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복음 4:9∼10, 요한계시록 1:1∼2) / 주일 설교 원고(2019-12-15)


오늘 설교 제목은 “믿음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요한복음 4:9∼10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계시록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믿음”이란 한자는 “믿을 신(信)”입니다.
(信)”자를 분석하면 “사람(亻)”과 “말씀(言)”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말씀”은 곧 “하나님”을 말합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존재를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라고 불렀던 던 것처럼 주를 믿는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 아무개" 이렇게 불려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신명기 33:1, 여호수아 14:6, 역대상 23:14, 역대하 30:16).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프란시스 쉐퍼 “작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사람이나 하찮은 장소는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하찮은 일로 인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전환점(轉換點)”이라고 합니다.
전환점’이란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목표와 방향이 새롭게 결정된 것”을 말합니다.

오늘 소개한 본문에서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마리아 여자와 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복음 4:1∼30)

사마리아 여자와 믿음의 터닝 포인트는 언어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4:9,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4:19,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과 만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은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된 후 유능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유대에는 바벨론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유대인들과 서로 섞여 살게 하므로 순수한 혈통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세 지역으로 구분했습니다.
만일 유대지방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이동할 때는 중간에 위치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지 않고 먼 거리로 돌아 다녔습니다.
그만큼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려고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마침 한낮이 되었을 때 사마리아 여자가 수가 성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긷고자 나왔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아침과 저녁에 우물을 찾았지만 사마리아 여자는 유대인들이 없는 시간을 선택하여 우물을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으로 왜 사마리아 사람에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토록 목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그런 물이 있으면 내게 주어 마시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에게 “나는 남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 있는 네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사마리아 여자는 유대 남자가 아니라 선지자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을 얻으려고 우물을 찾았으나 유대 남자로 만났던 사람이 선지자가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메시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확신하게 되었고 참된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과 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계시록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동안 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순교한 후에 가장 나이가 많은 제자로 밧모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모친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모시라는 부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았으며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 정말 예수님은 다시 오실까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에 대한 말씀에 확신을 갖지 못할 때 계시가 주어진 것입니다.

계시의 의미는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잠언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계시)가 없으면 자기 멋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연약해 질 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면 새로운 힘을 얻어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박국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제자이었지만 곧 오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예수님께서는 오시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밧모 섬에 갇혀 지내며 언제 예수님께서 오실는지 알 수 없다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때에 계시를 받음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받음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떤 믿음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까요?

사마리아 여자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처럼 계시를 받을 수 있는 핍박과 고난의 시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신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한 가지 방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17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 알았나니(오이다스, οἶδας) 

* οἶδα(1492. oida)
Definition : be aware, behold, consider, perceive
Usage : I know, remember, appreciate. 

“알았나니” 라는 동사는 내가 직접 배워서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므로 일찍부터 그 말씀을 배워서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려는 것
둘째는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려는 것

2020년 신앙생활의 표어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시편 119:169b)
Give me understanding according to your word. 

왜 계시가 아니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도 아니고 주의 말씀대로 깨닫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까요? 성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부자와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며 연명하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도 죽어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거지 나사로를 바라보며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이곳으로 떨어트려 주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기 때문에 음부에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올 수도 없고 아무 것도 보낼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때 부자는 그렇다면 나사로를 내 집에 보내서 형제 다섯은 이곳으로 오지 않도록 전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세상에는 선지자들이 있으니 선지자에게서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선지자들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선지자들에게 들어야 한다는 말씀은 선지자들의 글 즉 선지서와 성경을 통해서 들어야 한다는 깨우침입니다.(참조 누가복음 16:24∼31)

마태복음 17장 변화산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제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 같이 빛나며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다고 제안합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였는데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변화산 사건에서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합니다.
구약 성경에는 모세와 엘리야 이외에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다윗 왕, 솔로몬 왕과 같은 많은 인물들이 있었는데 왜 모세와 엘리야만 나타났을까요?

모세는 율법을 상징합니다(토라, 율법서)
엘리야는 선지서를 상징합니다(느비임, 선지서)
따라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시가서는 어디 있습니까?(케투빔, 성문서)

누가복음 22: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두 번째는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만나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며 예배하는 사람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사도 요한은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예수님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21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오늘날 성도들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바뀔 것입니다.
계시를 받았을 때 믿음의 고통스런 과정을 통하여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20년부터 오늘의 묵상이란 방법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한 주간의 삶은 주일(主日)부터 시작합니다.
주일에는 오늘 읽어야 할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섬기는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매일 읽어야 할 말씀은 1장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2020년 1월 1일에는 요한일서 1장을 읽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을 읽기 위한 주제는 “하나님은 빛”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빛에 대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이어서 빛이 되신 하나님은 내 삶의 어두움을 찾아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빛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나의 결단을 세운 후에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성경을 읽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성경을 읽은 후에 내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시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처음부터 잘 적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실천하며 기도하면 나도 모르게 적용된 내 모습과 신앙의 발전된 삶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하는 본문도 함께 읽었던 말씀 중에서 선택하여 말씀을 좀 더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협력하려고 합니다.

참조 /

누가복음 16:24∼25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누가복음 16:26∼31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말세의 신앙(계 13:8-10, 눅 18:8) / 주일설교 원고(2019-12-08)


원제목(原題目) : 마지막 시대가 요구하는 믿음의 사람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베드로후서 3:3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기롱(譏弄)이란 단어를 여러 번역으로 살펴봅니다.
NSB 영어 성경에서는 mock(놀리다, 무시하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조롱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럴듯한 이야기(a feasible story)”와 “진실(fact, truth)”은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신앙고백으로 암송하거나 사용하는 “사도신조(師徒信條)” 또는 “사도신경(師徒信經)”은 12개의 문장으로 12사도가 한 문장씩 작성하여 만든 것이라는 글을 읽거나 듣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주장의 근거는 4세기 “루피너스(Rufinus)”가 사도신조의 주석을 쓰면서 12사도가 한 줄씩 썼다고 주장한 것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신조란 사도들이 쓴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사도신조”라고 부른 것입니다.

심지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십계명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사도신조는 성경에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신조가 성경에는 없지만 그 내용이 성경의 내용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에 대하여 복음의 핵심을 주장할 수 있는 믿음의 근거로 채택된 교회의 전통에 따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럴듯한 이야기와 진실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와 분별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10

죽임을 當(당)한 어린 羊(양)의 生命冊(생명책)에 創世(창세) 以後(이후)로 錄名(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者(자)들은 다 짐승에게 敬拜(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는 者(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者(자)는 自己(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聖徒(성도)들의 忍耐(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행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사 33:1,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렘 15: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렘 43:11, 그가 와서 애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 칼로 칠 자는 칼로 칠 것이라.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3장은 마지막 시대에 세상 권력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짓밟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 활동을 못하게 하려고
짐승의 표를 오른 손과 이마에 받아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난과 핍박의 시대에도
성도들이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려면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씀하려는 인내와 믿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내용이 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로잡는 자(者)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者)는 자기(自己)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聖徒 )들의 인내(忍耐)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사로 잡히거나 또는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죽임을 당할지라도 성도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고 인내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速(속)히 그 怨恨(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人子(인자)가 올 때에 世上(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히 10: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눅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은 기도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느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런데 과부는 끈질기게 재판관을 찾아와서 간청합니다.
그때 재판관은 내가 만일 이 과부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므로 과부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호소를 들어주었다면
하물며 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설교자들이 이와 같이 끈질기게 강청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깊이 관찰하면
끈질긴 기도에 대한 응답을 넘어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끈질긴 기도를 할 수 있는 "인내하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 실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최근 한국에서 통치자에 대한 끈질긴 외침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대학의 교수들, 변호사와 예비역 장성들 그리고 목회자들까지
"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습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도 매주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앞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많은 성도들과 시민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비리가 드러나는데도 청와대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아스팔트 위에서 외치는 애국시민들과 성도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외쳐야 하느냐? 라고 질문하면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간청하는 기도 때문에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응답이 없을지라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기독교인들은 고통가운데서 시달렸고 심지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이 부르짖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 좋은 예를 요한계시록 6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인을 떼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다섯 번째 인을 떼실 때 순교를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참조 6:10).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렵니까?

이 말씀은 기독교를 탄압하던 때에 순교한 영혼들이
아직도 세상에서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을 지켜보며 하늘 보좌에 앉아있는 하나님을 향하여
언제까지 성도들이 핍박을 받아야 합니까? 하며 부르짖을 때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아직 잠시 동한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순교한 영혼들이 부르짖을 때에도 좀 더 기다리라고 하셨다면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즉시 해결하려면
과부처럼 밤낮 부르짖고 해결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보다는
비록 억울한 것을 해결 받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응답받고 해결 받으려는 쉽고 가벼운 기도와 은혜가 신앙의 질서를 흔들어버렸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가 되면 이런 신앙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성도들이 경제적인 핍박과 심지어 사나운 짐승에 의해서 찢겨지는 죽임을 당할지라도
끝까지 이마와 오른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주님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두번째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모퉁이돌 선교회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삼촌 잘 계시니?” 이렇게 질문하면
혈연관계로 형성되는 친인척의 삼촌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성경책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가야 하고 평생토록 그곳에서 나올 수 없는 현실에서
오직 주님만을 섬기려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신앙적인 암호는 “삼촌 잘 계시니?” 라는 것입니다.

강청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무려 70년이 지나도록 응답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계속하여 부르짖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통일을 허락하신다면 남한 교회 성도들이 이곳에 와서
지하에 숨어있던 신앙을 위로 올려주십시오!

그동안 지하교회 성도들은 굶주림과 핍박과 강제노동과 죽임의 사슬에 묶여 있을지라도
무릎을 꿇지 않고 당당하게 믿음을 지키는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믿음의 사람은 당장 기도하고 응답받았다고 좋아하는 믿음이 아니라
비록 응답이 없을지라도 끝까지 기도하며 주님의 섭리를 믿고 기다리는 것을 원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But even if)(다니엘 3: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유대 나라에서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붙잡혀 왔습니다.
그 중에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이란 젊은이들은 바벨론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을 하며
숭배하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만일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풀무불 속에 던져 넣는다는 참혹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때 유대 나라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신앙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인지라
바벨론 땅에서도 믿음을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에게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도 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만일 왕이 우리들을 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 던져 넣는다면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을 그 풀무불 속에서 건져 내실 것이며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나는 신앙적으로 옳은 길을 선택했는데 상대방이 비신앙적인 자세로 위협하고 협박할 때
마음속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이런 사람을 태워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까?

제게는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생각은 잠시 할 수 있으나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응답하시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질서와 응답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if I perish, I perish)(에스더 4: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것이지만
일부러 죽을 각오를 하고 죽음을 향하여 다가간다는 것은
마지막 방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일회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누구에게나 낯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죽음을 자청한다는 것은 아주 바보이든지 아니면 확실한 믿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에스더는 한 나라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왕후의 육신적인 삶은 모두가 부러워할 수 있는 자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저희가 온산에서 목회 초기 고려아연이란 회사에 황산부장으로 근무하시던 황규선집사님은
사표를 낸 후에 안양에 있는 성결교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때 고려아연의 많은 직원들이 얼마나 예수님이 좋으면 직장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 하며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모든 가족들과 더불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자리가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그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습니다.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에스더는 이렇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을 기대하고 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간혹 믿음으로 어려운 결단을 할 때 이렇게 결단하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결단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길이 아닐지라도
믿음은 이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 길을 선택하고
그 다음은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지 죽으면 죽을 것이고
풀무불속에 던져지면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선택한 것을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낯선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육신의 생명을 갖고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활용할 줄 아는 믿음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췌장암에 걸렸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죽음을 의식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니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죽음 활용법” 이라고 합니다.

