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국 개론

하바국 개론

1. 표제

하박국의 표제는 다른 소선지서들과 같이 단순히 저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박국이란 히브리어는 “포옹하다”라는 뜻의 동사인 카바크(chabaq)에서 왔다.
어떤 학자들은 이 이름을 향기높은 한 정원의 식물인 아카드어(Akkadian)
“함바크크”(hambaququ)의 이름과 관련시키기도 한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구약 중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2. 저자

하박국에 대해서는 그의 책에 나타난 것 이외에 더 알 길이 없다.
하박국이 아모스처럼 어떤 다른 일에 종사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암 7:14)
혹은 선지자 학교에서 부르심을 위하여 특별한 훈련을 받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명한 키르벳 쿰란(Khirbet Qumran) 사본 중에 하박국서를 취급한 사본이 하나 있었다.
조사해 본 결과 그것은 고대의 미드라쉬(midrash)
즉 성경 주석 책으로 판명되었는데 하박국서에서 짧은 귀절들을 인용하고 저자의 해석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 기록은 잘 보존되기는 했지만 불행히도 많은 공백들과 빠진 문장들이 있었다.
그 주석은 13줄의 기록인데 단지 하박국서 첫 두장만 포함하고 있다.
그 사본은 두개의 이사야서 사본들의 연대와 비슷한 B.C. 100년 경의 것이다.

하박국 주석책은 더욱 완전한 이사야 사본들과 함께 현대 히브리 문자로 기록된 같은 본문들을 수록하여
밀라 버로우(Millar Burrows)에 의해 복사판으로 출판되었다(성 마가 수도원의 사해 사본, 제1권, New Haven :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1950).

성서학에서 하박국 주석책의 가장 중요한 점은 주석도 중요하긴 하지만 주석에 있지 않고 성경 본문에 있다.
그 당시의 어떤 종파(아마도 에세네파)에 의해 필사된 이 본문은 마소라 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들 보다 거의 천년이나 앞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박국서의 어떤 본문을 연구하는 데에도 대단히 가치있는 것이다(합 1:4; 2:1, 4, 5, 15, 16).

 3. 역사적 배경

하박국은 심각한 배교의 시대, 즉 므낫세 통치 후기나 아몬의 통치 기간, 혹은 요시아 통치 초기에 기록된 듯하다.
하박국의 봉사는 선지자 나훔의 봉사에 바로 뒤따라서 있었던 것같다.
이 견해는 히브리어와 희랍어 정경에 나타난 그 책의 순서 배열을 통하여 지지를 받는다.
하박국이 자기 백성에게 돌리고 있는 일반적인 죄악들,
그가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죄악들이 역시 같은 시대임을 가리키고 있다.
하박국은 백성들의 죄악 때문에 바벨론이 곧 쳐들어오는 위기가 닥칠 것이고
그 위기가 마침내 유다를 포로로 만들 것을 잘 알았다.

하박국은 이 위기를 유다에게 미리 경고했으며 하나님과 그 백성의 원수이며 우상 숭배에 빠지고
불의한 바벨론에 대하여 하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했다.

 4. 주제

하박국은 유다의 죄를 한탄하고 자기 백성이 벌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그들이 당해야 할 고통에 대해 염려한다.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징벌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
즉 계속적인 번영으로 축복받은 것처럼 보이는 갈대아인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께서는 회의(懷疑)에 차있는 당신의 종의 마음에 해답을 주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징벌은 그들의 궁극적인 행복을 위한 것이지만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악인들의 세상적 번영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사라질 것임을 하박국에게 보여 주신다.

하박국 3장에 기록된 기도는 불경건한 자의 운명과 의인의 승리로 얻는 보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그 절정을 이룬다.
이 대조를 통해서 의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면 생명을 얻게 되는 반면에
악인들과 마찬가지로 갈대아인들의 의기양양한 교만심이 그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가는가를
하박국에게 보여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성결과 믿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하박국은 이사야와 함께 복음 선지자로 여겨지고 있다.

욥기서가 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준 것처럼
하박국서는 왜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번영하도록 허락하시는가하는 문제에 해답을 준다.

하박국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의인들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지만,
왜 하나님께서 유다의 범죄와 배교를 벌하시거나 간섭하지 않으시고
표면상 묵과하시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합 1:1-4, 렘 12:1).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악한 길들을 그치게 하시고 징벌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갈대아인들을 도구로 쓰실 것임을 하박국에게 알려 주신다(합 1:5-11,  사 10:5-16).

