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9월 19일, 목) - 사도행전 4장


오늘은 사도행전 4장과 신명기 29장 그리고 시편 80편을 읽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걱정뿐이라고 합니다.

하나는 죽을 것에 대한 걱정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행한 행동 즉 죄에 대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두 가지 걱정을 해결하였다는 증거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예수를 믿으므로 영생(영벌과 다른 영생)을 가졌기 때문에 걱정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위하여 죄 값을 지불하셨다는 믿음으로 죄에 대한 용서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걱정과 염려를 해결하였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감사는 입술의 언어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요?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그것을 나눔으로 행복한 믿음의 주인공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Daily Bread & Prayer(Sep. 19. 2013) Thu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12)

 - 구원의 이름을 증거 하는 전도자의 삶을 이루게 하소서!


Salvation is found in no one else,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to men by which we must be saved.(Acts 4:12)

 - Let it be my life is evangelist for witness to the name of salvation.



오늘의 묵상(9월 18일, 수) - 사도행전 3장


오늘은 사도행전 3장과 신명기 28장 그리고 시편 79편을 읽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뻔뻔한 시대라고 합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합니다.

성경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를 일컬어 ‘불의한 자는 수치를 모른다(The unrighteous know no shame)’고 합니다(스바냐 3:5).

반드시 드러날 일을 대중들 앞에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지도자들이 당당하게 고개를 드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해야 할 삶의 자세를 살펴봅니다.


영국의 루이스 황제가 어느 시골을 순방하다가 가난하고 늙은 노파가 찬송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찬송이 저절로 나네


찬송을 들은 황제는 2절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파가 2절은 없다고 말  황제 루이스는 스스로 2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의 황제 루이스는 날 부러워하네

십자가 사랑을 생각 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이 노파는 황제도 부러워하는 믿음과 평안 그리고 기쁨과 소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기독교가 세상을 향하여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어 구걸하던 사람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했던 것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보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믿음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이라면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금과 은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수많은 세상의 앉은뱅이들에게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하며 오늘도 행복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Daily Bread &Prayer(Sep. 18. 2013) Wed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사도행전 3:6) 

-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Acts 3:6) 


오늘의 묵상(9월 17일, 화) - 사도행전 2장


오늘은 사도행전 2장과 신명기 27장 그리고 시편 78편을 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 ‘그리스도인’ ‘제자’ ‘교인’ 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을 가고자 합니다.

여러 명칭 보다 제자라는 명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제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예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행하신 최고의 명령은 마태복음 28:19-20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은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되어야 하겠기에 제자의 특징을 몇 가지로 살펴봅니다.


첫째는 배우는 사람


제자는 배우는 사람인데 배우는 자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서 예수님을 본받고 따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제자라는 용어가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구약에는 2번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신약에는 314번 사용된 신약적인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가야 하는 사람


제자가 된 후에는 지금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처음 일곱 집사들의 경우 빌립은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바울은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까지 갔고, 전설에 의하면 도마는 인도에까지 갔습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된 후에는 내가 가든지 아니면 보내든지 해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위치한 그 자리가 곧 선교지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가 되게 하라

뉴욕은 마치 세계 인종이 모두 모여 있는 국제도시와 같습니다. 뉴욕만큼 제자를 삼을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여건을 갖춘 도시가 흔하지 않습니다.

거리에 나가면 영문 간판, 중국어 간판, 한글 간판, 인도어 간판 등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제자가 될 수 없는 민족이나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복음대로 움직여 질 수 없습니다.

각 나라 각 족속들이 그들의 종교를 갖고 생활합니다.

어려운 과제를 교회가 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표는 저들도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구원을 이루라


제자를 삼는 목적은 구원의 반열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철학이나 도덕이나 사상을 배우게 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제자를 삼는 유일한 목적입니다.



 Daily Bread &Prayer(Sep. 17. 2013) Tue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2:21)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Acts 2:21)

 ♱ 주의 이름으로 죄악을 다스리게 하소서!

 (Let reign the sin by in the name of Jesus!)



오늘의 묵상(9월 16일, 월) - 사도행전 1장


오늘은 사도행전 1장과 신명기 26장 그리고 시편 77편을 읽습니다.


성령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육체적인 감각으로 인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대한 이해를 불과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성령의 불, 성령의 바람에 대한 의미를 묵상합니다.


불의 요소는 뜨겁고 태우는 것입니다.

바람의 요소는 시원하고 움직이게 합니다.


불이 스쳐간 자리에는 모든 물체가 타버리고 검은 재가 남아 있습니다.

엄청난 화력으로 인하여 모든 것들이 녹아내립니다.

물은 사람의 겉을 씻어내지만 불은 사람의 속을 깨끗하게 씻겨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불 가운데서 부르셨고 불의 임재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나타냈습니다.

시내산 가시덤불 속에서 나타나셨던 하나님과 갈멜산 엘리야의 제단에 내려진 불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시원하다고 합니다.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립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성령의 바람은 사람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바람에 이끌린 빌립은 에디오피아에서 올라온 국고를 맡았던 관리에게 인도하시고 그가 읽고 있던 성경을 가르치고 깨우친 후 세례를 베풀게 하셨습니다.


1904년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 불어 닥친 성령의 불과 바람처럼 오늘 이곳에 성령의 불과 바람이 일어나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Daily Bread & Prayer(Sep. 16. 2013) Mon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사도행전 1:5)

-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을 주옵소서!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Acts 1:5)

- Please give us a faith of fullness of the Spirit.


