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화선사모, 경건의 일기


04 / 16 / 2020

부활절을 집에서 온라인 예배 드리는 날을 지내며 마음에 코로나 19가 마무리 되기 전에 반절로 사는 나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하는 중입니다.

어떤식으로 기록을 해야하는지 조언해 주십시요.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으셨지만 어느날 제동을 걸어 반절로 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인생에 있어서 반절로 살아야 할 것을
미리 알았었다면 어땠을까?

결혼이란것을 했을까?
못했을것이다.
안했을것이다.

아마도 부모와 함께 어린아이와 같은 그저 반절로 사는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중도에 반절로 사는 자 되었으니까.
나름대로의 자리를 확립하여 세우시려는 것이라 믿는다.
감사한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서 정지 되었음이 깨닫게 된다.
가장 적절한  시기, 때에 정지 시킴을 생각하니 감사할 뿐이다.

정지된 부분이 왼쪽 팔, 다리로 제한됨에 감사 한다.
정지 되었기 때문에 만드신 주인을 찾게되고, 알게 된 기회가 되었음에 감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
중도에 반절로 살게 될것이라는것을 알고 계셨다는것이  깨달아지면서 지난날의 일들이 이해가 되어서 놀라울 뿐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어제의 나를 보니
고도근시를 가지고 살고 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사용하게된 안경이
결혼할 당시 남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면에서 탁월했고  나에게는 넘친 상대를 돕는 배필이라고 맺어지게 하신것이 하나님이셨다.

이렇게 무조건 믿는  하나님이  남편의 관계에서는 남편을 통해  나의 깊은데를 보게 하시면서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하셨다.
나라는 존재는 할 수 있는것 아무것도 없는 존재임이라고 알게 될 때가 하나님만 보게 하시는 때임에도 나는 나의 이런 자신만을 보고 있었고 이럴 때 사탄은 속삭이며 끌고 다녀 지옥의 터널을 지낼 때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만을 믿는자 되기로 결정하는 순간 사탄의 속삭임 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던것이 앞으로의 반절로 살아야 할 시절을 대비해서 예방 주사를 놓아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 
그 경험으로
육체의 정지는 감사한 것이다.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게 될 기회)

요한계시록 3:1~6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이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씀 "너는 일깨어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라리라."

이 말씀 마음에 새기며 죽게 된 것 굳건하게 하여 반절로 할 수 있는 것 찾아 한발짝 한발짝 떼며 주인이신 주님을 알아가는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온전하기위해 하루하루 성령충만을 기도하며 살아가니 살아계신 하나님을 어찌 외면하며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행하십니다.

4월 17일(금)


여행자의 시편 
- 작자 미상

"존 드레셔"의 책 '믿음을 심는 자녀 교육(생명의 말씀사)'에서

이 땅을 여행할 때
나는 찬송하며 갔다네
내 영혼은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의 갈보리를 향했네
많은 화살들이
내 영혼을 관통했지만,
나의 주님
나를 이끄시네,
그분을 통해
나는 반드시 이기리.

그분을 뵙기 원하네,
그분의 얼굴 뵙기 원하네
거기서 그분의 은혜를
영원히 찬송하리라
영광의 길 위에서 찬송하리라,
목소리를 높여서
근심은 지나가고
마침내 집이라네,
영원히 즐거워하리.


내가 바라는 것  
- 우찌무라 간조

하나님,
저는 저와 제 집을 축복해 주십사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것으로 써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저희에게 좋은 것을 주십사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저희가 소유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바치게 해주십사고
기도합니다.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최대의 선물은
겸손한 마음과 요구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마음을 저희에게 주심을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추억에서 들추어낸 글


커피점에 앉아 기록했던것 중에서 몇개 오려 봅니다.

11 / 8 / 17 (수)

갑자기 추워졌고 흐린날

내안에 거하시는주
주를 믿으면 믿는자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으로 알게 된다

내 안에 거하시는 주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고 회개 할때 평안의 마음이되기에
알게되네

내 안에 거하시는 주
이천년전 유대땅에 나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 는 것을 알게 하시고 믿게하시네

내 안에 거하시는 주
육으로 난것 모두 알게 하시며 부수시네 새롭게 빚기에 알맞게 부수시고 녹이신다
나는 없고 주만 있게하시기위해서....

12 / 4 /17 (월)

맑고 걷기 좋은날

역전,반전의 하나님!

죽고자 하면산다.
살고자 하면 죽는다

작은것에 충성하면
큰것을 맡기겠다

있는자에게 더주신다
없는자는 그 있는것도 빼앗으신다

1/13/18 토

극한 추위와 눈보라도 지나고 밤새 온 비로 거리가 제모습 드러낸 오늘!!

이사갈 새집에 온가족이 출동하는 날!!
주님이 기뻐하실 '나가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발짝떼게 하심임을..

주님의 소유삼으시고
제사장 나라 되게 하시려고 연합케하심~

성령이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면서...

주님의 거룩한 나라로 세워 가시는 주님 !

거룩한 나라 백성으로 온전케 회복하소서

주님을 위한 소리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한 발걸음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한 움직임 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한 생각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한 섬김되게 하소서
주님이 마음의 주 되심이며
주님이 부으신 사랑에
응답하는 사랑의 메아리 되어
사나, 죽으나 오직 주님만이 영광 받으소서.








부활에 대한 동영상 및 언로 보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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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 사도신경 오해 말라···부활이 육신소생 아닌 까닭"

https://news.joins.com/article/23752159?cloc=joongang-home-newslistleft

부활절(12일)을 앞두고 경기도 용인에서 8일 정양모(85) 신부를 만났다.
그는 성서 신학에 있어서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꼽힌다.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성서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스라엘로 건너가 도미니크 회 성서연구소에서 일한 바 있다.
광주 가톨릭대, 서강대, 성공회대 교수를 역임했다.
다석 유영모의 영성을 연구하는 다석학회장도 15년째 맡고 있다. 
 

정양모 신부는 "예수 공부와 예수 닮기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첩경이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3년, 독일에서 7년간 머무른 탓에 외국어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프랑스어ㆍ독일어ㆍ영어는 물론이고 예수가 썼던 아람어와 히브리어,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도 능통하다.
그에게 물음을 던지면 늘 ‘정확한 답’이 돌아온다.
정양모 신부에게 예수와 부활을 물었다.  
 
  • 곧 부활절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부활’이 왜 중요한가?

  • “가톨릭ㆍ개신교ㆍ정교회 할 것 없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예수 공부’ ‘예수 닮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첩경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이승의 현실이라 이해하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부활로 들어가면 말을 잃게 십상이다.”
  • 왜 말을 잃게 되나?

  • “부활은 시공을 넘어서는 초월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이든, 우리 부활이든 마찬가지다.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곧장 확신을 갖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부활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히는 게 당연한 일이다.”
  •  
    45

    45세에 요절한 조각가 장동호 씨의 작품을 정양모 신부가 들고 있다.
    가시관을 쓴 예수의 모습을 보며 정 신부는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풀었다.

     
  • 그럼에도 그리스도교는 ‘부활’을 이야기하지 않나?

  • “입을 다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부활이 없다면 어찌 되겠나.
    인생과 죽음에 대한 답변도 없어진다.
    그러니 예수 부활, 우리 부활을 궁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활 신앙이나 부활 이야기는 유대교 묵시 문학의 영향을 받아서 기술됐다.”
  • 묵시 문학이 뭔가?

  • “묵시 문학은 ‘역사는 곧 끝장나고, 종말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묵시 문학 가운데 구약 성서에서 대표적인 작품이 다니엘서,
    신약 성서에서는 요한묵시록(개신교는 ‘요한계시록’이라 부름)이다.
    서기전 200년에서 서기후 100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난세 중의 난세였다.
    시리아 정권의 압제에 주권을 잃은 이스라엘이 다시 로마 정권에 점령을 당한 시절이었다.
    민족 독립을 쟁취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전적으로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백성이 실의와 절망에 빠진 시절이었다. 그래서 말세론이 성행했다.”
  •  

    정양모 신부는 "묵시 문학은 난세 문학이다.
    사람들이 실의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종말론과 육신 영생론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왜 말세론이 필요했나?

  • “종말이 닥쳐서 적들은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하리라. 현세는 물러가고, 새 하늘 새 땅 신천지가 도래하리라. 묵시 문학은 그걸 담고 있다. 그래서 묵시 문학은 한마디로 난세 문학이다. 한국에도 아주 흡사한 형태가 있었다. 조선조 말기 백성이 도탄에 빠져있던 시절에 성행한 ‘정감록(鄭鑑錄)’이다.” 당시 민간에 널리 퍼졌던 ‘정감록’은 조선의 종말을 예언했다.  
  •  
    이어서 정 신부는 ‘육신 부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요즘도 ‘예수의 부활이 육신의 부활인가, 아니면 영적인 부활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 육신 부활 사상의 뿌리는 과연 어디일까. 정 신부는 “묵시 문학에서는 종말 임박 사상과 더불어 종말 때 육신 부활이 있으리라는 강렬한 희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 육신 부활에 대한 갈망, 어디에서 비롯됐나?

  • “묵시 문학 태동의 직접적 계기는 마카베오 독립전쟁(기원전 167~142년 벌어진 고대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독립군이 무수하게 처단을 당했다. 처단을 당한 저들을 하느님이 버려두지 않고 거두어 가신다. 유대인은 그렇게 믿었다. 그게 육신 부활 사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말한다. 예수님의 육신이 부활하셨다. 그리스도인도 장차 육신이 부활하리라. 과학적 사고를 하는 현대인이 ‘육신 부활’을 이해하기는 나날이 더 어렵다. 글자 그대로 하면 ‘시신 소생’처럼 들릴 수도 있다.”
  •  

    정양모 신부가 "무척 아름다운 십자가상"이라며 독일 쾰른의 조각가가 만든 십자가상을 들고 있다.

     
  • 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주일미사와 예배 때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고 고백하지 않나?

  • “사도신경에 그 고백이 있다.
    그런데 사도신경 속의 육신 부활 신조도 참 조심해서 이해를 해야 한다.
    글자 그대로 보면서 ‘시신이 소생한다’고 하면 곤란하다.
    그건 구원이 아니다.
    사도 바오로(바울)도 ‘부활의 육신은 신령한 육신이다. 영광스러운 육신이다’ 고 했다.
    다시 말해 이승의 육신이 아니라 이승을 초월한 육신이란 뜻이다.”
  • 지금도 이승에 있는 실제 우리 몸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어찌 되나?

  • “이승의 몸은 결국 소멸하는 존재다.
    그러니 이승의 육신이 부활한다 해도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다.
    그건 구원이 아니다.
    이승을 넘어서고, 이승을 초월해야 영원이 있다. 그것이 구원이다.”
  •  

    인터뷰 도중에 정양모 신부는 문득문득 사색에 잠겼다. 그의 답에는 교리의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고, 본질을 향해 들어가려는 영적 지향이 강하게 녹아 있다.

     
    이 말끝에 정 신부는 불교의 ‘열반’을 꺼냈다. “불가에서는 ‘부활’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열반’이란 말을 쓴다. 산스크리트어로 ‘니르바나’, 팔리어로는 ‘닛빠나’, 그걸 중국에서 한자로 음역한 게 ‘열반(涅槃)’이다. 열반이 뭔가. 탐(貪)ㆍ진(瞋)ㆍ치(癡)라는 이승의 삼독(三毒ㆍ세 가지 독)을 온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부활과 열반, 둘 다 이승의 질곡을 초월한다. 그래서 구원이다. 이승에 함몰되면 구원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종교 문화가 다르니까 표현도 다르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상통하는 바가 있다.”
     
  • 당신이 바라보는 부활 후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 “저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추수’ ‘수확’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신약 성서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많고도 많다. 그중에서 제게 가장 감동적인 말씀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정의다. 그 대목이 신ㆍ구약 성경을 통틀어 딱 두 군데 나온다. 요한1서 4장 8절과 16절이다. 그런 하느님을 의식하고, 말로 행동으로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化身)이다. 화신은 불교 용어다. 그래도 나는 그대로 쓰고 싶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깊이깊이 깨닫고, 맑게맑게 반사하신 분이다. 예수님은 사랑의 덕을 끝까지 밀고 가다가 처형이 되셨다. 그러나 하느님 보시기에 제대로 살았고, 또 제대로 죽었다. 그런 예수의 인생을 추수해 가신 것. 나는 그걸 부활이라고 본다.”
  •  
     

    정양모 신부는 "신구약 성서를 통틀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정의가 가장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정양모 신부는 예수 부활에 이어 우리 부활을 이야기했다.
    “내가 이 생을 살다가,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내가 익으면, 하느님께서 내 인생을 거두어가신다. 수확하신다. 나는 거기에 부활의 깊은 뜻이 있다고 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가슴을 뚫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생각났다. “하느님을 깊이깊이 깨닫고, 맑게맑게 반사하는 삶”. 부활의 지점이 따로 있을까. 거기야 말로 우리가 부활하는 현장이 아닐까.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신사도운동


    일루미나티
     

    바이에른 광명회(光明會, Illuminatenorden Bayern)
    광명회(Der Illuminatenorden)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몇몇 집단의 명칭 가운데 하나이다.
    "일루미나티"는 라틴어로 ‘계몽하다’ 혹은 ‘밝히다', '깨달은'이라는 뜻의 “illuminatus”의 복수형.
    계몽주의 시대인 1776년 5월 1일에 설립된 비밀결사대이다.
    일루미나티와 같이 함께 주목받는 또 다른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이 실제로 300주년 영상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면서
    일루미나티 또한 의혹이 사그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루미나티는 18세기에 해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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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리(Freemasonry, "자유 석공 모임"이라는 뜻)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발생한 인도주의적 박애주의를 지향하는 우애단체(fraternity: 친목단체) 혹은 취미 클럽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는 지칭은 엄밀히 말해 단체명이 아니라 회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프리메이슨은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 여러 형태로 존재하며, 스코틀랜드 그랜드 롯지와 아일랜드 그랜드 롯지 관할하에
    약 15만명, 영국 연합 그랜드 롯지 관할하에 약 25만명 등 영국과 아일랜드에 약 4십만명이 있고, 미국에 약 2백만 명이 있는 등,
    전 세계적으로 약 6백만 명의 회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회원들은 각 그랜드 롯지의 헌장에 입각한 선언을 포함해서 여러 방식으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믿음을 나눈다.
    대부분의 그랜드 롯지들은 지고자(Supreme Being)를 믿는다는 선언을 회원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 중 하나로 삼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그랜드 롯지도 있다.

