궁금해서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어미 거미가 새끼들의 몸에 연결해놓은 가는 비단 줄 같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새끼들이 적들의 위협을 받아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그 줄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지므로 어미가 즉시 달려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미 거미와 새끼들 사이에 연결된 줄은 생명 줄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지면 생명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우리를 생명의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영적 생활은 영적 생명을 유지하며 지켜갈 수 있는 신령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7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 생활(18절)

개화기 시대에 어느 시골의 노인이 한양을 방문하여 어느 여인숙에 하루 밤 머물게 됩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천정에 매달린 백열전구에서 환한 불이 켜지더니 어둡던 방안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시골의 노인은 밤새도록 궁리하기를 저 전구만 하나 있으면 시골 동네에서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른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전구를 뽑아갖고 급하게 시골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시골 집 천정에 전구를 매달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던 노인은 동네 사람들을 모두 모은 후에 환한 빛이 나올 것이라며 자랑했습니다. 호롱불을 사용하던 시골 동네 사람들은 한양에 다녀온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모였습니다.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노인은 전구를 쳐다보며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으나 불이 켜지지 않아 동네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했다고 합니다.

전구가 켜지려면 전선을 통해 전기 에너지와 연결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영적 생활을 하려면 영적 원천이 되는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영적 생활은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하여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8

에베소서 6:1∼24

영적 승리(12절)

♦ 2월 8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6: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승리(勝利)(12절)
♦ 성구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아멘 

영적 승리를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전신갑주는 공격(攻擊)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방어(防禦)를 위한 것입니다.
영적 승리를 위하여 악한 영을 대적하여 방어할 수 있는 무장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10∼11절).   

첫째는 주 안에서
둘째는 그 힘의 능력으로
셋째는 강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The full armor of God)는 무엇일까요?

1. 진리의 허리 띠(The belt of truth)
2. 의의 흉배(The breast plate of righteousness)
3. 복음 위해 예비 된 신발(shoes reserved for the gospel) 
4. 믿음의 방패(The shield of faith)
5. 구원의 투구(The helmet of salvation)
6. 성령의 검(The sword of the Spirit)
7. 기도(Pray)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마지막 시대에 교회를 어지럽히는 악한 영들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여 교회를 거룩하게 지킬 수 있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8일(토)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 승리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죄(罪)
알면서 행하지 않는 죄(罪)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죄(罪)

신앙생활은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영적 싸움에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합니다.
영적 싸움을 모르기 때문에
영적 싸움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실패ㅈ거응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2월 9일 주일을 맞이합니다.
예배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요.
그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습관적인 신앙생활에 익숙해지면 세 가지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첫째는 알면서 행하지 않는 잘못
둘째는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잘못
셋째는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잘못

예배는 “신령”과 “진정(진실, 진리)”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진실한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2월 9일 주일예배를 통하여
살아계신 주님 만날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0

갈라디아서 1:1∼24

그리스도의 복음(7절)

2

11

갈라디아서 2:1∼21

오직 내 안에(20절)

2

12

갈라디아서 3:1∼29

성경과 죄(22절)

2

13

갈라디아서 4:1∼31

해산하는 수고(19절)

2

14

갈라디아서 5:1∼26

자유(1절)

2

15

갈라디아서 6:1∼18

예수의 흔적(17절)

2

16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0

갈라디아서 1:1∼24

그리스도의 복음(7절)


♦ 2월 10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1: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복음(7절)
♦ 성구 :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 τὸ εὐαγγέλιον τοῦ Χριστοῦ) 

복음(福音, 유앙게리온. εὐαγγέλιον)이란 “기쁜 소식(good news, gospel)”을 말합니다.

“유앙게리온”이란 고대 사회에 두 나라가 전쟁(戰爭)을 할 때 승리한 편에서 왕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려고 신하를 보내어 알리게 합니다. 승전보를 알리려는 신하는 죽을힘을 다하여 왕에게 “이겼습니다. 전하” 이렇게 외치고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가장 기쁜 소식을 왕에게 알리려고 사력(死力)을 다하여 달렸던 신하의 충성스런 모습처럼 복음은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신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시작합니다.

복음의 의미를 본문에서 살펴봅니다.

첫째,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렸습니다(4절).
둘째, 하나님께 좋게 하려는 삶(10절)
셋째, 은혜로 부르신 것을 깨닫는 것(15절)
넷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24절)

하늘의 천사(天使)일지라도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詛呪)를 받을 것입니다.

이단(異端, Heresy)이란 복음처럼 시작하였으나 그 결과가 전혀 다른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교주(校主)가 구세주가 되거나 교회가 천국이 되어 이 세상에서 도피처를 만듭니다.  

사이비(似而非, Pseudo)란 처음부터 복음이 아닌 것으로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혀 다른 영(靈)의 지배를 받아 활동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존귀케 하는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승리의 길을 완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0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그리스도의 복음

율법(律法)과 복음(福音)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예전에 잔디밭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있었습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은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 목적일까요?
아니면 잔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요?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은 율법입니다.
잔디는 복음입니다.
율법은 잔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복음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진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만이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오늘도 주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자유로운 믿음의 주인공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1

갈라디아서 2:1∼21

오직 내 안에(20절)


♦ 2월 1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2: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오직 내 안에(20절)
♦ 성구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왜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까?
죽어서 천국 가려고,
세상에서 성공한 인생이 되려고,
경쟁사회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다른 사람보다 더 착하게 살아보려고,
이러한 것들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예수를 믿습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 2. 2~1962. 1. 29)”는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여 미국에 정착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여행 중에 정교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발견하였으나 모든 부를 다 나누어주었기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 바이올린을 사기 위한 충분한 돈을 마련하여 그 바이올린 소유주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바이올린은 벌써 다른 수집가에게 팔렸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의 새 주인을 찾아가서 그 바이올린을 자기에게 팔라고  부탁하였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자신의 애장품이기 때문에 팔 수 없다고 합니다. 실망하여 돌아서려는 순간 ‘크라이슬러’는 그 바이올린이 소리를 내지 않고 잊혀 지기 전에 자신이 한번만 그 바이올린을 연주해 봐도 되겠냐고 요청했습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크라이슬러’의 연주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훌륭한 연주가 끝난 다음, 바이올린 수집가는 크라이슬러에게 “그 훌륭한 바이올린을 소장할만한 권리가 제게는 없네요!” 그리고는 “크라이슬러씨, 이 바이올린은 이제부터 당신 것입니다.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구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음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연주되고 사용되기 위해서 창조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의 연주자로 부름을 받았습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실 때에만 복음의 소리를 점점 더 크게 울릴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복음의 연주자로서 승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1일(화)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 안에서

안과 밖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대표적인 사례는 교회 안과 밖을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에서 나의 모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모순(矛盾)이란 한자어의 훈(訓)은 “창 모(矛)” “방패 순(盾)”입니다.
모순(矛盾)이란 단어의 유래는 초나라에서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 상인은 자신의 창을 들어 보이며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라고 선전했고, 또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이며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라고 선전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명나라 왕의 신하 중 한 명이 상인에게 “당신이 그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창으로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다고 선전하는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질문을 던지자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나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 나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면 이것이 모순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신앙의 모순을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내가 털어버려야 할 모순을 철저하게 버리고 안과 밖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2

갈라디아서 3:1∼29

성경과 죄(22절)



♦ 2월 1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3:1∼29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경과 죄(22절)
♦ 성구 :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아멘 

죄(罪)란 무엇일까?
죄는 "분리(分離)"라고 하겠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분리일까요?

죄(罪)라는 한자에서 찾아봅니다.
죄(罪)는 "사(四)"와 "비(非)"의 합성어로 "네 가지 아닌 것들"을 말합니다.

네 가지 아닌 것들이란?

첫째, 법에서 분리(不法)
둘째, 선에서 분리(不善)
셋째, 의에서 분리(不義)
넷째, 믿음에서 분리(不信)

죄는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죄란 헬라어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고 합니다.
'하마르티아'는 "목표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활을 쏠 때 화살이 겨누는 목표는 과녁의 중앙입니다.
과녁에 맞지 않고 벗어나는 것을 '하마르티아'라고 합니다.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죄를 완전히 가두었다고 합니다.
가두었다는 것은 영향력을 줄 수 없도록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죄를 붙잡아 활동할 수 없게 할 수 있는 역할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한복음 5:39)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영적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인이었던 인간이 이제부터는 죄인이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이콥 드세이저(Jacob DeShazer, 1912. 9. 15∼2008. 3. 15)선교사는 미 공군 폭격 부대의 일원으로 일본 동경을 제일 먼저 폭격한 그 두리틀(Doolittle) 비행기에 같이 타고 동경을 폭격한 사람입니다. 그 비행기가 중경(重慶)으로 달아나다가 그만 채 가지 못하고 이 사람이 탄 비행기는 고장이 나서 저 상해(上海) 방면에 떨어졌습니다. 다행이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였으나 일본 관헌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3∼4년 동안 상해, 대련(大連) 혹은 북경(北京) 그 다음에는 일본에까지 여러 감옥으로 전전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당하고 일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역경 가운데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중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일본 사람이 왜 이렇게 포악할까? 이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는 까닭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 까닭이다. 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고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포로에서 석방되자 곧 미국에 돌아가서 공부를 한 후 일본에 서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전도자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회복하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https://en.wikipedia.org/wiki/Jacob_DeShazer 

☞ 2월 12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성경과 죄

앤드류 쥬크스(Andrew Jukes)는 “사탄은 사람이 율법을 사용하여 스스로 거룩한 존재라고 증명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고 합니다.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단코 정죄함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정죄하지 마라, 죄인이기에 어쩔 수 없다 혹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의견은 죄에 대해 민감해 져야 하며 죄를 애통해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죄를 짓고도 죄책감이나 정죄감이 없다고 하면 죄로부터의 자유보다는 죄에 무감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건가요? 죄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변] 이 문제는 신앙 연륜과 상관없이 아주 많은 신자들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부분입니다. 특별히 한국말로는 성경에서, 강단에서, 일상 대화에 "죄"라는 한 단어로 명확한 의미의 구별 없이 혼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시각으로 죄를 바라보아야 할지 어렵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신자란 죄에서 자유하다고 하는 반면에 또 죄를 멀리하고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두 가지 중 하나가 맞고 다른 것은 틀릴 리는 없습니다. 동일한 단어나 표현이 서로 모순되어 보일 때는 다른 개념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신자가 죄에서 자유 할 상태와 죄에 민감해져야 할 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상황의 같은 죄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질문자께서도 분명하게 두 문장으로 나눠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이해하기 편하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Ⅰ. 원죄에서의 해방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1. 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선 죄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구약의 히브리어 표현으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타(hata)
하타란 '표적을 빗나가다' 혹은 '기준에  못 미치다'는 뜻입니다.

둘째, 페샤(pesha)
페샤란 '반역'이란 뜻으로 ‘기준에 대한 반항’이라고도 합니다. 

셋째, 아원(awon)
'불의' 혹은 '죄책'이란 뜻으로 ‘기준을 왜곡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의 헬라어 "하마르티아(hamartia)"는 구약의 이 세 가지 의미를 다 갖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과녁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부인하고 있는 생각이나 상태나 행동이나 그 모든 것이 죄입니다. 말하자면 죄의 근원을 하나님을 배반한 것에다 두며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분리(分離)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스스로 자신과도 분리되며 다른 사람과도 분리됩니다. 

영어만 해도 겉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난 잘못된 행동의 “범죄(crime)”와 그 범죄를 일으키게 하는 잘못된 마음과 영혼의 상태는 “죄(sin)”로 구분해 표현 합니다. 그러나 우리말로 죄라고 했을 때에는 분명히 겉으로 드러난 잘못 즉 범죄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성경적으로 봐선 그것은 사실은 죄의 결과이지 죄 자체가 아니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자가 꿈에서 죽어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자기 일생의 죄를 적어 놓은 기록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굵직한 글씨들로 자기 범죄 기록이 적혀 있는데 전부 행동으로 한 죄였고 거의 90% 이상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둘 째 페이지는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어 놓았는데 겨우 20-30%도 기억 못할 정도였는데 말로 지은 범죄였습니다. 셋째 페이지는 아예 현미경으로 보아야 할 정도의 작은 글씨가 마이크로 칩처럼 완전히 새카맣게 적혀 있었는데 전부 마음으로 지은 죄였고 기억할만한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죄 인이었는가 확인한 셈입니다. 그래서 이제 끝났다 보다 했는데 한 페이지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글씨는 한 자도 없고 완전히 새까만 먹지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하나님은 그것이 바로 너의 영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과 죄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화입니다.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태보음 15:11, 18∼1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죄가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구별하여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사고활동이라고 말하듯이 악한 생각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행동으로 범죄한 것이며 그것도 악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거짓증거 같은 말로 하는 범죄와 도적질, 간음 같은 행동으로 범하는 죄도 당연히 다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꿈에 본 예화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 즉 마음이 악해져서 모든 범죄를 저지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부패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범죄한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의 범죄의 원인이 바로 아담의 원죄로 소급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과녁에서 벗어난 것, 인간이 하나님의 품 안에서 벗어난 상태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1.2. 원죄의 의미

그럼 원죄란 무엇입니까? 잘 아시는 대로 아담이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많은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범죄 행위를 처벌해 원죄라는 멍에를 모는 인간에게 메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주신 이유는 인간더러 하나님의 품 안에 살아야만 참 인간답게 살 수 있으니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잊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아담에게 하나님이 너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것을 하나님이 싫어해서 따먹지 말라고 했다고 거짓으로 속였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치우기로 결심한 후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미 그의 영혼이 사단의 더러운 영으로 부패한 후에 금령을 어기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제 멋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 즉 원죄(Original Sin)를 저지르자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crime)를 저지른 것이지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 자체가 원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서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혼자 제 멋대로 하겠다는 자를 더 이상 에덴에 둘 수 없어 추방한 것입니다. 

그 이후 아담의 모든 후손은 원죄 하에 태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죄가 괘씸해서 일부러 천대 만대 자식에게 까지 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자연인은 아담의 부패된 영혼을 물려 받아 하나님을 모르는 원수 된 채 태어난다는 것이 원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단의 노예요 죄의 종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고 고집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거부하는 완악한 교만이 바로 원죄입니다.   

1.3. 원죄와 구원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 낸 것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생각의 끝이 아니었으며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구원할 방도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원죄 하에 있는 인간이기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다시 선악과를 만들어 두 번 다시 따먹지 않으면 용서해 주겠다고 해야 합니까? 

원죄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므로 인간을 돌이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마음이 바뀐 것을 원 상태대로 고쳐야지 행동 한 두개 고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께 토라져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시기해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고 생각했으니 선악과를 허락한 하나님의 본심을 다시 인간에게 재 확인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사단에 붙들려 있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게 돌아 오면 누구든 무슨 범죄를 저질렀던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이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고 외면하고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했습니다. 간혹 알아도 신경질적, 율법적, 권선징악적인 하나님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범죄하면 벌 주고 죽은 후에라야 자신이 한 행위로 심사 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공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격하여 천국 갈 자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죄의 삯은 사망이었습니다. 본질상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 오시기 전 까지 인간이 사탄의 영으로 부패되어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죄인을 아무 차별 없이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마저 하나님께 저들이 자기 하는 짓을 모르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들 모두 사단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부패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범죄했기에 그 영혼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 주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과녁을 벗어났던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쪽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1.4. 첫 번 질문에 대한 답

신자가 처음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원죄의 멍에에서 해방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3단계 중 첫 단계인 칭의(稱義 salvation) 입니다. 신자의 상태가 도덕적으로는 전혀 의롭지 않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의롭다고 칭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신분과 소속만 변화되었습니다. 우리의 품성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만 면제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옥 갈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Free from the penalty of sin)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인을 원죄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십자가 상의 강도처럼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죄인 취급하지 않고 의인 취급해 주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더 이상의 '정죄함'이 없습니다. 신자란 용서 받은 죄인인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의 본성은 남아 있어서 수시로 죄를 짓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서로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정죄와 용서는 오직 하나님 만의 몫입니다. 신자란 단지 원죄만 용서 받은 상태로 어느 누구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완전할 수 없으니 서로 간에 짓는 범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인간 모두 죄인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죄에 대한 면죄부는 아닙니다. 사람끼리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가 제거 되면 인간끼리, 또 신자 스스로도 자신과 다 화목되어야 합니다. 죄는 여전히 내 안과 밖에 존재하고 있지만 오직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분리가 화목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자유로와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적 죄든,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지 못하는 죄든 우리가 일상 짓는 죄에서 자유로와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진정으로 항복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더 이상 영원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짓다가 혹시 지옥 가는 것 아닌가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 봉사도 못하고 성경 공부도 빠졌는데 혹시 하나님이 나를 미워해서 어려운 고통이나 징계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하는 것도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지는 않습니다. 죄는 죽도록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은 인간은 독생자와 바꿀 만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서 유일한 기준은 어떻게 하든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 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참 사랑의 진정한 관계를 맺기를 소원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사랑을 제대로 알면 세상의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신자를 향한 사랑을 방해하고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시험과 유혹에 넘어가는 윤리적 죄로 인해서도 독생자 예수를 통해 회복된 신자와의 새로운 관계를 절대 취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된 후에 죄를 지으면 징계는 하시지만 신자와의 관계를 끊고 지옥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흔들림 없이 확신하는 것이 죄에서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2. 죄에 민감하고 피 흘리기 까지 싸워라. 

2.1 성령의 탄식 

비록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위에 말씀 드린 인간의 원죄와 하나님의 구원의 성경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용서 받은 죄인이며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뿐이지 결점도 없고 죄도 안 짓는 완전한 성자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학적 용어로 말해 구원의 두 번째 단계인 성화 (聖化 Sanctification)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칭의가 신분을 바꾸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으로서 구원이라면 성화는 성품을 변화시키는 현재의 계속되는 과정으로서 구원입니다.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져 가는 싸움입니다. (free from the power of sin)   원죄의 굴레를 벗어난 신자를 하나님과 멀리하게 하고 세상을 향하도록 하는 어떤 악한 힘이 계속해서 우리 밖에서 설칩니다. 또 비록 우리 영이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좌정해 계시지만 여전히 부패된 영혼의 흔적과 죄의 본성은 우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이 신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도록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할 죄(sin)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를 믿고 나면 이제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무시했던 사소한 죄마저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고 죄책감은 더 커집니다. 그 까닭은 사단에게 잡혀 있던 우리 마음에 성령이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이제는 성령이 감지하고 성령이 속에서 탄식하시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되고 더 아픕니다. 이전에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는 아무리 더러운 옷을 입고 있어도 추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제 빛 가운데로 나왔으므로 아주 작은 얼룩이라도 눈에 쉽게 뛰고 더러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된 후라도 죄를 지으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원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고 해서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 해져도 안 됩니다. 죄책감이 들어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까지 회개하셔야 합니다. 

간혹 예수님의 복음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다고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회심과 회개의 차이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신자가 하는 회개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바꾸는 회심(回心)이지 몇 가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제 마음대로 하려 했던 것이 얼마나 완악한 교만이었으며 하나님께 큰 죄였는지 깨달아 이제는 하나님 품 안으로 돌아가 오직 주님만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사고의 전환입니다. 인본주의 가치관에서 신본주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된 후 죽을 때까지 지을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죄들은 일일이 스스로 반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 고쳐나가는 회개(悔改)를 해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세상의 어떤 성자도 절대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2.2. 참된 회개

그런데 예수를 믿는 신자의 회개는 다른 종교나 일반인들의 회개와는 그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더 오래 동안 더 많은 죄를 회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과 하나님의 품성을 제대로 알고 하는 회개라야 합니다. 인간의 도덕성과 종교성에 비추어 자기 의지력으로 윤리적 죄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짓는 모든 죄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끼리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서로 많이 빨리 더 좋은 것을 차지하려는 데서 나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6)  

신자라도 잠시 하나님을 잊거나, 그 관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 마음이 다시 세상을 향하고 사단의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 죄를 회개하되 이 죄의 본질과 원인을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원인을 먼저 제거하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기를 높이고 세상을 향하는 마음부터 고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 긍휼, 은혜와 권세를 자꾸 확인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소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에 빠지는 것조차 막아 주십니다. 회개의 전 과정이 성령님이 주관해서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결론적으로 말해 신자는 죄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원죄의 멍에 아래 묶여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외면하므로 생겼던 모든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신자가 된 후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여 생기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상의 범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죄는 철저하게 미워하시되 회개하는 죄인은 끝가지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자는 죄 자체에 대해선 민감해야 하되 자기가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것 즉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그 신분에 대해선 한 없이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바뀐 신분이므로 담대하게 세상과 죄악과 사단과 날마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시되 승리는 이미 신자의 것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3

갈라디아서 4:1∼31

해산하는 수고(19절)


♦ 2월 13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4: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해산하는 수고(19절)
♦ 성구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아멘 

“자녀(子女)”와 “해산(解産)의 수고(受苦)”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상(形象)”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자녀(자녀들, τεκνια)’란 이미 해산의 수고를 거쳐 세상에 존재하지만 율법 아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존재를 말합니다.

‘해산의 수고(παλιν ώδινω)’는 산통(産痛)의 과정을 거쳐 어머니의 몸 안에 있던 생명이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μορφωθη χριστος)’이란 율법에 붙잡혔던 존재가 복음과 진리의 말씀으로 잘 훈련되어 인격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을 복음의 말씀으로 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와(테크논, τεκνον) 같다고 고백합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존재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누군가를 하나님의 인격으로 바로 세우기 위하여 사도 바울과 같은 깊은 생각과 신앙적인 수고를 감당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으며 또 얼마나 기도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과정은 해산의 수고와 같은 산통(産痛)의 눈물겨운 씨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교훈이라고 하겠습니다.

네델란드 출신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며 그리스도교 영성가로 널리 알려졌던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66)”의 기도 “나는 소망합니다”를 소개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볼 때 내가 더욱 작아질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삶의 기쁨이 작아지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다른 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의 척도가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내 용서를 구할 만한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그러나 내 스스로 그런 한계를 만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3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해산하는 수고

뉴욕의 한인 이민교회의 심각한 고민은 청장년층이 없고 노인들 위주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치 역삼각형처럼 도저히 세워질 수 없는 교회의 구조를 이대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가?
정삼각형 구조로 교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은혜를 기도합니다.
더구나 미국으로 이민 오려는 한인들은 절망적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제활동이 미국보다 더 유리할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미국의 남부와 북부 사이에서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편하게 살던 남부 사람들은 노예 없이는 불편해서 하루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예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비인도적인 표어까지 내걸면서 북군을 밀어 붙였습니다.

그런 남군 앞에 북군은 가는 곳마다 쓴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진 북군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지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편이 되셔서 북군이 이기게 하소서!”

이 기도를 들은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북군 편이 되어 주시라고 기도하지 말고,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4

갈라디아서 5:1∼26

자유(1절)



♦ 2월 14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5: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자유(1절)
♦ 성구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유(自由)란 무엇일까요?
당신은 정말 지금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15세 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온갖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서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침팬지가 맨 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Let me out!” 즉 “나를 놔 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제발 당신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으니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유란 짐승도 원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놀라운 실험결과라고 하겠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 5. 29~1799. 6. 6)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고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진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참 자유는 죄(罪)의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첫째, 진리를 알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오직 예수를 알고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둘째,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라(베드로전서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은혜로 주신 자유를 내 마음과 욕심대로 사용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셋째, 사랑으로 섬기라(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악용하지 말고 서로 종노릇하며 섬김으로 사랑하므로 믿음의 길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성령의 지배를 받으라(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죄의 유혹이 없는 삶이 아니라 온갖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자유(ἐλευθερίᾳ)란 헬라어 “엘듀데리아(eleutheria)”는 “종의 신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한 성도들이 험한 세상에서 죄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깨우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날마다 주의 말씀에 따라 진리의 영으로 무장하여 죄의 유혹에서 자유를 누리며 승리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4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자유(自由, ἐλευθερίᾳ)


양반(兩班)과 상놈으로 구분된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차별 대우를 받은 사람은 조선시대의 백정(白丁)입니다. 백정은 기와집에서 살지 못하게 하였고, 비단 옷도 입지 못하게 하였으며, 공부도 못하게 하였고 항상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게 했습니다.

이런 일을 안타깝게 여긴 사무엘 무어 선교사(Samuel F. Moore, 1846∼1906. 모삼열)는 양반과 상놈의 구분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면서 고종의 주치의인 의사 에비슨과 함께 백정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첫 번째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박성춘입니다.
그는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었고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왕에게 탄원하여 마침내 1895년 6월 6일 백정 신분을 철폐케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박서양은 1908년 6월 세브란스 의과대학 제1회 졸업생 일곱 명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聖徒)는 거룩한 무리를 말합니다.
한 사람은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은 무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음을 전하여 열매를 맺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분의 자유를 누리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하물며 죄에서 자유를 얻는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여 더 많은 열매를 얻도록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사무엘 무어 선교사 인터넷 자료 사이트

http://www.missionkorea.org/?p=17361 

자유의 뜻

히브리어 ; 데도르
`빨리 움직이다' 라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
'자유' 따라서 유출의 `자연스러움' 그러므로 `깨끗한' ; 자유, 순수한

헬라어 ; 엘류데로오
'자유롭게 하다'즉(상징적으로)(도덕적으로 의례적으로 혹은 인간적인 책임에서) `면제되다', 해방하다, 자유롭게 하다.


압해시스 ; `자유', (상징적으로) `용서', 구원, 탕감


한자 自由 ;

타인에게 구속받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 법률의 범위 안에서 마음대로 하는 말. 


자유에 대한 성구


1. 사람이 어디에서 자유를 얻을 것인가?

(1) 죄에서 자유

롬6:18 -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6:22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이 되고

롬8:2 - 생명의 성령의 법이 사망의 법에서 해방함

롬8:15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않음

(2) 율법 의식에서

갈3:13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갈5:1 -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엡2:15 -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육체로 폐하심

(3) 사탄(마귀)에게서 자유

창3:15 -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

눅10:19 -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심

골1:13 -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심

히2:14 -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함

요일3:8 -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

(4) 죽음의 형벌에서

호13:14 -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

사25:8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임

고전15:55 -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히2:15 -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심

2. 자유는 누가 주는가

사61:1 - 복음이 자유케 함

요8:32 - 진리가 자유케 함

요8:36 - 그 아들 예수님께서

롬8:2 - 성령께서

고후3:17 - 주의 영이

3. 자유 주의와 생활

고전7:22 - 허락된 한도에서

고전8:9 - 약한 자에게 거친 것이 되지 않도록

고전10:29 - 판단을 받지 않도록

갈5:13 -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는 것

벧전2:16 - 하나님의 종과 같이 생활하는 것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5

갈라디아서 6:1∼18

예수의 흔적(17절)


♦ 2월 1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6: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의 흔적(17절)
♦ 성구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흔적(痕迹, stigma)
내 몸에 “예수의 흔적(τὰ στίγματα τοῦ Ἰησοῦ, the marks of Jesus)”을 가졌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흔적을 몸에 갖고 있습니까?
과연 ‘예수의 흔적’이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와 같은 것이 그의 삶을 괴롭혔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그의 몸에서 사라질 것을 기도했을 때 여전히 바울의 몸에 남아 있는 것이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하지 않는 은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만하여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지 못할 인생이라면 차라리 육체의 가시를 몸에 지니고 끝까지 주님의 일군으로 인정받는 인생이 되는 것이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봅시다.

사람이 머물다 떠난 곳에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자리에는 꽃가루가 흔적입니다.
잔칫집에는 음식 부스러기가 흔적입니다.
사람의 흔적은 자녀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자녀는 나의 흔적입니다.
자녀가 믿음으로 잘 성장하면 그것이 바로 나의 아름다운 신앙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자녀가 거짓된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곧 나의 추한 삶의 흔적입니다.

“링컨, 그는 잡초를 뽑아내고 그곳에 꽃을 심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링컨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에게 남겨진 흔적입니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면 나를 통해서 주위 사람들이 예수 향기를 느끼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향기를 전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예수 삶을 결단하여 
예수 향기
예수 편지로 읽혀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5일(토)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의 흔적

“선생님, 하나님이 정말 있습니까?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이잖아요.”


“어떨 때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생기지를 않아요. 하나님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믿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데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하나님은 피조물 세계에 속한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우주 안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나님과 우주 사이의 관계는 화가(畵家)와 그림 사이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고 하자. 화가는 그가 만든 그림의 일부가 아니다. 화가는 그림과는 구분되기에 화가의 존재는 그림 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림 속에서 화가를 찾을 수 없다고 해서 화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화가가 그림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화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림에 담겨 있는 화가의 흔적을 통해 화가를 유추(類推)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림에 화가의 흔적이 담겨 있듯 우주 안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담겨 있다. 우리는 우주 가운데 담긴 하나님의 흔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흔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경 기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림이며 노래(사 43:21)이며, 편지(고후 3:3)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서1장 말씀 중에)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6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2월 16일 주일 예배 안내
교회력으로 주현절 제6주(녹색)

최근 한국교회의 몇몇 교회는 “우환 폐염”이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공예배를 인터넷 유트부를 통하여 모임을 포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구리 시장은 각 교회와 사찰에 서신을 보내어 모임을 갖지 말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공문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과연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공예배 모임을 폐지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일까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배의 중심

예배는 공적 예배(교회에서 모이는 예배)와 사적 예배(삶의 현장에서 개별적으로 행하는 삶)로 구분합니다.

