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늘의 묵상 4월

4월 1일(월)

오늘 읽을 말씀
신명기 2:1∼3:22
누가복음 9:28∼50
시편 55:9∼15

신명기 2:1∼3:22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벧브올까지의 여정을 회고하면서 그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겪었던 일들을 언급했다. 에돔, 모압, 암몬 족속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의 땅을 우회한 이스라엘은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정복했다. 요단 강 동편 지역은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갓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누가복음 9:28∼50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시고, 제자들에게 겸손과 관용의 도를 가르치셨다.  

시편 55:9∼15
다윗은 행악자들의 악행을 고발하면서, 이전에 친구였던 자가 악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오늘은 사순절 제23일입니다.
사회 풍속은 만우절(April Fools Day)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 풍속을 따르기 전에 항상 진실한 삶의 멋을 누릴 줄 아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힘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싸움터의 대장으로 앞장을 서신다면 우리는 그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주 하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주님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진리 편에 서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전능의 주님
선과 악이 씨름하는
혼탁한 현장에서
때로는 거센 소용돌이
때론 깊은 웅덩이
숨 돌릴 여유조차 없는
죽여라 외쳐대는 고함소리
날카로운 모함 몽둥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마른 장작처럼 던져진 몸
주여,
붙잡아 주옵소서
힘을 주소서
마지막 숨을 몰아
당신 앞에 엎드리오니
주님,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아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23일
https://www.youtube.com/watch?v=N727xd1gYsw

4월 2일(화)

오늘 읽을 말씀
신명기 3:23∼4:49
누가복음 9:51∼10:16
시편 55:16∼23

신명기 3:23∼4:49
모세는 하나님께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주실 것을 간구했으나, 그의 소원은 응답받지 못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에 순종할 것을 교훈했으며, 특별히 우상 숭배를 금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제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세는 과실 치사를 범한 자들이 피하여 목숨을 보전할 수 있도록 요단 동편에 세 개의 도피성을 지정했다.  

누가복음 9:51∼10:16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위해 사마리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그 곳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다른 길로 우회하여 가시면서 제자의 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후 예수님은 70인을 세우셔서 예수님이 가시려는 각지를 향해 둘씩 짝지어 파송하셨다.  

시편 55:16∼23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면서 주께서 악인들에게 보응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오늘은 사순절 제24일입니다.
경건(敬虔)이란 ‘공경하고(敬) 삼가는 것(虔)’을 말합니다.  
매일의 삶은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생각하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높아지고 깊어질 뿐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날 나의 어리석음이 크게 느껴지고, 흠 많은 행동이 쌓여지고, 너그럽지 못한 마음이 후회스럽기 때문입니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만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시고 능력 많으신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가깝게 될 때 주의 약속 안에서 모든 두려움과 어려운 것들이 순탄하게 해결되고 진행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자비하신 능력의 주님
약속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 손으로 잡아주소서

은혜로우신 주님
사악한 무리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온갖 유혹의 바람이 몰아칠지라도
그 품에 안아 주소서

주님
오늘도  
그 사랑에 도취되어 
숨 쉬는 삶의 재미 누리게 하소서.
아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24일
https://www.youtube.com/watch?v=EY2T4vmx3KI


4월 3일(수)

오늘 읽을 말씀
신명기 5:1∼6:25
누가복음 10:17∼10:37
시편 56:1∼13
신명기 5:1∼6:25
모세는 십계명에 대한 회고로 두 번째 설교를 시작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일은 한 세대에서 그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모세는 자녀들에 대한 율법 교육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거할 때 더욱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했다.  

누가복음 10:17∼10:37
7인이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하자 예수님은 기쁨의 기도를 드리셨다. 영생을 얻는 방법과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는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답변하심으로써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교훈하셨다. 

시편 56:1∼13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응답을 확신하며 찬송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자손대대로 누릴 은혜를 위하여

사순절 제25일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머물 수 없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광야의 삶을 정리해야 합니다. 광야의 삶은 원망과 불평과 입에 맞는 먹을거리를 찾아 돌아가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광야의 삶에 익숙한 백성들을 이렇게 깨우치셨습니다.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사순절 경건의 삶을 위하여 고달픈 광야의 삶을 떨쳐버리고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약속의 삶을 결단하는 은혜를 자손대대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오 주님
거친 바람 소리
사나운 들짐승의 굶주린 눈빛
숨을 곳 없는 황량한 벌판
의지할 것 없는 그곳에
주의 음성 듣고파
엎드려 귀를 열고
마음을 펼칩니다.

주여,
머물러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듣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25일
https://www.youtube.com/watch?v=qNQeyuRJ5ZU


4월 4일(목)

오늘 읽을 말씀
신명기 7:1∼8:20
누가복음 10:38∼11:13
시편 57:1∼5

신명기 7:1∼8:20
모세는 백성들에게 가나안 정복 시에 원주민들을 멸절시키고 그들의 우상을 훼파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는 풍성한 복이 임하고 질병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회고하면서, 그들을 연단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하나님을 잊지 말고 우상을 멀리할 것을 강조했다.  

누가복음 10:38∼11:13
마르다의 집에 머무신 예수님은 접대 준비에 바쁜 마르다보다 말씀 듣는 일에 열중하는 마리아를 칭찬하심으로써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교훈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기도의 내용과 끈질긴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셨다. 

시편 57:1∼5
다윗은 끊임없이 사울의 추적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께 피하여 그의 성호를 찬양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하나님의 성민(聖民, a people holy to the Lord)으로 살아가라!

오늘은 사순절 제 26일입니다.
성민이란 ‘거룩한 백성’을 말합니다.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때로는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할 것 같아 쉽게 결단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고 지키려고 할 때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감사라는 영어 단어 ‘THANK’에서 가운다 알파벳 A를 I로 바꿔보세요.
‘THINK’라는 새로운 단어가 나타납니다.
성민이란 가운데 있는 것만 바꾸면 됩니다.
바꾸기만 하면 ‘감사’ 할 수 있고
바꾸기만 하면 전려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무겁고 힘든 굴레를 내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면 그 가운데 주님이 오셔서 감당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삶을 즐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얇은 종이 한 장 같은 나
바람에 날아갈 수도
불에 타버릴 수도
물에 젖어 찢어질 수도
구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나도 모르는 어디에 두시려고

주님은
나를 사랑하셨다.
아직도 필요한 자리에 앉게 하시려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26일
https://www.youtube.com/watch?v=tvO9epgNVRc

4월 5일(금)

오늘 읽을 말씀
신명기 9:1∼10:22
누가복음 11:14∼11:36
시편 57:6∼11

신명기 9:1∼10:22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들이 다른 족속보다 더 의로워서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광야 40년 동안 얼마나 완악했는가를 회상시켰다. 이와 같이 백성들에게 과거를 상기시킨 이유는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마음의 할례를 받아 다시는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말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권면했다.  

누가복음 11:14∼11:36
예수님이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자, 이것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능력을 힘입은 것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설 수 없음과, 강한 자와 일곱 귀신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신 것을 강조하셨다.  

시편 57:6∼11
다윗은 만민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영광이 온 세계에 높아지기를 간구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상대적 신앙과 절대적 신앙

오늘은 사순절 제27일입니다.
상대적 신앙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절대적 신앙이란 주님 앞에서 너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주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의 신앙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상대적 신앙의 위치에서 자기 자랑을 즐겼습니다. 세리와 비교하기를 좋아했지요. 왜 하필이면 세리와 비교할까요? 차라리 아브라함 또는 모세 아니면 엘리야와 같은 신앙의 선배들도 있었는데 그들과 비교하지 않은 것은 자기 자랑을 즐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광야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것도 결코 그들이 착하고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목이 곧은 백성이지만 그들보다 더 악한 무리들이 광야의 백성들을 더 악하게 유혹할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삶이란 절대적 신앙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 앞에서 나는 용서받을 수 없었던 죄인이었음을 고백하며 용서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경건의 계절에 우리가 함께 회복해야 할 믿음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절대적 신앙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용서 하소서
어리석은 이 죄인을

주님!
깨닫게 하소서
목이 곧은 이 교만을

주님!
채워 주소서
거룩한 영으로

주님!
살아가게 하소서
진리의 길을 따라
주님!
드려지게 하소서
다시 오실 그 날을 위하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27일
https://www.youtube.com/watch?v=gJ1Up0DgGFI


4월 6일(토)

오늘 읽을 말씀
신명기 11:1∼12:28
누가복음 11:37∼12:12
시편 58:1∼11

신명기 11:1∼12:28
모세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자가 받을 복과 거역하는 자가 받을 저주에 대해 말하고 이것을 가나안 땅의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선포할 것을 명했다. 또한 그는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정착한 후 우상을 타파하고,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제물을 드리며, 그 곳에서 제물을 먹되 피는 먹지 말 것을 명령했다.

누가복음 11:37∼12:12
예수님은 외식과 부패로 만연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에 대하여 여섯 가지 화를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경고를 들은 그들은 회개 하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잡으려 하였다. 바리새인들과의 대립이 심화되어 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교훈을 멀리하고 핍박에 대비하라고 경계시키셨다.  

시편 58:1∼11
다윗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비판하면서 악인이 멸망함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날 것을 확신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순절 제28일을 맞이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약속의 땅에 들어갈 백성들이 해애 할 일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요일 5:3).
계명을 지킬 때 주 안에 거하게 됩니다(요일 3:24).
계명을 지키는 자는 곧 자기 영혼을 지키는 것입니다(잠 19:16).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킬 때 천 대까지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출 20:6, 신 5:10).

천대까지 주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키는 약속의 백성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랑 합니다
나의 주님을

지킬 것이요
주님 계명을

노래 하리라
주님 은총을
영원을 향한
소망을 품고
오직
주님만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28일
https://www.youtube.com/watch?v=yxZssxKcj60


4월 7일(주일)

오늘 읽을 말씀
신명기 12:29∼14:29
누가복음 12:13∼12:34
시편 59:1∼5

신명기 12:29∼14:29
모세는 우상 숭배에 대해 거듭 경고하며 거짓 선지자와 가족, 친구들의 우상 숭배 유혹에 빠지지 말 것과 우상을 숭배하는 성읍을 멸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거룩한 백성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규정하여 성결한 삶을 살 것과 십일조를 드릴 것을 교훈했다. 아울러 그들과 더불어 사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돌아볼 것을 권면했다.  

누가복음 12:13∼12:34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지적하셨고, 삶의 목표를 영원한 것에 두도록 교훈하셨다. 또한 새와 백합화의 예를 들어, 먹고 입는 것과 같은 세상의 문제로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가르치셨다.  

시편 59:1∼5
다윗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악인들의 간사함을 고발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여호와의 성민(聖民)으로 살아가라

오늘은 사순절 제5주입니다.
성민(聖民)이란 ‘거룩한 백성’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탄압하던 로마 시대에 ‘콘스탄틴 황제’가 등장하여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밀라노 칙령’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고 예배드리는 신도는 로마의 박해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몰수된 교회의 재산도 돌려받았습니다.”
321년에는 로마제국 모든 시민이 일요일에 쉬도록 했습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부활절을 함께 지키려고 그 날짜를 정하는 규례를 결정했습니다.

봄을 알리는 춘분(春分)이 지난 만월(滿月, 보름) 후 첫 번째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키게 했습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언약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신 13장)
이적과 기사를 믿고 따르지 말라(신 13장)
먹는 것도 삼가라(신 14장) 

시대는 변천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은 변할 수 없습니다.
주일(主日)은 주님의 날이라고 로마 시대에 결정된 믿음 공동체의 고백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말씀의 터전 위에 견고하게 세울 수 있는 은총이 충만한 주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역사의 주인이 되신 주님!
나약한 인생들은
자기의 허물을 감추려고
다양한 문화와 도구들로
소통의 언어마저
자기들끼리 즐기려고 바꾸면서
위장하려고 몸부림칩니다.
하오나 주님!
바람의 손으로
작은 불씨 스치기만 해도
세상은 뒤집어 질 수 있기에
거룩한 주의 날
주의 백성들에게
깨우침을 주소서
거룩한 삶의 흔적을
이 땅에 새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5주 - 절제
https://www.youtube.com/watch?v=oENuR7zoI9w

일 

요일

오늘의 말씀

4

8

신 15:1∼16:22, 눅 12:35∼12:59, 시 59:6∼17

4

9

신 17:1∼19:14, 눅 13:1∼13:21, 시 60:1∼12

4

10

신 19:15∼21:23, 눅 13:22∼14:6, 시 61:1∼8

4

11

신 22:1∼23:25, 눅 14:7∼14:35, 시 62:1∼12

4

12

신 24:1∼26:11, 눅 15:1∼15:32, 시 63:1∼11

4

13

신 26:12∼28:14, 눅 16:1∼16:18, 시 64:1∼10

4

14

주일

신 28:15∼28:68, 눅 16:19∼17:10, 시 65:1∼5


4월 8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15:1∼16:22
누가복음 12:35∼12:59
시편 59:6∼17

신명기 15:1∼16:2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 지킬 규례에 대해서 언급한 후, 가난한 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할 것을 권면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킬 것과 공정한 재판을 위해 재판장과 유사를 세울 것을 명령했다.  

누가복음 12:35∼12:59
예수님은 세 가지의 비유를 통해, 주의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깨어 있어서 주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교훈하셨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 갈등이 심할 것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종말의 때가 오기 전에 회개하여 심판을 면하라고 말씀하셨다. 

시편 59:6∼17
다윗은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신명기 15:15b)

사순절 제29일을 맞이합니다.
너를 속량하셨음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애급에서 종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시집살이에 힘들었던 시어머니가 내 며느리는 시집살이 시키지 말아야지! 이렇게 다짐하는 것은 며느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백성들을 사랑하여 애급의 노예로 살던 그곳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 것처럼 우리들은 주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고 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속량하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어머니의 일생을 지켜보며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시집살이 개집살이!’ 이렇게 노래한다고 합니다.

사순절 경건의 삶을 지켜보는 자녀들에게 신앙의 길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는 진실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은총이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오 주님
지난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싶어요.

생각하는 것조차 싫은
얼룩진 조각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뜯어내어
애급 땅에 던져버리렵니다.