    프리메이슨 조직은 그랜드 롯지(Grand Lodge)를 중심으로 하위 롯지, 즉 단위 롯지(Constituent Lodge)들을 편성해 각 그랜드 롯지별로 독자적 관할권을 가지고 자치적으로 운영한다. 따라서 전 세계의 프리메이슨을 통괄하여 관할하는 프리메이슨 총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랜드 롯지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커다란 집 또는 집회소"로 "본부"를 뜻하며, 대롯지라고도 한다. 그랜드 롯지는 또한 그랜드 오리엔트(Grand Orient: 프랑스어 발음으로 "그랑토리앙"이라고도 하며,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커다란 서광")라고도 한다. 단위 롯지는 메이스닉 롯지(Masonic Lodge)라고도 하며, 흔히 간단히 롯지라고도 한다. 각 그랜드 롯지의 관할구는 지역적 개념이 아니며, 단위 롯지들의 총합이 곧 해당 그랜드 롯지의 관할구이다. 마찬가지로, 롯지, 즉 단위 롯지도 건물 또는 지역의 개념이 아니며 프리메이슨들이 모여 하나의 그룹을 이루면 그것이 곧 단위 롯지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회원들이 "롯지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롯지로서 모인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흔히, 각 그룹의 모임 장소이자 운영 센터로 사용되는 건물을 롯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각 그랜드 롯지는 단위 롯지들을 편성하여 자신의 관할구를 만들고, 두 그랜드 롯지가 서로가 프리메이슨의 성격에 합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 서로를 우호 관계(in Amity)에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우호 관계에 있는 그랜드 롯지간에는 회원들이 상대의 관할구를 방문할 수 있다.[4]

    프리메이슨은 채석공의 연장과 용구를 상징으로 사용한다.




    프리메이슨의 심볼 가운데 하나.
    컴퍼스와 자는 일찍이 이 조직이 석공 길드였단 것을 말해준다.
    오름새 삼각형(컴퍼스)와 하향 삼각형(직각자)이 결합해 형성된 다윗의 별은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 등 세계의 이원성의 융화를 표현하고 있다.
    중앙의 ‘G’는 히브리어로 하나라는 뜻의 기멜(Gimel)로 우리는 하나라는 뜻이며 또는 지고적 존재,
    곧 신(GOD)과 기하학(geometry)을 의미한다.
    또한 프리메이슨을 상징하는 건축도구는 각각 인간의 미덕과 대응해 컴퍼스는 진리, 직각자는 도덕, 흙손은 결속과 우애, 몽둥이는 지식이나 지혜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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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新)사도(使徒) 운동
    영어로는 New Apostolic Reformation(새로운 사도적 개혁),
    New Apostolic Movement(새로운 사도적 운동)이라고 한다.

    신사도 운동은 풀러신학교 교수인 찰스 피터 와그너 등 근본주의 개신교 계통에서 출발한 부흥 운동이다.
    이 운동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완전히 사이비라고 하여 까는 신학자도 있지만, 잘못된 부분이 있지만 사이비라고 할 정도는 아니므로 잘 지도하여 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본래 시작은 남미의 성령운동(혹은 오순절운동)의 한 분파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토론토 에어포트교회나 신비주의 등으로 한국에 많이 알려졌다.

    사도와 예언자의 직위를 회복한다는 주장이 요점이다.
    교회에서 예언사역, 성령치유 등 내용을 유독 강조한다면 이 운동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G12나 알파코스도 관련이 있다.

    한국 장로교는 합신, 합동 등 보수 교단에서는 알파코스는 이단성이 있다며 배척하기로 했고, 예장통합 교단에서는 알파코스가 교회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남용되거나 신비주의적으로 변형되지 않고 잉글랜드 성공회의 본래 취지(비신자 전도 프로그램)대로 운영된다는 조건이 지켜진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G12 구조는 교회 내부의 소그룹 스타일로 그대로 가능하기 때문에 신사도주의와 관계없이 교회 구조로 사용하기도 하므로, 무조건 신사도 운동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기는 조금 곤란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신사도 운동에서 G12와 알파코스를 서로 분리하여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 보이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 운동이 처음 시작된 미국은 물론이며 한국에서도 많은 개신교 교단에서 이단/참여 금지/교류 금지 등으로 의결되었다.
    열성적인 신앙은 인정하나, 극단적인 신비주의기복신앙 등이 개신교의 본 의미에서 심하게 벗어난다는 것이 이유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신사도운동 관련 단체가 정치권 및 대형 교회와 결탁하여 활동하므로 더욱 문제시된다.

    주요 이론가로는 
    피터 와그너
    (C. Peter Wagner),
    릭 조이너(Rick Joyner),
    빌 존슨(Bill Johnson),
    크리스 발로튼(Kris Vallotton),
    체 안(Ché Ahn),
    제임스 골(James Goll),
    마크 치로나(Mark Chironna),
    빌 헤이몬(Bill Hamon),
    존 아놋(John Arnott),
    마이크 비클(Mike Bickle),
    제임스 라일,
    폴 카인,
    타드 벤틀리(Todd Bentley),
    짐 베이커,
    로드니 하워드-브라운(Rodney Howard-Browne),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루 엔글(Lou Engle),
    킴 클레멘트(Kim Clement),
    랜디 클라크(Randy Clark),
    샨볼츠,
    하이디베이커 등이 있다.

    만약 교회 목사가 이들의 이름이나 저서를 언급하거나 추천한다면, 이미 신사도 운동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고 봐도 된다.

    다만 주의해서 볼 것은 한국에서의 신사도 운동 양상과 미국에서의 신사도 운동의 양상은 확연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의 경우 신사도 운동과 IHOP이 서로 구분되고 (그 뿌리가 되는 곳은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사실상 그 두 집단의 혼종과도 같은 양상을 보이기 때문. 한편 또 다른 복음주의권인 영국도 이 운동의 태동기에 영향을 받았으나, 영국의 경우 특유의 토론 문화로 초기에 가이드라인을 정리하고 취사선택을 하였기 때문에 도구적으로 받아들인 것 이외에 교리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본고장인 미국의 경우 신사도 운동과 IHOP의 구분점이 다르기 때문에 두 운동을 따로 구분 지어 서술한다.

    교리와 사상

    신사도 운동은 대략 다음과 같은 교리와 사상을 가지고 있다.
    1. 사도와 선지자가 아직도 존재한다.(그 사도가 성경에 나오는 정경을 기록한 토대적인 사도와 같은 권위를 가진다고 믿고 있다.)
    2. 성경 외에 직통계시와 예언이 아직도 존재한다.
    3. 기적과 표적의 집회를 강조한다.
    4. 안수를 통하여 성령과 은사, 능력을 전이(임파테이션)시킬 수 있다.
    5. 세상을 종교경제문화정치교육 등 7개의 권역(칠권역, 일곱 산)으로 나누어, 이 모든 분야를 신사도운동의 교회가 지배하고 통치하여(통치신학, 도미니온) 지상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면(킹덤나우), 예수가 재림하신다. 그 중요한 수단과 방법은 "부의 이동"(돈)과 "일터교회"이다.(두 기둥)[14]
    6. 기독교는 옛 포도주이며 헌 가죽부대로서, 신사도개혁운동의 새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7.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하여 정통신학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이단교리와 사상도 모두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개방신학)[15]
    8. 종말적으로 신사도운동의 교회가 크게 부흥되며 대다수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한다.(대부흥과 대추수)[16]
    9. 성경의 알레고리적인 비유해석.
    10. 지금도 구약과 같은 많은 중보자가 있어서, 예언적 중보기도를 할 수 있다.
    11. 24시간/365일 쉬지 않고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Harp & Bowl(하나님의 임재)을 강조한다. IHOP이 대표적인 예.
    12.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설하면 조만간 종말이 올 것이다. 우리 세대가 될 수도 있다. 무슬림이 쳐들어오면 그들 중 80%이상이 죽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 전쟁이 바로 아마겟돈 전쟁이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들과 목회자들의 언행의 특징

    만약 어느 단체에서 아래 나오는 특정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면 신사도 운동과 관련이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사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위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1. 신사도적 예배 / 신사도적 교회 / 신사도적 세대 / 신사도적 질서 등의 (신)사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 100%이다.
    2. 오중직임(에페소서 4장 11절)을 자주 언급하고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들의 직분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 대추수와 킹덤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다가올 종말과 예수의 재림을 빨리 예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4. 다윗의 장막의 회복, 이스라엘의 회복, 예루살렘의 탈환 등의 말을 하며 이스라엘이 다시 아브라함의 언약의 약속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구약의 절기가 다 회복되어 다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5. 한 새 사람(One New Man) 혹은 한가지 일(원띵: One Thing)이라는 말과 구호를 자주 쓰며, 기존의 교회는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있고 이제 새로운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6. 네트워크라는 말을 자주 쓰며 교회와 세상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Church 네트워크 네트워크 마케팅?
    7. 7개 권역의 회복(또는 점령)이라는 말을 자주 쓰며 특히 재정의 산이 점령되어 세상의 부가 교회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 일터 사역 혹은 비지니스 사역이라는 말을 자주 하며 헌금을 강조한다.
    8. 크라운 재정 세미나 등의 재정 프로그램들을 교회로 끌어들인다.
    9. 예언과 접신을 강조하고 빈야드식의 쓰러짐과 뒹구는 집회를 자꾸 하려고 한다. 소위 "토론토 블레싱"이라고 불리는 기도집회를 강조한다.
    10. 신사도단체[17]가 주관하는 집회에 자주 참석하고 교회에서도 광고하며 참여를 종용한다.
    11. 예언자들이라고 하는 정체 불명의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여 집회하고 자신들도 적극적으로 예언하라고 말한다.
    12. 재정의 돌파, 상황의 돌파 등의 돌파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13. 하프 앤 보울 예배를 신령한 예배, 기름부은 예배라고 소개하며 교회에 도입한다.
    14. 임파테이션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성령의 능력을 전달받으라고 한다.
    15.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재정이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뜻이라고 한다.
    16. 직통계시를 강조하고 "지금 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말을 자주 한다.
    17. 예수를 예슈아라고 부르고 유다의 사자라는 표현으로 호칭한다. 이외에도 몇몇 단어나 습관 등을 유대교에서 차용하기도 한다.
    18. 새 부대(New Skin), 새 술(New Wine)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며 자신들이 새 부대와 새 술이라고 말한다.[18]
    19. 위의 항목 중 최소 10가지 이상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신사도 운동은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자기는 무관하다고 극구 부인한다. 사실 신사도 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이런 항목에 해당하는 단체들을 규정짓기 위해 만든 단어라서, 당사자들은 자기네가 어떻게 불리는지도 잘 모르는 듯.

    신사도 운동에 빠진 신자들의 언행의 특성

    1. 신사도 운동이 주로 청년층을 타겟으로 삼기 때문에 청년들이 특히 많이 몰린다. 이들에게 하는 예언은 대동소이하다. 대체로 "내가 너를 큰 자로 세우겠다.", "네가 하는 일을 이루겠다." 이런 식이다.[19] 이런 말 솔직히 누가 못해 아무튼 방황하는 청년들은 여기에 열광하여서 빠져든다.
    2. 세상의 모든 지역을 영적인 성지악의 소굴전투 중인 곳으로 구분해 놓고 전투 중인 곳과 악의 소굴에서 승리하기 위한 영적전쟁을 매우 강조한다.
    3. 정치적으로 기독교 우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극우적인 태도로 현실 정치에 자주 개입한다.(ex.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본고장 미국에서도 비슷해서 지난 미국 대선을 앞두고는 캘리포니아 등 일부 리버럴한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사도 교회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였다.

    실상

    사도의 직분 논쟁

    신사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사도권이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것이 예언사역을 하는 리더자들에게 계승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맥락이다. 그러나 신학적 관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일단 개혁신학에서는 사도와 예언자의 직분은 매우 특수한 직분이며 신약시대, 혹은 초대교회 시대 이후로는 사라진 직분으로 보고있다. 아무리 사도와 예언자에 대한 개방적인 신학적 자세를 견지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에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건 어떤 공신력이 있는 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만의 주장에 그칠 수 있는 것이다. 개혁신학의 경우 보통의 신학교에서는 신약시대 이후 사도의 직분은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굳이 사도라는 명칭을 쓴다면 그것은 계승이 아니라 사도의 정신으로, 사도의 마음으로 정도로 쓰는 것이 무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요한 논점이 되는 것은, 실제로 성경에 잘 알려진 12사도와 바울로 외 곳곳에 야고보, 바나바 등의 사도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이 아니며 그 시대 초대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었다. 개신교에서는 이들을 속사도라고 하며 주후 2세기경의 이러한 사람들을 초대교회 교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경에서 사도직이 끊어졌다고 말한 곳이 한 곳도 없기에(그래서 오히려 성경만 읽다 보면 사도가 아직 있는 줄로 믿게 된다.) 논란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도가 존재하느냐의 여부보다도 현 시대 사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기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주류 개신교단에서 사도는 성경을 기록한 존재로 여겨지기에 사도의 존재 여부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대다수 단체는 현재 존재하는 사도는 성경을 기록할 수 있는 종류의 사도가 아니라고 하여 넘어간다.)

    계시록 완성 전에는 성경이 정립되지 않았기에 사도들이 활동하여 증거하였으나 계시록이 완성되고 정경이 확립된 이후에는 성경을 통하여 계시되기 때문에 사도의 역할은 끝난 것이다. 즉, 예수라는 주춧돌 위에 사도들이 기초를 쌓아서 완성한 것이 신약이다. '현재에도 사도직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이미 기초를 쌓은 건물 위에 다시 기초를 쌓을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과 같다.

    성경은 완성되었으며 사람이 임의로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요한계시록을 마지막으로 성경은 완성된 것이다.