죽음 활용법을 에스더가 사용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죽음 활용법을 아벳느과 사드락과 메삭이 사용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죽음 활용법을 다니엘이 사용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이와 같은 신앙의 삶을 잘 알고 있던 메대 바사의 대신들은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삼십일 동안에 왕 이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전히 똑같은 방법으로 기도합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며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게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지켜주셨습니다.
지켜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기 때문에
메대 바사의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었습니다.
옳은 길 진리의 길을 갈 때 그 길을 지키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진리의 길을 보여주시기 위한 거룩한 임재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파트리스교회 성도들의 거룩한 삶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끝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믿음으로 드러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 윌리암 카우퍼(William Cowper, 1731~1800)

원곡 : 미국 전통 민요
편곡 : 로웰 메이슨 (Lowell Mason, 1792-1872)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는 영국의 그레이트 버크햄스테드(Great Berkhamstead)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직자였고 어머니는 왕족 출신이었다.

카우퍼는 허약한 몸과 소심한 성격 탓에 사회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법률을 공부했지만 심한 우울증과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법정에는 한 번도 서보질 못했다.
6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것이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었다.
약한 체질로 인해 육체의 고통이 심했고 우울증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괴로웠다.
그의 삶은 바람 잘날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영적으로 연약해진 카우퍼는 이렇게 못난 자신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공포에 빠진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끝내는 네 번이나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같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가 성경을 놓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느 날 성경을 뒤적이고 있을 때 사도 바울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로마서 3:23~25).

하나님께서 카우퍼에게 이 세상 누구나 연약한 죄인임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값없는 은혜로 인해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을 읽은 쿠퍼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용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3세가 되던 해,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끌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했다.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자 그의 삶은 행복하기만 했다.
그즈음 은퇴한 몰리 언윈(Morley Unwin) 목사와 메리 사모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들과 함께 지내며 영적인 격려와 보살핌으로 쿠퍼의 몸과 마음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5년 후 언윈 목사가 세상을 떠나자 메리 사모의 가족은 가깝게 지내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존 뉴턴 목사의 권유로 카우퍼와 함께 시골마을 올니(Olney)로 거처를 옮겼다.

뉴턴 목사를 만나면서 카우퍼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카우퍼에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 왔다.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주권자 하나님의 인도였다.
뉴턴 목사는 올니 마을에 온 카우퍼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시를 쓰도록 격려했다.
뉴턴 목사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 카우퍼가 토끼와 뛰놀고 새와 대화하며 마음껏 시를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

어느 날 카우퍼는 자신이 거듭난 날을 떠올렸다.
인간으로 오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화목제물이 되신 십자가 사건.
그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피와 함께 그의 심령을 마구 두드렸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스가랴 13:1).

그는 보혈의 은혜를 글을 써 내려갔다.
이것이 찬송 “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란 찬송시이었다.

영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 찬송은 이렇게 시작한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혈관으로부터 가져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이런 가사가 역겹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몇몇의 찬송가책에서 제외됐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 찬송의 참맛을 알아갔고 “샘물과 같은 보혈은”은 지금까지 큰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 찬송은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피를 샘물에 비유하며,
주님의 피로 가득 채워진 샘물로 우리의 죄를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는 고백이다.
카우퍼가 깨달았듯 사람이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이 사람의 더러운 죄를 흰 눈같이 깨끗하게 하신다.


카우퍼와 뉴턴은 올니에서 매주 열리는 기도회를 위한 찬송을 썼다.
이것이 모아져 나중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올니 마을 사람들이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불후의 모음집 ‘올니 찬송가’(1779)가 만들어졌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대부분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카우퍼와 뉴턴은 찬송을 사용해 하나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교육했다.


1.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2. 저 도적 회개하고서 보혈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3. 죄속함 받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 없이 크도다
4. 날 정케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5. 이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노래로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1.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Drawn from Immanuel’s veins,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And sinners plunged beneath that flood,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And sinners plunged beneath that flood.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2.
The dying thief rejoiced to see That fountain in his day;
저 도적 회개 하고서 보혈에 씻었네

And there have I, though vile as he, Washed all my sins away.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Washed all my sins away. Washed all my sins away.
죄 씻기 원하네 죄 씻기 원하네

And there have I, though vile as he, Washed all my sins away.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3.
Dear dying Lamb, Thy precious blood Shall never lose its pow’r,
죄 속함 받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Till all the ransomed church of God Be saved, to sin no more.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 없이 크도다

Be saved, to sin no more. Be saved, to sin no more.
한 없이 크도다 한 없이 크도다

Till all the ransomed church of God Be saved, to sin no more.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 없이 크도다

4.
E’er since by faith I saw the stream Thy flowing wounds supply,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 없네

Redeeming love has been my theme, And shall be till I die.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And shall be till I die. And shall be till I die.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Redeeming love has been my theme, And shall be till I die.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5.
When this poor, lisping, stamm’ring tongue Lies silent in the grave,
이 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노래로

Then in a nobler, sweeter song, I’ll sing Thy pow’r to save.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I’ll sing Thy pow’r to save. I’ll sing Thy pow’r to save.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Then in a nobler, sweeter song, I’ll sing Thy pow’r to save.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썬다싱의 기도


썬다싱의 기도


나의 주 하나님,
나의 가장 소중하신 분,
내 생명의 생명이요

영의 영이 되시는 분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성령으로 나를 채워

내 마음에 당신을 향한 사랑 외에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당신께 바라는 것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당신은 생명과
모든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당신께 구하는 것은
세상이나 세상의 보물이 아니고
천국도 아닙니다.


나는 오직 당신만을 원하고 갈망합니다.
당신이 계신 곳이 천국입니다.


내 마음의 갈급함은
내 마음을 지으신
당신만이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오, 나를 지으신 하나님!
당신은 오직 당신만을 위해
내 마음을 지으셨으므로,

내 마음은
당신 안에서만 안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내 마음을 지으셨고,

또 그 안에 안식을 향한 갈망을 두셨습니다.
내 마음에서
당신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제하여 주시고,
내 마음에 들어와 거하시며
영원히 다스려 주십시오. 아멘.


오늘의 묵상(11월)


오늘의 묵상(11월)

오늘의 말씀

11

1

렘 49:1∼49:39, 히 3:1∼3:19, 잠 12:11∼12:10

11

2

렘 50:1∼50:46, 히 4:1∼4:13, 잠 12:11∼12:20

11

3

렘 51:1∼51:58, 히 4:14∼5:14, 잠 12:21∼12:28


♦ 11월 1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 49:1∼49:39
하나님께서는 암몬, 에돔, 다메섹, 게달, 엘람 등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이나 끝 날에는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 히브리서 3:1∼3:19
그리스도는 신분과 직분에서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실 분이심에 대해서 설명했으며, 하나님을 불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일을 교훈 삼아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권면하였다.

♦ 잠언 12:1∼12:10
의인은 훈계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진실한 생각과 말을 하지만, 악인은 하나님의 정죄를 받으며 사람을 해치는 생각과 말을 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잠언 12:3) 

악(惡)과 선(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악의 뿌리는 약하지만 선의 뿌리는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계획을 갖고 바르게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계획을 갖는 사람은 무너질 수 없습니다.
선한 계획을 품고 살아가기 전에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빈 그릇은 음식을 담아야 사용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빈 마음을 사용합니다.
 
어느 날 루터는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습니다. 루터는 그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서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하여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와 경건의 생활에 전념합니다. 그러나 고민은 떠나지 않았습니다.루터의 고민은 고행이나 독신과 청빈이 과연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선일까? 하는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번민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시편과 로마서 연구를 통하여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는 근본진리를 깨닫고 종교개혁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의인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반드시 빈 마음에 진리의 말씀을 담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빈 그릇은 소리만 요란합니다.
그러나 빈 마음은 주님의 임재가 나타나 주의 도구로 쓰임 받는 은혜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빈 마음같이 자신을 비우라.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만 의지하고 주께 맡기라.

그러면 주님이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신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먼저 비우고 가난한 마음을 소유합니다.

주여!
빈 마음으로
진리를 담고
굳센 의지로
거짓의 숲을 헤쳐
빛의 동산으로
올라가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 50:1∼50:46
하나님께서는 열국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던 바벨론에 멸망을 선포하셨다. 그 원인은 바벨론이 하나님의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유다 백성들을 노략했고 하나님께 범죄 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바벨론의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 히브리서 4:1∼4:13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 잠언 12:11∼12:20
의인은 그 입의 열매와 손의 수고로 인해 칭찬과 존귀히 여김을 받으나, 악인은 거짓과 궤휼을 말하기 때문에 재앙만 가득하게 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브리서 4:2)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합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으려면 들은 것을 삶에 적용할 때에 비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바르게 듣는다는 것은 들은 것을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들은 것을 행동하게 하는 훈련의 한 예를 소개합니다.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를 가져다 놓은 후 개를 데리고 옵니다. 개가 그것을 보고 뛰어가 그 고깃덩어리를 물면 몇 차례 개를 때려주고 고기를 빼앗습니다.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한 후에 그 자리에 고깃덩어리를 갖다 놓고 기다리면 개는 또 그것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때 주인은 “안 돼!” 하고 명령합니다. 그러면 개는 멈칫하고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면 개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고깃덩어리를 갖다 놔도 개는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주인의 명령을 듣고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마귀는 이 세상 것을 갖고 와서 시험합니다. 먹을 것(떡)과 명예(뛰어 내리라)와 권력과 부귀영화(경배하라)와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시험합니다. 그때마다 세상 것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방법 중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바라볼 때 마귀의 온갖 시험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안식이란 시험에서 이긴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믿음의 특권입니다. 이런 은혜를 이 세상에서 먼저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이름 없는 무명인 같으나 모두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3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 51:1∼51:58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확정된 것이었다. 바벨론의 멸망은 결국 유다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바벨론은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메대를 사용해 바벨론을 심판하시겠다고 예고하셨고,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잃지 않도록 권면하셨다.

♦ 히브리서 4:14∼5:14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으로서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다.

♦ 잠언 12:21∼12:28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음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브리서 4:9) 

한 사람이 요한 웨슬리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밤 열 두 시에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웨슬리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설교준비와 심방을 하겠소. 그리고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겠소!”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의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꾸준하고 죽음을 30분 앞당겨 맞이할 수 있는 믿음과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조카 이동훈목사(35세, Pastor Jacob Lee. 5/4/1984)는 폐암 4기로 시작하여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져 심지어 뼈 속까지 그리고 머리로 전이된 상태라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자리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여 15년 생명을 연장 받았지만 마지막에는 죄를 짓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미 주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으니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안식의 세계로 가는 것도 더 좋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세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합니다.”

아내 라헬(Rachel Tan Lee, 12/17/1989)
장남 스바냐(Zephaniah Lee, 9/9/2015)
차남 제이든(Jayden Lee, 6/25/2017)
삼남 케이린(Kaelyn Lee, 6/30/2019)

조금 더 길게 살고 아니면 조금 더 짧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길고 짧은 것의 의미보다는 주님 뜻대로 살았다는 믿음을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주님!
남은 날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내일을
오늘처럼 살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1

4

렘 51:59∼52:34, 히 6:1∼6:20, 잠 13:1∼13:9

11

5

애 1:1∼2:22, 히 7:1∼7:17, 잠 13:10∼13:19

11

6

애 3:1∼5:22, 히 7:18∼7:28, 잠 13:20∼14:5

11

7

겔 1:1∼3:27, 히 8:1∼8:13, 잠 14:6∼14:15

11

8

겔 4:1∼6:14, 히 9:1∼9:14, 잠 14:16∼14:26

11

9

겔 7:1∼9:11, 히 9:15∼9:28, 잠 14:27∼14:35

11

10

겔 10:1∼11:25, 히 10:1∼10:18, 잠 15:1∼15:10


♦ 11월 4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 51:59∼52:34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한 책을 유브라데 강에 빠뜨리도록 하심으로 바벨론의 영원한 멸망을 예고하셨다.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을 배반하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시드기야 왕을 체포했으며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뿐만 아니라 성전을 훼파하고 성전 기물들을 노략해 갔다. 여호야긴 왕은 사로잡혀 간 지 37년 만에 바벨론 왕에 의해 석방되었다.