오 주여
새 마음을 열고
모두 좋아하는 것만 채워
기쁘게 나눠주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29일

https://www.youtube.com/watch?v=rhrLuTtQLks

4월 9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17:1∼19:14
누가복음 13:1∼13:21
시편 60:1∼12

신명기 17:1∼19:14
모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자에 대한 처벌과 재판, 왕으로 세움 받은 자의 행실에 관한 규정을 지시해 주었다. 그리고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는 레위 지파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이 되신다는 것을 밝히고, 이방 종교의 영매나 복술자를 용납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내실 선지자를 청종할 것을 명했다. 또한 과실 치사를 범한 자들이 피할 도피성을 택정하고 토지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 것을 명했다.  

누가복음 13:1∼13:21
예수님은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을 학살한 사건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을 예로 들어 회개를 촉구하셨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병 고치신 것을 비난하자, 예수님은 그들의 그릇된 안식일 관념을 지적하셨고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교훈하셨다.

시편 60:1∼12
다윗은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내 평생의 소원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주님을 닮고 싶은 것이 소원입니다.
약속의 백성들이 왕을 세우려면 반드시 타국인이 아니라 형제 중에서 선택하라고 합니다. 선택된 왕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신 17:16)
병마가 많다는 것은 군사력을 말합니다.

둘째는 아내를 많아 두지 말라(신 17:17)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은 후궁을 얻는 것입니다.
후궁은 이웃나라에서 화친의 목적으로 얻기 때문에 유일신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셋째는 율법서를 가까이 하라(신 17:19)
율법서를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멍령과 계명을 기억하고 준수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제30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 40일 기간 중 고난주간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남은 경건의 시간에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광야 길에서 내려주신
만나와 메추라기 보다
더 좋은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소서

주님의 것으로 드렸사오니
생명과 죽음까지도
주 뜻대로 만져주옵소서

사순절 남은 시간에
주 음성 듣게 하소서
주 은혜 가득 채워
모두에게 퍼 날라 주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30일
https://www.youtube.com/watch?v=FK-axRyGcXs

4월 10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19:15∼21:23
누가복음 13:22∼14:6
시편 61:1∼8

신명기 19:15∼21:23
모세는 증언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거짓 증언을 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벌할 것을 명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본토 이외의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할 때는 먼저 적군에게 평화를 청하여 조공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진멸시키라고 명했으며, 가해자를 모르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의 속죄 규례와 장자 상속권의 보호 그리고 불효자의 징계를 명령했다.  

누가복음 13:22∼14:6
구원 얻을 자의 수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또한 헤롯이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에 고창병을 고치시며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주셨다.  

시편 61:1∼8
다윗은 견고한 망대이신 주님을 찬양하며 그의 신실하심을 노래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신명기 19:19b)

사순절 제31일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2019년 사순절에는 다른 때보다 좀 더 경건한 삶을 다짐하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직도 만족할 수 없는 연약한 부분들을 헤아리며 오늘도 다시 주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공동체에는 가정, 교회, 직장, 사회, 국가, 전 세계 이렇게 넓혀갈 수 있겠지요. 공동체 안에 죄악을 제거해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가장 작은 공동체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고난주일을 준비하며 가정에 있어야 할 것과 없어야 할 것을 찾아 정리하는 시간을 함께 준비할 수 있으면 어떨까요?

인간을 가장 인갑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을 돕는 손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는 발
아픔과 탄식을 듣는 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
이러한 사랑으로 거듭나는 은총의 하루가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의 은혜로
세상을 덮어 주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찾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위로를
온 몸에 새기고
고통과 절망의 자리를
채워가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31일
https://www.youtube.com/watch?v=5Ctrt1ygSao


4월 11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22:1∼23:25
누가복음 14:7∼14:35
시편 62:1∼12

신명기 22:1∼23:25
모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곤경에 빠진 형제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돌아볼 것을 가르쳤다. 모든 종류의 혼합주의를 금했으며, 신앙과 생활의 순결성을 중요시했고, 성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규정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총회에서 제외되는 자들에 대해 규정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 보호를 강조했다.

누가복음 14:7∼14:35
예수님은 잔치에 초대받은 자의 비유를 통해 겸손과 자비를 교훈하셨고,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부하는 자가 아니라 부름에 응하는 자임을 강조하셨다. 아울러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헌신해야 함을 말씀하셨다. 

시편 62:1∼12
다윗은 자기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백성들에게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명기 23:1) 

율법 시대에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없는 자는 지제 장애자를 구분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은혜 시대에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라고 하겠습니다.

경건(敬虔, Godliness)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고전 8:3)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고전 8:3)
둘째,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롬 12:12, 마 19:29)

경건은 일생동안 끝없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말씀합니다(딤전 4:7). 

경건이란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속으로부터 성별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특히 마지막 시대에는 요한계시록을 배워 익히므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령님의 통제를 받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갈길 멀고 험해도
저 멀리 뵈는 새 하늘과 새 땅
세속의 물결이 삼킬 듯 달려와도
오직 그곳 향하여
몸과 마음 흔들림 없이
날마다 새롭게 하소서
매 순간마다 이기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의 기쁨 채워
세상에 쏟아 붓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32일
https://www.youtube.com/watch?v=aI8yaEsL9S8


4월 12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24:1∼26:11
누가복음 15:1∼15:32
시편 63:1∼11

신명기 24:1∼26:11
모세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율법들을 제시하면서, 특별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범법자에 대한 처벌은 경중을 따져 적절히 시행할 것과, 상거래에 있어 정당한 저울추를 사용할 것과, 아말렉을 도말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가나안 정착 후 땅의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신앙을 고백하라고 명했다.  

누가복음 15:1∼15:32
바리새인들이 죄인들을 영접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하자, 예수님은 잃은 양과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를 들어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시편 63:1∼11
다윗은 거친 광야에서도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확신하고 감사드리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명기 25:6b) 

현대 사회에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이상한 결혼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이런 제도를 ‘수혼법(Levirate Law)’ 이라고 합니다. 수혼법이란 가족 중의 한 형제가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 그 가문과 기업을 잇게 해주는 규례를 말하는 것으로 계대 결혼법(繼代 結婚法)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수혼제도를 허용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약속하셨는데(창 13:16), 이러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중에 후사가 없어 대(代)가 끊어지는 가문이 생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상치되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수혼법을 통해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신 것입니다.  

사순절 제33일을 맞이합니다.
경건과 거룩한 삶을 대를 이어가며 계승할 수 있는 믿음의 명품 가문을 세워가는 일에 주님의 위로와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수많은 사람들
그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주님의 품으로 안으시고
늘 함께 하기를 그토록 기다리신
자비하신 하나님
한 사람으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빛들로 사용하고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사랑으로 다가오는
그 사랑 힘입어
주의 빛으로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33일

https://www.youtube.com/watch?v=oKxsKfHxxEk

4월 13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26:12∼28:14
누가복음 16:1∼16:18
시편  64:1∼10

신명기 26:12∼28:14
모세는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배불리 먹게 한 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고백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설교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의 자세한 내용을 말한 후,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 에발 산에 돌비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른 다음 그 위에 율법을 기록할 것을 명령했다.  

누가복음 16:1∼16:18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재물을 선용하여 장래의 영원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셨다. 그러나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듣고 비웃었다.  

시편  64:1∼10
다윗은 악인들의 음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청구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복과 저주(신명기 28:6) 

들어가도 복(Blessed)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 
들어가도 저주(Cursed)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백성들에게 복과 저주가 동시에 놓여 있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둘째,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듯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읽고 듣고 지킬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찾아 늘 주와 동행하는 복된 삶이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순절 제34일을 맞이합니다.
고난 받으신 주님의 아픔을 또다시 괴롭히는 어리석은 신앙이 아니라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 앞에 설 때마다
왜 그리 부끄러울까
주님 가신 그 길
마음과 몸을 흔들어
그 길에 눕히고
주님 밟아주고 가소서
주님의 눈물과 땀방울
몸으로 받아
거룩한 흔적 새기고
주와 함께 울리라
주와 함께 가리라
주와 함께 살리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34일

https://www.youtube.com/watch?v=eemO2C5GQcQ

4월 14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28:15∼28:68
누가복음 16:19∼17:10
시편 65:1∼5

신명기 28:15∼28:68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임하는 복과 불순종하게 될 때 임하게 될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교훈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그것을 받은 자의 순종 여부에 따라 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누가복음 16:19∼17:10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들어 재물을 올바로 사용할 것을 교훈하셨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웃에 대한 용서와 믿음의 능력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가르치셨다.

시편 65:1∼5
다윗은 하나님의 은덕을 찬양하며 그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두려워하는 것이 올무가 될 것입니다(신명기 28:60)

광야에서 방황하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것은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따라야 한다는 약속의 삶을 위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약속의 삶을 흔드는 우상을 숭배하는 낯선 땅의 이방인들이 힘이 강하고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마음에 새겨진 약속을 잊어버렸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은 절망에 이르게 합니다.
사순절 제6주 고난주일을 맞이합니다.
나를 위하여 고난 받으신 주님의 삶을 기억하며 남은 날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가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오 주여
여기에 오소서
오 주여
내 맘에 오소서

오 주여
온 땅에 오소서

온갖 두려움을
주님 이름으로 물리치고
행복한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만 따르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6주 - 결정의 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03XaWBKjPoA



사순절 제6주 고난주일 - 예수님의 수난
https://www.youtube.com/watch?v=dCrrvla2m_c

일 

요일

오늘의 말씀

4

15

신 29:1∼30:20, 눅 17:11∼17:37, 시 65:6∼65:13

4

16

신 31:1∼32:47, 눅 18:1∼18:17, 시 66:1∼66:7

4

17

신 32:48∼34:12, 눅 18:18∼18:43, 시 66:8∼66:20

4

18

수 1:1∼2:24, 눅 19:1∼19:27, 시 67:1∼67:7

4

19

수 3:1∼5:15, 눅 19:28∼19:48, 시 68:1∼68:6

4

20

수 6:1∼7:26, 눅 20:1∼20:26, 시 68:7∼68:18

4

21

주일

수 8:1∼9:27, 눅 20:27∼20:47, 시 68:19∼68:27


4월 15일(월)
사순절 제35일, 고난주간 월요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29:1∼30:20
누가복음 17:11∼17:37
시편 65:6∼65:13

신명기 29:∼30:20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사건을 회고하면서 모든 백성에게 언약을 충실히 지키라고 권고했다. 그는 만일 백성들이 그 언약을 어기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서 그 언약의 땅에서 쫓겨날 것이나,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맞아 주실 것임을 선포했다.  

누가복음 17:11∼17:37
문둥병자 열 사람이 긍휼을 구하자 예수님은 그들을 치료하셨다. 그러나 그 중 오직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감사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를 묻자, 예수님은 노아와 롯의 처를 예로 들어 재림 때의 현상을 말씀하셨다.  
시편 65:6∼65:13
다윗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노래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신명기 29:4)

고난주간 월요일을 맞이합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40년 동안 한 벌의 옷과 한 켤레의 신발을 신고 지냈다고 하면 놀라운 일이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놀라운 현장에 머물렀던 백성들이 그 일을 일으켜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놀라운 일이 아닐까요?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주님을 믿고 따르지 않는 것도 놀라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보여 달라고 세상은 아우성치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드려지고 그리스도의 편지로 읽혀질 수 있는 은총의 사순절 제35일을 장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밀물처럼 밀려오는 함성
죽여라!
죽여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주님,
무섭고 두려운 그 함성에
나도 그 소리를 듣고
덩달아 목이 터져라 외쳤지요
죽여라!
죽여라!

뒤 늦은 후회
내가 죽어야 했었는데....
아직도 죽지 못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붙드시는
주님의 사랑에
무릎 꿇고 눈물만 흘립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35일
https://www.youtube.com/watch?v=lLhIWJIWftM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은혜를 기도합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Dzt2thmb08

4월 16일(화)
사순절 제36일, 고난주간 화요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31:1∼32:47
누가복음 18:1∼18:17
시편 66:1∼66:7

신명기 31:1∼32:47
임종이 가까웠음을 안 모세는 자신의 뒤를 이어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지도자로서 여호수아를 세우고 그를 격려한 후, 모든 율법을 기록하여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전수하고 그것을 힘써 지킬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자기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과 우상 숭배로 인해 재앙을 당할 것임을 예언하고 이에 대한 노래를 지어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누가복음 18:1∼18:17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통해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할 것을 교훈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심령으로 겸손히 나아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과 겸손을 가르치셨다.

시편 66:1∼66:7
시인은 권능으로 온 땅을 다스리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신명기 32:52b)

애급에서부터 홍해를 건너 광야 생활 40년 동안 언약의 백성을 위하여 두 손을 들었던 모세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도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지요.

만일 내가 모세의 입장이었다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
별것 아닌 것에도 때로는 불평과 원망으로 투정부리는 내 모습에 고개를 숙입니다.

순종이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내가 행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믿음이 아닐까요?

사순절 제36일 고난주간 화요일을 맞이하며 철저하게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그 뒤를 따르기로 다짐합니다.

믿음의 가정, 순종의 공동체,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아직도 멀었나요?
주 앞으로 가는 길

주 얼굴 뵈올 때
무슨 말을 할까

언제일까요?
주 얼굴 뵙는 날

알 수 없는 그 날
기다리는 마음에
어두워진 창밖을 보며
행여 주님 오실까
마음 조여 기다려봅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 작은 둥지에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36일

https://www.youtube.com/watch?v=yLOOGKPAXn8

https://www.youtube.com/watch?v=6x2oXVUQgko

4월 17일(수)
사순절 제37일, 고난주간 수요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신명기 32:48∼34:12
누가복음 18:18∼18:43
시편 66:8∼66:20

신명기 32:48∼34:12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그가 약속의 땅이 바라보이는 산 위에서 운명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파별로 축복하고 작별을 고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한 모세는 느보 산에 올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운명하여 모압의 한 골짜기에 장사되었다.  

누가복음 18:18∼18:43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코 들어갈 수 없음을 교훈하셨다. 또한 장차 받으실 고난을 예고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리고에서 소경 거지를 치료하셨다.  

시편 66:8∼66:20
시인은 많은 환난을 통해 영혼을 연단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신명기 32:40)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입니다.

소망은 쫓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입니다.


