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8월 6일, 화) - 누가복음 5장



오늘은 누가복음 5장과 민수기 21장 그리고 시편 37편을 읽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에서 뉴욕나사렛교회 표어는 매년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영구 표어로 결정했습니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자!’


어떻게 하는 것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일까요?

노련한 어부 베드로는 낯선 사람이었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어부와 목수가 그물로 고기를 잡는다면 반드시 어부가 이길 것입니다.

그러나 어부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순종이란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어부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베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버려야 할 것들을 찾아내어 더 이상 내 안에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가르침에 따라 새 부대가 되어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드리는 은혜를 기도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누가복음 5:5)

- Rely on the words, I will let down the nets.  

(오늘의 기도)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을 깨우쳐 주옵소서!



오늘의 묵상(8월 5일, 월) - 누가복음 4장


오늘은 누가복음 4장과 민수기 20장 그리고 시편 36편을 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이끌림을 따라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령과 마귀의 싸움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이미 마귀가 패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패배한 마귀가 예수님을 끈질기게 쫓아다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마귀는 아주 악착같은 영적 괴물입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13절)  


예수님을 끈질기게 유혹하던 마귀가 예수님께 패배한 후에는 지상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제 자리에서 맴돌고 마귀의 유혹은 날마다 새롭게 진보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또한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해야 합니다.

어떻게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성격과 삶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 개발해야 합니다.

내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미 드러난 방법들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그 방법이란 성경을 읽고 그 안에서 나에게 합당한 진리(레마)를 찾는 것입니다. 말씀(로고스)은 내가 적용하지 않아도 여전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적용하고 열매 맺는 말씀(레마)은 나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늘의 말씀 한 구절과 기도 제목을 소개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개발하여 성숙한 구원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누가복음 4:43)

- I must preach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to the other towns also, because that is why I was sent.    

(오늘의 기도) 세상에 나를 보내신 목적을 온전히 이루게 하옵소서!


뉴욕나사렛교회 이승혁목사




천국의 암호와 전화 번호

천국의 암호


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려고 천국 문 앞에 서니 한 천사가 그에게 암호를 대라고 합니다. “나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에서나 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부자가 물러가고 외모가 훌륭한 한 남자가 천국 문을 두드렸습니다. 천사가 암호를 묻자 “나는 성직자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의로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유명한 기관들이 나에게 최고의 영예를 주었습니다.” 천사는 “당신은 왕을 알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천국 문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얼굴은 빛났습니다. 할머니는 손을 높이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피, 나의 대답은 오직 피라오. 할렐루야! 그 피가 나를 씻겨준다네!” 즉시 천국 문이 열리고, 그 귀한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때, 천국의 합창단이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우리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암호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전화번호


만일 천국에도 전화가 있고 지옥에도 전화가 있다면 그 번화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천국의 전화번호는 66-3927, 지옥의 전화번호는 11-1111이 아닐까요?

그 이유는 구약 성경의 39권과 신약 성경의 27권을 합하면 66이 되어 66이 천국의 국번이 되고 39와 27이 번호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지옥의 전화번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최고라는 교만과 우월감에 사로잡혀 제일이라는 생각에 붙잡혀 11-1111이 될 것입니다.

천국의 전화번호보다는 지옥의 전화번호가 훨씬 외우기가 쉽습니다.

천국전화번호를 기억하며 날마다 천국을 예약하는 삶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예약하는지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동방견문록과 천국견문록

13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탐험가였던 마르코 폴로는 그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중국으로 건너와서 17년 동안 살았고 그 후에 조국으로 돌아가서 유명한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임종하게 되었을 때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서는 “자네는 그 책에서 도무지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만 잔뜩 기록해놓지 않았나?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주면 좋겠네. 그 책의 모든 내용이 상상에 의해서 꾸며졌다는 사실을 말일세...”

그때 마르코 폴로는 “아닐세. 내가 책에 쓴 것은 모두 진실일세. 사실 나는 내가 보고 겪었던 것의 절반도 채 기록하지 못 했다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이다. 천국은 상상으로 꾸며진 곳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신실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듭 천국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단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불신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을 이해할 수 없을 뿐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백성으로서 날마다 천국의 소망을 든든히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옥의 입구에 쓰여 진 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테의 신곡이란 작품에서 지옥의 입구에는 “이 곳을 들어가는 자는 희망을 버릴지어다.” 

천국와 지옥의 차이는 한 마디로 소망이 있는가 없는가 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소망을 갖는 것은 천국을 향한 삶입니다. 반면에 세상에 살면서 소망을 갖지 못한다면 지옥과 같은 삶입니다.