    다른 기독교계 종파의 경우

    다만, 기독교계 종파 중 가톨릭·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성공회에서는 사도직이 계승된다고 가르친다.[20] 이것이 가시적인 형태의 이른바 사도계승권이다. 한 교회가 사도로부터 이어온 정통신앙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중요 기준으로써 그 사도직을 계승한 사람들이 바로 한 교회를 담당하는 주교가 되는 것이며, 그들을 대리해서 현장 사목을 하는 이들이 신부이다. 주교직은 다른 주교가 안수하는 것으로 계승되며 이를 통해 사도계승권이 전수된다고 한다. 신설 교구에는 다른 주교들이 해준다. 때문에 한 지역 교회의 주교직을 거슬러 거슬러 쭉쭉 올라가고, 초대 주교를 안수해준 주교를 거슬러 올라 다시 죽 올라가면 결국 그 끝에는 12사도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은 로마의 주교로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정교회의 대표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베드로의 형제이기도 한 안드레아의 후계자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측으로부터 주교 계승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성공회에서도 영적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는 12사도는 아니나 예수를 매장한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후계자이며 이를 통해 정당한 주교 계승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도전승 참조.

    하지만 사도 자체를 인정하더라도 신사도 운동을 하는 집단처럼 여러 명의 사도가 있거나 임파테이션을 통하여 사도가 되는 경우는 없다. 사도를 인정하는 다른 교파라고 하여도 사도권은 매우 특별한 직분이지 신사도 운동처럼 리더나 목회자를 두고 사도라고 하지는 않는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들은 사도는 단순한 리더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신사도 운동에서만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자신들을 사도들로 포장하는 것 뿐이다.

    현상에 대한 지나친 집중

    이 운동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매우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표적인 몇 가지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 쓰러짐, 울부짖음 : 신사도 운동의 광신적인 집회를 대표하는 행동들. 인도자가 "성령", "불" 등 특정 단어를 외치면 갑자기 쓰러지는 식이다. 쓰러지지 않는 경우 손으로 밀쳐서 억지로 쓰러뜨리는 경우나, 심하면 쓰러지지 않는 참가자에게 옆에 있던 도우미가 귀에다 대고 "이 부분에선 쓰러져야 보기 좋아요." 하고 종용해 초심자의 한국 교회에 대한 믿음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짓을 자행하기도 한다.
    • 웃음 터짐: 신사도 운동의 인도자들의 강연을 듣다가 이유없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거나 하는 현상. 신사도 운동의 신도가 아닌 사람에게는 가히 정신병자들의 모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부감을 준다.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일 수 있다.
    • 각종 기적(?)적인 현상
    • 금이빨 : 치아가 금으로 변하는 것의 경우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으나, 정작 연구소에 가져가서 이 검출되는 일은 고사하고, 이것이 영구적으로 변한 것이라는 사례조차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다. 신사도 운동 단체에서는 "믿음이 없으면 사라진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없어진다." 식으로 주장하므로 본 사람이 없다. '믿음'이 없는 이들은 입 속에 일어난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조명에 노란 빛이 강한 손전등을 쓰는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금가루 : 집회 중 금가루가 휘날린다는 것. 특수분장용 가짜 금가루를 이용한 사기극으로 판명되었다.왜이리 금을 좋아해? 미다스의 손? 사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금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 각종 질병 치료 및 성형 등등
    • 각종 예언사역 : 사실 조금만 이성을 가지고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아니면 말고식의 예언이다. 자세한건 다음 항목 참조.

    현상 자체가 옳다, 그르다를 떠난다 하더라도, 신사도 운동의 경우 이 현상을 신앙의 척도, 혹은 구원받은 증표, 또는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1970~80년대에 순복음교단에서는 방언 현상을 구원받은 증거로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현상을 일으키는 사람을 사도와 동급으로 보거나 예언의 권위가 있는 예언가로 보고 있다. 하지만 성경 어느 곳에도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물론 마가복음에서 믿는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는 이야기는 있지만[21] 이는 사도가 아닌 모든 믿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의 표시이다.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이러한 현상에 집중하라고 가르치는 부분은 없다. 그렇다고 또 무시하라고 가르친 부분도 없다.

    고린도전서 1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방언과 예언 등 기적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예언

    데이비드 오워의 한국전쟁 예언 소동을 들 수 있다.
    그의 예언이 연평도 포격 사태가 나서 성취되었나 싶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던 일이 있다. 물론 자신들의 말을 듣고 회개했기 때문이라고 말해버리면 할 말이 없는데, 점쟁이들이 써먹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되면 자기 예언이 맞은 거고, 아니면 부정타서, 혹은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라고 둘러대는 것과 같은 맥락. 판단은 알아서 하자.

    실제로 이들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예언들을 보면 모두 과거에 있어서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은 것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라 검증 자체가 되지 않는 것들이며, 검증 가능한 것들을 객관적으로 검증해 본 결과 하나도 맞는 것이 없었다. 이들의 사도로 활동한다는 신디 제이콥스의 경우 예언이 60~70%만 성취되어도 상당히 잘 맞춘것이라고 하는데. 성경에서의 예언은 100%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에서는 점치는 행위나 개인적인 예언은 금지하고 있다. 굳이 허용된 경우라면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 정도이다.






    영광의 면류관(베드로전서 5:1-4) / 부활주일 설교원고(2020-04-12) 이승혁목사


    영광의 면류관(베드로전서 5:1∼4)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을 얻으리라


    (질문)
    부활이란 무엇인가?

    지상(地上)과 천상(天上)의 연결
    땅에서의 삶이 하늘에서도 실현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지상에서 천상으로 옮겨진 두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에녹(창세기 5:24)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둘째는 엘리야(열왕기하 2:11)

    홀연히 불말과 불수레가 엘리사와 엘리야 사이를 갈라놓은 후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더라.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행하셨던 몇 가지 행적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도마에게 보여주신 손과 옆구리(요한복음 20:27)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때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의 모든 문들을 굳게 닫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엠마오 두 제자(누가복음 24:30)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들에게 주시매.

    셋째는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요한복음 21:12)

    와서 조반을 먹으라.

    넷째는 예수님의 승천(사도행전 1:9)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

    지상과 천상으로 연결되는 몸을 "신령한 몸" 이라고 합니다(고린도전서 15:44)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것이 "영광의 관" 즉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신약 성경에 면류관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화관(스템마) 사도행전 14:13

    면류관(스테파노스) 스데반,
    요한계시록 2:10, (에베소교회)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요한계시록 3:11, (빌라델비아교회)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4:4, 24 장로들에게 면류관

    왕, 통치자(디아데마) 예수님(계 19:12), 짐승(계 13:1, 12:3)

    누가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인가?


    (도입 이야기)

    어느 아버지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구원이란 반지를 하나만 갖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구원 받은 아들에게 이 반지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세 아들은 그 구원의 반지를 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아버지가 세 아들을 지켜보며 반지를 만드는 세공사를 찾아가서 똑같은 모양의 반지를 두 개 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 아들에게 반지를 하나씩 나눠 주었습니다.
    반지를 받은 아들들은 서로 자기 반지가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세 아들들은 재판관을 찾아가서 어느 반지가 진짜 구원의 반지인지 구별해 달라고 합니다.
    난처한 입장에 처한 재판관은 솔로몬의 지혜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판결했다고 합니다.
    “구원의 반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하므로 그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자 세 아들은 내가 갖고 있는 반지가 진짜 반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구원의 반지 이야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교훈은 구원이란 구원 받은 삶을 보여주므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2020년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4월 12일 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구원 받았다면 구원 받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을 믿습니까?
    부활을 믿으면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삶과 부활 신앙을 믿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한국에서는 "불교" "가톨릭" "기독교"를 3대 종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종교를 "불교"라고 말한다면 "불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또한 "가톨릭이라고 한다면 가톨릭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라면 구원받은 삶을 살아야 하고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터어키에 선교하던 선교사 한 분에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나는 여행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고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말하기를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내가 살아 계신 예수님께 찾아가지 않고 죽어버린 마호멧을 찾아가겠습니까 ?"

    부활의 신앙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부활 신앙의 근거는 "십자가(十字架)"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는 다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의 근거가 "십자가(十字架)" 라는 것을 몇 단계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부활(復活)이란 한문자
     

    "다시 부(復), 회복할 부(復)"
    "살 활(活), 물 콸콸 흐를 활(活)"

    "다시 살아나는 것, 회복하여 살아나는 것, 다시 살아서 콸콸 흘러가는 것, 회복하여 콸콸 흘러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부활(ἀνάστασις, anastasis)이란 헬라어(386)

    Strong's Concordance ; a standing up, ie a resurrection, a raising up, rising.
    “일어서는 것 즉 부활”, “일어나는 것”

    셋째는 성경적 근거(마태복음 16:13-24)

    예수님께서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베드로의 고백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동안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때로는 먹을 것이 없던 들판에서 작은 물고기와 보리 떡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남는 것을 거둬들였습니다.
    심지어 죽었던 사람도 살려내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사건보다는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베드로의 고백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던 목적을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16:20-21,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메시아의 정체성이 처음으로 제자 베드로에게서 고백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항변하며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
    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부활 신앙의 근거는 십자가

    부활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부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려면 십자가를 찾아야 합니다.
    만일 자기 십자가를 찾지 못한 사람은 부활 신앙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부활을 믿지 않는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부활을 믿고 부활 신앙으로 살았다면 반드시 영광의 관 즉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헬라어 성경에는 면류관이란 단어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첫째는 스테파노스(Stephanos, στέφανος)

    요한계시록에 8번 사용되었습니다(요한계시록 2:10, 3:11, 4:4, 4:10, 6:2, 9:7, 12:1, 14:14) 

    본문에 사용된 "관(冠)" 이란 헬라어는 "스테파노스" 라고 합니다.
    스테파노스라는 면류관을 상징하는 이름은 "스데반"입니다(사도행전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둘째는 디아데마(Diadéma, διάδημα)

    디아데마라는 면류관은 요한계시록에 3번 사용되었습니다(계 12:3, 13:1, 19:12)

    스테파노스라는 면류관은 주로 경기장에서 우승한 사람이나 아니면 전쟁터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씌워주는 관을 말합니다.
    디아데마라는 면류관은 나라의 왕과 같은 통치자가 쓸 수 있는 관을 말합니다.


    셋째는 스템마(Stemma, στέμμα)

    스템마라는 면류관은 사도행전에서 단 한 번 사용된 면류관을 말합니다(행 14:13)
    스템마라는 면류관은 화관(花冠)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5장의 말씀을 읽어보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신앙에 대해서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첫째는 고난의 증인(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예수를 믿는 가장 최고의 보람은 "고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증인이란 함께 경험하고 참여한 사람을 말합니다.
    띠리서 고난의 증인이란 고난에 직접 참여하거나 같이 경험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순교자"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증인이란 십자가의 증인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증인이 되려면 먼저 자기 십자가를 찾아야 합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웠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땅을 밟았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 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이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영광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찾은 사람은 세상의 영광 보다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사모할 것입니다.

    장로교회에서 평신도로서 최고의 직분을 장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로가 될 때까지는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합니다.
    그런데 장로가 된 후에는 마치 교회의 주인이 된 것처럼 자신을 주장하고 내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현실에서 영광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원하는 사람(2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어떤 일을 할 때 억지로 하는 것과 자원하여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원하는 일을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 십자가를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의 그유명한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베드로가 로마에 가면 붙잡혀 죽는다는 것을 알고 로마를 벗어나려고 할 때 누군가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행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그 환상을 보고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버린 십자가 를 지고 로마로 간다."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돌이켜 로마로 가서 순교당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노부부가 성지순례차 고향 땅 이스라엘을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편은 장의사를 찾아 시신 처리와 장례 절차를 물었다.
    장의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묻힐 경우 축복도 받고 비용도 150달러면 충분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시신을 방부처리해 미국으로 공수하는 방식인데, 절차도 번거롭고 비용도 5000달러나 된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망설이다 결심했다.
    비싸더라도 미국으로 시신을 옮겨 묘지에 묻겠다는 것이었다.
    유대 땅에 묻히면 그 옛날 어느 분처럼 자기 아내가 부활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감당하기 어렵다는 ‘뼈 있는’ 이유였다.

    우리는 부활을 바란다.
    지금의 아내와 남편들도 함께 부활을 바라는가?
    부활의 생명이 오늘의 유한한 생명 속에 꽃피고 열매맺기를 정녕 바라는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늘을 내일처럼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열매일 것이다.

    셋째는 기꺼이 하는 사람(2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기꺼이라는 단어를 한글로 번역한 성경으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진심으로"
    공동번역, 새번역 성경에서는 "기쁜 마음으로"

    유대민족 전체가 하만이라는 장군의 음모에 의해서 모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가 다가왔을 때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결정하고 모든 유대민족에게 자기와 같이 금식하며 민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금식한 후에는 왕이 왕후를 궁으로 부르지 않아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으로 왕 앞에 나가 유대 민족에 대한 불의한 일을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세를 가리켜 "기꺼이 하는 것" 이라고 하겠습니다.

    기꺼이 하려면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기쁘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역사 신학자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류 역사의 가장 큰 사건 세 가지를 말한다면 하나님이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사건이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실 세계는 그 사건을 가장 큰 사건으로 지금도 인정을 합니다. 우리 인간사의 날짜 계산을 지금은 그리스도 탄생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지금이 2003년이라고 하는 날짜 계산을 온 세상이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하나님이 죽으셨다는 사건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 사건도 세계가 인정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십자가는 흉악하고 소름을 끼치는 사형 집행 기구로 누구도 보지 아니하려고 하는 괴물 같은 것으로 취급을 받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는 십자가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표시가 되어서 온 세상에 십자가가 세워져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거룩하고 경건한 표시를 몸에 지니고까지 다니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십자가가 조금 화려해 졌습니다. 금으로 만든 십자가도 있고 다이아몬드 십자가도 있을 만큼 아주 귀하게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변해진 것입니다.

    세 번째 사건은 죽었던 하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건입니다.
    이것도 온 세상이 다 인정을 합니다. 오늘 온 세계 인류는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는 합창 소리로 지구를 진동시키고 있는 날이 오늘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이 작은 나라에만도 50,000개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말하면 온 세계 지구 전체는 오늘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는 인류의 대 축제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것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네 번째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일이 하나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이 세상에 다시 재림하여 오시는 사건이 됩니다. 결국 인류사는 예수의 사건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큰 사건이요 관심이 된 것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넷째는 본이 되는 사람(3절)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장로교의 창시자인 장 칼뱅은 생전에 남긴 업적도 대단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도 큰 영적 교훈을 남기고 갔다.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장로교회를 창립하자 그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장로교회를 세웠고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유럽 각지로 흩어져 개혁교회들을 세웠다.