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디는 것입니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끓이는 것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입니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유는 즐기는 것이고,

속박은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고,

울음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기쁨은 바로 행복입니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 줄까요?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과 더불어
오늘도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 십자가 위에서
그 아픔
그 눈물
그리고 한 마디 외침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37일
https://www.youtube.com/watch?v=LEpBFT4KZ2A

고난주간 수요일
https://wwww.youtube.com/watch?v=E29zDwqMCcY

4월 18일(목)
사순절 제38일, 고난주간 목요일

오늘 일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1:1∼2:24
누가복음 19:1∼19:27
시편 67:1∼67:7

여호수아 1:1∼2:24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며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준비시켰으며, 싯딤에 이르러 가나안 정복의 첫 목표지인 여리고에 두 정탐꾼을 보냈다.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여리고의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누가복음 19:1∼19:27
예수님은 자기를 보고자 하는 삭개오를 불러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능력을 개발하고 최선을 다해 충성할 것을 교훈하셨다.  

시편 67:1∼67:7
시인은 복음이 온 세계로 확산되어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오직 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 1:18b)

세상이 점점 더 강퍅해 진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을 이기려면 오직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어떻게 강하고 담대할 수 있을까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는 길이
강하고 담대한 삶의 비결입니다.

사순절 제38일을 맞는 아침에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며
주님처럼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힘차게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오늘의 기도

거친 세상
온갖 술수와 음모
넘실대며 다가오는
비수와 같은 소리
부서지는 몸과 마음 추슬러
주님 도움 기도합니다.

주여,
강하고 담대함으로
헤집고 나갈
지혜 말씀
능력 기도
꽃비처럼 내려 주소서.

사순절 제38일
https://www.youtube.com/watch?v=C5aVGwC6huU

고난주간 목요일
https://www.youtube.com/watch?v=BvYR3O6-l0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4월 19일(금)
사순절 제39일, 고난주간 금요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3:1∼5:15
누가복음 19:28∼19:48
시편 68:1∼68:6

여호수아 3:1∼5:15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에 들어서자 요단 강이 갈라졌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밟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강바닥에서 열두 돌을 취하여 길갈에 세워 후손들을 위한 기념비로 삼았다. 가나안 전쟁에 앞서 백성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에게 할례를 실시하고 유월절을 지켰다. 

누가복음 19:28∼19:48
예수님은 수난 주간의 첫째 날에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불원 장래 임할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우셨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그 곳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시편 68:1∼68:6
다윗은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주가 쓰시겠다(누가복음 19:31b) 

19세기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골(Søren Aabye Kierkegaard, 1813. 5. 5~1855. 11. 11)가 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 왕자가 장차 왕비가 될 여성을 찾기 위해 평복을 입고 여러 곳을 다니던 중에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빈민촌에서 한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왕자는 그 여성에게 첫눈에 반했으나 그녀에게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왕자라고 할지라도 사랑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그 여자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왕자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사랑을 위하여 왕자로서의 모든 권리와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그녀가 사는 동네에 목공소를 차리고 목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이웃들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며 그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왕자는 그들을 사랑하여 아플 때는 함께 아파하였고 기쁠 때는 함께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왕자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접근해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골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와 왕관을 버리고 이 땅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질고를 지시고 고난당하신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받은 만큼 주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큰 사랑을 받았다면 크게 쓰일 것이며 적게 받았으면 적게 쓰일 것입니다. 받은 것이 없다면 쓰임 받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사순절 제39일
많은 사랑을 확인하여 주님의 도구로 아름답게 쓰임 받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나 같은 인생을 위하여
주님 받으신 고난
갚을 길 없어
오직 주의 사랑 안으로
깊이 내려가렵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오렵니다.
주님 오르신 그 길을 따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내 작은 가슴에
그 큰 사랑 채워
터질듯 벅찬 감격으로
세상 물결 거슬러 올라
주님 눈물 흔적 찾아
부활 찬송 부르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 39일
https://www.youtube.com/watch?v=ZQh2jDIVCk4

고난주간 금요일
https://www.youtube.com/watch?v=DXGL7ctesUg

4월 20일(토)
사순절 제40일, 고난주간 토요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6:1∼7:26
누가복음 20:1∼20:26
시편 68:7∼68:18

여호수아 6:1∼7:26
가나안 정복 전쟁에 나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돈 뒤 외치자 성이 무너졌다. 백성들은 라합과 그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죽이고 은금은 하나님께 바쳤다. 그러나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아이 성 공략에 실패하고 말았고, 이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비뽑기를 실시하여 아간으로부터 죄를 자백 받고 그와 그의 가족을 처형했다.  

누가복음 20:1∼20:26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그의 권위를 묻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의 출처에 대해 반문하심으로 그들을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게 하셨다. 그리고 자신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완악함을 악한 농부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시편 68:7∼68:18
다윗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노래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온전히 바친 물건(여호수아 7:1, 11, 12, 13, 15) 

온전히 바쳐진 물건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사람이 소유할 때 공동체 모두에게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한 사람 아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모든 백성들이 크게 실망할 때 여호수아는 차라리 이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밟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아간의 죄를 드러내어 온전히 바쳐진 것을 회복하므로 약속의 땅은 순탄한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사순절 40일 기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합니다.
풍랑을 만난 원인은 나 때문이었다는 선지자 요나의 고백처럼 사순절 마지막 날에 나 때문에 행여 공동체 모두에게 실망과 아픔이 된 것은 없었는지 말씀의 거울 앞에서 나를 깨우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절망의 자리에서 위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으로 부활의 아침을 기다려 봅시다.
☞ 오늘의 기도

어둠의 장막 틈새
밝은 빛 꿈틀거리며
작은 구멍 뚫고
큰 빛으로 다가와
생명의 길을 향한
부활 이정표 우뚝 솟아
오가는 길손들
이 길로 가시라
이 길을 벗어나지 마라
묵묵히 고개 들고
이 길은 생명의 길
이 길은 행복의 길
이 길에서 쉼을 얻으리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순절 제40일
https://www.youtube.com/watch?v=JsOHOv2Ohho

고난주간 토요일

https://www.youtube.com/watch?v=Jtjbranunfk

4월 21일(주일)
부활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수 8:1∼9:27
누가복음 20:27∼20:47
시편 68:19∼68:27

여호수아 8:1∼9:27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재차 아이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 때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했다. 그 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 사람들과 화친 동맹을 맺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나중에 기브온이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장작을 패며 물긷는 일을 시켰다.  

누가복음 20:27∼20:4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후의 상태를 말씀하시며 그들의 영적 무지를 깨우쳐 주셨다.  

시편 68:19∼68:27
다윗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악인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누가복음 20:38) 

부활주일 아침을 맞이합니다.
사순절 굳게 닫혔던 창을 활짝 열고 부활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제부터는 생명의 주를 따라 살아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부활(復活)의 표준은 예수님입니다.
굳게 닫힌 문을 열지 않고도 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베드로가 잡은 고기를 함께 나누며 아침을 드셨습니다.
같이 길을 걷던 제자들의 눈에서 순식간에 사라지셨습니다.
부활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될 그날을 고대하며 날마다 생명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생명으로 죽음을 넘어
영원한 길을 열어주신 주님
어둠 속을 더듬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소망의 빛으로 다가와
어둡고 냉랭한 터널 지날 때
생명의 주를 찬양하며
감사와 기쁨의 길을
다듬어 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부활주일
https://www.youtube.com/watch?v=tO59wJCnQSI

예수 부활 복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GEw31u0v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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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일

오늘의 말씀

4

22

수 10:1∼10:43, 눅 21:1∼21:28, 시 68:28∼68:35

4

23

수 11:1∼12:24, 눅 21:29∼22:13, 시 69:1∼69:15

4

24

수 13:1∼14:15, 눅 22:14∼22:34, 시 69:16∼69:28

4

25

수 15:1∼16:10, 눅 22:35∼22:53, 시 69:29∼69:36

4

26

수 17:1∼19:16, 눅 22:54∼23:12, 시 70:1∼70:5

4

27

수 19:17∼21:26, 눅 23:13∼23:43, 시 71:1∼71:8

4

28

주일

수 21:27∼22:34, 눅 23:44∼24:12, 시 71:9∼71:16


4월 22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10:1∼10:43
누가복음 21:1∼21:28
시편 68:28∼68:35

여호수아 10:1∼10:43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투항했다는 소식을 들은 가나안 남부 동맹군이 기브온을 응징하려 하자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에 여호수아는 군사들을 이끌고 야간 기습을 감행했고, 하나님께서는 이적을 베푸셔서 이스라엘이 적군을 도륙할 때까지 해가 중천에 머물게 하셨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가나안 중부와 남부 지역을 함락시켰다. 

누가복음 21:1∼21:28
예수님은 생활비 전부를 드린 과부를 칭찬하시고, 성전이 훼파될 것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셨으며, 예루살렘의 큰 환난과 인자의 재림을 예언하셨다.  

시편 68:28∼68:35
다윗은 권능과 위엄으로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여호수아 10:12b)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전쟁을 명하신 이유는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가나안 민족의 죄악을 징벌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영적 전쟁을 위한 자세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셋째는 완전히 진멸시켜야 합니다.
넷째는 주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부활주일을 지내고 맞이하는 새 아침의 밝은 햇살과 더불어 봄기운 가득한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동시에 신령한 에너지로 온 몸과 마음을 다스리시는 은총의 하루가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부활의 주여
광명의 빛으로
어둠에 갇힌 우리 비추어
영원한 생명 길 찾아
천국 문 열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4월 23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11:1∼12:24
누가복음 21:29∼22:13
시편 69:1∼69:15

여호수아 11:1∼12:24
남부 지역의 패배 소식을 들은 가나안 북부 왕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메롬 물가에 진을 쳤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진멸하고 북부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가나안 전역을 차지했다. 이스라엘에게 패망한 이방 왕들의 명단을 기록함으로써 가나안 정복 기사를 끝맺었다.  

누가복음 21:29∼22:13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종말을 맞는 성도가 늘 깨어 있어야 함을 교훈하셨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일 방안을 찾자, 사단이 들어간 유다가 돈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 주기로 언약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 만찬 준비를 시키셨다.  

시편 69:1∼69:15
다윗은 극심한 고난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주의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응답하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수 11:15)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고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하셨지요. 그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는 잡아 쳐 죽이고 점령했습니다. 도대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왜 이토록 잔인한 명령을 하셨을까요?

가나안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가나안’은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를 예표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세상에서는 선과 악이 공존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 나라에서는 오직 선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 생명으로 선을 회복하는 일에 승리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굳게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부활 생명의 주여!
일시적 가치
눈을 만족케 하는 것들보다
영원한 가치
마음 곡간에 쌓을 수 있는 것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찾아
그 속에 부활의 씨앗 심고
열매 될 때까지
기도로 가꾸고
말씀으로 양육하여
생명이 생명을 낳는
영원한 기쁨 누리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4월 24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13:1∼14:15
누가복음 22:14∼22:34
시편 69:16∼69:28

여호수아 13:1∼14:15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이 미정복한 지역을 포함하여 가나안 땅을 이미 요단 동편 지역을 분배 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외의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분배할 것을 지시하셨다. 제비 뽑기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았으며, 갈렙은 모세에게 약속받은 헤브론을 요구하여 기업으로 받았다.  

누가복음 22:14∼22:34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유월절 만찬을 통해 자신을 기념하게 하셨다.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언하신 예수님은 누가 큰가를 다투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교훈하시고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셨다.  

시편 69:16∼69:28
다윗은 오직 주님만이 구원의 길임을 고백하며 대적들을 심판하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수 13:1)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다.

여러분의 나이가 얼마인가요?
많다고 느낄 수도 있고, 적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많다와 적다의 기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러한 기준은 사람의 기준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내 나이가 얼마일까요?

하나님의 기준은 해야 할 일을 다 했느냐? 아니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내 나이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빨리 완수해야 할 일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을 찾아 그 일을 마쳤을 때 수고하고 충성된 일군이었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런 칭찬을 기대하며 오늘도 부활의 증인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람을 찾자
주님이 선택한 사람을

사람을 구하자
멸망의 손에 잡힌 사람을

생명을 전하자
죄악의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에게

주여!
이런 믿음으로
이런 마음으로
이런 사람으로
회복(回復)시켜 주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4월 25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15:1∼16:10
누가복음 22:35∼22:53
시편 69:29∼69:36

여호수아 15:1∼16:10
먼저 제비뽑은 유다 지파는 가나안 남부의 넓은 지역을 분배받았다. 갈렙은 헤브론을 정복하여 기업을 얻었다. 다음으로 요셉의 자손인 에브라임 지파가 영토를 분배받았다.  

누가복음 22:35∼22:5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단의 시험에 대비할 것을 교훈하시고 감람 산에서 힘써 기도하셨으나 제자들은 잠이 들었다. 기도를 마치신 후, 예수님은 가룟 유다와 함께 온 자들에게 체포되셨다.  

시편 69:29∼69:36
다윗은 주를 의지하는 자들은 구원받고 그 자손이 흥왕케 될 것을 노래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수 15:19)

갈렙은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그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합니다. 마침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기럇 세벨을 점령하므로 갈렙은 그의 딸 ‘악사’를 ‘옷니엘’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

악사가 출가할 때에 아버지 갈렙이 딸에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러자 악사는 ‘샘물’도 달라고 합니다.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샘물을 구한 것입니다.

부활 생명으로 거듭난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찰스 엘 알렌(Charles L. Allen)’은 ‘하나님의 정신의학(God’s psychiatry)’라는 책에서 세 가지의 시력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신체적 시력(physical vision)
둘째는 정신적 시력(mental vision)
셋째는 영적 시력(spiritual vision)
영적 시력을 제3의 시력이라고 합니다.
영적 시력이 회복될 때 온전히 살아계신 주님만 바라보며 따라갈 수 있습니다.
날마다 나의 영적 시력이 흐려지지 않도록 말씀을 묵상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시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오 주여,
눈을 들어
하늘 뜻 보게 하소서

전능의 주님,
마음 열어
하늘 뜻 새겨 주소서

거룩하신 주님,
온몸 열어
주의 뜻 펼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4월 26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17:1∼19:16
누가복음 22:54∼23:12
시편 70:1∼70:5

여호수아 17:1∼19:16
므낫세 반 지파가 영토를 분배받았다. 요셉 자손이 두 지파이면서도 한 지파 몫을 분배받은 것에 항의하자 여호수아는 스스로 개척하라고 권면했다. 실로에 회막을 세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수아는 아직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를 위해 미정복 지역을 답사하게 하고 베냐민, 시므온, 스불론 지파에게 영토를 할당했다.  