올바른 예배 없이는 어떤 사역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역이 예배를 앞서가면 그 사역의 겉모습은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교만과 허영으로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는 예배가 먼저 올바르게 서야 합니다. 사실 주일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보면 사람들이 정해 놓은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듯이 보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묵도하고 신앙 고백하고 성경 봉독에 이어 성가대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몇 년째 목사님의 비슷한 설교가 시작됩니다. 어쩌면 인간적으로 볼 때 따분하기 짝이 없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오히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같이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예배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든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일하면서 라디오를 통하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혹은 골프를 치러 가는 중에 차에서 라디오 예배 실황 방송을 들은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한 표현이 예배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은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높은 건물 위에서 떨어지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정해진 시간에 모여 목사님이 준비한 말씀을 듣고 깨달아 그것을 통해서 다시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하고 감사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 주말의 시간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성으로 오직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 예배로 드려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7

빌립보서 1:1∼30

복음에 합당한 생활(27절)

2

18

빌립보서 2:1∼30

예수의 마음(5절)

2

19

빌립보서 3:1∼21

부름의 상(14절)

2

20

빌립보서 4:1∼23

일체의 비결(12절)

2

21

골로새서 1:1∼29

비밀의 영광(27절)

2

22

골로새서 2:1∼23

믿음에 굳게 서라(7절)

2

23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빌립보서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
골로새서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과 위엄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7

빌립보서 1:1∼30

복음에 합당한 생활(27절)


♦ 2월 1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립보서 1: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절)
♦ 성구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립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쁨”이 되신다.
짧은 빌립보서에 “기쁨”이란 단어가 자주 사용됩니다.
1장은 “삶의 기쁨”
2장은 “봉사의 기쁨”
3장은 “친교의 기쁨”
4장은 “상급의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Live according to the gospel!

어떻게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북한에는 “총대철학”이란 교양학부에서 배우는 논리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여기 총이 있고 달러화($)가 있다면 너는 어느 것을 갖겠느냐? 라고 물었을 때 총을 가질 때는 “총으로 달러를 빼앗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달러를 가질 때는 “달러로 총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북한 지도자의 논리는 총으로 달러를 빼앗는 것처럼 핵을 갖는다면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는 지도자의 철학 때문에 오늘의 북한이 경제적으로 밑바닥에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세상의 질서는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하여 날마다 결단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쁨으로 간구하라(4절)
둘째는 나의 삶에서 오직 예수를 존귀하게 하라(20절)
셋째는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27절)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복음에 합당한 믿음의 사람으로 반듯하게 세워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7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복음에 합당한 생활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 나아가려면 지혜, 애국심, 기독교 정신 등이 절대 필요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이 나라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 주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입니다.” 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두 갈래 길에 놓였습니다.
좌경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질 것인가?

교회가 교회답게 회복될 때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 할 때
복음의 나라
예수 천국은 실현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만이 큰 것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8

빌립보서 2:1∼30

예수의 마음(5절)


♦ 2월 18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립보서 2: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의 마음(5절)
♦ 성구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heart of Jesus Christ)”
예수님만이 ‘예수의 마음’입니다(Jesus is the only heart of Jesus).
내가 예수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예수님의 지체로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는 예수,
나는 나 이런 멋대로의 삶은 절대로 예수 마음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 마음을 갖는 예수님의 지체가 되기 위한 지름길을 소개합니다.

빌립보서 2장은 “봉사의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음은 어느 누구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봉사(奉仕)” 즉 “섬기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섬김을 받은 대상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되는 하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의 마음은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할 줄 모르는 믿음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
순결을 지킬 수 있는 삶
이와 같은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악(惡)이라 할지라도 선(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선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악을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은 선의 뿌리가 진리(眞理)의 터에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선의 뿌리가 내려진 터를 살펴봅니다.

첫째는 겸손한 마음(3절)
- 자기를 비어 낮추는 마음(7, 8절)

둘째는 십자가를 지는 마음(8절)
- 관제로 드려지는 기쁜 마음(17절)

셋째는 구원을 이루는 마음(12절)
-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마음(21절)

인도의 예수회 사제로 영성 안내자이자 정신치료사였던 “앤서니 드 멜로”는 이런 기도했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중년이 된 후에는 내 이웃을 변화시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70세가 된 오늘은 나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주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나 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관심을 갖지 말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회복하여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세상의 변화, 인류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 9. 9~1910. 11. 20)”가 당시 러시아 기독교의 무력함을 바라보며 외쳤던 말입니다.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한 기도가 참된 변화의 출발점이며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변해야 이웃이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변함없는 인생은 고인 물과 같습니다.
고인 물에서는 더러운 냄새가 진동할 것입니다.

주여,
내 안에
주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주님 기뻐하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 2월 17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의 마음으로

죄수(罪囚)들은 감옥(監獄)에서 세상과 단절(斷絶)된 생활을 합니다.
수도사들은 스스로 산속 수도원(修道院)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죄수와 수도사 모두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죄수의 특징은 환경을 불평하거나 타인을 저주하기 때문에 감옥이 그야말로 감옥입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진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이 힘들어도 며칠씩 굶어도 기쁨과 감사로 살아갑니다.

감옥의 죄수가 수도사와 같은 마음을 먹는다면 감옥은 수도원이 될 것입니다.
수도사가 불평을 하며 죄수와 같은 마음을 품으면 수도원은 감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행복과 삶의 가치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잠언 11:29).

공자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마음보가 문제라!”

“하늘도 문제가 아니고 땅도 문제가 아니다.
오직 사람의 마음보가 문제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9

빌립보서 3:1∼21

부름의 상(14절)


♦ 2월 1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립보서 3: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부름의 상(14절)
♦ 성구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세상을 살아가려면 믿음이 있다 하여도 필요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것들을 전부 가질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부족하면서도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부름의 상(the goal to win the prize)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름의 상은 누가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는 붙잡힌 인생(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조폭에게 붙잡히면 조폭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좌경화된 이념에 붙잡히면 좌파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 붙잡힌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은 자기의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방법과 습관마저 버리고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둘째는 달려가는 인생(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달리던 자전거가 갑자기 멈추면 넘어집니다.
그러나 넘어지려고 할 때 다시 넘어지는 방향으로 자전거의 핸들을 돌리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달려가는 길입니다.
달려가려면 달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사람을 달릴 수 있게 하는 힘을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고 합니다.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오늘도 예수님께 붙잡혀 믿음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까지 달려갔을 때 “착하고 충성된 사람아, 수고하였노라!”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은총의 하루가 활짝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부름의 상(the goal to win the prize)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은 부름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맡겨진 일을 위하여 준비된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장은 “친교의 기쁨”에 관한 말씀입니다.
친교를 위한 기초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입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지도자를 “대통령(大統領)”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군주(君主)” 또는 “왕(王)”을 최고의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최고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을 학문으로 발전시킨 것을 “제왕론(帝王論)” 또는 “대통령학(大統領學)”이라고 합니다.

최고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비전(vision)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
둘째는 설득력(persuasive power)이 있는 사람
셋째는 도덕성(moral integrity)이 우월한 사람
넷째는 열정(passion)의 사람
다섯째는 판단력(judgement ability)이 뛰어난 사람

완벽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더 확장시켜 온 세계를 위하여 지도자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를 본 받으라!”(17절)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지도자를 세워주시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9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부름의 상

상을 받는 사람은 상을 받을만한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나는 훗날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때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납니다.
그 자리에 주저 않는다면 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을 상급을 바라보며 오늘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부름에 합당한 믿음으로 인도하소서!
달려갈 길에 바로 서게 하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0

빌립보서 4:1∼23

일체의 비결(12절)


♦ 2월 2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립보서 4: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일체의 비결(12절)
♦ 성구 :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μεμύημαι).
“배웠노라”는 헬라어 동사는 “무에오(μυέω, mueó)”라고 합니다.
‘무에오’란 “신비를 밝히다(to initiate into the mysteries)” 또는 “훈련되었다(I am disciplined)”라는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은 “어디든지 통과(pass)” 할 수 있습니다.

궁핍하지만 자족할 줄 아는 믿음
비천하지만 풍부하게 즐기는 믿음
배고픔과 궁핍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이와 같은 믿음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정서적인 죄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염려하는 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할 때 마음속에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등이 몰려와 마음과 몸을 괴롭히면서 더 힘들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건설적인 사고(思考)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비결이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먼저 알고 계시므로 우리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줄 아는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염려의 틀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염려의 틀이 내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은 이미 거기에도 계십니다.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는 주님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찾아올 때
저희 마음을 깨끗케 하사
환경을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0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일체의 비결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1

골로새서 1:1∼29

비밀의 영광(27절)


♦ 2월 21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골로새서 1:1∼29
♦ 묵상을 위한 주제 : 비밀의 영광(27절)
♦ 성구 :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의 몸이 되는 성도들에 대한 교회론”에 관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모든 것의 모든 것” 이라고 합니다.
골로새서에서는 “몸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그리스도론”에 관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영광과 위엄” 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본문 14절에서부터 22절까지는 “바울의 기독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1. 신성(神聖)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1:15)
2. 창조(創造) ; 우주의 대 주재이신 창조주(1:15∼16)
3. 초월성(超越性) ; 만물 이전에(1:18)
4. 구속(救贖) ; 그의 피로 온 세계를 화목하게(1:20∼22)
5. 머리되심 ; 모든 주권과 권세들 가운데(1:18, 2:19)
6. 내주(內住) ; 그리스도인의 소망(1:2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셨으니 그보다 낮은 처소에 그리스도를 계시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밀(秘密)의 영광(榮光)이란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땅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和睦)케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피는 육체의 죽으심이란 희생(犧牲)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오늘날도 주를 믿는 성도들의 희생과 사랑으로 이 세상은 화목한 세계로 세워질 것입니다.

가장 작은 나의 희생과 사랑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용돌이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1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비밀의 영광

비밀(秘密)이란 감추어진 진실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고래 반응(反應)”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켄 블랜차드(Ken Blanchard)”의 저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Whale Done!)”
에서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고래를 훈련시키는 조련사는 항상 고래를 칭찬하고 긍정적인 관계로 이끌어 가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고래 반응”이라고 합니다.

‘고래 반응’의 특징은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경쟁”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고래 반응”의 반대를 “뒤통수치기 반응” 이라고 합니다.
뒤통수치기 반응이란 “잘할 때는 무관심하다가 무언가 잘못 되었을 때는 갑자기 뒤통수를 치면서 화를 내고 닦달 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밀의 영광이란 ‘고래 반응’과 같습니다.
부름 받은 제자들도 훌쩍 떠나버린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십자가의 비밀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외롭고 힘든 주님의 홀로서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처럼 오늘날도 주님만 믿고 따른다면 이 세상은 “뒤통수치기 반응”이 활개를 칠지라도 거룩한 주의 백성들은 “고래 반응”처럼 세상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일에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2

골로새서 2:1∼23

믿음에 굳게 서라(7절)



☞ 2월 22일(토)
- 나의 묵상 노트
♦ 믿음에 굳게 서라

믿음의 특징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가 반복되고, 절망의 파도가 넘실대는 거친 세상에서도 나와 같은 죄인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붙잡아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실패와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전환(redirection)”이란 방법을 사용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전환(轉換)이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했을 때에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여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도록 일깨우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때로는 실패했어도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나 방향을 찾아 다시 나갈 수 있는 힘을 위로부터 공급받습니다.
매일 아침 신령한 힘을 공급받는 믿음으로 나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세상은 더 흔들릴 것입니다.
빛이 그 성질을 잃으면 세상은 어두워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미 믿음(信仰)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음이 없으므로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정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게 있는 믿음을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은 아직 예수를 믿는 믿음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믿음에 굳게 서는 비결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3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2월 23일 주일예배 안내


이번 주일을 라틴어로 "퀸콰게시마(Quinquagesima)"라고 합니다.

'퀸콰게시마'란 부활주일(4월 12일)을

맞이하기 50일 전 주일을 말합니다.


교회력으로는 주현 후 제7주

또는 산상변화주일이라고도 합니다.


2월 26일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이라고 합니다.

'재의 수요일'은 "사순절(Lent)"의 시작입니다.


'사순절'이란 부활주일을 맞이하기 전 40일 특히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말합니다.


사순절 기간을 경건하게 준비합시다.

1. 한끼 금식하여 굶주린 사람을 위한 구제비

2. 매스 메디아 금식(휴대전화, 인터넷 등 사용자제)

3. 특별기도

 a. 문막 은퇴 여선교사 안식관 기공

 b. 자유대한민국의 건국 이념 확립

 c. 복음을 전한 대상자 찾기

 d. 우한 폐렴 확산 억제 및 백신 개발

과연 이와 같은 현상들이 과연 성경적인 것인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란 무엇인가?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기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제물로 드렸다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의 일상 삶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예배라고 하겠습니다(로마서 12:1).

예배는 공적 예배(예배당 예배)와 사적 예배(삶의 예배)로 구분됩니다. 신자는 공적 예배(예배당 예배)를 통해 삶 속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희생이 무엇인지 조명 받습니다. 이 조명을 삶에 적용하여 열매 맺음으로 예배는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이처럼 공적 예배와 삶의 예배는 유기적 관계 속에 있습니다.

공적 예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삶의 예배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16세기 종교 개혁이나 18세기 부흥은 공적 예배의 개혁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공적 예배를 무시하고 교회가 개혁되거나 부흥한 예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공적 예배와 삶의 예배는 어느 한쪽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몇몇 대형교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공적 예배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 생중계로 대치한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안전하게 예배하기 위한 사랑의 배려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결정을 한 대형교회 목사님들과 중직자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사숙고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결정일지는 모르나 충분한 기도와 믿음의 결정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과거 선배 신앙인들을 생각한다면 적절한 결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당연시 여기는 한국교회 분위기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하겠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는 이보다 더한 위험과 박해와 생명 위협 가운데서도 예배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나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에게 예배의 타협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봅시다. 주일 예배 때마다 순사들은 예배당에서 서슬 시퍼런 눈초리로 동방요배(東方遙拜)하지 않는 사람을 색출하기 위해 감시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굳이 예배당에 와서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혹독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우리는 이 대가로 작금의 신앙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혹자는 인터넷 실시간 예배도 신령과 진리로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중심이라고 합니다. 그럴듯한 궤변입니다. 현장예배와 온라인 예배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가? 휫필드의 표현에 의하면 천둥과 번개의 차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임재 차이라는 말입니다. 

온라인 예배에서는 현장예배와 같은 천둥과 번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예배를 한다는 논리는 구약시대에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고 가까운 산당에서 제사하던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교묘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이 논리를 긍정한다면 교회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무교회주의자들의 날 선 공격을 어떻게 반박하겠습니까? 그들은 교회당에 출석하지 않고 가정에서 인터넷으로 좋은 설교 영상을 찾아 대형 TV 앞에서 예배합니다. 불합리한 목회자의 간섭이나 허접한 설교를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교인들과 갈등하는 감정 노동도 할 필요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좋은 설교를 찾아 듣고 온라인으로 헌금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 그만입니다.

좀 더 생각해 봅시다. 굳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교인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예배하고 싶은 명분은 차고 넘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의 박해를 극복하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어떤가? 육신의 질병과 장애를 감수하며 예배당까지 와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이들을 향하여 어리석게 신앙생활 한다고 하겠는가? 도리어 이런 태도에서 예배의 정신을 보게 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가 이런 것이 아닌가?

더욱이 걱정되는 것은 이렇게 온라인으로 편리한 예배를 맛본 신자들의 방종을 어떻게 수습할지 걱정된다.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진 후에 현장예배를 등한시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하다. 작은 소자 한 명이라도 이들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실족시켜서는 안 되는 영혼이다.

물론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막무가내식으로 예배하자는 뜻은 아니다. 이런 식의 발상은 자칫 교회가 바이러스 확산의 원흉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먼저 확진자가 나타난 교회는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도록 철저히 방역해야 한다. 예배당 소독과 마스크 착용, 손 세정제 비치 등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예배 후 교제와 식사도 당분간 금한다. 목회자와 교회 중직자들은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심으로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해야 한다. 그 가운데 결과를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에 맡겨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목회자와 교회 중직자들은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정말 믿음이 필요한 고통스런 판단이다. 그러나 신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교회 중직자들이 이런 태도를 견지한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가 될 것이다.
* 자료출처 /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4

골로새서 3:1∼25

위엣 것을 찾으라(1절)

2

25

골로새서 4:1∼18

세월을 아끼라(5절)

2

26

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는 자의 본이 되자(7절)

2

27

데살로니가전서 2:1∼20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12절)

2

28

데살로니가전서 3:1∼13

주 안에 굳게 서라(8절)

2

29

데살로니가전서 4:1∼18

하나님의 뜻(3절)

3

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4

골로새서 3:1∼25

위엣 것을 찾으라(1절)


♦ 2월 24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골로새서 3: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위엣 것을 찾으라(1절)
♦ 성구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020년 함께 읽었던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요한일서는 예수는 우리의 생명(生命)
야고보서는 예수는 우리 믿음의 본(本)
로마서는 예수는 우리의 의(義)
에베소서는 예수는 우리의 모든 것
갈라디아서는 예수는 우리의 자유(自由)
빌립보서는 예수는 우리의 기쁨
골로새서는 예수는 우리의 영광(榮光)과 위엄(威嚴)
데살로니가전서는 예수는 장차 오실 자(再臨의 主)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함께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로 연결할 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읽었던 말씀에서 어떤 은혜를 확신하셨나요?
요한일서에서 “생명의 주”를 만났습니까?
야고보서에서 “행동하는 온전한 믿음의 주”를 찾으셨습니까?
로마서에서 나를 “의롭게 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까?
에베소서는 나를 “새로운 생명으로 인도하신 주님”을 만났습니까?
갈라디아서에서 나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까?
빌립보서에서 “예수 안에서 참 기쁨”을 회복하셨습니까?
골로새서에서 나를 “충만하게 하신 은혜”를 확신하셨습니까?

매일 읽는 짧은 한 장의 말씀에서 오늘 내게 있어야 할 은혜와 진리를 사모하며 오늘의 묵상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이란 “위엣 것을 찾아야 할 존재” 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위에는 부활하신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이름을 왜 남길까요?
무덤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이름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오늘 밤 열 두 시에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무슨 일을 생각했습니까?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설교 준비와 심방을 하겠소. 그리고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겠소.”

죽음이 확실하다면 30분 먼저 일찍 잠자리에 누워 영원한 생명을 찾아가는 웨슬리의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어떤 새로운 일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늘 평소에 하던 것처럼 내가 하던 그 일을 익숙하게 행하므로 죽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영원한 생명의 삶을 향하여 즐겁게 찾아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좀 더 일찍 그 세계를 앞당겨 맞이할 수 있는 분명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문을 30분 일찍 열 수 있는 믿음의 자신감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루의 창을 열고 위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4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는다는 것은 최상의 것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에 나타나는 한국 정치 현장을 생각해 봅니다.
최상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예로부터 정치 현장을 결정하는 것은 최고의 지도자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최상의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지도자라고 합니다.

중간형 지도자는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최악의 지도자는 보이는 것들 중에 내 눈에 좋은 것만 골라서 보고 들리는 것들 중에 내가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즈음 한국 정치 현장이 어떤 현실인지 짐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5

골로새서 4:1∼18

세월을 아끼라(5절)


♦ 2월 25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골로새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세월을 아끼라(5절)
♦ 성구 :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세월을 아끼라!(redeeming the time). 
아끼라(ἐξαγοραζόμενοι)는 헬라 단어의 동사 원형은 "엑사고라조( ἐξαγοράζω, 1805. exagorazó)" 라고 합니다. '액사고라조'의 의미는 "구속하다(ransom)"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시간을 구속할 수 있을까요?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으로 구분해 봅니다.
하나님의 시간이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령한 시간입니다.
사람의 시간이란 쾌락을 즐기려고 욕망에 의해서 작동하는 시간입니다.
하루는 24시간
한 시간은 60분
일 분은 60초
따라서 하루는 1,440분
1,440분은 86,400초
나의 하루 일과를 시간별로 구분해 보면 어떨까요?
잠을 위한 시간
밥을 먹는 시간
휴식을 위한 시간
거리를 오가는 시간
교통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
하루의 시간 중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인생의 년 수가 80이요 강건하면 90이라고 합니다.
하루의 시간들을 80 또는 90으로 환산해 보면 일생동안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발견해야 할 다섯 가지 비밀’이란 질문에 각계각층에서 스승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남긴 다섯 가지 지혜를 소개합니다.

첫째,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Be True To Yourself)
둘째, 후회를 남기지 마라(Leave No Regrets)
셋째, 사랑이 되라(Become Love)
넷째,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라(Live the Moment)
다섯째, 받기보다는 주라(Give More Than You Take)

이제는 세월을 아껴야 할 가장 중요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그 시간만큼이라도 지혜롭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시간을 좀 더 많이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았노라!
진실하게 믿었노라!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할 수 있는 하루를 창조하여 그 하루가 구속의 시간으로 연결되어 세월을 아끼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5일(화)
- 나의 묵상 노트
♦ 세월을 아끼라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6

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는 자의 본이 되자(7절)


♦ 2월 26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1:1∼10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는 자의 본이 되자(7절)
♦ 성구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믿는 자의 본이 되라(You became a model to all the believers).  
본(本)이란 “모델” “모형”이란 뜻입니다.
본(τύπον, example)이란 단어가 “자국”(요 20:25, print, mark), 
“식대로”(행 7:44, pattern, fashion, model) 라고 사용합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면 처음 만두를 만드는 딸에게 “만두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하며 반죽, 만두소, 만두 피 그리고 만두를 먹음직하게 만들어서 요리하는 과정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습니다.

믿는 자의 본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본보기처럼 생활하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학생들이 축제 분위기에 들떠 음식물을 벽에 던지고 낙서를 하며 난장판을 벌였습니다. 마침 그 광경을 기숙사 사감이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감은 학생들을 야단치고 깨끗이 닦게 할까? 아니면  청소하는 직원을 불러 닦게 할까? 그러다 사감은 학생들 앞에서 걸레를 가져와서 아무 말도 없이 벽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사감의 모습이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본이 된다는 것은 잘못을 지적하고 깨우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묵묵히 본을 보이는 자세가 사람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줍니다.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모두를 감동시켜 삶의 현장이 예수 향기로 진동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6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믿는 자의 본이 되자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7

데살로니가전서 2:1∼20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12절)


♦ 2월 27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2:1∼210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12절)
♦ 성구 :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사순절 제2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봅시다!

어느 날 허드슨 테일러에게 젊은이가 찾아와 “저는 세례를 받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게는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성경 지식과 신앙의 연수가 필요할까요?”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을 듣고 테일러가 반문합니다.

“램프의 심지가 얼마동안 타야 빛을 내지요?”


“그야 물론 알코올에 담겨 있는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테일러는 그 젊은이에게 “그렇습니다. 램프의 심지에 불이 붙는 그 순간부터 빛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연도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시고 필요한 인간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겸손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빛이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벌써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붙잡혀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붙잡히는 순간 하나님의 이끌림에 의한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삶을 위한 결단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지속적인 감사(13절)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13절)
셋째는 주의 강림을 기대하라(19절)

지속적인 감사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할 때 주의 강림의 날에 가장 영광스런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 한국과 복음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7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12절)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8

데살로니가전서 3:1∼13

주 안에 굳게 서라(8절)


♦ 2월 28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안에 굳게 서라(8절)
♦ 성구 :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For now we really live, since you are standing firm in the Lord. 

사순절 제3일을 맞이합니다.
주 안에 굳게 서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순간의 쾌락에 몸을 맡기려는 그대에게 1997년 6월 미국의 텔레비전과 신문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플린(Flinn)”은 최고의 여자 조종사가 되어 별처럼 빛나는 인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플린’은 공군 장교가 되는 과정에서 조종 훈련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습니다. 미국 언론은 ‘플린’을 가리켜 공군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플린’은 공군 중위로 미국의 최신 정예 폭격기인 B52의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미국 공군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촉망받는 여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녀가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군법 회의 후에 감옥에 수감되느냐의 문제로 떠들썩하게 거론되다가 미 공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군법을 어기고 계급이 낮은 유부남과 간음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간음을 행할 때에는 스릴과 쾌락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일생은 회복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후회와 패배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룩한 크리스천은 잘못된 사랑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한 번의 실수와 잠시의 쾌락으로 죽을 때까지 되씹고 또 되씹어야 할 아픔과 수치와 불행과 멸망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굳게 서야 할 이유의 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주 안에서 굳게 설 수 있을까요?

1. 환난 중에 요동하지 말라(3절)
2. 믿음으로 위로하라(7절)
3. 주야로 간구하라(10절)
4. 주의 재림을 기다리라(13절) 

사순절 제3일에 다시 한 번 다짐합시다.
“주 안에서 굳게 서리라!”
건물을 받치는 기둥 하나가 바르게 서지 못하면 건물 전체가 위험합니다.
자유대한민국이란 거대한 건물을 받치는 “나”라는 기둥이 바르게 서 있는지요?
나 하나 때문에 자유대한민국이 흔들리는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자 말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예수 한국 복음 통일일 위하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8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주 안에 굳게 서라(8절)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9

데살로니가전서 4:1∼18

하나님의 뜻(3절)


♦ 2월 29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뜻(3절)
♦ 성구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It is God's will that you should be sanctified.

사순절 제4일 아침의 창을 열어봅시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언어는 “코이네 헬라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헬라 단어는 두 가지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델레마”라고 합니다.
‘델레마’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뜻”을 말합니다.

둘째는 “불래”라고 합니다.
‘불래’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뜻”을 말합니다.

본문에 사용된 “하나님의 뜻”은 “델레마”라고 합니다.
“거룩함”은 곧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내가 어떻게 거룩한 주의 백성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7) 

“피(blood)”라는 헬라어는 “하이마(αἷμα)” 라고 합니다.

예수의 피가 어떻게 우리들의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벌거벗은 것을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부끄러움을 감추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이란 짐승의 죽음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죽옷이란 피를 통과한 옷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原罪, Original Sin)는 가죽옷에 의해서 용서받았던 것처럼 모든 인간의 죄는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에 의해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용서가 되는 것은 약속(約束)에 의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3
내가 애급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나의 죄가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약속을 믿음으로 확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거룩함”은 “델레마”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거룩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주께서 나를 대신하여 내 죄 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델레마의 진리입니다.

사순절 제4일을 맞이합니다.
기도 합시다.
자유대한민국이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장로님의 건국이념을 지워버리려는 잘못된 생각들이 지배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회복될 때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열국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 것처럼 자유대한민국을 동방의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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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오늘의 묵상(3월)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3

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영향으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주일날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고 동영상으로 또는 인터넷으로 각 가정에서 예배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예배를 어디에서 드려야 할까요?
사마리아 여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서(讀書)는 앉아서 하는 여행(旅行)
여행(旅行)은 서서하는 독서(讀書)
예배(禮拜)는 앉아서 하는 천국(天國) 방문(訪問)
오늘도 예배(禮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天國)를
경험(經驗)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祝福)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3

2

데살로니가전서 5:1∼28

영과 혼과 몸(23절)

3

3

데살로니가후서 1:1∼12

심판의 표(5절)

3

4

데살로니가후서 2:1∼17

멸망의 아들(3절)

3

5

데살로니가후서 3:1∼18

사랑과 인내(5절)

3

6

디모데전서 1:1∼20

괴수(魁首)(15절)

3

7

디모데전서 2:1∼15

중보(中保)(5절)

3

8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3월 2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과 혼과 몸(23절)
♦ 성구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사순절 제5일 아침을 맞이합니다.
오늘도 새 날을 맞이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어제 밤에도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을 넘어갔습니다. 이런 와중(渦中)에도 이렇게 건강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귀합니까?

건강(健康)이란 육체적인 것만 아니라 영(靈, Spirit, πνεῦμα)과 혼(魂, Soul, ψυχὴ)과 육(肉, Body, σῶμα)의 창조적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창조적 조화란 최초의 사람 “아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는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창조적 조화는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죄가 인간에게 들어왔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 이후에는 영생(永生)과 영벌(永罰)의 갈림길에서 영생(永生)의 자리를 확보한 것입니다.