♦ 히브리서 6:1∼6:20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지 말고 신앙을 성숙시킬 것을 권고했으며, 믿음에서 떠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인내와 소망 가운데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을 것을 권면하였다.

♦ 잠언 13:1∼13:9
입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고, 정직한 자는 마음의 풍족을 얻는다고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잠언 13:9)

세상이 어둡다고 탄식하고 절망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이 어두운 곳이 아니라 의인들이 빛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합니다.

탈무드의 지혜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에게 등불을 들고 밤길을 걷게 하였으나 바람이 불어 등불이 꺼졌으나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꺼진 등불을 마치 빛이 있는 것처럼 들고 가기 때문에 세상이 어둡다고 합니다.

어두워진 원인을 알았으므로 이제는 우리 손의 등불을 확인하고 불이 꺼졌는지 불이 켜졌는지 확인한 후에 꺼진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오 주의 거룩한 영이여!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새롭게 하소서
거룩하게 하소서
진리의 빛을 비추어
세상을 진리로 채우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5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애가 1:1∼2:22
예레미야는 처참하게 멸망하여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참상을 보면서 매우 슬퍼하며 절규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회개의 기도를 드렸으며, 예루살렘을 침공한 바벨론 군대들의 죄악상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보응을 간구하였다. 나아가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인해 고난과 조롱을 당하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 히브리서 7:1∼7:17
그리스도는 살렘 왕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차와 생명의 능력을 좇아 제사장이 되셨다.

♦ 잠언 13:10∼13:19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게 되고 그러한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 된다. 반면에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궁핍과 수욕에 이르게 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예레미야애가 2:19a)

기도(祈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항상 기도하라” 또는 “이른 새벽에 기도하라” 때로는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고 하시며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하라”는 헬라 단어는 “프로슈코마이(προσεύχομαι)” 라고 합니다.
“프로슈코마이(προσεύχομαι)”는 “프로스(προσ, ∼을 向하여)”와 “유코마이(εύχομαι,  願하다)” 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을 向하여 願하다”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앙의 수준(水準)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個人)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먼저 기도하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기도”하면 성숙한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내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야 할 것을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기도할 수 있을 때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내 기도가 응답되어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가 실현될 때 비로써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이제는 초저녁에 일어나야 합니다.
새벽에도 일어나야 합니다.
한 밤중에도 일어나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겨레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오 주여!
기도와 간구의 영을
뭇 성도들에게 부어주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6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애가 3:1∼5:22
예레미야는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께 절망에 처한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했고, 유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죄를 상기시켜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리고 유다의 회복을 소망하며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 히브리서 7:18∼7:28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와 더러움이 없는 자신을 드려 우리의 죄를 단번에 사하셨으며,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

♦ 잠언 13:20∼14:5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게 되고, 지혜롭게 열심히 일하는 자는 재물을 얻게 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언 13:20)

한자 숙어에 “근묵자흑(近墨者黑)” 이란 단어는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입니다. 단어의 교훈(敎訓)은 “나쁜 사람과 가까이 하면 나쁜 버릇에 물들게 됨을 이르는말.”입니다.

나하고 가장 가까게 지내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봅시다.
신앙생활에 성공(成功)하려면 영적(靈的)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의 특징(特徵)은 자기를 희생(犧牲)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헌신(헌신)” 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복을 받습니다(출애굽기 32:29)
둘째는 여호와를 찬송합니다(사사기 5:2, 9)
셋째는 거룩한 젊은이들이 등장합니다(시편 110:3)

흥미로운 것은 “헌신(獻身)”이란 히브리 단어는 “마래(male)” 라고 합니다. ‘마래’의 뜻은 “가득 채우다”는 뜻입니다.

손에 무엇을 가득 채우면 다른 것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나를 온전히 주님께 드리면 다른 것을 잡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弟子)들에게 소유(所有)를 최소화(最小化) 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선택의 폭이 넓어질 때 망설이게 됩니다. 주님 앞으로 가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깝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죽음을 믿음으로 맞이할 준비에 게으름이 없는 삶을 결단합시다.

주여!
내 안과 밖
간단하게 정리 후
주님 맞이할 길
걷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7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1:1∼3:27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지자로 부르셔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다. 그리고 이 소명을 확증시키기 위해 그에게 두루마리를 받아먹는 환상을 체험케 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능력을 주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으로 삼으셨다.

♦ 히브리서 8:1∼8:1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옛 언약이 지켜지지 않으므로 폐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좋은 새 언약을 주셨다.

♦ 잠언 14:6∼14:15
지혜롭고 의로운 자의 집은 흥하나, 미련하고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게 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잠언 14:9)

“4C”라는 가치(價値)를 결정(決定)하는 네 가지 요소(要素)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Clarity(투명도)
투명(透明)하다는 것은 맑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Carat(무게)
무거울수록 가치가 올라갑니다.

셋째는 Colour(색깔)
영롱한 빛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내야 합니다.

넷째는 Cut(모양)
다이아몬드는 깎이는 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빛이 찬란하게 나타납니다.

보석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처럼 사람의 가치도 보석과 비슷합니다.
첫째는 맑은 마음
둘째는 신중한 사고와 행동
셋째는 삶의 빛과 예수 향기
넷째는 다듬어진 경건

거룩한 백성들의 삶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위하여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을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주님!
진리의 말씀으로
모난 부분 다듬어
쓸모 있는 일군으로
드려지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8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1∼6:14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상징적 행동을 통해 예루살렘에 임할 임박한 심판의 상황을 미리 보여 주셨다. 그것은 백성들의 죄로 인해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당하고 그 성에 온역과 전쟁과 기근이 임하며 이스라엘 온 땅이 우상 숭배로 파멸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 중 남은 자는 회개할 것임을 말씀하셨다.

♦ 히브리서 9:1∼9:14
구약의 제사장들은 이 땅에 있는 성소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성전에서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의 길을 마련하셨다.

♦ 잠언 14:16∼14:26
지혜로운 자는 행동을 삼가고 악을 떠나며 야웨를 경외함으로 이웃과 사회에 덕을 세운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잠언 14:25) 

“성경(聖經)은 고난(苦難)의 책(冊)”입니다.
고난(苦難)의 사람으로 손꼽는 인물(人物)은 “요셉”과 “욥”과 “다윗”이라고 하겠습니다. 고난의 과정(過程)을 거쳐서 위대(偉大)한 업적(業績)을 남길 수 있는 훈련(訓練)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방법(方法)은 극심(極甚)한 훈련을 거쳐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計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만이 고난의 과정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힘은 용기(勇氣)라고 하겠습니다.
용기는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이 샘솟듯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골리앗 앞에 당당하게 나갈 수 있었던 다윗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힘이 화산처럼 솟구쳐 올랐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그 자리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苦難)은 진실(眞實)한 증인(證人)으로 거듭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거룩한 영의 솟구치는 힘을 의지하여 어제의 내가 아니라 오늘의 다윗으로 내일의 욥으로 미래의 요셉으로 무장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비하신 주님!
고난의 구덩이 안에서
더러운 것 털어버리고
복음의 증인으로 일어나
세상의 빛 되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9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7:1∼9:11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여 재앙을 내리심으로 백성들이 큰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이방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에스겔은 이상 중에 야훼의 이끌림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그 곳에서 버젓이 우상 숭배가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심판으로 잔혹한 살육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며 특별히 구원받을 자들을 선별하셨다.

♦ 히브리서 9:15∼9:28
새 언약의 중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으심을 통해 죄로 인해 죽게 된 인류를 구원하셨으며,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 잠언 14:27∼14:35
야훼를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선을 도모하며 노하기를 더디 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14:34) 

“당나귀의 지혜”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서 바닥에 떨어뜨리며 발밑으로 흙이 쌓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서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나귀처럼 곤경의 우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때로는 환경이 흙더미로 나를 덮어 오지만 오히려 지혜로움과 인내로 용기를 가지면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두 세력이 나라 전체를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진실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당나귀와 같은 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당나귀의 지혜가 무엇일까요? 그 지혜를 “조선(朝鮮)”이란 한문자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조선(朝鮮)이란 한자어를 분석하면 “아침 조(朝)”란 “열 십(十), 날 일(日), 열 십(十), 달 월(月)”입니다. 그 뜻은 “낮이나 밤이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고울 선(鮮)”이란 “고기 어(魚), 양 양(羊)”이란 두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물고기(魚)”를 신약 성경의 원어 헬라어로 “익두스(ΙΧΘΥΣ)” 라고 합니다. 익두스란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하던 시대에 지하 동굴에 숨어 지내던 카타콤의 지하 성도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암호로 사용하던 표시로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의 암호로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양(羊)”이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어린 양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조선이란 나라는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밤이나 낮이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백성들의 나라” 라고 하겠습니다.

좌파와 우파의 혼돈 가운데서 이제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하고 거듭나서 어지러운 세상을 예수 복음으로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결단의 삶을 선택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오 주여!
십자가의 진리와
세상 죄를 짊어질 믿음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평화의 복음으로
다스리게 하옵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10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10:1∼11:25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읍에 숯불 재앙이 임하는 것과 야훼의 영광이 예루살렘에서 떠나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남아서 악을 행하고 있는 교만한 자들은 타국인의 손에 멸망당하게 된다고 예고하셨다. 그러나 이방에 포로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성소가 되시고 약속의 땅을 다시 돌려주시며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는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 히브리서 10:1∼10:18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드려 불완전한 율법적 제사를 폐하시고 완전한 제사를 완성하심으로써 죄 사함과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다.

♦ 잠언 15:1∼15:10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고,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베풀며, 온량한 혀는 생명나무이다. 그러나 패려한 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언 15:3)

악인(惡人)과 선인(善人)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유월절(踰月節)” 이란 유대인들에게는 큰 축제입니다. 이 날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 있다가 해방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경축일입니다. 이 날에는 몇 종류의 상징적인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고엽”, 즉 “쓴 나물”을 씹음으로써 과거 이집트에 패배했던 쓰라린 기억을 되새기려 하는 것입니다. 또 이집트에 잡혀가 노예 생활을 할 때 먹었던 “무교병”이라는 거친 빵을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식탁에는 딱딱하게 “삶은 달걀”도 나오는데, 이 달걀은 매우 상징적인 것입니다. 일반 음식물은 삶으면 삶을수록 부드러워지지만, 이 달걀은 삶으면 삶을수록 단단해집니다. 유대 민족은 난관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리고 패하면 패할수록 그 신념과 결의가 단단해집니다. 삶은 달걀은 그런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견디기 어렵고 참기 힘든 일, 그것도 예고 없이 별안간에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유대인의 식탁에 놓인 삶은 달걀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고난과 고통이 닥쳐와도, 삶으면 삶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달걀처럼 더욱 단련되어 시련을 이겨내는 힘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비가 온 뒤에 땅은 더욱 굳어지는 법입니다.