누가복음 22:54∼23:12
체포되어 끌려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서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세 번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집에서 모욕당하신 후, 산헤드린에서 신성 모독죄로 정죄받으셨다. 그 후 예수님은 로마 총독 빌라도와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에게 심문을 받으셨다.  

시편 70:1∼70:5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수 17:18) 

‘여호수아’는 요셉의 족속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라.” 이렇게 분배합니다.

능력이 있는 지파에게 더 많은 것을 분배합니다. 부모의 마음은 가장 약한 자녀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능력이 많은 지파에게 험악한 산지까지 주어 개척하라고 하셨습니다.

개척자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안일하게 자리를 잡는 신앙이 아니라 정말 믿음의 사람이라면 어려운 교회 어려운 환경을 찾아가서 극복하고 바르게 세우는 일에 헌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 생명의 신앙이 아닐까요?

우주 비행사 에드윈 올드린(Edwin Aldrin) 대령이 헝가리의 한 대학을 방문하여 “달나라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강연을 듣고 있던 어느 대학생이 “소련의 가가린은 우주에 가서도 하나님을 못 보았다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십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영의 시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부활 생명의 신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을 회복(回復)하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 오늘의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내 눈을 떠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보게 하소서

능력의 하나님
내 눈을 떠서
나를 지키시는
주의 손을 붙잡게 하소서

험하고 어려운 고갯길
홀로 걷는 언덕 아닌
주님과 함께 걷는
믿음과 소망으로
사랑의 꽃길 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4월 27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19:17∼21:26
누가복음 23:13∼23:43
시편 71:1∼71:8

여호수아 19:17∼21:26
아직 기업을 받지 못한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가 기업을 분배받음으로 영토 분배를 마쳤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도피성을 요단 동편에 세 곳, 요단 서편에 세 곳을 선정했다. 그리고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자손들에게는 각 지파의 기업 중에서 48성읍을 주어 그 곳에서 살게 하였다.

누가복음 23:13∼23:43
예수님에 대한 송사가 유대인의 종교 문제임을 안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으나, 무리들은 예수님을 죽일 것을 요구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무리들의 폭동을 우려해 사형을 언도했고, 이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시편 71:1∼71:8
시인은 어릴 적부터 소망이 되신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수 20:2∼3) 

도피성(Cities of Refuge)이란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계획된 방법입니다.

도피성으로 피신한 사람은 확실한 안전을 보장받고 보복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도피성을 관리하는 레위인들은 우발적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건전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그들을 돌봐 주었습니다. 만일 가해자가 도피성을 나와 세상으로 돌아올 경우, 그는 전보다 더 나은 시민이 되고 전보다 더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아담 클라크(Adam Clarke)는 이러한 생활 방식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가해자는 더 현명해지고 더 성숙해질 수 있었으며, 자신의 하나님께 은총을 구하고 더 나은 세상에서 복을 누릴 수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으나 주님께서 도피성이 되어 주를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부활 생명 신앙으로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이웃들에게도 전할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기를 기도합시다.
☞ 오늘의 기도

생명의 주여
봄 푸른 나무마다
새싹이 솟아나듯
뭇 성도들 마음에
생명 씨앗 터트려
소망의 창에 꽃으로
믿음의 마음에
늘 푸른 생명으로
사랑의 눈에
봄빛으로 다가오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4월 28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21:27∼22:34
누가복음 23:44∼24:12
시편 71:9∼71:16

여호수아 21:27∼22:34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이 얻은 성읍들이 기록되어 있다. 정복 전쟁이 그치고 영토 분배가 종료되자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 지파들에게 귀향을 명령했다.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가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사람들이 요단 강변에 큰 단을 쌓았다. 우상 숭배를 위해 단을 세운 것으로 오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분노했지만 그들의 해명을 듣고 오해를 풀었다. 

누가복음 23:44∼24:12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지냈다. 안식 후 첫날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려고 무덤에 갔으나 무덤은 비어 있었다. 여인들은 천사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시편 71:9∼71:16
시인은 대적들의 조롱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주께 대한 소망을 찬송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수 22:18) 

오늘 내가 죄를 범하면 내일 모든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오늘을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알래스카 주는 미국 본토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큰 땅입니다(60만 평방마일, 160만 km²).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아무데도 쓸모없어 보이는 얼음덩어리 땅을 제정러시아로부터 $720만에 사들였습니다. 미 의회는 발칵 뒤집혀 대통령에게 온갖 질책과 공격을 가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황금과 황금박스라고 합니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그 땅의 가치를 예견의 눈을 가진 사람은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내가 복을 받으려는 현실의 눈을 크게 떠서 내일 내 가족들이 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의 삶에 성공하시기를 기도합시다.

☞ 오늘의 기도

만복의 근원이 되신 주여
모두가 원하는 복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복
복을 잡기 전에
주님 잡게 하소서
내가 만난 주님
후손들에게 전하여
대대로 그 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일 

요일

오늘의 말씀

4

29

수 23:1∼24:33, 눅 24:13∼24:53, 시 71:17∼71:24

4

30

삿 1:1∼2:23, 요 1:1∼1:28, 시 72:1∼72:7

5

1

삿 3:1∼4:24, 요 1:29∼1:51, 시 72:8∼72:19

5

2

삿 5:1∼6:40, 요 2:1∼2:25, 시 73:1∼73:14

5

3

삿 7:1∼8:35, 요 3:1∼3:21, 시 73:15∼73:28

5

4

삿 9:1∼9:57, 요 3:22∼3:36, 시 74:1∼74:11

5

5

주일

삿 10:1∼11:40, 요 4:1∼4:26, 시 74:12∼74:23


4월 29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여호수아 23:1∼24:33
누가복음 24:13∼24:53
시편 71:17∼71:24

여호수아 23:1∼24:33
여호수아는 두 차례에 걸친 고별 설교를 통해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제시하며 오직 하나님만 섬길 것을 백성들에게 권면했다. 과거의 역사를 회고하며 이스라엘을 위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을 섬기든지 이방 신을 섬기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이에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결의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한 후 죽었다.  

누가복음 24:13∼24:53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자신의 부활을 확신시켜 주셨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열한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을 때 그 가운데 나타나셔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부활을 확신시키시고 복음을 전파할 것을 명하신 후, 베다니에 이르러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시편 71:17∼71:24
시인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의를 찬양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받기를 간구하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수 23:8)

여호수아는 나이 많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에 자리 잡은 백성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 때 신앙의 어른으로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이렇게 유언합니다.

믿음의 길을 걸었던 신앙인으로 나이가 많아질 때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들려줄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셨는지요?

광야의 거친 삶에서 애급을 그리워했던 백성들입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주위 이방 신들이 더 크게 보이고 좋게 보이는 백성들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교회를 가야 하는가?
산으로 바다로 가야 하는가?
해외여행을 가야 하는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자녀들에게 목표를 정하고 그곳으로 당당하게 갈 수 있기를 기도는 은혜가 행복하게 느껴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오 주님
내 갈길 멀고 험해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은혜
온 몸에 담고
작은 입을 열어
주를 찬송합니다.

자비의 주여
남은 길 얼마일지
나는 알 수 없어도
지금까지 인도하심 믿고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주님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
믿음의 자녀들로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4월 30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사사기 1:1∼2:23
요한복음 1:1∼1:28
시편 72:1∼72:7

사사기 1:1∼2:23
여호수아 사후, 미정복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유다 지파는 시므온과 연합하여 전쟁을 수행했고 여기서 옷니엘이 큰 활약을 했다. 나머지 지파들도 정복 활동에 나섰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가나안 족속들과 타협하여 함께 살면서 그들의 우상을 섬겼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보김에 나타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책망하며 그들이 쫓아내지 못한 자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요한복음 1:1∼1:28
만물보다 먼저 계신 예수님은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세례 요한은 빛이신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며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시편 72:1∼72:7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번영을 묘사하면서 장차 있을 메시아 왕국의 번영상을 예시해 주고 있다. 

☞ 오늘의 묵상
- 내게 복을 주소서(삿 1:15a) 

누구나 복을 원합니다.

갈렙은 ‘기럇 세벨’을 점령하는 사람에게 그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침 ‘옷니엘’은 그것을 점령하여 악사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갈렙은 출가하는 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묻습니다. 이때 악사는 아버지 갈렙에게 밭과 더불어 샘물을 달라고 합니다. 당시에 밭과 샘물은 큰 재산이었습니다. 좋은 땅과 좋은 물은 좋은 농산물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복의 지름길을 아시나요?
복의 지름길은 ‘지혜’ 라고 합니다.
지혜는 곧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왜 그 교회에 다닙니까?
이런 질문에 ‘예수님 때문에’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신앙은 복 받은 믿음입니다. 이런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거기 계시기에
그곳을 사모합니다.

주님 거기 계시기에
그곳을 바라봅니다.

주님 거기 계시기에
그곳을 찾아갑니다.

날마다 
주님 계신 그곳을 향하여
믿음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네 생물의 정체(요한계시록 4:6∼11) / 설교 원고(2019-06-02)

네 생물의 정체(요한계시록 4:6∼11)


‘요한계시록’을 ‘계시록(啓示錄)’ 이라고 합니다. 계시록은 비밀이 아닙니다. 비밀(秘密)이란 보여주면 누구든지 알 수 있는 내용을 말합니다. 반면에 계시(啓示)란 보여줄지라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치거나 설명해 주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을 말합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비밀록(秘密錄)’이 아니라 ‘계시록(啓示錄)’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전체 내용은 404구절 입니다. 404구절 중에 구약에서 인용한 말씀이 278구절 입니다. 278구절은 대략 68% 분량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려면 구약과 관련된 말씀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구약의 말씀을 읽었을 때는 요한계시록처럼 어렵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에서 계시와 환상은 부분적으로 소개되었으나 요한계시록은 집중적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연관된 구약의 말씀과 함께 읽어가면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도입 이야기)
어느 장로교회 목사님이 천국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천사와 다투고 있었다고 합니다. 천사가 “왜 천국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느냐?” 하고 물었더니 목사님의 대답이 “천국에 24장로들이 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장로교회에서는 당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을 합니다. 당회는 목사님과 장로님들로 구성된 교회에서 최고의 의결기관입니다. 목사님이 장로님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겠느냐 하는 우스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지난주일 설교 요약)

지난주일은 ‘하늘 보좌’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하늘 보좌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은 세 개의 보석, 무지개, 24장로들 입니다.

세 개의 보석에는 ‘벽옥(Diamond)’은 ‘하나님의 거룩, 의, 빛’을 상징합니다. ‘홍보석(Ruby)’은 ‘하나님의 심판, 구속’을 상징합니다. ‘녹보석(Emerald)’은 ‘하나님의 자비, 은혜’를 상징합니다. ‘무지개(Rainbow)’는 ‘언약’을 의미합니다. ‘24 장로’들은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있는 구약 시대에 성전 제사를 돕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 선택된 수를 의미하며 동시에 구원받은 성도들을 대표하는 ‘천상적 존재(天上的 存在)’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네 생물의 정체’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4:6∼11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묵시문학이란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100년 사이에 형성되었습니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에 대한 내용을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징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눈’의 기능은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네 생물의 안과 주위에 가득하다는 것은 ‘통찰력’을 말합니다.

오늘의 본문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구약의 말씀은 에스겔 1:4∼11입니다. 에스겔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스겔 1:4∼11
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6.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 같이 빛나며,
8.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요한계시록 4장에서 소개된 네 생물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먼저 구약 에스겔서에서 소개한 네 생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에스겔서의 역사적 배경

기원전 597년 여호야긴 왕 시대 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은 포위되고 유다의 귀족들과 청년들 일만 여명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붙잡혀간 포로들 가운데 제사장 부시(멸시)의 아들 에스겔(하나님이 강하게 함) 선지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에스겔의 나이가 30세쯤 되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그발 강(경계)가에서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세 개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에스겔 1장). 세 개의 환상이란 ‘네 생물에 대한 환상’과 ‘바퀴에 대한 환상’ 그리고 ‘보좌에 대한 환상’ 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기원 후 90∼96년 경 로마 황제의 기독교 탄압으로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을 본 때는 기원전 597년이었고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본 때는 기원 후 90∼96년 이었으므로 대략 그 시기의 차이는 700년입니다.  

첫째, 네 생물의 환상(에스겔 1:5, 10, 참조 4∼14절)

5절,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10절,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탈무드에서 네 생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람(Man)은 피조물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존재를 상징합니다.
사자(Lion)는 들짐승가운데 가장 용감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소(Cow)는 모든 가축 중에서 재물과 헌신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소를 ‘송아지’라고 합니다.
독수리(Eagle)는 새(鳥類)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복음서를 네 생물에 비유하여 가르쳤습니다.

마태복음의 수신자는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왕으로 오신 메시아라고 하여 마태복음을 ‘사자복음’ 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의 수신자는 로마인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섬기려고(종) 오신 메시아라고 하여 마가복음을 ‘황소복음’ 또는 ‘송아지복음’ 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의 수신자는 헬라인들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의 관심은 철학이었습니다. 철학은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로 오신 메시아라고 하여 ‘사람복음’ 또는 ‘인자복음’ 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의 수신자는 모든 인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라고 하여 ‘독수리복음’ 이라고 합니다.

복음서의 특징으로 표현된 네 생물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자는 하나님의 통치의 지존하심
송아지(황소)는 하나님의 통치의 능력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의 지혜
독수리는 하나님의 통치의 신속함(탁월함)

그런데 오늘날은 에스겔 선지자 시대처럼 바벨론의 포로가 된 시대가 아닙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처럼 밧모 섬에 유배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네 생물을 통해서 오늘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을 본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요한계시록 4:8)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묵시문학에서 눈은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임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도행전 1:11). 그런데 하늘로 올라가신 그 예수님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신다고 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1:4, 16:5, 4:8). 지금 이 자리에서 날마다 우리들이 생활하는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고 들어야 하고 지켜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네 생물처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자와 같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자는 모든 동물들 중에서 가장 힘이 강합니다. 힘이 강하다는 것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한 영적인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의 힘과 말씀의 능력은 악한 영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말씀의 능력으로 악을 물리치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의 말씀을 송아지와 같이 깨달아야 합니다.

