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架上七言)
가상칠언 묵상
1언 용서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2언 약속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3언 섬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27)
4언 교환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5언 체휼 : 내가 목마르다(요 19:28)
6언 확신 : 다 이루었다(요 19:30)
7언 신뢰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부활의 신앙(04-04-2021)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부활(復活)은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이깁니까?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누가 잡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사탄 마귀가 사망의 권세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세상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받아야 할 온갖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안장된 후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는 40일의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신 것은 세상 유혹을 이기신 것입니다.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사망 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 되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은 심판주가 되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를 믿는 사람도 세상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를 믿는 사람도 사망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길(way) 되신 예수님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길이란 사람이 다니는 곳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니는 길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주님입니다.
진리(truth) 되신 예수님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진리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교훈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 알아야 할 교훈은 죽지 않는 것이며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생명(life) 되신 예수님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살아있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활 신앙은 이기는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은 죽음을 이기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이 있는 성도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유혹을 이기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여러가지 환난과 시련과 시험을 받을지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잠시 무너지고 넘어질 수 있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수 많은 성도들이 불행하려고 예수를 믿겠습니까?
세상에 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패배자가 되려고 예수를 믿겠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이기려는 것입니다.
부활주일 예배에 온라인으로 또는 동영상으로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기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0년대 서울에 전차가 운행되고 있을 때 제 모교회 남대문교회 배명준목사님이 어느 권사님과 함께 심방을 가려고 전차를 탔다고 합니다. 얼마 후 어느 법대생이 두터운 법전을 들고 전차를 탔는데 마침 그 권사님 옆 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권사님은 조용히 목적지로 가면 좋을텐데 그 대학생에게 "젊은이 예수 믿으세요!" 라고 말을 했는데 갑자기 그 대학생이 큰 소리로 "나는 석가모니를 믿습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곁에서 목사님이 마음이 조마조마 하여 가만히 계시면 좋을텐데.... 무어라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답답해 하는데 전차에 있던 승객들은 권사님과 대학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께서 대학생에게 "석가모니 무덤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대학생은 자신있게 인도 어디에 석가모니의 무덤이 있다고 말했다지요. 그러자 권사님께서 "왜 죽은 석가모니를 믿습니까?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어야지!" 하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도대체 저 권사님이 어떻게 저런 지혜가 있을까?
부활은 논쟁의 주제가 아닙니다.
부활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종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승리를 선택한 것이며 생명을 선택한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을 가르치는 종교의 자리에서 벗어나 부활을 확신하는 생명의 자리로 옮겨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사할 때 좀 더 좋은 환경과 좋은 집을 선택합니다.
신앙 또한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이와이면 당홍치마라고 죽음이 결정된 종교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신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선택한 행복, 내가 선택한 신앙, 내가 선택한 생명을 내 안에 감추지 말고 드러내야 합니다.
드러내어 보여주고 전하고 가르침으로 부활 신앙의 열매를 맺는 일에도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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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을 때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첫째는 죄를 이기는 은혜(요한일서 3:8-9)
성경은 죄는 마귀가 가져오는 것이라고 합니다(요한일서 3:8-9)
마귀를 이기었노라(요한일서 3:8-9)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그런데 마귀는 마귀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가룟 유다는 돈을 좋아했습니다.
돈궤를 맡을 수 있는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은 것을 관리해야 할텐데 예수님께서 죽으러 가신다고 하므로 회의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돈 궤를 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마지막으로 돈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려고 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은 결정됩니다.
돈을 가지려고 하면 일시적으로 돈이 내 호주머니 안에 있지만 마지막에는 돈도 잃고 내 생명도 잃어버릴 것입니다.
제자 가룟 유다가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둘째는 죽음을 이기는 은혜(고린도전서 15:55-57)
고린도전서 15:55-57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 세상에서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죽어야 합니까?
성경적인 이유는 죽음은 죄의 올가미를 씌운 마귀가 죽음의 구덩이로 끌고 간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긴 후에 은 30을 얻었으나 은 30이 정당한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돈을 던져버리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성경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세상을 이기는 은혜(요한복음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요한이서 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넷째는 심판을 이기는 신앙(요한복음 5:29)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은 영생과 영벌로 구분합니다.
영생은 심판을 이기는 것이지만 영벌은 심판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위한 이야기 자료
어떤 임금에게 외동딸이 있었는데 그 공주가 죽을 병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나라 안에 모든 의사들이 동원되었지만 임금의 딸을 죽을 병으로부터 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의사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신통한 약을 먹이지 않는 한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고심하던 임금은 딸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을 사위로 삼을 것이며 임금의 자리까지도 물려주겠다고 전국방방곳곳에 포고문을 붙였습니다.
당시 아주 외딴 산골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신기한 망원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신기한 망원경으로 포고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삼형제는 임금의 외동딸의 병을 고쳐보자고 의논했습니다.
둘째는 신기한 마법의 융단(양탄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융단에 올라 앉기만 하면 어디든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세 형제가 그 융단을 타고 임금이 계신 궁궐로 날아갔습니다.
셋째는 신기한 사과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사과를 먹기만 하면 무슨 병이든지 고칠 수 있는 참 신비한 사과이었습니다.
셋째가 그 사과를 공주에게 주었고 공주는 그 사과를 먹은 후에 즉시 회복되었습니다.
공주가 죽을 병에서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기뻐했으며,
임금님은 큰 잔치를 벌이고 사위이자 다음번 임금이 될 사람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세 형제는 서로 자기가 임금의 사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만일 내 망원경으로 포고문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공주가 병으로 누운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둘째는 "만일 내 융단이 없었으면 왕궁으로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셋째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셋째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임금의 입장이라면 과연 세 형제 가운데 누구를 사윗감으로 정하겠습니까?
이때 임금은 세 형제 중에서 사위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셋째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의 망원경은 아직 그대로 첫째가 갖고 있었고
둘째의 융단도 둘째가 갖고 있으나
셋째의 사과는 공주가 먹어버려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셋째는 임금의 외동딸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주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에게 도움을 줄 때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마법의 사과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당신은 예수입니까?(Are you Jesus?)
폴이라고 하는 한 회사원이 뉴욕에서 중요한 미팅을 마치고 자기 팀 동료와 함께 공항으로 갈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 날이 금요일 오후 저녁 시간이어서 교통 체증이 심해 택시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빈 택시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이 택시를 보는 순간 다른 동료들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너무 빨리 달려가는 바람에 바로 길 가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의 야채 과일 박스를 차버리게 됐고,
과일과 야채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폴의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개의치 않고 택시에 올라 탔습니다.
그러나 폴은 택시를 타지않고 그 자리에 순간 멈추어 섰습니다.
택시 안의 동료들이 "빨리 타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만일 이 택시를 타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은 나를 놔두고 먼저 가라고 일행을 떠나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노점상 할머니에게 다가가니 그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세히 가서 봤더니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자였습니다.
눈이 성한 사람이라면 바닥에 흩어진 과일이나 야채를 줏으면 그만인데,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어떻게 그 과일과 야채를 주워 담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앉아서 울고 계신 할머니를 폴이 위로해 드리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야채와 과일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도 폴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다들 자기 갈 길이 바쁜지 아무도 노점상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울음과 폴의 행동에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폴이 야채와 과일을 다 정돈한 후에 지갑을 꺼내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이 돈이면 손해 보신 것 충분히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Are you JESUS."
(혹시 예수님 아닌가요?)
이 말을 들고 당황한 폴이 "나는 절대 예수가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아니라면서 계속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조금 전 노점 가판대가 넘어지고 과일과 야채가 땅에 떨어질 때 제가 도움을 요청할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JESUS please come help me.'
(예수님 나에게 다가오셔서 제발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랬는데 기도의 응답처럼 당신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으니까,
You must be JESUS."
(당신은 예수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날 밤 폴은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더 뉴욕 호텔에서 머물면서 한밤중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When was the last time someone confused you for JESUS."
(누군가가 당신을 예수님 같다고 착각하게 했을 때가 언제인가?)
코로나19로 마음이 심란하고 울적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 가슴에 손을 얹고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 작은 예수가 맞나?"
"나의 삶의 방향과 목적은 바른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돈도 나의 능력이나 나의 재능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될 때만이 가능합니다.
나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기꺼히 양보할 수 있다면...
만일 내가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만일 내가 예수님처럼 나를 희생하므로 누군가를 세우고 살려줄 수만 있다면 분명 나 한 사람 때문에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 분명합니다.
"When was the last time someone conufsed you for JESUS."
(누군가가 당신을 예수님 같다고 착각하게 했을 때가 언제인가?)
중국 어느 가정에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며 형은 경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동생은 술과 담배 마작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옷이 피에 흥건히 젖은 옷을 입고 급하게 달려와 술을 마시다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지금 공안들이 쫓아옵니다.
형 나 어떻게 해?
공안들이 집으로 들어와 피묻은 옷을 입은 형을 체포하여 끌고 갑니다.
동생은 두려워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얼마후 형은 재판을 거쳐 사형언도를 받았고 사형장으로 끌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동생은 형이 갇힌 감옥으로 찾아가 호소합니다.
우리 형은 사람을 죽잊 않았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나를 감옥에 넣어주세요!
그러나 이미 재판은 끝났고 사형은 집행되었으며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더 이상 범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동생은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얼마 후 형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네가 이 편지를 볼 때 쯤이면 나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형의 옷을 입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동생은 형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습니다.
나도 형처럼 살아야지!
세상 친구들이 동생을 찾아와서 함께 나가서 놀자고 합니다.
그때 동생은 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옷의 주인은 술도 담배도 마작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이 옷의 주인처럼 살아야 한다.
친구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형처럼 진실하게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신
그 옷은 죄와 사망을 이기라고 합니다.
그 옷은 온갖 유혹과 시험을 이기라고 합니다.
부활의 옷을 입고 장차 심판 때에 양의 무리들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라고 합니다.
내 옷을 입고
에형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답답하게 살 수 없다며 주위 사람들처럼 마작, 술, 오락, 유흥 등에 관심을 갖고 지냈습니다.
형은 동생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면했지만 동생은 나는 형처럼 살지 않겠다며 전혀 정 반대의 삶을 즐겼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옷에 피가 묻었고 다급하게 집안으로 들어와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곧 경찰이 나를 체포하러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 형은 동생에게 너의 옷을 벗어라 그리고 형은 동생에게 자기가 입었던 옷을 건네주고 피가 묻은 동생의 옷을 입었습니다.
이어서 경찰이 집으로 찾아왔을 깨 누가 보더라도 형이 살인자가 틀림이 없었습니다.
형은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갈 때 동생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한다."
얼마 후 죄가 없는 형은 사형을 받았고 살인자이었던 동생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마음은 어떻게 나를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견딜 수 없었던 동생은 경찰서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람을 죽였고 형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자수했지만 이미 법적으로 형이 사형을 받았기 때문에 당신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동생은 이전에 즐기던 세상의 일들을 버리고 형이 믿던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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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승리
죄에 대한 승리
마귀에 대한 승리
세상에 대한 승리
율법에 대한 승리
부활 신앙이란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만약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이 세상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빨리 천국으로 가는 것이 유익합니다.
부활 신앙은 천국으로 갈 것이 분명하므로 예수님처럼 마법의 사과처럼 가장 중요한 것을 이 세상에 주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돈이 중요한 것이라면 돈을 주어야 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건강이 중요한 것이라면 건강을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것이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이 세상에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게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거창하게 원수를 사랑하겠다는 위선적인 말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아끼고 싶은 것을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내려 놓으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고 주님을 위하여 내 생명도 내려 놓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신비한 체험을 한 후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알고 난 후에 하나님을 믿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천국에 올라가서 천국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천국인의 삶을 살아가므로 천국을 체험하는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부활 이야기는 이성적, 상식의 영역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만 믿을 수 없는 것이 믿어질 때 신앙의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생명의 신비를 목격합니다. 지금도 과학적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진 않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 역시 신비입니다. 부활의 믿음이 없다면 소망도 없습니다.”
부활(復活)의 신앙(信仰)
부활(復活)이란?
이기는 것이다!
부활은 승리하는 것이다!
부활은 승리하는 것이다!
부활은 승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신(神)이라고 믿는 어떤 신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신은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경우 /
석가모니의 무덤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예수님은 무덤이 없다.
왜 죽은 석가모니를 믿느냐?
지금도 살아계신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엇을 이기셨는가?
첫째, 사망(死亡)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8:51-52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사도행전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망을 다스리는 존재는 원수 마귀 시탄
마귀를 이기었노라(요한일서 3:8-9)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 야고보서 4:17 / 마귀를 대적하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둘째, 죄(罪)
죄는 이기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이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를 이기었노라(골로새서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요한일서 3:1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넷째, 율법(律法)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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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과 삶은 계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5).
로잘린이라는 사람은 많은 농토와 커다란 저택,
그리고 독실한 신앙생활로 결속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잘린은 국가의 부름에 따라 십자군에 뽑혀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만을 남겨 놓은 채 집을 떠났습니다.
그가 집을 떠난 지 얼마 후에 그렇게 평화롭던 마을은 불한당들에 의해 온 마을이 점령을 당하고 주민들은 모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로잘린의 가족들도 하루아침에 재산과 집을 잃은 채 마을에서 쫓겨나 이곳저곳을 헤매며 구걸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어떤 마을에 도착하여 마음씨 고운 농장 주인을 만나 조그만 농토와 보금자리를 빌릴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로잘린의 아내는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농장 주인에게도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빌려준 농토에 정성을 다해 씨앗을 뿌리고 가꾸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으나 전쟁터에 나간 로잘린은 아무런 소식조차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살림이 안정되자 부인은 부활절 전날 밤에 정성껏 과자를 굽고 그동안 길렀던 닭이 낳은 달걀을 모아 삶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온 동네 아주머니와 아이들을 모두 농장으로 초청을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어린이들을 이렇게 초대한 것은 오늘이 바로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쁜 날을 맞아 우리 모두 함께 노래 부르고 맛있는 과자와 삶은 계란도 함께 나누어 먹기 위해서입니다"
로잘린 부인은 이렇게 어린이들을 초청하게 된 배경을 말한 뒤 삶은 계란을 들어 보이며
그곳에 쓰인 '사랑의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작은 글씨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이 삶은 계란에 적힌 글씨는 저희 집에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교훈입니다.
먹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보시고
그 의미를 생각하신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린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아무도 없을 때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낯선 소년 하나가 부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로잘린 부인은 얼른 그 소년에게 다가가 삶은 계란 몇 개를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이것은 부활절 선물이란다.
귀한 것이니까 맛있게 먹으렴"
소년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두 손으로 받아 안고 고개 넘어로 달려갔습니다.
이 소년이 고갯길을 넘어 내려오는데 길가에 너덜너덜한 군복을 입은 십자군 병사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깜짝 놀라 병사 가까이 가서 조심스럽게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병사는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부활절 기념선물로 받은 삶은 계란을 병사에게 주었습니다.
병사는 소년이 주는 삶은 계란을 받아들고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계란 어디서 난거냐!"
소년은 겁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저씨,
그 계란은 훔치거나
빼앗은 게 아니라
고개 넘어 농장에 사시는 아주머니께서 부활절 선물로 저에게 주신 거에요"
병사는 계란 껍질에 작은 글씨로 쓰인 '사랑의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구절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더니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건 바로 그토록 찾고 있던 내 아내의 글씨가 틀림없어!"
그리고는 계란을 든 채 쏜살같이 고갯길을 달려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집으로 돌아온 로잘린은 폐허가 된 고향집 외에는 사랑하는 아내도 자식도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없어서 이곳 저곳 헤매며 찾고 있던 중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선물로 삶은 계란을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준 아내 때문에 다시 가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삶은 계란 속에 들어있는 또 하나의 사랑의 씨앗이 기적을 이루어 냈고 이후부터 해마다 부활절이 돌아오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삶은 계란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안에는,
마치 로잘린 부인의 부활절 계란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과 기적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는 기쁜 부활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큰은혜큐티).
"잘 살다 가는 것도 실력이다"
요즘들어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졌다.
친구 또는 일가 친척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새삼스레 숙명적인 우리들의 숙제를 꺼내들었다.
끝까지 존엄하게 살다 가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그 답을 찾은 곳은 또 다른 장례식장이었다.
친구 아버님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친구가 말했다.
"OO야, 너 그거 아니?
사람이 죽는 것도 실력이 있어야 돼.
그런 면에서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실력으로 끝까지 스승 노릇 하셨어."
고인은 반년 전 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고 한다.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당황할 법도 하지만
그분은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혼자 살 아내를 위해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재산을 정리해 자식들에게
선물처럼 조금씩 나눠주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잘 아파야 되고, 잘 죽어야 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플 비용, 죽을 비용을 다
마련해놨다. 너희들 사는 것도 힘든데
부모 아플 비용까지 감당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아버지가 오랫동안 준비해놨으니
돈은 걱정 말고, 나 가기 전까지
얼굴만 자주 보여줘라."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
정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임종을 앞두고선 의사에게 심정지가 오면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문서에 사인까지 직접 하셨다.