영생의 자리를 확보하는 방법을 영과 혼과 육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영과 혼과 육을 흠 없이 보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경건의 훈련에 의해서 영과 혼과 육을 흠 없이 보존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영(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값은 죽었을 때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소고기 한 근의 가격과 돼지고기 한 근의 가격은 시장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지만 사람의 고기는 시장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판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동물의 가치는 고기 값이 아닙니다. 그 가치는 “영(靈)”에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값진 것은 동물의 고기 값보다 사람의 영(靈)의 가치를 그만큼 귀하게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3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1:1∼12
♦ 묵상을 위한 주제 : 심판(審判)의 표(標)(5절)
♦ 성구 :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심판(審判)이란 “살필 심(審)” “판단할 판(判)”
표(標)란 “표할 표(標)”

심판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살펴봅니다.
1. 어떤 일이나 상황, 문제 따위를 자세히 조사하여 잘잘못을 밝힘.
2. 경기 등에서, 규칙의 적부, 경기의 우열이나 승부를 판정하는 일.
3. 사람이 죽은 후나 역사의 종말에 가서 인간이나 세상의 잘잘못을 신이 판정함.

심판(審判)의 표(標)를 헬라어로 분석해 봅니다.
심판(κρίσεως)이란 “κρίσις(krisis)”(judgement)
표(ἔνδειγμα)란 “ἔνδειγμα(endeigma)”(proof, indication)    
심판의 표란 “심판의 증거” 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경은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히브리서 8: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심판의 표”는 “온갖 박해와 고난을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세상에서 무병장수 및 만사형통과 같은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판의 표는 세상에서 온갖 핍박과 박해 그리고 고난을 받을 때에도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동방 우스 땅에 욥은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고 심지어 온 몸에 악한 피부병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과한 후에 욥의 재산은 갑절이 되었고 잃었던 자녀들을 다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순절 제6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이란 고난의 주님을 묵상하며 고난을 피하는 믿음이 아니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고난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빛을 드러낼 수 있는 믿음의 보석을 다듬어 부활의 아침에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굳게 일어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4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2: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멸망(滅亡)의 아들(3절)
♦ 성구 :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멸망의 아들”을 영어 성경(NIV)에서 “the man of lawlessness(무법의 아들)” 이라고 번역합니다. 과연 무법의 아들이란 어떤 존재를 말할까요? 

무법의 아들이란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요한일서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적그리스도(ἀντίχριστος)란 헬라어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존재”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을 대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대신하는 존재”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은 마지막 시대를 알려주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존재(요한일서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둘째는 성육신 사건을 부인하는 존재(요한이서 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적그리스도는 무신론자들이 아닙니다.
복음을 외치되 거짓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 또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린도후서 11:4).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린도후서 11:13∼15).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태복음 7:15).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주의 재림(再臨) 때까지 적그리스도는 자주 나타날 것입니다.
분별의 영을 기도하며 사이비(似而非)와 이단(異端)을 구분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의 백성들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5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3: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랑(愛)과 인내(忍耐)(5절)
♦ 성구 :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믿음이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2절)
왜냐하면 성도들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면서도 재림의 날이 희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날마다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과 인내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명한 것을 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사람을 시간”이라 하고 “하나님을 영원”이라 하며 사람과 하나님을 비교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영원한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시간인 사람이 어떻게 그 차이를 극복하고 만날 수 있을까?
영원하신 하나님 편에서 시간인 사람 편으로 스스로 다가와 만날 때 그 만남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태어난 사건 자체가 바로 영원이 시간으로 바뀐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자체가 영원이 시간 안으로 들어 온 사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신앙의 주인으로 모셔 들일 때 그는 시간에서 영원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으니.”

시간에 속한 사람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비로써 하나님의 자녀 득 영원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그 사람의 삶이 곧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종말론적 삶을 실천하기 위한 비결이 곧 사랑과 인내입니다.

사순절 제8일을 맞이합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과 인내로 무장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 주님
이곳에 오셔서
환난과 질고 가운데서
불안한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강건케 하여
주님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6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1: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괴수(魁首)(15절)
♦ 성구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괴수(魁首)”란 “악당의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괴수”란 한자의 “훈(訓)”은 “으뜸 괴(魁), 괴수 괴(魁)” “머리 수(首)”라고 합니다.
“괴수”를 영어 성경에서는(NIV) “I am the wors(나는 최악입니다)” 라고 합니다. 
“괴수”를 헬라어 성경에서는 “프로토스(πρῶτός)” 라고 하며, 뜻은 “first, chief” 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죄인 중에 가장 나쁜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죄에 대한 절대적 개념을 표현한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절대적인 표현보다는 상대적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죄가 없다”며 자기의 의(義)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참조 누가복음 18:9∼14).

사순절 제9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이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절기로서 이전 보다 좀 더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 관심을 갖고 자기를 성찰(省察)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화요일 참회의 기도 “높은뜻 덕소교회 오대식 목사”의 회개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주님, 코로나19로 인해 불과 한 달 동안 우리의 생활 모든 것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분명 있음을 보게 하시고, 우리가 잘못 가고 있었던 길을 반성하며 다시금 주 앞에 바르게 서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1. 주님, 우리는 지금 평범한 일상이 다시 오기를 간구합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가장 큰 축복임을 이제라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리며, 그동안 주님이 주신 행복을 곁에 놔두고 행운을 찾아 헤맸던 죄를 용서하시며 무엇이 가장 소중한 축복인지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2. 한국인 입국을 막는 나라가 현재 92개국이 넘었습니다.

주님, 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나치리만큼 해외여행을 다니는 한국인에게 이제는 좀 절제하라는 주님의 사인 같이 느껴집니다. 남들과 관계없이 나만 즐기면 된다는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들을 이제는 바꿔주시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과 나에 대한 절제가 조금 더 삶에서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십시오.

3. 주님, 동남아와 중동국가들, 그리고 아프리카 나라들까지도 한국인을 무시하고 강제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철저하게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무시해 온 것에 대한 정확한 인과응보 같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욱 인격적으로 대하게 하시고 소중히 여기게 하여 주십시오. 나그네와 고아를 사랑하고 대접하라는 주님의 마음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하여 주십시오.

4. 주님, 마스크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그동안 너무 많이 무책임한 말을 내뱄고 거짓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퍼 날랐던 우리들에게 조금 더 침묵하며 살라는 주님의 명령 같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내 입을 막으며 적게 말하고 진실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게 하여 주십시오.

5. 주님, 모이는 교회를 막으시는 것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전혀 감당하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모이는 일에만 힘 쓴 것에 대한 벌처럼 느껴집니다.

우리의 믿음의 현장이 교회가 아닌 세상임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교훈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교회보다 교회 밖에서 더 빛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우리가 모두 다시 노력하게 하여 주십시오.

6. 교인이 5만 이니 10만 이니 하는 것이 모두 거품인 것을 알게 하신 주님, 하루  아침에 예배당의 교인들은 없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목사의 관심이 교인의 수에만 있고, 교회의 자랑이 그 크기에만 있었다면 이제 그 마음을 돌이켜 우리의 참된 자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자랑이 천박한 '교회크기'가 되지 않게 하시고, 내 기도의 간구가 경쟁에서의 승리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오직 존귀한 그리스도 예수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7. 주님, 이 어려움이 다 지나고 난 후, 이 땅의 교회들이 다시 새로워지며 주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 같은 교회로, 함께 천국을 향해 나가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와 같이 거룩한 공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텅 빈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동안의 나의 잘못을 참회합니다. 주님, 교인들과 함께 마주하며 예배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도록 주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언제나 우리를 위로해 주시며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들이여!
사순절 경건의 시간을 지내며 내가 고백할 회개의 기도문을 적어보며 주님 앞으로 더 가까기 다가설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2: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중보(中保)(5절)
♦ 성구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中保)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두 사람 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 사람.
2. 신과 사람의 사이를 화해시키고 교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

그러나 성경에서 중보란 죄인과 창조주 하나님의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死亡)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生命)입니다.

죽음과 영원한 생명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역할을 “중보자” 라고 합니다.

중보란 헬라어는 “메시테스(μεσίτης, mesites)” 라고 합니다.
‘메시테스’는 “meditator(중재자), arbitrator(중매인)”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중보하심을 알고 있습니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로마서 8:26∼27)   

예수를 믿는 것은 전도자로서 중보역할을 맡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전도(傳道)란 사망의 그늘에 갇힌 사람을 생명의 울타리 안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구원 사역입니다.

사순절 제10을 맞이합니다.

사망의 그늘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의 길을 경험한 믿음으로 오늘도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전도자가 되어 생명을 구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3

9

디모데전서 3:1∼16

경건의 비밀(16절)

3

10

디모데전서 4:1∼16

경건에 이르는 연습(7절)

3

11

디모데전서 5:1∼25

선한 행실의 증거(10절)

3

12

디모데전서 6:1∼21

하나님의 사람(11절)

3

13

디모데후서 1:1∼18

거짓이 없는 믿음(5절)

3

14

디모데후서 2:1∼26

예수의 좋은 군사(3절)

3

15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3월 9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3: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敬虔)의 비밀(秘密)(16절)
♦ 성구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호주의 전직 TV프로듀서인 “론다 번(Rhonda Byrne)”은 “씨크릿(Secret)”이라는 저서에서 세계 유명 인사들이 성공을 하고 부자가 된 놀라운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the law of attraction)” 이라고 합니다.

의식(意識)과 생각(生覺)에는 힘이 있고 긍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을 끌어당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중심에 부자가 되고 싶고, 성공을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 중요하고도 꼭 필요한 크고도 놀라운 참된 비밀은 “경건의 비밀”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교회 감독으로 있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에베소를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아데미 신”을 숭상하며 제물을 바치는 우상에 빠진 도시였다고 말합니다. “아데미 여신”은 풍요와 다산, 쾌락의 신이었고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복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데미여신은 가짜고 그녀가 주는 복이 크고도 놀라운 비밀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짜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 즉 경건한 삶이야말로 크고도 놀라운 비밀이라고 깨우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풍요와 쾌락과 다산이 큰 복이 아니라고, 그걸 누리도록 해주는 것이 크고 위대한 비밀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장 큰 복이요, 그분을 누리는 경건한 삶이야말로 크고도 놀라운 비밀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와 같은 진리를 어디에서 배워야 할까요?
교회에서 이 진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왜녀하면 교회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들이여!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 예수여,
주 닮기 원하오니
닮음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주님만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0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4: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敬虔)에 이르는 연습(7절)
♦ 성구 : 경건(敬虔)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사순절 제12일을 맞이합니다.

경건(敬虔)이란 무엇일까요?
경건(敬虔)이란 한자는 “공경 경(敬)” “공경할 건(虔)” “삼갈 건(虔)”
경건(敬虔)이란 영어 성경(NIV)에서는 “godly(경건한)” 이라고 합니다.
경건(敬虔)이란 헬라어는 “유세배이안(εὐσέβειαν)” 이라고 합니다.
원형은 “유세배이아(εὐσέβεια, eusebeia)” 라는 여성 명사입니다.
뜻은 “경건함(godliness, piety)”, “헌신(devotion)” 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경건”이란 단어가 사용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서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디모데후서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히브리서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시편 32: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디모데전서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경건이란 예배와 기도에 힘쓰는 삶을 통해 얻어진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경건은 유전(遺傳)이 아니라 연습(練習)에 의해서 얻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연습(練習)이란 “굼나제(γύμναζε)”의 동사 원형은 “굼나조(γυμνάζω, gumnazó)” 라고 하며 뜻은 “train(훈련)”입니다.

“피나는 훈련” “피나는 연습”이 있어야 경건한 사람으로 경건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리차드 포스터(Richard J. Foster)” 라는 영성신학자는 그의 저서 “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Discipline)”에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내적(內的) 연습(The Inward Disciplines)

내적 연습에는 “묵상(黙想)”과 “기도(祈禱)”와 “금식(禁食)” 그리고 “성경공부(聖經工夫)”를 말합니다.

둘째는 외적(外的) 연습(The Outward Disciplines)
외적 연습에는 “봉사(奉仕)”와 “홀로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는 집단(集團) 연습(The Corporate Disciplines)
집단 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禮拜)”입니다. 예배의 연장선으로 “수련회(修鍊會)” “부흥회(復興會)”와 같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순절 제12일 맞이합니다.
사순절이란 경건의 훈련을 위한 계절입니다.
새 봄을 맞이하듯 사순절 절기에 경건의 훈련에 동참하여 경건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1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5: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선한 행실의 증거(10절)
♦ 성구 :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사순절 제13일을 맞이합니다.

오늘 읽어야 할 말씀의 주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로서 대표적인 사람을 “과부”라고 합니다(참조. 구약 신명기 14:29, 객과 고아와 과부).
과부의 명부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을 “참 과부”라고 합니다(참조, 3, 5. 16절).

‘참 과부’란 연고가 없는 사람으로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약자(弱者)를 말합니다. 선한 행실의 증거는 주를 믿는 믿음의 표현으로 그리스도인의 높은 생활(higher life)을 통하여 “성화(sanctification)”와 “완전(perfection)”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뜬다.”고 그리스도인들을 비웃는 이야기는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한 책망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 보다 하나를 알아도 실천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엇이 믿음이 있는 것이고, 또 무엇이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믿음이 있는 것은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은 힘이 없고 메마르고 위선으로 보여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듣고 알았다면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묵상) 삶 가운데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그 적용하는 행동 가운데 “총명(聰明)”을 더해주십니다. 총명은 영적인 분별력과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총명을 받은 사람은 비록 그의 말이 어눌하다 할지라도 그 어떤 설교보다도 큰 감동을 줍니다.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디모데후서 2:7)

사순절 제13일을 맞이합니다.
선한 행실의 증거는 믿음을 실천하는 현장에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열매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우리들이 선한 행실의 증거를 회복하여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영적인 삶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는 은총의 하루가 펼쳐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2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6: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사람(11절)
♦ 성구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이름”으로 행하는 힘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사도행전 3:6)

오늘의 교회는 물질은 풍부하지만 예수 이름의 능력은 거지와 같습니다.
사순절 제14일을 맞이합니다.
2020년 사순절의 기간을 보내며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이란 물질의 풍부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이름을 사용할 줄 아는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이 땅에서 떠나갈지어다!
예수 이름은 능력의 이름입니다.
능력의 이름은 능력을 회복한 사람에 의해서 사용될 때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회복한 후에는 축복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세워지기 를 기대하며 독일의 신학자 "요르그 징크(Jörg Zink, 1922~2016)"의 여행자를 위한 축복 기도를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네게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너보다 앞서 가시며,
네가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보여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네 곁에 계시며,
그 팔로 너를 감싸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네 뒤에 계시며,
어두운 세력이 너를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네 아래 계시며,
네가 넘어지려 할 때에 너를 든든히 받쳐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네 옆에 계시며,
네가 슬퍼할 때에 너를 위로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네 안에 계시며,
너를 치유해주시고,
하나님이 너를 감싸주시어,
근심에 싸여 있을 때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노라.

마치 하늘에 태양이 있듯이 하나님이 네 위에 계시며,
그 능력으로 너를 강건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주 예수여!
능력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내 구멘!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3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1: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거짓이 없는 믿음(5절)
♦ 성구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매사에 부정적인 남자가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는 이유로 총살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형 집행 얼마 전에 총살형이 교수형으로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부정적인 남자는 “이 놈의 나라. 그렇게 전쟁을 하더니 결국 총알이 다 떨어졌군.” 이렇게 불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다시 말하기를 “망할 놈의 나라. 밧줄도 다 떨어졌네.”

다행스럽게도 며칠 뒤에는 사면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이런 빌어먹을. 이제는 죄수들에게 먹일 식량도 다 떨어졌군.” 

부정적인 사람의 특징입니다.

교황 “이노센트 4세(Innocentius PP. IV, 이탈리아어: Papa Innocenzo IV. 제180대 교황, 재위 기간 1243. 6. 25∼1254. 12. 7)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 ~1274. 3. 7)”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지어 기증한 ‘라테란 성당’ 발코니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각 국에서 보내온 헌금주머니들이 속속 성당으로 도착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교황 이노센트 4세’가 “선생 보시오. 베드로 사도께서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 교황청은 은과 금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깊은 한 숨을 쉬며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교황님! 오늘의 교회는 은과 금은 있지만 대신 앉은뱅이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수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현대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긍정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특징은 “감사”라고 하겠습니다.

감사는 어떤 외부의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범사(凡事)에 감사(感謝)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3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1: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거짓이 없는 믿음(5절)
♦ 성구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거짓이 없는 믿음(ἀνυποκρίτου πίστεως)” 이란 무엇일까요?

“아누포크리투”란 “ἀνυπόκριτος” 라는 형용사가 원형으로 “unhypocritical(위선적이지 않은)” “unfeigned(위조되지 않은)” “sincere(신실한)”이란 뜻입니다.

“피스테오스”란 “피스티스(πίστις)” 라는 동사가 원형으로 “faith(믿음)”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신실한 믿음(sincere faith)”을 말합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족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거짓이 없는 믿음을 배웠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자녀들 앞에서 거짓이 없는 믿음의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7절).

첫째는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둘째는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

거짓이 없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8절).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때문입니다(14절).

이때 “거하시는” 이란 헬라 단어는 “충만하다(πληρόω, 플래로오, pléroó, 골 1:9)”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거짓이 없는 믿음은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순절 제15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이란 십자가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사모하는 시간입니다.

두려움을 겁내지 않으려면 먼저 “성령으로 충만한 심령”을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의 사람에게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은혜가 넘쳐날 것입니다(골 1:9).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가정에서부터 거짓이 없는 믿음을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모두 함께 사순절 제15일을 맞이하는 이 날에 거짓이 없는 믿음의 가족들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4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2: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의 좋은 군사(3절)
♦ 성구 :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예수의 “좋은 군사(καλὸς στρατιώτης. 칼로스 스트라티오테스)”가 됩시다.
사순절 제16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 제16일을 맞이하는 아침에 “예수의 좋은 군사(good soldier of Christ Jesus)로 무장하는 은혜의 하루가 펼쳐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의 좋은 군사는 예수님은 물론 주위 모든 사람에게도 좋다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가 좋다고 노래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다고 한다면 과연 예수님은 나를 좋아하실까요?

어떻게 하면 예수의 좋은 군사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좋다”라는 헬라어에 두 가지 용어를 사용합니다.
첫째는 “아가도스(ἀγαθός, agathos)”란 “좋은(good)” 이란 뜻입니다. 
둘째는 “카로스(καλός, kalos)”는 “아름다운(beautiful” “좋은(good)”이란 뜻입니다.
 
“아가도스”라는 단어는 절대적으로 좋다는 의미를 말합니다.
“카로스”라는 단어는 상대적으로 좋다는 의미를 말합니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가장 좋은 예수의 군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군사로 무장해야 합니다.

좋은 군사의 특징은 평안한 날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 승리한 후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군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기뻐합니다(3절, 9절).

고난에 참여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힘쓰라(15절)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바쳐야 합니다.

둘째는 버리라(16절, 23절)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려야 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는 좇으라(22절)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합니다.

영국의 소설가이며 성공회(Church of England, Anglican Church, Episcopal Church)의 평신도이었던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 11. 29∼1963. 11. 22)가 캠브리지 채플에서 “예수의 구주되심”이라는 주제로 설교했을 때 한 학생이 다가와 “만약 오늘 선생님께서 예수는 본받아야 할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했다면, 우리 모두는 선생님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예수는 구세주’ 라는 기독교의 교리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C. S. 루이스는 그 학생에게 “자네는 정말 예수가 완벽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아,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요.” 라고 말했지요.
“그러면 이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자네가 완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학생은 한참 생각하다가 “완전하게 따라갈 수는 없겠지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떼 루이스는 “아, 그러면 자네도 도덕적 실패를 인정하는군. 그렇다면 자네의 삶 속에서 실수가 있었고, 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아, 인정하지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모델로서의 예수가 아니네. 자네의 도덕적인 실패와 죄에서부터 자네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이신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네. 죄인에게는 도덕적인 모델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필요하다네.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그분은 자네에게 도덕적인 모델이 될 수가 있다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구세주가 되신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일에 무조건 순종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순절 제16일을 맞이하는 이 아침에 좋은 군사로 무장하여 영적 싸움터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3

16

디모데후서 3:1∼17

말세에 고통하는 때(1절)

3

17

디모데전서 4:1∼22

말씀을 전파하라(2절)

3

18

디도서 1:1∼16

가증한 자(16절)

3

19

디도서 2:1∼15

하나님의 은혜(11절)

3

20

디도서 3:1∼15

영생의 소망(7절)

3

21

빌레몬서 1:1∼25

믿음의 교제(6절)

3

2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3월 16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3: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세에 고통 하는 때(1절)
♦ 성구 :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면 “말세에 어려운 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말세(末世, The Last)와 말일(末日, The Last Day)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말일(末日)”이란 “마지막 날” 즉 최후의 심판의 날을 의미합니다.
“말세(末世)”란 “마지막 시대” 즉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의 시대적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자기를 사랑(自己愛)(Self Love)(be lovers of themselves) 
2. 돈을 사랑(맘몬 思想)(lovers of money)
3. 자긍(自矜)(자랑)(boastful) 
4. 교만(驕慢)(proud) 
5. 훼방(毁謗)(abusive) 
6. 부모(父母)를 거역(拒逆)(disobedient to their parents) 
7. 불평(不平) 즉 감사(感謝)하지 않는 것(ungrateful) 
8. 세속(世俗) 즉 거룩하지 않은 것(unholy)
9. 무정(無情)(without love)
10. 원통(寃痛)함을 풀지 않는 것(unforgiving)
11. 참소(讒訴)(slanderous)
12. 무절제(無節制)(without self-control)
13. 사나움(亂暴)(brutal)
14. 선(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not lovers of the good)
15. 배반(背叛)(treacherous)
16. 조급(躁急)(rash)
17. 자고(自高)(conceited)
18. 쾌락(快樂)을 즐기는 것(lovers of pleasure)
19. 경건(敬虔)의 모양(模樣)만 갖춘 것(having a form of godliness)


1948년 유대인들의 극적인 팔레스타인 귀환과 이스라엘 국가 건설, 그리고 1967년 예루살렘의 재탈환은 종말론자들을 흥분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예언에서 현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의해서 종말의 징조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강조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기억합시다.

성경의 그리스도만이 그리스도입니다. 재구성된 그리스도는 그 어떤 모습이든지 적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만 생각합시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보여주실 때까지 믿고 기다립시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7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4: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씀을 전파하라(2절)
♦ 성구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신약 성경에서 “목회서신”이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를 말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설교자의 직무”라고 하겠습니다.

요즈음은 설교가 너무 흔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많아도 설교대로 살아가는 설교자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설교는 말이 아니라 삶이어야 합니다.

어느 장로님께서 제게 간곡하게 부탁했던 이야기를 항상 마음에 담고 설교자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목사님, 설교를 잘 하는 목사는 많습니다. 저희가 기대하는 것은 설교한대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설교자가 전해야 할 말씀은 “복음 진리”입니다.

복음 진리란?
“바른 교훈” 즉 “바른 교리”와 “바른 생활”을 말합니다.

“전파하라”는 것은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설교는 대화나 토론이 아닙니다.
설교는 선포적 이어야 합니다.
설교는 사람들이 그것을 듣든지 안 듣든지, 그것을 좋아하든지 안 좋아하든지 관계치 말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견해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토론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토론할 것이 아니고 단순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항상 힘쓰다”는 헬라어 “에피스테미(ἐπίστηθι)”는 “준비하다(be ready)”, “집중하다(concentrate)”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신앙의 전통은 설교자는 세 가지를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첫째는 설교 준비(preach preparation)
둘째는 이사 갈 준비(prepare to move)
셋째는 죽음 준비(prepare for death)

설교자의 삶은 고독해야 합니다.
설교자의 삶은 부족함이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의 삶은 깊은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어렵던 시절에 설교자의 삶에 대한 어느 신학대학 학장의 고백은 지금도 설교자들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입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한 달 사례비를 받으면 다섯 식구가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한 달 사례를 받으면 거의 반년 정도 지낼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설교자로서 솔직한 고백은 어렵고 힘들 때의 설교에는 힘이 있었고 감동이 있었으나 요즈음의 설교에는 아무런 힘도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라.
능력 있는 말씀을 전파하라.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맡겨야 한다.

듣는 설교에 익숙한 시대에 이제는 보여주는 설교를 실천하므로 세상의 변화를 자극할 수 있는 설교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사순절 제18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모든 성도들은 설교자와 같은 진실한 삶을 회복하여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어지럽고 두려워할 때 소망의 등불이 되어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를 갖게하는 무언의 설교자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8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도서 1: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가증(可憎)한 자(16절)
♦ 성구 :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사순절 제19일을 맞이합니다.
가증한 자(They are detestable)란 어떤 사람일까요?

가증한 사람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합니다. 그러나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않는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가증한 사람의 의미를 다양하게 살펴봅니다.
첫째, 혐오스런 사람(detestable, NIV)
둘째, 밉살스러운 사람(현대인, 공동번역 성경)셋째, 가증스러운 사람(새번역, 개역개정, 개역한글 성경)
넷째, 혐오스런 사람(βδελυκτοὶ, βδελυκτός. bdeluktos)(헬라어 성경)
다섯째, 매우 괘씸하고 얄미운 사람(한글사전) 

디도서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본이 되신 주님” 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행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하기 위하여 구원받은 것입니다(참조. 디도서 2:7, 14, 3:1, 8, 14).

구원이 우선입니다.
선한 일은 구원받은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입니다.

가증한 사람은 선한 일을 행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마치 구원받은 증거라고 말합니다.

스펄전은 1850년 1월 6일 주일 아침 많은 눈이 와서 목사가 설교하러 오지 못한  어느 감리교회의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스펄전은 그곳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설교자의 설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바라보라!”는 설교에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아무런 편안함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의지하는 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에게 ‘우리에게 성령이 일하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것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성경은 ‘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바라보라!
내가 수많은 핏방울을 흘리고 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죽었고 묻혔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일어났노라.

나를 바라보라!
나는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아 있노라.

오, 불쌍한 죄인이여 나를 바라보라!

비록 어눌한 설교자이었지만 스펄젼을 향해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당신이 할 일은 바라보며 사는 것뿐입니다!”

이 설교에 스펄젼은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스펄젼은 지금까지 주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죄인 됨만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았고 즉시로 구원받아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자로써 출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구원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믿음을 온전케 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9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도서 2: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은혜(11절)
♦ 성구 :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사순절 제20일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어느 특정한 민족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오직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종합한 구원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들 즉 각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그들 속에 종들까지도 포함합니다.

구원하신 후에는 “양육하신다”고 하셨습니다(12절).

‘양육한다’는 헬라어는 “파이듀오(παιδεύω)”라고 합니다. '파이듀오'는 ‘가르친다, 교육한다, 교훈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불경건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라는 것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는 불경건과 음란과 탐욕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둘째, 근신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살라는 것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신중하고 사려 깊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의롭고 정당하게 살아야 하며 또 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바라라는 것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의 “복스러운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놀라운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요 1:1),
‘참 하나님’(요일 5:20),
‘크신 하나님’(딛 2:13) 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복스러운 소망이십니다.

복스러운 소망이란 주님의 영광스런 재림을 말합니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 24:30)

사순절 제20일을 맞이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이 사순절을 시작한 후 20일이 지났습니다.

주님 언제 다시 오실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오실 주님의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주님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을 점검해 봅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Ἀμήν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아멘 에르쿠 쿠리에 이에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0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도서 3: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생의 소망(7절)
♦ 성구 :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永生)의 소망(所望)
- the hope of eternal life
- 엘피다 조에스 아이오니우(elpida zoes aiōniou, ἐλπίδα ζωῆς αἰωνίου)   

희망(希望)과 소망(所望)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희망(希望)이란?
한자의 의미는 “바랄 희(希), 바랄 망(望)”
한글 사전적 의미는 “앞일에 대하여 좋은 결과를 기대함” 또는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이라고 합니다.

소망(所望)이란?
한자의 의미는 “바랄 소(所), 바랄 망(望)”
한글 사전적 의미는 “바라고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희망과 소망이란 문자적인 의미가 서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비슷한 의미가 아닙니다.

희망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소망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확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아니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배울 수 없고 경험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알 수 있다.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경험이 지식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얻는 과정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배움의 과정
둘째는 경험의 과정
셋째는 신앙의 과정

문제는 죽음이란 배움과 경험으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보편적 진리를 배울 수 없고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믿는 것을 신앙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과정을 한 단어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相)”이라고 합니다.

영생(永生)이란 죽음 후에 반드시 “심판(審判)”을 받고 “영벌(永罰)”과 “영생(永生)”으로 구분될 것을 확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순절 제21일을 맞이합니다.
영생의 소망이란 사람이 무슨 선한 일을 행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동지들이여!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온 세상이 예측할 수 없는 내리막길을 치달리듯 달려가는 때에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회개와 기도하는 믿음으로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레몬서 1: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의 교제(6절)
♦ 성구 :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믿음의 교제(交際)

교제(交際)라는 한자는 “사귈 교(交)” “사이 제(際)”
한글 사전적 의미는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냄” 또는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과 가까이 사귐”
교제(交際)라는 헬라어는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ᾳ)”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fellowship”이라고 합니다.

