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진리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은 신앙의 초보적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곧 영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체험해야 합니다. 영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진리가 되시며 영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영으로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혼과 몸으로 체험하는 정도로 멈추고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기적의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기적의 예수란 벳새다 들판에서 굶주렸던 사람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고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광주리가 12개 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육신의 몸을 갖고 살아갈 때 육신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기적을 기대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육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 복음서에 나타났던 기적의 사건에 참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모두 외면했습니다.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이성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혼이란 정신을 말합니다.
신앙을 정신적인 영역에 가두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 돌아갑니다.
정신적인 위로자가 되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영으로 세상에 오셔서 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 남편을 잃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우
* 사업의 어려움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극적으로 회복되어 주님을 만났다며 새 힘을 얻었으나 다시 사업이 기울고 어려워 질 때 왜 나를 버리셨느냐 하며 절망에 다시 붙잡히는 경우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신령한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감당하려고 30세까지는 전혀 하늘의 일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의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과 같은 사건을 보여주며 메시아가 되심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께서 임하지 않은 시대이었기에 예수님을 영으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제자로 부름을 듣기 전에 일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후 베드로를 위시하여 그 자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영으로 예수를 체험하였고 그때부터 완전히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이미 성령강림이 일어난 이후의 시대이므로 직접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하며 성령 체험이 있어야만 예수를 영적으로 믿을 수 있는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혼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예수를 믿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몸은 이 세상에서 온갖 질병과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을 갖게 되지만 죽음 후에는 이 모든 질병과 사건과 사고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동훈목사의 경우 36세의 젊은 나이입니다.
더구나 가족들은 아내 라헬과 두 아들 그리고 딸이 살아가야 할 과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동훈목사
Jacob Lee(1984. 5. 4- 09. 28. 20 am 9:42) 36세
Wife / Rachel Tan Lee(1989. 12. 17-) 31세
Son / Zephaniah(2015. 9. 9-) 5세
Son / Jayden(2017. 6. 25-) 3세
Daughter / Kaelyn(2019. 6. 30-) 1세
몸과 혼으로만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생각하면 가장 좋으신 하나님께서 몸과 혼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남은 가족들과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부터는 놀라운 주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처음에는 몹시 당황해 하시면 놀란 얼굴 표정으로 “세상에.........!” “세상에........!”만 연발하셨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에게 손자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식이 아니라 손자가 그것도 목사가 되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때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식을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신앙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故 이동훈목사 천국환송예배 라는 하관 예식 순서를 보여주므로 간접적으로 알렸습니다.
평소에 잘 듣지 못하시는 어머님께서 “언제 죽었니?” 라고 물으시기에 “9월 28일” 이라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28일” 하고 확인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럼 장례는?” 하시기에 이미 장례를 마쳤으며(10월 1일 하관예식) 나중에 알려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명한 의식을 갖고 받아드리고 인정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충격적인 소식일지라도 정말 믿음이라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평소보다 조금 적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겨 읽으시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동훈목사의 죽음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육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2:14)
- The man without the Spirit,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 영적이 아닌 사람, 자연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둘째는 신령한 사람(고린도전서 2:15)
- 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셋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3:1)
- worldly, 세속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가족들 중에서 어린 자녀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믿음의 어른들이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자세는 분명합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신령한 사람(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판단한다는 것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 때문에 신앙의 흔들림이 없으므로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시 믿음이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소망 즉 영생의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디도서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의 소망이란 죽음의 세계에서 분명하게 빛을 발할 것이며 완벽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사람만이 어떤 죽음이라도 신앙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영으로 주님을 찾을 때 그 주님은 이미 죽음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영생의 소망입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제3서신 Oct. 11. 2020 오후 2시경 Bayside 집에서
주일 오후 시간입니다.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가족들이 점심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후 2시경 고 동훈목사의 부모 이경혁, 전한영 내외가 어머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더구나 손자를 먼저 보낸 할머니의 마음은 “왜 나와 같은 사람은 살려두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은 데려 가셨는가?” 하며 깊은 탄식의 질문을 허공에 뿌립니다.
이어서 “동훈이는 행복하지! 아무 걱정도 없는 곳에서 평안히 머물고 있지만 라헬과 아이들은 어떻게 하니? 죽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데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하니?”
그러자 동훈 애비가 “살아 있는 사람은 더 행복합니다!” 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도록 차단의 벽을 칩니다.
여러 시간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암 투병의 과정을 듣습니다.
이럴 때는 듣기만 하는 것이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애비와 어미의 심정에 “하나님의 뜻이니 위로 받으세요!” 라는 형식적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아픔의 대못을 가슴에 내리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젊은 아들이 군목으로 활동하던 중 말기 암으로 통증을 호소하며 고통을 받으면서도 병원에 누워있기 보다는 기도원(대한수도원)에 기거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육체적인 고통을 진통제보다는 주님을 닮아가려고 몸부림 쳤던 아들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교인들이 어머니 전도사님(김용준)에게 “하나님의 뜻이니 위로를 받으세요!” 하며 형식적인 인사를 할 때 그 어머니 전도사님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네 아들이 죽어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이렇게 고통의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고통과 아픔의 소리가 3년이 지난 어느 날 비슷한 아픔을 겪게 된 교인을 만났을 때 그의 두 손을 붙들고 “내가 다 알아! 그 아픔을....... 나도 그 고통의 터널에 갇혀 있었지. 참고 견디자!” 하며 위로할 때 그 교인은 얼굴을 전도사님의 품에 묻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 전도사님께서 깨달은 것은 이런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 할 수 있는지 먼저 경험하게 하셨구나! 하며 아들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생각지도 못한 아픔과 고통을 경험해야 합니까?
더구나 왜 예수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예수를 알기도 전에 십자가의 아픔과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까?
세상에서 잠간 경험하게 하신 그 아픔과 그 고통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주님을 더 가깝게 뜨겁게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세계를 생각하며 고통의 진한 향기 속에서 풍겨나는 영생의 기쁨과 소망을 기대하며 슬픔의 자리를 위로의 자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디도서 1:1∼3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사도(使徒)란 누구인가?
* 사도(使徒) : 부릴 사(使), 무리 도(徒) - 예수가 복음(福音)을 널리 전(傳)하려고 특별(特別)히 뽑은 열두 제자(弟子). - 보냄을 받은 자
*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 apostolos, 652) : a messenger, one sent on a mission, an apostle - 아포(ἀπό. apo. 575) : from, away from - 두로스(δοῦλος. doulos, 1401) : a slave
- 히브리어 "샬리하(Shakicha)"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란 뜻으로 모세, 엘리야, 엘리사, 에스겔 등에 사용되었다(출 6:11, 왕상 18:1).
출애굽기 6: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열왕기상 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 사도란 좁은 의미로는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사도행전 1:21-26, 바사바(유스도, 요셉), 맛디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사도행전 9:15-16, 고린도전서 9:1, 7-15, 15:8).
제자(弟子)란 누구인가?
* 제자(弟子) : 아우 제(第), 아들 자(子)
* 마데테스(μαθητής. mathétés, 3101) : a disciple
“사도(使徒)”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때에만 부름을 받았고 보냄을 받았던 사람들로 제한 됩니다.
“제자(弟子)”라는 말은 “배우는 자” 또는 “따르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근거에 의하면 바울은 사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가 고린도교회에서 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이 사도가 된 것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고린도후서는 모두 1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8장과 9장은 헌금에 관한 교훈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하 논쟁이 고린도교회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유대인들로부터 제기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12명의 추종자들을 제자라고 불렸습니다. 열 두 명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고, 그분으로부터 배웠으며, 그분에 의해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에, 주님은 그분의 증인으로 제자들을 내보내셨습니다(마 28:18∼20. 행 1:8). 그 때 그들은 열 두 사도로 언급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아직 이 땅에 계셨을 때조차, “제자들” 그리고 “사도들”이란 용어는 어느 정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에 대한 좁은 의미 :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던 제자들을 말합니다.
원래의 열 두 제자들(사도들)은 마태복음 10:2∼4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사도에 대한 넓은 의미 :
성경에서는 사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역사적인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 자신을 사도라고 강조합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은 부활의 증인으로 특별하게 부름을 받은 경우에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합니다(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신약 성경 27권 중에 바울이 기록한 것은 13권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의 중심 인물은 예수님과 바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도와 제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울은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롬 1:1, 갈 1:1, 고전 1:1, 고후 1:1, 엡 1:1, 골 1:1, 딤전 1:1, 딤후 1:1, 딛 1:1).