자식들에게 아버지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 하는 아픔을 절대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임종이 가까워서는 1인실로 옮기기로
미리 얘기해 두셨다. 자신이 고통에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겁먹을 수 있으니
가족들과 조용히 있고 싶다는 뜻이었다.
친구의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있다.
가족들 모두에게 각각의 영상편지를
남긴 것이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작별인사를 하며 영상 끝에
이런 당부를 남기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딸아, 아버지가 부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늘을 봐라.
아버지가 거기 있다.
너희들 잘되라고 하늘에서
기도할 테니 꼭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늘을 보면서 살아라. 힘들 때는
하늘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라."
그분은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존경스러운 스승의 모습으로 살다가셨다.
어떻게 아파야 하는지,
죽는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존엄성을 지키면서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주로 뭔가를 '시작'할 때
준비라는 단어를 붙인다.
출산 준비,
결혼 준비,
취업 준비….
그러나 마무리에는
준비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은퇴 준비가 그토록 허술하고
임종 준비라는 단어는
금기시돼버린 이유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60대 이후를 남은 힘,
남은 돈으로 살려고 한다.
그러나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고살기 바쁜
현실을 버티다 보면 어느 새 거짓말처럼
노후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 때부터라도 정말 '잘 죽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식들 형편에 따라서 아프고,
자식들 돈에 맞춰서 병원에 끌려다녀야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존엄성이 사라지는 데다 자식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 때문에 있는 대로
자식들에게 주지 말고,
내 자존감을 지키고
마지막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비용을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에게 후회와 원망 대신 아름다운 추억과 스승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도록,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면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마지막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 보통 실력인가.
나이들수록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그런 내공은 갑자기 안 생긴다.
육십이 넘으면
고집이 세져서 남의 말은 안 들으니 스스로라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렇게 애써야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잘 죽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진짜 실력이다.
"잘 살다 가는 것도 실력이다!"
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개혁자 칼빈은 “교역자의 영성과 실력만큼 교회가 성장한다”면서 “날마다 개혁하고 성숙하는 목사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 모든 일에 전심전력해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세월이 변하면 목회의 방법도 달라질 수 있지만, 원리는 변치 않는다. 원리는 목사란 영원히 하나님의 종으로서 교인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교인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교인들의 깨우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진정한 섬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평생 자신과 싸우는 것이 목사의 사명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설교를 하지 말고 알아들을 수 있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영적인 아버지로 설교할 때는 교인을 자녀처럼 사랑으로 대하라. 규모가 큰 교회 목사를 바라기보다 하나님의 종다운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에 빠진 한국을 살리는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조화롭게 어울리지만 반드시 같기를 요구하지는 않고,
소인은 반드시 같기를 요구하지만 조화롭게 어울리지는 못한다."
조화를 추구하지만 모두가 똑같아지도록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화이부동과 동이불화는 기업에도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화이부동은 혁신적인 사고가 가능한 기업을 만든다.
하지만 동이불화는 경영자 한 사람의 말이 진리가 되어 아무도 발전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기업은 그나마 있던 혁신의 가능성마저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태영호 “북한은 왜 기독교를 말살했을까?”
대한민국 최초 탈북민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북한은 왜 기독교를 ‘말살’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9분여 간의 이 영상은 전체 강연의 ‘인트로(Intro, 소개)’ 격으로 보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강연했다.
태 의원은 “북한에 자유를 가져오는 데 종교의 자유가 왜 그렿게 중요할까.
저는 이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북한의 기본 개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북한의 종교 정책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북한 정치에 대해 더 알아보기 전에 종교 정책 분야에서 ‘말살’(extermination)과 ‘박해’(persecution)라는 단어의 차이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구 유럽 공산 국가들과는 달리 북한은 종교의 자유를 말살했다”며 “‘말살’과 ‘박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구소련이나 구 동유럽 국가에서는 종교 행위가 제한되고 정권의 박해가 있었지만, 지금 베를린, 바르샤바, 심지어 모스크바 거리를 걷다 보면 교회와 성당 건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종교가) 말살되지는 않았는데 북한을 여행하면 70년 전에 평양에 있던 오래된 교회를 볼 수 없다.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은 기독교를 박해했지만 북한은 말살했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다”고 했다.
태 의원은 “북한은 왜 기독교를 말살했을까?
많은 이유가 있다.
북한에서 종교의 자유를 말살한 주된 이유는 현재 북한의 정치 구조와 관련이 있다”며 “현재 북한의 정치 구조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세습국가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회주의의 기본 아이디어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다.
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공장, 식당, 심지어 작은 모퉁이 상점을 개인이 소유할 자유가 없었다”며 “하지만 세습적인 정치 구조는 없었다. 현재 북한에서는 생산수단이 사회화 되어 있지만, 정치 권력은 김일성에서 김정일에게, 지금은 김정은에게 한 집안 내에서 승계되었다”고 했다.
이어 “구소련, 동유럽 국가들, 중국 또는 베트남 같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를 생각해 보면 공산주의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아들에게 또는 가족 내에서 물려준 적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며 “(그러나) 북한은 김씨 일가가 할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손자로 3대에 걸쳐 정치 권력을 승계한 세계 최초의 국가”라고 했다.
태 의원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이 세습적인 정치 구조를 이행하기 위해 김일성 일가, 즉 김일성은 기독교의 중요한 요소 중 일부를 모방하기로 결심했다”며 “북한의 법적 구조는 일반 국가와 다르며, 구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헌법이 가장 중요한 법이고,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법을 제정한다. 법 다음에는 조례 또는 대통령령 등이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언제라도 범죄를 저지르면 탄핵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법 제도는 다르다. 북한에서 우선하는 한 가지 법은 김정은의 지도와 교시다. 김정은의 지도와 교시 다음에는 당규와 당헌이 있다. 당규와 당헌 다음이 헌법”이라며 “북한의 헌법은 3순위다. 그러면 ‘김씨 일가는 성경의 십계명에서 주요 요소를 어떻게 모방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십계명과 조선노동당 유일사상체계의 10대 원칙을 비교해 보면, 김씨 일가가 십계명의 주요 아이디어를 어떻게 모방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태 의원은 “예를 들어 십계명의 첫 번째는 이렇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것이 성경에서 십계명의 첫 계명이 말하는 바”라며 “북한의 첫째 원칙은 무엇일까.
북조선노동당의 10대 원칙 첫 번째는 ‘온 사회를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주의화 하기 위해 위해 몸바쳐 투쟁해야 한다(We must give our all in the struggle to unify the entire society with the revolutionary ideology of the Great Leader Kim Il-Sung and Kim Jong-Il, now Kim Jong-Un)’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북한에 사는 주민들은 오직 김정은만을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1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 화하기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수령님의 혁명 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 화하는 것은 우리 당의
최고 강령이며 당의 유일 사상 체계를 세우는 사업의 새로운 높은 단계이다.
- 당의 유일 사상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며 대를 이어 계속해 나가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창건하신 우리 당을 영원히 영광스러운 김일성 동지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세우신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튼튼히 보위하고 공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
- 주체 사상의 위대한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 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 전 세계에서의 주체 사상의 승리를 위하여 끝까지 싸워 나가야 한다.
2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충심으로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높이 우러러 모시는 것은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 전사들의 가장 숭고한 의무이며 수령님을 높이 우러러 모시는 여기에 우리 조국의 끝없는 영예와 우리 인민의 영원한 행복이
있다.
- 혁명의 영재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모시고 있는 것을 최대의 행복, 최고의 영예로 여기고 수령님을 끝없이 존경하고 흠모하여 영원히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 한 순간을 살아도 오직 수령님을 위하여 살고 수령님을 위하여서는 청춘도 생명도 기꺼이 바치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수령님에 대한 충성의 한 마음을 변함 없이 간직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가리키시는 길은 곧 승리와 영광의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수령님께 모든 운명을 전적으로 위탁하며 수령님의 영도 따라 나아가는 길에서도 못해 낼 일이 없다는 철석같은 신념을 가지고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 위업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
3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것은 우리 혁명의 지상의 요구이며 우리 당과 인민의 혁명적 의지이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확고한 입장과 관점을 가져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정치 사상적으로 옹호하며 목숨으로 사수하여야 한다.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위대성을 내외에 널리 선전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옹호하며 현대 수정주의와 온갖 원쑤들의공격과 비난으로부터 수령님을 견결히 보위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비상 사건 화하여 그와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 휘장,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한 미술 작품, 수령님의 현지 교시판, 당의 기본 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위대한 혁명 력사와 투쟁 업적이 깃들어 있는 혁명 전적지, 혁명 사적지, 당의 유일 사상 교양의 거점인 ‘김일성 동지 혁명 사적관’과 ‘김일성 동지 혁명 사상 연구실’을 정중히 꾸리고 잘 관리하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
4조 / 위대한
수령 김일 동지의 혁명 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을 확고한
신념으로 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하는 것은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구이며
혁명 투쟁과 건설사업의 승리를 위한 선결 조건이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 주체 사상을 자기의 뼈와 살로 유일한 신념으로 만들어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모든 사업과 생활의 확고한 지침으로 철석 같은 신조로 삼아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그것을 자로하여 모든 것을재어 보며 수령님의 사상 의지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로작들과 교시들, 수령님의 영광 찬란한 혁명력사를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깊이 연구 체득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을 배우는 학습회, 강연회, 강습을 비롯한 집체 학습에 빠짐없이 성실히 참가하여 매일 2시간 이상 학습하는 규율을 철저히 세우고 학습을 생활화, 습성화하며 학습을 게을리 하거나 방해하는 현상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 침투 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수령님의 교시와 당의 의도를 제때에 정확히 전달 침투하여야 하며 왜곡 전달하거나 자기 말로 전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 보고, 토론, 강연을 하거나 출판물에 실린 글을 쓸 때에는 언제나 수령님의 교시를 정중히 인용하고 그에 기초하여 내용을 전개하며 그와 어긋나게 말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와 개별적 간부들의 지시를 엄격히 구별하며 개별적 간부들의 지시에 대하여서는 수령님의 교시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따져 보고 조금이라도 어긋날 때에는 즉시 문제를 세우고 투쟁하여야 하며 개별적 간부들의 발언 내용을 '결론'이요, '지시'요 하면서 조직적으로 전달하거나 집체적으로 토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와 당정책에 대하여 시비 중상하거나 반대하는 반당적인 행동에 대하여서는 추호도 융화묵과하지 말고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과 어긋나는 자본주의 사상, 봉건 유일 사상, 수정주의, 교조주의, 사대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당적, 반혁명적 사상 조류를 반대하여 날카롭게 투쟁하며 수령님의 혁명 사상, 주체 사상의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
5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무조건 집행하는 것은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의 기본 요구이며 혁명 투쟁과 건설 사업의 승리를 위한 결정적 조건이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 사소한 이유와 구실도 없이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심려를 덜어 드리는 것을 최상의 영예로, 신성한 의무로 간주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창발적 의견들을 충분히 제기하며 일단 수령님께서 결론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중앙 집권제 원칙에 따라 자그마한 드팀도 없이 정확히 집행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와 당 정책을 접수하면 곧 집체적으로 토의하여 옳은 집행 대책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조직 정치 사업을 짜고 들며 속도전을 벌여 제때에 철저히 집행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 집행 대장을 만들어 놓고 교시 집행 정형을 정상적으로 총화하고 재 포치하는 사업을 끊임 없이 심화시켜 교시를 중도 반단 함이 없이 끝까지 관철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말로만 접수하고 집행을 태공하는 현상, 무책임하고 주인답지 못한 태도, 요령주의, 형식주의, 보신주의를 비롯한 온갖 불건전한 현상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
6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 의지적 통일과 혁명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전당의 강철같은 통일 단결은 당의 불패의 힘의 원천이며 혁명 승리의 확고한 담보이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 의지적 통일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고 더욱 튼튼히 다져 나가야 한다.
- 모든 단위, 모든 초소에서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에 기초하여 혁명적 동지애를 높이 발양하며 대렬의 사상 의지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대한 충실성을 척도로 하여 모든 사람들을 평가하고 원칙적으로 대하여 수령님께 불성실하고 당의 유일 사상 체계와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직위와 공로에 관계없이 날카로운 투쟁을 벌여야 한다.
- 개별적 간부들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거나 아부 아첨하며 개별적 간부들을 우상화하거나 무원칙하게 내세우는 현상을 철저히 반대하여야 하며 간부들이 선물을 주고 받는 현상을 없애야 한다.
- 당의 통일 단결을 파괴하고 좀먹는 종파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당적 사상 요소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며 그 사소한 표현도 절대로 묵과하지 말고 철저히 극복하여야 한다.
7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따라 배워 공산주의적 풍모와 혁명적 사업 방법, 인민적 사업 작풍을 소유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지니신 고매한 공산주의적 풍모와 혁명적 사업 방법, 인민적 사업 작풍을 따라 배우는 것은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신성한 의무이며 수령님의 혁명 전사로서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하기 위한 필수적 요구이다.
- 당의 노동 계급과 인민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그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높은당성, 노동 계급성, 인민성을 소유하여야 한다.
- 계급적 원쑤들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 정신과 확고한 혁명적 원칙성, 불요불굴의 혁명 정신과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혁명의 한길로 억세게 싸워 나가야 한다.
- 혁명의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자력 갱생의 혁명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모든 일을 책임적으로 알뜰하고 깐지게 하며 부닥치는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
- 노쇠와 침체, 안일과 해이를 반대하고 왕성한 투지와 패기와 정열에 넘쳐 언제나 긴장하게 전투적으로 일하며, 소극과 보수를 배격하고 모든 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여 나가야 한다.
- 혁명적 군중 관점을 튼튼히 세우고 청산리 정신, 청산리 방법을 철저히 관철하며, 대중 속에 깊이 들어가 대중을 가르치고 대중에게서 배우며 대중과 생사 고락을 같이 하여야 한다.
- 이신 작칙의 혁명적 기풍을 발휘하며 어렵고 힘든 일에 언제나 앞장서야 한다.
- 사업과 생활에서 항상 검박하고 겸손하며 소탈한 품성을 소유하여야 한다.
- 관료주의, 주관주의, 형식주의, 본위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업 방법과 작풍을 철저히 배격하여야 한다.
8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안겨 주신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며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높은 정치적 자각과 기술로써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안겨 주신 정치적 생명을 지닌 것은 우리의 가장 높은 영예이며 수령님의
정치적 신임에 충성으로 보답하는 여기에 정치적 생명을 빛내여 나가는 참된 길이 있다.
- 정치적 생명을 제일 생명으로 여기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혁명적 지조를 굽히지 말며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는 육체적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칠 수 있어야 한다.
- 혁명 조직을 귀중히 여기고 개인의 이익을 조직의 이익에 복종시키며 집단주의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
- 조직 생활에 자각적으로 참가하며 사업과 생활을 정규화, 규범화하여야 한다.
- 조직의 결정과 위임 분공을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 2일 및 주조직 생활 총화에 적극 참가하여 수령님의 교시와 당정책을 자로 하여 자기의 사업과 생활을 높은 정치 사상적 수준에서 검토 총화하며 비판의 방법으로 사상 투쟁을 벌이고 사상 투쟁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단련하고 끊임없이 개조해 나가야 한다.
- 혁명 과업 수행에 투신하고 노동에 성실히 참가하며 혁명적 실천 과정을 통하여 혁명화를 다그쳐야 한다.
- 가장 고귀한 정치적 생명을 안겨 주신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충성으로 보답하기 위하여 높은 치적 열성을 발휘하며 정치 이론 수준과 기술 실무 수준을 높여 언제나 수령님께서 맡겨 주신 혁명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야 한다.
9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일적 령도 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 규율을 세워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일적 령도 체계를 튼튼히 세우는 것은 당을 조직 사상적으로 강화하고 당의 령도적 역할과 전투적 기능을 높이기 위한 근본
요구이며 혁명과 건설의 승리를 위한 확고한 담보이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하여 혁명과 건설을 수행하며 수령님의 교시와 명령, 지시에 따라 전당,전국,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수령님의 유일적 령도 체계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
- 모든 사업을 수령님의 유일적 령도 체계에 의거하여 조직 진행하며 정책적 문제들은 수령님의 교시와 당 중앙의 결론에 의해서만 처리하는 강한 혁명적 질서와 규율을 세워야 한다.
-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혁명 투쟁과 건설 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를 확고히 보장하며 국가, 경제 기관 및 근로 단체 일군들은 당에 철저히 의거하고 당의 지도 밑에 모든 사업을 조직 집행해 나가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당과 국가의 결정, 지시를 정확히 집행하여야 하며 그것을 그릇되게 해석하고 변경시키거나 그 집행을 어기는 현상과는 강하게 투쟁하며 국가의 법규범과 규정들을 자각적으로 엄격히 지켜야 한다.
