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11월 10일, 주일) - 고린도전서 12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12장과 룻기 2장 그리고 시편 132편을 읽습니다.


은혜는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베풀어주신 선물

은사는 구원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시라는 선물

모든 성도들이 은혜와 은사에 따라 자신의 삶을 드린다면

세상은 더 없이 즐거워 질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세상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시(詩)를 생각합니다.


발자국(Footprint)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지요.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꿈을........

하늘 저편엔 그의 삶의 순간들이 그림처럼 비치고

그 장면 마다엔 두 쌍의 발자국이 모래 위를 수놓았는데

한 쌍은 자기의 것

또 한 쌍은 주님의 것.


그의 인생의 마지막 날의 장면이 펼쳐졌고

모래 위의 발자국을 뒤돌아보니

인생의 오솔길엔 많은 절망과 슬픔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발자국은 한 쌍 뿐이었음을

또한 보았지요.


이 일이 하도 괴로워 주님께 묻기를

“주여 당신은 나와 항상 함께 걷기를 약속하시더니

어찌하여 괴로움에 허덕이고 가장 당신이 필요할 때에는

나를 버리셨나이까?”


주님 대답하시기를

“참으로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아이야

내가 너를 버린 적은 절대로 없었지.

네가 시련 속에서 몸부림칠 때 한 쌍의 발자국뿐이었던 것은

내가 너를 안고 걸었기 때문이란다.”


“내가 너를 안고 걸었기 때문이란다.”

“내가 너를 안고 걸었기 때문이란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사모하며

오늘도 섬김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기다립니다.

Daily Bread & Prayer(Nov. 10. 2013) Sun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고린도전서 12:31)

- 큰 은사를 사모하게 하소서!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1Corinthians 12:31) 

- I want to a greater gift!




오늘의 묵상(11월 9일, 토) - 고린도전서 11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11장과 룻기 1장 그리고 시편 131편을 읽습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최후의 만찬에서 유래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대한 기사는 마태복음 26:17-29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어느 다락방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식사는 다른 날 저녁식사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22:19).


이와 같은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 제자들과 초대교회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교훈을 기리며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성찬의 의미를 새겨봅니다.


첫째는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 때문에 죽으셨고 나는 주님 때문에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 곧 영생입니다.


둘째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도 있었고 주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를 했지만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성만찬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확인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셋째는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를 살핀다는 것은 자기 모습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가 없는 성찬은 주님을 배신하는 것이며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넷째는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주님을 생각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식사 때마다 기도하는 것도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식사 후에도 기도하는 것은 주님을 생각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갖는 것입니다.


Daily Bread & Prayer(Nov. 9. 8 2013) Sat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전서 11:1)

-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을 이루게 하소서!

Follow my example, as I follow the example of Christ.(1Corinthians 11:1) 

- Lets I live for the imitation of Christ!



오늘의 묵상(11월 8일, 금) - 고린도전서 10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10장과 사사기 21장 그리고 시편 130편을 읽습니다.


성도들이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을 말합니다.

구별이란 모양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의 방식 즉 세상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소년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대면할 때 골리앗은 세상의 방식대로 칼과 단창과 창으로 무장을 하고 나왔지만 소년 다윗은 매끄러운 돌멩이와 막대기를 들고 나갔습니다.

사울 왕의 군대에는 소년 다윗보다 더 키도 크고 완벽하게 무장한 군사들이 많아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군사들은 세상의 방식대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 보다 키가 크고 힘도 강한 골리앗 앞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상 방식입니다.

나 보다 더 강한 것이 나타날 때는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전혀 두려움이 없이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외치며 골리앗과 대항했습니다.

골리앗은 여전히 세상 방식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용사가 없어 저런 코흘리개와 같은 어린 아이를 내보내느냐? 너는 나를 개 취급하느냐 하며 소년 다윗을 조롱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삶의 방식을 찾습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구별하십니다.


Daily Bread & Prayer(Nov. 8 2013) Fri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린도전서 10:24)

-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Nobody should seek his own good, but the good of others.(1Corinthians 10:24) 

- Lets live for the good of others!



오늘의 묵상(11월 7일, 목) - 고린도전서 9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9장과 사사기 20장 그리고 시편 129편을 읽습니다.


명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 3. 25-1957. 1. 16)는 악보를 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이 나빴다고 합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는데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연주곡 전체를 머릿속에 담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를 할 수 없는 일이 생겨 대신할 지휘자를 찾다가 악보를 다 외우고 있는 토스카니니가 발탁돼 일약 세계적인 지휘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건과 성공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악 조건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신앙의 세계에서도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첫째는 최선을 다하라!


내게 맡겨진 하루 24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사용할 줄 아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자기와 싸워 이기라!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 이기면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면 실패할 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절제라고 합니다.


셋째는 목표를 정하라!


신앙생활의 목표는 오직 주님입니다.

믿음의 주가 되시며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약속된 은혜를 생각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니.’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를 쳐서 이기며 오직 예수를 삶의 목표로 삼고 믿음의 경주자로 선한 싸움을 위해 수고한 사람에게 약속된 그 상을 바라보며 오늘도 승리의 길을 걸으시기를 기도합니다.


Daily Bread & Prayer(Nov. 7. 2013) Thu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23)

- 복음에 참여하는 삶을 이루게 하소서!

I do all this for the sake of the gospel, that I may share in its blessings.  .(1Corinthians 9:23) 

- Lets live for the Gospel!


오늘의 묵상(11월 6일, 수) - 고린도전서 8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8장과 사사기 19장 그리고 시편 128편을 읽습니다.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입니다.

구원을 거듭남이라고도 합니다.