사업의 현장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 안에서 소망을 느낍니까? 아니면 소망을 느끼지 못합니까?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소망을 확인하며 믿음 위에 든든히 세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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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대로 거둡니다 


영국의 어느 제과업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빵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제과 업자에게는 매일 아침, 버터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납품되는 버터를 보니 정량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납품된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 보았습니다. 예측한 대로 정량에 미달되었습니다. 화가 난 이 업자는 버터를 납품하는 농부에게 변상할 것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농부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을 하던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저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터를 만들어 그 제과 업자가 파는 1파운드짜리 빵의 규격에 맞추어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서 납품을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제과업자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그 1파운드짜리 빵의 양을 줄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고 납품을 한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빵을 줄인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비난과 헐뜯음과 미움과 증오, 거짓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그 선한 결과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의 얼굴과 가룟 유다의 얼굴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1497년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와 12 제자들의 성격과 활동을 면밀히 연구하여 그들의 모든 것을 그림 속에 집약시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유독 예수와 가롯 유다의 모습은 참으로 표현하기가 난감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그려 넣고 이 두 사람을 그릴 모델을 찾기에 고심하던 중 밀라노의 한 성당 성가대에서 환하면서도 엄숙하고, 거룩하면서도 따사롭고, 고결하면서도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찬양하고 있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다빈치는 그 자리에서 그 청년을 모델로 예수의 모습을 그려 넣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시작한지 2년이 넘게 흘렀으나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하여 그림은 이직 미완성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어스름한 저녁 다빈치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는 추하고, 더러웠습니다. 그 눈은 쥐구멍에서 내다보는 쥐 눈알 같이 반들반들한 것이 교활하고 야비한 눈빛이었습니다. 다빈치는 그 청년에게서 가롯 유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빈치는 그 청년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청년은 많은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다빈치는 두 말 않고 청년의 요구대로 돈을 건네주고 청년을 모델로 가롯 유다를 그려 넣었습니다. 

다빈치는 며칠 동안 청년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묘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습니다. 그 느낌이란 가롯 유다의 모델로 삼은 이 청년은 자신가 밀라노 성당 성가대석에서 예수의 모델로 삼았던 그 청년과 어딘가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롯 유다의 모습을 다 그려 넣어 저 위대한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을 완성한 후, 다빈치는 청년에게 조심스러운 어조로 <혹시, 자네 2년 전 밀라노 성당 성가대에서 찬양한 적이 없는가?> 물었습니다. 그 청년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면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가롯 유다의 모델로 삼은 이 청년은 다빈치가 2년 전 밀라노 성당에서 예수의 모델로 스켓치 하였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예수와 가롯 유다는 같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고전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참되고 진실한 가치

인도의 성자 나나크데브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사람의 참되고 진실한 가치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나나크데브는 "내일 다시 오시면 그 때 말씀드리리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나크데브는 그 사람에게 눈부신 보석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보석을 가지고 시장으로 가서 값을 물어보시오. 하지만 아무리 비싸게 준다해도 팔지는 말고, 그냥 가게마다 들러 값을 물어보기만 하시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과일가게 주인에게 그 보석을 보여주고 얼마로 쳐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과일가게 주인은 오렌지 두 알 값으로 쳐 드리지요 하였습니다. 다음은 감자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감자가게 주인은 감자 네 근 값으로 쳐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대장장이는 500냥 쳐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보석가게들을 찾아갔습니다. 그 사람이 새로 찾아간 보석가게 주인마다 천 냥, 오천 냥, 만 냥 하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사람은 그 도시에서 제일 유명한 보석가게를 찾아갔습니다. 보석가게 주인은 그 보석을 보더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몇 번이나 감정을 되풀이하고 나서 말하였습니다. "손님, 정말 훌륭한 보석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보석은 값을 붙일 수 없을 만큼 귀한 보석입니다. 굳이 값을 매긴다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야겠지요. 파실 생각이시라면 저에게 파시지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보석을 챙겨들고 나나크데브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나크데브는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어떠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겠군요? 사람이란 존재는 오렌지 두 알 값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감자 네 근 값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500냥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돈으로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를 지닐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가치란 각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품은 생각을 어떻게 현실화 시켜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과 불신앙