디도서 1:1∼3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첫째, 믿음 둘째, 지식 셋째, 영생 넷째, 전도
첫째, 믿음 - 택하신 자들의 믿음
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믿음이란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더프 선교사(1806-1878)는 안식년을 맞아 영국으로 귀환한 후 가는 곳마다 현대 선교사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 선교사에 대하여 칭찬과 그의 업적을 자랑하는 일에 몰두했었습니다. 한번은 윌리암 캐리가 더프에게 부탁하기를 이제부터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더프는 계속하여 윌리암 캐리에 대한 칭찬을 계속하여 말했다고 합니다. 윌리암 캐리가 임종하기 전에 더프를 만났을 때 다시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만 이야기를 하십시오."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더프는 윌리암 캐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 깨닫기를 내거 전할 이야기는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둘째, 지식 - 경건에 속한 진리의 지식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지식이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지식 그노시스를 말합니다.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셋째, 영생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
영생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신앙의 큰 위로가 됩니다. 예로부터 자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기 떄문에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이 아니라 주님 품에 안겨드린 것으로 위로 받으며 다시 만날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이유가 없습니다.
넷째, 전도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바울을 가리켜 성경은 이방인의 사도(롬 11:13, 갈 2:8) 또는 이방인의 스승(딤전 2:7)이라고 합니다.
복음이 유대 지역을 벗어나 더 넓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바울의 업적입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전도에 대한 열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아래에서 항거하던 본 훼퍼 목사님과 마틴 미네르 목사님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본 훼퍼 목사님은 사형을 당했지만 마틴 미네르 목사님은 8년 옥고를 치루고 출옥한 후에 몇 차례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여러 차례 환상을 본 후에 "전쟁백서"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그 책의 내용 중에 이런 고백이 소개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고 심판대 앞에 길게 늘어섰는데 한 사람씩 그 앞에 나가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심판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마틴 미네르 목사님의 차례가 되어 그 앞에 섰을 때 누군가 노려보며 마틴 목사님에게 항의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 그 사람을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힛틀러이었다고 합니다.
힛틀러는 마틴 목사의 죄 때문에 내가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를 하면서도 한 번도 힛틀러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하더랍니다. 이런 환상을 경험하고난 후에 마틴 목사님은 힛틀러가 악독한 독재자가 된 것은 내가 그에게 전도하지 못한 죄 때문이라고 전쟁백서에서 고백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전염병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복음을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하라고 말씀하신 부활의 주님이 분부하신 명령에 온전하게 복종하지 못한 죄가 더 무섭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최근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복용하고 있는 ‘덱사메타손’과 관련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초기의 상황이 지난 환자의 염증을 완화하기 위한 항염제(抗炎劑)”라고 5일 밝혔다.
지난 10월 2일(현지시간) 양성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증상이 악화돼 염증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국내에서도 렘데시비르 등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한 이후 증상이 악화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정은경 청장은 전했다.
정 청장은 이날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국내에서도 코로나19 발병 초기에는 주로 램데시비르와 같은 항바이러스 제제를 주로 투여하고 어느 정도 초기의 상황이 지난 다음 염증 등이 문제가 될 때 덱타메타손을 치료약으로 쓰는 방법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또 “덱타메타손 투여는 항바이러스 효과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염증을 완화하는 항염증 작용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유튜브 백악관 공식 계정에 따르면 대통령 주치의인 숀 콘리는 4일(현지시간) 월터 리드 국립 군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대통령은 두 차례의 산소 포화도 저하를 겪었다”며 “대통령을 상대로 덱사메타손을 투약했다”고 밝혔다. 미국 생명공학 회사 리제네론이 개발중인 항체 약물,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를 각각 투여받은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처방된 세번째 약물이다.
콘리는 회견에서 “이 경우 치료 초기 (덱사메타손 투약의) 잠재적 이익이 위험성보다 크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덱사메타손은 위염, 구토, 두통, 어지러움, 불면증 등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이다.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퇴원 가능성이 제기돼왔지만, 중증 환자에게 사용되는 덱사메타손을 썼다는 의료진 발표가 나오면서 치료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덱사메타손은 스테로이드 형태의 항염제로 알레르기, 습진, 관절염, 천식 치료제로 사용돼왔다.
지난 6월 16일 BBC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코로나 환자 2000명에게 이 약을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장기간 산소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의 사망 위험이 28~40%가량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당시에도 정은경 청장은 “(덱사메타손은)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치료제라기보다 염증 반응을 완화시켜주는 보조적 치료제로 생각하고 있다”며 “더 체계적인 임상연구가 필요한지 임상전문가들과 협의가 필요하다”라고 밝힌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공개한 지 사흘이 지났지만, 그의 상태와 병의 진행 정도를 놓고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숀 콘리 대통령 주치의를 비롯한 의료진이 낙관적 전망을 앞세우며 치료 정보를 뒤늦게 알리거나, 상충하는 설명을 내놓으면서다.
콘리 주치의는 4일(현지시간) 월터리드 군병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확진 판정 뒤 두 차례 혈중 산소포화도가 정상 범위 아래로 떨어져 의료진이 산소를 공급했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치료받던 지난 2일 오전 고열과 함께 산소포화도가 94% 아래로 떨어지자 추가 산소를 공급했고, 3일 다시 산소포화도가 93% 아래로 떨어져 같은 조치를 했다는 것이다.
산소포화도는 정상 범위를 95~100%로 보는데, 코로나19 환자 산소포화도가 94% 아래로 떨어지면 중증으로 여긴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콘리 주치의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산소 공급을 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 요리조리 답변을 피했다.
의료진 일원인 브라이언 가리발디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날 "산소포화도가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제부터 덱사메타손 투약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처럼 상태가 좋으면 이르면 내일 백악관으로 돌아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계획"이라고 말했다.
덱사메타손은 면역체계 과잉반응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스테로이드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증 코로나19 환자에게만 투여할 것을 권고한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기계식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나 추가 산소가 필요한 환자에게만 투약하도록 했다.
의료진은 결국 중증 코로나19 환자에 쓰는 스테로이드제 치료를 막 시작했다면서도 다음 날 퇴원할 수 있다는 '처방 따로, 경과설명 따로' 식 언급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 감염병 전문가인 로첼 월렌스키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환자에게 덱사메타손을 사용한다고 하면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상황이 점점 악화해 중환자실(ICU)로 가는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고 NYT에 말했다.
전문가들은 백악관 발표보다 대통령 상태가 더 심각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토머스 맥긴 전문의는 "덱사메타손은 환자 상태가 급속히 악화하는 경우가 아니면 잘 안 쓰는 약"이라면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대통령 상태가 더 심각한가? 대통령이어서 더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건가? 여러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치료 방향을 정하거나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주문한 결과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환자와 주치의 관계가 아니라 최고통치권자와 명령 수행자 관계가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환자가 치료의 결정권을 갖게 되면 심각한 부작용과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VIP 증후군'이다.
실제로 참모들은 대통령 심기를 살피느라 거짓 또는 부실 답변을 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콘리 주치의는 대통령 상태가 위중했던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데 대해 "병의 진행에 관해 의료진과 대통령이 가졌던 낙관적인 태도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CNN은 "의사가 아니라 홍보맨이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알리사 페라 백악관 커뮤니케이션 국장은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치료 중인 환자 기분을 끌어올려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일반적인 의료 행위"라며 콘리 주치의를 두둔했다.
이날 의료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슴 X레이나 컴퓨터 단층촬영(CT) 등 영상 정보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콘리 주치의는 트럼프 대통령 폐에 손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세한 언급을 피한 채 "예상했던(expected) 대로"라고만 언급했다.
응급의료 전문가인 리나 웬 박사는 CNN에 출연해 "가슴 X레이가 정상이었으면 정상이라고 답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코로나19 환자에게 '예상'되는 가슴 X레이 결과는 폐렴인데, 폐렴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 건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언제 마지막 음성 판정을 받았는지, 또 언제 첫 양성 판정을 받았는지 백악관이 밝혀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거듭된 질문에도 백악관이 답변을 거부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 받는다던 코로나19 검사를 최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안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안 하는 이유로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대통령을 만나는 모든 사람은 검사를 받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해왔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신속진단을 통해 1차로 양성 판정을 받고도 이를 숨긴 채 폭스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투여된 약이 공개되며 알려진 것보다 더 중증 상태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 대통령 숀 코리 주치의는 4일(현지시간)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처방한 약 종류를 공개했다. 공개한 약 목록은 덱사메타손(스테로이드제), 렘데시비르, 리제네론 신물질, 징크, 비타민D, 아스피린 등이었다.
이 가운데 ‘덱사메타손’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상태가 심각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 약을 “중태이거나 심각한 코로나19 환자에게만 투여해야 한다”며 “우리는 심각하지 않은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해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밝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메타손 패키지의 모습. 염증 억제 작용이 있는 합성 부신피질호르몬제인 덱사메타손은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코로나19 중환자의 사망률을 상당히 낮추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을 받았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염증 억제 작용이 있는 합성 부신피질호르몬제인 덱사메타손은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코로나19 중환자의 사망률을 상당히 낮추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을 받았다. 이 실험에 따르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의 경우 35%, 산소 보충 치료를 받는 환자의 경우 20% 정도 사망률이 각각 낮아졌다고 한다.