거듭남이란 죄의 지배를 받던 자리에서 은혜의 지배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세상의 방식을 따라 갑니다.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갑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고기를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라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통되는 고기들은 판매되기 전에 우상의 제물로 바쳐졌던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과 먹어도 상관없다는 사람으로 의견이 갈라져 서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기를 먹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하여 다투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는 형제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각은 서로 다르나 그 다른 생각의 동기가 같다고 말하며 자기와 생각이 다른 형제들을 두둔하였습니다.


바울은 먹느냐 먹지 않느냐 라는 결과 보다는 오히려 왜 먹느냐 아니면 왜 먹지 않느냐 하는 동기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먹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을 위하여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먹는 사람도 하나님을 위하여 먹는다고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만을 섬기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서로를 비판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기를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문제가 아니지만 나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믿음을 갖고 있으나 누군가라 이로 인하여 실족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는 믿음을 갖겠다고 고백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화평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므로 화평을 누리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생각의 차이가 신앙의 근본 교리를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화평하며 보듬어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믿음을 기도합시다.


Daily Bread & Prayer(Nov. 6. 2013) Wed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린도전서 8:1b)

-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소서!

Knowledge puffs up, but love builds up.(1Corinthians 8:1b) 

- Lets change the world by love!




오늘의 묵상(11월 5일, 화) - 고린도전서 7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7장과 사사기 18장 그리고 시편 127편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두 가지 제도는 가정과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교회보다는 가정이 먼저 세워졌기에 가정은 모든 것의 기초라고 하겠습니다. 가정에 대한 성경적인 믿음과 실천이 없다면 사회는 혼란스러워 질 것입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 21:9) 

결혼과 이혼이 유행처럼 드러나는 시대에 올바른 결혼과 가정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재치 있게 농담하며 사람들을 웃길 줄 아는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여성은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가끔씩 남편을 소재로 농담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운 남편은 아내의 농담을 탓하지 않고 함께 웃고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남편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아내와 같이 참석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당황했습니다. 얼마 후 아내는 자신의 농담이 남편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남편이 농담의 소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유능한 남편이라며 남편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농담에 잠시 흔들렸던 남편은 평정을 찾고 아내와 함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정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세워줄 때 든든하게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성장한 후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내가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새롭게 시판되는 제품에는 반드시 사용법이 있습니다. 사용법에 따라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제품을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이므로 하나님의 설명서를 따라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최초의 결혼식을 통해 하나님의 설명서를 살펴봅니다.


첫째는 경제적 독립

아담은 다스리고 지키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돕는 배필

자신에게 적합한 짝을 찾아야 합니다. 적합한 짝이란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섭리

섭리란 하나님의 통치권에 들어가는 것으로 아담이 깊은 잠에 있을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여인을 데려다 짝지어 주셨습니다. 아담이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브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넷째는 칭찬

아담은 하와에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이라고 감격하며 감동했습니다.


다섯째는 떠남과 연합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해야 하며 여자도 부모의 영향력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하여 온전한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기 위한 결혼의 제도가 사회적 유행과 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믿음으로 더욱 든든하게 다져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Daily Bread & Prayer(Nov. 5. 2013) Tue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린도전서 7:17)

- 내게 주신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게 하소서!

Nevertheless, each one should retain the place in life that the Lord assigned to him and to which God has called him.(1Corinthians 7:17) 

- Let use the properly about the gift given to me.




오늘의 묵상(11월 4일, 월) - 고린도전서 6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6장과 사사기 17장 그리고 시편 126편을 읽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왜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하는지의 이유를 그는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모든 죄가 몸 밖에 있지만 음행은 죄가 자기 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셋째는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성결한 삶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 몸이 왜 내 몸이 아닙니까? 내 몸이 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자유를 얻게 하려고 죄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죄 값을 지불하시려고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으로 자기의 보혈로 값을 주고 우리를 샀습니다. 그러므로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몸으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생각합니다.


첫째는 성결한 생활

성결한 생활은 죄를 떠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귀한 생활

고귀한 생활은 사회에 유익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희생적 생활

희생적 생활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나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니다.

오늘도 새롭게 하소서!

Daily Bread & Prayer(Nov. 4. 2013) Mon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19-20)

- 몸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received from God? You are not your own; you were bought at a price. Therefore honor God with your body.(1Corinthians 6:19-20) 

- Let the honour of the Lord by my body.




오늘의 묵상(11월 3일, 주일) - 고린도전서 5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5장과 사사기 16장 그리고 시편 125편을 읽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양(羊)으로 묘사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요한계시록)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어린 양이라고 소개합니다(5:6-13, 6:11, 16, 7:9-10, 17, 12:11, 13:8, 14:1-4, 10, 15:3, 17;14, 19:7-9, 21:9-27, 22:1).

‘어린 양’이란 ‘큰 양’의 상대적인 표현으로 큰 양은 다 성장하여 교미(交尾)한 경험이 있는 양이지만 어린 양은 성(性)을 아직 모르므로 정결하고 순수한 양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예수의 순수성과 순결성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는 성경이 요구하는 흠과 티가 없는 정결함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구약의 짐승 제물도 흠과 티가 없어야 하듯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대속물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어린 양 예수는 순결하고 흠이 없는 제물로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제물이었습니다.

십일월 첫 주일입니다.

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는 예배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Daily Bread & Prayer(Nov. 3. 2013) Sun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린도전서 5:7)

-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Get rid of the old yeast that you may be a new batch without yeast--as you really are. For Christ, our Passover lamb, has been sacrificed.(1Corinthians 5:7) 

- Let me hear the voice of the L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