교제를 다른 말로 “사귐”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제의 장소를 화려하고 멋진 곳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혔을 때 함께 감방에 수감된 “오네시모”라는 죄수를 만났습니다. 흔한 말로 “감방 동기”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에서는 감방 동기는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여 또다시 잘못된 일을 함께 도모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제를 나쁜 교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가르쳤습니다. 오네시모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감옥에서 나온 후에 이전에는 “쓸모 없는 사람” 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쓸모 있는 자” 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누가 지었나요?
나의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이름은 우연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분명한 의미를 갖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 속담처럼 내 이름의 의미가 이 땅에서 아름답게 기억될 이름으로 새겨질 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온 몸과 마음을 붙잡아 남은 생애가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레몬서 1: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의 교제(6절)
♦ 성구 :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믿음의 교제(交際)

교제(交際)라는 한자는 “사귈 교(交)” “사이 제(際)”
한글 사전적 의미는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냄” 또는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과 가까이 사귐”
교제(交際)라는 헬라어는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ᾳ)”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fellowship”이라고 합니다.

교제를 다른 말로 “사귐”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제의 장소를 화려하고 멋진 곳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혔을 때 함께 감방에 수감된 “오네시모”라는 죄수를 만났습니다. 흔한 말로 “감방 동기”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에서는 감방 동기는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여 또다시 잘못된 일을 함께 도모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제를 나쁜 교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가르쳤습니다. 오네시모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감옥에서 나온 후에 이전에는 “쓸모없는 사람” 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쓸모 있는 자” 라고 합니다.

감방 동기로서 “사도 바울”과 “오네시모”의 ‘만남’과 ‘사귐’을 철학에서는 “실존적 교제(實存的 交際)”라고 합니다. ‘실존적 교제’를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 2. 23~1969. 2. 26)”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실존적 교제’는 ‘사랑의 교제’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누가 지었나요?
나의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이름은 우연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분명한 의미를 갖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 속담처럼 내 이름의 의미가 이 땅에서 아름답게 기억될 이름으로 새겨질 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온 몸과 마음을 붙잡아 남은 생애가 철저하게 주님의 것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하나님과의 실존적 교제를 회복한 후에 이와 같은 교제의 신앙으로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멋진 이름으로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3

23

히브리서 1:1∼14

만유의 후사(2절)

3

24

히브리서 2:1∼18

마귀(魔鬼)(14절)

3

25

히브리서 3:1∼19

믿는 도리의 사도(1절)

3

26

히브리서 4:1∼16

은혜의 보좌(16절)

3

27

히브리서 5:1∼14

멜기세덱의 반차(6절)

3

28

히브리서 6:1∼20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2절)

3

2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3월 23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1:1∼14
♦ 묵상을 위한 주제 : 만유의 후사(2절)
♦ 성구 :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사순절 제23일을 맞이합니다.

“만유의 후사(後嗣)”‘후사’란 “대를 잇는 아들”이란 뜻입니다.

후사란 한자는 “뒤 후(後)” “이을 사(嗣)”라는 훈(訓)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만유의 후사”를 “모든 것의 상속인(heir of all things)” 이라고 소개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클래로노먼 판톤(κληρονόμον πάντων)” 이라고 합니다.

후사라는 “클래로노모스(κληρονόμος)”는 ‘남성 명사’로 “상속인(an heir)” 이란 뜻으로, “클래로스(κληρος)”와 “노모스(νόμος)”가 합성한 단어입니다.

“클래로스”란 “제비를 뽑아 얻은 기업” 또는 “제비 뽑는 물체”를 말하며, “노모스”는 “율법”을 말합니다.

따라서 후사란 율법에 의해서 인정된 상속자를 말합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만물의 후사가 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후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사된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것만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 세상에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나 혼자만 후사가 된 것이 아니라 함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에베소서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후사가 되는 은혜가 유대인에게만 약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과 자녀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갈라디아서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사순절 제23일을 맞이하며 비록 이 세상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가택연금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로 인정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늘의 것만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 세상에서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 모두의 믿음이 정금과 같은 순수한 신앙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2: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마귀(魔鬼)(14절)
♦ 성구 :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사순절 제24일을 맞이합니다.
마귀(魔鬼)의 정체를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라고 말씀합니다.

마귀(魔鬼), 귀신(鬼神), 사탄(Satan), 악령(惡靈)이란 서로 다른 존재일까요?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귀신은 자기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은 넋”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귀신은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합니다.

한글성경은 악한 영들의 존재를 ‘사탄’ ‘사단’ ‘마귀’ ‘귀신’이라고 합니다. ‘사탄’ ‘마귀’ ‘귀신’에 관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은 ‘사탄’과 ‘사단’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마귀’와 ‘귀신’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것입니다. 

‘사탄’과 ‘사단’은 같은 말이며 발음상의 문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 원문이 두 단어를 혼용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다른 음역(音譯)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1961년에 개정된 개역한글성경은 ‘사단’이라고 번역했지만, 98년에 개정된 후 대부분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성경과 공동번역, 현대어성경, 표준새번역 등은 ‘사탄’으로 번역했습니다.

'사단'과 '사탄' 두 용어에서 더 정확한 음역은 ‘사탄’(Satan)이며 ‘대적’ ‘대적자’ ‘고소자’라는 뜻입니다.

‘마귀’는 히브리어인 ‘사탄’의 뜻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디아볼로스’(Διάβολος) 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히브리어” 이고, ‘마귀’는 “헬라어” 라고 하겠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은 '마귀'와 '사탄'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러 광야에 가셨다고 합니다(4:1).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4:10).

마귀와 사탄과의 관계는 요한계시록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 라고 합니다(계 12:9).

사탄과 마귀는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헬라어로 "다이몬(δαιμων)"이라고 합니다. ‘다이몬’에서 영어의 ‘demon(악령)’이 파생했습니다. 성경은 ‘사탄’과 ‘마귀’를 단수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귀신’은 단수와 복수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거라사인 지역에서 귀신을 쫓아냈을 때 많은 귀신이 귀신들렸던 사람에게서 나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막 5:13). 또한 예수님께서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이라고 언급하신 것과 성경의 여러 본문을 참조할 때 ‘귀신’은 ‘사탄’ 혹은 ‘마귀’가 부리는 낮은 등급의 악한 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구원받은 백성들과 구원받을 사람들을 미혹하여 구원의 자리에서 떨어트리려고 합니다.

반면에 천사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고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들의 죄를 구속(救贖)하시며 시험받는 자들을 도와주심으로 승리하게 합니다.

사순절 제24일 맞이합니다.
고난 받으신 주님께서 붙잡아주시는 은혜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집안에 머물러야 하는 때에 참 평안과 기쁨과 강건함을 누리는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5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3:1∼19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1절)
♦ 성구 :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사순절 제25일을 맞이합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믿는 도리의 사도”(the apostle whom we confess)

둘째는 예수님은 “대제사장”(high priest whom we confess)

믿는 도리의 사도(τὸν Ἀπόστολον)
사도(使徒)란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제자를 말합니다(아포스톨로스apostolos, ἀπόστολος).

대제사장(Ἀρχιερέα)이란 구약 시대 때부터 내려온 직분으로 백성의 죄를 대신 중보하는 역할입니다.

신약에서는 메시아가 그 임무를 완성하므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직분입니다(아르키에류스. archiereus,  ἀρχιερεύς).

믿는 도리의 사도란 “믿음의 사도” “신앙의 사제” “신앙의 사도”를 말합니다.

신앙의 사도란 신앙의 길을 바르게 가르치고 안내하며 신앙의 삶을 몸소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신앙이란 가르침과 행함이 하나가 되는 조화를 이루어야만 온전한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이란 신앙의 사도가 없는 세상을 말합니다.

어두운 밤에 서울의 상공에서 수많은 네온의 붉은 십자가를 보며 공동묘지가 많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의미심장하게 들어야 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깊이 생각하라(카타노에오, katanoeó. κατανοέω)

 왜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구원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성도(聖徒)” 라고 합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거룩하지 못한 공간입니다. 거룩한 백성들이 거룩하지 못한 세속적인 공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믿는 도리(道理)”가 필요합니다.

‘믿는 도리’란 우리의 신앙고백의 내용을 말합니다. 사도신경(使徒信經)은 신앙고백의 내용의 핵심으로 그 내용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使徒)”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예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입은 아들입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중보자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백성들로서 세속적인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온갖 환난을 당하셨으나 모두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25일을 맞이합니다.

거룩한 백성의 삶을 회복하기 위하여 믿음의 도리가 되시며 우리의 죄를 중보하기 위하여 십자가 제물이 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6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4: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은혜의 보좌(16절)
♦ 성구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아멘 

사순절 제26일을 맞이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흔들기 때문에 교회에서 모여 예배하는 것도 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은혜의 보좌(the throne of grace)”입니다.

‘은혜의 보좌(τῷ θρόνῳ τῆς χάριτος)’ 앞에 나갈 때 돕는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믿는 도리(道理)”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도리’라고 하겠습니다.

‘믿는 도리’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연약함을 “체휼(體恤)”하셨습니다.
‘체휼’이란 “처지를 이해하여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의 광선으로 연약한 우리들을 온전하게 붙잡아 주실 것을 믿고 활기찬 삶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7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5:1∼14
♦ 묵상을 위한 주제 : 멜기세덱의 반차(6절)
♦ 성구 :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아멘 

사순절 제27일을 맞이합니다.
멜기세댁(Melchisedec)은 누구일까?
멜기세덱이란 "의의 왕"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예루살렘 제사장입니다(창 14:18).
후대에 이상적인 왕의 전형이 되어 이러한 왕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 사장"이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시편 110:4).
히브리서에서는 멜기세덱의 특이한 지위를 묘사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말합니다(히브리서 5:6∼10, 7장).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이 세상에 오셨던 영원한 대제사장이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펼쳐봅시다.

소련이 공산화될 때 기독교인들은 핍박이 심해 비밀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열 명의 신실한 크리스천이 비밀경찰에 의해 전원 체포됐습니다. 단 한 사람 두목만 체포하지 못했습니다. 고문하고 죽이며 두목 이름을 대라 했으나 한결같이 결코 너희는 두목을 체포하지 못하리라 하고 죽었습니다. 마지막 아홉 번째 사람에게 고문할 때 그 이름을 대고 죽었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사순절 27일을 맞이하는 아침에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의 이름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을 세워나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8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6: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2절)
♦ 성구 :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아멘

사순절 제28일을 맞이합니다.
완전한데 나아가라!
여러분은 완전한 사람입니까?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완전한데 나아갈 수 있을까요?

여러 성경을 참조하면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는 말씀은 개역 한글 성경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는 말씀은 “성숙한데로 나아갈니라”고 번역합니다(현대인의 성경 참조).

성숙하다는 것은 “철이 들었다”는 뜻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언제 철이 들었다고 느낄까요?받는 것만 좋아하던 아이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생각할 때 “철이 들었다”고 느낍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이 성숙하다고 인정할 때는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지 않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자원할 때라고 하겠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말씀을(행 20:35) 되새겨 봅니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쏟을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3

30

히브리서 7:1∼28

언약의 보증(22절)

3

31

히브리서 8:1∼13

언약의 중보(6절)

4

1

히브리서 9:1∼28

심판(27절)

4

2

히브리서 10:1∼39

영원한 제사(12절)

4

3

히브리서 11:1∼40

믿음(1절)

4

4

히브리서 12:1∼29

예수를 바라보자(2절)

4

5

주일

설교 묵상(섬자, 교제, 봉사, 헌신)












































♦ 3월 30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7: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언약의 보증(22절)
♦ 성구 :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아멘  

사순절 제29일을 맞이합니다.
함께 묵상할 주제는 “언약(言約)의 보증(保證)”
“보증(保證)”이란 한글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신용이나 사물의 품질 등에 대하여, 틀림이 없이 믿을 만함을 책임지고 증명함.” 또는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채무자를 대신하여 채무를 이행할 것을 부담하는 일.” 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언약의 보증(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개런티(guarantee)”란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사람들과의 사회적 거리를 두고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야 거래를 형성하는 사업장에서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때는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개런티(guarantee)”의 기간을 연장하는 것입니다.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 할부 차량을 판매하며 엔진 오일 교환을 무료로 3년까지 실행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중보가 되신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희생하며 영원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십자가에서 중보하신 우리 주님을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헬라어로 보증이란 “엥구오스(ἔγγυος)” 라고 합니다.
‘엥구오스’의 뜻은 “철저한 보안(under good security)” 또는 “보증(guarantee)”을 말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힘들고 어려운 때에 언약의 보증이 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철저한 보안으로 지켜주실 것을 보증하셨습니다.

평범하던 날 깨닫지 못했던 은혜를 깨닫고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3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8: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언약의 중보자(6절)
♦ 성구 :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아멘  

함께 묵상할 주제는 “언약(言約)의 중보자(中保者)”
“중보(中保者)”란 단어의 한글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 사람.” 또는 “신과 사람의 사이를 화해시키고 교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사람.” 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우리들을 화해시키고 교제하도록 돕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를 지은 죄인의 사이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사망의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습니다. 이 골짜기를 쉽고 편리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으셨는데 그 다리가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중병에 시달리는 외아들이 포도를 먹고 싶다고 하여 포도를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여인은 궁궐의 담벼락에 탐스런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고 관리인에게 사정했습니다.

“1백 달러에 포도를 파십시오!”

관리인은 안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지요.
여인은 다시 2백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관리인은 화를 벌컥 내며 여인을 궁궐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공주가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슬피 울고 있는 여인을 불렀습니다.

“부인, 당신은 지금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 포도의 주인은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장사꾼이 아닙니다. 그분은 포도를 팔지 않고 그냥 주신답니다.”

공주는 포도를 따서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구원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행과 성품으로 영생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값없이 얻는 선물이 바로 “구원”입니다.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헤매지 말고 구원의 은혜를 힘입어 승리하신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서는 은혜를 사모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운 때를 잘 극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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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을 맞이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猖獗)하는 위태로운 때에 봄을 알리는 계절을 맞이합니다.
4월을 시작하며 오늘의 묵상을 통하여 신앙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은혜가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4

1

히브리서 9:1∼28

심판(27절)

4

2

히브리서 10:1∼39

영원한 제사(12절)

4

3

히브리서 11:1∼40

믿음(1절)

4

4

히브리서 12:1∼29

예수를 바라보자(2절)

4

5

주일

설교 묵상(섬자, 교제, 봉사, 헌신)

봄의 소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맑게 들리지 않는군요!
그래도 4월을 맞이합니다.

독서(讀書)는
앉아서 하는 여행(旅行)

여행(旅行)은
서서하는 독서(讀書)

성경(聖經)은
천국 여행(天國 旅行)의 교과서

4월에도 오늘의 묵상을 함께 읽어가며
내 삶의 자리에서
천국(天國)을 경험(經驗)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祝福)합니다.

뉴욕 파트리스교회 이승혁목사

♦ 4월 1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9: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심판(審判)(27절)
♦ 성구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아멘 

사순절 제31일을 맞이합니다.
오늘 묵상의 주제는 “심판(審判)”입니다.
평소에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면 ‘심판’이란 단어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실(事實, fact)이며 진실(眞實, truth)입니다.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간의 모순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죽음)은 모든 사람이 인정합니다.
진실(심판)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 않습니다.그러나 반드시 심판은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란 살아 있을 때에 받는 심판입니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는 속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심판”이란 죽은 후에 받는 심판입니다.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란 하늘 보좌(寶座)에서 일어날 심판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로마서 14: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10)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모두가 두려워합니다.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순절 31일 맞이하는 이 날에 이전 보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10:1∼39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원한 제사(12절)
♦ 성구 :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아멘

오늘은 사순절 제32일입니다.
고난주일(4월 5일)을 준비하는 주간이기도 합니다.

제사(祭祀)에는 제물(祭物)이 필요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죄를 지을 때마다 드리는 일시적인 제사이었습니다.
“영원한 제사”란 죄를 지었을 때마다 제물을 바치고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제물을 바침으로 더 이상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는 제사를 말합니다.

영원한 제사의 제물은 짐승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의 피가 우리들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셨기 때문에 영원한 제사를 완성했습니다.

영원한 제사가 2천 년 전에 갈보리 언덕에서 이미 드려졌기 때문에 제물이 되셨던 예수님께서 부활 후 하늘 보좌에 올라가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반드시 올라갈 것입니다.

영국의 고고학자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했다가 3,000년 된 미라에서 곡식단지를 발견했는데 그 속에는 완두콩이 들어 있었습니다. 3,000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돌덩이같이 딱딱하고 쪼글쪼글해서 도무지 생명이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심었더니 싹이 나고 잎이 나더니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전도하면서 "1년 생 식물도 3,000년 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열매를 맺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100년도 못살고 죽어서 없어지겠는가? 반드시 부활이 있고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영광스런 주님 나라에서의 삶을 사모하며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외부 활동이 제한된 세상에서 광활한 세계를 열어주신 영원한 제사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능력과 위로와 치유와 은혜가 충만하게 넘쳐나는 사람들로 세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3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11: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1절)
♦ 성구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아멘 

사순절 제33일을 맞이합니다.
인간 사회의 기초가 되는 두 단어를 찾는다면 “믿음(信)”과 “정직(正直)”이라고 하겠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는 믿음이란 바라는 것의 실상(being sure)입니다.

실상이란 복권을 구입할 때 당첨되기를 소원합니다. 소원한 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욕심으로 소원하는 것은 이루어 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원하는 것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certain)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현실에서 즐기는 것입니다.

천국은 아직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취된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내 삶의 자리에서 천국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유사 감염자처럼 느끼고 불안하다고 절망하는 때에 믿음의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은 이미 정하신 것이요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기에 심판 앞에 갈 수 있는 성결하고 거룩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삶의 현장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들이여!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었던 사람들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믿음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4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12:1∼29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를 바라보자(2절)
♦ 성구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아멘 

사순절 제34일을 맞이합니다.
내일은 고난주일입니다.
고난주일을 준비하며 오늘 묵상할 주제를 소개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

바라본다는 것을 영어 성경(NIV)에서는 “고정시킨다(fix)”고 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아포라오(aphoraó, ἀφοράω)”라고 합니다.

‘아포라오’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려면 먼저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예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순수한 믿음을 회복할 때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출렁이는 바다위로 걸어갔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며 바닷물이 요동치므로 그 순간 예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바람을 느끼고 바다 물을 보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베드로의 몸은 바닷물 속으로 잠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주님을 향하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Lord, Saved md!)” 라고 외쳤습니다(마 14:30).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 모든 나라와 백성들을 두렵게 흔들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풍랑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베드로가 체험했던 주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하므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6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히브리서 13: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찬송의 제사(15절)
♦ 성구 :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아멘
Through Jesus, therefore, let us continually offer to God a sacrifice of praise the fruit of lips that confess his name   

사순절 제35일 고난주간 월요일을 맞이합니다.묵상의 주제는 “찬송의 제사(a sacrifice of praise)”

찬송의 제사를 영어 성경에서는 “찬송(讚頌)의 희생(犧牲)”이라고 합니다.

찬송이 어떻게 희생할 수 있을까요?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의 주인공 주기철목사님께서 판자 위에 못을 꽂아 놓은 그 위를 맨발로 올라서서 발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에서는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립니다. 그 고통스런 자리에서 찬송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순교의 자리에서 부른 찬송을 “찬송의 제사” 라고 하겠습니다.

찬송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 43:21)

제사(祭祀)에는 반드시 희생의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오늘날 찬송의 제물이란 찬송을 부른 것처럼 살아야 하고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하여 감염자가 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수가 미국의 경우 911테러 때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고통스럽고 힘든 삶에서 어떤 찬송을 불러야 할까요?

고난주간 월요일을 맞이하며 이런 찬송을 소개합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7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베드로전서 1: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거룩(16절)
♦ 성구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아멘  
Be holy, because I am holy.

사순절 제36일 고난주간 화요일을 맞이합니다.

거룩하라! 
거룩이란 한자는 “성(聖)”입니다.
‘성(聖)’자를 분석하면 “귀 이(耳)” “입 구(口)” “임금 왕(王)” 세 단어가 합성하여 만든 상형문자입니다.

한자의 의미는 “백성들의 소리를 해결할 수 있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온갖 신음소리가 들리시나요?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고통과 신음의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거룩이란 고요한 가운데 혼자서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자리에서 땀을 흘려가며 몸이 피곤하여 파죽음이 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거룩한 모습을 부활 후 승천하실 때의 모습일까요?

아니면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의 모습일까요?

제가 찾았던 예수님의 거룩은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 피와 땀을 쏟으며 부르짖었던 가상칠언(架上七言)의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누가복음 23:34)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한복음 19:26∼27)

4.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마태복음 27:46)

5.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28)

6.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7.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육신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울 때에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거룩이 아닐까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가장 가깝던 사람들이 갑자기 쓰러져 내 곁을 떠나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비록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지만 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 “거룩” 아닐까요?

고난주간 둘째 날에 부를 찬송을 소개합니다.

“저 멀리 푸른 언덕에”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8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베드로전서 2: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택하신 족속(9절)
♦ 성구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사순절 제37일 고난주간 4일째 날(음모의 날)을 맞이합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들은 신분 세탁이 됩니다.

어떤 신분이 될까요?
1. 택하신 족속(族屬)
2. 왕 같은 제사장(祭司長)
3. 거룩한 나라
4.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百姓)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 되었을까요?

내가 예수를 믿기 시작한 그 때를 말할까요?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사야 41:9)

땅 끝과 땅 모퉁이에서 선택하셨습니다.

땅 끝과 땅 모퉁이는 가장 위험한 자리를 말합니다. 요즈음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자리가 땅 끝이며 땅 모퉁이라고 하겠습니다.

고난 주간 예수님의 행적에 따라 오늘은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는 음흉한 계획이 모의되는 “음모의 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라고 인정하기 싫고 믿기 싫었던 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음모(陰謀)”가 있었다면 오늘날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마구잡이식으로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입자가 되어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님은 마지막에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아버지여,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저희들을 지켜주시옵소서!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택하신 족속으로 고난주간 수요일에 함께 부를 찬송을 소개합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9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베드로전서 3: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눈과 귀(12절)
♦ 성구 :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 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아멘 

사순절 제38일고난주간 다섯째 날 “준비의 날”을 맞이합니다.

주의 눈(目)은 우리들을 지켜봅니다.
주의 귀(耳)는 우리들의 신음 소리를 듣습니다.주의 얼굴은 악행 하는 자들을 지켜봅니다.

주의 눈은 “통찰력(洞察力)”이 있습니다.
‘통찰력’이란 “사물을 환히 꿰뚫어 보는 능력”을 말합니다.

주의 귀는 “청력(聽力)”이 있습니다.
‘청력’이란 “소리를 듣는 능력”을 말합니다.

주의 얼굴은 악행 하는 자들을 반드시 응징(膺懲)하실 것입니다.‘응징’이란 “잘못을 깨우쳐 뉘우치도록 징계함.” 또는 “적국을 정벌하여 복종시킴.”을 말합니다.

‘응징력(膺懲力)’이란 응징하는 힘을 말합니다.

세상 죄악을 응징하는 힘을 보여주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첫째,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라!
둘째, 남편들이여 아내와 더불어 생명의 은혜에 참여하라!
셋째, 형제를 사랑하라!

이러한 삶은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는 가정을 거룩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가정의 선교사로 세워져야 합니다.

“가정을 바르게 다스린 후에 세상에 나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고 준비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기도의 본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기 위하여 가정에서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본이 되셨던 십자가의 주님을 찬송하는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라는 찬송을 소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wScFwa-8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10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베드로전서 4:1∼19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광의 영(14절)
♦ 성구 :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아멘

사순절 제39일고난주간 여섯째 날 “수난의 날”을 맞이합니다.

영광의 영이란 무엇일까요?
왜 영광의 영이 임해야 할까요?

세상에는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가 있습니다(고전 15:40).

물론 세상에 속한 형체의 영광과 하늘에 속한 형체의 영광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땅에 속한 형체는 영광의 영이 필요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므로 아담의 영은 땅에 속한 영이 되었습니다.

땅에 속한 형체가 하늘에 속한 형체가 되려면 반드시 영광의 영이 임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고전 15:40)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땅에 속한 첫 사람 아담의 후손들을 하늘의 영광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 땅에 속한 육신은 죄 값으로 완전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하늘에 속한 영광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고난의 성 금요일을 맞아 영광의 영을 예비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의 영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할 때 이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함께 부를 찬송은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1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베드로전서 5:1∼14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광의 관(4절)
♦ 성구 :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아멘 
And when the Chief Shepherd appears, you will receive the crown of glory that will never fade away. 

사순절 제40일
고난주간 일곱 번째 날 “예비의 날”을 맞이합니다.
사순절 마지막 날에 묵상할 주제는 “영광의 관(冠, the crown of glory)”입니다.

영광(榮光)이란 한자를 분석하면 “불 화(火)” “덮을 멱(冖)” “나무 목(木)” “빛 광(光)”이란 훈(訓)입니다.

“영광(榮光)”이란 ‘사람(人)’이 ‘십자가(十)’를 짊어지고 ‘덮어버리면(冖)’ 그 위에서 ‘불(火)’과 ‘불(火)’이 타오르고 '빛(光)'이 비추인다는 뜻입니다.

“관(冠)”이란 헬라어는 “스테파논(στέφανον)”이라고 합니다. 
‘스테파논’의 원형은 “스테파노스(στέφανος, stephanos)” 즉 “면류관(crown)”을 말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면류관이란 단어가 세 가지 소개됩니다.

첫째, 디아데마(diadehma, διαδήματα)

“통치”와 “지위”를 의미하는 “왕관(royal crowns)”, 또는 “머리띠” 라는 뜻이 있는 데 “디아데오(diadewo, 둘러매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계 12:3, 13:1, 19:12).

둘째, 스테파노스(stefanos)

나뭇가지와 잎으로 엮은 것으로 승리한 자만이 받는 “월계수”와 같은 “승자의 관”을 말합니다. 특히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이란 이름과 같은 뜻이며, 신약 성경에서 다양한 번역으로 소개됩니다(마 27:29, 막 15:17, 고전 9:25 등). 면류관이라고 말할 때는 주로 ‘스테파노스’를 말합니다.  

셋째, 스템마(stemma,  στέμμα)

화환(wreath, garland), 왕관(crown), 꽃으로 엮은 “화관”(행 14:13)을 말합니다.

부활주일을 준비하는 오늘 모든 성도들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기대합니다.
부활은 생명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부활은 세상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은혜의 문입니다.

2020년 부활주일을 기다립니다.
모여서 예배할 수 없지만 부활 생명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영은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시므로 예배하는 자리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생명의 주님을 찬양할 때 영광의 면류관(스테파노스)을 약속받은 거룩한 백성으로 모두 일어나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빛을 드러내어 삶의 목적지를 보여줄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Thine is the Glory)”

https://www.youtube.com/watch?v=ASl7nuoJIxU 

https://www.youtube.com/watch?v=-tulj2ARvfE 

https://www.youtube.com/watch?v=GaoV5w2Qfag 

https://www.youtube.com/watch?v=RbBOOmkMLmI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4

13

베드로후서 1:1∼21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4절)

4

14

베드로후서 2:1∼22

경건한 자(9절)

4

15

베드로후서 3:1∼18

하나님의 날(12절)

4

16

마가복음 1:1∼45

복음의 시작(1절)

4

17

마가복음 2:1∼28

죄를 사하는 권세(10절)

4

18

마가복음 3:1∼35

성령을 훼방하는 자(29절)

4

1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4월 13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베드로후서 1: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4절)
♦ 성구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신(神)의 성품(性品)(The Divine Nature)”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부활(復活)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한 삶은 이 세상에서 완성되지 않지만 죽음 후에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과 삶의 요소를 소개합니다.

1. 믿음(信仰)(faith) 
2. 덕(德)(goodness) 
3. 지식(知識)(knowledge) 
4. 절제(節制)(self-control)  
5. 인내(忍耐)(perseverance)
6. 경건(敬虔)(godliness)
7. 형제 우애(兄弟 友愛)(brotherly kindness) 
8. 사랑(愛)(love)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것을 "보배로운 믿음((faith as precious)" 이라고 합니다.

험악한 세상에서도 거룩하신 예수님을 닮고자 수고할 때 이전 보다 주님을 더 알게 될 것이며 부활의 열매 즉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부활의 열매를 맺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주의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1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베드로후서 2: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한 자(9절)
♦ 성구 :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경건(敬虔)한 자(者)(godly men)”

누가 경건한 사람일까요?
청교도 목사이었던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은 “거짓 경건에 속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거짓 경건이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마에 혹이 난 사람을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경건한 사람은 길을 걸으면서도 말씀을 묵상하기 때문에 부딪쳐서 이마에 상처가 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나올 때 집 안에서 자기 이마에 혹을 내고 거리에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거짓 경건’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거짓 경건’의 반대는 “참된 경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경건”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경건이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구분해 생각해 봅니다.

외적 경건의 대표적인 무리들은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내적 경건의 대표적인 인물은 신약에서 “바울”과 “베드로”라고 하겠습니다.