어느 백화점 식품 영업부에서 소비자 소비심리 행태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실험은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똑 같은 10평 넓이의 쇼윈도 위에, 똑 같은 시금치 100단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A 코너 위에는 100촉 짜리 전구를 10개 켜 두고, B 코너 위에는 100촉 짜리 전구 6개를 켜 두었습니다. 3 시간 후 판매 실적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였을까요? 그렇습니다. 100촉 짜리 전구 10개를 켜 놓은 A 코너 쪽 시금치가 90단이 팔렸고, 100촉 전구 6개를 켜 놓은 B 코너 쪽 시금치는 70단이 팔렸습니다. 이 간단한 실험 결과가 말해 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밝은 것을 좋아한다. 밝은 쪽 시금치가 어두운 쪽 시금치보다 훨씬 싱싱하고 맛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도 꼭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부정적이기 쉽습니다. 어둡고, 비판적이고, 게으르고, 우울하기 쉽습니다. 확신이 없으니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사람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어둡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환난을 당하나 찬송합니다.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웃음, 여유, 부지런함, 청결, 끼끗함, 자유, 넉넉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있는 사람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밝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두컴컴한 것을 싫어합니다. 밝고 청결한 것을 좋아합니다. 더러운 하수도 진창 내 나는 어둡고 음산한 길을 좋아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은 꽃 피고, 싸리비로 정갈하게 쓸어낸 길을 좋아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갑니다. 그러나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믿음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꾸준히 모여듭니다. 그리하여 그 모여 든 사람들이 마음을 하나로 합력하여 놀랍고도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무얼 하지요?

북방에서 온 부자 사업가는 남방의 한 어부가 자기 배 곁에 드러누워 담뱃대나 빨고 빈둥빈둥 한가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 : 왜 고기잡이를 안 나가십니까? 

어부 :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 놓았거든요. 

부자 : 오늘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잡아 놓으면 좋지 않겠소? 

어부 : 그래서 뭘 하게요? 

부자 :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요. 그 돈으로 당신 배에 알 맞는 발동기를 달고 더 멀리 더 깊은 데로 가서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겠소.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나일론 그물도 새로 사고, 그래서 더 많은 고기를 잡고, 그만큼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는 거지요. 

어부 : 그리고 그 다음엔 뭘 합니까? 

부자 : 그렇게 되면 얼마 안 가서 큰 배를 사서 선주가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나가다보면 어쩌면 거대한 어로 함대를 거느린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어부 : 그리고 그 다음엔 뭘 합니까? 

부자 : 그렇게 되면 편안히 앉아 쉬면서 삶을 넉넉히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어부 :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대답한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즐길 줄 아는 능력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슬기롭습니다. 


그래서 옛 글에 이르기를 不是閑人閑不得 閑人不是等閑人이라.
마음이 스스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면 한가함의 여유와 맛을 즐길 수 없고, 한가한 사람의 그 한가함을 게으른 사람의 한가함으로 착각하지 말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성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참으로 지혜로운 크리스챤은 하나님 닮기를 실습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1.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2. 사랑입니다. 

3. 용서입니다. 

4. 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네 가지는 하나님의 가장 놀랍고 큰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4가지 성품을 본 받아야 하나님을 본 받는 것입니다. 

    


정의(진리)와 비유는 구분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에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개울물을 젖소가 마시면 신선한 우유가 됩니다. 그러나 독사가 그 물을 마시면 독이 됩니다.

물이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마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은 정의 곧 진리라고 합니다. 반면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과장법입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 할 때에 반드시 정의는 진리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비유와 과장법은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교훈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의 묵상(8월 4일, 주일) - 누가복음 3장



오늘은 누가복음 3장과 민수기 19장 그리고 시편 35편을 읽습니다.


세례 요한의 간절한 기대는 모든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대를 갖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오늘날도 회개의 세례를 외쳐야 하는데 축복의 선포가 난무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잘 사는 것보다는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고

바르게 사는 것보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이 아닐까요?

8월의 첫 주일을 맞이합니다.

섬기는 교회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통곡하며 울부짖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인간의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이 모습 이 대로 정말 주님 앞에 설 수 있을지를 묵상하며 주일을 기다립니다.

주여! 불쌍한 영혼 위에 은총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누가복음 3:6)

- And all mankind will see God's salvation.    

오늘의 기도 / 주님,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하옵소서!


뉴욕나사렛교회  이승혁목사

45-05 48Ave

Woodside NY 11377

(718)361-0844, (917)597-2322


오늘의 묵상(8월 3일, 토) - 누가복음 2장


오늘은 누가복음 2장과 민수기 18장 그리고 시편 34편을 읽습니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시므온’과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5절)


세상이 주는 즐거움 보다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로를 기다리며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사모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주를 믿는 백성들이 시므온과 같은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듣는 것들이 여전히 세속적인 즐거움에 도취되어 있기에 거룩해야 할 백성들마저 방향을 잃어버린 혼돈의 시대를 향하여 작은 등불을 들고 묵묵히 주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진솔한 삶을 기도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향하여 시므온과 같은 삶의 사람들 열 명을 찾았듯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향하여 주님이 찾고자 하는 열 명의 진실함과 경건을 채워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52)  

- And Jesus grew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오늘의 기도 제목 /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삶을 이루게 하소서!


뉴욕나사렛교회  이승혁목사

45-05 48Ave

Woodside NY 1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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