- 개별적 간부들이 아래 단위의 당, 정권 기관 및 근로 단체의 조직적인 회의를 자의대로 소집하거나 회의에서 자의대로 '결론'하며 조직적인 승인 없이 당의 구호를 마음대로 떼거나 만들어 붙이며 당중앙의 승인없이 사회적 운동을 위한 조직을 내오는 것과 같은 일체 비조직적인 현상들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 개별적 간부들이 월권 행위를 하거나 직권을 람용하는 것과 같은 온갖 비 원칙적인 현상들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대한 충실성을 기본 척도로 하여 간부들을 평가하고 선발 배치하여야 하며, 친척, 친우, 동향, 동창, 사제 관계와 같은 정실, 안면 관계에 의하여 간부 문제를 처리하거나 개별적 간부들이 제멋대로 간부들을 떼고 등용하는 행동에 대하여서는 묵과하지 말고 강하게 투쟁하며 간부 사업에서 제정된 질서와 당적 규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 당, 국가 및 군사 기밀을 엄격히 지키며 비밀을 누설하는 현상들을 반대하여 날카롭게 투쟁하여야 한다.
- 당의 유일 사상 체계와 당의 유일적 지도 체계에 어긋나는 비조직적이며 무규율 적인 현상에 대하여서는 큰 문제이건 작은 문제이건 제때에 당중앙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당 조직에 보고하여야 한다.
10조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 나가야 한다.
당의 유일적 지도 체계를 확고히
세우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 위업을 고수하고 빛나게 계승 발전시키며 우리 혁명 위업의 종국적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결정적
담보이다.
- 전당과 온 사회에 유일 사상 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완수하기 위하여 수령님의 령도 밑에 당 중앙의 유일적 지도 체계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항일 혁명 투쟁 시기에 이룩하신 영광스러운 혁명 전통을 고수하고 영원히 계승 발전시키며 혁명 전통을 헐뜯거나 말살하려는 반 당적 행동에 대해서는 그 자그마한 표현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
- 당 중앙의 유일적 지도 체계와 어긋나는 사소한 현상과 요소에 대해서도 묵과하지 말고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
-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과 후대들도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모시고 수령님께 충성 다하며 당 중앙의 유일적 지도에 끝없이 충실하도록 하여야 한다.
- 당 중앙의 권위를 백방으로 보장하며 당 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여야 한다.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의 유일 사상 체계를 확고히 세움으로써 누구나 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근위대, 결사대가 되어야 하며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야 한다.
예수 내 구주!
♦ 3월 29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 4: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묵은 땅을 기경하라(3절)
♦ 성구 :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播種)하지 말라.
오늘은 사순절 제35일, 고난주간 첫째 날 월요일입니다.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라(break up your unplowed ground)”
“묵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호세아 10:12).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세상이 요지경(瑤池鏡)과 같다고 합니다.
왜 세상이 요지경이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씨앗”에 비유하여 씨앗이 떨어지는 네 종류의 밭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종류의 밭은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을 말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하는 것을 말합니다(마 13:1∼23).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것은 묵은 땅을 좋은 땅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의 악을 씻어 버려야 합니다.”(14절)
악한 생각이 마음에 오래 머물면 선을 행할 수 없게 됩니다(22절).
마음의 악을 씻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주의 인자와 자비를 기도하라(시편 51:1∼2)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쫓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악행을 멈추라(이사야 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강제로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내가 직접 멈추고 버려야 합니다.
왜 마음의 악을 씻어야 할까요?
마음의 악을 씻지 못하면 악이 쌓이고 쌓여 황무지가 되기 때문입니다(26절).
맑은 물이 담겨진 유리잔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면 처음에는 잉크가 흩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잉크를 한 방울씩 계속 떨어트리면 맑은 물은 잉크 색으로 변합니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하여 묵은 땅을 기경한 후 진실과 사랑의 씨를 뿌리는 일에 성공하여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은총의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그치고
https://www.youtube.com/watch?v=SWHuskJPqi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 3: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15절)
♦ 성구 : 내가 또 내 마음에 합(合)하는 목자(牧者)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知識)과 명철(明哲)로 너희를 양육(養育)하리라.
어느 개인 병원의 원장으로부터 “내가 내 돈을 주며 사람을 고용하지만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고 만나는 것도 어렵다면 누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shepherds after my own heart)”가 될 수 있는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은 “내가 믿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나는 예수님이 기뻐하는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을 주시며 “너희는 나의 백성이며, 나는 너희 왕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계명을 주신 후에는 왕과 백성의 관계를 뛰어넘어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사랑하였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집을 나간 탕자처럼, 남편을 버리고 떠난 타락한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죄를 자복하라(13절)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둘째는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있느니라(23절)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하나님 마음에 흡족한 사람이 되려면 신앙생활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스바냐 3:17)
내 삶의 주인은 이제부터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된 나의 삶을 위하여 지혜와 총명을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이사야 11:2∼3a)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지혜와 총명을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https://www.youtube.com/watch?v=VZdMLgChd-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6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 2:1∼37
♦ 묵상을 위한 주제 : 두 가지 악(13절)
♦ 성구 : 내 백성이 두 가지 악(惡)을 행(行)하였나니 곧 생수(生水)의 근원(根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貯蓄)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두 가지 악(惡)(Two sins)”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는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죄를 말합니다.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심지어 인간의 생명과 행복과 번영 그리고 구원과 영생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을 버린 것은 죽음이 아니라 완전한 파멸입니다(사 12:3, 55:1, 겔 4:1∼9).
둘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나라를 의지한 죄를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흐르는 물을 가두어 놓을 저수지를 막거나 빗물을 모아두기 위해 웅덩이를 팠습니다. 그 웅덩이에 물이 스며들지 않기 위해 석회를 발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석회에 균열이가 물이 새어 나가고 맙니다. 유다 백성은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물을 얻기 위해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모든 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살 길을 찾으려고 우상을 좇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터진 웅덩이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필요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잘 살아 보기 위해 자신의 지혜를 따라 돈, 사람, 단체 등에 모든 생애를 거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학 1:2∼6, 눅 12:16∼21).
유다의 우상 숭배하는 모습을 이렇게 탄식합니다(11절)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방 나라를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기 전에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믿음의 통찰력(spiritual insight)을 기도합시다.
이 세상은 보는 만큼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듣는 만큼 생각하게 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찾아 책임을 바르게 감당하고 세상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으로 다듬어가는 일에 보람과 희망과 기쁨을 함께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 찬양 / 내 주는 강한 성이요
https://www.youtube.com/watch?v=mXtv57vLuw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5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예레미야 1:1∼19
♦ 묵상을 위한 주제 : 네가 무엇을 보느냐(13절)
♦ 성구 :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臨)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對答)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面)이 북(北)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은 “일메”와 “야후”의 합성어으로 “여호와가 던지셨다” “주께서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가 멸망해서 왕이 눈이 뽑히고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죽임을 당하고, 심지어 여인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의 자식을 삶아 먹는 것도 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기적은 한 번도 행한 적이 없었고 그의 예언도 언제나 절망적이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나라가 망해도 2∼3년만 지나면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70년이 지나야 돌아온다고 예언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매국노라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예레미야서를 더 잘 이해하려면 그 배경을 우리나라의 1800년대 후반부터 한일합방인 1910년까지의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채결되었을 때, 황성신문의 발행인이었던 장지연선생이 “이날을 목 놓아 통곡한다”는 의미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썼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가 기울어가다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 목을 놓아서 울며 써내려간 글이 “예레미야”와 “예레미야애가” 입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What do you see?)
예언서를 읽으려면 상징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끓는 가마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 개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살구나무 가지의 환상”과 “끓는 가마의 환상”이었습니다. 12절의 “지켜” 앞에 아라비아 숫자 (1)이라 쓰여 있습니다. 난외에서 “히, 살구나무라는 말과 지킨다는 말의 음이 비슷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살구나무”는 “샤켓(shaqed)”이고, “지키다”는 “쇼켓(shoqed)”입니다. 살구나무는 매화처럼 가장 먼저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리는 나무였습니다. 살구나무가 봄을 알리는 것처럼 심판이 임박했으니 잘 살펴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끓는 가마가 기울어진 것”은 그 안에 있는 것이 쏟아진다는 의미로 심판이 곧 실행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팬데믹(pandemic) 세상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과 같습니다. 시작은 코로나 바이러스이었으나 깨닫지 못하면 더 심각한 변형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무너트릴 것이라고 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가 무엇을 보느냐?”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의 귀로 듣고
믿음으로 행동하게 하소서.
♪ 찬양 /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4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66: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소위와 사상(18절)
♦ 성구 : 내가 그들의 소위(所爲)와 사상(思想)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열방(列邦)과 열족(列族)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榮光)을 볼 것이며.
이사야서 마지막 장을 읽게 됩니다.
이사야서 1~39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며 40~66장은 회복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66장은 이사야서의 축소판처럼 ‘심판과 회복’이란 말씀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1~14절은 악인과 의인에 대해, 15~24절은 심판과 회복에 대해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배교하는 악인에게는 심판이 있고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에게는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가 열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주제는 “소위(所爲)와 사상(思想)”입니다.
‘소위와 사상’이란 “하는 짓 즉 소행(所行)과 생각”을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NIV) “행동(actions)과 상상력(imaginations)” 이라고 번역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언어가 사용되고 언어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것은 언어로, 언어는 행동으로, 행동은 습관으로 습관은 인생을 만들어간다고 합니다.
사람의 욕망은 아담과 하와처럼 좀 더 높아지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욕망은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본을 보여주시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아주 작고 연약한 나라이며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약하고 작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강한 나라가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마치 자기 힘으로 강한 나라가 되었다고 교만해졌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소위이며 사상입니다.
우리도 같은 성향으로 살아갑니다.
일이 잘 되면 내가 잘해서 일이 실패하면 사람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탓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적인 일과 생각들을 다 아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자신의 보좌로 땅을 발판으로 삼으실 정도로 높고 크고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와 생각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좋다고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것이 좋은 것이므로 잘못된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려고 할 때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찾아 나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할 하나님이 지으신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는 약속을 기대하며 매 순간마다 거짓이 없는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서 팬데믹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으로 회복하는 은혜를 구하는 복된 하루가 펼쳐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참 아름다워라
https://www.youtube.com/watch?v=XMFR-8-EMj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23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65: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진리(眞理)의 하나님(16절)
♦
성구 :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自己)를 위(爲)하여 복(福)을 구(求)하는 자는 진리(眞理)의 하나님을 향(向)하여 복(福)을
구(求)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盟誓)하는 자(者)는 진리(眞理)의 하나님으로 맹세(盟誓)하리니 이는 이전(以前) 환난(患難)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진리의 하나님(the God of truth)”이란 “아멘의 하나님((the God of amen)”을 말합니다. 진리의
하나님에 아라비아 숫자 1자를 따라 난외의 주를 살펴보면 고린도후서 1:20, 요한계시록 3:14이라고 표기합니다. 난외의 주를
따라 “아멘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멘(고후 1:20b)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믿음의 결단과 고백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가리키는 아멘(계 3:14b)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예수님은 아멘으로 세상에 오셔서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하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신 하나님과 동등한 창조의 근본입니다.
셋째는 진실의 아멘(요한복음 5:24a)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의 화법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진실로 진실로”는 “아멘 아멘 레고(내가 진실하게 말한다)” 라는 표현을 번역한 것입니다.
“아멘”이란 용어가 주로 찬송가를 마칠 때, 기도를 마칠 때 또는 설교를 듣고 마음으로 감동할 때 “아멘”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아멘”을 너무 강조하여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멘”이란 “동의 한다” “그렇게 이루어 질 것은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을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찬양 / 신자되기 원합니다(518장)
https://www.youtube.com/watch?v=GllpAWnYa8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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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2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64:1∼12
♦ 묵상을 위한 주제 : 선대(善待)와 진노(震怒)(5절)
♦ 성구 : 주(主)께서 기쁘게 의(義)를 행(行)하는 자(者)와 주(主)의 길에서 주(主)를 기억(記憶)하는 자(者)를 선대(善待)하시거늘 우리가 범죄(犯罪)하므로 주(主)께서 진노(震怒)하셨사오며 이 현상(現狀)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救援)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선대(善待)”란 “친절(親切)하게 잘 대접(待接)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노(震怒)”란 “하나님이 죄(罪)를 지은 인간(人間)에 대(對)하여 노여워하고 심판(審判)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진노”를 “angry” 라고 하며, “선대”를 “help”라고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언제 “진노”하실까요?
“범죄 할 때”(5절) 진노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바람같이 몰아칩니다(6절)
하나님의 진노가 소멸시켜버립니다(7절)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선대”로 바뀔 것을 기도합니다.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십시오!”(9절)
그러면 이제부터 이렇게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의를 행하겠습니다!”(5절)
“주를 기억하겠습니다!”(5절)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7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열중하던 백성들에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깨닫게 하셨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주의 백성들을 깨우치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쌓아올린 팬데믹 고개를 넘어가면 새로운 광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거짓된 삶과 헛된 것을 기도하던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선대하심을 기다리며 사순절 제29일을 승리하는 하루가 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분명하고 정확하게 체험하는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구원으로 인도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i1UbpDjlDt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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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0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63:1∼19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는 우리 아버지(16절)
♦ 성구 : 주(主)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認定)치 아니할찌라도 여호와여 주(主)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上古)부터 주(主)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救贖者)라 하셨거늘.
But you are our Father, though Abraham does not know us or Israel acknowledge us; you, O LORD, are our Father, our Redeemer from of old is your name.
(현대인의 성경) 주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과 야곱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주는 항상 우리를 구원하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우리 아버지(Our Father)”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까요?
첫째,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말라기 2: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둘째, 하나님은 용서의 아버지(누가복음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셋째,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이라고 부릅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육체의 부모는 나를 낳으셨고 길러주시는 아버지는 어버이 수령이라고 가르치며 영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세뇌시킴으로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종교를 탄압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기독교 말살 정책을 시도합니다. 따라서 북한은 공산국가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는 세습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대를 이어가며 통치하므로 공산주의가 아니라 세습 왕조라고 하겠습니다.
역사에도 없는 정치를 시도하는 북한을 찬양하고 지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유대한민국을 이상한 나라로 세워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영의 아버지라고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분별력을 갖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바람직한 일군을 선거를 통하여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자(救贖者)가 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고 예수님의 몸과 같은 교회를 인정할 줄 아는 지도자를 선택하므로 후손들에게 자유대한민국을 유산으로 물려주어 “자유대한민국이여 영원 하라!” 이렇게 외쳐 봅시다.
♪ 찬양 / 천부여 의지 없어서
https://www.youtube.com/watch?v=AaVIJJINHV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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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9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62:1∼12
♦ 묵상을 위한 주제 : 헵시바와 쁄라(4절)
♦ 성구 :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者)라 칭(稱)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荒蕪地)라 칭(稱)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結婚)한바가 될 것임이라.
No longer will they call you Deserted, or name your land Desolate. But you will be called Hephzibah, and your land Beulah ; for the LORD will take delight in you, and your land will be married.
(현대인의 성경) 사람들이 다시는 너를 버려진 땅이나 황무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뜻으로 “헵시바”, “결혼을 했다”는 뜻으로 “쁄라”라 부를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를 기쁘게 여기실 것이며 그가 너에게 결혼한 남편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버리운 자는 “아주바(Azubah, Forsaken)”라고 합니다.
버려진 땅 황무지는 “셰마마(Shemamah, Sesolate)”라고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주바(버리운 자)”이었으며, 예루살렘은 “셰마마(버려진 땅 황무지)”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향 땅으로 돌아온 백성들을 “헵시바(Hephzibah, 나의 기쁨)”라고 부르고 예루살렘은 “쁄라(Beulah, 결혼한 여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때 먼저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창 17:5)
야곱을 이스라엘(창 32:28)
로루하마는 루하마(호 1:6, 2:1)
로암미는 암미(호 1:9, 2:1)
시몬을 게바, 베드로(마 16:18, 요 1:42)
또한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롬 8:9)
새 이름을 얻었으므로 그 이름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일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지 못할 때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디도서 1:1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
사순절 제27일째 날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이란 기념 절기가 아니라 삶을 결단하고 실천하는 행동하는 절기라고 하겠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신부들의 숫자가 증가하면 할수록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럽다고 탄식합니다. 그 이유는 정결한 신부들이 아니라 거짓 신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한 정결한 신부들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은총의 삶이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 찬양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https://www.youtube.com/watch?v=_IpTk9hOiu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61:1∼11
♦ 묵상을 위한 주제 : 구원의 옷(10절)
♦
성구 : 내가 여호와로 인(因)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靈魂)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因)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救援)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義)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新郞)이 사모(紗帽)를 쓰며 신부(新婦)가 자기(自己)
보물(寶物)로 단장(丹粧)함 같게 하셨음이라.