김남중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정교하게 진행한 실험은 아니지만 약 6000명이 넘는 환자가 참여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며 “실험 결과 인공호흡기를 하는 환자에게는 효과가 특히 컸고 산소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는 생존율 개선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약을 썼다면 최소한 산소 치료를 필요로 하는 폐렴이 왔다는 설명이 합리적이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감염내과 교수는 “덱사메타손은 면역 반응이 과하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독이는 역할을 하지만 정상적인 면역반응도 억제한다는 단점이 있어 폐렴이 없는 경증 환자에게는 보통 쓰지 않는다”며 “이 약을 썼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폐렴이 동반된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소 공급은 생명 유지에 기본적인 기능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산소 포화도가 정상범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건 폐렴 증상이 뚜렷한 상태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산소포화도는 일반적으로 95~100%를 정상 범위로 보며 90% 밑으로 떨어지면 저산소혈증이라고 판단한다. 5일(현지시간) 숀 코리 박사는 지난 2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의 산소포화도가 94% 밑으로 떨어졌고, 약 2ℓ의 산소 보충이 이뤄진 뒤에 포화도가 95% 이상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에도 산소포화도가 93%까지 떨어졌다고 알려졌다.
이재갑 한림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덱사메타손은 산소 포화도가 낮은 중증 폐렴 등 환자에게 효과가 있었다는 데이터가 있다”면서도 “투약 결정은 전적으로 주치의의 판단이기 때문에 이 약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중증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VIP이기 때문에 더 악화하기 전에 치료진이 예방 차원에서 미리 투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덱사메타손 외에도 지난 2일 월터 리드 군 병원에 입원해 렘데시비르도 투여받았다.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이 약은 지난 5월 미 식품의약처(FDA)로부터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렘데시비르는 물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에서 중증 환자에게 투여하지만 꼭 중증 환자에게만 투여해야 하는 약은 아니다”면서도 “덱사메타손은 초기 경증 환자에게는 투여하지 않도록 권장하는 약이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확진 판정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 생명공학 회사리제네론이 개발하고 있는 단일클론항제 약물도 투여받았다. 리제네론은 코로나19 초기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현지시간)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매우 좋은 상태이고, 백악관으로 돌아와 업무에 복귀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장(恩賜章)” 이라고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은사에 관한 말씀을 기록한 것은 로마서 12장과 에베소서 4장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장에 해당하는 말씀은 고린도전서 12장, 로마서 12장, 에베소서 4장, 베드로전서 4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은사(恩賜)와 은혜(恩惠)를 구분해야 합니다.
은사와 은혜는 나무에 비유하면 한 나무의 뿌리에서 자라난 여러 개의 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기쁨이란 헬라어는 "카라(chara, χαρά. 5479 : joy, delight)" 라고 합니다. 카라에서 은혜라는 "카리스(charis, χάρις. 5485 : grace, kindness)"가 파생합니다. 카리스에서 은사라는 "카리스마(charisma. χάρισμα, 5486 : a gift of grace, a free gift)"가 파생합니다. 따라서 은혜와 은사는 기쁨의 열매라고 하겠습니다.
더욱 큰 은사란 "사랑"을 말합니다. 이때 사랑을 "아가패(agapé. ἀγάπη. 26 : love, goodwill)"라고 합니다. 아가패
사랑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시고 그물이
가득찬 물고기를 잡은 후에 아침으로 그 물고기를 먹으며 처음으로 질문하실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때 사랑이 아가패라따라서
아가패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아가패의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희생적인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에로스의 사랑이란 욕망에 이끌려 자기 보존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에서 최고의 은사는 "사랑"이라고 소개합니다. 왜 사랑의 은사가 최고라고 하였을까요?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많은 교회이었지만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서로 분쟁하는 교회이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은사가 최고의 은사라고 자랑하므로 분쟁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사랑(아가페)의 은사가 가장 좋은 은사라고 강조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은사라는 초대교회를 부흥케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은사는 주의 몸인 교회를 섬기는 중요한 원리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은사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야 하는 성도들에게 올바른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분쟁하는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은사는 아가페적인 자기헌신적인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깨우칩니다.
요한복음 21:15∼17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질문) 1. 베드로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 2. 세 번씩 반복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을까? 3. 무엇을 하라고 하셨는가?
(적용)
1. 주를 믿기 전의 내 모습 2. 직분을 받기 전의 내 모습
1. 모른다고 부인한 것에 대한 검증
베드로가 바깥뜰에 있을 때 한 여종이 다가와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말했을 때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베드로가 앞문까지 나아갔을 때 다른 여종이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 라고 말하므로 “맹세하고 부인하여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라고 말할 때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둘째, 아가페 사랑을 요구하셨으나 필레오라고 대답했기 때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가패라는 단어로 물어보셨으나 베드로는 필레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세 번째는 필레오라고 질문하셨고 필레오라고 대답하였다.
셋째, 자기 사랑에 대한 확신, 자기 용서에 대한 확신
내 어린 양을 먹이라(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라!) - 어린 양(τὰ ἀρνία) / 아르니온(arnion. ἀρνίον) a lamb - 먹이라(Βόσκε, boske) / 보스코( βόσκω, boskó) to feed
양을 치라(사도직을 수행하라!) - 양(τὰ πρόβατά) / 프로바톤(probaton. πρόβατον) a sheep - 치라(Ποίμαινε, Poimaine) / 포이마이네(Ποίμαινε, Poimaine) Shepherd
내 양을 먹이라(주의 일을 이렇게 하라!)
- 양(τὰ πρόβατά) - 먹이라((Βόσκε, boske) / 보스코( βόσκω, boskó) to feed
성경에서 은사(선물)로 얻는 것 두 가지를 찾는다면
첫째는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 12:31, 13:13)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둘째는 믿음입니다(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사로 주신 사랑을 회복하고 실천하려면 먼저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기 사랑을 위해서는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죄를 짓지 않는 것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알게 모르게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완전한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따라 완전한 의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새로운 이름으로 알려주신 이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던 예수님께서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이었습니다. 어부이었던 베드로를 부르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예수님 곁에서 듣고 보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정말 전인격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므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네가 누군줄 아느냐?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다. 그러나 내가 네게 묻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아가페)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아시나이다(οἶδα) - 에이도(eidó: be aware, behold, consider, perceive)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믿음을 고백하기 전에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실패한 자리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부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에 오르신 주님은 다시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시간 주님을 향한 나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주를 믿도라고 하면서도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고백과 더불어 주를 향한 믿음을 정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을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마태 5:13) 너희는 세상의 빛(마태 5:14)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들을 깨우칩니다. 소금과 빛으로 살지 못했던 지난 날의 부끄러움을 떨쳐 버리고 이제부터 소금과 빛의 사람으로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을 위한 이야기
오래 전에 저희 처가집 작은 아버님께서 작은 아들이 기독교교육과를 졸업하고 신대원에 입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작은 아버님께서 교회에 상처를 받아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상처를 받은 이유는 집 근처에 어느 교회 목사님이 이사오셨는데 톱을 빌려갔다고 합니다. 며칠이 지나도 톱을 가져오지 않아 그 목사님댁으로 톱을 찾으러 갔더니 톱이 마당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며칠 동안 비가내렸기 때문에 마당에 있던 톱이 녹이 슬었다고 합니다. 그때 목사가 저 모양이니! 교회갈 마음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출석하던 교회에서 대학원 입학했다고 등록금도 도와주지 않아 상실한 마음에 더 크게 실망하셨겠지요. 제가 이런 사정을 듣고 작은 아들 대학원 등록금을 준비하여 작은 아버지 댁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앞으로 아들이 신대원을 졸업 후 목사가 되어 어느 교회에 부임할 때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아버님은 어느 교회에 출석하시나요? 그때 목사가 거짓말은 할 수 없고 "예, 교회로부터 상처를 받아 교회를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할텐데 그러면 그 교회에서 받아줄까요? 그러자 잘 알겠다며 그 다음 주일부터 즉시 교회에 출석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가페 사랑이란 자기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희생이 동기가 되어 믿음을 상실한 사람도 주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 주님을 찾을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신 것은 아가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너희도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자기 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 이런 사랑으로 믿음의 현장을 아가페 사랑으로 잘 관리하고 지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프리카 임은미 선교사의 이야기 어느 택시 운전기사는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던 개소주를 만들던 집사님이 정직하지 못한 모습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났다. 그때 대략 손해본 것이 5만원, 택시 요금 1만 2천원 요금으로 1만 5천원을 지불하며 거스름돈은 가시다가 커피 한 잔 맛 있게 드시고 5만원 손해 본 것은 제가 대신 드릴테니 앞으로 교회에 나가세요 하고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 가는 계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가며 주님의 섭리를 함께 경험하기 바랍니다.