왜 이러한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올까요?
그 원인(原因)은 죄(罪)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죄(罪)는 마음을 사라지게 합니다(My heart fails within me).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시편 40:12b)”.
죄(罪)가 사람 안에 자리를 잡을 때 사람의 마음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인(惡人)과 선인(善人)의 기준은 죄(罪)라고 하겠습니다.
내 안에 숨어든 죄를 성령의 바람으로 날려버리든지 아니면 성령의 불로 태워버려 내 안에서 말끔히 치워버릴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하여 하나님의 의를 회복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룩한 주 성령이시여!
내 안에 거하여 주소서
나를 죄 가운데서 건져내어
주의 도구로 사용 하소서
주의 영으로 
날마다 새롭게 하소서
주의 말씀으로
날마다 새 힘을 더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1

11

겔 12:1∼13:23, 히 10:19∼10:39, 잠 15:11∼15:21

11

12

겔 14:1∼16:22, 히 11:1∼11:16, 잠 15:22∼15:33

11

13

겔 16:23∼17:24, 히 11:17∼11:31, 잠 16:1∼16:9

11

14

겔 18:1∼20:9, 히 11:32∼12:13, 잠 16:10∼16:19

11

15

겔 20:10∼20:49, 히 12:14∼12:29, 잠 16:20∼16:30

11

16

겔 21:1∼22:22, 히 13:1∼13:25, 잠 16:31∼17:6

11

17

겔 22:23∼23:49, 약 1:1∼1:18, 잠 17:7∼17:17


♦ 11월 11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12:1∼13:23
에스겔은 행구를 옮기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이스라엘이 포로될 것을 보여 주었고, 예루살렘 거민이 강포로 인해 근심하며 놀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이 조속히 번영될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함으로써 백성들을 미혹시켰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거짓 선지자들의 심판을 선포하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 히브리서 10:19∼10:39
믿음을 가진 자들이 생활 가운데 실천하여야 할 의무를 일깨워 주었으며, 믿음에서 떠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신앙을 성장시킬 것을 권면하였다.

♦ 잠언 15:11∼15:21
비록 가난하더라도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부자가 번뇌하는 것보다 낫다고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5:16)  

선교사가 다른 나라에 입국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학교”와 “병원”과 “교회”를 세워나갈 때 전 국민의 20%가 복음으로 무장하는 것이 최고의 수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전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복음의 극대화가 이루어진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콘스탄틴, 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AD 280~337)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할 때에 전 국민의 8%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된 배경은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Helena)”는 지하 카타콤 출신으로 콘스탄틴 대제가 312년 아프리카와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있던 “막센티우스”를 폭군으로 규정하고 그를 물리치기 위해 이탈리아로 출정할 때 도저히 그 전투에서 이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콘스탄틴 대제에게 “만일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로마를 하나님에게 바칠 수 있겠느냐?” 라는 어머니의 말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꿈을 꾸었는데 “이 싸인으로 이겨라(In this sign, Conquer)”라는 라틴어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로마의 티베르 강에 놓여있는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에서 막센티우스의 군대와 마주 쳤을 때 막강한 군사력을 보고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으나 어머니 헬레나의 기도와 꿈에 보여주신 승리의 확신을 갖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전쟁의 승리는 콘스탄틴 생애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신 분이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며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좌파(左派)와 우파(右派)의 대결 구도로 한국의 상황이 매우 위태롭다고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이 차디찬 아스팔트에 자리를 깔고 기도회를 계속합니다. 광화문 이승만 광장에서 대형 집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인구 5천만 북한의 인구 2천 5백만 도합 7천 5백만의 인구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수의 몸부림입니다. 과연 위태로운 한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막센티우스의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한국의 상황도 극적인 승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끊임없는 기도와 함성이 하늘 보좌에 상달하여 자유대한민국의 기초가 더욱 든든하게 다져지므로 예수 복음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12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14:1∼16:22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장로들을 책망하셨고, 어떤 의인도 예루살렘의 심판에서 백성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와 음란한 여인에 비유하여 그들이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지적하셨다.

♦ 히브리서 11:1∼11:16
믿음의 정의를 내린 후, 믿음의 선진들의 삶 속에서 믿음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일깨워 주었다.

♦ 잠언 15:22∼15:33
교만하고 이를 탐하며 악을 쏟는 자는 야훼의 미움을 받게 되나, 선한 말을 하고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야훼의 사랑을 받게 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자기 꾀에 넘어간 욕심 많은 임금님”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욕심 많은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임금의 뜰에는 과일나무가 풍성하게 있어 사시사철 귀한 열매가 열렸습니다. 그중에서도 한 나무는 너무나 진귀한 과일이 열려 그것을 누가 따먹지 못하도록 지키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임금님은 누구에게 이 나무를 지키게 할지를 궁리했습니다.

임금님은 최고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두 사람을 세워 그 나무를 지키게 하는데 한 명은 키가 장대같이 크고 그 대신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을 선택했습니다. 또 다른 한명은 과일 나무에 손이 닿지 않는 키가 작은 난장이를 뽑았습니다.

임금님이 생각하기에 두 사람은 도저히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임금의 착각이었습니다. 키다리 장님은 난장이를 업고 과일을 따서 먹었답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서로 협력하면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협력할 때 생각할 수도 없는 힘이 솟구칩니다.

협력(協力)이란 절대 권력과 같은 큰 힘이 아니라 비록 모래알처럼 작지만 작은 것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탑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진실은 아주 작은 모래알과 같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이 모여 거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며 인내하며 기도합니다.

이 작은 몸에
협력의 바람 불어와
모래 알 쌓아
담을 이루게 하는
주님 사랑
주님 은혜
주님 말씀으로
굳건한 믿음 따라
힘을 모아가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13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16:23∼17:24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죄악을 지적하시며 이로 인해 예루살렘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유다 백성들은 다시 회복시키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시드기야를 포도나무에, 느부갓네살 왕을 독수리에 비유하여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바벨론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 히브리서 11:17∼11:31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등을 예로 들어, 세상을 이기고 믿음을 완성시킬 것을 권면하였다.

♦ 잠언 16:1∼16:9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행사를 맡겨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행사”라는 영어 단어를 “do”라고 합니다.
내가 행한 것 즉 내가 힘들고 어렵게 노력한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요즈음은 이것을 “1만 시간의 법칙” 이라고 강조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소 1만 시간을 투자해야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탤런트 코드(Talent Code)”의 저자 “다니엘 코일(Daniel Coyle)”은 ‘1만 시간을 쏟는 것보다 중요한 것’으로 재능을 만들고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곱 가지 지침을 소개했습니다.

1. 뇌가 불편한 느낌이 드는 상태가 가장 빨리 성장할 때다.

2. 독서를 하는 시간보다 2배 이상 행동을 하는 데에 투자하라.

3. 능력보다 아주 살짝 높은 목표를 설정하라.

4. 꾸준히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서 매일 실천하라.

5.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롤 모델을 찾아라.

6. 낮잠과 같이 뇌를 쉴 수 있는 습관을 가져라.

7.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아이디어, 오늘 한 공부와 노력에 대한 피드백을 적어라.

계획 없는 시간의 투자보다는 계획과 목적을 갖고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똑같은 하루를 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서너 가지 더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 성경, 봉사, 섬김, 전도와 같은 일을 더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갖고 시간을 활용한 후에 그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오 주님!
가장 작은 것을
크게 사용할 줄 아는 
지혜와 믿음을
자랑하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14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18:1∼20:9
이스라엘이 화를 당하는 이유가 조상들에게 있다고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오직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심판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으며, 방백들을 위한 애가를 통해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또한 야훼께 묻기 위해 선지자에게 온 이스라엘 장로들을 책망하시며, 과거에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숭배했었다고 말씀하셨다.

♦ 히브리서 11:32∼12:13
어떤 환난도 믿음의 선진들을 막지 못했음을 언급하며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믿음의, 인내의 경주를 계속하라고 권면하였다. 이어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게 됨을 가르쳤다.

♦ 잠언 16:10∼16:19
공의를 행하고 야훼를 의지하여 자신을 낮추는 자는 야훼를 기쁘시게 하나, 교만한 자와 남을 속이는 자는 야훼의 미움을 받게 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잠언 16:17)  

정직한 사람의 길은 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악을 떠나려면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17세기의 시인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정말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정말로 많은 것을 저에게 베푸셨지만 딱 한 가지 더 감사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살아갑니다.
악인의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직도 더 가져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를 아는가? 그것은 그동안 받은 감사의 개수를 세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너무 많지만 그것을 받은 사람은 잊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받은 축복을 세다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족합니다. 그 은혜를 잊고 불평하는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말고 충만한 기쁨으로 넘치는 감사를 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주님!
주님께 받은 큰 복을
잊지 않는
충만한 감사가
삶속에 넘치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15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0:10∼20:49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후에도, 또 가나안 땅에서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죄의 역사를 지적하셨다. 그리고 이와 같이 계속 배교한 이스라엘을 심판으로 정결케 하신 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 히브리서 12:14∼12:29
성도들에게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 살 것을 권면했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새 언약을 어길 경우 더 큰 징계가 있을 것을 경고하였다.

♦ 잠언 16:20∼16:30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복을 받게 될 것이나, 미련하고 악한 자는 악한 일을 이루어 해와 징계를 받게 될 뿐이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언 16:20) 

성경(聖經)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順從)하면 좋은 것을 얻을 뿐만 아니라 복(福)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例)를 남한과 북한의 현실(現實)에서 확인(確因)할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와 사회민주주의(社會民主主義)를 정치적인 용어로 체제(體制)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즉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합니다.
북한은 사회민주주의 체제라고 합니다.
어느 체제가 좋은가는 백성들의 삶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제연합(UN)의 발표에 의하면 해방 후 북한이 남한 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서 시작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북한은 GDP가 5배 성장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남한은 GDP가 175배 성장했다고 합니다.

GDP란 "국내총생산액(Gross Domestic Product)"을 말합니다.

왜 남한이 북한 보다 더 월등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를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 남한이 북한보다 더 좋은 체제(體制)를 갖고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한에서 이와 같은 체제(體制)를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은 성경을 기초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헌법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헌법은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라고 분명하게 명시(明示)합니다. 그런데 “자유(自由)”라는 단어를 포기하고 “민주주의(民主主義)”라고 개정(改正)하려는 숨은 의도(意圖)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 주여!
죄에서 자유를 얻은
거룩한 백성으로
이 땅을
자유민주주의로 다듬어
우리들의 후손들이
더 큰 기쁨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16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1:1∼22:22
하나님께서는 칼의 비유로써 바벨론을 통한 유다의 심판을 예고하셨다. 심판의 도구가 되는 바벨론 왕은 점친 결과에 따라 먼저 예루살렘을 공격한 후 암몬을 침공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심판받는 원인이 그들의 범죄에 있음을 밝히시고 그들을 준엄히 심판함으로써 정화시키실 것임을 예고하셨다.

♦ 히브리서 13:1∼13:25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의 실천자들이 되어야 할 것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생활을 하며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하였다.

♦ 잠언 16:31∼17:6
제사를 드리면서 다투는 것보다 야훼를 경외함으로 서로 화목 하는 것이 더 낫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브리서 13:5)   

“족한 줄(ἀρκούμενοι)”이란 헬라어 동사 원형은 “아르케오(ἀρκέω)” 라고 합니다. ‘아르케오’의 뜻은 “돕다(assist), 통과하다(pass), 만족하다(satisfied), 충분하다(suffice)” 라고 합니다.

족한 줄로 아는 것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알맞은 때에 적절하게 공급하시는 능력의 원천이 창조주 하나님 즉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족(滿足)이란 소유(所有)의 양(量)에 비례(比例)하는 것이 아닙니다.
‘풍족(豊足)’이란 내가 원(原)하는 것을 모두 가진 것이라면 ‘만족(滿足)’이란 소유(所有)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원(原)하십니까?
만족(滿足)입니까?
풍족(豊足)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풍족(豊足)한 곳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풍족(豊足)한 곳에서 없는 곳으로 내려오셨지만 불평(不平)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만족(滿足)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족(滿足)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풍족(豊足)한 하늘에서 하늘의 방법대로 해결하여 주실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없다는 것은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필요 없는 것을 찾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값진 것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란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의 부자가 되시렵니까?
아니면 물질의 부자가 되시렵니까?
믿음과 물질 모두를 갖춘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씀합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믿음의 부자로 살아보렵니다.
믿음의 부자가 될 때 비로써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이 높고 깊고 넓어질 것입니다.