    칼뱅이 죽을 때 남겼던 유언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바로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유지를 따라 지금도 제네바에 가면 장 칼뱅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덤 위에 ‘J.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놓았다.
    그래서 칼뱅의 유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덤가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장차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칼뱅처럼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겠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언어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을 삼가고 주로 집안에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들도 집안에 거하며 외부의 일을 주로 다니엘이 맡아서 수고합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에 다니엘이 164가 우리아메리카 은행에 다녀온 후에 베이사이드 한아름 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제가 필요한 물품 9가지를 적어서 다니엘에게 주며 목록에 적힌 것들을 구입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중에 어머님이 자주 사용하시는 소금이 있었습니다.
    천일염이 아니라 주방에서 자주 사용하는 아주 가는 소금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붉은 색 표가 있는 소금을 구해왔습니다.
    그 소금을 어머니가 보시고는 "다니엘아 이 소금은 짜서 못써!"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또 돼지 삼겹살을 부탁했는데 돼지 껍데기를 제거한 삼겹살을 가져왔습니다.
    삼겹살을 삶아서 수육으로 만들어 먹으면서 제가 다니엘에게 "다니엘아 다음부터는 삼겹살을 사려면 돼지 껍데기가 있는 것을 사면 좋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족들끼리도 서로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예의 없이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본이 되려면 먼저 잘못된 언어의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어느 노인 아파트에 거주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부가 모두 잘 알려진 유명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뉴욕에서 목회자가 되었는데 부모님처럼 명문 대학을 졸업한 것이 아니라 겨우 어느 교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목사가 목회하는 것도 실력도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부부가 아들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아무게 목사님!" 이렇게 극존칭을 사용합니다.
    그런 모습이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부부로 더 나가서 아들 목사까지도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본이 되는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본이 되신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셨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동안에 부활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 좋은 예를 요한복음 11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다니라는 동네에는 예수님과 가깝게 교제했던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고 연락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머리털로 머리털로 발을 닦던 사람이었고 나사로는 마리아의 오라비였습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사람을 보내어 속히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신 후에 다시 유다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예수
    는 나사로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제자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이미 죽었고 무덤에 안치하고 나흘이 지났습니다.
    마르다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
    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
    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
    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과 가깝게 지냈던 마르다와 마리아도 부활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부활 생명이 이 다음에 부활 때에 일어날 사건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부활 생명이 부활 때에만 일어나야 할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일어나야 할 사건이라고 깨우치시려고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려면 먼저 부활 때에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부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 신앙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부활을 믿는 성도들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것만이 부활 신앙은 아닙니다.
    부활 신앙이란 죽음 후에 심판대 앞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심을 갖고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경주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 신앙으로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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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 pineapple water



    Hot pineapple water

    please spread it! 
    please spread it!
    Professor Chen Huiren of the Beijing Army General Hospital stressed that if everyone who receives this bulletin can carry ten copies to others', surely at least one life will be saved ...
    I have done some of my responsibility, hopefully you can do it too ..
    Thank you!

     Hot pineapple water can save you a lifetime
     Hot pineapple ~ can kill cancer cells.
     Cut 2 to 3 pieces of pineapple thinner in a cup, add hot water, it will be "alkaline water", drink every day, it is good for anyone.
     Hot pineapple releases anti-cancer substances, which are the latest advances in effective cancer treatment in medicine.
     The hot pineapple fruit has the effect of killing cysts and tumors.  Proven to repair all types of cancer.
     Hot pineapple water can kill all germs and toxins from the body as a result of alergic / allergies
     The type of medicine with pineapple extract only destroys * violent cells *, it does not affect healthy cells.
     In addition, amino acids and pineapple polyphenols in pineapple juice can regulate high blood pressure, effectively preventing the blockage of inner blood vessels, adjusting blood circulation and reducing blood clots.
     After reading, tell others, family, friends, Take care of your own health ..
     Pleases don't hide the message.
    Spread it and you will save life.

    뜨거운 파인애플 물입니다.
    전달해주세요! 전달해주세요!
    베이징 육군 종합병원의 천희렌 교수는 만약 이 게시판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10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적어도 한 명의 목숨은 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제 책임을 다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해요!
    뜨거운 파인애플 물은 당신을 평생 살 수 있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은 암세포를 죽일 수 있습니다.

    2-3조각의 파인애플 시너를 컵에 자르고, 뜨거운 물을 더하면, 그것은 "알칼리성 물"이 될 것이고, 매일 마실 것이고,
    누구에게나 좋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은 항암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것은 의학에서 가장 최근에 개발된 효과적인 암 치료법입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과일은 낭종이나 종양을 죽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암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은 알레르기의 결과로 신체의 모든 세균과 독소를 죽일 수 있습니다.
    파인애플 추출물이 들어 있는 약의 종류는 단지 * 폭력적인 세포들을 파괴할 뿐, 건강한 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또 파인애플 주스에 들어있는 아미노산과 파인애플 폴리페놀은 고혈압을 조절할 수 있어 내혈관의 막힘과 혈액순환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혈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세요, 가족, 친구, 건강하세요.
     메시지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것을 퍼뜨리면 생명을 구할 수 있어요.


    공산당 선언문 (The Communist Manifesto)

    공산당 선언 (The Communist Manifesto)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1848

    서두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구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 

    반정부당치고, 정권을 잡고 있는 자신의 적들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또 반정부당치고, 더 진보적인 반정부당이나 반동적인 적들에 대해 거꾸로 공산주의라고 낙인 찍으며 비난한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들에게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 공산주의자들이 전세계를 향해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경향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소문을 당 자체의 선언으로 대치해야 할 절호의 시기가 닥쳐왔다. 


    이러한 목적으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이 런던에 모여서 다음과 같은 『선언』 을 입안하고 그것을 영어, 프랑스 어, 독일어, 이탈리아 어, 플랑드르 어와 덴마크 어로 발간한다.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동업 조합의 장인과 직인, 요컨대 서로 영원한 적대 관계에 있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 왔다. 그리고 이 투쟁은 항상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예전에는 역사상의 각 시기마다 거의 어디서나 사회가 각종 신분으로 완전히 분열된 상태인 각종 사회적 위계 질서가 발견된다. 고대 로마에는 귀족·기사·평민·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 영주·가신(家臣)·동업 조합의 장인·직인·농노가 있었으며, 다시 이 계급들 하나하나가 다 특수한 등급들로 나뉘어 있었다.


    봉건 사회가 몰락하고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 또한 계급 모순을 폐기하지 못했다. 이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과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과 바꿔 놓은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시대, 즉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 모순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적대 진영으로, 즉 서로 대립하는 두 계급인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더욱더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중세의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자유민이 생겨났고, 이 시민층으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첫번째 요소들이 발전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아프리카 회항로(回航路)의 발견은 대두하는 부르주아지에게 신천지를 열어 주었다. 동인도와 중국 시장, 아메리카의 식민지화, 식민지와의 교역, 교환 수단과 상품량의 증가는 상업, 항해, 공업에 전례 없는 충격을 주었으며, 그리하여 무너져 가던 봉건 사회 안에서 혁명적 요소를 급격히 발전시켰다.


    예전의 봉건적 또는 동업 조합적 공업 경영 방식은 새로운 시장과 함께 늘어난 수요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조직을 대신한 것이 매뉴팩처였다. 동업 조합의 장인들은 매뉴팩처 공업에 종사하는 중간 계급에게 밀려났으며, 서로 다른 동업 조합 사이의 분업은 개별 작업장별로 이루어지는 분업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동안에도 시장은 더욱 넓어지고 수요는 계속 늘어났다. 이제 매뉴팩처도 이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증기와 기계가 공업 생산에 혁명을 일으켰다. 매뉴팩처의 자리를 현대적인 대공업이 차지하고, 공업에 종사하는 중간 계급의 자리를 공업에 종사하는 백만 장자들, 대공업 군대의 우두머리들, 현대 부르주아들이 차지했다.


    대공업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준비되고 있던 세계 시장을 만들어 냈다. 세계 시장은 상업, 해운과 육상 교통의 거대한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발전이 이번에는 거꾸로 공업의 확장에 영향을 끼쳤다. 공업, 상업, 해운, 철도가 확대되는 만큼 부르주아지도 발전했으며, 부르주아지는 자본을 늘림으로써 중세 때부터 내려오던 모든 계급들을 뒷전으로 밀어내 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 부르주아지 자체가 기나긴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생산과 교환 방식에서 일어난 있따른 변혁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각 발전 단계에 발맞추어 정치적 진보도 함께 이루어졌다. 봉건 영주의 지배 밑에서는 피억압 신분이었고 코뮌에서는 무장을 갖춘 자치 단체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독립한 도시 공화국(독일과 이탈리아에서와 같이), 또 다른 곳에서는 납세 의무를 지닌 군주 국가의 제3신분(프랑스에서와 같이), 그리고 매뉴팩처 시기에는 신분제 또는 절대 군주 국가의 귀족에 대항하는 세력, 즉 대군주 국가 일반의 주된 토대였던 부르주아지는 대공업과 세계 시장이 형성된 이래 현대의 대의제 국가에서 마침내 독점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했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아주 혁명적인 역할을 해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획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牧歌的) 관계를 파괴했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을 타고난 상전들에게 얽매어 놓고 있던 온갖 봉건적 속박을 가차없이 토막내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노골적인 이해 관계와 냉혹한 '현금 계산'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광신, 기사적(騎士的)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황홀경을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 가치로 해체했으며, 특허장으로 보장되거나 투쟁을 통해 얻어진 수많은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즉 상거래의 자유를 내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정치적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도 잔인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영예로운 것으로 생각되어 왔고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보아 오던 모든 직업에서 그것들이 갖고 있던 후광을 빼앗았다. 그들은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들을 자신이 고용하는 임금 노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가족 관계에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상의 껍데기를 벗겨 순전히 금전 관계로 바꿔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반동배가 중세에 그처럼 감탄해 마지않던 야만적인 힘 자랑이 게으름과 침체로 얼마나 적당히 보완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들이야말로 인간의 활동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보여 주었다. 그들은 경탄할 만한 예술을 창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로마의 수로(水路), 고딕식 성당과는 완전히 다른 기적이었다. 그들은 민족의 대이동이나 십자군과는 완전히 다른 원정을 해냈다.


    부르주아지는 생산 도구를 끊임없이 변혁하지 않고서는, 따라서 생산 관계와 더 나아가 사회 관계 전반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에 종전의 산업에 종사하던 모든 계급들의 첫번째 생존 조건은 낡은 생산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생산의 계속적인 번혁, 모든 사회 관계의 끊임없는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가 부르주아 시대를 그 전의 모든 시대와 구별해 준다. 굳어지고 녹슬어버린 모든 관계는 그에 따르는 부산물들, 즉 아주 오래 전부터 존중되어 온 관념이나 견해와 함께 해체되며, 새로 생겨나는 모든 것조차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낡은 것이 되고 만다. 신분적인 요소와 정체된 것은 모두 사라지고, 신성한 것은 모두 모욕당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침내 자기의 생활 상태와 서로간의 관계를 낸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자기 생산물의 판로를 끝없이 넓히고자 하는 요구는 부르주아지로 하여금 지상의 모든 곳을 뛰어다니게 한다. 부르주아지는 가는 곳마다 정착해야 하고, 가는 곳마다 뿌리를 내려야 하며, 가는 곳마다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을 이용하여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반동배에게는 매우 비통한 일이었지만, 부르주아지는 공업의 민족적 지반을 발 밑에서부터 허물어 버렸다. 예로부터 내려오던 민족적 공업이 파멸되었거나 나날이 파멸되어 가고 있다. 이 민족적 공업은 새로운 공업, 즉 현지 원료를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가장 먼 지역에서 운반되어 오는 원료를 가공하고 그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소비되는 공산품을 만드는 공업에 밀려나고 있으며, 이 새로운 공업을 도입하는 것이 모든 문명 국가의 사활의 문제가 되고 있다. 국산품으로 채워지던 옛 수요 대신에,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며 풍토도 아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생산물이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다. 낡은 지방·민족적 단절과 국산품에 의존하던 생존 대신에, 민족들이 서로 전면적으로 교류하고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나타난다. 이것은 물질적 생산에서나 정신적 생사넹서나 마찬가지다. 각 민족의 정신 활동의 성과는 공동 재산이 된다. 민족적 일면성과 배타성은 더욱더 있을 수 없게 되고 수많은 민족·지방적 문학으로부터 하나의 세계 문학이 형성된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 도구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지는 교통수단으로 모든 민족, 심지어는 가장 미개한 민족까지도 문명화한다. 그들 상품의 싼 가격은 모든 만리 장성을 쳐부수고 외국인에 대한 야만인들의 집요한 증오까지도 여지없이 굴복시키고야 마는 무기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민족에게 망하고 싶지 않거든 부르주아적 생산 양식을 채용하라고 강요하며, 이른바 문명을 받아들이라고, 즉 부르주아가 되라고 강요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밑에 종속시켰다. 부르주아지는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도시 인구를 농촌 인구에 비해 크게 늘림으로써, 인구의 대부분을 우매한 농촌 생활에서 건져 냈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에 종속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미개국과 반(半)미개국을 문명국에, 농업에 종사하는 인민을 부르주아적인 인민에, 동양을 서양에 종속시켰다.


    부르주아지는 생산 수단, 재산, 인구의 분산 상태를 점점 없앤다. 그들은 주민을 집결시키고, 생산 수단을 집중시키며, 재산을 몇몇의 손에 집중시켰다. 그 필연적 결과는 정치의 중앙 집권화였다. 서로 다른 이해 관계, 서로 다른 법률, 서로 다른 정부, 서로 다른 관세를 갖고 동맹 관계를 통해서만 겨우 연결되어 있던 독립적인 각 지방들이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률, 하나의 국민적인 계급 이해를 갖고 하나의 관세 구역 안에 사는 하나의 국민으로 결합되었다.


    부르주아지는 100년도 채 못 되는 계급 지배 동안에 과거의 모든 세대가 만들어 낸 것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을 만들어 냈다. 자연력의 정복, 기계에 의한 생산, 공업과 농업에서의 화학의 이용, 기선에 의한 항해, 철도, 전신, 세계 각지의 개간, 하천 항로의 개척, 마치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엄청난 인구, 이와 같은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태내에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과거의 어느 세기가 예감이나 할 수 있었으랴!