내 안의 경건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났을 때 바울은 창가에 앉아 강론을 듣던 청년 “유두고”가 떨어져 죽게 되었을 때 바울은 그 몸을 안고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하며 죽은 청년을 살렸습니다.(행 20:10)

베드로는 욥바로 내려가 “다비다(도르가)”가 죽었을 때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고 선포했을 때 죽었던 다비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아 베드로를 보았다고 합니다.(행 9:40)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비록 나의 경건이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없다 할지라도 내가 부활을 믿는다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주님의 임재와 더불어 죽었던 내가 일어나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향한 경건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부활 생명을 증거 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https://www.youtube.com/watch?v=hFhMsUCA-tQ
 

https://www.youtube.com/watch?v=omPrFTeWylA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15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베드로후서 3: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날(12절)
♦ 성구 :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하나님의 날(the day of God)”
하나님의 날을 본문에서는 “주의 날(10절, the day of the Lord)”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날의 특징은 “도적같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언제 오는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강합니다.
이러한 호기심 때문에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진리는 마지막 날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놀라운 능력을 행하며 사람의 마음을 족집게처럼 알아맞힐지라도 결코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 징조를 관찰하며 지혜롭게 준비해야 합니다.특히 마지막 날의 징조를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전쟁(마태 24:7, 계시록 6:4)
2. 기근(마태 24:7, 계시록 6:5∼6)
3. 역병 및 전염병(누가 21:11)
4. 자연 환경 파괴(계 11:18)

이러한 징조가 시작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사악하여 사랑이 식어질 것이며(마태 24:12), 감사할 줄 모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딤후 3:1∼4).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이제는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의 나팔 소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16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1:1∼45
♦ 묵상을 위한 주제 : 복음의 시작(1절)
♦ 성구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福音)의 시작(始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gospel)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마지막(The last of the gospel)이 될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지막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마가복음은 특별히 로마인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강력한 국가로 권위를 갖고 있을 때 “예수께서 만왕의 왕” 이라고 선포하면 반역자로 체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섬기러 오신 예수님 즉 “종으로 오신 메시아”라고 강조한 복음입니다.

종으로 오신 예수님은 종으로 출발했으나 마지막에는 부활하심으로 승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당신이 만난 예수를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딸을 무척 사랑하면서도 딸이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하던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창가에서 아버지와 딸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밖에 예쁜 자동차가 보이지 않니?”
“예 보여요, 정말 예쁜 자동차입니다. 그런데 그 자동차는 누구 것인가요?”
“너의 것이다. 내가 네게 주려고 사온 자동차란다. 하지만 네가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너에게 주겠지만 교회 나가는 것을 고집한다면 줄 수 없단다.”

딸이 아버지에게 “엄마 아빠 그 선물에 대하여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차는 부모님이 가지십시오. 저는 예수를 가지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딸의 말을 들었던 부모님은 딸의 단호한 결정에 감동을 받아 딸과 함께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만났던 예수를 증거 하는 일에 삶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주의 길을 예비합시다!

어떻게 주의 길을 예비할까요?

1. 죄 사함(용서 받은 죄인)
2. 성령의 사람(성령 세례)
3. 기도의 사람
4. 전도자의 삶

코로나 바이러스에 갇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에 마음에 품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나 성령의 임재와 기쁨을 누리지 못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확장될 수 있는 복음의 터전이 내 삶의 자리에 세워지기를 기도합시다.


Here’s something to reflect on :
고려해 볼 사항

WORD QUARANTINE

The Latin root of the word "quarantine" is "forty".
So what does the Bible say about 40? 
The flood lasted 40 days.
Moses fled Egypt for 40 years.
Moses stayed on Mount Sinai for 40 days to receive the Ten Commandments.
Exodus lasted 40 years.
Jesus fasted for 40 days.
Lent is 40 days.
40 days for a woman to rest after giving birth.

A group of theologians thinks the number 40 represents "change”. 
It is the time of preparing a person, or people, to make a fundamental change.
Something will happen after these 40 days.
Just believe and pray. 
Remember, whenever the number 40 appears in the Bible, there is a "change".

Please know that during this "quarantine", rivers are cleaning up, vegetation is growing, the air is becoming cleaner because of less pollution, there is less theft and murder, healing is happening, and most importantly, people are turning to Christ. 
The Earth is at rest for the first time in many years and hearts are truly transforming.
So, during this time, enjoy it with your loved ones and return to the family altar together.
Family prayer is a great blessing. 
Through prayer you will see the changes God can work in you and in your home. 
Christ promises us that everything works together for the good for those who love God : Romans 8:28!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Remember we are in the year 2020, and 20 + 20 = 40.
Also, 2020 is the year of the United States Census. 
Jesus Christ, the savior of the world, was born during a census.
Lastly, 2020 is perfect vision. 
May our sight focus on the Lord and living according to His perfect vision for us knowing He holds us in the palm of His hand.
May these days of "quarantine" bring spiritual liberation to our souls, our nation, and our world.
The best is yet to come.
Trust in the Father, Son and the Holy Spirit!


♦ 4월 16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2: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죄를 사하는 권세(10절)
♦ 성구 :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죄(罪)를 사하는 권세(權勢)”
‘죄를 사하는 권세(the power to forgive sins)’는 죄가 무엇인가를 정의할 수 있고 심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양심적인 사람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고민합니다. 그러나 비양심적인 사람은 내가 지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죄를 깨닫는 마음은 바른 신앙입니다.

한 젊은이가 스승을 찾아와서 “가장 큰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인간이 삶의 그 시종을 다 알 수 없음을 아는 것이지.” 라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젊은이는 “그 깨달음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스승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고 인간은 인간이 되는 것이네!” 라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깨달은 은혜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고 인간은 죄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죄인을 불러 거룩한 주의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힘입어 오늘도 죄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의 흉악한 사슬에서도 자유를 누리며 강건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1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3:1∼35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령을 훼방하는 자(29절)
♦ 성구 :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세상 모든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훼방하는 죄(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무엇일까요?

신약성경에서 성령 훼방 죄에 관한 말씀은 마태복음(12:22∼32)과 마가복음(3:22∼30)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령 훼방 죄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왜 성령 훼방 죄를 말씀하셨는지 그 배경을 정확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성령 훼방 죄의 배경은 “예수께서 귀신 들려 눈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을 때 고쳐주셨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고 말했을 때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낼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성령 훼방 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예수의 친족들이 예수를 붙잡으려는 이유는 ‘예수가 미쳤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예수에게 바알세불이 지폈다.” 심지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을 때에 성령 훼방 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성령 훼방 죄는 예수께서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을 쫓아낸 것이 귀신의 영 또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능력이라고 비난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 죄는 예수님 당시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 죄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을 귀신의 사역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성령 훼방 죄는 예수를 믿지 않는 죄와 성령의 능력을 부정한 죄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은 거룩하게 하는 영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일어나서 세상을 소금과 빛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성령이여 강림하사
https://www.youtube.com/watch?v=FpBYdXwpWrs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0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4:1∼41
♦ 묵상을 위한 주제 : 깨닫지 못하는 이유(12절)
♦ 성구 :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헬라인은 “너 자신을 알라!”
불교는 “너 자신을 무(無)로 하라!”
유교는 “너 자신을 닦아라!”
금욕주의는 “너 자신을 죽이라!”
그러나 기독교는 “너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니 이미 얻은 구원에 감사하며 축하하며 살라!”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이 둔하기 때문입니다(마가 6:52)
그러므로 날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면 천국이 보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의 말씀 듣고서
https://www.youtube.com/watch?v=JI8vncK8wa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5:1∼43
♦ 묵상을 위한 주제 :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36절)
♦ 성구 :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Don't be afraid, just believe.)” 

“하나님의 지하운동(In God's Underground)”이란 책의 저자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자주 감옥에 투옥되고 공산당원들에게 생명의 위협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품속에 간직한 작은 성서를 밤낮으로 읽었습니다.

그 두려움의 때에 마음을 사로잡은 말씀은 “두려워 말라”였다고 합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나올 때마다 밑줄을 치고 헤아려 보니 정확히 365번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범브란트목사님은 무릎을 치며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1년 365일 날마다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증가를 억제하려고 노약자들은 주로 집안에 머물게 합니다. 심지어 매일 일터에 나가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힘들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모두 주 안에서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성령을 받아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강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이었던 “대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 1782. 1. 18∼1852. 10. 24)”는 그가 거주하던 도시에서 큰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변두리 지역의 아주 작은 교회에 매주일 출석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가까운 지인이 “왜 도시에 유명한 교회가 있는데 변두리 지역의 작은 교회에 출석합니까?” 라고 질문하자 “예, 유명한 교회에 출석하면 다니엘 웹스터에게 설교한다고 자랑하지만 작은 교회에 가면 죄인 다니엘 웹스터에게 설교하므로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내가 죄인임을 자각하고 깨닫게 될 때 주님의 은총이 절실하게 필요하므로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위로와 평강을 간절히 사모하며 모든 위기와 어려움에서 참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내 평생에 가는 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6:1∼56
♦ 묵상을 위한 주제 :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37절)
♦ 성구 :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믿음이란 대화(對話)의 맥(脈)을 원활하게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이 “선생님 먹을 것이 어디 있나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먹을 것이 어디 있나요? 라고 질문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제자들은 너무 계산이 빨랐습니다.
어디 가서?
이백 데나리온?

떡을 살 수 있는 떡집도 없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의 돈도 없습니다.

믿음은 정확한 계산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가서 확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믿음은 사람의 방법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방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두에게 큰 부담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심각한 전염병을 만났다면 어떻게 생각하셨고 어떻게 하셨을까 기도해 봅시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먼저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라!

절대 믿음이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먼저 환경을 이해하고 조심하고 예비할 것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떤 질병에도 감염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맹신(盲信)"입니다.

'맹신'이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무작정 믿는 것"을 말합니다. 맹신이 마치 믿음이 좋은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모두가 주 안에서 건강과 평강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 생명의 양식을 하늘의 만나를
Luciano Pavarotti. Montreal 1978. Panis Angelicus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3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7:1∼37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21절)
♦ 성구 :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을 알고 있지요?
왜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할까요?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1. 악한 생각(evil thoughts)
2. 음란(sexual immorality)
3. 도적질(theft)
4. 살인(murder)
5. 간음(adultery)
6. 탐욕(지나친 욕심, greed)
7. 악독(malice)
8. 속임(속임수, deceit)
9. 음탕(방탕, lewdness)
10. 흘기는 눈(시기, envy)
11. 훼방(중상모략, slander)
12. 교만(arrogance)
13. 광패(어리석음, folly)

형식을 중요시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내용을 깨우치셨습니다. 물론 내용과 형식을 모두 갖추는 것이 최상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형식과 내용을 별도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현재 모든 나라들이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고통은 반드시 해결될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되었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최근 불란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가장 좋은 환경은 도심의 하수구라고 연구 발표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가 왕성하게 번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 하수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형식만 중요시하면 결과적으로 내용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형식을 강조할 때 예수님께서는 내용을 깨우치며 형식과 내용을 모두 갖추고 다듬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신앙의 형식과 내용을 잘 다듬어서 날마다 천국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하수구와 같다면 그 속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먼저 내 안에 주님 나라가 반듯하게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주여,
오늘도 내 안에
주님 나라 세우는 일에
승리하게 하옵소서. 아멘


♪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4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8: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무엇이 보이느냐?(23절)
♦ 성구 :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기적(奇蹟, miracle)과 표적(表蹟, sign)

기적이란 놀랄만한 사건입니다.
표적이란 놀랍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사건입니다.
표적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사건을 말합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명하여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침을 뱉고 안수하신 후에 무엇이 보이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의 침에 의해서 감염이 될 것이라며 외출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사용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왜 일반 상식에도 어긋난 방법을 사용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이 기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표적을 구했기 때문입니다(11절).

처음 안수 후에는 물체가 정확하게 보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치 나무가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안수하신 후에야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하여 침을 뱉고 안수한 후에 또다시 안수하셨을까요?

기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합당한 답을 주시려고 의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배고픈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질병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배가 부르고 건강하던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한 삶이었습니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은 능력의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너희들에게 더 이상 표적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고 꾸짖었습니다.

오늘날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에 인간의 탐욕이 숨어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이루게 하옵소서.

주여,
아직도 연약한 몸과 마음뿐입니다.
지혜로 감싸 주소서
진실의 무게를 얹어
부지런히 주님 닮아가게 하소서.

♪ 전능 왕 오셔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9:1∼50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 없는 세대(19절)
♦ 성구 :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믿음이 없는 세대
(O unbelieving generation) 

믿음이 있다 또는 없다.
믿음이 크다 또는 작다.
믿음이 많다 또는 적다.

믿음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생각해 봅니다.

믿음은 무엇일까?
믿음을 “맛과 멋”에 비유하면 어색할까요?
‘맛’과 ‘멋’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맛을 느끼는 기관은 혀가 우선입니다.
멋을 느끼는 기관은 눈과 귀와 외모 그리고 인격 전체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하면 그것은 맛을 의미합니다.

여자를 보고 우아하다고 하면 멋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멋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과 맛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맛과 멋은 어디에서 나타날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생활을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맛과 멋을 겸비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행군 나팔 소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오늘의 묵상을 받아서 읽는 어느 독자께서 "여자는 맛과 멋"에 비유한 것에 대한 항의를 보냈다고 합니다.
철학자 하이덱거는 "언어(言語)를 존재(存在)의 집"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맛과 멋으로 비유한 것에 대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맛이다!
여자가 멋이다!
이런 표현은 단정적인 언어이지만 비유적인 표현이므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4월 2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10:1∼52
♦ 묵상을 위한 주제 : 대속물(45절)

♦ 성구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대속물(代贖物, ransom)이란 무엇일까요?”

대속물이란 헬라어는 “루트론(λύτρον. 3083, lutron)” 이라고 합니다.

‘루트론’이란 “몸값(ransom, the purchasing money for manumitting slaves, a ransom, the price of ransoming)”을 말합니다.

노예를 거느리던 시대에 어느 부자가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구입한 후에 그를 집으로 데려와 노예로 부리지 않고 자유를 주며 이제부터 노예가 아니라 너는 자유롭게 세상에 나가서 살아가라 하며 몸값을 지불한 것을 “루트론” 이라고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서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려면 죄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속죄제의 제사를 드릴 때에 살아있는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쏟아부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동물의 피로 일시적인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값을 완전하게 지불하신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대속물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깨달았습니까?

제 경우에는 내가 완전한 죄인이었다는 비참함에서 출발하여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나를 위한 희생적 사랑에서 감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나 사이에 영적 거리를 바르게 점검하고 점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은혜를 기도합시다.

영적 거리가 가깝게 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설렘에 의해서 예배를 사모합니다.

다시 모여서 예배 할 때 이와 같은 설렘으로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만남의 감격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8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11: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을 믿으라(22절)
♦ 성구 :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Have faith in God, Ἔχετε πίστιν θεοῦ)”

“에케테 피스틴 데우(echete pistin theou)”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건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을까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 때 제자들도 들었습니다. 얼마 후 그 나무가 뿌리부터 마른 것을 본 제자들이 “선생님이 저주하신 나무가 뿌리까지 말랐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어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첫째는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는 것
둘째는 말 한대로 되리라고 믿는 것
셋째는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것

“나는 사탄이 내게 오는 것을 환영한다. 내 믿음을 위해 나는 악마와의 대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탄이 나를 찾아보면 나는 사탄을 마음속에 계시는 예수님께 소개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탄에게 말씀하신다.

“사탄아 어거스틴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와 싸울 상대는 나 예수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못자국이 있는 손을 사탄에게 내밀어 보이신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가장 존귀한 존재라고 믿고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2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12:1∼44
♦ 묵상을 위한 주제 : 산 자의 하나님(27절)
♦ 성구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산 자의 하나님(the God of living)”
‘산 자의 하나님’이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돈벌이 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에게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며 둘째가 대를 이어 형수를 아내로 맞이했으나 둘째도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죽었다면 마지막 부활의 날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며, 부활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가는 것이 아니라.”고 깨우쳤습니다.

부활이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린도전서 15:42∼44).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일상의 삶이 자연스럽지 못한 때에 부활의 소망은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죽음을 이기셨던 부활의 주님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4월 3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13:1∼37
♦ 묵상을 위한 주제 : 재난의 시작(8절)
♦ 성구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재난의 시작(the beginning of birth pains)”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뒤집듯이 흔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마지막을 알려주는 징조라고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마지막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시대의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마지막 시대의 징조의 특징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미혹이란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와서 마치 놀라운 일을 일으키며 메시아처럼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이리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리는 양을 죽이고 양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희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급에서 일어났던 열 가지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건강하게 그 자리를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급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도 주의 백성들을 어떤 전염병과 위험과 전쟁과 기근과 각종 재난에서 안전하게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믿음으로 참 평강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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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5

1

마가복음 14:1∼72

언약의 피(24절)

5

2

마가복음 15:1∼47

성소 휘장(38절)

5

3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5월 1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14:1∼72
♦ 묵상을 위한 주제 : 언약의 피(24절)
♦ 성구 :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피(blood of the covenant)”   

성경에서 피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생명(生命)(신명기 12:23)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둘째는 용서(容恕)(히브리서 9:27)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셋째는 언약(言約)(마가복음 14:24)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성찬예식 때에 나누는 떡과 잔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합니다. 그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 우리 안에서 영적 임재로 자리를 잡고 험한 세상에서 얼마든지 죽음을 이기셨던 것처럼 온갖 질병과 고난도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서로 모이지 못할 때에 언약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영적 공동체를 더 강하고 든든하게 세워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15:1∼47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소 휘장(38절)
♦ 성구 :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

“성소 휘장(the curtain of the temple)”

구약 시대의 “성막(聖幕)”은 “성소(聖所)”와 “지성소(至聖所)”로 구분합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것을 “휘장(揮帳)” 이라고 합니다.

“휘장”이 상징하는 것은 “육체(肉體)”를 의미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브리서 10:20)

성소와 지성소를 연결하는 휘장은 대제사장이 속죄제 제물의 피를 들고 들어갈 수 있었듯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므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오늘도 은혜의 통로를 향하여 힘차게 나갑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사회적 거리를 믿음의 거리로 좁혀서 은혜의 보좌로 당당하게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https://www.youtube.com/watch?v=A0svMfYHha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4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가복음 16: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복음을 전파하라(15절)
♦ 성구 :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을 전파하라(preach the good news)”

성경(聖經)에서 복음(福音)이란 좋은 소식(消息)을 말합니다.

좋은 소식이란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굶주린 사람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소식입니다.
병든 사람은 고칠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죄의 짐에 짓눌려 죽어야 할 사람에게는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소식입니다.
따라서 복음이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코카 콜라 식민지화(Coca-Cola Colonization)”라는 구호가 코카 콜라 회사의 영업 정책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정책에 따라 매초마다 대략 4만 명의 사람들이 코카 콜라를 마신다고 합니다. 코카콜라의 역사는 1886년 조지아주 아틀란타의 약사 “존 벰퍼턴”은 코카의 잎, 콜라의 열매, 카페인 등을 주원료로 하여 새로운 청량음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역사는 대략 134년 전 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의 속죄 제물로 드림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아직도 코카콜라보다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주 미세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청량음료 코카 콜라가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쁜 소식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보혜사 성령의 도움을 기도하며 세상을 복음화 하는 사명을 함께 실천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온 세상 위하여 나 복음 전하리

https://www.youtube.com/watch?v=d-vayJOkgh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5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1∼51
♦ 묵상을 위한 주제 : 율법(律法)과 은혜(恩惠)(17절)
♦ 성구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율법(律法, the Law, νόμος)과 은혜(恩惠, Grace, χάρις)”

성경은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으로 구분합니다.

구약을 식물에 비유하여 “뿌리”라고 한다면 신약은 “줄기”라고 하겠습니다.

뿌리는 땅 속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줄기는 땅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볼 수 있습니다.

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영양을 공급하는 구약과 신약을 “두 개의 유방”이라고 설명합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두 개의 유방에서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듯이 건강한 신앙은 뿌리와 같은 구약과 줄기와 같은 신약에서 고르게 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내려주신 말씀입니다.  

은혜는 구원을 깨닫게 합니다(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약속합니다.

죄를 깨닫게 한 율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구원의 은혜를 얻은 “사울”은 이방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로마서 15:16).

율법과 은혜는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 하며 더 좋은 길로 인도하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영과 혼과 육의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길을 찾도록 안내하는 주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굳게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https://www.youtube.com/watch?v=A0svMfYHha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6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2: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전(聖殿)과 육체(肉體)(21절)
♦ 성구 :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전(聖殿, Temple)과 육체(肉體, Body)”

성경에서 성전은
첫째는 솔로몬 성전,
둘째는 스룹바벨 성전,
셋째는 헤롯 성전으로 구분합니다.

교회는 성전이 아니라 예배당(禮拜堂)입니다. 예배당을 성전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리고 주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의 몸 또한 성전입니다(고전 3:16, 6:19).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성전은 거룩한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몸과 세상 사람의 몸은 화학적 성분으로 비교하면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곳이므로 화학적 성분은 같을지라도 영적 기능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은 성전을 거룩하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성전을 거룩하게 세우기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나를 다듬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하늘의 능력으로 세상 권세를 물리치게 하소서!승리의 기쁨을 모두 함께 누리게 하소서! 

♪ 마귀들과 싸울지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7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3:1∼36
♦ 묵상을 위한 주제 : 거듭남(重生)(3절)
♦ 성구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남(重生, born again, γεννηθῇ ἄνωθεν)"

거듭남이란 "위에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아래"라고 표현한다면 세상 사람이 아닌 신선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위"라고 하지요. 물론 성경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의 법칙을 따라 이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삶을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또는 거듭났다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래의 가치 즉 땅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세속적인 인생이라고 한다면 위의 가치 즉 하늘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거룩한 인생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속의 가치는 1+1=2 라고 합니다.
하늘의 가치는 1+1=1 이라고 합니다.

하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어제는 죄악
오늘은 유혹
내일은 지옥으로 향한
길을 가던 인생

어제는 은총
오늘은 축복
내일은 영생으로 가는
새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삶은 죽음의 길에서 영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세속에서의 행복은
주머니의 크기에 비례하지만
하늘 나라에서의 성공은
행복한 마음입니다.

오늘도 영생의 길을 따라
봄에 여름이 있고
여름에 가을이 있고
가을에 겨울이 있는 것처럼
절망의 땅에서도
소망의 땅을 찾아갈 수 있는
거듭난 믿음으로
굳게 세워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8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4:1∼54
♦ 묵상을 위한 주제 : 신령(神靈)과 진정(眞正)(24절)
♦ 성구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신령(神靈, spirit)과 진정(眞正, truth)”
신령(πνεύματι)이란 “성령”을 말합니다.
진정(ἀληθείᾳ)이란 “진리”를 말합니다.
성령과 진리를 하나로 표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라는 것은 존재 방식이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땅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라는 작품에서 “인간의 마음에는 항상 비어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을 사람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채워보려고 많은 노력과 수고를 했어도 여전히 채울 수 없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이란 텅 빈 마음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4:20)”    

신령과 진정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비법(秘法)입니다. 비법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누가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속의 가치를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며 그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 성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9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5:1∼47
♦ 묵상을 위한 주제 : 생명(生命)의 부활(復活)(29절)
♦ 성구 :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Come out those who have done good will rise to live, and those who have done evil will rise to be condemned.    

“생명(生命)의 부활(復活)” Rise to Live

교육학에서는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세 가지 기술을 3R이라고 합니다.

3R이란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 그리고 “계산하기(Arithmetic)”를 말합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제4의 “R”를 강조합니다. 제4의 R이란 “조사(Research)” 즉 “검색(檢索)”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론을 강조하는 사람은 “검색의 즐거움(The Joy of Search)”이란 책을 저술한 ‘구글’의 “다니엘 러셀(Daniel Russell)”입니다.

그런데 미래의 시대를 “영성 시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4의 ‘R’에 하나를 더 추가하여 제5의 ‘R’은 “부활(Resurrection)”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삶이 이 세상에서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다시 시작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생명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위하여 흠 없이 보존되는 영혼육의 조화를 위한 삶을 소개합니다.

육체를 위한 좋은 영양을 공급합니다.
혼을 위하여 유익한 정보를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영을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읽고 내 삶에 적용하여 부활 생명을 확신하는 은혜가 항상 새롭게 쌓여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생명 진리 은혜 되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11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6:1∼71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靈)과 육(肉)(63절)
♦ 성구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영(靈, Spirit)과 육(肉, Flesh)”

동물이란 영어 단어 “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헬라어 “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동물도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로 혼과 육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을 만든 재료를 “흙”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흙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죽은 후에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람과 동물을 육체적인 수명을 기준으로 이야기 하면 사람보다 더 오래 장수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적 수명의 길이를 기준으로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싸움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의 싸움
둘째는 인간과 인간의 싸움
셋째는 인간과 자아의 싸움
그런데 성경에서는 네 번째 또 다른 싸움을 말씀합니다.
넷째는 영과 육의 싸움

영은 하나님의 자리라고 합니다.
육은 반드시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세상에서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반면에 영은 죽은 후에 하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육은 죽이는 것이지만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육을 위한 삶에 열중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육은 영의 거처를 위한 곳이므로 건강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영이 자리를 잡을 때 하늘 소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썩을 것을 위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님을 쫓아다니던 무리들과 오늘날 이 시대의 사람들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육체적 욕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영의 문을 열고 영적 돌풍을 일으켜 볼 수 있는 은혜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우리들의 싸울 것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12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7:1∼53
♦ 묵상을 위한 주제 : 생수의 강(38절)
♦ 성구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streams of living water will flow from within him.

“생수(生水)의 강(江)(Streams of Living Water)”

생수의 강이란 장차 성도들이 받을 하나님의 성령을 말합니다.

유대인의 명절 초막절(草幕節)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이 받아야 할 성령을 생수의 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23장에 유대인의 일곱 명절에 대하여 소개했습니다.

일곱 명절이란 “유월절(逾月節), 무교절(無酵節), 초실절(初實節), 오순절(五旬節), 나팔절(喇叭節), 속죄절(贖罪節), 장막절(帳幕節)”을 말합니다.

초막절은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현재는 교회에서 장막절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각 절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救援)
무교절은 예수님의 무덤에 갇힌 사건(十字架)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復活)
오순절은 예수님의 승천 후 보내실 성령(聖靈)나팔절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재림(再臨)
속죄절은 예수님의 심판으로 알곡과 죽정이로 구분(審判)
장막절(초막절)은 새 예루살렘의 도래(千年王國)

유대인의 일곱 명절의 중심은 오순절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장차 일어날 재림과 심판과 천년왕국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반드시 받아야 할 약속입니다.

오늘도 주 성령의 임재와 함께 삶의 자리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13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8:1∼59
♦ 묵상을 위한 주제 : 진리(眞理)와 자유(自由)(32절)
♦ 성구 :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진리와 자유"
예수님께서는 자유를 얻는 비결을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를 얻는 비결을 "주의 영이 계신 곳"이라고 합니다(고후 3:17).

자유(自由)란 죄(罪)에서부터 자유를 말합니다.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이때 사망은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 심판을 말합니다.

따라서 자유란 심판 때에 영벌이 아니라 영생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마태 25:46).

코로나 바이러스가 삶의 환경을 제한시킬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자유의 은혜로 더욱 충만케 되어 참 자유를 누릴 줄 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더 크게 성장하는 은총의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생명 진리 은혜 되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14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9:1∼41
♦ 묵상을 위한 주제 : 가서 씻으라(7절)
♦ 성구 :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Go,” he told him, “wash in the Pool of Siloam” (this word means Sent). So the man went and washed, and came home seeing.

“가서 씻으라!(Go and wash yourself!)”

능력의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게 땅에 침을 뱉고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른 후에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죽은 자를 일으키셨던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만일 여러분이 그 소경이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순종(順從)하는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하루의 전투가 끝나고 나서 지휘관이 그날의 전투 상황에 대해 장교들과 함께 평가를 하며 지휘관이 질문을 합니다.

어느 군인이 그 날 가장 탁월한 군인이었는지 생각들을 말해보라고 했다. 어느 장교는 가장 탁월한 군인은 그 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장교들도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휘관은 “아니오. 여러분 모두가 다 틀렸어요. 오늘 전투에서 최선의 군인은 적을 죽이려고 칼을 들어 막 내리치려는 순간 퇴각 나팔 소리를 듣고 적을 치지 않고 팔을 내리고 나팔 소리대로 후퇴한 군인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 오늘의 가장 고귀한 일인 것입니다.”

순종이란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더 기뻐하시겠느냐? 보라 순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말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사무엘상 15:22) 

♚ 동영상 / 평범한 여인의 위대한 순종(4:05)



♪ 찬양 / 실로암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15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0:1∼42
♦ 묵상을 위한 주제 : 아버지의 이름(25절)
♦ 성구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 하는 것이어늘.
Jesus answered, I did tell you, but you do not believe. The miracles I do in my Father's name speak for me.

"아버지의 이름(Father's Name)"
아버지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물며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란 단어가 나오면 "하나님"이라고 읽지 못하고 "야훼"라고 읽었습니다.