자족(自足)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하늘 뜻 따라
땅에서도
그 뜻을 알게 하소서
그 뜻대로 행하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17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2:23∼23:49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을 위시한 온 유다 백성들의 죄악상을 지적하셨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을 ‘오홀라’로, 남왕국 유다를 ‘오홀리바’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로 비유하심으로, 애급과 앗수르와 바벨론의 우상을 숭배한 죄를 지적하시고 그 대가로 그들이 사모하던 강대국에 의해 철저하게 더럽혀지고 유린당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 야고보서 1:1∼1:18
야고보는 성도가 시험을 만날 때 기쁘게 여기고 인내할 것을 권면하였으며, 사망에 이르게 하는 시험의 원인이 욕심에 있음을 밝혔다. 

♦ 잠언 17:7∼17:17
미련한 자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해 대인 관계에 해를 끼치고 다툼을 일으키며 거짓을 말하나, 지혜로운 자는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 준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지혜(知慧)를 구하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지식(知識)이란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知慧)는 배움이 아니라 경험(經驗)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제한적인 존재(存在)로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경험하기에는 부족(不足)합니다.
따라서 지혜를 얻으려면 전능(全能)하신 하나님께 기도(祈禱)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병들었을 때 건강을 기도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형통을 기도합니다.
고난의 때에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도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시달리는 자녀들을 위하여 평탄한 길을 기도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먼저 기도할 것은 “지혜(知慧)” 라고 합니다.
평소에 지혜를 구하는 믿음은 병들었을 때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릴 때에도 고난의 시기에도 현실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치는 자녀들을 위해서 문제가 닥쳐왔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오기 전에 미리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온순하게 자라던 자녀가 대학에 입학 한 후 갑자기 좌파 교육에 심취하여 부모형제와 심지어 출석하던 교회와 하나님을 부정하며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합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했던 부모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형통한 길과 평탄한 삶을 기도할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의 기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상하게도 좌편향(左便向)에 심취한 사람들은 두 가지를 주장(主張)합니다.
첫째는 “미군 철수!”
둘째는 “6. 25 전쟁은 남침이 아니라 북침!”

왜 이런 구호를 외칠까요?
그 이유는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군 철수를 외치는 이유는 일본군이 물러간 후에 왜 그 자리에 미군이 주둔하느냐? 한국을 식민화(植民化) 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항복한 후에 미군이 1945년 9월에 용산 기지에 주둔한 이유는 당시 한국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무려 34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만주에는 무려 76만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패전한 일본군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반드시 곱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종 만행(蠻行)을 저지를 것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면 “각종 문화재와 보물을 갖고 갈 것”이며 심지어 “부녀자들을 성폭행할 것”입니다. 일본군들의 만행(蠻行)을 제지(制止)하기 위하여 미군이 주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모두 떠난 후에 “1949년 6월 30일” 미군은 모두 철수했습니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에 의한 남침으로 인하여 유엔의 결의에 따라 다시 미군이 들어왔습니다. 현재 미군이 주둔(駐屯)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도발(挑發) 방지(防止)를 위한 작전(作戰)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한반도는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6. 25 전쟁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가?
남침이라고 말하면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정당방위(正當防衛)가 되기 때문에 북침이라고 주장해야 미군 철수를 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歷史)를 왜곡(歪曲)시켜서라도 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반도를 주체사상으로 통치하려고 하는 전략은 이미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애국(愛國)이란 위장 평화(僞裝 平和)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참된 평화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역사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민족의 앞날을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겸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주여!
정신을 차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로 잡고
지혜를 구할 때
암울한 땅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와
광명의 그 날을 기다리는
배달의 민족으로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1

18

겔 24:1∼26:21, 약 1:19∼2:13, 잠 17:18∼17:28

11

19

겔 27:1∼28:26, 약 2:14∼3:18, 잠 18:1∼18:9

11

20

겔 29:1∼30:26, 약 4:1∼4:17, 잠 18:10∼18:19

11

21

겔 31:1∼32:32, 약 5:1∼5:20, 잠 18:20∼19:7

11

22

겔 33:1∼34:16, 벧전 1:1∼1:12, 잠 19:8∼19:18

11

23

겔 34:17∼36:15, 벧전 1:13∼2:10, 잠 19:19∼19:29

11

24

겔 36:16∼37:28, 벧전 2:11∼3:7, 잠 20:1∼20:9


♦ 11월 18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4:1∼26:21 
하나님께서는 끓는 가마의 비유와 에스겔이 아내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못하게 하는 표징을 통해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예고하셨다. 또한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민족인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의 멸망을 선포하셨으며, 그 원인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멸시하고 침공했으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고 조롱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 야고보서 1:19∼2:13
야고보는 말을 삼가 할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실천해야 할 것을 권면하면서,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과부와 고아를 구제하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할 것을 가르쳤다.

♦ 잠언 17:18∼17:28
미련한 자는 뇌물을 받고 온당치 못한 판결을 내리며 의인과 정직한 자를 핍박하여 야훼의 진노의 대상이 되나, 지혜로운 자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잠언 17:23)

한 나라의 청렴(淸廉)도는 재판(裁判)의 과정(過程)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가장 공평(公評)해야 할 판결(判決)에 불공평한 사례(事例)가 나타난다는 것은 아직 그 사회(社會)가 정직(正直)하지 못하다는 증거(證據)라고 하겠습니다.
 
“부정(不正)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百姓)은 죽은 것이다!”

1960년 4월 26일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주축으로 유혈(流血) 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7일 “국민(國民)이 원(原)한다면 대통령 직에서 하야(下野) 하겠다."는 성명서(聲明書)을 발표한 후 사임서(辭任書)를 국회에 제출합니다. 그리고 부상당한 학생들을 찾아가서 위로합니다. 

4월 28일 경무대(현재 청와대)를 떠납니다. 그리고 5월 27일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던 하와이로 이주한 후 하와이 교포들과 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지내다가 1965년 7월 19일 0시 15분 하늘나라로 옮겨갔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그 기초가 든든하게 세워졌기 때문에 6. 25 전쟁 후 세계 160개 국가 중에서 158위의 극심한 경제 빈곤 국가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둘째는 “시장경제(市場經濟)”
셋째는 “한미동맹(韓美同盟)” 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장점만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점만 들추는 것도 더욱 심각합니다. 장단점을 함께 드러내어 장점을 더욱 발전 계승하고 단점을 수정 보완하여 더 좋은 나라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19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7:1∼28:26 
두로는 그들의 아름다움과 부요와 영화로 인해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였다. 자신을 신이라 자칭하던 두로 왕은 죽음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시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셨고,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시키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 야고보서 2:14∼3:18
야고보는 믿음이란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므로 행함은 믿음의 열매와 같다고 지적하였고, 혀를 잘 다스리는 자가 온전한 자라고 말하였으며, 하나님의 선물인 참 지혜는 선하고 온전하다고 가르쳤다.

♦ 잠언 18:1∼18:9
무리에게서 나뉘어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자, 악인을 옹호하는 재판 행위,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태도, 다툼을 일으키는 입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태도 등은 옳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믿음(信)과 행동(行動)의 관계”는 “말(言語)과 실천(實踐)의 관계”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믿음을 언어로 고백(告白)하면 고백된 믿음은 삶의 구체적인 행동(行動)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장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라고 경고(警告)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부모형제(父母兄弟)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조국(祖國)을 사랑한다고 자부(自負)합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지혜문학 “탈무드”에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길들이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는 “감사”라는 가르침입니다.
감사의 달에 내가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감사의 언어를 되찾는 기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공자(孔子)는 자신이 싫어하는 네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타인의 실패를 기뻐하는 사람
둘째는 윗사람을 헐뜯는 사람
셋째는 용기는 있으나 예의가 없는 사람
넷째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

네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싫은 사람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감사의 윤활유를 내 입에 담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모두에게 기쁨과 소망과 위로가 되는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감사가 우러나게 하시고

잘 알려진 것에는
찬송으로 화답하게 하소서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없이는
이 땅에 있을 수 없기에
내가 살아 있음에
더 큰 감사와 찬송으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0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9:1∼30:26 
하나님께서는 애급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었다가 40년 후에 연약한 나라로 회복될 것이며, 애급이 함락되는 날 그의 동맹국들도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그리고 애급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팔을 강하게 붙드시고 바로의 팔을 꺾어 약하게 하신 결과라고 밝히셨다.

♦ 야고보서 4:1∼4:17
야고보는 성도들이 세속적인 욕망을 좇는 것과 세속적인 쾌락과 교제에 지나친 관심과 가치를 두는 것과, 성도 간에 피차 비방하는 것을 책망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할 것을 교훈하였다.

♦ 잠언 18:10∼18:19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며, 다툼을 피하고 화목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언 18:14)

감사할 것이 무엇일까?
“감사는 결코 졸업이 없는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것에 감사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난 일 년 동안 건강하게 지내온 것이 가장 큰 감사의 시작입니다.

누군가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에 아니면 가족 중에 누가 몹쓸 병에 시달릴 때 건강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건강에 감사하므로 건강의 소중함을 일생동안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조카 이동훈목사는 폐암 4기로 진단받은 후 온 몸에 암이 전이된 상태에서 정말 죽음의 문턱에서 삶과 죽음의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전이되지 않았다는 진단과 투약하는 약과 치료 과정에서 매우 좋은 반응이 나타나 이제는 혈색도 정상으로 먹는 것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프지 않았기에 더 감사합니다.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숲속에 들어갔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길을 잃고 말았답니다. 아버지는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으나 아들은 여전히 숲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오는 길에 몇 차례 넘어지고 웅덩이에 빠졌지만 다행히도 이렇게 올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는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웅덩이에 빠지지도 않아서 감사하다.”

누구의 감사가 더 클까요?
아들의 감사일까요?
아니면 아버지의 감사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모든 삶에 감사를
모든 일에 은혜 베풀어
은총의 표징을 주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1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1:1∼32:32 
하나님께서는 이미 멸망한 앗수르를 레바논 백향목에 비유하여 애굽에게 앗수르의 영광과 몰락을 상기시키면서 애굽도 앗수르와 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에 이른 바로에 대하여, 또 몰락될 그 왕국의 권세에 대하여 애가를 불렀다.

♦ 야고보서 5:1∼5:20
야고보는 불의한 부자들을 책망하였으며, 성도들에게 그들이 고난당할 때 인내하고 기도로 극복하며 찬양해야 할 것과 위험한 맹세를 피하고 사실만을 말해야 할 것을 교훈하였다.

♦ 잠언 18:20∼19:7
성실하고 마음이 너그러운 자는 지혜가 있으나, 입술이 패려한 자나 야웨를 원망하는 자나 거짓 증언하는 자는 지혜가 없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야고보서 5:10)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무작정 참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감사하며 참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

감사(感謝)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측량(測量)할 수 있는 척도(尺度)가 무엇일까요?

가장 불행(不幸)할 때 감사(感謝)할 수 믿음
가장 어려울 때 인내(忍耐)할 수 있는 믿음
가장 곤고(困苦)할 때 찬송(讚頌)할 수 있는 믿음

불평(不平)의 눈으로 세상(世上)을 볼 때 세상(世上)은 불만(不滿)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感謝)의 눈으로 세상(世上)을 볼 때 세상(世上)은 행복(幸福)의 거울이 될 것입니다. 행복(幸福)의 거울로 세상을 바라봅시다. 세상은 온통 감사(感謝)로 다가올 것입니다.

감사(感謝)는 확대경(擴大鏡)과 비슷합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영원한 천국을 주십니다.” - 설교자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2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3:1∼34:16  
하나님께로부터 파수꾼의 사명을 확인받은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그들이 회개하면 회복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죄악을 깨닫지 못하여 황폐해질 것을 예고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양떼를 돌보지 않는 거짓 목자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셨고, 자신이 참 목자가 되셔서 양떼를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 베드로전서 1:1∼1:12
베드로는 성도의 소망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얻는 것이며, 이것은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준비한 구원이라고 밝혔다.