I delight greatly in the LORD; my soul
rejoices in my God. For he has clothed me with garments of salvation
and arrayed me in a robe of righteousness, as a bridegroom adorns his
head like a priest, and as a bride adorns herself with her jewels.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로 너가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이 즐거워하는구나. 그가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의 겉옷을 걸쳐 주시니 결혼식을 위해 단장한 신랑 신부처럼 되었구나.
“구원의 옷(garments of salvation)”이란 모든 죄과를 제하여 버린 후에 입을 수 있는 아름다운 옷을
말합니다(스가랴 3:4). 구원의 옷은 하나님의 의로운 팔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것입니다(이사야 59:16∼17).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에베소서 2:8).
구원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받은 주의 자녀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요 14:15).
둘째는 죄를 미워하고 물리치는 삶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죄의 유혹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죄의 유혹이 손짓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물리치는 것입니다(요일 3:9).
셋째는 의로운 삶
죄는 어둠을 의미하며 사랑은 빛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어둠 가운데 머물지 않고 빛 가운데 거합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은 곧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요일 2:29).
넷째는 생명의 삶
생명의 삶이란 육체적인 만족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신령한 삶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삶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요일 3:14).
어둠의 세상을 빛으로 밝히려면 구원의 옷을 입고 나가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밝은 빛으로 찾아가서 신령한 은혜의 삶을 보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신랑 되신 예수께서
https://www.youtube.com/watch?v=2mlMA_YAis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7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60: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빛을 발하라(1절)
♦ 성구 :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Arise,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rises upon you.
(현대인의 성경)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태양처럼 빛나라.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비치고 있다.
이사야 5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60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그 빛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을 말씀합니다.
빛을 발하는 것을 “발광체(發光體)”라고 하며, 자연계에서 발광체는 “태양(太陽)”을 말합니다. 빛을 발할 수 없는 것을 “비발광체(非發光體)”라고 하며 “달”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달과 같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빛을 발하는 것처럼 구속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빛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진리의 빛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빛을 발할 수 없는 존재가 빛을 발하려면 먼저 빛을 흡수할 수 있는 존재로 다듬어지기 위하여 감추어진 죄악을 모두 쏟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인에게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시편 90:8)
빛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가 드러나면 그 죄를 뉘우치므로 하나님을 아는 일에 열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세아 6:3)
여호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요한일서 2:9∼10)
형제를 사랑하는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출 때에 드디어 빛 가운데 행한다고 말합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7)
성경은 죄에서 깨끗하게 하셨을 때를 다양한 모습으로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아들을 대신할 예비한 제물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타지 않는 불로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에 가득찬 구름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았습니다.
에스겔은 구름 속에서 빛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오늘 빛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세상의 빛으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이사야 60:21∼22)
♪ 찬양 / 사랑하는 주님 앞에
https://www.youtube.com/watch?v=Q9mUD99NSJ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59: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분리(分離)(2절)
♦ 성구 : 오직 너희 죄악(罪惡)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罪)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But your iniquities have separated you from your God; your sins have hidden his face from you, so that he will not hear.
(현대인의 성경) 너희 죄가 너희를 하나님과 분리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가 너희를 외면하고 너희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 것이다.
태양이 하늘에서 밝게 빛나고 있을 깨 갑자기 검은 먹구름이 몰려와 태양을 덮어버리면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죄는
거룩하고 맑은 하나님을 가려 마치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죄는 분리시킨다고 말합니다.
"허물 죄(罪)"라는 한자를 분석하면 "넉 사(四)"와 "아닐 비(非)"가 합성된 것으로 "네 가지 아닌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네 가지 아닌 것들을 "불법(不法), 불신(不信), 불의(不義), 불선(不善)" 이라고 합니다.
죄는 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요한일서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죄는 의롭지 않은 것입니다(요한일서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
죄를 선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죄는 구세주가 되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죄(罪)"란 한자는 서로 마주보며 사랑하던 두 사람이 미워하면서 등을 돌린 상태를 형상화한 모습에서 유래한 문자입니다.
가볍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풍토에서 진득하게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죄가 들어와서 사랑하는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합니다.
죄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 구원의 은혜를 흔들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볼 때에 먼저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나도 모르게 숨어든 죄를 찾아내어 죄를 털어버리면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죄의 네 가지 더러운 성질을 은밀하게 드러냅니다.
첫째는 고착성(固着性)
죄가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지독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괴롭힐 것입니다.
둘째는 발육성(發育性)
죄는 황무지와 같은 땅에서도 마치 잡초와 같이 잘 자라납니다. 마지막에는 욕망의 끝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셋째는 전염성(傳染性)
죄는 누구에게나 쉽게 옮겨갑니다. 누구나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죄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넷째는 파멸성(破滅性)
죄의 결과는 완전히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결과를 영원한 죽음이라고 합니다.
한문자 사자성어에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은 “검은 것에 가까이 가면 나도 검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날마다 죄를 씻어버림으로 죄가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묵은 죄가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서서히 빼앗아 절망과 타락의 골짜기로 데려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대적하는 성령의 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에 붙잡혀 살아가므로 죄와 싸워 당당하게 이길 수 있는 성령과 말씀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https://www.youtube.com/watch?v=xT1HDblQkp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5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58:1∼14
♦ 묵상을 위한 주제 : 금식(禁食)(6절)
♦ 성구 : 나의 기뻐하는 금식(禁食)은 흉악(凶惡)의 결박(結縛)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壓制) 당하는 자(者)를 자유(自由)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Is
not this the kind of fasting I have chosen: to loose the chains of
injustice and untie the cords of the yoke, to set the oppressed free and
break every yoke?
(현대인의 성경)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압박의 사슬을 풀어 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며 억압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위한 4대 원리
첫째, 구제(救濟) 마태복음 6:2-4
대인관계(對人關係)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
둘째, 기도(祈禱) 마태복음 6:5-15
대신관계(對神關係)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마 6:6).
셋째, 금식(禁食) 마태복음 6:16-18
대아관계(對我關係)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마 6:17)
넷째, 보물(寶物) 마태복음 6:19-34
대물관계(對物關係)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 21)
이사야 58장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禁食)"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사야 58: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그리스도인에게 금식은 단순히 음식 섭취를 중단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억제하는 상징을 통해
자아를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께 나 자신의 생명과 삶을 온전히 맡기겠다는 표현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밥은 먹지 않지만 금식의 효과에 대하여 의심하고
오락을 찾아 즐기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하겠느냐.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40일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 놓은 39일째 되는 날 젊은 제자 하나가 맛있는 스프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 금식을 하던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젊은 제자를 노려보았습니다.
그 눈길 속에는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애처로움이 아니라 분노에 찬 정죄의 따가운 시선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제자들은 유혹에 넘어간 젊은 제자를 엄하게 꾸짖어주기를 바라며 스승, 프란체스코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는 말없이 수저를 집어 들더니 젊은 제자가 먹었던 스프를 천천히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경악의 눈길로 스승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은 모두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를 참으며 사랑하며 아끼자는
것입니다.
저 젊은이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스프를 떠먹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를 정죄하고 배척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굶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실컷 먹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프란체스코의 금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사순절을
맞아 프란체스코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들어가 금식하기로 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빵 두 덩이를 가지고 섬으로 건너갔습니다.
사순절 기간이 끝나 다시 배를 타고 갔을 때 프란체스코는 한 덩이 반을 들고 있었습니다.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잊지 않기 위해 금식 기간 동안 빵 반쪽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가 허기를 참지 못해 빵 반쪽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가 허문 것은 자신의 완벽함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잘못 할 수 있는 인간임을 잊지 않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랑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인격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때로 종교에 실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떠실는지요?
프란체스코의 빵 반쪽을
기억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의 완벽함을 버리고,
다른 이의 영혼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경건의 폭력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교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곳이 될 것입니다.
신대원 재학 시절 몇몇 학우들이 40일 금식을 하러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떼 학급의 대표로 있던 학우가 그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권면했다고 합니다.
40일에서 하나 부족한 39일에 금식을 마쳐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40일 금식을 하였다고 자랑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금식한 날자보다 하루 부족하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금식에 관한 이야기
신대원 시절 성령론을 강의하던 강사 목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여름 기도원을 찾아갔는데 마침 기도원 입구 작은 원두막에 참외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참외를 하나 사서 먹고 기도원으로 가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마침 몇 사람이 기도원에서 나오며 참외를 구하려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이 참외 얼마여?" 하고 물었을 때 참외를 팔던 주인이 "예, 한 개 얼마"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왜 이렇게 비싸요? 시장에 가면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데....." 하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함께 동행하던 한 사람이 "여보시오, 이 사람이 누군줄 아시요?" "이 사람이 40일 금식을 마치고 나온 사람이오" 하더랍니다.
그러자 40일 금식을 했다는 사람이 "참외가 너무 비싸지 않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40일 금식한 후에도 참외 값 비싸다며 불평하는 그 모습에 실망하며 다짐하기를 금식 한 후에도 자기 욕망 절제하지 못하는데 만일 금식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욕망에 붙잡혀 있을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금식 이야기
그런데 어느 날 모두가 조용히 잠들었을 때
누군가 한 형제가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하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형제들이 모두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프란시스가 등불을 켜들고 “지금 죽겠다고 한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형제 중 하나가 침상 위에서 매우 괴로운 소리로 “제가 그랬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프란시스가 왜 그렇게 괴로운지를 물었더니 그는 배가 고파 죽을 것같다고 했습니다.
이 형제는 며칠 동안 금식을 하였던 것입니다.
프란시스는 곧 죽을 끓여다가 금식한 형제와 다른 형제들에게도 먹게 했습니다.
금식한 형제만 먹으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프란시스는 형제들을 향하여 “형제들이여! 고행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신체에 적당하게 하지 않으면 도리어 해롭습니다.
하나님은 회개를 기뻐하시나 무모한 희생은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사야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禁食)은 흉악(凶惡)의 결박(結縛)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壓制) 당하는 자(者)를 자유(自由)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떠돌이를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포를 도와주는 것
“금식”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
예수님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금식하는 것을 자랑하려고 일부러 얼굴을 흉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여 말씀하기를 금식하는 표시를 나타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자기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드러내는 것을 금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란 말씀에서 기뻐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바훌" 이라고 합니다.
"바훌"이란 "시험하는, 선택하는, 인정하는" 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는"이 아니라 "인정하는" 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금식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은 애급에서 430년 노예생활을 경험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벨론이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 또다시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노예가 되어 500년을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430년의 경험을 근거로 70년을 노예생활을 하면서 깨닫는 것은 금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0월 금식, 4월 금식, 5월 금식, 7월에 정기 금식일로 정하고 금식을 했습니다.
이렇게 70년 동안 금식을 하면서 금식의 의미가 이상하게 변했습니다.
단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선지자 이사야는 금식의 의미를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사야 58:3-6
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금식을 해야 되는지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스가랴 7:1-6).
"다리오 왕 사 년 구 곧 기슬래 월 사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 월과 칠 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스가랴 8: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금식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시대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다시
이사야서로 돌아가면, 그런 형식적인 밥을 굶는 금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무겁게 맨 멍에를
벗겨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금식이라고 한 것이다.
노예로 끌려와 압제 당하는 자의 멍에를 끌러주고, 어려운 사람,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을 보면 동정심을 발하여 도와주고, 어려운 형제 자매가 찾아오면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밥을 굶는 금식을 기뻐하는 분이 아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는 바로 이사야 58장에서 언급한 무리들, 즉 힘없고 연약한 자들, 배고픔에 주린 자들, 집 없이 유리하는
자들, 입을 옷이 없이 추위에 떠는 자들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시면서 그런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예수께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는가?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헌금의 일부를
이런 자들에게 돌려야 한다. 그런 선한 삶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소리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동네 방네 나팔을 부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그렇게 삶을 사는 자들은 그날 주님의 오른 편에 설 하나님의 양들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선교와 구제이다.
땅끝까지 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지상명령의 준행과, 어려운 이웃에게(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구제가 바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양들이 해야 할 일이다.
아합은 나봇이라는 농부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서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아합에게 저주를 선언하였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재산을 빼앗기기까지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열왕기상 21:19)
아합은 예언자의 신탁을 받고, 무서워서 덜덜 떨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합은 금식하며 옷을 찢고 맨몸에 굵은 베옷을 걸치고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아합은 누울 때에도 굵은 베 옷을 입은 채로 눕고, 또 일어나서 거닐 때에도 슬픔에 잠겨 힘없이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그의 금식기도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드리는 회개기도에 대하여 마음을 돌이키시고 징벌을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격의 하나님은 아합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미담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아합처럼 금식기도를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백성들의 금식기도는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금식과 기도의 진정성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베옷을 입고 거리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백성들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급기야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금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용서를 강요하는 주술이 되고 말았습니다.
금식과 기도가 너무 형식적이라 잘못되었다고 하면,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주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겠습니까?”라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응답이 보장되어야 금식을 하겠으며, 사람들이 인정해 주어야 기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에 의하면, 그들은 한쪽에서는 베옷을 입고 금식기도를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향락을 즐기고, 일꾼들을 혹사시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금식하면서 이웃과 주먹질을 하고,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소리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사야는 진정성이 없는 그런 형식적인 금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가식적인 금식은 당장 집어치우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마도 처음에는 아합 왕처럼 눈물의 금식기도를 통하여 지은 죄를 용서받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생한 리얼리티는 점차 추상적이고 형식적으로 바뀌고 말았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은 점차 관념적인 구호로 변질되고, 사람들은 믿거나 말거나 때가 되면 조상의 예를 따라 지극히 관습적인 금식과 기도를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날마다 우리와 대면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신앙생활의 대전제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신의 죽음을 운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배행위마저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고, 인격의 하나님마저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박제화된 주술적 도구로 만들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고 또 외칩니다.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겠느냐? 이것이 어찌 사람이 통회하며 괴로워하는 날이 되겠느냐?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는다고 해서 어찌 이것을 금식이라고 하겠으며, 주님께서 너희를 기쁘게 반기실 날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5-6)”
죄의 현실 앞에서도 통회하고 괴로워하기를 기피하고, 오히려 위선적인 태도로 하나님께 용서와 사랑을 강요하는 인간들을 향하여 예언자 이사야는 진정한 금식을 선포합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6-7)”
예언자 이사야는 금식이라는 신앙행위가 위선적이고 형식화된 것을 통탄하며 금식의 참 뜻을 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관념적 구호가 아니라 행위적 실천이라는 것이며, 주술적 기도가 아니라 고백적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개인적 에고이즘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적 실천행위라는 것입니다.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금식의 참 의미라는 것이며, 기도를 통하여 성취할 수 있는 신앙적 가치이라는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자신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금식의 실천적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자 이사야의 해석은 얼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신앙인들의 금식기도가 낮은 차원의 소박한 사회적 구제로 연결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금식이 부당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과 같은 사회적 구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인들의 금식기도가 사회적 문제를 푸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신앙인들의 진정한 금식행위는 분명히 오늘의 사회적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회적 정의는 우리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는 곳에서 시작되고,
경제적 정의는 우리 자신의 부를 나누는 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금식과 기도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땅이 남과 북으로 분단된 후에 남한에는 먹을 것이 너무 많습니다.
북한에는 먹을 것이 너무 없습니다.
심지어 중국에 불법적인 북한 동포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021년 부활주일을 팬데믹이란 사슬에 묶여 맞이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나의 이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월 29일(월)부터 4월 3일(토)까지 고난주간(苦難週間)으로 지킵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하루에 한 끼씩 금식하며 금식한 한 끼 식사에 해당하는 금액을 결정하고 헌금으로 모아 북한 사역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합니다.
저희들이 매월 후원하는 “유진벨 재단”과 “모퉁이돌 선교회”를 후원하는 사역에 조금 더 보탬이 되려고 합니다.
어서
속히 중국과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북한 지역이 공산화되므로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성도들에 의해서 한국교회는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중국과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자유를 얻어
안일한 신앙생활에 만족하는 남한교회와 성도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어 자유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예수 한국, 복음 통일을 이루어 자유대한민국이 세게 선교의 전진 기지로 쓰임 받는 그 날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합시다.
♪ 찬양 / 사랑하는 주님 앞에
https://www.youtube.com/watch?v=Q9mUD99NSJ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월 |
일 |
요일 |
오늘 읽을 말씀 |
묵상 주제 |
3 |
15 |
월 |
이사야 58:1∼14 |
금식(禁食)(6절) |
3 |
16 |
화 |
이사야 59:1∼21 |
분리(分離)(2절) |
3 |
17 |
수 |
이사야 60:1∼22 |
빛을 발하라(1절) |
3 |
18 |
목 |
이사야 61:1∼11 |
구원의 옷(10절) |
3 |
19 |
금 |
이사야 62:1∼12 |
헵시바와 쁄라(4절) |
3 |
20 |
토 |
이사야 63:1∼21 |
주는 우리 아버지(16절) |
3 |
21 |
주일 |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57: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통회하는 자의 마음(15절)
♦ 성구 :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痛悔)하고 마음이 겸손(謙遜)한 자(者)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謙遜)한 자(者)의 영(靈)을 소성(蘇醒)케 하며 통회(痛悔)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蘇醒)케 하려 함이라.