송아지와 황소는 예로부터 재산과 부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송아지와 같이 깨닫는다는 것은 말씀에 부요한 신앙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말씀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요한계시록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명하여 더러운 귀신아 나오라!
예수님께서는 병든 사람에게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과 같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과 같이 깨닫는다는 것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최고의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신앙이 지혜로운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나님의 말씀을 독수리 같이 깨달아야 합니다.

독수리 같이 깨닫는다는 것은 분별력(分別力)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수리는 높은 하늘에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작은 동물 닭과 쥐와 같은 것도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날아와서 낚아챕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력을 회복하여 악한 영의 가르침과 지배를 받지 않고 거룩한 영의 가르침과 지배를 받아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열왕기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둘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요한계시록 4:9∼11)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네 생물들과 24장로들은 하늘 보좌 주위에서 찬양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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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보좌(요한계시록 4:1∼5) #. 2 / 설교 원고(2019-05-26)

하늘 보좌(요한계시록 4:1∼5)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지난주일 소개했던 하늘 보좌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늘 보좌는 로마 황제가 앉아있는 땅의 보좌와 비교하여 어느 보좌가 더 위대한가를 알려주기 위한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로마 황제의 보좌는 세 개의 단어로 그 힘을 자랑했습니다. 첫째는 로마 황제는 주님이시다! 라는 ‘쿠리오스’, 둘째는 로마 황제가 입성하셨다! 라는 ‘파루시아’, 셋째는 기원전 312년 세계 최초의 군사 포장도로 550km를 건설한 ‘아파가도’ 라는 세 단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늘 보좌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 있습니다. 로마 황제가 밧모 섬에 있는 요한을 불러내면 즉시 처형당할 긴박한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환상을 통하여 하늘 보좌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비록 육신은 밧모 섬에 갇혀 있지만 하늘 보좌를 보면서 땅에 속한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교회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4장과 5장은 하늘의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상의 교회에서는 칭찬과 책망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상의 교회에서는 책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천상의 교회와 같은 교회로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하여 영적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고 몸부림치며 나아갈 때 21장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땅에서는 아직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를 소개합니다.

(도입 이야기)
최근 한국에서 ‘백궁 명패’를 구입하는 사람은 죽어서 심판에서 제외된다고 선전하는데 ‘백궁 명패’ 한 개의 가격은 300만원이며 두 사람이 함께 구입할 때는 할인가 500만원으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백궁 명패’를 구입한 사람은 모든 질병을 치유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여러분, 백궁 명패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백궁 명패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 건물 6층과 그 근처에 강의실을 구입했는데 그 강의실 가격 하나에 9억 원이라고 합니다. 강의실을 두 개를 구입했으면 18억입니다. 백궁 명패 몇 개를 팔아야 18억이 될까요? 600명 이상이 구입했다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경기도 양주에 ‘하늘 궁’ 이란 집을 소유하고 있고 그 주위에 많은 땅을 매입하여 ‘우주 대통령’ ‘세계 황제’의 마을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주말에 ‘하늘 궁’에 입장하는 비용은 10만원이라고 합니다. 하늘 궁에 입장한 사람들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기념으로 나눠주기도 하고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기발하고 엉뚱한 공약을 제시했던 ‘허경영’씨입니다.

(전개 이야기)
사도 요한은 유대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소개되는 내용이 구약과 연관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일 후에(메타 타우타, Μετὰ ταῦτα, After these things)’는 ‘이 일들 후에’ 라는 복수형으로 크게 두 가지 해석이 한국교회에서 소개됩니다.

첫째는 ‘휴거 이 후에’

이러한 해석은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요한계시록은 역사적인 사건의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소아시아 지역에 핍박을 받는 일곱 교회 중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와 연결할 때 가능한 해석입니다(3:21).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역사 시대적 배열이 아니라 환상과 계시의 순서에 따른 배열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해석이 아닙니다.

둘째는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사도 요한은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발아래 죽은 사람처럼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이 말씀과 연결하는 해석입니다(1:17∼19).

열린 문 -요한계시록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늘에 열린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문은 열려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
하늘에서 볼 때는 내려가기 위한 출구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입문(入門, 들어가는 것)
땅에서 바라볼 때는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열린 문으로 누가 들어갈 수 을까요?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우스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천국에서 갑자기 거대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천국에 이미 올라와 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올 때는 잔치를 베풀어주지 않았는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올라오기에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는가 하며 어느 장로님이 잔치를 준비하던 천사에게 ‘누가 올라오는데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준비합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잔치를 주관하는 천사가 “오늘 모처럼 한국에서 목사 한 사람 올라온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우스개 이야기를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은 맡았다고 열려진 하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목사라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과연 누가 열려진 하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렇다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열려진 하늘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불못(지옥)에 던져 진다(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짐승(우상)에게 경배한다(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마땅히 될 일 - 요한계시록 1:1 / 반드시 속히 될 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이리로 올라오라 =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 요한계시록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4:2∼3, 보좌(寶座)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다니엘 7:9(王座)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사람들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 본문에서 소개됩니다.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이외에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책이 아니라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 속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속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유대인의 전통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출애굽기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이와 같은 전통을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뵙고 고백한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디모데전서 6:15∼16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보좌는 통치와 심판과 영광의 자리를 상징합니다.
하늘 문이 열렸을 때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목격했던 하늘 보좌를 지금 이 자리에서 보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양을 특별히 세 가지 보석과 보좌 주위를 둘러있는 무지개로 설명합니다.

철학자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B.C 428년)은 하늘 보좌의 세 가지 보석을 “파이돈(Φαίδων)”이란 저서에서 ‘보석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에스겔 1:26∼28, 남보석, 무지개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그러나 성경적인 의미로 세 가지 보석은 구약 전통에 따라 하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에 익숙했던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모양을 오직 보석으로만 설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돌과 보석의 차이는 무엇인가?
돌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보석이란 갈고 닦아서 광채가 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돌과 같지만 성경의 문자를 읽고 듣고 지킬 때에 보석이 될 수 있습니다.

벽옥(碧玉)(Diamond) - 요한계시록 4:3, 21:11, 18, 19
‘벽옥’은 귀한 보석이라고 합니다(21:11). 벽옥은 하얗고 투명한 유리 같은 보석으로 빛과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홍보석 - 요한계시록 4:3, 21:20
‘홍보석’은 붉은 빛의 보석으로 구속을 상징합니다.

녹보석(綠寶石) - 요한계시록 4:3, 21:19
‘녹보석’은 푸른색의 보석으로 소망을 상징합니다.

무지개(Rainbow) - 언약

무지개는 언약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재판장이 되십니다. 창세기 9장에서 홍수 심판 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으로 보여주신 것이 언약의 무지개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으로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도 앞으로도 우리는 그 언약적인 사랑을 힘입어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비록 사도 요한처럼 밧모 섬에 갇혀 있지만 밧모 섬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좌 주위에 24 장로들
4:4,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쓴 24장로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요한계시록은 유대묵시문학이란 장르에 속합니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상징’을 많이 사용합니다. 물론 24란 수를 상징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救援)받은 백성들의 대표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더하면(+) 24가 됩니다. 또한 12지파와 12사도를 곱하면(☓) 144가 되며 144에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수라고 해석합니다.

둘째는 천사(天使)

하나님이 거느리는 수많은 천사들 중에 마치 보좌 주위를 지키는 24 수호천사라고도 합니다.

셋째는 성전 제사에 필요한 수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24라는 수는 성전 제사에 반드시 필요한 수를 의미합니다.

역대상 24:7∼19
첫째로 제비 뽑힌 자는 여호야립이요, 둘째는 여다야요, 셋째는 하림이요, 넷째는 스오림이요, 다섯째는 말기야요, 여섯째는 미야민이요, 일곱째는 학고스요, 여덟째는 아비야요, 아홉째는 예수아요, 열째는 스가냐요, 열한째는 엘리아십이요, 열두째는 야김이요, 열셋째는 훕바요, 열넷째는 예세브압이요, 열다섯째는 빌가요, 열여섯째는 임멜이요, 열일곱째는 헤실이요, 열여덟째는 합비세스요, 열아홉째는 브다히야요, 스무째는 여헤스겔이요, 스물한째는 야긴이요, 스물두째는 가물이요, 스물셋째는 들라야요, 스물넷째는 마아시야라. 이와 같은 직무에 따라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의 아버지 아론을 도왔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더라. 

제비를 뽑아 성소에서 섬길 자를 뽑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성소를 담당할 사람은 24명이었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번개와 뇌성과 음성 - 출애굽기 20: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요한계시록 16: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요한계시록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요한계시록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욥기 37: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흰옷과 세마포의 의미

요한계시록 7:13∼15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밧모 섬과 같은 곳에 갇혀 있을지라도 열려진 하늘 문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시련과 연단의 과정을 끝까지 인내하므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5, 일곱 등불 하나님의 일곱 영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일곱이란 수는 ‘하늘의 수 3’과 ‘땅의 수 4’를 더한 것으로 ‘완전수’ ‘충족수’ ‘만족수’ ‘행복의 수(Luck Seven)’ 라고 합니다. 따라서 일곱 영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성령을 상징합니다.

일곱 영에 대한 다른 명칭
첫째, 일곱 등불(요한계시록 4:5)
둘째, 일곱 눈(요한계시록 5:6, 스가랴 4:10) - 참조 스가랴 4:2∼10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스가랴 4:1∼10
①.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②.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③.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④.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⑥.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⑦.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⑧.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⑨.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⑩.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일곱 영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일곱 영은 일곱 가지 성품을 말합니다. 일곱 가지 성품이란 성령의 다양한 기능을 말합니다. 성령은 열매를 맺게 하는 영이라고 하겠습니다.

1. 여호와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2. 지혜의 영(the spirit of wisdom)
3. 총명의 영(the spirit of understanding) - 슬기, 명철
4. 모략의 영(the spirit of counsel) - 모략, 상담
5. 재능의 영(the spirit of power) - 권능, 용기
6. 지식의 영(the spirit of knowledge)
7.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the fear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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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보좌(요한계시록 4:1∼5) #.1 / 설교 원고(2019-05-19)

하늘 보좌(요한계시록 4:1∼5)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두 가지 구조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계시의 구조와 둘째는 공간적 구조라고 하겠습니다. 
계시의 구조는 본 것(1:19∼20)과 지금 있는 일(2∼3장)과 장차 될 일(4∼22장)을 말합니다.
공간적 구조는 밧모섬(1∼3장)과 하늘(4∼11장)과 땅(12∼22장)에서 펼쳐질 일들을 말합니다.

밧모 섬이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요한에게 갑자기 하늘 보좌를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늘 보좌를 보여주신 이유를 당시 로마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11대 도미티안(도미티아누스, 51. 10. 24∼96. 9. 18) 시대에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극심하던 때에 계시와 예언과 환상으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 있었는데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앉아 있는 하늘나라의 보좌를 본 것입니다.

보좌(寶座)란 무엇인가?
보좌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는 세 가지로 소개됩니다.
1. 임금이 앉는 자리
2. 부처가 앉는 자리
3. 하나님이 앉는 자리

보좌(寶座)란 한자어의 의미는 보배 보(寶), 자리 좌(座) 즉 ‘보배로운 자리’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의 보좌는 사전적 의미와 한자의 의미를 능가하는 엄청난 자리를 말합니다. 과연 로마 황제의 보좌(寶座)는 어떤 자리이었을까요? 로마 황제의 보좌를 설명하기 위해서 몇 개의 단어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쿠리오스(κύριος)

‘쿠리오스’ 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습니까? ‘쿠리오스’란 ‘주’라는 뜻입니다. 도미티안 황제는 로마 황제를 신격화 하려고 “가이사가 주가 되신다!(도미누스 에트 데우스, dominus et deus)” 라고 불러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성경에서는 애급 왕을 ‘바로’ 라고 불렀고, 로마 황제는 ‘가이사’ 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가이사’ 라고만 부른 것이 아니라 “황제가 주가 되신다(도미누스 에트 데우스, dominus et deus)” 라고 불러야 했습니다. 이것을 로마의 11대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황제 우상화 작업이라고 합니다.

만일 황제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의식주 생활이 몹시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도를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이 표가 없으면 매매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받는 표를 짐승의 이름과 그 수 즉 사람의 수 666 이라고 합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를 가리켜 “주님이자 하나님(도미누스 에트 데우스, dominus et deus)” 이라고 부르게 하는 명령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칭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라는 헬라 단어 ‘쿠리오스(κύριος)’는 오직 예수님만이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 때에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신사에 가서 참배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신사에 참배하면 편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참배를 거부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받거나 아니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로마 시대에도 동일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둘째,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라는 단어는 주로 ‘왕의 임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파루시아라’ 라는 단어가 ‘재림’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로마 황제가 어느 도시를 방문할 때 황제가 나타나는 것을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라고 외쳤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 하고 외쳤던 것처럼 로마 황제가 어느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황제를 향하여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하며 외쳤습니다. 이것은 로마 황제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황제는 주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가 되신다는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므로 시각한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엄청난 권력 앞에서 황제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습니다.

셋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 lead to Rome)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 lead to Rome)”

이런 말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말이 유래된 배경이 무엇일까요?

기원 전 312년 ‘아피우스’ 라는 설계자에 의해서 대략 550km의 군사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도로를 ‘아피아가도’ 라고 합니다. 아피아가도는 세계 최초의 포장 도로 라고 합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에 완공한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이라고 합니다. 공사 기간이 2년 6개월이었기에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로마의 아피아가도는 기원전 312년 경부고속도로보다 2천 년 전에 건설된 포장도로이었고 경부고속도로보다 무려 100km 더 긴 도로라고 할 때 당시 로마의 권력과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인들은 아피아 가도를 ‘도로의 여왕’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황제의 보좌는 엄청난 크기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또한 로마 황제의 보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의 보좌는 세 가지 자랑거리였습니다.

첫째는 통치(統治)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은 로마 황제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로마 의 군사력은 막강한 힘을 갖고 세계를 제패하려고 했습니다.