오늘의 묵상(9월 15일, 주일) - 요한복음 21장


오늘은 요한복음 21장과 신명기 25장 그리고 시편 76편을 읽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이 고백하는 예수가 아니라 내가 고백하는 예수이어야 합니다.

상식적인 예수가 아닙니다.

고백적인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씩 반복하여 질문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수가 아니라 네가 생각하는 예수를 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예수님처럼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따른다는 의미는 첫째는 버린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가려고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떠나는 것입니다.

모압 지방의 여인 룻은 그의 고향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 지방을 떠났습니다.

엘리사는 소 열두 겨리로 밭을 갈다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부름을 받을 때 소 열 겨리는 내버리고 한 겨리는 잡아서 연장을 불살라서 고기를 구어 다른 사람들과 나눠먹고 그곳을 떠나 엘리야를 따라나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을 가기 위해 애급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먼저 내 자리 즉 죄악의 자리를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탕자는 자기가 선택했던 쾌락의 세상을 버리고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려고 죄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버리고 떠난 후에는 항상 동행해야 합니다.

일시적인 동행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동행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위하여 주님께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다른 사람을 보려고 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자기 일에 태만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에 흥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내 일에 분주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하루의 시간을 주님을 따르고 배우는 것들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Daily Bread & Prayer(Sep. 15. 2013) Sun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한복음 21:15)

 - 예수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You know that I love my Lord.(John 21:15)

 - I love Jesus, love others also. 



오늘의 묵상(9월 14일, 토) - 요한복음 20장


오늘은 요한복음 20장과 신명기 24장 그리고 시편 75편을 읽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이 모인 다락방에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팔일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사람은 믿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만일 믿음이 없다면 그 삶은 공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에 대한 정보가 없던 때에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누가 부활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활하실 것에 대해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마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꿀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못 자국이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그의 손으로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도마가 만졌던 손과 옆구리는 부활의 임재이며 동시에 부활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 도마의 경험은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믿음을 갖는 순간 사람은 바뀌게 될 것입니다.

나를 바꿀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세상 끝 날까지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핍박자 사울은 바울의 믿음으로

주를 부정하던 베드로는 순교자로

목동 다윗은 위대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으로

의심의 도마는 복음의 증인으로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세우려고 하실까요?

주의 부름에 대한 응답을 드러내는 은총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Today's Bible &Prayer(Sep. 14. 2013) Sat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한복음 20:21)

 - 평강을 전하는 삶을 이루게 하소서!

Peace be with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John 20:21)

 - I hope that show the peace for all by my life. 




오늘의 묵상(9월 13일, 금) - 요한복음 19장


오늘은 요한복음 19장과 신명기 23장 그리고 시편 74편을 읽습니다.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갔던 길을 말합니다.

많은 순례자들은 그 길을 걸으며 주님의 고난을 체험하려고 합니다.

고난의 길을 걷는다고 주님의 고난이 체험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길을 걷는 까닭은 주님을 좀 더 알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주님을 알려고 노력했으면 이제는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몸으로만 걷지 말고 영혼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이 어디를 말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골고다라는 말은 ‘해골의 장소’라는 뜻으로서 해골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형이 해골처럼 생겼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의 죽음의 장소를 ‘성문 밖’ 또는 ‘진 밖(outside the camp)’으로 소개하면서 그 장소의 제의적인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과연 ‘진 밖’은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갈라졌습니다. 성전에는 모두 13개의 휘장이 있었으며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두 개의 휘장이 있었는데 길이가 18m 폭이 9m 정도였으며 두께는 한 뼘 만큼 되었다고 탈무드에서 소개합니다. 청색 자색 홍색 및 가늘 베실(하얀색)로 짜여 졌고 그룹들이 수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휘장을 드는데 만도 300명의 제사장들이 동원되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휘장을 예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 하나님의 손이 찢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어버린 것입니다(에베소서 2:14).

이 날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책임을 맡았던 한 백부장은 ‘이 사람이야말로 실로 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했는데 이 백부장은 그 휘장이 얼마나 두꺼우며 또 그 휘장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갖고 그는 ‘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백부장의 외침은 그가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 밖(성문 밖)’에서 이 휘장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면 아마 감람산 맞은편인 서쪽이 된다고 합니다(Greg Killan, East to the Mount of Olives).

이와 같은 추정이 가능한 것은 성전 문은 매우 컸고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바칠 때 그 피는 휘장 옆에 있는 분향단에 뿌리도록 하였으며 그 고기는 진 밖에서 태우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 제물을 태우는 제사장은 성전 안에서 제사장이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후 제물을 불살라야 했습니다(민수기 19:1-10). 따라서 백부장이 성전 안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보았다면 그 장소는 감람산 서편이 가장 유력합니다. 전통적으로 골고다로 알려진 곳은 예루살렘의 서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 이르는 길을 비아 돌로로사(고난의 길)라고  부릅니다.

다 이루었다는 외침과 더불어 가상칠언(架上七言) mr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일곱 말씀을 소개합니다.


첫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3-39)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Luke 23:34)

둘째,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39-43)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Luke 23:43)

셋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25-27)

Dear woman, here is your son,... Here is your mother  (John 19:26-27)

넷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5-49)

Eloi, Eloi, lamah sabachthani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Matthew. 27:46)

다섯째,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28)   

I am thirsty.(John 19:28)

여섯째,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29-30)   

It is finished. (John 19:30)

일곱째,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4-49)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Luke 23:46)


Today's Bible &Prayer(Sep. 13. 2013) Fri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 내게 맡겨진 모든 일을 마칠 수 있게 하옵소서!

It is finished.(John 19:30)

- I wish that finished my work that give to me from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