    위에서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부르주아지를 형성시킨 토대인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은 봉건 사회 안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자, 봉건 사회에서 통용되던 생산과 교환 관계, 농업과 공업의 봉건적 조직, 한마디로 봉건적 소유 관계는 발전한 생산력에 이미 맞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생산을 촉진하기는커녕 생산을 방해했으며, 따라서 그만큼 생산에 질곡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것은 분쇄되어야 했으며, 분쇄되고 말았다.


    그 자리를 대산한 것은 자유 경쟁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정치 제도, 즉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정치적 지배였다.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교환 관계,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 마치 마술이나 부린듯 그렇게도 강력한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을 만들어 낸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 사자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공업과 상업의 역사는 현대의 생산 관계에 대한, 즉 부르주아지의 존립과 그 지배 조건인 현대의 소유 관계에 대한 현대 생산력의 반항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면서 부르주아 사회 전체의 존립을 더욱더 위협하고 있는 상업 공황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상업 공황이 일어날 경우, 제조된 생산물뿐만 아니라 이미 이룩된 생산력의 상당 부분도 규칙적으로 파괴된다. 공황 때에는 일종의 사회적 전염병--과거의 모든 시대에는 터무니없는 일로만 보였을 과잉 생산이라는 전염병--이 널리 퍼지게 된다. 사회는 잠시동안 야만 상태로 후퇴하여 마치 기근과 전면적인 파괴전이 모든 생활 수단을 쓸어 간 것같이 보이며, 공업과 상업이 전멸될 것같이 보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사회가 너무나 큰 문명을 가지고 있고 생활 수단이 너무나 많으며, 너무나 큰 공업과 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생산력은 이미 부르주아적 문명과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가 발전하는 데 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러한 소유 관계에 비하면 너무 방대해져서, 이제는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억제하게 된다. 그리고 생산력이 이 질곡을 극복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부르주아 사회 전체를 혼란 상태에 빠뜨리며 부르주아적 소유가 존립하는 것을 위태롭게 한다. 부르주아적 관계는 자신이 만들어 낸 부를 포용하기에는 너무도 협소해진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 공황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거대한 생산력을 어쩔 수 없이 파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시장을 새로이 넓히면서 기존의 시장을 더욱더 철저하게 착취하는 방법으로 극복한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는가? 더욱더 광범위하고 더욱 파괴적인 공황을 준비하게 되며, 공황을 예방할 수단도 줄어들게 된다.


    부르주아지가 봉건 제도를 무너뜨릴 때 사용한 그 무기가 이제는 부르주아지 자신에게 겨누어진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올 무기를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무기를 자신에게 겨눌 사람들, 즉 프롤레타리아라는 현대의 노동자들도 만들어 냈다.


    부르주아지, 즉 자본이 발전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의 노동자 계급도 발전한다. 현대의 노동자 계급은 일거리가 있을 때만 생존할 수 있으며, 그들의 노동이 자본을 늘려 주는 한에서만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토막으로 나누어 팔지 않으면 안되는 이 노동자들은 다른 온갖 판매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며, 따라서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경쟁의 모든 성패와 시장의 모든 변동에 내맡겨져 있다.


    늘어가는 기계 사용과 분업으로 말미암아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자립적 성격을 모두 잃어버렸으며, 이와 더불어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온갖 매력을 잃어버렸다. 노동자는 기계의 단순한 부속품이 되고,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단조로우며 가장 배우기 쉬운 동작뿐이다. 따라서 한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비용은 거의 모두 그 자신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의 비용--역자)에 국한될 뿐이다. 그런데 모든 상품의 가격은 그 생산비와 같으며, 따라서 노동의 가격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노동의 지겨움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만큼 임금이 줄어든다. 그뿐만 아니라 기계와 분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노동 시간이 늘어나거나 정해진 시간안에 해야 하는 노동이 늘어나거나 기계의 운전 속도가 빨라지거나 하여 노동의 양도 그만큼 늘어난다.


    현대 공업은 가부장적인 장인이 지배하던 작은 작업장을 산업 자본가의 대공장으로 바꿔 놓았다. 노동자 대중은 공장에 집결하여 군대식으로 편성된다. 산업 군대의 병사인 노동자 대중은 수많은 장교와 하사관들로 이루어진 완전한 위계 질서의 감시 밑에 놓인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 부르주아 국가의 노예일 뿐 아니라, 날마다 시간마다 기계와 감독, 무엇보다도 개별 부르주아 공장주에 의해 노예가 된다. 이 전제(專制) 제도는, 영리가 궁극적인 목적임이 노골적으로 선언되면 될수록 더욱더 인색하고 증오스러우며 잔인하게 된다.


    육체 노동에 필요한 기술과 힘이 점점 줄어들수록, 즉 현대 공업이 발전할수록, 남성 노동은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에게 더욱더 밀려난다. 성별과 연령별 차이는 노동자 계급에게 더 이상 아무런 사회적 의의도 갖지 못한다. 오직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비용이 드는 도구로서의 노동자가 존재할 뿐이다.


    노동자에 대한 공장주들의 착취가 끝나 드디어 노동자가 임금을 현금으로 받게 되면, 이번에는 부르주아지의 다른 부분, 즉 집주인·상점 주인·고리 대금업자 등등이 노동자들에게 달려든다.


    지금까지의 소(小)중간 계급, 즉 소산업가, 소상인과 금리 생활자, 수공업자와 농민, 이 모든 계급들은 차츰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그들의 소자본이 대규모 공업을 경영하기에 충분하지 못할 뿐더러 더 큰 자본가와 경쟁하는 데서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기술이 새로운 생산 양식으로 말미암아 쓸모 없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인구 가운데 모든 계급들로부터 충원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여러 가지 발전 단계를 거친다.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그들이 생겨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개별 노동자가, 그 다음에는 한 공장의 노동자들이, 또 그 다음에는 한 지방에 있는 같은 부문의 노동자들이 그들을 직접 착취하는 부르주아 개개인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공격할 뿐만 아니라 생산 수단 자체도 공격한다. 그들은 경쟁하는 외국 상품을 파괴하며 기계를 파괴하고 공장을 불태움으로써 몰락해 버린 중세 노동자의지위를 되찾으려 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들은 전국에 흩어진 채 서로 경쟁하는 대중을 이루고 있다. 노동자들의 대중적 결속은 아직 그들 자신이 단결한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단결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를 동원해야 했으며, 또 그때에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에 대한 적, 즉 절대 군주제의 잔재인 지주, 비(非)산업 부르주아, 소부르주아들과 싸운다. 그리하여 역사적 운동 전체가 부르주아지의 손에 집중되고, 이렇게 얻어진 모든 승리는 부르주아지의 승리가 된다.


    그러나 공업의 발전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더 거대한 집단 속에서 한데 뭉쳐 세력이 커지며, 차츰 자신의 힘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기계가 여러 가지 노동 사이의 차이를 없애고 임금을 거의 어디서나 똑같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림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이해 관계와 생활 상태는 더욱더 똑같아진다. 부르주아들 사이에서 격화해 가는 경쟁과, 이 경쟁으로 생겨나는 상업 공황으로 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불안정해진다. 기계가 점점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개선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 처지는 더욱더 불안해진다. 개별 노동자와 개별 부르주아 사이의 충돌은 점점 더 두 계급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들에 대항하여 결사체(즉 노동 조합)을 조직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금 수준을 유지하려고 뭉친다. 그들은 앞으로 충돌이 일어났을 때 먹고 살 것을 마련하려고 상설 단체까지 세운다. 따라서 투쟁은 폭동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그들의 투쟁의 참된 성과는 직접적인 전과(戰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이 더욱더 넓혀지는 데 있다. 대공업으로 더욱더 발전해가는 교통과 통신 수단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촉진하면서 각지의 노동자들을 맺어 준다. 이러한 연력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어디서나 같은 성격으로 벌어지고 있던 수많은 지방적 투쟁이 하나의 전국적 투쟁, 즉 계급 투쟁으로 집중된다. 그런데 모든 계급 투쟁은 정치 투쟁이다. 빈약한 도로망을 가진 중세의 도시민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 이룩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 덕택에 몇 년 안에 이룩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들이 이처럼 계급으로, 따라서 정당으로 조직되는 일은 노동자 자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 때문에 끊임없이 파괴된다. 그러나 이 일은 새롭게 거듭 일어나며 그때마다 더욱더 강하고 굳건하고 위력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은 부르주아지 안의 알력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몇 가지 이해 관계를 법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 실례로 영국에서는 10시간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일반적으로 낡은 사회 안의 충돌은 많은 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 과정을 촉진한다. 부르주아지는 끊임없이 투쟁을 해 왔다. 처음에는 귀족과 투쟁했고 나중에는 공업 발전에 대립하는 이해 관계를 가진 일부 부르주아층과 투쟁했으며, 그리고 언제나 외국의 부르주아지 전체와 투쟁한다. 이 모든 투쟁에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하고 그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을 정치 운동에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부르주아지는 자신들만이 누려 오던 정치·일반적 교양의 요소를, 즉 부르주아지 자신에 대항할 무기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제공한다.


    더군다나 이미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공업의 발전으로 지배 계급의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거나 최소한 그들의 생활 조건이 위협받는다. 이들 또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계몽·진보적 요소를 대량으로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계급 투쟁이 결전의 시기에 가까워지면 결국 지배 계급의 내부, 낡은 사회 전체의 내부에서 해체 과정이 아주 격렬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띠는 까닭에, 지배 계급의 일부가 지배 계급에서 떨어져 나와 혁명적 계급, 즉 장래를 손안에 움켜쥔 계급에 가담하게 된다. 따라서 과거에 귀족의 일부가 부르주아지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지금 부르주아지의 일부, 특히 역사적 운동의 모든 과정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게 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의 일부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 가운데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모든 계급은 대공업이 발전하면서 몰락하여 멸망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대공업 자체의 산물이다.


    중간 계급들, 즉 소산업가·소상인·수공업자와 농민은 모두 중간 계급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파멸에서 구하려고 부르주아지와 투쟁한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적이지 못하고 보수적이다. 아니 그들은 반동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혁명적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머지않아 프롤레타리아트로 넘어가게 될 것을 고려하는 한에서만, 그들이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장래의 이익을 옹호하는 한에서만,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 서려고 그들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는 한에서만 그러하다.


    낡은 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수동적 부패물인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는 경우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운동에 끌려들어오는 일도 있으나, 그들은 전반적인 생활 처지 때문에 반동적 모략에 매수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낡은 사회의 생활 조건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에서 이미 씨가 말라 버렸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재산이 없다. 처자에 대한 그들의 관계 또한 부르주아적 가족 관계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현대의 공업 노동, 즉 오늘날 영국·프랑스·미국·독일 할 것 없이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자본에 대한 현대적 예속은 그들에게서 민족적 성격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법률, 도덕, 종교, 그 밖의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부르주아적 편견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배후에는 그만큼 부르주아적인 이해 관계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전의 모든 지배 계급들은 지배권을 장악한 뒤, 사회 전체를 그들의 소득을 보장하는 조건들에 종속시킴으로써 이미 얻은 지위를 굳히고자 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전유(專有, Aneignung) 양식을 폐지하고 그와 함께 지금까지의 모든 전유 양식도 폐지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력을 장악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보호해야 할 자기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적 소유를 보호하고 보장해 온 것들을 모두 박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운동은 소수의 운동이었거나 소수의 이익을 위한 운동이었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압도적 다수의 이익을 위한 압도적 다수의 자주적 운동이다. 요즘 사회의 최하층인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적(公的)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겹겹의 상부 구조 전체를 폭파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도 없고 허리르 펼 수도 없는 것이다.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으나 형식상으로는 우선 일국적(national)이다.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당연히 먼저 자기 나라의 부르주아지를 쓸어 버려야 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발전의 가장 일반적인 단계들을 서술함으로써, 다소간 가려져 있는 기존 사회 내부의 내란이 공개적인 혁명으로 바뀌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를 폭력으로 타도하여 자신의 지배권을 확립하게 되는 데까지 고찰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는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의 적대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한 계급을 억압하자면 최소한 억압받는 계급이 적어도 노예적 생존을 유지할 만큼의 조건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농노제 밑에 있던 농노는 코뮌 성원으로 올라섰으며, 봉건적 절대주의의 속박 밑에 있던 소부르주아는 부르주아로 올라섰다. 이와 반대로 현대 노동자는, 공업의 발전과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급적 생존 조건 이하로 더욱더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부르주아지가 더 이상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과 자기 계급의 생활 조건을 규제적인 법률로서 사회 전체에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부르주아지가 지배할 능력이 없는 이유는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노예들에게 노예적 생활 수준조차 보장해 줄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그들의 부양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그들을 부양해야 할 만큼 그들을 딱한 처지에 빠뜨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는 더 이상 부르주아지의 지배 밑에서 살아갈 수 없다. 즉 부르주아지의 존립은 더 이상 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


    부르주아 계급이 존립하고 지배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조건은 부가 개인의 손안에 쌓이는 것, 즉 자본이 만들어지고 늘어나는 것이다. 자본주의 존재 조건은 임금 노동이다. 임금 노동은 노동자 서로간의 경쟁 위에서만 유지된다. 부르주아지가 싫든 좋든 촉진하지 않을 수 없는 공업의 진보는 경쟁에 의한 노동자들의 고립 대신에 연합에 의한 그들의 혁명적 단결을 가져온다. 이처럼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지가 생산물을 생산하고 점유하는 기반 자체가 부르주아지의 발 밑에서 무너져 간다. 부르주아지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꾼을 생산하는 셈이다. 부르주아지의 멸망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다 같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전체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당들과 대립하는 특별한 당은 아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 관계와 동떨어진 이해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besondere) 원칙을 세워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이 원칙에 뜯어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노동자당과 다르다면, 그것은 그들이 한편으로는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통된 이해 관계를 내세우고 고수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여러 발전 단계를 거치는 동안에 늘 운동 전체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만 그렇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 볼 때 각국 노동자당의 가장 단호하고 늘 선진적인 부분이며, 이론적으로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여러 조건·과정·전반적 결과를 나머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보다 한 발 앞서 통찰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은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 당들의 당면 목적과 같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뒤엎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으로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적 명제들은 결코 어떤 세계 개혁가가 고안하거나 발견한 사상,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명제들은 다만 현존하는 계급 투쟁의 현실적인 관계들, 즉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운동을 일반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소유 관계를 폐지한다는 것이 결코 공산주의만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다.