둘째는 심판(審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명제에서 당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은 오직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가 사형을 명령하면 죽임을 당하고 석방을 명령하면 살인자도 자유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는 영광(榮光)

로마 황제가 되어 그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당시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 자리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있습니다. 이러한 사도 요한에게 하늘 보좌를 보여주셨다는 것은 로마 황제가 속한 땅의 보좌와 하나님이 계신 하늘 보좌와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위대한 것인가를 알려주시는 환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집무하는 백악관을 방문했던 사람의 우스개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예전에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원들이 백악관을 방문한 후 숙소로 돌아와서 손을 씻지 않기에 왜 그러느냐? 하고 물었더니 이 손이 미국 대통령과 악수한 손이라고 자랑하더랍니다.

한국 대통령이 집무하는 곳은 청와대라고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 에 초청을 받아 당시 유행했던 점심 식사는 칼국수이었는데 한 번은 어느 목사님이 청와대에 초대를 받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칼국수를 먹었는데 양도 적고 너무 긴장해서 청와대에서 나오자마자 근처 식당에 가서 칼국수 한 그릇 더 먹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백악관에 초청을 받아도 그것은 땅에 속한 보좌입니다.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도 그것은 땅에 속한 보좌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힌 초라한 모습이지만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가서 하늘 보좌를 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요한은 예수님의 발아래에 죽은 자같이 엎드린 상태에서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열린 하늘 문으로 인도되어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고 있습니다.

밧모 섬에 갇혀 있을 때는 이 세상을 통치하는 사람이 로마 황제 가이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인도된 사도 요한은 로마 황제의 보좌가 아니라 하늘 보좌 즉 하나님의 보좌를 목격합니다. 세상에서는 로마 황제가 절대 권력을 갖고 통치하는 것 같았지만 하늘 보좌를 보는 순간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지금도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습니까?

하늘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하늘의 반대는 ‘땅’입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를 의미합니다.
하늘과 땅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와 크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풍자하는 우스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정신병원에 두 환자가 입원했다고 합니다. 한 환자가 ‘내가 예수다!’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한 환자가 ‘나는 너와 같은 아들을 둔 적이 없다!’ 하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늘과 땅의 차이와 크기를 모르는 사람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늘 보좌와 땅 보좌의 차이를 모르고 하늘 보좌와 땅의 보좌의 크기를 모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4장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의 보좌와 하늘 보좌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현실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하늘 보좌를 보게 된 것은 땅의 보좌보다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은총의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영광스러운 예수님께서 그 오른 손에 일곱 별 즉 일곱 교회의 사자와 일곱 금 촛대 즉 일곱 교회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이 끝난 후 사도 요한은 열려진 하늘 문으로 들어가 하늘 보좌를 보게 됩니다.

4장부터 요한계시록의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된다고 하겠습니다. 왜 하늘 보좌부터 보여주셨을까요? 그것은 하늘 보좌와 땅 보좌의 엄청난 차이를 알려주시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늘 보좌와 땅 보좌의 차이와 크기를 환상과 계시가 아니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에게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권력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의 감격스런 마음으로 오늘의 본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寶座)’ 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 45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네 35번은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하늘 보좌는 하나님의 주되심(Lordship)과 통치(統治)와 권능(權能)과 권력(權力)을 말합니다. 로마 황제의 보좌와 비교할 때 로마 황제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와 비교할 수 없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게 하는 환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로마 황제로부터 핍박을 받아 밧모 섬에 갇힌 초라한 신세 같지만 하늘 보좌를 보여주시므로 영원한 왕이 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실 것이며 끝까지 인내하며 이긴 자에게는 승리의 상급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부귀영화와 비교하지 말고 하늘 보좌를 생각하며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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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요한계시록 4:1) / 설교 원고(2019-05-12)

열린 문(요한계시록 4:1)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말씀이 아니라 구조를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계시의 내용적 구조와 공간적 구조입니다. 계시의 내용적 구조는 사도 요한이 본 것(1:19∼20)과 지금 있는 일(2∼3장)과 장차 될 일(4∼22장)을 말합니다. 공간적 구조는 밧모섬에서(1∼3장), 하늘에서(4∼11장), 땅에서(12∼22장) 일어나는 사건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4장의 본문은 내용적으로는 장차 될 일을 말하고 구조적으로는 하늘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째, 하늘에 문이 있을까요? (있다, 없다)
둘째, 하늘에 문이 없다면 왜 하늘 문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상상력, 성경적)
셋째, 하늘 문으로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종교인, 기독교인)
넷째, 하늘 문은 누가 열까요? (성도, 예수님)

오늘 설교 제목은 ‘열린 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하늘에 열린 문(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늘에 문이 있을까요? 하늘에는 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다고 합니다. 과연 사도 요한이 보았다는 하늘에 열린 문이란 무엇일까요?

* 열린 문(θύρα ἠνεῳγμένη) thura eneogmene
2374 - θύρα, door 
455 - ἀνοίγω, open 
   
‘열린 문’이란 문법적으로 ‘현재완료형’입니다. 현재완료형이란 “문이 과거에 열려졌고 지금까지 계속하여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현재완료형이란 경험, 완료, 계속, 결과를 포함합니다.
예를 들면 ‘구원받았다’는 신앙은 경험과 완료와 계속과 결과를 모두 포함한 내용입니다.

첫째는 경험(Experience) - 과거에 구원을 받았다.
둘째는 완료(Completion) - 구원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셋째는 계속(Continuously) - 구원받은 사건은 지금도 계속된다.
넷째는 결과(Result) - 구원의 사건은 하늘 문을 지날 때 결론을 맺는다.

목회 현장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매년 어버이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교인들 중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신 가정의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역은 비록 나이가 들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어렵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를 영접하고 주님 품에 안기도록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어버이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겠다는 약속과 신앙고백을 확인한 후에 어버이 세례식을 진행했습니다. 어느 해 5월 어버이주일에 세례를 받았던 어른이 그 해 초겨울 12월에 서대문 로터리에 있는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곧장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한번은 병실을 찾았는데 ‘목사님 어제 밤 꿈에 천국 문이 열리지 않아 못 들어갔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참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하나님 천국 문을 열어주세요!’ 라고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목사님, 어제 밤에 드디어 천국 문이 열렸어요!’ 하며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5월 어버이주일에 세례를 받았고 12월 성탄절이 다가오기 한 주일 전에 주님 품에 안기셨던 한 어른의 신앙여정은 불과 8개월 정도 이었지만 마지막은 분명히 하늘 문을 지나 주님 품에 안겼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오른편과 왼편에 두 강도의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점점 무거워질 때 한 강도는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도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고 그리고 나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한다면 내가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강도는 ‘주여,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은 강도는 그 짧은 시간에 구원에 대한 경험과 완료와 계속과 결과를 완전하게 보여준 사례가 되었습니다.

천국 문이 안 열렸다 또는 천국 문이 열렸다는 꿈 이야기를 들으며 천국 문은 어떤 문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있을까요?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문은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과연 열린 문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열린 문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열린 문’과 ‘하늘 문’ 이란 말씀을 검색하면 열린 문과 하늘 문을 검색한 결과 다음과 같습니다.

열린 문 - 요한계시록 3:8, 요한계시록 4:1,
하늘 문 - 시편 78:23, 말라기 3:10

열린 문과 하늘 문은 사람이 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열어놓으셨습니다. 우리들은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이 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그렇다면 하늘 문과 열린 문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문은 방향(方向)

창세기 28:16∼17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 기도 후에 밧단 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하여 집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한 돌을 베개로 삼고 그곳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꿈에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며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 네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자, 여러분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의 용도는 올라가기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내려오기 위한 것일까요?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은 사닥다리는 오직 올라가기 위한 용도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은 내려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닥다리가 있어야 내려오실까요? 하나님은 사닥다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내려오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머물고 있는 야곱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은 사닥다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야곱을 위하여 사닥다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향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하늘 문입니다.
문은 방향입니다.

건물마다 비상구(非常口)가 있습니다. 만일 불이 났을 때 또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 사람들을 안전하게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비상사태를 만났을 때는 비상구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만일 그 방향을 찾지 못하면 끔찍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낯선 밧단 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야곱은 두렵습니다. 언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야곱은 비상사태와 같은 위기를 만났습니다. 더구나 시간적으로 캄캄한 밤을 맞이합니다.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 꿈에 하늘 문의 방향을 보게 된 것입니다.

천국 문은 천국의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늘 문은 하늘의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어느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요?
그 방향이 곧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 문을 향한 신앙은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아야 합니다.
천국 문을 향한 신앙은 죽어서 천국이 아니라 내 삶의 자리가 천국이어야 합니다.

야곱은 지금 아버지의 집을 떠나 광야에 머물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야곱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야곱은 오직 밧단 아람 외산촌 라반의 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 꼭대기에 닿는 사닥다리가 세워졌고 찬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그 위에 여호와 하나님이 야곱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방향은 외삼촌 라반의 집이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원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신앙의 원리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문은 임재(臨在)

임(臨) - 임할 臨
1. 임하다, 2. 곡하다, 3. 장례식에 참례하여 곡(哭)함, 4. 본떠 쓰다, 5. 임거(臨車)

재(在) - 있을 在
1. 존재하다, 2. …에 있다, 3. …에 머물러 있다, 4. (어떤 단체에) 참여하다, 5. …에 달려 있다
 
땅에서는 하늘 문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될 수 있지만 하늘에서는 땅으로 내려올 수 있는 문이 됩니다. 사람들은 땅에서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통로가 됩니다.

성경에서 예를 들어봅시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마태복음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하늘 문은 임재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자들이란 하나님의 일을 돕는 천사들입니다.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하늘이 열린 것은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영광스런 주님을 볼게 될 것입니다.

셋째, 문은 통로(通路)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열심을 잃어버린 신앙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를 향하여 열심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어서 문을 열고 주님을 맞이하라고 권면합니다.

문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문이 열려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생명이 되신 예수님은 문이 닫혀 있어도 얼마든지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 문과 천국 문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문이 열려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 문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반드시 들어가야 할 통로라고 하겠습니다.

(이야기) 어느 교회학교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교사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얘들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니?’
아이들은 ‘착한 일을 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
‘심부름을 잘 해야 한다.’
이런 대답을 할 때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죽어야 갑니다.’
천국은 죽어야 갑니다.

여러분 천국은 죽어야 갑니까?
죽어서만 가는 천국이라면 왜 예수님께서 지금 너희에게 천국이 임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천국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신앙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려면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은 너무 간단명료(簡單明瞭)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죽는 현장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했을까요? 정말 스데반집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죽는 그 자리가 천국이었을까요? 천국은 아닐지라도 천국을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이었고 축복의 자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이 정하신 방향으로 가지 않고 정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요나에게 닥쳐온 것은 생각지도 못한 풍랑이었습니다. 그 풍랑으로 인하여 요나는 깨닫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넷째, 문은 경계(境界)

경계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나누어지는 한계
2. 어떤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에 일정한 기준으로 구별되는 한계
3. 인과응보의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

예수님은 양의 문이 되셨습니다. 양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교회와 성도들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계시록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믿음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 참 평안과 기쁨과 찬송과 감사가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 머물지라도 그곳에는 참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없습니다. 따라서 문은 경계를 의미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늘에 열린 문, 천국 문이란 예수님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입니다.
천국 문이란 예수님의 임재를 기다릴 수 있는 곳입니다.
천국 문이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천국 문이란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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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후에(요한계시록 4:1) /설교 원고(2019-05-05)

이 일 후에(요한계시록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After this I looked, and there before me was 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And the voice I had first heard speaking to me like a trumpet said, Come up here, and I will show you what must take place after this.

(도입 이야기)
‘스타인메츠(Charles Proteus Steinmetz, 1865. 4. 9~1923. 10. 26)’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전기 기술자가 있었습니다. 원래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출생하여 브레슬라우, 취리히,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 전기 공학,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의 기술자로 취업되었고 유니온 대학 물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벼락을 연구하여 피뢰침을 개량했으며 발전기와 전동기에 관한 200개 이상의 특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공장에서 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작동되지 않을 때 여러 기술자들을 불러 발전기를 수리하도록 의뢰하였으나 도저히 수리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스타인메츠에게 발전기 수리를 의뢰하였다고 합니다. 스타인메츠가 발전기 이곳저곳을 작은 망치로 두들겨 보더니 즉시 고장 난 부분을 알려주며 그곳에 하얀 분필로 표시한 후에 그곳을 뜯어서 고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여러 날 동안 많은 기술자들이 동원되어 고장의 원인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는데도 스타인메츠는 망치로 몇 번 두드리더니 고장 난 부분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공장 앞으로 발전기 수리비로 1만 불의 청구서가 배달되었습니다. 공장장은 스타인메츠에게 작은 망치로 몇 번 두들겨 본 것이 전부인데 수리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하였더니 그 때 스타인메츠가 공장장에게 ‘분필로 고장 난 부분 표시한 수고비는 $100. 그리고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기술은 $99,900 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결국 공장장은 스타인메츠에게 1만 불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스타인메츠의 이야기는 ‘구조를 알고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편지(便紙) - 서신서(書信書)

요한계시록은 계시서, 예언서 그리고 서신서라고 소개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한 통의 편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편지를 받은 후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번에 읽어야 합니까? 아니면 한 문장씩 두고두고 해석하면서 읽어야 합니까? 편지는 받는 즉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번에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편지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회람 편지이기 때문에 일곱 교회가 돌아가며 읽어야 하므로 단번에 읽고 다음 교회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두루마리에 기록된 편지는 ‘파피루스’라는 특수한 종이에 기록했는데 요즘처럼 장과 절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된 긴 문장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통용되던 코이네 헬라어로 쓰여 진 편지는 구두점도 없고, 띄어쓰기도 없으며, 모두 대문자로 쓰여 졌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구절이 요한계시록 1장 3절입니다. 특히 개역한글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개역 개정)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는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과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입니다.

당시 교회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두루마리를 읽는 전문 낭독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으면 회중들은 그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듣기만 해도 편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고 거의 2천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누구나 성경책을 갖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는 파피루스는 부자들만이 가질 수 있었기에 회중들이 쉽게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돌려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책을 누구나 갖고 다닐 수 있습니다. 만일 그 당시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만난다면 여러분들은 굉장한 부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둘째는 공간적 구조

1장부터 3장은 밧모 섬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4장부터 11장은 사도 요한이 하늘로 올라간 후에 본 환상의 사건입니다.
12장부터 22장은 사도 요한이 다시 땅으로 내려온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셋째는 내용적 구조
1:19∼20, 사도 요한이 본 것
2∼3장, 지금 있는 일(일곱 교회에 관한 말씀)
4∼22장, 장차 일어날 일

항상 요한계시록에 대한 구조를 기억하고 말씀을 읽어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 소개한 본문을 읽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통하여 본문을 읽었을 때 사도 요한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 맞습니다. 요한은 지금 하늘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 후에’ 라는 말씀은 문법적으로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일 후에는 단수형으로 표현했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복수형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 후에’ - ‘메타 타우타(Μετὰ ταῦτα, After these things)’ 직역 하면 ‘이 일들 후에’ 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들이란 어떤 일이냐?” 이 일들을 어디와 연결하느냐에 따라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정됩니다.