후에는 "야훼"를 "아노나이"라고 읽었지요.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 14:9)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마태복음 10:40)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한복음 12:45)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한복음 15:23)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세상살이가 점점 어려워지는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질병을 이기고 마음의 무거운 짐도 내려놓고 물질적인 괴로움도 해결 받는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예수 이름으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16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1:1∼57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40절)
♦ 성구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Then Jesus said, “Did I not tell you that if you believed, you would see the glory of God?”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You would see the glory of God!)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께서 생명과 죽음에 관한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셨습니다.

죽는 것을 잔다고 하셨습니다.

죽은 후 사일이 지났고 시체가 썩는 냄새가 진동할지라도 창조의 주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죽어 냄새가 나는 시신일지라도 생명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것은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으면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고통과 환난과 질병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낼 수 있는 강한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모태 무당으로 태어나서 21살에 신내림을 받고 26년 동안 유명한 무속인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어느 날 산에서 기도하던 중 살아있는 십자가를 목격한 후에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무속에서는 신병을 앓으면서도 그 병이 무슨 병인지 알지 못하여 고통가운데서 지내야 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 병의 원인이라도 알고 싶다고 기도하던 중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루푸스"와  "섬유근종"이라는 병명을 알고 난 후에 "아버지 감사합니다! 병명도 모르고 아플 때는 막연하게 기도했는데 이제는 병명을 알게 되어 죽은 후에 세상에서는 고통을 받지만 아픔과 고통과 눈물이 없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소망을 갖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은 믿음으로 병을 고치거나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고 내 안에 주님이 온전하게 거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나를 통하여 드러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그 일에 열중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나 맡은 본분은



♚ 동영상 / 누구를 위한 순종인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18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2:1∼50
♦ 묵상을 위한 주제 : 한 알의 밀(24절)
♦ 성구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a kernel of wheat)” 
30년을 목회하면서 신앙잡지 “Pulpit”을 발행한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는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늘 공간(space)의 문제가 있다.
죽어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럽다.
죽어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꾼이 부족하다.
죽어가는 교회는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쓴다.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 얼굴 이름 알기가 어려워 애먹는다.
죽어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선교 사업이 활발하다.
죽어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있는 교회는 주는 자(giver)로 가득 차 있고, 죽어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tipper)로 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 위에 운행되고,
죽어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sight) 위에 운행된다. 

오늘 나의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살아 있는 믿음일까요?
죽어 있는 믿음일까요?

땅에 뿌려진 씨앗이 살려고 하면 죽을 것입니다.씨앗이 죽으려고 하면 반드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생명력이 있는 믿음은 작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살아날 수 있는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밀알의 신앙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여 신앙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에 부족함이 없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어려운 일 당할 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5월 19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3: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새 계명(34절)
♦ 성구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새 계명(New Command)”이란 무엇일까요?
새 계명을 헬라어 성경에서 “엔토렌 카이넨(Ἐντολὴνκαινὴν)”이라고 합니다.

새 계명이란 “옛 계명”에 대한 설명으로 이미 구약 시대에 주신 계명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새롭게 주신 계명을 말합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은 이미 히브리 백성들에게 주셨던 계명이었습니다(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사랑하라는 계명은 이미 주셨던 계명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직접 사랑하시면서 실천하신 계명이었기에 “새 계명”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새 계명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첫째, 칭찬을 먼저 하라.

칭찬하려면 상대방의 장점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장점 중심으로 사람을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상대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은 넓어질 것입니다.

둘째, 타이밍을 놓치지 마라.

잘못했을 때 내가 잘못 했습니다(‘I’ m sorry’)라고 말해야 합니다.  “I’m sorry” 이와 같은 사과의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상황을 어렵게 만들게 됩니다.

셋째, 마음을 열고 입을 열라.
 
말은 입을 통해서 나오지만 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열면 칭찬도 자연스럽고 유감의 메시지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넷째, 작은 일을 먼저 도와주라.

사소한 관심도 때로는 더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기약할 수 없는 다음을 위해 아껴두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든든한 보험도 없습니다.

♪ 찬양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0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4: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절)
♦ 성구 :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If you really knew me, you would know my Father as well. From now on, you do know him and have seen him.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I knew and I saw it again)” 
 “알았고(γινώσκετε)” 또 “보았다(ἑωράκατε)”

알았다(γινώσκω, ginóskó)와 보았다(ὁράω, horaó)의 관계는 “아는 것은 본 것과 같고, 본 것은 아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보았으면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런던대학의 우주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약 10만개이며 최신 전자 망원경으로 한 은하 안에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대략 2천억 개라고 합니다.

그리고 최신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그 전체 우주 속의 별들의 수는 2천억☓1천억 개라는 천문학적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지 못한 별의 수는 얼마나 더 많겠습니까?

또한 지금 반짝거리는 별빛은 10만 광년 전에 반짝였던 빛이 오늘 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지?”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10만 광년 전에 별에서 나온 빛이 오늘 눈에 보였던 것이라고 합니다.
광년(光年, light year)이란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거리의 단위를 말합니다. 기호는 ly(light year)라고 합니다. 국제천문연맹이 내린 광년의 정의는 1광년은 진공 상태에서 1율리우스년(365.25일) 동안 빛이 이동한 거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10만 광년이란 3천 6백만일 전에 나온 빛을 오늘 저녁에 보는 것을 말합니다.  

우주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는 전공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깨닫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라는 찬송이 곧 나의 신앙의 간증이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읽었고 하나님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을 읽었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았으면 이제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본 것처럼 믿어야 합니다.

본 것처럼 믿는 사람은 확신을 갖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더 악한 환경이 닥쳐올지라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며 건강을 위하여 지켜야 할 수칙을 잘 기키며 강건하여 나와 같은 사람을 통하여 이루기를 원하시는 주님께서 의도하신 뜻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1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5: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보혜사(26절)
♦ 성구 :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When the Counselor comes, whom I will send to you from the Father, the Spirit of truth who goes out from the Father, he will testify about me.)   

“보혜사(Counselor, Παράκλητος)”
보혜사를 “상담자(Counselor)”(NIV) 또는 “위로자(Comforter)”(KJV) 그리고 “돕는자(Helper)”(NASB)라고 번역합니다.

보혜사가 우리들을 어떻게 돕고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탄식함으로 돕는다고 합니다(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한 기도를 돕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사의 최고의 엔지니어 “찰스 케터링”은 빈틈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 업계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사회자가 그의 “신화의 손”을 높이 쳐들며 “케터링 씨, 이 손으로 한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자동차 탄생!” 이라는 말을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케터링”은 “이 손으로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두 손을 잡고 기도한 일이었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골”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옛 사람들은 기도를 호흡이라고 말했다.
나는 왜 호흡하는가?
호흡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연약한 무릎을 꿇고 기도할 것을 알지 못할 때 보혜사 성령께서 곁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함께 간구하신다는 말씀을 확신하며 오늘도 기도자의 삶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내 기도하는 이 시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2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6: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구하라(24절)
♦ 성구 :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Until now you have not asked for anything in my name. Ask and you will receive, and your joy will be complete.)   

헬라어에서 “구하다”라는 동사가 두 가지로 사용합니다.

첫째는 아이테오(αἰτέω, aiteó)
둘째는 에로타오(ἐρωτάω, erótaó)

“아이테오”는 낮은 위치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에로타오”는 특별한 위치 즉 동등한 자리에서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아이테오”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αἰτεῖτε. aiteite).

기도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여 창조주 하나님에게 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을 떠나 방탕한 자리에서 방황할 때 어머니 “모니카”는 항상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아들에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면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싶었지만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부탁을 이해할 수가 없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당신을 보여 주십시오.  나도 믿고는 싶지만, 이해가 되어지지 않습니다. 이 진절머리 나는 삶에서 당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당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위로 걷고 있었을 때 한 소녀가 모래구덩이를 파놓고 하얀 조개로 바닷물을 떠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거스틴”은 소녀에게
“얘야, 거기서 혼자 뭘 하고 있니?”
“예, 아저씨, 바닷물을 이 모래구덩이에 퍼 담고 있는 거예요.”
“바닷물을? 그래 그 바닷물을 얼마나 퍼 담으려고?”
“저 바닷물을 이 모래구덩이에 퍼 담을 거예요.”
“얘야, 바다가 안 보이니? 바다가 얼마나 넓고, 바닷물이 얼마나 많은데, 그 작은 조개로 그 작은 모래구덩이에 다 퍼 담을 수 있겠니?”
“그렇지만, 계속 퍼 담다 보면 언젠가는 바닷물이 다 마를 것 아니예요?”
“얘야, 그렇지 않단다. 저 큰 바다를 그 작은 모래구덩이에 담기란 불가능하단다. 네가 종일 퍼 담았어도 바닷물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잖니?”
“그렇지만 아침부터 계속 물을 떠서 담았으니까 조금은 줄어들었을 것 아니예요?”
“아니란다. 네가 퍼 담는 바닷물보다 강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오는 물이 훨씬 더 많은 걸. 또 네가 모래구덩이에 바닷물을 떠 담아도 바닷물은 모래 속으로 스며들고 말지 않니? 해가 저무는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모님이 걱정하신단다.”

그 때 그 소녀가 “어거스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저 바다보다 큰 하나님의 세계를 조개껍데기보다 작은 아저씨의 생각으로 모래 구덩이만한 아저씨의 머리속에 담는 일이 훨씬 더 어렵지 않을까요? 아저씨의 인생이 저물고 있어요. 아저씨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그는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예사롭지 않은 꿈을 통해 자기의 보잘것없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기도의 첫 단계는 낮은 위치에서 필요한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이 될 때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동일한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삶의 환경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몰고 갈 때에 성숙한 기도자로 탈바꿈 할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기대합니다.

♪ 찬양 /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3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7: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생(3절)
♦ 성구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영생(永生, eternal life)”
여러분 영생이란 무엇일까요?

영생을 “아이오니오스 조에(αἰώνιος ζωὴ. aiōnios zōē)”라고 합니다.

‘아이오니오스(αἰώνιος)’란 “영원(eternal)”이라고 번역하지만 헬라어 사전에서는 노령기(agelong) 또는 영원의, 만고불변의(eternal)라고 번역합니다.

‘조에(ζωή)’란 “생명(life)” 이라고 번역합니다.

따라서 “아이오니오스 조에”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지 안 믿든지 이미 영생은 약속된 언약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영생의 삶을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영생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이 다음에 주님 나라에서 누려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영생의 삶을 누리면서 장차 도래할 주님 나라에서 완성된 영생을 사모해야 합니다.

어떻게 완성된 영생을 사모할까요?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언 23:17∼18).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만 경외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질병과 고통과 사고와 가난에 시달릴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 사람을 기준으로 “나는 왜 이런 시련 가운데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시련을 통하여 완성된 영생을 향하여 더 가깝게 다가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것을 이루어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실 수 없는 것을 이루어달라고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던 언약을 붙잡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역경 가운데서도 반드시 우리들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믿음의 장부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5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8: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진리가 무엇이냐?(38절)
♦ 성구 :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What is truth? Pilate asked. With this he went out again to the Jews and said, I find no basis for a charge against him.)

“진리가 무엇이냐?(What is truth?)”
“티 에스틴 알레데이아(Τί ἐστιν ἀλήθεια? Ti estin alētheia)”      

빌라도는 진리 앞에서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질문합니다. 답안지를 앞에 놓고 답을 물어보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제2의 빌라도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이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진리의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진리가 보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심지어 잘못된 좌편향의 세력들이 세상을 마구 흔들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질문에 대답을 하셨다면 예수님은 스스로 진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현존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 자체가 진리이었습니다.

진리는 질문과 대답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보여주는 삶이 증명해야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만일 내가 걷는 이 길이 진리에서 벗어난 길이었다면 진리 편에 서서 진리가 현존하는 삶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프란시스 쉐퍼의 “작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사람이나 하찮은 장소는 없다. 만약 그 사람들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하찮은 일로 인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어느 누가 인정해주지도 않는 하찮은 일을 하면서 잊혀져버린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작은 일과 큰 일이 없습니다. 열 손가락 중에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 속담처럼 모든 일이 하나님에게는 소중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을 선호하는 이 세상에서 진리 편에 선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민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결정했습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진리 편에 서지 못하는 것은 현실에 붙잡힌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주님 따라 진리 편에서 당당하게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생명 진리 은혜 되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6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19:1∼42
♦ 묵상을 위한 주제 : 유대인의 예비일(42절)
♦ 성구 :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Because it was the Jewish day of Preparation and since the tomb was nearby, they laid Jesus there. 

“유대인의 예비일(the Jewish day of Preparation)”

성경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려면 헬라어를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두 개의 단어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파라스큐에(παρασκευή)”는 “예비일(豫備日)”이란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헤토이마조(ἑτοιμάζω)”는 “예비하다”, “준비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예비일이란 ““파라스큐에(παρασκευή) 즉 예비일(豫備日)”을 말합니다(참조 마태 27:62).

반면에 유월절을 준비할 때는 “헤토이마조(ἑτοιμάζω) 즉 예비하다, 준비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참조 마태 26:19).

사복음서를 참조하면 본문에서 예비일은 6일 째 날 즉 금요일을 말합니다.

주의 날을 예비하는 신앙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주일(主日)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자세가 세속화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을 선데이(Sunday) 라고 하여 로마의 이방신을 섬기는 날이라고 반박합니다. 물론 로마인들이 숭상하는 태양의 날이 맞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심각한 핍박을 받을 때 로마 황제가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유대인들의 “할례의식”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이때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한 초기 유대교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우리는 주일을 지킬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로마의 핍박을 받지 않기 위한 처세술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자 로마 황제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식으로 주일을 선택했다며 찬성했다고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로마의 질서를 따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용적으로는 철저하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지키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는 자리를 텅 비었지만 우리들의 심령 속에 가득 채워진 주님을 향한 사랑을 힘입어 오늘도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모두에게 칭찬받는 일군으로 드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즐겁게 안식할 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7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20: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령을 받으라(22절)
♦ 성구 :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And with that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the Holy Spirit. 

“성령을 받으라!(Receive the Holy Spirit!)”
“라베테 프뉴마 하기온(Λάβετε Πνεῦμα Ἅγιον)”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첫 번째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Peace be with you)”(19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은 “성령을 받으라(Receive the Holy Spirit!)”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아직 이 세상에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제자들에게 “평강”과 “성령”을 말씀하셨습니다.

평강과 성령은 “내적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신앙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에서 몇 가지 신앙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체험 위주의 신앙

순복음 교회와 오순절 교회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체험된 것이 아니면 신앙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둘째는 조직 위주의 신앙

조직의 가장 대표적인 교회는 가톨릭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천주교회는 교황청의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세계에 흩어진 교회가 조직에 의해서 교회 공동체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분리되는 현상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셋째는 말씀 위주의 신앙

말씀은 곧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 중심의 신앙은 두 가지 삶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평강과 성령입니다.

선지자 느헤미야가 포로가 되었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읽게 합니다.

이때 백성들은 하루 종일 자리에 일어나서 그 율법을 들었습니다.

가장 좋은 설교는 성경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가 설교자의 지식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성경을 읽어주면 싫어합니다.

율법을 듣던 백성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결단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을 결단케 하였던 말씀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느헤미야 8:10b)

평강과 성령은 오직 부활하신 주 예수님만이 나의 힘이 되며 삶의 주인 됨을 고백하는 믿음의 기초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고개를 숙이려 합니다. 이런 현상이 더 이상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악한 바이러스는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평강과 성령의 은혜가 약속되었으므로 그 은혜를 힘입어 어떤 상황에서든지 승리하는 주의 사람으로 무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행군 나팔 소리에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8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한복음 21: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나를 더 사랑하느냐(16절)
♦ 성구 :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나를 더 사랑하느냐?(Do you truly love me?)”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사랑의 법칙을 깨우쳐 알게 하신 디베랴 바닷가의 아침밥상 대화라고 하겠습니다.

세상 모든 일과 사물에는 어떤 법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음양의 법칙, 관성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사랑에도 세 가지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모자이크의 법칙(mosaic law) 
모자이크는 중세 비잔틴시대에 유행했던 회화예술입니다. 벽이나 바닥에다 조각조각을 배열해서 어떤 현상을 연출합니다. 모자이크는 약간 떨어져서 보아야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으며 너무 가까이서 보면 별 의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도 너무 가까이서 보면 흠과 티만 보고 깨지기 쉽다고 합니다.

위대한 사랑도 사실은 사소한 조각들 즉 관심, 책임, 존경, 이해, 용서, 격려가 모여서 모자이크처럼 아름답게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장미의 법칙(law of roses) 

장미는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 중의 왕인 것은 짙은 향기와 농염한 색깔 때문입니다.

장미는 홑겹이 아니라 수많은 꽃잎들로 피어납니다.

사랑은 장미꽃 잎처럼 수많은 관심, 이해, 용서, 격려들이 겹쳐지고 새로워져서 더불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태극의 법칙(Taegeuk's law) 

서양에서는 이상적인 배우자를 “아주 좋은 반쪽(Better half)” 이라고 합니다. 요즈음은 반쪽끼리 만났기 때문에 쉽게 헤어집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음양의 법칙으로 만납니다. 음양은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서로 맞물려서 원을 만듭니다. 남편이 양이라면 아내는 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4의 법칙을 강조합니다.

한 몸 법칙(law of one body)

예수님께서는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되라고 하셨으며(마 19:5),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9:6).

한 몸 법칙을 끝까지 지키려면 반드시 같은 믿음을 기초로 같은 소망을 갖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의 질문에 주님이 원하는 대답을 해야 하듯이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찾아주고 들려주고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찬양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29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물 세례와 성령 세례(5절)
♦ 성구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For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in a few days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물 세례(baptized with water)와 성령 세례(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물 세례와 성령 세례가 무엇일까요?

물은 구원하는 표를 말합니다(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참조 / 출 30:20, 겔 16:4, 엡 5:26) 

성령은 보증하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1:22, 5:5)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참조 / 고전 12:13)

선택받았다는 선민(先民) 신앙을 자랑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이라고 무시하는 헬라인들이나 종이나 자유자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으므로 한 몸이 되었습니다(고전 12:13).

이것을 "평등" 이라고 합니다.
평등이란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죄인"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잘못된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녀 평등"을 강조합니다.
생물학적 평등이 아닙니다.
구조적 평등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의 표와 증거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어느 특정한 교단, 교회, 방언을 말하는 것 등은 구원의 표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삶을 지켜주실 것을 확신합시다. 그리고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만을 증거 하는 일에 아름답게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5월 30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1∼47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령 충만(4절)
♦ 성구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enabled them. 

“성령 충만(聖靈 充滿)”
성령의 충만한 사건이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처음 경험하는 사건은 매우 소중하고 신기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흔한 자동차, 하늘을 나는 비행기,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여객선 등은 처음에는 모두에게 신기한 것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의 사건도 당시 모였던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이며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사건을 모였던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자기들의 언어로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초의 방언은 “자기 언어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이란 어떤 신비한 현상(現象)이 아닙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사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상태(狀態)를 말합니다.

성령의 강력한 지배를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 곧 성령 충만 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을 사전적 의미로 설명한다면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이란 곧 “성부 하나님 충만” “성자 예수님 충만”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은 영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영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여러 방법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첫째는 말씀으로 나타나셨습니다(요 1:1)
둘째는 사랑으로 나타나셨습니다(요일 4:8, 16)

말씀과 사랑의 구체적 사건을 “십자가”라고 하겠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완성하는 구원의 현장이었습니다.

성령 충만은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람을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내 안에 채워진 생명의 말씀이 내 삶의 현장에서 증거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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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6월)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1

사도행전 3:1∼26

생명의 주(15절)

6

2

사도행전 4∼37

구원 얻을 이름(12절)

6

3

사도행전 5:1∼42

하나님을 순종하라(29절)

6

4

사도행전 6:1∼15

천사의 얼굴(15절)

6

5

사도행전 7:1∼60

내 영혼을 받으소서(59절)

6

6

사도행전 8:1∼40

읽는 것을 깨닫느뇨(30절)

6

7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는
복되고 거룩한 주일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지쳐
몸과 마음이 피곤할지라도
주님을 가까이 하려고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바람같이
불으 혀같이 임하여
각 나라 백성들이 방언으로
똑같이 듣게 하셨사오니
오늘도 온라인 예배로
모든 주의 백성들이
이 시대에 임하는 성령의 임재를
다 함께 느끼고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희망으로 보게 하소서

주님만을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기쁨과 감격이 있게 하소서

주님께서 날 구원하심을 확신하며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날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사
사람이 되게 하심처럼
주님의 은혜로
믿음의 열정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잠들어 있는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약과 백신이 개발되어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어떤 어려움도 함께 극복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소서.

풍성한 믿음으로 우리들을 채워주소서.
 

♦ 6월 1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3: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생명의 주(15절)
♦ 성구 :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아멘
You killed the author of life, bu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We are witnesses of this. Amen   

“생명의 주(the author of life)”
생명의 주가 죽을 수 있을까요?
죽여도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어느 생물학자가 작은 씨앗을 손에 들고 “이 씨앗의 성분을 저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씨앗에는 질소, 수소, 탄소가 얼마씩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와 똑같은 모양의 씨앗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씨앗을 심으면 아무 것도 나지 않고 땅속으로 흡수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씨앗은 땅에 심기만 하면 싹이 나서 자라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신비롭습니다.”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죽은 것 같지만 새로운 생명으로 땅위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생명의 주님은 죽을 수도 없고 죽었어도 반드시 다시 살아나서 새 생명을 얻게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생명의 주님께서 약속한 그 말씀을 붙잡고 날마다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생명의 주여 면류관

https://www.youtube.com/watch?v=UNlU0UXu1O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4:1∼37
♦ 묵상을 위한 주제 : 구원 얻을 이름(12절)
♦ 성구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아멘 

“구원 얻을 이름”
“예수”는 구원 얻을 이름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꿈속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인 하나님께서 심문합니다.
“너는 항상 진실했는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너는 항상 깨끗하게 생활했는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럼, 정직하게는 살았는가?”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심문이 끝나자 목사님은 머리를 숙이고 지옥에 가겠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한 줄기 광채가 비치면서 예수님이 그의 곁으로 오셔서 이렇게 증언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여, 이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 깨끗하게도, 정직하게도 살지 못한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이 목사는 평생을 나를 위하여 살아 왔으니, 저도 이 목사를 위해 변호하겠나이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 덕분에 천국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구원의 이름은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계시하심으로 알려졌습니다(마태복음 1:21).

구원 얻을 이름은 구약에서 예언된 것입니다(이사야 7:14, 9:6).

구원 얻을 이름이란 죄에 대한 용서를 선포할 이름입니다(시편 25:11)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도 구원 얻을 이름을 믿게 하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믿음의 삶에 승리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no Savior except me)(호세아 13:4b)

♪ 찬양 /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3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5:1∼42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을 순종하라(29절)
♦ 성구 :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replied: We must obey God rather than men!

“하나님을 순종하라!”(Obey to God)“
나는 능력보다 순종을 원한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고백입니다.
부패한 교회를 향하여 개혁의 횃불을 들었던 용기는 성령께서 주신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능력보다는 오히려 순종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능력은 순종에서 나옵니다.

어거스틴이 “주여, 많이 명령하시옵소서. 그리고 명령하신 것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도 하나님은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 그것을 감당할 능력 또한 주신다는 깨달음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주교 "이그나티우스"는 주후 107년 순교했습니다. 처형이 임박하자 성도들은 그의 구명을 위해 총독에게 탄원했습니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는 “나는 차라리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하나님의 성결한 떡이 되기를 원한다.”는 심정을 토로하며 성도들을 만류하고 기꺼이 순종함으로써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

무신론적 어둠의 세력이 국가와 교회를 파괴하려 도전하는 이때에 우리 모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으로 재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두 사람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프랜시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가져다가 뿌리를 하늘 쪽으로 하고 그 배추를 심으시오.”

한 사람이 말없이 그 배추를 들고 들로 나갑니다. 한 사람은 “하하, 이 성자가 여기서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정말 돌았구먼”라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람에게 순종이라고 하는 자질이 있는가?
어떤 명령이라도 그 명령을 받아 순종할 수 있는 순종의 자질이 이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 있는가? 이러한 것을 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새로운 교훈은 순종의 교훈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배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도 순종하시겠습니까?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방법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 찬양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4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6: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천사의 얼굴(15절)
♦ 성구 :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All who were sitting in the Sanhedrin looked intently at Stephen, and they saw that his face was like the face of an angel.   

“천사의 얼굴(the face of an angel)”
얼굴은 삶의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지나온 삶을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의 얼굴은 어떤 삶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얼굴값을 하라!”는 옛 어른들의 깨우침을 생각해 봅니다.

얼굴은 과거의 이력서이며, 현재의 상황판이고, 지금을 알리는 게시판과 같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의 삶은 그의 얼굴을 천사의 얼굴로 드러나게 했습니다. 우리들도 성령 충만함을 힘입어 어지러운 세상에서 빛나는 얼굴 되어 주님을 증거 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 은혜가 풍성한 매일의 삶이 펼쳐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13)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 (잠언 21:29)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전도서 8:1)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원하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비둘기처럼 더불어 사는 게 아니라 공작새처럼 과시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외모를 과시하고, 돈의 위력을 자랑하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스데반처럼 자기 얼굴을 관리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이며
믿음의 얼굴은 천국행 티켓과 같다.

♪ 찬양 /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https://www.youtube.com/watch?v=mM_6zgXeqj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5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7:1∼60
♦ 묵상을 위한 주제 : 내 영혼을 받으소서(59절)
♦ 성구 :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While they were stoning him, Stephen prayed, Lord Jesus, receive my spirit.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Lord Jesus, receive my spirit)”

스데반은 지금 돌에 맞아 죽는 고통스런 자리에 있습니다. 심각한 고통으로 사경을 헤맬 때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고통을 좀 해결해 달라!”며 몰핀 주사(Morphine Injection)를 놔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고통스런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시간 속에 있는 “네 개의 기둥”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네 개의 기둥’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말합니다. 기둥이 네 개가 있지만 주로 세 개의 기둥만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네 번째 기둥은 “죽음(死亡)”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세 가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첫째는 내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
둘째는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
셋째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죽음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이란 “현재를 즐겨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로마의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말을 타고 거리를 행진할 때 그 뒤에서 한 사람이 “메멘토 모리” 라고 외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은 네가 개선장군으로 거리를 활보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될 운명을 잊지 말고 겸손 하라는 깨우침이라고 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공산주의 사상을 유물론(唯物論)이라고 합니다.유물론은 인간의 영혼(靈魂)을 부정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핍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는 앞으로 이 세상은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두 세력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너져가는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갖고 서서히 자유대한민국을 침몰시키려고 합니다.

성도들이여!
잠에서 깨어 무너지는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신앙과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해방 후 누렸던 자유를 후손들에게 더 좋은 자유로 물려주어야 할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찬양 /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6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8: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읽는 것을 깨닫느뇨(30절)
♦ 성구 :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Then Philip ran up to the chariot and heard the man reading Isaiah the prophet. Do you understand what you are reading? Philip asked.   

읽는 것을 깨닫느뇨?(Do you understand what you are reading?)”

이디오피아의 관리는 마차를 타고 대략 4∼5일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다시 돌아갑니다.

마침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이사야 53:7∼8). 그러나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여 답답해 할 때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가사까지 내려가라 지시하므로 빌립은 그를 만나서 그가 읽던 내용을 가르쳐주고 물이 있는 곳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이디오피아는 초기 기독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 라는 질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합니다.

첫째는 많이 읽었다는 신앙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어렵고 중요한 일이지만 읽는 차원에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다독(聖經多讀)이 영적 교만의 근거가 되면 곤란합니다.

둘째는 많이 암송한다는 신앙

성경 말씀을 많이 암송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암송은 하면서도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기억력을 자랑하는 것뿐입니다.

셋째는 많이 배웠다는 신앙

제자 훈련이란 프로그램을 운영을 하면서 다양한 성경공부 모임과 과정을 수료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감동을 줄 수 없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신앙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가운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닮지 못하는 성경 읽기는 영적 성장의 거침돌이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첫째는 사탄의 일을 멸하신 예수님(요한일서 3:8)
둘째는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보여주신 예수님(히브리서 1:3)
셋째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세상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마태복음 20:28
넷째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보여주신 예수님(베드로전서 2:21)
다섯째 생명이 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요한복음 14:6)

예수님,
제 안에 계신 주님의 생명 외에는 그 무엇도 제게 소중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제 안에 계신 주 예수님,
매 순간 저를 통해 당신의 삶을 살아주시옵소서!

♪ 찬양 /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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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8

사도행전 9:1∼43

택한 나의 그릇(15절)

6

9

사도행전 10:1∼48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35절)

6

10

사도행전 11:1∼30

주께 붙어 있으라(23절)

6

11

사도행전 12:1∼25

감옥과 교회(5절)

6

12

사도행전 13:1∼52

내 마음에 합한 사람(22절)

6

13

사도행전 14:1∼28

하나님께로 돌아오라(15절)

6

14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6월 8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9:1∼43
♦ 묵상을 위한 주제 : 택한 나의 그릇(15절)
♦ 성구 :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But the Lord said to Ananias, Go! This man is my chosen instrument to carry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their kings and before the people of Israel.  