    모든 소유 관계는 끊임없는 역사적 변동, 끊임없는 역사적 변화를 겪어 왔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은 봉건적 소유를 폐지하고 그것을 부르주아적 소유로 바꾸어 놓았다.


    공산주의의 특징은 소유 일반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계급 적대, 즉 소수에 의한 다수의 착취에 기초를 두고 있는 생산물의 샌산과 점유 형태가 최종적이고도 가장 완전하게 표현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사적 소유의 철폐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취득한 재산, 즉 온갖 개인적인 자유와 활동과 자립의 기초를 이루는 재산을 없애려 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자신의 노동으로 정당하게 번 재산이라고! 당신들은 부르주아적 소유에 앞선 소부르주아적, 소농민적 소유를 두고 말하는가? 그러한 소유를 폐지할 필요는 전혀 없다. 공업의 발전이 이미 그것을 폐지해 왔으며 또 나날이 폐지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당신들은 현대의 부르주아적인 사적 소유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그러나 임금 노동, 즉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이 그 자신들에게 재산을 만들어 주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이 만들어 내는 것은 자본, 즉 임금 노동을 착취하는 재산이며, 이것이 임금 노동을 새로이 착취하려고 새로운 임금 노동을 재생산하는 조건에서만 늘어날 수 있는 재산이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소유는 자본과 임금 노동 사이의 대립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대립의 두 측면을 살펴보자.


    자본가가 된다는 것은 생산 속에서 단순한 개인적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까지 차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은 공동체의 산물로서, 오직 대다수 사회 성원의 공동 활동에 의해서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성원 전체의 공동 활동에 의해서만 가동될 수 있다.


    이처럼 자본은 개인적 힘이 아니라 사회적 힘이다.


    따라서 만약 자본이 공동체의 소유, 즉 사회 성원 전체의 소유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바뀌는 것은 오직 소유의 사회적 성격뿐이다. 즉 소유의 사회적 성격은 그 계급성을 잃을 뿐이다.


    임금 노동으로 넘어가자.


    임금 노동의 평균 가격은 최저 임금, 다시 말하면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의 총액이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가 자기 활동의 결과로 얻는 것은 고작 자신의 생명을 재생산할 만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생명의 재생산에 직접 필요한 노동 생산물의 이러한 개인적 점유, 즉 다른 사람의 노동에 대한 지배권을 가져다 줄 만한 순이익을 전혀 남기지 않는 점유를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노동자로 하여금 자본의 증식을 위해서 생존하게 만들며 지배 계급의 이익이 요구하는 한에서만 생존하게 만드는 점유의 비참한 성격을 철폐하려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살아 있는 노동이 축적된 노동을 늘리는 수단 일 뿐이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축적된 노동이 노동자의 생활을 폭넓게 하고 풍요롭게 하며 장려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처럼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자본이 독자성과 개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 활동하는 개인은 독자성과 개성을 잃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관계를 폐지하는 것을 개성과 자유를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렇다. 사실상 문제는 부르주아적 개성, 부르주아적 독자성, 부르주아적 자유를 없애는 것이다.


    오늘날의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 안에서 자유란 상업의 자유, 사고 파는 자유를 뜻한다.


    그러나 매매가 없어지면 매매의 자유도 없어진다. 매매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는, 자유에 관한 우리 부르주아지의 다른 모든 호언 장담과 마찬가지로 대개 자유롭지 못하던 매매나 중세의 예속된 상인들에게는 뜻있는 것이지만 공산주의자가 주장하는 매매의 페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와 부르주아지 자체의 폐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의도 갖지 못한다.


    당신들은 우리가 사적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고 해서 놀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당신들의 사회에서 사회 성원의 90% 에게는 이미 사적 소유가 폐지되어 있다. 소수에게 사적 소유가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이들 90% 에게는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들은, 우리가 사회 성원 대다수의 무소유를 필수 조건으로 하는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당신들은, 우리가 당신들의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한다.


    당신들은 노동이 더 이상 자본으로, 화폐로, 지대로, 간단히 말하면 독점할 수 있는 사회적 힘으로 바뀔 수 없게 되는 그 순간부터, 다시 말해서 개인적 소유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로 바뀔 수 없게 되는 그 순간부터 인격이 소멸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당신들은 부르주아, 즉 부르주아적 소유자말고는 그 누구의 인격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백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격이라면 마땅히 소멸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그 누구에게서도 사회적 생산물을 점유할 힘을 빼앗지는 않는다. 공산주의는 다만 이러한 점유로 다른 사람의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키는 힘을 빼앗을 따름이다.


    사적 소유를 폐지하면 그와 함께 모든 활동이 멈추고, 전반적으로 게으름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반박이 있어 왔다.


    그렇다고 한다면 부르주아 사회는 이미 오래 전에 게으름 때문에 멸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반면에 무언가를 얻는 자들은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걱정은 결국 자본이 없어지면 임금 노동도 없어진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된다.


    물질적 생산물에 대한 공산주의적 점유와 생산 양식을 반대하는 것은 모두 정신적인 생산물에 대한 공산주의적 점유와 생산 양식을 반대하는 데로까지 확대된다. 부르주아에게는 계급적 소유를 없애는 것이 생산 그 자체를 그만두는 것처럼 보이듯이, 계급적 교육의 폐지 또한 교육 일반의 폐지와 같게 여겨진다.


    그들이 놓치기 아까워하는 그 교육이 대다수의 대중에게는 사람을 기계의 부속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자유니 교육이니 법이니 뭐니 하는 당신들의 부르주아적 관념을 바탕으로 부르주아적 소유를 폐지하는 데 대해 왈가왈부하려거든 더 이상 우리와 논쟁할 생각을 말라. 당신들의 사상 자체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의 산물이니까. 그것은 당신들의 법률이 당신네 계급의 의지, 즉 그 내용은 당신네 계급의 물질적인 생활 조건 속에서 주어지면서도 (객관적인--역자) 법칙으로까지 높여진 의지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당신들의생산 관계와 소유 관계가 생산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이며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이성의 영원한 법칙인 것처럼 바꿔 놓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당신들은 이미 멸망해 버린 과거의 모든 지배 계급들과 마찬가지다. 고대적 소유나 봉건적 소유에 대해서는 당신들 스스로가 명백히 알고 있는 사실을 당신들 자신의 부르주아적 소유가 문제되면 더 이상은 모르겠다고 잡아떼는 것이다.


    가족의 폐지라니! 공산주의자들의 이 비열한 의도에 대해서는 가장 극단적인 급진주의자들까지도 격분하고 있다.


    현대의 부르주아적 가족은 무엇에 기초를 두고 있는가? 그것은 자본, 즉 사적인 영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완전한 형태의 가족은 오직 부르주아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부득이한 독신 생활과 공장 제도로 보완된다.


    부르주아적 가족은 이러한 보완물이 소멸하면서 자연히 소멸할 것이며, 또 그 두 가지는 자본이 소멸하면서 둘 다 사라질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가 아동들에 대한 부모의 착취를 멈추게 하려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가? 그것도 죄라면 우리는 그 비난을 인정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가 가정 교육을 사회 교육으로 바꿔 인간의 가장 고귀한 관계를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당신들의 교육은 사회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과연 당신들의 교육은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들에 의해 규정되지 않으며, 학교와 사회의 직접·간접적인 간섭 등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는 말인가?공산주의자들은 교육에 대한 사회의 개입을 고안해 내지 않는다. 다만 그 개입의 성격을 바꿔 교육을 지배 계급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할 따름이다.


    가정, 교육,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화목한 관계라는 부르주아들의 입에 발린 이야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가족적 유대가 대공업에 의해 갈갈이 찢길수록, 그리하여 아동들이 단순한 판매품이나 노동 도구로 전락할수록 더욱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당신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 고유제를 도입하려 하지는 않는가 하고 부르주아지 전체가 입을 모아 외친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아내를 단순한 생산 도구로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르주아들은, 생산 도구를 함께 사용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여성들도 똑같은 처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한갖 생산 도구에 지나지 않는 여성의 처지를 타파하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 부르주아지가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 공식적인 부인 공유제에 대해서 그토록 도덕적 의분을 느낀다는 것만큼 웃기는 일은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부인 공유제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 부인 공유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해 왔으니까.


    우리 부르주아들은 공식적인 매춘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노동자들의 아내와 딸을 농락하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내를 서로 유혹하는 것을 주된 쾌락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부르주아적 결혼은 사실상 부인 공유제다. 그들은 기껏해야 공산주의자들이 위선적이고 가려진 부인 공유제 대신에 공식적이고 공인된 부인 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치고 현재의 생산 관계가 소멸하면 그 생산 관계에서 비롯된 부인 공유제, 즉 공식·비공식적 매춘 또한 소멸할 것임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다음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조국과 국적을 없애 버리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우선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여 민족적 계급(nationale Klasse)으로올라서야 하며 스스로 민족으로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록 부르주아지가 생각하는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스스로 또한 민족적이다.


    민족들 사이의 민족적 격리와 대립은 이미 부르주아지의 발전, 상업의 자유와 세계 시장, 공업 생산과 그에 따르는 생활 사정의 평준화와 함께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는 이러한 격리와 대립을 더욱더 사라지게 할 것이다. 적어도 문명 국가들 안에서는 통일된 행동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위한 첫번째 조건 가운데 하나다.


    한 사람에 의한 다른 사람의 착취가 폐지되는 정도에 따라, 한 민족에 의한 다른 민족의 착취도 폐지될 것이다.


    한 민족 안에서는 계급 대립이 없어짐과 아울러 민족들 서로간의 적대적 관계도 없어질 것이다.


    종교, 철학적 관점에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제기되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면 더 이상 상세하게 해명할 가치조차 없다.


    사람들의 생활 사정, 그들의 사회 관계, 그들의 사회적 존재와 더불어 그들의 관념, 견해, 개념, 한마디로 그들의 의식 또한 바뀐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그렇게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사상의 역사는 정신적 생산이 물질적 생산과 더불어 변혁된다는 것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하고 있다는 말인가?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늘 지배 계급의 사상이었을 뿐이다.


    흔히 사람들은 한 사회 전체에 혁명을 일으키는 사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낡은 사회 내부에서 새로운 사회의 요소들이 형성되었따는 사실, 그에 따라 낡은 생활 사정이 무너지면서 낡은 사상도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고대 세계의 멸망이 가까워졌을 때 고대 종교는 기독교에 의해 정복되었다. 18세기의 기독교 사상이 계몽 사상으로부터 타격을 받아 분쇄되고 있을 때, 봉건 사회는 그때만 해도 혁명적이던 부르주아지와 목숨을 건 결전을 치렀다. 신앙의 자유, 종교의 자유라는 사상은 다만 지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자유 경쟁을 표현했을 뿐이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종교, 도덕, 철학, 정치, 법률 등등의 이념은 역사 발전 과정에서 변천해 왔다. 그러나 종교, 도덕, 철학, 정치, 법률 자체는 이러한 변천 속에서도 늘 유지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자유, 정의 등등과 같이 모든 사회 상태에 공통된 영원한 진리가 있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이 영원한 진리를 부정한다. 공산주의는 도덕이나 종교를 개조하는 대신에 그것을 부정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과거의 모든 역사 발전 과정과 모순된다."


    이러한 비난은 결국 무엇으로 귀착되는가?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대립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대립은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던간에, 사회의 일부가 다른 일부를 착취한다는 점은 과거의 모든 시대에 공통된 사상이다. 그러므로 자나간 모든 시대의 사회적 의식이 아무리 다양하고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공통된 형태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 형태는 계급 대립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완전히 해체된다.


    공산주의 혁명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소유 관계와 가장 철저하게 결별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혁명이 자신의 발전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과 가장 철저하게 결별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비난은 그냥 놓아 두기로 한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 계급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 도구를 국가의 손안에,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안에 집중시키며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생산력을 높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물론 처음에는 소유권과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전제적으로 침해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즉 경제적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안정되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운동을 거치는 동안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생산 양식 전체를 변혁하는 수단으로 꼭 필요하게 되는 방책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방책들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아주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1) 토지 소유를 몰수하고, 모든 지대를 국가 경비에 충당하는 것.


    2) 고율의 누진세,


    3) 모든 상속권의 폐지.


    4) 모든 망명자들과 반역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


    5) 국가 자본과 배타적인 독점권을 가진 국립 은행을 통해 국가의 손안에 신용을 집중시키는 것.


    6) 운송 수단을 국가의 손안에 집중시키는 것.


    7) 국영 공장의 수와 생산 도구를 늘리고, 공동 계획에 따라 토지를 개간하고 개량하는 것.


    8) 모두에게 똑같은 노동 의무를 부과하고 산업 군대, 특히 농업을 위한 군대를 키워 내는 것.


    9) 농업과 공업의 운영을 결합하고, 도시와 농촌 사이의 차이를 차츰 뿌리뽑도록 하는 것.


    10) 모든 아동에 대한 사회적 무상 교육, 오늘날과 같은 아동들의 공장 노동을 폐지하고 교육과 물질적 생산을 결합하는 것 등등.


    발전을 거치는 가운데 계급적 차이가 사라지고 모든 생산이 연합된 개인들의 손안에 집중되면, 공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본래 정치 권력이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려고 사용하는 조직된 폭력이다.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반드시 계급으로 한데 뭉쳐 혁명을 통해 스스로 지배 계급이 되고 또 지배 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관계를 폭력적으로 폐지하게 된다면, 그들은 이 생산 관계와 아울러 계급적 대립의 존재 조건과 계급 일반 또한 폐지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자기 자신의 계급적 지배까지도 폐지하게 될 것이다.


    계급과 계급 대립으로 얼룩진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3.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


     1. 반동적 사회주의


       (1) 봉건적 사회주의


    프랑스와 영국의 귀족들은 그 역사적 지위로 말미암아 현대 부르주아 사회를 반대하는 소책자를 써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1830년의 프랑스 7월 혁명과 영국의 선거법 개정 운동에서, 밉살맞은 벼락 부자들이 또 한 번 프랑스와 영국의 귀족들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중대한 정치 투쟁에 관해서는 더 이상 두말할 여지조차 없게 되었다. 귀족들에게는 글을 통한 투쟁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문필 활동 분야에서도 왕정 복고 시대 의 낡은 문구로는 이미 통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려고, 귀족들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이해 관계를 고려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착취받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부르주아지를 고발하는 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지배자를 비방하는 노래를 부르고 약간 불길한 예언을 이 지배자의 귀에 속삭여 분풀이를 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봉건적 사회주의는 일부는 장송곡이요, 일부는 비방문이며, 일부는 과거의 메아리요, 일부는 미래에 대한 위협이다. 때로는 신랄하고 기지에 찬 독설적인 선고로 부르주아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일도 있었으나, 현대사의 진로를 이해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희극적인 인상을 남겼을 뿐이다.