첫째는 3장 21절과 연결하는 해석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3장 21절과 연결하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을 역사적 사건의 순서라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해석을 주장하는 것을 ‘세대주의 신학’ 이라고 합니다. 세대주의는 신학의 특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세대주의 신학은 “성경을 역사적으로 일곱 시대로 구분”합니다. 일곱 교회를 일곱 시대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일곱 번째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를 4장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3장 21절에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때부터 공중으로 들려올라간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4장은 이미 모든 성도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은 휴거 상태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보좌’ 라는 단어에 필이 꽂혔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역사적으로 마지막 시대라고 해석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대형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을 갖는 시대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성도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간 후에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이며 성도들은 환난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는 1장 17절과 연결하는 해석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게 된 사도 요한은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환상 계시를 받고 있습니다. 먼저 받은 것은 일곱 교회와 일곱 교회의 사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17∼20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지금 사도 요한은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본 후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모두 받은 후에 비로써 4장 1절로 연결됩니다. 이제 4장 1절을 읽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일 후에’ 라는 말씀이 단수형으로 소개되었지만 원래는 복수형입니다(메타 타우타, Μετὰ ταῦτα. After these things). 그러므로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 일들 후에’ 라고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란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말합니다.

이 일 후에 -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를 받은 후에
내가 보니 - 엎드려 있던 요한이 고개를 들고 보았다
처음에 내게 말하던 음성 - 나타나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렸다

 

역사적 시간 순서가 아니다. 요한이 경험한 계시의 순서이다.

한국교회가 과거에 세대주의 신학을 공부했던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선교사들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선교사들이 배웠던 것에 의해서 전달되었기 때문에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와 지금은 또 다른 시대일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가 많은 발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학문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학문의 자리에서 더 발전되고 말씀의 진가를 높이 드러낼 수 있는 연구 자료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을 받은 후에 라고 하면 문맥상 그 순서가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실 것이라는 말씀과 연결하여 보좌에 앉게 된다고 해석을 하면 휴거 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4장 1절에서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셨으므로 하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고 해석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이 과거 한국교회에 가장 많이 소개된 해석입니다. 그 이유는 초기 한국 교회에 복음을 전했던 미국 선교사들이 이와 같은 해석 방법과 신학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야기)
메시아 초림 예언 구약 456회
재림 예언 신구약 1,518회 - 구약 1200회, 신약 318회
초림의 예언 456회 모두 성취되었다.
재림의 예언 반드시 성취 될 것이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있다. 단지 그의 도착이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벽에 새겨진 글,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참고 기다릴 수 있었던 신앙은 주님은 오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주님과 동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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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본 것(요한계시록 1:19∼20) / 설교 원고(2019-04-28)

네가 본 것(요한계시록 1:19∼20)


⑲.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⑳.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Write, therefore, what you have seen, what is now and what will take place later. The mystery of the seven stars that you saw in my right hand and of the seven golden lampstands is this: The seven stars are the angels of the seven churches, and the seven lampstands are the seven churches.  

(도입 이야기)

교회 전통에 따르면 부활주일 다음 맞이하는 주일을 “신생아주일(新生兒主日)” 또는 “성(聖) 도마주일”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드레가 지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있는 곳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했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한 후에 인도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도마가 잠시 쉬려고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서 자라나 큰 나무가 되었는데 그 나무 옆에 성 도마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한 소년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5달러 지폐를 주웠다고 합니다. 소년은 5달러를 줍고 얼마나 좋았던지 이런 일을 기대하며 매일 땅만 쳐다보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렇게 걷는 습관 때문에 허리는 굽어졌고 일생동안 길에서 주웠던 것은 단추 29,519개, 머리핀 54,172개, 수백 개의 동전뿐이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찾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방향이 결정된다는 교훈입니다.

(전개 이야기)
두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째는 왜 교회에 다니는가?
둘째는 왜 파트리스교회에 다니는가?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처럼 시작이 정말 중요합니다.
서양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좋은 시작은 절반을 한 것이다(Well begun is half done)’

교회에 대한 성경적 신앙

첫째, 교회는 성전이 아니다!

예수님이 성전(요한복음 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도들이 성전(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둘째, 누구 때문에 그 교회에 간다!

교회에 다니게 된 동기는 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수님 때문에 그 교회에 가야 합니다. 만일 사람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 교회에 가는 것은 반드시 시험에 빠질 위험성이 아주 큽니다.

셋째, 예수님이 교회(사도행전 9:4∼5)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여러분, 사울이 예수님을 박해한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사울은 예수님을 박해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예수님을 전하는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사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곧 교회와 예수님은 동격이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교회론(敎會論) 1:11∼16 

⑪.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두아리다,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보내라 하시기로 ⑫.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⑬.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⑭.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⑮.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⑯.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아멘

사도 요한은 일곱 금 촛대에 거니시는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한 후에 그 발 아래 죽은 사람처럼 엎드렸습니다.

일곱 교회는 칭찬을 받은 교회도 있었고 책망을 받은 교회도 있었으며 칭찬과 책망을 동시애 받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세상 교회는 칭찬도 받을 수 있고 책망도 받을 수 있으며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는 영광스런 예수님께서 거니시는 교회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교회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비판하면 곧 사울처럼 예수를 비난하고 예수를 비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네가 본 것(what you have seen)’입니다. 본문에서 본 것을 세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첫째는 네가 본 것
둘째는 지금 있는 일
셋째는 장차 될 일

장차 될 일(what will take place later)

장차 될 일은 ‘요한계시록 4장부터 마지막 22장’까지의 내용을 말합니다.
장차 될 일은 인과 나팔과 대접에 대한 말씀으로 유대 묵시문학의 표현 방식에 의하면  일곱 인(seal)은 징조(sign)를 말하고, 일곱 나팔(trumpet)은 경고(warning), 일곱 대접(bowl)은 실질적인 재앙(disaster)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지금 있는 일(what is now)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소개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말합니다. 소아시아 지방은 현재 터키 지역을 말합니다.

네가 본 것은(what you have seen)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를 말합니다. 일곱 금 촛대는 교회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의미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일곱 별에 대해서는 일곱 사자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사자에 대한 해석이 다양합니다.

사자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천사’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16 -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1 -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3:1 -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사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합니다.
1. 주의 종(servant)
2. 목사(pastor)
3. 지도자(leader)
4. 사자(angel) - 교회들을 위하여 증언하는 자(messenger)
5. 천사(영적 진리를 전하는 자) - ἄγγελοι(the angeles) * 32 ἄγγελος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은 영광스런 예수님입니다(계 1:13∼16).

칭찬만 받은 교회는 어느 교회이었습니까?
- 서머나교회, 빌라델비아교회

책망만 받은 교회는 어느 교회이었습니까?
- 라오디게아교회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은 교회는 어느 교회이었습니까?
- 에베소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자 이제 질문을 합니다.
영광스런 예수님께서 거니시는 교회는 어느 교회일까요?
칭찬만 받은 교회일까요?
아니면 책망만 받은 교회일까요?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은 교회일까요?

모든 교회에 영광스런 예수님께서 거닐고 계십니다. 거닌다는 것은 ‘함께 한다’ ‘지켜준다’ ‘곁에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열 명의 자녀를 두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잘 표현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처럼 성공한 자녀와 실패한 자녀가 있을 때에 모든 자녀를 향한 사랑은 동일합니다. 아마 실패한 자녀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쏟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곧 영광스런 예수님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든지 그 교회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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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생명의 주(사도행전 3:15, 요한계시록 1:13∼16) / 설교 원고(2019-04-21)

부활 생명의 주(사도행전 3:15, 요한계시록 1:13∼16)

요한계시록 1:13∼16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사도행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부활 생명의 주란?
아주 오래 전에 남대문교회 배명준목사님이 권사님과 함께 심방을 가려고 당시 전차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갑자기 옆에 앉아있는 어느 대학생에게 전도하기 시작했답니다. 대학생은 손에 육법전서라는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법대생이었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그 대학생에게 “학생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라고 말을 하자 대학생은 권사님에게 “나는 불자요! 석가모니를 믿습니다.” 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더랍니다. 목사님께서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왜 대학생과 논쟁을 하는지 어떻게 도와 줄 수 없을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권사님이 대학생에게 “석가모니 무덤이 있습니까?” 하고 묻더랍니다. 그러자 대학생이 “그럼요 당연히 무덤이 있지요!” 라고 대답을 하자 권사님이 “아니 왜 죽은 석가모니를 믿습니까? 살아있는 예수님을 믿어야지!” 라고  말을 하는데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 때 목사님께서 “지혜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생명의 주(the author of life, δὲ Ἀρχηγὸν τῆς ζωῆς)란 성경 전체에서 사도행전에서 단 한 번 사용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생명의 주’란 여러 번역을 참조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헬라어 - 생명의 저자(Ἀρχηγὸν τῆς ζωῆς)  
새번역 - 생명의 근원이 되는 주님
공동번역 -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
NASB, NIV - 생명의 왕자(the Prince of life)

저자(著者)란? “책이나 글을 지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저자’란 ‘생명을 지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명을 지은 사람 그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생명을 지으셨기에 생명을 죽여도 그 생명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이라고 하겠습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에 ‘실험실의 비밀’ 이란 동영상을 교회 카톡 단체방에 올렸습니다. 그 동영상을 확인하셨다면 거듭나야 하는 이유와 부활의 증거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명하게 증거 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기독론의 완성’입니다. 기독론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죄 값을 지불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가 되셨으므로 사망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오르시어 보좌에 앉아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을 말합니다. 

기독론의 기초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이며, 또한 ‘교회론의 완성’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의 모습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인자 같은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소개됩니다.
첫째, 예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
둘째, 영체로 오신 예수님

그러나 제가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인자 같은 이”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라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나타나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인자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아들과 같은 모습(요한계시록 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체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영의 실체를 눈으로 보여주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후 주님의 몸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몸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할 몸이셨기에 제자들이 만지려고 할 때 만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지금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영을 육체로 보여주신 사건 - 성육신 사건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육체를 영으로 보여주신 사건 - 변화산 사건
마태복음 17:1∼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둘째는 대 제사장의 옷(출애굽기 28:4)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발에 끌리는 옷과 가슴에 금띠를 띠셨다는 모습은 대제사장의 의복을 갖춘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속죄제물을 바침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이신 예수님(다니엘 7: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다니엘 7장은 인자에 대한 예언을 말씀합니다. 인자는 곧 장차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예수님의 모습과 다니엘 7장에 소개된 인자의 모습은 동일한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인자 같은 이는 곧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십니다.

공생애 기간 중 변화산에서 변모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천상에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밧모섬에 갇힌 요한에게 자세하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모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에서 장차 우리들도 이와 같이 변화될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며 현실에서 받은 아픔과 상처와 질병과 장야를 모두 털어버리고 그 날의 기쁨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당당하게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인자와 같은 이로 나타나셨다면 훗날 부활 때에 우리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주님과 같은 이로 일어설 것이 아닐까요?

비록 현실에서는 내 몸이 건강한 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병들고 사고를 당하고 몸의 한 부분이 제 기능을 상실하고 그러나 그 날에는 반드시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하며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을 견딜 수 있고 절망의 시간을 소망의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신앙이 바로 생명의 주를 믿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명의 주를 믿기 때문에 현실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찾게

됩니다.

부활주일을 맞아 장차 우리들도 영광스런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그 날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부활의 주 생명의 주를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를 부활이란 단어에서 찾아봅니다.

부활(復活, 다시 復. 살 活)이란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 라고 합니다.

anástasis는 ana(up, again) + histemi(to stand)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아나스타시스란 “다시 일어서다”는 뜻입니다. ‘다시 일어서다’는 의미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회복(回復, 돌아올 回. 회복할 復)’ 이라고 하겠습니다. 회복이란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이란 세 가지 회복을 의미합니다.

1. 죽음에서 다시 일어서다(a resurrection from death) 죽음에서 회복
2. 도덕성의 회복(a moral recovery)
3. 영적 진리의 회복(a recovery of spiritual truth)

영적 진리의 회복(a recovery of spiritual truth)

영적 진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말합니다.

어느 장로님이 임종하기 직전에 목사님이 찾아와서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되면 주님 계신 곳에서 영원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될 줄 확신하십니까?” 하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께서 “죽어봐야 알겠지요!”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제가 성경 말씀 한 구절을 읽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하며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었다고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가장 잘 암송하는 말씀입니다. 함께 암송해볼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런데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지 못 얻을지는 죽어봐야 알겠느니라.’ 이렇게 읽었더니 장로님께서 큰 소리로 ‘아니, 목사님! 왜 성경을 그렇게 읽습니까?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렇게 읽어야지요!’ 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읽는 것을 바르게 읽으면서 왜 믿는 것은 바르게 믿지 못합니까? 하고 깨우치자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바르게 읽고 바르게 믿겠습니다. 죽으면 영생을 얻는 줄 확신합니다. 이렇게 마지막 임종을 확인하고 그 다음 날 아침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영적 진리의 회복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대로 믿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요한계시록 1:13∼16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영적 진리를 회복하려면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죽음에서 다시 일어서다(a resurrection from death)

세상에서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란 영과 혼과 육의 기능이 죽은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는 육체의 죽음에서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죽음에서 다시 일어서야 할 것은 죽은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죽은 신앙이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사도행전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부활을 증언할 때 큰 무리가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사도들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부활주일을 지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 말씀은 멸망할 니느웨 성을 향하여 가서 외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이 달랐습니다.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니느웨로 방향을 정하지 않고 정반대 방향 다시스로 가는 배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다시스로 가는 배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 3년에 한 번 운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항구에서 만났다는 것을 정말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욥바 항구를 떠난 배가 순탄하게 운행하던 중 갑자기 심한 풍랑을 만났습니다. 선원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많은 짐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돈을 포기하고 생명을 구하려는 상선의 선원들의 절박한 마음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풍랑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풍랑은 자연적인 원인이 아니라 신의 노여움이라 판단하고 각자 자기의 신을 향하여 풍랑이 잔잔해 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때 선지자 요나는 이 풍랑의 원인은 자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결국 바다에 던져진 요나 때문에 풍랑은 잔잔해졌습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야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물고기가 요나는 니느웨로 토해내므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대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니느웨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파트리스교회가 세워진 후 처음을 맞이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뜻 깊은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부활의 증인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도덕성 회복(a moral recovery)

양심에는 화인 맞은 양심과 선한 양심으로 구분합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도덕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원인은 언어의 질서를 파괴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교인들은 주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언어의 질서는 종이 자녀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자녀에게 종을 섬기라고 강조합니다. 이와 같은 언어의 질서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섬겨야 할 대상을 섬기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세상도 언어의 질서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전서 3:16a
선한 양심을 가지라
keeping a clear conscience.