월
일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8
3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는 자의 본(7절)
9
1
화
데살로니가전서 2:1∼20
강림하실 때(19절)
9
2
수
데살로니가전서 3:1∼13
장차 받을 환난(4절)
9
3
목
데살로니가전서 4:1∼18
휴거(17절)
9
4
금
데살로니가전서 5:1∼28
주의 날(2절)
9
5
토
데살로니가후서 1:1∼1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5절)
9
6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9월 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2: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강림하실 때(19절) ♦ 성구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For what is our hope, our joy, or the crown in which we will glory in the presence of our Lord Jesus when he comes? Is it not you?
“주의 강림(降臨)을 준비하자!” 구약은 장차 메시아(예수)가 오실 것을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은 메시아(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예언은 하늘로 올라가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임재를 “강림(降臨)” 또는 “재림(再臨)”이라고 합니다.
주의 강림을 준비하는 신앙을 소개합니다.
첫째,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라(데살로니가전서 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둘째,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존하라(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셋째,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아라(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2:28)
세상이 너무 좋아 주님 오심을 사모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돈만 있으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데!"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주님 나라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나라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그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들에게는 신앙으로 경험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우한 폐렴이 만든 고통의 터널을 빛이 되신 주님과 함께 밝고 환하게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장차 받을 환난(4절) ♦ 성구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In fact, when we were with you, we kept telling you that we would be persecuted. And it turned out that way, as you well know.
왜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난(患難)이 닥쳐올까요? 환난은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5절). 마치 용광로 속에 넣은 온갖 낡은 고철이지만 그 안에서 끓고 또 끓은 후에는 순수한 철로 재생산되듯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일지라도 환난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삶의 무대 위에 다시 올려질 수 있습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휴거(携擧, rapture)(17절) ♦ 성구 :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휴거(携擧, rapture)”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다만 “끌어 올려”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용어(用語)’라고 하겠습니다. 휴거는 단순한 ‘승천(昇天)’이 아닙니다.
휴거의 목적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종말(終末)과 세상의 혼란(混亂), 심판이 임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공중에서 재림하여 성도들의 일부를 공중으로 올려서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환난의 날에 공중으로 들려올라가는 성도들에게는 환난에서 면제될 것이라는 위로와 기대를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까지만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태복음 24:36)
마치 재림의 날짜를 아는 것이 신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빨리 지워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휴거란 내게 주어진 하루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와 같은 믿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저들에게도 구원받은 믿음을 실천할 수 있는 생각과 결단하는 용기를 주셔서 모두가 함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할 뿐입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날(2절) ♦ 성구 :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You know very well tha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in the night.
"주의 날"을 두 가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는 마지막 날(The Last Day)
마지막 날은 주님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이며 심판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에 양은 오른편으로 염소는 왼편으로 구분하실 것입니다. 나는 어느 편에 속할까요?
둘째는 주님의 날(主日, Sunday)
주님의 날은 주일(主日)을 말합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모여서 예배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흩어져서 예배하는 삶을 실천하던 주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은혜가 우한 폐렴으로 모일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흩어져서 개별적인 경건의 삶을 실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깨우침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이 살아있을 때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 믿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이 곧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을 하루같이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주님이 오신다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멈추고 주님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양과 염소를 모여서 활동하는 군집형 동물이라고 합니다. 여름철이 되면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자면 덥기 때문에 양은 서로 떨어져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염소는 떨어져서 자면 시원하고 좋지만 다른 녀석이 시원하고 좋은 것을 못견뎌하며 악착같이 붙어서 자려고 한답니다.
겨울철이 되면 양은 서로 붙어서 자는 것이 따뜻하고 좋기 때문에 서로 붙어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염소는 상대방이 따뜻한 것이 배가 아파서 일부러 떨어져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오른편에 속한 거룩한 주의 백성은 나보다 남을 높이고 존경하며 인정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1:1∼12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5절) ♦ 성구 :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All this is evidence that God's judgment is right, and as a result you will be counted worthy of the kingdom of God, for which you are suffering.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알아야 하겠지요.
1.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시편 33:12) 2. 말이 아니라 능력(행동)(고린도전서 4:20) 3.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로마서 14:17) 4.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마태복음 12:28) 5. 내 안에 세워진 나라(누가복음 17:21)
하나님의 나라를 다른 곳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환난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내 의지와 결단과 노력으로는 환난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주의 영으로 저희를 붙잡아 주시고 저희들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이 주의 임재를 깨닫고 주님 나라 향하여 모두 함께 손잡고 그곳으로 걷게 하소서.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2: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불법의 비밀(7절) ♦ 성구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For the secret power of lawlessness is already at work; but the one who now holds it back will continue to do so till he is taken out of the way.
“不法의 秘密(the secret power of lawlessness)” 성경은 “불법(不法)을 죄(罪)”라고 합니다(요한일서 3:4) 따라서 “불법의 비밀”이란 “죄의 비밀”이라고 하겠습니다.
불법이란 “배도하는 일”을 일으키는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불법의 사람은 “자기를 하나님” 이라고 하며 주의 날이 언제 이를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말로만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속임수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불법의 비밀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3: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랑과 인내(5절) ♦ 성구 :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May the Lord direct your hearts into God's love and Christ's perseverance.
사랑(愛)과 인내(忍耐) 사랑이란 헬라어로 “아가페(ἀγάπη)”라고 하며, 인내는 “후포메내(ὑπομονή)”라고 합니다. ‘아가페’라는 “사랑”은 “하나님의 의지” 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합니다. ‘후포메네’는 “끝까지 참고 견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 받게 하려고 끝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산을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 요구하고 그것을 갖고 집을 나가 방탕한 삶을 즐겼던 작은 아들이었지만 그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를 찾아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며 무릎을 꿇었을 때 아버지는 “너는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내 아들” 이라고 하시며 아들을 품꾼으로 맞이한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맞이하셨습니다.
당시 율법은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 유산을 분배받는 행위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죄에 속합니다.
품꾼과 같은 저희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주님의 자녀로 인정하시고 맞아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도 참고 기다립니다.
지체하지 말고 아직도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돌아와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강의 은혜를 우한 폐렴이라는 시련의 시기가 계속될 때에도 마음껏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1: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계의 목적(5절) ♦ 성구 :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The goal of this command is love, which come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경계의 목적은 신앙을 바르게 지키려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다른 교훈을 배우지 않는 것(3절) 둘째는 무가치한 변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4절) 셋째는 복음만 좇는 것(11절)
참된 그리스도인은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항상 "나는 죄인의 괴수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15절). 이러한 고백을 "깨달음의 은혜"라고 합니다. 자기를 깨달을 줄 아는 믿음은 "선한 양심"을 갖고 살아갑니다(19절). 선한 양심은 "청결한 마음"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주님 사랑 증거 하는 행복한 믿음의 순례자로 맡겨진 본분 잘 감당하므로 착하고 충성된 사람으로 승리하시기 를 기도합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2: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소원(4절) ♦ 성구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Who desire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하나님의 소원(所願)
소원(所願)이란 한자는 "바 소(所)" "원할 원(願)"이란 훈(訓)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관리하도록 축복하셨던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급하게 달려가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을 하나님의 소원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속전(贖錢)으로 바쳐진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라고 합니다.
교부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일곱 가지 대죄(大罪)는 "교만(驕慢, Pride), 시기(猜忌, Jealousy), 분노(忿怒, Anger), 나태(懶怠, Sloth. Indolence), 탐욕(貪慾, Greed), 탐식(貪食, Gluttony), 정욕(情慾, Lust)"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일곱 가지 죄에 하나를 더하면 "허영(虛榮, Vanity)"이라고 하겠습니다.
허영의 정체는 "사라질 광채"라고 합니다. 죄가 만연하고 사회 정의와 질서가 무너져버린 시대를 급하게 몰아치는 또 하나의 죄는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허영'이라고 하겠습니다. 허영의 그림자는 돈, 권력, 좌파사상, 현실 만족과 같은 것들이겠지요.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믿음의 사람은 영혼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죄의 유혹에 대항해왔던 오랜 교훈과 지혜의 비밀을 되찾을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도 책임을 사명으로 깨닫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을 만족케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3: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의 비밀(16절) ♦ 성구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By common confession, great is the mystery of godliness: He who was revealed in the flesh, Was vindicated in the Spirit, Seen by angels, Proclaimed among the nations, Believed on in the world, Taken up in glory.
“경건(敬虔)의 비밀(秘密), the mystery of godliness”
“비밀(秘密)”이란 영어 단어는 "secret"과 "mystery"라고 합니다. ‘secret’는 ‘비밀’ 이라고 하며, ‘mystery’는 ‘신비’라고 합니다.
비밀은 그 내용이 밝혀지면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밝혀지면 유익합니다.