♦ 잠언 19:8∼19:18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온유한 자는 복을 받게 된다고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베드로전서 1:9) 
왜 예수를 믿습니까?
천국(天國)을 사모(思慕)하기 때문입니까?
보이지 않는 천국을 사모한다면 먼저 보이는 나의 삶에서 천국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천국(天國)의 특징은 감사(感謝)가 넘치는 곳입니다.
지옥(地獄)의 특징은 불평(不平)과 불만(不滿)이 가득한 곳입니다.
나의 천국(天國)을 내 안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영혼(靈魂) 구원(救援)으로 천국을 확장(擴張)시켜야 합니다.

감사의 계절에 내가 구원해야 할 영혼은 누구일까 생각해 봅니다.
평소에 교인들끼리만 교제하면 구원해야 할 대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을 찾아서 자주 만나고 교제하며 그들의 심령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복음의 문을 열어야 영혼 구원에 대한 감사가 회복(回復)될 것입니다.

1860년 어느 날 곡예사 “찰스 블론딘(Charles Blondin)”은 나이아가라 폭포 50미터 위에 300미터의 줄을 걸어놓고 외줄타기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수도 없이 외줄타기를 했던 ‘블론딘’이 많이 모인 군중들에게 한 사람을 업고 외줄을 건너가려는데 여러분은 내가 그 일을 할 줄 믿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모인 군중들은 모두 “예”하며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곡예사 ‘블론딘’에게 업히겠다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큰 소리로 외쳤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사람이 없다는 탄식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열매 없는 신앙을 회개하며 믿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온전하게 드려지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잃어버린 영혼 찾아
오늘도
영생의 샘물 담아
섬기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3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4:17∼36:15 
하나님께서는 거짓 목자들을 심판하시고 양떼를 공의로 다스리시며 메시아를 보내 주셔서 화평의 언약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에돔을 멸망시킬 것도 선언하셨다. 이스라엘은 땅을 빼앗김으로 수치를 당했으나, 야훼께서 그 땅을 되찾아 주셔서 그 백성들로 거하게 하실 것을 예고하셨다.

♦ 베드로전서 1:13∼2:10 
베드로는 어린양의 피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든 행실에 거룩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님과 같은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덕을 선포할 것을 권면하였다.
베드로는 성도의 소망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얻는 것이며, 이것은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준비한 구원이라고 밝혔다.

♦ 잠언 19:19∼19:29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 게으른 자, 거만한 자, 불효자, 망령된 증인은 재앙과 심판을 받게 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언 19:21) 

세상이 어지럽고 거짓의 손에 의해서 흔들리는 것 같지만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세워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할 존귀한 생명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트리려는 세상에 붙잡혀 살아가도록 유혹한 사악한 세력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고 새 영으로 충만하게 회복하기를 기도합시다.

세상에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입에서 나온 말
둘째는 지나간 세월
셋째는 시위에서 날아간 화살

그런데 감사하는 말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왜 참새가 짹짹 하는가?”
“왜 독수리는 높은 하늘을 날아가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왜 감사해야 하는가?”
감사는 최고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동훈목사님이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제일 먼저 집안 내력을 조사했으나 유전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인을 찾는다면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물리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 해독제, 방부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
그 사랑 힘입어
감사의 언어로
모든 질병 치료케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4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6:16∼37:2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 죄로 인해 징계를 받아 여러 나라에 흩어져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이 부활되는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확증하셨고, 두 막대기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가 연합될 것을 보여 주셨다. 다윗의 왕국이 영원할 것과 그들이 야훼의 백성이 될 것도 약속하셨다.

♦ 베드로전서 2:11∼3:7 
베드로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성도들은 국가의 위정자와 주인에게 순종하여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고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기도록 권면하였다.

♦ 잠언 20:1∼20:9 
다투는 것과 게으른 것은 심판주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죄임을 밝히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잠언 20:5)  

감사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깊은 물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마음 밭에는 실망의 씨가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9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는 무엇일까요?
감사를 ‘세속적인 감사’와 ‘신령한 감사’로 생각해 봅니다.

대부분 감사하는 것은 ‘세속적인 감사’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 때문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여유 있는 물질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신령한 감사’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지만 하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사랑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나를 바꾸는 것
세속적인 감사에 물들고 오염된 나를 씻어
진실한 마음으로 맑히는 것
마음을 비우고 허공처럼 넓혀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나를 낮추고 내리는 것이다.
‘신령한 감사를 위하여.........’

세속적인 감사의 틀을 벗어던지고
신령한 감사에 몸과 마음을 던져
최고의 감사를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주일을 기대합니다.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1

25

겔 38:1∼39:29, 벧전 3:8∼4:6, 잠 20:10∼20:20

11

26

겔 40:1∼40:49, 벧전 4:7∼5:14, 잠 20:21∼20:30

11

27

겔 41:1∼43:27, 벧후 1:1∼1:21, 잠 21:1∼21:9

11

28

겔 44:1∼45:25, 벧후 2:1∼2:22, 잠 21:10∼21:20

11

29

겔 46:1∼47:23, 벧후 3:1∼3:18, 잠 21:21∼21:31

11

30

겔 48:1∼48:35, 단 1:1∼1:21, 요일 1:1∼1:10, 잠 22:1∼22:10

12

1

 단 2:1∼2:49, 요일 2:1∼2:17, 잠 22:11∼22:21


♦ 11월 25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8:1∼39:29 
하나님께서는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여 평안히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곡의 군대가 침략하지만 하나님께서 곡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만을 의뢰하고 온 땅이 야훼의 이름을 앙모하게 되며, 이스라엘은 평화와 거룩의 땅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 베드로전서 3:8∼4:6 
베드로는 다가올 박해에 대비하여 소망과 확신을 갖고,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본받아 박해를 견디며, 음란과 연락의 생활을 떠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것을 당부하였다.

♦ 잠언 20:10∼20:20 
속이는 자,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 자기의 부모를 저주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며 사람의 영혼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라고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4:6b)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딤전 2:4).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일까 생각해보셨나요?
왜 육체의 남은 때를 계수해야 할까요?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한 불쌍한 영혼에게 진리를 깨우쳐 믿음의 길을 함께 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화재가 발생한 집안에 사람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집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집밖으로 데리고 나오려면 위험을 각오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찰스 웨슬리는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라는 찬송을 지었습니다. 그 찬송을 짓게 된 동기는 아메리카에 가서 전도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중에 풍랑을 만나서 생명의 위태로운 일을 만났을 때 아직도 구원해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남은 때를 주께 맡기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고백된 찬송이라고 합니다.

2019년이 저물어 갑니다.
나는 생명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하였는가?
열매 없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잃어버린 양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 양을 찾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기도합시다.

기도한다는 것은
큰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참회하고 힘을 다하여
다 같이 행복한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남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고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어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입니다.

오 주여!
길 잃은 생명 찾아
주님 나라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6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0:1∼40:49
포로 된 지 25년이 되던 해, 에스겔은 이상 중에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인도되어 새 성전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전 바깥뜰의 동문, 바깥뜰, 바깥뜰의 북문과 남문, 성전 안뜰의 남문과 동문과 북문, 번제물 씻는 방, 희생 제물을 잡는 상, 제사장들의 방, 그리고 성전 현관에 관한 이상을 보여 주셨다.

 
♦ 베드로전서 4:7∼5:14 
베드로는 말세에 성도들이 기도하고 사랑하며 서로 원망 없이 대접하고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할 것을 권면했다. 또한 장로는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하고, 젊은이들은 장로에게 순복하여야 하며, 성도들은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굳게 서야 한다고 가르쳤다.

♦ 잠언 20:21∼20:30 
왕은 인자와 진리로 통치해야 그 왕권이 견고해진다고 교훈하며, 원수들에 대한 보응은 주께 맡기라고 권고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베드로전서 4:7) 

말세(末世)와 말일(末日)을 구분해야 합니다.
말세(末世)란 “마지막 시대”를 말합니다(Last Days).
말일(末日)이란 “마지막 날”을 말합니다(The Last Day).
말세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부터 다시 오실 그 날 까지 모든 기간(期間)을 말합니다.

말세(末世)에 성도(聖徒)들이 해야 할 일을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정신을 차리라!(Be Clear Minded!)
둘째는 근신하여 기도하라!(Self Controlled so that You can pray!)

깨끗한 마음과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몸을 다스리고 생각을 다듬어야 합니다. 세상을 무너트리는 가장 나쁜 것은 “거짓”입니다.

“양치기 소년과 늑대” 라는 이솝 이야기는 거짓말이 얼마나 백해무익한 것인가를 깨우치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농담이라도 거짓말은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다스리며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것은
두려워할 대상을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잠들었던 내 안의 본성(本性)이
세상(世上)의 이치(理致)를 깨달아
자연(自然)의 질서(秩序)에 순응(順應)하며
평온(平穩)하게 살아갈 때
진리(眞理)와 하나 되어
영원(永遠)을 향한 순례자(巡禮者) 되리라.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7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1:1∼43:27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 있는 성전 내부 구조와 크기, 장식, 제단과 상, 문 등을 보여 주셨다. 에스겔은 성전 주위의 방과 뜰 전체를 측량하고 구조를 살폈다. 북편과 남편에 있는 방에서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먹었으며 거룩한 의복을 갈아입었다. 바깥담은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돌아오면 그들과 영원토록 함께하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 베드로후서 1:1∼1:21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덕목을 가르치고, 이를 실천하라고 권면하며,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 진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 잠언 21:1∼21:9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를 감찰하시며 제사보다 의와 공평을 원하신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후서 1:4b)

신(神)의 성품(性品)이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교회(敎會)의 설교단(說敎壇)에 새겨진 글을 생각합니다.
“예수를 보기를 원하노라!”(We want to Jesus Christ!)

설교(說敎)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회중(會衆)들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인가 어느 교육자(敎育者)이신 장로님께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설교 잘 하는 목사가 아니라 설교한대로 살아가는 목사가 그립습니다. 왜냐하면 설교 잘 하는 목사는 너무 많습니다.”

한 번은 독일의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통일(統一)을 위하여 기도(祈禱)는 열심히 잘 한다. 그러나 기도(祈禱)한 만큼 통일(統一)을 준비(準備)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너무 화려(華麗)하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현장이 없었기에 뼈아프게 꾸짖는 깨우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주님 닮아가는 삶을 기도하며 찬송합니다.

사랑의 주님 닮기 원하네
그 아름다운 주님 예수
이 세상에서 저 천국까지
닮기 원하네 주님 예수

주님
말마다 매 순간마다
오직 주님만 생각하게 하소서
늘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 사랑에 묻혀 살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8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4:1∼45:25 
하나님께서는 왕에게만 동문의 사용을 허락하셨으며, 성전에 이방인의 출입을 금하셨고, 우상을 섬겼던 레위인들은 제사장의 수종을 들도록 하셨다. 그리고 성결함을 유지한 사독의 자손들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도록 법도와 율례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분배시 중심부를 거룩히 구별하도록 하셨고, 왕과 백성에게 정의의 법령을 주셨다. 이어 절기를 지키도록 신년절, 유월절, 장막절의 규례를 말씀하셨다.

♦ 베드로후서 2:1∼2:22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의 실상을 규명하고 그들이 방종한 행위로 인해 멸망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진리를 안 후 떠난 이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 잠언 21:10∼21:20
의인의 행사와 악인의 행사를 비교하면서 하나님께서 악인을 반드시 처벌하실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주께서 경건(敬虔)한 자는 시험(試驗)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不義)한 자는 형벌(刑罰) 아래에 두어 심판(審判) 날까지 지키시며.(베드로후서 2:9) 

왜 그리스도인이 경건(敬虔)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경건(敬虔)이란 삶을 통해 주의 길을 연주(演奏)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인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1962)”는 콘서트와 작곡으로 얻은 모든 부를 아낌없이 다 나누어주어 버렸습니다.