I live in a high and holy place, but also with him who is contrite and lowly in spirit, to revive the spirit of the lowly and to revive the heart of the contrite.
오늘은 사순절(四旬節, Lent) 제22일째 날입니다.
이사야 57장은 “우상숭배에 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성행(盛行)하는 것은 공의(公義)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義人)의 죽음에 관심(觀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의(義)로운 사람이 죽었을 때는 편히 쉼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비인도적 행위를 일삼던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신 후에 56장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학대와 속임수 등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하였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무시와 불경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나라가 망(亡)할 정도로 부패(腐敗)할 때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찾습니다. 주를 믿는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으로 선택(選擇) 받으려면 통회자복(痛悔自服)하므로 나라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나라 없는 교회(敎會)는 없습니다.
공의(公義)가 실현(實現)되는 나라에 거룩한 교회(敎會)가 세워져서 소금과 빛으로 세상(世上)을 밝히며 부패(腐敗)하며 타락(墮落)하는 그곳에 진리(眞理)가 세워지기를 소망(所望)하며 기도(祈禱)를 멈추지 맙시다.
어둠의 땅에
밝은 빛 비추어
진리의 길 따라
믿음의 행진가를 부르게 하소서
♪ 찬양 /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https://www.youtube.com/watch?v=XbOKfMZYpA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3월 12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이사야 56:1∼12
♦ 묵상을 위한 주제 : 만민의 기도하는 집(7절)
♦ 성구 :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My hous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
오늘은 사순절(四旬節, Lent) 제21일째 날입니다.
이사야 56장은 “하나님과 연합(聯合)한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54장은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헤세드)를 말씀합니다. 이사야 55장은 오늘 여호와께 돌아와야 할 은혜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사야 56장은 여호와께 연합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방인도 하나님과 연합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3절).
하나님과 연합한 백성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첫째는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6절)
둘째는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는 백성(6절)
셋째는 언약을 지키는 백성(6절)
넷째는 기도하는 집을 찾는 백성(7절)
기도의 자리를 찾으셨습니까?
그 자리를 굳게 지켜내시기 바랍니다.
아직 기도의 자를 찾지 못하셨다면 사순절 기간에 그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내 기도의 자리에 이미 약속된 하늘의 은혜와 은사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들을 사용하여 팬데믹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내 기도하는 이 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R_T2s440Fa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남은 하루 하루가 마치 가장 소중한 날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월 |
일 |
요일 |
오늘 읽을 말씀 |
묵상 주제 |
12 |
1 |
화 |
에스겔 19:1∼14 |
애가(1절) |
12 |
2 |
수 |
에스겔 20:1∼26 |
안식일 표징(12절) |
12 |
3 |
목 |
에스겔 20:27∼49 |
푸른 나무와 마른나무(47절) |
12 |
4 |
금 |
에스겔 21:1∼32 |
하나님의 칼(3절) |
12 |
5 |
토 |
에스겔 22:1∼31 |
찌끼(18절) |
12 |
6 |
주일 |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 12월 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19:1∼14
♦ 묵상을 위한 주제 : 애가(1절)
♦ 성구 :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애가(哀歌, a lament)”의 주제는 “방백들을 위한 슬픈 노래”입니다.
방백이란 유다 왕국 말기의 왕들을 말합니다(17대, 여호아하스. 18대 여호야김. 19대 여호야긴. 20대 시드기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다 말기 왕조들의 계보를 소개합니다.
16대 요시야 왕은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 여호야 김(18대)(11년 통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17대)(3개월 통치)
셋째 아들 시드기야(20대)(11년 통치)
“여호야긴(19대, 3개월 통치)”은 “여호야김”의 아들입니다.
계보를 살펴보면 “요시야”의 대를 이어 첫 번째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워야 했지만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유다 나라”는 “암사자”로 비유하고 “왕들”은 “사자 새끼”로 비유했습니다.
애급 땅으로 끌려간 젊은 사자는 “여호아하스”를 말합니다.
암사자가 두 번째로 키운 젊은 사자는 “여호야김”을 말합니다.
“그의 궁실들을 헐었다”는 것은 “그의 과부들을 알았다”는 뜻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그의 과부들을 학대하였다”는 것이며(예레미야 22:17),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바벨론 왕에게 데려가서 옥에 가두었습니다(역대하 36:6).
“네 피의 어미”라는 말은 “네가 피를 이어받은 네 어미”라든지 또는 “네가 피투성이었을 때에 네 어미”라는 뜻입니다(에스겔 16:6). 유다 민족은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열매를 많이 맺고 가지가 무성하고 튼튼하였으나 굵은 가지들 중 뛰어난 한 가지가 꺾이고 말라 불에 탄 것은 “여호야긴”을 말합니다(열왕기하 24:15).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으나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결국 망하였고 그 후에는 유다에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가지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방백들을 위한 애가의 내용입니다.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과 국민성이 필요합니다. 만일 이러한 요소를 갖추지 못한다면 이웃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나라를 지킬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말기의 왕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웃 나라들의 도움을 기대했기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서로 동맹을 맺은 나라들은 그 약속을 잘 지켜야만 나라를 든든하게 세워갈 수 있습니다. 만일 동맹을 쉽게 포기하거나 무시한다면 그 나라의 운명은 마치 유다의 말기와 같은 슬픈 노래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잘못된 생각을 품게 되면 그 나라는 도처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14:34).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位)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잠언 20:28).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인품의 지도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찬양 / 어지러운 세상 중에
https://www.youtube.com/watch?v=kfuSMJRMLz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네 어미 암사자(2절) : 남 유다 왕국
2. 그 새끼 하나(3절) :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아하스
* 참고 성구
1. 예레미야 22:17,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남과 무죄한 피를 형통하였으니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라.
2. 역대하 36: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 유다 마지막 왕조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열왕기하 22장부터 25장 그리고 역대하 34장부터 36장까지 살펴보면 참고가 될 것입니다.
♦ 12월 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0: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안식일 표징(12절)
♦ 성구 :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하여 내가 내 안식일(安息日)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表徵)을 삼았었노라.
“안식일 표징(安息日 表徵, sign of the Sabbath)”
탈무드에 의하면 “유대인이 안식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준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약속을 위한 표징입니다.
표징을 무시하면 안식을 지키는 것도 무의미하게 생각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세속의 길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급과 광야에서 표징을 무시했던 백성들을 바라보며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른 열방들과 구별하는 기준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며, 영원한 약속의 증표라고 하겠습니다(출애굽기 31:13, 16).
안식일은 시간에 대한 십일조입니다.
물질의 십일조는 1/10 입니다.
시간의 십일조는 1/7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을 더 많이 바치려고 하나님께 바쳐야 할 시간을 잘라 먹는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계기가 됩니다.
거룩한 백성의 삶은 “우상(偶像)”을 버려야 합니다.
거룩한 백성의 삶은 “하나님의 율례(律例)”를 지켜야 합니다.
팬데믹 시대에 비대면 온라인 예배가 계속되면서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응답이므로 감사와 고백과 찬송과 헌신 그리고 결단을 위한 성령과 진실의 임재를 확인해야 합니다.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합니다(에베소서 5:5)
탐심은 우상숭배 입니다(골로새서 3:5)
우상은 부어 만든 것으로 생기가 없습니다(예레미야 10:14, 51:17)
비대면 예배가 대면 예배보다 더 은혜롭게 내 마음과 삶을 흔들어 주님의 말씀위에 굳게 세워 질 때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될 기쁜 날이 펼쳐질 것입니다.
비대면 예배를 대면처럼 회복합시다!
비대면 예배를 가정 교회로 회복합시다!
비대면 예배를 개인 경건의 성숙한 기회로 회복합시다!
♪ 찬양 / 즐겁게 안식할 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1. 제칠년(1절) :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끌려온 지 제7년 BC 519년을 가리킨다. 이 때는 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BC 589∼586) 망하기 약 5년 전이었다.
2. 거룩하게(코데쉬)(12절) : “성결하다” “지정하다” “분리하다”는 뜻으로 속된 것과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성결을 보여주는 것이다.
* 참고 성구
1. 출애굽기 31:13.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0:27∼49
♦ 묵상을 위한 주제 : 푸른 나무와 마른나무(47절)
♦ 성구 : 남방(南方) 삼림(森林)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主)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의 가운데 불을 일으켜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멸(滅)하리니 맹렬(猛烈)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南)에서 북(北)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푸른 나무는 의로운 사람(義人)을 말합니다.
마른 나무는 악인(惡人)을 말합니다(누가복음 23:31).
성경은 “악인과 의인 모두 부활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사도행전 24:15). 이 말씀은 의인과 강인 모두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의인(義人)”이란 한자에서 “의(義)”를 분석하면 “양(羊)”과 “아(我)”자가 합성된 문자로 마치 “내가 양과 같은 존재”가 될 때 옳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악인(惡人)”이란 한자에서 “악(惡)”을 분석하면 “작은 아(亞)”와 “마음(心)”이 합성된 문자로 “마음이 작은 존재”를 말합니다.
마음이 작다는 것은 생각이 좁다 또는 생각이 작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작으면 작은 행동 즉 속이 좁은 행동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애급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된 히브리 민족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서 하나님 이외의 것에 눈을 돌렸고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격노케 하는 제물”(28절)
“가증한 것을 좇아 행함”(30절)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라고 책망합니다(44절).
만일 이러한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불(전쟁)”을 일으켜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합니다(48절).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전염병이 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은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한 번만 용서하시고 다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 속된 세상의 헛되고 헛된 것들을 구하거나 붙잡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다시는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이 이 세상을 흔들지 못하도록 지켜달라는 회개와 회복을 위한 영적 운동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구주여 크신 인애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바마(29절) : 산당에 대한 히브리어 음역으로 “너희가 다니는 장소가 무슨 뜻이냐” 라는 뜻.
2. 맹렬한 불꽃(47절) : 바벨론의 3차 침공(BC 589)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3. 남에서 북까지(47절) : 분열왕국 이전의 이스라엘 경계선으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를 말한다(사무엘상 3:20).
* 참고 성구
1.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2.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3. 사무엘상 3: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1:1∼32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칼(3절)
♦ 성구 :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對敵)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義人)과 악인(惡人)을 네게서 끊으리라.
본문에서 유난히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칼”입니다.
칼은 두 가지 용도로 사용합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주방에서 수술실에서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불의한 목적”을 위해서는 생명을 위협하고 건강을 괴롭히는 도구가 됩니다.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본문에서 “칼”이란 “심판(審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칼(a knife of God)”이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겠습니다.
심판이란 마지막 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심판을 받습니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는 속담처럼 자기 양심에서 어긋난 행동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그것이 곧 심판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세워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계속적으로 받아야만 이 땅위에서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대국의 도움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약점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쉽게 나타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얼른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당장 붙잡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것에 열광합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바라는 것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다시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영적 세계를 보려면 “넓적다리를 쳐야 한다.”고 합니다(12절).
넓적다리는 “극한 슬픔과 탄식”을 표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예레미야 31:19).
세상을 뒤흔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로 인하여 먼저 믿음의 사람들이 깨달아야 하겠지요. 이미 세상은 사탄의 권세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그 가운데서 죄악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하여 날마다 신령한 은혜를 구하며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경은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디모데전서 4:5).
2020년 결산의 달 12월을 지내며 모두 함께 말씀과 기도의 사람으로 온전히 회복하여 2021년을 준비하며 기다려 봅시다.
♪ 찬양 / 나 행한 것 죄 뿐이니
https://www.youtube.com/watch?v=YvQL0rToMi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성소를 향하여(2절) : 예루살렘을 향하여 즉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는 것.
2. 내 칼(3절) : 하나님의 심판으로 구체적으로 BC 612년에 앗수르를 멸망시켰고, BC 605년에는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급을 격퇴하여 팔레스틴의 지배권을 장악한 바벨론을 말한다.
3. 내 아들의 홀(10절) : 아들은 “시드기야” 홀은 “왕권”
4. 모든 나무(10절) : 이스라엘 주위의 국가들 특히 본문에서는 바벨론을 말한다.
5. 대인을 증상케 하는(14절) : 큰 학살을 위한(for the great slaughter), 사람을 마구 찌름(공동번역)
* 참고 성구
1. 예레미야 31:19,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2. 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 12월 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2: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찌끼(18절)
♦ 성구 :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끼가 되었나니 곧 풀무 가운데 있는 놋이나 상납이나 철이나 납이며 은의 찌끼로다.
“찌끼(dross)”란 물건을 사용한 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으로 “쓰레기”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놋과 상납과 철과 납과 은의 찌끼라고 합니다.
“놋”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신명기 33:25, 이사야 48:4),
“상납”은 겉만 번듯한 의식적인 모습,
“철”은 잔인성,
“납”은 나약하고 감각이 둔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찌끼가 된 것은 주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따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이 곧 찌끼가 된 것입니다.
찌끼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첫째는 선지자들의 배역함(25절)과 둘째는 제사장들이 율법을 범함이었다고 합니다(26절). 배역하고 율법을 범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말하지 않은 것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거짓 증거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28절).
진리를 왜곡(歪曲)하는 행위가 성행하는 사회는 거짓으로 욕망을 채우려는 것으로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거짓과 술수로 자기 욕망과 목적을 성취하려는 검은 손들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이며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속히 이런 더러운 음모를 밝혀내고 드러낸 후에 다시는 거짓과 부정한 방법이 없는 공의가 실현되는 밝은 세상이 도래하기를 소망합니다.
바이러스가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때 거짓과 술수가 세상을 오염시킬 수 없도록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거짓이 많은 국민으로 망하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으며, 거짓이 많은 채 부흥한 국민이 어디 있는가?” (도산 안창호)
♪ 찬양 /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UxMELqTSI4A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피를 흘리고(9절) : 재판정에서 위증하므로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
2. 방백들(사레이하)(27절) : “지배자”라는 뜻으로 귀인들과 귀족들을 가리킨다.
3. 회를 칠하고(28절) : 집의 벽이나 무덤 안에 미관과 습기 방비를 위해서 칠하는 것으로 좋지 못한 것을 은폐시킨다는 의미.
* 참고 성구
1. 신명기 33: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2. 이사야 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월 |
일 |
요일 |
오늘 읽을 말씀 |
묵상 주제 |
12 |
7 |
월 |
에스겔 23:1∼24 |
두 여인(2절) |
12 |
8 |
화 |
에스겔 23:25∼49 |
경성하여(48절) |
12 |
9 |
수 |
에스겔 24:1∼27 |
한 가마를 걸라(3절) |
12 |
10 |
목 |
에스겔 25:1∼17 |
분노의 책벌(17절) |
12 |
11 |
금 |
에스겔 26:1∼21 |
말간 반석(14절) |
12 |
12 |
토 |
에스겔 27:1∼36 |
두로를 위한 애가(2절) |
12 |
13 |
주일 |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 12월 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3: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두 여인(2절)
♦ 성구 :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미의 딸이라.
에스겔 23장은 “행음한 두 여자에 대한 교훈”입니다.
1∼24절, 오홀라(사마리아)와 오홀리바(예루살렘)의 행음
25∼49절, 행음에 대한 형벌
오늘은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홀라”는 “그녀의 장막” 이란 뜻으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은 정권 유지를 위해 “벧엘”에 산당을 짓고 금송아지 숭배를 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붙인 명칭이라고 추정합니다.
“오홀리바”는 “나의 장막이 그녀의 속에 있다”는 뜻이며, 남 왕국 유다의 예루살렘 성읍 안에 나의 성소가 있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두 여인이란 “분열왕국 시대(BC 930∼586)”의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을 말합니다(열왕기상 11:43, 12:1∼20). 유다와 이스라엘은 “한 어미의 딸”(2절) 즉 “한 민족” 이란 뜻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서로 다른 나라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솔로몬의 학정과 열 지파의 반란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분단 된 국가는 “독일” “예멘” “베트남” “한국”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나라는 유일하게 한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태로 남한(자유 대한민국)과 북한(조선 인민민주의 공화국) 뿐입니다.
분단된 이후 국가 경제를 비교하면 남한은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지만 북한은 빈곤 국가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자유와 부자유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체재를 좋아하며 동경하는 잘못된 사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서 자유를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며 자유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확실하게 찾아야 하겠습니다.