비밀이 밝혀지면 당사자가 곤경에 처합니다. 그래서 비밀은 그대로 묻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밝혀지면 좋습니다. 신비는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만 알려집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자연의 신비한 법칙을 발견한 후 이것에 대해 설명해주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경건의 비밀은 신비와도 같습니다. 비밀을 헬라어로 “무스테리온(Musterion)” 이라고 합니다. ‘무스테리온’이란 헬라어에서 영어의 “mystery(신비)” 라는 단어가 파생했습니다.
경건의 비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밝혀질수록 사람들에게 정말 좋습니다. 이 비밀은 깨닫고 알수록 우리에게 큰 복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비밀보다 이 비밀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알려줘도 아무나 알기가 힘이 듭니다. 이 비밀, 이 신비는 들을 귀와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듣기도 하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경건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기도해야 합니다.
경건의 비밀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동정녀 탄생)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속죄의 제물)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부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승천) 다시 내려오실 것입니다(재림)
경건의 비밀은 신비(神秘, mystery)와 같습니다. 신비의 내용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신비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형식적이며 습관적입니다. 날마다 경건의 신비를 경험합시다. 은혜가 충만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승리하는 십자가 군병으로 승전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4: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건의 연습(7절) ♦ 성구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Have nothing to do with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rather, train yourself to be godly.
경건(敬虔)의 연습(練習) 1986년 11월 어느 날 미국 애리조나 주에 거주하는 한 보석상이 우연히 수석 전시회에 들렀는데 15달러 가격표가 붙어 있는 돌멩이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틀림없는 사파이어 원석이었습니다. 그는 담당자에게 정말 15달러냐고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담당자는 현찰로 사면 5달러를 깎아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석상은 얼른 10달러를 내고 그 돌멩이를 구입했습니다. 그는 그 돌멩이를 쪼개고 다듬어서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까 판매액이 무려 228만 달러이었습니다. 1만원에 구입한 돌멩이가 무려 26억 원의 가치가 된 것입니다. 육체의 연습(bodily exercise)은 몸 즉 겉 사람을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경건의 연습은 심령 즉 속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경건의 연습을 위해서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즉 "성경 읽기"와 "묵상 기도" 그리고 "사랑의 실천"과 같은 훈련이라고 하겠습니다.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앤드류 보나(Andrew Bonar, 1810~1892) 목사는 경건 생활을 위한 세 가지 규칙을 세우고 실천했습니다. 그가 세운 경건생활의 목표를 소개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과도 말하지 않는다. 둘째,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기 전까지는 그 손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셋째, 성경을 읽기 전까지는 어떤 글도 읽지 않는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므로 날마다 심령을 새롭게 하는 영적생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한 폐렴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의 질서를 찾아가는 요즈음 화분에 심겨진 화초에 물을 주고 가꾸듯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경건의 연습을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영성과 인성의 사람으로 세워지시기 바랍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전서 5: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선한 행실의 증거(10절) ♦ 성구 :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And is well known for her good deeds, such as bringing up children, showing hospitality, washing the feet of the saints, helping those in trouble and devoting herself to all kinds of good deeds.
선한 행실(行實)의 증거(證據)(Proof of good deeds)
교회가 해야 할 사역 중에 하나는 과부를 경제적으로 보살펴야 하며, 과부는 나이가 육십이 넘고 한 아내의 남편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으로 자녀 양육을 잘 했다든지, 나그네를 잘 대접한다든지, 성도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이나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했다는 증거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과부를 책임지고 잘 돌보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권면입니다. 여기서 과부만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생각합니다.
성도는 선한 행실을 보이면 살아야 하는 일군입니다.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하며, 나그네를 대접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길 만큼 굳은 일을 찾아서 감당하며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한 질문에 대답하며 나를 점검해 봅시다.
첫째, 나는 선한 일을 잘 하고 있는가? 둘째, 나는 습관적으로 혹은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물질을 다른 사람과 잘 나누는가? 셋째, 나는 굳은 일을 도맡아서 하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고 외면하는가?
주여! 주님은 모범이시며 구속자이십니다. 결국 구속자이시며 모범입니다. 그래서 분투하는 자가 절망하여 산산조각 날 때 모범이신 것에 의기소침 할 때 구세주는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 순간에도 주님은 계속 분투하게 하시는 모범이 되십니다. - 철학자 키에르케골(Kierkegaard)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1: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거짓이 없는 믿음(5절) ♦ 성구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I have been reminded of your sincere faith.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청결한 양심(3절) 근신하는 마음(7절)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8절) 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1666년에 영국 런던에 큰 불이 일어나서 많은 교회당이 전소하였을 때 당시 영국 왕 Charles 2세가 크리스토퍼 우렌 경을 총감독으로 임명하고 교회당을 재건하였습니다.
어느 날 우렌 경이 공사장에서 돌을 다듬는 석공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첫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이 돌을 깎아서 저 벽에 맞추어 넣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마누라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석공의 대답은 “저는 지금 대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우한 폐렴이 창궐하여 삶의 리듬이 깨어진 세상 같을지라도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를 다듬어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세워가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 찬양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9월 17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2: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의 좋은 군사(3절) ♦ 성구 :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Endure hardship with us like a good soldier of Christ Jesus.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좋다”의 반대말은 “나쁘다” 입니다. “좋은 군사”가 있으면 “나쁜 군사”도 있습니다. 누구나 좋은 군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교회가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내가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군사일까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3: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고통 하는 때(1절) ♦ 성구 :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But mark this: There will be terrible times in the last days.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고통(苦痛) 하는 때라고 합니다. 고통(苦痛) 이란 어떤 것일까요? 여러 번역을 참조하여 살펴봅니다. 1. 공동번역 : 어려운 시기 2.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 어려운 때 3. NIV : terrible times(무서운 시기) 4. KJV : perilous times(위험한 시기) 5. NASB : difficult times(어려운 시기)
여러 다양한 번역을 참조하여도 단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 헬라어 단어를 찾아봅니다.
6. 헬라어 : 칼레포스(χαλεπός. chalepos)(difficult, hard) "칼레포스"란 어떤 내용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hard) 시기라는 것을 말합니다.
"칼레포스"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8장 28절에서는 이런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비록 우리들이 고통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셨기 때문이며, 또한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마지막 고통 하는 때를 잘 견디려면 주님이 원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8:8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결국 성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때의 고통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이전 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릴 수 있는 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고통의 때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늘도 주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4: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말씀을 전파하라(2절a) ♦ 성구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Preach the Word; be prepared in season and out of season.
성도들이 항상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항상 기뻐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 항상 기도하라(누가복음 18:1) 항상 소망을 품으라(시편 71:14) 항상 감사하라(빌레몬서 1:4)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라(히브리서 13:15)
항상(恒常) 힘써야 할 일들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전파(傳播)하다는 헬라어는 “케루소(κηρύσσω. kérussó)”라고 합니다. 케루소의 뜻은 “전령이 되라(to be a herald)” “선언하라(proclaim)”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말씀을 삶을 통하여 증거하고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장로님께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잘 하는 목사는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님은 목사처럼만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다.”
설교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설교를 자기 삶으로 고백하는 말씀을 전파하는 증인이 필요한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이런 막중한 책임을 갖고 이 시대의 밝은 등불이 되어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밝혀주는 거룩한 빛으로 삶의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십자가의 도(18절) ♦ 성구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십자가(十字架)의 도(道)(the message of the cross)” “도(道)”를 아시나요?” 도(道)를 한자에서는 “길”이라고 합니다. 헬라어에서는 “로고스(λόγος, logos)”라고 합니다. 로고스란 “말씀(言)”입니다. 복음서에서는 로고스를 “예수님” 이라고도 합니다. 결국 “도를 아시나요?” 라는 질문은 “예수님을 아시나요?” 라는 질문입니다. 간혹 거리에서 도를 아시나요? 하며 신앙의 질서를 흔드는 잘못된 종교에 미혹되지 말고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정말 주님께서 나를 아실까요? 마지막 날에 내가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노라 이런 책망을 듣지 않으려면 주님께서 나를 인정하시고 아는 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아는 사람은 “죄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죄를 짓는 것도 자유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자유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칼뱅)”은 “참된 자유는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으며,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할 수 있는 의지의 해방”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우한 폐렴의 전염병을 이길 수 있는 방역 수칙을 지키는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2: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지혜(7절) ♦ 성구 :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No, we speak of God's secret wisdom, a wisdom that has been hidden and that God destined for our glory before time began.