한번은 그의 여행 중에 너무나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富)를 다 나누어주었기에 살 수 없었다고 합니다. 훗날 그 바이올린을 구입하려고 돈을 마련한 후 바이올린 소유자(所有者)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바이올린은 벌써 다른 수집가(蒐集家)에게 팔려버렸습니다. ‘크라이슬러’는 그 바이올린의 새 주인(主人)을 찾아갔고, 바이올린을 자기에게 팔 것을 부탁(付託)했지만 거절(拒絶)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수집가는 바이올린이 소중한 애장품이기 때문에 팔 수 없다고 합니다. ‘크라이슬러’는 크게 실망(失望)했습니다.

바이올린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바이올린이 소리를 내지 않고 애장품으로 보관되기 전에 한번만 연주해 볼 수 있겠느냐고 요청(要請)했습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은 후 ‘크라이슬러’의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주가 끝난 후 바이올린 수집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게는 그 바이올린을 소장할만한 권리가 없습니다. ‘크라이슬러 씨’ 이 바이올린은 이제부터 당신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십시오.”

그리스도인이 경건한 삶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경건의 삶이 세상에서 연주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지난 24일 광화문 이승만 광장에서 연합 추수감사예배를 드릴 때 어느 스님이 단상에 올라와 “내가 입은 옷으로 나를 평가하지 말고 내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머지않아 스님이 거주하던 사찰이 기도원으로 바뀔 것입니다 라는 설교자의 말에 스님은 아멘하고 화답하는 장면을 유투브로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의 경건한 삶이 세상에 갇힌 사람들을 복음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드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 주여
경건한 삶의 연주 소리
세상에 널리 퍼져
뭇 영혼 뒤집어
주님 사랑 안에
끌려오게 하소서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29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6:1∼47:23 
하나님은 안식일과 월삭을 위한 제사에 대한 규례와, 왕이 지켜야 할 규례와, 제물 준비에 관한 규례에 대해 지시하셨다. 그리고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가는 곳마다 만물을 소성케 할 것을 에스겔에게 보여 주셨고, 경계가 정해진 이스라엘 땅에 이방인들도 함께 거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

♦ 베드로후서 3:1∼3:18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재림을 기다릴 것을 권고하였다.

♦ 잠언 21:21∼21:31 
인간의 모든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당할 수 없는 야웨를 경외하고 의지하라고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베드로후서 3:3)

말세(末世)의 특징(特徵)은 믿음을 조롱하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시대(時代)를 말합니다.

교회(敎會)를 향한 조롱(嘲弄)의 소리
목사(牧師)를 향한 조롱(嘲弄)의 소리
성도(聖徒)를 향한 조롱(嘲弄)의 소리
조롱(嘲弄)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듣고 잘못된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잘못을 수정하면 또 조롱의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또 고치면 됩니다.
왜냐하면 아직 완성(完成)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記憶)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롱(嘲弄)하는 그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탈무드의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랍비가 제자(弟子)들에게 질문합니다.
“밤이 끝나고 낮이 시작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제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척에 있는 집이 보일 때 그 집이 자신의 집인지, 이웃의 집인지를 구분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요?”

그러자 랍비는 정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가 또 대답합니다.
“들에 있는 동물이 보일 때 그 동물이 자신의 것인지, 이웃의 것인지를 분간할 때가 아닐까요?”

랍비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또 다른 제자가 대답합니다.
“정원의 꽃을 볼 때 무슨 색깔인지 알 수 있을 때가 아닐까요?”

랍비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들이 말한 답(答)들은 구분(區分), 분간(分揀), 그리고 차이(差異)의 한계(限界)를 극복(克服)하지 못한 것이다. 밤이 끝이 나고 낮이 시작(始作)되는 시점(時點)은, 너의 옆에 있는 지체(肢體)들을 너의 형제(兄弟)로, 너의 자매(姉妹)로 볼 수 있을 때, 서로 서로 묶여져 있음을, 서로가 서로에게 속(屬)해져 있음을 인식(認識)할 때, 비로서, 너희들은 밤이 끝나고 낮이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롱의 소리를 깨우침의 소리로 듣고
궤도에서 벗어난 길을 수정하여
진리를 향한 목표를 따라 갈 때
조롱하는 사람까지도
진리의 자리로 이끌어
바른 소리 외칠 수 있도록
믿음을 강화하여
주의 진리 따라가는 삶이
다져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1월 30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8:1∼48:3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분배해 주신 새 땅은 중앙에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과 그 좌우 끝에 왕의 기업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남쪽에 다섯 지파, 북쪽에 일곱 지파의 기업이 있었다. ‘여호와 삼마’라고 이름할 성읍의 문은 각 방향으로 세 개씩의 문이 있으며 각각의 문에는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 다니엘 1:1∼1:21
바벨론에 잡혀 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우상 숭배에 동요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더하셔서 무리 중에서 뛰어나게 하셨다.

♦ 요한일서 1:1∼1:10 
요한은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서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해 겸손하게 죄를 고백하라고 권면하였다.

♦ 잠언 22:1∼22:10 
재물 자체보다 그것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것과 항상 야웨 앞에서 근신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10)  

교회학교 교육 현장에 위기가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뚜렷한 대안(代案)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聖經)은 분명(分明)하게 말씀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목사와 아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린 아들 녀석이 운전면허증을 따자마자 목회자인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중고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해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인 아버지는 중고차를 빌미로 해서, “만약 학교 성적이 오르고, 성경공부를 조금 더 하고, 너의 긴 머리를 자른다면, 한번 생각해 보마” 라고 말했습니다.

한 달 후,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와서 아버지가 요청한 대로 하였으니 중고차 사용을 허락해 달라고 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학교 성적도 올랐고, 부지런히 성경공부도 하였구나! 하지만, 긴 머리는 여전하구나!”

그러자, 아들이 대꾸하기를, “아버지, 머리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성경에 보면 삼손도 긴 머리였고, 모세도 그러했고, 노아도, 심지어 예수님도 긴 머리 이었더군요!”

아버지는 우습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들은 다들 긴 머리였다. 하지만, 네가 성경을 좀 더 읽어보아야 하겠구나. 그들은 모두 차가 없이 어디든 걸어 다녔다는 것을......”

자녀교육(子女敎育)에 교회교육(交會敎育)에 재치(才致)가 필요하고 지혜(知慧)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빠른 변화에 따른 교육의 현장을 재정비(再整備)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깨우쳐 진리의 장막 안에서 머물며 주님 오심을 함께 기다릴 수 믿음을 자랑하게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바라고 비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를 키워 힘을 얻는 것입니다.


너와 나를 허물어 자비를 베풀며

세상과 더불어 하나 되려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 한국 만세!
복음 통일 만세!
자유대한민국 만세!
세계선교 한국 만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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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궤(요한계시록 11:19) / 추수감사주일 설교 원고(2019-11-24)


하나님의 언약궤(요한계시록 11:19)

하나님의 언약궤(言約櫃)
(the ark of God's covenant)
ἡ κιβωτὸς τῆς  διαθήκης αὐτοῦ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열리니 성전(聖殿)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言約櫃)가 보이며 또 번개와 움성(音聲)들과 뇌성(雷聲)과 지진(地震)과 큰 우박(雨雹)이 있더라. 

계 15: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히 9:4, 금향로와 사면을 김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아론의 싹 난 지팡이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계 16: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며 요한계시록에서 감사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았더니 “감사(感謝)”라는 단어가 사용된 말씀은 “4장 9절7장 12절 그리고 11장 17절”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感謝)라는 헬라어 단어는 “유카리스티아(εὐχαριστία, 2169. eucharistia)” 라고 합니다. ‘유카리스티아’란 “감사” 또는 “감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체(聖體)’ 라는 영어 단어 “eucharist”의 어원입니다. 성찬예식을 “유카리스트” 라고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감사에 대한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4:9,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세세토록 사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올리는 존재는 ‘생물들’입니다.

요한계시록 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12절에는 누가 감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하는 존재는 ‘모든 천사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17절에서 누가 감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큰 권능을 잡고 왕 노릇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존재는 보좌에 앉으신 ‘24장로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머물고 있던 성도들이 아니라 생물들(4:9)과 모든 천사들(7:12)과 이십 사 장로들(11:17)입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당시 예수를 믿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받는 성도들과 또한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어느 날 새벽 요한계시록을 읽던 중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말씀은 11장 19절이었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다고 합니다.
하늘 성전에 왜 하나님의 언약궤가 왜 있었을까요?

성경에 언약궤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사건은 요시야 왕솔로몬 성전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 이후에 언약궤에 대한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이 소개됩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성전 산 밑에 묻혀 있다.
둘째는 에디오피아 악숨 “시온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 있다.
셋째는 아일랜드 전통에 의하면 “타라 언덕”에 있다.
넷째는 갈보리 산 아래에 있다.
다섯째는 비스가 산에 있다.
여섯째는 하늘에 있다.

이와 같이 언약궤가 있다고 하는 것은 추측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늘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을까요?
요한계시록의 말씀 때문에 어떤 해석은 '언약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결코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까?
만일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면 오늘 내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분명하게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궤(言約櫃)에 대한 두 가지 믿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언약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둘째는 “언약궤 뚜껑은 무엇인가?”

첫째, 언약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히브리서 9: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아론의 싹 난 지팡이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언약궤 안에 세 가지 물건이 들어있다는 것은 구약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신약 히브리서에 근거한 것입니다.

첫째,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둘째,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셋째, 언약의 비석들

둘째, 언약궤 뚜껑은 무엇인가?(출애굽기 25:21∼22)

속죄소를 궤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레위기 16: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언약궤의 뚜껑” 즉 “덮개”를 “속죄소(贖罪所)” 라고 합니다.

속죄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갖고 속죄소 위에 뿌리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약속을 확인하는 거룩한 만남의 장소를 말합니다.

왜 언약궤의 뚜껑을 속죄소라는 하는가?

언약궤의 뚜껑을 히브리어로 “카포레트(Kapporeth)” 라고 합니다. ‘카포레트’는 “뚜껑” “덮개” 라는 뜻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과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세 가지 물건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철저한 타락죄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죄악을 담은 언약궤의 뚜껑을 속죄소라고 하는 것은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약속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일서 4:8, 16)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은 덮어주는 것(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언약궤에 들어있는 세 가지 물건이 상징하는 죄악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
- 백성들의 방자(放恣)한 불순종의 죄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약속의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광야에 머물던 백성들은 40일 동안 지도자 모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할 지도자를 찾기 위하여 애급에서 숭배하던 송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금을 모아 커다란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제부터 금송아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할 것이라며 금송아지 주위를 돌며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산에서 내려가라 하셨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오다가 백성들의 방자한 광경을 목격하고 그 돌판을 던져버렸기 때문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언약궤에 들어있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은 두 번째로 받은 것입니다.
첫 번째 돌판이 백성들의 죄로 깨졌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의 두 돌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방자한 죄악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불순종의 죄악을 말합니다.

둘째, 만나를 담은 항아리
- 불평(不平)으로 은혜를 잊어버리는 망각의 죄

만나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던 음식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면서 감사를 모르고 애급에서 먹던 부추와 마늘과 같은 음식을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받은 은혜보다는 애급에서 노예로 살면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하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따라서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타락한 삶을 연상하게 합니다.

셋째,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패역(悖逆)한 백성들의 원망으로 인한 시기와 질투의 죄
- 고라는 아론의 사촌, 르우벤은 12지파의 장자

* 패역(悖逆) ; 어그러질 패(悖), 거스릴 역(逆)
패역이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름.” 