대한제국 시절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역사학자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는 그의 저서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서 한국인들의 유교와 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유교가 신비주의적인 측면이 과도하게 결여되어 있는 반면, 불교는 신비주의적인 측면이 너무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양측 모두를 명목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유교든 불교든 자신의 한 부분으로 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유교의 과도한 현세주의, 명예추구 성격과 불교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성격이 상충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한국인의 정신문화 내부에는 이 둘이 충돌하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인 중에서 온전한 불교도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날카롭게 관찰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유교의 가르침도 나름의 높은 도덕적 기준과 사상적 깊이를 갖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다른 종교를 믿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교 사상의 현세주의적 성격은 또 다른 종교와 충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내면적 세계는 오랫동안 지속된 무교(巫敎)와 불교(佛敎) 그리고 유교(儒敎)의 전통에 기독교(基督敎)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복합적인 요소가 한국 교회의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성경적인 믿음으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적 믿음이란 “오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복음은 핵심은 “십⋅부⋅재(十復再)”라고 합니다.
“십자가(十字架)” Jesus Cross
“부활(復活)” the resurrection of Jesus
“재림(再臨)”the Second Coming of Jesus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거리를 가장 가깝게 회복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찬양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3:25∼49
♦ 묵상을 위한 주제 : 경성(警醒)(48절)
♦ 성구 : 이와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경성하여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경성(警醒)”이란 “정신을 차려 깨닫게 한다.” 라는 한문자로 “경계할 경(警)” “술깰 성(醒)”이란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warning”이라고 하였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경고(警告)” 라고 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偶像)을 숭배한 죄(罪) 때문에 하나님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한 투기(妬忌)를 발하여 코와 귀를 깎아 버렸다고 합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포로들을 학대하는 방법으로 코와 귀를 깎거나 두 눈을 뽑았다고 합니다(열왕기하 25:7). 심지어 외교 관계와 정치적 동맹을 맺지 못하도록 눈을 들지도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27절).
우상을 숭배한 죄로 인하여 두 나라가 무너졌다는 것은 다시는 이러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와 같습니다.
국민소득이 2만 불 이상이 될 때 교회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물질 중심으로 변하기 쉽다고 합니다.
복음이 전래되고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최고의 교회들을 세웠으며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했던 영광을 얼룩진 그림자로 남길 것이 아닙니다.
이제 다시 부흥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려면 기복주의와 이기주의와 같은 신앙을 버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십자가 중심의 신앙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 찬양 /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벌거벗겨져 적신으로(29절) : 바벨론의 침략으로(BC 589) 유다가 패망할 것을 암시.
2. 그의 잔을 네 손에(31절) : 잔(고스)은 분깃이라는 뜻. 본문에서는 “벌(징벌)”이란 의미로 31절부터 34절까지 5회 사용되었다.
* 참고 성구
1. 열왕기하 25:7,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
♦ 12월 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4: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한 가마를 걸라(3절)
♦ 성구 : 너는 이 패역(悖逆)한 족속(族屬)에게 비유(比喩)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한 가마를 걸라.
“한 가마를 걸라(Put on the cooking pot)”는 말씀은 “유다를 향한 바벨론의 공격이시작 될 것으로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때는 시드기야 왕 9년 10월 10일로 예루살렘 성읍이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포위된 날입니다(BC 588년 1월 15일).
가마에 대한 관주(貫珠)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에스겔 11:3, 7, 11).
음란죄(淫亂罪)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영적인 음란죄
영적인 음란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이외에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육적인 음란죄
육적인 음란죄는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부부생활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다른 파트너를 찾아 육체적 쾌락을 즐기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음욕(淫慾)“이란 적극적인 음란죄를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淫慾)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음욕을 다스릴 수 있는 말씀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잠언 6:25, 전도서 9:9).
로마가 멸망한 원인을 다섯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약한 군사력
둘째는 귀족과 관료의 부패
셋째는 급격한 기후 변화(농작물 감소)
넷째는 상수도 시설 발달(납 중독, 통풍의 원인)
다섯째는 기독교의 특권
기독교의 생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건축물을 자랑하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섯 가지 이외에 “성적 타락”을 멸망의 원인이라고도 합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게 된 것도 당시 상류층의 자녀들이 같은 계급에서 배우자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기독교인 중에서 순결한 처녀들을 찾게 된 결과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어지럽게 할 때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회와 성도들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어둔 밤 쉬되리니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핍근(逼近, 사마크)하였느니라(2절) : “야윈” “결핍된” “흉작인” 영양분이 없고 먹지 못해서 기름기가 없이 바싹 마른 상태.
2. 말간(체직)(8절) : “높은(top of, KJV)” “눈에 잘 띄는” “노출된(bare, RSV)”
3. 나무 무더기를 크게 하리라(9절) : 바벨론의 군대를 더 보강시켜 예루살렘을 공격하겠다는 표현.
4.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어지지 아니하며(12절) : 예루살렘 거민을 깨끗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정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 더러움을 스스로 제거하여 회개하려는 노력이 없음을 말한다.
5. 너의 더러운 중에 음란이 하나이라(13절) : 제일 더러운 것이 음란(淫亂)이다.
6. 자녀를 제하는 날(25절) :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하는 날(BC 586년).
* 참고 성구
1. 에스겔 11:3,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2. 에스겔 11: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성읍 중에서 너희가 살륙한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려니와 너희는 그 가운데서 끌려 나오리라.
3. 에스겔 11:11,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국문하리니.
4. 잠언 6:25,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5. 전도서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 12월 1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5: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분노(憤怒)의 책벌(責罰)(17절)
♦ 성구 : 분노의 책벌로 내 원수를 그들에게 크게 갚으리라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은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니라.
“분노의 책벌(Punish of wrath)”
에스겔 25장은 암몬(2∼7절)과 모압(8∼14절) 그리고 블레셋(15∼17절)에 관한 책벌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할 때 이웃 나라들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핍박하거나 무너트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핍박한 나라는 반드시 다른 나라에 의해서 핍박을 받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람”을 깨닫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백성들이 죄를 범하거나 잘못된 길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바른 길을 찾게 하고 죄악 된 자리에서 떠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을 바로 세우려고 사용한 이웃 나라에 대해서 다른 나라를 통하여 징계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2:28)
어떤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칠 것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방향으로 삶을 돌이켜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면 내게 닥쳐왔던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할 때 세상이 그와 같은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한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이 그러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대적한다면 그 사회는 불의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늘은 “하누카(Hanukkah. 히브리어: חנוכה)”라는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하누카”란 “봉헌”이란 뜻으로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서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기원전 164년 “마카베오 혁명”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에게 다시 봉헌하였다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마카베오 혁명에 대해서는 “외경 마카베오 상, 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이라고 하였으며(10:22), “메노라”는 “하누카”를 지킬 때 사용하는 촛불이며 촛대는 “하누키야” 라고 합니다.
뉴욕에서 공립학교는 유대인의 명절은 마치 공휴일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 교사들이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유대인의 명절은 공휴일로 제정하지 않아도 공휴일처럼 지내게 됩니다. 유대인은 미국에서 소수민족입니다. 비록 소수민족이지만 민족 명절을 철저하게 지키므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일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오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께서 기뻐하는 삶을 위하여 결단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삶을 힘들게 할지라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할 때 그 길을 따라가는 주위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이며 반드시 지켜주실 것입니다.
♪ 찬양 / 예수 따라가며
https://www.youtube.com/watch?v=5epxlhsh5O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랍바(5절) : 암몬의 수도(21:20 참조)
2. 벧여시몬(9절) : “황야의 집”이란 뜻.
3. 바알므온(9절) : 좋은 목초지로 모압과 국경 지대에 있던 아모리인들의 성읍.
4. 데만에서부터... 드단까지(13절) : 에돔의 전 국토.
5. 이스라엘 손을 빙자하여(14절) : 이 예언은 BC 164년경 유다의 마카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하나는 섬으로 된 도시와(5절) 다른 하나는 육지에 세워진 도시입니다(6절). 비록 작은 도시이었지만 무역업의 중심지가 되어 물질이 풍부한 도시이었습니다. 물질이 풍성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 12월 12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7:1∼36
♦ 묵상을 위한 주제 : 두로를 위한 애가(2절)
♦ 성구 :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애가를 지으라.
“두로를 위한 애가(a lament concerning Tyre)”
에스겔 26장 : 두로(Tyre)의 죄가 무엇이며 두로에 임할 심판에 대한 예언
에스겔 27장 : 아름다운 두로가 멸망한 것을 슬퍼하는 노래(哀歌)
에스겔 28장 : 두로 왕의 교만을 책망하는 말씀
27장은 화려하던 두로의 멸망에 관한 말씀으로 “너는 두로를 위하여 애가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두로를 위한 애가”는 “육(肉)에 속한 것은 결국 부패(腐敗)한다.”는 교훈을 담은 슬픈 노래라고 하겠습니다.
당시 “두로”는 “페니키아”에 속한 “시돈”과 더불어 도시 국가이었습니다(이사야 23장 참조).
“두로”는 무역선을 만들어 온갖 귀한 물건들을 운반하였으며 심지어 노예들까지도 거래하는 당시에는 부(富)를 상징하는 도시이었습니다.
무역선을 만들기 위한 각종 재료들은 “스닐 잣나무”로 판자를 만들고, “레바논 백향목”으로 돛대를 만들었고, “바산 상수리나무”로 노를 만들고, “깃딤섬 황양목”에 상아로 장식하여 갑판을 만들고, 애급의 수놓은 가는 베로 돛을 만들어 기(旗)를 만들고, 엘리사섬의 청색 자색 베일로 차일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무역선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시돈과 아르왓 거민들이 사공이 되었으며 박사가 선장이 되었습니다.
거래하는 물건들은 “은, 철, 상납(주석), 납, 노예, 놋그릇”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최고의 부를 누렸던 두로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누가 믿었을까요?
아무리 현재의 부요(富饒)와 영광(榮光)이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대적(對敵)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중심으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뿐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두로의 왕은 “히람”이었습니다. 히람은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 백향목과 놋 기술자를 보내어 협력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친밀하게 협력하며 지낼 때 하나님은 두로를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히람 왕이 죽은 후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고 “엣바알”이 왕이 된 후에 그의 딸 “이세벨”은 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내가 되어 사마리아에 신전을 건축하고 아세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두로는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디모데전서 6:17∼18)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건강과 생명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길에서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천성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기억되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월 |
일 |
요일 |
오늘 읽을 말씀 |
묵상 주제 |
12 |
14 |
월 |
에스겔 28:1∼29 |
완전한 인(印)(12절) |
12 |
15 |
화 |
에스겔 29:1∼24 |
갈대 지팡이(6절) |
12 |
16 |
수 |
에스겔 30:1∼33 |
구름의 날(3절) |
12 |
17 |
목 |
에스겔 31:1∼18 |
음부에 내려가던 날(15절) |
12 |
18 |
금 |
에스겔 32:1∼20 |
패망의 소문(9절) |
12 |
19 |
토 |
에스겔 33:1∼24 |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군(7절) |
12 |
20 |
주일 |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29: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갈대 지팡이(6절)
♦ 성구 : 애급 모든 거민(居民)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애급은 본래(本來) 이스라엘 족속(族屬)에게 갈대 지팡이라.
에스겔 29장은 애급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애급을 “갈대 지팡이(a staff of reed)”라고 합니다.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고 길을 떠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보다 애급을 의지하려고 할 때 그 애급은 갈대 지팡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함의 아들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입니다.(창세기 10:6)
“미스라임”은 “애급”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애급은 저주 받은 백성들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땅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주 받은 후손들을 의지하려는 것은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건입니다.
갈대 지팡이와 같은 애급을 의지하면 그 손에 가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열왕기하 18:21, 이사야 36:6).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애급을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합니다(요한계시록 11:8).
유대인의 왕으로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곳은 영원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주 받은 애급을 의지하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신과 신앙이 타락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염병균을 사용하여 세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현상을 눈여겨 살펴보며 신앙의 본문을 회복하여 우리들이 살아온 지난날보다 더 좋은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좀 더 크게 들을 수 있는 믿음의 귀와 분명하게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영의 눈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 현재 북한어 성경 보내기에 참여하여 약속하신 산타는 2사람이었으며 약속된 성경은 20권입니다. 계속하여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찬양 / 어지러운 세상 중에
https://www.youtube.com/watch?v=kfuSMJRMLz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큰 악어(타님)(3절) :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 애급을 상징
2.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4절) : 애급에서 돼지고기 미끼가 달린 갈고리로 악어를 잡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애급을 파멸시키겠다는 뜻.
3. 네 비닐에 붙은 고기(4절) : 애급과 동맹 또는 종속관계에 있는 나라.
4. 애급은 갈대 지팡이(6절) : 애급은 원래 유대민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예레미야 37:5∼8).
* 참고 성구
1. 요한계시록 11: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급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 12월 16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0: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구름의 날(3절)
♦ 성구 : 그 날이 가까왔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열국(列國)의 때이리로다.
에스겔 30장은 애급과 동맹국의 파멸에 관한 말씀입니다.
파멸의 날을 “구름의 날”이라고 합니다.
왜 구름의 날이라고 하셨을까요?
구름의 날은 흐리고 캄캄한 날입니다.
어둡고 캄캄한 날에 앞을 잘 볼 수 없는 어린 양들은 길을 잃고 헤맬 것입니다. 그때 목자가 되신 하나님은 그 양을 찾아 나설 것이며 양들을 괴롭혔던 애급과 그 동맹국들을 무너트릴 것입니다(에스겔 34:12).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구름의 날”은 “재앙이 임할 것”을 말합니다.
“열국의 때”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든 민족이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동조했던 나라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이스라엘은 회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들을 싸매시고 고쳐주시며 회복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이웃나라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와 믿음으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때 반드시 기쁨의 날을 맞이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자유대한민국은 가난한 후진 빈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의 동맹에 의한 협력에 의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을 파괴하고 공산주의 국가와 화친을 맺으려는 것은 애급과 동맹을 맺는 나라들이 파멸하는 것처럼 한국의 미래가 어지러워 질 수 있으므로 주의 백성들은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셨으나 그 환난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처럼 연약한 저희들도 주님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의 어려운 때를 극복하고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믿음으로 분별력을 갖고 서로 위로하며 함께 승리하는 그날을 위하여 오늘도 영적 싸움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https://www.youtube.com/watch?v=a6zCE70-r8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애급의 무리(4절) : 무리(하몬)는 사람들의 무리가 아니라 애급의 재화(財貨)를 의미.
2. 구스와 붓과 룻(5절) : 이디오피아와 리비아 그리고 리디아. 굽이란 리비아 오지에 거주하는 민족.
3. 놉(13절) : 애급의 수도이며 우상 숭배의 본거지(이사야 19:13).
* 참고 성구
1. 에스겔 34:12,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2. 이사야 19:13,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 되었도다 그들은 애급의 지파들의 모퉁이 돌이어늘 애급으로 그릇가게 하였도다.
♦ 12월 17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1: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음부에 내려가던 날(15절)
♦ 성구 : 나 주(主)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가 음부(陰府)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爲)하여 애곡(哀哭)하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江)을 쉬게 하며 큰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으로 그를 위(爲)하여 애곡(哀哭)하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로 그로 인(因)하여 쇠잔(衰殘)하게 하였느니라.
“음부에 내려가던 날”이란 최고의 권력과 힘을 자랑하던 것들이 무너져버릴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여호야 긴 왕(BC 597년 등극)이 바벨론에 제2차 포로로 잡혀간 후 11년(BC 587년)에 인자(에스겔)에게 애급 왕과 그 백성들에게 계시된 말씀입니다.
비록 애급이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을지라도 그 결과는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멸망하는 이유는 권력(勸力)의 힘을 자랑하는 교만(驕慢)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도 어느 나라도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지켜봅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2020년 가장 많이 읽혀진 네 개의 성구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둘째는 역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셋째는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넷째는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믿음의 길에서 푯대를 향하여 당당하게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로마서 14:8)
♪ 찬양 / 주를 앙모하는 자
https://www.youtube.com/watch?v=2bqwQ4WVmxk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나무(5절) : 앗수르의 성장과 국력을 나무의 성장에 비교한 것.
2. 열국의 능한 자(11절)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BC 612년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켰다(스바냐 2:13).
3. 열국의 강포한 다른 민족(12절) : 급성장한 신흥국가 바벨론이 앗수르를 멸망시킬 것을 나무의 성장과 소멸에 빗대어 설명한다.
4. 할례 받지 못하고(18절) : 히브리 사람들 이외의 야만인을 의미한다(에스겔 28:10).
* 참고 성구
1. 스바냐 2:13, 여호와가 북방을 향하여 손을 펴서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로 황무케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2. 에스겔 28:10, 네가 외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 12월 18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2: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패망의 소문(9절)
♦ 성구 : 내가 네 패망(敗亡)의 소문(所聞)으로 열국(列國) 곧 너의 알지 못하는 열방(列邦)에 이르게 할 때에 많은 백성(百姓)의 마음을 번뇌(煩惱)케 할 것임이여.
“패망(敗亡)의 소문(所聞)(rumors of defeat)”
에스겔 32장은 애급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11절).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애급이었지만 교만(驕慢)하기 때문에 신흥국 바벨론에 의해서 그 자리를 빼앗깁니다. 그리고 그 땅은 황무하여 사막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5절).