이 설명은 하박국의 마음에 또 하나의 문제를 야기시킨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벌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유다보다 더 악한 나라를 사용하실 수 있으실까?
그런 계획이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와 조화될 수 있을 것인가?(합 1:12-17)

조급하기는 하지만 순수하고 진지하게 하박국은 하나님의 대답을 요청한다(합 2:1).
잠간동안 하박국의 조급한 요청을 묵과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유다에 대한 당신의 목적이 확실함을 보증하신다(합 2:2, 3).
그리고 하박국에게 겸비와 믿음이 필요함을 지적하신다(합 2:4).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죄악들을 열거하기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패역과 사악함을 다 알고 계시며
당신께서 여전히 세상 만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하박국에게 확신시켜 주신다.
따라서 하박국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잠잠하여야 할 것이었다(합 2:20).
즉 그분이 지혜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의심하지 말 것이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뜻에 감히 도전함으로서 예의의 한계선을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하박국은 겸손히 통회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선택된 도구로서의
유다에 대한 그의 진실하고도 깊은 염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공의가 자비로 말미암아 완화되기를 탄원한다(합 3:1, 2).

이 기도에 이어 하나님께서 신실한 자들의 구원과 그들의 적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일하고 계시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에 대한 계시가 뒤따른다(합 3:3-16).
그리하여 하박국서는 하나님의 계획의 지혜로우심과 종국적인 성공에 대한
하박국의 신념을 확인함으로써 끝마친다(합 3:17-19).

 5. 개요

Ⅰ. 문제 : 유다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1:1-17
     1. 유다의 죄악에 대한 하박국의 불평 1:1-4
     2. 유다를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1:5-11
     3.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하박국의 항의 1:12-17

Ⅱ. 해결 : 하나님의 계획의 지혜와 성공에 대한 확신 2:1-20
     1. 하박국이 대답을 구함 2:1
     2.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의 지혜와 성공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권하심 2:2-4, 20
     3.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국가적 죄들을 열거하심 2:5-19

Ⅲ. 하박국의 응답 3:1-19
     1. 하나님의 행동과 자비를 위한 중재 3:1, 2
     2. 심판과 구원에 관한 이상 3:3-16
     3. 하나님께 대한 하박국의 신앙 고백 3:17-19


하박국 선지자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바는 없기 때문에 많은 추측과 전통들이 있어왔지만,
추측의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하박국을 제의선지자로 간주하고 있지만,
제의 선지자라는 용어 자체도 명료한 것이 아니며, 확증된 것도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하박국서가 제의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특별히 3장의 시나 음악용어들은 예배에 사용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차일즈는 비록 하박국서의 상당 부분이 제의적인 배경 속에서 기원했을 수는 있지만,
이 책의 자서전적인 요소들(2:1, 3:2,16-19)은 이 책의 현재 모습이 제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배경

하박국서는 갈대아 사람들이 일어난 때인 주전 7세기 후반이나 주전 6세기 초까지 쓰여졌다.
이 때를 고려한다면 어쩌면 하박국은 예레미야, 스바냐, 나훔, 그리고 요엘 등과 동시대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비평학계 일부에선 갈대아 인들을 깃딤인 곧 헬라인으로 간주하여 극단적으로 늦은 시기로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학적인 배경

첫 부분은 선지자와 하나님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선지자는 애가의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함으로 시작한다.
악인의 형통에 대한 불평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갈대아인을 통해서 벌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보다 더 큰 불평이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들어서 선민을 치시는 것에 대한 불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장에서 하나님은 그 심판의 확실성을 재차 확인하셨다.
3장은 고어체적인 히브리 시로 구성되어 있다.

신학적인 메시지

하박국은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다.
내적으로는 부패하였으며, 신흥하는 바벨론의 세력으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선지자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시다고 불평을 하고 있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나아가서 온 땅에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했다.
결국 하박국은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며,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여호와를 찬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신약으로의 접근

바울은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하박국서를 인용한다.
우리도 또한 악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동일한 해답이 있다.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동일한 신앙의 삶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도 행하실 것이다.

우르과이의 한 성당벽에 써 있는 "반성하는 주기도문"

우르과이의 한 성당벽에 써 있는
"반성하는 주기도문"

- 주님의 기도를 바칠때-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A message painted on a barrio church in Uruguay:


Don’t say Father
if each day you do not behave like a son.
Don’t say Our
if you live shut off in yourself.

Don’t say Who Art in Heaven
if you think only of worldly things.