"하나님의 지혜(知慧), God's secret wisdom" 하나님의 지혜는 신비로운 감추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내가 누구인줄 깨닫는 것입니다. 지혜란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스런 지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는 마음"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은 성령의 능력에 다스림을 받는 마음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모두가 하늘 뜻 찾아 복잡하고 어지러운 땅에 거룩한 씨를 뿌려봅시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3: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성전(16절) ♦ 성구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성전(聖殿)과 교회(敎會) 그리고 예배당(禮拜堂)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시대에 솔로몬 왕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축한 것입니다. 현재는 예루살렘에 통곡의 벽이 그 일부분 유적처럼 남아있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배당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를 믿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곧 성전이라고 깨우칩니다. 심지어 성도들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강조합니다(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전과 같은 몸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위한 수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믿음이란 나는 어떤 질병에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일반상식을 무시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일반상식을 지키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광적인 믿음은 비정상적인 몸에 비성서적인 신앙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기도원에서 40일 금식을 마치고 강가로 나가 강 위를 걷고자 하는데 자꾸만 강물 속으로 빠집니다. 물 위를 걷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함에 갑자기 신앙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 기도원 원장을 찾아가서 왜 나는 물 위를 걷지 못하는가? 하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기도원 원장은 그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는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꾸짖기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당신은 40일 금식을 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 때문에 실패한 것” 이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팬데믹(Pandemic)이 지구촌을 거대한 수용소로 만들었습니다. 성도들은 그 수용소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강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성도들의 건강한 신앙 까닭에 아직도 믿음을 깨닫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가를 알려줄 수 있는 은총의 삶이 오늘이라는 무대 위에서 보기 좋게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4: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일군(1절) ♦ 성구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So then, men ought to regard us as servants of Christ and as those entrusted with the secret things of God.
“그리스도의 일군” 일군이란 헬라어는 “후포레테스(ὑπηρέτης, hupéretés)” 라고 합니다. ‘후포레테스’는 “아래, 밑” 이라는 “후포”와 “노를 젓는다”는 “에레테스”가 합성하여 만든 단어로 “밑에서 노를 젓는 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의 배에 수십 개의 노들이 있는데, 배 안에서 한 사람이 하나씩의 노를 붙들고 북소리에 맞추어 노를 젓는데, 배 아래에서 노를 젓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어느 지점에 왔는지도 모르고 신호에 맞추어 노를 젓기만 합니다. 이렇게 노를 젓는 사람을 가리켜서 ‘후페레테스(일군)’라고 합니다.
배의 목적지는 선장이 알고 있을 뿐, 어디로 가느냐고 묻거나 밖을 내다볼 필요도 없습니다. 노를 저으라면 젓고, 멈추라면 멈추며, 빨리 저으라면 빨리, 천천히 저으라면 천천히 저으면 되는 이것이 바로 ‘후페레테스(일꾼)’입니다.
일군의 자세는 충성(忠誠)입니다. 충성이란 선장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선장이 되신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둘째는 서로 대적하지 말라. 셋째는 왕 노릇하라(죄를 다스리는 것). 넷째는 주를 본받으라. 다섯째는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회복하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릴수록 그리스도인은 오직 주님만 닮아가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5: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유월절 양(7절) ♦ 성구 :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Get rid of the old yeast that you may be a new batch without yeast as you really are. For Christ, our Passover lamb, has been sacrificed.
"유월절(逾月節) 양(羊)"(Passover Lamb)
유월절 양은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입니다. 죄를 지은 존재는 사람이지만 죄인을 대신하여 양이 죄 값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만일 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억울하다!"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죄인은 죄를 지으므로 억울한 대상을 만들었고 또다시 양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 또 다른 억울한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본질은 악한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하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유월절 양 앞에서 포장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질을 드러내어 버려야 합니다. 본질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포장으로 덮어버리면 세상은 여전히 억울하다 외칠 것입니다. 본질을 벗어버릴 때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내가 할 일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앨버트 시바이처는 행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할 일이 있다(Something to Do)
둘째, 바라는 것이 있다(Something to Hope)
셋째, 사랑할 대상이 있다(Something to Love)
매일의 할 일은 악한 존재의 본질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매일 바라는 것은 주님 닮은 존재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눈에 사랑할 대상이 다가올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두려워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두 손 모아 기도합시다. 팬데믹 수용소에 갇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위한 유월절 양의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나도 사랑하며 살아보겠노라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6: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와 합하는 자(17절) ♦ 성구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But he who unites himself with the Lord is one with him in spirit.
나는 이 세상을 참가자로 살아 갈 것인가? 아니면 구경꾼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신앙생활에 적용한다면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신앙생활은 참가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믿는 신앙생활은 구경꾼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아는 단계에서 예수님을 체험하는 단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체험할 때 비로써 풍성한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주와 합한다는 것은 곧 예수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험할 때 주의 영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약한 사람에게는 감염의 속도가 빠르게 다가갈 것이지만 강한 사람에게는 감염 속도가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머리만으로 예수를 아는 신앙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온 몸으로 예수를 알려면 반드시 영으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 팬데믹 수용소에서도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7: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부르심을 받은 자(22절) ♦ 성구 :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For he who was a slave when he was called by the Lord is the Lord's freedman; similarly, he who was a free man when he was called is Christ's slave.
“부르심을 받은 자”를 “소명자(召命者)” 또는 “사명자(使命者)” 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하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옛 사람”은 부름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옛 생활에 붙잡혀 살아가는 사람으로 신앙의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새 사람”은 부름을 받은 후에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통하여 거듭난 사람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특별하게 부름을 받았다는 첫 번째 증거는 부름 받는 과정의 신비한 요소가 아니라 부름을 받은 후에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오직 그 길만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특별하게 부름을 받았다는 두 번째 증거는 자신과 같이 독신으로 지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라고 합니다.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결혼 적령기”와 “성생활 적령기”를 구분해야 합니다. 결혼 적령기란 결혼할 마음과 준비가 갖추어진 때를 말합니다. 성생활 적령기를 결혼 적령기로 착각하여 결혼을 할 때 그 결혼 생활은 불행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믿음으로 감당하겠다는 마음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때를 결혼 적령기라고 하겠습니다.
결혼 한 것도 결혼 하지 않은 것도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다만 부르심을 받은 대로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순종할 때 세속의 가치를 뛰어넘는 천국 가정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가족들끼리 부딪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힘들어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므로 천국 가정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8: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우상의 제물(1절) ♦ 성구 :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Now about food sacrificed to idols: We know that we all possess knowledge. Knowledge puffs up, but love builds up.
“우상(偶像)의 제물(祭物)”이란 우상 제사에 사용된 음식을 말합니다. 한국의 경우 “제사 음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제사 음식을 먹어야 되느냐?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하느냐? 제사 음식을 먹으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까? 제사 음식을 먹지 않으면 거룩합니까?
구약에서는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율법으로 명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건강을 위한 것과 건강을 해롭게 하는 것으로 구분합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은 음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믿음이 연약한 사람에게 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가급적 삼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하느냐? 이런 의문보다는 믿음의 덕이 되느냐 될 수 없느냐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온 세상이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사람은 묶인 곳에서 자유를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전염병이 창궐 할 때 병을 이길 수 있는 거룩한 생활과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병이 옮겨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은 모든 병과 질병을 치유하시면서 도시와 마을을 여행 하셨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따라 모든 병자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주님, 우리를 지금 구하소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주님 치유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여 주시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통해 힘과 건강을 되찾게 하여 주소서.
주님, 국가들과 이웃 간에 서로 협력하고
무서움과 두려움에 빠지지 않게 우리를 치유해 주소서.
주님,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하는 이 질병을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는
우리의 교만을 치유하여 주소서.
이 불확실성과 슬픔의 시기에 모든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와 함께 하소서.
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이 주님의 영원한 평화안에서 안식하게 하소서.
주님, 질병과 절망으로 염려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병자와 죽음으로 인해 고통 받는 모든 가족들과 함께 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평화를 얻게 하소서.
주님, 질병에 걸린 자들의 치유를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수고하는 의사, 간호사, 연구자 및 모든 의료 전문가와 함께 하소서.
그들이 주님의 보호와 평화를 얻게 하소서.
주님, 모든 국가의 지도자와 함께 하소서. 그들이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와 진정한 관심과 사랑으로 행하는 예지를 주소서.
그들에게 미래의 발생에 대비하며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장기적 해결책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있게 지혜를 주소서.
그들이 이 세상에서 그것을 달성하기위해 함께 일할 때 주님의 평화를 얻게 하소서.
우리가 집에 있든 해외에 있든, 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든,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가 인내하고 애통해하고 견디며 준비할 때 우리와 함께 하소서. 주님, 우리가 염려하는 대신에 주님의 평화를 주소서.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9: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부득불 할 일(16절) ♦ 성구 :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Yet when I preach the gospel, I cannot boast, for I am compelled to preach.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부득불(不得不) 할 일”이란 무엇일까요? 한국에서는 “의식주(衣食住)”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식의주(食衣住)”라고 합니다. 북한의 경우 먹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에 “식(食)”이 우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핵심적으로 강조하셨던 말씀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라! 둘째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첫째는 지상명령 입니다. 둘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하기 때문입니다(에스겔 3:18∼19)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사랑하라는 명령의 핵심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깨우치지 않아서 그가 멸망했다면 그 피 값을 우리에게서 찾으시겠다고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깨우치고 애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너무 악하여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아서 멸망했다면 우리의 할 바를 다했기에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처럼 부득불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므로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뒤 흔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병에 감염된 아픈 환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우들을 치유하고 도와주시옵소서. 그들의 몸과 영혼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감염의 확산을 하루 빨리 막아주시옵소서.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The great dragon was hurled down that ancient serpent called the devil, or Satan, who leads the whole world astray. He was hurled to the earth, and his angels with him.