“하나님이 택한 나의 사람”

성경에서 “사람”을 “그릇”이라고 표현합니다.
나는 어떤 그릇일까요?
그릇은 담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그릇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담아내야 합니다.

만일 나의 그릇이 거룩함을 담을 수 없는 더럽혀진 그릇이라면 반드시 깨끗하게 닦아야 합니다.

그릇을 깨끗하게 닦는 것을 “회개(悔改)”라고 합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주님의 부름을 받을 지 알 수 없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기에 더욱 더 나의 그릇에 관심을 갖고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신앙이란 만남과 선택이라고 하겠습니다.
주 예수를 만났을 때 그 분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것이 선택입니다.

이제까지 주님을 믿고 따랐다는 신앙 여정에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임종(臨終)의 자리에서 후회와 고통 그리고 환희와 감사와 찬양이 엇갈리는 일이 없기를 기대하며 준비합시다.

사울이 바울로 택함을 받은 그릇이 된 것처럼 우리 모두 택함을 받은 성경한 그릇으로 다듬고 준비하여 주님 앞에 아름답게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디모데후서 2:20-22)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극복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주여, 제 육신의 모든 죄악의 요소를 제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의지가 강화되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령을 통해 강한 의지력을 얻지 못하면 세상의 바람이 부는 대로 끌려 다니게 됩니다. 이런 사람의 끝은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영혼의 구원뿐 아니라 죄악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떠한 죄악의 도전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도전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택한 그릇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오 주 예수님
택한 그릇에
거룩한 주의 영으로
듬뿍 채워주셔서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쓰임받게 하옵소서.

♪ 찬양 / 빈들에 마른풀 같이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9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0:1∼4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35절)
♦ 성구 :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But accepts men from every nation who fear him and do what is right.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The Man who God accepts)”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닐까요?

“고넬료”는 로마의 외인부대 중대장으로 가이사랴 지방에서는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고넬료라는 이름은 “뿔, 창, 능력”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지위를 갖고 있었던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 식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백성들을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고넬료가 기도할 때 환상을 보았고 베드로 또한 기도 중에 환상을 통하여 음성을 듣게 됩니다.

결국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따라 고넬료를 찾아 갑니다.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났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믿음의 경계선을 긋고 서로 구별하고 비난하는 어리석은 일들이 교회에서 교단에서 자주 발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시 아직도 내 안에서 경계선을 긋고 주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을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없었는지 살펴보며 내가 먼저 주님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서 주님이 인정하는 것을 나도 함께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나이(年齡)”라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나이라는 경계선’을 무너트립니다.

80이 된 모세는 이제 자신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호렙산 가시넝쿨 가운데 불꽃이 일기 시작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지팡이 하나만 갖고 애급으로 건너가 40세의 청춘에 이루지 못한 히브리 백성들의 독립을 위하여 애급 왕과 싸워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꿈과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꿈과 희망이 없으면 젊어도 늙은이가 됩니다. 나이가 많아도 꿈과 소망이 있으면 결코 퇴화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연령”이 결코 “인생의 연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은 믿음의 연령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나의 믿음의 연령을 강화하여 육신의 나이를 극복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전능 왕 오셔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0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1: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께 붙어 있으라(23절)
♦ 성구 :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아멘
When he arrived and saw the evidence of the grace of God, he was glad and encouraged them all to remain true to the Lord with all their hearts. Amen   

“주께 붙어 있으라!(Stay with the Lord!)”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은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 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세상은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는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를 잡은 자를 따르며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에베소서 2: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존재로 오직 주께 붙어 있어야만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
여기 아주 얇은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이 종이를 누구나 찢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이를 철판에 붙이면 누가 찢을 수 있을까요?

더구나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결합한다면 어느 누구도 찢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주께 붙어 있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라고 가르쳤습니다(디모데전서 4:5).

오늘도 나를 강하게 붙드시는 주님과 연합하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하겠지요?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강력 본드로 세상에 던져진 연약한 나를 예수님께 붙여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함께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 찬양 / 나는 비록 약하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1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2: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감옥과 교회(5절)
♦ 성구 :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아멘
So Peter was kept in prison, but the church was earnestly praying to God for him. Amen  

"감옥(監獄)과 교회(敎會)(Prison & Church)"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꿀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감옥에서도 아주 편하게 머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이미 성령 충만한 믿음으로 무장되었기 때문이지요.

초대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은 철저하게 예수 중심이었지요.

왜냐하면 오순절 성령께서 임재하신 놀라운 경험을 공동체에서 모두 함께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자기의 모습을 보게 하는 능력과 주님만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게 하십니다.

어느 목사님이 여행 한 여관에 머물게 되었을 때 마침 여관 주인이 모든 직원과 손님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예배를 인도한 후 마침 주방에서 일하는 자매에게 "주님, 제 자신을 보여 주세요!" 라고 기도하라고 했지요.

얼마 후 그 목사님이 다시 그 여관에 묵었는데 여관 주인은 그 소녀에게 나쁜 버릇이 생겼다고 불평하기를 "밤낮없이 울기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소녀를 다시 만나서 오늘은 기도를 한 가지 더 가르쳐 주고 싶구나. 이제부터 매일 "주님, 저에게 당신을 보여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여라. 소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지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났는데, 목사님이 어느 곳에서 설교를 마치자 한 젊은 여인이 찾아와 "저를 기억하세요?"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자신이 바로 그 여관에 일하던 소녀라고 말하며 "목사님이 첫 번째 기도를 가르쳐 주고 떠나셨을 때, 하나님께 제 자신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제 추악함을 보여 주셨고, 저는 제 죄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슬픔과 두려움에 빠져 잘 때도 일할 때도 그 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다시 오셔서 '주님, 저에게 당신을 보여 주세요'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셔서 그렇게 기도하자, 하나님은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죄의 짐이 모두 사라지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죄인된 모습이 아니라 죄로부터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된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삶은 나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변화시켜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집안에서 지내는 어려움이 계속될지라도 그 환경에서 내가 변화되므로 모두에게 기쁨과 소망과 삶의 의욕이 넘쳐나는 복된 하루가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나 어는 곳에 있든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2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3:1∼52
♦ 묵상을 위한 주제 : 내 마음에 합한 사람(22절)
♦ 성구 :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 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아멘
After removing Saul, he made David their king. He testified concerning him: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Amen 

 “내 마음에 합한 사람(A man of my heart)”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다윗을 ‘마음에 합하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느 병원장이 간호사를 채용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내 돈을 주면서 간호사를 채용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간호사를 찾기가 어렵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시편 51편을 읽어보면 다윗은 완벽한 죄인이었으므로 그 죄를 뉘우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몸부림치는 처절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7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11절)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14∼15절)

다윗은 철저한 회개와 더불어 하나님이 받아주신다면 오직 주님을 찬송하며 전파하는 일에 생명을 걸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적 결단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다윗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을 회복하는 은총의 하루가 펼쳐지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3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4: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께 돌아오라(15절)
♦ 성구 :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아멘
Men, why are you doing this? We too are only men, human like you. We are bringing you good news, telling you to turn from these worthless things to the living God, who made heaven and earth and sea and everything in them. Amen 

“하나님께 돌아오라(Turning to God)”
“돌아오라”는 말은 “회개(悔改)”를 말합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바울이 루스드라 지방에서 복음을 외칠 때 마침 선천적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 장애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외쳤더니 그 사람이 뛰어 걸었다고 합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하며 “바울은 허메(헤르메스, 머큐리. 웅변의 신)” “바나바는 쓰스(제우스, 주피터)”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깨우쳤습니다.

루스드라 지방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신관을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 이라고 합니다. 다신론이란 헬라와 로마의 신화처럼 많은 신들이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은 “다신론에서 유일신론(唯一神論, Monotheism)으로 돌아오라!”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은 종교다원화주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앙을 성경적인 신앙으로 회복하라는 깨우침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세상이 변할지라도 주님을 섬기는 믿음은 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살아가며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성공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작은 불꽃 하나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15

사도행전 15:1∼41

주 예수의 은혜(11절)

6

16

사도행전 16:1∼40

주 예수를 믿으라(31절)

6

17

사도행전 17:1∼34

예수가 곧 그리스도(3절)

6

18

사도행전 18:1∼28

하나님의 뜻(21절)

6

19

사도행전 19:1∼41

성령을 받았느냐(2절)

6

20

사도행전 20:1∼38

주 예수께 받은 사명(24절)

6

2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6월 15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5:1∼41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예수의 은혜(11절)
♦ 성구 :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아멘
No! We believe it is through the grace of our Lord Jesus that we are saved, just as they are. Amen   


“주 예수의 은혜(the Grace of our LORD)”
은혜(恩惠)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공짜”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공짜’가 가장 비싼 것이라는 진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공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짜’에 길들여진 삶은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짜가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주 예수께서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주 연약한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젊어서 고생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고 가르쳤던 어른들의 지혜를 생각해 보셨나요?

하물며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원(救援)”이란 선물을 죄인(罪人)들에게 베푸실 때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구원의 메시지를 바르게 깨닫는 믿음만이 헛된 인생이 아니라 명품(名品) 인생(人生)으로 업그레이드(up grade) 할 수 있습니다.

명품인생으로 살아가려면 이제부터 주 예수의 은혜에 미쳐봅시다.
주 예수의 은혜에 붙잡혀 내게 맡겨진 시간을 창조적 시간으로 활용하여 내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시다.


♪ 찬양 /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https://www.youtube.com/watch?v=TvF7KjM0h3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6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6: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예수를 믿으라(31절)
♦ 성구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Amen  

“주 예수를 믿으라!”
왜 주 예수를 믿어야 할까요?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세계 3대 종교(宗敎)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生命)’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종교의 교주가 신도들에게 생명을 줄 수 없지만 기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기독교는 생명입니다.

프랑스의 극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는 인생의 세 가지 싸움에 대해서 말합니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
둘째는 인간과 인간의 싸움
셋째는 자기와의 싸움

자연과의 싸움은 극복하고 정복하므로 행복을 느낍니다.
인간과의 싸움은 승리하므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정복하는 것도 아니며,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어야 할 존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생명)을 얻으리라.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믿음의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주시하며 좌우로 치우침이 삶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 찬양 /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https://www.youtube.com/watch?v=mM_6zgXeqj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7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7:1∼34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가 곧 그리스도(3절)
♦ 성구 :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아멘
Explaining and proving that the Christ had to suffer and rise from the dead. This Jesus I am proclaiming to you is the Christ. Amen  

“예수가 곧 그리스도(Jesus is Christ)”

언제나 바른 길을 걷는다면 아주 천천히 걷더라도 길을 벗어나 달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걷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달려도 그 길은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다는 것은 바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 선택한 길을 계속 걸어야 합니다.생명(生命)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합니다.왜냐하면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생명이 되신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들을 돕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할 때마다 다가오셔서 때로는 위로하시고, 꾸짖기도 하시며, 선택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간섭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간섭하심을 감사하며 신앙의 나침반이 보여주는 방향으로 똑바로 걷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8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8: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뜻(21절)
♦ 성구 :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아멘
But as he left, he promised, I will come back if it is God's will. Then he set sail from Ephesus. Amen  

 “하나님의 뜻(God's Will)”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로마에서 순교하는 것입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길을 끝까지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인 “R. C. 스프로울(Robert Charles Sproul, 1939〜2017)”  은 하나님의 뜻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둘째는 하나님의 규례적인 뜻
셋째는 하나님의 기본성향과 연관된 뜻

나는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인 뜻(주권적인 뜻)”과 “의도적인 뜻(기본성향과 연관된 뜻)”과 “환경적인 뜻(규례적인 뜻)”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의도).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환경).

그러므로 마지막에는 심판을 통하여 뜻을 완성합니다(절대).

모든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본적인 뜻은 “거룩함”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It is God's will that you should be sanctified.)”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말씀과 기도”라고 합니다(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It is consecrat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나를 향한 주님의 거룩함을 회복하여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9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9:1∼41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령을 받았느냐(2절)
♦ 성구 :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아멘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ey answered, No, we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Amen   

“성령을 받았느냐?(Do you receive the Holy Spirit?)”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b)”

마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했을 때 이러한 것을 고백하게 한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한 것은 성령의 내재라고 한다면 성령 충만이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모든 언어와 행동과 생활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충만(充滿)”이란 단어는 안에 가득 채워진 것이 아니라 가득 채워진 후에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교의 현장에서 돌을 던지는 무리들을 향하여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과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하며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보혜사(保惠師)” 라는 의미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보혜사(保惠師)”란 한자의 의미는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들을 지켜주시며 가르치고 깨우치는 스승”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한 삶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보호를 받고 지켜주는 것을 확신하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서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내 안에 내주하는 주의 영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따라 이 세상에서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구별되는 믿음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성령의 은사를

https://www.youtube.com/watch?v=Wl01xJEEAo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0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0: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예수께 받은 사명(24절)
♦ 성구 :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멘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 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Amen   

“주 예수께 받은 사명(Mission for the Lord Jesus)”

사명(使命, mission)은 내게 맡겨진 임무(任務)를 말합니다.
소명(召命, calling)이란 임무를 맡기려고 나를 부르신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렇게 부르셨습니다(소명).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사울은 나의 택한 그릇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사명).

나를 부르신 하나님!
내게 일을 맡기신 하나님!

사명이 흐려질 때는 소명으로 흐려진 것을 닦아야 합니다.

소명이 흔들릴 때는 사명으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성도들이 받은 사명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모든 사람을 제자로 세우라!
둘째는 세례를 받게 하라!
셋째는 진리를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와 용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승리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22

사도행전 21:1∼40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13절)

6

23

사도행전 22:1∼30

너의 죄를 씻으라(16절)

6

24

사도행전 23:1∼35

죽은 자의 소망(6절)

6

25

사도행전 24:1∼27

하나님을 향한 소망(15절)

6

26

사도행전 25:1∼27

바울의 변명(8절)

6

27

사도행전 26:1∼32

회개에 합당한 일(20절)

6

28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6월 22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1: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13절)
♦ 성구 :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아멘
Then Paul answered, Why are you weeping and breaking my heart? I am ready not only to be bound, but also to die in Jerusalem for the name of the Lord Jesus. Amen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For the name of the Lord Jesus)”

선지자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지고 자기의 손과 발을 묶은 후에 예루살렘에서 이 띠의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이때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합니다.

환난과 핍박 그리고 죽음의 위협은 십자가의 길을 포기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위하여 자기 목숨도 내려놓겠다고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두 가지 표어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자!
둘째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자!

인생의 삼 단계는 현재와 내일과 모든 날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1단계, 현재의 할 일은 무엇이냐?
싸우는 것이다.

2단계, 내일의 할 일은 무엇이냐?
이기는 것이다.

3단계, 모든 날의 할 일은 무엇이냐?
죽는 것이다.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 말고, 만날까 말까 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 그러나 죽을까 말까 할 때에는 죽어라.

오늘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길을 망설임이 없는 믿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복의 근원 강림하사

https://www.youtube.com/watch?v=I-BjPHGRCc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3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2: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너의 죄를 씻으라(16절)
♦ 성구 :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아멘
And now what are you waiting for? Get up, be baptized and wash your sins away, calling on his name. Amen  

“너의 죄를 씻어라!(Wash your sins away!)”

죄를 씻는 비결은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를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마태복음 3:11).
첫째는 물세례(베드로전서 3:21)
둘째는 성령세례(고린도전서 12:3, 고린도후서 1:22)
셋째는 불세례(마태복음 3:12, 누가복음 3:17)

물세례는 회개와 구원의 표시가 됩니다.
성령세례는 생명과 보증의 표시가 됩니다.
불세례는 심판과 분별의 표시가 됩니다.

오늘날 세례식을 진행할 때 이렇게 선포합니다.

“주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브리서 7:22)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여!
죄를 씻은 회개와 구원은 표시를 마음에 새기고 구원받은 백성의 거룩한 길을 가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나의 죄를 씻기는

https://www.youtube.com/watch?v=WE4nqto723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4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3:1∼35
♦ 묵상을 위한 주제 : 죽은 자의 소망(6절)
♦ 성구 :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아멘
Then Paul, knowing that some of them were Sadducees and the others Pharisees, called out in the Sanhedrin, My brothers, I am a Pharisee, the son of a Pharisee. I stand on trial because of my hope in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men 
 
“죽은 자의 소망(The Hope of the Dead)”
죽은 자의 소망은 부활(復活)이라고 합니다.
왜 부활이 죽은 자의 소망일까요?

오늘의 시대는 예전에 비해 문명의 혜택을 크게 누리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문명의 혜택을 크게 누릴지라도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스트레스 탓이라고 합니다.

죽은 자에게는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부활한 자에게는 더 이상 스트레스가 작용할 수 없는 신비한 몸의 구조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소망은 부활입니다.

부활 후에는 최고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은 부활도 있고 천사도 있고 영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무리에 속합니까?

현실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기 때문에 부활의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실의 고난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소망을 갖고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마음껏 발휘하며 승리의 길을 기쁨으로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를 앙모하는 자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5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4: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을 향한 소망(15절)
♦ 성구 :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아멘
I have the same hope in God as these men, that there will be a resurrection of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men    

“하나님을 향한 소망(Hope for God)”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어떤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를 데리고 내려와서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변사 ‘더둘로’는 바울을 가리켜 “염병에 걸린 자”,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더둘로’는 로마법과 로마어에 능통한 로마인으로, 바울을 기소한 자들에게 삯을 받고 대신 송사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이단의 괴수라고 하는 고소에 자신은 무죄(無罪)라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고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천부장의 편지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잘 알았으면서도 자신의 임기 동안 큰일을 치르고 싶지 않은 안일한 태도와 뇌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천부장 ‘루시아’가 처리하도록 판결을 연기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세상에 얽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방법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찾는 것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오늘도 하나님의 방법만을 기도하며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더 크고 높고 넓고 깊게 다듬어 갈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기도합시다.

♪ 찬양 /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https://www.youtube.com/watch?v=TvF7KjM0h3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6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5: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바울의 변명(8절)
♦ 성구 :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아멘
Then Paul made his defense: I have done nothing wrong against the law of the Jews or against the temple or against Caesar. Amen 

“바울의 변명(Paul's Defense)”
바울의 변명이란 다른 말로 “바울의 방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방어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는 신앙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바울은 주 예수께서 주신 사명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분부하셨던 말씀대로 예수를 증거 하는 삶의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있는 교회”라는 책에서 “존 스토트 박사”는 “거룩한 세속성”이라고 합니다. “거룩”이란 하나님의 속성이며 “세속”이란 세상의 속성입니다. 거룩한 세속성이란 거룩은 변하지 않으면서 세상 사람들이 거룩한 곳으로 들어와서 세상의 것을 벗어버리도록 깨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찾아와서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등지고 사람 없는 곳에서 홀로 거룩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새벽을 깨워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거룩함을 이루셨고, 그 거룩함으로 죄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시고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 경건생활을 통해 거룩함을 이루고 그 능력으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 찬양 / 나 맡은 본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5bb3rVpLcA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6:1∼32
♦ 묵상을 위한 주제 : 회개에 합당한 일(20절)
♦ 성구 :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아멘
First to those in Damascus, then to those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to the Gentiles also, I preached that they should repent and turn to God and prove their repentance by their deeds. Amen   

‘회개(悔改)’는 죄의 증세와 현상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감기에 걸렸을 때 “콧물이 난다” “머리에 열이 있다” “몸이 으스스하다”  이런 것은 감기의 증세입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므로 감기 바이러스를 다스려야 합니다.

회개 할 때에도 죄의 증세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죄의 실체를 쫓아내야 합니다. 죄를 짓게 하는 것은 마귀라고 합니다(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나를 지배하는 마귀의 힘을 벗어버리고 주의 영의 지배를 받는 것이 온전한 회개라고 하겠습니다.

온전한 회개를 회복할 때 비로써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 수 있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만일 서울을 가려고 고속버스를 타려면 서울 행 버스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구와 부산 또는 광주 행 버스를 타고 있으면서 서울을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서울에 갈 수 없습니다. 서울에 가려면 먼저 잘못 탄 버스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서울 행 버스에 올라타야 합니다.

회개란 하나님을 향한 열차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세상 즐거움에 도취되었던 옛 사람의 삶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용서의 주님
몸과 마음 곳곳에 틀어박힌
죄와 허물 잡아내어
십자가 아래 던져버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 따라
믿음의 길만 걷게 하소서.

♪ 찬양 / 멀리 멀리 갔더니

https://www.youtube.com/watch?v=faqUaI9q8T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29

사도행전 27:1∼44

하나님을 믿노라(25절)

6

30

사도행전 28:1∼31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31절)

7

1

누가복음 1:1∼80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38절)

7

2

누가복음 2:1∼52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

7

3

누가복음 3:1∼38

하늘이 열리며(21절)

7

4

누가복음 4:1∼44

 주의 은혜의 해(20절)

7

5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6월 29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7:1∼44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을 믿노라(25절)
♦ 성구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아멘
So keep up your courage, men, for I have faith in God that it will happen just as he told me. Amen   

사도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 의하여 로마로 향하는 배에 승선합니다. 마침 금식하는 절기가 끝나고 배가 행선하기가 어렵다고 느낀 바울은 백부장에게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였으나 백부장은 오히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행선을 결정합니다. 결국 바울의 예언대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배는 파선되었고 모든 선원들과 승선했던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바울은 담대하게 주장합니다.

바다에 대한 오랜 경험과 노련한 기술을 갖고 있는 선장과 선원의 말을 더 믿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영적 감각이 뛰어난 바울의 말은 경험과 기술을 다스릴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 달 계속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환경은 사회적 거리는 유지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광풍으로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던 사도 바울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할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을 기도합시다.

그리고 내 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항체가 생겨 스스로 치료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비결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https://www.youtube.com/watch?v=D2aAWctZMe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30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8: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31절)
♦ 성구 :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아멘
Boldly and without hindrance he preached the kingdom of God and taught about the Lord Jesus Christ. Amen   

유라굴로 광풍에 의해 바울과 그 일행들이 승선했던 배는 파선되었으나 모든 사람들은 기적같이 “멜리데(Melita, 꿀)”라는 섬에 상륙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위하여 원주민들이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바울은 모닥불 옆에 있던 나뭇단을 집어 모닥불 속으로 던졌을 때 마침 나뭇단에 숨었던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이 사람이 살인자구나!” 하며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거센 풍랑에서 살아났으나 독사에 물려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독사를 털어버리고 태연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젖은 몸과 옷을 발리고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다시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독사에게 물렸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은 “신(神)”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He was a god).

바울의 이러한 모습이 결국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독사에 물렸던 바울이 뱀을 모닥불 가운데로 떨쳐버렸던 것처럼 믿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십자가로 던져버리고 당당하게 일어나 환경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몸소 보여주므로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https://www.youtube.com/watch?v=nBSQMx4IjI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1

누가복음 1:1∼80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38절)

7

2

누가복음 2:1∼52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

7

3

누가복음 3:1∼38

하늘이 열리며(21절)

7

4

누가복음 4:1∼44

 주의 은혜의 해(20절)

7

5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1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1∼80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38절)
♦ 성구 :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I am the Lord's servant, Mary answered. May it be to me as you have said. Then the angel left her.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It is done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2020년 전반기 6개월을 마감하고 오늘부터는 하반기를 시작합니다. 전반기에 이루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어 하반기에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하며 출발합니다.

주의 말씀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면 할수록 더욱 그 말씀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대한 놀라운 경험을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더 많이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갈 때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 진리의 말씀에 따라 행복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에서 주의 말씀에 대한 교훈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곤란 중에 위로(시편 119:50)
둘째는 깨닫게 하는 통로(시편 119:169)
셋째는 새롭게 하는 은혜(시편 119:25)
넷째는 힘을 주시는 능력(시편 119:28)

♪ 찬양 / 주의 말씀 듣고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1∼52
♦ 묵상을 위한 주제 :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
♦ 성구 :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The child grew and became strong; he was filled with wisdom, and the grace of God was upon him.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성경을 읽을 때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는 것은 “정관사(Definite article)”라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은혜가 아니라 “그 은혜”라고 말씀한 것은 모두에게 내려지는 은혜가 아닙니다.

이때 정관사 “그”는 제한적 용법입니다.
지정된 사람이나 장소에게만 은혜가 임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용법으로 표현된 구절이 52절에서도 소개됩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Jesus grew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정관사 “그”가 사용되었으므로 모든 아이들에게 임하는 은혜가 아닙니다. 이러한 은혜를 “보편적 은혜” 또는 “일반적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관사 “그”가 사용되므로 “특별한 은혜”라고 합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이 특별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정말 자기 자녀들이 특별한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이제부터 자녀들을 위한 특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내 자녀가 특별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한 방식의 기도를 작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매주 어느 한 날을 정하고 시간을 정하여 부모가 함께 자녀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정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한두 번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한 은혜를 원한다면 특별한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특별한 투자가 없이는 특별한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특별한 투자를 나를 위한 이기적인 투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깨닫게 할 수 있는 특별한 투자를 계획하고 실천하므로 2020년 하반기에 특별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 찬양 / 기도하는 이 시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3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3: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늘이 열리며(21절)
♦ 성구 :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When all the people were being baptized, Jesus was baptized too. And as he was praying, heaven was opened.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다고 합니다(마 3:16).

정말 하늘의 문이 있어서 열렸을까요?

하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특별한 경우에 하늘이 열렸다고 말씀합니다(행 7:56, 행 10:11, 겔 1:1, 요 1:51).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마 3:17, 마 17:5, 벧후 1:17).

더구나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임했다고도 합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롬 8:2, 요 6:63).

주님을 찬양 할 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의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하늘 문이 열려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날마다 새롭게 다져지기를 소망합니다.

♪ 찬양 /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6

누가복음 5:1∼39

죄를 사하는 권세(24절)

7

7

누가복음 6:1∼49

듣고 행하는 자(49절)

7

8

누가복음 7:1∼50

말씀만 하소서(7절)

7

9

누가복음 8:1∼56

믿기만 하라(50절)

7

10

누가복음 9:1∼62

별세하실 것(31절)

7

11

누가복음 10:1∼42

좋은 편을 택하라(42절)

7

1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6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5:1∼39
♦ 묵상을 위한 주제 : 죄를 사하는 권세(24절)
♦ 성구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오직 주 예수님께만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교회법을 근거로 예수님이 아닌 사제들에게도 용서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하고 말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예수 중심의 신앙과 교회 중심의 신앙으로 구분합니다.
예수 중심의 신앙은 “성경”이 기준이 됩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은 “교회법”이 기준이 됩니다.
교회법이 성경보다 위에서 권위를 갖게 될 때 신앙은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신앙생활이 습관적으로 길들여질 때가 위험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약속보다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내일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타락한 마음 때문입니다.
문제가 드러난 죄보다 드러나지 않은 생각하지도 못한 죄를 찾아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됩시다.
애통하는 자가 됩시다.
온유한 자가 됩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됩시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됩시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됩시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됩시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됩시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도를 합니다. 

주여,
주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받아주옵소서!

♪ 찬양 / 나의 죄를 씻기는

https://www.youtube.com/watch?v=WE4nqto723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7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6:1∼49
♦ 묵상을 위한 주제 : 듣고 행하는 자(49절)
♦ 성구 :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But the one who hears my words and does not put them into practice is like a man who built a house on the ground without a foundation. The moment the torrent struck that house, it collapsed and its destruction was complete.

하나님 앞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와 “듣고 행하지 않는 자”

‘듣고 행하는 자’는 기초를 깊이 파고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깊은 기초와 든든한 반석을 위하여 마음에 새겨야 할 진리를 살펴봅니다.

“남에게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절)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36절)

신앙생활의 유형을 “이기적인 신앙”과 “이타적인 신앙”으로 구분합니다.
‘이기적인 신앙’에서 ‘이타적인 신앙’으로 성숙해 질 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입니다.
소금과 빛은 대상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신앙은 대상을 구분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믿음으로 거듭날 때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란 그 영광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같고, 그의 더러움에 있어서는 동물과 같다”(성 어거스틴).

인간이 고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사죄의 은총
둘째는 성령의 임재와 충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말씀의 깊은 뿌리와 실천의 든든한 터전 위에서 좋은 나무로 반듯하게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주의 말씀 듣고서

https://www.youtube.com/watch?v=JI8vncK8wa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8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7:1∼50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씀만 하소서(7절)
♦ 성구 :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Bu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이라고 합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언어를 “코이네 헬라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헬라어에서 말씀이란 단어가 두 가지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로고스(λόγος, logos)”
둘째는 “레마(ῥῆμα, rhéma)”
‘로고스’ 라는 말씀은 성경의 모든 내용을 말합니다.
‘레마’ 라는 말씀은 특별히 내게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말합니다.
레마라는 말씀의 대표적인 성구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로마서 10:17).