    귀족들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냥자루를 깃발 삼아 내흔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귀족의 뒤를 따라나서자마자 그들의 등뒤에 그려진 낡은 봉건적 문장(紋章)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비웃으며 흩어졌다. 프랑스 정통 왕당파의 일부와 청년 영국파가 이 같은 희극을 연촐했다.


    봉건 영주들은 자신들의 착취가 부르주아지의 착취와는 달랐음을 역설하지만, 그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완전히 다른 정세와 조건 밑에서 착취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자신들이 지배할 당시에는 현대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현대 부르주아지야말로 자신들의 사회 질서가 낳을 수밖에 없는 산물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자신들의 비판이 갖고 있는 반동적 성격을 감추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르주아지를 비난하는 주된 이유는, 부르주아지의 지배 밑에서 낡은 사회 전체를 산산이 부숴 버릴 계급이 발전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일반을 만들어 낸다는 점보다 그들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치적 실천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강압하는 모든 대책에 동참하고 있으며, 일상 생활에서는 자신들의 모든 미사 여구와는 반대로 공업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황금 사과를 주워 모으며 신의와 애정과 명예를 버리고 양모와 사탕무와 술의 판매로 이익을 누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직자가 언제나 봉건 영주와 손을 잡았던 것처럼, 성직자의 사회주의 또한 봉건적 사회주의와 손을 맞잡고 있다.


    기독교적인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적 색깔을 입히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기독교 또한 사적 소유, 결혼, 국가를 극구 반대하지 않았던가? 기독교는 그 대신에 자선과 구걸, 독신과 금욕, 수도원 생활과 교회를 설교하지 않았던가? 기독교 사회주의는 성직자가 귀족들의 분노에 끼얹어 주는 성수(聖水)일 뿐이다.



       (2)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부르주아지에 의해 타도되어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 그 생활 조건이 나빠지고 소멸해 가는 계급은 봉건 귀족만이 아니다. 중세의 성외(城外) 시민과 소농민은 현대 부르주아지의 선구자였다. 상공업의 발전이 뒤진 나라들에서는 이 계급이 아직도 신흥 부르주아지와 나란히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 문명이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새로운 소부르주아지가 형성되었으며,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의 보완물로서 끊임없이 새로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은 이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계속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시킨다. 그리하여 그들 또한 바로 대공업이 발전함에 따라 자신들이 현대 사회의 독자적인 부분으로서는 완전히 소멸되고 상업, 공업, 농업에서의 감시인과 고용 사무원들로 교체될 때가 닥쳐옴을 알게 된다.


    프랑스와 같이 농민 계급이 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 나라들에서는, 부르주아지에 맞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편에 선 문필가들이 부르주아 체제를 비판할 때 소부르주아·소농민적 기준을 갖다 붙이거나 소부르주아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을 편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가 생겨났다. 시스몽디는 프랑스에서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이러한 문헌의 우두머리다.


    이 사회주의는 현대적 생산 관계의 모순을 아주 날카롭게 분석해냈다. 이 사회주의는 경제학자들의 위선적인 변명을 폭로했다. 그것은 기계에 의한 생산과 분업이 미치는 파괴적 작용, 자본과 토지 소유의 집중, 과잉 생산, 공황, 소부르주아와 소농민의 필연적 멸망,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 생산의 무정부성,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불평등, 국가간의 처절한 산업 전쟁, 낡은 도덕, 낡은 가족 관계와 낡은 민족성의 와해를 반박할 여지 없이 증명했다.


    그러나 그 적극적 내용을 살펴보면, 이 사회주의는 낡은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 및 낡은 소유 관계와 낡은 사회를 부흥하려 하거나 또는 현대의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들을 낡은 소유 관계의 틀 속에, 즉 현대의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에 의해 이미 파괴되었으며 또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낡은 소유 관계의 틀 속에 또다시 억지로 밀어 넣으려한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경우이든 그것은 반동적이며 또 공상적이다.


    동업 조합 형태의 매뉴팩처와 가부장적인 농업, 이것이 이 사회주의의 마지막 약속이다.


    이러한 노선이 좀더 발전하게 되자 그것은 결국 비겁한 푸념에 빠지고 말았다.



       (3) 독일 사회주의 또는 '참된' 사회주의


    프랑스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은 지배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억압 밑에서 생겨났으며 그 지배에 대한 투쟁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이 문헌이 독일에 들어온 것은 독일의 부르주아지가 이제 막 봉건적 절대주의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을 때였다.


    독일의 철학자들, 얼치기 철학자들과 문필 애호가들은 이 문헌에 열렬히 매달렸지만, 이러한 저술들이 프롱사로부터 독일에 들어올 때 프랑스의 생활 조건도 함께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독일의 상황에서 프랑스의 문헌은 직접적인 실천적 의의를 모두 잃어버린 채 순전히 문헌으로서의 겉모습만을 띠게 되었다. 이 문헌들은 인간 본질의 실현에 관한 한가한 사변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8세기의 독일 철학자들에게는 프랑스 대혁명의 요구가 '실천 이성'일반의 요구라는 것말고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고, 혁명적인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의지 표명이 그들의 눈에는 순수 의지, 즉 응당 그래야 할 의지, 참된 인간 의지의 법칙을 뜻하는 것처럼 보였다.


    독일 문필가들의 저작은 오로지 새로운 프랑스 사상을 자신들의 낡은 철학적 양심과 조화시키거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들의 철학적 관점에서 프랑스 사상을 섭취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섭취는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인 자기들 편리한 대로 옮기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수도승들이 고대 다신교 시대의 고전 사본에다 카톨릭 성인들의 무미 건조한 전기를 적어 넣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 문필가들은 경건하지 못한 프랑스 문헌을 가지고 바로 그와 정반대의 일을 했다. 그들은 프랑스 원전에다 자신들의 터무니없는 철학적 헛소리를 써 넣었다. 예를 들면, 화폐의 경제적 기능에 대한 프랑스 인들의 비판에다 '인간적 본질의 소외'라 썼고,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비판에는 '추상적 보편의 지배 폐지'등등을 써 넣었던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발전에다 자신들의 철학적 상투어를 끼워 넣는 데 대해 그들은 '행동의 철학'이니 '참된 사회주의'니 '독일의 사회주의 과학'이니 '사회주의의 철학적 논증'이니 하는 식으로 작위를 부여했다.


    이리하여 프랑스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은 완전히 껍질만 남고 말았다. 그리고 독일인의 손안에서는 이 문헌이 계급에 대한 계급의 투쟁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인의 편파성'을 극복했다고, 즉 사진들은 참된 욕구 대신에 진리의 욕구를, 프롤레타리아의 이해 관계 대신에 인간 일반의 이해 관계를 대변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인간이란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철학적 환상의 안개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인 것이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습작을 그렇듯 대단하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소리 높여 광고하던 이 독일 사회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현학적 순진함을 잃어 갔다.


    봉건 영주들과 절대 군주제에 대항하는 독일, 특히 프로이센 부르주아지의 투쟁, 한마디로 자유주의 운동이 차츰 본격적으로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참된' 사회주의는 마침내 이 정치적 운동에다 사회주의적 요구를 대립시키면서 자유주의, 대의제 국가, 부르주아적 경쟁, 부르주아적 출판의 자유, 부르주아적 법률, 부르주아적 자유와 평등에 대해 전통적인 저주를 퍼붓고,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부르주아 운동에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반대로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설교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프랑스 인들의 비판을 단조롭게 되풀이한 것이었지만, 프랑스 인들의 비판이 현대 부르주아 사회와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 생활 조건과 정치 제도, 즉 독일에서는 이제 겨우 쟁취할 대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바로 그 모든 전제 조건들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침 잊고 있었다.


    성직자, 학교 교원, 무지 몽매한 융커, 관료들을 거느린 독일의 절대주의 정부들에게는 독일 사회주의가 위협적인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르주아지를 막아 줄 안성맞춤의 허수아비였던 것이다.


    '참된' 사회주의는 절대주의 정부들이 독일 노동자들의 폭동을 진압할 때 사용한 채찍과 탄환이ㅡ 쓴 맛을 덜어 줄 달콤한 양념이었다.


    이처럼 '참된' 사회주의는 독일 부르주아지를 막는 정부의 무기가 된 동시에 반동적 이익, 즉 독일의 속물 부르주아들의 이해 관계를 직접 표현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16세기 이래 이어져 내려왔고 그때부터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다시 새롭게 나타나고는 했던 소부르주아지가 현존 질서에서 실제적인 사회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소부르주아지의 유지는 독일의 현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같다. 소부르주아지는 공업과 정치에서 부르주아지가 지배하게 되었을 때 한편으로는 자본 집적에 따라서,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성장함에 따라 자신들이 틀림없이 파멸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소부르주아지에게 '참된' 사회주의는 이 두 마리 새를 잡을 하나의 돌로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참된' 사회주의는 전염병처럼 널리 퍼졌다.


    사변의 거미줄로 엮고, 진기한 웅변의 꽃으로 수놓고, 달콤한 감동의 눈물로 적신 이 신비한 보자기,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한 두 가지 빈약한 '영원한 진리'를 싼 보자기는 이 군중 사이에서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상품 판로를 넓혀 주었을 뿐이다.


    한편 독일 사회주의측에서도 소시민층의 떠벌이 대변인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점점 더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독일 민족을 모범 민족으로, 독일의 속물들을 모범 인간으로 선언했다. 독일 사회주의는 이 모범 인간의 비열함 하나하나마다 심오하고 고상한 사회주의적 의미를 부여하여, 비열함을 정반대된느 고상한 그 무엇으로 바꿔 놓고는 했다. 마침내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난폭하고 파괴적인' 공산주의 경향을 공공연하게 반대하여, 자신은 모든 계급 투쟁을 초월하여 숭고한 불편 부당(不偏不黨)을 지킨다고까지 선언하기에 이르렸다. 현재 독일에서 나돌고 있는 이른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저작들은 몇몇 개를 빼고는 모두 이 추악하고 퇴폐적인 문헌에 속한다.



     2. 보수적 또는 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부르주아지의 일부는 부르주아 사회의 존재를 공고히하려고 사회의 질병들을 치료하고자 한다.


    경제학자, 박애주의자, 인도주의자, 근로 계급의 처지 개선론자, 자선 사업가, 동물 애호 협회원, 금주 협회 조직자, 각양 각색의 보잘것없는 개량주의자들이 모두 이에 속한다.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완전한 체계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그 예로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을 들 수 있다.


    사회주의적 부르주아들은, 현대 사회 존립의 여러 조건은 유지하되 이 조건들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투쟁과 위험만은 없애려 한다. 그들은 현대 사회를 유지하되 그것을 변혁하고 분해하는 요소만은 없애려 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없는 부르주아지를 갖고 싶은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물론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를 최상의 세계로 생각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이러한 편의적인 관념을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갖춘 체계로 오나성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 사회주의체계를 실혐하여 새로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권고하고 있으나, 사실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존 사회에 머물러 있되 부르주아 사회를 그 어떤 증오스러운 것으로 보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회주의 가운데 덜 체계적이기는 하지만 더 현실적인 또 하나의 형태가 있는데, 이것은 노동자 계급에게는 이러저러한 정치 변혁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 오직 물질적 생활 조건이나 경제적 관계를 바꾸는 것만이 유익하다는 사실을 논증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혁명 운동에 염증을 느끼도록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가 말하는 물질적 생활 조건을 바꾸는 것이란 혁명으로만 달성될 수 있는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의 폐지가 아니라 이 생산 관계의 기반 위에서 실현되고 따라서 자본과 임금 노동 사이의 관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고작해야 부르주아지의 지배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부르주아지의 국가 운영을 간소화하는 행정적 개선을 뜻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웅변가의 단순한 수식어가 덧붙을 때에만 더욱 그럴듯한 표현이 된다.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자유 무역!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보호 관세!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독방 감옥!


    이러한 것이 부르주아 사회주의의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단 하나의 결론이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란 한마디로, 부르주아는---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부르주아라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3. 비판·공상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우리가 여기서 논하려는 것은 근대의 모든 대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를 표현한 문헌(바뵈프)의 저작 등등)이 아니다.


    전반적 격동의 시기, 본건 사회가 무너지는 시기에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직접 실현하려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첫번째 시도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체의 미숙한 상태와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물질적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아(이 조건들은 부르주아 시대에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초기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과 함께 나타난 혁명적 문헌은 내용이 반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편적인 금욕주의와 조잡한 평균주의를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계, 즉 생 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체계는 우리가 앞에서 말한 시기, 즉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초기에 태어났다.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부분을 보라.)


    이러한 체계를 발명한 사람들도 계급간의 대립과 지배적인 사회 안에서 그 사회를 무너뜨리는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는 아무런 역사적 독자성도, 그들 나름의 고유한 정치 운동도 보지 못했다.


    계급 대립의 발전은 공업의 발전과 발맞춰 나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물질적 조건들을 발견할 수도 없었고 이러한 조건을 창출해 낼 사회 과학과 사회 법칙을 찾을 수도 없었다.