애급 왕 바로나 세상의 강대한 나라의 왕들은 다 죽어 구덩이에 내려가며 지하에 던져질 것입니다. 31장과 32장에는 ‘구덩이’라는 단어가 8번(31:14, 16; 32:18, 23, 24, 25, 29, 30), ‘지하’라는 단어가 5번 사용되었습니다(31:14, 16, 18; 32:18, 24).
애급 왕 바로는 아름다웠고 그 권세와 영광이 컸지만, 죽임을 당하고 지하 구덩이에 내려가 할례 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누울 것입니다. 할례 받지 않은 자와 함께 눕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시편 73:24) 악인들과 함께 음부 곧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합니다(19, 21, 24, 25, 26, 27, 28, 29, 30, 32절).
애급 왕과 그 무리가 앗수르, 엘람, 메섹과 두발, 에돔, 시돈의 왕들이 들어간 음부에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음부(21, 27절)와 무덤(22, 23, 24, 25, 26절)과 구덩이(23, 24, 25, 29, 30절)는 같은 의미로 “지옥(地獄, hell))”을 말합니다(31:15, 16, 17; 32:21, 27).
악인들은 살아 있었을 때 그 권세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으나 그들의 결말은 음부에 들어갈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권세와 부귀와 영광이 헛되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있을 때에 진실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끈질기게 우리 주위에서 모두를 힘들고 어렵게 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회복해야 한다는 소리 없는 외침이라고 하겠습니다.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던 자유대한민국이 잘못된 정책과 사상에 붙잡혀 구덩이로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고 합니다. 참 평화를 주시려고 하늘의 높은 자리를 포기하고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 내려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서로 섬기며 사랑하며 협력하여 망(亡)하는 소문이 아니라 흥(興)하는 소문이 들려오기를 기도합시다.
“사람이 부산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 하는 일도 헛되며 기를 쓰고 재산을 모으지만 누가 가져갈지 알지 못합니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나의 희망은 오직 주께 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시편 39:6∼7)
♪ 찬양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단어 및 용어 정리
1. 제십이년 십이월 초일일(1절) : 유대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이 포로로 잡혀간 후 12년 2월 1일(BC 586년).
2. 큰 악어(2절) : "카다님" "KJV, whale 고래" "NIV, monster, 괴물" "RSV, dragon, 용) 그러나 본문에서는 애급 왕을 가리킨다.
3. 강을 더럽혔도다(2절) : 애급이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여 억압한 일을 말한다.
4.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올리로다(3절) : 바벨론 군대가 애급을 심판할 것을 말한다.
5. 공중의 새, 온 땅의 짐승(4절) : 애급 주변의 열방들 또는 바벨론의 연합국을 가리킨다.
* 참고 성구
1. 시편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3: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군(7절)
♦ 성구 : 인자(人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族屬)의 파수군(把守軍)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代身)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군(a watchman for the house of Israel)”에스겔 33장부터는 “회복(回復)을 위한 예언(預言)”으로 33장은 “선지자의 임무와 책임”에 대한 말씀입니다.
악인(惡人)에게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고 말로 경고(警告)하여 악인을 그 길에서 떠나게 하면 그 악인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에게 경고하지 않는다면 그 악인의 죄악 때문에 그 피를 파수꾼의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방향(方向)을 잃어버린 백성들을 깨우쳐야 할 시대적 사명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일반 백성들에게 그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파수꾼에게 있습니다.
오늘의 파수꾼은 누구입니까?
모든 성도들이 파수군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파수꾼이 그 사명(使命)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백성들은 물론 파수꾼들도 반드시 징벌(懲罰)을 받을 것입니다.
파수꾼이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려면 영적(靈的) 능력(能力)을 회복해야 합니다. 영적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는 열린 성경과 열린 지도가 필요하다(To know the will of God, we need an open Bible and an open map.)”고 말했습니다.
“내비게이션(navigation)”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편리한 제품입니다. 초행길을 떠날 때 누구나 두렵고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따라가면 목적지로 안내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려주지만 또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았는가 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을 볼 수도 있는 인생 교과서와 같습니다.
극심한 변화가 갑자기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파수꾼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야 할 목적지와 방향을 알려주지 못하는 파수군은 반드시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치우침이 없는 가르침과 삶의 본이 되어 사람들의 어지러운 생각과 마음을 바로 잡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파수꾼으로 세워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 주님,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불쌍한 무리들
바른 길로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쉴 만한 곳으로
인도할 파수꾼으로 보내주소서.
♪ 찬양 /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 읽을 말씀 |
묵상 주제 |
|||
12 |
21 |
월 |
에스겔 34:1∼31 |
내 양의 목자(15절) |
12 |
22 |
화 |
에스겔 35:1∼15 |
피가 너를 따르리라(6절) |
12 |
23 |
수 |
에스겔 36:1∼38 |
새 영과 새 마음(26절) |
12 |
24 |
목 |
에스겔 37:1∼28 |
하나가 되게 하라(17절) |
12 |
25 |
금 |
에스겔 38:1∼23 |
악한 꾀(10절) |
12 |
26 |
토 |
에스겔 39:1∼29 |
내 거룩한 이름(7절) |
12 |
27 |
주일 |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 12월 21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4: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내 양의 목자(15절)
♦ 성구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내 양(羊)의 목자(牧者) / Shepherd of my sheep”
참 목자는 예수님뿐입니다.
세상에서 목자는 예수님처럼 가르치고 삶의 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참 목자와 같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름을 받았을 때는 주님 가신 길을 따르겠노라고 고백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고백은 희미해졌고 세상의 부귀영화에 도취되어 목자의 길을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본문에서 목자는 유다 말기 왕국의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를 말합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의 목자라고 한다면 넓은 의미의 목자는 이 시대에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목회자들이 세속화 되어 양들의 굶주림과 헐벗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기들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영적으로 타락한 심각한 상태를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화려한 교회는 있지만 섬김의 목자가 없다면 그 화려함은 곧 시들고 부패할 것입니다. 듣기 좋은 설교는 있지만 사람을 변화시킬 능력의 말씀이 없다면 머지않아 영양실조에 걸린 양들만 가득한 공동묘지를 연상케 할 것입니다.
교황 “인노센트 4세(Innocentius PP. IV, 제180대 교황. 1243. 6. 25~1254. 12. 7 재위)”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 3. 7)”가 “콘스탄틴 황제”가 지어 기증한 “라테란 성당 발코니”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침 성당 문으로 보물을 가득담은 자루들이 옮겨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경, 이제는 교회가 ‘은과 금은 없어도’ 라고 말하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교회가 예전에 비해서 그만큼 물질적으로 풍요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아퀴나스가 한숨을 쉬면서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앉은뱅이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던 때도 다 지나갔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교회가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팬데믹이란 코로나 바이러스가 화려한 교회의 문을 닫게 할 것인가? 아니면 잠자던 양들을 일으켜 세워 머리가 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될 것인가? 만일 깨닫지 못한다면 화려한 교회들은 사교장으로 변질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일어나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부흥을 기대할 수 있는 믿음으로 무장합시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더 좋은 교회를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합시다.
♪ 찬양 / 사랑의 주님 닮기 원하네
https://www.youtube.com/watch?v=bsA_JjDhxc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2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5: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피가 너를 따르리라(6절)
♦ 성구 :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盟誓)하노니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피가 너를 따르리라”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피가 너를 보복(報復)할 것이다”라고 번역합니다.
본문은 “세일산(Seir, ‘험한산’이란 뜻)”에 거주하는 “에돔(Edom, ‘붉다’는 뜻)”족속에 대한 예언입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와 그 후손들을 말합니다.
에돔은 두 민족과 두 땅 즉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자기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10절).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는 에돔의 기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에돔의 것이라고 자랑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가 너를 따를 것”이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피가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는 손을 세일산과 에돔에게 펴시므로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비로써 이스라엘과 유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
욕망을 채워줄 주머니는 없습니다.
탐욕스런 인간의 추한 모습이 정치와 경제와 사회 전 분야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습니다. 과연 이와 같은 욕망의 분수가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까요?
혼탁한 세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나만을 위한 욕망(慾望)보다는 모두를 위한 배려(配慮)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모두에게 퍼져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 찬양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https://www.youtube.com/watch?v=_IpTk9hOiu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3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6: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새 영과 새 마음(26절)
♦ 성구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새 영과 새 마음(New Heart & New Spirit)"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첫째는 이스라엘의 산들과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스라엘의 산들을 회복하실까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땅이 황폐해지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경우 남과 북이 분단될 때는 북한의 경제가 남한 보다 훨씬 더 부유하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북한은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산들(땅)을 회복시켜 산에는 푸른 나무들과 열매 맺는 과일들이 풍성하게 열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산들을 회복하신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려고 하나님의 신(영)을 그들의 속에 두어 규례(規例)를 지키게 하실 것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은 굳은 마음(돌의 마음. 레브 하에벤)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고기의 마음. 레브 바사르) 을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땅과 사람이 회복된 후에 비로써 온전한 회복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을 흩어진 세계 열국으로부터 고토(故土)로 데려올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든 더러운 죄악에서 정결케 하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그들 속에 두실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게 하실 것입니다.
넷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다섯째, 그 땅에 곡식이 풍성할 것이며 다시는 기근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복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 죄악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와 회복한 것처럼 자유대한민국에서도 이러한 회복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아직은 혼돈의 땅으로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에 의해서 잠시 어둡고 침침한 것 같지만 주의 백성들과 교회들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부흥과 회복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 찬양 / 험한 시험 물속에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7: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가 되게 하라(17절)
♦ 성구 :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聯合)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하나가 되게 하라(Let become a ONE)”
본문은 골짜기에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므로 큰 군대를 형성한다는 예언입니다.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 모든 족속을 말합니다(11절).
마른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3절)
이 질문은 이스라엘의 회복 가능성을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선지자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 관련시킴으로 문제 해결은 오직 하나님만의 영역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대언”이란 “예언”을 말합니다.
예언이란 한자를 “예언(豫言)”과 “예언(預言)”으로 구분합니다.
“예언(豫言)”이란 “미리 말하는 것”이며
“예언(預言)”이란 “맡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유다와 이스라엘을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남한과 북한도 하나 되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라고 합니다. 하나 되기 위하여 먼저 마른 뼈에 생기가 들어가 살아나게 하신 것처럼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약속하신 성령으로 회복한 후에 두 개의 막대기를 묶어서 하나 되게 하듯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 되는 그 날을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14절)
“우리에게 많고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시편 71:20)
동독과 서독의 분단 상징이었던 베들린 장벽 앞에서 독일 목사님께서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당신들은 통일을 위하여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며 연합기도를 수 십년 동한 계속하고 있지만 통일을 위해서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 기도 하면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 없는 통일을 맞이하면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오 주님
이 민족의 소망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주의 영으로 하나 되어
좌우로 쪼개지고 분열된 형제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모아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밝아오는 새 해에는........
♪ 찬양 / 주 예수 안에 동서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5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8: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악한 꾀(10절)
♦ 성구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악(惡)한 꾀를 내어.
“악한 꾀(an evil scheme)”
성탄절을 맞는 오늘 모두에게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어김없이 찾아온 성탄절을 편하게 맞이하지만 아직도 힘들게 성탄을 맞이하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과 중국의 가정교회 성도들을 생각해 봅니다.
본문은 “마곡”의 “곡왕”에 대한 예언입니다.
“마곡”은 야벳의 아들인 마곡의 후손들이 거주하던 아시아와 유럽의 북방 지역을 말합니다. 또는 흑해와 카스피해 중간 지점에 위치한 코카서스 북쪽을 가리킵니다.
“악한 꾀”는 곡은 평안히 살고 있는 이웃 나라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물건을 겁탈하며 노략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을 하나님의 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땅을 침략하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곡의 군대를 온역과 피로 다스리며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듯 하심으로 여러 나라의 군대는 하나님의 존대함과 거룩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와 방법을 하나님의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세상이 혼돈 가운데 흔들리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의 교회와 성도들이 부르짖을 때 혼돈을 질서로 회복하실 것입니다.
영(靈)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肉體)으로 강림(降臨)하신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질서(秩序)가 진행(進行)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실망(失望)할 수밖에 없는 그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러 간구(懇求)하는 일에만 성공(成功)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祝福)합니다.
♪ 찬양 /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6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39:1∼29
♦ 묵상을 위한 주제 : 내 거룩한 이름(7절)
♦ 성구 :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百姓)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列國)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내 거룩한 이름(my holy name)”
39장은 "침략자 곡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침략하여 괴롭혔던 곡이란 나라가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여호와가 하나님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22절).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침략했던 나라들은 이스라엘 족속이 죄악으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던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23절).
곡이 멸망하고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것은 하나님이 얼굴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버린 것을 말합니다. 은혜가 떠나버린 나라와 백성들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와 성도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깨어날 때 하나님의 얼굴빛이 온 땅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물질만능(物質萬能)과 기복신앙(祈福信仰)에서 돌아선 후에 정직(正直)과 공의(公義)와 겸손(謙遜)한 삶을 회복할 때 반드시 땅에 내려진 전염병은 도망갈 것입니다.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신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29절).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최고의 정성으로 섬기므로 온 땅에 창궐한 전염병 코로나 바이러스를 깨끗하게 물리치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월 |
일 |
요일 |
오늘 읽을 말씀 |
묵상 주제 |
12 |
28 |
월 |
에스겔 40:1∼49 |
척량하는 장대(3절) |
12 |
29 |
화 |
에스겔 41:1∼26 |
여호와 앞의 상(22절) |
12 |
30 |
수 |
에스겔 42:1∼20 |
담(20절) |
12 |
31 |
목 |
에스겔 43:1∼27 |
성신(5절) |
1 |
1 |
금 |
에스겔 44:1∼31 |
첫 밀가루(30절) |
1 |
2 |
토 |
에스겔 45:1∼25 |
공평과 공의(9절) |
1 |
3 |
주일 |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 12월 28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0:1∼49
♦ 묵상을 위한 주제 : 척량하는 장대(3절)
♦ 성구 :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尺量)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門)에 서서 있더니.
“척량하는 장대(a measuring rod)”
에스겔 40장부터는 장차 새롭게 세워질 성전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 성전을 건축하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셨던 새 하늘과 새 땅(新天地)에 대한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에스겔의 성전이 일치하는 계시와 내용이 같기 때문입니다.
“척량하는 장대”(에스겔 4:3, 5, 42:16)란 길이 측정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 길이가 대략 45.6cm 즉 한 규빗과 같습니다. 한 규빗이란 어른의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의 끝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구속사의 전개와 여러 성전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모세의 장막(출애굽기 40장)
둘째는 솔로몬의 성전(열왕기상 5∼8장)
셋째는 스룹바벨 성전(에스라 6장)
넷째는 예수님의 몸인 성전(요한복음 2:21)
다섯째는 고난 받는 성전(요한계시록 11장)
여섯째는 새 예루살렘(요한계시록 21:2)
이상 중에 선지자를 높은 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2절, 계 21:10).
그리고 척량하는 장대를 갖고 놋같이 빛난 사람에게(3절, 계 21:15, 11:1),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하라(4절, 계1:3)고 하셨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흔드는 것은 성전을 청결케 하여 바르게 세워야 할 시대적 사명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모든 성도들이 주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실 수 있는 거룩한 몸과 마음을 준비하여(고전 3:16, 6:19) 예수님 몸처럼 거룩한 몸으로 다듬어져야 하겠습니다(요 2:21).
♪ 찬양 / 빛나고 높은 보좌와
https://www.youtube.com/watch?v=ElOj3HTiLU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9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1: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여호와 앞의 상(22절)
♦ 성구 : 곧 나무 제단(祭壇)의 고(高)가 삼척(三尺)이요 장(長)이 이척(二尺)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面)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床)이라 하더라.
“여호와 앞의 상(the table before the Lord)”
제단(祭壇)을 여호와의 앞의 상(床)이라고 표현(表現)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贖罪 祭物)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제단에는 반드시 제물을 올려야 합니다. 속죄 제물은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하여 양과 소와 비둘기가 제물이 되어 올려져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죄를 지었으면 내가 제물이 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내 죄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 된 우리들에게 구원의 은혜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현대인의 특징적인 삶을 “워라밸” 이라고 합니다.
“워라밸”이란 영어의 “Work and Life Balance”의 첫 글자를 조합하여 만든 신조어로 그 의미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합니다. 분주한 현대인들에게 “쉼(休息)”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손에는 “휴대전화” 책상에는 “노트북”이 떠나지 않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쉬자!”는 것이 “워라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실존적(實存的) 삶을 살아야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과 삶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바라밸(Bible and Life Balance)” 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라밸”이란 “성경을 읽고 성경을 증거 하는 삶(Read the Bible, Share the Bible)”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나누는 일에는 부족함이 엿보입니다. 성경을 나눈다는 것은 내가 읽고 깨달은 가르침을 내 삶을 통하여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 깨달음을 서로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여호와 앞의 상에 제물로 올려진 것처럼 날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팬데믹이란 세상의 무대에 올려져야 합니다. 어떻게 올려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한 후에 그 말씀을 그 찬송과 더불어 올려야 하겠습니다.