Don’t say Hallowed Be Thy Name
unless you really honor it.

Don’t say Thy Kingdom Come
if you have a material outcome in mind.

Don’t say Thy Will Be Done
unless you are ready to accept it when it hurts.

Don’t say Our Daily Bread
unless you care about the hungry.

Don’t say Forgive Us Our Trespasses
if you bear a grudge against someone.

Don’t say Deliver Us From Evil
unless you are prepared to make a stand against it.

Don’t say Amen
unless you really mean it.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3문, 제4문, 제5문

제 3 문 : 어떻게 당신의 비참함을 알 수 있습니까?
답 : 하나님의 율법이 내게 가르쳐 줍니다.
1) 로마서 3:20; 7:7-25

제 4 문 :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2:37-40 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1) 신명기 6:5
2) 레위기 19:18

제 5 문 : 당신은 그 모든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답 :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과 내 이웃을 미워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로마서 3:9-20, 23; 요한일서 1:8, 10
2) 창세기 6:5; 예례미야 17:9; 로마서 7:23-24; 8:7; 에베소서 2:1-3; 디도서 3: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2문

제 2 문 : 이러한 위로의 기쁨 안에서 살다가 죽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답 : 세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1
둘째, 어떻게 내가 그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났는가, 2
셋째, 나는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3

1) 로마서 3:9-10; 요한일서 1:10
2) 요한복음 17:3; 사도행전 4:12; 10:43
3) 마태복음 5:16; 로마서 6:13; 에베소서 5:8-10; 디모데후서 2:15; 베드로전서 2:9-1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1문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서문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1559년부터 1576년까지 독일의 팔라티네이트 지역을 다스렸던 프레드릭 III 세의 요청에 의해서 1563년도에 하이델베르그시에서 작성되었다. 본 요리문답은 청년들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그 지역 교회들의 설교를 위한 가이드로, 그리고 팔라티네이트 지역에 있는 다양한 개신교회들 사이에 통일된 신앙고백의 형태로 고안되었다.

오랜 전통은 본 요리문답의 저자로 자카리아스 울시누스 (Zacharias Ursinus)와 캐스퍼 올리비아누스 (Caspar Olevianus)를 공동저자로 지목하고 있지만, 사실 요리문답의 프로젝트는 프레드릭 III 세의 지휘 아래 여러 목회자들과 대학의 신학자들의 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울시누스는 아마도 그 팀의 주요저자로 그리고 올리비아누스는 그보다 적은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본 요리문답은 작성된 직후 1563년도 1월에 하이델베르그에서 열린 한 총회에서 인준되었다.
본문에 약간을 첨가한 두번째와 세번째 독일어 판, 그리고 라틴어 번역이 같은 해에 하이델베르그에서 출판되었다.
세번째 독일어 판은 1563년도 11월 15일에 작성된 팔라티네이트 교회헌법에 포함되었는데, 그 때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52개의 주일로 구성되어서 주일의 오후 예배에 사용되도록 하였다. 그렇게 사용하면 요리문답 전체를 1년의 설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돌트총회에서 1619년도에 인준된 직후에 개혁교회들 사이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요리문답과 신앙고백이 되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다양한 언어들로 번역되었으며, 종교개혁 시대의 문서 중에서 현재도 가장 널리 사용되고 따듯하게 받아들여지는 요리문답으로 남아있다. 본 요리문답에 포함된 관련 성경구절들 대부분은 초기 독일어와 라틴어 판들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으며, 북미개혁교회 (CRC)의 1975 년도 총회가 타당하다고 인준한 것들이다.

제1문 : 사나 죽으나 당신의 단 하나의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 나는 나의 것이 아니고, 1 사나 죽으나 2 몸과 영혼이 모두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3 주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나의 모든 죄값을 치러주셨고 4 마귀의 권세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5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6 나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나의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나를 항상 지켜주십니다. 7 실로 모든 것이 협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룹니다. 8 내가 주님의 것이기에 주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게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시고, 9 지금부터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주를 위하여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10

1) 고린도전서 6:19-20
2) 로마서 14:7-9
3) 고린도전서 3:23; 디도서 2:14
4) 베드로전서 1:18-19; 요한일서 1:7-9; 2:2
5) 요한복음 8:34-36; 히브리서 2:14-15 ; 요한일서 3:1-11
6) 마태복음 10:29-31; 누가복음 21:16-18
7) 요한복음 6:39-40; 10:27-30; 데살로니가후서 3:3; 베드로전서 1:5
8) 로마서 8:28
9) 로마서 8:15-16; 고린도후서 1:21-22; 5:5; 에베소서 1:13-14
10) 로마서 8:1-17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일서 1:5) / 주일 설교 원고(2020-01-05) 이승혁목사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일서 1:5)