디모데전서 1: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히브리서 13: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줄을 확신하노니.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도덕(道德)이란 사전적 정의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을 말합니다.

양심의 어원
양심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행위의 옳고 그름과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 
양심(conscience)이라는 말은 원래 ‘함께(con)’ ‘안다(science)’는 두 단어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양심이란 ‘함께 아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와 함께 아느냐? 우선은 내가 나와 함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과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이란 하나님과 함께 아는 것을 말합니다.

가룟 유다(누가복음 22: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사단이 가룟 유다의 육체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지요. 영에게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영의 지배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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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요한계시록 1:1) / 주일 설교 원고(2019-04-07)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도입 이야기)
어느 유치원 원생들이 야외학습으로 공원에 모였습니다. 원장선생님이 교사에게 보물찾기를 진행하기 위하여 아이들 모르게 보물을 감추라고 했습니다. 보물찾기 시간에 원장님이 아이들에게 이제부터 보물을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이 보물을 찾지를 못합니다. 아이들이 보물을 찾지 못하자 원장님은 보물을 감춘 교사에게 ‘보물을 어디에 숨겼느냐?’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볼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교사의 눈높이에 맞춰 보물들을 감춘 것’이었습니다. 원장님은 보물이 감추어진 곳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돌멩이 위에 또는 작은 나뭇가지 위에 아니면 풀밭과 꽃밭에 보물들을 던져놓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신나게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개 이야기)
성경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성경에 감추어진 메시아 예언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쉽게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란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메시아 예언에 대한 최초의 말씀은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최초의 메시아 예언을 ‘원시복음(primitive gospel)’ 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메시아 예언이 선포된 배경은 에덴동산의 모든 열매는 먹을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고 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먹지 말라고 하였던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에게는 땀을 흘리면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고 하와에게는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뱀은 저주를 받고 흙을 먹고 땅을 기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최초의 메시아 예언이 선포된 후에 성경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라고 하겠습니다.

뱀의 정체는 사탄입니다.
여자는 물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세상에 오시기 위해 선택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마리아 숭배 사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여자를 마리아라고 하면 풀리지 않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최초의 메시아 예언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원수가 될 것이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뱀이 여자에게 완전히 굴복당하고 쫓겨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 말씀에서 사탄은 큰 용, 옛 뱀,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뱀은 여자에게 내쫓김을 당했습니다.

이제 여자에 대해서 성경의 마지막 예언의 말씀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말씀하는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1∼5
1. 하늘에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요한계시록 12장 5절의 말씀에서 여자가 낳은 아들의 정체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최초의 메시아 예언으로 선언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12장 1절부터 읽어보면 이 말씀이 과거의 사건입니까? 아니면 미래에 나타날 사건입니까? 말씀의 문맥을 바르게 관찰한다면 미래의 사건입니다. 아들은 분명히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메시아 즉 예수를 낳은 여자는 마리아가 맞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사건은 과거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왜 미래의 사건으로 말씀하셨습니까?

문자적인 해석 즉 표면적인 해석은 여자가 마리아가 맞는 것 같지만 여자에 대한 이면적인 해석은 마리아라고 해석하면 문맥이 맞지 않습니다.

여자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여자는 마리아가 아니라 교회를 말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교회가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될 것이지만 반드시 이길 것을 선언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절을 읽겠습니다.
하늘에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하늘에 이적이 보이니 -


하늘이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늘이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이 위로 올려져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이란 성 삼위가 되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 보좌가 있는 하늘이란 한 마디로 계시의 출처를 말합니다.

이적이란?

이적이란 헬라 단어는 성경에서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테라스(τέρας)는 기적을 의미합니다.
세메이온(σημείων)은 표적을 의미합니다. 표적이란 용어는 주로 요한복음에 사용합니다. 세메이온은 기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싸인(sign) 즉 표시를 의미합니다.
하늘에 이적이 보였다는 말씀은 ‘하늘에 표시 즉 사인이 나타났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해를 옷 입은 한 여자란?

여자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설명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
2. 마리아
3. 교회(영적 이스라엘)

앞으로 12장을 읽게 될 때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주제에 맞게 여자를 결론적으로 ‘교회’라고 해석합니다.

해와 달과 별이란?

성경에서 해와 달과 별은 왕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시편 89:36∼37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하셨도다. 

시편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이사야 26: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해와 달과 별은 자손을 상징합니다.
요셉의 경우 어려서부터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채색옷이란 유대 전통에 의하면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상속자를 말합니다. 둘째는 가장 사랑받는 자를 말합니다. 다른 형제들에게 요셉은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요셉이 꿈 이야기를 하며 형제들의 마음을 더 괴롭혔습니다.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밭에서 추수할 때 형제들의 단이 요셉의 단에 절을 하는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때 형제들은 요셉을 시기했지만 아버지는 요셉의 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에서 해와 달과 별은 자손들을 상징합니다.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자손이 번성하듯 교회가 하늘의 은총을 받아 번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붉은 용은 머리가 일곱 이며 뿔이 열이며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다고 합니다. 붉은 용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9절을 읽겠습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옛 뱀 즉 창세기 3장 15절 말씀에서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서 그 옛 뱀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납니다. 옛 뱀의 정체를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1. 큰 용
2. 옛 뱀
3. 마귀
4. 사탄
5. 온 천하를 꾀는 자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사탄의 음모가 교회를 무너트리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가 반드시 사탄의 음모를 무너트릴 것이라고 분명하게 증거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탄의 전략에 대해서 미국의 몇몇 신학자들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사탄의 마지막 전략은 교회를 부흥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부흥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지만 복음이 없고 예수가 없는 교회와 복음으로 타락시키는 것이 최근 사탄의 전략이므로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1. 바벨탑에 갇힌 복음(행크 헤네그라프)
기독교 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단과 사이비 종교를 연구

2.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마이클 호튼)
형통복음과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회에 대한 경고


속히 될 일(요한계시록 1:1, 22:6) / 설교 원고(2019-03-31)

 속히 될 일(요한계시록 1:1, 22:6)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The angel said to me, "These words are trustworthy and true. The Lord, the God of the spirits of the prophets, sent his angel to show his servants the things that must soon take place."   

* 속히 될 일(What must soon take place) - 곧 일어날 일

속담에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를 하나로 연결해야만 바르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두 주일에 소개했던 설교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요한계시록은 오직 예수로만 읽어야 합니다.

프리즘(Prism)은 빛을 굴절 분산시키는 광학도구를 사용하여 햇빛을 통과시키면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은 무지개 색으로 분해되어 영롱하게 나타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들었던 성경에 관한 모든 단편적인 정보들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렌즈로 통과시켜 주님 오실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일까?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말씀입니다. 계시란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계획이란 비밀을 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언이란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주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편지의 말씀입니다. 편지는 직접 찾아가서 전할 수 없는 내용을 글로 적어 보낼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였고 예언하셨던 말씀을 글로 적어 보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속히 될 일’이란 무엇일까?

요한계시록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는 먼저 요한계시록의 범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범위를 성경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성경의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2장 19절에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속히 될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속히”라는 단어가 요한계시록과 성경에서 사용된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속히”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 수가 본문을 포함하여 8구절로 소개됩니다(1:1, 2:6, 3:11, 11:14, 22:6, 22:7, 22:12, 22:20).

“속히” 라는 단어가 사용된 모든 구절들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 때문에 설교의 주제에 합당한 구절들을 살펴보면 ‘속히 될 일’이란 22장 6절에서 “속히 되어질 일” 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어서 “속히 될 일” 이란 3장 11절, 22장 7절과 12절 그리고 20절에서 “속히 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될 일”은 “속히 오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가 대략 기원 후 96년이라고 합니다. 2천 년 전에 속히 될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속히 될 일 즉 주님의 재림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시간(時間) 개념(槪念)

속히 될 일에 대해서 시간 개념으로 해석하면 ‘빠르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루어질 일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 아니면 내 생전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목격했던 제자들은 그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주님이 오실 것으로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제자들은 그들이 만났던 주님에 대한 증거를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복음서를 시작으로 신약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만일 주님이 제자들 생전에 오셨다면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실 주님이 오시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인위적인 방법이므로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1:6∼7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장소(場所) 개념(槪念)

속히 될 일에 대한 해석을 시간적으로 해석하면 반드시 오실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어디에’ 오실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특별한 장소를 마치 계시를 통해 받은 것처럼 소개합니다.

예를 들면 과천, 피지 섬, 브라질, 계룡산과 같은 곳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인물(人物) 개념(槪念)

속히 될 일을 시간과 장소로 해석하면 그 다음에는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1992년 시한부종말론의 이장림,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지상낙원 피지 섬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사례(은혜로교회 신옥주), 두 증인 중 한 사람이라며 영원불멸의 교주(전도관 박태선),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므로 교인들은 전 재산을 정리해서 브라질에 마련한 4천만평의 땅으로 집단 이주하여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는 교회도 있습니다.

영적(靈的) 개념(槪念)

속히 될 일이란 시간과 공간과 인물 중심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묵시문학의 특징인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시간 개념과 장소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속히’라는 말은 ‘확실히’ ‘틀림없이’ 라는 속뜻으로 ‘반드시 될 일’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속히” 라는 의미를 ‘문자적’으로 또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면 본질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묵시문학의 특성을 전제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묵시문학에서 “속히” 라는 의미는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 라는 뜻으로 “속히 될 일”이란 “반드시 일어날 일”이란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속히 될 일’이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이므로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2천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기에 아마 오시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실현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전개 이야기)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펄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해 중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그녀가 살던 마을에 백인 선교사의 가족들이 우리 마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이 분노하여 가뭄이 계속 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은 점점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에 마을 사람들이 삽, 곡괭이, 쇠스랑 등 농기구를 들고 펄벅의 집으로 몰려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외국 출장 중이라 집에는 어머니와 어린 펄벅밖에 없어서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준비하고 케이크와 과일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한 것처럼 대문과 집안의 모든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어린 펄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도록 하시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잡았습니다.

얼마 뒤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대문이 굳게 잠기고 집안은 깜깜할 것이라고 여기고 횃불을 들고 펄벅의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문이 열려있어 마당으로 들어섰더니 모든 방문이 열려 있고 방마다 불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또한 방마다 차와 케이크 그리고 과일이 차려진 것을 보고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멈칫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정중하게 마을 분들을 맞이하며 “어서 오십시오. 정말 잘 오셨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씩 드시면서 말씀하십시오.” 그 말을 듣고 더 어리둥절 하는데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횃불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도 그를 뒤따라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차를 마시고 케이크와 과일을 먹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습니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조금이라도 도망칠 방법이 있었다면 도망치다가 잡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살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다른 골목에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인지라 모든 것을 각오하고 그런 용기를 내어 보았단다.”

그리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이 말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속히 될 일은 속히 오리라는 약속으로 반드시 오실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 주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았다는 것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오시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속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 급히(ταχύ) 사화하라 - 속히(ταχύ) 사화하라 

(현대인 성경) 타협하라
(공동번역) 화해하여라
(새번역) 화해하도록 하여라

‘사화하다’(유노온, 능동형)는 상처를 준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사화(사과)는 상처를 준 사람이 해야 하고, 화해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사화와 화해가 이루어진 것을 합의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 빨리(ταχύ) - 속히(ταχύ) 

성도들이 속히 해야 할 일은 부활의 소식을 빨리 가서 알려야 합니다. 종말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부활의 소식을 빨리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적인 종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지라도 여전히 유대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함께 나누며 주님 오실 그 날을 함께 준비할 수 있는 믿음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속히 될 일이란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이라는 사건입니다. 주님이 속히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속히 오실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까?

20:15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21:27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이름은 등과 기름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등과 기름을 예비하기 위해서 속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것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신앙생활의 감격이 없고 감사가 없다면 교회에 다닌다는 것뿐이지 신앙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부족한 것이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자랑하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요한계시록을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사람들이 “속히 될 일”에 대한 주제를 현실 세계에서 나타는 현상과 징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대의 징조와 현상은 잘 몰라도 등과 기름을 예비한 지혜로운 사람들만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비유의 가르침과 같이 “속히 될 일”을 말씀하신 감추어진 은혜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속히 될 일”이란 용어가 요한계시록에서 두 번 사용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 속히 될 일
22:6, 속히 되어질 일

속히 될 일 또는 속히 되어질 일은 무엇인가?

3:11,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7,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12,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20, 속히 오리라(I am coming soon.) 


속히 될 일은 속히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속히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때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를 기준으로 대략 2천

년 전의 예언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언한 내용이 아직도 성취되지 않았다면 그 예언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말 그 예언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까요?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 또는 90이라고 한다면 속히 오실 것이란 예언을 믿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속히 오리라고 예언하셨을까요?

미래에 나타날 현상과 징조들을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짧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속히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적인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적인 삶은 무엇일까요? 속히 라는 단어가 사용된 성경에 소개된 말씀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학창 시절에 시험을 치룬 줄 압니다. 시험 일자가 발표되면 모든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합니다. 시험 일자가 중요합니까? 시험을 잘 치룰 수 있는 공부가 중요합니까? 시험이 목적이 아니라 시험을 통하여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속히 될 일은 반드시 오실 것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오실 주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기다리는 것보다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삶이 중요합니다.

속히 오시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에게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하고 질문했을 때 부활의 주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속히 오실 주님의 때와 기한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을 받고 증인의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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