“그 말씀 그 찬송”은 2021년 신앙생활의 표어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그 말씀의 치유와 그 찬송의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이 표어는 구약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정의하는 시편에 소개된 말씀입니다.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시편 106:12)
Then they believed his promises and sang his praise.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팬데믹 세상에서 그 말씀의 치유와 그 찬송의 증거와 기쁨이 2021년 365일 동안 날마다 계속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 예수 크신 사랑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30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2:1∼20
♦ 묵상을 위한 주제 : 담(20절)
♦ 성구 :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담(a wall)”이란 거룩한 것(the Holy)과 속된 것(the Common)을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성소(거룩한 것)와 속세(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거룩한 것들은 “거룩한 골방”과 “거룩한 곳”(13절) 그리고 “제사장의 의복” 이라고 합니다.
율법 시대에는 거룩한 것들을 잘 관리하고 규정에 따라 준행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은 어떻게 거룩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인간은 자기 힘으로 거룩해 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반드시 누군가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어 우리들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한 성령의 임재와 거룩한 삶을 위한 지속적인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며 살아갈 때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자리가 거룩한 곳으로 다듬어지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새겨져야 합니다(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내 삶의 환경이 나를 유혹할 때마다 세상을 이기셨던 예수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요한복음 17: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점 덕 강한 힘으로 압박하며 다가옵니다. 내 삶의 자리가 어렵고 힘들 때에 더 강한 힘으로 우리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사모하며 강한 주의 군사들로 무장하여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로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
오늘도 내 삶의 자리에
거룩한 흔적 새겨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터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 찬양 / 거룩 거룩 거룩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31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겔 43: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신(5절)
♦ 성구 : 성신(聖神)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榮光)이 전(殿)에 가득하더라.
“성신(聖神, Holy Spirit, 루아흐)”
본문은 새 성전에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에 대한 말씀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이미 주의 신(神)의 이끌림을 받아 에스겔서를 기록(記錄)합니다(3:12).
“때에 주(主)의 신(神)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 뒤에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여호와의 처소(處所)에서 나는 영광(榮光)을 찬송(讚頌)할지어다.”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으로부터 온다고 하는 것은(2절) 그룹들이 고대 성전을 떠날 때 동문에서 나와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한 산의 정상으로 올라갔었다. 그래서 그룹(영광)들이 새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도 동쪽에서부터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간다(4절)는 것은 “동문(東門)”은 “성전(聖殿)의 정문(正門)”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나갈 때에도 이 문으로 나갔습니다(11:23).
보좌의 처소 즉 내 발을 두는 처소(7절)는 지성소의 법궤를 말하며(이사야 60:13, 66:1) “발등상”이라고 표현합니다.
제단을 정결케 하려고 어린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제단의 네 뿔에 발라 속죄하여 정결케(카파르, 속죄하다, 용서하다, 제거하다)하라고 합니다(20절).
정결케 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흠 없는 수양 하나를 제물로 바칠 때 그 위에 소금을 펴서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24절). 제물에 소금을 뿌리는 이유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소금에는 약(弱)하다고 합니다.
우리 몸의 염분 농도(濃度)를 조금만 높인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균(菌)을 억제(抑制)할 수 있다고 합니다.
팬데믹 세상을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소금과 빛으로 파고들어간다면 이 세상이 부패(腐敗)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사명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한 후에 순수한 소금으로 밝은 빛으로 내 삶의 자리를 아름답게 정돈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참고 성구
1. 에스겔 10: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2. 이사야 60:13,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3. 이사야 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시종일관이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관철(貫徹)한다는 뜻입니다.
쉬운 말로 표현하면 "처음 같은 마지막" 또는 "마지막 같은 처음"이라고 하겠지요.
시종일관을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누구나 설렘을 갖고 시작합니다.
따라서 처음과 마지막을 "설렘과 실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에 대한 책망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꿈과 희망을 갖고 시작했던 새해가 마지막 날 앞에서 초로하게 주저 앉아버린 것이지요.
이러한 삶을 수 십년 계속했다면 더 이상 기대 할 무엇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 시도하면 어떨까요?
내 의지와 힘으로 100% 감당할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하여 점점 더 그 범위를 넓혀봅시다.
그리고 범위가 넓혀지는 재미에 푹 빠져 더 넓은 것을 찾아 앞으로 전진하는 자화상을 그려봅시다.
설렘으로 시작하여 실망으로 끝나는 삶이 아니라 설렘으로 시작하여 보람과 긍지로 다음 단계를 향하여 출발을 준비하는 처음 같은 마지막을 기대합시다.
* 12-30-20(수) 오후 6:34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당대 최고의 미국 부흥사와 당대 최고의 영국인 설교가의 만남이 이뤄지던 순간이다.
무디가 두근거리며 문을 두드리자 스펄전 목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무디 앞에 예상치 못한 광경이 벌어졌다.
스펄전 목사의 입에 큼지막한 파이프 담배가 물려 있었다.
깜짝 놀란 무디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기독교인이 담배를 피울 수 있단 말인가요.”
그러자 스펄전 목사가 산달이 다 된 듯한 무디의 배를 쿡 찌르며 장난스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럼, 기독교인이 이렇게 배가 나와도 되나.”
이 재미난 일화는 지역과 문화에 따라 정죄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실제로 미국 보수 교단에선 술 담배를 악한 죄로 보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교회에선 술 담배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다.
술 담배는 신앙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건강 문제라는 게 유럽 교인의 시각이다.
유럽 교인들의 눈에 문제가 되는 건 다른 데 있다.
미국 기독교 역사와 비교할 바 없이 오래된 유럽교회에선 수도원 제도가 생긴 6세기부터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 중에서 가장 큰 일곱 가지 대죄(cardinal sin)를 가르쳐 왔는데 그중 하나가 탐식과 게으름이다.
그래서 유럽 전통에 익숙한 교인의 눈엔 술 담배 대신 무디의 튀어나온 배가 오히려 죄악의 삶을 살아온 표징으로 보일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미국에 왜 그렇게 비만한 기독교인이 많고, 유럽의 유명한 신학자와 목사들 중에 애연가와 애주가가 그리도 많은지 설명해 주는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죄를 멀리하고 선을 추구해야 하는 삶이다.
하지만 죄가 무엇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이 무엇이냐는 문제의 각론에 들어가면 매우 다양한 해석과 설명을 만나게 된다.
이 다양한 답변들은 대부분 시대와 문화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시대와 문화, 지역에 구애 받지 않는 기독교의 공통분모,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이 추구하는 신앙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교회 안엔 참 다양한 사람이 모인다.
하나의 세례, 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생각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곡진하게 하나로 품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그걸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통분모에 속한다.
도저히 포용할 수 없는 죄인을 품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로 골고다 십자가에서 온전히 드러났고 우리는 이것을 ‘복음’이라고 부른다.
이 사랑과 포용의 복음이 우리 안에 거칠게 부딪히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뛰어넘게 만든다.
유한하고 임시적인 것을 뛰어넘는 것이 영원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렇지 않고 상황에 따라 매번 답이 달라진다면 그건 하나님과 별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임시적인 것으로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것은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배가 나와도 술 담배를 해도 사랑이면 넉넉히 안아 줄 수 있다.
다른 데라면 몰라도 적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는 교회라면 이런 종류의 사랑을 전하고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아, 그리고 이건 빼놓은 건강 이야기인데 막 먹고 마시다 보면 하나님을 너무 빨리 만날 수 있으니 무엇이든 적당히 하길 바란다.
아무리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이 되지만 맹독도 제대로 쓰이면 약이 된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04546&code=23111413&sid1=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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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성경은 술이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답변 :
성경에는 술을 마시는 것에 관한 말씀이 많습니다.
(레 10:9; 민 6:3; 신 14:26; 29:6; 삿 13:4, 7, 14; 잠
20:1; 31:4, 6; 사 5:11, 22; 24:9; 28:7; 29:9; 56:12;)
하지만 성경이 반드시 기독교인이
맥주나 와인 또는 그 밖의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들을 마시는 것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떤 성경 구절들은 긍정적인
용어들로 술을 논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9장 7절은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라고 가르칩니다.
시편 104장 14-15절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주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아모스 9장 14절 은 자신의 포도원에서 마시는 와인은 하나님의 복의 표시라고 논합니다.
이사야 55장 1절은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격려합니다.
하나님이 술에 대해 기독교인들에게 명하시는 것은 술 취함을 피하라는 것입니다(엡 5:18).
성경은 술 취함과 그 결과들을 죄라고
말합니다(잠 23:29-35).
또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몸이 어떤 것에 의해 ‘정복되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고전 6:12; 벧후 2:19).
술을 과하게 마시는 것은 명백한 중독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기독교인이 다른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그들의 양심을 거슬려서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그 어떤 행위도 금하고 있습니다(고전
8:9-13).
이러한 원칙들에 비추어 보면, 어떤 기독교인이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술을 과하게 마시고 있다고 말하기는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고전 10:31).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이 때에 따라 포도주를 마셨던 것처럼 보이기 도 합니다(요 2:1-11; 마
26:29).
신약성경이 쓰여진 당시에는 식수가 매우 깨끗하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현대의 정화시설이 없었기에 물에는 종종
박테리아, 바이러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오염물질이 가득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제3세계 국가들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종종 포도주(또는 포도주스)를 마셨는데, 물보다 오염 가능성이 훨씬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물을 그만 마시고 (물이 디모데의 위장 문제를 일으켰던 것으로 추정) 그 대신 포도주를 마시라고 지도했습니다. 그
당시 포도주는 발효된 음료였는데(알코올이 함유됨), 꼭 오늘날의 알코올 순도까지 발효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포도주스였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마시는 술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은 기독교인들이 맥주, 와인 또는 그 밖의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를 마시는 것을 금하고 있지 않습니다. 알코올
자체는 죄로 오염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절대적으로 삼가야 하는 것은 술 취함과 중독입니다(엡 5:18; 고전 6:12).
적은 양의 알코올 섭취는 몸에 해롭지도 않고 중독되지도 않습니다. 어떤 의사들은 적은 양의 적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건강, 특히
심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적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자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취하거나 중독되는 것은
죄입니다. 결국 술과 그 결과에 대한 성경적인 염려, 알코올 과다 섭취로 빠지기 쉬운 유혹,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할 때 그리스도인이 술을 마시는 것을 삼가는 것이 가장 최선일 것입니다.
질문: 흡연에 대한 기독교의 견해는 무엇인가?
답변:
성경은 흡연에 대해 결코 직접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흡연에 대해 확실하게 적용할 수 있는 원칙들은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우리의 몸이 어떤 것에 의해 ‘제어 받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 흡연이 매우 중독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같은 구절의 후반부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말합니다. 흡연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의 건강에 대단히 해롭습니다. 흡연은 폐와 심장에 손상을 입힌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흡연이 유익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까(고전 6:12)? 흡연이 진정으로 몸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고전 6:20)? 사람이 정직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흡연할 수 있습니까(고전 10:31)? 우리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오”라고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흡연은 죄이고,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흡연과 같이 몸에 중독적이고 나쁠 수 있고 건강에도 해로운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이
견해를 반대하는 주장을 합니다.
한 예로서, 많은 사람들이 꼼짝없이 카페인에 중독되어 아침에 마시는 첫 번째 커피 한잔이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이 사실이 흡연을 정당화 시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폭식과 몸에
지나치게 해로운 음식 섭취를 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어떤 죄는 용납하고 다른 죄는 정죄하는
위선을 보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는 것은 이 사실이 흡연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흡연이 죄라는 견해에 반하는 또 다른 주장은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과 같이 몇몇 경건한 사람들이 흡연자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이런 주장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흡연에 관한 한 스펄전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른 점에서 그가 경건하고 하나님 말씀의 훌륭한 교사였습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가 훌륭한 교사였다는 사실이
그의 모든 행위와 습관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만들어 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흡연은 죄라고 말하는 것이 모든 흡연자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되게 믿는 많은 흡연자들이
있습니다.
흡연이 사람을 구원받지 못하게 막지는 못합니다.
또한 그것은 구원을 잃어버리게 하지도 않습니다.
흡연은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거나 하나님께 기독교인으로서 죄를 고백함에 있어서, 어느 다른 죄와 마찬가지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1:9).
동시에 우리는 흡연은 떨쳐버려야 할 죄이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극복해야 할 죄라는 사실을 굳게 믿습니다.
경산중앙교회(김종원 목사)가 12월 23일 드라이브인( Drive-In) 방식으로 유아세례식을 실시해 눈길을 끈다.
경산중앙교회는 매년 봄과 가을에 유아세례식을 거행해 왔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차질을 빚었고, 성탄절에 계획했던 유아세례마저 코로나19 3차 대유행 관계로 취소될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일생에 한 번 뿐인 자녀의 유아세례를 마음으로 준비해 왔던 믿음의 부모들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서 ‘드라이브인 유아세례’라는 창의적인 대안을 찾은 것이다.
김종원 목사는 "코로나19로 올해 유아세례의 기회를 놓칠 아기들을 생각해 깊은 고민 끝에 드라이브인 방식으로 하게 됐다.
새로운 방식이었지만 큰 은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드라이브인 방식의 유아세례는 사전에 온라인으로 부모 서약을 받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23일 감염예방을 위해 교회 앞마당에 유아세례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세례식 외에 철저하게 비접촉 방식으로 진행했다. 비대면 방식이지만, 유아세례의 공적 의미를 살려 이날 유아세례식을 영상에 고스란히 담아 성탄절예배에 영상으로 방영하기로 했다.
이번 유아세례식에서 참여한 신주은·김민정 성도 가정은 “코로나19에다 추운 날씨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교회에서 신경 써 주셔서 드라이브인으로 유아세례를 하게 돼서 감사했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유아세례였다. 지우가 유아세례 받은 모습을 보면서 부모로서 더 큰 신앙적인 책임감이 생긴다”고 흡족해 했다.
한편 경산중앙교회 드라이브인 유아세례식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안해 23일 오후 3시와 8시 두 차례에 걸쳐 28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이제는 독방 감옥으로 끌고 갑니다.
그래도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내일을 기다립니다.
이런 마음을 모두에게 전하고 나누려고
"희망의 노래" 라는 메시지를 올려봅니다.
커다란 공 위에 눈을 흰 천으로 가린 여자가 비파를 들고 올라 앉아 있는 그림입니다.
커다란 공은 지구를 상징합니다.
여자의 손에 들린 비파의 일곱 줄 중에 오직 한 줄만 남아있습니다.
눈을 가린 것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망이라는 상황을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했겠지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점 더 사람들로부터 "희망의 성"을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줄 남은 비파를 들고 두 눈을 가린채 지구 위에 앉아 있는 가냘픈 여인같은 우리들이지만 아직 나에게는 한 줄이 남아 있다고 외쳐 봅니다.
그 한 줄이 무엇일까요?
영원히 변함이 없는 희망을 약속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님입니다.
이사야서 21장 1절부터 9절은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이 무너지고 포로가 되었던 백성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예언은 비파의 한 줄 남은 것과 흡사합니다.
희망의 서광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For 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the man Christ Jesus.
1. 둘 사이에서 일을 주선(周旋)하는 사람
2. 신과 사람과의 사이
중보자란 고대 그리스의 상업 또는 법정 용어이다.
이것은 쌍방의 이견을 제거하거나 계약 또는 언약을 비준함으로써 공동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협상하는 사람 또는 중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유일신(唯一神) : 오직 하나의 신만이 존재한다.
단일신(單一神) : 다른 신을 인정하되 내가 믿는 신을 최고의 신으로 섬긴다.
참 하나님 참 사람(vere Deus vere Homo)
첫째, 창조주 신앙(마태복음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주재(主宰) / 주인 주, 우두머리 재
천지의 주재 :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새 하늘과 새 땅(계 21:1)
창세기 14:22, 아브람이 소돔왕에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둘째, 계시(啓示)의 중보(마태복음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계시란 어원적으로 "나타남" " 드러남"을 의미
인간이 스스로 계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신적 지식을 받는 것을 말한다.
로마 가톨릭교에서는 이것을 "천계(天啓)"라고 한다.
일반계시는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일반적인 진리를 말한다.
특별계시는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통하여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셋째, 기도의 중보(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I urge, then, first of all, that requests, prayers, intercession and thanksgiving be made for everyone.
넷째, 언약의 중보(히브리서 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그분은 화목을 조성한다.
죄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교제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이것이 바로 화목이다.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신다. 우리는 이 연결고리를 통해서 하나님과 온전한 언약적 관계를 누린다.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바울의 표현은 신인으로서의 그분의 독특성을 나타낸다(딤전 2:5).
구원과 중보는 예수님의 인성과 그분의 자발적인 자기희생에 정확히 고정되어 있다.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예수님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 끈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