요한계시록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He seized the dragon, that ancient serpent, who is the devil, or Satan, and bound him for a thousand years.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사탄과 마귀의 정체에 대한 성경의 결론은 큰 용, 옛 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도입 이야기)
인도 설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파라문교인 한 사람이 제사에 쓰려고 산양을 사 가지고 오는 것을 본 악인 세 사람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그가 오는 길목에서 각각 떨어져 기다리고 있었다.
파라문교도가 가까이 오자 첫 번째 악인이 그 앞에 나타나자 '오! 성자여 당신은 무엇에 쓰려고 그 더러운 개를 메고 가십니까?' 라고 말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이 가지고 가는 것은 산양이라고 대꾸했다.
조금 후 두 번째 사람이 똑같은 말로 물어왔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의아심이 생겨 메고 가던 산양을 내려 살펴보고는 그제서야 안심하였다.
조금 걸어가다 세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자 그도 똑같은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정말인가 하여 결국 그는 산양을 땅바닥에 버려두고 황급히 가버렸다. 이를 본 악인들은 기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귀에 들리는 이야기들 중에는 무고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몇 번 듣다보면 우리 안에서 진실인 것 마냥 자리 잡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단은 이런면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사탄의 전술 전략에 대해서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사탄과 마귀 그리고 귀신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정체성을 성경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사탄과 마귀(魔鬼)는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귀신(鬼神)’과는 다릅니다.
귀신은 헬라어로 다이몬(δαιμων)인데 여기서 영어의 ‘demon’(악령)이 파생합니다.
성경은 ‘사탄’과 ‘마귀’를 단수로 기록하고 있지만 ‘귀신’은 단수와 복수로 모두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단인가? 사탄인가?
한글 성경은 악한 영들의 존재를 ‘사탄’ ‘사단’ ‘마귀’ ‘귀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탄’과 ‘사단’은 같은 말이며 발음상의 문제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 원문이 두 단어를 혼용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다른 음역(音譯)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1961년에 개정된 개역한글성경은 ‘사단’이라고 번역했지만 98년에 개정된 후 대부분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성경과 공동번역, 현대어성경, 표준새번역 등은 ‘사탄’으로 번역했다. 둘 중에 더 정확한 음역은 ‘사탄’(Satan)이며 ‘대적’ ‘대적자’ ‘고소자’라는 뜻이다.
‘마귀(魔鬼)’는 히브리어인 ‘사탄’의 뜻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디아볼로’(διαβ λλω)이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히브리어이고, ‘마귀’는 헬라어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은 마귀와 사탄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시러 광야에 가셨다(4:1)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는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 지역에서 귀신을 쫓아냈을 때 많은 귀신이 귀신들렸던 사람에게서 나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가기도 했다(막 5:13).
마가복음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께서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이라고 언급하신 것과 성경의 여러 본문을 고려할 때 ‘귀신’은 ‘사탄’ 혹은 ‘마귀’가 부리고 있는 낮은 등급의 악한 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일반적으로 공직이나 기업체의 정년 퇴임은 60세를 전후하여 이루어진다. 60세 이상된 노인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능력이 있다고 해도 노동을 할 직장이나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전 인구가 100명이라면 노동 인구가 70% 내외가 되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0세 이상의 고령층이 20%에 육박하고, 아직 배움의 길에 있는 젊은이가 20%를 상회할 테니 그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 인구는 60% 내외가 된다.
2. 노동인구의 비노동 인구의 과도한 부양 책임
1항에서 언급한 것처럼 70% 내외의 노동인구가 30% 내외의 비노동 인구를 부양하는 구조라면 적정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노동인구가 40%를 상회한다면 노동인구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3. 출산 가능 인구의 감소에 따른 급격한 인구저하
일반적으로 20~50대를 출산 가능인구로 보고 있다. 이들이 전체 인구의 70%를 유지하면서 적정한 출산이 이루어질 때 그 사회의 적정한 인구가 유지된다. 그러나 출산 가능 인구의 비율이 떨어지고, 그들마저 비노동 인구 부양 등의 부담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지면 급격한 인구저하를 피할 수 없다.
4. 다음 세대(노동 인구를 일컬음)의 부양능력 가중화
1~3항의 상태가 심화된다면 다음 세대의 노동인구들의 부양 부담은 더욱 가중화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5. 노인복지시설이나 휴식공간의 부족
10여년 전만 해도 시골의 노인회관은 한 면에 1개소였다. 그러나 노인인구의 급증에 따라 각 리 별로 노인회관이 증축되었다. 노인복지시설이 노인회관만 있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복지 시설을 어떤 경비에서 어느 곳에 증축할 것인가? 필요한 만큼 증축할 수 있는 여력도 없고, 무리하게 시도한다면 사회적 부담만 가중된다.
6. 가정에서 노인의 역할과 위치가 축소
과거 농경사회에서 노인의 경험은 그 사회와 가정에 도움이 되었고, 그것이 노인들의 권위를 유지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발전하는 사회에서 노인들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노동의 기회와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7. 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노후생활
과거 노인들은 자녀들의 성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세대이다. 이제 고령화가 되어 노동의 기회를 잃고 경제력을 상실한 노인들에게 가족과 국가는 넉넉한 지원을 해 줄 여력이 없다.
8. 핵가족화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인한 노인부양의 어려움
과거에는 3~4명의 자녀들이 노인이 된 부모들을 부양했다. 그러나 1~2명의 저출산 사회에 진입한 현대 사회에서 자녀들은 노인 부양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9. 점점 젊어지고 있는 정년퇴직제한으로 인한 노인실업 증가
교직의 경우 과거에는 정년이 65세인데, 현재는 62세다. 다른 직장 역시 명퇴 등으로 50대 내외에서 퇴직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 능력이 있는 노인들의 실업은 사회적 부담이 된다.
해결점
1. 출산률 상승
현재 고령화사회의 큰 원인 중 하나인 출산률 저하를 막기 위하여 정부는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출산 장려 제도를 강구해야 한다.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는 비싼 사교육비와 어려운 경제생활로 인한 맞벌이와 그로 인한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 등이 있다. 정부는 교육정책을 시정하여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거나 출산가정에 대한 경제적인 보조 등의 대비책을 증가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경우 결혼이나 출산을 하면 직장에서 퇴직이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런 사회적 시각도 개편해야할 것이다.
공무원은 물론 기업들에게도 의무적으로 여성보호제(임신, 출산 시 충분한 휴가 및 육아수당 지급 등)를 시행해해야한다.
2. 실버산업 육성
보다 원활하고 활동적인 노후 보장을 위해 실버산업이 육성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지제도가 매우 미흡하고, 노인들에 대한 지원 대책이 부족한 시점에서 너무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 차원에서 투자가 활성화된 실버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3. 고령자에 대한 고용제도
국가에서 공무원은 물론 기업에게 의무적으로 도입시켜야 합니다. 나이에 관계 없이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직종이 있고, 그런 직종은 의무적으로 노인을 고용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고령자를 고용하는 기업에게는 세금 감면, 적정 인원의 노인을 고용하지 않은 기업에게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4. 국민연금 개선
말많고 탈많은 국민연금을 사회복지 정책으로 확실히 개편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평생동안 열심히 노동을 하며 세금을 내고 연금을 적립한 사람은 그 사회가 노후를 확실히 보장해 주어야 한다.
5. 노인들의 스스로 경험 활용
찾아 보면 정년이 없는 노인들 일자리는 여전히 많다.
예를 들어서 지식인의 답변이나 각 출판사에서 서평을 쓰면 일정액의 사례를 주기도 하는데 평생을 한 직장에서 외길을 판 노인의 지식을 당할 자가 누구이며, 그런 경험에서 우러난 서평보다 훌륭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평생 동안 익힌 경험을 스스로 소중히 생각하며 그것을 발휘할 기회와 장소를 찾는 것은 노인들이 할 일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진리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은 신앙의 초보적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곧 영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체험해야 합니다. 영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진리가 되시며 영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영으로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혼과 몸으로 체험하는 정도로 멈추고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기적의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기적의 예수란 벳새다 들판에서 굶주렸던 사람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고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광주리가 12개 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육신의 몸을 갖고 살아갈 때 육신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기적을 기대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육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 복음서에 나타났던 기적의 사건에 참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모두 외면했습니다.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이성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혼이란 정신을 말합니다. 신앙을 정신적인 영역에 가두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 돌아갑니다.