“말씀만 하사” 라고 하셨을 때 사용된 말씀은 “로고스”라는 단어입니다.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모두 “로고스”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강조하려면 “로고스” 보다는 “레마” 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백부장의 이와 같은 언어 사용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고 극구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계속되는 위협,
삶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답답하게 느껴질지라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다만 말씀만 하사 낫게 하소서!”
이렇게 고백하며
어려운 때를 말씀으로 무장하여
건강하게 견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전능왕 오셔서

https://www.youtube.com/watch?v=tySNuzGINh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9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8:1∼56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기만 하라(50절)
♦ 성구 :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Don't be afraid; just believe.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움의 원인은 “불안(不安)”이라고 합니다.
불안한 사람은 “공포(恐怖)”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에도 무너져버립니다.

보헤미아의 국왕 “페르디난도 5세(Ferdinando V)”에게 어느 점쟁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는 ‘마드리갈’이라는 곳에는 가지 마십시오. 그곳에 가면 죽을 것입니다. 그 후로 국왕은 그곳에 아주 좋은 별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21년 동안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작은 도시를 방문하게 되어 작은 집에서 하루 밤을 지낼 때 그만 병이 났다고 합니다. 국왕은 신하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신하는 즉시 대답하기를 “예, 여기는 ‘마드갈레’ 라고 합니다.” “마드리갈”과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그 순간 국왕은 “아이구, 이제는 죽겠구나!” 하더니 결국 며칠 지나 죽었다고 합니다.

병(病)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공포”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두려움에 붙잡힐 때 사람의 몸은 신경이 쇠약해지고, 혈압이 높아지며, 위액 분비가 잘 안되어 소화도 안 된다고 합니다. 세균보다 더 무서운 두려움이 건강을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워 말고 믿어야 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의 골짜기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찬양 /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https://www.youtube.com/watch?v=Wgu4-Zump6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0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9:1∼62
♦ 묵상을 위한 주제 : 별세하실 것(31절)
♦ 성구 :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 할쌔.
appeared in glorious splendor, talking with Jesus. They spoke about his departure, which he was about to bring to fulfillment at Jerusalem.    

“별세(別世)”
‘별세’를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서는 죽음 아니라 “떠나는 것(departure)” 이라고 합니다.
지구를 떠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곳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 여행을 “죽음 여행”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여행은 다시 돌아와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여행은 내가 죽어서 그곳으로 가야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행입니다.

“우리들은 일이 끝나기까지 죽는 것이 아니다.”

스코트란드 조합교회(Congregationalist) 선교사이자 탐험가이었던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 3. 19~1873. 5. 1)이 남긴 말입니다.

리빙스턴은 살아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거니와 죽어서도 하나님의 뜻을 무언으로 대변하여 성취시키려고 “죽음도 하나님 사업 일부”라고 고백했습니다.

언제인가 반드시 아주 특별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삶의 자세라고 하겠지요?
오늘은 특별한 여행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시렵니까?
여행의 즐거움은 준비한 만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때와 장소를 알지 못하는 특별한 여행을 준비하며 소망의 닻을 끌어올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하늘가는 밝은 길이

https://www.youtube.com/watch?v=6ON12J-aoZ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0:1∼42
♦ 묵상을 위한 주제 : 좋은 편을 택하라(42절)
♦ 성구 :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Mary has chosen what is better, and it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선택(選擇)에 의해서 삶이 결정됩니다.
좋은 것을 선택하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나쁜 것을 선택하면 나쁜 삶이 될 것입니다.
좋은 삶을 원한다면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시력이 악화되어 눈이 멀어가고 있었습니다. 담당의사가 그에게 수술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그의 시력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수술하던 중에 뇌신경을 다쳐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수술을 한 결과 이번에는 기억력은 되살아나고 시력은 나빠졌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환자에게 "어느 것을 택하겠습니까? 시력이요, 아니면 기억력입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사람은 "시력을 되찾겠습니다. 지나간 일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될 일을 눈으로 보는 것이 낫겠지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 속에 파묻힌 삶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지난 날 나쁜 기억을 다듬어 더 좋은 기억으로 새겨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마리아와 같이 좋은 편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기회를 붙잡아 코로나 바이러스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강건하여 하늘의 뜻을 실현하는 복음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일어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오 놀라운 구세주

https://www.youtube.com/watch?v=TvF7KjM0h3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13

누가복음 11:1∼54

구하는 자에게 주실 성령(13절)

7

14

누가복음 12:1∼59

어리석은 자(20절)

7

15

누가복음 13:1∼35

망할 징조(3절)

7

16

누가복음 14:1∼35

강권하여 채우라(23절)

7

17

누가복음 15:1∼32

하늘에서의 기쁨(7절)

7

18

누가복음 16:1∼31

위로와 고민(25절)

7

1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13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1:1∼54
♦ 묵상을 위한 주제 : 구하는 자에게 주실 성령(13절)
♦ 성구 :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은 문제를 갖고 해결하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에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聖靈)”을 구하라고 강조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께서 마치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으며,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승리하셨던 예수님께서 부활 후 모든 문을 닫아걸고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 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성령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무슨 신비한 힘과 능력에 제한시키지 말고 예수님처럼 성령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은 순수하고 거룩한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붙잡힌 사람은 인격적인 삶에 만족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정의와 정직을 주장하면서도 자신은 불의와 추함에 갇혀 있었기에 그 불의와 추함이 세상에 알려지게 될 때 인간은 자기모순이란 함정에 빠져 비극적인 삶을 선택합니다.

예로부터 윤리를 전공한 사람은 윤리가 없다고 합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정의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이 이렇게 자기모순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기만족에 도취한 삶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구하는 사람은 자기모순을 넘어야 하고 자기만족을 버려야 하는 고통과 연단의 과정에서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은 진리의 길을 찾아 가난하지만 부요하게 연약하지만 강건한 삶을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을 구하는 믿음으로 성령과 함께 진실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새겨질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https://www.youtube.com/watch?v=kNQcjnrGiS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2:1∼59
♦ 묵상을 위한 주제 : 어리석은 자(20절)
♦ 성구 :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죽을 것을 모르고 세상 삶에 만족하며 살았던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기도를 찾아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언 30: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내가 만족 할 때 어느 누군가 고통의 자리에서 답답해합니다.
내가 즐거워 뛸 때 어디에선가 슬픔의 통곡 소리가 진동합니다.
내가 배부를 때 어떤 사람을 굶주린 배를 붙잡고 도움의 손을 찾습니다.
내가 건강할 때 병상의 자리에 누워 소망 없는 눈으로 치료의 길을 헤맵니다.
이제부터는 나 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아니라 더불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가장 작은 파동에 의한 움직임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나누며 즐기며 기뻐할 수 있는 그 날을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가장 낮은 사랑이

가장 깊은 사랑입니다


내 사랑의 크기만큼
그의 사랑이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며

받아서 채워지는 사랑보다는

주면서 채워지는 사랑


그로 인해 알게 된

아픔과 슬픔에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랑


그렇게 낮은 사랑이 가장 깊은 사랑입니다


내 가슴 비워가는 사랑이

가장 절실한 사랑입니다


그가 보고픈 만큼

그가 그리운 만큼

내 가슴 오려 내주는 사랑


그와 같은 눈높이에 서서

나 자신을 하나하나 비워감에 따라

그 자리에

어느새

그가 하나하나씩 쌓여가는 그런 사랑이

가장 절실한 사랑입니다.

♪ 찬양 /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https://www.youtube.com/watch?v=nm6-X3jGz0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5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3:1∼35
♦ 묵상을 위한 주제 : 망할 징조(3절)
♦ 성구 :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망할 징조(徵兆)는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잘못된 삶을 정상적인 삶이라 생각하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잘못을 깨닫는 사람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회개(悔改)는 성령의 강한 불빛에 의해 깊숙이 숨어있던 죄를 찾아내어 그 죄를 밝은 세상으로는 드러내어 태워버리고 죄가 숨어 있던 그곳에 성령의 거룩한 빛을 담아 그 빛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회개하지 못하면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될 것이라고 합니다.
쓰레기와 같은 죄 때문에 버림을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쓰레기를 치워버리고 맑고 깨끗한 집으로 청소한 후 그 안에서 즐겁고 복된 삶을 누려야 할까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지난날의 죄악을 깨닫고 영원한 주님 나라 백성으로 즐거운 찬송을 부르며 승리의 행진 대열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행군 나팔 소리에

https://www.youtube.com/watch?v=jgsaNnViFQ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6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4:1∼35
♦ 묵상을 위한 주제 : 강권하여 채우라(23절)
♦ 성구 :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Then the master told his servant, 'Go out to the roads and country lanes and make them come in, so that my house will be full.

“강권하라”는 헬라어는 “아낭카조(ἀναγκάζω)”라고 합니다.
‘아낭카조’는 “억지로라도 하게하라”는 뜻입니다. 
한번 권면하고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매달려 간청하라는 것을 말합니다. 심지어 안 되면 멱살이라도 잡아서 끌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한 초청은 유대인들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으므로 차라리 이방인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음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문을 열어야 할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문을 열어놓지 않고 구원을 받으라고 외칩니다.
그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입니다.
복음의 문을 열고 구원받을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합시다.
그리고 거리에 나가 구원받아야 할 사람에게 복음을 외치고 가르치고 깨우쳐서 구원의 잔치 자리를 채워야 하겠습니다.

오 주여,
화산이 터져 오르듯
복음의 용암이 넘쳐흘러
거리를 채우고 흔들어
방황하던 영들이
구원의 문을 찾아
달려오게 하소서!
♪ 찬양 / 구원으로 인도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i1UbpDjlDt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7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5:1∼32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늘에서의 기쁨(7절)
♦ 성구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I tell you that in the same way there will be more rejoicing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ninety-nine righteous persons who do not need to repent.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But Abraham replied, 'Son, remember that in your lifetime you received your good things, while Lazarus received bad things, but now he is comforted here and you are in agnoy.

“하늘에서의 기쁨”이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실에서는 “어버이의 기쁨”이라고도 하겠지요.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언제 가장 기뻐했을까요?
물론 여러분들이 태어나던 날 바로 그날이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기쁨은 그 아이가 자라나면서 기쁨을 무너져 내리고 근심과 걱정으로 쌓여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나를 낳으시고 그렇게 기뻐하셨던 부모님이 나로 인하여 기쁨을 잃어버리셨을까요?
마찬가지로 하늘의 어버이 하나님께서 나를 낳으셨던 부모님처럼 나로 인하여 기쁨을 잃어버리셨다면 신앙인으로서 큰 불행이 아닐까요?
그런데 오늘 잃어버렸던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비결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 이라고 합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뻐하셨던 부모님의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부모님에게 잘못한 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어버이에 대한 회개가 부모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이제는 영적으로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 앞에 지난 날 거짓되고 망령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늘에 기쁨을 쌓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이 땅의 기쁨
하늘의 기쁨으로 치솟아
기쁨의 날개 펄럭이며
모두 함께
기쁨을 누리며
살아봅시다.

♪ 찬양 /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https://www.youtube.com/watch?v=a6zCE70-r8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18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6: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위로와 고민(25절)
♦ 성구 :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But Abraham replied, 'Son, remember that in your lifetime you received your good things, while Lazarus received bad things, but now he is comforted here and you are in agony.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민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에서 위로받는 비결이 있다고 합니다.
고민에 붙잡혀 시들어가는 인생으로 기억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위로 받으며 소망의 길을 걸어가야 할까요?
왜 부자는 풍족한 환경에서 고민하는 자리에 머물게 되었을까요?
왜 거지 나사로는 구차한 환경에서 위로받는 자리에 앉게 되었을까요?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고민과 위로의 차이는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의 삶의 질이 결정될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소망의 마음을 갖게 될 때에 위로가 흘러들어 올 것입니다.
풍족한 환경에서도 만족과 감사를 모른다면 실망과 고통의 작은 구멍이 점점 더 확대되어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의 바위가 될 것입니다.

“마음”이란 단어를 영어로 “마인드(mind)”와 “하트(heart)”로 구분합니다.
‘마인드(mind)’란 주로 뇌의 영역에 관련되어 의사결정 및 참과 그릇됨을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하트(heart)’란 문학적 영역 및 느낌과 정서를 조절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한 마음”이라고 말할 때는 “원 하트(One Heart)”를 말합니다.
서로 한 마음이 될 때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을 때 고민합니다.
반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하나가 된다면 서로 위로가 될 것입니다.

행복하다(happy)와 일어난다(happen)는 단어를 살펴보면 동일한 어근(happ)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문자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이 일어날 수 있지만 마지막 문자를 잘못 쓰면 행복은 고민으로 뒤집어 질 것입니다.

위로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 한 마음으로 회복한 후에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슬픈 마음 있는 사람

https://www.youtube.com/watch?v=G0Lj_gDVw0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20

누가복음 17:1∼37

믿음을 더하소서(5절)

7

21

누가복음 18:1∼43

믿음을 보겠느냐(8절)

7

22

누가복음 19:1∼48

주가 쓰시겠다(31절)

7

23

누가복음 20:1∼47

산 자의 하나님(38절)

7

24

누가복음 21:1∼38

주의하라(8절)

7

18

누가복음 22:1∼71

습관을 좇아(39절)

7

1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20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7:1∼37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을 더하소서(5절)
♦ 성구 :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The apostles said to the Lord, “Increase our faith!”    

“양(量, Amount)과 질(質, Quality)”
양(量)에 대해서는 “많다” 또는 “적다”
질(質)에 대해서는 “좋다” 또는 “나쁘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라 하였을 것이요 그대로 되었을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은 “믿음의 양”을 요구했지만 주님께서는 “믿음의 질”을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을 양으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물질 세상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질이 넉넉하다는 것은 이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충분조건이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비록 물질은 넉넉하지 않지만 행복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오늘의 말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겸손(謙遜, humility)(10절)

겸손이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자매는 여러 형제들이 부유하게 살아가면서도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 자매에게 “형제들은 모두 풍족하게 살아가는데 마음이 상하지 않는가?” 라고 질문했더니 그 자매가 “내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모두 넉넉하게 살아가므로 나는 참 좋습니다.” 라고 대답할 때 그 자매의 인품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것이 겸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째는 감사(感謝, thanks)(16절)

열 명의 문둥병자들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아와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謝禮)하였다고 합니다. 사례란 말과 행동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들이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이 있습니다.

맑고 밝은 태양 빛,
항상 새로운 공기와 신선한 바람,
푸른 나무들과 풀밭,
언제나 가까이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가족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제한적 삶이 다소 힘들고 지칠지라도 결코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는 역설적(逆說的, Paradoxical)인 생각(33절)

역설적이란 “어떤 내용이 겉으로는 모순되고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는 말씀처럼 삶의 가치와 기준을 자기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에서 항상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베긴” 수상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500배나 강한 아랍과 싸워서 이기는 비결이 무엇인가?”
기자의 질문에 “베긴” 수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서 상관은 “전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명령할 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부하들이 지휘관을 믿고 따라가므로 승리하게 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견디고 있습니까?
어려운 때를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세상을 이기셨던 예수님처럼 나를 위한 것이 우선이 아니라 남을 위한 절대 겸손과 감사와 역설적인 신앙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행복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구원으로 인도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aTUNw4llW1Q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8:1∼43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음을 보겠느냐?(8절)
♦ 성구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I tell you, he will see that they get justice, and quickly. However,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여러분은 믿음이 보입니까?
아니면 믿음을 느끼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믿음은 깨닫는 것일까요?

감리교 운동을 일으켰던 “요한 웨슬리”는 “최대로 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무엇을 최대로 해야 할까요?
첫째는 몸과 마음과 이웃을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로 일하고 벌어라.
둘째는 검소한 생활로서 번 것을 최대로 절약하라.
셋째는 네가 가진 것을 최대로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

믿음이란 최대로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믿음은 언행(言行)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최대로 두려워하라!(2절)
사람을 최대로 인정하라!(9절)
자기의 부족한 것을 최대로 살펴라!(22절)
가장 필요한 것을 최대로 구하라!(41절)

♪ 찬양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https://www.youtube.com/watch?v=xT1HDblQkp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19:1∼4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가 쓰시겠다(31절)
♦ 성구 :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If anyone asks you, Why are you untying it? tell him, The Lord needs it.

“주가 쓰시겠다(The Lord will use it)”
예수님께서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에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거물(Great Man)”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거물”이란 용어를 세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거물(巨物)

거물(巨物)이란 “클 거(巨)”자를 사용하여 “큰 인물”이나 “큰 물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거물급(巨物級)”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거물(去物)

거물(去物)이란 “갈 거(去)”자를 사용하여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거나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 또는 “내쫓아야 할 사람”을 말합니다.

셋째는 거물(距物)

거물(距物)이란 “상거할 거(距)” “막을 거(距)”자를 사용하여 가깝게 지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만나거나 사귐을 가져야 할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가까이서 교제해야 할 사람 위대한 인물의 거물(巨物)입니다.
왜 예수님은 거물이 되셨을까요?

“삭개오”는 뭇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던 “거물(距物)”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을 방문한 후에 “작은 거물(巨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작은 거물(巨物)”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3절)
둘째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6절)
셋째는 예수님 앞에 자기 잘못을 고백해야 합니다(8절)
넷째는 아브라함 자손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9절)

어두운 세상에 소망의 빛이 되어 주위 사람들을 믿음의 거물급(巨物級)으로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믿음의 삶을 회복하여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일에 다 함께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 찬양 /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https://www.youtube.com/watch?v=qhnLNAlK3e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3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0:1∼48
♦ 묵상을 위한 주제 : 산 자의 하나님(38절)
♦ 성구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for to him all are alive. 

“산 자의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왜 이런 표현이 소개되었는지 그 배경을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 전통에 “계대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 이란 것이 있습니다. ‘계대결혼’이란 “리비르(Levir, 남편의 형제)”란 말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수혼(嫂婚)” 또는 “형사취수제도(兄死取嫂制度)”라고 합니다(참조, 신명기 25:5∼10).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했다가 자녀가 없이 죽어 그 다음 형제가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형제도 또 죽었고 다시 셋째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고 이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면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산 자의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란 부활 때에는 시집도 장가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계대결혼의 영적 교훈은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중에는 “대(代)”가 끊어지는 가문이 생긴다는 것은 여호와의 약속과는 상치되는 일이었으므로 계대결혼을 통해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이란 분명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부활 후에도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生命)을 말합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생명(生命)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산자의 하나님 편에서 강건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생명 진리 은혜 되신

https://www.youtube.com/watch?v=JEhz2nrstH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4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1: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하라(8절)
♦ 성구 :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 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He replied: Watch out that you are not deceived. For many will come in my name, claiming, I am he, and, The time is near. Do not follow them.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그 영혼을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라(I am He, ego eimi, Ἐγώ εἰμι)”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예수가 아닌 사람이 “내가 예수라!(ego eimi, Ἐγώ εἰμι)”고 말할 때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명품(名品)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붙잡혀 가짜를 찾게 됩니다. 가짜는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진품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를 만나려면 예수님이 좋아하는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좋아하는 마음과 생각은 회개(悔改)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회개 없이 거룩하신 주님을 찾고자 할 때 거짓의 가르침에 쉽게 흔들려 가짜에 미혹 당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파멸입니다.

미혹당하지 않으려면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의 빛이 되신 주님과 더불어 어두운 세상에서 저 천성을 향하여 힘차게 나가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I am He)”라고 하셨을 때 일곱 가지 특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일곱 가지 특징을 잘 기억하셔서 예수와 참된 예수를 바르게 분별하여 미혹당하는 일이 없도록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Ⅰ.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Ⅱ.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Ⅲ. 나는 문이다(10:7, 9)

ἐγώ εἰμι ἡ θύρα τῶν προβάτων


Ⅳ. 나는 선한 목자라(10:11)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Ἐγώ εἰμι ἡ ἀνάστασις καὶ ἡ ζωή·

Ⅵ.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Ⅶ.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5)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 찬양 / 신랑 되신 예수께서

https://www.youtube.com/watch?v=2mlMA_YAis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2:1∼71
♦ 묵상을 위한 주제 : 습관을 좇아(39절)
♦ 성구 :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Jesus went out as usual to the Mount of Olives, and his disciples followed him.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기도하셨을까요?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일에 삶에 익숙해졌기에 습관을 좇아 감람산을 찾아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습관에 몸이 익숙해지려면 사회학에서는 대략 3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3만 시간이란 1,250일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1,250일 3년 4개월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낸 시간과 거의 비슷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의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을까요?
그 이유는 제자들에게 거룩한 습관이 제자들의 몸에 익숙해질 때 까지 훈련하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습관을 갖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네 가지 습관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배하는 습관
둘째는 성경을 읽는 습관
셋째는 기도하는 습관
넷째는 전도하는 습관

습관(習慣)이란 헬라어는 “에도스(edos, ἔθος. custom)”라고 합니다.
에도스는 성경에서 “전례(典禮)”(눅 2:42) 또는 “규례(規例)”(눅 4:16) 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주님의 에도스가 나의 에도스가 될 때 비로써 주님처럼 이 세상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먼저 거룩한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습관이 몸에 익숙해졌을 때 나도 모르게 나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뭇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 찬양 / 저 죽어가는 자

https://www.youtube.com/watch?v=jl7Kf79QQss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7

27

누가복음 23:1∼56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

7

28

누가복음 24:1∼53

너희는 증인이라(48절)

7

29

마태복음 1:1∼25

죄에서 구원할 자(21절)

7

30

마태복음 2:1∼23

현몽(19절)

7

31

마태복음 3:1∼17

하늘이 열리고(16절)

8

1

마태복음 4:1∼25

회개와 천국(17절)

8

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7월 2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3:1∼56
♦ 묵상을 위한 주제 :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
♦ 성구 :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Jesus turned and said to them, Daughters of Jerusalem, do not weep for me; weep for yourselves and for your children.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이마엔 땀이 얼룩지고 지친 발걸음은 딱딱한 돌계단에 쓰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힘들 때 제자들마저 보이지 않고 지나가던  구경꾼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따라가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구속사적 의미에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강제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 ‘비아돌로로사’를 함께 걸어가며 눈물로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고통의 길은 곧 구속의 길로 활짝 열릴 것이지만 너희 자녀들은 아직 구원의 은혜를 모르고 있으므로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울어야 한다고 깨우치셨습니다.

여성(女性)은 연약하지만 모성(母性)은 강합니다.
모성의 힘으로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할 때 어려운 시대를 살아야 할 자녀들은 반드시 믿음의 길을 벗어나지 않고 진리를 따라 경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꿋꿋하게 세워질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자녀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의 씨앗이 자녀들의 마음에 믿음으로 심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https://www.youtube.com/watch?v=ZOcEGrqjpBA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8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누가복음 24:1∼53
♦ 묵상을 위한 주제 : 너희는 증인이라(48절)
♦ 성구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You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

“증인(證人, witness)”이란 어떤 사건의 목격자를 말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 증인을 “마루투스(martus, μάρτυς)” 라고 합니다.
“마루투스”라는 단어의 특별한 의미는 “순교자(殉敎者)” 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수의 증인은 복음을 전하려고 자기 목숨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거리에서 “예수를 믿으세요!” 이렇게 외치는 것만이 증인이 아니라 이기적인 세상에서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복음적인 삶 또한 증인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북한에서는 성경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핍박을 받고 심지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경을 북한에 전달하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각오하면서 이 일에 헌신하는 일군들이 있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지기 전에 북한에는 3,035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밖에 없지만 지하교회 성도들은 끈질기게 그들의 신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고, 마음대로 찬송을 부를 수 있으며, 성경을 소유하고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지하교회 성도들에게는 굉장한 은혜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핍박과 고난이 닥쳐올 때 겨우 깨닫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핍박과 고난이 닥쳐오기 전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의 기준을 세속의 가치에 따라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찬송과 기도와 말씀의 자유를 박탈당하기 전에  증인으로서 순교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더운 여름 날 몸과 마음이 힘들지라도 지하교회 성도들을 생각해 봅시다.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정치범 수용소에서 억압당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지 맙시다.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증인으로 거듭나야 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부르짖는 성령의 탄식 소리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어느 민족 누구게나

https://www.youtube.com/watch?v=nBSQMx4IjI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2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태복음 1: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죄에서 구원할 자(21절)
♦ 성구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She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give him the name Jesus, because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죄(罪)에서 구원(救援)할 자”

죄는 에덴동산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 헛된 꿈을 갖습니다.
헛된 꿈은 금지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깨닫습니다.
부끄러움이란 벌거벗었다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감추려고 할 때 하나님은 새로운 방법으로 부끄러움을 덮어주셨습니다.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덮어주신 것입니다.
덮어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를 “사랑의 주”라고 부르는 까닭은 “죄를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들추어내는 사람”과 “덮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들추는 사람은 아직 자기의 부끄러움을 자기 방법으로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덮어주는 사람은 자기의 부끄러움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용서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나누려고 다시 덮어주는 삶을 기뻐합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처럼 이제부터 덮어주는 은혜를 함께 경험하며 그 은혜의 세계에서 주님을 닮아 가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사랑의 주님 닮기 원하네

https://www.youtube.com/watch?v=bsA_JjDhxc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3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태복음 2: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현몽(19절)
♦ 성구 :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급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After Herod died,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in a dream to Joseph in Egypt.   

“현몽(現夢, in a dream)”
현몽이란 헬라어는 “오나르(onar. ὄναρ)”라고 합니다.
“오나르”란 잠을 잘 때 특별한 계시를 받는 현상을 말합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은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됩니다.

첫째는 정혼(定婚)

신랑과 신부의 부모(아버지)에 의해서 신랑과 신부가 어렸을 때 ‘네 딸하고, 우리 아들하고 결혼시키자.’ 라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약혼(約婚)

신랑과 신부가 성인으로 성장했을 때 약혼하므로 법적 구속을 받는데, 이 관계를 깰 수 있는 것은 오직 법적인 약혼 파기로만 가능합니다. 약혼 기간은 대개 1년 정도 되며, 약혼 기간에 신랑과 신부는 육체적 접촉을 하지 않으며, 서로의 순결을 지키게 됩니다.

셋째는 결혼(結婚)

신랑은 큰 잔치를 벌이며,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맞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8절). 이 문구에서 ‘성령으로’라는 말을 빼면, 마리아는 약혼한 상태에서 요셉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약혼 기간에 여인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임신하는 것은 모세 율법에 의하면 ‘간음죄’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19절).

‘의롭다’는 것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면  ‘간음한’ 마리아를 돌로 쳐 죽였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에게 의로움이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몽”이란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현몽의 은혜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우리에게도 나타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대로가 활짝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https://www.youtube.com/watch?v=4mkxZZ2AKZ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7월 31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태복음 3: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늘이 열리고(16절)
♦ 성구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As soon as Jesus was baptized, he went up out of the water. At that moment heaven was opened, and he saw the Spirit of God descending like a dove and lighting on him.

하늘에 문(門)이 있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성경은 하늘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생명(生命)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순간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감추어졌던 생명의 비밀이 하늘이 열린 것처럼 드러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궁극적 생명이 은폐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듯이 아무도 그 생명이 은폐된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하늘이 열려야만 우리는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여는 문이 예수님이십니다(요 10:7, 양의 문).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생명을 알게 되었고, 그 생명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는 그 증거를 성령의 임재와 하늘의 소리로 드러내셨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임했으며, 성령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하늘에서 들린 소리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마음에 합한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2편 7절의 인용입니다.

성경에서 하늘이 열렸던 사건들을 살펴보며 하늘이 열리는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가 오늘 내게도 임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 에스겔 1:1
2. 마태복음 3:16(누가복음 3:21)
3. 요한복음 1:51
4. 사도행전 7:56
5. 사도행전 10:11

♪ 찬양 /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https://www.youtube.com/watch?v=Vk1oouyZkF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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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8

1

마태복음 4:1∼25

회개와 천국(17절)

8

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8월 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마태복음 4: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회개와 천국(17절)
♦ 성구 :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preach,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회개(悔改)와 천국(天國)”

“팬더믹(pandemic, 감염병 세계적 유행)”과 같은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두 가지 생각들이 교차됩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왜 이런 질병이 세계 모든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가?

또 다른 하나는 이런 질병으로 인하여 연약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비록 경제적인 어려움은 심각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그동안 영원한 것이 아닌 것에 사로잡혔던 몸과 마음을 영원한 것으로 방향 전환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기 때문에 삶이 평탄하고 건강하고 행복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반면에 병들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매달리려고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전보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더 생각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늘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인간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문제를 회복하는 첫 단계는 “회개(悔改)”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열려야 합니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목회를 했던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 1899∼1981)”는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이었습니다. 그는 강조하기를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체계적이지 못한 성경 읽기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선택하여 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열릴 때 기도가 하늘 보좌로 올라갑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하늘 보좌로 올라갈 때 비로써 세상 어디를 가든지 기쁨과 감사의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천국(天國)이란 이 세상 어디를 가든지 삶의 자리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믿음의 삶이 펼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팬더믹 시대에 회개의 영이 내 마음을 흔들어 잃어버렸던 천국을 회복하여 죽은 후에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요동치는 세상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