    역사적 행동 대신에 그들 개인의 창의적인 노력이, 해방의 역사적 조건들 대신에 환상적인 조건들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차츰 계급으로 조직되어 가는 과정 대신에 이 발명가들이 고안해 낸 처방에 따른 사회 조직이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가올 세계 역사가 자신들의 사회적 계획을 선전하고 실행하는 방향으로 귀착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 속에서 주로 가장 고통받는 계급인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는 가장 고통받는 계급으로만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계급 투쟁의 미숙한 상태와 그들 자신의 생활 처지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그 계급 대립을 뛰어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모든 사회 성원의 처지를, 심지어는 가장 좋은 조건에 있는 성원들의 처지까지도 개선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늘 아무 구별도 없이 사회 전체에, 아니 주로 지배 계급에 호소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체계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이는 가능한 최상의 사회에 대한 가능한 최상의 계획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정치 활동, 특히 모든 혁명 활동을 배격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기 목적을 이루려고 하며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은 실험을 통해, 즉 실례를 보임으로써 새로운 사회 복음의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미래 사회에 대한 이러한 환상적인 묘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당시 매우 미숙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환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시대에 생겨났으며, 사회의 전반적 변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예감으로 가득 찬 최초의 충동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 문헌에는 비판적 요소도 들어 있다. 그 저서들은 현존 사회의 모든 기초를 공격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노동자들을 계몽하는 데 가장 값진 자료를 제공했다. 미래 사회에 관한 그들의 적극적인 명제들, 예컨대 도시와 농촌 사이의 대립 폐지, 가족과 사적 영리와 임금 노동의 폐지, 사회적 조화 선언, 단순한 생산 관리 기구의 국가의 전화, 이 모든 명제들은 이제 방금 발전하기 시작했으므로 처음에는 막연하고 명료하지 않게만 알려져 있던 계급 대립이 중지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명제들도 아직도 순전히 공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비판·공상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의의는 역사가 발전하면 할수록 줄어든다. 계급 투쟁이 발전하여 더욱 명확한 형태를 띠게 됨에 따라 계급 투쟁을 뛰어넘으려는 이 환상적 태도, 즉 계급 투쟁을 극복하려는 환상적 태도는 모든 실천적 의의와 이론적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이 체계의 창시자들은 많은 점에서 혁명적이었으나 그 제자들은 늘 반동적 종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적으로 거듭 발전하는데도 자기 스승들의 낡은 견해를 고집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급 투쟁을 무마하고 대립을 화해시키려 애쓴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 유토피아를 실험에의해 실현하려고 한다. 즉 개별적인 팔랑스테르를 세우고 국내 이민지를 창설하며 소(小)이카리아---새로운 예루살렘의 축소판---를 건설할 것을 꿈꾸는 것이다. 또 이 모든 사상 누각을 쌓으려고 부르주아들의 자비심과 돈주머니에서 나오는 박애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차츰 위에 서술한 반동적 또는 보수적 사회주의자들의 부류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들과이ㅡ 차이는 단지 그들이 더 체계적인 현학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사회 과학의 기적적인 힘에 대한 환상적 신념을 갖고 있다는 점뿐이다.


    그들이 노동자들의 모든 정치 운동을 극력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정치 운동은 오지 자기들의 새 복음에 대한 맹목적 불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영국의 오언주의자들은 차티스트들을 반대하고, 프랑스의 푸리에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을 반대한다.





    4. 각종 반정부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태도


    이미 형성된 노동자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태도, 즉 영국의 차티스트들과 미국의 농업 개혁론자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태도는 제2절에서 본 바대로 명백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당면 목적과 이익을 위해 투쟁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의 운동에서 그 운동의 미래를 대변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공산주이ㅡ자들이 보수와 급진 부르주아지에 맞선 투쟁에서 사회 민주당(Sozialistisch Demokratische Partei)과 손을 잡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혁명적 전통에서 오는 공리 공론과 호나상을 비판할 권리까지 포기하지는 않는다.


    스위스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급진파를 지지한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이 당이 모순되는 요소들로, 즉 더러는 프랑스식의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로, 더러는 급진적 부르주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폴란드에서 공산주의자들은 토지 혁명을 민족 해방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정당, 즉 1846년에 크라코프 폭동을 일으킨 바로 그 당을 지지한다.


    독일에서 공산당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으로 행동하는 한 그들과 손을 잡고 절대 군주제, 봉건적 토지 소유와 반동적 소시민층과 싸운다.


    그러나 공산당은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적대적 대립을 될 수 있는 대로 명확히 의식할 수 있도록 하려고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독일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지배가 반드시 도입하게 될 사회·정치적 조건들을 바로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무기로 곧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독일의 반동 계급들이 타도된 뒤에 부르주아 자체에 대항하는 투쟁이 곧바로 시작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독일은 부르주아 혁명의 전야에 있기 때문에, 더구나 17세기의 영국이나 18세기의 프랑스보다 훨씬 더 발전한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지고 유럽 문명 전체가 한층 발전한 조건에서 이 변혁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주로 독일에 주의를 돌린다.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곧바로 이어질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직접적인 서막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하는 사회 정치 제도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이러한 모든 운동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소유 문제가 더 발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느냐 덜 발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느냐를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운동의 근본 문제로 앞에 내세운다.


    끝으로,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나라 민주주의 정당의 단결과 협력을 위해 어디서나 애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여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현존하는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출처: https://meltingroot.tistory.com/49

    레싱의 이야기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은 계몽주의자 고트홀트 레싱이 쓴 연극이다.
    종교간 평화적 이상을 제시한 뛰어난 희곡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시민 비극의 창조자, 독일 근대 희곡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레싱의 대표작.
    기독교인에게 몰살당해 일곱 자식을 잃고도 기독교인의 아이를 양녀로 받아들여 정성을 다해 기르는 나탄.
    그는 모진 시련을 겪었지만 특정 종파나 민족을 초월해 인간성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십자군 전쟁 시기는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성지 예루살렘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다.
    나탄은 일곱 자식을 잃은 부유한 유대 상인으로, 기독교인의 유아 레하를 맡아 정성을 다해 기른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나탄은 그동안 레하가 불에 타 죽을 뻔했다가 젊은 신전 기사로부터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신전 기사는 이슬람국의 군주 살라딘으로부터 행방불명된 자신의 친동생과 닮았다는 이유로 포로로 잡혔다가 사면된 인물이다. 한편 그는 “유대인은 유대인이니까”라고 말하며 나탄을 멀리하지만 나탄의 지혜에 설득당해 친구가 된다.

    레하는 자신을 불 속에서 구한 것은 신전 기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구해준 것은 수호천사이며, 이는 의 사랑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탄은 그것이 신전 기사에 의한 구출이었으며, 천사와 신에 의한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일 가운데서도 기적은 일어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도 나탄이 관념적이고 절대적인 종교보다는 인간들의 삶 속에서 구현되는 사랑을 더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사면된 신전 기사를 보고, 대주교는 “하느님께서 위대하고 거룩한 일”을 계획하기 위해 살려두신 거라며 살라딘을 처치하려는 첩자가 될 것을 종용한다.

    한편 살라딘은 나탄의 돈을 갈취하고,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중에 어느 종교가 참종교인가를 물어 그를 시험에 빠지게 하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나탄은 반지 비유 설화를 통해 어떤 종교든지 간에 “공평하고 편견 없는 사랑”을 본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나탄 역시 모진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이를 이겨내며 인간애를 지키고 승화시킬 수 있었다. 현자 나탄이 전하는 희망의 비전은 끊임없는 종교적·민족적 분쟁에 시달리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 반지 비유 - 레싱의 이야기
    어느 아버지가 구원을 받은 아들에게 반지를 주겠다고 유언을 한다.
    세 아들은 서로 구원의 반지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아버지는 세공사를 찾아가 똑같은 모양의 반지를 2개 더 만들어 세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들은 서로 자기 반지가 진짜라고 주장한다.
    결국 재판관을 찾아가 어느 반지가 진짜 반지냐고 묻는다.
    재판관은 솔로몬의 지혜를 생각하며 구원의 반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사랑을 받는 사람이므로 그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세 아들은 자기의 반지가 진짜 반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다. 구원이란 이와 같이 구원받은 삶을 통하여 보여지고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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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 2권(2.359a–2.360d)에 나오는 가공의 마법 반지이다. 이 반지는 소유자의 마음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통해 일반인이 만약 그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반지의 전설

    전설에 따르면 기게스[1] 는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를 섬기는 목동이었다.
    기게스가 양을 치고 있던 어느날 갑자기 커다란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일어난 자리에는 땅이 갈라져 동굴이 생겼고, 기게스는 호기심이 생겨 갈라진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굴 안에서 기게스는 거인의 시체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시체에는 반지가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기게스는 거인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양치기 기게스는 우연히 자신이 끼고 있는 반지의 흠집 난 곳을 안으로 돌리면 자신은 투명인간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자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보이지 않는 힘'을 갖게 된 기게스는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다.
    가축의 상태를 왕에게 보고하는 전령으로서 궁전에 들어간 기게스는 자신의 새로운 힘인 마법 반지를 이용하여 투명하게 된 후, 왕비를 간통하고, 칸다울레스왕을 암살하여 왕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리디아의 왕이 되었다.






    고난주간 예수님의 발자취(行跡)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行跡)

    일(主日)(개선의 날) : 1. 예루살렘 입성(눅 19:28∼40)
                                      2. 무리의 반응과 예수님의 우심(눅 19:41∼44)

    월(月)(권위의 날) : 1. 무화과나무를 저주(마 21:18∼19, 막 11:12∼14)
                                   2. 두 번째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마 21:12∼17, 눅 19:45∼48)

    화(火)(변론의 날) : 1.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마 21:23∼27, 눅 20:1∼8)
                                   2. 경고의 세 가지 비유(마 21:28∼32, 33∼46, 22:1∼14) 
                                   - 두 아들, 악한 농부, 혼인잔치
                                   3. 지도자들의 논쟁(마 22:41, 눅 20:41∼44)
                                   4.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경고(마 24:25, 막 13장, 눅 21:5∼38)
                                   5. 유다의 반역(마 26:14∼16, 막 14:10∼11) 

    수(水)(음모의 날) : 1.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마 26:3∼5, 막 14:1∼2, 눅 22:1∼2)

    목(木)(준비의 날) : 1. 유월절 식사(마 26:17∼25, 요  13:1∼7)
                                  2. 최후의 만찬(마 26:26∼29, 막 14:22∼25)
                                  3. 예수님의 고별 설교와 중보 기

    금(金)(수난의 날) : 1. 배반당하고 잡히신 예수님(마 26:30∼56, 막 14:26∼52)
                                   2. 공회 앞에 서신 예수님(마 26:57∼58, 눅 22:54∼55)
                                   3. 빌라도의 심문(마 27:21∼31, 눅 23:1∼25)
                                   4. 십자가의 죽으심(마 27:31∼50, 막 15:20∼46, 눅 23:26∼50)

    토(土)(예비의 날) : 1. 로마 병정 무덤을 지킴(마 26:62∼66)


    요일

    주 제

    내 용

    성경 본문

    개선의 날

    1.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2. 무리의 반응과 예수님 우심

    눅 19:28∼40

    눅 19:41∼44

    권위의 날

    1.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2. 두 번째 성전을 깨끗이 하심

    마 21:18-19막 11:12-14

    마  21:12-17눅 19:45-48

    변론의 날

    1.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

    2. 경고의 세 가지 비유

    (두 아들, 악한농부, 혼인잔치)

    3. 지도자들과 논쟁

    4.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경고

    5. 유다의 반역

    마 21:23-27눅 20:1-8

    마 21:28-32마 21:33-46
    마 22:1-14

    마 22:41눅 20:41-44

    마 24:25막 13장눅 21:5-38

    마 26:14-16막 14:10-11

    음모의 날

    1.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

    마 26:3-5막 14:1-2눅 22:1-2

    준비의 날

    1. 유월절 식사

    2. 최후의 성만찬

    3. 예수님의 고별설교와 중보기도

    마 26:17-25요 13:1-7

    마 26:26-29막 14:22-25

    요 17장요 13:31-35

    수난의 날

    1. 배반당하고 잡히신 예수님

    2. 공회앞에 서신 예수님

    3.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심

    4. 십자가의 죽으심

    마 26:3036-56, 막 14:2632-52

    마 26:57-58눅 22:54-55

    마 27:21-31눅 23:1-25

    마 27:31-50막 15:20-46눅 23:26-54

    예비의 날

    1. 로마병정 예수님의 무덤을 지킴

    마 27:62-66





    짐승보다 못한 놈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특히 노약자들을 집안에 머물라고 명령하여
    온 종일 집안에서 지내야 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재미는 유트부 동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것도
    있습니다.
    그 주에 개 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내용입니다.

    요즘 언론에 사람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유산 때문에 부모를 죽인 사람, 
    자식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육욕을 채우는 사람, 
    몇 푼 안 되는 돈을 갈취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사람,
    친구를 감금하고 성 노리게로 삼다가 결국에는 죽여 시체를 묻은 사람 등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말합니다.
    요즘은 “짐승보다 더한 놈”이란 말도 쓰인다니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하면 짐승만도 못하거나
    짐승보다 더 한 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짐승보다 못한 놈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민수기 22장을 보면 사람보다 나은 짐승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38년을 보낸 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모압 땅을 지날 때입니다.
    그 때 모압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모압의 왕 발락은 정상적인 전투가 아니라 저주를 통해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선지자였던 발람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신에게 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가지 말라고 하였으나 발람은 발락이 보낸 돈에 욕심을 내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발람에게 가라고 허락하며 발락에게 가는 발람에게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라고 합니다(민 22:20).
    그렇게 돈을 받고 가는 발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고 그 앞을 막아섰습니다.
    그러나 발람과 그의 종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길을 피하는 짐승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나귀였습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비벼 발람의 다리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계속 된 두려움으로 인해 나귀는 발람 밑에 엎드려 여호와의 사자의 낮을 피했습니다.
    이에 발람은 나귀를 채찍으로 때렸고 매를 맞은 나귀가 입을 열어 말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 후에 발람도 주의 은혜로 눈이 밝아져 여호와의 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발람은 나귀보다 못한 영안을 가지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2장 16절을 통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라고 하여 발람보다 나은 짐승에 대해 말했습니다.

    위의 사건이 나귀가 주인보다 나았던 사건을 말해주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향해 짐승보다 못하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1:3)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가축들은 주인을 알아보는데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우상에게 절하거나 주변나라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짐승만도 못하게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심판의 메시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심판을 당해야 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예레미야의 책망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렘8:7)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새만도 못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 된 새들은 비둘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철새입니다. 
    철새들은 날아갈 때와 돌아올 때를 아는 동물입니다.
    또한 비둘기는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새입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을 새들에게 비유한 것은 새들은 시기를 아는데 이스라엘백성들은 회개할 시기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러기에 “고삐 풀린 망아지에겐 채찍이 약”이란 말처럼 이스라엘이 짐승보다 못했기에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망하고 그 후엔 페르시아에게, 다음에 헬라에게, 다음엔 로마에게 지배를 당했고
    결국에는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었으며 주후 135년에 바그코크바의 반란으로 인해 전세계로 흩어지는
    아픔을 겪은 것입니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은 되지 맙시다.
    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바르게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