정신적인 위로자가 되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영으로 세상에 오셔서 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 남편을 잃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우
* 사업의 어려움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극적으로 회복되어 주님을 만났다며 새 힘을 얻었으나 다시 사업이 기울고 어려워 질 때 왜 나를 버리셨느냐 하며 절망에 다시 붙잡히는 경우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신령한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감당하려고 30세까지는 전혀 하늘의 일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의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과 같은 사건을 보여주며 메시아가 되심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께서 임하지 않은 시대이었기에 예수님을 영으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제자로 부름을 듣기 전에 일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후 베드로를 위시하여 그 자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영으로 예수를 체험하였고 그때부터 완전히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이미 성령강림이 일어난 이후의 시대이므로 직접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하며 성령 체험이 있어야만 예수를 영적으로 믿을 수 있는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혼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예수를 믿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몸은 이 세상에서 온갖 질병과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을 갖게 되지만 죽음 후에는 이 모든 질병과 사건과 사고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동훈목사의 경우 36세의 젊은 나이입니다. 더구나 가족들은 아내 라헬과 두 아들 그리고 딸이 살아가야 할 과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동훈목사 Jacob Lee(1984. 5. 4- 09. 28. 20 am 9:42) 36세 Wife / Rachel Tan Lee(1989. 12. 17-) 31세 Son / Zephaniah(2015. 9. 9-) 5세 Son / Jayden(2017. 6. 25-) 3세 Daughter / Kaelyn(2019. 6. 30-) 1세
몸과 혼으로만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생각하면 가장 좋으신 하나님께서 몸과 혼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남은 가족들과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부터는 놀라운 주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당사국은 대한민국과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고, 한반도에 사는 같은 우리 민족 간에 일어난 전쟁을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이라고 불러왔습니다.
1953년 7월 27일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문(정전협정문)에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북한 김일성, 팽덕회 중공군 사령관의 서명만 있고, 전쟁 당사국 대한민국은 조인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소장 최덕신은 휴전협정문이 조인될 당시 대표로 배석만 했습니다.
1950년 12월 유엔에서 한국전쟁 휴전문제가 논의되었고, 이란, 캐나다, 인도의 3인 위원회는 휴전을 위해 중공군과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엔은 휴전결의안을 채택하고 1951년 1월 초까지 중공군을 접촉하여 휴전협정(정전협정)을 모색했지만, 중공군이 유엔의 휴전협정 제안을 거절합니다.
1950년 6월 25일 6·25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남북한과 참전국 간에 치열한 전쟁은 1951년 3월경 38선을 중심으로 전선이 고착화됩니다. 유엔의 휴전 제안이 실패로 돌아간 후 1951년 6월부터 미국의 주도로 정전협정(휴전협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1951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2년여의 길고 긴 휴전협상(정전 협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2년여의 정전 협상 기간에도 북한(중공군)과 남한(유엔군) 간이 치열한 혈전을 계속됐습니다.
휴전회담이 열리는 동안 치열한 공방이 계속된 것은 경계선, 즉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발효되는 시점에 각기 군부대가 점령한 지역을 휴전선으로 설정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1953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처음 열렸고, 1953년 7월 27일까지 765차례가 열렸습니다.
6·25 한국전쟁 정전협정(휴전협정)에서는 휴전선 확정과 포로 교환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습니다.
의제 채택과 일정, 휴전선(군사분계선) 확정, 휴전 감시기구 설립, 쌍방의 관계국 정부에 대한 건의(외국군 철수) 등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포로 교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1년 2개월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 정전협정(휴전협정)이 이루어지는 중에 전군에 극비 지령을 내보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전
시행에 대해 협력하지 아니한다. 전투행위 중지에 불응하고, 현재의 전투행위를 계속하라.'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정전협정(휴전협정) 발효로 한국전쟁 이전에 남북이 대치했던 3·8선은 사라지고, 정전협정으로 지금의 휴전선이 확정됐습니다.
기밀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인 따르면 6·25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군부가 이승만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려고 했고, 미국 정부도
이른바 '에베레디 계획'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쿠데타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측의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이승만은 휴전협정 체결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승만은 미국의 원조와 한국군 증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6·25 한국전쟁 휴전협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1953년 1월 미국 제34대 대통령에 취임한 아이젠하워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게 휴전협상에 반드시 성공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휴전협정이 끝난 후 '공산국가와 전쟁과 협상보다 이승만 대통령과의 현상이 더 힘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전쟁 사령관 중에서 자신이 승리를 얻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서명한 최초의 사령관이 되었다.'라고 스스로 탄식했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북한과 남한의 전쟁으로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국과 소련과 중공은
참전국입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10시 12분에 끝남)에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
서명되었습니다.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를 기해 발효됐습니다.
남북한과 미국과 소련, 중공 유엔 16개 참전국 등이 3년 1개월여 동안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한국전쟁이 한동안 멈추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에서 전쟁 당사국이지만, 정전협정문에 조인하지 않았으며 6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엔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한국전쟁을 끝낸다는 정전협정(종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의 공식적인 명칭은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정에 관한 협정>입니다.
한국전쟁을 일시 중지하는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은 대한민국 대표의 서명은 없고, 유엔군 사령관, 김일성, 팽덕회의 서명만
있습니다. 전문 5조 36항의 협정문서는 국어, 영어, 중국어 3개국어로 쓰여졌고 정본 9통과 부본 9통입니다.
군사
행동을 중지하는 일, 전쟁을 중지하는 일, 교전 당사국 끼리 전쟁을 멈추고 쉬는 것을 휴전(休戰) 또는 정전(停戰)이라고
합니다. 정전협정과 휴전협정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전쟁을 끝낸다는 이른바 평화협정, 종전(終戰)협정이 아니고, 전쟁을 잠시
휴식하고 멈춘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6·25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햡정(휴전협정)을 체결한 말 그대로 남북한이 잠시 휴전(정전) 중일뿐 완전히 끝난 전쟁이 아닙니다.
정전 협정은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사이에 체결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정전 협정은 판문점에서 체결되었으며, 6·25 전쟁의 정지와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 행위와 모든 무장 행동을 완전히 정지시키기 위해 체결되었다.
1948년 8월 남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같은 해 9월 북한에서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북한은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고 중국에도 1949년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어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자, 무력 통일을 위한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미국이 1950년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였는데, 애치슨 라인에 한반도가 포함되지 않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이 참전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였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받아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착수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하였다. 이후 유엔군이 참전하여 전세를 역전하였지만, 중공군이 참전하여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하였다. 이에 유엔군과 중국군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여 정전 협상을 시작하였다.
정전 협정은 양측의 대립으로 1953년에 가서야 체결되었다.
6.25 전쟁 / ⓒ (주)천재교육
한국 전쟁 휴전협정서 제1권
한국전쟁을 중단하게 한 휴전협정.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정전을 위한 노력은 6·25 발발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시도 되었다. 1950년 12월 14일, 유엔은 한국에서 정전을 위한 총회결의를 했고 이를 위해 중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중국과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은 1951년 6월 야콥 말리크 유엔주재 소련대사를 만나 논의한 뒤 소련에서 먼저 협상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6월 16일 트뤼그베 리 유엔사무총장은 휴전 보장 성명을 발표했고, 6월 23일에는 야콥 말리크 대사가 유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전을 위한 대화를 촉구함으로써 본격적인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어서 27일에는 그로미코 소련 외무차관이 휴전 제안 성명을 발표했고, 30일에는 리지웨이 장군이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을 통해 휴전협상을 제안했다. 1951년 7월 1일,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공동으로 휴전협정 동의를 발표했다.
1951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159차 휴전회담 본회의에서 유엔군측 수석대표 W.K. 해리슨과 공산군측 대표 남일이 세 통의 휴전협정서와 부속문서에 각각 서명한 뒤 M.W.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가 각각 후방사령부에서 서명했다. 협정서는 서언과 5조 63항으로 구성된 전문, 11조 26항의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문·영문·한문으로 작성되었다.
전문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분쟁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한국에서의 전투행위와 모든 무력행동을 완전히 종결시킬 정전을 목적으로 체결되었다. 휴전의 성격은 순전히 군사적인 것으로 6·25전쟁에서의 교전국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주요 내용은 ① 군사분계선을 설치하고, 양측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km씩 후퇴하여 완충지대로서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 ② 군사정전위원회를 구성하여 휴전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며, 스웨덴·폴란드·스위스·체코슬로바키아 등 4개국으로 중립국감시위원단을 구성하여 군비증강을 감시·조사하게 한다. ③ 양측이 억류하고 있던 포로를 송환할 것과 본국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송환위원단에 인도하는 것을 결정했다.
이 협정으로 6·25전쟁이 일어난 지 3년 1개월 2일 만에 휴전되었다.
남한은 전쟁의 주된 교전국이었지만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또한 정전협정은 남한 그대로 전쟁을 일시 중지시킨 것이지 항구적인 평화장치가 아니어서 그동안 남북한은 정전협정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여왔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미국과만 평화협정 맺기를 고집했지만 남한과 미국이 반대하여 종전협정이 체결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