요한일서 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빛이시라!
God is light.
ὁ Θεὸς φῶς ἐστιν(the God light is)

2020년 첫 주일을 맞이합니다.
첫 주일의 의미를 “시작(始作)이 반(半)” 이라는 속담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다”는 독일의 문호 궤테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주일 예배에 성공한다면 2020년의 절반은 이미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오늘의 예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 세자를 남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죽어서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속담대로 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이름 세 글자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남길 수 있는 것과 다른 것을 남겨야 할 것입니다.
다른 것을 남기려면 먼저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2020년 신앙생활을 위한 목표를 위한 표어를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라고 결정했습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요한일서를 읽기 시작하여 1장부터 4장까지 읽었습니다.
함께 읽었던 말씀 중에서 설교 본문을 선택하고 설교하기 위하여 오늘 설교 제목은 요한일서 1장 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빛에 대한 탈무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도입 이야기)
어느 유명한 랍비가 제자들에게 10불씩 나눠주며 날이 어둡기 전에 기도실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을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모였을 때 랍비는 제자들이 구입한 물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가져온 것들은 기도실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10불을 갖고는 기도실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평소에 어리석고 둔하다고 놀림을 받던 제자가 전기 스위치를 내리더니 어두워진 기도실 책상 위에 양초를 올려놓고  불을 밝혔습니다. 그 순간 어둡던 기도실이 환해졌습니다. 작은 양초의 불빛이 기도실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빛이란 어두운 방안을 물리칠 수 있다는 교훈의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지난 한 주일 동안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말씀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빛이라고 하셨을까요?

신약 성경 27권을 세 개의 기둥으로 설명하면 “복음의 기둥”과 “요한의 기둥” 그리고 “바울의 기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둥에서 빛이란 “착한 행실”이라고 합니다(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을 사람 앞에 비취에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바울의 기둥에서 빛이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합니다(에베소서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의로움진실함에 있느니라.  

요한의 기둥에서 빛이란 복음서와 바울 서신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내용을 말씀하여 "생명"이라고 합니다(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서는 빛을 도덕과 윤리적인 행동으로 제한시켰습니다. 그러나 요한서신에서는 빛을 도덕과 윤리적인 행동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좁은 범위에서 읽을 수 있지만 2020년부터는 넓은 범위에서 읽고 묵상하려고 합니다. 주간에 읽은 말씀 중에서 설교 본문으로 선택하고 설교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설교하므로 성경을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으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영”입니다.

생명은 유일한 것입니다(시편 22:20)
-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①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①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① 내 유일한 것을 난외 주에서 "내 생명" 이라고 번역합니다.

시편 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욥기 33:30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시편 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영원한 생명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영의 하나님을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합니다. 삼위일체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성부(聖父) 하나님(야고보서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성자(聖子) 예수님(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일서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요한일서 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성령(聖靈) 하나님(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이한 빛"이란 "놀라운 빛"을 말합니다. 놀라운 빛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어두운 죄 가운데서 불러내어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신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기이한 빛이 되신 예수님은 놀라운 빛으로 죄악에 붙잡힌 인생을 불러내십니다. 그 좋은 예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을 향하여 가는 길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사울은 땅에 엎드렸을 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이 "주여 누구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기이하고 놀라운 빛을 곧 성령의 역사라고 하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양한 빛으로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로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은 기이한 빛으로 임하셨습니다.

생명의 하나님(시편 42: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민수기 16:22
그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민수기 27: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예수님은 생명의 주(사도행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성령님은 살리는 영(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곧 생명이라.

잠언 4:20∼23,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건강이 됨이니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의 반대를 요한일서에서는 "어두움" 이라고 합니다.
요한일서에서 "어두움"이란 단어가 3회 사용되었습니다(1:5, 2:8, 2:11).
어두움의 정체를 요한일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어두움(어둠)은 "눈을 멀게 한다."
눈을 멀게하면 생명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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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일서 1:5)

1. 빛은 생명(시편 36:9, 56:13, 욥기 33:30)

시편 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욥기 33:30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시편 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2. 빛은 구원(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3. 빛은 치료(말라기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4. 빛은 사랑(요한일서 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5. 새 하늘의 성전(요한계시록 21:24)

만국이 그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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