아론의 지팡이가 싹이 나게 된 배경은 고라 자손의 반역 때문이었습니다.
고라 자손이 주동이 되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만 지도자로 세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모세는 화로를 준비하고 고라 자손의 화로와 아론의 화로를 준비한 후 하늘에서 화로에 불이 내림으로 지도자가 누구인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라 자손과 그들의 모든 것은 땅이 갈라져 삼켜버렸습니다(민수기 16장).

그 후에 각 지파를 상징하는 지팡이 12개를 취하고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적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에 싹이 나는 사람을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라고 증명하신 사건이 고라 자손의 반역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14,700명이 죽었습니다.

따라서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고라 자손들의 반역죄를 상징합니다.
언약궤 안에 담겨진 세 가지 물건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을 상징하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악이 담겨진 언약궤 위 뚜껑을 속죄소로 덮었습니다.
모든 죄가 반드시 용서받아야 할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늘 하나님의 성전에 언약궤가 있다는 것은 모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은혜 가운데 지내온 것도 감사할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감사는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하늘 성전에 있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되는 죄에 대한 용서를 위한 언약궤의 뚜껑 속죄소(贖罪所)에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에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은혜를 되새기며 이제부터는 날마다 하나님의 언약궤의 은혜에 감사하므로 승리하는 파트리스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십자가(十字架)는 언약궤 뚜껑 즉 속죄소의 결정적인 계시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죽음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합니다.
문제는 죄를 지은 것은 사람 즉 내가 지었지만 죽은 것은 내가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가 됩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신 것을 확신하는 것이며,
평강이란 은혜가 이룩한 것을 하나님과 더불어 또 다른 사람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화해가 천국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다는 것은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들이었지만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 흘리시고 죽으셨다가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힘입어 우리들의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최고의 감사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생각하며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궤(출애굽기 25:10-22)


언약궤(言約櫃)
- 하나님의 언약궤( the ark of God’s covenant, ἡ κιβωτὸς τῆς  διαθήκης αὐτοῦ)


언약궤는 성막에서 신비적인 능력이 있는 잘 알려진 기구이다(참조 / 삼상 5, 6장).

언약궤(증거궤)는 성막 가장 깊숙한 지성소 안에 있었다.
출입은 1년에 한 번 있는 대속죄일에 오직 대제사장 만으로 제한되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로서 그들의 죄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다.

언약궤는 금으로 입힌 싯딤나무(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였다.
길이가 2.5규빗(1.2m), 폭이 1.5규빗(0.7m), 높이가 1.5규빗(0.7m)로 측정된다.
그것은 금으로 입힌 싯딤나무(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두 기다란 막대에 의하여 옮겨졌다.

언약궤는 성막 안에서 그의 거하시는 하나님의 보좌였다.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시편 94:9,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에 대한 것은 요한계시록 20:11-15에 잘 나타나 있다.
거기에는 궤 위에 긍휼의 자리가 있었다(시은소).

언약궤의 뚜껑 즉 속죄소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화해의 덮음을 상징했다.
그것은 속죄일 날에 거행된 대제사장에 의하여 뿌려진 염소의 피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화해)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서 3:24-2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화해의 대속물로서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죽으셨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죄값은 지불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는 자들에게 거기에는 재앙이 없고 단지 은혜의 자비 만이 있을 뿐이다.

로마서 5:8-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궤에 뚜껑에 붙은 두개의 천상의 존재인 그룹(케루빔)이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는 상자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두 천상의 존재인 그룹 사이에 충만하게 임재하고 있었다.

디모데전서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시편 104:2,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대제사장은 그의 눈을 가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고 하나님을 본 자는 살 자가 없기 때문이다(출래굽기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주의 영광이 그 날에 충만하였더라(출애굽기 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그 날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후 부터 정월 초일일 날이었다(출애굽기 40:2).
너는 첫째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자비의 보좌 위에 있는 두 케루빔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었다(히브리서 9: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언약궤 위의 뚜껑속죄소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즉 대속죄일에 희생제물의 피를 이 속죄소 위에 뿌렸다.
이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요, 언약백성들과의 만남과 교제의 장소였다.


케루빔이 두 날개를 가지고 긍휼의 자리를 덮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날개는 궤를 충분히 덮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의 날개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우리를 혼동케 하고 미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는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12)

옆의 그림과 같이 궤의 뚜껑(속죄소)이 열렸을 때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은 다음과 같이 볼 수가 있다:


출애굽기 25: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 법궤(언약궤,증거궤)에 들어 있던 세가지 (히브리서 9: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1. 언약궤(법궤,증거궤)
2. 만나 항아리
3. 언약(십계명)의 돌판

히브리서 9:3-5,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성경의 내용은 특히 구약의 내용은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세 가지가 법궤에 들어가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 가지가 들어가있다는 것은 신약 히브리서에 근거한 것입니다.

​먼저 십계명 돌판(두번째) 돌판을 법궤(증거궤)에 넣은 것은 맞습니다.
출애굽기 22장입니다.

첫번째 돌판은 깨뜨려지고(출 32장) 다시 새 돌판을 받습니다(출 34장).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 지며”(출 25:16)


그런데 만나는 증거궤 안이 아니라 '앞에' 놓았습니다.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호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출애굽기 16:33)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증거궤 안이 아니라 '앞에' 놓았습니다.
​"그 지팡이를 회막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민수기 17:4)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민수기 17:7)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민수기 17:10)

즉 구약 성경에는 만나 항아리나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법궤 안에 함께 넣어졌다는 구체적인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를 볼 때 광야의 성막이 자주 이동하는 동안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법궤 안에 넣어서
이동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그런 랍비들의 성경해석을 따라 히브리서가 기록했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이미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보이지 않았다고 솔로몬 시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 돌판만 나중 솔로몬이 B.C. 959년 경 성전을 짓고 나서 법궤를 성전으로 옮기고
확인할 때까지 남아있었습니다.  

열왕기상 8:9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

역대하 5:10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그러니까 돌판을 제외한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광야 40년 동안에 한시적으로
법궤 안에 넣어져 보관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후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광야의 성막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는 법궤도 사라집니다.

​아마도 그 시기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을 파괴하는 과정에서(주전 약 586년 전후)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성전은 약탈되고 파괴되었고, 이스라엘의 모든 핵심 귀족과 인력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데
그 때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책을 만들게 하시고 그것을 언약궤 곁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책을 법궤 안에 넣지 않은 이유는 수시로 율법책을 읽어야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명기 31:24-2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궤는 정말 대단히 중요한 신앙적 상징이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이며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이고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이며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법궤 자체가 주술적 능력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법궤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듭남과 변화가 없이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에 이용하는
에벤에셀 전투에서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기도록 놔두십니다.

법궤 숭배가 아니라 내면의 개혁이 중요함을 가르쳐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서 회개 기도를 드린 후에야
블레셋에게 승리하게 하시고 법궤도 되찾게 하셨습니다.

​훗날 바벨론 포로로 이스라엘이 잡혀갔을 때
예레미야는 이 법궤에 대한 문제를 정확하게 신앙적으로 진단을 내립니다.
더 이상 법궤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요
말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예언을 남깁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살다 돌아올 사람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요 기억하지 않을 것이요 찾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도 않을 것이며”(렘 3:16-17).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2달만에 시내산에 도착하고 1년 가까이 시내산 기슭에 머물며
십계명을 받고 율법을 받고 성막을 건립한 후 훈련받고 출애굽기 40장, 레위기 27장, 민수기 10장에 이르러
드디어 광야로 떠난다.

출애굽 만 1년 1개월 5일이 지난 때였고(B.C.1445년)
시내산에 도착한 때로부터는 만 11개월 5일이 지난 때였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2월 20일에 머물던 시내산을 떠나 광야로 향한다.
드디어 BC 1445년 2월 20일(민수기 10:11) 구름이 증거의 장막에서 떠올랐다.

광야의 길로 나갑니다.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할 광야였다!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출 13:17)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
블레셋의 해안 도시를 통하는 지중해안의 길이었다.

여호수아 13:3, 다섯 개의 큰 도시 국가들(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 에그론)로 상호 동맹을 결성한 막강한 블레셋 군대.
그 길외에는 광야를 거치지 않고는 가나안에 갈수 없었다.
지도를 살펴보면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바란광야. 수르광야, 에담광야, 신광야, 네겝광야, 시내광야 가 놓여있다.

(바란)광야로 나아가면서 2지파의 맨 앞장 서서 간 것이 법궤였다.
민수기 10:33-36,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일길(바란광야)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모세도 두려웠다.
의지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운다.
원래는 정찰 수색대를 앞세워야하는데 군인들이 아니라 법궤를 앞세웠다.
막막한 광야,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데 불안하고 두려웠다.
믿고 의지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진한다. 그래서 기도한다. 

이스라엘에게는 무엇이 힘이 되었을까? 

법궤였다! 그 법궤가 전진할 때는 가장 앞에 있었다.

진을 칠 때는 그 법궤가 12지파의 가운데에 있었다.

* 영어성경은 노아방주, 모세의 갈대상자를 ARK로 번역했다(히브리어, 테바)
그리고 법궤도 나무상자라는 의미에서 ARK로 번역했다.

노아 방주와 모세 갈대상자의 특징
1. 방향과 대책이 없다.
2. 노나 돛이 없다. 이끄시는대로 가야한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셔야한다!

​그런데 법궤 속의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는 기적의 상징 뿐만 아니라
사실은 죄의 상징이요, 은총의 상징이었다.

* 만나, 출애굽기 16장 배고파 죽겠다고 원망하는 죄를 지었다(16:1-12절 7번 원망이라는 말이 나타남)

원망과 불평은 성격이나 습관이 아니라 죄라고 한다.

민수기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에서 노예생활을 오래 하면서 서슬프게도 노예근성의 언어,
불평과 원망의 언어습관이 생겼고 그것을 버리지 못했다.
기대고 의존하고 나눌 줄을 모르고 드릴 줄을 모르고, 공짜근성, 거지 근성이 생겼다. 

민수기 11:5, 우리가 애급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불평은 죄인된 인간의 저열한 성품을 만족시키는 쾌감이 있다.
불평을 듣는 것도 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 우스 땅의 욥은 입술로 원망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욥기 2: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불평은 마귀의 언어요
기도는 하나님의 언어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셨습니다.

아론의 지팡이 사건(민수기 16:2)

고라, 다단, 아비람 등이 아론과 모세를 거역하고 대적한 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정당하게 보지 않으시고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게 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까지 나게 한 사건.
250명이 죽은 사건.
더 나아가 불평에 동참한 자 14,700명도 죽는다.
그런데 또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셨다.
오히려 소망을 주신다.

살구나무는 "깨어 지켜보시고 지키신다"는 뜻이다.

십계명의 돌판(두번째 돌판)


불신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춤추는 백성들과 거룩한 분노로 깨뜨린 돌판(출애굽기 32장)
다시 만들어주신 돌판(출애굽기 34장). 또 다시 용서해주셨다.
그래서 법궤를 메고 가는 것은 이제는 다시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뜨거운 눈물의 고백이다.
십계명 돌판의 불신, 만나의 원망, 아론지팡이의 교만과 거역,  그리고 용서의 은혜를 기억나게 합니다.

지팡이는 길을 인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돌판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상징합니다. 
만나는 생명을 주는 양식을 상징합니다.

예수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즉 예수님을 믿는자에게는 길이 열리고 소망의 싹이 트고 열매를 맺으며,
진리를 따라 사는 기쁨이 있고 만나로 상징되는 영적 생명, 육적 생명이 충만할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길이 힘들어도 다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함께 법궤를 메고 가는 한 반드시 마른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며,
만나를 내려주시며, 진리로 사는 자의 만족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40년 광야의 마지막 순간의 기적
그 기적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법궤가 있는가?
우리 마음에 법궤가 있는가?
우리 삶의 길에 법궤가 있는가?

인생이라는 광야길에서
길과 진리와 생명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오늘도 흔들리지 말고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큰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